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앞에서 송영무 국방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은 ‘9·19 군사합의’에 서명했다. 그리고 지난 1년간 지상의 군사분계선과 해상의 북방한계선 일대를 연하여 양측 공히 적대행위라 인식될 도발이 없었다. 휴전 후 수천번 발생한 군사적 충돌과 이로 인한 남북 젊은이들의 희생도 없었고 서북도서 어민들의 안전조업을 위협하던 해상사격도 멈췄다. 과거 맺어졌다 깨어지기를 반복한 다른 군사합의에 비해 9·19 군사합의가 나름 지속성을 갖는 이유는 양측 공히 군사준비태세와 평시작전태세의 저하 없이 합의 이행과제를 실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9·19 군사합의를 ‘실질적 종전선언’이라 평가하는 반면, 어떤 이는 ‘안보포기 각서이자 항복문서’라 폄하한다. 양측의 주장 모두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면이 있다. 지리적으로 군사분계선과 북방한계선 위주로 합의 이행과제가 구성됐다는 점에서 종전선언이나 불가침협정과는 다소 괴리가 있다. 그러나 군사합의를 두고 안보포기, 항복문서 운운하는 것은 합리성을 결여한 정치적 공세로밖에 볼 수 없다.

만약 9·19 군사합의가 안보포기 각서나 항복문서라면 1년이 넘은 지금쯤 남한 땅 어딘가에 인공기가 펄럭여야 하는 것 아닌가. 연합방위의 수장인 연합사령관의 반대 기자회견이 한번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군사합의가 실질적 종전선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대북 군사준비태세나 평시작전태세가 약화됐다는 주장은 불합리하다. 안보포기 각서나 항복문서라 말하는 것은 합의를 준수하고 있는 국군을 모독하는 행위다.

9·19 군사합의는 군사적으로는 한정적이고 전략적으로는 필수적이고 역사적으로는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적으로 정전협정 틀 내에서 군사분계선과 북방한계선 일대에서의 적대행위 중지 및 충돌방지에 초점을 두고 있고 전반적 군사준비태세 및 평시작전태세 유지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정적이다. 하지만 전략적으로는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시작하기 위해 남북 간 최소한의 실천적 신뢰 구축을 했다는 점에서 필수적이다. 역사적으로는 언젠가 다시 합칠 5000년 한민족으로서 외세에 의한 강제 없이 냉전적 이념대결을 넘어 약속을 맺고 지켰다는 점에서 필연적이다. 

정전관리의 책임을 갖고 있는 미국 펜타곤과 유엔군사령부가 9·19 군사합의를 지지하는 이유도 군사합의가 정전협정의 틀 내에서 기획됐고, 지난 65년간 지속된 정전협정 위반을 중지하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30일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릴 수 있었던 것도 군사합의의 이행과제인 JSA 비무장화 덕분이다. 양측 경비병력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각국 정상이 함께 걸을 수 있었고, 짧은 준비로 회담 개최가 가능할 정도로 최소한의 신뢰가 구축됐기 때문이다.

9·19 군사합의는 남북이 스스로 만든 의미 있는 산물이다. 남북이 스스로 건설적 합의를 만들어내고 지킬 수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9·19 군사합의를 통해 지난 1년간 군사분계선과 북방한계선 일대의 충돌이 방지되고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지 않았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남북 군이 약속을 지켰다는 점은 분단극복과 평화번영의 길에 중요한 사례와 경험으로 작동할 것이다.

하지만 9·19 군사합의에 강제력이 미흡하다는 점은 남북 공히 깊이 새겨야 할 부분이다. 최근 북한의 연속된 미사일 발사는 각론 차원에서 군사합의 이행 항목의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적대행위 중지를 통한 군사적 긴장완화라는 군사합의 기본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로 비난받을 여지가 있다. 아울러 일방의 대응행동으로 군사합의의 이행 항목 위반을 야기할 여지도 부인하기 어렵다. 남북 사이에 맺고 깨기를 반복했던 많은 합의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가동해 9·19 군사합의의 실천적 이행조치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여석주 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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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학생들에게 영어 이름과 함께 자기 소개를 원했다. 내 순서를 마치자 마사오라는 일본인이 말문을 열었다. 유순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그래서일까. 선생들은 그를 내심 반기는 눈치였다. 그는 20년 전 미국 어학연수원에서 만난 인물이었다.

학급에서 가깝게 지내던 친구는 3명 정도였다. 그들의 국적은 루마니아, 이란, 일본이었다. 친밀감을 확인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은 바로 눈빛이다. 수업을 마치면 그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냈다. 관계의 지속 가능성은 호감도의 유효기간과 비례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초반에 가장 가까웠던 인물은 루마니아인이었다. 직장인이라는 점도 공통분모로 작용했다. 문제는 영어에서 튀어나왔다. 그가 1개월 만에 학급에서 회화 실력이 급상승한 것이었다. 자신감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던 그는 차츰 우리와 어울리기를 부담스러워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피차 비슷한 목적으로 미국행을 시도한 어학연수생의 딜레마였다.

다음은 마사오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아버지가 운영한다는 일본 호텔 체인점을 경영하기 전에 보스턴행을 결심한 그였다. 일본인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을 상쇄시켜줄 만한 친구라는 기대는 보스턴의 봄과 함께 사라졌다.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에는 노모라는 일본인 투수가 선발진에 포함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야구부 출신인 마사오는 늘 야구 이야기를 대화 소재로 삼았다. 주말에 펜웨이파크 야구장에 가자는 그의 제안에 나는 상대 팀을 응원하겠다고 전제했다. 순간 마사오의 눈빛이 흔들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토요일에 등판하는 노모를 응원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다른 팀을 응원하며 야구를 즐겼다. 결과는 노모의 선발승이었다. 경기장을 나오면서 마사오가 말을 건넸다. 한국프로야구 선발투수의 연봉을 묻는 질문이었다. 

순간 마사오의 의도가 보이더라. 그는 빠른 어투로 일본에는 메이저리그 수준의 연봉을 받는 투수가 허다하다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내 대답은 명쾌했다.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해줬다. 마사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흘리다 다시 예전의 미소를 되찾았다. 이후 마사오는 나를 조금씩 멀리했다. 이유는 역시 서로의 눈빛이었다. 

두 번째 만난 일본인 겐지는 재즈피아니스트 빌 에번스를 좋아했다. 이번에는 야구 대신 음악을 매개로 인연을 이어갔다. 겐지의 성향은 마사오보다 일찍 드러났다. 학교에서 마주치는 마흔줄의 일본인 여성을 보며 내게 이런 말을 흘리더라. 저 나이에, 저 외모에, 저 행색에 어학연수가 어울리냐는 뒷담화였다. 순간 겐지의 어투에서 마사오처럼 가깝지만 먼 나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것은 혼네와 다테마에로 무장한 일본인의 두 얼굴이었다. 겐지에게 물었다. 나이나 외모, 행색이 어떻게 인간의 가치를 좌우할 수 있냐고. 그는 씁쓸한 미소를 보이며 일본인은 한국인과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어쭙잖은 변명을 남겼다. 일본인의 가치관이 앞에서 웃고 뒤에서 욕하는 일이냐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마사오나 겐지나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울타리에서 맴도는 인간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일본과의 문화전쟁이 한창이다. 앞으로도 일본은 미·중의 눈치를 살피며 한국을 이용하고 자극할 것이다. 다행히 일본은 1980년대의 경제동물이 아니다. 혁명으로 극우정권을 바꾸지도 못한 정치 무관심의 나라다. 21세기에 안 어울리는 수동적 국민성을 고집하는 전범국가다. 여전히 스스로가 서유럽의 일부분이라 여기는 퇴행적 오리엔탈리즘의 그늘이다.

혼네와 다테마에. 언행일치를 가벼이 여기는 기미가요의 섬나라. 지금이야말로 일본과의 비교우위를 단단히 준비할 시기다. 혼네와 다테마에의 정치논리를 역이용하는 외교가 필요하다. 전쟁국가로의 재건을 모색하는 아베 정권에 맞설 만한 국력의 신장은 물론이다. 욱일기를 휘감은 부패한 극우정권의 미래는 없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취향의 발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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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은 포스터 2가지를 내놓았다. 형사로 분한 송강호·김상경의 얼굴 뒤로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묻는 컬러판과 ‘1986년 시골마을, 두 형사에겐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고 적은 흑백판이다. 10차례의 화성 연쇄살인을 그린 두 포스터의 글귀는 33년 만에 답을 찾았다. 컬러판의 ‘당신’은 처제 성폭행·살인범으로 25년째 부산교도소에 있는 56세 남자 무기수로 지목됐다. 흑백판의 잔뜩 화난 두 형사가 쥔 유력한 단서는 5·7·9차 사건 용의자의 DNA였다. 연인원 205만명이 범행 현장을 뒤지고 4만116명의 지문을 대조했어도 허탕만 친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과학수사의 열매였다. 

86년 9월 15일 1차 사건 발생 이후 91년 4월까지 10차례 살인사건 발생. 단서없이 미궁에 빠진 수사본부는 10년 만에 해체 경찰이 1987년 1월10일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5번째 희생자 홍모양(당시 18세)이 발견된 황계리 논바닥 범행 현장(왼쪽)을 살펴보고 있다. 1988년 12월 조종석 당시 치안본부장(가운데)이 화성 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를 찾아 취재진에 수사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10번째 희생자 권모씨(당시 69세)가 1991년 4월3일 발견된 동탄면 야산에서 경찰이 현장검증(오른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경향신문 자료사진

사건이 일어난 화성의 논밭·야산에서는 정액 묻은 피해자 속옷들과 머리카락 6가닥, 담배꽁초, 우유팩 등이 수거됐다. 가로등 몇 개 켜진 시골마을엔 폐쇄회로(CC)TV도 없어, 경찰은 20대 중반 스포츠머리 몽타주를 들고 매복하며 범인을 쫓았다. ‘비오는 수요일 빨간 옷 조심’이라는 괴소문이 돌고, 유전자 수사는 낯설어 일본에 부탁할 때였다. 휴대폰과 CCTV로 범인의 위치·단서를 실시간 추적하는 지금과는 천양지차다. 유전자 수사는 이제 가·피해자의 생활습관·질병까지 찾아내고, 어느 바다에 사는 장어인지 가리고, ‘디지털 증거’도 쏟아내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집 문설주의 곰팡이, 컴퓨터 마우스에서 채집된 박테리아, 신발 밑창에 묻은 꽃가루로 범죄 단서를 추적하는 수사 기법들이 공유되고 있다. 화성 사건 용의자 지목도 발전한 과학수사, 2006년 공소시효가 끝난 뒤에도 유전자 기술이 개발될 때마다 수사팀이 부단히 국과수를 찾은 집념의 합작품인 셈이다.

CCTV가 거리에 깔린 후 은행강도가 없어졌다. 도망가고 숨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과학수사가 악행을 막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응징의 시작이다.” 봉 감독이 16년 전 살인 영화 제목에 ‘추억’을 넣으며 한 말이다. 집념처럼 기억하고 과거엔 몰랐던 과학수사로 응징할 미제사건은 아직 널려 있다. 살인의 추억도 지목된 용의자가 범행을 부인하며 ‘시즌2’가 시작됐다. 더 많은 과학적 단서가 그를 옥죄고 무너뜨릴 것이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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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거대 군수기업과 정치권이 상호 의존 체계를 형성하고 있는 군산복합체의 나라이다. 미국 군수기업은 영향력이 막강해 백악관과 정부를 움직이는 ‘그림자 정부’ 역할을 한다. 과거 무기를 생산하던 것에서 나아가 지금은 원자력발전과 금융, 석유, 식량, 정보기술, 언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확장했다. 총기 사고가 빈발해도 미국이 규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익 감소를 우려하는 총기 생산 군수기업의 반발과 로비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악의 근원’으로 불린다.

경향신문이 지난 6월 개최한 경향포럼에 기조강연자로 참석한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장을 만났을 때 물었다. “군산복합체 관점에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 무기를 파는 게 미국에 이익인가, 북한을 개방시켜 경제교류를 하는 게 더 이익인가.”

“질문 자체가 말이 안된다. 미국이 무기를 파는 건 동맹국의 군사적 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이다. 이건 전략적인 문제이지 경제적인 문제로 보면 안된다.” 답변은 예상했던 대로 ‘거짓말’처럼 들렸다.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느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였다.

물론 북한 핵무기의 미국 공격 위협 등 전략적 고려 사항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철저히 자국 이익을 앞세우는 미국이 경제적 득실 계산 없이 북한과 대화에 나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북·미 협상이 시작된 뒤 북한 진출을 타진하는 미국 기업이 급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예멘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유전시설을 공격했다. 수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는 양측 대신 펄쩍 뛴 것은 미국이었다. 이란 지원을 받은 반군이 드론을 동원해 공격했다고 했다. 이후 미국은 이란의 미사일 공격도 있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장전 완료”라는 표현을 써가며 언제라도 이란을 공격할 준비가 돼 있음을 천명했다. 이란은 “최대 사기”라며 미국을 비난하고 있다.  

트럼프 발언은 이란과 예멘 반군을 공격할 무기 수요가 급증할 것임을 예고한다. 중동에 큰 시장이 열리게 됐다. 미국은 2016년 기준 전 세계 군수기업 매출의 58%를 차지한다. 세계 3위 국방비 지출국 사우디아라비아는 무기의 61%를 미국에서 수입한다. 드론 공격의 위력을 실감한 나라들은 이를 막을 방법을 찾느라 무기를 구매한다. 당장 한국도 올해부터 880억원을 들여 드론 공격을 방어하는 레이저 빔 대공무기를 개발하기로 했다. 미국은 드론 공격과 방어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다. 군산복합체가 현 상황을 조성했을 수도 있다는 음모론이 나온다.

한쪽 진영에만 발을 디딘 채 보면 상대의 말은 모두 거짓이다. 미국은 이미 전쟁 상대로 이란을 지목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유전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이란의 해명은 거짓말로 치부할 뿐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뒤에도 거짓말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구속된 조 장관 5촌 조카는 사모펀드의 사실상 운영자였고, 부인은 펀드 운용에 관여한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나고 있다. 조 장관은 “사모펀드가 뭔지도 몰랐다”고 했다. 딸이 고려대 진학 과정에서 제1저자로 등재된 단국대 의학논문을 제출한 사실도 검찰에서 밝혀냈다. 조 장관은 “논란이 된 논문이 제출되지 않았다”고 했다. 

확인할 방법이 없는 이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과거 데이터나 기록을 통해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운지 추론할 수는 있다. 그런 식이라면 미국과 조 장관은 진실에서 멀어져간다. 

진실을 감추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다. 군산복합체는 전쟁까지 가지 않더라도 시장 확대에 따라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 미국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와 주변국의 무기 수요까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반면 무력으로 상대방을 무릎꿇리는 과정에서는 무고한 민간인 사상자와 난민을 발생시킨다. 이런 폐해는 정의로 포장한 특정 집단의 이익 앞에 고려 대상이 아니다.

조 장관은 어떤가. 사법개혁에 매진해 성공한다면 ‘나라다운 나라’의 기틀을 세울 수 있다. 국가에 큰 이익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허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조국식 개혁이 성공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낮다는 점이다. 조국 찬성과 반대로 갈라선 국민은 온라인과 거리, 밥상머리에서 비생산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으니 국가적 손실이다. 조 장관 아내와 딸, 아들, 처남, 조카 등 집안도 풍비박산 지경에 처했다.

거짓말로 모두를 속일 수는 없다. 거짓말쟁이는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자기최면에 빠져 진실인 양 신념을 갖고 거짓을 밀어붙인다. 거짓말이 다른 이들에게 미치는 폐해는 광범위하다.

<안호기 경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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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말하고, 당장 행동하라.” 기후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 4일 결성된 ‘기후위기비상행동’의 요구다. 절박함이 느껴진다. 기후 문제의 대명사로 사용되던 ‘기후변화’는 문제의 심각성을 왜곡한다는 인식 때문에 사용이 뜸해졌고, 대신 기후위기·기후폭력·기후재난·기후붕괴 같은 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후에 대한 위기감이 한층 커졌음을 뜻한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는 산업화 이후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을 1.5도로 막아야 하며, 2도 상승은 기후파국을 뜻한다고 경고한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지금처럼 계속되면, 1.5도 상승까지는 12년 정도가 남았고, 이것을 막을 수 있는 국제사회의 정책 결정에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1년 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약속했고, 작년 여름 살인적인 더위가 덮치자 폭염은 재난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정작 기후위기의 근원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2020년의 감축목표는 슬그머니 폐기되었고, 2010년 대비 2030년의 감축목표는 국제기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문 대통령은 오는 23일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 참석하지만, 관심은 한·미 정상회담에 쏠려 있다. 그런 우리나라가 2018년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 2017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 OECD 4위, 10년간 증가율 2위다.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국가’로 불려도 할 말이 없다.

우리는 몸에 조금만 열이 있어도 힘들어하지만 열로 끙끙대는 지구에는 무심하다. 규모가 너무 커서 실감을 못할 수도 있고, 모두의 문제니 누군가 알아서 할 거라 믿을 수도 있고, 혼자만이 아니라 모두 함께 죽는다는 것이니 무서운 느낌이 없을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가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사이 기후는 악화일로에 있다. “나는 오늘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lt;구약성경&gt; 신명기) 사람이 살려고 하는 건 당연한데도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살기 원한다면서 생명 대신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저주의 길을 축복의 길로 착각한다. 착각한 줄 알고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고, 알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 화석연료에 기초한 생활양식을 근원적으로 전환해야 하고, 그러려면 정부 정책의 과감한 전환이 요구된다. 하지만 화석연료에 중독된 우리에게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삶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현실을 외면하고, 침묵한다.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같은 대책으로 ‘화답’한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기후재난이 자신들의 미래를 앗아갈 것이라는 위기의식에 청소년들이 밖으로 나와 외치기 시작했다. 기후위기를 인정하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파업 시위로 물꼬를 텄다. 청소년이나 기후난민의 경우에서 보듯이, 기후 문제는 화석연료를 적게 쓰고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쪽이 피해를 더 많이 보는 구조다. 기후위기에 책임이 큰 국가, 집단, 개인은 아직은 피해에서 벗어나 있다. 기후재난은 공정하지 않다. ‘조국 사태’는 우리가 불공정에 얼마나 민감하고 분노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그런 우리가 원인과 결과에서 모두 불공정한 기후위기에 침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가당착이다. 

지난 4월, 프란치스코 교종은 툰베리에게 지금 가는 길을 계속 가라고 격려했다. 지금은 다수가 외면하고 소수만이 걷는 그 길이 바로 생명과 축복의 길이기 때문이다. 9월21일은 ‘기후위기비상행동의날’이다. 이제는 우리 다수가 침묵을 떨치고 힘을 모을 때다. 모두 함께 기후비상을 외치고, 정부와 기업에 비상대책 수립을 요구할 때다. 내가? “그렇다! 당신이 아니면, 누가?” 당장? “그렇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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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법 권력이 가장 강한 나라이다. 가장 강하다는 것은 법이 국치와 민생의 근간이어서가 아니라 권력의 작용지점이라는 의미에서다. 법은 그 자체로 권력이고, 권력을 재생산하고, 권력을 무장해제시킨다. 권력에는 정치권력, 경제권력, 문화권력 등이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법 권력은 그 모든 권력 위해 군림한다. 최근 한국 사회의 국론과 여론은 모두 조국 법무부 장관으로 통한다. 그가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하기까지 근 한 달간 한국 사회는 법 권력이란 블랙홀에 빠졌다. 그가 법 권력을 적절하게 견제해야 하는 민정수석의 자리에 있다가 예외적으로 곧바로 법무부 장관의 자리에 오른 것도 그렇고, 그의 시대적 소명이 법 권력의 최종지점인 검찰개혁에 있는 것도 그렇다. 

조국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고, 서울대 법대 교수이다. 그를 극렬하게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원내대표, 김진태 의원도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그와 세기의 법 권력 헤비급 타이틀 매치를 기다리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도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법 권력을 해체하기 위해 나선 조국 역시 법 권력의 중심에 있으며, 그를 반대하는 자들도 역시 법 권력의 구세력들이다. 법 권력의 전복과 배제의 법칙은 오로지 그들만의 게임이고, 그들 권력의 반복과 차이만을 재생산한다. 이것이 조국게임의 딜레마이다. 조국으로 표상되는 검찰개혁과 조국사태로 한국 사회를 마비시킨 반동적인 행동들은 모두 결국 법 권력의 항구적 힘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법 권력은 그 자체로 국가권력이자 사회권력이 되었다. 20대 국회의원 300명 중에서 법대 출신 의원은 총 64명으로 전체 의원의 21.3%를 차지한다. 더불어민주당이 27명으로 가장 많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의 주요 정당인, 정치인, 선출직 주요 단체장 상당수가 법대 출신이다. 대기업의 임원들, 국가 주요 산하기관 고위 임원들 역시 법대 출신이거나, 전직 법조인이 많다. 이는 그만큼 한국 사회의 권력구조가 법조계 인사들로 과잉 결정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실제 법의 정의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법의 정의를 위해 법 권력은 해체돼야 하지만, 정작 법 권력은 법의 정의를 구현한다는 명분으로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이 법 권력의 역사적 실체이다. 

조국게임은 그 점에서 법 권력 실체를 여실히 드러낸다. 조국과 조국게임은 같지 않다. 조국게임은 법 권력을 해체하려는 조국의 의지나 사명과 무관하다. 그 의지와 사명은 단지 법 권력의 재생산을 증명하는 허무한 게임의 룰이 될 위험에 처해 있다. 법 권력은 조국을 조국게임의 구성요소로 만들어 버렸다. 역설적이게도 조국이 민주주의에 기반한 법과 원칙을 호소하면 할수록 개혁의 대상자들은 그 정당성을 무력화하는 무기로 법을 사용한다. 조국과 그의 딸, 부인과 관련해 모든 신상을 털려는 검찰과 보수언론의 최종 노림수는 가능한 한 모든 위법행위를 적발하는 데 있다. 

우리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많은 민중들이 고통을 당하며 법에 호소했던 역사들을 알고 있다. 수많은 양심수들이 수십년이 지나고서 법 앞에서 무죄를 인정받고, 수많은 해고노동자들이 부당해고에 맞서 오랜 법적 투쟁을 통해 승소한 사례들을 기억한다. 그나마 민중들이 법정에서 이기는 사례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민중들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법 권력은 단지 찰나의 시간만 필요하다. 사법개혁은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고, 법이 만인을 평등하게 만드는 세상을 여는 것일 텐데, 사법개혁은 권력의 장 안에서 이미 스캔들이 되었고, 희화화되었다.     

미셸 푸코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라는 책에서 권력, 법, 진실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법은 주권의 관계들이 아니라 지배의 관계를 전달하고 작동시키는 것이다. 법 권력은 그 작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지배적 힘이다. 조국게임은 의도와 관계없이 이러한 지배적 법 권력의 재생산을 위한 꽃놀이패일 수 있다. 우리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통해 이미 그것을 학습한 바 있지 않은가?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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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연휴 내내 고열에 시달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대거리(인터뷰) 도중 수시로 말을 쉬었다. 인터뷰에 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더니 통일에 대해 묻겠다고 하자 “그렇다면 내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한마디 해야지”라고 말했다. 지난달 “마지막 소원이 있는데, 고향에 가서 어머니를 뵙고 싶어”라고 한 말이 떠올라 청한 인터뷰였다. 9·19 평양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 남북통일의 전망에 대해서도 듣고 싶었다. 

“내가 열세 살 때 서울에 온 지 이제 80년이 다 되어가. 마지막으로 고향(황해도 은율)에 가서 어머니를 뵙고 싶어. 늙으신 어머니를 등에 업고 구월산 마루턱을 냅다 뛰면서 소리 지를 거야. 이 못난 백기완이도 효도 한번 한다고. 어머니가 지금껏 살아계시면 110살이 넘었지. (문익환 목사가 1990년대 초 방북했을 때 백 선생 누님에게서 모친이 타계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백 선생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만약 돌아가셨다면 어머니 산소라도 찾아 뵙고 싶어.”

최근 한·미, 한·일 관계의 속살이 드러나면서 동맹이니 우방이니 하는 말에 의문부호가 붙고 있다. 우리가 당연시해온 한반도 정세와 이를 둘러싼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1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5·1경기장 연설을 그 자리에 있던 15만 평양시민은 물론 남북한 주민 모두 가슴 뭉클하게 지켜보았다. 그러나 꼭 1년이 흐른 오늘, 남북은 어떤 행사도 함께 열지 못했다. 통일로 가는 탄탄대로는커녕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일말의 전망도 보여주지 못했다. 실향민의 아들이 남쪽의 대통령이 되었는데 이산가족 상봉 문제 하나 풀리지 않았다. 

“허리가 두 동강 난 사람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격이야. 분단의 고통은 다 잊고 눈앞에 닥친 현실만이 최우선 고통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어. 분단 70년을 보내니 그 현실을 당연시하고 그 안에서 굶어 죽지 말자는 의식이 지배하고 있어. 자그마한 개인적인 손해에는 화를 벌컥 내면서도 공동체를 위협하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거든. 이걸 식민지 의식이라고 하는 거야.” 

문재인 정부 들어 ‘선 평화, 후 통일’이 정책의 기조로 굳어졌다. 통일이라는 말에 더 이상 시민들의 가슴이 뛰지 않는다. 대북 적대 의식을 높여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젊은 세대는 오히려 통일을 부담으로 여긴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통일을 말하지 않는다. 통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 훗날 남북의 이익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으로 되어가고 있다. 이런 세태를 질타하며 목놓아 통일을 외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요즘 통일이 왜 해야 하느냐 이렇게 살면 되지 하는 말을 하는 젊은이들이 더러 있다는 얘기를 들어. 강대국의 이익에 맞게 한반도가 분단되었는데, 그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운명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버렸어. 남쪽과 북쪽이 서로 으르렁거리게 하고, 하나를 둘로 쪼개 경영해야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강대세력의 지배논리에 오염이 된 것이야. 이걸 다 부셔야 해. 결국 나를 살리는 길은 남의 동정이 아니야.” 통일은 누구의 도움으로 이룰 수 없으며, 남북이 한겨레라는 생각으로 정서를 먼저 통일해야 한다는 말이다. 

“남북의 두 지도자가 또 만날 텐데, 다음에 만나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 내가 남쪽의 최고지도자네, 북쪽의 지도자네 권세와 돈을 앞세우면 안돼. 분단이 외세에 의해 강요된 체제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확인해야 해. 분단은 우리 민족이 동의한 적이 없는, 허리를 뚝 자른 침략선이라는 그런 선언과 다짐을 하는 만남을 해야 한다 이 말이야.” 

“침략선이 존재하는 한 한반도 내 모든 갈등과 대치는 해결할 수 없어. 분단은 원래 주어진 상황이 아니며, 강요된 현실은 현실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해. 이런 분단의 아픔을 아픔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야.” 남북이 동시에 그렇게 깨우쳐야 당면 문제와 목표와 해결 방안이 명확해진다는 뜻이다. 

“내가 죽기 전에 고향에 가보고 싶다고 한 것은 나 개인의 향수를 충족시키겠다는 게 아니야. 이제 고향 가는 일은 내 나이나 힘의 한계를 넘었어. 고향을 눈앞에 두고 못 가고 죽을 거야. 다만 이 늙은 몸뚱이 갖고도 고향 땅 어머님 무덤이라도 보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하는 거지.” 

백 선생의 여든일곱 여윈 뺨에 그예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그리고 목이 메여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이보시오, 이것 하나만은 꼭 밝혀주시오. 이 할아버지 백기완이 눈물로써 이 이야기를 기록한다고.” 이 땅의 그 어떤 책임있는 사람도, 지식인도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 외세와 분단의식을 불식해야 한다는 것 -을 드러내는 것이 통일운동가 백기완의 마지막 소원이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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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정시 확대론’이 분출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수시·정시 비율은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론에 편승하려는 목소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시 확대론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자유한국당이다. 지난 17일 김재원 의원(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등 한국당 의원 17명은 대학 입시에서 특별전형과 수시모집을 폐지하고 수능 시험만 활용한 정시모집 100%로 학생을 선발하도록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정시 확대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발언이 나왔다. 민주평화당도 지난 16일 박주현 수석대변인이 “정시모집 비율을 50%로 확대해야 한다”는 논평을 내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정시 확대론이 나오고 있다. 박용진 의원(서울 강북을)은 17일 방송 인터뷰에서 “정시를 조금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논의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고, 김병욱 의원(성남 분당을)은 최근 “정시 비율을 50%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4일 “2022학년도 입시는 기존 대입 개편방안 발표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18일 당정 회의 후엔 조승래 의원이 “정시·수시 비율 조정 문제는 협의 자체에 포함될 수 없다고 본다”고 정시 확대론을 경계했다.

‘조국사태’로 촉발된 대입제도 개선 논의가 정시 확대론으로 튀고 있는 상황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 각 분야의 목소리를 듣고 지난해 마련한 2022년까지 정시 30% 단계 확대 방안이 시행되지도 않은 상태다. 특히 최근엔 계층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정시를 선호하며, 하층은 상대적으로 입시 관련 논의에서 배제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정시는 상위층과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들에게 유리하다는 기존의 실증적 연구 결과도 많다. 대통령의 대입 개선 발언 이후 증권사들은 정시 확대 논의와 교육 테마주의 수혜를 전망했고, 예측대로 사교육 업체의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정시 확대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수능·내신 절대평가, 고교학점제와 배치된다. 

총선이 가까운 시점에서 정시 확대 같은 화끈한 한 방으로 주목받고 싶은 유혹은 점점 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장·단기 효과에 대한 면밀한 교육적 평가나 비전 없이 정시 확대가 만병통치약인 듯 주장하는 것은 학생·학부모 불안을 야기하고 공교육을 저해하는 포퓰리즘일 뿐이다. 국회가 할 일은 중구난방 의견 개진이 아닌, 종합적인 비전 마련과 차분한 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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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 250여명의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 점거 농성이 19일로 11일째를 맞았다. 그사이 열 명이 넘는 노동자가 건강이 악화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러나 농성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수납원 전원을 직접고용하라는 노조원들의 요구와 재판에 승소한 노동자 일부만 직접고용하겠다는 도로공사 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은 비정규직의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

19일 경북 김천시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11일째 본사 점거 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농성이 장기화하면서 정당·시민단체들의 지지와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19일 김천 농성현장에서 당 상무위원회를 열고 도로공사 사장은 즉각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앞서 18일에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58개 인권단체가 지지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도로공사 본사 앞에서 영남권결의대회를 가진 민주노총은 21일에는 전국 결의대회를 개최한다. 톨게이트 노조원들의 투쟁이 전체 비정규직의 투쟁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국제노동단체도 톨게이트 노조원의 투쟁을 지지하고 나섰다. 국제노총(ITUC)은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샤란 버로 사무총장 이름으로 서한을 보내 한국도로공사가 대법원 판결에 따라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전원을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민주노총이 밝혔다. 국제노총은 또 도로공사가 법원 판결을 무시한 채 노동쟁의를 형사고발과 경찰의 개입협박에 의존함으로써 공기업 중에서 나쁜 사례를 만들고 있다는 점도 규탄했다. 노동자 인권탄압에 대한 경고다.

국제노동단체가 문 대통령에게 서한을 통해 한국의 노동문제 해결을 촉구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출범 당시 ‘노동 존중 사회’를 표방했던 문재인 정부가 국제단체로부터 노동문제 해결을 요구받았다는 것 자체가 노동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는 증거다. 앞서 용역업체로 파견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1심과 2심에서 한국도로공사 소속 직원이라는 지위를 확인했다. 또 지난달 29일 대법원은 ‘도공은 요금수납원들을 직접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정부가 법원 판결까지 거스르며 직접고용을 회피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도로공사는 일방적인 자회사 추진을 중단하고 법원 판결을 존중해 재판 승소자 300명뿐 아니라 해고 노동자 1200명 전원을 직접고용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노동 존중’ 정부임을 확인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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