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시작한 조국 정국은 그가 장관이 된 후에도 끝날 줄을 모른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한국 사람들은 완벽하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졌다. 여러 사람이 많은 얘기를 보탰는데, 그중에서는 손학규가 한 얘기가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다. 조국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탄핵으로 물러난 사람들이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다는…. 깨소금 맛이었다. 하여간 이게 며칠 내에 진정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짧으면 이번 겨울, 길면 내년 총선까지 아주 오래갈 사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자본주의를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로 설명했다. 하부구조는 생산력을 형성하는 경제이고, 법과 제도 혹은 윤리 같은 것들이 경제 위에 서 있는 상부구조라는 의미다. 이 얘기를 지나치게 하면 경제 결정론이라고 비판받았다.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의 핵심이 하부구조의 변화이지만, 그 핵심은 경제와 경제 아닌 것 사이의 관계다. 조국 사건을 보면서 나도 20대 이후로는 거의 써 본 적이 없는 이 단어가 문득 생각났다.

20대, 넓게 보면 10대와 30대까지 포함한 청년들의 분노는 하부구조에 관한 얘기다. 사회적 격차와 경제적 불평등, 그들의 불만에는 우리 시대를 형성하는 하부구조의 부조리가 영향을 미친다. 경제와 경제정책, 이런 것들이 대부분 하부구조에 속한 것이다. 반면 조국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조국 외에는 사법 개혁의 적임자가 없다”는 말은, 전형적으로 상부구조 얘기다. 국가라는 기구 자체가 상부구조인데, 그중에서도 검찰 개혁은 상부구조의 일부분에 관한 얘기다. 청년들은 하부구조에서 불만이 생긴 것인데, 청와대를 비롯해 조국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상부구조의 변화에 대한 얘기를 하는 중이다. 당연히 서로 말이 겉돌고, 서로 통하지 않는다. 상부구조를 개혁하면 하부구조에 변화가 올까? 한쪽은 상부구조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갸우뚱, 도무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듯하다.

이 바벨탑의 대화 같은 얘기를 지켜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조국에 대해서 하던 얘기나 관심의 10만분의 1이라도 하부구조에 기울였다면, 벌써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엄청난 뉴스를 토해낸 조국 청문회와는 달리 하부구조에 속한 것, 특히 경제정책에 속한 것들은 뉴스 한번 타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힘들게 나간다고 해도, 사실 별 관심도 없어서 금방 묻힌다. 정말이지, 여당이든 야당이든, 하부구조에 속한 것들은 그다지 인기 좋은 이슈들이 아니다. 개혁? 상부구조의 개혁만 개혁인가?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개혁은 하부구조에서 불평등을 줄이고, 격차를 줄이는 것 아닌가? 문재인 정부 절반이 지나는 동안, 우리가 하부구조에 대해 논의한 게 뭐가 있는가? 농협 개혁 얘기를 했나, 한전 개혁 얘기를 했나, 하다 못해 맨날 금융 사기 터진다고 하면서 금융위와 금감원 개혁 논의를 했나? 

상부구조만 보다 보니까 맨날 ‘프레임’ 타령만 했다. 이 정권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일부 종편은 그래도 된다. 공영방송도 똑같이 이쪽 프레임, 저쪽 프레임, 프레임 타령만 했다. 프레임을 이렇게 보든, 저렇게 보든 하부구조에서 발생하는 격차 현상이 사라지는 게 아니고, 교육에서 발생하는 경제 불평등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게 이번에 터진 것 아닌가?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이 점점 더 불평등한 것으로 변하고 있다. 상부구조를 아무리 개선한다고 해도, 이 하부구조의 양상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세습 자본주의 성격이 너무 강해진다. 적당히 살아도 밥은 먹고사는 경제로 가야지, 엄마가 죽어라고 대신 뛰어주어야 하는 하부구조, 이건 아니다.

제발 부탁이다. KBS와 MBC, 뭔가 하부구조에 대한 방송들 좀 만들어주시기 바라고, 신문들도 하부구조와 경제 얘기도 좀 다루어주시기를 바란다. 뒤를 돌아보면, 노무현 정권 때만 해도 공영방송에 경제 문제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얘기를 다루고 싶어하는 PD나 작가들이 꽤 있었다. 보수정부 9년을 거치다 보니까, 이 논의의 인프라들이 다 부서지고 상실되었다. 하부구조를 그대로 둬도 보수정권은 상관없지만, 촛불 이후의 개혁파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 프레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기반인 경제가 장기적으로는 진짜 중요한 요소다. 클린턴도 그렇게 말했다. 

조국 사건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 국면이 영원히 가지는 않는다. 개인은 실수할 수 있다. 시스템은 그때 드러난 문제점을 뒤늦게라도 고쳐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조·중·동 욕하고, 종편 욕해도 된다. 그렇지만 그들도 상부구조에만 관심 있지, 하부구조의 개혁에는 아무런 관심 없다. 정치 프레임 싸움에서 이긴다고 경제에서 이기는 것 아니다. KBS와 MBC 사장 두 분에게 각별히 부탁한다. 조국에 사용한 방송 분량과 에너지의 10만분의 1만 하부구조에 써주시라. 현 정부가 성공할 가능성이 아직은 남아있다. 종편 따라가지 마시라. 그리고 상부구조의 화려함과 뜨거움만 좇아가지 마시라. 하부구조의 공론장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게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 해야 할 논의 아니겠는가? 우리가 조국에 대해서 논하던 열정의 10만분의 1만 하부구조에 써도, 한국이 정말 좋은 나라가 될 것 같다. 이제, 경제 얘기 좀 하자.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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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조성욱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네 가지 중점과제를 발표했다. 갑을관계에서 발생하는 불공정행태 개선과 구조적 문제 완화, 대기업집단의 일감몰아주기 시정,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한 혁신 생태계 조성, 소비자 안전 및 정보 접근권 강화와 소비자 피해 최소화이다. 모두 필요한 정책이지만,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와 황제경영 및 불공정행위 근절을 위한 근본적 제도 개선책이 빠져 있다. 발표한 내용으로 본다면, 제도 개선보다는 행위 규제와 행정 제재 쪽에 중점을 둔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인터뷰를 통해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도 중요함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전부개정안은 이미 지주회사 지분율 요건과 같은 출자 규제, 순환출자, 전속고발권 등 재벌정책 전반에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우선 전속고발권은 전면폐지가 아니고, 경성담합에 대해서만 폐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순환출자는 완전 해소가 아니라, 신규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에 지정되는 집단에 대해서만 기존 의결권을 제한하는 수준이다. 지주회사 규제 역시 신규 설립 또는 전환 지주회사에 대해서만 지분율 요건을 적용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3대 경제정책의 핵심인 공정경제 사령탑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1기 공정거래위원회의 성과는 부진했다. 갑을 문제 개선 노력과 실효성 없는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내놓은 것이 전부였다. 유선주 전 심판관리관의 공익제보에서 나왔듯이, 대기업 봐주기와 가습기 살균제 은폐 의혹 등으로 신뢰도 크게 훼손되었다. 당정이 혁신성장이란 명목하에 재벌의 숙원사업인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훼손과 차등의결권 도입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제동도 걸지 못했다. 

조 신임 위원장은 전임 위원장이 하던 일을 이어가겠다는 수준으로 임해선 안된다.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실효성 있게 수정하고, 취임사에서도 강조한 일감몰아주기 방지의 경우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한 만큼, 공정거래위 권한으로 속히 추진해야 한다. 기술 탈취 및 불공정거래 행위를 근절해 혁신성장을 뒷받침할 징벌배상제와 디스커버리 제도도 즉각 도입해야 한다. 황제경영 방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차등의결권 도입 추진도 막아야 한다. 이를 통해 실추된 공정거래위의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

지난 8월29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횡령, 재산 국외도피 등의 혐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항소심과는 달리, 말 구입비용과 영재스포츠센터 지원금액을 유죄로 본 파기환송 결정이었다. 재벌이라는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의 불법 유착이자 국정농단을 단죄한 의미있고도 당연한 판결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재벌개혁 불씨가 조금은 남아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집권 3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만큼, 개혁을 위한 시간이 매우 촉박하다. 여야의 정쟁으로 정기국회가 제대로 개최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국회를 통한 법제도 개선도 당분간 담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의 개혁의지가 확고하다면, 국회를 설득하든 정부부처 간 협의를 통해서든 어느 정도 성과는 낼 수 있으리라 본다. 재벌들의 셀프개혁을 주문하던 전임 위원장과는 달리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 개혁을 위해 적극 나서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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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와 6월 민주화 항쟁을 그린 영화 <1987>은 모두 대만에서 상영된 후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과 높은 평가를 얻었습니다. 대만과 한국이 비슷한 현대사의 발전 과정을 겪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대만과 한국 모두 독재에서 민주화로의 과정을 겪으며 민주주의, 자유 그리고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켜낸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때마침 한국은 올해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중화민국은 당시 한국의 임시정부 수립에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도 가장 먼저 국가 지위를 인정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했습니다.

배우 송강호가 출연하는 영화 '택시운전사'

중국 대륙의 온갖 억압에 직면한 대만은 자유와 민주를 포기한 적이 없고, 탄압에도 국제 참여의 결심이 위축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 세계에 증명해 왔습니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외교부 장관 우자오셰(吳釗燮)는 2300만 대만인은 유엔 체계에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거듭 강조했고, 대만은 전 세계 파트너와 협력해 유엔의 지속 가능 개발목표(SDGs)를 달성하여 우리가 원하는 세계, 우리가 필요로 하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로 결심했음을 강조해 왔습니다.

대만은 SDGs의 실천에 있어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를 필요로 하는 국가에 적극 협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요소의 간섭으로 인해 대만은 여전히 관련 회의, 체계 및 행사에서 배제되고 있습니다. 대만은 성공 경험을 공유하고 나아가 유엔의 SDGs 달성을 위한 총체적 노력에 공헌할 능력과 의향이 있습니다. 대만의 풍부한 경험과 공헌을 고려하면, 대만의 국제 조정 개선 노력에 도움이 되는 경험 및 중요 정보의 공유를 금지하는 것은 실로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유엔에서 대만을 제외하는 데 자주 인용한 법적 근거는 1971년 유엔총회에서 통과한 제2758호 결의문입니다. 그러나 이 결의문은 대만의 유엔에서의 대표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대만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임을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실상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가 된 적이 없습니다. 오직 민주절차를 통해 선출된 대만 정부만이 2300만 대만인을 대표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엔은 대만을 배제하고 고립시킨 잘못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해당 결의문을 부당하게 인용하고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유엔은 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유엔은 대만 여권 소지자의 방문 혹은 회의 참석을 거절했고 대만 기자 또한 유엔 기자증을 발급받지 못해 회의 취재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불공평할 뿐 아니라 매우 차별적인 행위이며 유엔 설립 시 표방한 보편적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유엔은 대만을 배제하는 부당한 행위를 즉각 시정해야 합니다. 

한국이 한국의 독립과 수립에 대만이 적극 협조했던 과거를 잊지 말고, 먼 미래를 내다보며 대만의 국제사회 복귀를 지지해주기를 희망합니다. 대만과 한국은 유사한 역사 발전 과정과 공통의 가치관을 기초로 향후 각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고, 양국 간 우의 증진과 관계 강화를 실현할 수 있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양국이 국제무대에서 함께 두각을 드러내고 미래를 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탕뎬원(唐殿文) | 주한국대만대표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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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는 부모님 댁에 가족이 모였다. 우리 집안은 추석을 변칙적으로 보내는데 다 같이 여행을 가기도 하고, 각자 개인플레이를 하기도 하고, 이렇게 부모님 댁에 모이기도 한다. 추석 전날 오전에 출발해 점심시간이 갓 지날 무렵 도착했는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탕국 냄새가 코를 어지럽혔다. 나는 명절 음식 중에서도 이 탕국을 가장 좋아한다. 처음 한 들통 끓여놓았을 때는 무와 두부가 싱싱하게 살아 있고, 이틀 정도 내리 먹다보면 국물이 짜지고 무와 두부도 절여져서 더 맛있게 되는 국이다. 집집마다 끓이는 방식은 다르지만 두부, 무, 소고기는 공통으로 들어가며 우리 집은 여기에 토란과 바지락을 더해서 끓인다. 생선은 조기와 가자미를 굽는데 이번 추석에는 조기 대신 민어조기가 올라왔다. 요즘 같은 때 참조기야 언감생심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부세조기나 백조기가 더 좋은데 모친께선 어디서 듣고 오셨는지 민어조기가 더 고급이라고 하신다. 색깔도 거무튀튀한 것이 전형적인 민어 새끼처럼 생겼다. 먹어보니 감칠맛도 훨씬 떨어지고 좀 비리더라. 

한 그릇 뚝딱하고 송편 두어 개를 집어 먹었더니 손에 참기름이 묻어 욕실로 씻으러 들어갔다. 세면대에 노란색 다이알 비누가 놓여 있다. 아! 이 다이알 비누, 내가 아주 어릴 때 썼던 비누인데 싶은 마음에 더럭 반가웠다. 비누칠을 하자 특유의 진한 비누 향이 올라왔다. 아! 이 향기. 갑자기 온몸이 현실과 차단되며 수십년 전의 고향집 앞마당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수돗가, 세숫대야, 세숫대야가 놓인 시멘트 바닥, 뒷주머니에 수건을 찔러 넣고 목과 귀의 뒤편까지 비누를 잔뜩 칠한 아버지의 옆모습, 얼굴에 어푸어푸 물세례를 퍼붓는 장면, 뽀드득 뽀드득 발목을 문지르는 손의 감각, 코에 남은 잔향, 얼굴에 와닿는 바람, 눈을 찌르는 햇빛, 아침마다 동네를 순회하던 쓰레기 수거 트럭의 지붕 위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오던 새마을 찬가. 불러오기가 돼버린 공감각 앞에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욕실에서 나와 어머니에게 다이알 비누가 어디서 났냐고 여쭈니 마트에 가셨다가 눈에 보여 부모님도 반가운 마음에 여러 개를 사셨다고 한다. 그래서 두 개를 얻어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이틀 동안 열심히 써봤다. 이 비누를 사용하면 세안을 적극적으로 하게 된다. 비누칠도 손에서 오랫동안 돌려가면서 하게 되고, 입에서 푸푸거리는 소리를 내게 된다. 그리고 기름기가 완벽하게 제거된 피부를 만족스럽게 어루만지게 된다. 인터넷에서 좀 검색해보니 다이알 비누는 기름기 제거에 탁월한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추억의 비누라면서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리뷰를 해놓은 글이 많은 걸 보니 최근에 많이들 사용하는 것 같았다.

다이알 비누는 20세기 후반을 관통하는 한국 현대의 가정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비누다. 비록 국산은 아니고 미제이지만 미제가 최고이던 시절 우리 고단한 삶의 기름때와 흙때를 벗겨주던 비누다. 물론 다이알 비누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로 국한된다. 그 이후 우리 집에서 썼던 비누는 애경 럭스비누, 살구 비누, 오이 비누, 알뜨랑 비누, 아이보리 비누 등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가운데 알뜨랑 비누를 가장 싫어한 편이었다. 다이알 비누와 가장 비슷한 향이면서도 뭔가 빈틈이 있고 시금털털한, 집중력이 떨어지는 좋아할 수 없는 향이었다. 동네 대중목욕탕에 알뜨랑 비누가 비치돼 있었던 것도 내가 싫어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이 비누를 떠올리면 동네 목욕탕의 벌거벗은 남자들이 함께 떠오른다. 

냄새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간혹 이번 다이알 비누 사건처럼 냄새의 습격을 당할 때가 있다. 구체적인 물건의 냄새라기보다는 봄날 내리는 빗속에 섞인 미묘한 냄새, 오래된 벽지에서 나는 냄새, 지하실 냄새 등이 그렇다. 시각과는 달리 후각은 훨씬 내밀한 경험을 불러낸다. 대부분은 잊고 있었던 무의식 속의 기억들이다. 왜 그런지 좀 찾아봤더니 신경생리학적인 답이 이미 나와 있었다. 후각 정보를 처리하는 곳은 대뇌의 변연계라는 부분인데 이곳에서는 후각 정보뿐만 아니라 감정, 장기 기억, 욕망 등을 함께 관장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냄새를 맡는 순간 변연계 깊숙이 새겨져 있던 장기 기억의 일부가 잠깐 반짝거리며 되살아나는 것이다. 반면 신경생리학적으로 볼 때 후각중추가 있는 뇌변연계는 언어중추가 있는 영역과 신경적 연계성이 약하기 때문에 후각 경험은 언어화되기 힘들다고 한다. 이는 전 세계 공통적인 현상이다. 새삼 떠올려보면 냄새를 묘사해주는 형용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다이알 비누 냄새도 다이알 비누 냄새일 뿐 언어적으로 표현할 방법은 없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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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은 과거의 정부에서도 추진했던 과제다. 그중 피부로 느껴질 만한 것은 로스쿨 제도의 도입 정도 아니었나 싶다. 그 외에는 매번 거의 같은 내용으로 개혁을 운위했으며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 개혁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나 정치적 중립성의 확립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것이 그렇게도 어려울까. 

검찰개혁에 한정해 보면, 개혁 좌절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치권력 자체에 있다. 검찰에 대한 편향적 인사나 검찰권의 행사를 정권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쪽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개혁을 어렵게 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법조라는 직역의 체질이 개혁에 친하지 않다는 사정이 있다. 판사, 검사, 변호사의 세 직역을 통틀어 법조 삼륜이라고 이른다. 그 구성원들은 학생 시절 우등생과 모범생의 체험을 거쳐 인내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사법시험을 통과한다. 그중 판사나 검사가 된 이들은 다시 도제식 훈련을 받고 조직의 논리와 코드를 몸으로 익히게 된다. 그리고 동기생들 간의 경쟁에 부딪히게 되고 인정 욕구에 시달리면서 조직에 헌신하는 사람으로 형성되어 간다. 조직은 이들을 보호한다. 늘 비난받는 제 식구 감싸기가 그 보호의 예다. 변호사가 된 이른바 전관(前官)까지 아울러 학력과 경력으로 끈끈한 인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이 규모는 작아도 강한 세력은 외부세계가 건드리기 어려운 결속력과 응집력을 가지고 있다.

법조인들은 대개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한다. 또 대부분의 판사와 검사들은 태생적으로 부지런하고 일에 지쳐 있다.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의 이목을 끄는 사건을 일단 논외로 친다면, 여러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체로 공정하고 양심적이며 업무 처리도 법에 기속되어 있다. 이러다 보니, 내가 이렇게 뼈빠지게 그리고 양심적으로 일하는데 무슨 개혁이 필요하단 말인가라는 의식이 없을 수 없다. 아마 자신이 정치권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상당수 판사나 검사들은 정치권에서 들고 나오는 개혁에 부정적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법조인들에게 개혁을 주문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법조 직역이 가진 전문성이다. 비전문가가 뭐라 하다가는 자칫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는 반박에 부딪힌다. 물론 이런 전문성은 내부적으로 독선을 낳을 위험이 있고, 법조인들의 자의식을 키운다. 법학자 김두식은 저서 &lt;불멸의 신성가족&gt;에서 이들 세 개의 직역을 ‘신성(神聖)가족’이라고 불렀다. 이들을 손보는 일은 지난한 작업이다.

그럼 조직 내의 인물이 개혁을 주도한다면 어떨까. 이것도 쉽지 않다. 우선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 그런 비판적 안목을 기르기 어렵다. 조직에서 출세할 가능성이 높을수록 비판적 마인드는 줄어든다. 법원이나 검찰을 떠난 사람에게도 ‘친정’을 욕하는 짓은 일종의 금기사항이다. 자칫하면 배신행위를 한다는 소리를 들을 위험이 있다. 조직의 힘을 축소하는 일에 대한 거부감이 그를 압박할 것이다.

왜 어느 정권도 검찰개혁을 시도했으나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까.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검찰이 가지는 이런 조직의 논리와 힘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다 집권여당과는 정치적 입지를 달리하는 세력이 이해관계에 따라 검찰의 입장을 옹호한다. 그것이 다음의 집권 시에 반작용으로 다가오더라도, 당장의 이해타산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한편 검찰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라면 공격할 엄두도 못 냈을 국가기관을 민주화의 진행과 더불어 여러 차례 수사하고 기소한 경험을 축적해 왔다. 정보기관이나 대통령의 친·인척은 물론이고 전직 대통령 등 권력의 정점마저 수사해 기소했고 마지막으로는 전직 대법원장까지 구속 기소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들을 견제할 경쟁자도 보기 어렵다. 수사에 성역은 없어지고 이제 검찰은 가위 무소불위의 조직이 되었다. 이런 데다가 검찰은 여러 차례 정권 교체를 겪으면서 정치권력이 가지는 한계와 약점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일전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 앞서 벌어진 수사를 놓고 국무총리가 “검찰이 정치를 하겠다고 덤비는 것”이라고 한 말은, 당위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실상을 정확히 지적한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과거 발언은 긍정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가 같은 자리에서 한 “(조직을) 대단히 사랑한다”는 또 하나의 발언에도 주목하여야 한다. 그의 일차적 관심사는 검찰 조직의 위상과 권한 자체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검찰개혁은 쉽지 않을 것이다. 검찰의 법무부 장관을 겨냥한 수사는 일단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당부한 대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하여도 똑같은 자세’를 취한 셈이며, 실질이야 어떻든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다. 여권이 생각하는 검찰개혁 중 제도를 고치는 일은 제한적이나마 효과가 있을 것이다. 검찰의 수사권 축소나 특수부의 축소가 그렇다. 대통령이 검찰에 대한 인사권을 내려놓는 것이 검찰개혁이라는 일부 언론의 주장은 위헌적이다 못해 엉뚱하지만, 검찰에 대한 인사권 행사만으로 검찰개혁에 실효를 거둘 것 같지는 않다. 대다수 검사들이 수긍할 만한 탕평적 인사가 아니면 그런 인사는 조직적 반발을 살 것이다. 검찰은 단단한 바위와 같다. 검찰개혁에는 그 필요성에 대한 국민의 깊은 이해와 폭넓은 지지를 얻는 것과 신중하고도 단호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정치력이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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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교수인 자녀가 대학원 장학금을 받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부유했다. 모든 장학금이 집안의 금고까지 따져가며 지급기준을 정하진 않는 이유를 알면 황당할 수밖에 없다. 부모 도움을 성인이 되어서도 거절하지 않겠다는 태도와 자녀 부양을 중년이 되어서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뿐더러 복잡한 개인사를 죄다 무시하고 일괄적으로 전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자의 도리를 지키지 않은 양 융단 폭격을 가하는 건 가난을 줄 세워 돈을 주는 방식이 불평등을 줄여줄 거라고 믿어서다. 듣기에는 아름다운 세상 이치처럼 보이지만 불평등이 자연스레 유지되는 케케묵은 관념일 뿐이다.

‘부자의 품격’이란 말이 자주 등장하는 사회에서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동정적 시선이 매우 견고하다. 품격 없이 그런 돈을 왜 받는지를 추궁하며 등장하는, 그런 돈을 받을 만한 이들의 모습은 처참할 정도로 품격이 없다. 방 한 칸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편의점 음식으로 한 끼를 겨우 때우는 안쓰러운 사례들이 누구는 왜 비루해야 하는지를 사회구조적으로 따지는 논의로 확장되면 다행이지만 실상은 ‘착한’ 부자를 찾는 습관으로 이어진다. 

누군가의 통 큰 기부 덕택에, 그리고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지 않은 덕분에 현금 혜택을 받은 자들은 ‘도움을 받았다는’ 족쇄를 차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 언제나 성실해야 하고 특히나 세상 욕을 해서는 안된다. 자신은 가난하면서, 그래도 세상은 살기 좋다는 이론을 옹호해야 한다. 주어진 규격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라는 지탄이 등장한다. 사람을 순응하게 만드는 확실한 방법을 아는 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에 많은 비용을 쓰는 건 당연하다. 여기저기 장학금을 많이 뿌릴수록 기업의 탐욕을 비판하는 세상의 크기도 줄어드니 말이다. 그러니 나눔을 실천하는 부자 이야기가 많은 곳에서 복지제도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빨갱이 취급을 받는다. 

부자의 품격을 운운하는 사회에서는 부자들의 기만이 성행한다. 후광을 마다하고 일부러 힘든 삶을 택했다는 이야기는 왜 이리도 많은가. 가난하면 가난이 스토리로 발현될 수 없지만 부자가 잠시 가난하면 인생 경험이 폭넓다느니, 밑바닥 삶을 이해한다느니 온갖 긍정적인 수식어가 붙는다. 장기간 저임금 노동을 하는 자는 계속 가난하지만, 장래에 도움 될까봐 단기간 거친 노동을 일회성으로 선택한 이들은 그 경험을 유용하게 활용하여 대중들을 현혹시킨다. 자신은 속물이 아니라 세상 물정 아는 부자랍시고. 칼국수는 누구나 먹는데, 그걸 먹었다고 ‘착한’ 사람이 되는 집단은 정해져 있다. 

자기계발서들은 이를 명문가의 엄격한 자녀교육이라 하지만, 밑바닥을 고의적으로 체험해봤다는 원래 부자가 성인이 되어 불평등에 ‘격렬히 반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런 일도 경험해봤기에 자신의 현재를 ‘운’과 무관한 ‘노력’의 결과라고 포장한다. 그럴수록 ‘나도 경험해봐서 안다’는 이들이 가난한 이들을 의지가 부족하다면서 혐오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따위 기만보다 차라리 자신은 죽어도 서민의 삶을 알 수 없는 유복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성찰이 솔직하다. 강남좌파면 어떠한가. 가난의 원인은 가난뿐이라는 태도를 지니고 이를 구체적으로 해결할 정치권력에 힘을 실어줄 때 사회의 불평등도 유의미하게 줄어들지 않겠는가.

부자의 품격이란 말 자체가 이미 세상이 굉장히 불평등하다는 증거다. 교육의 공공성 회복, 주거비용의 안정화 그리고 적당한 노동으로도 인간의 존엄성이 유지되는 삶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면 누구도 돈 있는 사람에게 특정한 행동을 기대하지 않는다. 잘난 사람은 은총을 베풀고 잘나지 못한 사람은 그것에 감사를 표함이 마땅하다는 생각은 불평등한 세상이 그대로 유지되는 연료일 뿐이다.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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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가 무너진 1994년에 중2였던 소녀의 눈으로 부조리한 사회를 응시한 영화 <벌새>를 보다 나에게도 잊히지 않는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등교시간이 오전 7시까지였다. 고3은 오전 6시30분으로 당겨졌다.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는 게 유일한 자랑거리인 학교였다. 

평상시처럼 새벽같이 등교해 아침자습을 마치고 나니 수업하러 들어온 선생님이 담담한 목소리로 오전 7시40분쯤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추락한 버스에 등교 중이던 여고생 8명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무거운 교실 분위기가 마음에 걸렸던지 그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덧붙였다. 

“그 학교 등교시간이 우리처럼 빨랐다면 그 시간에 성수대교를 지나는 버스를 탈 일은 없었을 텐데. 너네는 (등교시간에) 불만이 많겠지만, 원래 등교시간은 빠를수록 좋은 거야. 다 나중에 보답받을 날이 올 거다.” 

영화 '벌새'의 한 장면. 콘텐츠판다·엣나인필름 제공

그의 말은 마치 1990년대의 모순이 응축된 한 장면처럼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성수대교 붕괴로 희생된 학생들을 애도했을 그의 속마음까지 의심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사건을 통해 그가 제자인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교훈이 고작 그런 정도였다는 것에 할 말을 잃었을 뿐이다. 달리는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작은 부조리를 거대한 부조리로 합리화하며 순응했던 그 시대의 자화상. 

어차피 그런 시대 위에 쌓아 올려진 2019년이니, 지금의 사회라고 다를 리 있겠는가. 현실의 부조리에 순응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부적절한 교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좀 더 솔직해진 것뿐이다. 

최근 한 지방의 중학교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형편에 맞는 꿈을 가지라”고 훈시해 논란이 됐다고 한다. 학생들이 “가난하면 꿈을 크게 갖지 말라는 것이냐”고 반발하자, 그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해명했다. “꿈을 고민할 때 자신의 능력과 (집안) 형편을 함께 고려하라는 취지였다. 일부 내용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절대 희망을 갖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었다.” 안타깝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말 같다. 

그러나 진짜 뼈아픈 것은 그의 말이 부적절하긴 했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란  데 있다. 성수대교 붕괴로 학생들이 희생된 것은 너무 당연하게도 등교시간 탓이 아니었다. 당시에도 이미 한물가기 시작한 ‘사당오락’의 법칙을 강조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끌어다 붙인 말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 문제를 계기로 다시 한번 민낯을 드러낸 우리 사회의 공고한 계급 대물림은 “노력은 보답받을 것”이라던 1990년대의 힘없는 교훈을 “형편에 맞는 꿈을 가지라”는 뼈아픈 충고로 변화시켰다. 조 장관 딸의 입시 문제에 맹공을 퍼붓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역시 아들 제1저자 청탁 논란에 휩싸였으니 점입가경일 따름이다. 

‘조국 대전’이 쏘아올린 공은 대한민국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대입제도 문제를 다시 도마에 올려놓았다. 아이들이 형편에 맞는 꿈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수십년째 도돌이표를 찍고 있는 교육개혁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작 우리 사회가 언제나 ‘형편에 맞는 꿈’만 꿔왔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대학 서열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능력주의 사회에서 문화자본과 사교육으로 중무장한 부유층 아이들이 ‘실력’으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긴 어렵다는 한계를 받아들인 후 형편에 맞는 수준에서만 고치려고 하니, 학생부종합전형(학종)과 정시 비율 논쟁에만 함몰된다. 

최근 ‘한국사회학’에 실린 논문 ‘배제의 법칙으로서의 입시제도’(한국교원대 문정주·최율)는 “입시제도를 둘러싼 오랜 논쟁의 흐름이 기회의 평등이나 평가의 공정성 같은 능력주의의 속성으로 상징돼 왔지만, 계층 간 투쟁의 전략적 측면은 간과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어차피 소수의 최상층은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물적·인적 자원 공세로 우위를 점하고, 하층은 입시제도 논쟁에서 배제되기 쉽다. 결국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상층이 얼마 남지 않은 합격자 쿼터를 차지하기 위해 중간층과 치열한 입시경쟁을 벌이면서 입시제도를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계급투쟁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어진 사회의 형편 안에서, 각자 계층에 따른 형편에 입각해, 유리한 입시제도를 선점하고자 투쟁하는 끝없는 개미지옥. 대학 서열화, 그것도 그냥 서열화가 아니라 수도권의 주요 몇개 대학만 포식자로 군림하는 이 ‘첨탑형’ 대학 서열화 구조를 재편하지 않고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각자의 형편을 뛰어넘는 더 큰 상상력이다.

<정유진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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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1917~1945)


한 사나이는 산기슭의 불룩하게 나온 귀퉁이를 돌아 외따로 떨어진 곳에 있는 우물을 찾아간다. 우물의 저 깊은 수면에는 달과 구름과 하늘의 움직임이 비치었고, 맑은 바람이 돌고, 선선한 가을이 있다. 그리고 거울 같은 우물물에 비친 한 사나이의 얼굴이 있다. 시인은 이 우물물 속 사나이를 보고선 뜻이 맞지 않고 초라한 몰골에 밉게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가도 머잖아 안쓰러운 마음을 갖는다. 우물물에 비친 사나이는 시인의 자화상인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보니 자괴의 탄식과 딱하게 여기는 연민이 교차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1939년에 발표되었다.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고뇌와 고독이 담겨 있다. 스스로 자신을 바로 보아 양심에 거리끼고 떳떳하지 못해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야말로 큰 용기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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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유난히 큰 추석이었다. 밝은 달과 맛난 음식들도 좋지만, 오랜만에 가족·친지를 만나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추석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명절 때 해선 안되는 이야기도 있다. ‘취준생’에게 취업은 했냐고 물어선 안된다. 언제 결혼할 생각이냐, 언제 애 낳느냐, 이런 이야기도 금기어가 된 지 오래다. 또 하나 불문율은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얼굴을 붉히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치 이야기가 아예 안 나올 수는 없다. 사람들 눈치 보면서 적당한 선까지만 이야기를 한다. 정치인들이 명절을 여론 추이의 변곡점으로 보곤 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올 추석은 특히나 민감했을 듯하다. 장관과 검찰총장, 야당 대표 이름이 적당한 비율로 섞여 호명되었을 것이다.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이 9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소위 ‘조국 정국’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여론조사 결과도 지겹게 기사화될 것이다. 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사람이 과반수라더니 차기 대권후보 3등이라는 결과도 나왔다. 하여 ‘해설’과 ‘분석’이 분분한 작금의 어지러운 정치상황에 잡문 하나를 보태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는 것 같기에 새삼 묻는다. 여야 어느 쪽이건, 자기네 지지도가 높으면 승리이고 반대 여론이 높으면 패배인가? 누가 무엇을 근거로 승패를 선언하는가? 의학논문 제1저자와 표창장과 봉사활동과 사모펀드 이야기가 끝나면, 승자와 패자가 분명해지는 건가? 조국 장관 개인의 승패인가, 여당의 승패인가, 정권의 승패인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이기려 하는가?

야구팬들이라면 익숙할 ‘승리 확률 기여도’라는 통계치가 있다. ‘WPA(Win Probability Added)’라 불리는 이 숫자는 선수의 특정 플레이가 팀의 승리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따진다. 같은 홈런이라도 ‘영양가’에 따라 WPA는 달라진다. 자기 팀이 10-0으로 이기고 있는 게임의 9회초에 때린 홈런과 동점 경기 9회말의 굿바이 홈런은 그 가치가 다르다. 우리 팀의 승리 가능성이 이미 99%였는데 홈런으로 99.5%가 됐다면 이 선수의 WPA는 0.005밖에 안되지만, 홈런 덕에 승리 가능성이 40%에서 100%로 바뀌었다면 이 홈런타자의 WPA는 0.6이나 된다. 반면 결정적인 기회에서 병살타를 쳐 팀의 승리 가능성이 60%에서 40%로 떨어졌다면 이 선수의 WPA는 마이너스0.2가 된다. 이런 상황들이 축적되면서 특정 선수의 승리 확률 기여도는 차곡차곡 쌓여 숫자로 표시된다. 1년 동안 쌓인 WPA가 5.0이 넘으면 최고 수준의 선수로 간주된다.

뜬금없이 야구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정치인의 발언이나 행동도 팀의 승리에 기여하는 정도로 측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에서의 승패 기준이 정권 획득이라면, 대통령 선거의 승리 확률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WPA가 부여될 것이다. 사소한 말실수는 마이너스0.01 정도 될 수 있고, 좋은 정책이나 법안을 만들면 플러스0.1을 받을 수 있다. 지난 한 해 동안의 WPA가 마이너스2인 정치인도 있을 테고 플러스3쯤 되는 정치인도 있을 것이다. 조국 교수의 법무부 장관 임명이라는 플레이의 WPA는 양수인가, 음수인가? 절대값은 어느 정도 되는가? 누군가는 지금 이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부질없지 않은가. 정치의 목표가 선거 승리라면, 승리 이후의 목표는 그저 다음 선거의 승리가 될 수밖에 없다. 

정치 WPA의 ‘W’는 선거의 승리를 의미해선 안된다. 평범한 시민들의 삶이 나아지고, 사회가 진보하고, 인권과 정의가 보장되는 방향의 변화가 ‘승리’여야 한다. 승리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면 ‘발전’ 정도로 해두자. ‘승리 확률 기여도’가 아닌 ‘발전 확률 기여도’를 따져보자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조국 장관 임명이라는 사건의 WPA는 양수(+)로 보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주었고,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를 강화시킨 사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전 확률 기여도는 장기간에 걸쳐 여러 사건들 점수가 축적되어 측정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병살타를 날린 선수가 굿바이 홈런을 쳐서 준수한 WPA를 기록할 수도 있다. 그러니 임명 이후 조국 장관의 WPA는 양수가 될 수도 있고, 점수를 축적하다보면 플러스5.0을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조국 장관 임명을 강행한 문재인 대통령이나 조국 장관 본인이 ‘선거 승리’나 ‘검찰개혁’ 정도를 목표로 삼지 않기를 바란다. 검찰개혁도 결국 더 큰 목표를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크고 분명한 목표를 설정해놓고, 오늘은 WPA를 몇 점이나 획득했는지, 혹은 잃었는지 매일 따져보길 바란다. 만루홈런이 아주 미미한 점수밖에 안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족을 달자면, 야당도 다르지 않다. 조국 장관 퇴진이나 대통령 탄핵을 ‘승리’로 여기는 한 진짜 WPA는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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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2일부터 26일까지 미국을 방문해 유엔총회에 참석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석 달 만에 다시 열리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여러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우선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을 눈앞에 두고 열리는 정상회담이라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에 눈길이 쏠린다. 또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선언과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 등 한·미동맹을 둘러싼 현안도 대두돼 있다. 정상회담에 쏠리는 눈길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발언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이 이달 안에 비핵화를 위한 북·미 간 실무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북·미 협상은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12일(현지시간) “올해 안 어느 시점에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것”이라며 3차 북·미 정상회담의 연내 개최까지 언급했다.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경질도 미국의 유연한 대응을 시사하면서 협상 전망을 밝게 한다. 북한은 올해 말을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제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말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다. 양쪽 모두 외교적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라 서로 입장을 절충할 가능성이 높다. 관건은 비핵화 방법론을 둘러싼 북·미 간 간극을 메우는 일이다. 북·미 간 협상을 마무리할 절호의 기회가 온 만큼 타협을 유도할 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이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 청와대의 말처럼 어떻게든 이번 북·미 간 접근으로 한반도 평화를 향한 톱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

출처:경향신문DB

한국 정부의 GSOMIA 종료 선언에 미국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면서 한·미 양국 관계가 불편하다. 문 대통령은 GSOMIA 종료가 한·미동맹과 무관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동맹의 미래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제도 ‘미국이 부유한 나라들을 군사적으로 방어하고도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동맹국들이 더 나쁘다’ ‘동맹국들이 미국을 더 이용한다’고 말했다. 이대로라면 곧 시작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양국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의 일방적인 수혜자가 아니다. 더구나 한·미 양국은 올해 분담금을 8.2% 증액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큰 폭의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동맹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이런 점을 이해시키고 설득해내야 한다. 북·미 협상과 한·미 현안 등 양쪽 모두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주도면밀하게 회담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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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2일 지면기사-

빙하는 녹아내리고 아마존은 불탄다.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과학자들이 예측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다. 

현상의 이면에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극우 포퓰리즘 정권들이 있다. 미국의 트럼프 정권은 기후변화 부정론까지 피력하며 환경규제와 국제협약을 폐기하고 있다.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정권은 아마존이 브라질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라며 아마존의 훼손을 방임했고 거대한 우림이 불타는 것마저 사실상 방조했다. 이외에도 다수의 극우 포퓰리즘 정권들은 환경규제 같은 ‘도덕적’ 허울을 벗어던지고 규제를 풀어서 경제성장을 하자는 구호를 공통적으로 외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의 동력이란 결국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거대한 체념과 갈 곳을 잃은 분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미래를 불태우고 녹여서 얻는 이득마저도 소수가 독점하게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그 소수가 될 수도 있다는 환영만이 잠시 눈앞에 펼쳐졌다가, 곧 이전보다 더 짙은 어둠만이 남게 된다.

민주주의는 도처에서 좌절하고 있다. 떠올려보면 2000년 이후 ○○혁명이라고 이름 붙은 대중들의 봉기가 세계 곳곳에서 이어졌다. 부패한 지도자들이 쫓겨난 곳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못 가 군부의 쿠데타, 독재세력의 귀환, 내전, 혁명동력의 상실과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 같은 비극적 결말이 대부분이었다. 많은 국가들에서 (준)독재가 회귀하고, 선진국이 앞장서는 자국우선주의가 국제질서를 야만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물론 지난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우리 사회는 이런 문제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신임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두고 일어난 권력투쟁 때문이다. 정부, 정당, 검찰, 언론 등이 뛰어들어 진흙탕 속에서 힘 싸움을 벌였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우리 편과 너희 편이 격돌하고, 진실과 거짓이 아니라 그렇다더라와 아니라더라가 싸웠다. 각자가 자신만의 변하지 않을 정답을 품고 뛰어든 싸움이기에 해결방법 같은 것은 없었다. 하나가 바닥을 보이면 다른 하나가 뒤질세라 바닥을 드러내고, 심도는 점점 깊어져만 갔다.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보통 사람들도 이 싸움에 당당히 한몫을 했다. 많은 이들이 이 사태 속에서 자신만의 억울함을 발견했다. 그 억울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것들이 동원되었다. 공정성은 이미 익숙한 주제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 사회가 잊어버린 줄 알았던 학벌주의에 대한 문제의식과 계급이라는 개념까지 소환되었다. 하지만 이 잊혀진 개념들이 얼마나 힘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차피 대부분은 친조국과 반조국을 위해 동원된 것들일 뿐이니 말이다. 원래 이 개념들을 점유하고 있던 좌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희미해지고 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사회는 장고 끝에 더 “공정한” 선발과정과 더 줄 세우기 쉬운 점수체계를 통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법을 발전시킬 공산이 크다. 조만간 누군가가 성적이 자기 예상과 다르게 나왔다며 학교를 고발하고 검찰이 전격 압수수색을 하는 일이 벌어져도 나는 크게 놀라지 않을 작정이다.

우리는 20세기가 수많은 희생을 통해 남긴 그나마 유의미한 유산들에 차례차례 불을 지르면서, 새롭게 와야 할 것들의 목을 비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절망은 선명한 근거들을 갖추고, 우리를 무기력의 시간으로 몰아넣는다.

나는 우리가 촛불로부터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필요한 개혁들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그것을 기반 삼아 촛불이 갖고 있던 한계마저도 넘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 바람이 불면 가장 먼저 흔들리고 꺼져버리는 힘 없는 이들을 보호하기를 바란다. 역행하는 세계 속에서 아직은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례가 되길 바란다. 오랜 시간 부족한 글을 읽어준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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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2일 지면기사-

민족 최대의 명절 중 하나인 추석에는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된다. 부족한 가운데서도 이웃들과 마음을 나누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한 번쯤 돌아보는 것에서 사람 사는 맛을 알게 해주는 그 마음 말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기억 속에 푸근하고 정겨운 모습들로 남아 있는 그 시골 마을을 오롯이 지키며 농사짓고 있는 농민들이 시름에 잠겨 있다. 태풍 ‘링링’의 피해가 채 가시기도 전에 때 아닌 가을 장마로 타들어가는 농심을 더욱 무겁게만 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1만7000㏊가 넘는 규모의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고, 벼 쓰러짐, 과실 낙과, 밭 작물 침수, 채소류 침수 등 그 피해가 막심하다. 무엇보다도 1년 동안 애지중지 정성을 다해 키워 온 농작물이 한순간의 자연재해로 쓰러지는 것을 보고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는 어느 농민의 인터뷰는 단순한 피해통계자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

국가기관 및 지자체, 기업체, 각 사회단체 등에서 태풍 피해 복구작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 농협에서도 해마다 해왔던 범농협 수확기 일손돕기를 대대적으로 계획하고 태풍 피해 복구작업에도 적극 앞장서고 있다.

올해 추석 선물은 우리 농산물로 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태풍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들의 마음을 한 번쯤 헤아려보고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뜻깊은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학수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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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2일 지면기사-

질량이 있는 모든 것은 아래로 떨어진다. 지구 중력장에서 질량에 비례하는 크기의 힘을 받는다. 이 힘이 바로 무게다. 질량과 무게는 물리학에서는 명확히 의미를 나눠 쓰지만, 우리 일상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다. 무게는 질량에 중력가속도를 곱한 것이라서, “내 몸무게는 60㎏”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내 몸무게는 60㎏중” 또는 “내 몸의 질량은 60㎏”이라 하는 것이 맞다. 우리가 계속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무게와 질량 사이의 비례상수인 중력가속도는 어디서나 거의 일정하니, 오해의 소지는 별로 없다. 오류를 교정해 바꿔 불러야 한다고 우길 생각도 없다. 과학의 정량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우리가 무게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이 많다. 어떤 이의 입은 무겁다 하고, 팍팍하고 힘든 일상을 삶의 무게라고 말한다. 한 작가는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다 했고, 요즘 우리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며 필자는 마음이 무겁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뉴턴이 처음 보편중력법칙을 발견했을 때 얘기다. 태양이 지구에 힘을 미쳐 지구가 공전한다고 하니, 당시 사람들은 이 이론이 논리적이지 않다고 느꼈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 아무런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데도 어떻게 힘이 전달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눈앞 책상 위에 놓인 볼펜 한 자루를 손이나 막대나 콧바람 없이, 어떠한 직접적인 접촉 없이 밀거나 끌 수는 없다. 오로지 접촉을 통한 힘의 전달만이 물체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당시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었다. 무협영화에 나오는 무술 고수의 장풍도, 현실에서는 손바닥을 밀어 일으킨 바람으로 성냥불 정도는 끌 수도 있겠지만, 공기가 없는 진공이라면 턱도 없다.

접촉하지 않고도 어떻게 태양이 지구에 힘을 미칠 수 있을까? 이런 유형의 질문은 답하지 않겠다는 것이 뉴턴의 생각이었다. 접촉하지 않고도 작용하는 힘을 설명하기 위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 이런저런 가설을 도입하지 않겠다는 획기적인 선언이다. 일단 이런 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힘에 의해 지구가 어떤 운동을 하게 될까를 이해하는 데 집중하자는 제안이다. 이전의 자연철학자와 달리,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겠다는 뉴턴의 연구 방식은 결국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엄청난 먼 거리를 건너뛰어 작용하는 중력 상호작용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은 상대론의 도래를 기다려야 했다. 독자도 생각해보라. 태양과 지구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으로 지구가 돌고 있다. 만약 어떤 이유로 태양이 갑자기 사라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뉴턴의 보편중력법칙은 지구에 작용하는 중력이 그 순간 0이 되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셈이다. 한편 어떤 정보도 빛보다 빨리 전달될 수 없음을 얘기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은, 태양의 순간적 소멸과 그로 인한 지구 궤도의 변화는 동시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알려준다. 자연은 아인슈타인의 손을 들어준다. 태양의 존재는 우주 공간 곳곳에 중력장을 만든다. 태양이 갑자기 소멸하면, 이로 인한 중력장의 변화가 파동의 형태로 빛의 속도로 전달되어 지구의 위치에 도달한다. 지구가 태양과 직접 순간적으로 먼 거리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위치에 멀리서 태양이 만들어 놓은 중력장을 지구가 느낄 뿐이다.

올해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50주년이다. 무게는 질량에 중력장을 곱한 것이라서, 장소가 지구에서 달로 바뀌어 중력장이 변하면 무게도 달라진다. 지구에서 10㎏의 질량을 들 수 있다면, 달에서는 무려 60㎏ 질량의 물체를 번쩍 위로 들어 올릴 수 있다. 달 표면에서의 중력장은 지구의 6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조심할 것이 있다. 물체가 현재의 운동 상태를 지속하려는 경향인 관성의 크기는 무게가 아닌 질량이 결정한다. 60㎏ 질량의 물체는 달에서도 여전히 질량이 60㎏이다. 관성의 크기는 지구에서나 달에서나 마찬가지로 우주 어디에서나 같다. 60㎏ 질량의 물체를 달에서 위로 쉽게 들어 올릴 수 있다 해도, 들고 가다 방향을 휙 바꾸면 큰 관성으로 말미암아 물체를 손으로 계속 잡고 있기는 어려울 거다.

중력의 장(場)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질량이 있는 물체를 중력장이 존재하는 한 장소에 가만히 놓고 물체의 움직임을 추적하면 중력장을 잴 수 있다. 배명훈의 소설 <타워>에는 가상국가에 존재하는 권력의 장을 한 상품의 움직임으로 추적하는 얘기가 나온다. 재밌고 기발한 소설이니, 꼭 읽어보시길. 물리학에서 중력장을 재기 위해 이용하는 물체의 질량은 작을수록 좋다. 질량이 크면 물체의 존재 자체가 주변의 중력장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관계의 연쇄가 만들어내는 인간 존재의 사회적 장(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가장 연약한 존재에 대한 세심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통해서만 우리 사회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가장 소득이 적은 사람, 가장 차별을 받는 사람, 문화적으로 가장 소외된 사람이 우리 사회의 진실을 보여준다. 눈에 띄지 않는 모습이 우리의 참모습이다.

무게는 질량이 아니다. 무게는 질량뿐 아니라 물체가 놓인 곳에서의 중력장의 크기가 결정한다. 질량은 물체가 어디에 있든 변하지 않는 물체의 고유한 속성이다. 내가 어제와 다름없는 동일한 사람이어도 어제보다 마음이 가볍고 무거울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존재하는 사회적 상황의 장(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존재의 무게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무거워질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타고난 고유한 능력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내 키의 두 배인 사람은 없고, 나보다 100m를 두 배 빨리 달리면 세계신기록이다. 하지만 어떤 이는 사회적 장의 변화로 엄청난 존재의 무게를 갑자기 갖게 된다. 무거운 별이 주변의 중력장을 변화시키듯, 부여받은 무거운 책무로 무거워진 사회적 존재는 다시 방향을 돌려 우리 사회의 장을 바꿀 수 있다. 한동안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짓눌러온 그동안의 갈등은 이제 뒤로하자. 필자는 조국 신임 법무장관의 어깨에 무겁게 지워진 힘이 만들 권력장의 변화, 아니 우리 사회를 오래 짓눌러온 부당한 권력장의 소멸을 기대한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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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2일 지면기사-

최근 유튜브에서 인기인 한 견공이 있다. 공장 한편에서 쇠사슬에 묶여 지내던 백구 ‘1미터의 삶, 진돌이’. 녀석에게 처음 산책과 바다 구경을 시켜주는 등의 체험담을 전하는 채널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마치 보는 사람이 진돌이가 된 듯, 해방감마저 느끼게 한다.

몇개월 전에는 TV에서 우연히 ‘샤넬’을 봤다. 샤넬은 주차장만 지키고 앉아 있다. 산책을 가자고 나서면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됐다. 억지로 질질 끌려나가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줄을 놓으면? 마구 뛰어 주차장으로 되돌아갔다. 샤넬은 군견으로 이용됐던 셰퍼드다. 덩치는 작은 송아지만 하지만 겁쟁이다. 군견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뒤 가정에 입양됐다. 이는 한참 지난 재방송인데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 나온 사연이다. 샤넬은 군복무 시절 밖에 나와선 용변만 보고 빨리 견사로 들어가야 하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외출에 거부반응을 보인다고 강형욱 동물훈련사는 풀이했다.

여론을 뜨겁게 달군 ‘메이’의 사연은 또 어떤가. 이 비글은 인천공항에서 검역 탐지견으로 활약하다 은퇴했다. 인간들의 안전을 위해 헌신한 뒤 이병천 서울대 교수의 복제견 연구팀에 지난해 3월 되돌아왔다. 이른바 ‘검역기술 고도화를 위한 스마트 탐지견 개발’을 위해서다. 무슨 인공지능(AI) 로봇견 고안 작업처럼 들린다. 태생부터 철저히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메이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비틀대다 폐사했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근세에 머물러 있다. 인간의 탐욕을 위해 자연은 언제든, 어떻게든 이용되고 조작되고 파괴돼도 괜찮은 그저 ‘대상물’일 뿐이다. 몸에 좋거나, 덜 해로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 나와 다른 약한 존재가 고통받아도 마땅한가.

모든 문명의 이기를 버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최소한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은 더 겸손해져야 한다. 지난해 8월 기자칼럼에서 소개했듯, 몰티즈 ‘소다’를 키워보니 샤넬이나 메이가 남의 일 같지 않다.

미국 뉴욕, LA 등에선 모피 제품 판매를 전면금지하는 법안이 나왔다. 모피업계 반발을 무릅쓰고서다. 올 8월 부산 구포 개시장 폐업에 부산 사람들은 77%가 잘한 일이라고 반응했다.

소다를 통해 부쩍 고민되는 지점이 사실 육식이다. 하지만 채식을 실천하기엔 현실적 제약이 많다. 또 다른 고민거리는 중성화다. 중성화의 목적은 몇가지 있는데, 의료인들은 각종 호르몬 관련 등 질병 예방을 강조한다. 키우는 사람들 입장에선 이런저런 편리함 때문이다. 인간 편의를 위해 자연번식을 억제하는 조치가 바람직한가엔 의문의 여지가 많다. 휴대폰을 쓰기 편하게 만들려고 어떤 부품은 빼버리듯 생명을 대하는 건 아닐까.

질문의 끝은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바람직하냐’는 데까지 닿는다. 강아지를 키워보고 내린 결론은 오히려 부정적이다. 비윤리적인 ‘강아지 공장’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다만 ‘인위적으로’ 고안된 생명이더라도 태어난 이상은 잘 보살펴줄 책무가 있다.

몇주 전 동네에 한 코숏 고양이가 집을 나갔다고 한다. 태풍 링링을 앞두고 걱정돼 비를 맞으며 밤중에 플래시를 들고 산을 헤매는 주인의 심정을 일반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고속도로 휴게소를 중심으로 잔인한 추석 연휴가 재연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반려견, 반려묘들이 길거리로 내동댕이쳐질까. 깜빡한 ‘엄마, 아빠’가 다시 찾아올 거라고 버려진 곳을 배회하며 비슷한 자동차를 유심히 살펴보던 TV 화면 속 댕댕이들의 모습이 선하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어린 양의 삶이 인간의 삶보다 가치가 덜한 게 아니다.”

<전병역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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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2일 지면기사-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1848)에 등장하는 이 말은 노동자 단결과 연대를 상징하는 구호가 됐다. 그러나 노동자의 단결이 인간 기본권으로 존중받기까지에는 7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단결권을 포함한 노동3권을 성문으로 규정한 것은 독일 바이마르헌법이었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제헌헌법부터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을 헌법에 명시했다.

단결권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할 수 있는 권리다. 노동3권 가운데 으뜸권리다. 단결권이 있어야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 노동조합 결성은 많지 않다. 노동자의 각성이 전제돼야 하고, 자본가의 방해와 견제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980년대 중반까지 15%를 밑돌다가 노동자대투쟁 이후 급증해 1989년 18.6%로 정점에 올랐다. 이후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며 한때 10% 이하로 떨어진 적도 있다. 

엊그제 민주노총이 지난 4월 기준 소속 조합원이 101만4845명을 기록하며 100만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조합원 100만명은 1995년 출범 이후 24년 만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은 촛불항쟁 이후 급증했다. 2017년 이후 975개 사업장에서 22만명이 새로 가입했다. 놀라운 성장세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조합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1946년 설립 이후 72년 만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잇따라 100만 기록을 세우면서 노총 조합원 200만 시대가 열렸다.

노조 결성이 늘고 있다지만, 갈 길은 멀다. 조직률 11%대다. 대만(33.2%), 영국(23.2%)보다 크게 낮고 일본(17.1%)에도 미치지 못한다(2016년 기준). 노조 구성도 불균형적이다. 조합원은 대부분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으로, 보호받아야 할 취약 노동자는 배제돼 있다. 최근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이 늘고 있다고 하지만, 가입률은 2.8% 수준이다.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의 단결권 보장이 시급하다. 양대 노총은 200만 시대에 걸맞은 위상을 갖춰야 한다. 노동자 권익 보호뿐 아니라 다른 소수계층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파행 중인 사회적 대화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조운찬 논설위원 sid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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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2일 지면기사-

정부도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수를 알고도 방치하거나 연거푸 실수를 한다면 무능한 정부다. 무능한 정부에서 고통은 시민들의 몫이다. 장기불황의 터널을 건너고 있는 일본에서 발생한 일이다. 

1985년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미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G5 재무장관들이 모였다. 미국의 요구로 달러 강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리였다. 미국은 달러 강세로 무역수지가 악화일로에 있었다. 참가국들은 달러화 대비 자국 화폐의 가치를 높이기로 했다.  

일본 대장상 다케시타 노보루는 합의에 서명한 뒤 “미국이 일본에 항복했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은 세계 경제강국으로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러나 엔화 절상이 가져올 파장을 과소평가했다. 엔화 가치가 오르면서 일본 제품의 국제경쟁력은 떨어졌고 수출 감소로 이어졌다. 수출주도 경제였던 일본의 성장률도 하락했다. 1986년 일본은 오일쇼크 이후 최악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무역악화로 인한 경기둔화에 일본 정부는 금리 인하와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로 맞섰다. 산업경쟁력 강화를 통한 기초체력 보강보다는 당장의 효과를 내는 대증요법만 동원한 것이다. 저금리로 풀린 자금은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몰렸다. 투기광풍이 불면서 거품은 커져갔다. 부동산 불패는 신화가 되었다. 도쿄 지가가 폭등하면서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일본 정부는 금리 인하로 인한 자산버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고 소비세를 신설했다. 금리를 올리는 것은 맞지만 속도가 너무 빨랐다. 일본은행은 1988년 9월에 2.50%이던 기준금리를 1990년 12월 6.0%까지 인상했다. 여기에 초고강도의 부동산 대출규제에도 나섰다. 1989년 말 정점을 찍었던 주가가 폭락을 시작했으며 부동산도 하락했다. 일본 경제는 어둡고 긴 터널에 들어섰다. 저물가의 저주, 즉 디플레이션에 빠진 것이다. 좋은 약도 많이 쓰면 독이 된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속도조절에 실패하고, 산업구조조정도 실패하면서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일본의 장기불황에 다양한 해석이 있다. 그중 일본 정부의 실수가 가장 크다.

물가가 오르는 부작용만을 걱정해왔던 소비자들은 저물가를 반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적정 규모의 물가상승은 성장의 자양분이다. 디플레이션은 경제에 활력을 빼앗고 결국에는 고사시킨다. 일본의 소비자물가는 1999년 0.3% 하락한 뒤 2005년까지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동안 경기회복은 장기화됐고 고통도 길어졌다. 가격 하락은 생산 위축, 고용 감소와 임금 하락, 실업과 소득 감소, 상품과 서비스의 수요 감소, 추가적인 가격 하락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디플레이션과 저성장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지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을 기록했다. 실제로는 마이너스다. 1965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정부는 계절적인 요인 때문이지 디플레이션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개발연구원은 수요 위축에 방점을 두었다. 근본적으로 물가상승률이 목표(2%)를 밑돌며 저물가가 지속되는 원인은 수요 위축에 있다고 했다. 

당장의 현상이 아닌 추세를 보자. 한국 경제의 움직임이 어느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가. 성장이냐, 침체냐. 연평균 잠재성장률을 보면 2001~2005년 5.0~5.2%에 달했던 것이 2016~2020년에는 2.7~2.8%로 추락했다. 실질성장률은 더 낮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해 3.2%에서 지난해에는 2.7%로 떨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락세가 가파르다. 올해는 2%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고용은 참사 수준을 벗어났으나 ‘고용의 질’은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빈부격차는 확대됐다. 그렇다고 세계 경기가 좋은 게 아니다. 한·일관계는 최악이다. 경제를 낙관할 호재는 찾기 힘들다. 한국 경제가 저물가·저성장을 향해 가고 있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내년에 초슈퍼 예산을 편성했다. 10년 만의 적자재정이다. 경제가 어려운 만큼 재정을 풀어 경제를 살리는 데 마중물로 쓰겠다고 한다.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재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20년간 정체상태인 산업구조의 개혁과 노동 개혁, 규제 혁파 없이 지속 가능한 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정부는 목소리가 큰 집단에 휩쓸려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다. 

한국 경제는 일본 경제를 모방하면서 성장했다. 일본이 장기불황에 빠지면서, 한국 경제에 위험은 예고돼 왔다. 그런데도 일본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우리는 일본의 불황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박종성 논설위원 p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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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2일 지면기사-

면은 간편해. 삶는데 냄새와 연기가 없다. 고기는 구울 때마다 기름이 튀고 냄새도 난리. 배지영의 단편소설 ‘근린 생활자’엔 501호 아줌마가 등장한다. “발코니에서 담배 피우거나 고기 굽는 것 삼가해주세요. 연기가 위쪽으로 그대로 올라가서 특히 3, 4층 분들은 창도 못 열어놓고 지낸다고요. 아셨죠. 꼭 좀 지켜주셨으면 좋겠어요.” 고기를 구워먹으려고 발코니가 있는 집을 계약해 들어간 아무개는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고기를 구워댔다. 이제는 아래층에서도 쫓아들 올라온다. 면이나 삶아먹지 총각들이 뭔 고기냐 이를 드러냈을 것이다. 시골집에 살면 삼시세끼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는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낭설이다. 낙향처사들은 불이야 있으나 두 가지 돈이 없게 된다. 머니 돈과 돼지 돈.

산타 할아버지가 절대 먹을 수 없는 면, 울면. 울면 안돼. 당신은 산타가 아니니 울면도 드실 수 있겠다. 면을 너무 좋아했는데, 밀가루 당분 섭취를 줄이려다보니 메밀국수를 찾아먹게 되었다. 납품하는 곳을 알아냈고, 국수를 쟁여놓고 안심. 명절 긴긴날 뭘 먹을 건지, 장이라도 봐야 할 텐데 국수나 삶아먹을까 생각하니 개운하고 홀가분해라. 김치만 있으면 되었고, 얹어먹을 고기라도 들어온다면 불행 중 다행이겠다. 시인 백석은 먹는 타령을 지독히 했다. 시들 통째로 밥내와 모밀내, 오만가지 군침을 돌게 만드는 낱말들 잔치. “거리에서는 모밀내가 났다. 부처를 위하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 가튼 모밀내가 났다. 어쩐지 향산 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 국수집에서는 농짝 가튼 도야지를 잡아걸고 국수에 치는 도야지고기는 돗바늘 가튼 털이 드문드문 백였다… 또 털도 안 뽑는 고기를 시껌언 맨모밀국수에 언저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며 소수림왕을 생각한다. 광개토대왕을 생각한다.” 이북에서는 돼지고기와 국수를 한 궁합으로 먹는 모양. 냉면과 온면, 고루 맛보는 겨레의 명절. 쟁반 속에 달이 둥그렇게 뜰 게야.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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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2일 지면기사-

법무부 차관과 검찰국장이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각각 대검 차장과 반부패부장에게 ‘윤석열 검찰총장을 제외한 특별수사팀’ 구성을 제안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를 즉각 거부했다. 당사자들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한 얘기로 조 장관에게 보고된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경위가 어떻든 적절치 못한 행동이 분명하다. 

지금은 법무장관과 그 가족들이 각종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를 받는 전례없는 상황이다. 살얼음판 같은 예민한 시기에 사소한 오해라도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법무부 간부들은 ‘강원랜드 채용비리 특별수사단’처럼 검찰총장이 별도의 수사 지휘를 하거나 보고를 받지 않는 독립된 수사팀을 구성하자는 뜻이었다고 하는데, 이번과는 경우가 다르다. ‘강원랜드 수사단’은 당시 대검 간부들도 의혹에 연루돼 있었기 때문에 대검 지휘 라인을 배제했던 것이다. 가뜩이나 법무부와 검찰 간 대립이 우려되는 마당에 양측 모두 의혹을 증폭시키거나 시민들에게 불안을 주는 일이 없도록 언행에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조 장관은 취임 뒤 첫 지시로 ‘검찰개혁추진지원단’을 구성하고 개혁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전날 취임사에서는 “검찰에 대한 적절한 인사권 행사 등 검찰에 대한 법무부의 감독 기능을 실질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당연한 얘기다. 통제되지 않는 검찰권 축소와 분산을 법과 제도를 통해 실현시켜야 할 책임이 조 장관에게 있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임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조 장관은 가시적인 성과를 시민 앞에 내놓음으로써 이런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검찰도 갈 길은 분명하다. 조 장관 주변에 대한 수사를 한 치 빈틈없이 진행해 의혹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하고 불법사실이 있으면 엄정하게 의법 조치하는 일이다. 검찰은 청문회 전 무리한 압수수색과 피의사실 공표 의혹 등으로 수사의 진정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검찰 수사가 무리하고 정치적이란 인상을 준다면 수사결과는 정당성과 명분을 얻을 수 없고 국민적 비판에 부닥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검찰개혁을 내세운 장관과 그를 수사하는 검찰은 지금까지 상상도 못해온 모습이었다. 어쩌면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의 공정 가치와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를 위해서는 장관과 검찰이 각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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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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