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를 넘긴 독일 생활을 뒤로하고 9월1일 포르투갈의 알가베로 이주해왔다. 베를린으로부터 무려 3000㎞나 떨어진 유럽 대륙의 끝자락이자,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이곳을 택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기후 때문이다. 1년 중 평균 300일 이상 햇볕이 내리쬐는 이곳을 그래서 유럽인들이 많이 찾는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북유럽 사람들이 많고 최근에는 러시아 사람도 꽤 늘었다. 과거 포르투갈령 인도의 고아나 중국의 마카오가 지닌 역사적 배경으로 이주해온 인도와 중국 사람을 제외한 그 밖의 아시아인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교포나 관광객으로 온 우리 동포를 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최초의 글로벌 제국으로 지칭되는 포르투갈은 15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의 선두주자로서 세계를 제패했지만 후에 스페인에 밀려 쇠락하고 말았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무려 40여년 동안이나 살라자르의 독재체제에 시달렸다가 1974년 젊은 장교단이 이끈 ‘카네이션 혁명’으로 민주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다. 이 암울했던 시대적 배경을 담은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저자는 파스칼 메르시어인데, 이는 내가 1967~1968년 1년 동안 몸을 담았던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함께 철학을 공부했던 페터 비에리의 필명이다. 어떻든 동병상련의 심정에서 당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사회주의자들은 유신독재에 저항했던 우리의 외로운 투쟁을 특별히 지지하고 성원했다.

나에게 독일 대학 강단에 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동료 사회학자도 과거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가 험난한 민족해방투쟁 끝에 독립을 쟁취한 기니비사우 정부의 고문이었다. 또 내가 47년 전 독일 대학 강단에 처음 섰을 때부터 인연을 맺은 제자도 아프리카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의 전문가로서 오랫동안 리스본대학의 사회학 교수였기에 포르투갈은 사실 나에게 그렇게 먼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나 유럽연합 안에서 이주하는 문제가 단순히 이삿짐을 싸들고 같은 나라의 어떤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과 많이 다를 것이라고는 예견했다. 이번에 나는 유럽연합이 현재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이주를 통해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스웨덴의 공장 노동자와 포르투갈의 포도농장 노동자의 생활수준이 비슷해지는지의 여부에 유럽연합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많이들 이야기했다. 핵심적인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단일 통화인 유로 덕택에 독일과 포르투갈 사이의 은행 결제가 당일로 가능할 정도로 경제적인 통합에서는 많은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2007년 말 리스본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합의를 보았던 유럽연합의 헌법 제정이 여전히 오리무중인 것처럼 정치적인 통합은 아직도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다.

‘유럽합중국’으로 가는 길 위에 민족국가의 긴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은 여태 결론을 못 내리고 있는 ‘브렉시트’, 난민과 이주 문제를 둘러싼 유럽연합 내의 갈등과 극우세력의 약진에서 우선 확인할 수 있다. 유럽의 통합과 화합의 소리에 못잖게 불협화음과 파열음도 크게 들리고 있는 현실은 물론 유럽만이 유별나게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지역적인 것과 지구적인 것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조정하느냐 하는 과제다. 최근 격화한 한·일 간의 갈등에서도 이 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흔히들 하나가 된 지구촌에서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는 모습으로 ‘디지털 노마드’의 예를 든다. 랩톱을 담은 배낭에 간단한 차림으로 전자상거래의 성지로 떠오른 카나리아제도의 라스팔마스나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우두 해변가를 찾아 노동과 자유시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삶을 꾸리는 젊은이들의 숫자가 부쩍 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삶도 머물고 있는 지역이 끈질기게 요구하는 거주 허가, 세금, 건강보험 등을 포함한 여러 제약 속에 묶여 있다. 우리도 베를린에서 가지고 있던 차를 포기하고 알가베에서 새로 차를 구입해야만 했다. 한마디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정도로 통관세와 각종 수수료가 너무 많은 데다 절차까지 복잡해서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역적인 것으로부터 오는 제한 때문에 지레 겁먹고 스스로가 자신의 생활세계를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둘 수는 없다. 세계는 그래도 앞으로 보다 더 열리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지역적인 것의 의미도 당연히 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많은 경계선을 넘을 수밖에 없는 젊은 세대는 경계선을 뛰어넘는 것을 결코 두려워 말라는 말을 이 기회에 전하고 싶다.

포르투갈로의 이주를 결단하고 독일을 떠나기 전, 가까운 친지들에게 작별인사를 겸해서 이주를 앞둔 내 심정을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 나오는 시 ‘계단’을 빌려 전했다. “어느 곳에서도 고향처럼 집착해서는 안 된다/ 세계정신은 우리를 붙잡아두거나 구속하지 않고/ 우리를 한 계단 한 계단 높이며 더 넓히려 한다/ 삶의 한 계단에 머물며 슬퍼하자마자 우리는 곧 무기력에 빠진다/ 자리를 박차고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자신을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임종의 순간에도 아마도 새로운 곳은 나타나리라/ 우리를 부르는 삶의 외침이 끝나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

내가 16년 전 한가위 때 귀국했다가 예기치 못한 고초를 겪을 당시 독일 괴테문화원의 원장으로서 이를 참담한 심정 속에서 지켜보았던 슈멜터 박사는 나의 작별인사에 대해 요한 가브리엘 자이들의 ‘방랑자가 달에게’(1826)라는 서정시와 이에 곡을 붙인 슈베르트의 노래로 화답했다. “나는 땅에서, 너는 하늘에서 우리는 활기차게 돌아다니는데/ 심각하고 우울한 나, 온화하고 순수한 너/ 도대체 그 차이는 무엇인지/ 나는 이방인으로 이 나라 저 나라 정처없이 아는 사람없이 떠돌지/ 산을 오르내리고 숲을 들락거려도, 하지만 어디에도 내 집은 없네/ 너도 이곳 저곳 돌아다니고 수많은 나라를 유유히 거쳐 가지만/ 그래도 네가 있는 그곳은 너의 집이네/ 끝없이 펼쳐진 하늘이 너의 사랑하는 고향이라네.”

한가위의 밝은 보름달은 유럽 대륙의 끝자락인 이곳 포르투갈의 알가베도, 분단의 슬픔이 아직도 드리운 산하도 금년에도 어김없이 비추겠지. 희로애락이 서로 얽힌 인간의 삶을 생각할 때 단지 회한만을, 아니면 기쁨만을 남기는 작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넘는 경계선일 수도 있다는 긴장감은 있지만 꿈과 희망 속에서 나는 다시 경계선을 넘는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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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는 이제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는 이미 기후변화로 인해 큰 피해를 보고 있으며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대기오염은 여러 도시에서 시민들의 목을 조이고 있으며 폭염은 극심해지고 자연재해도 빈번합니다. 100만종의 생물이 지구상에서 멸종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기후행동에 당장 나서야 할 이유는 이미 명백해졌습니다.

기후변화의 피해는 우리 모두에게 고르게 미치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젊은 세대입니다. 지금 바로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지구온난화가 초래하는 끔찍한 사태는 점점 더 늘 것이고 이런 세상에서 살아야 할 이들이 바로 젊은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장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최전선에 청년들이 서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날 세계 인구 중 15~24세에 속하는 사람은 12억명입니다. 그저 숫자가 많으니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꾼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지금의 젊은 층은 역사상 최고로 상호연결된 세대입니다.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지도자들은 이들에게 주목합니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9월23일 미국 뉴욕에서 ‘기후행동 정상회의’를 소집합니다. 제가 구테흐스 총장과 협력하여 9월21일 뉴욕에서 사상 최초의 ‘청년 기후행동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 회의에서는 기후변화에 맞서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싸워 온 젊은 활동가, 혁신가, 기업가, 변화의 주창자들이 하루 종일 진행되는 일정에 함께 참여합니다. 전 세계에서 18~29세 사이의 청년 7000명 이상이 이 회의 참석을 신청했고, 500여명이 실제 참석합니다. 

기후변화는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쳐 폭염 및 대기오염 악화와 같은 사태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두 명의 청년 지도자가 뉴욕의 ‘청년 기후행동 정상회의’ 참석자로 선정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정상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나의 미래, 우리의 지구’ 캠페인에 동참하는 방식으로 함께할 수 있습니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 ‘Youth #ClimateAction Summit’ 문구가 포함된 동영상을 올리고, 기후변화에 맞서 어떤 행동으로 싸워왔는지 표현하며,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즉각 행동에 나서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청년들의 노력은 정상회의 개최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각 개인, 기업 경영자, 국가 정상 등은 이러한 청년 지도자들의 활동으로부터 영감을 끌어내야 합니다. 각국 지도자들은 자기네 젊은이들이 공동체를 지키고 미래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토해내는 젊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기업들은 폭넓고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려는 젊은 기업가들의 노력에 동참해야 합니다. 시민사회의 구성원 모두는 액트나우(ActNow) 웹사이트를 통해 환경에 덜 해로운 생활방식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젊은이들이 적극적인 기후행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국가 지도자, 기업가, 공동체가 책임 있는 행동을 하도록 꾸준히 촉구할 것을 요청합니다. 결코 패배해서는 안되는 이 생존의 경주에서 우리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바로 그러한 노력입니다.

<루이스 알폰소 데 알바 | 유엔 사무총장 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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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가 자체 혁신안을 발표했다. 만시지탄은 있지만 그래도 기존의 관행에서 진일보한 내용들이 적지 않아서 환영할 만하다. 나로서는 국가대표 훈련 시스템의 개편과 체육인 교육센터 설립에 우선 눈이 간다. 문체부 산하 스포츠혁신위원회에서 집중적으로 살피고 힘줘서 권고한 것처럼 국가대표 훈련 시스템 개편은 한국 스포츠가 비로소 20세기를 끝내고 21세기에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기존에는 장기 합숙형이었다. 국가대표가 장기 합숙을 하니 그 아래 단위에서도 합숙만이 유일무이한 방법인 것처럼 수십 년을 보내왔다. 새벽부터 밤까지 달렸고 주말에도 산악을 오르내렸다. 신년이 되면 국가대표 선수들은 얼음을 깨고 차가운 물에까지 뛰어 들어갔다. 국가대표만이 아니라 국가대표가 될지 안될지도 모를 어린아이들도 컴컴한 합숙실로 들어갔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러나 20세기는 저물고 어느덧 21세기 중엽에 접어들었다. 국제 스포츠의 추세가 달라졌고 가치가 변하고 있으며 국내적으로도 인구 변동과 세대 문화와 젊은 지도자의 대거 등장으로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학적인 시스템, 개방적인 문화, 활달한 세대 감수성이 전제되지 않는 장기 합숙형은 구조적으로 문제를 낳기 마련이다. 실제로 끔찍한 폭력이 빈번히 일어났고 급기야 대한체육회장이 공개 사과를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럼에도 사건, 즉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혁신위는 단기 체류형 개편을 권고하였고 이에 대한체육회도 같은 입장을 천명하였으니, 환영할 일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단기 체류형으로 개편한다는 것은 단지 대표선수들의 선수촌 내 숙박 일수를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과도하고 반복적인 연습, 훈련 이외 시간의 통제적인 선수 관리, 성인 선수들의 일상생활 제약과 학생 선수들의 교육권 침해, 새벽부터 밤까지 선수들을 관리해야 하는 지도자들의 과도한 노동과 무한 책임, 그 때문에 선수들을 더욱더 통제해야만 하는 악순환의 구조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단기 체류형으로 한다는 것은 국가대표의 선발과 훈련뿐만 아니라 선수촌 안팎에서 생활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며 그 요체는 선진적으로 지도하고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경기력을 유지 또는 향상을 위해 과학적인 시스템이 탑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인식의 변화, 즉 선수에 대한 존중과 지도자의 전문성 향상이라는 전제들이 필요하며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 ‘21세기 중엽에 있어 국가대표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까지 던져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식의 변화와 그에 따른 제도의 탑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단기 체류형은 여러 혁신안 중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혁신안들을 꽉 물고 함께 움직이는 허브가 된다. 그렇지 않고 그저 사건도 자주 터지고 관리하기도 어려워서 선택하는 것이라면, 일시적 부작용이 또 다른 구조적 병폐로 음습하게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 밖에도 대한체육회의 자체 혁신안은 한국 체육계 전체가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만한 요소가 많다. 인권과 공정성 실현을 위한 징계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한다거나 회원 단체에 책임과 권한을 대폭 이양해 자율성을 강화하겠다는 점, 그리고 전국소년체육대회를 유·청소년 전문스포츠대회 형태로 개편하고 학교별이 아닌 연령별 구분 및 스포츠클럽 등의 개인과 팀까지 참가 허용 등은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앞에 적은 대로, 만시지탄의 안타까움이 있다. 대한체육회로서는 두 번의 중요한 기회가 있었다. 올해 초 관계부처 장관들이 일제히 대국민 사과를 해야만 했던 바로 그 상황에서 진지한 사과 이후 과감한 혁신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 만약 그때 그러했더라면 8개월 가까이 흐른 지금은 혁신안 제시가 아니라 그중 일부가 현실화되는, 그야말로 미래를 주도적으로 잡아당기는 대한체육회가 되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기흥 회장이 IOC 위원에 선출된 직후인 7월 초다. 이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혁신위의 권고에 공감하며 필요하다면 혁신위원장을 직접 만나는 등 체육 개혁을 위한 대화와 소통의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또한 여러 이유로 무산되었다. 이 회장의 표현대로 “진정하고 잘 살펴보면 분명히 접점”이 나올 수도 있었으며 실제로 혁신위원회는 그러한 대화의 노력을 다각도로 진행하기도 하였으나 무산되었다. 첨예한 이슈를 갈등적으로 묘사하는 데 치우친 요즘의 언론 환경까지 더해지면서 ‘대화와 소통’은 일시 중단되었다.

최소한의 사무처도 없이 80여 차례의 회의를 지속하며 일곱 차례의 중대한 권고안을 발표했던 혁신위에 비하여 체육회는 인력과 예산과 활용 가능한 유·무형의 자원을 풍부히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혁신위가 주도하고 체육회가 반사적으로 대응한 것처럼 보인 것은, 체육회가 두 번이나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만약 체육회가 앞의 두 차례 기회를 선용했더라면 혁신위의 권고는 불필요했으며 아예 출범할 이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혁신위는 활동 기간이 정해져 있지만 대한체육회는 대한민국과 운명을 함께하는 영구적인 단체다. 스포츠의 제1 원칙, 즉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점에 의거하여 지금이라도 체육회는 좀 더 종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개편안을 선제적으로 발표하고 그것의 실현, 즉 천천히 오는 미래를 상대방 유도복 깃을 당기듯이 바짝 잡아버리는 공세적인 혁신을 주도하기 바란다. 10월 초에 제100회 전국체전이 열린다. 마지막 기회다. 이 중요한 기회를 공허한 항의나 소모적인 비난으로 채우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나가는 진일보하는 체육회가 되길 바란다. 혁신위의 시간은 서서히 끝나간다. 지금부터는 ‘체육회의 시간’이다. 부디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잡아채기를.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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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MBC는 스스로 신랄한 비평대에 서겠다는 각오로 옴부즈맨 프로그램의 내실화를 선언했고, 담당자가 된 나는 비평토크쇼 <탐나는 TV>(토요일 오전 8시10분)의 첫 방송을 작년 9월22일 내보냈다. 아무도 보지 않는 프로그램을 적어도 볼 만한 프로그램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다. 우선 현재 TV 비평 지형을 형성하는 유력 평론가들을 많이 모셨다. 그리고 발언에 제약을 두지 않기로 약속했다. 또 특정 TV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의 날것 같은 반응을 해당 프로그램의 PD가 지켜보는 코너, 단순 댓글 소개를 넘어 시청자들의 반응을 빅데이터로 보여주는 코너, 담당 PD를 어렵지만 자주 초대해 논쟁에 참여시키는 코너 등 다양한 포맷을 선보였다. <탐나는 TV>는 작은 프로그램이지만 지상파의 공적 의무에 더 기여하는, 사내 제작진이 전보다 관심 있게 보는, 출연자들이 여러 프로그램으로부터 섭외 요청을 받는, 시청자들이 조금 볼 만하다는 반응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성장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외로운 일이었다. 신랄한 비판을 받은 제작진 중에선 ‘팀킬’ 아니냐며 화내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 1년은 새로운 체제가 운영을 시작한 과정이었고 손발이 안 맞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줘야 하는 시간이었다.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기에 비판을 더 따갑게 느꼈다. 한편으론 떨어진 사기를 올릴 위로가 내부적으로 더 필요한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시청률과 댓글을 넘어 시청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종합적으로 보여줘 제작진이 참고할 만한 것을 내놓고자 노력했다. 시청자들의 마음이 조금 더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전달될 수 있게 고민했다. 그럼에도 칭찬은 쉽게 휘발되었고 비판은 오래 남았다.

출연자들과는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다. 평론가, 데이터 분석가, 크리에이터 등으로 구성된 출연진은 시청자들을 대변하기 때문에 나에게 갑이지만, 동시에 그들은 내가 섭외한 출연자로 을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말은 기어이 하겠다며 칼끝을 바짝 세운 그들과 코너별 콘셉트를 생각하며 방향을 잡아가야 하는 나는 매주 미묘한 긴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는 만나면 반가워 덕담도 주고받지만 소위 말하는 친분은 잘 쌓이지 않는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다.

함께 일하는 PD와 작가들에게 기댈 상황도 못 된다. 그들은 우리 프로그램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토크 소재로 삼는 프로그램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두 번째로 생각할 일이다. ‘무제한 자사 비평’이라는 콘셉트를 듣고 모인 이들이니 제작진 스스로도 자존심을 걸고 만들고 싶어 한다. 만들다보면 비판의 대상이 나의 친한 동기일 때도, 존경하는 선배일 때도 있다. 가편집본 시사에 앞서 이런저런 친분을 스치듯 얘기해도 팀원들의 표정이 상하는 것을 느껴 조심하게 된다.

나는 최근 ‘외국인 셰프, 연예인들이 하루만 열었다 사라지는 마법 같은 식당’이라는 콘셉트의 파일럿 <신기루식당>(목요일 밤 10시5분)을 만들어 방송을 앞두고 있다. <탐나는 TV>에서 함께 일하는 PD들과 작가들은 해당 프로그램을 다루는 코너의 경우 패널 선택에서 나를 배제하고 녹화 때도 자리를 비울 것을 요구했다. 또 가편집 시사 때도 빠지고, 프로그램의 하자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최종 시사만 할 것을 요구해 모두 수용했다. 자신이 만드는 비평 프로그램의 도마에 신작을 올린다니 심란하다.

나는 1년간 뜻하지 않은 진한 외로움을 느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뜻하지 않은 평화를 느꼈던 것 같다. 모두에게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선 끝까지 외로워야 하는 상황을 겪어보니, 외로울수록 나는 일이 잘 돌아가고 있다며 안도하게 된다. 오히려 조금 덜 외로워 보자고 움직이면 불안감이 엄습한다.

세속적으로 ‘쓸모없어 보이는’ 적당한 거리 두기가 균형과 질서의 힘으로 작용하는 것을 실감한다. 저널리즘, 비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일하는 사람들은 ‘인싸’를 포기하는 게 숙명인 것 같다. 언론이라는 게 존재감을 얻기 위해 몸부림칠수록 존재감이 사라지곤 하니 말이다. 조직 안에서, 또 개인끼리 서로 너무 위하고 끈끈한 게 문제인 우리 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김신완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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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가르치던 학생 중에 은서(가명)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의 옆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그래도 수업시간에는 매번 학습지를 다 채우고 검사를 받으러 나왔다. 그런 은서가 어느 날 수업 내내 엎드려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은서에게 가서 물었다. “은서야, 왜 오늘은 검사받으러 안 나와?” “어, 선생님 알고 계셨네요.” “그럼~ 너 매시간 필기하고 검사받으러 나왔잖아.” “저 사실은 다음주에 전학 가요. 그런데 아무도 몰라요. 얘기하지 말아주세요.” 은서와 새로 전학 갈 학교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더 나누었다. 

그리고 며칠 뒤 복도에서 다시 은서를 만났다. “은서야, 머리 스타일 바뀌었네?” “어, 선생님 알아보시네요?” “당연하지. 전에는 곱슬곱슬했잖아.” “선생님, 제 머리 곱슬곱슬한 것도 알았어요?” 은서는 내가 말을 걸 때마다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냐고 되물었다. 은서는 자신이 여기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묻고 또 물으면서 스스로 살아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듯했고, 나는 그런 은서를 볼 때마다 그가 달라진 점을 확인해주면서 은서를 응원했다.

영화 '아바타'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들은 ‘사우보나(Sawubona)’라는 인사를 나눈다. 덤불 속에서 부족의 동료들이 보이면 “사우보나!” 하고 소리치는데, 이것은 아프리카 줄루어로 ‘네가 보여’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면 상대방도 “야보 사우보나!” 하고 외치며 “나도 네가 보여”라고 화답해준다. 나비족의 인사에 담긴 서로에 대한 다가감과 환대는 학교에서 안전하고 풍성한 배움의 공간을 만들어갈 때에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너의 지금 모습 그대로도 괜찮으며 너를 환영한다는 것을 학생들이 느끼게 될 때, 그들은 비로소 자신을 믿고 배움의 공간에 참여하게 된다.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은서처럼 ‘나 여기 있어!’라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그들 옆에서 ‘네가 보여!’라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너를 본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데 익숙해져 있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상대방을 비난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특히 교사나 부모들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예의 바르며 공손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학생들의 존재에 다가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교육이란 학생들의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며 누구나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을 때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흉악한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변화와 성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 교육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럼 그렇지. 정말 달라지지 않는군.’ 무의식 중에 이런 판단을 갖고 있는 한, 대부분의 교육적 시도는 실패로 끝나게 되고 오히려 서로에게 미움과 상처만 남게 된다.

타인의 존재를 허용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자신의 기대에 맞추려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 모두에게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고, 실제로도 늘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조금씩 자신과 타인의 존재를 허용하게 되고 서로의 작은 변화에도 주목하게 된다. 자신들의 작은 변화와 성취를 발견하고 기뻐해주는 따뜻한 시선을 경험하게 되면 학생들은 더 잘해보고자 하는 자발성과 책임을 갖게 된다. 오늘 우리 자신과 아이들에게 따뜻한 환대의 인사를 나누어보자. “사우보나, 네가 보여!”

<조춘애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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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연산군을 몰아내려 사람들이 박원종의 집에 모여 불도 켜지 않은 어둠 속에서 수군댑니다. 다들 설왕설래하는데 구석에 앉은 한 사람만 말없이 이쪽을 지켜봅니다. 사람 숫자를 세어보니 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아무래도 염탐꾼이 들어온 것 같소.” 귀띔하니 박원종이 잠시 바라보곤 껄껄 웃습니다. “염탐꾼이 아니라 내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요. 누가 거기에 도포와 갓을 얹었구려!” 이 일화에서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묵묵히 따로 있다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마냥’이 나왔다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박원종은 당시 정2품 중추부지사였고, 지금의 도지사, 군단장, 참모총장까지 지낸 사람입니다. 그런 고위직을 두루 거친 양반이 아무렴 먹을 게 없어 쌀도 아닌 보리를 꾸어다 놨겠습니까? 늘 강조하지만, 유래담 대부분은 있는 속담에 맞춰 지어낸 것들입니다.

보리는 쌀보다 까끄라기가 깁니다. 가볍지만 부피는 더 나가고요. 그래서 쌀자루보다 조금 큰 보릿자루에 담아야 무게가 비슷해집니다(도정 않고 보관하다 밥할 때 절구질로 껍질 벗겼지요). 그런 보릿자루가 서지 않고 앉았다는 건 보리조차 넉넉하게 꾸지 못해 자루가 처져 접혔다는 말입니다. 먹자니 며칠이면 동나겠고 안 먹자니 배고파 죽겠고, 얼마 안되는 그 보릿자루만 바라보겠죠. 그렇게 허기진 갈등 속에 보릿자루는 주둥이 꽉 묶인 채 아가리 한 번 툭 못 엽니다. 입 꾹 닫고 앉아만 있는 사람과 똑같지요. 그리고 ‘배고프다’는 ‘손가락이 곱다’처럼 ‘배가 굽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굶으면 뱃심이 없어 자연 허리가 휘어 배가 굽습니다. 이를 빗대 말할 기운도 없이 굶고 앉은 모습을, 부실하게 꾸어다 놓아 푹 접힌 보릿자루로 표현한 게 그 시초 아닐까 합니다.

명절이면 정치 논쟁과 훈계에 귀가 따갑습니다. 똑똑한 요즘 아랫사람들이 입 꾹 닫고 보릿자루인 건 ‘할많하않’입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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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커리 코원은 브루클린 공원에서 막대기로 ‘무장’한 채 우리 아이 이턴 롱스트리트의 얼굴을 쳤다.” “잠시만요, 무장이라고요? 그냥 ‘가지고’ 정도가 좋겠군요.”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동명 원작을 영화로 옮긴 <대학살의 신>은 아이들 싸움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한 아이의 집에 모인 두 부부 이야기다. 처음에야 걱정과 위로, 사과의 말이 오가지만 이들의 논쟁은 결국 싸움으로 번져 서로의 본색을 드러낸다.

때린 아이의 아빠 앨런은 자신이 변호하는 제약회사가 발매한 혈압약의 부작용을 덮으려 한다. 교양이 넘치는 그의 부인 낸시는 대화 도중 연신 전화를 받는 남편에게 눈치를 주지만, 막상 자신의 명품가방이 내동댕이쳐졌을 때는 예의는 온데간데없다. 맞은 아이의 엄마 페넬로피는 ‘다르푸르 학살 사태’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다. 그러나 실상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고통보다는 낸시의 구토로 더럽혀진 절판된 화집이 더 걱정이다. 그의 남편 마이클은 수익만 좇는 제약회사를 비난하지만, 정작 가족 몰래 햄스터를 내다버린 사실이 들통나 낸시에게 도덕성을 공격받는다.

그렇다. 네 사람은 모두 배울 만큼 배운, 먹고살 만한 미국의 중상류층이다. 영화는 겉과 속이 다른 이들의 위선을 비웃는다. 여기에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아동 성폭행 혐의로 유럽에서 도피 생활을 하고 있는 로만 폴란스키라는 것을 더하면 씁쓸함은 배가된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 영화 얘기를 꺼낸 것은 여태껏 벌어지고 있는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여러 논쟁들이 더 이상 진보·보수나 여야 등 이념이나 진영을 매개로 한 갈등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한 달 동안 가진 자들이 부를 대물림하고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들여다보았다. 어쩌면 위선과 표변을 일삼는 ‘한국 사회 기득권자들에 대한 보고서’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이들의 모순을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녀들이 간파하고 있다는 사실은 당연한 귀결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월가 점령시위 등에서 불평등한 사회를 비판하며 울려퍼진 ‘우리는 99퍼센트다’ 구호에는 대다수의 분노가 집약됐다. 당시 최상위층인 1퍼센트에 대한 비판을 이끌었던 이들은 중상류층 지식인들이었다. 하지만 이젠 불평등 구조를 분석하려면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책임도 빼놓아서는 안된다. 경제학자 리처드 리브스의 책 <20 VS 80의 사회>의 관점을 빌려보자. 리브스는 기존 불평등 담론에서 벗어나 논의의 초점을 20 대 80의 사회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중상류층은 인맥과 연줄을 통해 교육, 인턴, 고소득 일자리 등을 자신의 자녀에게 마련해주고 사회적 지위를 물려주려 한다”며 이를 ‘기회 사재기’라고 부른다. 이는 자녀 세대가 하위 계층으로 떨어지는 위험을 막아주는 ‘유리 바닥’이 된다고 했다. 반면 계층 하부에선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내가 리브스의 주장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지적한 상위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중상류층의 행태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된 현실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 이미 커져버린 불평등의 간극을 좁히려면 나머지 80퍼센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강남 집값 잡기’보다는 차라리 강남에 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서울시도 강남·북 균형발전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다. 지난달 강남에 있는 인재개발원과 서울연구원,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강북 이전을 확정했지만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이 심하다. 

이치는 간단하다. 불평등의 간극은 거저 줄지 않는다. 가진 자들이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리브스의 친구처럼 “나는 평일에는 불평등 문제를 비난하고, 주말과 저녁에는 불평등 강화에 일조해”라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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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해보자. 경향신문사가 외주사업체를 설립해 내가 소속된 토요판팀 등 일부 부서 기자들을 보내겠다고 한다. 기사와 칼럼을 쓰는 업무는 그대로다. 외주사업주는 퇴직한 경향신문사 임원이다. 그는 사업자등록부터 채용·노무관리까지 본사 지침대로 한다. 직무와 관련된 지휘·명령도 본사 편집국장을 거쳐 이뤄진다. 외주사업체에 입사한 나는 1~2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처지가 된다. 견디다 못해 소송을 낸다. 1·2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불법파견이라며 ‘직접고용’하라고 판결한다. 본사에선 기사·칼럼 작성을 원하면 해당 업무를 전담하는 자회사로 가라고 한다. 직접고용을 원하면 신문제작과 무관한 업무를 맡기겠다고 한다. 나는 입사 이후 29년간 뉴스 콘텐츠를 만드는 일만 해왔다. 경향신문사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 것인가. 

답은 자명하다. 경향신문사는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꼼수를 썼다는 비난에 직면하고, 불매운동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대표이사는 고소당해 검경 수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9월12일 ㅊ출처:경향신문DB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곳이 있다. 한국도로공사(도공)다. 톨게이트에서 일하는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원래 도공 정규직이었다. 2000년대 외주화가 시작됐고 이명박 정권 때 모두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후 1~2년, 짧게는 6개월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처지가 됐다. 외주관리자는 대부분 도공 출신 은퇴자들이었다.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2013년 소송을 냈다. 1·2심 모두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도공은 지난 7월 수납 업무 전담 자회사 ‘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출범시켰다. 노동자 6500여명 중 5000명가량이 자회사로 옮겼다. 자회사 전환을 거부한 1500명은 일자리를 잃었다. 상당수가 10~20년 이상 근무해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옥상구조물) 위에서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마침내 지난달 29일 ‘도공은 요금수납원들을 직접고용할 의무가 있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노동자들이 도공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 점, 업무 처리 과정을 도공이 관리·감독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한 노동자들이 사직하거나 해고됐다 하더라도 도공의 직접고용 의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자회사 전환에 반대해 농성 중인 노동자들도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본격적인 귀성 행렬이 시작된 11일 오후 톨게이트 요금수납 해고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경기 성남시 서울톨게이트 10m 높이 옥상구조물(캐노피) 위에 함께 모여 한국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촉구하고 있다.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74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강윤중 기자

노동자들은 환호했다. 추석 연휴를 가족과 보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이강래 도공 사장은 기대를 무참히 배신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시선이 쏠려 있던 지난 9일, 그는 승소가 확정된 노동자 등 499명을 직접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직접고용을 원하는 노동자에겐 버스정류장·졸음쉼터 등의 환경정비(조경·청소) 업무를 맡길 것이라고 했다. 앉아서 일하는 요금수납 노동자 가운데는 장애인이 상당수다. 이들에게 조경·청소 업무를 하라는 건 직접고용을 포기하란 말이나 매한가지다. 수납 업무를 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자회사로 가라는 압박이다. 

분노한 노동자들은 경북 김천의 도공 본사로 달려가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농성 이틀째인 지난 10일, 경찰은 건물 주변에 에어매트를 까는 등 강제해산 시도에 나섰다. 대다수가 40~50대 여성인 노동자들은 “몸에 손대지 말라”며 일제히 ‘상의 탈의’로 저항했다. 눈물과 비명과 절규가 이어졌다. 1976년 같은 이유로 상의 탈의 시위를 했던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을 연상케 했다. 놀란 경찰은 진압을 보류했다.

도공 측은 1·2심 계류 중인 1000여명과는 소송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전국에 산재한 도공 영업소를 통일적으로 운영·관리할 필요성”이 있었음을 인정했고,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다. 서울톨게이트 영업소에서 불법파견이 이뤄졌다면, 다른 지역 영업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가 수립된 만큼 하급심에서도 도공이 패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도공은 확정판결 받은 노동자와 1·2심 중인 노동자를 갈라치고, 환경정비 업무를 받아들이는 노동자와 자회사로 가는 노동자를 갈라치려 하고 있다. 시간을 끌수록 ‘노·노 갈등’을 부추겨 저항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도공은 공공기관이다. 사기업보다 모범적인 사용자의 모습을 보여야 옳다. 요금수납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는 것은 대법원 판결에 따른 당연한 조치다. 원래 정규직이었던 만큼, 특혜도 아니고 원상회복일 뿐이다. 이강래 사장은 즉각 노동자들과 교섭에 나서야 한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도공 본사 농성을 강제해산할 생각을 접어야 한다. ‘43년 전 동일방직’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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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고 했다. 추석 기념으로 이렇게 비틀어 보면 어떨까. 텔레비전은 방에 걸린 최신식 달이다. 올 명절에도 둥근 달은 물론 네모난 달을 많이 보았다. 채널을 돌리다 걸린 <대서사시 옐로스톤>의 한 대목에 잠자리가 등장했다. 3억년 전 진화를 거친 끝에 생명체 중 가장 먼저 공중을 날아올랐다는 잠자리의 시야는 360도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 눈으로 멀리 지나가는 먹잇감을 포착해서 재빨리 낚아챈다. 연이어 시청한 영화 <마션>의 한 컷. 화성에 홀로 고립된 동료를 지구로 데려오기 위해 우주에서 필사적으로 도킹하는 장면은 잠자리의 그것과 어쩌면 그리 물리적으로 비슷한가.


떼 지어 나는 새 고향으로 돌아간다. 세상이 북적거려 계절마다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 가는 행로가 맞는가. 새들도 불안한지 주소를 주고받는다. 끼룩낄룩 낄룩끼룩. 제사 지내고 허전한 마음 달래려 자유로를 달렸다. 하늘처럼 땅도 평소와는 퍽 다른 풍경이다. 임진각은 망향객으로 몹시 붐빈다. 자격 없는 나는 화석정으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율곡의 한시와 우람한 느티나무를 일별하는데 수령 267년의 향나무 아래에서 이것 좀 보라며 아내가 소리를 친다. 우주선, 아니 헬리콥터를 빼닮은 잠자리를 기대했더니 반짝이는 날개를 단 개미들이다. 수피는 적갈색이고 껍질이 길게 벗겨지는 향나무. 이 나무로 만든 연필은 향기도 좋았지. 그 미끄러운 줄기를 운동장처럼 가지고 노는 개미들. 나무에 난 작은 구멍을 중심으로 개미들이 병목현상이나 충돌사고도 없이 분주히 들락날락거린다. 


쓸쓸하자고 추석은 마련되었는가. 문득 흘러가는 것들을 관찰해본다. 하늘에는 구름, 임진강에는 물, 국도에는 차 그리고 향나무에는 개미들이 어디론가 가는 중! 이 묵묵한 풍경에 일조하는 향나무는 입도 없지만 발도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만 하지는 않았으니 옆으로 내달리며 굴러떨어지는 것들과 달리 나무는 가장 천천히 정면으로 걸어간다. 내년에도 무사히 내 그늘로 오시게. 서로 닮은 얼굴들에 비슷한 걸음걸이로 곧 흩어질 대가족을 굽어보면서 향나무는 묵직한 한 걸음을 하늘로 내딛고 있었다. 향나무, 측백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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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일관계가 경색된 원인으로 어떤 이들은 2018년 10월30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들지만, 이것은 단순히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 기업이 1억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라는 시대의 목소리이며,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는 구호가 말로만 그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한·일 양국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는 역사적 판결이 되었다. 

전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냉전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미·일동맹의 하부구조로 강요되었던 한·일동맹이 사실은 매우 불편한 동거였으며 이대로 더는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멀리 베를린 장벽에서 시작된 냉전 해체의 바람은 오랜 시간이 걸려 극동(極東)의 비무장지대까지 불어왔다. 그간 우리는 안으로 민주주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싸우고, 밖으로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분투해왔다. 시간이 흘러 지난 6월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만남이 이루어졌다. 바야흐로 한반도의 해빙이 시작된다고 환호하던 바로 다음날 일본의 아베 정부는 한국에 대해 반도체 제조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했고, 결국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배제했다. 

우리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이후 더 연장하지 않기로 하자 미국 정부는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아베 정부가 한·일관계를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로 되돌리겠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외교적 패착을 둔 상태에서 미국 정부가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는 일본에 기운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들은 과거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애치슨라인 때부터 미국이 한국을 홀대해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는 최근 중국이 우리에게 보이는 태도와 비교된다. 지난 9월11일 인천에서 개최된 새얼아침대화 400회 기념 조찬강연에 강사로 초빙된 추궈훙 중국 대사는 일본 정부의 대한국 수출규제와 관련해 “역사 문제를 경제제재로 풀 수 없다”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이나 피해자(한국)가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한다 하더라도 가해자(일본)는 겸허하게 대해야 한다. 최근 급격히 우경화하고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은 주변국들에 큰 우려를 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수출규제에 대해 한국인들의 사려 깊고 이성적인 태도는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주전장' 포스터. 사진제공 시네마달

미키 데자키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주전장(主戰場)>에서 아베 정부의 각료는 물론 자민당 의원 중 많은 수가 소속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회의의 대표위원 가세 히데아키는 “중국은 조만간 붕괴할 것이고 그러면 한국은 일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세상에서 가장 친일적인 훌륭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한국은 정말 귀여운 나라예요. 버릇없는 꼬마가 시끄럽게 구는 것처럼 정말 귀엽지 않나요?”라고 말했다. 그 대목에서 카터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했던 브레진스키가 작고하기 전 마지막으로 펴낸 저서 <전략적 비전(Strategic Vision)>이 떠올랐다. 그는 이 책에서 미국의 전 지구적 영향력 쇠퇴를 예측하면서 한국에는 중국과 함께 갈 것인가, 일본과 함께 갈 것인가, 그도 아니면 홀로 갈 것인가 세 가지 길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이자 문명이었던 중국의 흡입력을 5000년간 버텼고, 대륙을 넘보는 일본의 잦은 침략을 견뎌냈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민족이 두 동강 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평화를 추구해 오늘의 위치에 이르렀다. 지난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말했다. 하지만 아직 미국의 전 지구적 영향력은 쇠퇴하지 않았고, 미래의 우리가 누구와 함께 갈지 결정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홀로 가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어려움과 맞닥뜨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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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피의사실 공표를 막기 위해 ‘인권보호수사공보 준칙’을 없애고 대신 ‘형사사건공개금지 규정’을 훈령으로 제정키로 했다. 수사기관은 형사사건의 범죄사실·소환 일정 등을 기소 전까지 원칙적으로 언론 등에 공개할 수 없고, 피의자를 언론 앞에 세우는 ‘포토라인’ 관행도 없애겠다는 것이다. 피의사실을 공개한 검사·수사관에 대한 처벌조항도 신설키로 했다. 이는 무죄추정 원칙을 존중하고, 피의자 인권과 개인정보 등 사생활을 엄격히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당연한 조치다.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논란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검찰은 통상 대검기획관 또는 지검차장 브리핑 등을 통해 수사 내용을 언론에 알렸고, 언론은 알권리 차원에서 이를 보도해왔다. 검찰이 특정 언론사에 수사 내용을 흘리는 사례도 빈번했다. 이로 인해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한 형법 제126조는 무력화됐고, 여론재판에 내몰린 피의자 인격은 무참히 짓밟히기 일쑤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논두렁시계 사건’이다. 이후 피의자 인권보호를 위해 만든 것이 수사공보준칙이다.

하지만 이 준칙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준칙이 제정된 2010년 이후 피의사실 공표로 수사기관에 접수된 사건은 293건에 달했다. 그러나 이 중 단 한 건도 기소되지 않았다. 이를 감안하면 법무부가 훈령을 제정하겠다는 취지는 이해가 된다. 또한 피의사실 공표 금지는 현재 누가 수사를 받고 있느냐에 구애받지 않고 준비되는 대로 시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훈령의 시행 시기 등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검찰은 지금 조국 법무부 장관의 가족을 둘러싼 의혹들을 수사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조 장관 본인이 수사대상이 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가 훈령을 시행할 경우 오해와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일각에선 형평의 문제도 제기한다. 이 정권 들어 진행된 적폐 수사 당시 검찰이 피의사실을 흘릴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훈령을 제정하겠다는 것은 검찰 수사 압박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가 끝난 뒤 훈령을 만든다면 오해도 벗고 ‘검찰개혁’도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훈령 내용 역시 정교한 검토가 요구된다. 중대 범죄자나 공인에 대한 수사 내용의 공개는 국민 알권리 보장 측면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도 충분한 증거와 무죄추정 원칙을 준수할 경우 피의사실 공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수사 내용 공개를 무조건 금지하게 되면 ‘밀실수사’ 등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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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청와대 앞에서 삭발했다. 황 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헌정유린 중단과 조국 파면을 촉구한다”고 했다. 한국당은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1000만명 서명운동에 들어가고, 주말마다 대규모 장외투쟁도 예고하고 있다. 한국당의 한 여성 의원은 삭발을 먼저 했고, 또 다른 의원은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황 대표는 “야당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뼈아픈 반성을 했다”고 말했다. 느닷없는 삭발은 무력한 야당에 대한 비판과 반성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이런 투쟁이 지지자들의 속은 뻥 뚫어줄지 모르지만, 다수 시민들도 수긍할지는 의문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6일 오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문재인 정권의 헌정 유린 중단과 조국 법무부 장관 파면’을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9월 정기국회는 의사일정에 합의하지 못해 17일 예정된 교섭단체대표연설이 무산됐다. 야당은 조 장관이 국회 연설에 참석하는 것에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20대 마지막 정기국회는 시작도 하기 전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추석 연휴가 끝났지만 정치권은 아직도 ‘조국 정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영 갈등도 최고조에 달한 모습이다.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검찰 수사는 사모펀드 핵심 인물로 알려진 조 장관 5촌 조카의 신병확보로 의혹의 정점을 향하고 있다. 펀드 투자에 조 장관의 영향력이 미친 것 아닌지를 밝히는 게 수사의 초점인 상황에서 의혹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다. 한국당도 수차례 이런 검찰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한 특별수사단을 타진하자 강력 반발했던 것도 현 수사 라인이 잘하고 있다고 나름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조 장관에 대한 문제는 검찰 수사에 맡기고 그 결과를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 여야 어느 당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무당파가 38.5%로 늘어났다고 한다. 조국 사태 이후 여당을 지지하던 중도층 일부가 돌아섰지만 한국당 지지율은 되레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정권에 실망했지만 한국당도 싫다’는 의미로 분석하고 있다.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대립은 정치가 아니라 정쟁이다. 시민들이 바라는 건 조국 사태의 진실은 검찰에 맡기고 민생을 살리는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다. 투쟁은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온 뒤 해도 늦지 않다. 먹고사는 게 급한 시민들 입장에선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삭발이고, 무엇을 위한 국회 올스톱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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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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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사업이 백지화됐다. 정부가 케이블카 설치에 최종 ‘부동의’ 의견을 밝히며 사업 승인 이후 4년여를 끌어온 논란이 종지부를 찍게 됐다. 늦었지만 원칙을 지킨 올바른 결정이다.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원주청)은 16일 설악산 오색삭도(케이블카) 설치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결과 “사업 시행 시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고, 환경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 ‘부동의’한다”고 밝혔다. 원주청이 검토한 환경영향평가서는 강원 양양군이 2016년 11월 제출한 평가서에 국립공원위원회와 국회 지적사항 등을 반영, 2년6개월간 보완작업을 거쳐 지난 5월 제출한 것이다. 원주청은 멸종위기종 보호대책과 상부정류장 주변 식물 보호대책 등이 충분치 않아 설악산의 동식물과 지형 등 자연환경을 크게 훼손할 것으로 예상돼 사업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봤다. 환경부 장관은 이날 오색 케이블카 설치사업 ‘부동의’ 의견을 양양군에 통보했다.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관계자들이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 대한 정치 개입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법과 기준에 따라 결정되도록 보장하고 정치적 개입과 외압 없이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권도현 기자

설악산 케이블카는 양양군이 2011년 설치 계획을 마련한 이후 오랜 기간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 부결됐다가, “조기에 추진됐으면 한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한마디로 2015년 7가지 조건을 전제로 국립공원위원회로부터 허가받았다. 부대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했고, 해당 지역이 5개 보호구역(국립공원, 천연보호구역,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지역)으로 중복 지정된 곳인 만큼 엄격한 평가를 거쳐야 했지만, 단계마다 억지논리와 엉터리 보고서까지 동원되며 조작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노선도. 환경부 제공

충분한 보완 기회가 있었음에도 결국 우려를 해소하지 못한 만큼 부동의 결정은 당연하다. 이번 결정은 향후 개발과 환경이 충돌할 때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친환경’은 타협할 수 없는 세계 공통의 가치이며, 무조건적인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은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오랜 기간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며 사업을 추진한 지역사회에도 장기적으로는 개발이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정부는 낙심한 주민들을 위로하고 가치와 충돌하지 않는 경제활성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번 결정이 사회 구성원 전체가 미래지향적 가치와 원칙을 지키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고민하는, 한 단계 높은 도약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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