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라는 용어는 기후변화로, 기후변화는 다시 기후위기로 바뀌었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남태평양의 키리바시국과 인도양의 몰디브 같은 섬나라들은 바닷물에 가라앉게 되자 인근 섬을 매입했다. 몇 년 안에 전 국민을 집단 이주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홍수가 빈발하고, 대규모 산불이 곳곳에서 나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북극곰이 사라진다고 해도, 폭염의 여름을 견디면서도 기후위기를 실감하지 못한다.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을 때 잠시 환경의 중요성을 생각하다가는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잊는다. 기성세대는 기후위기에 대해서 아무래도 둔감하다.

그러다 지난 3월에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지난 3월15일 세계 105개국, 1650곳에서 청소년들의 시위가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날 광화문에서 청소년들이 학교를 결석하고 시위에 나섰다. 그들은 ‘멸종위기종 전시’라고 써 붙인 팻말 뒤에 나란히 섰다. 자신들이 곧 멸종위기에 몰린 종이라는 것이었다. 수십년 내에 닥칠 기후재앙으로 자신들은 미래를 꿈꿀 수 없게 되었는데 기성세대들은 너무 안이하다는 것이다. 그랬던 그들이 다시 오는 9월27일 세계의 청소년들과 연대하는 기후 파업을 벌인다. 학교를 가지 않고 광화문 일대에서 기후위기를 알리는 비상행동에 나선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의 주창자인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는 2003년생이다. 그는 2018년 8월 스웨덴 국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시위를 벌였다. “저는 어른들이 우리 미래를 망치고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어요.” 그의 이 시위는 급격하게 세계로 번져갔다. 이 시위가 준 영향으로 유엔은 기후행동 정상회의를 열기 전 지난 21일 ‘청년 기후정상회의’를 열었다. 여기에는 툰베리를 비롯한 세계에서 온 수백명의 청소년들이 참가했고, 우리나라도 4명의 대표단을 파견했다.

이 칼럼을 쓰는 시간 유엔에서는 기후행동 정상회의가 열릴 것이다. 그 회의가 어떤 합의를 이룰지는 아직 모른다. 과연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에 각국 대표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할까? 특히 세계 4대 기후악당국가로 지목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어떤 약속을 내놓을까?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청소년들은 2030년에 주목한다. 과학자들은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온도가 1.5도 높아지는 정도에서 멈추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온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추세대로라면 그해에 2도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0.5가 무슨 대수냐고 하지만 1.5도는 지구가 유지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이 마지노선을 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탄소 배출 제로를 실행해도 늦는다. 그만큼 지구의 기후위기는 심각한 상황인데 우리는 너무 느긋하다.

기후위기는 단지 더운 여름과 홍수와 산불, 빙하가 녹아내리는 일로 그치지 않는다. 기후위기는 인류가 겪어온 어떤 인권침해보다 더 심각하고 광범위한 인권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아프리카 수단 다르푸르 지역에서 발생한 분쟁으로 40만명 이상이 죽었고, 25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 분쟁의 배후에는 기후위기로 인한 가뭄과 사막화가 크게 작용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생명권-건강권-생계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분쟁과 폭력이 증가하면서 약자들에게 심각한 기후 차별을 부여하고, 이는 곧 법치를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의 파괴로 이어진다고 인권전문가인 조효제 교수는 역설한다.

기후위기는 곧 인류 문명 자체를 파괴할 것이다. 지금 청소년들은 백세 시대가 아니라 당장 10년 뒤에도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한다. 후세대가 살 수 없다면 인류의 멸종이 아닌가. 이런 위기는 인간이 만들어낸 위기다.

기후위기의 주범은 이산화탄소다. 산업혁명 이후 주로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면서 이전과는 달리 급격하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었고, 이로 인해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는 앞으로 10년 동안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기준과 비교해 1.5도 이하로 유지하기 위한 각 나라의 계획을 만드는 중요한 회의다. 세계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한다면 이 목표는 실현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박근혜 정부에서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7% 줄이겠다는 목표를 설정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세계 탄소 배출량 7위를 기록하는 고탄소배출국가, 그래서 기후악당국가로 지목되기도 한 나라치고는 목표도 너무 느슨하고, 그 목표조차 이루기 위한 정책 수단도 구체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다.

안이한 정부와 달리 시민사회는 9월21일,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나섰다. 태풍이 몰려오는 중에도 시민들은 모였고, 이번주 결석투쟁에 청소년들이 모이는 것은 고무적이다. ‘불타는 지구’의 온도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한다. 기후위기의 18%가 육식 때문이라고 하니 이 기회에 육식을 줄이는 것,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자동차 사용을 줄이는 것, 플라스틱 용기를 쓰지 않고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 등등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이다.

그렇지만 개인들의 작은 실천만으로는 기후위기의 속도를 줄일 수 없다. 탄소 배출 제로를 과감하게 선언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그를 실천에 옮기도록 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하자. 내년 총선 주요 공약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정책을 제시하도록 정당들을 압박하자. 기후악당국가였던 호주와 네덜란드도 2030년 탄소 배출 제로화를 선언했다. 지금은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때, 당장 하지 않으면 우리는 청소년들을 멸종위기종으로 만드는 공범자가 된다. 청소년들은 말한다. “우리 미래를 가지고 도박하지 말라”고.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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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은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를 검토한 결과, 최종 ‘부동의’한다고 밝혔다. 40여년 가까이 사회적 갈등을 빚어온 설악산 케이블카 논란에 드디어 그 마침표가 찍힌 것이다. 

설악산은 우리나라의 뛰어난 자연·생태계와 수려한 경관을 대표하는 민족의 영산 중 하나이다. 그 특별함에 걸맞게 국립공원, 천연보호구역, 생물권보전지역, 백두대간보호지역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으며 특히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녹색목록(Green list)에 등재돼 있는 명실상부한 국가대표 보호지역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인터넷 검색창에 ‘설악산’을 입력하면 그 연관 검색어에 ‘케이블카’가 먼저 나타난다. 설악의 이름이 케이블카에 덮여 설악 비경의 진수라 일컫는 울산바위, 공룡능선, 토왕성폭포 등이 가려진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케이블카 관광지는 스위스 알프스이다. 남한 면적의 절반도 안되는 나라에 약 2500개나 되는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다. 융프라우, 루체른 등 세계적인 케이블카 관광지가 즐비하고, 해마다 3200만명이 방문한다니 언뜻 들으면 부러워할 만하다. 하지만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스위스도 자연·생태계의 가치가 뛰어난 스위스국립공원(Swiss National Park)에는 케이블카를 허용하고 있지 않다. 즉, 스위스 사람들도 자연·생태계를 온전히 지켜야 할 곳은 확실히 지키면서 그 밖의 지역에서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31개 국립공원 중 12개 공원에 24개의 케이블카를 설치했다. 하지만 그 케이블카의 대부분이 1970년 이전에 설치된 것이고 최근 들어서는 새롭게 설치된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대가 흐르면서 국립공원을 관광개발의 대상으로 인식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세대를 위해 물려줘야 할 자연·생태계의 보고이자, 지속 가능한 이용의 대상으로 인식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립공원 탐방 트렌드도 변하고 있다. 지난 4월 산악전문 잡지인 ‘월간 산’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설문 결과, 산 방문목적은 등산(48%)보다 트레킹(51%)이 더 많았다. 국립공원공단이 실시한 2017년 ‘국립공원 여가휴양 실태조사’ 결과 주된 동반 유형은 가족(40.1%), 친구·동료·연인(33%), 등산·산악회(14%) 순으로 나타난다. 방문동기도 ‘휴양·휴식·치유’ 목적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즉, 국립공원 탐방 트렌드가 종전의 ‘단체·관광 중심’에서 ‘가족·힐링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말이다.

정부는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대신하여 지역 발전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발굴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실질적 지원 사업은 국립공원을 둘러싼 새로운 트렌드를 바로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강원도의 뛰어난 자연·생태계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개발 사업은 단기적으로는 달콤해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쓴물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소모적인 갈등과 날선 공방은 거두고,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할 때이다.

세계 최초로 알프스를 오른 등산가 앨버트 머머리는 설악산 케이블카 갈등을 일단락 지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말을 남겼다. “문제는 고도(Altitude)가 아니라 태도(Attitude)이다.” 설악산은 정상을 정복해야만 아름다운 산이 아니다. 산 정상만을 향했던 우리의 시선을 산 아래로 내려놓으면 어떨까? 설악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민들에게 위안과 힐링의 손을 내밀고 있었다.

<조우 | 상지대 환경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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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이란 무엇인가. 나로 인해 무언가가 변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내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비건 지향 생활을 지속하면서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아끼게 되었다. 지구가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해볼 수 있는 일들이 아직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에서도 발생했다. 치사율 100%로, 돼지에게만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다. 감염된 돼지는 고열로 온몸의 혈관이 파열돼 고통스럽게 죽는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살처분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파주와 연천 일대의 돼지들에게서 감염이 확인되었다. 22일 기준으로 돼지 1만5333마리가 살처분돼 땅속에 매몰되었다. 감염된 돼지들뿐 아니라 감염되지 않은 돼지들도 모조리 함께 죽였다.

23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 판정이 나온 경기 김포시 통진읍의 한 양돈농장 앞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며 방역 작업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대규모 살처분은 아주 신속히 이뤄졌다. 전염병 확산을 확실히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한꺼번에 모아 가스사시킨 뒤 땅에 묻는 방식이었다.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질식시키는 가스사 역시 매우 고통스러우므로 안락사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 가스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의식이 있는 채로 땅에 묻히는 돼지들도 있었다. 사실상 생매장으로 죽인 경우다. 의식이 있는 돼지를 생매장하는 것은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SOP)에 위배된다. 그러나 농식품부 관계자는 “신속성을 우선시하다 보면 가사 상태에 있는지, 완전히 죽었는지, 그런 것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집행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돼지는 나의 반려 고양이 탐이보다도 지능이 높다. 탐이만큼이나 온갖 감각을 풍부하게 느끼며 살아간다. 편안해하거나 기대하거나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는 등의 생생한 감정이 그들에게도 있다. 의식이 있는 채로 포클레인 집게에 온몸을 붙잡힌 뒤 커다란 구덩이에 내던져지는 돼지의 얼굴에는 어마어마한 공포가 서려있다. 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기란 힘겨운 일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수많은 돼지들이 치명적인 병에 걸리는 근본적인 이유다. 가축전염병 창궐은 인류가 가축을 키우는 방식과 몹시 유관하다. 조류독감과 구제역도 마찬가지였다. 공장식 축산은 동물의 아주 기본적인 면역력조차 파괴한다. 고기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좁고 열악한 사육장에 감금해서 키우고, 이빨과 꼬리를 자르고 거세한다.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맞히며 고작 6개월을 살게 한 뒤 도살장에서 죽인다. 그리고 그만큼을 또 태어나게 한다. 이 모든 지옥 같은 일이 우리의 입맛을 위해 벌어진다. 아주 거대한 시스템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전 세계 축산업의 본질적인 문제를 조금 드러냈을 뿐이다. 동물해방물결은 지난 19일 논평에서 “살처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만을 위한 조치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매년 반복되는 살처분 과정은 인간에게도 몹시 치명적이다. 살처분 작업자 4명 중 3명은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 이들에 대한 사후 심리치료 지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국의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그의 저서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동물에 대해 잊어버린 것을,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잊어간다. 동물적 존재로서 우리 자신에게 반응하는 능력까지도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와 동물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들 사이에서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이야기만큼이나 오래 묵은 전쟁이다. 역사상 그 어느 때에도 이보다 더 일방적인 전쟁은 없었다.”

책임감의 영어 단어 ‘responsibility’는 ‘response’와 ‘ability’의 합성어다. ‘반응하는 능력’이라는 의미다. 1만여마리 돼지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인간에게는 전염되지 않는 것에 안심하거나 삼겹살 값이 오르는 것을 염려하는 일 말고 또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응답이다. 이 응답은 현재의 돼지들뿐 아니라 미래의 돼지들에게도 꾸준히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돼지들과 우리는 같은 세계에 속해있고 아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 나은 반응을 해야 한다. 고기를 덜 먹음으로써, 안 먹음으로써, 가축을 덜 잔인하게 키움으로써, 최대한 고통 없이 죽임으로써 우리가 변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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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연구자가 대안학교 졸업생 현황을 연구하고 싶다고 도움을 청해왔다. 졸업생 연구에 대한 필요성은 계속 제기되었지만 미흡한 여건으로 진행되지 못했던 터라 제안이 반가웠지만, 한편 조심스럽기도 했다.

“졸업생들은 어떻게 지내나요?” 대안학교에 관심 있는 이들이 빼놓지 않고 던지는 질문이다. 대안학교 졸업 후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염려하는 말이기도 하고, 그 질문 속에는 그럼에도 뭔가 특별한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숨어 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서른을 넘어선 제자들부터 20대 초반의 제자들 얼굴까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들의 각양각색의 삶이 구체적으로 떠오르고 나면 더욱 함부로 입을 열기 어려워진다.

직종으로 보자면 문화예술 분야나 시민단체, 사회적 경제, NPO(비영리단체) 분야가 많은 편이다. 유학을 간 친구들도 있고, 간혹 공무원이나 회사원도 있다. 길을 찾는 중이지만 남들 보기엔 백수처럼 보이는 친구들도 많다.

그러나 직업의 종류만으로 그들의 삶에서 ‘대안성’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수시로 그들의 직업이 바뀐다. 몇해 전 졸업생 당사자 몇명이 졸업생 현황을 파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그만두었다. 조사하는 동안에도 계속 바뀌는 그들의 직업을 일일이 연구에 반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20대라 그렇기도 하지만 대안학교 졸업생들의 특성이 그렇기도 하다. 기존의 것에 순응하기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성향이 강한 편이다. 기획자, 창작자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세상은 넓고, 재밌는 일은 많고, 기술에 따라 새로운 직업이 수도 없이 생겨난다.

또 하나 대안학교 졸업생을 제대로 연구하기 어려운 점은 그들의 대안성은 ‘형식’보다 ‘내용’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보다 그들의 생각과 삶을 대하는 태도 속에 더 대안교육의 냄새(?)가 스며들어 있다고 느낀다. 손님에게 거짓말을 종용하는 대표의 지시를 거절하고 사표를 낸 음악사 직원이나, 노래방에서 여직원들에게 치근대는 상사 때문에 회식 보이콧을 선언한 공무원이 그렇다. 어쩌면 대안교육이 기르고자 했던 인간상은 적절히 눈감고 세상에 적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불의와 불화하는 프로불편러가 아닐까 싶다.

도농을 연결하는 청년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한 제자는 자신이 ‘모범적인 대안의 길’을 걷는 사례로 손꼽혀 이런저런 자리에 초대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냈다. 자신의 삶으로 대안교육의 훌륭함을 증명해내려는 분위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 불평 속에는 무엇이 대안적인 삶인가, 하는 고민도 있다. “일찍 결혼해서 두 아이 엄마가 된 동기 ○○의 삶은 대안적이지 않은가요?”

‘대안적인 교육’은 ‘대안적인 삶’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대안학교가 포스트 중등과정을 만들기도 하고, 마을 안에 졸업생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그 일환이다. 그러나 밥벌이의 엄중함을 모르지 않을 터,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원칙을 지킨다면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간들 어떠랴. 

다만 긴 일생에서 ‘무엇이 대안인가’ 하는 질문을 놓지 않기를, 불투명함이 삶의 본질임을 깨닫고 일렁이는 불안에 몸을 맡기며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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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쓰는 속담으로 ‘친구 따라 강남 간다’가 있습니다. 

이 말은 원래 ‘제비가 친구 따라 강남 간다’였을 겁니다. 한강 남쪽도 강남역도 아니니까요. 여기서의 강남은 중국 양쯔강 아래 강남(江南)입니다. 

음력 3월3일 삼짇날 무렵 찾아온 제비는 9월9일 중양절 무렵 3만㎞ 떨어진 강남으로 다시 날아갑니다. 시속 90㎞로 빠르게 나는 제비라도 보름거리가 넘지요. 보통의 철새들은 다 함께 출발합니다. 그런 철새들과 달리 제비는 떠나는 시간과 날짜가 제각기 다릅니다. 저 집 제비들은 어제 떠났는데 이 집 제비는 아직이더니 옆집 제비들이랑 비비대다 같이 떠납니다. 그런 식으로 제비는 몇 마리씩 따로 출발합니다. 그러곤 어느 ‘만남의 광장’에 도착해 소규모로 뭉치고, 다시 남쪽 바닷가에서 다시 대규모로 떼를 지어 드디어 바다를 건넙니다. 그걸 알 리 없던 옛사람들은 다른 집 제비가 떠나니 허전해서 따라가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두 가지로 쓰입니다. 하나는 친구가 좋아서 무엇이든 함께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끌려서 한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부정적인 뜻으로 많이 씁니다. 싫지만 따돌림당할까 봐, 괜히 눈치 보여서, 아니면 겁쟁이로 보일까 봐 반강제로 같이하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남이가!” 죽이 맞던 친구들이 나중에 사달 나면 남보다 더 못합니다. 뭉쳐 다니면 대개 탈이 납니다. “너네 그거 해봤냐?” 하면 나만 안 해본 겁쟁이일 수 없어 스스로 따라 하니까요.

옛 서울은 강북까지였습니다. 한강 밑이면 다 강남이었죠. 친구가 하니 따라 하고 패거리 믿고 같이하다 유배든 좌천이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넙니다. 신세 망치고 탓하지만, “누가 시켰냐?” 친구 따라 너무 멀리 간 제 탓입니다. 강남엔 교도소가 많습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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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사이트에 ‘미아리 텍사스’를 검색해봤다. 미아리 텍사스가 있던 곳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설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미아리 텍사스가 정말 없어졌냐는 질문도 보였다. 지도검색에는 ‘없는 곳’으로 나왔다. 

지도에는 없다는 그곳에 지난달 다녀왔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성매매 집창촌. 길치라 걱정했는데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지하철역에서 느린 걸음으로 10분이면 닿는 거리. 식당과 옷가게와 동물병원, 백화점, 고층아파트가 있는 바로 옆 골목에 한국도 미국도 아닌 괴상한 이름의 그곳이 있었다. 골목 입구엔 색색깔의 굵은 실이 ‘청소년 금지구역’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드리워져 있었다. 

미성년자들이 들어선다고 출입을 통제하는 사람도 없고, 밧줄 같은 실로 가린다고 가려지지도 않을 골목엔 아침부터 ‘삐끼이모’(성매매 호객행위를 하는 여성들을 부르는 은어)들이 나와 있었다. 사진을 찍으며 두리번두리번하니, 삐끼이모들이 “무슨 일로 왔냐”고 했다. “약사님 인터뷰하러 왔다”고 하니 더 묻지 않았다(그날 이 골목에서 23년 동안 약국을 하며 성매매 여성들을 돕는 ‘약국이모’ 이미선씨를 인터뷰하러 갔다). 입장허가를 받은 느낌이 들어, 골목 안쪽을 이곳저곳 둘러봤다. 

서울 하월곡동 '미아리 성매매 집창촌'의 아침.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처음엔 대체 어디가 성매매업소라는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흔히 연상하는 ‘빨간불’은 보이지 않았다.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업소마다 검은색 선팅지가 붙어 있었고 이 안에 사람이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업소의 외관은 허술하고 낡았다. 개미굴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업소들 중 한 곳에 문이 열린 것을 봤다. 한 여성이 쌀을 씻고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성매매 여성들의 살림을 해주는 ‘주방이모’인 듯했다. 10년 넘게 큰 진전이 없는 ‘도시환경정비사업’ 공고문도 보였다. 

허름한 외관을 좀 더 오래 관찰하니, ‘영업중’이라는 표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 업소 앞에는 ‘카드 얼마, 현금 얼마’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는데 글씨가 닳지 않고 선명했다. 한 업소 바로 앞에는 여러 은행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현금출납기가 있었다. 은행은 시간을 맞춰 돈을 빼가고 넣으며 성매매 골목의 현금흐름을 관리했다.

약국에서 하루를 보내며 여러 명의 동네 손님들을 볼 수 있었다. 한 할머니는 여섯 박스 분량의 고추를 직접 빻았다고 했다. 사서 쓰지 뭐하러 애를 쓰셨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내 자식들 먹일 김치에 쓸 건데…”라고 했다. 성매매 여성들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는 분이었다. 

허름한 조끼를 입은 할아버지는 쓸쓸한 얼굴로 지난주에 아내를 납골당에 묻고 왔다고 했다. 성매매 업주였다. 명품으로 치장한 모델 같은 손님과 모자를 푹 눌러쓰고 군데군데 상처가 보이는 손님은 모두 성매매 여성이었다. 겉으로 봐선 그들의 삶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본격 영업시간’이 다가오자, 골목에 사람들이 늘어났다. 업소 앞 의자마다 손님과 가격을 흥정한다는 ‘마담이모’들이 앉았다. 각각 휴대전화를 들고 유튜브나 TV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몇명의 남성들이 골목 안쪽을 왔다갔다 했다. 외국인도 보였다.  

성매매를 금지한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15년이 됐다. 집창촌 성매매는 사실상 방치되고, 신종 성매매가 번성하면서 집창촌은 점점 더 낙후되고 있다. 해가 져도 업소는 컴컴하다. ‘홍등가’는 옛말이 됐지만, 그곳엔 여전히 성매매가 일상인 이들이 있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다시 평범한 풍경이 펼쳐졌다. 버스전용차로에선 책가방을 멘 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렸다. 우동집엔 늦은 저녁을 먹는 직장인들이 보였다. 바로 몇분 전까지 있었던 골목은, 다시 찾아가면 사라져 있을 것처럼 아득히 멀어 보였다.

<장은교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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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대선에서 정의당 후보(심상정)가 201만7458표를 얻었다. 진보정당 대선 도전 25년 만에 200만표를 넘어섰다. 기존 진보정당 지지층과는 결이 다른 불안 노동자, 청년, 여성, 소수자들의 지지가 더해지면서 이뤄낸 성취다. 당시 20대 득표율은 전체 득표율의 2배가 넘는 12.7%에 달했다. 노쇠한 진보정당을 떨치게 할 만했다.

한국 정치의 신기원을 연 2004년 4월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정당득표에서 277만표를 획득했다. 모두 10석을 얻어 진보정당으로선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신자유주의에 반발한 2030세대의 적극적 지지가 핵심 기반이 되어 당시 민주노동당 지지율은 15% 안팎을 유지했다. “땀흘려 일하고,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열렬히 대변한 ‘거대한 소수’는 그렇게 진보정당의 황금기를 일궜다.

불행히도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이합집산, 끝내 ‘진보’마저 당명에서 사라진 정의당이 원내 진보정당을 잇는 과정은 청년이 중심에서 사라지는 것과 궤를 같이했다. 절로 기존 지지층이 당과 함께 나이를 먹으면서 ‘늙은 정당’이 되어갔다. 2017년 대선 ‘200만표’는 그 퇴행을 되돌릴 불씨를 던졌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에 호응한 노동자, 청년, 여성 등이 가리킨 게 있다. 진보정당의 길이 있음을, 정의당이 누구를 보고 진보정치를 해가야 할지를 보여줬다.

대선 후 2년여, 정의당의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 계급 의제와 노동을 뒤로 물리면서까지 대중적 외연 확대에 집중했으나 결과는 미약하다. 7% 안팎에 정체되었다가 이제 5%선마저 위협받는 지지율이 아픈 증좌다. “세습자본주의 혁파”든, “불평등과 불공정의 극복”이든 그걸 분명한 대안과 목소리로 실천하지 못한 결과다. ‘6석’ 소수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선거제 문제를 빼고는 정의당을 소환시키는 이슈가 기억나지 않는다. 국회 특활비 폐지가 원내 진보정당의 최대 성과로 꼽히는 판이다. 무상보육, 무상의료, 무상교육, 경제민주화 등을 의제화시켜 시대정신이 되게 한 과거 진보정당의 결실에 비춰보면 너무 빈한하다.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대형마트·SSM 규제 입법화에서 ‘소수’ 민주노동당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물며 지금은 촛불정부 시절이다. 경제사회 개혁 부진과 노동에서의 후퇴 속에서 정의당은 견제도, 견인도, 등대 역할도 다하지 못했다. “민주당이 진보를 과잉대표”토록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정의당이다.

조국 정국을 겪으면서 “정의당 내상이 깊다”(윤소하 원내대표). 내상이 깊어진 건 이른바 ‘데스노트’ 때문이 아니다. ‘조국 사태’가 까발린 불공정과 불평등, 특권 문제를 진보정당의 목소리로 의제화하지 못하고, 청년 세대의 상실감을 직시하지도 못한 때문이다. 조국의 거취를 떠나 불평등과 불공정의 이슈를 진보적으로 대변하고 대안을 제시할  기회를 차버렸다. ‘데스노트’ 등재 여부가 진보정당 역할의 전부인 것처럼 부각되는 과정을 정의당은 대책 없이 따라가기만 했다.

추석 연휴를 지나고 나온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의 지지율 흐름이 심상치 않다. 리얼미터의 23일 정기조사에서는 2주 연속 하락해 5.3%를 기록했다. 낯뜨거운 집안싸움으로 날새우는 바른미래당에도 밀렸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정의당도 동반 하락했다. 정의당이 민주당 ‘왼쪽’에서 대안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징표다.

심각한 건 20대의 정의당 ‘손절’ 조짐이다. 이번 조사에서 20대 지지율은 3.9%를 기록했다. 바른미래당(8.8%) 절반도 안된다. “불평등한 세습사회와 정면으로 싸울 수 있는 정치세력이라는 신뢰를 주지 못한” 업보다.

미국의 버니 샌더스와 오카시오코르테스, 스페인의 포데모스, 영국 제러미 코빈이 이끄는 진보정치는 밀레니얼 세대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다.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에서도 보듯 청년은 불평등 세습사회에 가장 강력한 저항세력이다. 청년 세대가 정의당을 손절하다시피하게 된 것은 그들이 갑자기 보수화되어서가 결코 아니다.

만일 보수정당의 언저리에서 신진세력이 세습자본주의 비판 흐름 가운데 경쟁의 공정성만 강조하는 쪽과 결합해, 이들이 특권층 견제의 대표성을 인정받고 나면 정치지형을 바꾸기 힘들어진다. 유승민과 안철수 세력의  새 정당 과녁이 그 어간에 있을 게다. 정의당의 책임 방기가 우파 포퓰리즘 부상의 토양을 제공하는 뼈아픈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지난해 7월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정미 당시 정의당 대표는 엄중히 물었다. “민주당은 진보인가. 민주당은 과연 불평등과 불공정을 극복할 정치적 비전과 의지를 갖고 있는 정당인가.” 지금 그 주어 자리에 ‘정의당’을 올려놓고 자문할 때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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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는 순간 21g이 줄어든다고 한다. 21g, 그것은 영혼의 무게일까? 5센트 동전 5개, 벌새 한 마리의 무게….”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21그램>의 마지막 독백이다. 가장 작은 새인 벌새를 직접 본 적 없지만 대략 꿀벌만 하지 않을까. 꿀벌 한 마리 현호색의 꽃대궁을 붙들고 땅에 닿을 듯 휘청, 구부러지는 것을 보며 저게 바로 내 영혼의 무게이려니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런 마음의 생태계에서 영화 <벌새>에 대한 주위의 강력한 평을 들었다. 안 보고는 그나마 있던 내 영혼이 증발할 것만 같았다.

화면에서 보는 아파트는 참 다닥다닥한 공간이었다. 현관 열고 세상에서 묻힌 먼지투성이의 신발 벗으면 곧바로 거실이고, 문 하나로 바로 방이다. 피하고 싶은 일이 벌어질 때 숨을 장소가 어디에도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어쩌면 가장 무서운 법이기도 하다. 떡집 막내딸인 은희는 중학생. 왼손으로 만화를 그리면서 가슴속 질문 하나는 그래도 붙들고 생활한다.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가족은 물론 학교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은희를 상대해 준 이는 한문학원 선생님이다. 왼손으로 한자를 잘 쓰는 그는 은희 마음에 한 획을 그어주며 스케치북을 선물한다. 알록달록한 세상에서 흰 종이가 사무치게 좋았나. 연필로 만화를 그리듯 손바닥으로 백지를 쓰다듬는 은희.

영화에는 나무가 표나지 않게 자주 등장한다. 친구와 헤어지는 곳도 다시 만나는 곳도 나무 아래에서다. 가장 크게 클로즈업되는 당단풍나무는 가을의 복판에서 프로펠러 같은 열매가 성숙하고 있다. 있던 곳의 그늘을 피해 되도록 멀리 날아가기 위해 저런 장치를 가진 것이다. 벌새는 무수한 날갯짓으로 공중에서 정지하여 꿀을 빨아먹는다. 은희는 가끔 벌새처럼 뛰어오르지만 공중에 머물 수는 없다. 중력이 지배하는 이 공간에서 그 삶의 무거움을 스스로 이겨내어야 하는 건 본인뿐이다. 영혼의 무게만 한 무거움에 휘청이던 현호색을 떠올리기도 하였으나 영화 속 나무로 글을 마무리하자. 

벌새의 날갯짓처럼 눈을 반짝거리는 은희, 가슴속 한 획을 붙들고 당단풍나무 열매처럼 멀리 회오리쳐 날아가기를! 당단풍나무, 단풍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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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46억년 전쯤 태어났다. 10억년이 지나 비로소 원시 생명이 탄생했다. 언제부터인가 빙하시대가 도래했다. 처음에는 수억년을 주기로 빙하기가 찾아왔다. 200만년 전부터는 빙하기와 간빙기의 주기가 짧아졌다. 빙하기에는 육지 면적의 3분의 1이 얼음으로 덮였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했다. ‘지혜로운 인간’ 호모사피엔스는 빙하기를 견디고 간빙기에 들어서면서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 

북극의 빙산과 남극의 만년설 등 대륙빙하는 빙하시대의 표상이다. 오늘날 빙하 면적은 약 1억5000만㎢로 지구 육지의 10%를 차지한다. 남극과 북극의 대륙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알프스나 알래스카의 높은 산지의 만년설도 빙하다. 이들 산악빙하는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곡빙하, 산기슭을 덮는 산록빙하로 나뉜다. 빙하는 지구 담수의 75%를 품고 있다. 지구의 빙하가 모두 녹으면 해수면은 약 60m 상승한다.

22일(현지시간) 스위스 알프스 산악지대의 방스 지역에서 환경운동가들이 피졸 빙하의 ‘사망’을 추모하는 장례식을 열고 있다. 방스 AP연합뉴스

지구온난화로 빙산이 녹아내리거나 사라지고 있다. 스웨덴에서 가장 높은 셰브네카이세산의 남봉은 산꼭대기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최고봉’의 자리를 이 산의 북쪽 봉우리에 내주었다. 남봉 높이는 50년 전만 해도 2105m였으나 최근 2095.6m로 주저앉아 흙산인 북봉(2096.8m)보다 1.2m 낮아졌다. 앞서 2014년에는 아이슬란드의 오크산 정상을 덮은 ‘오크예퀴들’ 빙하가 소멸 판정을 받았다. 16㎢에 달했던 거대한 빙하가 완전히 녹아내린 것이다.  

지난 22일 스위스 알프스산맥의 피졸산(2700m) 정상 아래에서 250명이 참석한 가운데 ‘빙하 장례식’이 열렸다. 2006년 이후 빙산의 80~90%가 녹아내려 ‘사망 선고’를 받은 피졸 빙하를 추모하는 자리였다. 이날 검은 옷 차림의 참석자들은 추모사 낭독, 헌화 등으로 사라져가는 빙하를 애도했다. 기후변화로 매년 2520억t의 빙하가 소실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금세기 말까지 알프스 빙하 90%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빙하기’를 견디며 살아남은 ‘지혜로운’ 인간들의 탐욕이 도리어 자신들을 옥죄고 있다. 당장 온실가스 감축 등 기후위기 행동에 나서지 않는 한 인간도 곧 공룡이나 시조새처럼 소멸될지 모른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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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는 피의자 신문조서도 없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했다. 공소시효 만료 직전 전격적이었다. 압수수색도 전방위로 행해졌다. 대상과 장소가 다소 포괄적이고 특정되지도 않았다. 일부 기관은 압수수색이 아니라 자료제출을 요청해야 할 곳도 있었다. 피의자도 피고발인도 아닌데 압수수색을 당해 마치 피의자인 것처럼 비치고,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수사정보가 언론에 노출되기도 했다. 언론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일방적 주장을 ‘기정사실’로 만듦으로써 피의자를 압박하고 재판에서 유죄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을 펴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언론은 동조라도 하듯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거른 채 검찰이 흘리는 조각정보를 짜 맞추어 퍼뜨리는 데 몰두했다. 베껴 쓰기까지 더해지니 조 장관 일가의 혐의와 관련한 기사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왔다. 검찰은 부인하지만 보도 형태로 미루어 상당 부분 검찰 정보에 의존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클릭 수에 목매는 인터넷언론은 물론이고 정론을 표방하는 중앙 일간지에도 고급 외제차가 등장하는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상보도나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기사도 서슴지 않았다. 국민의 조급증과 호기심을 채워주려 속보경쟁에 급급한 언론이었다.

검찰과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에서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보도의 정당성을 구한다. 하지만 설익고 확인되지 않은 흠집내기 추측성 기사로 도대체 진실이 무언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법무부 장관은 취임 직후 2010년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이 마련된 불행한 배경을 떠올렸을 것이다. 피의사실 공표를 엄격히 금지하는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취지에 공감하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 전략이라는 오해다. 그래서 추진을 미루기로 했지만, 논쟁은 진행형이다. 공인이기 때문에 언론을 포함한 여러 각도의 검증이 필요하다면서 국민의 알권리에 방점을 두는 입장에서는 검찰의 공소제기 전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의 받아쓰기 보도가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확성이 떨어지는 신속성만으로는 알권리가 충족될 리 없다. 피의자의 인권과 사생활 및 명예도 침해된다. 검찰이 던져준 정보를 활자화하고 방송으로 전파하면 국민은 피의자를 영락없는 유죄의 범죄자로 보게 된다. 검찰이 일방적으로 흘린 피의사실은 법정에서 다투어 확정되어야 함에도 언론의 힘으로 진실한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의자는 법정에서 방어권을 행사하기 힘들다. 언론에 의해 형성된 여론에 밀려 공정한 수사도 장담할 수 없다. 수사기관이 유죄의 심증을 갖게 되면 확증편향이 생겨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유죄라는 터널 끝의 출구만 보는 터널시야로 다른 가능성이나 증거는 보이지 않게 되어 수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게 된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여론으로부터 유죄를 선고받게 되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기도 어렵다. 판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여론의 기대를 뒤집는 판결을 내리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고, 언론 보도로부터 유죄의 심증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 보도로 침해되는 것은 피의자 개인의 인권침해에 머무르지 않고 공정한 수사와 재판의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공적 이익도 침해되는 것이다.

그래서 충돌되는 여러 이익 사이의 비교형량을 통해 조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미디어, 수사기관, 피의자와 변호인 등 각자의 관심과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일방적이어서는 안된다. 피의사실 공표를 전적으로 금지하고 언론 보도를 엄격히 규제할 수 없는 이유다. 범죄혐의의 정도에 따른 내사단계, 수사착수단계, 영장청구단계, 기소단계, 공판절차단계마다 다른 이익형량의 기준을 적용하여 수사공보의 한계와 범위가 정해져야 한다. 수사 초기단계부터 언론에 공개하는 수사로는 검찰도 잃는 게 많다. 언론과 여론의 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되고, 때로는 불공정 시비에 휩싸이게 되기 때문이다. 피의사실을 공표할 때는 어느 정도 수사가 진척되어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히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타당한 확증과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구속영장 청구 시점이 비로소 그런 단계에 다다르게 된다. 인신구속을 하려면 범죄혐의가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확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사공보에 관한 사항은 헌법상 보장된 무죄추정의 원칙, 피의자의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받을 권리, 사생활 등 기본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법무부훈령이 아니라 법률로 피의사실 공표의 허용 여부와 허용 기준 및 절차가 법제화되어야 한다. 수사기관의 일방적 피의사실 공표여서도 안된다. 그에 대한 피의자의 반론권이 보장되어야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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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23일 조국 법무부 장관의 집과 자녀들이 지원한 대학 4곳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총장과 검사를 지휘·감독하는 현직 법무부 장관의 집을 검찰이 압수수색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것은 위법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수사는 조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에게 제기된 혐의 입증에 모아지고 있다. 조 장관의 관여 여부도 주요 규명 대상이다. 조 장관 집에 대한 압수수색은 이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로 보인다.

정 교수는 자녀의 대학·대학원 입학 및 사모펀드 투자·운영 과정에서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고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조 장관이 그런 사실을 사전에 알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도움을 줬는지가 수사의 핵심이다. 검찰은 조 장관 딸에 이어 아들의 부정입학 여부도 살펴보고 있다. 수사는 막바지에 이른 모양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9월 24일 (출처:경향신문DB)

검찰은 이번 수사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그간 검찰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언론 등을 통해 제기된 의혹 중 일부는 검찰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 피의사실 공표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 교수에 대한 무리한 기소와 일부 간부의 내부통신망을 통한 개혁 불만 표출 등 수사 의도를 의심케 하는 행위도 잦았다. 4차례에 걸쳐 30여곳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함으로써 과잉수사 지적을 자초했다.

정치권의 대응도 문제가 많다. 이번 수사는 국민 절반 이상이 적절하다고 본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윤석열 검찰’을 향한 비난을 계속하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이날도 “먼지털기식 별건수사다”라고 비판했다. 야당 역시 검찰이 반드시 ‘유죄’를 이끌어내야 할 것처럼 압박하고 있다. 여야 간 원색적인 공방은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그러나 더 큰 우려는 수사가 한 달째 이어지면서 갈라질 대로 갈라진 국민분열과 뚝 떨어진 국정동력이다. 대통령 지지도는 40%대까지 추락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일본의 경제침략 대응 등 해야 할 일은 산적해 있다. 국민 모두가 똘똘 뭉쳐도 극복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 여론은 갈리고, 정부 불신은 점증하고 있다. 검찰이 하루라도 빨리 진실을 규명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이번 사태는 상류층의 특권과 불공정 그리고 무능한 정치가 발단이다. 그러나 검찰 역시 성찰할 게 많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번 수사를 통해 피의사실 공표나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을 씻을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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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에서 한국 교육의 정체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18~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한국 정부 아동인권협약 이행 국가보고서 심의에서 위원들은 “한국 공교육의 목표는 오직 명문대 입학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동권리협약의 내용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우리 교육의 문제를 정확히 꼬집은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정부 대표단과 별도로 제네바에 동행한 ‘유엔아동권리협약 한국 심의 대응 비정부기구(NGO) 연대’(이하 NGO연대)의 보도자료를 통해 알려졌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한 위원은 “한국 교육은 아동의 잠재력을 십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만이 목표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위원은 “한국 정부는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데 그 교육의 목표란 과연 무엇이냐. 아동을 통해 돈을 벌려는 것인가, 아니면 아동이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인가”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번 심의에서는 선거연령 등 아동의 정치 참여권 보장, 스쿨미투, 체벌과 징계권의 남용 등 아동인권 전반을 다뤘다. 아동의견 존중이 선택이 아니라 의무화할 계획이 있는지, 선거연령 낮추기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고 한다. 유엔 아동권리위는 다음달 3일 한국에 대한 권고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은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한 이후 1996년 1차, 2003년 2차, 2011년 3·4차에 이어 이번에 5·6차 심의를 받았다.

한국의 높은 교육열은 ‘한강의 기적’을 만든 원동력으로 국제사회의 찬사를 받아왔다. 그러나 한국 교육의 성과가 장시간의 억압적 교육과 과도한 사교육이라는 허약한 체질 위에 쌓아올린 위태로운 탑이라는 것이 서서히 드러나고, 급기야 국제사회로부터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따끔한 지적까지 받게 됐다. 이미 ‘고비용 저효율 교육’의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변화의 출발점은 ‘교육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것이다. 눈가리개를 씌우고 입시와 출세라는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경주마의 질주와 채찍질은 이젠 멈춰야 한다. 정부와 교사, 부모와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교육은 1%, 10%의 아이들에게만 미래를 향한 좁은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닌, 모든 아이들에게 인생을 안내하고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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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료된 세계한인법률가회(IAKL) 서울총회에서 재일코리안변호사협회(LAZAK) 소속 한국인 일본변호사 15명이 재일한국인 변호사들에 대한 차별 실태를 폭로했다. 일본 내 극우세력의 재일한국인에 대한 혐한 기류가 재일한국인 변호사에 대한 공격으로 확산된다는 것이다. 변호사 활동을 위축시킴으로써 재일한인에 대한 법적 보호를 약화시키려는 것이다.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에 이은 새로운 위협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일본 극우세력의 대표적인 공격은 한인 변호사들이 ‘이적행위’를 하고 있다며 집단적으로 일본변호사연합회에 징계요청을 한 것이다. 이들은 한국은 독도를 무력 점령하고 있는 전쟁국가이기 때문에 한국인을 변호하는 것은 적대국을 돕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 사실로 변론 활동을 막으려는 악날한 행동이다. 재일한국인들이 집단 거주하는 가와사키시의 혐한 시위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시위금지 가처분을 받아내자 이런 공격을 시작했다. LAZAK 회장인 강문강 변호사는 3000건, 부회장 김철민 변호사에 대해서도 960건의 징계 청구가 접수되었다. 한 혐한 단체는 인터넷에 변호사 징계요청서 양식을 올려놓고 이를 다운받아 변호사 징계를 집단 청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일탈이다.

아직 일본변호사협회가 한인 변호사들을 징계하거나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경우는 없다. 하지만 이들 변호사는 이미 혐한 시위에 대한 변론 활동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변호사에 대한 허위 사실로 징계 요청을 하는 것 자체가 인권에 대한 도전이다. 나아가 혐한발언제한법이 있어도 처벌 조항이 없어 실효적인 제재 수단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변론까지 위축된다면 시민은 권리 구제를 받기 어려워진다. 권리를 침해당한 시민들이 법률적 조력을 받는 것 자체를 차단하는 행위는 민주사회의 적이다. 극우세력의 이런 활동 때문인지 일본 법원 등 일부 법조계도 한인 변호사들의 각종 위원회 위원 위촉 등을 꺼리는 눈치도 있다고 한다. 일본 시민들은 이런 자국 내 극우세력의 새로운 차별 행위에 대해 깊은 경각심을 갖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일 정부도 양국 간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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