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처음 만난 제자들이 취업을 하기 시작했다. 교수가 하자는 대로 통계 프로그램을 ‘돌리고’, 공대 수학 수업을 듣고, 공모전을 하느라 밤을 불사른 첫 제자가 취업을 했다. 처음 합격한 회사는 중소기업이었다. 청년내일채움공제로 연봉의 얼마간을 보조금으로 지원받는 회사였다. 중소기업 가면 일 많이 하고 임금은 적어 주저하는 제자에게 “더 좋은 회사 붙기 전까지만 한다고 생각해” 하며 달랬지만, 계약직 연구원 일자리가 나자 그리로 자리를 옮겼다. 박봉이지만 시간 여유가 있어 일하면서 대학원을 다녀보겠다고 한다. 식사를 같이한 학생들은 동기가 회사에서 월급을 300만원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300만원. 10년 전 대기업 신입사원 세전 월급이다. 국민총소득(GNI)이 3만달러가 넘는 선진국에서 300만원쯤 받는 게 대수인가.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월 200만원 안짝의 연봉구조가 보인다. 중소기업, 대학 계약직, 도시재생센터, 시민단체, 사회적기업, 서비스업. 모두 최저임금에 수당 등이 조금 붙는 수준. 월급 몇 십만원 차이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이철승의 책 <불평등의 세대>를 따르자면 노동시장의 위치를 정하는 건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 조직 여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규직 여부. 대기업 다니는 정규직이거나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노동조합이 조직된 회사의 정규직이면 상층에 속하게 된다. 대기업이 아니고 노동조합이 없더라도 정규직이면 중층에 속한다. 졸업생들이 향하게 되는 회사는 중소기업에 비정규직이라 노동조합이 있어도 연봉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다. 운이 따르지 않으면 300만원 월급을 받을 확률이 높지 않다. 지역에 질 좋은 일자리를 더 만들라는 말을 하고 싶진 않다. 혁신도시를 짓고 공기업들을 대거 이전시켰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는 수도권 인재들과 거점 국립대 응시자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지방대생들이 질 좋은 일자리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경쟁에서 밀렸다고 임금이 최저임금이라는 바닥 수준에서 올라가야만 하는 걸까. 결국 임금격차라는 분배 문제가 걸린다.

젊은 세대에게 주어진 몫 자체가 작다. 작은 몫을 두고 계급과 학벌과 젠더가 엉켜 경쟁압력을 계속 높이는 것이다. 우석훈·박권일의 <88만원 세대>가 생각났다. 대기업에 손쉽게 취업하고, 외환위기 때 정리해고를 면하고, 연공서열제로 고소득을 쟁취하며, 잡 셰어링을 위한 임금피크제까지도 무력화시키고 정년연장까지 시도하는 86세대. 세대 내 경제적 불평등(계급불평등)은 언제나 세대 간 불평등보다 심하지만, 한국의 86세대와 다른 세대를 비교할 경우 세대 간 불평등을 무시할 수 없다. 세대 간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어 당시의 1980~1990년대생들은 그냥 두면 세전 88만원이라는 저임금에 갇힌다는 것. <불평등의 세대>는 예언의 실현을 데이터로 드러낸다. 86세대는 대기업-정규직-노동조합 복합체인 노동시장 상층부를 점유한다. 중소기업-비정규직-비노동조합과의 자원 공유는 없었다. 더불어 86세대는 2004년을 거치며 정치권의 다수파 세대가 됐다. 1970~1980년대생들의 의석수는 86세대의 30~40대 시절 비중에 턱없이 못 미친다.

<88만원 세대> 저자들은 해법으로 청년들이 88만원으로 충분히 살 수 있는 생태주의자들의 생활양식을 택하거나, 사회가 젊은 세대의 소득과 직업 안정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노동과 사회를 재구성하는 공진화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전한다. 20대에게 토플 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 던지라 한다. 출간 후 10년간 운동과 정책은 반값 등록금이나 최저임금 상향, 청년수당, 청년주거에 매진했고 부분적으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노동시장 상층의 몫을 나누려는 시도는 미약했다. 노동시장 상층은 86세대가 여전히 다수파다. 지역과 젠더 관점에서도 불균등은 개선이 더디거나 외려 심화됐다. 경쟁압력 속에서 ‘텐션’이 떨어진 청년들은 적게 벌고 쓰며 ‘일상을 지키는 데’ 적응해 버렸다. ‘텐션’이 높은 청년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기민하게 찾기에 급급해졌다. ‘더 작은 민주주의’의 강조가 싸워서 쟁취해야 할 분배정치에서 청년 이탈을 만든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일에서 드러나는 분노의 목소리는 권력과 자원을 획득한 이들이 공정하고 합법적으로 만드는 ‘기울어진 운동장’, 즉 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다. 말과 글로 공정을 이야기하지만 자신들의 세대와 계급이 만들어낸 기득권은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 기득권의 실체가 드러나면 전선도 분명해진다. 이철승은 “한반도 정주민들은 때로는 외부의 위협에 너무 늦게 반응했”지만 “필요성을 깨달으면, 어느 부족보다 빠르고 집요하게 목적을 달성한다”고 책에서 결론짓는다. 한국사회는 늘 덜컹덜컹하지만 문제가 드러나면 빠르게 피드백을 하며 문제를 해결해 왔다. 또한 10년 전 ‘88만원 세대’ 30대들 중 많은 숫자가 이제 기업과 정부에서 과장급까지 진급하며 실무의 중심에 올라왔다. 지역사회에도 자리를 지키는 젊은 활동가들이 생겨난다. 다른 감각의 다음 세대 주역들이 등장한다. 달라진 시대정신 속에서 새로운 세대 주체들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 할 때인 것 같다.

<양승훈 | 경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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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 청소년이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에 나선 건,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않는 어른들의 무사안일한 태도’에 불안하고 두렵다고 했다. 그들은 기후위기를 철저히 자신의 일로 경험하고 있다. 기후변화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16세 그레타 툰베리의 등교 거부는 전 세계 40여개 나라 청소년들의 참여로 이어졌다. 영국 환경단체 ‘멸종저항’은 의회 광장과 도로, 공항과 방송사를 대규모 인원으로 점거하고 기후위기 사태를 막기 위한 정부의 즉각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상황이 암울하니,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우리에게 남은 건 정신 차리고, 변화하는 일뿐이다.”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4월14일(현지시간) 스톡홀름의 한 기차역 플랫폼에서‘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그레타 툰베리 페이스북 캡처

기후위기는 폭염, 한파, 태풍, 산불과 같은 자연재난을 일으키고 식량 부족과 대규모 난민을 만든다. 대기오염이 가중되고 전염병이 만연한다. 기후변화 취약성지수(1997~2016)를 보면 온두라스, 아이티, 미얀마, 필리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베트남 등 저개발 가난한 국가가 가장 큰 피해를 받고 있다. 올해 6월 CNN 등 외신에 따르면, 그린란드에서 하루 만에 20억t의 빙하가 녹아내렸다. 개썰매는 물 위를 달렸다. 불행하게도, 기후위기는 기후책임이 덜한 도시와 국가, 자연생태계를 가장 먼저 위협한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 낙후된 마을과 도시, 변방의 저개발 국가, 자라나는 아이들, 길 위의 노동자, 밭일하는 농부, 열대 산호 군락지와 녹아내리는 극지 생태계에 더 가혹하다.

기후위기가 초래한 이상기온, 올여름 폭염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일까. 지난 8월14일 기상청은 폭염특보를 발효했다. 낮 최고기온 35도에 육박한다는 예보였다. 녹색연합 ‘2019 폭염 시민모니터링’에 따르면, 35도라는 기상청 발표와 달리, 길 위의 건설노동자와 택배노동자의 체감온도는 40도를 훌쩍 넘었다. 고용노동부 ‘폭염 대비 노동자 건강보호 대책’을 보면 폭염 시 무더위 시간대 옥외 작업에 대하여 경계단계인 35도에서 중지를 하라고 지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에게 이 지침은 무용지물이다. 온열질환 산업 재해는 계속 늘고 있는데, 피해는 옥외 작업 노동자에게 집중되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멸종의 임계점을 넘을 것이고, 파멸은 일시에 닥칠 것이다. 2015년 파리협약은 기온 상승을 2도 아래로, 2018년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특별보고서는 2도가 아닌 1.5도로 억제할 것을 요청했다.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인간과 지구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기후위기 주범들인 선진 대국과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은 오히려 무사안일하다. 세계 7위 이산화탄소 배출국으로 2030년 5억3000만t 감축을 목표로 하는 한국은 어떠한가. 파멸의 절벽에서도 탄소 몰입, 탄소 중독 사회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절망적인 고집뿐이다.

오는 9월21일 연약하고 작은 것들의 큰 연대,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한국에서 열린다. 기후악당은 진실을 감춘다. 그들은 나만 살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며, 심각한 기후 감수성을 외면한다. 학교에 가는 것보다 기후변화를 멈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아이들, 기후파업을 이끄는 노동자, 연약한 도시와 국가의 연대만이 기후위기를 극복할 것이다. 이제, 기후침묵을 깨고 기후위기에 응답하자.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처럼 “큰일을 하는 데 너는 결코 작지 않아!”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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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지구촌을 안전하게 관리할 ‘또 다른 유엔’을 만들 것을 꿈꾸며 서울에서 바티칸까지 걷기 시작한 지 2년. 생명·탈핵 실크로드는 올 초 인도까지 5000㎞를 걸은 후, 올여름 중앙아시아에서 기차 등으로 그리스까지 이동했다. 

15개 나라를 거치며 많은 이를 만났는데, 그중 흑해 연안에서 자라면서 온 가족이 암에 걸려 고생한 터키의 30세 젊은이 베르커도 있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방사능은 드네프르강으로 모여서 흑해로 흘러든다. 베르커는 조부모와 숙부를 암으로 잃고 모친은 위독한 상태이며 자신은 여섯 살 때부터 고환암에 걸려 결혼을 포기한 상태다. 이처럼 흑해 연안 사람들은 30년이 넘도록 방사능 공포에 휩싸여 있다.

핵발전소의 근본 문제는 후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양심의 파괴’다. 많은 나라들이 탈원전의 길을 걷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윤리 때문이다. 

내년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장소들이 방사능에 여전히 오염돼 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아즈마 야구장에서 야구경기를 치르고, 후쿠시마산 식자재를 선수단 식사에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올림픽 성화 봉송로에서 기준치의 무려 25배나 되는 방사능 수치가 기록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대로는 인류 모두가 공범이 된다. 고대 올림픽과 근대 올림픽의 시발지인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나는 기원했다. 지금이라도 도쿄 올림픽을 재고하기를 그리고 인류가 올바른 길을 선택하기를.


<이원영 | 수원대 교수·국토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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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에 여당 관계자를 만났는데, 여당 내부에는 여전히 ‘선거법은 자유한국당과 합의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 그 말 자체의 타당성을 떠나 ‘참 현실성 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현재의 한국당과 선거제도 개혁을 놓고 합리적 대화가 가능하리라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황교안 대표-나경원 원내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확고한 방향을 정했다. 그것은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통해서 내년 총선에서 자신들이 승리하겠다는 것이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다수대표제)하에서는 최대한 몸집을 키워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 한국당과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 가능한가?

역시 예상대로 한국당은 전혀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8월29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과 협력하여 정치개혁특위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의결처리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11월27일 이후에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다. 재적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면 선거법 개정안은 통과된다. 한국당과 그에 동조하는 일부 바른미래당 의원들을 제외하고도 충분히 통과가 가능한 상황이다.

주목할 것은, 선거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는 시점이 2020년 예산안 처리 시기와 맞물린다는 것이다. 여당 입장에서는 예산안 처리가 절박한데, 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의 협조 없이는 예산안 처리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결국 여당은 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과 예산안, 선거제도 개혁, 검찰개혁을 묶어서 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당은 수동적으로 개혁에 임할 것이 아니라, 개혁을 통해 적극적으로 돌파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막상 본회의 표결을 앞두게 되면, 한국당 의원들도 흔들릴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 한국당은 총선 때까지 ‘여당 발목잡기’로 일관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당 입장에서도 한국당에 더 이상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

따라서 여당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없다. 민주당은 더 이상 ‘한국당과 합의처리’ 운운할 것이 아니라, 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과 개혁연대를 형성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서 선거제도 개혁, 공수처법 등의 개혁입법을 완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당이 두 가지 노력을 해야 한다. 첫째는 국회의원 특권 폐지다. 지금 선거제도 개혁을 완수하려면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것이 불가피하다.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선거법 개정안에는 지역구 숫자를 253개에서 225개로 줄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지역구 숫자를 28개나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지역구가 통폐합되는 현역 의원들의 반발도 문제지만, 해당 지역구 유권자들도 반발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구 숫자를 줄이기보다는 전체 국회의원 숫자를 10% 정도 늘리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다. 현재 300명인 국회의원 정원을 330명으로 늘리고, 늘어나는 의석을 비례대표 의석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지역구를 줄이지 않고서도 ‘표의 등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려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국회의원 특권 폐지다. 1억5000만원이 넘는 과도한 연봉을 줄이고, 9명의 개인보좌진도 7명 선으로 줄여야 한다. 그 외에도 각종 낭비되는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 국회 감사위원회를 신설해서 앞으로 국회의원들의 위법행위, 윤리위반 행위들을 철저하게 감시·통제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한다. 이렇게 하면 10% 정도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들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내년 총선 이후에 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이 정치개혁의 입구라면, 헌법 개정은 정치개혁의 출구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보완하는 길을 택하든, 아예 다른 정부 형태를 택하든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시스템을 손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시민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것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총선 전 헌법 개정은 어렵지만, 총선 후 2020년 말까지 헌법 개정을 완수하겠다는 여당의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여당 일부의 안일한 의식이다. 어떤 여당 의원은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국회의원에게 무슨 특권이 있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야말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말로만 해서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 당장 필요한 것이 내년부터 국회의원 연봉을 대폭 삭감하는 것이다. 이것은 별도 입법없이도 가능하다. 어차피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별표에 나와 있는 국회의원 연간 수당은 1216만8000원이다(월 101만4000원). 그것을 국회 내부 규정으로 인상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문희상 의장이 국회 내부 규정만 바꾸고, 여당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이 합의하여 내년도 국회 예산에서 국회의원 연봉을 대폭 삭감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개혁을 완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당이 이 시대적 과제를 거부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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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촛불정부가 출범한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으로 찾은 외부 기관은 인천국제공항공사였다. 그곳에서 대통령은 수십년간 노동계의 바람 중 하나였던 공공부문 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천명했다. 선언적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당시 흥분된 마음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뉴스를 지켜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지난 2년간 공공부문 내 기간제 노동자와 파견·용역 노동자 중 18만5000명 정도가 전환 결정되었고 그중 15만7000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무늬만 정규직화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고 그 목소리의 타당성도 있지만, 그 무늬라도 갖추려고 노력한 점은 인정받아야 한다. 내막을 아는 이들은 그나마 이 정도의 성과도 여러 난관 속에서 정규직화 정책을 밀어붙이려는 다양한 주체들의 노력의 결과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내실 있게 추진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많이 남는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소극적인 입장을 보인 정부 내 경제부처의 태도이다. 우선적으로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부분까지야 범정부적 공감대가 있었을지 몰라도 처우 개선이라는 중장기적 과제에 대해서는 정부 내 온도 차이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 온도 차이를 이제는 경제부처의 온도로 맞춰가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대통령의 인천국제공항공사 방문을 시작으로 가속도를 내던 정규직화 정책은 어느 순간부터 가속페달에서 발을 뗀 것처럼 소리 없이 동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관련 정책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비단 정부의 책임만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여러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과정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정규직 노동조합이 이 정책을 바라보는 태도였다. 이러한 정규직 노동조합의 태도 문제는 기간제 교사에 대한 전교조의 입장정리 과정이나 인천국제공항공사를 포함한 여러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도 여지없이 튀어나왔다. 이 때문에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 방식에 대한 노동계의 거센 비판은 그 속살을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뒷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진정 정부의 의도만으로 자회사 전환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확대되었는지 노동계 내부에서부터 냉정한 성찰과 평가가 필요하다. 정규직 전환과정에서 국립대에 재직 중인 나의 입장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현재 시간강사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정규직 노동조합과 과연 다른 주장할 수 있는지. 노동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도 여러 갈래로 파편화되어 있는 우리의 모습을, 결국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를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였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은 3단계 계획하에서 3년만 진행하고 그만둘 것이 아니다. 정규직화 정책은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하는 단계에 있다. 여전히 과도한 자회사 전환방식, 기관 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문제, 기관 간 격차의 문제, 민간부문 정규직화로의 확장성 문제 등이 고스란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위한 우리 사회의 노력과 고민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채준호 | 전북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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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있는 시민들께, 언론에, 정부와 청와대에 청원합니다. 무슨 말로 이 청원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국 교수가 법무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우리 사회의 공론장은 온통 이 문제를 논하는 말들로 가득한 상황입니다. 이 혼란스러운 목소리들에 또 하나의 부실한 목소리를 더하는 건 아닌지 우려하면서도, 뜻있는 이들의 공감을 구하고자 이 청원의 글을 씁니다.

조국 후보자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커다란 의문을 일으켰고, 그 의문이 다름 아닌 교육 문제에 집중되어 있음을 우리는 이번에 모두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조국 후보자의 자격 여부를 다시 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법개혁의 적임자로 평가되는 그의 자격 여부에 앞서 오히려 교육개혁이야말로 그가 뜻하지 않게 우리 모두에게 던진 과제가 되었음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조국 후보자의 딸이 받았다는 특혜가 과연 사실인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 개인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 상위층의 기득권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하게 되었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재력과 학벌로 짜인 집단적 기득권 구조가 정-경-관-법-언으로 이어져 다시 기득권층의 집단 이익을 보장하는 ‘합법적’ 불공정의 실상을 보게 되었고, 그 핵심에 교육이 있음을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조국 후보자 자신부터 이 부분을 뼈아프게 반성하게 되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대학 서열화와 입시 경쟁으로 요약되는 현재의 교육제도가 사회 기득권과 계급적 울타리를 수호하는 보안문 구실을 하게 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과 신분이 학생의 능력으로 치환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능력이 또한 명문대 졸업으로 추인되고, 그리하여 또 한 번의 기득권과 계급으로 대물림되는 현상을 우리는 분명하게 목도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올라설 수 있다고 오래도록 믿어온 계급 간 사다리를 오히려 교육이 걷어차고 있는 현실을 너무나 뚜렷이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겠다는 이 정부의 의지가 교육에서도 과연 실현되고 있는지 많은 이들이 묻고 있다는 점에서, 마침내 교육의 혁명적 변화를 논의할 적기가 찾아온 듯합니다.

여기서 고등교육의 공공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논하는 것은 사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취업과 사회적 성공 여부가 명문대 졸업장에 달려 있고, 그 졸업장이 부모의 능력에 좌우되는 현실, 그것의 한가운데에는 역시 ‘학벌 사다리’로 부르는 대학 서열화가 있습니다. 대학 서열화는 심지어 부모의 능력 덕분으로 기회를 차지한 학생들조차 자기들 내부에서 ‘능력’과 ‘특혜’를 다시 시비하는 우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서울대, 고려대의 촛불집회에서 보듯이 ‘스카이 캐슬’이라 부르는 성채 안의 학생들이 사회적 공정성을 그들만의 계급 내 문제로 번역하는 신공에는 아연할 뿐입니다. 그들끼리 따지는 자기들만의 공정을 회수하여 고등교육 전체의 공공성 문제로 회복시켜야 할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교육에서 시작하여 생애 전체로 이어지는 이 사회의 기득권 구조와 불평등 경로를 무너뜨리는 길은 대학 서열화를 타파하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대학 서열화의 타파를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지름길로 ‘전국 국공립대 통합’을 공론에 부치자고 제안합니다.

그간 우리 사회는 입시제도의 공정성이 기회의 평등을 확보하는 열쇠인 양 끝없는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왔습니다. 하지만 공정한 선발을 위한 ‘능력’의 기준조차 출신상의 불평등을 대리하는 수단이 된 지금, 수시니 정시니 하는 제도상의 수정은 전혀 불공정을 해소하는 장치가 되지 못했습니다.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 40개 국공립 대학을 묶어 학생들을 통합 선발하고 추첨으로 캠퍼스를 배정하고 자유로운 학점 이동을 보장한다면, 이 사회의 교육 현실은 획기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사립대들의 또 다른 서열화는 어찌 하느냐는 반박은 통합 국립대에서 배출될 수십만의 인재를 생각지 않은, 내용 없는 반대에 불과합니다. 나아가 전국 국공립대 통합은 지방 분권화와 균형발전이라는 과제까지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전국이 수도권에, 서울대에 몰리는 기현상이 사라질 것이며, 그리하여 지역, 계급, 학력에 기초한 기득권 구조도 차츰 허물어질 것입니다. 저는 전국 국공립대 통합이야말로 교육발 혁신이 사회 전체의 혁신을 가져오는 도화선이 될 거라 믿습니다. 뜻있는 이들의 공감과 토론을 청합니다.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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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부터 국내에서 6개월 이상 머무는 외국인은 건강보험 당연가입 대상자가 됐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회보험제도인 건강보험 가입에 국적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도 가입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보편적 건강권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올바른 방향이다. 시민단체와 유엔인권기구에서도 장기체류 외국인에 대한 차별 없는 건강보험적용을 여러 차례 권고한 바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작년 7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하면서 “적정 부담능력 있는 곳에 적정 부과 원칙”이라는 사회보험 원칙을 강조한 바 있었기에 외국인의 건강보험제도와 관련한 제대로 된 정책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정부의 장밋빛 정책방향이 실제 현장에는 전혀 다른 기형적인 제도로 이어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되지만, 단언컨대 이번 외국인 건강보험 당연가입 제도가 그중 가장 최악이다.

도입 과정부터 성급했다. 정책 적용대상이자 보험료 납부 당사자인 체류 외국인에 대한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실태조사가 없었다. 외국인의 보험료 체납을 체류자격과 연결시켜 건강보험료를 3회 초과 미납하면 한국에서 쫓아내겠다는 초강수를 두면서(외국인이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했다고 체류자격을 취소하는 것이 정당한지도 의문이다. 내국인이 건강보험료를 미납했다고 해서 학교나 직장을 그만두게 하거나, 거주지를 제한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의 체류자격별 평균소득에 대한 기초조사도 없었다. ‘적정 부담능력 있는 곳에 적정 부과 원칙’이라는 보편적 기준은 사라지고, 근거를 알 수 없는 자의적 기준들로 제도가 설계되었다. 지역가입자 보험료 산정기준이 대표적이다.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과 재산을 기초로 보험료를 산정하지만, 산정된 보험료가 전체 가입자의 평균보험료(2018년 기준 월 11만3050원)보다 적으면 무조건 평균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통계자료는 이러한 기준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2018년 말 국세청이 발간한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연말정산을 신고한 외국인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2510만원으로 전체 직장인 평균 연봉(3519만원)의 70% 수준에 불과했다.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피부양자 범위도 내국인보다 엄격해서 부모와 성년인 자녀가 함께 거주하는 경우에는 각각 가입대상자가 된다. 그러다보니 가족단위로 체류하게 되는 난민이나 동포들의 경우에는 한 달 소득은 최저임금 수준임에도 매월 30만~40만원의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보험료가 사실상 체류를 위협하는 수준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농어촌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사업장에 고용되어 일하고 있지만, 사업장이 직장의료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라 지역가입을 해야 한다. 내국인의 경우 의료 환경이 충분하지 못한 농어촌 및 도서지역의 경우 보험료가 감면되지만 외국인은 그 지역에 살더라도 감면 대상에서 제외된다. 외국인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품질도 문제다. 충분한 의료통역이 제공되는 의료기관은 턱없이 부족하고,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이 일상화된 외국인 노동자들은 몸이 아파도 평일에 병원을 가서 진료를 받기란 상상하기 어렵다. 외국인의 의료 접근권에 대한 진지한 성찰보다 고액의 건강보험료 징수와 체납에 대한 징벌적 처벌을 강조하는 것은 보편적 인권보장의 책임이 있는 정부의 역할이 아니다.

문제가 되자 보건복지부는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준이 정당한 이유 없이 특정 집단에 적용되지 않거나 반대로 엄격하게 적용될 때 우리는 그것을 차별이라고 부른다. 우리 헌법은 부당한 차별은 금지한다. 차별은 점차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인종차별적인 건강보험제도의 시행을 멈춰야 한다.

<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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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바다로 흘러가는데


길은 어디로 흘러갈까요


솜반천으로 가는 솜반천길


길도 물 따라 흘러


바다로 흘러가지요


아무리 힘들게


오르막길 오르더라도


결국엔 내리막길로 흘러가죠


솜반천길 걸으면


작은 교회


문 닫은 슈퍼


평수 넓지 않은 빌라


솜반천으로 흘러가네요


폐지 줍는 리어카 바퀴 옆


모여드는 참새 몇 마리


송사리 같은 아이들


슬리퍼 신고 내달리다


한 짝이 벗겨져도 좋은 길


흘러가요


종남소, 고냉이소, 도고리소,


나꿈소, 괴야소, 막은소…


이렇게 작은 물웅덩이들에게


하나하나 이름 붙인


솜반천 마을 사람들


흘러가요


현택훈(197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솜반천은 제주의 도심 속에 있는 생태하천이자 천지연 폭포의 상류에 있는 물줄기이다.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른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제주에서 살고 있는 시인은 넓은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솜반천길을 따라 걸으면서 도중에 만난 것들을 하나하나 집어 말한다. 시인은 신앙, 매일매일 이어지는 생활의 곤란, 어린아이들의 즐거운 동심 등등을 만나고 본다. 그리고 솜반천이 푸른 바다로 나아가는 길에 만든 우묵한 물웅덩이들을 주목한다. 그 물웅덩이들에게 방언으로 특별하게 이름을 부여한 마을 사람들의 푸근한 마음도 읽는다. 이 모두는 솜반천 천변의 시간과 풍경, 일상을 구성하는 것들이며, 평범하고 반복되고 세세해보이지만 매우 귀중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들이다. 아침의 선선해진 공기, 귀뚜라미 울음소리, 밝은 달, 햇사과 등이 9월의 가을을 이루듯이.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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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함으로써 성립된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다스리는 죄질이 나쁜 범죄다. 폭행은 사람의 신체에 직접 폭력을 가하는 일로 판단이 비교적 쉽다. 협박은 상대방에게 해악(害惡)을 고지하여 공포심을 갖게 하는 행위다. 그런데 강요죄는 강요에 의해 발생하는 일을 정당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당하는 입장에서 “폭행,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됐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 2심 재판부도 사건의 본질을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의 겁박 때문에 뇌물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고 규정했다. 이런 이유가 양형에 반영되면서 이 부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8월30일 (출처:경향신문DB)

그런데 강요가 없었다면 어떻게 될까. 강요에 의해 행해진 일들이 위법한지를 따져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국정농단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 재판부는 최순실씨 등이 삼성그룹 등에 재단 출연·납품계약·광고발주 등을 요구한 것을 강요죄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두려움을 느낄 만한 해악의 고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2심 재판부가 법리를 오해했다고 한 사건은 모두 7건이다. 삼성 등 대기업들이 관련된 사건들이다. 강요가 없었으니 대기업들의 출연금 지원이나 광고발주 등은 자의적 판단에 따른 결정이 된다. 다만, 대부분은 ‘의무 없는 일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이나, 2심에서 같은 이유로 집행유예로 풀려난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의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높다. 다른 기업들도 강요라는 ‘보호막’이 거둬지면서 부당 채용, 광고 발주 등이 위법한 지 따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검찰도 판결문 전체를 다시 살펴보겠다고 한다.

최고 정치권력의 부당한 요구가 강요로 인정되지 않은 것은 이 사건의 특수한 성격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강요라는 ‘동전’이 뒤집힐 때 그 다른 한 면이 부당한 요구에 대한 정당한 저항일 때만 법의 단죄를 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권력의 부당한 요구 뒤에 숨는 일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사법부의 경고인 것이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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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민주화운동의 거목이신 박형규 목사님 과거사 재심사건을 담당하며 검찰청법을 뒤져본 적이 있습니다. 무죄를 무죄라 말하지 못하던 때라, 상부와의 충돌을 예상하고 잠자던 이의제기권을 깨워야겠다 싶었으니까요. 법전을 아무리 뒤져도, 이의제기권 근거조항만 있을 뿐 행사방법과 처리 절차에 대한 조문을 찾지 못해 근거조항만 숙지한 채 상급자들의 사무실을 오갔는데, 그땐 다행히 무죄구형 결재가 났습니다.

2012년 12월, 또 다른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결국 “지시의 적법성과 정당성에 이의 있습니다. 검찰청법 7조 2항에 따른 이의제기권을 행사합니다”라 외쳐야 했고, 상부는 제 이의를 묵살하고 검사 교체로 대응했지요. 부득이 법정 검사출입문을 걸어 잠가야 했습니다.

중징계받고 5년에 걸쳐 징계취소소송을 진행하며, 이의제기권 도입과정을 비로소 공부했지요. 2003년 강금실 장관이 대검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하여 검찰청법이 어렵게 개정된 것인데, 법무부 검찰국과 대검이 절차규정을 일부러 만들지 않아 사문화시켰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더니 싶어 혀를 내둘렀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업무 특성상 절차규정을 만들 수 없다던 검찰이 정권교체 후인 2017년 12월 결국 만들었습니다.

이의제기권을 행사하였다가 징계까지 받은 당사자로 그간의 눈물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보람에 뿌듯해하며 내용을 확인하였다가 여전한 검찰에 분노하고 절망했습니다. 절차를 마련하는 척하며 이의제기한 검사는 물론 그 의견에 동조하는 여타 검사들마저 새로 이의제기할 기회를 원천봉쇄하고 기관장의 지시에 따르도록 한, 상명하복 강화 규정이었으니까요.

개혁하는 체 시늉만 하는 검찰에 분노하고, 검찰의 눈속임에 여전히 속는 법무부 장관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개혁을 무력화시키려는 악마의 디테일을 헤아릴 통찰과 식견이 있어야 하는데, 참여정부 때처럼 대검에, 대검과 한통속인 검찰국에 휘둘리는 듯하여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2018년 1월5일, 내부게시판을 통해 절차규정 개정을 건의하고, 행정규칙 심사권을 가진 법제처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예상대로 대검은 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검은 절차규정을 만들었다고 치적 홍보를 하면서도, 정작 내용은 비공개하고 있지요. 개혁성과가 아니라 상명하복을 고수하려는 검찰의 방어막이니 공개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여정부에서 도입한 검사의 이의제기권은 척박한 검찰에서 15년이 지나도록 아직 싹도 틔우지 못했습니다.

검찰개혁을 위해서는 이런 악마의 디테일에 맞서야 하기에, 예를 길게 들었습니다.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말한다>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조직의 변화는 인적 구성의 변화나 문화의 변화까지 이루어져야 하므로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막강한 법무부 장관의 권한과 개인 역량은 검찰의 변화 속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더딘 검찰개혁의 책임을 개혁 입법을 통과시키지 않는 국회에만 돌릴 수 없는 이유입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검사 인사에 있어 번번이 아쉬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출범 초기야 인수위 없이 황급히 출범한 것이라 이해했습니다만, 거듭된 인사에서 개혁과 자정업무를 담당한 검사들 면면을 보면 검찰개혁이 정말 더디겠구나 싶어 얼마나 안타깝던지요. 참여정부 시절, 검사와의 대화에서 강금실 장관은 “인사 과정에서 검찰총장 인사안을 전달받았으나, 이용호 게이트, 옷로비 사건, 피의자 고문치사 사건 등의 관련자가 들어 있어 납득할 수 없었다”고 답변했지요. 검찰 과거사위원회, 참여연대 등에서 검찰권 오남용 사례를 수차 지적하였는데, 관련 검사들이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피해자들은 물론 그들의 행적을 잘 알고 있는 검찰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검찰개혁 의지를 체감할 수 있겠으며, 과연 그런 검사들이 검찰개혁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까요.

검찰개혁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명확합니다. 관료조직의 힘이 더욱 비대해지는 정권 3년차, 이제라도 기득권의 저항을 이겨내고 야당을 설득하여 검찰개혁을 이루어내려는 의지와 헌신, 정치검사들의 교언영색을 꿰뚫어보는 통찰과 식견, 친분이나 정치적 필요에 휘둘리지 않는 엄정한 신상필벌의 실천력 등을 갖춘 법무부 장관이 이제라도 왔으면 좋겠습니다. 기득권의 교묘한 저항에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고 헤맬 때 방향을 잡아주고, 아랫사람의 고언에 귀 기울여 길을 찾고, 검찰개혁이라는 불가능할 것 같은 꿈을 꾸다 지친 사람들을 다독여 함께 내일을 향해 계속 나아가게 하는 그런 사람이 장관이 되면, 정의로운 사회가 성큼 다가서지 않겠습니까.

<임은정 | 울산지검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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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달 30일 부산 장외집회에서 “문재인 정권은 광주일고 정권이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공격했다. 그는 “부·울·경을 차별하면서 더 힘들게 하는 정권에 대해 부산·울산·경남 지역 주민들이 뭉쳐서 반드시 심판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1야당의 원내 리더가 대중 앞에서 해묵은 지역감정의 불을 지른 것이다. 금도를 깨고 국민을 편 갈라 이용하려는 정치 퇴행이 매우 유감스럽다.

나 원내대표가 시민들을 자극하며 내놓은 논거는 자의적이다. 그는 “이 정권이 부·울·경 쪽에 인재를 등용하는가 봤더니, 서울 구청장 25명 가운데 20명이 광주·전남·전북 출신이더라”고 말했다. 서울 구청장은 시민들이 뽑는 선출직이다. 흔히 지역 차별 문제는 고위 임명직을 기준으로 삼는다. 경향신문이 지난 5월8일 분석한 ‘한국의 파워엘리트 232명’에서 PK 출신은 20.3%이며 현 정부 2년간 1.5%포인트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 첫해 15.2%, 박근혜 정부 3년차인 2015년 조사 때 15.6%보다 상승한 숫자다. 나 원내대표가 “부산 지역 아파트값은 100주 연속 하락하고 있다”고 덧붙인 말도 자극적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아파트 가격’을 치면 몇주째, 몇달째, 수년째 집값이 하락하고 0% 밑으로 저공비행하는 광역시·지방도시 이야기가 숱하게 이어진다. 국외 분쟁까지 얹어져 심화되고 있는 작금의 경기침체 이야기도 유독 특정 지역을 가릴 게 없는 상황이다.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부산과 대구에는 추석이 없다”던 보수 매체의 편향적 제목과 맥이 닿는다. “부·울·경을 차별하고 더 힘들게 하는 정권”이란 나 원내대표 설정은 작위적이고, 사실과도 거리 있고, 보고픈 것만 확대경을 들이대는 확증편향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9월 2일 (출처:경향신문DB)

지역갈등은 한국 정치를 왜곡시켜온 고질병이다. 국론을 분열시키고 정책을 실종시키는 폐해가 유달리 컸다. 1992년 대선의 ‘초원복집’ 사건부터 그 갈등의 흑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곳이 한국당이다.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며 모두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려 노력할 때 다시 유리그릇을 깨는 시대착오적 ‘발언’이 도진 것이다. 나 원내대표에게는 “몇달 전 대구에선 가덕도신공항을 부산에 줘 TK를 차별한다고 했다”(김부겸 의원)며 지역감정 자극이 ‘상습적·악의적’이라는 역공도 커지고 있다. 그의 발언은 지난달 ‘대한민국 대전환 5대 실천 목표’를 내놓으며 지역갈등을 끝내야 할 잘못된 정치로 지목한 황교안 대표의 ‘광복절 담화’도 희화화시켰다. 역사엔 ‘분열의 정치인’과 ‘통합의 정치인’이 기록된다. 나 원내대표는 품격과 절제를 잃은 정치의 위험성을 직시하며 상처 입은 시민과 역사 앞에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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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취소 처분을 받았던 서울지역 자율형사립고(자사고) 8곳이 당분간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서울행정법원이 지난달 30일 학교 측이 낸 자사고 지정취소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다. 앞서 경기 안산동산고와 부산 해운대고의 집행정지 신청도 인용돼 올해 재지정 심사에서 탈락한 자사고 10곳은 내년 입시에서 그대로 학생을 선발하게 됐다. 서울시교육청은 “법률적·행정적 문제가 없는 만큼 본안소송에서는 지정취소가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경기와 부산교육청은 가처분소송 인용에 대해 항고 뜻까지 밝히고 있다. 장기간 법정 공방이 예상되며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해졌다. 

서울시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7월29일 열린 자사고 재지정 평가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이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자사고 폐지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교육공약으로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당장에라도 정리될 듯하던 자사고 정책이 집권 3년차가 되도록 한 치 앞을 예상 못하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은 정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교육부는 두 가지 카드를 날렸다. 우선, 의지가 있었다면 자사고를 일괄 폐지하도록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을 바꿔 놓을 수 있었다. 자사고 자체가 2009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으로 5년간의 한시적 학교로 만들어진 만큼, 일괄폐지 또한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었다. 자사고 지정취소의 최종 결정권을 교육감에게 넘겨 단계를 줄이는 방안도 가능했다. 박근혜 정부가 낙제점을 받은 자사고를 구제하며 끼워 넣은 시행령이다. 그러나 교육감들의 이 같은 요구에 교육부는 내년 하반기 자사고 문제를 포함한 고교체제 개편방안을 함께 검토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제껏 뭘 하다가 집권 4년차에야 ‘시행’도 아닌 ‘검토’를 하겠다는 말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3월22일 대선 교육정책 발표문에서 “부모의 지갑 두께가 자녀의 학벌과 직업을 결정할 수 없다”며 “입시명문고가 되어버린 외국어고, 자사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문재인·유승민·심상정 후보가 모두 자사고와 외고 폐지를 공약했다. ‘귀족학교’를 없애달라는 여론이 그만큼 강력했다. 고교서열화를 완전히 해소하겠다는 초심은 어디로 갔는지,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은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지 묻고 싶다. 문 대통령은 1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교육 관련 의혹에 대해 “논란 차원을 넘어서 대입 제도 전반을 재검토해 달라”고 말했다. 연관되어 길 잃은 자사고 정책도 다시 살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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