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과 함께 ‘조국 대전’이 끝났다. 한 달이 넘는 긴 시간이었다. 아니다. 첫 라운드일 뿐이다. 가을국회, 국정감사, 아니 내년 총선까지 제2, 제3의 ‘조국 라운드’는 이어질 것이다. 대한민국이 조국에 매달려 있을 때, 유럽은 기후위기를 토론했다.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달 태양광 요트에 몸을 맡긴 채 대서양을 건넜다. 툰베리가 2주에 걸쳐 항해한 거리는 스웨덴에서 미국 뉴욕까지 4800㎞나 됐다. 그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비행기는 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요트로 대서양을 건넌 이유다. 

16세 소녀 툰베리는 지난해 8월 학교에 가지 않고 스웨덴 국회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했다. 등교 거부를 통해 기후위기를 경고한 것이다. 그의 투쟁이 알려지면서 툰베리는 단번에 기후운동의 아이콘이 됐다. 그의 영향으로 유럽에서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The Future)’이라는 기치 아래 매주 청소년 기후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독일, 벨기에, 영국, 프랑스의 십대가 주축이다. 지난여름 폭염이 휩쓴 유럽에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느 전임자보다 기후문제에 적극적이다. 지난 4월 바티칸을 찾은 툰베리에게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격려하며 연대를 표했다. 지난달 28일 요트를 타고 뉴욕에 도착한 툰베리는 오는 23일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연설한다. 

‘조국 사태’에 묻혔지만 국내에서도 기후운동이 힘을 얻고 있다. ‘청소년 기후행동’은 지난달부터 주말마다 서울 광화문 등에서 기후위기를 알리는 집회를 열고 있다. 아직 수는 많지 않지만 참가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150개 환경·시민단체는 지난 4일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결성했다. 이는 시민단체 차원의 첫 전국 단위 연대기구로, 곧 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는 지난주 창립 10주년 토론회를 열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미래의 전략을 논의했다. 정당 가운데 유일하게 기후문제를 핵심 의제로 내건 녹색당은 이달 내내 대규모 ‘기후위기’ 캠페인에 들어간다. 지난 9일 국내 학계의 지식인·연구자 664명은 ‘기후 위기’를 선포하고 정부가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기후·환경단체들에 23일 열리는 뉴욕 기후행동 정상회담은 기후재난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세계 환경단체들은 정상회담을 전후한 20~27일을 ‘글로벌 기후파업’ 주간으로 설정하고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집중행동에 돌입한다. 이에 맞춰 새로 출범한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21일을 ‘기후위기 비상행동의 날’로 선포했다. 이들은 정당·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이날 정부와 기업에 온실가스 규제 등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대규모 집회와 행진을 벌일 예정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나라다.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율은 OECD 국가 가운데 1위다. 그럼에도 정부나 기업의 위기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3년 전 호주의 데어빈에서 처음으로 ‘기후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국가 차원에서는 지난 5월 영국을 시작으로 아일랜드, 캐나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아르헨티나가 비상상태에 가세했다. 현재는 18개 국가, 960여개 지방정부로 확산됐다.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해당 정부나 도시에서는 기후변화와 생태학적 위기에 대한 특별조치, 예컨대 차량통행 금지 등을 강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중앙정부는 물론 어떤 지자체도 기후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았다. 영국 ‘기후행동추적(CAT)’은 기후변화 대응에 미흡한 한국을 비롯한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를 ‘세계 4대 기후악당국가’로 지목했다. 한국은 국가별 기후변화대응지수(CCPI)에서도 최하위권이다.  

지구온난화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북극 빙하의 감소와 해수면 상승은 이제 과학 상식이 됐다. ‘지구의 허파’ 아마존 열대우림은 개간과 산불로 훼손되고 있다. 2105m의 스웨덴 최고봉 셰브네카이세산 남봉은 빙하가 녹으면서 최근 최고 자리를 북봉(2097m)에 내주었다. 빙산인 남봉은 지구온난화로 정상이 매년 1m씩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됐다. 기후과학자들은 기후위기가 곧 인류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래의 일이 아니다. ‘6차 대멸종’ ‘멸종위기종’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다. 작게는 개인으로부터, 크게는 자본주의 문명에 이르기까지 ‘전환’을 고민해야 할 때다. 지구 생태계의 파국은 막아야 한다. 이성으로 깨닫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감성으로 느끼고 실천해야 한다. 기후행동이 미래세대의 몫일 수 없다. 기성세대는 젊은이들과 함께 지구환경을 살릴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전기차를 사용하고 해외여행을 자제하자. 채식도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이다. 침묵하는 정부와 기업을 압박해 기후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기후위기 특별법을 제정토록 해야 한다. 이번 추석에는 ‘기후위기’를 이야기하자. 그리고 ‘기후위기 비상행동’ 대열에 동참하자.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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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과 다수 여론의 반발 속에서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 정국은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조 장관의 임명은 문 대통령이 임명과 지명철회, 두 가지 담화문을 준비했을 정도로 고뇌에 찬 결단 끝에 나왔다고 한다. 이 임명에 대한 찬반 여론은 수치상으로는 오차범위 내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하지만 국론 분열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보수야당은 연대하여 조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 국정조사, 특검 등은 물론 장외투쟁을 통해 꼭 사퇴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반면 여당에서는 당정협의회를 구성하여 조 장관의 사법개혁 추진을 적극 돕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과 민심이 같은 사안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 중이기에 서로 마주보고 이 문제를 논의해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문재인 정부가 강조해온 조 장관 임명의 당위성은 검찰개혁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공수처 설치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이 제시돼 현재 국회 패스트트랙에 지정돼 있다. 검찰은 반발했다. 조 장관 주변에 대한 전방위적 압수수색이나 국회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배우자 정모 교수에 대한 전격적인 기소 결정도 사법개혁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는 조 장관의 임명을 막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조 장관을 둘러싼 각종 의혹 그리고 그 진실과는 별개로, 현행 법체계하에서 검찰권 남용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즉, 검찰개혁 이전에 검찰권의 남용을 통제할 수 있는 해법이 이미 헌법과 정부조직법에 있는 것이다. 바로 대통령의 행정 각부에 대한 지휘감독권이다. 

행정조직법은 분배, 통제 그리고 책임의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 헌법은 행정권을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부여하고 있다(헌법 제66조 제4항). 검찰권은 재판권과는 달리 행정권에 속하는데 정부조직법은 이것(검찰권)을 다시 법무부 소속인 검찰청이 행사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정부조직법 제32조 제2항, 분배의 원리). 일을 맡기면 거기에 대해서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지휘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상급기관에 주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법령에 따라 모든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정부조직법 제11조 제1항, 통제의 원리). 법무부 장관 역시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정부조직법 제7조 제1항, 검찰청법 제8조). 따라서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통하여 검찰의 권한남용을 통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정부조직법 제11조에 바탕을 둔 대통령의 지휘감독권이 검찰의 권한남용을 통제하는 데 활용되지 못하였는가? 그것은 권위주의적인 정권은 권력에 순치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임명하여 권력자의 의중대로 검찰권을 행사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며 그렇지 않은 정권은 정부조직법 제11조에 바탕을 둔 대통령의 지휘감독권의 활용방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국이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검찰에 대한 적절한 통제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대통령은 정부조직법 제11조에 근거하여 법무부 장관을 통하여 검찰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해야 한다.

<유진식 |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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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이란 학교 안팎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신체·정신·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일련의 행위들을 의미한다. 피해 유형으로는 언어폭력, 집단따돌림, 스토킹, 신체폭력 순이었으며, 초등학생들의 학교폭력이 중학생과 고등학생보다 높게 나타났다. 더 심각한 것은 학교폭력의 형태가 사이버폭력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을 당한 기억은 피해자에게 오래 남는다.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집단따돌림을 당했다면, 그 상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문득 떠올라 또 다른 아픔을 낳는다. 하지만 가해자는 기억조차 못하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학교폭력은 당사자들의 문제를 넘어 학교폭력의 위험성과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알려주지 않은 학교, 더 나아가 이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폭력은 법과 제도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경찰과 학교가 협력하는 것이 절실하다. 학교폭력자치위원회 등을 통해 학교폭력 가해자를 선도하고 범죄 수준에 이른 학교폭력은 경찰에서 엄중히 수사해야 한다. 동시에 선도심사위원회 및 선도프로그램을 운영해 소년범을 구제하는 절차도 마련해 처벌과 교화 사이에 균형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또 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학생들이 어울려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활동을 늘리고 학교 내 폭행 취약지역 주변 폐쇄회로(CC)TV 설치를 늘려 안전한 학교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김유화 | 여수경찰서 경무계 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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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기차역은 한산했고, 기차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몇십년 전 명절을 앞두고 부산하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 시절, 완행열차가 비둘기호라는 제법 낭만적인 이름을 달기 전 장항선의 귀성 열차는 그야말로 콩나물시루와 같았다. 낯선 이들과 어깨가 겹쳐지고, 다리가 엇갈리고, 등이 붙은 자리조차 비집고 서지 못한 이 중에는 선반 위로 올라가 짐 보따리 틈을 노렸다. 행여 표를 끊고도 기차에 오르지 못할까 봐 앞다퉈 출입문으로 몰려드는 이들의 아우성으로 매번 정차 시간이 길어졌는데, 놀라운 건 어떻게든 죄다 탄다는 것이다. 나도 동생들과 함께 반쯤 열리는 유리창을 통해 기차에 오른 적이 있다. 내 아버지와 생면부지의 어른이 우리를 안아 올려 기차 안으로 밀어 넣으면, 기차 안에 앉아 있던 이들이 잡아끌어 올렸다. 전쟁통에 목숨을 부지하려고 피란 가는 길이 아니라, 그저 고향 집에 가서 가족들과 둘러앉아 송편을 빚고 차례를 지내려고 그 난리를 치렀다.

아마 직접 보지 않은 이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최고 시속 80㎞의 완행열차는 사라진 지 오래고, 세상은 KTX의 속도로 변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아녀. 일도 많고 차도 맥혀 힘들 거인디 뭐던다고 내려와야. 나가 요로코롬 얼굴 보고 가믄 되제.”

익숙한 말이라서 슬쩍 옆을 돌아봤다. 옆자리 노인은 서울에서 가게를 시작하는 자식한테 다녀가는 모양이었다. 노인은 몇 번이고 추석 때 내려올 거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완행열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던 때 우리 할머니가 내 부모에게 하던 말이고, 지금은 내 어머니가 내게 하는 말이다. 바쁘면 오지 마라, 차 막히는데 오지 마라, 금방 가야 하는데 오지 마라. 그들은 말은 그리하고도 며칠 동안 음식을 준비한다.

나와 같은 역에서 내린 노인은 역 안 추석맞이 특산물을 파는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노인은 잘 튀겨진 김부각을 집어 먹으면서 말했다. 이거 애들이 잘 먹겠네. 아마도 그는 집에 가자마자 장을 보고 음식을 하며 오지 말라 한 자식을 기다릴 것이다. 나는 일 때문에 김부각을 먹어볼 틈이 없었지만, 뒤를 힐끔댔다. 우리 딸도 김부각을 잘 먹을까.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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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elite)에 대립되는 말은 ‘대중’(mass)이다. ‘정치는 대중이 아니라 엘리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엘리트에 의해 대중의 머릿속에 당연한 것으로 각인됐다. 스파르타의 엘리트 정치를 이상적 모델로 제시한 소크라테스, 그의 제자이면서 철인정치를 주장한 플라톤, 그의 제자이면서 민주주의를 열등한 정체로 여긴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엘리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왕의 스승이니 그들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학벌의 최대 수혜자이기도 했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를 둘러싼 정치 드라마는 그가 장관에 임명돼 1막이 끝난 것 같지만 주요 역을 맡았던 인물들은 무대에서 내려갈 생각이 없다. 세계 정치·언론사에 유례가 없을 만큼 선정주의가 난무한 드라마의 출연진은 어떤 이들이었나?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가장 큰 공통분모는 ‘서울법대 출신’이라는 점이다. 국회 청문위원 18명 중 여상규 위원장을 포함한 7명이 서울법대 출신이다. 조국 후보도 그렇고, 나경원 원내대표와 함께 후보 사퇴를 요구한 원희룡 제주지사는 법대 동기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동문이다. 범위를 넓혀보면 ‘국정농단’이나 ‘사법농단’ 혐의로 수감되거나 재판 중인 자 중에도 김기춘, 우병우, 양승태 등 서울법대 출신이 너무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수모를 주려고 기획한 ‘논두렁 시계’로 거명되는 이인규 전 중수부장도 동문이다. ‘조국 후보 딸이 포르쉐를 탄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린 강용석 변호사, ‘별장 성폭력’ 의혹을 받은 김학의 전 법무차관, 극우적 언행으로 주목받은 차기환 변호사가 모두 동문이다.

서울법대 출신 상당수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무엇인가? 첫째, 초·중·고에서 대부분 일등을 놓친 적이 없을 만큼 머리가 좋고 성취욕구가 강하다. 이런 이력은 지고는 못 배기는 경쟁지상주의와 자기가 주역이 되지 않으면 친구도 끌어내리는 자기중심주의를 키우는 토양이다. 나경원과 원희룡이 조국에게 퍼부은 독한 말들은 여느 대학 동기 간에는 나오기 힘든 것이다. 둘째, 선민의식에 빠져 남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태극기 집회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상처를 후비는 말을 한 김진태 의원 같은 이들이 많은 이유다. 

셋째, 학교 공부가 다라고 생각한다. 대학시절 서울법대에 다니는 친구 하숙집을 방문했다가 고시과목 말고는 책이 전혀 없어 “왜 이렇게 책이 없냐”고 물은 적이 있다. “다른 책은 사시의 방해물일 뿐”이라는 그의 대답에 “죄짓지 말아야지, 너한테 재판받을까 겁난다”고 대꾸했다. 예전에는 인문학자인 목민관이 재판장이 되고 법전문가는 형방의 지위에 머물렀지만, 이젠 법전문가가 법조는 물론 정치까지 장악했다. 넷째, 학벌 등 기득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편법도 불사하며 무한 노력을 기울인다. 부르디외가 말한 ‘재생산’의 핵심 기구가 학교라는 사실을 신봉하는 건데 조국도 나경원도 예외가 아니다. 학벌은 정·관계를 언론과 재벌로 연결해 공고한 기득권동맹을 형성한다. 그나마 조국은 “금수저는 반드시 보수로 살아야 하느냐”며 “사회개혁에 기여하겠다” 했으니 싸잡아 말할 수는 없겠다.

다섯째, 이들은 대개 검찰주의자다. 판사 출신 나경원조차 조국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하자 ‘역린을 건드렸다’고 했다. ‘역린’은 ‘임금의 노여움’을 뜻하는데, 대통령이 검찰의 역린을 건드렸다 한다.

이 글을 읽은 독자는 ‘일반화의 오류’가 심하다고 지적할 수도 있겠다. 서울법대는 직무에 충실한 법조인은 물론 황인철, 홍성우, 조영래 등 인권변호사를 대거 배출했고, 민주화 운동에 자신을 희생한 이도 많다. 그러나 한 전공, 한 대학 출신이 일국의 정치와 사법체계를 과점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명문대 출신은 현 체제의 승자이기에 대개 보수적이고 불평등에 관한 문제의식도 희박하다.

민주주의 요람인 영국도 명문 학교 출신이 요직을 과점하면서 브렉시트라는 엘리트 정치의 파탄을 겪고 있다. 예전에는 중졸인 캘러헌과 고중퇴 학력의 메이저 총리도 나왔으나, 이젠 이튼과 옥스퍼드 출신인 캐머런, 메이, 존슨으로 이어지며 극우 총리까지 등장했다. 불평등에 분노한 노란조끼 시위로 몸살을 앓는 프랑스에서는 엘리트 정치인의 산실인 국립행정학교(ENA) 폐지론이 대두했는데, 제안자가 그 학교를 나온 마크롱 대통령이다. 우리도 국공립대학 통합 등 획기적인 교육체제 개편이 절실한 시점이다. 대중의 각성도 중요하다. 선거할 때도 사회를 위해 살아온 이력이 아닌 학벌이 선택 기준이 돼서는 안된다.

검찰개혁이 안되는 것도 검사 등 법조 출신 국회의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법안 한 건 처리하지 못한 채 끝난 사법개혁특위 유기준 위원장 역시 서울법대 출신이다. 엘리트 정치인들이 개혁은커녕 기득권체제 유지에 급급하는 모습과 검찰이 정치영역까지 넘나드는 검찰공화국의 진상을 전 국민이 봤다. 그들의 저항을 뚫고 이번에는 검찰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까? 역설적인 것은 엘리트 정치의 파탄을 수습하는 일도 엘리트에게 맡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거참!

<이봉수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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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세 살 소녀가 그린 그림이 우리 돈으로 무려 260만원에 팔렸다. 영국 태생인 이 소녀의 이름은 아이리스 그레이스(Iris Grace)로, 더욱 놀라운 것은 두 살 때 자폐증 진단을 받았고, 이후 언어장애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과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있던 소녀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소녀의 아름다운 그림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개인 수집가들에게 판매되기 시작했고,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구매해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공감능력 부족, 소통 부재, 업무능력 부족 등은 우리가 자폐인들에게 갖는 대표적 편견이다. 하지만 자폐인들에게는 이러한 편견을 뛰어넘는 예술적인 재능이 숨겨져 있는 경우도 있다. 그레이스도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놀라운 집중력과 함께 다양한 색을 조합하여 꿈을 꾸는 듯한 풍부한 색채를 보여주는 뛰어난 예술감각을 갖고 있다. 그레이스는 ‘리틀 모네’로 불린다.

국내에도 자폐인의 숨겨진 재능에 날개를 달아 유일무이한 디자이너로 키워주는 기업이 있다. 자폐인 디자이너와 상생을 도모하고 사회적기업의 발전을 고민하는 기업 오티스타이다. 오티스타는 자폐성 장애인의 재능 재활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그림을 좋아하고 시각적인 표현능력이 뛰어난 자폐인들에게 디자인 직업을 탐색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재능을 통해 경제적 독립은 물론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실제로 자폐인 디자이너가 그린 그림들은 SK그룹의 각 계열사, 롯데마트, 신세계면세점, 이랜드의 스파오 브랜드 등 여러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책갈피·텀블러·휴대전화 케이스 등 다양한 제품에 담아 소개되고 있다. 그간 오티스타를 거쳐간 자폐인 디자이너는 70여명이다.

자폐인들이 사회와 소통하며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사회적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은, 이들의 재능이 개발되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이다. 

각자가 가진 재능과 기술을 선보이는 장애인기능경기대회도 마찬가지다. 올해로 36회를 맞이한 장애인기능경기대회는 지역 예선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참가자들이 모여 최고의 기능을 겨루는 자리다. 전북 전주에서 개최되는 올해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는 17개 시·도에서 뽑힌 419명이 참여해 시각디자인, CNC선반, 웹마스터, 제과제빵 등 42개 직종에서 자신의 기량을 선보인다. 

이번 대회에서 장애인 선수들이 마음껏 재능을 선보이길 바란다. 또한 그들의 재능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사회적 인정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기회와 발판이 되고, 그들의 성장스토리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 회자되기를 희망한다.

<조종란 |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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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럽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 안팎이 여러 갈래의 갈등으로 찢긴 마당에 조국이라는 또 하나의 균열 축이 나라를 갈라놓았다. 

불편하다. 정치 역할 중 하나는 시민들에게 선택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 바쁜 시민들에게 문제 해결을 전가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시민에게 이익이 되는지는 불확실하고 시민의 욕구·가치와 어긋날 것은 확실해 보이는 선택지를 내놓았다고 해보자. 이 경우 내가 지지하는 정치세력을 지키기 위해 나의 욕구·가치를 배반하는 선택을 해야 할까? 아니면, 내 욕구·가치를 지키기 위해 지지를 거둬들여야 할까? 어느 쪽이든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정치’는 갈등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불완전 대안을 내놓고 선택하라며 ‘시민을 괴롭히는 정치’를 한다.

혼란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개혁의 적임자라고 임명한 윤석열은 개혁 주체인가, 개혁 대상인가? 마침 윤석열이 조국 의혹을 규명한다며 대통령 인사권에 도전하고 국회 인사 검증권을 납치하는 정치적 행위를 하자 ‘윤석열 잡는 조국’의 논리가 사후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검찰개혁 법안은 이미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다. 조국이 할 게 별로 없다. 검찰의 중립성이 개혁의 목표라면 살아 있는 권력 조국을 수사한 윤석열은 중립성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패스트트랙 사건을 경찰에서 넘겨받기로 함으로써 자유한국당이 다음 표적이 될 것을 예고했다. 황교안·나경원도 살아 있는 권력이다. 검찰 중립성이 검찰 권력 비대화로 나타나지 않게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미 검찰과 악연을 맺은 조국이 사적 개입과 정치적 판단 없이 민주적 통제, 중립성 보장, 검찰 비대화 억제를 모두 성공할지는 알 수 없다. 

검찰의 정치 개입을 부른 쪽은 정치권이다. 자신들에게 맡겨진 과제를 스스로 풀지 못하고 서로 고소·고발하며 검찰에 먹잇감을 준 결과다. 그동안 검찰개혁이 실패한 것은 정치개혁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은 정치개혁 없이 성공할 수 없다.  

헷갈린다. 조국이 문 대통령을 지키는 건가, 문 대통령이 조국을 지키는 건가? 문 대통령 지지자는 문 대통령만큼 조국 지키기에 적극적이다. 사실 문 대통령 말고 조국처럼 치열한 검증을 거치고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공직에 오른 인물이 없다. 조국은 단순한 내각의 일원이 아니다. 조국을 잃으면 문재인 정부도 잃는다. 이제 조국은 문재인이다. 조국 비판은 문 대통령 비판과 같고, 문 대통령 지지는 조국 지지와 같다. ‘조국 내각’ 또는 ‘문재인·조국 정부’의 출범이다. 

달라졌다. 문재인 정부 2기, 즉 ‘문재인·조국 정부’는 1기와 다른 질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1기 때도 타협 부재의 정치를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동의와 설득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당위를 의식하고 압박감도 느꼈다. 2기는 그런 부담감을 훌훌 털어내고 순수하게 권력이 발언하는 국면이다. 문 대통령도 그걸 각오하고 온갖 불리한 상황을 돌파한 것 같다. 권력은 권력을 지키려는 의지에 비례해 공고해진다. 타협하다 밀리면 계속 밀리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의 역사가 증명한다. 지지를 잃으면서도 여권이 조국 지키기로 결집한 것도 권력의 본질을 잘 이해했기 때문이지, 조국이 이 시점 그 자리에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제 각각 권력을 쥔 세력은 이미 의지의 동맹을 구축해 대결에 돌입했다. 천방지축 윤석열의 검찰권력, 조국의 검찰 통제권, 문 대통령의 통치권력, 그리고 보수야당의 저항권력 간 불꽃 튀는 충돌이 시작됐다. 온건 지지층, 중도층, 관망층은 떠나고 선수들만 등판한 이 충돌장에서 비전과 가치는 별 힘을 쓰지 못한다. 

조국의 등장으로 부각된 이슈, 즉 진보·보수를 넘는 기득권 문제는 진지하게 사회적 논의를 해볼 가치가 있는 주제였다. 문재인 정부의 비전인 공정·정의는 과연 위선적인지 충분히 토론해볼 만했다. 그러나 생산적 토론의 기회는 한순간 등장한 진영 대결로 사라졌다. 이념, 세대, 가치, 지역에 따른 다양한 관점과 생각의 차이는, ‘당신은 어느 편인가?’를 묻는 한마디에 묻혀버렸다. 당신이 공정·정의를 우선하는 사람인지는 아무 관심이 없다. 조국을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 오직 이것만이 문제다. 

그러나 권력을 권력으로 유지하는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강하면서도 약하고, 약하면서도 강한 법이다. 공감과 지지를 불러일으키는, 비전·가치·도덕성과 같은 소프트파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하드파워는 언젠가 도전받는다. 그걸 알 때까지 우리 모두 극한 정치를 견뎌야 한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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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남녘땅의 길이 11만㎞가 넘었다. 고속도로부터 국도·다리·시골길·해저터널까지 길은 핏줄처럼 이어진다. 명절마다 그 길에선 웃음소리와 실랑이가 교차한다. 곧잘 마주치는 ‘통행료’ 시비다. 올 추석 연휴에도 민자도로가 있는 10개 시·도의 선택은 서로 달랐다. 돈을 받는 길과 받지 않는 길이 섞이며 적잖은 혼선과 희비가 갈릴 판이다.

고속도로 통행료가 처음 면제된 것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2015년 8월14일. 경인고속도로 개통 후 51년 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후 2017년 9월 유료도로법을 개정한 뒤로는 명절마다 통행료를 받지 않는다. 올 추석에도 12일 0시부터 14일 자정까지 잠시라도 고속도로를 달린 차는 통행료가 없다. 통행료는 승용차 기준으로 800~900원부터 많게는 1만원, 대형차는 3만~4만원까지 내는 곳도 있다. 시민들에겐 연료·시간 낭비가 큰 ‘저속도로’에서 자주 맞닥뜨리는 불쾌감도 커 통행료 면제는 명절의 ‘소확행’으로 자리잡았다.

민자도로의 선택은 엇갈린다. 올 추석에 경기·인천·강원·경남의 10개 민자도로는 통행료를 받지 않고, 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의 15곳은 통행료를 징수한다. 광주시가 10일 무료로 운행한 제2순환도로를 추석부터 유료로 회귀하면서 ‘유료 지자체’가 더 많아졌다. 유료 민자도로가 8개나 뚫린 부산은 경남도와 공동 운영하는 거가대로(승용차 통행료 1만원)와 시가 관리하는 광안대로만 무료로 길을 연다. 경기도는 일산대교, 서수원~의왕, 제3경인고속화도로의 통행료를 면제하면서 “이용자들의 혼란”을 이유로 들었다. 모두 고속도로와 이어지고 물동량이 많은 길이다. 다른 민자도로도 사정은 비슷하지만, 많은 시·도에선 귀향객에게 줄 ‘명절 선물’을 부득불 포기했다. 갈림길은 돈이다. 광주시는 보조금이 연간 12억원에 달해 재정 지원이 어렵고, 이용자가 선택·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세웠다. 귀성·귀경길에 맞닥뜨릴 통행료 희비에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고, 내 고향 시·도의 곳간도 보이게 된 셈이다. 그 밑에는 물 흐르듯 타고 가는 길도 돈을 내야 하는 ‘도로의 공공성’ 문제가 깔려 있다. 민자사업이 해마다 급증하면서 커져갈 얘기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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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자어의 대다수는 한자문화권에서 공통으로 사용되지만, 각 나라 내에서만 통용되는 한자어도 적지 않다. 의외의 경우 중 하나가 ‘추석(秋夕)’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추석이라는 말은 쓰이지만 말 그대로 ‘가을 저녁’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만 오래전부터 고유의 명절인 한가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해 왔다. 중국도 음력 8월15일을 4대 명절로 치지만 그 명칭은 중추(仲秋 혹은 中秋)이다. 가을 석 달 중 가운데 달, 그중에서도 한가운데 날을 가리킨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저녁 넉넉한 보름달 아래 풍성한 결실을 즐기는 추석은 농경사회를 살던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기 바란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예로부터 시인들은 이 좋은 날을 시로 읊어 왔다. 친지와 함께 즐기는 명절의 풍성함을 노래한 시들도 다양하지만, 그 기쁨이 클수록 더욱 커지는 향수와 그리움을 담은 시도 못지않게 많다. “중추삼오야(仲秋三五夜)”로 시작하는 백거이의 시는 달빛 걸린 마루에서 술잔 앞에 홀로 앉아 멀리 떨어져 있는 네 명의 벗을 하나씩 떠올리며 그리움을 절절하게 노래하여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보름달이 주인공인 추석이지만 기대승은 아직 다 차지 않은 추석 전날의 달을 보며 “달이야 내일 밤이 더 좋겠지만, 나는 오늘 먼저 달을 만나네”라고 읊었다. 날이 언제 맑았다가 흐려질지 알 수 없는 일, 가을은 꼭 보름이 아니더라도 환한 달빛 하나만 있으면 밤새워 마실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곡은 “중추절도 열엿새에 달빛 더욱 밝은 법”이라고 노래했다. 추석의 달빛과 중양절(重陽節: 9월9일)의 국화에만 열광할 뿐 하루 넘긴 달과 국화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이 세상인데, 자신은 정작 모두의 관심이 지나간 뒤에 오히려 더욱 밝은 달빛과 은은한 국화 향을 남몰래 즐긴다고 했다.

각종 매체의 발달로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만 쏠리기 더 쉬운 때다. 추석 연휴에는 눈과 귀를 잠시 돌려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몰아치는 말들의 범람 속에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없는지 차분하게 바라볼 일이다. 광풍제월(光風霽月), 선선한 바람과 함께 구름이 열리며 드러나는 환한 달을 만날 수 있는 추석이면 좋겠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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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여, 이들을 돌보소서!”

15년 전 어느 인터넷 기사에 달렸던 댓글이다. 남편과 아이는 장애로 일상생활이 어렵고 생계를 책임진 아내이자 엄마인 40대 여성도 당뇨와 합병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족의 얘기였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댓글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국가’를 호명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단체에서 모금을 위해 올린 기사였지만 댓글 작성자는 가족을 돌봐야 할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지난주 노모와 장애인 형을 살해하고 동생도 죽음을 선택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2018년 증평 모녀 사건, 그리고 지난달 발생한 관악구 탈북 모자 아사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다. 댓글을 살펴봤다. 공통적인 정서는 슬픔에 대한 공감이었다. 친족 살해를 비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가족이 겪었을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고 불가피한 선택으로써 살해와 자살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국민 정서는 대체로 일치하고 국가도 꾸준한 제도 도입으로 이들의 생활을 보장하려 해왔다.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됐고 ‘송파 세 모녀법’을 제정해 수급권자를 능동적으로 발굴하도록 했다. 또 법이 시행되어도 정작 ‘송파 세 모녀’는 부양의무자 기준에 막혀 수급 대상자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과 장애인운동단체의 꾸준한 요구로 정부는 올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고 3년 내로 완전히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송파 세 모녀의 죽음 이후 전국에서 7만4000여명이 수급 신청을 했지만 혜택받은 경우는 9%에 그쳤다. 예산 때문이다. 제도 개선을 통해 수급 대상을 늘려도 예산이 없으면 실제 혜택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탈북 모자 사건도 기초생활수급 자격은 갖췄지만 이혼서류 외에 ‘이혼 확인서’를 추가로 받아오라는 구청의 요구에 신청을 포기하면서 발생한 일이다.

그렇다면 예산은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 기사의 댓글에서는 슬픔 외에 또 다른 정서도 발견됐다. 그것은 분노였다. 슬픔만 표출된 경우 대체로 명복을 빌거나 다음 생에는 부자로 또는 건강하게 태어나라는 기원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분노가 포함된 댓글들은 그들의 슬픔이 개인의 잘못이나 운명 탓이 아니라 국가에 있다는 사실을 적시했고 일부는 공무원의 책임을 포함해 국가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을 촉구했다. 그리고 더 많은 댓글에서는 예산 문제가 직접적으로 거론됐는데 크게는 새로운 재원의 확보와 기존 예산의 재배분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새로운 재원의 확보로는 친일파 후손의 재산 환수와 재벌에 대한 중과세가 주장됐다. 또 기존 예산의 재배분은 다른 부문의 예산을 줄여 복지 부문에 투입해야 한다는 것과 복지예산 내의 재배분을 주장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었다. 줄여야 할 부문별 예산으로는 국방비와 대북 지원금, 국회의원 급여 등이 꼽혔다. 앞의 둘은 북한에 대한 시각 또는 통일에 대한 전망이 맞서는 경우다. 복지예산안에서는 난민과 외국인노동자, 다문화가정 지원금을 삭감해 취약계층 복지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보편적 복지를 줄이고 선별적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법 됐는데 삭감해야 할 것으로 청년실업급여, 노인연금 등이 꼽혔다.

그런데 이 같은 댓글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정치적인 것은 순수하지 못한 것이라는 사고가 퍼져있지만 기사의 댓글들이야말로 정치적인 것 아닐까? 정치의 본질은 권력투쟁과 그에 따른 자원의 배분에 있다. 각각의 댓글들은 한정된 자원을 원하는 방향으로 배분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정치적이다. 반면 슬픔만 표출된 댓글의 경우 이 같은 정치적 투쟁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명복을 빌고 다음 생을 기원하는 것만으로 국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비정치적인 태도는 국가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흡사 내전과 같은 갈등을 자아냈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관련 사태가 대통령의 임명 강행으로 일단락됐다. 소모전처럼 비친 이 갈등 또한 하나의 권력투쟁이자 자원 배분을 위한 욕망의 충돌이다. 국민은 더욱 정치적이 되어야 한다. 한 번의 선거가 아니라 더 많은 정치적 결정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해야 한다. 국가는 이미 우리의 삶 속에 빈틈없이 들어서 있고 정치가 그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고 있다. 정치를 외면하고 기피할 것이 아니라 더욱 정치적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시끄러운 갈등과 투쟁의 결과를 미리 우려할 필요는 없다. 덜 가진 자의 침묵은 결국 더 가진 자에게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임미리 |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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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면서 한 달여간의 ‘조국 정국’이 일단락됐다. 야당은 장외투쟁에 나서고 정국은 또다시 얼어붙고 있다.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대로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조 장관 등 장관급 6명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상황에서 임명을 강행했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에서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치지 않은 장관급 인사는 모두 22명으로 늘었다. 5년 임기의 절반도 안됐는데 과거 박근혜(10명)·이명박(17명)·노무현(3명) 정부 때의 기록을 넘어섰다. 

장관 임명은 물론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다. 그러나 인사청문회 취지와 결과를 무시하고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때마다 야당의 반발로 정국은 경색되고 국정은 추진동력을 잃게 된다. 그 과정에서 소진된 국정 에너지만도 엄청나다.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청문회제도를 없애는 편이 낫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조 장관 등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자리에서 “국회 인사청문 절차가 제도 취지대로 운용되지 않고 국민통합과 좋은 인재 발탁에 큰 어려움이 되고 있다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앞서 동남아 순방길에 오르기 전에도 “좋은 사람을 발탁하려고 청문회제도가 도입됐는데, 이것이 정쟁화하면 좋은 사람을 발탁하기 어렵고 실제로 고사한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청문회가 본질을 벗어나 정쟁의 장(場)으로 변질되고, 과도한 신상털기식 검증 관행에 개선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닌 게 아니라 인사청문회가 후보자 검증이란 본질은 사라진 채 당리당략과 정치공세가 난무하고, 인신공격·흠집내기를 위한 ‘정치 청문회’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5촌 조카에 돌아가신 부친의 묘비까지 뒤져 명예와 인격을 훼손하니 어느 누가 선뜻 고위공직자가 되려 하겠는가. 역량 있고 경험 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이런 이유로 고위공직을 기피한다면 명백한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는 현 정권뿐 아니라 다음 정권에도 되풀이될 문제이기도 하다. 2000년 인사청문제도가 도입된 이후 청문회제도에 대한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도덕성 부문은 비공개로 사전(事前) 검증하고, 이를 통과한 사람에 대해 국회가 정책 청문회를 여는 분리방안도 제시돼 있다. 좋은 인재가 등용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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