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방송채널을 돌리다 보면 토론방식의 프로그램이 눈에 많이 띈다. 종편은 하루 대부분의 방송시간을 이런 프로그램들로 편성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몇 명의 전문가 패널과 해당 방송사 소속 기자가 그날그날의 사건, 사고를 주제로 의견을 주고받는 형식이다. 재미있는 건 많은 경우 패널로 참여한 이들이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주제들도 논평한다는 점이다. 정치평론가가 연예계 사건도 해설하고, 문화평론가가 법률적 이슈도 해설하는 식이다.

전문가는 오랜 학습기간을 거쳐 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다. 한편 지식인은 이러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필요할 때마다 사회적 문제를 공론화한다. 일단 전문가로 인정받으면 대중적 신뢰와 권위가 생긴다. 방송언론에서 이들을 많이 모시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가 곧 지식인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민주화 이후부터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지식인의 역할에 관한 논쟁이 뜨거웠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런 문제의식이 실종된 느낌이다. 지식인 스스로가 자초한 면도 있고 환경이 바뀐 것도 있다. 민주화 이후 긴 호흡의 통찰이나 치열한 담론생산이 거의 사라졌다. 정치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에 포섭되어 권력의 향방에 따라 입지를 서로 뒤바꿀 뿐이다. 엄격한 비판정신과 사회적 책임의식이 결여된 이른바 전문가들이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수두룩하다. 여기에 소셜네트워크(SNS) 1인 미디어 시대가 열려 대중들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전문지식인들의 입지는 전보다 훨씬 좁아졌다. 바야흐로 모두가 지식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대중 지식인’ 시대다.

사람은 누구나 노력하면 지식을 터득할 수 있는 소질을 타고난다. 조선시대처럼 학문적 지식을 전담하는 신분층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체계가 약화되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누구나 고등학교까지는 교육받는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한다. 소위 ‘대중 지성’이 가능한 시대인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환경에서는 지식인의 정의를 새로이 정립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인은 건전한 상식, 상당한 전문지식, 그리고 미래의 변화에 대처할 능력과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춘 사람이다. 시대와 소통하며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유연한 창의성, 그리고 남들과 소통하고 협력할 줄 아는 덕성을 겸비해야 한다.

한국사회는 지금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50-30 클럽’(5000만 인구에 1인당 소득 3만달러)에 가입할 정도로 큰 나라가 되었지만, 저성장과 양극화의 심화로 국가 경제는 물론 공동체 자체가 위험에 처해 있다. 또 정치적으로는 국민의 노력으로 1987년 이래 제도적 민주화를 성취해냈지만, 그 ‘87년 체제’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를 가로막아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렇게 사회가 정치, 경제적으로 양극화되면 상호관용과 상생발전이라는 공동체적 가치가 설 땅은 없다. 지식인의 치열한 고민과 창조적 지혜가 절실한 때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에 한국의 지식인들은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먼저, ‘More Open’, 더 개방적이어야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보다 포용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 소수의 목소리가 존중받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공동의 가치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정치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국내 거주 북한 이탈주민이 3만명을 넘어섰고, 외국인 노동자나 귀화 외국인도 200만명을 넘어섰다. 우리와 일상을 함께하며 사는 이웃들이다. 수도권 중소도시나 농촌 지역은 이미 다민족 공동체로 진입하고 있는 상태다. 이들을 ‘타자화’하는 순간 한국사회는 또 다른 갈등의 뇌관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함께 살아갈 방도와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두 번째는 ‘More Compassionate’, 더 따뜻해져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원조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되었다. 다른 나라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성과다. 첨단 산업제품을 많이 수출하는 것도 좋지만 도움이 필요한 나라와 희망과 비전을 함께 나누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피폐했던 경제를 재건하고 권위적인 정치체제를 민주체제로 바꾼 소중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 산업화와 민주주의 역량을 갖춘 한국이 국제사회에 기여할 차례가 된 것이다. 이와 함께 내부적으로는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는 동반성장 문화가 필요하다. 끝으로 ‘More Confident’, 더 자신감을 갖자. 한국은 과거의 고립된 은둔자나 약한 나라가 아니다. 아직도 여러 가지 과제가 있지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조화로운 체제를 만들면서 글로벌 리딩 국가로 도약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당당하고 주체적이며, 세계에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자신감을 갖고 지구촌 곳곳에서 평화와 안전, 인류의 진보를 위한 역할을 더 확장하고 실천해야 한다. 한국은 그럴 역량을 충분히 갖고 있다.

공동체 내에서 지식인의 위상과 역할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그 본질적 책무는 변하지 않는다. 지식인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정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탈속적이든 세속적이든, 혹은 권력에 순응하든 저항하든, 전문지식의 보유자로서 학문과 현실을 매개하고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 비판하는 지식인의 책무는 여전히 유효하다. 시대와 문화, 체제와 인간, 과학기술과 윤리 등 사회 내부에서는 다양한 층위에서 불화가 일어날 수 있다. 날카로운 비판정신으로 시대를 통찰하는 창의적인 지식생산자가 없다면 공동체의 지속이나 인류의 진보는 가능하지 않다.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한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도 지식인은 세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데 세계를 잘 모를 뿐 아니라 그런 자신에 대한 고민조차 없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문제는 스스로를 성찰하며 지식인의 책무를 자각하는 것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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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이 다시 촛불을 드는 것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박근혜 퇴진운동을 벌이며 들었던 촛불은 박 전 대통령의 밀실 측근이라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받은 성적 특혜라는 반칙 행위에 대한 분노가 단초가 됐다. 이후 광화문의 촛불은 전국으로 들불처럼 퍼졌고 결국 박근혜 정권을 몰락시켰다.

대학생들이 이번에 들고 있는 촛불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대학과 대학원 입학, 장학금 수혜 등의 과정에서 나타난 반칙과 특혜와 편법에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보수 우파는 기득권층과 동의어로 간주됐고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기피했다. 반면에 진보 좌파는 정의의 화신으로 자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기회는 공평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의 아이콘이며 진보 좌파의 대표주자인 조국 후보자는 그동안 각종 매체와 연설을 통해 이를 설파했고 많은 국민이 이에 열광했던 것이 사실이다.

서울대 학생회관 앞에서 8월28일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주최의 ‘제 2차 조국교수 STOP ! 서울대인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대 학생들은 지난 23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우철훈 선임기자

그런데 조국 후보자는 앞에서는 정의를 외치고 뒤에서는 기득권층으로서 온갖 편법과 특혜를 향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국 후보자 딸이 고교시절 2주간의 인턴으로 전문 학술지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무시험으로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고 장학금을 받은 사실들은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신기(神技)에 가깝다. 

이번에 또다시 대학생들이 들고 있는 촛불도 분노의 촛불이다. 이건 보수와 진보 간의 이념 투쟁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정의냐, 불의냐의 문제다. 모든 철학자들이 합의한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意)는 없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내세운 대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게’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모두가 용이 될 필요가 없다. 개천에서 붕어나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사회를 만들자”는 조국 후보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돈과 명예와 권력을 얻고 싶어 한다. 이들 중 하나라도 얻는 것이 용이 되는 것이다. 이를 얻기 위해 밤잠을 줄이며 공부하고 일을 한다. 그런데 개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붕어나 가재로만 살라면 행복할 수 있겠는가. 특히나 이미 용이 된 기득권층들이 편법과 특혜와 반칙을 하면서 대를 이어가며 더욱더 많은 돈과 큰 명예와 권력을 얻는 사회라면 국민은 절망하고 분노하지 않겠는가. 촛불이 주장하는 것은 강남의 양재천뿐만 아니라 어느 개천이든 용이 나올 수 있도록 기회를 평등하게 하고 과정을 공정하게 해 달라는 거다. 그게 정의로운 사회다.

그동안 진보 좌파는 촛불정신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내세웠다. 그러나 촛불은 진영논리와 상관없이 기득권층이 정의롭지 못할 때 타오른다. 학생들이 지금 들고 있는 촛불은 이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조국 후보자 딸의 입시와 장학금과 관련한 불의에 항의하는 촛불이다. 그러나 이 촛불을 일부 언론과 야당의 선동에 의한 거라는 식으로 폄훼하고 조롱한다면, 이 촛불은 캠퍼스를 넘어 광화문으로 번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법무부를 영어로 정의부(Ministry of Justice)라고 한다. 우리나라 법무부의 영어 표기도 이렇게 되어 있다. 조국 후보자는 정의 구현을 책임지는 정의부 장관 후보자다. 조국 본인이 정의롭지 않은데 어떻게 조국의 정의를 책임질 수 있는지 국민 다수는 믿을 수 없어 한다. 

지금이야말로 문재인 정권이 핵심가치로 내세운 평등·공정·정의를 바로 세울 때다. 그걸 대통령이 못하면 검찰이 해야 하고, 검찰도 못하면 국민이 할 것이다. 개인 조국(曺國)의 운명과 함께 우리 조국(祖國)의 운명이 갈리는 기로에 있다. 촛불을 다시 보며 교차하는 만감 중에 떠오른 단상이다.

<이현훈 | 강원대 국제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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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차량이 아파트 또는 빌라 주차장 출구에 무단으로 주차돼 있는데 운전자가 없어 여러 대의 차량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신고가 적지 않다. 하지만 공공의 이익이 현저하게 침해되고 있고, 잘못 없는 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도 현행법상 사유지 주차의 경우 강제로 견인할 방법이 없다. 사유재산은 불가침이 원칙이고, 도로교통법이 적용되지 않아 경찰과 구청이 단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로에 불법주차할 경우 단속이 가능하지만 사유지에 주차했을 때는 단속 및 견인하기 어려운 점을 악용하여 무단주차하는 운전자가 적지 않다.

경찰도 그 장소가 사유지라면 차주에게 연락해 이동주차를 요구하지만, 차주의 전화번호가 없거나 차주에게 연락이 되어도 당장 침해된 법익에 대해 강제로 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에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다며 수많은 민원이 접수되고 있다. 

물론 무단주차한 차량을 상대로 손해배상 등 민사 소송을 제기하여 처리할 수 있지만 소송기간이 오래 걸리고 여러 번거로움이 있다. 또한 사유지에서 견인할 경우, 견인 중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손해배상 문제를 견인을 요청한 사람이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사유지에서 견인 요청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아파트 진입로 및 주차장 출입구 등에 무단주차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차량 통행에 불편이 발생할 경우 사유지라도 즉시 단속 및 견인이 가능하도록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

<이장우 | 부산동래경찰서 온천3파출소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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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건을 다뤄왔습니다. 보람을 느끼기도, 안도하기도, 슬프고 아프기도 했습니다. 사건을 종결하고도 오랜 시간 동안 기억에 남아 마음을 아프게 한 사건은 아동, 청소년이 유명을 달리한 사건들이었습니다. “제대로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어느 선배 판사의 말은 아직도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런 사건은 사실 우리 생활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교통사고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운전자의 부주의 뒤에는 관심 부족, 시스템 부재가 작용하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년간 수출 종목으로 자동차 생산에 전념해왔습니다. 도로를 넓혀서 자동차의 도로 주행 속도를 올렸습니다. 법령을 정비해서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특별한 잘못을 제외한 교통사고에 대해 처벌을 면하는 특례까지 두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사람들은 도로 밑으로 굴을 파서 길을 건넜습니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차가 먼저 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골목에서도 차가 오면 양보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차는 남을 윽박지를 수 있는 권력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지금 관점에서 보면 몹시 불편합니다. 

‘걷기 좋은 도시’를 추구하면서 걷기 환경은 꽤 좋아졌습니다. 지하도가 있어도 도로 위로 횡단보도를 내줬고, 주말에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차 없는 길을 만들어줬습니다. ‘보행자 주권’이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그런 노력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실제로 교통사고 사망 사고는 줄고 있습니다. 그래도 길을 걷고 도로를 건너다 보면 보행자는 여전히 을(乙)입니다. 그래서 우회전 차량에 대한 시스템을 정비하겠다는 소식은 반갑습니다. 학교 앞 교통시설에 대해 두 가지 제안을 할까 합니다. 

첫째, 학교 앞 횡단보도 면적 넓히기. 학교 앞 횡단보도의 면적을 지금보다 2배 이상 넓히면 좋겠습니다. 서울 대학로 큰길에 제법 넓은 횡단보도가 있습니다. 넓어진 횡단보도가 보행자에게 어떤 안정감을 주는지 알 수 있습니다. 횡단보도가 넓어지다 보니 그 안에 차가 들어설 수 없습니다. 어지간한 파렴치가 아니고서는 그 넓은 횡단보도에 차를 들이고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차 두세 대 정도 공간이면 횡단보도를 두 배로 넓힐 수 있습니다. 넓어진 자리만큼 차는 공간을 손해 보지만, 사람은 그 몇 곱절 더 많이 그 공간에 다닐 수 있습니다. 이 정도 양해는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학교 앞 횡단보도는 지금보다 2배 이상 폭을 넓혀도 됩니다. 

둘째, 교차로 대각선(X자형) 횡단보도 늘리기. 차를 위해서는 동시신호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사람을 위한 동시신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4거리 교차로에 횡단보도는 모서리 4개에 대각선 2개, 모두 6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대각선 횡단보도야말로 차가 아닌, 사람을 위한 동시신호입니다. 대각선 횡단보도야말로 ‘횡단’이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점점 늘고는 있지만, 지금보다 더 전향적인 생각으로 대각선(X자형) 횡단보도를 대폭 확대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학교 주변에는. 

안전 말고도 제가 이런 제안을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질서 의식을 가르치려면 학교 앞에서, 그리고 제일 눈에 잘 띄는 곳부터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횡단보도에 차가 떡하니 들어서 있고, 신호 지키기를 기대하기보다 신호를 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다면 이 사회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단속, 규제, 이런 말에 시민들이 공감하고 따르리라 기대해선 곤란합니다. 우리 시민 의식은 이미 그보다 앞서 있습니다. 정권마다 구호처럼 외치는 ‘법치국가’의 초석을 다지려면 단속하고 규제하기보다, 시스템부터 훑어봐야 합니다. 우회전하는 차 보고 알아서 안전하게 운전하라, 정지선을 지키라고만 이야기해서는 상황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시스템을 바꿔서 설득해야 합니다. 불합리한 현상을 그대로 두고 단속할 테니 지키라고만 하면 시대착오입니다. 차에서 내려 현장에 나가보고 직접 걸어 다니면서 역지사지의 마음과 눈높이로 시민의 생각을 읽어야 합니다.

<함석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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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자신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당초 2~3일 예정됐던 국회 인사청문회는 무산됐다. 2000년 인사청문제도가 도입된 이후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 대신 언론을 통한 ‘셀프 청문회’를 열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여야의 정치력 부재가 빚어낸 부끄러운 모습이다. 여야는 시민에게 약속한 청문회 일정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조 후보자는 기자간담회에서 “주변에 엄격하지 못했던 것에 깊이 반성하고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모펀드 투자, 딸의 논문과 대학·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장학금 수령 등 모든 의혹에 대해 관여한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 그의 해명은 즉시 확인할 길이 없고, 거짓말을 했다 한들 처벌할 수도 없다. 그래서 법적 구속력이 있고, 증인들을 상대로 교차 질문할 수 있는 인사청문회가 더욱 필요했던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중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는 자유한국당의 책임이 크다. 지난 20일 동안 조 후보자 관련 기사는 62만여건이 쏟아졌다고 한다. 하루 3만건꼴이다. 그러나 조 후보자에 대한 숱한 의혹은 일방적 폭로와 주장만 있었지,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실체 규명이 된 건 없다. 시민은 조 후보자의 해명을 직접 듣고 판단하기를 원했고, 당사자도 반론할 권리가 있다. 법에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면서까지 이런 기회를 없앤 건 어떤 논리로도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한국당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청문회를 계속 지연시켜왔다. 이날도 가족 증인 채택을 양보하는 대신 청문회 일정 연기 카드를 내놓았지만, 역시 청문회 무산 책임을 피하고 추석 때까지 ‘조국 이슈’를 끌고 가겠다는 정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기자간담회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청와대와 여당의 주장을 탓할 수만 없는 것이다.

‘조국 이슈’는 이제 조 후보자 개인의 문제를 넘어 진영싸움이 됐다. 인터넷에선 시시각각 여론전이 치열하고, 갈등과 분열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야당은 “대국민 사기 콘서트”라고 반발했다. 간담회를 지켜본 시민들도 한편에선 해명됐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선 의혹이 증폭됐다고 한다. 청와대는 임명을 강행할 태세라는데 이대로 임명 절차로 가서는 국론분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기자간담회가 법에 규정된 인사청문회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이런 나쁜 선례를 남겨서도 안된다. 지금 여당이 야당 입장이라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향후 검찰개혁을 위해서도 법무부 장관 임명의 절차적 정당성은 필요할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대승적 차원에서 인사청문회 일정을 다시 잡는 방안을 검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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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달 3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고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평택기지 등으로 이전 완료했거나 이전 예정인 총 26개 미군기지에 대한 조기 반환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또 서울 용산기지 반환절차도 올해 안에 개시하기로 하고 이런 내용을 미국 측에 통보했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을 두고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을 비판한 미국을 향해 맞대응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사안의 본류를 잘못 짚은, 그리고 한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편향적 주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군기지 이전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 미국은 반환하고 남은 26개 기지 중 19곳은 반환절차 개시를 협의 중이지만 7곳에 대해서는 반환절차 개시 협의조차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강원 원주시 태장동 일대 34만4332㎡ 규모의 ‘캠프롱’은 2010년 6월 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한 뒤 부지가 9년째 방치되고 있다. 이 기지는 2013년 원주시가 국방부와 토지매입 협약을 체결, 3년 뒤 665억원을 완납했음에도 토지를 넘겨받지 못하고 있다. 미군이 50년 이상 쓴 이 기지 부지 내 토양 오염 정화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를 놓고 미군과 환경부가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 부평과 동두천 등에 있는 3개 기지도 마찬가지다. 일부 지자체는 외자 유치까지 해서 부지를 매입하고 환경부담금까지 물고 있는데 땅을 넘겨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사정을 해결해달라고 지자체가 아우성을 치는데 두고만 본다면 이는 정부의 직무유기가 분명하다. 주한미군사령부와 미 8군사령부가 이미 용산에서 평택으로 옮겼는데도 한·미는 용산기지 반환절차 협의를 시작하지 않았다.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협의 개시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미군기지 반환은 지금 시작해도 마무리되기까지 한참 걸린다. 이런 당연한 정부의 방침을 두고 한·미관계를 악화시킨다고 비판하는 주장은 과도하다. 반환이 지체되는 미군기지를 방치하는 게 옳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미국은 한국이 부담하는 방위비 분담금을 5배나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판국이다. 미국은 이 점을 이해하고 기지 반환에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이들 기지의 오염을 먼저 해결한 뒤 그 비용을 방위비 분담금에 포함시켜 상계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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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근로 및 자녀장려금을 대폭 늘렸다. 2일 국세청에 따르면 올 근로장려금은 388만가구에 4조3003억원, 자녀장려금은 85만가구에 7273억원이 돌아간다. 473만가구에 5조276억원이 지급되는 것이다. 지급대상 가구는 전년 대비 1.8배, 금액은 2.9배 늘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올해부터 단독가구 연령 요건이 폐지됐고, 소득·재산 요건이 완화된 데다 최대 지급액이 오른 덕분이다.

근로 및 자녀장려금은 소득이 부족하거나, 자녀 양육비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 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아동수당 및 기초연금 확대와 함께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려주기 위한 정책이다. 특히 장려금 지급대상에 30세 미만 가구를 대거 포함하면서 청년빈곤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저소득계층의 소득이 한계상황에 다다른 상태에서 이들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당연하다. 소득격차가 벌어지는 현실에서는 더욱 절실하다. 지난달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 격차가 역대 최대로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당연히 소득불평등지표인 팔마비율(상위 10% 소득을 하위 40% 소득으로 나눈 값)도 악화됐다. 이대로 사회가 지속 가능할지 의문시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장애인과가난한이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 한국한부모연합이 2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개최한 ‘관악구 탈북 모자 추모제’ 중 이삼헌 무용가가 진혼무를 추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더 심각한 문제는 하위층 가운데서도 소득이 가장 낮은 하위 10%의 열악한 현실이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2017년 연간 평균소득은 305만원으로 상위 10%의 3% 수준에 불과했다.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번 정부의 지원금이 소득 하위 20% 계층 가운데 10~20%에 혜택이 집중된다는 점이다. 지원금은 근로연계형이기 때문에 근로능력 자체가 없는 최빈곤층(하위 10%)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지난 7월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생활고를 겪던 탈북민 모자가 사망한 채 발견돼 사회에 충격을 준 바 있다. 지난달에는 한 다세대주택에서 혼자 살던 50대 장애인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복지정책의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정부는 이번에 저소득층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우선으로 보호받아야 할 극빈층을 지원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취약계층의 생존권을 위한 소득보장 없는 소득주도성장은 공허한 구호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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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보름간 쏟아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기사와 사람들의 반응에 마음이 어수선하다. 의혹을 파헤치는 기사나 그를 비난하는 글도 안타깝고, 일방적으로 그를 옹호하는 말도 석연치 않아 불편하다. 어느 순간 차라리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었다. 이십대에 맺은 인연 때문이다.

그와 알고 지낸 것은 내가 석사 과정에 입학해 형법을 전공하면서부터다. 그는 학문에 뜻을 두고 박사 과정에 있었고, 이미 학교에서 존재감이 뚜렷했다. 함께 수업을 듣던 내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직후에 그는 진보적인 학술단체에서 활동할 것을 권했다. 대학 시절 변변한 활동을 하지 못해 목이 말랐던 나는 권유에 따랐다. 나는 석사 과정을 마치려 사법연수원 입소를 연기한 채, 학술단체 활동도 하고 자유로운 시간도 보내면서 지냈다. 조교인 그의 방에 가끔 들렀는데, 그가 스스로 다짐하려 적어놓은 독일어 표어가 지금도 기억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내게 “노동자를 교육하는 단체가 있는데, 노동법 수업을 맡아 달라”고 했다. 아직 서슬이 퍼런 군사독재 시절이었고, 관련자가 구속된 비합법단체였다. 잠시 고민했으나, 마다할 명분이 없었다. 아니, 세상에 기여할 기회를 주는 그가 고마웠다. 나는 미미한 활동을 했지만, 그로 인해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을 조금 덜 수 있었다.

그때의 후보자는 연구자로서는 명석했고, 운동에는 헌신적이었으며, 생활태도는 부유한 환경과 달리 청교도적이었다. 자유주의적 사고와 감정에 기울어 방만했던 내게는 보기 드문 인물로 비쳤고,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그는 내가 사법연수원에 다닐 무렵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그의 변호인이 피고인의 요청이라며 변론을 도와 달라 하여, 변론의 일부를 작성해 전달했다. 재판을 방청하러 갔는데, 원래 렌즈를 사용하던 그는 임시로 구한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초췌한 모습에 마음이 쓰라렸다. 그가 지금 기준으로 과격한 활동을 했다고 한들, 폭압적인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활동과 분리해서 이해할 수는 없다.

그 후 이십 몇 년이 흘렀다. 교류가 없던 때도 있었고 가끔 전화하고 만나던 시절도 있었는데, 각별한 사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가 달라 소원한 시기가 지난 몇 년간 이어졌다. 그사이 그의 존재감은 점점 커져갔고, 이제 후보자가 되었다.

나는 의혹 중 몇 가지는 모함이라는 것을 즉시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박사학위 없이 울산대 교수가 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있다. 당시에 종종 있는 일이었고, 성실하고 명민한 그에게 그런 정도의 자격은 있다는 것을 주위에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녀가 의외의 장학금을 받았거나 고교 때 의학논문의 저자가 된 문제, 그리고 민정수석 시절에 투자한 펀드에 대해서는 나도 당황했다. 위법 여부는 어차피 절차에 따라 가려질 것인데, 정확한 내막을 모르는 나로서는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다만, 언론이 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만일 후보자가 관여한 것이라면, 그가 천명한 원칙이나 타인에게 적용한 잣대와 어긋나기 때문이다. 물론 과연 위법인지, 또는 장관 부적격 사유인지는 더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나는 오랜 기억 속 후보자를 떠올리며, 괴롭고 서운한 마음으로 계속 생각해 본다. 어느 날은 잠도 오지 않는다. 내가 알던 성품이나 언행으로 보아 적극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정황상 소극적으로 용인했을 가능성은 엿보인다. 자기관리가 철저했던 그가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그를 잘못 알고 있던 걸까. 세월 속에서 그도 약육강식의 세계에 적응한 생활인이 된 걸까. 그가 가진 많은 자질과 자원이 성찰의 힘을 빼앗은 걸까. 어느 이유든 서글플 따름이다. 물론 누군가 나를 샅샅이 뒤질 것도 없이 슬쩍 흔들어 보기만 해도, 나의 여러 잘못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겨우 조광희이고, 그는 내가 흠모했던 조국이 아닌가.

그가 적극적으로 선을 넘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 믿음이 잘못인 게 밝혀진다면, 기꺼이 바보가 되어 비웃음을 받겠다. 하지만 작은 틈을 부주의하게 허용해도 유죄가 될 수 있고, 후일에 무죄가 되더라도 몇 년을 힘겹게 싸워야 한다. 검찰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젊은 조국은 구속되고 유죄가 되어도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었다. 불의한 법과 사회적 구조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채 선한 의지와 용기로 맞섰기 때문이다. 지금 제기된 문제들은 그 선한 의지와 용기를 무색하게 한다. 그 점이 괴롭다.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로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된 사안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적극적인 해명을 통해 의혹의 눈초리가 누그러지고, 대통령이 흔쾌히 임명하며, 검찰개혁을 완수하는 것이 그로서는 최선이다. 나는 이 정부의 역량과 비전에 여러 아쉬움이 있지만, 후보자를 편애하는 마음 때문에 그 최선을 희망한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임명 이후에도 그와 주변인 모두가 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아무리 좋은 의도와 대단한 능력이 있어도, 그 와중의 개혁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자신만이 아니라 몸담은 정부마저 위태로울 가능성은 과연 없을 것인가.

더위는 누그러지고 있지만, 이제 그에게는 불같이 뜨거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의 잘못이 밝혀져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비난할 사람은 많다. 그가 이십대의 내게 준 삶을 생각하면 나는 그럴 수 없다. 그저 애통해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잘잘못을 떠나서 이 논란은 나와 후보자가 포함된 세대가 이른바 헬조선의 기득권자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냈다. 이 세대가 앞으로 더 노력할 수는 있겠지만, 개개인이 아닌 세대라는 덩어리로서 윤리적 리더십을 주장할 명분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한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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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뛰다가 넘어졌다. 쿵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달려가 아이를 일으켰다. 아이의 손바닥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으냐고 묻는 건지, 괜찮다고 위로하는 건지 나도 모르게 말을 쏟아냈다. 아이의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라 있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뒤편에서 갑자기 “울지 마!”라는 말이 들려왔다. 날카로운 음성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의 아버지처럼 보이는 사람이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는 눈을 감았다. 감은 양쪽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이는 소매를 들어 눈을 훔쳤다. 울긴 했지만 울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울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울지 못한 것은 아닐까. 아무도 없을 때 남몰래 더 크게 울지는 않을까. 제때 울지 못한 울음은 언젠가 다시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그때 흐르는 눈물은 누구도 어찌하지 못한다. 그 눈물 속에는 억울함과 섭섭함, 울지 못하게 만든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분노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문득 어릴 때 들었던 날선 말들이 떠올랐다. 가령 “남자는 태어나서 딱 세 번 운다”나 “눈물이 헤프다” 같은 말들. 눈물이 솟구칠 때마다 두 손으로 두 눈을 가리게 했던 말들. 씩씩하지 못하다고, 참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고 나를 다그치던 말들. 그때 참았던 눈물이 흘러나오는 상상을 하니 아찔했다. 저 말들은 이제 케케묵은 것이 되었지만, 사람의 마음에서 이끼처럼, 곰팡이처럼 피어올라 그를 옥죄기도 한다. 내면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책을 읽다가 울었다. 현직 의사 김선영이 쓴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라이킷, 2019)이라는 책이었다. 지은이는 종양내과 의사인데, 아버지를 암으로 일찍 떠나보낸 사람이기도 했다. 공교롭게 그가 근무하는 병원이 작년에 아빠가 항암치료를 받은 병원과 같아서 첫 장을 읽을 때부터 목구멍으로 침을 삼켜야만 했다. ‘사실을 말하면서도 희망을 주는’ 일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의사의 고단함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책에서 내 마음을 꿈틀거리게 만들었던 문장을 옮긴다. 단단하면서도 겸손한 저 문장들로 인해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눈물이 흘러나올 때마다 불끈 주먹을 쥐게 만들었다. 주먹 안에는 “울지 마”라는 타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울지 않을래”라는 내 목소리가 새겨 있었다. 울지 못하게 만드는 외부 기제가 아니라, 울지 않기로 마음먹은 나 자신이 담겨 있었다.

“병원에서 슬픔을 공부할 기회는 언제나 있지만, 그것을 일상에서 건져 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것부터 시작하자. 죽음을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 타인의 슬픔의 깊이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저리 너머 저 심연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 누군가가 슬플 때, 어설픈 위로를 던지기보다는 그 슬픔을 헤아려보는 자세가 소중하다. 어떤 이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다른 어떤 이에게는 일상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슬픔일 수도 있다.

“울지 마”라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어느 때는 위로가 되고 어느 때는 폭력이 되는 말. 누군가를 성장시키기도 하고 그 자리에 영영 붙박아두기도 하는 말. 한없이 다정하면서도 더없이 편리한 “울지 마”라는 말. 실은 많은 말들이 양날을 지니고 있다. 슬픔을 다스리기 위해 했던 말이 슬픔을 더욱 부풀리기도 하고, 참아왔던 울음의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울지 마”라는 말보다 “울어도 괜찮아”라는 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아빠와 함께 거닐던 산책로를 혼자 걷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 날이 있었다. 한 발짝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때 나는 울어도 괜찮다고, 울 수 있어서 실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면 아마 나 자신이 통째로 쏟아졌을 것이다.

뛰다가 넘어져 우는 사람이 있었다. “울지 마”라는 외침에 울음을 삼키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성장하며 울음을 참지 않기로 다짐했다. 한바탕 울고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눈물과 타인의 눈물을 둘 다 존중하겠다고 결심했다. 눈물의 농도와 경중을 따지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했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다. 비단 나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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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까지만 해도 평범한 집안에서 대학생이 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198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대학 진학률이 30%를 넘겼으니 대부분의 청년들은 고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합계출산율이 0명에 들어선 요즘은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한 집안에 3~4명 이상의 형제자매가 자라는 것이 보통이라서 누가 대학을 가는가는 아들 우선, 맏이 우선의 원칙에 따랐다. 이렇게 그동안 우리 사회는 경제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한정된 자원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밀어주기가 생활의 기본이었다.

이젠 우리 사회도 풍성한 발전을 이뤄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게 되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관행이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의외로 고등학교들에서 밀어주기 관행이 남아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대학 입시에서 상위권 학생들을 위주로 챙긴다는 주장은 거의 전국적인 현상이다. 최상위 명문대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 알게 모르게 상도 더 많이 타고 학교에서 학생부 기록도 잘 써준다는 것이 대체적인 우대 내용이다. 사실일까? 아마 그런 우대를 받아본 본인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주변 친구들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학부모들도 인정 아닌 이해를 하고 있다. 많은 기대를 모으는 학생들에게 이런저런 기대와 지원이 있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최상위권에 대한 밀어주기가 수시전형 때문이라는 주장들도 많은데 사실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얼마 전까지 수능으로 대학입시가 주도될 때는 대놓고 치사한 방법으로 상위권을 밀어줬다. 도서관 특별석을 성적순으로 지정한다거나, 급식 때 우선 배식한다거나, 게시판에 등수를 게시하는 것 등이었다. 그보다 일반적이면서 심하게 차별을 드러낸 것은 성적 좋은 학생들에게만 고액의 방과후 외부강사 특강을 들을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다. 이 경우는 지역의 명예(?)를 위해서 지자체나 동문들이 비용을 부담하는 사례도 많아서 상위권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을 요구받기도 했다. 공부할 자극을 준다는 명목으로 지역사회에서 자극적인 방법의 차별을 당연시한 것이다. 가끔 언론에서 비판기사가 나오기는 해도 보통은 명문대를 보내려면 될 만한 놈들을 밀어줘야 한다는 것이 대중의 인식이었다.

고등학생이 논문을 써서 학회에서 발표하고, 책을 쓰면 다른 나라 대통령이 추천사를 보내주는 일은 아무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차별적인 실적을 바탕으로 명문대학에 쉽게 합격했다고 논란이 크다. 분명히 문제다. 이런 특혜나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특별한 학생들만 지원할 수 있는 입시의 개구멍인 특기자전형이 지난 수십년간 합법적으로 있었고, 그 방법으로 합격한 학생들은 대부분 비슷한 수준의 실적을 갖고 있었다. 특목고의 인기는 차별적인 개구멍 입시를 치를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지금도 사람들은 특목고나 특기자 전형을 문제 삼지 않는다. 동네의 인재를 위해서도 차별은 필요하고, 특목고 학생들도 차별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세상이다. 차별이 일상화되면 기득권이 된다. 기득권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소소한 이기심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조만간 수능으로 학생들을 더 많이 뽑을 모양이다. 아직도 이기심의 괴물은 더 클 것 같다. 무섭다.

<한왕근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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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에서는 먼저 온 사람 먼저 타라고 서로 눈치껏 멈칫멈칫 해줍니다. 하지만 저기서 버스가 오니 자기 앉아 가겠다고 손 흔들며 냅다 뛰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정된 정차 위치가 있으니 버스는 열심히 뛰어오는 사람을 그대로 지나쳐 원래 설 자리에 섭니다. 저 앞까지 쫓아간 사람은 헐레벌떡 다시 쫓아올 수밖에요. 그러곤 결국 맨 나중에 타죠(영리한 사람은 지갑 꺼내 들고 멀리서부터 버스 기사와 아이 컨택을 합니다. 그럼 거짓말처럼 버스가 바로 앞에 섭니다. 그런 상황이 꽤 많습니다).

서둘러 덤벼들다 오히려 남들보다 뒤떨어지게 된다는 속담으로 ‘꼬리 먼저 친 개 밥 나중 먹는다’가 있습니다. 개밥 담아 마당으로 나갑니다. 그러면 자기 먼저 달라고 빠질 듯이 꼬리치며 달려오는 녀석이 꼭 있습니다. 그런다고 그 녀석 앞에 밥그릇 놔줄까요? 개밥그릇조차 옳게 놓일 자리가 있는데요. 영리한 개들은 밥그릇 자리 미리 가서 좋은 위치에 포진하며 기다립니다. 밥그릇 놓이니 서로 주둥이 싸움으로 으르렁댑니다. 먼저 먹겠다고 뛰어간 녀석은 한 발 늦어 주둥이 들이밀 틈이 없습니다. 하나도 안 남으면 어쩌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애가 탑니다. 사람 먹기도 부족한데 개밥인들 넉넉했겠습니까? 결국 빈 그릇만 핥습니다. 그러고도 매번 개밥그릇 든 걸음 앞으로 또 꼬리치며 달려옵니다.

전철이 멈춰서면 좌우로 늘어선 사람들 무시하고 중앙으로 돌진하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내리는 사람들의 짜증스러운 몸짓에 뒤로 뒤로 밀려서 결국 자리 못 앉습니다. 좋은 자리, 괜찮은 해외출장 자기 달라며 눈에 띄게 비나리치는 사람 있습니다. 상사가 바보입니까? 다들 눈 시퍼렇게 노리고 있는데요. 되레 괘씸죄에 왕따로 저 뒷전까지 밀리겠죠. 괜찮은 자리는 조금만 더하면 자릿수 올라갈 만큼 해놓고, 윗사람이 더해주게 아이 컨택 잘하는 사람 차지입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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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벌, 풀 초. 연약한 풀과 싸울 일이 뭐 있으랴만, 풀을 깡그리 제거한 도시에서 듣는 저 단어가 참으로 강력하다, 벌초(伐草). 매미 소리는 하늘의 그물인가. 우렁차서 구멍이 성근 듯하지만 빠뜨리는 법이 없다. 여름의 잔해를 모두 짊어지고 매미들은 지금 입적하고 있는 중! 연례행사로 벌어지는 벌초는 가을로 넘어가는 하나의 고개다. 저 고개를 넘으면서 날씨는 수굿해지고 벼는 고개를 숙인다. 이윽고 가을이 시작되고 추석이 찾아온다.

고개가 하나 더 있다. 벌초하러 시골 가는 길. 고속도로에서는 엉덩이가 특별히 발달한 자동차 꽁무니를 그저 냅다 쫓아가기에 바쁘다. 무주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단정한 국도가 시작되는 곳에 ‘라제통문’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글씨는 최근 것이로되 글자는 신라, 백제 시대로 연결되지 않겠는가. 왼편으로 구부러져 구천동을 지나 덕유산 빼재를 넘는다. 백두대간의 한 구간으로 경상의 거창과 전라의 무주를 사이좋게 잇고 있는 중! 높아서 좋고 그 말맛이 빼어나기에 더욱 좋은 고개. 빼재 이정표가 보일 때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내렸다. 구천동의 청량한 공기가 서울의 묵은 공기를 얼른 쫓아냈다. 코끝을 때리는 고향 냄새를 따라 눈앞의 풍경은 싸늘한 공간에서 비로소 다정한 장소로 바뀐다. 어머니는 아니 계셔도 당신의 친정 근처를 휘돌아들 때마다 옛이야기를 풀어놓던 음성이 바람결에 전해온다.

산소는 양지바른 곳이기에 꽃들에게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무릇, 닭의장풀, 달맞이꽃, 여뀌가 무덤 둘레마다 드문드문 피었다. 가장 강렬하게 핀 꽃은 꽃며느리밥풀이다. 곤궁하게 살았던 시절을 상징하듯 서글픈 꽃의 아랫입술 가운데 이빨 혹은 밥풀 같은 게 도드라진다. 그 옛날 이름도 모르고 꼴을 베어 소에게 줄 때 고명처럼 얹어 주었던 꽃일까.

이발하듯 덥수룩한 산소의 머리를 깎고 난 뒤 절을 한다. 그간 얼른 일어나기에 바빴는데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었다. 방금 낫에 베인 풀에서 나오는 향기를 작정하고 맡아본 것이었다. 어쩌면 이 순간 확인하는 지하의 근황은 아닐까. 꽃며느리밥풀 곁이기에 더욱 좋았던 기해년의 벌초, 두 개의 고개를 넘으며 끝났다. 꽃며느리밥풀,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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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여성의 출산 의무’라는 시대착오적 발언이 튀어나왔다.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은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게 “아직 미혼인 것으로 아는데, 대한민국의 제일 큰 문제는 출산을 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후보자처럼 정말 훌륭한 분이 그걸 갖췄으면 100점짜리 후보자라 생각한다. 정말 본인 출세도 좋지만, 국가 발전에도 기여해 달라”고 말했다. 출산을 여성의 국가적 의무로 몰아간 것이다. 이에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후보자의 자질, 능력, 도덕성을 검증하는 자리인데, 결혼이나 출산문제는 전혀 관련이 없다. 후보자가 남자라도 이런 발언이 나왔겠느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 연합뉴스

한국당은 유난히 출산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김성태 전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출산장려금 2000만원과 지원금 1억원을 지급하자는 ‘출산주도성장론’을 주장해 지적받은 게 꼭 1년 전이다. 당시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여기는 국가주의적, 파시즘적 발상이다” “복지 확대와 증세는 거부하면서 ‘돈 줄 테니 아이 낳으라’고 독촉한다. 여성의 현실을 우롱하는 말”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순간의 실수, 헛소리라고 넘어가기엔 5선의원, 원내대표라는 타이틀이 가볍지 않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반복해서, 당당하게 얘기하는 통에 ‘출산 애국’이 마치 한국당의 당론처럼 여겨질 지경이다.

‘저출산’이라는 용어가 여성에게만 부담을 준다는 지적을 받고 ‘저출생’으로 바꿔 쓰자는 제안이 나온 게 한참 전 일이다. 저출생 현상에 백약이 무효인 상황. 결혼도 아이도 싫다는 당사자들의 마음을 읽고 노동·양육·교육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근본 해법이라는 비싼 깨달음을 얻은 정부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정 의원이 ‘100점짜리 후보’ 운운하며 언급한 ‘국가 발전’이나 ‘기여’ 모두 적절치 않다. 여성들을 출산의 도구로 폄훼한 ‘마이너스 100점짜리 발언’이다. 이런 인식이야말로 저출생 현상의 진정한 걸림돌이란 사실을 그는 알고는 있을까.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정 의원의 젠더 감수성이 이 정도라니 한심하다. 야당에도 조 후보자와 비슷한 상황인 여성들이 존재할 텐데 그들에게는 뭐라고 했을까. 궁금하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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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국정농단 대법원 판결 날, 포털 뉴스판에 뜻밖의 이름이 나란히 등장했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찬반 간증대회’에 온 동네 사람들이 출연에 나섰지만, 현직 대통령 아들과 국정농단의 주범 최순실이 동시에 ‘조국 뉴스’의 스피커로 등장하리라곤 차마 생각 못했다. <문 아들 준용씨 조국 딸 향해 “이건 부당하다. 목소리 내라”>와 <최순실 “내 딸 유라 메달 따려 천신만고…조국 딸은 거저먹어”>, 그날 저녁 포털에서 ‘가장 많이 본 뉴스’의 앞줄을 장식했다. 청문 후보자 논란에 현직 대통령 아들이 나선 것도 낯설지만, 그 최순실이 대법원에 제출한 최후진술서에 뻔뻔스레 조국을 거론했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조국 사태’를 이리 희극적으로 간증하는 것도 없다.

엉망진창, 극단의 진영 깃발만 펄럭이면서 비롯됐다. 조국의 거취는 진영의 명운을 건 정치적 승부처로 바뀌었다. 불공정과 특권, 신분과 세습, 위선 등 제기된 의혹과 허물에 대한 검증과 성찰은 디딜 땅이 없다. 이제 진실과 도덕의 무게는 중요하지 않다. 싸움에서 이겨, 조국을 지키느냐 마느냐만 남아 있다. 자유한국당이 법적 절차인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산시킨 것도, 여권이 ‘국민청문회’를 실행한 것도 승부의 유불리만을 따진 결과다. 국민청문회에서 조 후보자의 사과와 해명이 이 싸움의 성질을 바꾸기는 어렵다. 서로 진영의 확증편향에 활용될 뿐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여권에는 조국을 지키는 것은 숙고의 영역이 아니라 신념의 영역이다. 그러니 불공정을 비판하고 박탈감을 토로하는 청년들에게 조롱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며 승냥이처럼 달려드는 한국당이라는 거악에 맞서 조국을 지키는 것이 절대가치인 마당에 다른 고려는 들어오지 않는다. “동년배들이 가졌을 실망감이나 분노에 저도 아프도록 공감하고 있다”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감수성이 별나라 얘기처럼 들리는 상황이다. 사활을 건 진영 대결이 된 ‘조국 대전’은 이제 이성의 영역을 넘어섰는지 모른다.

엉망진창, ‘조국 정국’에 검찰이 등판하면서 가속됐다. 검찰이 청문회 전에 후보자 의혹, 그것도 수사지휘권을 가진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해 직접 수사에 나섰다. 헌정사에 유례가 없다. ‘조국 대전’의 심판을 자임한 꼴이다. 후보자에 대한 찬반을 떠나 검찰이 정치과정에 개입, 최종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비극이다. 초반 대처 실패와 높아진 부정여론이 검찰로 하여금 진격을 감행케 했을 터이다. 검찰개혁을 한다고 조국을 법무장관에 임명했는데, 검찰이 칼을 들고 우리가 판정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조국의 역설’이다. 능히 윤석열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을 손댈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검찰개혁을 무디게 하는 결과를 꾀할 수 있다. 검찰의 손에 검찰개혁의 상징처럼 부각된 조국의 운명이 맡겨진 형국이다. 임명돼도 “조국 법무장관’의 검찰개혁 동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벌써 검찰에서 “누가 누구를 개혁하느냐”는 말이 나온다. 조국 법무장관 지명의 명분인 검찰개혁 전제가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 정부 초대 법무장관이었던 강금실 전 장관은 노무현재단이 펴낸 정책총서 <진보와 권력>에서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은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했다. “청와대가 피의자 측 조사 대상이 되며 검찰개혁을 언급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당시 검찰개혁의 핵심 과제였던 대검 중수부 폐지를 실행하지 못했다. 하물며 피의자 신분의 법무장관이 “인피를 벗기는 형벌에 준하는 검찰개혁”을 밀고갈 수 있을까, 지난하다.

혁명보다 어렵다는 개혁은 한 차원 높은 도덕성과 신뢰가 큰 무기다. 설득과 동의를 얻어 이뤄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조국은 신뢰의 위기에 처했다. 어제 국민청문회에서 신뢰를 회복해 다시 개혁 동력을 확보했는지는, 이후 여론에서 가름될 터이다.

예정대로 ‘조국을 지키고’ 가면 그 운명을 검찰 손에 맡겨야 한다. ‘조국 법무장관’ 수사는 단순 개인의 검증 차원을 넘어선다. 검찰개혁의 향배와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운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과에 따라 조국 개인의 일을 정권 전체의 허물로 바꿔버리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조국의 진퇴와 정권의 명운을 직결시키는 위험을 감수할 만큼 여전히 ‘그’뿐인가. 총체적으로 엉망진창인 상황을 전복하기 위해 판 자체를 바꾸는 발상의 전환은 불가능한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는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패하지 않을 목적어의 앞줄에 노무현 정부가 못다 이룬 ‘검찰개혁’이 놓여 있을 터이다. 정녕 ‘아직도’ 조국 법무장관은 실패하지 않을 ‘유일무이한’ 카드일까.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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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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