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했던 세상이 왁자지껄 시끄러울 때는 다툼이 있단 소리. 야곱이 결혼한 뒤 한참 만에야 친구를 만났다. “자네 부부는 어떻게 지내는가?” 야곱이 우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는 변했다네. 연애 시절엔 내가 주로 얘길 하고 아내가 들었지. 결혼 뒤엔 아내가 주로 얘길 하면 내가 듣게 되더군. 지금은 말이지, 우리 둘이 떠드는 얘기를 이웃사람들이 모두 듣고 산다네. 싸우는 목소리가 담을 넘거든.”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하루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한 달 행복하려면 차를 사고, 일 년 행복하려면 집을 사고, 평생 행복하려면 정직하게 살라고.

사랑과 진실을 품고 살 때 세상 또한 밝아진다. 일을 할 때도 사랑으로 행해야지. “사랑을 품은 가슴으로 일하지 않으려면 성전 앞문에서 구걸을 하는 편이 나을 거예요. 빵을 구울 때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빵맛이 쓸 뿐이죠. 괴로운 맘으로 포도주를 만들면 그 괴로운 마음이 포도주 속에 고스란히 담기죠. 천사처럼 노래해도 사랑이 담기지 않으면 사람들이 결국엔 귀를 막게 될 것입니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읽다가 밑줄 그은 구절. 영원한 것은 없지. 사랑도 물론이다. 굳게 각오하고, 이를 앙 물고 지켜내야 날마다 숨을 쉬게 되는 마음. 천사들의 합창, 사랑 노래를 듣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밤송이가 누렇게 영글고 대추 열매도 굵어지고 있다. 조용조용 깊어가는 가을이다. 노란 불빛의 집들. 바닷가 마을 게가 기어 다니듯 조용조용 찾아온 밤이면 쓰르라미가 목이 터져라 운다. 그래봤자 야곱이 싸우는 소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 세계에서 가장 방귀를 잘 뀌는 ‘까스명수’보다는 턱없이 모자란 쓰르라미 목소리. 사랑으로 부르는 노래, 천사들의 합창으로 밤이 꽉 찬다. 현해탄 건너 부잣집 영감 ‘수표로 밑닦가’ 상이 아무리 태클을 걸어도, 우리들은 단단히 사랑하고 뭉쳐서 잘 이겨낼 거야.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면, 끝내 당당하게 웃을 수 있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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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옛 동료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입사 만 20주년이라는 인사였다. SNS 댓글로 옛 동료들 몇몇이 더 모였다. 대부분 여기저기 흩어졌지만 또 몇몇은 여전히 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다들 이모티콘으로 박수를 보냈다). 처음 넥타이를 맸을 때, 세기말이었다. 불안과 희망이 공존하던 때였다. 막 인터넷 콘텐츠 시장이 무르익기 시작할 때였다. 지금은 구시대의 유물이 된, 드라마 속에서나 나오는 ‘PC통신’ 회사에서 일을 했다. 콘텐츠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BBS라 불리던 게시판 글 하나하나가 귀했고, 가치 있었다. 그렇게 생산된 콘텐츠를 기획하고 관리하다가, 콘텐츠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옮긴 게 지금의 일이다.

그러니까 콘텐츠를 다루기 시작한 게 만 20년 됐다. 읽을거리, 들을거리, 볼거리 등 정보와 재미를 담은 ‘콘텐츠’는 20년 동안 제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꿨다. 색깔과 모양만 달라도 신선했던 텍스트 콘텐츠는 영상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면 구닥다리로 평가받는 시대가 됐다. 신문사의 일이 그렇다.

비록 뉴스 콘텐츠는 공짜라도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니, 콘텐츠를 돈 주고 보자는 결심을 한 게 몇 년 전의 일이다. ‘구독 경제’라는 산업에 편입했다. 카드 사용 내역서를 뒤져보니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계적 영화 드라마 콘텐츠 플랫폼 N사에 지불한 돈이 월 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없는 걸 보기 위해 국내 플랫폼 P와 T에 각각 몇천원이 또 들어간다. 음악을 듣는데 어쩌다 보니 2가지 서비스를 이용하게 됐다(아내와 같이 쓰는데, 동시 접속을 막아서다). 스트리밍서비스 B와 최근 열심히 광고를 하는 V를 쓴다. 둘은 사실 같은 회사, 대형 포털 N사의 서비스다. 이게 또 몇천원씩이다.

요즘엔 전자책 시장도 구독 경제 열풍이다. R사에 매달 몇천원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 그래도 이전보다 읽은 책의 숫자는 확실히 늘었다. 일 때문에 미국 야구책을 읽으려면 미국 전자책 A사를 이용해야 하는데, 여기도 구독 서비스가 있다. 아직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해, 그때그때 사서 읽는다. 지난 1년간 4권을 사는 데 든 비용이 약 6만원인 걸 보니 이것도 구독 서비스를 신청해야 하나 싶다.

미국 야구를 봐야 해서 MLB TV 1년 사용권을 매년 결제한다. 13만원 정도 한다. 미국스포츠잡지 S와 E의 1년 온라인 정기 구독 이용료가 각 4만5000원 정도다. 새로 생긴 미국 스포츠 뉴스 온라인 유료매체 A의 1년 구독료가 약 7만원이다. 앗, 카드로 빠져나갈 때는 몰랐는데, 합해보니 연 80만원이 넘는다. 집에서 보는 신문구독료 2부는 넣지도 않았다. 옆에 있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추석이라 돈 쓸 곳도 많은데.”

그러고 보니 추석이 1주일 남았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새삼 곰곰이 생각하는데 거실 구석에 해마다 회사에서 추석선물로 보내준 스팸이 잔뜩이다. 그렇다, 한국 추석엔 역시 스팸이 아니던가. 콘텐츠에서 구독을 거쳐 추석을 지나 스팸에 도착했다. 돌고 돌았지만 길은 연결되어 있다. 20년 전이 세기말이었다면, 2019년은 더욱 암울하다.

가짜 뉴스가 문제가 아니라 스팸 뉴스의 시대인 게 문제다. 구독이면 끊으면 되는데 ‘공짜’라는 외피를 두르고 포털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쏟아진다. 인터넷 초창기, 요란한 제목으로 유혹하는 스팸메일 더미를 빼다 박았다. 메일 서비스 회사들은 너도나도 ‘스팸차단’ 버튼을 달았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역시 ‘스팸차단’ 기능이 필수다. 스팸뉴스는 뉴스 전체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치밀해서 친절한 뉴스는 스팸 더미에 묻혀 사라지기 일쑤다. 그러니 다들 덜 치밀해 덜 친절한 스팸생산 유혹에 빠진다. 

추석 밤, 휘영청 한가위 달에게 비노니 제발 포털에 ‘스팸뉴스 차단’ 버튼 하나 만들어주소서.

<이용균 스포츠부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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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가 4일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의 경기장 내 반입을 허용키로 했다. 조직위는 앞서 욱일기를 떠올리는 패럴림픽 메달을 공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올림픽 경기장 곳곳에 욱일기가 휘날리고, 욱일기가 그려진 메달을 수여하는 장면을 일본이 꿈꾸고 있는 것이다. 한국·중국 등 태평양전쟁과 강제식민 피해를 입은 동아시아 국가들에 사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올림픽 경기장을 욱일기로 채우겠다니, 일본은 진정 ‘정상 국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9월 5일 (출처:경향신문DB)

욱일기(욱일승천기)에는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의미가 있다. 일본 황실의 조상신인 ‘해의 여신’과 뜻이 맞닿아 있다. 2차 세계대전 등 침략전쟁 때마다 일본 ‘황군’이 최전면에 내세웠던 전범기다.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인 것이다. 이를 일본이 모를 리 없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욱일기 사용 자제를 자국 관광객 안전수칙에 넣었던 것이 일본 정부다. 그런데도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이를 허용한 것은 지구촌 축제의 장을 ‘군국주의 부활을 위한 선전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전쟁 전의 일본을 꿈꾸며 헌법 개정을 추진 중인 ‘아베 신조의 일본’이 황실숭배 제국주의를 소환해 자국민의 민족주의를 일깨우려는 의도인 것이다.

이는 엄연한 올림픽정신의 위반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정치 행위와 표현을 금지하고 있다. IOC는 과거와 같이 욱일기 사용을 방관, 스스로 규정을 위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욱일기 응원과 욱일기 메달 수여를 허용할 경우 ‘수상 거부’ ‘관중 충돌’ 등 걱정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일본의 헛된 욕망을 국제사회가 용인하는 꼴이 된다.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영토인 양 표기한 것도 바로잡아야 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축구대표팀 박종우 선수의 ‘독도 세리머니’를 정치적 표현으로 지적한 것이 바로 IOC다. 정부와 국회도 욱일기 사용 금지 촉구를 넘어 국제사회와 연대해 욱일기 사용을 막아야 한다. 

일본은 올림픽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길 바란다. 욱일기 사용은 과거 식민지배를 받은 국가와 국민들에게 더없는 상처와 고통만 줄 뿐이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따른 방사능 피폭 우려부터 해소하는 것이 지금 일본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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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4일 오전 대학입시제도 개편과 관련한 비공개 실무진 회의를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논란의 차원을 넘어 대학입시제도 전반을 재검토해달라”고 주문한 이후 장관이 주재한 첫 회의다. 지난 2일 차관 주재 회의에 이어 대통령의 태국 방문을 수행한 부총리가 귀국 직후 첫 행보로 택할 만큼 시급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날 한 교육시민단체는 문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공공성 확보 방안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미 대통령의 발언 진의와는 상관없이 대입 관련 논의가 곳곳에서 불붙고 있다. 대입 이슈의 휘발성을 생각하면 이런 식의 갑작스러운 논의는 우려스럽다.

유 부총리는 이날 “학생부종합전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에 대해서 올해 초 업무보고 때부터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고, 오전 회의에서도 이 논의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논란의 초점인 수시와 정시 비율에 대해서는 “대입제도는 중장기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2022학년도 입시는 기존 대입 개편방안 발표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유 부총리의 말대로라면 다행이지만, 대통령이 왜 대입을, 그것도 하필 왜 이 시점에 거론했는지 의아스럽다. 이미 정부 출범 초기 수능 개편안을 추진했다 유보했고, 거센 후폭풍에 몸살을 앓다가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가까스로 결정한 것이 불과 1년 전이다. 원하는 명문대가 정해져 있는 현행 체제에서 대입 정책은 제로섬이고, 모든 쟁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이해 당사자들은 유불리에 따라 기를 쓰고 찬성 또는 반대를 할 것이다. 시점도, 방식도 바람직하지 않은 논의다. “대통령의 대입제도 개편 지시는 부적절하다” “근시안적 대책이다” “교육혁신 의지가 실종된 상황에서 대입제도 개선안 마련 지시는 ‘조국 사태’라는 소나기를 피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각계의 논평을 새겨들어야 한다. 

출처:경향신문DB

정부가 약속했던 교육개혁은 입시를 뛰어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중장기 교육개혁을 논의할 국가교육위원회를 소환할 때다. 그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과 전문가, 수도권과 지방,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아이들과 부모 등 가급적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야 한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아니라 이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교육정책에 대해 켜켜이 쌓인 불신을 닦아내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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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6일 열기로 극적 합의했다. 그간 첨예하게 대립했던 조 후보자의 가족은 증인으로 부르지 않기로 했다. 6일은 문재인 대통령이 청문경과보고서를 재송부해달라고 요청한 시한이다. 만약 청문회 없이 후보자 임명이 강행된다면 국회의 책무를 저버렸을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개혁성도 실추됐을 것이다. 헌정사에 오점으로 남을 뻔한 나쁜 선례를 피했다는 점에서 ‘지각 청문회’라도 열기로 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오른쪽)·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4일 오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와 관련해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날 여야 원내대표는 조 후보자 청문회를 6일 열기로 극적으로 합의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청문회를 개최키로 한 이상 이제 와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건 구차하다. 그러나 지난달 14일 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후 20일 이상 여야가 보여준 당리당략의 구태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책임을 통감할 필요가 있다. 자유한국당은 조 후보자에 대해 무수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후보자의 부인과 딸까지 무리하게 증인으로 고집하며 예정된 청문회를 파행시켰다. 더불어민주당도 조 후보자 감싸기에 급급한 태도로 일관했다. 급기야 후보자가 ‘셀프 청문회’를 열고, 야당이 반박 기자간담회를 하는 코미디 같은 장면까지 연출했다. 2000년 국회 인사청문제도가 도입된 이후 이런 방식의 ‘장외 청문회’를 주고받은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시민에게 위임받은 의회의 검증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시민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 정치권은 엄중히 자성해야 한다.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에서 정당이 자기 지지세력을 대변하면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하고, 그걸 푸는 방법이 대화와 타협이다. 그 과정에 항상 양보와 절충이 있는 것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기는 건 민주정치가 아니다. 그래서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 하지 않는가. 그런 면에서 한 치 양보 없이 맞선 여야 간 ‘조국 전쟁’은 결국 승자는 없이 모두가 패자로 남게 됐다.

어렵사리 열리는 청문회다. 여야는 후보자에 대한 의혹을 정밀 검증하고 시민이 적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엄정하게 진행해야 한다. 야당은 ‘아니면 말고’식 폭로와 흠집 내기, 의도적으로 망신을 주겠다는 정략적 태도를 접고 후보자의 도덕성과 능력을 검증하는 데 충실하기를 바란다. 조 후보자를 바라보는 시민의 시선이 따갑다고 해서 무차별 정치공세까지 먹힐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여당도 후보자를 무조건 비호하는 구태에서 벗어나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전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조 후보자는 칼날 위에 선 마음으로 정직하게 설명하되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진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조 후보자의 변명이나 듣자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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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양극화가 교육의 기회마저 양극화하는 현실. 이에 대한 공분과 개탄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필요한 과정일 것이고, 잠시 들끓다 사라지기보다는 고민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체감하는 불공정이 단지 불완전한 제도만의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직장생활 초기, 다소 실험적인 업무를 제안하여 비정규직 팀을 이끈 적이 있다. 큰 고민 없이 모교의 조교실에 추천을 의뢰했고, 몇 명의 여성 후배들을 채용했다. 대졸 여직원이 극히 드물던 시절이었다. 젊고 재능 있는 여성직원 팀에 쏟아지는 관심이 제법 컸고, 대학 타이틀이 후광을 더했다. 활기 넘치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임원 한 분이 “너도 라인 만드니?”라는 농담을 던지셨다. 대개의 임원이 특정 대학 출신이라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무언가 잘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성과를 인정받아 팀원을 늘리게 된 이후로는 채용에 더 신경을 썼다. 

올바름을 실천했으니 성과는 물론 보람도 높아질 차례였다. 휴머니즘 가득한 드라마의 결말은 늘 그랬으니까. 그러나 어쩐 일인지 현실은 사뭇 달랐다. 자부심 강한 이전 팀원들과 새로운 팀원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고 갈등도 발생했다. 학력과 상관없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팀원이 들어와도 쉽게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선배의 뜻은 좋지만, 똑같이 취급하는 건 좀 불공평한 것 같아요”라며 속내를 드러내는 팀원도 있었다. 

다소 특별했던 팀의 위상도 점차 평범한 비정규직 팀으로 하락했다. 주어진 후광과 선망을 스스로 내려놓은 것이 어리석었나 고민도 했다. 부족한 성품에 성숙하지도 못한 초보 관리자가 지향했던 작은 정의의 결과는 드라마처럼 훈훈하지만은 않았고, 꽤 오랜 시간 진통을 감수해야 했다. 무엇보다 그들 모두 비정규직의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내부에서 또 다른 계층과 순위를 나누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고질적 사회문제의 근원에는 프랙털 구조처럼 반복하며 확장되는 일상의 불합리가 존재함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나의 불평등과 타인의 불평등을 같은 무게로 인식하지 못하는 둔감성 혹은 이기심이 내 안에도, 그들 안에도, 조직 속에도 무수히 존재했다. 최근 외국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명문대학원에 입학한 학생이 집단따돌림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한 기사를 읽었다. 우리 사회의 학벌 이기주의는 정도를 넘어섰다. 

오랜 사회 경험 속에서 깨달은 엘리트주의의 허구성을 논한 글을 SNS에 올린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중에도, ‘본인의 학력이 낮아 억울한가 보다’라는 조롱 글이 달렸고, 그 글엔 다시 나의 이력을 검증하는 글이 달렸다. 학벌 사회를 바꾸자는 의견조차 스펙을 인정받아야 하고, 약자보다는 기득권자가 논해야 귀를 기울이는 세상이다. 각자의 마음 밑바닥에 자리한 서열중심의 사고와 배타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비정상적인 과열 입시나 경쟁 역시 여하한 제도나 공정한 리더의 등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평등의 리더십이 그리울 때 사람들은 노무현을 소환한다. 기득권을 누리기보다 소탈함과 높낮이 없는 자연스러움으로 함께하던 그의 남다름을 추억한다. 그가 다시 오면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학력을 이유로 무시한 명문대 출신들만이 아니라, 그가 눈 맞추려 했던 낮은 곳에 있는 이들조차 그를 얕잡아 보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가 권력의 후광을 이용했어야 한다고 애통해한다. 

강자는 강자라서, 약자는 약자여서 힘과 권력을 선호하는 것이 동물적 본능이다. 사람의 모습을 한 동물이 진정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부단한 자기 성찰을 필요로 한다. 동물성은 인간성보다 강력하다. 잠시라도 성찰을 게을리하면 이기의 발톱이 살을 뚫고, 오만의 어금니가 날카롭게 돋아난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앞서서 얼마나 누릴 것인가에 있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박선화 마음탐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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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의 간을 내먹는다는 말을 들으면 천민자본주의 사회를 주도하는 악덕 업주나 호시탐탐 백성들의 등골을 탐하는 탐관오리가 떠오른다. 하지만 직업 때문에 나는 출판된 과학 논문 정보를 제공하는 미국보건원 도서관 웹사이트인 펍메드(pubmed)를 방문한 뒤 벼룩과 간을 검색어로 집어넣고 그 결과를 살펴보았다. 논문은 더러 있었지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논문은 찾지 못했다. 간은 그렇다 치더라도 벼룩은 과연 심장을 가지고 있을까? 그렇다. 몸집의 길이가 2㎜에 불과한 물벼룩도 심장이 있어서 소화기관을 거쳐 온 영양소를 온몸으로 분배한다. 심장은 폐를 통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온 산소와 간을 통해 역시 몸 ‘안’으로 들어온 영양소를 전신으로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폐와 간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먹을거리인 산소와 영양소를 몸 안으로 받아들이는 1차 관문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동물의 간과 폐가 소화기관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다른 기관과 비교하였을 때 간은 혈액이 들어오는 통로가 두 개라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심장에서 출발한 혈액은 뇌, 근육, 콩팥 그리고 간으로 들어간다. 이들 기관에 산소와 신선한 영양분을 전달하는 것이다. 반면 기관을 통과하면서 이산화탄소와 대사 폐기물을 회수한 혈액은 정맥을 타고 다시 심장으로 돌아온다. 심장을 중심으로 우리 몸은 이렇게 한 번의 순환을 매듭짓는다. 하지만 우리가 먹은 음식물은 몸의 중앙부를 관통하고 있는 소화기관에서 어떤 경로를 따라갈까? 인간의 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내부 기관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나는 소화기관을 ‘내 안의 밖’으로 간주한다. 입을 통해 들어온 공기가 폐를 거쳐 심장으로 가듯 소화기관에서 아주 잘게 잘린 영양소들은 주로 작은창자에 연결된 모세혈관을 타고 간 문맥(portal vein)을 거쳐 간으로 들어간다. 심장에서 하나 그리고 소화기관에서 하나 이렇게 두 개의 통로를 거쳐 간으로 혈액이 들어온다. 따라서 간은 음식물을 따라 들어올 수도 있는 독성물질이나 이물질을 선별하고 독성을 제거한 다음 이들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작업을 우선적으로 수행한다. 

이런 역할을 염두에 두고 과학자들은 간이 출입국을 관장하는 세관과 같은 업무를 맡는다고 비유적으로 말한다. 다른 일부 과학자들은 순환계에서 영양소를 끌어내는 일이 간의 본디 업무였다고 말한다. 사실 알을 낳는 동물들은 그들의 후손이 독립적인 완결체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필요한 물질 모두를 노른자(난황(卵黃))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물질은 난황형성 단백질인데 영양소 집하장인 간에서 이 지질단백질을 만든다. 

1990년대 초반부터 한동안 간세포를 직접 분리해온 나는 현미경으로 간세포를 보면서 늘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뒤 초파리에 관한 논문을 읽다가 “앗, 간세포다”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린 적이 있었다. 고작해야 5㎜도 채 되지 않는 곤충의 몸 안에 인간의 간세포와 아주 흡사하게 생긴 세포가 발견된 것이다. 이들은 소화기관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온 지방과 단백질을 저장하고 그중 상당부분을 후손에게 할애한다. 벼룩이나 꼬마선충 같은 아주 작은 동물은 간의 역할을 겸한 소화기관에서 난황형성 단백질을 만든다. 동물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모든 척추동물들은 영양소가 풍부하지 못한 환경에서 진화했다. 곰처럼 육식을 하던 판다가 왜 대나무를 먹기 시작했는지 저간의 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매일 체중의 10분의 1이 넘는 양의 대나무를 먹어야 한다. 하루 14시간 넘게 먹어야 간신히 살아갈 수 있고 번식을 치러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뭄이 들거나 병충해가 자심하면 대를 잇는 일을 대폭 축소하거나 아니면 상황이 좋을 때까지 번식을 유예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번식 과정에는 성호르몬이 관여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영양 상태에 관한 정보도 중요하다. 이 두 과정에서 간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간은 생식기관에 성호르몬의 재료인 콜레스테롤을 공급한다. 하지만 아미노산과 같은 필수영양소가 풍부한지 아니면 부족한지에 관한 신호도 동시에 내보낸다. 만약 영양소가 부족하다는 신호가 오면 생식기관은 성호르몬 신호가 오더라도 반응하지 않는다. 생식 주기를 멈춰버리는 것이다. 이런 일은 인간 여성에서도 벌어진다. 거식증으로 시달리는 여성들은 아예 월경을 거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알다시피 우리 인간은 알을 낳는 대신 배아를 자궁에서 키우는 전략을 택했다. 알을 낳는 일처럼 이 과업도 두 생물학적 성(sex) 중 여성에만 국한된다. 알을 낳지 않으니까 난황형성 단백질을 만들지는 않지만 산모는 이 고분자 물질과 같은 계열의 지질단백질 및 콜레스테롤을 생식기관에 공급하고 저장된 지방과 포도당을 태아에 공급하는 일을 한다. 여성들이 허벅지와 엉덩이에 지방을 더 많이 저장하는 생물학적 이유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신생아에게 한동안 젖을 먹이는 일도 여성의 몫이다. 이때도 여성의 간은 생식과 대사 기능 사이에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필요한 조치를 다한다. 이런 점에서 여성의 간은 일종의 생식기관이다. 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주도하는 간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물질 대사의 정치(精緻)함은 남성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남성의 혈액은 에스트로겐의 양도 적고 그 호르몬을 인지하는 수용체 단백질도 여성의 3분의 1에서 5분의 1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여성과 남성의 간은 다르다. 흔히 남성과 여성의 성차를 말할 때 뇌의 기능을 언급하지만 남녀 간 뇌 유전자 발현의 차이는 14%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간의 유전자는 양성에서 72%가 다르게 발현된다. 주로 지방 대사, 면역 그리고 독성물질의 대사와 관련된 유전자들이 여성의 간에서 특별히 더 활성화된다. 지방 조직 유전자의 발현도 68%의 성차를 보인다. 먹고살며 후대를 계승하는 일에 남성은 여성들에게 커다란 생물학적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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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의 강연을 들었다고 하는 분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나에게  자녀의 대입 자기소개서를 첨삭해 줄 수 있을지를 물었다. 사실 이러한 요청은 이전에도 한 번 받았고 가끔은 이보다 더욱 특별한 일도 일어난다. 

나는 그에게 “죄송하지만 제가 요즘 글을 쓸 시간도 부족해서요, 그리고 제가 중등교육의 전문가도 아니니 그런 일을 잘하는 분들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나 그는 대치동이라든가 하는 데서 이미 정보를 많이 얻었고 첨삭도 받았지만, 그러면 너무 ‘관리’를 받은 티가 나니까 나에게 한 번 더 관리를 받고 싶었던 것이라고 했다. 내가 다시 한번 어렵겠다고 하자 그는 대한민국의 엄마로서 살아가는 것이 참 어렵다면서 작가님도 아이가 크면 느끼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이를 대학에 보낼 생각이 별로 없다고, 답하고 말았다.  이것은 진심이었다. 

사실 정말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왜 아이의 자기소개서에, 그의 인생에 관리가 필요한지. 많은 이들이 어떻게든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고 싶어 한다. 위법과 편법의 범위를 넘나들면서 법이 허락하는 그 테두리 안에서 모든 것을 한다. 특히 당사자가 아닌 그 부모들이, 혹은 한 가문이 총력전을 기울여서 한 개인을 ‘관리’한다. 그러나 나는 아이가 입시를 치를 나이가 된다고 해도 굳이 그러한 세계에 아이와 함께 들어가고 싶지 않다. 아이도, 나도 행복하지 않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아이가 조금 더 좋은 대학에 가게 된다고 해도 나는 아이의 발을 잡고 말리고 싶다. OO아, 지금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 하고. 그가 공부하며 행복하다면 물론 공부를 선택하기를 바란다. 본인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확신이 있다면 아무래도 괜찮다. 그 무엇이든 결국 온전히 그에게 달린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과연 무엇을 선택한다고 해도 개인이 행복할 수 있는 곳인가는 잘 모르겠다. 유치원생인 나의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 수영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거기에서도 모든 아이들의 수영모 색깔이 다르다. 태권도복의 띠가 흰색부터 검은색까지 다양한 것처럼 그들의 레벨에 따라 그 색을 다르게 해 둔 것이다. 부모들이 수영장 카페테리아에 앉아 통유리 너머로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수영모를 쓰고 강습을 받는다. 어쩌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보내는 모든 공간에 저마다의 색과 숫자가 있고, 그 구조 안에서 자연스럽게 부모와 아이가 함께 타인과 경쟁하고 있을 것이다. 

학부모와 교사, 특히 자신을 닮은 학생들에게 보내는 자신의 교육론을 쓴 고등학생,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의 노정석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우리의 인생에서 어떤 숫자가 우리의 행복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면, 그것은 어젯밤 전투에서 죽은 전사자의 수, 오늘 일어난 자동차 추돌사고의 사망자, 테러 희생자 같은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에 따르면 숫자는 입시제도가 만들어 낸 허영이고 가짜행복일 뿐이다. 공부라는 것은 더 배우고자 하는 개인의 욕구에서 나온다. 부모도, 학교도, 사회도, 자녀와 학생 그리고 젊은 세대들이 배움에 대한 욕구를 스스로 가질 수 있게 그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처럼 그들을 경쟁과 관리에 매몰시키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나에게 전화한 학부모에게 나는 “교수도 대학에서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가장 기뻐하는 일은 누군가가 자신의 논문을 읽어주는 일입니다. 자녀분께서 면접을 볼 때 그들의 최근 논문의 제목과 초록만 읽고 들어가도, 가장 인상적인 학생으로 남을 것입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이 역시 대치동 전문가들이 하는 관리의 영역인지, 아니면 대학에서 오래 공부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환상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의 아이가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한다. 경쟁과 관리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자신이 누구인지 더욱 명확히 알게 되고 그로 인해 행복해질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만큼 큰 행복은 없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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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위협은 이제 더욱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되었다. 여객기와의 충돌, 공항 마비, 교도소 내 물품 반입, 드론 추락으로 인한 사망이나 부상 등 세계적으로 드론 범죄나 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드론 관련 범죄나 위협이 매우 심각해지고 있다. 불법촬영 범죄가 늘어나고 있고, 드론 추락으로 인한 기물파손이나 인명피해 발생도 증가하고 있다. 올해 제주도에서는 드론 불법비행으로 항공기들이 긴급 운항정지를 하기도 했다. 국가1급 중요시설인 원자력발전소에의 드론 침입은 그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그럼에도 우리의 드론 위협 대비는 미비한 수준이다. 대부분의 드론 비행 관련 불법행위는 형사처벌이 아닌 과태료로 규정되어 있어 실질적인 처벌이 어렵고 형법 등 기존 법률들도 신기술에 대한 적용이 쉽지 않다. 불법드론을 감지하거나 무력화시킬 수 있는 기술적인 대응 시스템도 가격이나 활용성, 표준화 등의 문제로 아직까지 보편화되지 못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른 기술 발전에 맞춰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의무이다. 드론에 대한 탐지, 식별, 무력화 체계를 구축하고 불법드론을 규제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및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드론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함께 드론으로부터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뒤늦은 행정과 구멍막기식 법률 보완만으로는 국민안전과 국가안보를 보장하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다.

<이동규 경찰인재개발원 생활치안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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