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사업장의 갈등을 보면 우리 사회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1500명 집단해고 사태가 그렇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확산·고착된 지 20년이 지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커졌고, 정규직은 또 하나의 기득권이란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됐다.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은 직접고용 형태로 일하다 외환위기 이후 외주용역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도로공사는 퇴직자들을 외주용역 수납원들을 관리하는 영업소 사장으로 들여보내 정규직의 노후 보장 저수지를 만들었다. 비정규직이 된 요금수납원은 해마다 계약 해지 등으로 수백명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도로공사는 우리와는 상관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추진됐다. 도로공사는 추진과정의 전략단위로 선정됐다. 요금수납원의 특수성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는 도로공사 직원’이라는 판결을 구하는 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해, 1·2심 모두 승소하고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었다. 정부는 도로공사 수장으로 이강래 전 의원을 임명했고, 정규직 전환 추진은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다.

본격적인 귀성 행렬이 시작된 11일 오후 톨게이트 요금수납 해고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경기 성남시 서울톨게이트 10m 높이 옥상구조물(캐노피) 위에 함께 모여 한국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촉구하고 있다.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74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강윤중 기자

그러나 이강래 사장과 정규직의 기득권 유지 욕심이 카르텔을 형성하며 일이 틀어졌다. 코앞으로 다가온 대법원 판결 결과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회사 설립을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다. 이강래 사장은 자회사 전환으로 정규직화 실적을 포장했다. 정규직노조는 6500명의 요금수납원이 직접고용되면 자신들의 임금과 교섭대표성 등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했다. 이때부터 매우 집요한 자회사 회유, 협박이 진행됐다. 요금수납원들에게 법적 소송 포기 각서까지 받았다. 

노사 합의에 의해서 자회사 전환이 진행됐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노동자 대표들 대부분이 급히 선정된 무노조 대표로 현장 의견을 제대로 수렴했는지 의문이다. 심지어 정부에서 파견한 전문가 위원들은 자회사에 반대해 회의장을 이탈했다. 그러나 결국 1500명이 자회사를 거부하고 해고됐다. 대법원은 요금수납원이 도로공사 직원이고 이들을 직접고용하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1500명 전체를 직접고용하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강래 사장은 소송이 진행 중인 나머지 요금수납원들에 대해 법적 절차를 또다시 밟겠다는 입장이다. 천문학적인 법적 소송비용과 손해배상 비용을 낳을 것이다. 모두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1500명의 요금수납 업무 공백을 메우는 비용 역시 세금이다.

현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해결방안을 교섭으로 풀자며 본사를 찾아가 이강래 사장을 기다리고 있다. 정규직노조는 목검과 죽도를 들고오기도 하고, 경찰과 합세해 요금수납원들을 진압해, 요금수납원들이 상의 탈의 저항까지 하게 만들었다. 1970년대 발생하여 전 국민을 충격과 분노로 들끓게 했던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 탈의시위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이는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 됐다.

공공기관인 도로공사는 대법 판결을 피해가기 위한 탈법 의도로 자회사 설립을 추진했다. 정규직노조는 기득권 유지를 위해 합세했다. 마지막으로 사법 판단을 가장 올바르게 수행해야 할 청와대와 정부는 사태 해결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법적 최종 판결에서 이겨도 싸워야 하고, 고통받아야 하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한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이 임명한 이강래 사장이 수장인 한국도로공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양진 |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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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은 하루에 0.35㎜가 자란다. 1년 동안 자란 한 사람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이어붙였을 때 총길이는 10㎞나 된다. 이렇게 끝없이 자라는 탓에 고대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생명 순환의 상징이라고 봤다. 또 머리카락이 인간과 신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여겨 아즈텍족의 제사장은 머리카락을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길게 늘어뜨렸다. 바빌론 시대엔 영웅의 조건이 건장한 신체, 긴 머리카락이었다. 바빌론의 영웅 길가메시가 병을 얻어 탈모가 생기자 장거리 여행을 떠나 머리카락이 다시 나길 기다렸다는 얘기도 있다. 황제를 가리키는 ‘카이저’, ‘차르’는 본래 머리카락의 숱이 아주 많거나 긴 머리카락을 뜻하는 낱말이었다.

이처럼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머리카락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보니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은 오랫동안 어떤 의식과도 같았을지 모른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10여 년 전에 서울 정독도서관 앞에는 50년이 넘은 이발소가 있었다. 벽에 매달린 삼색 기둥이 빙글빙글 돌아가던 이발소의 새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바닥에서 절대로 떨어질 것 같지 않은 육중한 이발 의자의 가죽은 반질반질 닳아 있었고, 세면대는 목욕탕처럼 작은 타일을 붙여 만든 것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나라 제2호 이발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백발의 이발사가 흰 가운을 입고 가위질을 하는 모습은 그저 머리카락을 자르는 게 아니라 엄숙한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다. 그의 가위질은 신중하고 진지해서 정말 한 올 한 올 집어 잘라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손님에게 맞는 스타일을 잘 읽어내 머리를 깎은 사람마다 흡족해했다. 이제 그 오래된 이발소는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로 옮겨졌고, 이발사는 가위를 놓은 채 노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여의도에서 삭발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늙은 이발사의 신념에 찬 가위질이 생각났다. 삭발은 가위질을 당하는 이의 신념을 드러낸 지 오래, 하지만 그것은 이 세상과 싸울 수 있는 수단이 몸뚱어리밖에 없는 약자들의 신념이며 항거다. 그런데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이 모여서 머리나 밀고 있으니 힘써 일하라고 준 세금이 아까워진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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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중 한 구절이다. 사람들은 이를 향후 대통령의 국정 운영 원칙으로 받아들였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 당시 이 말이 유독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건, 그 믿음이 배신당했다고 여겨서였다. 불과 2년여 만에 대통령이 확 달라지기라도 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다음과 같은 가능성도 있다. 자녀교육, 재산증식, 가족관계는 물론 민정수석 업무에서마저 무능하기 짝이 없는 조국이 사법개혁 면에서는 이 나라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능력자일 가능성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지지율에 신경을 쓰는 대통령께서 인기 하락을 감수하면서까지 조국을 임명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난 조 장관이 펼칠 사법개혁이 어떤 것인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어쩌면 향후 100년 정도는 건드리지 않아도 될 만큼 대단한 사법개혁을 할 수도 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대한민국의 큰 행복이며, 과반수의 국민이 조국을 반대하고 문 대통령까지 싸잡아 비판한 일은 대한민국의 ‘흑역사’로 남을지도 모른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조국으로 인해 얻는 이득은 이것만이 아니어서, 얼핏 떠오르는 것만도 2만개가 넘는다. 그중 네 개를 여기 소개하는 까닭은 아직도 조국을 반대하는 시대착오적인 분들이 마음을 고쳐먹길 바라서다. 

첫째, 누구나 장관이 될 수 있게 해줬다. 2000년 도입된 인사청문회는 장관에 뜻은 있지만 청렴한 삶을 살아오지 못한 이에게 눈엣가시였다. 수많은 이들이 이 덫에 걸려 낙마했고, 제도가 정착되면서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면 장관을 꿈도 못 꾸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조국은 이들에게 희망을 줬다. 의혹은 모른다고 잡아떼면 되고, 인사청문회는 안 하거나 약식으로 해도 된다. 설령 야당의 반대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대통령이 그냥 임명하면 되니 말이다. 이건 다 조국의 공이다.

둘째, 시위가 줄어든다. 시위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보는 이도 있겠지만, 사실 시위야말로 시대착오적이고 비효율적인 행위다. 날도 더운 여름에 촛불을 들고 서 있는 것도 어이없지만, 가장 큰 비효율은 시위장소 주변 길이 막히는 것이다. 그 인근에서 약속을 했다가 늦는 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 다들 한 번씩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시위의 자격이 엄격히 제한됐으니 말이다. 서울대생들이 조국 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을 때, 사람들은 그들을 나무랐다. “너희는 왜 나경원 아들한테는 시위 안 하니?” “너희들 김성태 딸 때는 촛불 들었니?” 이제부터 시위는 다른 모든 적폐들에 맞서 싸웠던 사람만 할 수 있게 됐는데, 문제는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참지식인 유시민의 발언 이후 마스크를 쓰고 시위에 나가는 것도 어려워졌으니, 자격을 갖춘 이가 있어도 선뜻 나서기 꺼려진다. 그 결과 시위는 사라지고 길이 막히는 일이 더는 없어질 터, 이것 역시 조국의 공이다.

셋째, 대한민국이 화합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문 대통령의 극성 지지자를 뜻하는 문빠들은 그간 은근히, 아니 대놓고 박사모를 무시했다. 그럴 만도 했다. 적폐의 상징인 대통령이 탄핵되고 또 구속되는 와중에 자택으로 몰려가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하다며 절을 했고, 심지어 그를 ‘공주마마’라 부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국 임명 과정에서 관찰한 문빠들의 언행은 박사모와 아주 흡사했다. 조국에게 불리한 소식은 다 가짜뉴스로 몰아붙이는 것도 그렇지만, 자신들이 열렬히 환영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을 조국을 수사한다는 이유만으로 적폐 취급하는 장면은 희대의 코미디였다. 그간 대한민국의 갈등이 문빠와 박사모 간의 지나친 다툼에서 비롯됐다면, 조국의 장관 임명은 두 집단이 동류임을 알게 해줌으로써 친하게 지낼 수 있게 해줬고, 그토록 바라던 하나 되는 대한민국의 가능성도 열어줬다. 조국이 법무장관이 되지 않았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넷째, 증권사 직원이 컴퓨터 전문가임을 알게 해줬다. 컴퓨터에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AS 기사를 부른다. 그런데 AS 기사는 바쁘고, 출장 서비스엔 돈이 든다. 할 수 없이 무거운 컴퓨터를 들고 수리센터에 가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PC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눈물을 삼킨 기억, 다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증권사 직원에게 부탁하면 된다. 그들은 가까운 곳은 물론, 경북 영주 정도 되는 먼 곳도 직접 차를 몰고 출장을 나가준다. 컴퓨터의 문제가 주로 하드에서 발생하는데, 하필이면 증권사 직원들은 하드 교체의 달인이다. 돈도 줄 필요가 없다. “도와줘 고맙다”고 덕담만 해주면 아주 좋아한다. 컴퓨터로 일하는 수많은 이들이 어려울 때 신속한 도움을 청할 곳을 찾은 건 누가 봐도 대한민국의 이득이며, 이는 조국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다. 

이제 대통령이 국정철학을 거스르며 조국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한 깊은 뜻을 알았으리라. 그러니 인터넷에 악플을 다는 대신 밖에 나가서 대통령 만세를 외치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사법개혁이란 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여 구체적인 성과가 없다 해도 조국을 욕하는 대신 자유한국당을 소환하자. 그건 지난 정권에 쌓인 적폐가 워낙 거대한 탓일 뿐, 조국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 절대 아니니 말이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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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를 결정하는 주요 층위로 인식되는 무당파 및 중도 유권자의 특성에 관한 정치행태 연구들은 유의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핵심은 무당파와 중도층이 동질의 집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도 유권자는 ‘무정향’, 무당파는 정당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 ‘무태도’(non-attitudes)와 ‘부정적 태도’(negativity)의 차이는 분명하다. 무당층은 정치적 무관심층이 아니다.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것이지, 정치에는 참여하는 행동파다. 선거에서 그들의 ‘기권’ 행위는 적극적 의사 표출이다.

역대 총선에서 가장 투표율이 낮았던, 바꿔 말해 기권율이 제일 높았던 때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이다. 투표율은 46.1%에 불과, 대의민주주의 위기 논란을 일으킬 정도였다. 17대에 비해 14%포인트 감소했고, 그 4년 후 19대 총선(54.2%)과 비교해도 도드라진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18대 총선 5개월 전 2007년 대선에서 ‘역대 가장 흠이 많은 대통령 후보’ 이명박은 500만표 차로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전체 유권자 대비 득표율은 30.5%로 최저에 그쳤다. 당시 노무현 정권에서 이탈한 무당층이 대거 투표 기권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실제 2008년 총선 뒤 야권의 비전이 보이지 않으면서 한동안 무당층은 40%대를 넘어 50%를 넘나들었다. 이명박 정부 실정에 실망한 중도층이 야권 지지로 옮기지 않고 무당층으로 이동해서다.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무당층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추석 민심’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SBS·칸타코리아 여론조사에서는 무당층이 38.5%에 달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 긍·부정을 합치면 95%, 조국 법무장관 찬반 여론도 합치면 90%를 넘는다. 한데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합쳐서 50~60%대다. 기성 정당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지닌 무당층이 격증했다는 얘기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찍은 유권자의 한편이 허물어졌으나, 이탈한 그들이 ‘도저히’ 한국당을 향하지 못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제3지대 역할을 해야 할 바른미래당과 정의당도 유인 매력을 상실했다. 정녕 정당정치의 디스토피아로 일컬어지는 ‘무당파 제1당 시대’가 다시 도래하고 있는지 모른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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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과정과 관련해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중에서 핵심적인 것은 공적인 발언과 행동에서 그렇게 도덕성과 공정성을 외치던 사람이 사적으로 정반대되는 되는 행위를 하는 이중성일 것이다. 조국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견해, 그가 대표하는 ‘386세대’의 구조적 모순 등 이를 설명하려는 시도 역시 많이 제기되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보통사람과 달리 유난히 도덕성과 공정성을 외치던 사람이 어떻게 그 정반대되는 행위를 하고도 장관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이다.

이런 주장들은 모두 일리가 있지만 한국 사회가 이러한 행동에 익숙할 수 있는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한국 사회는 고도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했다. 그 수단 가운데 혈연, 학연, 지연으로 연결되는 신가족주의 구조와 행태가 나타났다. 한국 사회는 계급화도, 계층화도 아닌 눈에 보일 정도로 크지도 않고 상당히 유동적인 혈연, 학연, 지연의 단위가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영향을 끼쳐왔다.

조국 법무부 장관(오른쪽)이 17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예방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권호욱 기자

이렇게 미시적으로 전개되는 신가족주의의 행태는 밖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나 법 밖의 영역에서, 국가적 차원이나 각종 경제 단위 및 사회적 차원에서 무차별적이고 일상적으로 일어나 아주 자연스럽고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이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혈연에 입각한 가족주의다. 가족주의는 정상적인 가족애 차원을 넘어 배타성을 띠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일그러진 모정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드라마에서 흔히 나타나는 대사 중 ‘엄마니까 자식을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모정의 반사회성이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이런 신가족주의의 행태는 교육수준과 관계없이 나타난다. 오히려 고학력일수록 더욱 심할 가능성이 높다. 교육수준이 도덕성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교육 그 자체는 도덕성을 보장할 수 없는 도구에 불과하다. 고학력자가 오히려 도덕 불감증에 빠질 수 있는 배경이다. 더욱이 여야, 보수 진보, 노조 등 조직과 성향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국 청문회는 이런 한국 사회의 배경을 잘 보여주었다. 고학력자인 부부가 어떻게 배타적 가족주의를 실천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스펙을 쌓는 데는 대학교와 국민(초등)학교 동창관계가 그 배경에 있고 자금관리에는 5촌이 개입된 정황이 드러났으며 사학재단은 아예 가족경영이 그 핵심이었다. 가족을 위해서, 특히 자식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든지 관계없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일그러진 모정의 단적인 사례다.  

대외적으로 큰 명분을 위해서 싸워왔던 조국 장관이라 할지라도 신가족주의 관행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그의 몸속에서 체화되고 일상화되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한국 사회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새로운 재능을 찾겠다는 미국식 제도의 무차별적인 도입은 오히려 신가족주의 관행을 합리화해주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가족주의의 행태가 대외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개인과 가족을 분리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족주의가 그러한 분리를 용인하기 때문이다. 청문회 과정에서 여당 측이 한국적 사회의 특수성을 외면한 채 법 논리로 후보자 개인과 그 가정을 분리하려는 노력에서, 문제가 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법적 형식주의를 논하는 한국적 이중성을 다시 보게 된다.

이런 배타적 가족주의는 산업화 시대를 넘은 시장주의의 환경에서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이전엔 국가로부터 특혜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인 신가족주의는 시장에 가져오는 불안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변모하고 있다. 최근 서울 지하철노조에서 보여준 가족 챙기기, 자식의 취직을 둘러싼 인사비리, 자식들을 연구에 끌어들이는 행위 등이 이의 좋은 사례다.

왜곡된 가족주의는 한국 사회를 개인주의가 아닌 사욕주의 사회로 내몰고 있다. 개인주의가 타인과의 적정거리를 인정하고 타인의 이익을 인식하고 있다면 사욕주의는 철저히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배타성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사욕주의는 철저한 법 집행에도 불구하고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시민사회, 즉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사회성이 보장되지 않고는 어렵다. 뉴욕에서도 유태인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세다고 한다. 우리와의 차이점은 학교 전체를 개선하여 자식들이 덕을 보게 한다는 것이다. 조국 사태가 일회성 스캔들에서 끝나지 않고 가족주의에 기반한 사욕주의를 극복하는 기폭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용출 | 미국 워싱턴대 잭슨국제대학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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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야 놀자>라는 제목의 그림책이 있다. 일전에 한 선배 선생님의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그분이 책장에서 꺼내 보여주셨다. 

첫 페이지를 넘기면 여름날 바닷가에 작은 여자아이가 서 있다. 바다를 처음 본 것인지 표정이 상기된 아이는 엄마 손을 놓고 뛰어간다. 넘실대는 물살에 겁을 먹었다가 주저앉아 파도를 관찰하기도 하다 용기 내어 물가로 다가선다. 물에 발을 담그더니 이내 참방참방 물장구치면서 아이는 신이 난다. 밀려가는 파도를 쫓아 달리면서 ‘메롱’ 약을 올리기도 한다. 그러다 ‘나랑 놀자’ 하듯 되돌아온 커다란 파도더미에 옷을 적신다. 

이 부분까지 이르렀을 때였다. 글자는 없고 그림만 나오는 페이지들을 휙휙 넘기던 내게, 선생님이 그림책은 그렇게 보는 게 아니라고 일러주셨다. 한 장면씩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오롯이 읽힌다고 말이다. “여기서 유심히 보면 어딘가 바뀌어 있지 않나요?” 아아, 그제야 내게도 보였다. 아이가 바닷물에 흠뻑 젖은 다음 장면에서 이제껏 내내 하얗던 하늘색이 바다 빛깔로 바뀌어 있었다. 파도를 온몸으로 대해본 아이의 세계가 파도의 푸른빛으로 물든 것이다. 

그때 생각을 했더랬다. 우리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 관계 맺는 과정이 저 꼬마가 파도와 친해지는 과정 같지 않을까 하고. 경계심으로 뒷걸음치다 호기심이 일어 손 내밀었다가, 이리저리 살피기도 하고 한 발짝 다가가 보기도 하고 말이다. 그중 유달리 각별한 대상과의 관계에서는 상대방이 파도더미처럼 나를 휘감아 부지불식간에 흠뻑 적셔지는 순간이 찾아들기도 한다. 그 감정이 우정이든 연정이든 동경이든, 자신에게 유일무이하고 대체 불가능한 어떤 대상의 존재감이란 그런 것 아닐까. 그가 지닌 고유한 빛깔이 나의 하늘을 물들이는 것. 다듬어진 대사나 정제된 설명 한 줄 없이 흰색과 파란색 물감만으로 그런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음이 경이로웠다. 책 이름을 외워 와서 나도 한 권 구입했다.

그 책이 다시 생각난 것은 그해 겨울,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보면서였다. 머리카락을 파랗게 물들인 매력적인 화가 엠마로 인해 연인 아델의 삶이 푸른빛으로 채색되는 과정을 지켜보다 ‘상대가 지닌 고유한 빛깔로 나의 하늘이 물드는’ 그림책 속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동일한 설정이, 그런데 이번에는 경이롭지 않고 슬펐다. 극중 엠마의 관심이 다른 이에게로 향하고, 둘의 관계가 흔들리다 깨어진 이후에도 아델의 세계는 여전히 푸른색이었으니까. 그녀가 살아내야 할 하루하루는 상대방이 새겨넣어준 빛깔 그대로였으니까.

시간이 흘러 아델과 재회한 엠마는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지만 너에 대해 무한한 애틋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네가 귀찮았던 적 없다고. 하지만 막상 푸른색 옷으로 한껏 단장한 아델이 본인 전시회에 찾아오자 엠마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그녀가 진정 귀찮지 않은 존재가 되려면 아름답던 시절의 색채와 ‘돌이킴’에 대한 가느다란 기대마저 내려놓아야 했던 것이다. 그게 마음 아팠던 나는, 그날 밤 돌아와 괜히 그림책만 책장에 거꾸로 뒤집어 꽂았다.

얼마 전 책장 정리를 하다 그 책을 오랜만에 펼쳐보았다. 파도가 모래사장으로 밀어다놓은 조개껍질과 소라고둥을 갖고 노는 아이 머리 위로 하늘이 여전히 파랗게 빛나는 후반부 페이지들에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귀찮지 않은 존재가 되고자 애써 자신의 하늘에 흰색 물감을 덧칠해야 할까. 가능하긴 한 일일까.

기뻐 어쩔 줄 몰랐던 찰나부터 가장 작은 배움의 조각까지, 이는 파도가 선물한 조개껍질과 소라고둥인 셈이다. 하나도 버리지 않겠다. 각별했던 존재들이 파도더미를 일으키며 되돌아오지 않아도, 어쩌지 못할 기대가 또 깨어져도, 그들이 한때 각인해 놓았던 푸른빛 흔적을 억지로 지우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숲을 만나면 자연스레 초록이 덧대어지고, 밤에는 예쁜 먹색을 입기도 할 것이며, 맞갖은 때에 이르면 알록달록한 빛깔도 얻을 테니 말이다. 

조개껍질과 소라고둥의 선물들을 품고, 여전히 파란 물감이 칠해진 나의 세상에서 나는 매일의 걸음을 걷겠다.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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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생했다. 17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날 경기 파주시의 한 양돈농가에서 어미돼지 5마리가 폐사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이에 따라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정밀 검사를 해보니 아프리카돼지열병 양성으로 확진됐다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확진 즉시 위기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곧이어 전염병 발생 농장과 이 농장 주인이 소유 중인 또 다른 2개 농장의 돼지 3950마리를 살처분했다. 이와 함께 전국 돼지농장, 도축장, 사료공장 등을 대상으로 전국 일시 이동중지 명령을 내렸다. 전염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비상조치에 나선 것이다.

당국이 최고 수준의 대응에 나선 이유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산될 경우 재난 수준이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치사율이 100%에 이르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다. 그래서 대부분 국가에서 살처분 정책에 의존한다. 만에 하나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퍼지면 대량 살처분은 물론 돼지고기 가격 폭등은 불문가지다. 우리는 구제역으로 돼지 348만마리가 살처분된 2010~2011년에도 40% 이상의 돼지고기 가격 인상을 경험한 바 있다. 전염 확산을 막는 방법 외의 대책은 없다.  

17일 돼지 전염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경기도 파주시의 한 양돈농장에서 귤삭기들이 야간작업을 하며 살처분 매립 준비를 하고 있다. '돼지 흑사병'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질병은 바이러스성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치사율이 100%에 달하는 등 치명적이나 아직 예방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전염되지는 않는다. 이상훈 기자

안타까운 것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이 예고됐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중국에서 발생해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를 휩쓸었다. 급기야 지난 5월에는 북한의 자강도에서 발병한 사실이 확인됐다. 자강도는 북한의 북쪽 지역이지만 북한 전역으로 확산될 경우 남북 간 접경지대를 통한 전염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당국에서는 관계부처 합동담화문 발표(4월), 북한 접경지역 방역상황 점검(5월), 축산물 무신고 반입 시 과태료 인상(6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양돈농가 상대 방역교육은 주먹구구식이었다”는 증언이 나올 정도로 구멍이 많았다. 여행객이 휴대한 돈육가공식품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되기도 했다. 당국의 예방활동은 보여주기식에 그쳤고 시민들의 협조도 부족했다. 차단방역이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힘든 것이다.

전염병 예방은 초동대처가 성패를 좌우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을 막는 데는 초기 48시간이 ‘골든타임’이다. 방역이 뚫리면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우선 감염경로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축산농가와 도축장에서 방역행동요령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시민의 적극적인 협조도 필요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국가적인 재난이 되지 않도록 모두가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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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를 국내 사업장에 배정할 때 ‘점수제’를 도입한 게 2012년이다. 한겨울·한여름에도 사업주들이 고용허가신청서를 들고 밤새 줄서기 경쟁하는 불편과 혼선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고용이 절박하고 모범적인 사업장을 가려 우대한다는 뜻도 담겼다. 그러나 7년 넘게 정부가 정한 배점에서 안전 문제는 도외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주노동자 재해사망 때 사업주가 받는 감점은 1점이고, 2명 이상 숨져도 2점에 그쳤다. 성폭행(10점)이나 폭언·폭행·성희롱(5점), 툭하면 일어나는 임금체불(3점)보다도 턱없이 낮게 책정된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목숨값’을 경시하고 산업재해를 방치한 탁상행정의 민낯이다.

출처:경향신문DB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이주노동자의 질식사와 추락사가 줄잇고 있다. 올여름에만도 서울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수몰사고의 희생자가 됐고, 경북 영덕의 오징어젓갈공장 폐기물 지하탱크에서 4명이 질식사했다. 광복절 전날 강원 속초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추락한 외국인노동자 2명은 병원이송 중 잠적했다. 가스 질식사는 3년 전 경북 고령의 제지공장 원료탱크, 2년 전 경북 군위 돼지축사 사고의 재판이다. 안전 장비·수칙도 없이 작업하다 다수의 피해자가 나왔다. 이주노동자 산재 숫자와 빈도가 커지는 것은 필연이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 제조·건설 현장을 떠받치는 사람이 많아지고, 농어촌도 그들이 없으면 제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올해 사계절에 한번씩 입국해 배정되는 신규 이주노동자(E-9)는 4만3000명. 재계약자·불법체류자를 합치면 훨씬 더 많고, 그들에게서 한 해 5000명의 산재와 100명 안팎의 사망사고가 나고 있다. 그럼에도 안전수칙을 어긴 사업주는 수백만원의 과태료, 과실치사도 대체로 실형보다 벌금형(1000만~2000만원)에 처해지고 있다. 비정규직의 ‘위험의 외주화’ 사다리 가장 밑동에 이주노동자가 매달려 있는 셈이다.

정부가 내년 산재사고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사고 사망자 수) 목표를 0.39로 정했다. 2016년 0.53에서 2년간 0.02 줄인 숫자를 확 내린 것이다. ‘산재사망 절반 축소’라는 대선공약에 맞췄지만, 거북이걸음에 갑자기 속도가 붙을지는 미지수다. 사업주 선의에 맡기고, 사고 후 표본 사업장만 감독하는 정책 의지로는 어림없다. 낯부끄럽게 국제기준을 따질 것도 없다. 산재의 잔혹사를 끊지 않으면 이주노동자들이 메우고 떠받치는 노동시장이 무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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