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NEET)족은 학교에 다니지 않거나 일하지 않는(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10~20대 무직자층을 가리킨다. 다문화 자녀 중에는 유독 니트족이 많다. 사회 부적응에 의한 학업 및 취업 포기다. 다문화 자녀의 니트족 비율은 20%로, 일반 가정보다 5%포인트 이상 높다고 한다. 다문화 가정의 ‘중도입국 청소년’은 30%가 넘는다. 3명 중 1명이 니트족인 ‘중도입국 청소년’은 누구인가.

지난해 국내 체류 외국인은 237만명이었다. 이 중 상당수는 다문화 가정을 꾸리고 있다. 다문화 자녀는 국제결혼 자녀와 외국인가족 자녀로 나뉘고, 국제결혼 자녀는 국내 출생 자녀와 중도입국 자녀로 구분된다. 중도입국 청소년은 부모가 한국인과 결혼하거나 이주노동자로 입국했다가 뒤늦게 한국으로 데리고 온 자녀를 말한다. 다문화 자녀는 약 12만명, 이 가운데 중도입국 청소년은 10%로 추산된다. 중도입국 청소년은 언어·관습 등의 문제로 사회 적응이 쉽지 않다. 학업이나 취업은 더 어렵다. 이들이 쉽게 니트족으로 전락하는 이유다. 그러나 중도입국 청소년은 자발적 취업 포기자인 기존 니트족과 다르다. 의지가 있으면서도 교육·경제활동에서 배제된 신(新)니트족이다.

3일 경향신문은 입국하자마자 니트족이 될 수밖에 없는 중도입국 청소년의 사연을 소개했다. 지난 7월 한국인과 재혼한 베트남인 어머니를 따라 입국한 응웬(가명)은 서울 시내 중학교 5곳에 입학을 신청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학교마다 “정원이 찼다” “의사소통이 안돼 수업이 어렵다” 등의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시했다. 응웬은 4개월째 집에서 니트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국내 이주 외국인이 급증하고 있지만, 다문화 지원 시설이나 소프트웨어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서울에서 다문화특별학급을 운영하는 초·중등 학교는 19곳뿐이다. 다문화 언어 교사도 태부족이다. 정부는 중도입국 청소년을 위한 교육 시설 확충, 커리큘럼 및 취업·진로 시스템 개발 등의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가수 인순이가 설립한 ‘해밀학교’처럼 지자체와 주민의 참여도 확대돼야 한다. 다문화시대에 중도입국 청소년의 니트족화를 막는 일이 시급하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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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는 어떤 조건에서 일어날까요? 불만이 커지면 시위가 일어난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어떤 이론은 경제, 사회적 조건을 따져봅니다. 지배계층의 균열, 억압의 강도 등 정치역학적 조건을 연구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들이 흔히 간과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시위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죠. 첫 번째 이론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세상에 불만 없는 사람 없지만 모든 사람이 늘 시위를 하지는 않죠. 2016~2017년 촛불집회가 절정에 달했을 때 참가자 수가 200만명 정도였습니다. 5000만명을 넘는 인구 10분의 1에도 못 미치지요. 이를 뒤집어 보면 시위는, 특히 촛불집회 같은 대형 시위는 정말 극적인, 과장을 보태면 기적적인 현상입니다. 그 바쁜 사람들이 일상을 포기하고 거리에 나섭니다. 공권력이나 상대방과의 충돌 가능성도 있죠. 게다가 나 하나 안 나가도 시위 크기는 비슷합니다. 시위의 열매 또한 내 참가와는 관계없이 따먹을 수 있죠. 그래서 이를 다 무릅쓰고 일어나는 시위는 그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2016년, 대통령이 나라를 버린 지 오래됐음을 알게 됐습니다. 야당은 분열과 혼란을 극복하지 못한 채 헤맸죠. 그런 탓에 국민이 직접 나섰습니다. 이들이 광화문을 가득 메우고서야 국회, 법원, 정부가 움직였습니다. 이 사례는 민의의 무서움도 보여주었지만, 대의정치를 기본으로 하는 민주체제의 한계도 보여주었죠. 수백만 시민이 거리를 메워야 할 만큼 큰 한계였습니다. 2019년, 또다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지난달 28일 열린 ‘제7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반포대로와 인도를 가득 메웠죠.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수사가 결정적 방아쇠 역할을 했습니다. 과도한 검찰수사로 정치인을 잃은 아픔이 있는 이들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 시위는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일제와 한민족, 전두환과 학생세력, 박근혜와 시민, 이렇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가 아니니까요. 검찰은 법무부 소속 정부 기관일 뿐입니다.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는, 대통령 한참 밑의 기관입니다. 이를 상대로 문재인 지지자들이 시위한 셈입니다. 어찌 된 걸까요. 검찰도 문재인 정부의 일부고 윤석열 검찰총장도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는데 말이죠. 물론 이번 사태가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조국 대전’이라 불리는 이 논쟁은 여러 주제가 섞여 있습니다. 검찰수사가 과도했는지, 정치적인지는 대표적 이슈입니다. 조국 장관 가족의 행태에 대한 법적, 도덕적 논의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검찰개혁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전망도 분명치 않죠. 논쟁의 열기도 대단해 소위 진보진영 안에서도 서로 얼굴을 붉힙니다.

그래도 검찰은 정부 기관일 뿐입니다. 일개 정부 기관을 다스리는데 100만명이 넘는 시민이 거리를 메워야 한다면 대통령의 정치력을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돌이켜보면 검찰과의 대립뿐 아닙니다. 정부·여당과 자유한국당 간의 대립은 몇 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지지 세력의 목소리도 잦아들지 않고 있죠. 다른 한편으로 노동계와의 관계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기대했던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이 세상은 빨리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달 말이면 미국 하원은 트럼프 대통령 탄핵 절차를 마치리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습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하원에 소환됐죠. 탄핵이 진행될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정부 장악력도 떨어지고 다른 일에 신경쓸 겨를이 없을 겁니다. 북·미관계 개선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죠. 이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업적인 한반도 평화정착에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악화되면 중국의 입김은 더욱 커질 테고 미·중 대립은 격화될 겁니다. 

한국은 선택을 강요받을 테죠. 이에 대비하는 외교전략은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대일외교, 환경문제 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죠. 장관 하나를 두고 나라 전체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이러고 있는 게 답답할 따름입니다. 모르고 있다면 그 또한 심각한 문제죠.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칼로 자르는 결단을 촉구합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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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이 특정인의 민원 해결을 위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지역구인 충남 아산의 빙과업체가 롯데푸드에 팥빙수 등을 납품해오다 2010년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에 걸려 거래가 중단되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오고 있다. 업체는 2013년 롯데푸드를 공정거래위에 ‘지위남용’으로 신고했고, 이 의원은 지역구 일이라며 2014년 국감 때 롯데 부회장을 불렀다. 이후 양측은 7억원의 피해보상에 합의했다. 국회의원을 동원한 압박을 견디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업체는 2016년, 2018년에도 여러 의원을 통해 롯데 측에 ‘원유 50% 납품권’ ‘상품 포장권’ 등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올해 국감을 앞두고 여러 차례 롯데그룹 관계자를 국회로 불러 “국감이 9월인데 회장님을 증인 출석시킬 수는 없지 않으냐. 회장님에게 보고를 하라”고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3억원 정도에 합의를 보라”는 얘기도 나왔다는데, 이 의원은 “금액을 얘기한 적은 없다”고 했다. 증인 채택을 조건으로 한 이런 압박은 배임강요,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더욱이 협력업체에 대한 거래상 지위남용 의혹을 따지는 곳은 공정위이고, 공정위에 대한 국감은 보건복지위가 아니라 정무위 소관이다. 이 의원은 ‘식품위생 점검’이라는 엉뚱한 구실을 붙였는데, 대기업 총수를 불러 위생 점검을 따지겠다는 건 누가 봐도 지나치다. 

기업인도 법을 어기거나 특별한 문제가 있다면 국감장에 불러 책임을 추궁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감을 악용해 민원해결이나 후원을 압박하는 행태는 ‘갑질’을 넘어 횡포로 볼 수밖에 없다. 증인 채택을 놓고 정치인과 기업 간에 뒷거래가 무성하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정감사인지, 기업감사인지 헷갈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래서 여야는 2017년 기업인 등에 대한 마구잡이 증인 채택을 막기 위해 증인신청 사유와 신청 의원 명단을 공개하는 ‘국감 증인실명제’까지 도입했다. 국회의장은 이런 행태를 ‘국회 갑질’이라며 자제도 당부했다. 한데도 무차별 증인 채택은 여전하고, 실명제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가 되고 말았다. 

이런 ‘정치 갑질’에 암묵적으로 동의해준 복지위 여당 의원들도 ‘가재는 게 편’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의원은 지금이라도 무리한 증인 소환을 철회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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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3일 조국 법무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비공개로 불러 조사했다. 정 교수는 자녀 입시 및 사모펀드 관련 의혹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정 교수는 지난달 6일 검찰에 의해 기소된 상태다. 단 한 차례의 소환조사도 없이 재판에 넘겨진 그를 수사착수 37일 만에 검찰이 부른 것이다. ‘절차를 무시한 정치행위’ ‘과도한 수사’ 등의 비난에도 검찰은 조 장관 가족에게 제기된 의혹·혐의 입증에 집중해왔다. 전방위적인 압수수색과 관련자 구속 및 소환 조사 등을 벌였다. 제기된 의혹이 사실인지를 판단할 증거의 확보, 조사·분석은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조사가 끝나면 정 교수가 비리에 연루됐는지, 혹은 무관한지가 가려질 것이다. 조 장관 역시 사건 관련성이 밝혀질 터이다. 검찰은 한 점 의혹 없이 진실을 규명해 이른 시일 내에 수사 결과를 내놓길 바란다. 

검찰은 3일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비공개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그간 “원칙에 따라 청사 1층 출입문을 통해 출석하게 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비공개 조사 방침이 알려진 뒤 평소 취재진으로 붐비던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현관은 한산(위 사진)했다. 정 교수는 청사 직원용 출입구와 연결되는 지하 주차장 출구(아래 사진)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김창길 기자

검찰은 정 교수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여러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딸이 받은 동양대 표창장을 위조한 뒤 제출하고, 자녀의 의학논문 제1저자 등재와 인턴십증명서 수여 과정에 개입해 위법한 일을 저질렀을 것으로 판단한다. 사모펀드에 10억여원을 투자하면서 실제로 운영에도 관여한 것으로 의심한다. 조 장관의 조카가 투자사 자금을 빼돌리는 과정에 개입하고, 검찰 압수수색에 대비해 증거인멸을 지시했을 것으로 판단한다. 

이런 의혹·혐의의 제기 과정에서, 또 사실 여부가 가려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국 사회는 갈갈이 찢겼다. 부와 권력이 동원한 불공정·불평등한 이익의 향유가 합법으로 포장되는 현실에 시민은 분노하고 계층 간 갈등은 심화됐다. 조국 장관 ‘수호’와 ‘사퇴’를 주장하는 이들로 ‘광장’은 둘로 나뉘고, 국민 분열은 심화됐다. 해결능력을 상실한 정치권은 광장의 세대결만 지켜보고 있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갈등 또한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 사회는 조국사태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렀고, 치르고 있다. 이제 의혹과 혐의가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가려야 할 때가 왔다. 잘못이 있으면 처벌해야 하고, 잘못이 없으면 솔직하게 없다고 해야 한다. 그것이 검찰 본연의 자세다. 70여곳의 압수수색 등 대대적인 수사를 하고도 결과가 신통찮다는 비판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수사결과가 또 다른 갈등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유의점이다. 

더 중요한 과제는 검찰개혁이다. 검찰개혁은 한국 민주주의 및 인권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정치권도 적극 협력해야 한다. 정 교수에 대한 비공개 소환을 시작으로 과잉 수사 논란이 종식되고 피의자 인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사 관행도 바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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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모 평생교육원에서 12주차 글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혼자서 다하는 것은 아니고 강백수라는 시인과 함께, 정확히는 ‘대중문화비평’이라는 이름으로 한다.  

이런 건조한 자리에 누가 올까 싶었는데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모인다. 모두 걸어서 10분 거리의 동네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여러 이슈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글을 쓴다. 특히 ‘동네의 현안’에 대한 질문에는 저마다 멋진 제안들이 많아서 좋았다.

지난주에는 우리는 어떠한 글쓰기를 해야 할 것인가, 하고 이야기 나누었다. 그때 가장 활발하게 참여해 온 40대 남성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아내도 결혼하고 10년쯤 지나니까 제 말을 잘 안 들어요.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은데, 새로운 말이 필요할 것 같아요”하는 내용이었다. 난 그가 “아내가 제 말을 잘…”하고 말한 순간부터 “저, 잠시만요”하고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생겼으나 우선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수강생들이 그 표현에 무언가 불편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고 미안한 심정이 되었다.

나는 말을 마친 그에게 “아내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한 것은 아마도 명령의 의미가 아니라 대화를 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는 내용인 것 같아요, 맞지요?”하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읽을 타인에게 불편함이나 상처를 주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맥락이 어떠하더라도 사람들은 하나의 단어와 한 줄의 문장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글의 온도는 그것으로 결정된다. 특히 쉽게 상처 받는 것은 소수자들이다. 일상에서 여러 이유로 차별을 감각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단어와 문장이 아니라 어딘가에 위치한 부호 하나의 무게마저도 짐이 되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글을 읽어내는 힘을 탓하기 이전에, 쓰는 사람의 무감각을 더욱 문제 삼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맥락을 전달하고 싶을 때는 그 사례에서 자신이 ‘을의 자리’로 스스로 내려가면 된다. “결혼하고 10년쯤 지나니까 아내가 제 말을 잘 안 들어요(아내에게 문제가 있어요)”라는 것을 “결혼하고 10년쯤 지나니까 저도 아내의 말을 잘 안 듣게 되었어요(저에게 문제가 있어요)”라고 하면, 그 주체만 바뀌었을 뿐인데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을 표현이 되는 것이다.  

나는 40대인 그에게 “사실 선생님 나이대의 남성들은 글에서 조금 상처 받아도 괜찮습니다. 왜냐면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을 상처 주는 쪽에 있기 때문입니다”하고 덧붙였다. 어쩌면 중년 남성들은 나의 이 문장에 분노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상대적으로 권력을 가진 편에 있음을 드러낸다. 분노 역시 가진 사람의 몫이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상처와 상실이 남는다.

그 남성이 “저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렇게 글을 쓰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여기에 온 거예요. 고맙습니다”하고 말해서, 나는 그가 정말로 고마웠다.  

그때 그의 뒤에 앉은 여성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는 그에게 “아까 말씀하셨을 때 저 사실 불편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하고 말했다. 나는 이때 무언가 눈물이 날 만큼 둘에게 고마웠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간 사용해 온 언어를 고쳐나가겠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랬기에 그에게 상처 받았던 누군가도 그에게 다정한 고마움을 전할 수 있었다.

사회와 문화를 비평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에게, 나는 그러한 글쓰기를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함을 전하고 싶다. 자신을 거쳐나가지 않은 물음표는 쉽게 타인을 규정하고 상처 주게 된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가?”라는 데서 시작한 물음표는 타인과 사회를 향해 건강하게 확장된다. 그러면 그는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만들고 거기에 쉼표 하나를 넣을 때마다 타인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나는 글쓰기란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쓰는 사람들이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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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길을 걷다보면 꼬투리가 펼쳐진 달맞이 풀이 연신 눈에 띈다. 아직은 햇살이 등짝을 따스하게 비추지만 한해살이풀들은 자신의 분신들을 여기저기에 숨겨놓고 겨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늘을 향해 솟은 나무들도 이파리에 남은 영양분을 서둘러 몸통으로 옮기면서 잎싹 꽃싹을 머금은 봉오리들을 마련한다.  

가을이 한창이다. 열대우림은 그렇지 않겠지만 머지않아 온대 지방의 숲은 일제히 나뭇잎을 떨구고 중위도 지구 북반구의 광합성 표면적을 현저히 줄여나간다. 이렇게 광합성 속도가 줄어듦에 따라 하와이 마우나로아 관측소에서 분석한 이산화탄소의 수치는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한다.

식물들이 자라고 씨를 맺는 데 필요한 주된 영양소는 이산화탄소와 물이다. 물을 분해해서 전자와 수소 이온을 얻은 식물은 이들을 이산화탄소에 붙여 포도당으로 만든다. 이 단계에 빛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전체 과정을 광합성이라고 일컫는다. 자신이 사용할 식재료를 스스로 생산한다는 점에서 식물은 독립 영양 생명체이다.  

반면 우리 인간은 자체적으로 먹을 것을 생산하지 못하는 종속 영양 생명체다. 우리는 그러나 포도당을 이산화탄소로 바꾸면서 식물의 먹거리를 약간 챙겨주기는 한다. 광합성과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세포 과정을 우리는 호흡이라고 한다.

하지만 호흡과 광합성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각 과정에 사용되는 재료의 에너지양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안정적이지만 매우 낮은 에너지를 가진 이산화탄소에 태양에너지를 부어 고에너지 탄수화물을 만든다. 인간은 이 농밀한 화학에너지를 함유한 탄수화물에서 에너지를 추출하고 이를 물건을 들어 올리는 운동에너지, 신경세포끼리 신호를 전달하는 전기에너지 혹은 일정하게 체온을 유지하는 열에너지로 변환시킨다. 이렇게 식물은 인간을 지구 밖의 에너지원인 태양과 연결시킨다.

지구 역사에서 광합성이 등장하기 전에 생명체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에너지원은 지구 내부에서 나왔다. 심해의 바닷물을 데우고 인도대륙을 움직여 히말라야산맥을 높이 들어 올린 힘이다. 수천도에 달하는 지구 내부의 열이 지각판을 움직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 해 1인치씩 대서양을 넓히는 힘도 지구 내부의 열에서 기원한다. 또한 지구 내부의 에너지원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심해 생명체들도 존재한다. 이 내부 에너지에 더해 광합성은 지구 밖에서 거저 들어오는 태양 에너지를 여투어 생명체가 한동안 보전할 수 있는 토대를 조성했다. 천년 넘게 살아남은 용문산 은행나무에는 천년 전에 한반도에 도달한 태양에너지가 살아 있다. 태백산맥 준령에 파묻힌 석탄은 훨씬 더 오래 묵은 태양에너지이자 수억년 전 대기 중에 존재했던 이산화탄소 덩어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식물은 대기 중에 들어 있는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안으로 끌어들일까? 바로 기공(氣孔)을 통해서다. 기공은 우산이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육상 식물이 가지고 있는 핵심기관이다. 하지만 식물은 주변 상황에 따라 기공의 열고 닫음을 면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빛이 도달하지 않는 밤에는 물론 기공을 열 필요가 없다. 한편 주변에 이산화탄소의 양이 많다고 해도 오래 기공을 열어두는 일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 건조하거나 기온이 높으면 기공을 통해 수증기가 날아가 전체적으로 광합성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병원성 미생물이 기공을 통해 식물에 침입하는 일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지금부터 40여년 전 과학자들은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과 기공의 개수 사이에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눈치챘다. 또한 실험으로 그 사실을 증명했다. 1980년대 중반 케임브리지대학 식물학자 F 이안 우드워드는 같은 종의 식물이 산꼭대기에서 자랄 때와 평지에서 자랄 때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했다. 산꼭대기에 사는 식물은 뿌리가 잘 발달했지만 덩치는 작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점은 산꼭대기 식물이 평지에 사는 사촌들보다 더 많은 수의 기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드워드는 실험실에서 변수를 바꾸어가면서 관찰을 계속했다. 산꼭대기와 평지에서 차이가 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검토한 것이다. 두 환경을 모사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 예컨대 온도와 습도 혹은 빛의 차이는 기공의 숫자를 결정짓는 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산화탄소 농도는 기공의 숫자를 변화시켰다. 산꼭대기에서 식물이 확보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평지에 비해 더 적었던 것이다. 중력 때문에 위로 높이 올라갈수록 공기의 밀도는 줄어든다. 높은 산에서는 산소의 양도, 이산화탄소의 양도 적다. 산꼭대기와 달리 평지에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부족하지 않다. 재료와 에너지가 드는 기공을 적게 만들어도 식물이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다는 뜻이다.

21세기로 접어들며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의 양은 약 380ppm에 이르렀다. 매년 2ppm씩 빠르게 늘고 있다. 1998년 영국과 중국의 공동연구진은 현생 은행나무와 1924년에 수집한 은행잎에서 기공의 숫자를 비교했다. 20세기 약 70년이 지나는 동안 은행나무 뒷면에 있는 기공의 수는 ㎟당 137개에서 97개로 줄었다. 인간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냉장고 및 아파트 등이 본격적으로 호흡에 가세하면서 지구 대기에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다량 배출한 결과이다. 온실가스에 갇힌 태양에너지는 지구의 온도를 급하게 올리고 한반도에 잦은 가을 태풍을 몰고 온다. 여기서도 문제는 속도다. 2015년이 지나며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의 양이 공식적으로 400ppm을 넘었다고 탄식했다. 그 뒤로 불과 5년이 넘지 않은 2019년 5월 지구 대기 이산화탄소의 양은 ‘공식적으로’ 415ppm을 넘었다.  

태풍 ‘미탁’이 한반도 상륙을 목전에 둔 오늘도 은행나무의 뒷면에서는 기공의 수가 줄고 있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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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누아르’라고 불리는 장르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있다. 폭력조직에 잠입한 경찰이 어느 틈엔가 조폭 두목과 짙은 형제애를 느끼게 된다거나 그 반대의 이야기들. 단단히 정신무장을 하고 적의 내부로 들어가지만, 자신을 아끼고 챙겨주는 사람 앞에서 서서히 허물어지고 물들어가며 어느 순간 동화된다. 백색과 흑색은 대척점에 있지만, 모호한 회색지대를 거쳐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스스로 멈추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한 몸이 된다.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여서 가능한 스토리만은 아니다. 심의가 없는 현실 누아르는 자주 창작물의 세계를 앞선다. 모 언론사의 논조가 특정 조직에 편향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내부 사정을 아는 이가 이야기한다. 그 언론사의 책임자가 특정 조직과 친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도 처음엔 충분히 성실하고 정의로운 기자였단다. 그저 취재하는 조직의 내부를 알기 위해 친분을 쌓기 시작했는데 점차 정서적 밀착으로 변질된다. 좋은 정보를 많이 얻었기에 중요한 자리까지 승진했지만,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며 신뢰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슬픈 결말. 한 개인이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아오며 축적한 신념이란 것이 연고 앞에서 봄날의 눈만큼이나 허망하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변질이 특정 개인이나 조직에 국한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인간의 보편성을 담고 있다는 데 있다. 다양한 사람이 함께하는 소셜 모임을 몇 번인가 경험했다. 이런 곳엔 늘 중심 인물이 있기 마련인데, 실망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분도 있다. 어느 쪽이건 명망이 높을수록 과도하게 밀착하는 추종자들이 있고, 이로 인해 초심을 잃는 것을 보기도 한다. 매섭게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아닌 경우 대개가 그렇다. 호의와 특혜가 일상인 삶을 살다 보면, 이성은 둔감해지고 감성은 혼탁해진다. 적정한 거리에서 신뢰와 우정을 유지하고픈 맑은 성향의 사람들과는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인연을 정리하게 되고 자기기만의 상태로 고립된다.

최근 검찰개혁이 화두로 떠올랐다. 정부 공무원이 가질 수 있는 권한 행사의 도를 넘었다는 세간의 민심이 시내가 되고 강이 되어 바다에 이르더니, 해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보호받아야 할 법 앞에서 오히려 모멸감과 공포, 배신감을 느꼈던 많은 국민의 아픈 경험들이 민감한 정치사안 속에서 분노를 촉발시켰다.

잠시 감정을 멈추고 생각해 본다. 그들 모두 처음부터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공정한 법 집행을 통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를 혁신하고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꿈을 꾸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꿈을 위해 거쳐온 수많은 시험보다 더욱 줄 세우기가 분명한 조직에서 길을 잃었을 것이다. 자신들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군사정권만큼 무모한 신념에 빠지게 된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과는 다른데, 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이 억울한 이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소신과 할 말이 넘쳐나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 대다수가 국민과는 동떨어진 자신들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유난히도 관계망이 촘촘한 사회에서 이성이 숨쉴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왕따나 소외의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가장 강력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므로 더 많이 계산 없이 사랑하고 사랑 받기를 원한다면, 관계에서 느슨해져야 한다. 진정한 인류애를 고민해야 할 위치에 있는 존재들이라면 더욱 자신의 위치를 중심이 아닌 경계에 세우는 노력을 쉼 없이 해야 한다. 배타적 조직의 형제애와 신념은 담합이 되고, 굳건할수록 더욱 강력한 악이 된다. ‘괴물’은 ‘과도한 영향력’의 다른 표현이다.

외로운 인생길에 내 편은 반드시 필요하다. 내 편은 한통속에 갇힌 사람이 아니라, 밖에서 자신을 꺼내주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사랑하려면 외로워져야 한다.

<박선화 마음탐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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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2일 막이 올랐다. 여야는 앞으로 20일간 모두 788개 기관을 대상으로 올해 행정부가 계획하고 추진했던 국정 전반을 감사할 것이다. 국감은 첫날부터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로 곳곳에서 파행과 공방으로 얼룩졌다. 우려했던 대로다. 문화체육관광위에서는 조 장관 딸이 인턴을 했던 서울대 법대 산하 공익인권법센터 한인섭 센터장의 부인 문경란 문체부 스포츠혁신위원장의 증인 채택을 놓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5분 만에 집단퇴장하는 바람에 반쪽으로 진행됐다. 정무위는 조 장관 관련 증인 채택을 놓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증인 없이 국감을 진행했다. 다른 상임위에서도 ‘기승전 조국’은 마찬가지였다. 이러다간 올해 국감은 ‘조국 전쟁’으로 시작되고 끝이 날까 걱정이다. 

그러지 않아도 국회 대정부질문은 온통 조 장관 공방에 휩싸이면서 제2의 인사청문회를 방불케 하다 맥없이 끝났다. 말만 대정부질문이지, ‘대조국 질문’과 다를 바 없었다. 국감에서도 같은 양상이 되풀이되면 ‘제3의 조국 청문회’를 이어 가는 격이다. 끝도 없는 ‘조국 공방’을 바라보는 시민들도 이젠 지쳤다. 

지금 나라는 ‘조국 이슈’ 외에도 경기 침체, 북·미 간 비핵화 협상, 한·일 갈등,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방위비 분담금 협상,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등 여러 난제에 직면해 있다. 당장 올해 성장률이 1%대 후반에 머물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나올 만큼 민생경제는 불안한 상황이다. 조 장관 일가에 대해 의혹이 있다면 규명하는 건 당연하고, 검찰개혁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현 국정상황에서 시급히 다뤄져야 할 현안이 어디 조 장관 문제 하나뿐인가. ‘조국 이슈’는 국정감사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니다. 여야 간 정치적 공방을 주고받는 건 피할 수 없다지만, 싸울 때 싸우더라도 입법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해선 곤란하다. 

올해 국감은 내년 총선을 6개월여 앞두고 열리는 만큼 여야의 대립이 어느 때보다 격렬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국익을 챙기고,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돌보는 데 협치를 발휘하라는 건 공허한 주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회가 비정상 상태에 빠져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조 장관의 거취는 검찰 수사결과가 나오면 자연히 정리될 일이다. 그렇다면 수사는 검찰에 맡기고 국회는 제 할 일을 다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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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수장마가 지나가더니 한 주에 한 개씩 태풍이 몰려온다. 극장식 일기예보. 대형 동그라미가 비닐하우스와 낡은 함석 처마, 그리고 논밭을 정조준한다. 태풍아 우리 동네로는 오지마~ 백팔배를 올리는데, 백팔배는 ‘뱃살빼’의 동음이어. 

죄 없이 배고프고 뱃살이 쑥 빠지는 계절. 문밖은 온통 손길을 기다리는 일감들이다. 국화꽃이라도 볼라치면 꽃밭을 가꿔야 한다. 또 극성맞은 파리·모기에 괴롭다. 가을 태풍에 다들 날아가 버리면 좋겠다. 

잠자리와 벌과 나비, 그리고 파리가 서로 자랑질. 잠자리는 나처럼 멋지게 날 수 있어? 나비는 나처럼 우아하게 날 수 있어? 벌은 나처럼 날렵하게 날 수 있어? 그러자 파리가 배를 쥐고 웃더란다. “이 모자란 것들아. 니들은 나처럼 똥 먹을 수 있어?” 모두 졌다. 파리·모기가 없는 가을은 바깥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촌사람들에게 고마운 계절이다. 

악머구리로 시끄럽던 세상이 고요해지는 순간. 빈 들과 빈 가지. 단감을 다 수확하고 까치밥만 남은 감나무. ‘빈 들에 마른 풀같이’ 찬송가를 부르며 일을 하는 할머니들. 성크름한 날씨에도 늦은 시간까지 옴나위도 없이 꽉 찬 밭일들. 저녁이 파르께하게 찾아오면 밭고랑 백팔배를 멈추고 귀가들을 한다. 물끄럼말끄럼 쳐다보던 강아지, 그제야 밥먹게 생겼다며 좋아라 앞장을 선다. 파리·모기들 쫓는 강아지의 귀가 팔랑거린다. 사람귀도 강아지처럼 발달했으면 어쨌을까. 파리·모기도 먹고살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사람도 먹고살자고 하는 일들이다.

대전 사는 스님 동생이 종종 묵어가곤 한다. 엊그제도 불쑥 찾아와 계란말이도 하고 국도 끓여서 밥을 차려주더라. 반찬 없는 냉장고 속을 보더니 “형님은 요새 살림을 허시요 마시요?” 핀잔. 그래도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살아 파리·모기는 없다며 칭찬도 조금. “시끄럽게 굴지 말고 조용히 있다가 가!” 그랬더니 정말 조용히 있다가 떠났다. 차비라도 줄 걸 보내놓고 마음이 쓰였다. 미안해. 파리는 용서를 싹싹 빈다. 파리는 염치도 있고 불심도 있나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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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진만은 집안 분위기가 어딘가 모르게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 가구도, 벽지도 그대로였는데, 그런데도 그 느낌을 지울 길 없었다. 뭐지? 진만은 마치 마감 후 물품이 맞지 않은 알바생처럼 다시 한번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변할 것도, 달라질 것도 없는, 지은 지 삼십 년 된 방 두 칸짜리 연립주택이었다. 군데군데 금이 간 마룻바닥과 누리끼리하게 변한 싱크대 위 타일들, 그리고 흐릿한 형광등 불빛까지, 모두 예전 그대로였다. 이상하네? 진만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거기, 침대 바로 앞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예전에 방영되었던 사극이었다. 진만은 가만히 할아버지를 따라 TV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야 무엇이 달라졌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삼계탕집 주방 알바를 그만두고 진만은 오랜만에 아버지와 할아버지, 단둘이 살고 있는 안양집에 들렀다. 그가 근무했던 삼계탕집은 추석 당일 하루만 쉬었다. 그러니 어디 갈 수가 있나? 생각해보니 설날에도 그랬고, 여름휴가 때도 그랬다. 알바는 남들 쉴 때 더 일이 많은 법. 꼭 일 년 만에 가는 안양집이었다. 같은 계절이어서 그런가, 별다르게 다른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봄에 오면 좀 다르려나? 진만은 그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들어섰다. 

“할아버지 어디 안 좋으세요?”

진만은 마침 앉은뱅이 밥상에 이른 저녁을 차려 안방으로 들어오던 아버지에게 물었다. 연립주택 인근 오피스텔 야간경비 일을 하고 있는 그의 아버지는 이미 출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밥상에는 진만이 왔다고 그랬는지 제육볶음과 쌈이 올라와 있었다. 

“왜? 뭔 일 있었어?”

그의 아버지가 할아버지 쪽을 힐끔 한번 바라보고 되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저를 보고도 통 말씀이 없으셔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만은 다른 것을 묻고 싶었다. 이 냄새, 예전과 달리 집에서 나는 이 냄새는 과연 무엇인가? 비릿하고, 고릿하기도 한 이 냄새가 왜 계속 나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예전엔 저만 보면 계속 이 말 저 말 물었는데….”

아버지는 묵묵히, 그러나 바쁘게 젓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몰라. 요즈음 저렇게 자꾸 깜빡깜빡하셔.”

“병원엔 안 가보셨고요?”

진만은 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할아버지는 계속 TV를 보며 느릿느릿 숟가락을 들었다.

“나이 들면 다 그런 거야. 나도 깜빡깜빡하는데, 뭘….”  

그 정도가 아닌 거 같은데…. 진만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팔십대, 그의 아버지도 이미 육십대였다. 냄새에는 아마 그 두 사람의 것이 다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출근한 후, 진만은 설거지를 마치고 할아버지 옆에 앉았다.

“할아버지, 재밌어?”

TV에선 계속 사극이 방영되고 있었다.

“응. 궁예가 이제 막 다른 미륵이 있다고 왕건을 의심하기 시작할 거야.”

진만은 멀거니 TV 속 애꾸눈 궁예를 바라보았다.

“네 아빠도 이 할아비를 자꾸 의심해.”

할아버지는 마치 은밀한 소식이라도 전하듯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말했다.

“아버지가요?”

“응. 내가 가짜 가시오가피즙을 산 거라고… 자꾸 날 의심해.”

진만은 곰곰 따져 보았다. 분명 그런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무슨 문화홍보업체에 속아 삼백만원어치 가시오가피즙을 사 들고 들어왔을 때가…. 하지만 그건 진만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었다. 그게 벌써 십 년도 더 지난 일인데.

“의심하는 게 아니고 할아버지…그냥 너무 비싸니까 속상해서 그랬지.”

“나도 속상하거든. 그게 뭐 나 먹으려고 산 건가? 고생하는 우리 아들 먹이려고 한 거지.”

진만은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할아버지는 옛일을 추억하는 걸까? 그도 아니면 지금을 옛날로 믿고 있는 걸까? 진만은 어쩐지 꼭 후자일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고선 어떻게 저렇게 방금 당한 일처럼 속상해할까? 진만은 그 생각을 하니까 왈칵 겁이 났다.

“할아버지, 요샌 뉴스 안 봐?”

“안 봐.”

“왜? 할아버지 맨날 뉴스만 봤잖아?”

“보면 속상해. 맨날 디제이만 나오고… 디제이 대통령 된 거 꼴 보기 싫어서 아예 안 봐.”

TV에선 다시 궁예가 자신을 보고 미륵이 아니라고 말하는 고승에게 마군이구나, 노여워하는 모습이 잡혔다.

다음날 오전, 진만은 퇴근한 아버지를 잡고 말했다.

“할아버지 아무래도 병원 모시고 가야 할 거 같아요.”

“왜? 너한테 뭐라고 그러셔?”

“자꾸 옛날 일만 말하세요.”

아버지는 잠옷으로 갈아입다가 잠깐 진만을 바라보았다.

“그게 뭐? 잘못된 거야?”

진만은 아버지의 반응에 조금 당황했다. 아니, 그게 그냥 놔두면… 진만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말끝을 흐렸다.

“놔둬. 병원에 가봐야 약도 없고… 우리 둘 사는데 옛날 일 말한다고 잘못될 것도 없어.”

진만은 그런 아버지 앞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속상한 거 있으면 속상해하고, 화낼 거 있으면 화도 내야지.”

아버지는 잠옷 차림 그대로 할아버지의 아침 밥상을 차렸다. 

“걱정 말고 너도 밥 먹고 얼른 내려가. 아직까지 아무 문제없어. 태조 왕건도 있고… 저 드라마 계속 재방송해. 그러니까 괜찮아.”

진만은 아버지를 도와 밥상에 수저를 놓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무엇이 속상했을까? 나는 또 나중에 그 속상함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진만은 그게 막막하기만 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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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범이 교도소 안에서 30년도 더 전에 저질렀던 사건들을 이제야 자백하였다는 사실은, ‘사람이 과연 변하는가?’라는 구태의연한 질문을 하게 만든다. 훨씬 전에 죄책감을 느꼈다면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전 책임을 물을 수 있었을 텐데 그가 그러지 않은 것에 비춰 현재의 자백이 정말 진정성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교화의 목표인 개과천선(改過遷善)의 사전적 뜻은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행동거지를 크게 고쳐 착한 심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춘재의 자백이 그동안 교정본부에서 해 온 교화정책의 성과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최근 법무부에서는 수형자의 교화에 몰두하기로 했다. 그 결과 지난해 5월 범죄자들을 위한 심리치료과가 교정본부의 정규 조직으로 신설되었다. 흉악범죄가 이렇게 많이 일어나고, 아무리 장기형을 선고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지역공동체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 특정 범죄자들의 교화에 집중하는 전문부서를 이제야 설치했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낀다. 

심리치료과가 생기기 이전에도 법무부에서는 마약류 중독사범이나 정신질환 범죄자, 그리고 성범죄자에 대한 교화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들은 수용기간 동안의 안정적 생활에 충분히 기여했다. 그러나 심리치료만 전담하는 부서가 따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기에 일부 프로그램들은 외부 전문가들에게 위탁되어 운영되기도 하고 단기 교육과정을 이수한 내부 직원들이 치료프로그램을 임의적으로 집행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고도의 전문가들에 의해 표준화된 프로그램을 수년간 일관성 있게 운영하고 죄질의 개선을 재범률로 평가하는 소위 증거기반치료(evidence-based treatment)와는 거리가 멀었다.

교환교수 시절, 그리고 그 이후 여러 번 미국의 연방교정시설 심리치료 부서의 전문인력들과 교류를 한 적이 있다. 이들은 그 분야의 박사급 인력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심리치료를 집행하는 데 있어서만 전문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교화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나아가 효과성을 평가하는 데에도 전문성을 발휘했다. 이들은 다양하고 표준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한다. 전문인력의 임무는 프로그램을 집행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외국 법무부 소속 전문가들은 매년 프로그램을 이수한 수형자가 출소하여 지역공동체 내에서 다시 재범을 하는지 안 하는지도 확인한다. 짧게는 출소 후 1년, 길게는 30년까지 추적연구를 수행한다. 어떤 치료프로그램이 재범률 저감에 도움이 되는지, 어떤 유형의 범죄자에게 치료효과가 가장 적은지 출소 후 실제 재범 여부를 추적하여 매번 보고서를 남긴다.     

그 결과 학계에서는 단순한 약물의 투약보다는 개인의 범죄력에 근거를 둔 인지행동치료가 재범률 저감에 가장 효과적이란 사실을 검증했다. 결국 교정업무의 성패는 국고 투입 대비 효과성으로 귀결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성과는 납세자들의 안전일 것이다.

이렇게 수형자들에 대한 교정업무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전문가의 배치나 예산은 물론 전문적인 심리치료 수행 역시 절실하다. 하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다. 즉 행형의 철학, 바로 이것이 바뀌지 않으면 심리치료는 헛일이다. 응보주의보다는 치료와 선도가 교정행정의 중심이 되지 않고서는 재범률을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는 심리치료기법의 발굴은 불가능하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재 보안과 산하에 있는 심리치료의 업무를 완전히 분리하여 심리치료과가 일선 교도소에서 교화업무를 전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재범률에 대한 검증 역시 꼭 수행되어야 한다. 국민들에게 과연 교정교화의 목표가 달성되고 있는지 실증적으로 검증하여 보고하는 일은 기본이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의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명 없는 집행, 집행만 하고 결과에 대한 검증 없는 정책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라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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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생 때 최고의 인기 영화 장르는 ‘홍콩누아르’였다.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팬시 제품은 아이돌 ‘굿즈’의 원조였을 것이다. 내가 처음 접한 홍콩은 영화를 통해서다. 외양은 나와 같은 동양인이지만 영어식 이름도 많고, 영어에도 익숙한 사람들, ‘빅토리아 공원’ ‘프린세스 마거릿 병원’ 같은 지명도 영국풍인 곳. 영국의 지배를 99년간 받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되어 일국양제(一國兩制)를 표방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 뿐이다.

그러다 홍콩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2005년 12월 홍콩에서 6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렸다.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5차 WTO 각료회의에서 ‘WTO가 농민을 죽인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이경해 농민이 목숨을 끊었고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렇게 칸쿤 회의가 무산된 뒤 홍콩에서 2년 만에 재개된 WTO 회의였다. WTO 체제로 상징되는 ‘세계화’의 가장 큰 희생 부문은 농업 부문이다. 그래서 반세계화 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들도 농민이다. 2005년 12월 900여명의 한국 농민들이 홍콩으로 향했다. 당시 홍콩의 주요 언론에서는 과격한 한국 농민과 노동자들이 온다고 보도했고, 홍콩 정부의 경계도 매우 삼엄했다. 한국의 유수 언론은 나라 망신시키러 간 ‘폭도’ 정도로 보도했다. 그런데 막상 홍콩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미담’에 가까웠다. 폭력시위가 아니라 평화시위의 상징이 된 ‘삼보일배’를 올리고, 섬에 마련된 각료회의장까지 가기 위해 구명조끼를 입고 수백 명의 농민들이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한국 언론은 마치 ‘한류 열풍’의 일환처럼 소개하기도 했다.

냉랭하거나 부정적이었던 홍콩 시민들도 사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상업과 금융으로 특화된 세계 도시인 홍콩에서 나고 자란 시민들이 ‘농민’의 입장에서 세계화의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홍콩의 시민들은 ‘한국 농민 힘내라’는 피켓을 들어주었고 택시의 경적을 울려 응원을 보냈다. 빵과 음료수를 넘치도록 가져다주고, 숙소 앞에 바나나를 몇 박스씩 쌓아 놓기도 했다. 심지어 식당에서 투쟁단의 밥값을 대신 치러주기도 했다. 시위대가 홍콩 경찰들에게 한꺼번에 연행되자 항의를 해준 이들도 홍콩 시민이었다. 그렇게 WTO 각료회의를 무산시키고 투쟁단은 풀려났지만 마지막까지 11명의 농민과 노동자들이 풀려나지 못한 채 홍콩에 구금되었다. 이때 투쟁단의 신원을 보증하겠다고 나선 이는 가톨릭 홍콩교구의 조지프 쩐 추기경이었고, 홍콩 시민들의 많은 도움으로 11명은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기자회견에서도 홍콩의 시민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여전히 농민들은 그때의 뜨거웠던 ‘홍콩의 밤거리’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하지만 홍콩은 지금 큰 혼란에 빠져 있다.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로 촉발된 홍콩 시민들의 시위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홍콩의 보통선거 실시와 경찰 폭력에 대한 독립 조사기구 구성과 사죄, 송환법의 완전한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급기야 시위 과정에서 18세의 고등학생이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았다. 홍콩의 역사와 싸움의 맥락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총구를 시민에게 겨눴다는 것만큼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2005년 홍콩에서 한국 농민들을 응원하고 빵과 음료수를 건넨 홍콩 시민들이 지금 그 거리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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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가을 태풍이 잦아지고 있다. 링링과 타파, 미탁에 이르기까지 9월 이후 태풍 영향을 세 번이나 받은 건 1959년 이래 올해가 처음이라고 한다. 이 기록은 머지않아 깨질 것이다. 기후위기가 원인이기에 갈수록 심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넘기 위한 기후행동이 절실한 때이다.

지난 9월23일, 미국 뉴욕에서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가 열렸다. ‘행동’이란 말을 내건 최초의 기후변화 관련 유엔정상회의였다. 이 행사에서, 지난해 8월부터 스웨덴 의사당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라는 1인 시위를 벌여 전 세계 133개국 160만여 명이 동참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캠페인을 이끌어낸 16세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인 세계 정상들에게 쓴소리를 쏟아냈다.

기후행동정상회의 직전, 20~21일에 걸쳐 160여개국 수천개 도시와 마을에서 약 400만명이 ‘글로벌 기후 파업(global climate strike)’에 참가하여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촉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9월21일에 서울과 부산, 대구, 창원, 청주, 홍성 등 전국 10여개 지역에서 동시 다발로 열린 ‘기후파업(Climate Strike)’에서 수천명의 시민들이 “지금이 아니면 내일은 없다!” “기후위기, 지금 말하고 당장 행동하라!”고 외치며 정부의 기후위기 비상상황 선포를 요구했다. 27일에는 ‘청소년기후행동’이 광화문에서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가졌다. 이제 시민들이, 특히 미래세대 대표인 청소년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적극 요구하고 나섰다.

시민 참여는 이런 집회나 캠페인에 한정되지 않고 있다. 시민 목소리로 직접 대안을 제안하는 여러 자리가 마련되고 시민들이 적극 참여해서 정부 대책을 뛰어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온실가스 감축, 시민이 답하다!’란 주제로 시민대토론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서울시가 시민과 함께 온실가스 감축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주요 거버넌스 기구인 녹색서울시민위원회, 에너지정책위원회와 공동으로 주최한 상향식 숙의 행사였다. 8월13일부터 9월10일까지 거의 한 달에 걸쳐 10개 구를 돌아가며 10차례의 릴레이 워크숍을 연 후 열린 마지막 전체 토론회였다. 참여 시민들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공감하면서 강력한 시민행동을 지지하였다. 보다 실효성 있는 에너지 절약과 효율적 이용을 위해 자동차 유류세와 전기 요금 인상, 화석연료에 탄소세 부과, 가짜뉴스 퇴치와 시민의식 제고 등을 제안하였다. 시민 개개인의 자발적 실천에만 기대는 건 한계가 있다며, 에너지 가격과 요금체계가 바뀌어야 하며 이를 위해 적절한 세금 부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다수였다.

9월30일엔 국가기후환경회의가 국민정책참여단의 학습과 숙의, 여론조사, 국민대토론회와 권역별 토론회 등 “국민 스스로 정책을 수립하는 상향식 정책결정 방식”을 거쳐서 마련한 국민정책 제안을 발표했다. 12월부터 다음해 3월 사이 시즌제 도입을 제안하면서 겨울철(12월~다음해 2월)에는 9~14기, 봄철(3월)에는 22~27기의 석탄발전소 가동 중단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방안을 제안하였다. 국민정책참여단의 93%가 동의했다고 한다. 매달 전기요금을 2000원까지 인상하는 데는 75%가 동의하였다. 두 방안 모두 미세먼지만이 아니라 기후변화 완화 방안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기후위기 비상사태에 직면해 있다. 그 누구도 비켜가기 어려운, 모두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바뀌어야 할 것은 기후가 아니라 사회와 경제와 정치다. 아니,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이다. 지금 작은 비용을 지불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더 큰 위험과 피해로부터 우리와 미래세대를 구할 수 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없다. 깨어 있는 기후시민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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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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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돈을 많이 쓰는 팀’이 이기는 종목이다. 뉴욕 양키스가 ‘악의 제국’으로 불렸던 것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스타 선수들을 끌어모아 우승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우승을 통해 인기를 높였고, 더 많은 돈을 벌어 또 뛰어난 선수를 사들였다.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난다 긴다 하는 선수들을 긁어 모았다. 상대팀에 가면 잘할까봐, 데려다 놓고 쓰지 않은 선수가 여럿이었다.

야구가 ‘이기는 방법’을 새로 찾은 것은 약 20년 전의 일이다. 가난했던 오클랜드가 2001년 21연승을 달리면서 주목을 받았다. 우연히 이긴 게 아니라는 게 책과 영화로 만들어진 ‘머니볼’로 잘 알려지게 됐다. 홈런을 펑펑 때리던 시대, 오클랜드는 남들이 주목하지 않던 ‘출루율’에 주목했고, 덕분에 승리에 필요한 선수를 비교적 싼 가격에 모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이기는 방법’을 찾기 위한 전쟁이 시작됐다. 야구를 잘했던 이들의 경험과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 야구라는 종목을 잘게 잘라 분석하는 여러 가지 기법이 동원됐다. 만년 꼴찌였던 탬파베이는 창단 10년째인 2008년 ‘수비 시프트’를 바탕으로 뉴욕 양키스를 꺾고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타구 방향을 감으로 추측하는 대신, 실제 데이터로 추적해 수비 위치를 옮겨 실점을 줄였다.

야구는 더욱 치밀해졌다. 2015년부터 메이저리그 야구장에 ‘스탯캐스트’라는 정밀 측정 장비가 설치됐다. 투구 회전 수와 무브먼트, 타구의 각도와 발사속도 등이 플레이마다 측정되고 계산돼 숫자로 쌓였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수많은 이론과 실험이 반복됐다. 그리고 몇 가지 길을 찾았다.

승리 공식은 이제 뻔하다. 회전 수가 많은 강속구를 던지고, 이를 때려 넘기는 길이 승리 지름길이다. 빨라지는 구속에 연속 안타 가능성은 낮아졌다. 효율적인 훈련법으로 힘을 키우고, 더 효율적인 스윙으로 스피드를 높여서 홈런을 노리는 것이 승리 확률을 높인다. 그래서 메이저리그는 대부분이 ‘홈런’을 노리는 스윙을 한다.

2019시즌 메이저리그는 한 시즌 홈런 6776개로 역대 최다였던 2년 전 6105개를 11%나 뛰어넘었다. 미네소타는 팀 홈런 307개로 신기록을 세웠다. 뉴욕 양키스가 306개, LA 다저스는 279개를 때렸다. 모두가 홈런을 노리는 스윙을 하니 삼진도 늘었다. 12년 연속 늘어나고 있는 삼진 4만2823개는 지난해보다 4%, 2007년보다 무려 33%나 증가했다.

홈런이 늘고, 삼진이 늘다 보니 모 아니면 도의 야구가 이어졌다. 야구는 지루해졌다. 승리의 길을 찾았는데, 관중 수가 줄어든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2019시즌 메이저리그 관중 숫자는 6850만여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7000만명 관중 수가 무너진 것은 2003년 이후 처음이다. 늘어난 중계권료 수입 등으로 여전히 돈이 넘쳐나지만 ‘지루해진 야구’는 미래에 대한 적신호다.

여기저기서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야구 칼럼니스트 롭 나이어는 책 &lt;파워볼&gt;에서 “야구통계전문가들이 승리를 향하는 최적의 길을 찾아냈는지는 몰라도 팬들이 보기에 즐겁고 신나는 야구는 아니다”라면서 “지난 수십년 동안 야구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종목이 증명했다. 팬들이 원하는 걸 주지 못하면, 그 종목은 결국 망한다”라고 적었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가 ‘이기는 것’에만 골몰하고 있다. ‘밀리면 끝이다’라는 공포는 ‘승자독식사회’가 가져다준 저주에 가깝다. 정치는 갈등을 해결하는 게 목적이지만 승리를 위한 정치공학적 계산과 수사만 난무하고 있다. 

잔뜩 쌓인 문제들이 풀리지 않는다. 이기는 방법만 따지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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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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