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의 의혹을 수사하는 특수부 검사 30여명 중 어느 누구도 현재 검찰이 ‘정치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고발이 들어온 사건인 데다, 혐의가 있으면 수사를 하는 게 검찰이 할 일이다. 특히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거악을 척결하는 것은 검찰의 최대 존재 이유이다. 현 정권 최고 실세로 거론되는 조 장관의 의혹 규명은 어떠한 외압도 견뎌야 할 사명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검찰이 정치의 과정에 뛰어들었고,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영향력이 극대화된 건 사실이다. 인사청문회가 끝날 즈음 늦은 밤 조 장관(당시 후보자)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한 것은 이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조 장관에 대한 수사는 대한민국 이슈의 대부분을 ‘조국 블랙홀’로 끌어들였다. 한 현역 원로 정치인은 “이대로라면 다음 총선의 공천은 검찰의 손에 달렸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민주주의는 입법, 사법, 행정의 3권 분립이라는 고전적 개념이 작동한다. 그러나 점차 사법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검찰과 법원은 정치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 곳곳에도 침투해 있다. 개인 간 금전분쟁, 예술작품에 대한 위작 논란까지 “법대로”를 외친다. 경향신문이 ‘만사법통에 기댄 사회’ 시리즈를 통해 대한민국의 주리스토크라시(juristocracy), 즉 사법통치 현상을 진단하고 있는 이유다.

“인구가 한국의 2.5배인 일본에도 특수부가 전국에 3곳밖에 없고 그나마 뇌물과 같은 전통적인 범죄만 수사한다. 공무원 직권남용이나 경영상 배임 같은 애매한 영역은 손대지 않는다. 우리는 특수부가 이렇게 크니 고등학생 자기소개서까지 검증한다. 최종적으로 혐의가 밝혀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수사권을 가지고 뛰어드는 것 자체로 정치에 영향을 준다.”(금태섭 의원)

한국에서 법치주의는 강압정치의 수단으로 활용되기 일쑤였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처럼 법의 잣대가 공평하지도 않았다. 법과 공권력이 우선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갈등을 민주적으로 해소하는 정치의 과정이 뿌리내리지 못한 것도 맥을 같이한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검찰개혁 방안으로 추진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은 제도적 장치일 뿐 그 자체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데 대화와 타협이 있을 수 없고, 결국 자기 뜻을 관철하거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권은 법과 공권력에 기댈 것이다. 이는 다시 검찰과 법원의 비대화로 이어진다. 민주적 다양성을 넓게 인정하는 사회적 노력이 기반이 돼야 한다.

‘부모 찬스’에 의한 특권의 대물림도 조국 사태가 확인시켜준 우리 사회 획일성의 단면이다. 부모의 도움을 받아 논문의 저자로 등재되고, 스펙을 관리해 대학(원) 진학의 지름길로 삼은 것이 조 장관 일가에서만 일어난 일일까. 좋은 대학을 가고(이제는 좋은 고등학교와 학원을 가야 한다), 의사와 판검사 등 ‘사자 직업’을 갖기 위한 성공가도의 경로도 좁을 수밖에 없게 되고, 그 길목을 점차 기득권과 부유층이 차지하면서 흙수저로서는 감히 넘을 수 없는 벽을 두고 살아야 한다.

이 같은 불공정과 사회적 낭비를 막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지만 지금 논의의 해법조차 자칫 획일적으로 흘러갈 분위기다. 교육제도 개선 요구를 틈타 ‘수능 중심의 정시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스멀스멀 퍼지고 있다. 최근 학생부 전형에 비해 수능은 당사자가 노력하면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험을 공정성의 유일한 잣대로 삼는 분위기가 반영되는 셈이다. 그러나 수능 점수가 잘 나오는 지역과 고교가 구분된다는 게 입시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또 상위 계층일수록 정시를 선호하고, 정시는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들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이 연구 결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학생부 전형이 도입된 것은 문제풀이에 몰두하도록 변질된 교육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이었다.

모두 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문제를 풀고, 여기서 받은 점수차로 우열을 정하는 게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가치가 될 수는 없다. 시험만 유일한 평가의 잣대가 되는 사회에서는 다양한 재능과 가치의 공존이라는 싹을 틔울 수 없다. ‘시험 만능사회’는 ‘승자’의 영예를 주고, 통과하지 못하면 ‘패자’의 상실감을 주는 서열사회를 공고히 할 뿐이다. 그 정점에 사법시험이 있었고, 판검사에 의한 사법 통치시대가 강화되고 있다.

지금은 하나의 잣대, 하나의 진실, 하나의 의견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평가의 잣대는 공정하고 다양해야 한다. 진실은 경합할 수 있고,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존중되어야 하고 타협할 수 있다는 포용성이 필요한 때다. 일본과의 경제전쟁, 성장동력이 떨어지는 경제와 체감되지 않는 일자리 등 우리의 숱한 고민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조국 현상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도 여기에 있다.

<박재현 사회에디터 겸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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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이강훈 한국도로공사 부사장의 반론은 거짓말로 가득 차 있다.

첫 번째 팩트 체크다. 이 부사장은 도로공사의 요금수납 자회사 설립이 정부 정책에 따른 것인 양 말했다. 정부의 정규직 전환정책은 무분별한 외주화의 폐해를 제거하기 위해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하되, 업무의 전문성 때문에 불가피한 경우 예외적으로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것이다. 법원은 2015년과 2017년 두 차례나 외주업체 소속 요금수납원들의 사용자는 도로공사라고 판단했다. 이 부사장은 요금수납 자회사를 고속도로서비스 전문기관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회피하기 위해 급조한 인력공급 용역회사일 뿐이다.

두 번째, 이 부사장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비추면 향후 기술 발전 등으로 기능조정이 예상되는 요금수납원은 정규직화 예외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수납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자회사 전환 방식으로 정규직화를 추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또한 정부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거짓이다. 가이드라인에는 “산업수요·정부정책의 변화 등에 따라 기능조정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업무”로서 “기능조정 사유로는 산업수요의 변화, 누적 영업적자로 인한 국민 부담 증가, 해외시장 진출 등 신규시장 역량 집중 등”으로 명시돼 있다. 요금수납 업무는 이 세 가지 사유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가이드라인에서 말하는 기능조정 사유는 고속도로 이용자가 없어져서 요금수납 업무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될 때를 의미한다. 고속도로 요금수납 업무는 도로 사용이 무료가 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세 번째, 스마트톨링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면 요금수납 업무는 없어지므로 직접고용 대상 업무가 아니라는 것도 거짓이다. 스마트톨링 도입은 기술수준(영상인식, 과적단속 등) 보완과 개인정보 보호 등 관련 법률(유료도로법, 도로교통법 등) 개정이 전제돼야 하며, 2022년 이후에나 도입 여부를 검토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더구나 하이패스도 최근 5년간 미납요금이 2000억원에 육박한다. 미납요금 담당 인력도 필요한 데다 현금수납 차로도 전부 없애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마트톨링 도입 후에도 수납인력은 적정인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도로공사 스스로도 밝힌 바 있다. 

네 번째, 이 부사장은 “민주노총의 주장은 노사합의와 근로자들의 자율의사를 부정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수납원들은 자회사 전환을 거부했으며 이를 대표하는 노조위원장은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도로공사가 주장하는 ‘노사합의’는 조합원들의 요구를 배반해 탄핵된 노조위원장에 의한 ‘가짜 합의’일 뿐이다. 또한 도로공사는 자회사를 거부하는 노동자들에게 직접고용되면 수납원으로 일할 수 없고 조무원(청소, 도로정비, 졸음쉼터)으로 채용하겠다고 압박했다. 일상적인 고용불안이 내재화된 비정규 노동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회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도로공사는 달라져야 한다. 이런저런 거짓말과 꼼수로 공기업으로서의 의무를 회피한다면 국민의 공분을 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파견법을 위반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라는 법원의 명령도 거부한다면 그 피해를 국민이 떠안게 된다. 도로공사는 직접고용 의무를 더는 회피하지 말고 정상적 대화에 나서야 한다.

<박순향 | 민주노총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부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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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고등학교와 중학교가 마주 보고 있는 길은 오전 8시30분쯤 되면 잰걸음을 떼는 학생들로 꽉 찬다. 두 학교가 교복이 달라 누가 고교생인지 중학생인지 알 수 있지만, 설핏 보면 구별이 안된다. 여학생들의 치마는 하나같이 무척 짧고, 남학생들 머리 모양은 모두 똑같다. 

어른들이 요즘 학생들을 보면서 치마가 짧아 걷기조차 힘든 건 아니냐, 왜 개성도 취향도 없이 다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는 거냐 군소리를 하는데, 사실 교복을 입히고, 머리 규정을 만들어 개성을 억압한 건 어른들이었다. 다양한 인성 계발은 말뿐이고 획일적이고 정형화된 인재를 키우는 데 주력해 온 우리 교육 현실에서 교복을 줄여 입는 것이나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는 것은 십대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억압에 저항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니까 여학생들이 걷기 불편할 정도로 짧고 좁게 줄여 입은 치마가 역설적으로 그들에게는 너른 폭으로 세상을 걷는 것과 같은 자유로움을 줄 수 있다고, 그때는 생각할 수 없었다. 열다섯 살의 우리 딸이 짧게 줄인 교복 치마 하나를 가방에 넣어서 다닌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나는 딸한테 학생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운운하며 소리치다 결국 짧은 치마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했다. 묵묵히 성난 엄마의 처분을 따랐던 딸이 치마를 도로 가져가 밤새 꿰매 다시 입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 딸이 스무 살 때 집에 놀러 온 친구들과 하는 말이 기막혔다.

“요즘 애들 교복 치마가 너무 짧아. 교복은 안 줄여 입어야 예쁜데.”

개구리가 되어 올챙이 시절은 까맣게 잊은 이들의 어처구니없는 대화를 들으면서 도리어 나는 과거를 반성했다. 그러게 왜 그깟 치마 길이로 아이들을 가늠하려 했을까. 그냥 놔뒀어도 아이들은 잘 자라서 인간의 도리를 하고 사는데. 

며칠 전 지역 곳곳에서 무상 교복과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한 편안한 교복을 추진한다는 기사를 보면서 반가웠다. 이참에 학생들이 어른들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개성과 욕망을 담은 기발한 교복을 제안하면 어떨까, 우리 동네 학생들이 그런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즐겁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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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횡행했던 관제 구호 중 하나가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였다. 당시 정권은 중·고등학생들을 ‘자연 보호 활동(쓰레기 줍기)’에 동원했다. 언뜻 들으면 뜻도 심오하고(?) 운율도 맞는 말 같지만, 성립할 수 없는 언설이다. 인간은 자연의 미미한 일부분. 인간이 무슨 삼라만상의 조물주라고 자연을 보호하고 말고 한단 말인가. 주제 파악이 안된 과잉 자아가 아닐 수 없다. 자연이 사람을 보호한다는 논리도 “자연은 우리 편”이라는 인간 위주의 발상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별 관심이 없다. 둘은 간혹 조우할 뿐이다. 자연재해는 자연이 인간을 보호해주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다. 

한국은 인구, 면적으로 보면 작은 나라지만 좋은 의미든 아니든 ‘세계 1위’ 항목이 많다. 가정폭력, 교통사고, 청년 자살률과 더불어 전 세계의 수천, 수만 개일지 모를 항공 노선 중 운항 편수 1위가 ‘김포(서울)~제주’ 구간이다. 거의 1~2분마다 이착륙이 이루어진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예전에 제주에 가면 택시기사들이 “서울에서 왔냐?”고 인사를 건넸는데, 지금은 “한국 사람이죠?”라고 묻는다. 제주 내부의 차이, 경계(境界)가 크게 변한 것이다. 최근 조금 열기가 덜해진 것 같긴 하지만 관광객과 부동산 소유주의 중국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는 “제주 관광의 세계화” 업적을 자랑했다가 “90% 이상이 중국인”이라는 ‘팩트 폭력’을 겪은 바 있다. 제주가 크게 붐비기 시작하자 2015년 제2공항 건설론이 등장했다. 적합지는 일출로 유명한 성산읍 일대였고, 항간에는 중국인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24시간 운영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올해 9월20일, 국토교통부는 제주 제2공항 건설을 위해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환경부에 제출했다. 이 평가서는 해당 사업계획이 환경에 미치는 적정성과 입지 타당성 등을 검토한다. 환경부는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초안)에 대한 검토 의견서’를 국토부에 보냈고, 국토부는 보완을 거쳐 본안을 환경부에 제출한 상태다. 본안이 환경부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판단되면, 국토부는 10월 제2공항 기본계획을 고시할 예정이다. 

환경부는 “제주도는 생태 보전 가치가 매우 우수한 국제적 공간이며,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이자 월동지로서 본 공항 건설로 인한 환경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국토부가 환경부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지금 제주도민들은 공항 건설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제2공항이 환경 파괴는 물론 오버 투어리즘 문제와 더불어 실제로는 공군기지로 사용될 것을 우려한다. 서귀포시 강정동의 미군기지와 마찬가지로 제주는, 미국과 중국의 ‘G2’ 시대의 엉뚱한 격전지가 되어가고 있다. 

제주는 서울시 면적의 3배지만, 인구는 70만명으로 전체 대한민국 인구의 1.3%. 최근 몇 년간 15만명 정도가 제주로 이주했다. 관광객을 고려하면 상주 인구는 100만명쯤 될 것이다. 제주가 가라앉을 것 같다. 필리핀의 보라카이처럼 일정 기간 입도(入島) 금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업무도 있지만, 저가항공 덕분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제주에 간다. 갈 때마다 달라진 풍경에 당황한다. 어딜 가나 파괴(‘건설’) 현장이다. 예전에는 해안과 도심 중심이던 건설 붐이 중산간 마을까지 확대돼 ‘빌라’가 아닌 곳이 없다. 최근 내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질 좋은 당근 생산지로 유명한 구좌지역 근처 마트에서 중국산 당근을 팔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제주의 ‘가치’는 자체의 환경, 생태, 역사, 문화 등뿐 아니라 육지와의 다름에도 있다. 관광인류학의 기본이다. 나는 제주에 왜 테디 베어(곰 인형) 박물관이 있는지, 람사르습지 인근에 왜 사파리(대형 동물원)를 지으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후자는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진행 중이다). 제주와 육지의 차이는 제주의 관점에서 정의되어야 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주를 육지의 필요에 의해 개발하는 것, 이것이 내부 식민지다. 제주를 육지와 같은 방식으로 개발한다면, 그것은 ‘제주 발전’이 아니라 제주의 의미를 없애는 일이다. 

이 기시감. 1945년 8월15일, 일제가 패망하고 해방이 올 줄 알았지만 한반도는 바로 미군정의 통치에 들어갔다. 1947년 3월부터 1954년 9월까지 무려 7년 이상 지속된 제주 4·3은 ‘전쟁 이후의 전쟁’의 전형이다. 4·3은 미군과 이승만 정권뿐만 아니라 야당 지도자까지 가해자였던 사건이다. 강정동부터 제2공항까지, 말로는 제주 발전이라지만, 4·3의 기시감을 지울 수 없다. 제주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일차적으로 제주는 자연으로서 제주다. ‘관광 제주’는 제주 주민을 위한 정체성이지, 관광객이나 정부의 정책 대상이 아니다.

‘환경’과 ‘국토’가 대립하는 사회에서 국토가 온전할 수 있을까. 제주 제2공항 반대 운동에 전국적 지원이 절실하다. 제주 훼손은 세계문화유산을 잃는 것이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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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의학의 권위자인 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이재명 경기지사의 형사사건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어 함세웅 신부·몽양 여운형 선생 기념사업회 이부영 이사장, 이외수 시인 등 1184명이 1차 발기인으로 참여해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대책위는 곧 2차 발기인을 발표하고 다음달 중순까지 각계의 탄원을 대법원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지사에 대한 공소사실의 죄명은 2가지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성남시장 재직 시 친형 강제입원을 위해 직권을 남용한 혐의)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경기도지사 후보자 합동방송토론회에서 친형에 대한 강제입원과 관련된 사실에 대해 부인하는 발언을 하는 등 3가지의 허위사실공표 혐의)이다. 이 지사는 1심에서 전부 무죄를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가 일부 유죄로 인정돼 지사직 상실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 근거로 1심 판결에서 언급된 대법원 판례의 일부를 삭제했을 뿐 동일한 판례를 내세웠다.

항소심에서 인용하지 않은 부분의 주요 내용은 “합리적으로 보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다른 후보자의 견해나 발언의 의미를 해석하고 이에 대하여 비판하거나 질의하는 행위는, 후보자의 주장이나 질의에 대하여 다른 후보자가 즉시 반론이나 답변을 통하여 자신의 입장을 밝힐 기회가 주어지는 합동토론회의 특성을 고려해 볼 때, 진실에 반하는 사실을 공표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행하는 허위사실 적시행위로 평가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7도2879판결)는 것이다.

항소심에서 유죄가 인정된 부분 역시 경기도지사 선거 합동토론회에서 있었던 발언이었고, 강제입원 절차에 관한 부분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선 항소심도 무죄를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대법원의 법리가 유독 이 지사에 대해서만 적용되지 않아야 하고, 무죄인 강제입원 절차의 진행에 대해 답변을 한 것이 허위사실공표에 해당한다는 논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또 합동토론회 전체 발언과 답변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 발언을 이유로 지지율이 30% 이상 차이가 나던 상황인데 당선무효형을 선고한 것은 과연 합리적인 판단에 따른 것인가. 

이러한 판결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엔 판사의 정치적 신념 내지 보수적 성향이 이유가 될 수 있다. 국민이 판사에게 다른 사람들의 잘잘못을 판결할 권한을 준 것은 법관이라는 직업적 양심을 믿기 때문이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직업적 양심으로 포장할 권한을 준 것은 아니다. 시험공부로 얻은 권력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국민에게 선출된 권력을 심판하는 이러한 태도는 주권자의 선택을 왜곡하는 위험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위험성을 제거하는 방향만이 우리 사법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믿는다.

<이종일 | 법무법인 공명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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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보다 정치가 필요한 지금, 정치가 없다. 정치 부재의 공간은 조국과 윤석열, 그리고 두 사람 간 대결에 뛰어든 유명인사들과 그들의 팬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들 배후의성난 두 집단도 정치 부재를 증명한다. 광화문 집회에서 조국 퇴진을 외치는 이들과 서초동에서 조국 수호를 촉구하는 이들, 조국 사퇴 성명을 낸 교수들과 검찰개혁·조국 지지 성명을 낸 교수들. 이들이야말로 정당을 대체해 지지와 반대를 조직하고 여론을 이끄는 진정한 정치적 실체다. 

정치는 조국·윤석열 대치 국면을 풀 역량도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집권당은 지난 주말 서초동 집회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 간 대결의 결과가 나오기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보다 문제 해결 수단을 많이 갖고도 불확실성 속에 함께 휩쓸려 들어갔다. 민주당이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이유가 있다. 당이 중구난방 나서고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분열하면 총선 필패라는 열린우리당 트라우마가 그 하나다. 하지만 다양한 논의를 허용치 않는 당내 분위기, 공천권을 쥔 당 지도부의 독재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분열 회피 강박증은 당의 경직을 초래하고, 경직된 당은 위기가 닥쳤을 때 효과적 대응을 방해한다. 조국 사태 악화가 입증한다.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검찰개혁 촛불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이 방치한 다른 이유는 총선까지 여유가 있다는 안이함이다. 민주당 계획대로라면 시민은 조국 문제로 크게 낙담했다는 사실을 총선 앞에서 싹 잊어야 한다. 그리고 집권세력을 향해 새로운 희망을 품어야 한다. 그건 황교안의 머리카락이 자라면 갑자기 고분고분해져 장외 투쟁을 접고 대화할 거라고 믿는 것과 같다. 

조·윤 대결이 어떻게 귀결될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두 사람 관계만 보면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망하는 제로섬 게임이고, 나라 전체로서는 마이너스섬 게임이다. 이 대결에서 조국이 살아 돌아온들 더 이상 과거의 조국은 아니다. 상처투성이 조국, 껍데기 조국이다. 그때의 시민 역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던 시민이 아니라, 깊은 실망감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시민일 것이다. 

다수 시민이 선출하고 받쳐주던 촛불정부가 이제는 핵심 지지층의 강력한 목소리에 의지하고 있다. 위기 신호다. 권력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초동 집회 규모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조국은 13% 지지율로 대선주자 3위를 기록했다. 집권세력은 반색했다. 그리고 더 기다릴 필요 없다고 판단했는지 갑자기 공세적 태도로 변했다. 대통령도 검찰을 직접 통제하기 시작했다. 검찰 권력은 일정한 한계에 직면했다. 청와대-당-지지자가 결속해 있는 한 권력은 공고할 것이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지지자 결집 현상은 진영 대결을 본격화하면서 대결 규모가 커졌다는 걸 말해줄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 위임받은 촛불개혁을 위해 다수가 결집한 것이 아니다. 

이런 대결에서는 우리 편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순수한’ 경쟁심리가 발동한다. 이 국면에서 도덕과 가치는 사치다. 최소한의 명분만 필요하다. 그게 검찰개혁론이다. 하지만 검찰개혁이 촛불의제 가운데 최우선 순위여야 하는지 의문이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이미 국회로 넘어갔다. 검찰개혁 과제로 남은 게 별로 없다. 정부가 제시한 것도 수사관행·조직문화의 개선, 특수부 축소뿐이다. 조국 맞춤형 검찰개혁론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법무부의 가상통화 불허와 같이 젊은층이 등을 돌리는 계기가 생기면 신속하게 설득과 사과, 불허 취소로 반응했다. 각종 재난에도 기민하게 대응했다. 인사청문회 때 공직 후보자의 불법이 아니어도 도덕적 하자가 있거나, 여론이 나쁘면 임명하지 않았다. 시민 다수의 마음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촛불정부라면 폭넓은 지지와 영향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것을 기반으로 한 정치적 자본, 상징자본, 사회적 관심, 땀, 시간과 같은 자원은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불공정의 늪에 빠진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쓰여야 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는데도 이미 많은 자원이 소진됐고, 그나마 남은 것들은 조국을 위해 다 써버렸다. 공공재인 촛불자원의 낭비이자 촛불의 사유화다. 문 대통령이 다수의 마음을 잡기보다 한 사람의 마음을 잡으려 한 결과다. 그 때문에 개혁세력도 분열 중이다. 이해할 수 없다. 촛불대의 앞에 조국은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조국을 위한 촛불은 없었다. 촛불정부 탄생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배신감을 달랠 길이 없다.

문재인 정부에 위임한 촛불개혁의 시효는 이렇게 끝나는 건가? 문재인 정부는 다수파 전략을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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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왔나?” “광장은 찼나?” 1990년대 초 대선·총선 유세 현장에 가면 가장 먼저 신문사에 전화로 알리는 게 있었다. 어림짐작한 참석자 규모였다. 여의도광장 100만, 보라매광장 80만 식으로 정치부에 내려오는 ‘기준값’이 있고, 광장이 넘쳤는지 골목까지 흘렀는지에 따라 숫자가 가감됐다. 1987년 대선부터 불붙은 ‘1노3김의 광장정치’가 한창이던 시절이다. 박정희·김대중이 승부한 1971년 대선 때는 상대적으로 작은 서울 장충단공원도 ‘100만 인파’ ‘우리가 더 많았다’고 기싸움을 벌였다. 유세 인파가 세 과시 잣대와 뉴스가 되고, 구전 홍보가 중요할 때였다. 선거판의 설전은 1990년대 후반 TV토론과 여론조사에 밀려 멈췄다.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검찰개혁 촛불문화제 참석자들이 도로를 가득 채우고 있다. 연합뉴스

광장의 숫자가 다시 초점이 된 것은 촛불이다. 정점은 2016년 12월3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촛불문화제였다. 주최 측 발표 232만, 경찰 추산 43만명 모두 신기록 인파였다. 경찰은 한 평(3.3㎡)에 9명이 서 있고 5명이 앉아 있다고 세는 페르미룰을 원용했고, 광장 주변 지하철 이용객 수와 통신량이 빅데이터로 참고됐다. 흥미로운 것은 그해 10월29일 1차 촛불(주최 측 5만, 경찰 1만2000)부터 경찰 추산에 4~5배를 곱하면 대체로 주최 측 숫자가 되는 ‘촛불 공식’이 이어졌다. 어차피 정확히 셀 수는 없고, 추세는 똑같이 보여준 셈이다. 얼마나 정쟁에 휩쓸리고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경찰은 2017년 1월 집회 참석자 발표를 중단했다.

서초·반포대로 1.6㎞를 메운 9·28 검찰개혁 촉구 촛불을 두고 숫자 공방이 또 거칠다. 주최 측 추산은 80만에서 200만까지 여러 층이고, 5만으로 추정한 자유한국당은 1일 통계 전문가를 초청한 간담회까지 열었다. 사람들이 보는 경험칙은 그 사이 어디쯤일 테다. 언제부턴가 촛불은 누가 주도하고 교통비를 주는지로 성격이 갈린다. 부풀리고 깎는 숫자 대치는 여도 야도 정략이 앞설 때가 많다. 태풍이 부는 3일 광화문 집회에 당원 동원령을 내린 한국당의 높아진 목표치도 150만명. 서초동 촛불을 5만으로 보고는 쉽잖은 숫자다. 기억 속의 어머니가 장독대나 시루떡에 올려놓은 촛불의 힘은 간절함이다. 한명이든 100만명이든 촛불은 크기만 다를 뿐이다. 가리키는 달(민심)을 보라는 게 촛불이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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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님을 어느 교수 모임에서 뵈었다. ‘김용균재단’ 설립을 홍보하기 위해 오셨다. 그 어머니의 그 얼굴과 목소리에 서리고 새겨진 기운이나 감정을 뭐라 칭해야 할지? 슬픔, 눈물 같은 흔한 단어들은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세월호’를 통해 좀 배우긴 했지만 이런 참척에는 여전히 다른 통사가 필요하다. 

그 어머니가 “용균이 같은 일이 없게 하려면 교수님들이 중요하다”는 그런, 저절로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는 말씀을 했다. 짧은 행사가 끝나고는 너무 공손하게 허리 숙여 교수들에게 인사하셨다. 낳고 키운 자식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 모르지만, 가슴에 치받는 무언가를 어쩌지 못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자택을 나와 차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사태’는 한국 대학과 교수사회의 참담한 모순과 기괴한 실상을 또다시 드러냈다. 한국 민주주의는 대학 문 앞에서 멈춘다. 특권적 교육 차별, 대학의 반민주성, 대학 내부의 불평등은 정규직 교수들의 무책임·무능과 긴한 관계를 갖고 있다. 특권층 자녀들이 대학 실험실과 연구실에 드나들며 ‘제1저자’ 논문을 발표한 사실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대학이 계급재생산에 어떤 역할을 하며 교수들의 계급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일이다. 그들만의 ‘공정’ 촛불을 든 ‘스카이’ 학생들을 과연 누가 가르치는가? 그 특권과 서열의식은 어디서 왔겠는가? ‘주요 대학’들은 고교서열화의 실질적 배후조종자다.

따라서 고교서열화와 대학 ‘캐슬’을 동시에 허무는 전략이 요청된다. 그렇지 않고는 한국 민주주의란 늘 반편이다. 혹자들은 서울대(학부)나 ‘스카이’가 없어지면 그걸 대신하는 또 다른 명문과 서열이 등장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일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네트워크가 얼마나 강고하게 정계·재계·언론계·학계 등 이 좁은 나라의 모든 영역에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그 역사와 특권의 연줄망이 얼마나 깊고 촘촘한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 하는 소리다. 게다가 우리는 건국 이래 단 한 번도 ‘스카이캐슬’의 지배에서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다. 

무려 25년간 총장 자리를 지키며 군림해왔는데 알고 보니 허위 학력자라는 의혹이 불거진 동양대 총장의 경우는 어떤가? 상당수의 사립대학 총장 자리는 임기가 없다. 검증도 책임도 없다. 짬짜미로 구성된 이사회와 신에 준하는 권능을 지닌 교주(校主)가 자의로 뽑거나 ‘꽂는다’. 그래서 전체 대학 구성원이 참여하는 총장 선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중 직선제는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쯤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총장 직선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학은 전국에 20여개밖에 되지 않는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총장 직선제를 많이 없애서 대학 민주주의에 치명타를 가했었다. 2015년 고현철 부산대 교수는 총장 직선제를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했다. 그는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다”라는 말을 남겼다. 

보통의 사립대 교수들은 ‘찍힐까’ 겁이 나서 정규직조차 정치행동을 거의 못한다.(이번 ‘조국 반대’ 교수들이 이름은 밝히되 소속 학교까지 밝히지는 못한 코미디도 이런 견지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이불 속이나 술집에서는 모르겠으나, 대부분은 침묵하며 거세된 시민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일베를 많이 하라’고 청년들에게 권해온 류석춘 연세대 교수의 막말과 성희롱성 발언은 어떻게 또 가능했을까? 대부분 정규직 교수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표절, 성희롱, 연구비 횡령 등 비위는 왜 중단되지 않을까? 교수라는 존재의 권력과 권리가 극단적으로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일종의 신분사회며, 그 하부는 노예화된 비정규직에 의해 지탱된다. 위는 ‘고인 물’이요, 아래는 불안정과 소외가 넘쳐나는 폐허다.  

한편 진보 정규직 교수들은 이번 사태에서 ‘검찰개혁 조국지지’ 서명운동을 발의·주도했다. 5000여명의 교수·연구자가 동조했다. 그러나 우리 교수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국수호’ 대열의 앞장이 아니라, 깊은 자기반성과 그에 걸맞은 실천이다. 586세대 교수들은 대학에서의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고, 후배들과 젊은 세대로부터 불신당하고 있다. ‘지금 검찰개혁이 중요하다’는 행동을 이끌던 교수들이 ‘다음’엔 노동개혁이나 교육개혁을 위해 이번처럼 열정적으로 직장이나 거리에서 싸울까? 고대해본다. 물론 노동개혁이나 교육개혁이 ‘다음’은 아니다. 

수많은 검찰개혁 촛불로써 시민이 주체가 되는 사회개혁의 잠재력이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민의 위대한 힘이 ‘조국수호’가 아니라 ‘조국사태’를 통해 드러난 철옹의 불평등과 계급 ‘캐슬’을 깨는 데 몰아닥치기 희망한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과 자기 아이의 평범한 삶을 위해서.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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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에 가서 상대방이 “뭐 먹을래?” 할 때마다 난 “아무거나 다 괜찮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지 말고 먹고 싶은 걸 골라보라고 해도 끝까지 ‘아무거나’를 고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실제로 ‘아무거나’라는 안주를 내놓는 술집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얼마 전 ‘훠거’라는 중국 음식을 먹어볼 기회가 있었다. 처음 경험해 보는 음식이었다. 일종의 샤부샤부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은 물론 맛이 있었다. 그런데 냄비 하나를 둘로 나누어 한쪽은 붉고 매운 맛을, 다른 한쪽은 우리의 곰탕처럼 전혀 반대의 맛을 내게 만들어 놓은 것도 내 눈엔 신기해 보였다. 적어도 매운 걸 먹을지 말지를 선택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신선한 발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비슷한 것 중에 우리나라 치킨집에는 ‘반반에 무 많이’라는 메뉴도 있다. 실제 그런 이름의 메뉴가 있다기보다는 ‘양념 반, 프라이드 반에 무는 많이!’라는 식의 주문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역시 양념치킨을 먹을까, 프라이드치킨을 먹을까 하는 선택의 갈등을 해결해 주는 발상의 하나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전적인(?) 딜레마는 아무래도 ‘짬뽕을 먹을까, 짜장면을 먹을까’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그 고민은 중국식당에 갈 때마다 반복된다. 그 둘을 한 그릇에 담아내는 ‘짬짜면’이라는 메뉴도 있다. 하지만 그런 메뉴가 없는 곳이 더 많다. 그래서 여전히 나 역시 짬뽕과 짜장면 사이에서 마음이 둘로 나뉠 때가 더 많다. 동행한 사람들과 각자 다른 메뉴를 주문해 나눠 먹자고 합의(!)를 보는 때도 있지만, 늘 내가 주문한 것보다는 상대의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행히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크고 작은 선택의 딜레마를 경험할 때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일어난다. 그때마다 “아, 난 정말 결정장애인가 봐!”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을 느껴본 사람들은 아마 그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번부터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굳은 결심을 하지만 역시 번번이 그 결심이 무너지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더욱더. 

우리가 이처럼 크고 작은 일에서 속칭 ‘결정장애’를 겪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사실 매우 단순하다. 뭐니뭐니 해도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욕심이 눈앞을 가리기 때문이다. 덕분에 어느 한쪽을 결정하는 데 순간적으로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뒤로 미루는 버릇도 어느 정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게으름 때문이든, 완벽주의 때문이든 중요한 일을 뒤로 미루는 습관이 있는 사람일수록 선택의 순간에서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무슨 일이든 덤벙대기부터 하는 타입도 결정장애를 경험할 확률이 높다. 정보처리 과정이 허술하다고나 할까. 그런 경우 뭔가를 집중해서 보거나 주의 깊게 귀 기울여 듣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마음만 앞서서 허둥거리다 보면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제대로 된 정보가 없으니 당연히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감이 없는 타입도 결정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타입은 자기주장이 힘들다. 웬만하면 상대방의 결정에 따르고자 한다. 만에 하나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어쩌나 싶어 불안해하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한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결정장애를 가졌다면 사는 게 약간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 따라서 느리더라도 그 버릇을 고치는 편이 낫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렸으면 그것을 번복하지 않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뭔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그 순간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숲으로 난 두 갈래 길에서 내가 왼쪽 길로 가기로 결정했다면 나머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깨끗이 버려야 하는 것처럼. 물론 하루아침에 달라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쉬운 예로 양념치킨을 먹기로 결정하고 주문했으면 프라이드치킨에 대한 미련은 싹 버리는 식으로. 그러므로 당분간 ‘반반에 무 많이’보다는 과감하게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 보는 시도를 해볼까 한다.

<양창순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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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이 “검찰 자체개혁안을 마련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주문이 나온 지 하루 만에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1일 내놓은 개혁안 요지는 3가지다. 서울중앙지검 등 3개 검찰청을 제외한 전국 모든 검찰청에 설치된 특수부를 폐지하고, 외부 파견검사를 전원 복귀시켜 형사·공판부에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검사장의 전용차량 이용은 즉각 중단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의자 공개소환, 피의자 포토라인 세우기, 피의사실 공표, 심야조사 등을 포함한 검찰권 행사 방식과 수사 관행 개선안은 실태 점검 뒤 내놓겠다고 했다. 일단은 검찰이 대통령의 최후 통첩과도 같은 자체개혁 주문에 대해 즉시 실행에 옮기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9월30일 (출처:경향신문DB)

이번 개혁안은 “검찰이 꼭 해야 될, 반드시 필요한 일에 집중해서 하자”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라 마련됐다고 한다. 그런데 내용을 분석해보면, 미흡한 수준을 넘어 급조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3개안 중 2개안은 제2기 법무·검찰 개혁위원회가 이날 발표한 권고안과 다를 바 없다. 개혁위는 “직접수사를 축소하고 형사·공판부로 중심을 이동시키라”고 권고했다. 검사장 전용차량 폐지는 지난해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발표한 내용이다. 대통령 주문에 바로 답은 제시했으나 급조한 탓에 개혁위의 주문대로, 혹은 과거 발표한 내용을 모아 내놓은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을 제외한 특수부 폐지 방안은 실효성이 없고, 파견검사 복직은 파견기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게다가 3개안의 시행 권한은 모두 법무부가 쥐고 있다. ‘개혁 저항세력’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면서 검찰개혁 작업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실효성도, 실행 능력도 없는 대책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검찰권 행사 방식, 수사 관행, 조직문화 개선 등 대통령의 핵심 주문에 대해 즉답을 내놓지 않았다. 검찰은 “인권보장을 최우선에 두고 검찰권 행사 방식 등을 점검하겠다”며 “변호사·언론인, 시민사회·인권 단체 등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지만, 대통령과 ‘100만 촛불’의 주문은 검찰권의 분산과 공정한 행사다. 검찰은 국민 모두가 납득할 만한 대책을 발표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개혁에 저항하는 권력집단’이라는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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