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한 국물이 떠오르는 계절이다.

한국인의 밥상에는 온갖 국물 음식이 오른다. 안 보이면 섭섭하다. 유럽과 아메리카 사람들이 끼니마다 와인·맥주·탄산수를 곁들이고, 중국과 인도, 서남아시아며 아프리카 곳곳의 사람들이 끼니마다 차 없이는 못 산다면, 한국인에게는 국탕·찌개·전골이 있다. 저들의 주식인 빵·찐빵·난이란 덤덤하기 이를 데 없다. 탕면 빼고는, 국수는 뻑뻑하다. 맹물만으로 부족한 저작(咀嚼)과 목넘김을 돕느라, 시거나 달거나 쌉쌀하거나 특유의 풍미를 띤 와인·맥주·탄산수 또는 차를 마실 수밖에 없다. 나란히, 한국인에게는 짠맛 위에 복합적이면서 풍성한 풍미를 세운 국물이 고맙다.

국물 음식 덕분에 덤덤한 맨밥이 편안하고 맛있게 넘어간다. 국물은 쌀 등 곡물의 전분이 호화하면서 이룬 맨밥의 맛과 향을 증폭한다. 지나치게 얌전해 잘 나서지 않는 맨밥의 단맛과 구수함, 그리고 미량의 지질에서 유래한 기름진 고소함이 국물과 함께 새로이 몸을 드러낸다. 장·젓갈·김치의 증폭과는 또 다른 질감과 촉감이다. 하지만 익숙한 사물이란 낯선 사물일 수 있다. 한국인은 내가 먹는 국탕·찌개·전골의 정체와 속성을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가령 국탕이란? ‘찌개에 견주어’ 물을 많이 잡아 끓인 음식이다. 그리고 주재료의 풍미가 앞선다. 콩나물국, 미역국, 설렁탕, 대구탕 등이 좋은 예다. 말만 들어도 콩나물, 미역, 소고기, 대구의 풍미가 삼삼하다. 찌개는? ‘국에 견주어’ 바특하게 끓인다. 그리고 찌개 속에서는 채소든 고기든 해산물이든 모두 푹 무른다. 푹 무른 대로 장 또는 양념의 풍미가 깊숙이 침투한다. 된장찌개를 기본으로, 김치찌개라든지 부대찌개는 이러한 속성을 공유한다. 그렇다면 전골은? 국탕·찌개 동아리와 그 속성을 공유하되 계통과 자질이 다르다. 냄비에 가득 끓여 나온, 모든 재료가 푹 익어버린 국물 음식은 이름만 ‘전골’일 뿐 전골일 수 없다. 우리는 전골 본래의 의미와 모습을 떠올려야 한다. 전골은 잘 손질해 얌전히 간추린 고기, 채소, 해물 등을 전골 전용 조리 용구인 전골틀에 맵시 있게 담은 뒤 장국 또는 간을 맞춘 옅은 육수를 부어, 즉석에서 끓이면서 먹는다. 예전엔 곁상에 따로 전골틀을 올려 차리기도 했다.

전골은 휴대와 이동이 간편한 노구솥과 손을 잡고 태동했다. 노구솥은 어느 시점을 지나면서는 명확히 전골 전용의 용기, 곧 ‘전골틀’이 되었다. 이런 내력을 거쳐 전골은 국탕·찌개와는 구분되는 자기 자리를 만들었다. 조선 말기를 지나면서는 바로 익는 재료,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리는 재료 등을 미리 손질해 전골냄비(노구솥 또는 전골틀에서 진화했거나 냄비에서 전용한)에 보기 좋게 담고, 장국을 부어 즉석에서 끓여 재료가 먹기 좋을 때 바로 건져 먹을 수 있는 국물 요리로 자리를 잡았다. 식민지시기의 인기 요리인 조자호(趙慈鎬, 1912~1976)의 생각에 전골이 호화로워질대로 호화로워지면 곧 ‘신선로’였다. 요컨대 전골이란 즉석 국물 음식이자 전용 용기의 연출을 전제로 한 일품요리였다. 연출에서는 격식과 모양을 뽐내고, 여기에 붓는 장국 또는 육수는 맑아야 한다. 푹 익히지 않은 다양한 부재료는, 국탕 속의 그것과 달리 조직감과 색감과 모양을 유지해야 한다. 육수는 그때그때 더해 끓여 탁하지도 바특하지도 않도록 했다.

여기까지 쓰는 동안 ‘본래’ 같은 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전골의 정체와 속성을 곰곰이 생각지 않고 전골 운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물 음식의 분야, 국물 음식에 대한 또 다른 ‘상상력’이 아쉬워 ‘본래’ 운운한다. 국물에 잠긴 재료의 상태, 국물의 탁도와 점도에 대한 새로운 접근, 장국 및 육수의 섬세한 운용, 일품요리 연출의 가능성 등에서 전골은 의미 있는 자질을 쥐고 있다. 갱신과 새로운 탄생의 여지가 있다. 그저 넓고 깊은 냄비에다 푹 끓인 국물 음식과 분명히 구분되는 전골의 본래 모습을 이 계절에 돌아본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독일의 신발 제조회사 아디다스는 다른 많은 제조업체와 마찬가지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건비가 저렴한 아시아에서 신발을 생산해 왔다. 2016년 독일의 안스바흐 소재 스피드팩토리를 통해 아디다스 퓨처크래프트 MFG(Made for Germany)를 출시하며 제조업의 독일로의 복귀를 알렸다. 이 스피드팩토리에서 신발을 제조하는 과정은 기존 공장의 방법과 완전히 다르다. 기존의 공장에서는 대량생산을 통해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같은 디자인의 신발을 다량 만들었다. 스피드팩토리에서는 홈페이지를 통해 고객의 주문을 받아 맞춤형으로 제조한다. 주문을 받고 제조 완료까지 5시간밖에 안 걸리니 아시아에서 위탁생산을 할 때 걸렸던 2~3주보다 훨씬 빨리 제조한다. 제조방식에 이러한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 몇 가지 요인을 살펴보자.

우선 다음의 사항들을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개성 있는 자신만의 신발을 신고 싶은 고객의 요구를 맞출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재고를 쌓아두지 않을 수 있을까? 패션과 유행은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는데 어떻게 하면 빠르게 제조할 수 있을까? 이들을 해결하면서도 신발 가격 경쟁력은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 아디다스는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들로 일컬어지는 3D 프린팅, 첨단 제조로봇이 인터넷을 포함한 정보통신기술(ICT)과 연결되어 인건비 걱정 없이 가격 경쟁력 있는 제품의 자동 제조가 가능한 스피드팩토리를 통해 이 문제들을 모두 해결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고객이 신발 스타일, 디자인, 소재, 색상, 신발 깔창, 신발 끈 등을 선택하면 그에 맞추어 로봇이 신속하게 제조한다. 이 로봇들은 잠도 안 자고 24시간 신발을 제조한다. 주문을 받고 5시간 만에 제조하여 24시간 내에 배송까지 할 수 있으니 제품 출시까지의 시간 단축은 물론 재고도 쌓이지 않는다. 소위 주문형 대량생산(custom mass production)인 이 제조방식은 몇가지 선택사항들의 조합을 통해 많은 종류의 맞춤형으로 제조하지만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아디다스는 2018년 미국 애틀랜타에 독일보다 더 큰 스피드팩토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크게 부각한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 기여를 위하여 올 한 해에 회수된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1100만켤레의 신발을 만든다고 했다.

빠르게 변화(change)하는 정도를 넘어 변혁(transformation)의 시대를 맞고 있는 제조업에서 우리는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아디다스의 변혁이 좋은 예이기는 하지만 또 어떠한 사항들을 고려해야 할까? 우선은 가치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제조 공장에서 안전, 건강, 환경은 바꿀 수 없는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고객들은 고품질은 당연하고 자신만의 제품, 경험, 즐거움을 요구하고 애프터서비스의 강화도 바라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하나뿐인 지구가 강조되면서 지속 가능성, 친환경성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내가 의장을 맡고 있는 바이오테크놀로지 글로벌 퓨처 카운슬을 포함하여 각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38개의 카운슬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하나가 첨단 제조 및 생산 글로벌 퓨처 카운슬이다. 이 카운슬에서는 몇 년간의 전문가 토론과 기업 최고경영자(CEO) 및 정부 의사결정자들의 검증을 받아 제조기술에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기술과 시스템들을 7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발표했다.

첫째는 생산철학이다. 순환경제를 위해 리사이클된 소재 활용, 위에 언급한 주문형 대량생산, 제품의 평생 서비스, 유연하고 모듈식인 제조 시스템, 에너지 및 원료 절약형 제조 시스템, 친환경 생산 등이 고려될 생산철학으로 포함되었다. 둘째는 첨단소재로서 초경량 소재, 차세대 반도체, 바이오 기반 소재, 유연한 전자제품, 메타물질, 나노엔지니어링 기반 소재 등이다. 셋째는 첨단생산 공정인데 연속제조, 표면제조 공정, 잉크젯프린팅, 유연구조의 제조 등이 포함되었다. 넷째는 인간-기계 인터페이스로서 증강현실, 가상현실, 대화 시스템, 사회망, 상황인식 시스템, 다차원 상호작용, 웨어러블 로봇 등이다. 다섯째로 연결과 계산인데 모바일 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디지털 쌍둥이, 기계와 기계의 연결성, 모델링과 시뮬레이션, 블록체인, 퀀텀 컴퓨팅 등이 포함되었다. 여섯째로는 분석과 지능인데 빅데이터, 데이터마이닝, 지식기반 시스템, 지능형 시스템, 원격 유지보수 시스템, 인공지능, 생물정보학, 인지계산이 포함되었다. 마지막으로는 디지털-물리 시스템으로서 3D 프린팅, 광학, 메카트로닉스, 자율로봇, 협동로봇, 유연하고 조정이 용이한 기계와 로봇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기술들만 조합해도 지금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미래의 공장 모습이 보인다. 한 가지 예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모바일이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나노와 바이오 기술로 새롭게 만들어진 소재들을 스마트 물류 시스템을 통해 공급받아 인공지능으로 최적화된 첨단로봇과 3D 프린터가 제품을 만든다. 예전처럼 큰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별로 소형 공장들이 들어서서 생산하며 이 모든 소형 공장들은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되고 본사에서는 주문-생산-판매-배송-애프터서비스-리사이클까지 전 과정의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고 각 소형 공장들에서의 생산 관리 등에 활용한다.

앞으로 제조업은 큰 문제들, 즉 기후변화 대응, 지속 가능성 추구, 인구 고령화 및 건강 문제, 물, 에너지, 자원 부족 문제뿐 아니라 각 제조업에서 예상되는 문제들을 기반으로 위에 기술한 것들을 포함한 신기술들을 조합하여 각 제조업에 맞게 적용하여 빠르고 과감하게 변혁해야 한다. 여기서 속도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뒤늦게 변화하는 기업들은 먼저 변화한 기업을 따라갈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기업의 CEO들은 기술들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예전처럼 최고기술경영자(CTO)에게 기술을 맡겨 놓는 것으로는 이러한 변혁에 살아남을 수가 없다. 모든 기술을 한 기업이 섭렵할 수 없으므로 대학, 연구소, 타 기업들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제조업의 변혁과정에서 많은 단계와 작업들이 자동화됨으로써 기존의 일자리는 없어지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국가와 사회는 구성원들이 지식과 기술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하여 새롭게 요구되는 일자리에 적합한 인재들을 양성하고 변혁의 제조업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과학자들이 원숭이를 가둬놓고 실험을 했다. 과학자들이 하는 일이 대부분 그렇듯 이번 실험도 고약하다. 실험장인 스키너 박스 안에 나무를 설치하고 그 위에 바나나를 매달아 놓았다. 물론 공짜 바나나는 아니다. 원숭이가 나무에 오르려고만 하면 가장 질겁하는 물을 뿌려댔다. 원숭이 뇌에 전극을 꼽거나 전기고문을 하는 실험에 비하면 양반이니 너무 분노하지는 말자. 몇 번 짜릿한 물벼락을 경험하자 원숭이들은 아무도 나무에 올라가려 하지 않았다. 평형상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 평형, 평정 상태를 파괴하고 극한 상태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과학자들은 원래 있던 원숭이 중 한 마리를 빼고 대신 새로운 원숭이를 집어넣는다. 물벼락을 맞아본 적 없는 신참 원숭이는 바나나를 보고 환장하여 나무에 오르려고 한다. 그러자 고참 원숭이들이 질겁하며 신참을 말렸다. 물정 모르는 신참놈 때문에 자신들까지 물에 맞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원숭이들이 말리자 신참은 나무에 오르는 것을 단념했다. 이런 식으로 원숭이를 하나씩 빼고 그 자리에 신참 원숭이들을 채워 넣었다. 매번 신참들은 나무를 오르려다 다른 원숭이들의 제지를 받았고, 나무에 오르는 것을 포기했다. 결국 스키너 박스에 원래 있었던 원숭이들은 모두 빠지고 물을 맞아본 적이 없는 신참들로만 채워졌다. 하지만 그 어떤 원숭이도 나무에 오르지 않았다. 실제 물을 맞은 원숭이들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은 관행이 되어 울타리 안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실험이 이뤄졌다. 과학자가 진료대기실에 미리 지시를 받은 실험자 10명을 앉아 있게 했다. 실제 환자가 진료대기실에 들어오면 실험이 시작된다. ‘삐’ 하는 버저 소리가 들리면 실험자 10명이 일제히 일어났다가 앉는 것이다. 이를 본 환자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 이내 엉거주춤하고, 곧 다른 사람들처럼 일어섰다 앉는 것을 따라 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지 않은 동조 효과, 동화 본능 때문이다. 처음 환자가 동조 현상을 보이면 다른 환자를 집어넣고 실험자 1명을 뺀다. 두 번째 환자도 첫 번째 환자와 동일한 반응을 한다. 결론은 원숭이와 동일하다. 10명의 실험자가 모두 빠지고 환자들로만 채워져도 그 진료대기실에 있는 환자들은 버저 소리에 모두 일어섰다 앉는 행동을 하게 된다. 누구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나 그 행동은 대기실을 지배한다.

물론 모든 관행과 습관에는 그 배경이 있다. 유대인이 피를 빼고 고기를 먹는 것이나 무슬림이 돼지고기를 피하는 것, 여자에게 히잡을 씌우는 것 등은 당시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하지만 그 배경이 사라진 이후에도 관행은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의 상황이 특별히 나쁘지 않으면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현상유지바이어스(status quo bias)나 손실회피성에서 나오는 현상이기도 하나 비합리적이다.

나이트 샤말란이라는 영화감독이 있다. ‘절름발이가 범인이다’(&lt;유주얼 서스펙트&gt;) 이후 가장 저주받을 스포일러인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다’를 낳은 &lt;식스센스&gt;라는 영화를 만든 사람이다. 그가 만든 작품 중에 &lt;빌리지&gt;가 있다. 영화의 배경은 숲에 둘러싸인 평화로운 마을이다. 기계도, 전기도, 범죄도 없는 조용한 마을이다. 하지만 이 마을에는 매우 무서운 금기가 있다. 마을 사람이 숲으로 들어가면 그 숲에 있는 ‘괴물’이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다. 늘 역대급 반전을 보여줬던 감독의 작품치고는 극히 시시한 공포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반전이 펼쳐진다. 이 영화의 최대 반전은 배경이 현대라는 점에 있다. 이 마을은 현대 미국의 한복판에 위치한다. 과거 도시에서 범죄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씩 모여 이 마을을 만든 것이다. 현대문명이 범죄를 낳는다고 믿는 그들은 산업화 이전의 공동체를 건설한다. 그들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출입을 통제하고, 자라나는 새 세대에게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숲속의 ‘괴물’을 만든 것이다.

전 세대의 규범과 기억은 다음 세대를 억압한다. 그들의 순수한 마음은 때로는 세상을 자신들의 기억 속에 가두기 위해 공포와 거짓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러한 기억이 억압으로 작용할 때 새 세대가 할 일은 타인의 과거와 주어진 미래에 저항하는 것이다. 의심하고 도전하고 주변으로부터 달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나이가 적다고 새 세대는 아니다. 진정 새로운 세대는 과거의 강화된 기억과 그 부작용인 공포와 무분별한 추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시작된다. 물론 변화는 어렵고 이를 막으려는 시도는 거짓과 강압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관성은 물리적 세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세계에서도 작용’하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야말로 실체의 정상적인 상태이다. 살아있는 존재라 함은 어떤 과정의 이른 단계에서 나중 단계로 발전하여 가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는 도토리가 참나무로 자라듯 본질에 따른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김웅 법무연수원 교수·<검사내전> 저자>

'일반 칼럼 > 김웅의 덧뵈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음 세대 억압하는 전 세대의 관행  (0) 2019.09.19
조말생 성공기  (0) 2019.08.22
곤충시대  (0) 2019.07.2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김명윤이란 사람의 이야기다. 그는 중종 때 실시한 현량과를 통해 조정에 나아갔다. 조광조를 비롯한 개혁파들이 과거제도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현량과를 시행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추천한 글에 의하면, 김명윤은 학행도 뛰어나고 지조도 굳세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조정에서는 명예로운 홍문관 벼슬을 그에게 주었다.

기묘사화가 일어나기 바로 전날 밤, 김명윤은 숙직을 서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변고가 일어날 조짐을 미리 알았다. 누군가 말해주었던 모양이다. 그는 친구를 졸라서 숙직을 바꾸었다. 그해 겨울, 조광조를 비롯한 김명윤의 동료들이 큰 화를 입었다. 그의 과거 합격도 무효가 되었다. (‘김명윤전’, &lt;기묘록보유: 추록&gt;)

그러나 김명윤은 결코 벼슬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옛 동료인 신잠을 만나서, 우리는 곧 다시 등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잠이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김명윤이 대답하기를, 조정에서 현량과 출신들을 세자익위사, 즉 세자를 보좌하는 관청에 임명한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어느 총명한 선비가 혀를 찼다. “김명윤은 자신이 그 벼슬을 하고 싶어서 이런 소문을 만드는 것이네.” 과연 그 말이 맞았다. 김명윤은 곧 익위사의 세마가 되었다.(‘김명윤’, &lt;해동잡록&gt; 2)

김명윤의 출세 욕심은 끝이 없었다. 다시 과거장에 출입해 결국 문과시험에 급제를 했다. “조광조의 동료였던 선비가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많은 선비들이 그를 비난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얼마 후 명종이 즉위했다. 외척들 사이에 권력다툼이 벌어졌다. 윤원형을 비롯한 소윤이 윤임으로 대표되는 대윤과 싸워 권력을 쥐었다. 변화를 예의 주시하던 김명윤이 이번에는 소윤에 가담했다. 이미 그는 경기감사라는 고관이었으나 부귀영화를 위해 흉악한 음모를 꾸몄다. 명종의 배다른 아우 계림군 이유를 무함한 것이다. 윤임이 장차 계림군을 추대하려 했다는 거짓말이었다.

그는 또 봉성군 이완까지도 무고했다. 이완은 김명윤의 처가 쪽 친척이었다. 나이가 어려서 역모란 가당치도 않았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봉성군은 머리가 영특하여 장차 화근이 될 수 있다. 미리 없애서 나라를 안정시키자고 했다.(‘김명윤 상변’, &lt;을사전문록&gt;)

이런 음모로 김명윤은 위사공신이 되었고, 재상으로서 광평군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윤원형도 권력을 잃었다. 김명윤은 다시 변신했다. 그는 경연에서 을사사화로 인해 많은 선비들이 죄 없이 희생되었다며 복권을 주장했다. 아울러 남명 조식과 일재 이항 같은 재야의 선비들을 불러 높은 관직을 맡기자고 했다.(&lt;선조수정실록&gt;, 선조 즉위년, 10월5일)

제아무리 약게 굴어도 세상을 영원히 속일 수가 있을까. 언관 백인걸이 그를 면박했다. “그대는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이다.” 원래 이 말은 변화무쌍한 부처님의 화신이라는 것이지만, 백인걸은 김명윤의 간사함을 비웃은 것이다. 사람들은 백인걸의 비판을 옳게 여겼다.(&lt;선조수정실록&gt;, 선조 즉위년, 10월5일)

고봉 기대승은 경연에서 김명윤의 비행을 고발했다. “김명윤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봉성군이 억울하게 죽은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조정에서 축출해야 합니다.” 드디어 선조는 김명윤의 벼슬을 빼앗았다. 그래도 선비들의 분이 풀리지 않았다. 선조 3년(1570)의 일이었다.

얼마 뒤 김명윤이 세상을 떴다. 언관들이 상소를 올려 그의 공신녹권을 취소하라고 요구하자 선조는 그 말에 따랐다.(‘김명윤전’, &lt;기묘록보유: 추록&gt;)

왕은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김명윤은 승냥이와 범처럼 사람들을 해쳤다. 근거 없는 말을 교묘하게 꾸며 엉뚱한 화를 일으켰다. 원통하게도 중종의 어린 왕자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무고한 선비들을 모함하여 사림을 괴롭혔다. 자신에게 이로운 일이라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못하는 짓이 없었다. 그리하여 국가에 큰 죄를 지었다.”(&lt;선조실록&gt;, 선조 5년 9월28일) 김명윤의 여러 가지 행적을 볼 때 틀림없는 평가였다.

정녕 사람이란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가 없는 존재이다. 김명윤의 얼굴은 아름다웠고 말솜씨도 뛰어났다. 한때는 그를 단아한 선비라고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일생이 어떠하였던가. 화를 피하려고 숙직을 바꾸었고, 출세를 꿈꾸며 의리를 잊은 채 과거장을 들락거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신이 되고자 무고한 왕자들을 해쳤다. 처음에 그는 지조 있는 선비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벼슬과 녹봉을 훔치려고 꾸민 것에 불과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하필 왜, 나는 김명윤의 옛일이 이토록 상세히 떠오르는 것일까. 사소한 일에도 권력의 칼을 마구 휘두르며 원칙주의자인 척하는 어떤 사람 때문이 아닐까. 처음에는 한없이 청고(淸高)하고 개결(介潔)한 정의의 사도쯤으로 믿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은 전혀 다르다. 그때 내 판단이 아주 흐렸던 모양이다. 단박에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로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달부터 취재 분야로 출판을 담당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매주 수많은 책 중에서 소개할 신간을 선정하고 서평까지 쓰는 것이다. 매일 회사로 배송되는 책들을 검토해 부 전체 회의에 올릴 리스트를 만든다. 출판사의 책 배송을 대행하는 업체가 붙여둔 스티커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출판사의 땀입니다. 희망을 선물해주세요.’ 전에는 누가 공짜로 줘도 안 읽을 제목을 가진 책이라도 다시 보게 만드는 마법의 문구다.

1차로 검토해 추린 책이 15~20권 정도가 된다. 문학과 학술을 맡고 있는 다른 기자들의 리스트를 합치면 다시 30여권이 된다. 이 책들을 놓고 문화부원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먼저 출판 담당이 책의 주요 내용과 특이 사항을 설명한다. 길고 긴 회의 끝에 최종적으로 경향신문 지면에 소개될 책을 결정한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선택을 받은 책은 8~9권에 불과하다. 단신으로 소개하는 책까지 합쳐도 20권이 안된다.

부서 전체 회의를 거쳐 결정한다고는 하지만 회의에 올라갈 책을 고르는 것은 순전히 출판 담당의 몫이다. 1차 검토에서 탈락한 책들은 대부분 다시 볼 일이 없다. 이러다 보니 출판 담당으로서 선택에 많은 부담을 느낀다. 혹시나 책을 고르는 눈이 부족해 좋은 책을 놓치지나 않을까 항상 불안하다.

책을 선정하고 서평을 써 송고한 후에는 불안감이 더 커진다. 경향신문의 신간 소개는 토요일자 신문에 나온다. 대부분 같은 요일이지만 몇몇 신문은 금요일자에 신간 소개 기사를 내보내기도 한다.

매주 금요일 아침이 되면 여러 신문을 볼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다른 신문부터 본다. 가끔은 새벽에 눈이 떠져 아직 나오지도 않은 지면을 찾아보곤 한다. 토요일에도 마찬가지다. 다른 신문의 출판 담당자들도 나와 비슷한 선택을 했다는 것을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반드시 지면에 써야 할 책을 놓친 적은 없는 것 같다. 수준 이하의 책을 골라서 웃음거리가 되지도 않았다. 지면을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전체적으로 보면 비슷비슷한 책이 각 일간지의 선택을 받았다.

이렇게 한 달여를 보낸 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일간지들이 선택하는 책은 다 비슷비슷할까. 가장 ‘좋은’ 답이야, 모두가 가장 좋은 책을 골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그럴 일은 없다. 아주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취향이 갈리는 것이 책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은 사람, 정확히는 환경이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비슷한 학력을 가지고 있고, 비슷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며, 비슷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독자에게 보이기’ 가장 좋은 책을 선택하려 한다면 비슷한 책이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를 포함한 요즘 기자의 한계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하게 알고 있을지라도 사람이 자신이 자라왔고 현재도 살아가고 있는 환경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영역 밖으로 단 한발을 내딛기가 어렵다. 취재원에게 입으로는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기사에는 온전히 담지 못하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까치발을 딛고서라도 내가 몸담고 있는 구역 밖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필요하면 과감히 밖으로 나가보는 것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쉽지 않지만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지난 17일 신간 &lt;판결과 정의&gt;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김영란 전 대법관은 대법원 판결에 대한 책을 쓰는 이유로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또 “내 책을 읽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해줄 때 가장 고맙다”고도 했다. 전직 대법관이자 교수에게 기자의 가장 큰 덕목을 배웠다.

<홍진수 문화부 기자 soo43@kyunghyang.com>

 

'일반 칼럼 > 기자 칼럼, 기자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선이 향하는 곳  (0) 2019.10.14
이기는 방법  (0) 2019.10.04
[기자칼럼]기자의 한계  (0) 2019.09.19
불평등은 저절로 해소되지 않는다  (0) 2019.09.17
류현진과 힐링  (0) 2019.09.10
스팸뉴스의 시대  (0) 2019.09.0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설교를 못하는 목사가 있었다. 교인들이 모두 졸고, 특히 제 아내는 코까지 골았다. “대책을 강구해야 되겠는데, 누구 좋은 의견 없는가?” 아들 녀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아부지.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떼고 그 자리에 시계를 걸어 놓는 겁니다. 무조건 아부지 쪽을 쳐다보겠죠. 빨리 끝내달라고 아멘을 연발할 겁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쳐다보지 않으면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수밖에. 그래 억울한 일 당한 노동자들이 단식을 하고, 삭발을 하고, 고공 투쟁을 했다. 불교 스님이나 기독교 ‘은수자’들의 삭발과 긴 수염 등은 내용이 많이 다르다. 치장하지 않고 수행에만 몰두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발리섬 우붓에 가면 원숭이 왕국이 있다. 원숭이들이 노상강도 깡패나 같다. 과일은 기본이고 가방도 뺏어가고 휴대폰도 낚아챈다. 모자를 가장 좋아하는데, 서로들 나눠 써보며 메롱메롱 놀리기까지 한다. 문제는 가발을 쓴 사람을 덮치는 경우다. 민둥산이 드러나면 원숭이들도 깜짝 놀란다. 아무튼 가발 착용자들은 원숭이 왕국에 얼씬거리지 않는 편이 낫다.

학교 다닐 때 자주 두발 단속을 당했다. 일명 ‘바리캉’으로 한쪽 머리를 쭉 밀어버렸다. 학교에 이발소가 아예 딸려 있어 돈을 나눠 먹는 눈치였다. 두발 단속을 하는 날이면 이발사 표정이 밝았다. 한편 경찰은 성인들을 상대로 장발 단속을 했다. 군사정권은 머리를 자르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회 약자들은 그들이 들이대는 가위에 속수무책이었다. 싹둑싹둑 가차없이 자르고, 또는 스스로 자르게 만든 머리카락들이 낙엽처럼 뒹굴었다. 그들 독재자와 하수인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들 받아 심한 탈모를 겪었다. 또 공안검사들은 대학생들을 잡아다가 간첩이라고 족쳤다. 원산폭격 고문을 시키면 부분 탈모가 발생했다. 욕조에서 공짜로 ‘스킨스쿠버’ 교육도 시켜주었다. 물을 많이 먹고 죽거나, 탁 치면 억하고 죽거나, 보통들 싹둑 목숨이 떨어져야 끝이 났다. ‘싹둑이’들의 세상이었다. 생각해보면 멀지도 않고 엊그제 일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리의 불심  (0) 2019.10.04
미럭 곰 차두  (0) 2019.09.26
싹둑싹둑 싹둑이  (0) 2019.09.19
명절 국수  (0) 2019.09.16
천사들의 합창  (0) 2019.09.05
심야버스  (0) 2019.08.2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조국 사태’가 느닷없이 쏘아올린 불씨 중 하나는 ‘교육개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입제도 재검토’를 언급한 데 이어 지난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고교 서열화와 대학입시의 공정성 등 기회의 공정을 해치는 제도부터 다시 한번 살피고, 특히 교육 분야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히면서 ‘교육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탈 기세다. 맥 빠지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큰 기대는 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14개국의 입시전형을 분석한 &lt;세계 각국의 대학입시제도 연구&gt; 보고서를 보면 주요 대입 전형요소는 몇 가지로 모아졌다. 국가수준 대입시험과 고교 내신, 대학별 고사, 비교과 활동 등 4가지를 혼합하는 방식이다. 어떤 요소들을 택해 어떤 비율로 사용하는지, 대입시험의 성격이 선발인지, 고교 졸업 자격시험인지, 몇 번의 기회가 있는지, 내신이 절대평가인지, 상대평가인지 등 세부 차이만 있을 뿐 하늘 아래 뚝 떨어진 새로운 방법은 없었다.

오히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건 이런 부분이다. 6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1.8%)의 2배에 이르는 고등교육의 민간 부담 비중, OECD 평균(44.3%)보다 한참 높은 최고 수준의 고등교육 이수율(69.6%) 같은 것. 최근 ‘OECD 교육지표 2019’에서 발표된 이 수치들은 뭘 말하나. 대부분 대학교육 이상을 받으니, 대학 졸업장은 아무리 비싸도 기본으로 따 놓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일명 ‘스카이’ 출신들이 각 분야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스카이 공화국’이기도 하다. 20대 국회의원 중 47%(140명), 장차관급과 중앙행정기관 1급 이상 공무원 중 핵심 직위 232명을 대상으로 한 경향신문의 ‘파워엘리트’ 조사(2019년 5월)에선 64.2%(149명)를 이들 3개 대학 출신들이 차지했다. 전국의 4년제 일반대가 201곳이나 되는데도 말이다. 한편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가 참으로 아득한 사회다. 통계청이 올해 초에 발표한 ‘2017년 임금근로 일자리별 소득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 노동자 중 가장 소득이 높은 40대의 월평균 소득은 260만원으로, 대기업에 다니는 20대 평균소득(271만원)보다도 낮았다.

우리 모두는 실상을 알고 있다. ‘교육개혁’이라고 말할 때의 관심은 대개 입시와 학벌, 좋은 직업에 진입해 안정적 삶을 보장받기 위한 일종의 ‘증명서’ 받기에 집중돼 있다는 것을. 교육이라고 말하지만 교육의 본질인 ‘배움’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승자독식 사회다. 한 번의 성공, 혹은 실패의 대가가 너무 과도하거나 혹독하다. 입시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하는 개인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하다.

결론은 뭔가. 여러 얘길 할 수 있겠으나, 우선 한 가지만 구체적인 제안을 하고 싶다.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학과, 치열한 경쟁을 거치는 직업군의 특권을 내려놓도록 했으면 한다. 의사, 법조인, 대학교수 정도가 대표적일 것이다. 조국 사태가 드러낸 욕망과 질시, 분노의 고리엔 우연히 이 3가지 직업이 겹쳐 있다. 일종의 묵시일지도 모른다. 다들 그렇게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데 의료사각지대는 왜 그렇게 늘어나고 외과전문의 등 꼭 필요한 의사가 부족해 수술절벽까지 걱정해야 하나. 로스쿨의 도입취지는 다양한 배경과 역량을 갖춘 인재를 대량으로 배출해 법조 문턱을 낮추자는 것인데, 왜 법조인의 문을 다시 좁혔나. 대학교수와 시간강사의 처우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 날 이유가 있나.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대폭 늘려 특권은 줄이고 좋은 일자리는 나눴으면 한다. 나아가 고위공무원이나 정치인, 대기업 직원들의 과도한 특권을 내려놓을 방법도 논의하자.

너무 이상적이라고? 다시 말하지만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 한 교육개혁은 거짓말이다. ‘격차사회’ 완화 없이 학종 몇 프로, 정시 몇 프로는 의미가 없다. 어떻게든 ‘직업세습 2라운드’가 시작될 테니까. 귀화한 러시아 출신 학자 박노자의 표현을 빌리면, 본질을 외면하고 해결책을 찾는 우리 모습은 “정로환으로 암을 치료하는 시도”다.

성공의 관건이 있다. 미국인이 썼지만 한국 상황과 무척 높은 싱크로율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책 &lt;20 VS 80의 사회&gt;가 힌트를 준다. 중상위층들은 최상위 1%를 손가락질하며 불평등을 비판하지만 이는 위선이라는 것, 발언권과 정치력을 독점하는 중상위 20%가 바뀌어야 세상이 변한다는 것이 책의 주제다. 자발적으로 안된다면, 시스템으로 어느 정도 강제하자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사회의 어디쯤 서 있는가. 겉으론 욕하면서 어떻게든 승자독식의 대열에 속하려는 열망을 나와 당신이 고쳐먹지 않는 한, 교육도, 개혁도 기대할 수 없다.

<송현숙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알렉상드르 타로의 에세이집 &lt;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gt;는 무대에 올라서기 직전에 그가 거울 속에서 만난 한 피아노 연주자의 외양을 묘사하며 시작한다. 책의 서문이자 필자를 소개하는 이 짧은 글은 이어질 내용이 ‘피아노 연주자인 자신을 아주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는 나’의 글이 될 것을 짐작하게 한다.

서양음악에 관한 글쓰기에서 ‘무대 위의 연주’는 가장 까다로운 글감 중 하나다. 그 원인은 여럿이겠으나 우선 가장 근본적인 난점은 이것이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공연은 시간이 지나면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다. 음반이나 영상과 달리 공연으로만 접한 연주에 관해 쓸 때는 정량화된 데이터나 기록물에 의존하기가 어렵다. 그저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만 의지해 그 연주를 복기하며 뭔가를 써내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또 공연장에서는 연주 말고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일이 얽히고설키며 연주에 개입하는데, 그 모든 미묘한 관계를 글에 모두 담아내기도 결코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의 원성을 사는 기침 소리는 물론 연주자들끼리 주고받는 눈짓, 소리로 들려오진 않지만 분명히 감지되는 객석의 기류 같은 것이 그 예다. 이러한 ‘현장성’은 연주에 대한 일목요연한 글쓰기를 어렵게 만드는 주범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직접 공연장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lt;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gt;에서 타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피아노 연주자가 공연장에서 겪는 일들이다. 물론 바흐나 쇼팽 등 그가 자신을 잊고 몰입해서 연주해야 할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글의 중요한 일부다. 하지만 그는 흔히 공연의 주변부로 여겨졌던 요소나 관객 시점에서 보고 들을 수 없었던 무대의 이면을 소개하는 데 더욱 집중한다. 불안과 긴장 가득한 자신의 꿈부터 날 선 몸의 감각, 언제나 그가 지니고 다니는 악보들, 공연장이 뿜어내는 위용, 조율사와의 소통, 무대로 걸어 나오는 자신의 걸음걸이, 연주 직전에 손을 가다듬는 찰나의 순간, 객석에서 늘 들려오는 사탕 껍질 소리와 마른 헛기침, 악보를 넘겨주는 이와의 미묘한 호흡, 공연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박수소리의 음향, 그리고 텅 빈 객석을 바라볼 때의 역설적인 충만함까지. 음악과 더불어 공연을 구성하는 이 크고 작은 요인들은 무대 위의 주인공이자 예리한 관찰자인 타로에게 흥미로운 글감이 된다.

지나치기 쉬운 이 요인들을 하나하나 포착하는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가 음악만큼이나 ‘공연’에 매료된 것처럼 보인다. 타로에게는 공간, 분위기, 몸짓, 손짓, 크고 작은 소리 등 이 모든 것이 결코 부수적인 것들이나 소음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그에게 연주 도중에 사탕 봉지를 조용히 여는 관객은 서로 마주치지 않고 말도 나누지 않지만 함께 한 곡의 실내악을 연주하는 충실한 파트너이고, 연주 시작 전의 박수갈채는 청중의 몰입도와 공간의 음향을 측정하는 중요한 가늠자다. 돌이켜보면 청중 입장에서 공연을 볼 때도 음악과 음악 아닌 것을 엄밀하게 갈라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던 것 같다. 지휘자가 무대로 걸어 나오는 순간부터 이미 음악이 시작되는 것 같았을 때, 한 곡의 연주가 끝나고 소리는 완전히 잦아들었지만 연주자들이 여전히 음악을 듣고 있다고 느껴질 때 등 공연에서는 말 그대로 모든 순간이 음악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듯했다.

만약 우리가 음악을 소리의 예술이 아니라 공연의 예술로 접근한다면 공연에서 맞닥뜨린 어떤 요인을 음악 외적인 것으로 분리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타로도 기나긴 지면을 할애해 공연을 지탱하는 그 수많은 요인을 하나하나 음악적 대상으로 불러낸 것일 테다. 그 어수선하고도 다뤄내기 까다로운 ‘무대 위의 연주’에 관한 이야기를 공연 전체에 관한 이야기로 조금씩 확장해 나가는 타로의 글을 읽다 보면 음악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더욱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공연’이라는 사건의 정체는 무엇이고 우리는 거기서 어떤 음악적 순간을 즐기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며 공연의 여러 결을 촘촘히 드러낸 글을 읽는 것은 접하기 드문 행운이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이라는 유산  (0) 2019.09.26
소리 아닌 공연예술로서의 음악  (0) 2019.09.19
달이 녹다  (0) 2019.08.29
일본 말고 오키나와  (0) 2019.08.01
파도여 말해다오  (0) 2019.07.18
과유불급  (0) 2019.07.0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부가 18일 생산연령(15~64세) 인구 확충 등 4대 핵심전략을 담은 ‘인구구조 변화 대응방안’을 내놓았다. 줄어드는 인구로 경제는 물론 국가존망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정책의 방향은 출산 장려정책은 계속 추진하되, 인구 감소에 따른 충격은 완화하고 적응능력은 키우는 데 맞춰졌다. 정부 대책은 역대 정부 처음으로 인구 감소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인구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일단 평가할 만하다.

정부는 이날 4대 핵심전략 중 첫번째로 생산연령인구 확충방안을 발표했다. 60세 이상 고령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확대키로 했다. 기업이 재고용·정년연장·정년폐지 등 고용연장 방안을 선택할 수 있는 ‘계속고용제도’ 도입도 검토키로 했다. 정부는 ‘절대인구 감소 충격완화’ ‘고령인구 증가대응’ ‘복지지출 증가 관리’ 등 나머지 3개 핵심 전략에 따른 정책과제도 잇따라 내놓을 계획이다.

정부의 인구정책은 지금까지 ‘낳지 말아라’ ‘더 낳아라’ 등 출산대책에만 집중됐다. 그마저 예측이 실패, 인구절벽 위기를 자초했다. 최근 10년간 저출산 완화에 15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98명까지 떨어졌다. “한국은 저출산으로 지구상에서 소멸되는 첫번째 국가가 될 것”이라는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교수의 예측이 떠오른다. 이번 대책도 이런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향신문은 올 신년기획 ‘다시 쓰는 인구론’을 통해 “사회가 달라져야 인구가 변화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민 절반 이상이 “인구 감소가 기회일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도 확인했다. 그러면서 ‘세대·계층 간 갈등 해소’ ‘분배·복지 강화’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사회’ ‘모두가 일할 수 있는 사람 키우기’ 등을 주문했다. 최근 한국 경제는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세계 경제 역시 둔화 국면으로 ‘경기침체 공포’마저 대두되고 있다. 경제불확성은 크고, 우리 사회의 묵은 갈등은 온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부 인구 대책은 인구 감소·고령화 대응에 치우쳐온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당장 이날 발표한 대책에서도 청년 일자리 방안은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올 하반기에 ‘제2기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장기 과제를 추진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래와 현재, 사회와 경제상황 전반을 아우르면서 세대와 계층 간 합의와 공감을 얻는 인구정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기왕 인구정책을 정립하기로 했다면 국가운영의 패러다임까지 바꾸겠다는 자세로 임하기를 바란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유엔 사무총장이 미국 뉴욕에서 소집한 ‘유엔기후행동정상회의’가 23일 열린다. 리우(1992)-교토(1997)-코펜하겐(2009)-파리(2015)-인천(2018)에서 변곡점을 찍어온 세계기후회의 공식 명칭에 변화(Change)가 아닌 행동(Action)이 처음 새겨졌다. 뉴욕에서 ‘청년 기후행동정상회의’가 예정된 21일 서울 대학로에선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시작된다. 뜻이 모호하고 밋밋한 ‘기후변화’보다 ‘기후위기’로 경종을 높인 것이다. 지구촌의 기후행동은 한 달 전부터 달궈졌다.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탄소 배출이 없는 태양광 요트를 타고 지난달 13일 뉴욕까지 보름간의 대서양 항해에 나섰다. 닷새 후 아이슬란드에선 700년간 오크화산 분화구를 덮고 있다 사라진 첫 빙하를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지난해 8월 스웨덴에서 시작돼 세계로 퍼진 청소년들의 ‘금요일 기후파업(결석시위)’은 20일 정점을 찍고, 27일 한국에서도 열린다. “기후야 바뀌지 마. 내가 변할게.” 가을 기후행동에 곧잘 등장하는 다짐이다.

기후행동으로의 격상은 예견된 바다. ‘더워지는 지구’가 기록적인 폭염·홍수·태풍·한파·산불을 만들고 있다. 27년 전 리우협약이 경고했고, 2015년 파리협약은 산업혁명 이후의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2도로 막지 못하면 파국이 온다고 온실가스 감축을 국제법적으로 의무화했다. 이 숫자는 지난해 인천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1.5도로 더 낮췄다. 1만2000년간 일정했던 지구 온도가 산업혁명 후 100년간 1도 올라 이제 0.5도 남았다는 것이다. 오늘같이 세계가 온실가스를 뿜으면 2031년에 닥칠 일이다. 하지만 2030년까지 세워진 이정표는 무역전쟁을 벌이는 빅2(미국·중국)의 역주행 속에 빨간불이 켜졌고, 지역에 따라 들쭉날쭉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회의에 참석하는 한국도 목표치를 지키지 못하며 탄소배출 세계 6위인 ‘기후악당’으로 분류돼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사람들은 몸으로 알고 있다. 눈앞의 사탕처럼 이산화탄소를 당겨 쓰면 미래세대의 고통과 재앙이 커질 뿐이다. 기후행동이 시급하고 울림이 커져가는 이유다. 정부도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후위기를 공인하고, 떨어진 온실가스 감축 속도를 높이고, 프랑스나 독일처럼 긴 ‘탄소 제로’ 로드맵도 그릴 때가 됐다. 예외 없이 더 늦기 전에 열 받은 지구를 무서워해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경기 파주시에 이어 연천군에서도 18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날 파주시 농장에서 국내 처음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진된 이후 이틀에 걸쳐 2건이 발생한 것이다. 북한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번지는 상황은 남북이 협력해 방역에 나설 필요성을 일깨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방역협력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북한에) 방역협력을 제안했는데 긴밀하게 협력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지난 5월 북한 북부 자강도에서 발생했다. 북한이 발병 사실을 세계동물보건기구에 공식 보고한 직후 정부가 개성 연락사무소를 통해 방역협력을 제안했지만 북측은 무응답 상태다. 이 때문에 자강도에서 시작된 돼지열병이 휴전선 부근까지 내려왔는지, 북한은 어떤 식으로 대응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장관은 북한 내 발병 관련 현황에 대해 “정확하지는 않고 세계동물보건기구와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 국제기구에 보고한 내용을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초보적인 수준의 협력도 이뤄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발병 원인을 북한으로부터의 전염으로 추정할 근거는 부족하다. 파주시 농장이 북한과 가까운 곳이긴 하지만 창문이 없는 축사형태라 야생동물과의 접촉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김 장관도 “야생멧돼지 경로와 관련해 여러 조치를 취했는데, (북한에서 확산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치사율 100%에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돼지열병으로 한반도 전역에 재난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남북 간 방역협력은 필수적이다. 북한도 ‘강 건너 불구경’식으로 외면할 일이 아니다. 경기 북부지역에서 발생한 돼지열병이 휴전선을 넘어 북측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1년 전 남북은 전염병 등에 대한 방역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남과 북은 전염성 질병의 유입 및 확산 방지를 위한 긴급조치를 비롯한 방역 및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9월 평양공동선언)는 내용이다. 통일부는 이날 남북 방역협력 추진 필요성을 담은 대북 통지문을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북측에 전달했다. 북측의 성의있는 대응을 촉구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