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보면서 발언권을 얻은 의원들의 정보를 검색해봤다. 앉은 자리는 다르지만 대부분 같은 학교, 같은 과를 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그 학교, 그 과를 나왔나 싶어 헛웃음까지 났다. 어떤 사람은 후보자와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정책결정자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모두 50대 아저씨들 아닌가. 과연 저곳에 지금 청년의 박탈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있을까. 분노를 넘어 ‘어차피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냉소해버리는 2030세대의 쓴웃음에 가슴 아파할 사람은 있을까. 

조국 후보자의 딸이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손가락질할 사람이 있을까. 노력도 안 했는데 부모의 특권만으로 탄탄대로를 걷는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대학생 시절 오랜만에 걸려온 작은아빠의 “뭐 필요한 거 없냐”는 전화에, “시간이오”라고 답했던 나조차도 혀를 내두를 만큼 열심히 살았더라. 맞다. 우리 세대는 다 그렇게 10대 후반을, 20대 초반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다. 그러나 달리는 트랙의 높이가 달랐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그와 같은 인맥, 정보,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노력에도 질이 있다. 같은 노력을 해도 도착지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다양한 층위의 시각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글을 썼고, 누군가는 집회에 참여해 울분을 토했다. 공정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분노는 당연하다. 공정한 줄 알았던 개인에 대한 실망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몇주간 내가 가장 크게 박탈감을 느꼈던 지점은 그 분노와 실망에 대한 누군가의 냉소였다. 그럴 줄 몰랐냐거나, 합법적이니 문제는 없다고, 그러니 본질을 호도하지 말라거나.

그런 분들에게 진정 ‘청년’을 알고 있냐고 묻고 싶다. 청년문제란 무엇인지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게 일자리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왔는데, 이러니 일자리 대책만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청년문제는 구조적 불평등의 현상이다. 너무 복합적이어서 한쪽만 해결해선 해소되지 않는다. 혹자는 그걸 ‘계급사회의 고착화’라고도 한다. 후보자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란 말로 가려졌지만, 실상은 이 사회가 쌓아올린 불평등이다. 

박탈감을 느끼는 청년들에게 “사법개혁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한 기억은 혹시 없으신지. 정치적 대의라는 이름으로 지워진 수많은 정체성을 떠올린다. 다수가 되지 못해 다음으로 미뤄진 간절함들이 넘실댄다. 우리는 계속 실망해왔다. 하루가 다르게 터지는 채용비리, 입시비리, 바뀌지 않는 청년정책, 주거와 노동 정책. 우리 안의 다양성에 눈감아 버리는 정치인의 발언들. 20대가 느끼는 박탈감은 그거다. 여전히 저 세대에게 개혁이란 누군가가 배제된, 눈앞의 정치적 개혁만이라는 것.

지금도 청년은 계속 말하고 있다. 이 사회는 잘못됐으니, 불평등의 고리를 끊자고. 같이 논의해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지금 우리는 노력의 질을 높이라는 다그침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면서 살아도 안정적인 내일을 그릴 수 있다는 약속이 필요하다. ‘좋은’ 대학, ‘좋은’ 일자리가 안정의 보증수표가 되게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 그 약속을 실현하는 일에 청년도 함께하고 싶다. 그러니 청년의 박탈감을 무시하지 말아주시라. 분노하는 청년과 함께 논의해주시라.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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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오고 있다는데도 길을 나선 건 순전히 무기력 때문이었다. 특별히 심란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맥이 툭 풀린 상태로 며칠이 흘렀고, 머릿속에서 위험신호가 울렸고, 몸을 밀어서 심장과 머리를 움직이라는 한 시인의 말이 떠올랐고, 불현듯 일어나 집을 나서게 된 것이었다. 무기력을 털어내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 태풍은 제주를 지나 목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북진 중이라고 했다.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기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바깥의 바람은 수상함을 넘어 노골적인 경고를 뿜어내고 있었다. 도적떼처럼 한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시커먼 구름들하며, 날아다니고 넘어지고 부러지는 온갖 움직임들이 제법 심란하고 꽤나 위험하게 느껴졌다. 정처 없이 행복, 번영, 진흥의 이름이 붙은 길을 걷다가 도착한 곳은 재래시장이었다. 

시장은 추석 대목을 앞둔 주말임을 감안하면 한산한 편이었다. 푸덕거리는 천막을 옭아매고 입간판이나 설치물들을 들여놓는 손길이 분주했다. 그 와중에 고구마줄거리 껍질을 벗기고 있는 노인의 손놀림에는 서두름이 없었다. 그 일은 조급한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법이다. 빈 소쿠리를 흘끔거리며 안달한다고 능률이 오를 수 없는, 손과 손톱이 저절로 움직이게 두면 어느 결엔가 채워진 소쿠리를 발견하게 되는, 무념무상이 최고 기술인 그런 종류의 일이다. 태풍이 오고 있는데 고구마줄거리 껍질 벗기기라니. 나는 어쩌면 그걸 보기 위해 길을 나섰는지도 몰랐다. 시장 할머니들 손끝에서 하염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 그리하여 채워진 한 소쿠리의 보드라운 고구마줄거리나 말끔히 다듬어진 쪽파나 부추 같은 것들. 그리고 어쩌면 나 또한 그럴 만한 거리를 찾아내 무념무상의 기술을 발휘하길 원했는지도. 그리하여 내가 걸음을 멈춘 곳은 콩나물 가게였다. 한 소쿠리 사서 대가리와 잔뿌리를 제거하리라. 말끔하게, 하염없이. 

그런데 문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콩나물을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하나. 천원? 이천원? 오천원? 일단 콩나물 가격이 얼마인지를 몰랐고, 얼마치를 사야 노동의 정도에 이르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시장에 와서 콩나물을 산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콩나물을 구입한 것은, 포장지에 포장되어 나오는 제품으로, 그것도 인터넷 클릭 몇 번에 새벽에 배송까지 받는 방식이었으니. 그게 대략 얼마쯤 됐더라? 

식당을 하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시장에 갔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시장에 가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무엇이 제철을 맞아 기름이 돌고 살이 올랐는지. 올해 양파나 배추의 작황이 어땠는지. 폭염이나 장마가 올해 상추와 깻잎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서해의 꽃게나 갑오징어의 어획량이 어떻게 줄어가고 있는지. 모든 척도는 가격이었다. 시장가격은 요식업에 아주 민감한 사항이었다. 피부에 와 닿는 정도가 아니라 폐부를 찌르는 정도의 체감. 어제의 가격과 오늘의 가격, 여름의 가격과 겨울의 가격. 그러고 보니 오뉴월 바지락도 지나가고 여름 무화과가 끝물에 이른 것도 모르고 지나왔구나. 어쩐지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순간. 아무리 시장에서 멀어졌다 해도 그렇지, 어떻게 콩나물 가격을 몰라? 이래저래 복잡한 머리를 굴려, 나름 정교한 계산을 거친 뒤, 콩나물을 청했다. 

콩나물 이천원어치가 그렇게 많을 줄 미처 몰랐다. 주인아주머니가 담고 또 담고 마지막으로 꾹꾹 눌러 담은 콩나물은 20ℓ쯤 되는 커다란 봉지를 채우고 넘쳐서, 내게 건네주는 사이 벌써 콩나물 몇 줄기가 봉지를 비어져 나올 정도였다. ‘콩나물 가격이라도 아껴서’라는 말이 실감나는 양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통용되었던 그 말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놀라웠고, 기껏해야 콩나물인데 손가락에 자국이 생길 정도로 무거운 것도 놀라웠다. 뜬금없이 만원버스와 콩나물시루 같은 단어들이 생각나면서, 이걸 언제 다 다듬고 언제 다 먹나,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천원어치의 거대한 콩나물 봉지를 받아들고 시장을 빠져나왔을 때, 바람은 조금 더 신경질적이 되어 있었다. 태풍의 도착이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집으로 곧장 돌아가야 했으나, 발걸음은 집을 지나쳐 등산로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마치 그곳 음식점에 콩나물을 배달하러 가는 사람처럼, 하기 싫은 일감을 피해 도망친 사람처럼. 이윽고 도착한 등산로 입구는 이미 부러진 나뭇가지들로 어지러웠고, 나무들은 온몸을 비틀며 태풍과 맞서거니 물러서거니 하고 있었다. 굴참나무 아래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자리에서 태풍을 맞으리라 마음먹었다. 숲의 나무들이 그러는 것처럼 태풍을 온몸으로 통과하고 나면, 무력의 잔가지들을 다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곧 자리를 떠야만 했다. 우박처럼 떨어지는 도토리 때문에. 툭 부러져 어깨를 내리친 굵은 나뭇가지 때문에. 갑자기 굵어진 빗방울 때문에. 콩나물 봉지를 머리에 인 채 집을 향해 냅다 뛰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그 많던 콩나물은 반쯤 남아 있었다. 태풍을 통과하겠다더니, 빗방울 좀 피해보겠다고. 결국 그날 나는 문단속을 단단히 한 다음, 창으로 태풍의 기세를 훔쳐보며, 반으로 줄인 무념무상의 노동을 수행했다. 나머지 반은 태풍의 몫이었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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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 때문에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돼 대물림될 가능성이 큰 만큼 심각한 범죄이다. 자녀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남겨주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가정폭력이 명백한 범죄임을 인식하고, 가족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서로 대화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를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 6월까지 약 19만건의 가정폭력 사건이 발생해 검거 인원이 21만5000명에 달했다. 피해자의 75%가 여성이었다고 한다. 또 가정폭력 가해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52.8%는 본인이 아동기와 성인기 모두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아동일 때 학대를 당한 경험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가정폭력 가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주로 여성, 노인 등 약자들이며 가정 내에서 일어난 사건이기에 더 큰 상처가 되므로 많은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 그래서 경찰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아픔을 치유해 다시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피해자 보호 지원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임시숙소 및 치료비, 심리적·법률적 지원을 하고 있다. 여성 긴급전화(1366), 해바라기센터, 이주여성의 경우 다누리콜센터(1577-1366) 등 관계기관과 연계해 심리적 안정을 도와주고 있으며, 신변 보호 요청 시 스마트워치 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등의 각종 법률서비스 지원을 하고 있다. 가정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행위이다.

<강원 삼척경찰서 미로파출소 경위 박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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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절대적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지금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국 사태’를 지켜보면서 1970년대 반독재 투쟁 당시 유행했던 영국의 역사학자이며 정치인인 액턴경의 말이 떠오른다.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선 반드시 권력이 필요하다. 정치적 권력은 근본적으로 국민을 위한 권력이다. 그렇지만 권력이 국민의 삶을 책임지기보다는 정권의 유지와 확대를 위해 오용될 때, 권력은 부패하기 시작한다.

모든 정치적 개혁은 부패한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시작한다. 기득권 세력은 이미 갖고 있는 제도적 특권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존하고 확대하는 특권층이다. 기득권 세력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함으로써 지배하고, 지배적 가치를 독점한다. 우리 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교육과 학력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기득권 세력이고, 교육기회를 독점하는 것도 기득권 세력이다. 현대사회에서 기득권의 가장 커다란 무기는 물론 법과 제도이다. 규칙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은 현상(status quo)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기득권의 보루일 수밖에 없다.

기득권이 법 준수를 강요한다면, 이에 저항하여 사회의 기본 질서를 바꾸려는 운동권은 항상 도덕성을 강조한다. 기득권이 썩고 부당하고 부도덕하다면, 운동권은 순수하고 정의롭고 도덕적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궈낸 굴곡진 현대사를 거치면서 이런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우리의 의식에 스며들었다.

지난 세월 산업화에 매진했던 사람들은 언제부터인지 부도덕한 기득권 세력으로 매도당하고,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은 도덕성의 프리미엄을 얻기 시작했다. 여기서 강한 의문이 든다. 민주화 세력은 정말 도덕적인가? 운동권은 부패하지 않는가?

나라를 온통 어지럽히고 있는 ‘조국 사태’는 이 물음에 분명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도덕적이라고 여겨진 운동권도 도덕성을 단지 정권 획득과 유지의 수단으로 삼으면서 도덕적으로 타락할 수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입으로는 교육 평등을 외치면서 자신의 아들딸들은 특목고에 보내고, 앞으로는 잘못된 경제현실을 비판하면서 뒤로는 이권을 챙기는 표리부동한 행태는 오히려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이기심으로 돌릴 수 있다.

문제는 386운동권이 이미 586기득권이 되어 편법과 위법을 넘나들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챙기면서도 여전히 도덕성을 부르짖고 있는 이중성이다. 이미 가진 자신들의 권력과 영향력을 활용하여 특권과 특혜를 호혜적으로 누리는 ‘그들만의 리그’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586기득권 세력이다.

기득권에는 좌우가 없다. ‘조국 사태’는 ‘좌파 기득권’의 진짜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첫째, 기득권 세력은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합법성’을 강조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각종 의혹에 대해 시종일관 ‘불법은 없다’고 강조하지만, 합법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정당한 것은 아니다. 정당성은 시민의 자발적 동의에 근거한다. 겉으론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을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들끼리만 호혜적으로 주고받는 입시 특혜의 품앗이가 아무리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정당성은 없는 것이다. 법조차도 국민의 정의감과 정당성에 부합하지 않으면 바뀌기 마련이다. 법무와 검찰의 개혁이 자신의 책무이며 소명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정당성 없는 합법성만을 강조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둘째, 기득권 세력은 항상 진보적 사상가 마르크스의 말처럼 자신의 이익을 전체의 이익으로 위장한다. 일반적으로 기득권은 항상 소수의 권력 엘리트로 대변되고, 운동권은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여 기득권과 투쟁한다. 운동권은 약자와 피지배자의 편에서 강자와 지배자에 대항하여 가능한 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정치 질서를 실현하려고 한다. 투쟁의 대상이 명확하고 누가 보더라도 사악할 때, 운동권은 투쟁 자체만으로도 정당성과 도덕성을 갖는다. 그렇지만 운동권이 정권을 잡으면 우리는 헷갈리게 된다. 자신들이 이미 기득권인데도 마치 아닌 척하면서 여전히 도덕성을 내세운다. 자신들이 하는 것은 모두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이고, 따라서 도덕적으로 선하다는 생각에 빠진다. ‘조국 사태’는 운동권은 절대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무오류성의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환상인지를 폭로한다.

셋째, 좌파 기득권은 도덕을 수단화함으로써 도덕을 궁극적으로 타락시킨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정치적 집단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지만 조국을 포함하여 그를 지키려는 운동권 진영은 국민이 왜 분노하고 허탈해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적 도덕성은 모든 사람이 같은 의견일 때 타락한다고 한다.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세력은 도덕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다.

운동권이 도덕성을 상실하면 반드시 부패한다. 도덕성을 수단으로 기득권이 된 운동권이 더 이상 도덕적이지 않으면서도 도덕적인 것처럼 행세하는 도덕적 도착(倒錯) 현상을 앞으로는 ‘조국 증후군’으로 부를지도 모를 일이다. 도덕성을 상실한 진보는 진부하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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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국, 네덜란드, 호주, 인도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의 창의력 교육을 돕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 입시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연구에도 참여하지 않았던 고등학생을 의학 분야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시킨 것은 명백한 부정행위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단순히 조 후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교육 전체의 문제입니다. 조 후보자처럼 자녀의 입시를 도와줄 수 있는 지위에 있을 때 그 권력을 악용하고자 하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한국의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교육부 장관께서는 이번 논란을 개인의 부도덕성 차원을 넘어 국민의식 측면에서 교육제도를 바라보고, 이런 문제가 과연 왜 생겨났는지 우리 교육 풍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를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면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게 창의력 개발이고 미래의 교육입니다. 창의력으로 성공한 결과가 혁신이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하면서 ‘작은 혁신’을 이뤄본 아이만이 혁신가가 될 수 있습니다. 작은 혁신이 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롭게 하면 그것이 노벨상 수상과 같은 ‘큰 혁신’이 됩니다.

한국의 부모는 아이의 내적 행복을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의 전문성을 개발해주는 대신, 조건이나 학벌을 중시하고 점수나 스펙에 연연합니다. 부모가 억지로 외우게 하고, 자격증이나 급수를 따기 위해 진도 나가는 데에만 급급하거나 단순 반복 학습을 통해 아이가 모든 걸 싫어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또 아이의 선택을 대신해주고 어른의 말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직적 서열을 주입합니다.

절대로 아이를 남과 비교해서는 안됩니다. 철사로 강제로 누르고 억지로 뒤틀어 남 눈에 보기 좋은 분재를 만드는 대신 제각기 다른 형태와 모습을 한 나무를 키워 다양한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합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님! 반창의적인 풍토를 바꾸지 않고는 아무리 교육 선진국에서 성공한 교육제도를 베껴와봤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혹은 입시 부정행위가 적발될 때마다 입시제도를 바꾸는 임기응변은 대한민국 교육에 독이 될 뿐입니다. 조 후보자 딸의 입시전형 과정에서 드러난 부정행위 때문에 객관식 시험이 아이의 전문성을 고려할 수 있는 주관적 평가보다 더 공정하다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객관식 시험 자체가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사회·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들은 선행학습뿐만 아니라 고득점 요령까지도 비싼 사교육 비용을 들여 삽니다. 그 결과 아이가 특목고나 자사고에 다니면서, 명문대라는 학벌을 따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가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학벌이 아니라, 개인의 전문성을 토대로 한 창의력입니다. 반창의적 풍토 속에서 창의력교육을 받지 않은 채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권력을 잡게 되면 어떤 진영을 떠나 이기적이고, 부정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한 기득권자가 됩니다. 악순환의 고리는 쉽게 끊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곧 다가올 미래에 나타날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연구결과를 토대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학부모 교육을 법제화해서 교육 풍토 자체에 변혁을 꾀해,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되돌려주는 일만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장합니다.

<김경희 윌리엄메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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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막 입술을 빠져나온

동그라미 담배 연기처럼

뜨거운 목구멍 문양으로

쓰라린 목젖 문양으로


흩어지는 연기를

한 코 한 코 엮어

태피스트리를 짠 사람이 있다


호시탐탐 달아나는 바람의 코를 꿰어

벽에 걸어놓고야 말겠다고


핏빛 노을 번져드는 사막에

웅크리고 앉아 컵라면을 먹던 사람

그가 놓친 건 무엇이었을까


셀 수 없는 정지화면이

모여 한 생애가 되고


한 번 멈춰두고 영원히 잊어버린

영화의 한 컷처럼 나는

지직거린다


한 코만 놓치면

주르륵 풀어져버리는

마음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정채원(195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태피스트리는 여러 가지의 색실로 그림을 짜서 넣은 직물을 뜻한다고 한다. 한 코 한 코를 서로 끼워서 뜨개 옷이 되듯이 하나하나의 색실을 엮어서 면직물이나 모직물 등을 만드는 것일 테다. 

시인은 우리의 생애도 씨실 혹은 날실과 같은 수많은 정지화면이 모인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경우라면 한 장면의 사진, 즉 스틸이 모이고 모여서 영화의 필름을 완성하듯이. 

그러나 우리의 삶의 시간은 연기와 같고, 한줄기의 바람과도 같아서 이내 뿔뿔이 흩어지고 잊히기 쉽다. 우리의 마음 또한 코와도 같은 하나의 실마리에 의해 풀어져버리기 쉽다. 

물론 가뭇없이 사라지는 시간들 속에 강렬한 기억의 한 순간이 있다. 한 번 세차게 쏟아진 소나기와도 같은 정지화면의 시간이 있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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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유튜브에서 재미난 동영상 한 편을 봤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아주 먼 옛날 거북이와 토끼는 누가 더 빠른지 시합을 했고 한참을 앞서간 토끼가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는 사이, 꾸준히 기어간 거북이가 결국 이겼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동영상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경주에서 진 토끼는 너무 속상한 나머지 거북이와 다시 달리기 시합을 한다. 자만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토끼는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달려 거북이를 큰 차이로 이긴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도저히 토끼를 이길 방법이 없음을 깨달은 거북이는 경주장소를 바꿔 달리기 시합을 제안한다. 토끼는 최선을 다해 달렸다. 하지만 결승점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넓은 강 앞에서 멈춰 선 동안, 거북이는 여유 있게 헤엄쳐 건너 결승점에 도착한다. 

몇 차례 달리기 시합을 한 토끼와 거북이는 꽤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고 둘은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이번엔 토끼와 거북이가 한 팀이 되어 마지막 달리기를 하기로 한다. 둘은 출발했고 강에 도착하기 전까지 토끼가 거북이를 업고 달린다. 강에선 거북이가 토끼를 등에 태우고 건넌다. 강 건너편에선 다시 토끼가 거북이를 업고 달려 함께 결승점에 도착하면서 이 서사가 끝난다. 토끼와 거북이 둘 다, 전에 느꼈던 것보다 더 큰 만족을 느낀다. 경쟁과 갈등 상황에서 천천히 꾸준히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고, 신속하고 일관되게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경 변화에 맞게 협력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각자의 제한된 역량만으로 평균 이하의 성과에 머물 수도 있고, 협력하여 공동의 목표에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최근 서울시가 추진하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갈등 소재로 다시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행정안전부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이해관계자를 포함한 시민의 폭넓은 이해와 대표성 있는 시민단체 및 전문가들의 참여 속에 추진되어야 하고, 월대 발굴조사를 위한 임시우회도로 설치 등 전반적인 공사에 대한 인근 주민들의 이해가 부족한 부분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공감대를 확보한 후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서울시는 시민 의견수렴을 이미 충분히 거쳤고, 올 초에 청와대 주관으로 공식회의를 거쳐 큰 틀의 합의를 봤으며, 최근까지도 수차례 실무협의를 통해 광화문광장 앞에 있는 정부서울청사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대부분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는 입장이다. 

두 기관 모두 광화문광장이 더 좋은 시민의 광장으로 재탄생해야 한다는 목표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입장에 시민들의 의견이 얼마나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장하는 내용과 다른 여론이 확인되면, 입장을 굽혀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수 있다. 정작 시민들은 광화문 재구조화 사업이 무엇이고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왜 두 기관이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인지 모를 수 있다. 광화문광장은 2017년 촛불혁명이 일어난 곳이고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복원되어야 할 광장이다.

더 늦기 전에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를 위해 시민이 주인이 되어 토론하고 숙의하는 공론의 장이 열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서울시와 행안부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론화위원회를 공동으로 구성하고, 일반 시민들과 광화문광장 인근 상인들에 대한 광범위한 사전조사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하여 공론화를 추진하면, 두 기관의 서로 다른 입장보다는 시민들의 생각이 우선 반영된 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공론화는 좀 더 개선된 여론을 확인하고 보다 개선된 대안을 찾을 수 있는 협의와 협력의 민주주의다. 토끼와 거북이의 새로운 이야기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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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는 영웅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일개 사병인 테르시스도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호메로스가 하찮은 지위의 인물을 자세하게 다룬 것은 테르시스가 유일하다. 그는 ‘짧고 휘어진 다리’ ‘안으로 굽은 어깨’ 등 혐오감을 주는 외양에다, 음란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트로이전쟁에 참전해 아가멤논을 욕심쟁이, 아킬레우스를 겁쟁이라고 해 오디세우스의 분노를 샀다. 그리고 아마존족의 여왕 펜테실레이아의 죽음 앞에서 비통해하는 아킬레우스에게 시체를 사랑한다고 조롱했다. 그는 남들이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의견을 내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서구에서 테르시스는 반(反)영웅의 전형으로 다뤄진다.

영웅담은 대부분 이상적인 인물의 이야기다. 영웅들은 공동체의 운명을 어깨에 지고 세상을 구원한다. 이들은 이상주의와 도덕, 용기로 무장돼 있다. 명예와 영광을 위해 싸운다. 반대편에 반영웅이 있다. 이들은 때에 따라 도덕적인 선택을 할 뿐이다. 이들은 개인의 사적인 이익에 따라 행동하며 전통적인 윤리를 부정한다. 

반영웅의 이야기는 고전 그리스의 연극이나 로마의 풍자, 그리고 문학, 영화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는 대표적인 반영웅 영화 가운데 하나다. 영화는 베트남전 퇴역군인의 모습을 통해 1970년대 미국의 사회상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은 택시운전을 하며 뉴욕 밤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거리의 쓰레기’로 생각한다. 무기력과 망상에 빠져 살던 그는 거리의 소녀를 구하겠다고 나선다. 그는 포주를 죽이며 의도치 않게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살인자에 가깝다. 

7일(현지시간) 열린 제76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가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배트맨의 숙적인 조커가 주인공이다. 영화는 코미디언으로 살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멸시로 좌절한 주인공을 다루고 있다. 조커가 외톨이에서 악당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담은 반영웅물이다.

영웅담은 꿈과 희망을 준다. 하지만 현실은 반영웅담에 가깝다. 베니스가 &lt;조커&gt;를 수상작으로 택한 것은 꿈속의 세상이 아닌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을 다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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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 여부를 놓고 막판 숙고 중이라고 한다. 논란이 컸던 만큼 청문회를 지켜본 시민의 판단과 각계의 여론을 면밀히 수렴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 

조 후보자 임명 여부에 상관없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검찰의 행태다. 첫째, 검찰은 조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끝나기 직전인 지난 6일 밤 후보자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했다. 조 후보자 딸이 동양대 총장 표창장을 받은 시점이 2012년 9월7일이고, 6일 밤 12시에 공소시효(7년)가 만료되기 때문에 기소가 불가피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부산대 의전원 입학원서에 제출한 시점은 2014년 6월(공소시효 7년)이다. 사문서위조 혐의 공소시효가 끝나더라도 위조사문서 행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면 양형엔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검찰은 당사자 조사 한번 하지 않고 서둘러 기소했다. 검찰의 기소는 조 후보자에 대한 여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설령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한 셈이다. 

둘째, 여권에서 ‘검찰권 남용’이란 비난이 나오자, 이를 반박하는 검찰발 보도가 나온 것도 석연치 않다. 7일 밤 SBS 뉴스는 “검찰은 정 교수의 업무용 PC에서 동양대 총장의 직인이 파일 형태로 저장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이 업무용 PC는 검찰이 임의제출받아 분석 중인 것으로, 검찰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내용이다. 공교롭게도 이런 수사기밀이 기소 다음날 언론에 흘러나온 건 검찰이 구시대적 언론플레이를 한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정 교수는 “동양대 어학교육원장 등 부서장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직원들로부터 여러 파일을 받았기 때문에 그중 일부가 PC에 저장된 것으로 추정할 뿐”이라고 했다. 지금으로서는 누구 주장이 맞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욱 당사자의 설명을 들을 필요가 있고, 다른 관계자의 진술과 객관적 증거로 혐의 유무를 신중히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압수수색 3일 만에 이뤄진 기소는 과연 충분한 수사를 마치고 내린 결정인지 의문이다. 이 밖에도 검찰 아니면 볼 수 없는 자료들이 청문회상에서 돌고,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활용된 것도 사실관계를 밝혀야 할 대목이다.  

검찰의 조 후보자에 대한 수사는 시기, 범위, 방법 등 거의 모든 부분이 통상의 관례에서 벗어나 진행되고 있다. 정치권의 검증에 앞서 수사에 착수한 것부터 검찰이 대신 검증해주겠다고 나선 것과 같다. 이런 검찰에 대해 뭐라 지적하면 ‘수사 개입’이라고 반발한다. 그러면 도대체 검찰은 누구의 견제를 받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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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추석 택배 물량 배달을 마치고 우체국으로 돌아가던 충남 아산우체국 집배원 ㄱ씨(57)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ㄱ씨는 평소보다 4배나 많아진 추석 택배 물량을 처리하느라 일몰을 넘겨서야 일을 마칠 수 있었다. ㄱ씨의 교통사고는 업무량 과다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부담이 초래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집배원 사망은 올해만 벌써 12명째다.

집배원은 고위험직군이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66명이 사망했다. 10년간 매달 한두 명꼴이다. 원인은 암, 교통사고, 자살 등 다양하지만 노동환경과 무관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집배원의 산업재해율이 소방관보다 높다는 통계도 있다. 이처럼 재해율이 높고 죽음이 계속되는 것은 집배원들이 장시간·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집배원 노동조건개선 기획추진단’(기획추진단)의 조사에 따르면 집배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745시간으로 국내 임금노동자의 2052시간보다 34%나 많다. 게다가 집배원들은 명절 등 연휴기간에는 ‘특별소통 기간’이라는 이름으로 연장근무에 들어간다. ㄱ씨 역시 숨진 당일 ‘우편물 특별소통 종합계획’에 따라 ‘일몰 후 집배 금지’ 규정을 어기고 늦은 시간까지 배달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집배원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서는 살인적인 노동환경을 바꿔나가는 것이 시급하다. 지난해 9월 기획추진단은 집배원 2000명 증원과 토요일 근무 폐지 등 7가지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그러나 인력만 부분적으로 증원되고 토요 근무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집배원들은 지난 7월 사상 초유의 총파업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파업은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노사가 합의안을 도출함으로써 철회됐지만, 집배원들의 요구가 실현될 때까지는 갈 길이 멀다. 

집배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증원이 필수적이다. 노사가 합의한 위탁택배원 750명 증원은 신속히 이행돼야 한다. 또 집배원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토요 근무 폐지는 필수적이다. 정부는 예산상의 이유로 노동조건 개선에 미적대고 있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는 우체국예금 사업으로 매년 수천억원의 이익을 내고 있다. 이를 국고로 돌리지 않고 집배원 처우와 복지에 사용하면 된다. 우편사업을 영리 차원이 아닌 국민 편익 제고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우편·택배 업무를 시장논리로 바라보는 한 집배원의 죽음은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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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에 미국이 일본보다 더 강력하게 반발하는 상황은 분명 정상은 아니다. 우리의 GSOMIA 종료 결정은 미국이 일본의 경제침략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의사표현이었다. 지나치게 보이는 미국의 반응은 GSOMIA가 한·일 양자 협정의 범위를 넘어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전략적 구상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내의 국제정치학자들과 전문가들은 GSOMIA 종료 결정으로 한·미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우려하며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저명한 미국 대학의 한국인 교수도 한국 정부의 GSOMIA 종료 결정 때문에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도 있다는 신문칼럼을 쓰기도 했다. 우리 지식인들은 미국의 노여움만 걱정하고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를 별로 고민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한·미동맹은 북한의 남침에 대응하기 위한 6·25전쟁의 산물이다. 미국은 냉전 이전부터 논의되던 한·미·일 3각관계를 냉전이 종식된 지금의 상황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구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일 3각관계 구축을 위해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왔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한·미·일 3각관계가 한·미동맹의 단순한 양적 확대를 넘어서 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상황에 있다. 

미국은 자신들이 추진하는 한·미·일 3각체제가 과연 최선의 선택인지에 대해 반성적 검토를 하지 않은 것 같다. 한·미·일 3각관계 강화는 필연적으로 북·중·러 3각관계의 대항과 결속을 초래하면서 다시 동북아 상황을 냉전적 구도로 되돌리는 퇴행적 상황을 조성할 확률이 높다. 한·미·일 3각체제를 완성하기 위해 일본의 안보적 역할을 강화하고 한국과 일본 간 군사관계를 결합시키려고 하는 미국의 시도는 냉전적 사고의 관성적 반복이다.   

일본의 안보역할 강화가 한·미·일 3각체제의 필요조건이라면 한·일 간 군사관계의 강화는 그 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다. GSOMIA는 한·일 간 군사관계 제도화를 위한 시발점인 것이다. GSOMIA 체결 후엔 한·일 간 군수지원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았다. 한·일관계에 문제가 없었다면 지금쯤 군수지원협정체결이 양국의 중요 이슈가 됐을지도 모른다. 만일 GSOMIA와 군수지원협정이 체결된다면, 그다음 수순은 한반도 방위에서 일본의 역할 확대가 될 것이다. 미국이 일본을 유엔사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려는 시도는 이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일 군사관계 강화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국제정치에서 일방적인 수혜란 없다.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한국이 한·미·일 3각관계로부터 북한의 남침에 대처하기 위한 도움을 받으려면 당연히 일본이 중국이나 러시아와 군사적 충돌을 할 때 상응한 지원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센카쿠열도나 북방도서에서 일본이 중국이나 러시아와 충돌이 일어나면 우리도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결국 일본은 한반도 방위를 위한 미국의 역할을 조금씩 대신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일각에서 미국이 한·일 간 경제전쟁에 개입하지 않으려 하는 것을 미국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미동맹은 정치적 결정에 따라 맺어진 공식적인 관계다. 한·미·일 3각관계는 정치적 합의와 결정이 없는 비공식적 관계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한·미·일 3각체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같은 정치적 결정이 없이 한·미·일 군사당국 간 관계강화를 통해 확대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한·미·일 3각관계의 목적과 대상 그리고 각국의 의무사항이 제대로 정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한·미·일 3각체제는 사실상 비밀군사동맹과 같은 상태로 진입하는 것 같다. 책임과 의무가 분명하지 않으면 무제한적 의무를 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북한의 남침만 생각하느라 한·미·일 3각관계가 지니고 있는 국제정치적 함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군사적인 접근만 하다 정치적 과정을 건너뛴 것이다. 정상적인 민군관계가 작동하는 민주주의체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비밀동맹조약이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비밀군사동맹과 비슷한 한·미·일 3국의 비공식적 군사관계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형식으로든 공식화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한·미·일 3각관계를 유지하려면 우리가 어떤 의무를 지며 권한을 누릴 것인지를 확인하는 공식적인 정치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설 예비역 육군준장·순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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