기후변화에 맞서는 환경파업 집회가 서울에서 21일,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27일 열렸다. 스웨덴의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뉴욕에서 23일 열린 2019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연사로 나와 시민들의 행동을 촉구했다. 세계의 청소년들은 기후변화 대응을 주도하면서 시민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같은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저탄소 경제로 조기 전환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녹색기후기금 공여액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했다. 내년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발전 목표 달성을 위한 민관협력회의인 P4G 정상회의를 개최하겠다고 약속했다. ‘세계 푸른 하늘의 날’도 제안했다. 2022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6기를 더 감축할 예정임도 전했다.

기후과학자들의 예측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산업혁명부터 지금까지 지구의 평균기온은 1도가량 상승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급증이 주원인이다. 기온 상승은 지역별 편차가 심하다. 어떤 지역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극지방은 4도나 상승했다. 해빙은 1979년 이후 연 13%씩 감소하고 있다. 해빙의 감소가 북극항로를 열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해수면 상승을 일으킨다. 이런 현상이 무서운 것은 예측할 수 있는 ‘기후변동’을 넘어선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간의 기여는 95%에 달한다. 현재 기온을 유지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고 한다. IPCC가 제안하는 것은 2100년까지 1.5도만 높아지는 수준에서 기후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5%로 줄여야 하고, 2050년에는 인위적 배출량이 인위적 흡수량과 균형을 이루는 ‘넷 제로’를 이뤄야 한다고 한다. 

기후과학자들의 예측에 대응하는 정부와 산업계의 전략은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에너지기술전망(ETP)을 통해 알 수 있다. 평균기온 상승을 최소 2도, 가능하다면 1.75도까지 억제하는 게 합의 수준이다. 2도로 억제하려면 2060년까지 에너지 총수요를 현재보다 7% 증가에서 억제하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전체 에너지 중 74%까지 높여야 하며, 연비도 높여야 하고, 탄소포집 기술의 혁신도 필수적이다. 과학기술과 산업의 역량을 모두 모아 대응해야 할 만큼 큰 과제라는 뜻이다.

중국발 미세먼지나, 기후변화를 믿지 않고 규제를 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등 세계적인 장애요인을 집어내면서 한국은 그럭저럭 잘하고 있다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좀 더 전향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한국이 가져감으로써 산업 차원에서도 큰 혁신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조선업의 경우 기후변화 의제에서 한국이 선도적이고 지대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은 조선업 세계 1위 국가이다. 새로 만드는 배 중 3분의 1이 한국의 조선소에서 나온다. 해운은 장거리일수록 저렴하고 대량운송이 가능해, 세계 운송의 다수를 차지한다. 장거리 대량운송에서 선박을 대체할 수단은 없다. 또한 선박은 기후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해상 공해 물질의 40%가 선박에서 나온다. 선박연료는 경유와 중유 혼합물이기에 다양한 오염물질을 배출한다. 국내 조선업계의 대응은 국제해사기구(IMO)가 제안하는 선박에서 배출되는 황산화물을 줄이기 위한 탈황설비 장착, 저유황연료 사용 등 방어적 수준을 크게 넘지 못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발전기 연료를 고체산화물연료전지로 교체하는 기본설계를 선급에서 승인받았지만 주연료로 보면 연료전지는커녕 소형 컨테이너선과 유조선에 LNG 연료추진선을 적용하는 수준이다. 연구·개발과 상용화가 만들 파급효과를 검토하면 기후변화협약은 조선업에도 광범위한 혁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연료전지 회사들과 조선업계가 긴밀한 결속을 맺고, 관련 소재와 부품 중소기업 참여를 독려하게끔 인센티브를 주고,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것은 좋은 정책 방향이다. 연비 개선에도 힘이 부치는 중국 조선업의 추격을 완전히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선박 관련 설계와 고부가가치 장비 기술이 좋은 노르웨이는 100% 전기추진 크루즈 선박 ‘암페어’의 개발을 완료했지만, 아직 대형화 문턱은 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대규모로 연구·개발 인력을 뽑고 있는 조선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를 정책이 힘을 주어 견인할 때다. 기후변화 대응을 선도하는 21세기형 친환경 조선국가로 업그레이드할 기회다.

해양수산부는 친환경 고효율 선박 확보 지원 사업에 85억원, 노후 예인선 LNG 연료 추진 전환 사업에 28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연 50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산업의 질적 전환을 위한 예산치고는 초라하다. 한국은 GDP의 30%를 제조업이 만들어내는 세계 5대 제조업 강국이다. 한국의 ‘푸른 하늘’은 화석연료 발전소를 줄이는 것을 넘어 제조업 공정과 공장에서 나온 제품의 탄소 배출을 줄여야 완전해진다. 툰베리는 영국 플리머스부터 뉴욕까지 갈 때 이산화탄소 배출 없는 운송수단을 찾다가 무동력 요트를 9일간 탔다. 세계의 선박을 책임지는 한국의 조선소들이 이산화탄소 배출 없는 배를 만들어 툰베리에게 선물로 주면 어떨까.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전환의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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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명한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만약 어느 날 남자가 월경을 하고 여자는 하지 않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스타이넘은  ‘만일 그렇게 된다면 분명 월경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자랑거리가 될 것이며, 지체 높은 정치가들의 생리통으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 의회는 국립월경불순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다는 생리통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면서 그녀와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만일 이들이 남성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 지난한 싸움의 시작은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9년 한국도로공사가 만들어질 때 톨게이트 요금수납 업무는 직접고용 형태였다. 유료도로를 만들었으니 요금수납은 필수이자 핵심 업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구조조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고 도로공사는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내보낼 것인가 결정해야 했다. 

19일 경북 김천시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본사 점거 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도로공사는 톨게이트 수납업무를 외주용역으로 전환하고, 퇴직자와 퇴직 예정자를 350여개 톨게이트 영업소의 용역업체 사장으로 배치했다. 구조조정은 했으나 실질적으로 바뀐 것은 없었다. ‘본부장’이던 사람이 ‘사장’으로 직함만 바뀌었을 뿐 그도, 톨게이트 노동자도 어제 하던 일을 똑같이 했다. 이는 톨게이트 노동자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대법원 판결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업소 용역업체 사장들은 도로공사만을 상대로 영업했고 특별한 자본 투자나 영업상 위험을 부담하지도 않았으며, 도로공사가 하라는 대로 노동자들에게 일하게 하고 임금을 지급하기만 하면 일정한 이윤을 보장받았다. 명목상 변화일 뿐이다.

반면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이 대목에서 의문이 들었다. 만일 이들이 남성이었다면 외주용역의 대상이 되었을까? 

IMF 구조조정 시기, 가장 강력히 작동한 게 ‘남성 가장 이데올로기’였다. 당시 유행한 ‘아빠 힘내세요’ 노래가 상징하듯 남성 가장의 기를 살리는 게 중요했다. 남성 가장을 위해 여성들은 가장 먼저 해고 대상이 되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남성에게 안정적 수입원을 보장해 주고자 했다. 언젠가는 가장이 될 것이기에 지금 당장 가장일 필요는 없었다. 반면 여성은 남성에게 의존해 살면 되기 때문에 안정적 일자리도, 생계를 위한 임금도 필요하지 않았다. 여성의 노동권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여성이 실질적인 가장인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도로공사에서 딱 맞는 구조조정 대상은 어디였을까? 여성들이 가장 많은 곳, 톨게이트 노동자. 그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이 부당한 차별을 인정할 수 없었던 여성노동자들은 2013년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시작했다. 6년이 넘는 지난한 투쟁을 통해 드디어 지난 8월29일 대법원의 승소 판단을 이끌었다. ‘남성=부양자, 여성=피부양자’ 위계를 두던 시대는 갔다. 현실도 변했고 인식도 변했다. 90일을 넘긴 캐노피 위에서의 투쟁, 20일 이상 본사 농성을 하고 있는 톨게이트 여성노동자들이 변화의 산 증거다. ‘우리가 옳다.’ 그들의 슬로건이다. 맞다. 그들이 옳다. 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지금 그들은 새로운 여성노동의 역사, 성평등의 역사를 쓰고 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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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인 진술조서 작성이 끝났다. 수사관은 담당검사를 거쳐 부장검사까지 조서를 검토할 것이니 대기실에서 기다려달라 했다. 얼마 후 조서 검토가 끝났다고 해서 검사실로 갔다. 담당검사는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러다 마지막쯤에 이런 말을 했다. “보십시오. 우리 방에 저하고 수사관 2명밖에 없지 않습니까?” 수사인력이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검사는 수사를 해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참 순진했다. 

위의 대화는 작년 11월20일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의 담당검사실에서 있었던 것이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는 남부지검의 특수부로 불리는 부서이다. 일반 사건보다는 국회의원 등 유력인사들이 연루된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곳이다.

당시에 내가 고발인으로 진술하러 간 사건도 국회의원들을 고발한 사건이었다. 3개 시민단체(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 시민행동)와 뉴스타파의 오랜 협업으로 밝혀낸 비리 혐의들이었다. 

국회 사무처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행정소송까지 해서 받은 문서들이 증거 서류였다. 그리고 뉴스타파의 보강 취재를 통해서 사실로 확인된 것들만 고발했다. 관련자들이 사실관계를 인정한 사건도 있었다. 이런 증거들을 바탕으로 11명의 국회의원을 고발 및 수사의뢰했다. 준비단계까지 하면 2년의 노력을 들였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자유한국당 이은재 의원은 보좌관 지인에게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서 1000만원의 국회 예산을 받아냈다가 적발됐다. 더불어민주당 백재현 의원은 선거운동을 도와준 사람에게 수천만원의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연구용역보고서 중에는 다른 보고서를 통째로 베낀 것도 있었다. 실제로 연구를 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 외에 찍지도 않은 정책자료집을 찍었다고 허위로 서류를 꾸민 국회의원도 있었고, 다른 기관의 보고서를 통째로 베껴서 의원실 명의의 정책자료집을 낸 국회의원도 있었다. 

국회의원들이 돈을 뒤늦게 반환했지만, 그랬다고 죄가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적용 법조문까지 명시해서 고발을 했다. 허위서류로 세금을 빼먹은 국회의원들에게는 사기죄를 적용하면 되고, 통째로 남의 보고서를 베낀 부분은 저작권법 위반죄를 적용하면 됐다. 물론 통째로 베낀 정책자료집은 실제로 발간했는지 의심스러웠다. 발간을 안 했다면 사기죄까지 성립될 수 있다. 

고발인 진술을 마치고 검찰청을 나오면서 그래도 기대를 가졌다. 그후 2019년 1월 추가 고발인 진술을 할 때에도 느낌은 좋았다. 수사관은 매우 충실하게 조서 작성을 준비해 두었다. 내가 본 진술조서 중 가장 정리가 잘된 조서가 아닐까 싶었다. ‘이 정도면 관련 업체들과 국회의원실을 압수수색하겠지’라고 기대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참 순진했다. 대한민국 검찰은 선별적 수사, 선별적인 기소를 하는 곳임을 잊고 있었다. 촛불로 정권이 바뀌었어도 검찰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 조직이 아님을….

그래서 조국 장관 수사를 보며 분노가 치밀었다. 나에게는 수사인력이 없다고 했는데, 조 장관을 수사하는 것을 보면 검찰의 수사인력은 무제한인 것 같다. 어떤 사건엔 수사인력을 대규모로 투입하고, 어떤 사건은 수사인력이 없다는 핑계를 댄다면, 그것 자체가 검찰권 남용이다. 

일반적인 고소·고발 사건은 3개월 내 처리하는데, 위 사건은 최초 고발로부터 11개월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수사권도 없는 시민단체와 독립언론이 국회의원 11명의 비리를 찾아내 고발했는데, 검찰이 손놓고 있는 건 직무유기다. 

게다가 공소시효가 지나가고 있다. 지금 고발한 것은 주로 20대 국회 초반 1년치에 대한 것이다. 시민단체와 독립언론의 부족한 인력으로 1년치만 조사했는데도 여러 비리들이 나온 것이다. 만약 사기죄의 공소시효인 10년 내의 건들을 모두 수사하면 어마어마한 비리가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를 하지 않고 있고, 오래된 건들은 공소시효가 지나가고 있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기소하려고 애를 쓰더니, 이 중대한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에 신경도 안 쓰는 모양이다. 

‘검찰사무보고규칙’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범죄는 상급 검찰청에 보고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검찰 지휘부가 이 사건을 인지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런데 왜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는 대규모 압수수색을 하지 않는 것인가? 국회의원도 살아있는 권력이 아닌가? 

검찰이 정치검찰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다면, 국회의원들의 범죄에 대해 제대로 수사부터 해야 한다. 녹색당이 지난 2월 고발했는데, 7개월이 넘도록 고발인 진술조차 받지 않고 있는 최교일 국회의원 건도 마찬가지다. 지자체 예산으로 뉴욕 여행을 가서 스트립바까지 출입한 사건에 대해 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인가? 최교일 의원이 검찰 고위직 출신이어서 그러는가?

이런 일을 겪으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만약 공수처가 있었다면, 국회의원 비리를 공수처에 고발할 수 있었다. 공수처가 또 다른 권력기관이 될 수 있지 않느냐는 논리는 ‘지금 이대로’ 가자는 것에 불과하다. 지금 이대로는 정치검찰의 행태를 바꿀 수 없다. 공수처는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현실의 문제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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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2008년)의 여파가 남아 있던 2011년 초 영국. 야당인 노동당 대표 에드 밀리밴드는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경제위기 속에서 고통받고 있던 중산층을 ‘쥐어짜인(squeezed)’ 상태라고 진단했다. 임금은 오르지 않는데 주거·의료·교육비는 꾸준히 상승해 중산층이 고통받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는 이를 타개할 유일한 수단이 정부의 재정정책이건만, 집권 보수당 정부는 긴축을 기조로 공공지출을 삭감하며 중하위 소득계층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어째 이 장면이 낯설지 않다. 실질소득의 하락으로 고통받고 있는 중산층, 점점 증가하는 빈곤층, 그리고 시퍼렇게 날선 비판에 앞장서는 언론과 야당까지.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실의 분석을 인용한 중앙일보의 보도(2019년 9월4일자)에 의하면, 중위소득 50~150% 소득계층이 2015년 69.5%에서 2019년 59.9%로 하락한 반면, 빈곤층이라 할 수 있는 50% 미만 소득계층은 같은 기간 12.9%에서 17.0%로 증가하였다. 핵심은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은 분배의 측면에서도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이고, 정부가 유리한 지표만 취사선택하며 정책 효과를 과장하고 있다는 의심을 덧붙이고 있다. 

쪼그라든 중산층과 증가하는 빈곤층은 진보세력이 사회개혁을 요구하며 인용하는 대표적 지표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보수 야당과 언론이 이를 집중 조명한다. 정부가 만든 통계로 정부의 정책 실패를 계량화하니, 차도지계(借刀之計)도 이만한 게 없다. 하지만 쪼그라든 중산층의 통계를 이치에 맞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몇 가지 되새김질이 필요하다. 

하나. 통계는 객관성으로 위장된 매우 이념적 도구다. 진영마다 자기에게 유리한 수치만 제시하고 해석한다. 앞의 보도에서 2015년 이후 중산층이 69.5%에서 59.9%로 거의 10%포인트 가까이 감소한 건 맞지만, 이들이 모두 빈곤층이 된 건 아니다. 오히려 줄어든 중산층의 60%는 중위소득 150% 이상의 상위 소득계층으로 편입돼, 상위 소득계층의 비율이 같은 기간 17.6%에서 23.1%로 증가했다. 중산층이 10%포인트 감소했다는 것과 빈곤층이 4%포인트 증가했다는 건, ‘같은 통계, 다른 느낌’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둘.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한 중산층의 감소는 소득불평등이 심화된 결과다. 중산층 감소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의 확대에 따른 전 세계적 현상이다. IMF 모범생 한국도 신자유주의적 처방에 기대어 경제위기를 극복했지만, 양극화라는 뼈아픈 비용을 치르고 있다. 최근의 나빠진 통계수치들도 2015년 이후의 추세선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어서, 현 정부의 정책 실패로 해석되기엔 시기상조다. 오히려 심화되는 양극화는 중하위 계층의 실질소득을 증가시키기 위한 정부 정책의 필요성을 방증한다.

셋. 중산층 감소보다 빈곤층 증가에 정책 대응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성숙된 연금제도를 가진 선진 복지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 빈곤층의 대부분은 노인들이다. 노인빈곤의 문제를 최저임금이나 일자리창출과 같은 노동시장정책으로 대응하기엔 근본적 한계가 있다. 기초연금 인상과 같은 공적이전의 확대가 가장 효과적이나,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므로 전반적 노후소득보장제도의 틀 안에서 장단기 대책을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차질 없이 시행하는 게 급선무다.

<김진욱 |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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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주 토요일 나는 대학로 도로 위에 앉아 있었다. 세계 시차 때문에 하루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날 전 세계 수백만명 규모로 열린 ‘기후위기 비상행동’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눴고 주변에는 젊은 외국인 청년들까지 꽤 많이 보여 흐뭇했다. 한편으로는 약간의 실망감도 들었다. 옆에 앉은 지인에게 말했다. “2만~3만명은 모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캐나다나 호주에서는 50만명씩 모였다는데 말이죠.” 집회 후 발표된 숫자를 보니 5000명이 모였다고 한다.

우리는 집회 후 대학로에서 종각까지 한 시간여를 행진했고, 종로 아스팔트 한복판에 일제히 드러눕기도 했다. 기후위기로 우리 모두 죽게 될 거라는 의미의 다이-인(die-in) 퍼포먼스였다. 찌푸린 하늘 아래서 아스팔트 위의 매캐한 타이어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급진적인 생태운동가들은 자기 하나로 인한 생활 오염을 참지 못해 자살까지 감행한다는데,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물론 그것이 옳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나는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을지, 누워서 자문했다.

2018년 8월 어느 뜨거운 금요일에 스웨덴의 한 소녀가 학교 대신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를 외치며 매주 금요일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지금 우리 지구, 우리 집이 불타고 있으니 당장 행동해야 한다”는 소녀의 외침은 그날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가 133개국 청소년 160만명이 동참하는 캠페인이 되었다. 기후행동을 위해 고등학교 진학까지 미룬 이 16세 소녀의 이름은 그레타 툰베리다.

툰베리는 지난 8월 비행기를 거부하고 자가동력 요트로 대서양을 건너 기후정상회의가 열리기로 예정된 뉴욕에 도착한다. 툰베리는 강박적 집중력을 증세로 하는 경미한 자폐증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다고 하는데, “그 덕분에 제가 기후 문제에 이렇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몰라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할 줄 아는 소녀다. 

이 소녀에 대해 세계 정치지도자라는 어른들이 막말을 쏟아냈다. 트럼프는 “밝고 멋진 미래를 기대하는 아주 행복한 어린 소녀로 보였다”고 역겨운 조롱을 했고, 일본 환경상 고이즈미는 “기후변화와 같은 큰 문제는 즐겁고 멋지게,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멍청한 말을 농담이랍시고 내뱉었다. 툰베리에 우호적인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조차 “툰베리의 사고방식은 너무 급진적이다.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기업들을 적대시하는 성격이 있다”며 태평한 논평을 늘어놓았다.

대학로 집회가 끝난 며칠 후 툰베리가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한 연설을 유튜브로 보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말을 이어가는 소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울렸다. “대멸종이 시작되는 이 지점에서도 여러분이 하는 이야기는 전부 돈과 끝없는 경제성장의 신화에 대한 것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정말로 지금 상황을 이해하는데도 행동하지 않는 거라면, 여러분은 악마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툰베리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어른들, 눈앞의 정치적 이해와 기업 이익에 찰떡처럼 붙어 있는 지도자들과 달리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돈과 끝없는 경제성장’의 집착이 미래 세대에게 가할 위협을 지금 당장 닥쳐오는 자신의 삶과 생존의 문제로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행동하는 청소년과 달리 대개의 어른들은 불과 10년 후 다가올 1.5도 기온 상승을 내 문제로 보지 못한다. 지구촌의 현란한 질주를 나 하나의 행동으로 어쩌겠느냐며 강 건너 일로 생각한다.

최근 출간된 <기후위기와 자본주의>라는 책이 이 부분을 잘 짚고 있다. 책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소비주의 욕망에서 벗어나 희생을 감수하라고 말하는 식의 녹색 소비운동이나 실천은 방향을 완전 잘못 잡은 것이라고 말한다. 정치지도자들이 기후변화의 근본적 해결책을 거부하는 속내는, 그것이 기업의 이윤을 위협하고 전 세계 모든 주류 정당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대한 정면도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경제적 과실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생각하면, 우리들 시민과 노동자 대다수는 기후 불평등과 경제 불평등이라는 이중의 뺨따귀를 맞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도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기업들이 배출한 비닐 쓰레기를 하나하나 골라내면서 분통을 터뜨린다. 이 모욕적인 상황을 왜 견뎌야 하는가? 아마도 그들은 가장 나중에 죽을 것이다. 대도시와 기업에서 펑펑 써댈 전기를 위해 오래된 땅과 삶을 포기해야 했던 밀양의 할머니들처럼, 가장 약한 우리 중의 누군가가 먼저 죽을 것이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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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람이 죽었다. 사람이 사람을 피해 도망치다 목숨을 잃었다. 

반복된 죽음이다. 작년 8월 김포의 건설현장에서 미얀마에서 온 청년 노동자가 출입국 단속을 피하던 중 건설현장 지하에 떨어져 사망했다. 이번엔 경남 김해, 태국인 노동자였다. 부산 출입국·외국인청은 “10여명의 불법 체류자가 있다는 민원제보”에 따라 현장에 출동했고, “사망 외국인은 단속반원에 의한 일체의 추격이나 신체적 접촉이 없었”다고 밝혔지만, 부검결과 강한 외력(外力)에 의한 장기파열이 사망원인으로 밝혀지면서 사망경위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왜 사고가 반복되는 것일까? 

우선 비인간적으로 이뤄지는 출입국 단속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해 초 법무부 장관에게 출입국 단속과정에서 ‘인명사고 예방과 인명구조를 우선으로 하는 세부 단속지침 마련’과 ‘유사한 인권침해의 근본적 해결을 위하여, 미등록체류자 단속과정에서 발생되는 사실상의 체포 및 연행 등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가 형사사법 절차에 준하여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감독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보호와 이민행정 선진국의 사례 및 우리나라 현실에 비춰볼 때 적극 수용이 필요함에도 법무부는 권고의 수용을 거부했다. 그리고 신임 법무부 장관이 ‘불법체류 외국인을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을 지시한 바로 당일, 한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단속 과정에서 또 사망했다.

법 밖으로 밀려난 외국인이 늘어나는 것은 정부와 외국인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얼마 전 강원도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태우고 일터로 가던 승합차가 다른 차량과 부딪치는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체류자격이 없었던 외국인들이 부상을 입은 상태로 사라졌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지위에 놓인 외국인은 모든 상황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취약한 상태가 된다. 따라서 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방향은 법 밖으로 밀려난 외국인을 다시금 법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관리하는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과 같은 원시적인 사람단속의 방법은 법 밖의 이주(移住)민을 줄이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외국인, 사업주, 단속공무원, 지역사회 모두에게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사용하는 “불법체류자”라는 용어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법무부는 통상 출입국관리법에서 정한 체류자격이 없거나, 정해진 체류기간보다 더 체류하거나, 체류자격으로 할 수 없는 활동을 한 외국인을 모두 포괄하여 “불법체류자”라고 부른다. 사람에게 ‘불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특정 집단을 법적, 제도적인 보호에서 제외하여 취약하게 만들고 나아가 편견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는 “불법체류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러한 추상적인 개념은 합리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 외국인이 법 밖으로 밀려나게 된 이유는 다양하다. 그리고 발생 원인에 맞춘 합리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뭉뚱그려 “불법”으로 선언하게 되면 이에 대한 해결방안은 “단속”이나 “합법화”뿐이다.

출입국관리법의 성격이 출입국 행정을 위한 기준을 정한 행정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건축법에 따른 허가를 받지 않은 건축물을 불법건축물이라 하지만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을 불법거주자라고 하지 않고, 식품위생법에 따른 영업허가를 받지 않은 사업장을 불법사업장이라고 하지만 거기서 일하는 사람을 불법노동자라고 하지 않는다. 물건이나 제도는 불법일 수 있지만, 불법인 사람은 없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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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사회가, 아니 온 시민의 일상 속에서 치열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다른 가치를 신봉하는 세력 간 다툼이 마치 ‘신들의 전쟁’(막스 베버)처럼 화해 불가능할 정도로 격렬하다. 좋고 싫은 것이 그리 강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해하게 된 나이인지라 <유열의 음악앨범> 같은 영화나 볼까 했지만 DMZ 국제다큐영화제로 발길을 돌렸다. 정치색 짙은 작품 두 편을 골랐다. 

<사마에게>. 아랍의 봄 시절, 시리아 내전의 혁명도시 알레포를 지키기 위해 6년을 싸운 대학생 와브와 남편 함자, 동지들의 다큐멘터리다. 사마는 와브와 함자의 딸이다. 시리아 내전은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반독재 민주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한 2011년 3월 시작됐다. 오로지 혁명만 생각했던 대학생 와브는 러시아군 참전으로 폐허가 된 알레포에서 ‘혁명은 떠나지 않는 것’이라 믿으며 항전을 이어갔다. 와브는 내전 중 혁명지도자인 함자와 결혼하고 딸 사마를 낳았다. 와브와 함자는 사선을 넘나드는 공포 속에서 딸 사마를 보며 삶의 이유를 얻는다. ‘혁명은 떠나지 않는 것’이라 다짐했던 와브는 알레포를 떠나면 공습하지 않겠다는 아사드 정권의 선전포고(정확히 유엔 중재)로 결국 짐을 꾸린다. <사마에게>는 세상과 단절된 알레포의 6년을 와브가 촬영한 다큐멘터리다. 실패한 혁명이지만 와브는 딸 사마가 알레포의 항전을 기억하길 바라며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하나 더, <그림자꽃>. 평양시민 김련희씨 이야기다. 련희씨는 간 치료를 위해 2011년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갔다. 비싼 의료비 때문에 고민하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브로커 말에 속아 한국행을 택한다. 그런 련희씨를 국가정보원은 간첩으로 기소했고, 법무부는 보호관찰 대상자로 가뒀다. <그림자꽃>은 기존 탈북자 영화와 달랐다. 련희씨는 “나는 탈북자가 아니라 평양시민” “왜 남한 사람들은 노후 연금을 붓고, 집 살 걱정을 하지”라고 말한다. 중간중간 북한에 있는 련희씨 가족들도 등장했다. ‘평양시민’이라는 것만 빼면 일하러 외국에 가 있는 한 여성의 이야기로 착각할 정도였다. 남한에 온 뒤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북한으로 보내달라는 련희씨의 절절한 호소는 계속된다. 검찰은 련희씨 집으로 매달 출국금지 연장을 통보하는 서류를 보낸다. 

시리아 독재정권은 비밀경찰을 동원해 저항세력의 싹을 자르고, 군과 강대국을 앞세워 시민들의 심장에 포탄을 쐈다. 대한민국 법무부와 검찰은 한 달을 주기로 련희씨를 출국금지 대상자로 낙인찍었다. 두 다큐멘터리 모두 공권력이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어떻게 억압하는지 생생하게 전한다.

지난 2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검찰개혁 촛불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때마침 검찰개혁 문제가 공론화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호랑이 등에서 먼저 내려오는 쪽이 질 수밖에 없는 거대한 싸움이 시작되면서다. 생전 검사 한번 만날 가능성 없는 시민들마저 검찰개혁을 말할 지경이 됐으니. 언제 내 집이 11시간 압수수색 당할지 모르고, ‘의혹’만으로 70여곳이 털릴 것이라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 군부 정치가 사라진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뒤 수십년간 군림해 온 검찰. 대통령은 탄핵으로 심판이라도 당하는데,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양손에 쥐고도 견제도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검찰개혁이 다른 개혁과제보다 더 어려운 이유이다. 개혁 우선순위를 놓고 권력 축소와 정치적 중립 문제가 여전히 충돌한다. 이번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치 검찰의 위력도 보였다. 국회 인사청문회날 소환조사 한번 없이 정경심 교수를 기소하고, 대통령 방미 첫날 자택 압수수색을 감행한 것이다.

대통령이 선언한 이상 조 장관 거취 문제는 일단락됐다. 검찰개혁 명분을 쥐는 수밖에 없다. 조 장관은 검찰개혁을 다짐했지만 지금까지도 무엇을 위한 개혁을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수사만 해야 할 검찰은 정치를 하고 있는데, 정치를 해야 할 법무부 장관은 개혁 대상인 검사들과 대화하고 있다니. 3번 수사에도 무혐의 처분받은 김학의 성범죄 사건,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들의 정규직 고용 문제. 하나같이 재수사 의지가 필요하고, 대책이 시급한 현안 아닌가.

지난 28일 서울 서초동 검찰 타운을 밝힌 150만 촛불(주최 측 추산)은 검찰개혁의 물꼬를 열었다. 촛불은 조 장관에 대한 분노를 불러왔던 젊은 세대들의 불공정, 불평등이란 화두도 다시 살려내야 한다. 강남 사거리 김용희씨의 철탑 고공 농성장도 밝혀야 한다. 장엄한 행진 속에서 비교정치학의 오랜 화두를 생각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자를 누가 지킬 것인가.’ 어쩌면 이 촛불의 종착지는 국회가 될지 모르겠다. ‘지키는 자’들의 전횡을 막으려면 국회, 일하라.

<구혜영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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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야 갈치야 날 살려라

너는 죽고 나는 살자

에야 술배야

가거도 어부들의 고기 잡는 소리를

밥상머리에서 환청으로 듣곤 한다


벼야 조야 배추야 시금치야

콩아 닭아 김아 마늘아 날 살려라

너는 죽고 나는 살자

놓인 밥과 반찬에 따라 가사를 바꿔 부르며

숟가락 젓가락을 들곤 한다


그토록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

소화가 되겠느냐 핀잔하는 이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이에게 권하고 싶다

술배소리 음미하며 한 끼 먹어보라고

그래야 음식마다 맛이 새롭고


먹고사는 일이 더욱 생생하게 소중해지므로


최두석(1955~)


시인은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어부들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그물을 던져서 먹을 것을 얻으려 할 때 부르는 소리를 소개한다. 시인은 바다에서 난 것을 밥상머리에서 먹을 때 이 술배소리를 떠올린다. 그리고 들판과 자연의 것으로 한 끼의 밥과 찬을 마련해 한 숟가락 떠먹을 때 술배소리의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 한다.

먹는다는 것은 다른 생명을 먹는 것이다. 먹어야 살 수 있다. 다른 생명의 희생 없이 우리는 몸과 마음을 온전하게 지탱할 수 없다. 우리의 한 끼는 다른 생명에게서 얻어 온, 거룩한 한 끼이다. 흰 밥과 따끈따끈한 국과 서너 가지의 찬을 받을 적에는 두 손으로 겸허하게 받아야 한다. 그러면 다른 목숨의 희생으로 장만된 음식 앞에 엄숙해지고, 또 그 희생 덕에 살고 있는 내 목숨이 간절해진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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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의 대한민국은 참담하다. 경제 위기감과 일본의 망언·망동, 무능한 정치권 등으로 국민 마음은 편치 않다. ‘조국 사태’는 국민을 둘로 갈라놓았다. 어떤 이는 조국 법무장관 가족비리 의혹에 분노하고 좌절한다. 또 어떤 이는 검찰의 ‘과도한 수사’에 절망하고 ‘검찰개혁’을 절규한다. 극과 극의 감정들이 교차하면서 국민 갈등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29일 아침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류현진의 시즌 최종전 승리 소식이 전해졌다. 14승과 함께 그는 아시아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평균자책점 1위라는 새 역사를 썼다. 그뿐이 아니다. 9이닝당 볼넷이 평균 1.18개로 1위, 이닝당 투구수 14.81개로 2위 등 ‘류현진’이라는 이름 석자를 메이저리그 투수성적표 상단에 줄줄이 올려놓았다.

LA 다저스 류현진이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오라클 파크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원정 샌프란시스코전 5회 2사 3루에서 타석에 들어 적시타를 때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뭐 하나 즐거울 것이 없는 요즘, ‘류현진’은 늘 답답함을 달래주는 ‘청량제’였다. 개막 이후 185일간 네이버·카카오 등 양대포털을 장식한 류현진 관련기사는 6만여건에 달했고, 동영상도 수만건이 쏟아졌다. 그때마다 그의 승리 소식, 역투 장면을 보고 또 본 국민은 한둘이 아니다.

‘류현진 야구’에는 ‘교훈’이 있다. 허구연 MBC스포츠 해설위원은 “이제 말하지만 8월1일 콜로라도전을 앞두고 류현진은 허리 통증을 느꼈다. 콜로라도는 그전에 7실점의 아픈 기억을 준 팀이다. 몸 상태를 앞세워 비켜갈 수도 있었다”고 했다. 류현진은 “비겁하다”는 비난이 듣기 싫어 예정된 경기에 나섰고 6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러나 이날의 ‘무리’가 이후 애틀랜타-뉴욕-애리조나로 이어진 3경기 18자책점의 결과로 나타났다. 

그는 신인포수 윌 스미스와 호흡을 맞추면서 유독 실점이 많았지만 스미스 탓도 하지 않았다. 이날도 평균자책점 1위 수성을 위해 굳이 7이닝을 던질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당당하게 선발투수 임무를 마쳤다. 허구연 위원은 “그의 승리는 위로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개인성적보다 공정한 싸움을 즐겼고, 결과에 대해 결코 남 탓을 하지 않는 류현진의 야구를 우리 사회와 정치권은 배워야 한다”고 했다. 류현진이 곧 가을야구에 나선다. ‘행복은 감염된다’고 한다. 그가 또다시 전해줄 ‘국민 행복 바이러스’에 벌써부터 감염되고 싶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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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28일 ‘검찰개혁’을 외치는 초대형 촛불집회가 열렸다. 반포·서초대로 1.6㎞는 서울과 지방에서 모인 인파로 가득 찼다. 촛불과 LED등으로 법조타운의 주말 밤이 환해지고 서초역 일대에 휴대폰 통신장애가 올 정도로 80만~150만명까지 추산된 긴 행렬이었다. 반복한 촛불의 구호는 주최 측이 집회 막바지 빔프로젝트로 대검찰청 벽에도 띄운 ‘검찰개혁’ ‘조국 수호’ ‘정치검찰 OUT’이었다. 바로 옆에서 ‘조국 사퇴’를 요구하는 보수단체의 소규모 집회가 열렸지만 충돌은 없었다.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몰려 평화적으로 진행된 집회는 2016년 겨울 촛불을 연상케 했다.

사법적폐청산범국민시민연대 주최로 지난 2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열린 ‘제7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서 시민들이 반포대로 양 차선을 가득 메운 채 검찰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집회에 150만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한 주최 측은 주말마다 집회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서초동에서 다시 커진 촛불은 여러 함의와 경고를 품고 있다. 먼저 검찰개혁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정신과 당위가 됐음을 웅변한다. 집회 참석자들은 1987년 체제에 남아 있는 마지막 적폐로 검찰을 지목했다. 수백, 수천에서 시작된 촛불이 큰 물결로 번지고, SNS에는 “조국 장관 지지를 떠나”라고 전제하는 참가 소회도 이어진다. 과거 무소불위 힘을 휘두르고 유독 조직보호 논리가 셌던 보안사·국정원 자리에 검찰을 놓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셈이다. 힘세진 검찰이 스스로 착해지기 힘들고, 여타 권력기관처럼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시민 공감이 넓어졌다는 뜻이다. 개혁 논쟁은 ‘조국 사태’ 속에서 검찰이 자초하고 증폭시킨 면도 크다. 진상 규명이라는 수사 착수 명분과 대의를 넘어 정치에 개입했다고 오인받을 언행이 되풀이됐다. 인사청문회 전 압수수색, 본인 소환 없이 단행된 조 장관 부인 기소, 먼지털기식 수사 논란 등이 그것이다. 서초동 촛불은 검찰개혁을 논의할 여의도 국회로 향할 것임도 예고한다.

‘광장 촛불’의 부활은 고민과 숙제도 남겼다. 자유한국당은 다음달 3일 조국 사퇴 촉구 집회에 전 당원 동원령을 내렸다. 촛불의 세대결은 사태가 장기화하고 국론 분열도 깊어질 것임을 내포하고 있다. ‘대통령 하야’ ‘검찰수사 중단’ 같이 상식·금도를 넘고 군중심리만 자극하는 구호가 늘어나는 것도 걱정스럽다. 촛불이 서로 커지고 반목하는 것은 일방적인 숫자나 목소리로 상대를 제압하는 구도가 불가능해졌다는 뜻이다. 여야는 촛불로 사태를 덮고, 촛불로 정부를 흔들겠다는 당파적 시선을 경계해야 한다. 시민들이 생업을 놓고 광장에 모이는 것은 정치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진상 규명-장관 거취-검찰개혁은 조국 사태에 노정된 세 매듭이다. 국론 분열을 자중하고, 국정공백을 최소화하며, 출구를 찾아가는 정치가 절실해지고 있다. 검찰도 촛불의 경고를 통감하고, 첫 고비가 될 진상 규명엔 속도를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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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사립 초·중·고교 법인이 내야 하는 법정부담금 중 실제 법인이 부담한 비율이 30%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곳 중 1곳 이상은 법인에서 법정부담금을 한 푼도 납부하지 않았다. 사학법인이 미납한 법정부담금은 국민세금이 투입되는 교육청의 재정결함교부금으로 메우게 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사학의 공공성·투명성 강화 차원에서 30일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 처음으로 법정부담금 법인부담률 실태를 공개한다.

29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법인이 법정부담금을 전혀 납부하지 않은 사립 초·중·고등학교는 전체 348곳 중 39곳(11.2%)이었다. 전체의 79.6%가 법정부담금을 절반도 내지 않았다. 법정부담금은 사학법인이 학교운영을 위해 꼭 내도록 한 교직원 국민건강보험·사학연금·재해보상부담금·비정규직 4대보험 등이다. 사립학교 법인은 학교를 설립할 때 교육을 위해 필요한 교육용 기본재산과 함께 학교운영을 위해 일정 수익을 낼 수 있는 수익용 기본재산도 신고해야 한다. 수익용 기본재산에서 생긴 수입으로 공과금이나 법정부담금 등을 내야 하는데, 이를 내지 못할 경우 결국 세금이 투입된다. 지난해 서울지역 사립 초·중·고교가 내야 할 법정부담금 총액은 940억원이었지만, 법인이 부담한 액수는 279억원으로 29.7%에 그쳤다.

사학의 법정부담금 법인부담률 저조현상은 서울뿐이 아니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시·도교육청 제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전국 사립학교 평균 법정부담금 부담률은 17.6%였다. 각 지역 교육청들도 대책을 마련 중이다. 지난 3월 서울시교육청이 사립학교 법정부담금 법인부담률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이후 인천·경기·충남교육청 등도 사학 법정부담금 납부현황 공개, 법인 납부율에 따른 인센티브·페널티 강화, 무료 재무컨설팅 마련 등의 방안을 밝혔다.

사학법인들의 법정부담금 문제는 해마다 지적되지만 고쳐지지 않고 있다. 약속한 금액을 못 내도 처벌할 규정이 없다는 점이 가장 문제다. 책임을 다하지 않은 법인과 약속을 잘 지키는 법인 사이에 아무 차등도 없다. 차제에 법정부담금 납부율에 따라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강화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도 필요하다. 학교를 설립해 놓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 학교법인의 재산은 차츰 국가에 귀속시켜 공립화하는 방안도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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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뉴스로 신문이 도배되던 2014년 어느 날. 후배의 하소연을 들었습니다. 제법 큰 특수수사를 벌여 여럿 구속시켰는데, 구속기간을 연장하려고 하자 부장이 “세월호 뉴스를 덮어야 하니 바로 기소하고 보도자료 뿌려라. 보완수사는 기소 후 해라”고 했다던가.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 후배가 항의하여 구속기간을 연장하였고 보도자료는 수사가 마무리된 뒤 배포되었습니다. 일선 지검에 보도거리를 빨리 생산하라는 지시가 명시적으로 내려오지는 않았을 터. 보도자료 배포시기 즉, 기소시점을 정함에 있어 인사권자의 심기를 알아서 경호하는 우국충정(?)에 황당했습니다. 그 간부의 놀라운 배려는 수사 결론을 정할 때도 일상적으로 발휘되지 않았을까요.

지난 7월, 중앙지검 4차장으로 발령 난 한석리 검사에 대해 “2012년 당시 중앙지검 형사1부 검사로 이명박 대통령 일가의 내곡동 사저 부지 헐값 매입 사건을 맡았다. 당시 무혐의 결정했지만 대검의 무혐의 지시에 맞서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일화가 미담으로 언론에 소개됐습니다. 내곡동 사저 사건 불기소 결정 당시, 저는 중앙지검에 근무하였기에 그때 이미 알고 있었지요. 무법천지 아수라장을 목도하며 얼마나 황망하고 참담했겠습니까. 검사선서문에서 요구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와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정함을 가진 검사들은 현실에 없었습니다.

수사팀이 무혐의 이유가 써지지 않는다고 버틴 걸 괘씸해하는 수뇌부의 조치로 인사 불이익을 받고, 결국 무혐의 결정했다며 정치검사로 욕도 먹는 수사팀을 바라보며, 검사들은 “버티려면 끝까지 버티고, 엎드리려면 잽싸게 엎드려야 한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해 12월. 저는 과거사 재심사건 무죄구형 강행을 위해 공판검사 출입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저는 끝까지 버티기로 결심했었으니까요.

상명하복이 지고지순의 대명제인 양하는 조직문화가 팽배한 검찰에서, 2013년 국감장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사건 수사 내압을 폭로하였던 윤석열 검찰총장이나 내곡동 사저 사건 한석리 차장 같은 검사조차 드물어 언론에서 강직한 검사로 소개되고 있고, 검찰의 초라한 현실에서 그게 사실이긴 합니다. 그러나 기소해야 할 사건을 상사의 지시에 따라 불기소 결정한 검사는 더 이상 검사일 수 없지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불구속 기소할 때, 이종명 전 3차장,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을 기소유예해버렸던 윤 총장 등 위법하거나 부당한 내압에 결국 타협한 검사들, 이런 아수라장을 알고도 동조하거나, 못 본 척 외면하고 침묵하거나, 막지 못했던 저를 비롯한 모든 검사들이 과연 막중한 검찰권을 감당할 자격이 있을까요. 검찰에 검찰권을 위임한 주권자들 앞에 저는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과거사 재심사건 무죄구형 강행으로 중징계를 받고 징계취소소송을 진행하며, 당황했었지요. 검찰이 정치검찰임을 공연히 자백할 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요. 무죄이므로 무죄라 말하려는 제 입을 틀어막으려던 수뇌부의 위법한 지시를 변명하기 위해 “증거가 부족할 경우 무죄 판결을 해야 하는 법원과 달리, 검찰은 자기반성이 초래할 파급 효과, 검찰 내부 여론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장황하게 쓰인 준비서면을 읽으며 낯이 화끈거렸습니다. “준사법기관인 검사는 법관과 동일하게 오로지 법의 실현을 우선해야 한다”는 반박서면을 바로 제출했지만, 밀려드는 절망까지 밀어내지 못했습니다. 검사는 오로지 법과 원칙만을 고려해야 함에도, 검찰이 오랜 세월 정치적 고려를 하다 보니 이를 당연시하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서면으로 확인했으니까요. 암담했고, 여전히 암담합니다.

검찰개혁을 강력히 추진하던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다가, 검찰을 권력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외압을 흔쾌히 내압으로 전환시켜 검찰권을 오남용하는 수뇌부의 변신은 검찰공화국을 사수하는 카멜레온의 보호색과 같습니다.

검사선서문에서 천명하는 바와 같이 검사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함,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함을 갖추어야 하고,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야 합니다. 그런 검사임을 전제로 주권자는 검찰권을 검찰에 부여했지요. 만약, 현실의 검사가 선서와 다르다면, 이런 검사들이 검찰권을 감당할 자격이 있을까요.

검찰은 정권교체 때마다 변신하며 권력의 총애를 받거나 여론의 환호를 받아 검찰권 사수에 성공하곤 했지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넘도록 개혁이 지지부진한 이유도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언제까지 속으시겠습니까. 이제라도 검찰의 화려한 분장술 너머의 진실을 직시하고 검찰권을 나누고 견제하는 개혁이 조속히 추진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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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급 종합병원에 근무하고 있지만 여기서 치료할 수 없는 중환자들의 경우 그 치료가 가능한 다른 상급 종합병원으로 전원을 하는 일이 있다. 그런데 언제나 바로 수속이 진행되지 않아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가 아수라장 같은 응급실 복도에 누워 병실이 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에 웬만한 상급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희귀난치 질환자가 정말 이렇게 많은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보건복지부가 또 ‘의료전달체계 개선 대책’을 발표했는데 그 핵심은 상급 종합병원이 경증 환자를 진료하는 경우 지원금을 주지 않겠다는 경증 환자 진료에 대한 페널티다. 불행히도 현장의 의료인들은 이미 만신창이인 우리나라의 의료전달체계가 이런 제도로 개선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이번에 발표한 내용도 해마다 되풀이돼온 것에 지나지 않으며 가장 중요한 핵심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경증 질환의 대표 격인 고혈압은 1차 의료기관에서 치료해야 하지만 상급 종합병원 외래진료실은 항상 고혈압 환자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고혈압을 분류하는 Ⅰ코드는 26개에 달하는데 이 중 3개만이 경증이어서 진단 코드의 숫자 하나만 바꾸면 쉽게 경증이 아닌 환자로 만들 수 있다. 상급 종합병원들은 이런 업코딩으로 페널티쯤은 우습게 따돌린다. 경증 질환 환자를 1차 의료기관으로 보내는 것을 장려하는 회송 시스템은 실시된 지 10년이 넘지만 작동을 하지 않는다. 병원들이 환자를 보낼 동기 유발 요인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진료의 질과 상관없이 환자를 몇 명 보는지가 명의의 척도로 간주되고 병원에서는 환자 수를 의사의 수입과 연동시킨다. 심지어 적절한 진료시간과 환자 수를 고수하는 의사가 불이익을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회송의뢰서를 쓰면 보상해주겠다는 정책을 내걸었으나 실효성은 전무하다. 회송의뢰서 수입보다는 환자들을 계속 잡아두고 각종 검사로 버는 수입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우선은 의료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형 병원은 의료기기나 시설이 좋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 작은 병원에 가는 것보다 유리하다는 생각은 잘못됐다. 질환의 거의 대부분은 별다른 검사장비 없이 의사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병원 쏠림의 또 하나의 원인인 1차 의료기관 불신을 해소하는 과감한 정책도 필요하다. 즉 1차 진료의가 충분한 시간을 들여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그래서 환자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기관이 되도록 지원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1차 의료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환자 교육 및 상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의료인의 시간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우리나라 상대가치 체계 안에서는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고, 그 결과 현재와 같이 검사에 매몰된 기형적 의료가 탄생했다. 1차 진료의는 자신의 지식과 전문성이 아닌 거금을 들인 인테리어에 경영을 의존해야 하고 이윤을 얻기 위해 근거를 알 수 없는 기괴한 치료들을 시행하면서 신뢰가 무너지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자본의 논리에 의한 고이윤 의료행위만이 살아남는 현실이 더 심화되기 전에 보건당국은 더 실효성 있는 제도를 고민해야 한다. 보건당국에 의료가 공공재라는 개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상급 종합병원이 지금처럼 환자 머릿수에 의한 성과에 매몰되는 경영방침을 고칠 수 있도록 간섭하고 외래진료 환자 수를 엄격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매우 어려운 일인데 환자들은 지금과 같은 닥터쇼핑의 자유를 제한당하는 것을 싫어할 것이고 정치인들은 표가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걱정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병원들은 당장 경영권 간섭에 의한 사유재산 침해를 운운할 것이고 그 저항의 정도는 한유총 사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의료가 첨단 장비나 시설에 빌붙은 서비스 정도로 추락하고 의료의 인간적 인터페이스가 말살되는 상황을 개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주변에 믿고 환자를 맡길 의사가 점점 적어진다는 탄식이 의사들 내부에서 나오는 것은 큰 비극이다.

<김현아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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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대선을 3일 앞둔 1992년 12월15일, 부산 ‘초원복집’ 대화 녹취록이 공개됐을 때 세인들은 대선 승부가 당연히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YS)의 패배로 귀결될 줄 알았다.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부산시장과 지검장, 경찰청장 등 지역기관장들을 초원복집으로 불러모은 뒤 “부산, 경남, 경북까지만 딱 단결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 “우리가 남이가”라고 말하는 것이 육성으로 폭로됐던 것이다.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부추긴 데다 관권 선거를 획책하는 장면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니 유권자들이 분노할 것으로 예상한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통일국민당 정주영 후보를 돕던 사람들은 밤새 흥분 속에 녹취록을 풀면서 대역전극을 떠올렸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의 YS 지지자들이 위기감에 똘똘 뭉쳤던 것이다.

척 슈머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25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통화 녹취록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녹취록의 위력은 막강하다. 내밀한 발언이 육성으로 폭로되는 순간 당사자는 어떤 항변도 할 수 없다. 적나라한 내용에 취지가 잘못 전달됐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유일한 대응은 폭로자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했다는 주장뿐이다. 실제 YS 측은 도청의 불법성을 강조했고, 일부 언론이 이를 거들었다. 그리고 이 전략은 적중했다. 하지만 녹취록의 위력에 대한 신뢰는 지금도 남아 있다. 증거 취득의 불법성보다 그 내용이 훨씬 먹힐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거기에는 내년 대선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인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해 우크라이나 검찰의 수사를 종용하는 장면이 들어 있다. 외국의 정상을 상대로 자신의 정적을 수사해 달라고 청탁하는 말인 것만은 명백해 탄핵 추진 사유로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초원복집 사건처럼 이 녹취록의 여파도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내내 앞서가던 바이든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져 다른 후보에 역전당했다. 전통적인 미디어의 트럼프 비판이 먹히지 않은 지 오래다. 트럼프가 스스로 녹취록을 공개한 것도 심상치 않다.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탈진실 시대’의 ‘확증 편향’을 실감할 뿐이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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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 수를 던질 때가 왔다. 대학통합네트워크가 교육개혁을 이루어낼 비책이다. 대입개선과 고교서열화 해소만으로 교육개혁을 이룰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대입제도를 개선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고교서열화는 대학서열화의 종속변수다. 필패 전략이다. 대학통합네트워크는 대학서열화 해소와 교육다원체제로 나아가는 필수정책이다. 전국 10개의 거점국립대를 ‘한국대’로 묶고 공동학위를 주는 방안이다. 전체 입시생의 8% 내외를 수용할 수 있다. 향후 이 숫자는 30% 내외까지 확대된다. 서울대를 뺀 지방거점국립대 9개에 총 3조원을 투자하면 연·고대 수준이 되고 총 5조원을 투자하면 서울대 수준이 된다. 순식간에 인서울과 지방대의 구분을 허물 수 있다. 카이스트와 포스텍을 지방대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국의 교육문제는 단 하나의 원인 때문에 발생한다. 모든 사람이 SKY에 들어가기를 원한다. 극심한 병목현상이다. SKY, 카이스트, 포스텍, 의대 등을 포함하면 입시생의 3% 내외가 된다. 한국 중산층과 상류층을 합치면 70% 이상이 되는데 3%는 절대적으로 적은 수치다. 조국 사태로 또다시 학종과 정시 논쟁이 불붙었다. 쓸데없는 논쟁이다. 학종을 하든 정시를 하든 상류층에 유리하다. 학종은 원래 미국의 입학사정관 제도를 한국식으로 변형한 제도다.

그렇다면 학종과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왜 우리와 같은 입시문제를 겪고 있지 않은가? 분명 미국에도 엘리트 대학이 있고 한국에도 엘리트 대학이 있는데 왜 한국만 교육지옥인가? 미국에는 전국적으로 100여개의 명문대학들이 퍼져 있고 한국은 서울에 소수의 명문대학이 집중되어 있다. 대학병목과 공간병목의 완벽한 결합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대입경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은 교육다원체제다. 곧 아이비리그, 스탠퍼드, 시카고, 존스 홉킨스와 같은 사립대학뿐만 아니라 버클리, UCLA, 위스콘신, 일리노이, 텍사스 오스틴, 미네소타, 워싱턴, 콜로라도, 플로리다 등 우수한 주립대학이 전국 곳곳에 있다.

교육병목(독점)체제를 분석적으로 구분하면 대학병목, 공간병목, 시험병목, 계급병목, 직업병목의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국은 이 모든 게 일렬로 배열돼 있어 완벽한 피라미드 구조를 이룬다. 올 초 큰 화제 속에 종영한 드라마 <SKY캐슬> 속 차민혁 교수의 피라미드 집착은 상징이 아닌 리얼리티다. SKY에 의한 대학병목, 엘리트 대학의 서울 집중에 의한 공간병목, 상대평가로 인한 시험병목, 세계 1위의 사교육비와 높은 등록금으로 인한 계급병목, 명문대 학위를 요구하는 정규직·대기업 중심의 직업병목. 대학병목과 공간병목 해소를 위해 대학통합네트워크, 시험병목 해소를 위해 절대평가제 도입(학점제), 계급병목 해소를 위해선 사교육비 감소와 등록금 최소화 또는 무상화, 직업병목 해소를 위해선 사회경제적 개혁과 복지제도 확충을 들 수 있다. 곧 교육개혁의 전체 방향은 가장 중요한 대학통합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두고 나머지 방안들을 패키지로 엮어 가야 한다.

지방대에 돈을 투자하면 연·고대나 서울대와 같은 대학이 될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스루프 공과대학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대학은 MIT를 모델로 1920년 칼텍(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으로 이름을 바꾸고 조지 헤일을 중심으로 연구비와 인재를 끌어모아 불과 10여년 만에 세계적인 명문이 되었다. 스탠퍼드대학도 1950년대까지만 해도 ‘듣보잡’이었다. 스털링 총장과 공과대 학장인 터먼의 리더십으로 스탠퍼드는 불과 20여년 만에 세계 정상이 될 수 있었다.

지방대도 ‘한국대’로 이름을 바꾸고 대학 인프라 강화, 연구비와 장학금 확충, 총장과 학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결합된다면 단숨에 연·고대 수준이 된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의 전진기지인 연구중심대학으로 기능해 경제성장의 위대한 엔진이 될 수 있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제주도에 서울대 수준의 학교를 만드는 데 국회가 반대하겠는가? 

사회통합에도 대단히 좋다. 대학통합네트워크는 향후 30~40개 대학들을 포함할 계획이라서 전체 수험생의 30% 내외를 수용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학종이든 정시든 아무 상관이 없다. 대학은 전체적으로 상향평준화되고 학벌사회는 무너지고 교육독점체제에서 교육다원체제로 전환된다. 

대학통합네트워크와 공동학위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다. 이제 문제는 이 공약을 실행할지 말지다. 이렇게 간단하고 명쾌한 신의 한 수를 던질 수 있을까?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의 리더십과 결단력에 한국교육의 미래가 달려 있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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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내전(內戰)이다. 50일 넘게 세상 시끄러운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모임에서나 사이버 공간에서나 일단 아군과 적군을 나누고 의견이 다르면 집중포화가 시작된다. 싸움이 싫은 사람은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싸울 때는 싸워야겠지만 싸움에도 경중이 있다. 작금에 가장 우선순위 높게 싸울 일은 무엇인가?

지난 23일 뉴욕에서 유엔기후정상회의가 열렸다. 파리협약을 통해 지구온도가 1.5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약속했건만 온난화의 주범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은 줄지 않고, 2015~2019년 전 세계 이산화탄소 농도는 2011~2015년 사이 배출량보다 무려 20% 이상 증가한 상태여서 위기감에 소집된 회의다. 지난 6월 유럽의 기온이 46도까지 오르고, 미국은 9월 초 플로리다를 강타한 허리케인 ‘도리언’으로 비상사태까지 선포할 지경이니 이 기후재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각국의 정상이 해결책을 갖고 모였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38년까지 탈석탄국이 되겠다”고 선언했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기후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국가들과는 무역거래를 하지 않겠다”고까지 하였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우리가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삶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며 “지금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주도로 파리협약에서 탈퇴했고 중국도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아 예상대로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스웨덴의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왼쪽)를 비롯한 세계 청소년 활동가들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며 프랑스·독일 등 5개국 정부를 유엔에 제소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뉴욕 _ AP연합뉴스

이 시점에서 월드워치연구소의 창립자 레스터 브라운의 <우리는 미래를 훔쳐쓰고 있다>를 새삼 들쳐보며 불편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달래본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기후재난으로부터 구할 수 있을까? 그의 결론은 경제다. 세계경제를 개조하는 데 모두 함께 나서자는 것이다. 각국의 군사예산 가운데 13%를 새로운 경제개혁에 투자하면 지구의 환경을 소생시킬 수 있고 기아, 문맹, 질병, 빈곤의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주 작은 예로, 우리나라의 경우 자동차 유류에 포함된 교통환경세가 연간 7조원 정도인데 그중 70% 이상을 도로 항만 등 토목공사에 사용한다. 그 예산의 일부라도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쓴다면 국제무대에서 낯부끄러운 일은 줄어들 것이다. 반기문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국가기후환경회의에서 관련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니 기대가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후문제를 주로 해외 연설에서만 언급했다. 부동산 기사보다도 보도량이 적었던 기후재난 기사는 내전 탓에 더 줄었다. 가디언이나 뉴욕타임스, BBC나 CNN에선 한국 언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후문제를 많이 다룰 뿐 아니라 톱뉴스로 올리고 있다. 한국은 왜 그럴까? 댓글이 함정이다. 사이버 시대에 댓글은 민심의 거울이고, 그래서 누군가는 기사 밑에 달리는 ‘좋아요’에 목숨을 건다. 아무도 찾지 않는 뉴스는 묻히고 만다. 조국 법무장관 사태 와중에 지지자들은 댓글로 사이버 대리전을 치르느라 어린아이들이 학교를 떠나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이유에 눈 돌릴 새가 없다.

유엔기후정상회담에서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당신들이 어떻게 감히 이럴 수 있냐”며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고, 전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대멸종의 시작점에 있는데 여러분은 오직 돈과 영구적 경제성장에 관한 동화를 이야기할 뿐”이라고 환경문제에 무감한 세계 정상들을 질타했다. 선출 권력은 유권자의 관심 외엔 관심이 없다. 민(民)이 원하지 않는데 관(官)이 왜 먼저 바뀌겠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할까. 환경운동의 구루 레스터 브라운이 알려주었다. ‘문명을 구하는 전사’의 자세로 개개인이 함께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찬바람이 조금씩 거세지는데 아이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마이너스 통장 지구에서 좋은 대학이 뭔 소용이랴, 고3 엄마는 오늘도 전투복을 챙긴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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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하다보면 거리에서 다양한 시민들을 접한다. 그런데 보통의 직장인들이 하루 동안 만나는 비정규직은 얼마나 될까. 출근길 집을 나서며 제일 먼저 만나는 아파트 경비원은 파견노동자다. 자주 들르는 사무실 근처 커피점과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는 파트타임이다. 사무실 건물 청소노동자는 용역노동자다. 사무직이라고 상황은 다르지 않다. 주위 건물에서 매일 아침 만나는 얼굴은 2년 계약직이거나 파견업체 소속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그야말로 사회전체가 비정규직의 바다와 같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시장에서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의 문제가 주된 관심사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순간 ‘차별’과 ‘불평등’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정규직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업무를 수행함에도 기본급, 성과급, 사내복지, 교육연수 모두 차이가 있다. 비품, 사원증, 동호회 활동은 물론이고 구내식당이나 커피점, 휴게실과 셔틀버스 이용까지 일터에서의 차별은 하나둘이 아니다. 아직도 계약직 직원에게는 명함조차 지급하지 않는 곳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차별해소를 위한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되었다. 비정규직 문제제기 10년, 법제도 시행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사회는 지난 20년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취업자(2690만명) 중 전통적인 비정규직(821만명)은 어느 정도 통계에 포착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제 파트타임은 2배 이상 증가했고, 파견용역 간접고용 비정규직도 증가했다. 그러나 최근 일부 조사에서도 확인되듯 특수고용노동자 240만명, 플랫폼노동자 53만명, 1인 자영업자 403만명이 더 큰 문제다.

꼼꼼히 살펴봐야겠지만 이들 가운데 다수는 노동시장에서 20대와 50대 이상이다. 또한 일부를 제외하면 일하는 형태나 작업과정의 차이도 별로 없다. 숙련도가 높은 전문적인 일자리보다는 단순 반복적인 일자리가 많아 기술발전 과정에서 자동화나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될 개연성도 높다. 일의 자율성은 물론 사회적 안전망도 보장받지 못한다. 이처럼 일자리 변화는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기업들은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을 버리고 새로운 모델을 과감히 구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프랜차이즈나 디지털 플랫폼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와 같은 일자리를 ‘보호를 필요로 하는 고용’으로 규정하고 다양한 논의를 시작한 지 오래다. 전 세계적으로 산업구조나 기술발전 과정에서 미래의 일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일지 모른다. 일과 삶의 균형이 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하고, 자율성이 높은 직업 출현도 가능하다. 그러나 모호한 고용관계 속에서 근로기준법이나 사회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다. 아마도 노동시장의 사회적 보호인데, 비고용기간의 소득 안정성과 같은 보편주의적 접근으로 보인다.

2018년부터 덴마크와 프랑스는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와 교육훈련 강화 등을 통해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자발적 이퇴직자, 단기 계약직, 자영업자에게도 실업급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재고용 지원수당이나 재취업 교육수당(20.81유로), 그리고 직업훈련 기간 중 다양한 혜택(직업훈련계좌, 개인휴가)을 꼽을 수 있다. 물론 기업들에 26세 미만 청년고용이나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시 고용보험료 감면 혜택도 병행하고 있다. 게다가 비정규직이나 장애인, 예술인 등에게는 별도의 보충적 혜택도 있다. 이제 우리도 변화하는 환경에 조응하면서도 서로가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시점이 되었다. 사회구성원 누구나 재충전할 권리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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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은 두 이름으로 채워졌다. 전반은 아베, 후반은 조국. 8월9일 점화된 ‘조국대전’은 달포가 훌쩍 지났다. 검찰의 칼이 조국 법무부 장관을 겨누지만 아직도 끝을 다 알 수 없는 안갯속이다. 베려는 자와 그 검의 무리를 바꾸겠다는 자의 눈빛엔 한 치의 밀림이 없다. 조 장관 부인을 소환하면 곧 검찰의 수사기록과 패는 까진다. 낙마일까, 역풍일까. 대통령이 내민 잣대는 장관 본인의 ‘의혹만이 아닌 명백한 무엇’이다. 부인 구속일지, 조 장관의 피의자 조사나 기소나 판결 시점일지 맺고 끊는 출구는 모호한 채 조국사태는 낯선 길을 가고 있다. 새벽 공기가 서늘하지만, 한낮 열기는 다 가시지 않았다. 사람들도 갈라졌다. 내가 겪는 술자리만 그럴까.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다.

조국사태의 중심을 본다. ‘칼의 노래’가 끝나면, 다시 머리로 맞닥뜨리고 손봐야 할 세상이다. 평창 올림픽도 예고했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때 2030은 화난 댓글을 쏟아냈다. 올림픽의 꿈을 품고 긴 세월 땀 흘려온 한국 선수들의 희생에 불공정하다는 호루라기를 분 것이다. 평화와 공동체가 먼저라고 생각한 나는 ‘청알못(청년 알지도 못하면서)’이었다. 넘겨짚어온 그들의 울화는 깊고 동시대적이다. 층져있던 그 화는 조국 자녀의 ‘부모 찬스’를 보며 더 높이 터졌다. 계급이냐, 세대냐. 조국 파동의 정곡과 선후를 따지는 물음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따로국밥’은 없다. 자산가·정규직·비정규직·실업자가 섞인 50~60대도, 미취업자가 더 많은 20대도 뭉뚱그리기엔 안으로 너무 이질적인 세상이다. 외려 톺아지는 것은 부와 교육과 기회가 직계존비속으로만 흐르는 대물림이다. 한국 사회 부와 빈곤은 ‘쌍봉형’이고, 그 봉우리는 나날이 하늘로 솟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 머리를 만지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문제의 해법은 다른 데 있다. 미래세대와 멀어지며 유난히 빠르게 늙어가는 한국 정치다. 20대 국회의원 평균연령(59세)은 국민(42세)보다 17세나 많다. 50~60대가 83%를 독점하고, 30대는 2명, 20대는 없다. 문재인 정부 초대 내각 연령(61.5세)도 역대 가장 높았다. 극단적으로 무너진 세대 대표성은 정치를 왜곡시킨다. 부모의 맘으로 너를 본다 했지만 너가 될 수는 없었던 게 작금의 조국사태였다. 386 운동권만 침소봉대하는 보수의 세대론은 편협하고 정략적이다. 단, 그 논쟁은 자초했다. 역대 최악의 법안처리율 29.4%. 식물·동물을 지나 광물로 굳어지는 20대 국회의 중심(53.8%)에 여야 공히 50대가 있었다.

정치가 젊어져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내년 4·15 총선은 21세기에 태어난 한국인도 처음 한표를 행사하는 선거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를 꾸짖은 스웨덴의 16세 소녀 툰베리, 기업·로비스트 후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성역과 금기에 도전하는 뉴욕의 29세 하원의원 코르테즈, 50명의 사망자를 낸 백인우월주의자 테러에 히잡을 쓰고 이슬람 피해자들과 슬픔을 나눈 39세 뉴질랜드 총리 저신다 아던은 이제 한국에서도 나올 수 있다. 2030도 매번 30~40%의 얼굴을 바꾸는 총선 물갈이 중심에 서고, 그것도 한두명의 구색·수혈이 아닌 수십명이 되면 기약할 수 있는 일이다. 고령의 장성 출신이 즐비한 국방위에서 2013년 30년 넘게 위생에 구멍 뚫린 사병들의 수통 문제를 제기해 바꾼 것은 30대 초선이었다. 비정규직도, 출산·육아·주거도, 성평등과 기후위기도 내 문제로 고민하고 현장을 뛰어온 2030 전문가들과 주니어 정당인들은 도처에 많다. 그들이 폭넓게 정치에 접목될 때가 됐다. 50대 정치의 축인 이인영·임종석·원희룡·김영춘이 16·17대 총선에서 국회 문턱을 처음 넘은 나이도 30대였다. 갈 길은 멀다. 청년미래특위가 유일하게 발의한 청년기본법이 20대 국회 창고에서 4년째 잠자고 있다. 20~40세대의 일자리·수당·주거·건강 문제가 지자체마다 특별조례로 들쭉날쭉 가다서다 추진되는 이유다. 청년을 땔감처럼 쓰고, 선거판에서 율동만 시키고, 기껏 한두명의 힘 없는 30대 비례대표 초선에게 청년 담론과 소통과 정책개발을 짐지우곤 미숙하다고 낙인찍는 ‘청년팔이 정치’는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흔히 50을 지천명(知天命)이라 한다. 공자가 하늘의 뜻을 알게 됐다는 나이다. 내 귀엔 오래전 어느 유학자가 풀어준 주해가 더 쉽게 맴돈다. 보통 사람에게 그 천명은 ‘하늘의 명령’이 아니라 ‘세상 살면서 어떤 일을 감당할 수 있는지, 자기 깜냥이 얼마나 되는지 객관적으로 알게 되는 나이가 쉰’이라고 했다. 누가 권력과 물질과 패거리만 좇는지, 누가 세상을 두루 보듬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인지 옥석을 가리면 된다. 사람을 구하고 세우는 공천과 선거가 그것이다. 2006년 이맘때였다. ‘진보개혁의 위기’를 탐사하며 익명을 요구한 386 정치인의 가슴속 참회를 들었다. ‘타는 목마름으로’를 떼창하던 1987년 6월 선술집에서 그가 했던 말이라고 19년 만에 후배가 아프게 돌려준 말이었다. “일어서서 목마름을 말하지 않는 자에게 더 이상 샘물을 주려는 사람이 있을까.” 그 말은 13년이 지난 지금도 울림 있고 유효하다. 절박한 정치만 남아야 한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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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와 더불어민주당이 26일 교육개혁 관련 첫 연석회의를 열어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운영 실태조사 등 시급한 대책을 마련했다. 교육부는 교육신뢰회복추진단 회의도 열어 즉시 추진 과제를 논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입제도 전반 재검토’ 발언으로 촉발된 교육개혁 작업에 본격 시동을 건 셈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발표한 교육공정성특위 연석회의 결과는 교육개혁 논의 방향과 시기별 대책이 섞여 있다. ‘학종전형조사단’을 꾸려 학종 비율이 높고, 자사고나 특목고생을 많이 선발한 13개 대학의 입시 실태를 조사하고, 오는 11월까지 대입제도 개편 최종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학종의 투명성 강화 방안도 제시했다. 유 부총리는 “학부모의 능력과 인맥 등이 영향을 주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비교과영역, 자기소개서 폐지 등 가능한 모든 대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중장기 대입제도 개편안은 시·도교육청과 대학 등 여러 기관과 논의를 거쳐 마련하고, 취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정성 문제 등은 사회관계장관회의를 거쳐 부처 간 협의로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른바 ‘조국사태’가 교육정의, 교육개혁 논의로 이어지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논의는 더 넓어지고 정교해져야 한다. 공정성 논란을 잠재우면서도 교육적 효과를 최대화할 방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회의 결과 중 가장 관심을 끈 학종의 비교과영역 폐지는 신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학종이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것은 성적 좋은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학생부에 기록해주고 수상 등을 몰아주는 문제였다. 비교과를 제외할 경우 교과 성적과 세부능력특기사항 기술 정도만 남게 되는데, 이는 성적 중심으로 선발하는 학생부교과전형과 다를 바 없게 된다. 미비점은 보완하되 ‘성적으로 한 줄 세우지 말자’는 비교과영역 도입의 교육적 취지는 살려야 한다. 성적 위주 교육에서 동아리활동과 봉사활동의 중요성에 눈 돌리게 했던 순기능 역시 버릴 수 없다. 

교육에서 ‘공정’이 다른 모든 교육적 가치들을 쓸어버릴 수는 없다. 사회발전과 통합에 기여하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의 목표도 ‘공정’ 못지않게 중요하다. 차제에 학교가 협력과 소통의 장이자 함께 성장하는 장이 아닌, 미움과 무한경쟁을 가르치는 장으로 변모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비교육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 수능 자격고사화와 고교학점제, 고교서열화, 대학서열화 문제, 대학체제 문제까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 현 정부 내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증을 버리고,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 교육백년대계의 근간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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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골목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땅따먹기, 고무줄,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얼음 땡, 딱지치기, 오자미 놀이, 말뚝박기 등 종류도 다양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집에서 부모님과 형제들과 놀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부터는 쉬는 시간에 교실 뒤편에서, 점심 시간에 건물 밖에서 까르르 뛰어다니기 바빴다.

신기한 것은 아이들이 놀이의 규칙을 지켰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어른도 없고 법도 없었지만, 형·누나를 따라온 너무 어린 동생들을 제외하면 아이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규칙을 지켰다. 술래는 술래의 역할을 수행했고, 땅따먹기를 하다가 금을 밟으면 차례를 바꾸었다. 그런데도 재미있었다. 규칙이 자유를 제한하는 셈인데도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놀이에 참여했다. “누구야, 노올자~”라는 소리는 초저녁까지 흔하게 들렸다.

놀이를 즐기는 것은 동물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반려동물을 길러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강아지들은 공을 물고 와서는 내가 물어올 테니 던져달라는 거절하기 힘든 눈빛을 보내고, 고양이도 근처를 맴돌며 놀아달라는 신호를 보내곤 한다. 심지어 종이 다른 존재와도 규칙에 따라 놀 수 있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보다는 지능이 낮은 쥐라면 어떨까? ‘사이언스’ 최근 호에 내가 여태까지 본 논문 중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논문이 실렸다. 독일 훔볼트대학 연구팀이 쥐와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그 내용을 논문으로 발표한 것이다. 

■ 쥐와 사람의 숨바꼭질 놀이

연구팀은 30㎡(약 9평) 정도의 방에서 청소년 시기의 쥐와 숨바꼭질을 했다. 먼저 쥐를 ‘시작상자’에 넣는다. 쥐가 술래일 때는 시작상자의 뚜껑을 닫고, 실험자가 숨은 뒤에 리모컨으로 뚜껑을 열었다. 그러면 쥐는 상자를 나와 실험자를 찾아다녔다. 쥐가 성공적으로 실험자를 찾으면 실험자는 쥐와 장난을 치며 한동안 놀아주었다. 반대로 실험자가 술래일 때는 쥐를 시작상자에 넣은 다음에 뚜껑을 닫지 않았다. 실험자는 시작상자 옆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렸고, 쥐는 상자가 열린 지 90초 이내에 상자를 나와서 숨어야 했다. 실험자는 쥐를 찾은 뒤 장난을 치며 놀아주었다.

이 과제는 쥐가 레버를 누르면 먹이를 받는 것과 같은 전통적인 실험에 비해 어려운 편이다. 먹이처럼 생존에 필요한 보상을 주지도 않았는데, 이번에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쥐가 알아차리고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실험에 참여한 쥐 6마리가 1~2주 이내에 술래 역할을 습득했다. 쥐들은 술래 역할을 맡았을 때 시각 정보와 기억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실험자가 눈에 보이는 곳에 있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때보다 빨리 찾았기 때문이다. 또 실험자가 5회 연속 같은 장소에 숨으면 쥐가 실험자를 찾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술래 역할을 배운 쥐 6마리 중 5마리는 숨는 역할도 성공적으로 학습했다. 쥐들은 숨는 역할을 맡았을 때 투명한 상자처럼 눈에 보이는 장소보다는 불투명한 상자나 판자 뒤편처럼 보이지 않는 장소를 선호했다. 또 숨어 있을 때는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쥐들도 발성을 하는데, 쥐들이 숨을 곳을 찾아다닐 때와 숨어 있을 때는 발성의 빈도가 낮았다. 이는 쥐가 술래 역할과 숨는 역할의 차이를 이해하고, 역할에 맞게 행동했음을 암시한다. 연구자들은 쥐들이 숨바꼭질을 하는 동안 배측 중앙 전전두엽에 있는 신경세포의 활동을 측정해 이 영역이 숨바꼭질 놀이의 역할 수행과 관련됨을 발견했다.

쥐의 주관적인 느낌을 알 방법은 없지만, 쥐들은 정말로 놀이를 즐긴 걸로 보인다. 먹이와 같은 보상을 주지 않았음에도 쥐들은 숨어 있는 실험자(쥐가 술래일 때)나 숨을 장소(실험자가 술래일 때)를 찾아 빠르게 열정적으로 돌아다녔다. 숨어 있던 실험자를 찾거나 숨어 있다가 들킨 뒤에는 연구자 주변을 맴돌며 장난을 쳤고, 기뻐서 점프를 하기도 했다. 또 먹이를 얻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 전통적인 실험에서와 달리 발성을 많이 했다. 쥐들은 술래 역할을 맡아 돌아다니다가 실험자를 찾은 순간에 발성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숨어 있던 실험자를 찾거나 실험자에게 들킨 뒤에 장난을 칠 때, 시작상자로 돌아갈 때도 발성을 자주 했다.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할 때 술래가 “찾았다!”고 외치는 장면, 술래가 찾아낸 아이와 재잘거리면서 되돌아가는 장면이 그대로 떠오르지 않는가.

■ 다른 생명과의 교감과 공존

진지한 것과는 거리가 먼 데다 경제적 효과도 적어 보이는 이런 연구는 연구비를 지원받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연구는 배측 중앙 전전두엽에 대한 이해를 진전시켰으며, 쥐의 공간 탐색과 역할 수행, 상대 관점 이해, 의사 결정을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 디자인을 제시한다. 또 쥐와도 숨바꼭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꿔준다. 우리는 다른 생명체들과 어울리고 교감하며 거기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존재다.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으며, 우리와 교감할 수 있는 생명들이 요즘 아프다.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해양 생물들이 고통받고 있고, 아마존 열대우림은 몇 주 동안이나 불탔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 북극 생명들이 갈 곳을 잃었고, 빙하에 녹아 있던 온실가스가 방출되면서 이미 빠른 기후변화는 더 빨라졌다. 생태계를 지탱하던 생물 다양성이 빠르게 훼손되고 있고, 머지않아 호모 사피엔스도 그중에 포함될 수 있다. 10년 뒤, 20년 뒤에도 봄이면 나비가 날고, 가을이면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세상에서 숨바꼭질 놀이를 할 수 있으려면 당장 움직여야 한다.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에는 약육강식의 성장논리와 전쟁이 포함되므로, 함께 지혜를 모은다면 이 위기는 세상을 더 좋게 바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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