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에 발간한 어느 책에 “나는 한때 넓이나 깊이보다 높이를 추구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물론 말미에는 반성이 뒤따랐고 앞으로는 높이를 추구하기보다 오히려 깊이와 넓이를 추구하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도 밝혔었다.     

사실 높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나의 한계를 인정했다는 것과도 같다. 높이를 포기하자 마음은 편해졌고, 지금까지 스스로에게 다짐한 대로 흐트러지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다.

얼마 전, 공부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침부터 수선스레 문자음이 울렸다. 내용을 보니 나는 자주 겪어서 내성이 생긴 일이지만 지인은 처음 당한 것 같았다. 문자를 보낸 이는 전공도 그렇지만 중국 통이다. 여러 매체에 연재를 했고 중국에 관한 책을 제법 많이 출간한 축에 속하는 인재다. 그렇지만 늘 대학에서의 강의와 집필 그리고 연구소 프로젝트 수행의 경계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평범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와 통화를 하는데 놀라웠다. 나 정도의 내성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인은 2017년 주간경향에 1년 동안 중국의 고대 도읍지에 대해 연재를 했고, 지난해 봄에 그것을 다시 매만져 한권의 책으로 출판을 했었다. 재기발랄하며 과거와 현대를 초스피드로 넘나드는 그의 글은 고리타분할 수 있는 중국 역사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들기 일쑤다. 그것은 그가 중국에 관한 한 대단한 넓이와 깊이의 공부가 축적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넓이와 깊이를 고스란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는 사람이 있었다. 이건 뭐 표절 정도가 아니라 곧이곧대로 옮겨 놓은 것과 같았다. 개인 블로그에도 차마 그런 짓을 하기 어려울 텐데 그 사람은 버젓이 지방의 인터넷 매체에 자기 것인 양 글을 썼다. 그것도 한 차례로 그친 것이 아니라 연재를 했으니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결국 사실이 드러나 보름 전쯤 매체의 편집장과 그 사람의 사과문이 실리고 베끼기 연재가 중단됐지만 너무도 어이없는 일이다. 요즈음 같은 세상에 그런 일을 생각했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그것이 터무니없이 실행에 옮겨졌고 더구나 매체의 여과나 검증 없이 실렸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자유여행가를 자처하는 그 사람은 적당한 글을 물색해서 마치 그 글이 자신의 것인 양 위장한 채 글 뒤에 숨었을 것이다. 다행히 곧 들통이 나서 책을 냈던 지인이나 책과 신문을 보던 독자들에게 다행이긴 하지만 이런 일은 수두룩하다.

IMF 외환위기가 막 지났을 때였다. 당시 출판사를 하는 후배와 함께 ‘디새집’이라는 계간지를 창간했었다. 나는 콘텐츠만 가진 채였으며, 창간을 위한 모든 준비는 후배가 했다. 사람을 모아 창간 준비를 한 기간까지 3년 남짓, 나는 나의 모든 정열과 불같은 열정을 오로지 ‘디새집’에 바쳤다. 창간하자마자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다. 나는 발행인과의 불화 끝에 2002년 봄 출판사를 떠나고 말았다.

그 후, 뜻밖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내가 부산에서 캘린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혀 그런 일이 없었는데 말이다. 알고 보니 내로라하는 부산의 서점에서 멋대로 사진을 구해 책갈피와 함께 만든 것이었다. 그 무렵 내가 사진으로 엽서를 만들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알고 보니 후배가 책을 낸다고 하여 사진을 준 적이 있는데 출판사에서 나와 상의 없이 책의 홍보용 엽서를 제작하여 뿌린 것이었다. 또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은 내가 모 잡지에 연재한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타이핑해서 자기가 쓴 글이라며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었다. 당시 그 잡지는 홈페이지에 원문서비스가 없어서 인터넷에서는 볼 수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는 타이핑하는 수고를 감수하며 내가 연재했던 집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 전체를 그런 식으로 올렸었다.

또 제주도에 대하여 120페이지 남짓한 책을 쓴 적이 있는데 모 결혼정보업체에서 책 전체를 스캔해서 올린 일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어이없는 내용을 본 적도 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인터넷에 내가 촬영한 사진과 자신의 글을 짜깁기하여 편집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다시 얼토당토않은 경험을 했다. 병치레 후 사람 만나는 일을 극히 꺼리는 나를 구태여 찾아온 지인이 있었다. 그러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며 불쑥 책을 내밀었다. 비매품이었다. 처음에는 흥미진진했고 반가웠다. 이미 고인이 된 30년 지기인 선배를 추모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책의 내용 전부가 내가 선배를 매체에 소개하여 쓴 글이거나 앞에 말한 ‘디새집’이라는 계간지에 실렸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 미술평론가가 쓴 글 중에 그 선배가 나와 함께 ‘디새집’을 발행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앞에서 밝혔듯 나는 편집인이었을 뿐 ‘디새집’의 발행인은 출판사 사장이었다. 그리고 선배는 필자였다. 서로의 역할과 사실이 명확한데 왜 그런 허튼 글을 썼을까. ‘디새집’을 한 번이라도 들춰 봤으면 단박에 알 수 있는 사실인데 말이다. 더구나 그 부분이 선배의 업적으로 발췌되어 일간지에 실리기까지 했는데 그들은 바로잡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기자에게 연락해 삭제하였으니 이것은 또 무슨 경우인가. 그 책의 발행인은 선배와 함께 내가 30년 가까이 알아 온 사람이다. 과연 그도 몰랐을까.

어쨌든 높이를 탐하는 사람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말이다. 명예는 정당하게 얻어야 하지 않겠나. 

나는 지금도 가을호 마감에 쫓기며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을 버무려 또 다른 계간지를 만들고 있다. 내 깜냥은 그때나 지금이나 작가이자 편집장일 뿐이다. 그것이 나의 한계이지만 모자라는 것 없이 충분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이처럼 남의 생각과 수고를 교묘하게 훔쳐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가증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허탈하다. 

자신의 생각과 깜냥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이지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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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가을 광화문광장에 촛불이 켜졌다. 그 촛불은 점점 커져 청와대 내실의 깊은 곳에서 홀로 지내던 박근혜 대통령을 대통령직에서 파면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이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광장의 시위는 횟수를 더해가면서 불어났고, ‘역전의 용사’들이 시위 군중 속에 합류했다. 2016년 2회 촛불에서 광장에 선 나는 어떤 익숙한 감정이 밀려와 몸을 떨었다. 두려움이었다. 

1980년대 내내 언제나 가까이 있던 두려움. 시위의 현장에서도, 독서토론을 하는 장소에서도, 단순히 선배를 만나는 찻집에서도 따라붙었던 두려움이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그러나 이미 세상은 달라져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광장에서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을 외치는데 곤봉이나 최루탄, 소방물줄기, 체포와 구타를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두려움은 폭력과 함께 광장 뒤 깊은 골목길로 물러났다. 

2019년 가을, 주말이나 휴일이면 광장에서 국민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리가 갈라져 있으나, 어느 쪽이든 시민들은 두려움 때문에 광장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할 말을 못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40년 전인 1979년에는 그렇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아직 민주공화국이 아니었고, 국가의 폭력은 학교와 거리, 일상에 깊이 파고들어 있었다. 유신헌법하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친위세력인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간접 선출되었고, 대통령과 함께 대의기구를 구성하는 국회의원의 3분의 1 역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간접 선출되었다. 국민의 대의기관 직접 선출권을 박탈해버린 유신헌법에 대한 개정 논의조차 긴급조치 1호를 통해 금지했다.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국민의 자유는 억압되었고, 노동자의 권리는 인정되지 않았다. 야당은 들러리 역할 외에는 허용되지 않았다. 1979년 8월11일 YH 여공 김경숙은 신민당사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죽었고, 10월4일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국회의원에서 제명당했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16일부터 20일 사이에 부산과 마산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난 민주화운동 시위를 가리킨다. 부마민주항쟁은 마치 잠들어 있던 용암이 분출하듯 대학생 시위에서 출발하여 일반시민들에게로 순식간에 확산되어 박정희 유신체제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부마민주항쟁을 계기로 유신권력 내부의 갈등이 폭발하였고,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1979년 10월26일 대통령 박정희를 저격, 살해하였다. 전두환은 박정희의 군부정권을 계승하였으나,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과 1980년 5월 광주민주항쟁을 겪은 대한민국 국민은 전과 같지 않았고 결국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공화국 헌법을 되찾았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지역 연행자는 군사재판 43명, 민간재판 18명, 즉결심판 526명, 훈방 471명 등 1058명이다. 마산지역은 군사재판 46명, 민간재판 13명, 즉결심판 125명, 훈방 321명 등 총 505명이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연행자들은, 훈방된 사람들을 포함해 하나같이 경찰과 군인들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증언한다. 한마디로 “죽도록 맞았다”는 것이다. 무지막지한 폭력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항쟁’에 나설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어떤 강한 분노, 어떤 강한 정의감이 아니면 두려움을 뚫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딛고 오늘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서 있다. 무지막지한 폭력에 맞선 그분들의 용기에 대한민국 부마민주항쟁위원회가 조금이라도 보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최건섭 |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위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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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부터 지방자치단체장의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가 시행된다. 체육계의 자생력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동안 한국의 체육은, 국가의 막대한 지원과 일정한 통제 아래 발전해왔고, 특히 각 지자체의 산하에 편재되어 어렵사리 버텨왔다. 이제 겸직 금지로 인하여 그 ‘지원’과 ‘육성’이 축소되거나 최소한 다른 형태로 급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의 핵심은 체육계의 자생력 강화이고 이를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스포츠기본법’의 제정이다. 그동안 한국의 체육정책은 ‘국민체육진흥법’에 근거하여 왔다. 1962년 제정된 ‘체육진흥법’에 뿌리를 두고 있는 ‘국민체육진흥법’은 1982년에, 88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전면 개정을 하였고 그 이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다. 일부 부분적인 개정이 있었고 이 법을 모법으로 하여 새로운 경향이나 산업을 반영하는 하위 법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나, 한 세대 전에 제정된 이 법의 목적과 정의는 그 이후 급변한 국내외 스포츠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법 1조의 ‘목적’에 표현되고 있는 단어들, 예컨대 ‘체력 증진, 건전한 정신, 명랑한 생활, 국위선양’ 등은 개발도상국에서 중진국으로 도약하던 무렵에 통용되던 발전주의 국가론의 이념을 반영하고 있는 바, 21세기 대한민국의 사회적, 문화적, 정서적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이 법의 2조에 명시된 ‘체육, 전문체육, 생활체육, 선수’ 등의 개념 정의 또한 오늘날 현대 스포츠의 다양성과 시민 저마다의 문화적 욕망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요컨대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양상의 스포츠 경향들, 그와 관련된 선수와 팬과 미디어와 시설과 예산 등은 이 법의 바깥에서 배회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37년 전의 법 목적과 정의에 따른 제3조, 즉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진흥 육성 정책도 구조적인 문제를 장기화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예산을 틀어쥐고 있고 대한체육회와 각 산하 단체와 협회와 지도자들은 그 사슬의 각 위계 단위에 놓여 있어 자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이로써 권력과 체육의 복잡한 밀월관계가 형성되고, 하루아침에도 적과 동지가 뒤바뀌는 위계질서의 맨 아래에서는 폭력과 비리가 안개처럼 번져 있게 된 것이다. 당장 석 달 후부터 시행되는 겸직 금지 조치가 그나마 이 오랜 사슬을 끊을 수 있는 뜻밖의 단초가 되고 있어, 이에 ‘스포츠기본법’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기본법’ 제정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최근 몇 해 사이에는 구체적인 법령의 초안까지 제시되었다.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대한체육회에서도 지난 9월 발표한 자체 혁신안에 기본법 제정을 중요하게 담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 문광위의 일부 의원들도 이에 대한 의견과 방향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체육계의 현안들이 대개 ‘갈등적’이고 ‘대립적’으로 보이기 마련인데 당장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미래가 걸린 ‘스포츠기본법’은 얼핏 보기에 ‘대동소이’한 관점을 가진 듯 보인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연구기관의 보고서나 일부 국회의원들이 마련한 초안을 보면 ‘스포츠기본법’이라는 새 용어를 썼으되 여전히 ‘국민’의 ‘체육’을 ‘진흥’하는 것에 집중된, 지극히 체육 내적인 시각에 머물러 있다. 사회 전반의 역동적인 변화와 국제적인 스포츠 문화 환경의 급변, 이에 따른 젊은 세대의 문화적 욕망과 바로 그 세대 문화에서 성장한 젊은 선수들의 내면을 반영하지 못하였다. 아니, 이에 대한 인식 자체가 전혀 없는 제안도 더러 있다. 그저 활기찬 신체 활동을 위해 ‘체육인’이 기능적으로 탑재되는 진흥책에 머물고 있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20세기 중엽의 체육 개념에 근거한 인간 신체에 대한 일방적 기준, 그에 따른 체육의 기능적 효과와 수단, 이를 증진하기 위한 물리적 진흥 제안이 여전하다. 물리적 진흥, 이 길로 계속 가면 또다시 정부 지원에 종속되어 한 줌의 자생력도 남지 않게 된다. 

‘스포츠기본법’에서 ‘기본’은 체육정책을 ‘진흥’하기 위한 기본이 아니라, 인간이 누려야 할 사회적, 문화적 권리라는 가치 측면에서 ‘기본’이다. 이 개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 ‘기본’에 따르면 스포츠를 통한 인간의 존엄성 증진, 각종 차별 금지와 혐오 배제, 모든 생명의 존중과 그에 기반한 모든 사람의 여러 신체적 조건에 대한 가치와 배려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특정하게 이념화된 ‘국민’이 아니라 보편 인권 차원의 ‘모든 사람’이 이 법에 해당되며 바로 그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환경과 조건에서 차별 없이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로써 개인의 행복과 사회 관계의 형성이 이뤄지고 나아가 지역사회 및 공동체의 민주적 발전에 스포츠가 기여하는 것이 ‘스포츠기본법’의 입법 취지여야 한다. 

자칫 ‘좋은 말 대잔치’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실은 이를 ‘기본’을 삼아야 거시적으로는 국제적인 스포츠 다양성에 적극 부응할 수 있고 일상적으로는 지역 공동체 활성화에 대한 체육인의 역할이 인정되는 것이다. 

스포츠를 인간의 기본권이 실현되는 장이며 다양한 사회적 요구와 문화적 욕망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장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럴 때 스포츠 기본권은 헌법상의 행복추구권, 평등권, 교육권, 건강권, 노동권 등과 동등한 수준에서 결합되어 심도 깊은 내면과 포괄적인 외연을 갖게 된다. 이 모든 권리와 스포츠권이 결합되어야 이른바 ‘체육인’들의 사회적 위상, 생활 안정, 일자리 창출 등도 연결된다. 

조만간 체육계와 국회 등에서 ‘스포츠기본권’이 활발히 논의될 것인 바, 일부 표현만 조금 바꾼 ‘체육진흥책’이 아니라, 체육인 전체의 미래를 걸고 과감히 사회 속으로 진입해 들어가 ‘모든 사람’들과 역동적으로 성장해가는 ‘스포츠기본법’을 제정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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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장애인 친구를 만난 적이 없다. 중학교 때 반장의 오빠가 지적장애가 있다는 소문만 들었을 정도다. 친구 아버지는 아들의 존재가 집안의 수치여서 학교에 안 보내고 집에서만 지내게 했다. 어느 날 집에만 갇혀 있던 오빠가 발가벗은 채 온 동네를 뛰어다니는 사건이 생겼다. 그날 이후 반장은 급격히 말수가 줄었고 그 일이 없던 것처럼 반장을 대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브린 브라운은 수치심이란 단절에 대한 공포라고 말한다. 나의 약점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나와 관계를 끊을지 몰라 두렵다. 수치심은 취약성에서 비롯되기에 우리는 완벽해지려 애쓰고 부모는 아이의 불완전함을 고치려 하고 숨긴다. 그런데 취약성에는 놀라운 힘이 있어서 이것을 인정하게 되면 진정한 기쁨과 사랑, 창의성, 소속감의 원천이 된다. 반장의 아버지가 “이대로 충분해, 너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어” 하는 용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한 사회의 성숙도는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가늠할 수 있는데 우리 사회는 분리, 단절시키고 격리, 축소하는 방식으로 해결해 왔다. 초등 시절부터 아이들은 교과서 지식보다 사회와 삶 속에서 더 강렬한 배움을 얻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인 부모나 교사와 같은 어른들이 우리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예민하게 감지하며 자신은 앞으로 어떤 태도를 갖고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결정한다. 내 어릴 적 어른들은 외면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 대답해야 할 상황을 맞이했다. 학급에서 민수(가명)를 만난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좋아하고 만 단위 이상 큰 수를 잘 아는 민수는 시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귀여운 아이다. 박자 감각이 좋고 잘 웃는 민수를 사람들은 그저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고 부른다. 의사소통과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려워 수업 활동에 잘 참여하지 않고 수시로 “지금 몇 시야?”라고 묻지만 친구들은 그런 민수를 자상하게 돌봐주고 챙겨주었다. 통합학급에서 아이들은 모든 것을 해주지 않되 필요할 때 도울 수 있는 알맞은 거리를 체득하는 지혜를 배운다. 개별화 수업 갈 때 민수가 훌쩍이며 안 가려고 하자 친구들이 달래서 복도 끝에서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에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언젠가 책을 읽어주는데 듣고 있지 않는 것 같던 민수가 아파트 10층을 걸어 올라갔다는 부분에서 “(계단 올라가면) 힘들어”라고 툭 던졌을 땐 다 같이 웃었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민수로 인해 우리 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자주 느낄 수 있었다. 학예회, 운동회, 체험학습, 급식시간 등 ‘민수 입장에서 어떨까?’ 하는 배려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민수를 보듬는 따스함이 교실을 훈훈하게 덥히면 우리들 사이에는 조용한 자부심이 차올랐다.

민수의 담임이 되면서 학교의 의미를 새삼 고민하던 중에 도종환 시인의 ‘나뭇잎 같은 사람 많다’가 생각났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눈에 뜨이는 화려함이나 돋보이는 빛깔 같은 것을 지니지 못한 나뭇잎’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평범한 이파리들이 가장 오랫동안 나무를 떠나지 않고 나무와 함께 있으면서 기쁨과 고난과 시련을 같이’하듯이 민수와 친구들은 함께하고 있다. 

그런 나뭇잎 같은 나날들이 모여 우리 모두의 삶에 든든한 숲을 드리울 것이라 믿는다.

<위지영 서울 신남성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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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두 달간의 시범 운영을 거친 후 최근 본격적으로 주52시간 근무제를 시작했다. 그간 ‘근무 시간을 제한해 근로자의 삶의 질을 보장한다’는 기대와 ‘기업 경쟁력이 하락한다’는 우려가 함께 있었다. 실제 창의적인 일을 하고 근무 패턴이 불규칙하며 노동량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방송사에 다니는 만큼 이번 개편이 어떤 영향을 줄지 스스로도 궁금했다. 회사는 근무 성격에 맞게 여러 제도를 마련했는데 나는 그중 선택근무제의 적용을 받고 있다(4주간 160시간 이상 근무하되 20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나는 매일 근무 시작과 종료, 휴게 시간 등을 등록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근무가 매우 효율화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엔 매일 8시간을 반드시 일해야 했다. 그런데 업무량의 기복이 큰 만큼 하루에 2시간 정도 일하면 나머지는 할 일이 없을 때도 생긴다. 그러면 전후로 이러저런 일들을 만들었다. 동료와 긴 티타임을 갖기도 하고 ‘미드’를 몰아보기도 한다. 업무 협의, 콘텐츠 동향 연구라는 이름이 붙으면 일 같기도 하고 그냥 잡담, 취미라는 이름이 붙으면 일이 아닌 것도 같다. 지금은 시간에 맞춰 출근하고 일이 끝나면 퇴근한다. 스스로 휴게 시간에 대해서도 조금 더 엄격해졌다. 일정을 띄엄띄엄 짜서 휴게 시간이 느는 것보다는 일을 몰아놓는 게 마음 편하다.

한편 어디에 있었건 일했으면 근로로 인정받는 것도 좋은 변화다. 집에서 잔뜩 일한 게 노동으로 인정 못 받아 억울한 일도 사라졌다. 통화내역, 문자 연락 등 근거가 명확하면 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회사 그리고 제자리에 있어야 일’이라는 통념에는 관리의 용이성이라는 명분 아래 불합리성이 숨겨져 있었다. 눈치 보지 않고 진짜 일에만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건 좋은 일이다. 나아가 회사는 아침에 가서 저녁에 돌아오는 곳이라는 생각도 점점 줄어들 거다. 지금의 싸움은 비효율을 감수하면서 ‘어때야 한다’는 것에 맞춰 살던 틀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과정이다.

일이 몰리면 정신없이 지낸다. 한편으로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의 근로 환경도 챙길 의무가 있다. 확실히 젊은 친구들일수록 워라밸을 중시하는 것 같다. 그들과 좋은 팀워크를 이루기 위해 중요한 조건은 술도 밥도 어설픈 멘토링도 아닌 빠른 퇴근과 적절한 휴식이다. 아무 생각 없이 회의에 들어와 함께 고민하자고 하면 민망해진다. 충분히 생각해서 회의 안건을 미리 정하고 결정은 신속해야 한다.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라는데 이제는 장고 자체가 악수가 되어버렸다. 노동 투입량이 많은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는 동료들은 시간 관리 자체가 큰 미션이다. 너무 긴 시간을 일해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은 돈이 많이 드는 프로그램처럼 경쟁력을 잃어갈 거다.

회사 입장에서도 직원들이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좋은 일이다. 불필요한 수당 지출을 줄일 수 있고 각종 경비도 아낄 수 있다. 물론 필요한 인력을 더 뽑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 거다. 시간과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한다는 로망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젊은 구직자들에게도 악명 높은 방송사의 근무 환경 개선은 매력으로 다가올 거다.

사생활 측면에서 보면 전에는 나인 투 식스가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박스 존이었다. 개인적인 일과와 근무 시간을 적절하게 조절해서 새로운 시간을 확보한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PD들은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었지만 8시간을 매일 채워야 했기 때문에 조정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제는 조금 더 대담하고 획기적인 계획이 가능해졌다. 항상 고갈돼서 뭔가 채우고 싶은 절박함이 있는데 굳이 휴직을 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재충전할 수 있게 된 건 다행이다. 그건 회사 일에도 도움이 되는 선순환이다.

PD는 일의 성격상 직장인과 개인사업자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이제는 개인사업자에 조금 더 방점이 찍히는 것 같다. 노동의 종말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 불안한 시대를 조금 빨리 경험하고 적응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회사들이 이 국면을 통해 더 건강해지리라 기대한다. 노동자를 쥐어짜는 곳은 도태되고 좋은 환경을 만드는 회사는 늘어날 거다. 다양한 직업 중 하나를 겪은 것에 불과하지만 나는 지금의 변화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에 확실히 섰다.

<김신완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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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 사필귀정에, 요즘 속담으로 ‘제 팔자 제가 꼰다’에 해당하는 유명한 속담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입니다. 이 속담은 누구나 알 듯, 제 할 바대로 걸맞은 결과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콩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 할 만큼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이 가득 들었고 콩기름도 짤 수 있으며 장 담그기도 좋습니다. 팥은 단백질이 콩의 절반밖에 안 들었습니다(대신 탄수화물이 많습니다). 팥으로 담근 장, 팥장이 있지만 콩이 반나절(6시간)만 불리면 될 걸 팥은 딱딱해 하루를 불려야 합니다. 게다가 팥장은 밀가루를 섞어야 끈기가 생기고 발효가 잘됩니다. 콩은 좋은 것, 팥은 좀 떨어진 것, 그렇게 <콩쥐팥쥐> 이름이 붙었겠지요. 그런데 왜 오랜 세월 굳이 콩과 팥이었을까요? 오이와 가지도 있는데. 단순히 좋다와 나쁘다의 선호 대비 때문이었을까요?

중국어에서는 나중에 들어온 것이나 효용이 떨어지는 쪽에 둘째간다는 뜻으로 ‘소(小)’자를 붙였습니다. 그래서 보리는 맥(麥)이고 밀은 소맥(小麥)입니다. 마찬가지로 콩은 두(豆), 팥은 소두(小豆)입니다. 콩과 팥은 모두 장미목 콩과의 식물입니다. 같은 과라서 비슷한 기온과 토양에서 자랍니다. 다시 말해서 콩과 팥의 생육조건은 거의 똑같습니다. 둘 다 pH6.5~7 내외의 물 빠짐 좋은 식양토에, 충분한 수분, 20~25도 근처의 온도에서 잘 자랍니다. 친척 작물이니 당연하지요. 가끔 콩밭에서 팥이 자라기도 하는 것 역시 콩 심다 팥알이 섞여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콩밭이 팥밭 되고, 팥밭이 콩밭 되는 건 밭이 달라서가 아닙니다. 심기는 ‘마음 밭’이 다 같지요. 뭐가 심겼는지 싹까지는 몰라도, 자라는 싸가지를 보면 콩쥐 행세한 팥쥐인 줄 알아채고 무리에서 솎아냅니다. 소와 두꺼비, 주변인 모두가 돕는다면 당신은 콩 심어 자란 콩쥐가 맞습니다. 심보와 인정은 뿌린 대로 거둡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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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안랩’의 주가도 출렁거렸다. ‘안철수의 예언’으로 이름붙여진 대선 유세 동영상이 새삼 화제를 모았다. 안철수 전 의원은 독일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 신간을 내며 소식을 알렸다. 서초동과 광화문의 광장 대결이 절정이던 시점(10월4일)에 나온 한국갤럽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낙연 총리,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 이어 안철수가 깜짝 3위를 차지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안철수가 현실 정치를 주름잡는 대선주자들을 제친, ‘안랩’의 주가마저 출렁이게 할 정도로 뜻밖의 결과다. 제3세력의 상징성과 문재인 대통령 경쟁자였다는 이미지가 겹치면서 반사효과를 거둔 거겠지만, ‘정치 유배’ 중인 안철수가 이리 등장하는 것 자체가 정상은 아니다. 조국 법무장관의 사퇴로 어렵게 출구가 열렸지만, 두 달여 지속된 ‘조국 사태’가 여론 지형을 뒤집어 놓은 결과다.

조국 사태는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동시에 ‘다 싫다’는 무당층을 늘렸다. 서초동에서 이탈한 중도층도 광화문은 외면하고 무당파로 돌아섰다. ‘조국 싸움’에서 울타리 밖의 존재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광화문은 물론 서초동 촛불에도 노동자와 농민, 청년, 사회적 약자들이 설 자리는 비좁았다. 기존 정치시스템이 불평등 격차와 사회 갈등 의제를 제대로 해결 못하고 되레 갈등을 증폭시키자, 가운데 사람들은 “그놈이 그놈들”이라며 기성 정당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경향신문과 한국리서치 창간 여론조사(10월3일)에서 ‘지지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이 24.8%에 달했다. 매주 정기조사를 실시하는 한국갤럽 조사에서 무당층은 꾸준히 25% 안팎이다. 특히 청년층의 ‘정치 이탈’이 확연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9~29세의 무당층은 절반에 육박한다. 특권의 성채 속에서 이뤄진 ‘그들만의 리그’를 목격한 청년들은 여야, 심지어 정의당에 대한 지지도 철회했다. 청년들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자유한국당과 정의당 지지율도 떨어지는, 기성 정당에 대한 ‘손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16년 촛불과 2017년 대선 참여의 소중한 기억이 훼손되면서, 청년들이 총체적 정치냉소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은 집권세력이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2016년 총선부터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까지 청년들의 적극적 참여가 현 여권의 선거 승리의 미래성을 부여하는 힘이었다.

갤럽 조사에서 안철수는 무당층과 19~29세에서 이낙연 총리와 황교안 대표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새정치’의 브랜드가 남아 있지 않은 ‘국외자’ 안철수를 호명할 만큼 무당층과 청년들의 기존 정치시스템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깊다는 징표다. 

조국 장관 사퇴를 계기로 질서 있는 수습 여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분명한 건 조국 사태의 가장 큰 후과는 정치냉소 확대와 20대의 정치 이탈이다.

무당층 확대, 정치불신 강도, 청년의 이탈 등 2012년 ‘안철수 현상’을 불러일으킨 때와 유사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안철수는 더 이상 새로운 정치의 열망을 담지하기 쉽지 않다. 지난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연거푸 3위를 하면서 안철수의 효용가치는 밑천을 드러냈다. 촛불 국면에서의 모호한 행보, 바른정당과의 통합, 서울시장 선거 당시 김문수 한국당 후보와 단일화 추진 등 우왕좌왕하면서 중도노선의 명분마저 금가고 무엇보다 새정치의 남은 상징성마저 잃어버렸다. 

안철수는 신간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에서 “주변의 기대와 응원에 신경을 쓰다가 나만의 속도를 잃어버리면 오버 페이스를 하게 된다. 돌아보니 어떤 때는 무리한 적도 있다”고 했다. ‘오버 페이스’ 때문으로 변호하기에는 ‘새정치’ 실패의 내상이 너무 깊다. 사실 조국 정국 속에서 호명된 안철수는 실패하기 이전의 제3세력과 새정치를 표징하던 그 ‘안철수’다.

안철수는 유승민 의원이 절박하게 내민 손을 잡지 않고 미국행을 택했다. 안철수 스스로 정치 이유로 삼은 양당 기득권 타파와 극중주의 깃발을 들기에 명분도 세력도 준비도 미약하기 때문일 터이다. ‘오버 페이스’하면 끝장이라는 것을 이번에는 간파한 셈이다. 지나간 물을 되돌려 물레방아를 돌리려면 백배의 공력이 필요하다. ‘중도’에 대한 정치적 에너지가 더욱 커지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제3지대 공간이 제도적으로 확보되고, 그러고도 대안 인물이 부재할 때야 안철수의 마지막 등판 기회가 마련될 터이다. 물론 좌절을 맛본 강고한 기성 정당의 벽을 헤쳐나갈 내공과 시대정신을 갈파하는 새로운 비전을 장착해야 그 기회는 ‘안철수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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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출신의 매제가 처음 고향에 와서 여동생에게 말했다고 한다. 와, 앞산 뒷산 사이에 장대를 걸쳐놓아도 되겠네. 드넓은 호남 벌판을 끼고 살다가 경상도 산간벽지의 좁은 동네를 보고 재치있게 마음의 한 자락을 질러본 셈이겠다. 지평선 축제가 열리는 김제, 정읍, 부안, 고창의 곡창지대를 달리는데 좌우가 다 들판이다. 뜨내기 나그네의 마음마저 부자로 만들어주면서 나락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오늘은 논에 사는 멸종위기종의 식물을 조사하는 데 따라나섰다. 멀리에서 내려다보는 산이 들으면 참 가소로운 일이겠지만 한때 국회의원이라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그런 줄이야 잘 모르겠다만 하나 분명한 건 있다. 국회의원이야 또 뽑으면 되지만 한번 사라진 식물은 설령 온 인류가 다 들고일어난다 해도 돌이킬 수가 없는 법이다.

방아깨비와 그 동무들이 후드득 먼저 반기는 논두렁에 섰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옆에서 논두렁도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한때 이곳은 내 좋은 놀이터였다. 이 좁고 긴 길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졌던가. 논두렁은 작은 밭이기도 했다. 논에 나온 쌀로 밥을 짓는다면 논두렁에서 나온 콩은 반찬으로 흡족했다. 어머니는 모내기 끝난 뒤 그 자투리 밭도 그냥 묵히는 게 허전했던 것이다.

나는 문득 몹시 놀란다. 그저 지나다니기만 했던 논두렁에 이리도 많은 종류의 식물이 살고 있다니! 더구나 하나하나 그 까무러칠 법한 이름이라니! 이 황홀한 학교에서 오늘 얼굴을 맞댄 식물을 호명해 본다. 밭뚝외풀, 금방동사니, 황새냉이, 둥근하늘지기, 여뀌바늘. 그저 입에 넣고 중얼거리기만 해도 입안에 까끌한 문명이 건설되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듯한 자태가 있으니 민구와말이다. ‘습지에 나는 다년생 수초, 물 위의 잎은 5~6장씩 윤생, 털이 없으며, 깃 모양으로 갈라지고, 길이 1~1.5㎝, 너비 3~5㎜, 잎자루는 없음, 꽃은 홍자색, 화관은 통 모양, 끝이 다소 입술 모양’(이영노, <한국식물도감>). 이러니 이들의 응원으로 자란 쌀밥 먹을 때마다 어찌 특별한 소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민구와말,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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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자리에서 물러났다. 장관 지명 66일, 취임한 지 35일 만이다. 조 장관은 “더는 대통령님과 정부에 부담을 드려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제가 자리에서 내려와야 검찰개혁의 성공적 완수가 가능한 시간이 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를 둘러싼 의혹이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을 급락시키고 국정운영의 부담을 가중시키자 더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 사이에 많은 갈등을 야기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사퇴를 놓고 여야 간 평가는 달랐지만, 두 달 넘게 지속된 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법무부 청사 나가는 조국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후 사의를 표명한 후 정부과천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그동안 나라는 둘로 쪼개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극심한 분열과 대립을 겪었다. 가뜩이나 진영 논리가 팽배한 터에 여론은 ‘조국 사퇴’와 ‘조국 수호’로 두 동강이 났다. 정치권은 갈라진 민심을 수습하기는커녕 되레 진영싸움을 부추기며 대의민주주의 위기를 자초했다. 분명한 것은 서울 서초동이나, 광화문 집회 모두 검찰개혁의 대의에 뜻을 같이했다는 점이다. 조 장관에 반대하는 여론도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검찰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조 장관을 사퇴시키고 해야 한다고 했다.

조 장관은 사퇴의 변에서 “저는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하다.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했다. 그는 이날 특수부 축소를 핵심으로 하는 검찰개혁안을 마지막으로 발표했다. 이 개정안은 15일 국무회의에 상정돼 의결될 예정이다. 장관으로서 시행령 등을 개정해 할 수 있는 자체 개혁안은 매듭을 지은 셈이다. 그러나 이는 검찰개혁 중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검찰개혁의 본령은 비대해진 검찰권력의 남용을 견제하는 것이다. 이번 조 장관 일가 수사만 하더라도 검찰은 주어진 권한을 넘어 대통령 인사권과 국회의 인준 절차를 무력화하고 장관 임명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특수부 검사 수십명을 동원해 한 가족을 탈탈 터는 게 정상적인 검찰권 행사인지 많은 시민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을 통과시켜 검찰개혁을 완성하는 역할은 온전히 국회의 몫이 됐다. 서초동 촛불집회는 지난 주말 잠정 중단하며 “검찰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촛불을 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수 야당이 이런저런 핑계로 시간을 끌거나 시늉만 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호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조국 사태’는 검찰개혁 못지않게 언론개혁도 시급한 과제임을 일깨워줬다. 시민들은 의혹 부풀리기, 인권침해, 검증되지 않은 피의사실 유포 등 무책임한 보도를 쏟아낸 언론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언론은 깊은 자성과 성찰을 요구받고 있고, 이에는 ‘경향신문’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신뢰받는 언론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지난 두 달 동안 경제와 안보·외교 등 국정 현안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정치는 사실상 올스톱 상태였다. 정부·여당은 그간의 국정운영 방식을 냉철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야당은 과도한 정치공세는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 혼란과 갈등을 접고 국정을 정상화해야 한다. 미완의 개혁과제는 박차를 가해야 한다. 조 장관 사퇴가 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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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현장에 깊고 넓게 드리워진 ‘위험의 외주화’가 무섭다. 올해 국정감사 자료가 말해준다. 4년간 한국전력 산하 5개 자회사에서 발생한 안전사고 사상자(271명) 가운데 협력사 직원이 97.7%(265명), 정규직 직원은 2.3%(6명)였다. 협력사 직원의 사고 노출이 정규직보다 44배나 많았다. 지난 6년간 조선업계의 산재 사망자(116명) 중 하청노동자는 84.4%(98명)나 됐다. 또 최근 발생한 코레일 산재 사상자(583명) 가운데 40%(229명)가 외주노동자였다는 통계도 있다. 외주·협력업체의 노동자들은 매일 사선을 넘나들고 있다. 

지난 12일 경기 평택에서 승강기 설치작업을 하던 40대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다. 승강기 제조업체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티센크루프)의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엘리베이터 설치작업 중 사망한 티센크루프 하청노동자는 지난해 3월 이후 5명이나 된다. 경고음이 계속됐고 대책을 세웠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사고 발생 하루 전인 11일, 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티센크루프 대표를 국정감사장으로 불러 잇단 산재사고의 경위와 대책을 따졌다. 그런데도 사고가 반복됐다. 티센크루프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티센크루프처럼 엘리베이터 설치작업 노동자의 산재 사망은 한 해 평균 5건이 넘는다. 업체는 사고 원인을 작업자의 안전불감증 탓으로 돌리지만, 진짜 원인은 편법 하청구조에 있다. 티센크루프는 이번 승강기 설치공사 사업을 지역 중소업체와 공동 수급방식으로 수주했다. 그러나 실제 작업은 엘리베이터 설치공정을 떼어내어 협력업체에 맡기는 외주방식으로 진행됐다. 작업 단가를 낮추고 위험을 떠넘기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원청의 책임과 의무를 피하기 위한 편법 하도급이다. 노동부는 ‘죽음의 기업’ 티센크루프에 대한 특별감독에 나서야 한다. 또 국회는 중대재해 발생 시 기업주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산재 책임을 하청업체에 돌린다면,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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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비평

호모에렉투스가 불을 이용한 142만년 전부터 인간과 동고동락한 말이 있다. 쉽게 불이 붙도록 먼저 태우는 ‘불쏘시개’다. 돌을 튕기고 나뭇가지를 문질러 불붙이던 선사시대엔 낙엽·풀·잔가지·털·관솔이, 문명시대엔 종이·지푸라기·영지버섯이, 지금은 번개탄·기름도 그 역할을 한다. 동해안 산불에서 300m를 날아다닌 솔방울도, 노트르담성당 불길을 키운 지붕 밑 800년 된 참나무도 사람들은 불쏘시개라고 했다. 인터넷에 불쏘시개를 치면 기사 44만건이 뜬다. 도화선·촉매·신호탄·마중물과 비슷한 말인데, 불로 비유하는 인간사가 유독 많고 널리 알려진 순우리말의 멋스러움도 더해졌을 터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후 사퇴 의사를 밝힌 후 정부과천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날 조 장관은 특수부 축소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검찰개혁안을 발표한 뒤 약 3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불쏘시개는 정치적으로 변화의 촉발점에 쓰인다. YH사건→김영삼 의원직 박탈→부마항쟁→10·26으로 이어진 유신 말기 사건은 연쇄적으로, 1990년 지방자치제를 연 김대중 전 대통령 단식에도 이 제목이 뽑혔다. 일찌감치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2000년의 동교동 권노갑, 2012년의 친박 허태열, 올해 이해찬·양정철은 물갈이의 십자가를 자임했다. 4차례나 험지에서 지역 벽에 도전한 ‘바보 노무현’도 불쏘시개로 불렸다. 꼭 의도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2003년 9월4일 민주당 당무회의에서 일어난 ‘이미경 의원 머리채’ 사건은 그날만 의원 31명이 탈당계를 낸 분당의 불쏘시개가 됐다. 두번 구속된 안희정은 2002년엔 정치자금 투명화, 올핸 미투(MeToo)의 불길을 댕겼다. 트럼프·김정은이 주고받은 친서가 비핵화 협상을 촉발시킬 때도, 담뱃세·금리·온실가스·동남권신공항이 세상 이슈가 될 때도 곧잘 따라붙는 말이 불쏘시개다.

조국 법무장관이 14일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며 물러났다. 66일간 대한민국 뉴스 중심에 섰던 사람의 사퇴 변에 불쏘시개가 소환된 것이다. 조 장관은 지난 1일 출석한 국회에서도 “제게 주어진 시간까지 제 일을 하고자 한다. 불쏘시개 역할이면 충분하다”고 했었다. 그 분기점을 정부 몫 검찰개혁안이 발표된 날로 잡은 셈이다. 불쏘시개는 야당이 대통령에게 요구한 ‘읍참마속’과 동전의 앞뒷면이다. 겸손한 표현이지만, 더 큰 태풍을 예고하는 말일 수도 있다. 조국이 불쏘시개가 된 촛불은 검찰개혁과 공정사회였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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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누구나 자유를 맘껏 누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참여와 연대를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이 자유롭게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서로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은 ‘인터넷 공론장’뿐만 아니라 ‘민주적인 참여’의 기본 조건이다. 슬프게도 인터넷 역시 현실 공간에서 작동하는 제약들이 고스란히 작동한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이래 민주주의의 이상은 권리를 가진 시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쟁점을 토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교육과 이해가 있으며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을 때를 가정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항상 ‘과두정’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고, 쟁점을 이해하기 위해선 시간과 학습이라는 자원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선 현실공간의 정치적 자유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이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모두에게 시간적 여유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로마공화정 역시 귀족, 기사, 평민 계급의 투표를 통해 국정 현안을 결정하는 민주적인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평민들은 공화정에 불만을 표시하며 오늘날 ‘몬테 사크로(Monte Sacro)’라고 불리는 성산(聖山)에 올라 농성했다. 집단 파업을 일으킨 것이다. 절차에 따라 투표했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로마공화정의 투표는 귀족, 기사, 그리고 마지막에 평민이 투표하게 되어 있었다. 귀족과 기사 계급이 담합해 투표를 마치고 나면 평민은 표결에 참여하기도 전에 결정이 끝났던 것이다. 

우리 사회는 쟁점이 발생해도 금세 다른 쟁점에 덮이는 사회라고 한다. 초스피드로 움직이는 이 세계에서 나날이 발생하는 모든 쟁점을 파악하고,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거나 전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상 표결이 끝난 뒤에나 도착한다. 과거 디지털미디어의 주류가 PC 기반의 웹(Web)이던 시절이 영화 &lt;엑스맨&gt;의 ‘퀵실버’가 움직이는 정도의 속도였다면, 모바일 플랫폼 앱(App)의 시대인 현재는 ‘퀵실버’에 더해 공간을 순간 이동하는 ‘나이트 크롤러’까지 합세한 스피드로 움직인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정치가 되었든, 문화가 되었든 평론가만큼 힘든 직업은 없을 것이다. 

디지털미디어 시대, 사회를 움직이는 주체는 계급이 아니라 이슈에 따라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일시적이고 분산된 대중이다. 과거의 대중이 조직이나 명망가를 중심으로 몸의 연대를 구사했다면, 오늘날의 대중은 여러 차원으로 분산되고 다양한 구성을 지니고 있기에 분석하기 어렵다. 과거의 대중이 일정한 형태를 가진 고체였다면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대중은 정보와 이슈에 따라 액체처럼 유동하다가 이슈와 함께 증발한다. 문제는 그와 같은 시대이기에 선동(propaganda)에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영주의와 진영논리를 염려하지만, 오늘날의 디지털 대중은 특정한 이즘과 이론을 따르지 않는 탈이념적 대중이라는 점에서 요동치는 물결이다. 과거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대중문화가 사회적 시멘트 역할을 한다고 비판했지만, 오늘날의 대중은 ‘접착’이 아니라 간단한 ‘접속’으로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소셜미디어의 개인은 분절과 동종집단화 과정의 무한 반복(폐절, 차단 등의 자체 필터링 과정)을 통해 ‘취향최적화’를 이뤄 나간다. 

동종의 취향을 공유한 집단은 공론화 과정에서 그들의 취향에 거슬리는 집단을 힘으로 억압하고 싶은 손쉬운 유혹에 빠지게 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감과 나눔을 반복할수록 배타적 집단의식이 강화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빚는 것이다. 여기에 선동의 대가인 에드워드 버네이즈나 괴벨스도 울고 갈 만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지식인(Digerati)들이 언론인을 자처하며 미디어 공간을 점유해 나간다. 하이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친절한 선동가와 대변자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주변에 당신의 주장과 생각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없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당신은 이미 커다란 위험에 빠졌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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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모임을 나가든 또래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하는 얘기가 있다. 전에는 주제가 취업, 결혼, 독립 정도였는데, 이미 취업과 결혼의 꿈을 이룬 건지 아니면 둘 다 아예 안 하기로 선택한 건지 저 중 아직까지 유효한 주제는 독립뿐이다. 요즘엔 한 가지 새로운 주제가 추가됐다. ‘유튜브’다. 퇴사와 유튜브 데뷔가 직장인의 2대 허언이라는 사진이 웃긴 자료로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어떤 친구들을 만나건 유튜브 하면 삶이 좀 재밌어지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다 헤어진다. 

물론 그 누구도 유튜버가 되겠다고 쉽게 회사를 그만두지는 않는다. 100명이 구독할지, 100만명이 구독할지 모르는 유튜브는 안정만을 위해 살아온 우리에게 너무 큰 도전이다. 웬만한 각오 없이는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 쉬이 이별을 고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모여 앉아 유튜버의 삶을 동경하는 기저에는 ‘저런 삶도 나쁘지 않구나’라는 안심이 있지 않을까. 큰 명예나 성공은 없지만 시대착오적인 말을 하는 직장 상사도, 나를 부품으로 쓰고 버리는 회사도 없는 곳. 내 소소한 일상이 곧 밥벌이가 되는 곳. 전에 없던 새로운 삶의 ‘견본’을 본 거다.

견본이 없는 꿈을 꾸기는 막막하다. 수많은 성공적 견본들 앞에서 나 혼자 새로운 삶의 모양을 개척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더 제도 안의 삶에 몰두하는 건지도 모른다. 입시가 끝났으니 취업, 연애의 목표는 결혼 같은, 무엇을 해야 제 나이에 버젓한 삶을 살고 있는 건지 보여주는 통상적 지표들 말이다. 내가 미디어로 만난 정상의 삶 밖은 언제나 실패한 인생이었다. 입시 재수, 취업 삼수, 노처녀/총각. 어떻게든 성공한 제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몸부림에서 나온 단어다. 그러나 다시 말하면, 어떤 삶을 정상으로 간주한 채 그 밖의 삶을 비정상으로 만들어버리는 단어이기도 하다. 

정상과 비정상의 잣대는 위의 단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껏 세상에 나온 청년정책들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직장이 없는 청년들에게 고용되라 채찍질하는 고용정책, 실업을 선택한 노동자에게는 제공되지 않는 안전망, 출산하지 않는 부부를 정상으로 만들기 위한 출산정책 등. 그러나 이 삶이 정말 비정상인가. 정책은 자발적으로 ‘비정상’의 삶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선 묻지 않는다. 당신 삶의 가치는 무엇이냐 묻기도 전에 “그 논의는 아직 이르다”고 제지할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삶을 제도 안으로 다시 끌어들여 놓으려는 정책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택한 현재의 일상이 더 풍요로워지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더 다양한 삶의 견본을 보고 싶다. 이야기되지 않는 삶은 사회로부터 지워질 수밖에 없다. 내 삶이 특이해서 나만 겪는 줄 알았던 고민은 여러 명이 이야기하면 사회적 문제가 된다. 얼마 전 서울시가 내놓은 1인 가구 지원정책은 1인 가구 간 교류와 관계망 형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20년 전 10%도 되지 않았던 1인 가구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삶의 형태가 되었기에, 1인 가구를 통계에서 없애는 정책은 무용하게 된 것이다. 

최연소 시험 합격 수기보다 이런 브이로그가 더 보고 싶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무기력하지 않은 18세, 처음 취업하는 30세,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은 40세. 이렇게 다양한 삶이 숨 쉬고 있으니, 비정상으로 만들지 말라. 그것이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시작이다.

<조희원 |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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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스핀햄랜드법은 당시 어려웠던 영국 농촌 노동자에게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했다. 문제는 일종의 임금보조제도였던 스핀햄랜드 체제하에서 영국 농촌이 파운드화의 가치를 나폴레옹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시키고자 했던 잘못된 거시경제정책의 탓으로 극심한 실업과 빈곤을 겪게 됐다는 것이다. 1834년의 신구빈법은 이런 근본적 인과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스핀햄랜드에 농촌 피폐화의 누명을 씌웠고 그 이후 영국은 수 세대에 걸쳐 국가의 빈민구제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키우게 됐다. 시장의 정상적인 작동을 위해 빈민을 위한 국가의 개입은 없어야 한다는 타운센드와 맬서스의 왜곡된 논증이 이러한 해석을 더욱 공고하게 뒷받침했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3단계인 민간위탁의 정책방향에서 스핀햄랜드의 착시가 되풀이됨을 느낀다. 1, 2단계 전환이 여러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면, 3단계 민간위탁에선 전환 자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개별 기관이 자율적으로 타당성을 검토하라는 정부의 방임적 입장 때문인데, 이는 지난 20여년간 노동시장 유연화를 정책의 최대 목표로 삼고 축적한 정책 패러다임이 상당부분 유지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외환위기 후 공공부문에서 급증한 민간위탁도 신자유주의하에서 부활한 시장에 대한 맹목적 믿음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민간위탁이 더 효율적이라는 건 빈곤에 대한 구제로 빈곤이 더 악화됐다는 스핀햄랜드에 대한 악의적 서사만큼 심각한 오류일 수 있다.

민간위탁이 효율적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공공기관이 확보하기 어려운 민간의 전문성 활용이다. 하지만 대다수 업무가 전문성과 무관한 일반적 공공업무로, 사실상의 노무 제공에 불과한 위장된 용역 형태도 종종 발견된다. 인건비 등 비용 절감과 관련된 효율성 역시 민간위탁 기업들의 높은 간접비, 임금 횡령이나 감가상각비 허위기재, 대행료 과다 청구 등으로 제대로 실현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공공서비스 공급에 있어 시장의 경쟁 요인을 도입하겠다는 취지도 실제로는 특정 기업이 독식하는 관행과 퇴직 공무원이 선정된 업체의 임원으로 가는 등의 비리로 인해 무력화된다. 결국 민간위탁은 세금을 내고도 공공성 높은 서비스를 못 받는 국민과 직영노동자와 유사 업무를 하면서도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을 감내해야 하는 민간위탁 노동자 모두에게 효율적이지 못하다. 관리 업무 감소와 문제 발생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일부 공무원에게는 효율적일 수도 있겠다. 

민영화, 외주화, 시장화에 기반한 신공공관리론의 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한 지 오래다. 효율성과 유연성에만 매몰되었던 민간위탁 정책의 전면적 기조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많은 지자체 업무가 중앙정부의 예산으로 민간위탁되고 있는 현실에서 획일적인 기준 적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규제의 방안을 고민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예산 지원을 무기로 인건비를 묶어둘 수 있었다면, 차등적 예산 배정을 통해 공영 전환을 독려하거나 인소싱 목표제를 시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본질상 정부의 고유한 업무는 외부 위탁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민간위탁으로 인한 비용 감소나 서비스의 질 제고가 불분명한 업무의 공영 전환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시장의 효율성 착시에 눈멀어 무분별한 민간위탁의 관행이 만들어낸 어두운 그림자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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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굶주림’ 극복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굶주림은 수십만년 넘을 수 없는 벽이었고, 자연이 오작동을 일으키면 인류는 늘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는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 됐지만 인간의 DNA 깊숙한 곳에는 여전히 굶주림에 대한 공포가 새겨져 있다.

며칠 전 중국 소설가 류전윈 선생이 방한하여 함께 식사를 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신작 소설 초판을 90만부나 찍을 정도로 중국에선 잘나가는 거장이다. 그의 소설을 보면 먹고살기 위해 발악하고, 배신하고, 사기 치는 인간 군상이 자주 등장한다. 

식사 자리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값비싼 소고기를 대접했는데도 거의 손을 대지 않고 밑반찬으로 나온 간장게장을 쪽쪽 빨아 가면서 너무 잘 드시는 모습이었다. 혼자만 먹는 게 미안했던지 한 마리밖에 남지 않자, 함께 온 일행에게 반찬 그릇을 건네주면서 권했다. 그래서 주방에 하나를 더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류 선생은 새로 나온 게장도 남기지 않고 다 드셨다. 중국에도 간장게장이 있냐고 내가 물어보자 그는 상하이에 있다고 대답해주었다. 

게장 먹는 모습이 유난히 신경 쓰였던 것은 류 선생이 중국 허난성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가 펴낸 <1942년을 돌아보다>는 1942년에 일어난 허난성 대기근을 다룬 소설이다. 그의 아버지는 대기근 당시 온 가족이 피난길에 올랐는데 기차 지붕 위에 타지 못했던 여동생을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했다. 따라서 이 소설은 그의 가족사이기도 하다.

1942년 6월부터 허난성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땅이 바짝 타들어갔다. 그해 10월이 되자 하늘에선 기다리던 비는 내리지 않고 메뚜기 떼가 내려왔다. 메뚜기 떼는 눈에 보이는 모든 작물을 싹 다 먹어치웠다. 밭 한 마지기를 먹는 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메뚜기는 엄청나게 많은 애벌레를 깠는데 애벌레들이 뭉쳐서 거대한 공처럼 굴러다녔다. 애벌레의 먹성은 성체 메뚜기 못지않았다.

사람들은 초근목피를 먹기 시작했다. 느릅나무 껍질은 고급 요리에 속했다. 부작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러기 똥도 귀했다. 그 안에 소화되지 않은 곡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화 잎, 호두 껍데기, 콩 꼬투리, 옥수숫대, 콩 줄기 등은 잘게 부숴서 말린 다음 밀가루처럼 만들어 먹었다. 목화 잎을 먹은 사람은 몸이 붓고 마비되며 치아가 빠졌고, 옥수숫대를 먹은 사람은 변이 뭉치고 하혈을 했다. 

재난은 1943년까지 이어졌다. 인간시장이 열려 부모가 자식을, 남편이 아내를, 오빠가 여동생을 팔았다. 한 남편은 돈을 받고 아내를 팔았는데 팔려가는 아내가 내 옷이 당신 옷보다 더 새것이니 바꿔 입자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소리 지르고 울면서 아내에게 같이 굶어 죽자고 했다. 이윽고 사람이 사람을 먹기 시작했다. 어느 부부는 친딸을 먹었고, 아내는 남편에게 잡아먹힐 것이 무서워 어두운 밤을 틈타 도망가다 길에서 굶어 죽었다. 그러나 사람을 먹은 사람 또한 결국 굶어 죽었다. 허난 대기근은 도합 3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가고서야 멈췄다. 대기근이 발생한 것엔 다양한 원인이 있었다. 지독한 가뭄과 메뚜기 재해도 있었지만, 1937년 중국군이 일본군의 서쪽으로의 진격을 막으려 황허강의 제방을 터뜨리면서 광대한 농지를 폐허로 만든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또 허난 지역에 주둔했던 탕언보의 부대가 저지른 약탈, 농산물로 세금을 거두는 정책에 따라 가혹하게 수탈했던 탓도 컸다.

나는 2013년에 허난 대기근을 다룬 <1942 대기근>이란 책을 번역해서 펴냈는데 중국 기자 3명이 당시의 상황을 취재해 세상에 내놓은 논픽션이다. 무려 70년 만에야 억눌렸던 대기근의 역사적 실체가 대중의 앞에 드러난 것이다. 기자들이 집필하면서 참조한 책은 바로 류전윈의 <1942년을 돌아보다>였다. 류전윈은 고향의 부모 세대가 겪은 그 참혹한 역사에 대해 침묵하는 일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지만, 일본군에게 새어 나갈까 봐 강 주변의 사람들에게 통보도 하지 않고 황허강의 제방을 폭파시켜 강을 범람시킨 위정자들의 결정에도 분노했을 것이다. 황허강의 범람은 1250만명의 이재민을 만들어냈고, 이들 중 상당수가 허난성 사람이었다.

간장게장을 먹는 류 선생을 보고 있자니 그 뒤에 버티고 선 굶주림의 귀신을 함께 보는 것 같았다. 지푸라기를 입에 물고 길바닥에 누워 굶어 죽어가던 허난 여인의 눈빛도 어른거렸다. 그러나 그 역사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는 못했다. 식사 후 헤어지면서 류 선생과 악수를 했다. 굶주림이라는 역사의 강을 건너온 그의 손은 부드럽고 온화했다. 뭔가 다행스러운 기분이었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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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4일 지면게재기사-

요즘 국제뉴스들을 보면 보수반동의 득세라는 말이 실감난다. 세상이 그렇게만 돌아가지는 않을 텐데도, 그리 비친다. 세계 주요 국가 정상들의 비정상적 행보가 튀어 그럴지 모르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식 밖 언사는 질릴 만한데도, 최강국 대통령 말이다보니 여전히 신경이 쓰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과거 지우기’ 행태는 또 어떤가.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 열대우림의 화재가 지속되면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까지 조명됐다. 이들의 극단적 언행은 2차 대전 즈음 유럽을 휩쓸었던 파시즘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는 퇴행하고 있는가. 

트럼프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시스트다. 이주민·난민·빈민·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노골적 편견을 드러내고, 환경이슈는 제쳤다. 힘의 논리를 앞세워 세계 곳곳에서 분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 미국 대통령이야. 어쩔래?” 하는 식이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처하는 행태는 고개를 흔들게 했다. 지난 7월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대선 라이벌인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의 부패 의혹 조사를 압박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가짜뉴스’라고 우긴다.

현안에 대한 입장도 편의에 따라 바뀐다. 터키군의 시리아 쿠르드 자치지역 침공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국제사회의 비판이 커지자 “터키 경제를 쓸어버릴 것”이라고 했다. 홍콩 사태를 두고 “인도적 해결” 운운하더니, 미·중 무역협상이 일부 타결되자 “(시위가) 많이 누그러졌다”고 했다. 사실,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보며 잠시나마 그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조변석개 행태를 보면서 그가 소명의식을 갖고 다뤄야 할 비핵화 이슈를 재선과 노벨 평화상 수상을 위한 한갓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만 커지고 있다.

아베는 ‘제국주의 일본’의 재림이 가능하다는 헛된 공상을 한다.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징용 등 식민지배와 전쟁 책임을 회피하는 수준을 넘어 과거를 적극 미화한다. 지난 4일 임시국회 연설에서 “일본이 내걸었던 큰 이상은 세기를 초월해 국제인권규약을 시작으로 국제사회의 기본원칙이 됐다”고 주장했다.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도 불편한 과거를 묻어버리려는 막가파식 속성에서 비롯됐을 테다. 후쿠시마의 파국적 상황을 덮는 수단으로 도쿄 올림픽을 활용하겠다는 발상은 일본 내에서도 비판받는다.

문제는 ‘유사 트럼프’와 ‘유사 아베’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트럼프’라는 보우소나루는 아마존의 무분별한 상업적 개발을 허용, 두 달째 지속되는 아마존 열대우림 화재를 초래했다. 그럼에도 그는 세계의 비판 여론을 음모론과 막말로 대응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국제사회 반대에도 시리아 쿠르드 자치지역에 대한 군사작전을 감행했다. 비판이 커지자 “군사작전을 비난하면 (터키에 있는) 시리아 난민 360만명을 유럽에 보낼 것”이라고 협박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법을 넘는 공권력으로 ‘징벌자’ 별명이 붙었다.

극단적 지도자들의 행태에는 공통점이 있다. 도 넘은 ‘자국 제일주의’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든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들의 행태는 지나치다. ‘주판알’만 튀기느라 동맹에 대한 신의도 저버리는 트럼프나, 과거의 잘못을 보복으로 되갚는 아베의 근본은 똑같다. 그런데도 이들의 지지기반은 비교적 탄탄하다. ‘우크라이나 스캔들’ 같은 사건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많은 수의 국민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을 테지만, 미국 내에서 트럼프의 골수 지지층은 여전하다 한다. 아베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50%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가능한가. 이들이 내세운 자국 제일주의가 일정부분 국내 지지를 얻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들이 외부 적을 설정하고, 곪고 있는 내치에 쏠리는 국민의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견 타당하지만 그것만은 아닐 테다. 상식적 정치세력의 지지부진, 혹은 실패가 보수반동 득세를 부른 것은 아닐까. 실제 트럼프는 지난 대선 때 기성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을 파고들어 뜻밖의 승리를 거뒀다.

그래서 보수반동의 득세를 남의 나라 일로만 볼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트럼프나 아베 같은 극단적 지도자가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보수야당 리더들의 면면을 보라. 시민들은 눈을 부릅떠야 한다. 조국 논란을 관리 못해 중도층 이탈을 부른 여권도 현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용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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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미널>은 여행 도중 고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미국 뉴욕 국제공항에서 9개월간 갇혀 지낸 남성이 주인공이다. 가상의 국가 크로코지아가 유령국가가 되는 바람에 고국으로도, 뉴욕으로도 갈 수 없는 이른바 ‘공항난민’을 다뤘다. 영화 모티브는 반정부 시위로 추방당한 이란인이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에서 18년간 지낸 실화에서 얻었다고 한다. 영화 개봉 후엔 ‘영화 터미널 현실판’ 등의 기사 제목이 이따금 외신에 오르내릴 만큼 비슷한 실제 사연들도 있었다.

지난 11일 오후, 인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 문이 열리며 ‘한국판 영화 터미널’로도 일컬어졌던 콩고 출신 앙골라인 루렌도 가족 6명이 공항에서 나왔다. 40대 부부와 6~9세 4명의 자녀들은 이날 한국에 도착한 지 287일 만에 임시 입국허가를 받았다. 이들은 지난해 말 콩고 출신을 박해하는 앙골라로 돌아갈 수 없다며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했지만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은 명백히 난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입국을 불허하고, 난민심사를 받을 기회도 주지 않았다. 난민인정 심사를 받게 해달라는 소송에서 1심 패소 후 항소심에서 승소해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머물 수 있는 문을 가까스로 연 것이다.

9개월여간 공항생활이 영화처럼 들리지만 인천공항엔 루렌도 가족 같은 공항난민들이 적지 않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2019년 1월 기준 인천공항에 머무르는 송환대기자는 사실상 구금시설인 송환대기실에 31명, 탑승동과 여객동에 43명(루렌도 가족 포함) 등 총 74명이다. 난민법에 따르면 대한민국 안에 있는 외국인은 난민 인정 여부가 확정될 때까지 체류 자격이 있지만, 입국 전인 ‘출입국항’에서는 법무부 장관이 7일 이내에 난민인정 심사 회부 여부를 결정한다.

화려한 조명과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들떠 있는 공항 한쪽엔 최근까지 나와 비슷하게 살았을지 모를, 공항에 갇힌 이들이 함께 있다. “우리와 다른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난리로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일 뿐이다. 어떤 난민도 스스로 난민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 일제강점기 한반도를 떠날 수밖에 없던 선조들 역시 난민이었다.”(정우성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중)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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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던 청년 노동자가 들어오는 지하철을 피하지 못해 사망했다. 안전수칙을 지키면 저성과자가 되는 해괴망측한 구조가 사고의 원인이었기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자의 목숨조차 효율성이라는 저울에 올라가는 사회가 어찌 상식적이겠는가. 게다가 청년의 가방에는 뜯지 못한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이걸 보고 평생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한 정치인이 이런 글을 남겼다. “가방 속에서 나온 컵라면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조금만 여유가 있었더라면 덜 위험한 일을 택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고인을 추모하는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의 진심이 사회의 상식과 일치하진 않는다. 본인은 약자에게 동정심을 갖는 게 당연하다고 배웠겠지만, 이는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엘리트 교육을 충실히 수행한 결과일 뿐이다. 어떤 노동을 하더라도 안전할 수 있는 세상은 동정이 아닌 연대와 투쟁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엘리트 교육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완전한 평등은 불가능하다’는 전제로 개인의 경쟁력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공부 열심히 안 하면 큰일 나니, 공부 열심히 해서 시궁창을 피하라는 주술만이 떠돌면 일하면서 죽지 않을 평등한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은 상시적으로 존재한다. 이런 차별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성장한 사람이 아무리 상식을 찾아봤자 ‘형편 안 좋아서 공부를 못한’ 사람들을 딱하게 보는 걸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선한’ 엘리트들은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면서 기부도 하고 소외계층 자녀들의 학업을 도울 방법을 강구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엘리트 교육은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해결하는 것만이 경쟁에 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믿는다. 교육의 평등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는 수준으로 해결된다는 믿음은 교육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차별적 요소를 차별이 아닌 것으로 이해하게끔 한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요즘에는 흑인들도 학교 다니는데 차별이 어디 있냐!’고 외치는 이유다. 교육은 개인의 출발선을 맞추는 것만으로 공정성이 보장될 수 없다. 모두가 학교를 다니고, 모두가 같은 과목을 배워서 평가를 받아도 개인의 경쟁력에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변수를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 교사의 오늘내일 감정도 다르고 학생의 오전오후 심리도 천차만별이다. 개인을 흔드는 요소는 무수하다. 계층, 성별 등에 따른 세상의 선입견은 둘째 치더라도 가정사, 질병, 주변관계 등이 사람마다 동일한 상황일 수 없으니 흔들림도 각양각색이다. 그러니 교육 결과는 기회가 균등한들,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규정될 수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한날한시에 철저한 감독하에 시험이 치러지는 것이 과정의 공정성 전부라고 생각한다. 성적으로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걸 부끄럽지 않다고 여기는 태도는 그게 정당하다는 확신이 있기에 가능하다. 시험 결과로 사람의 우열을 구분하면 그 껍데기에 따라 개인이 받는 칭찬의 빈도와 격려의 강도는 확연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의 불공정이 ‘공부에 인생을 걸겠다’는 의지의 차이로 이어져 실제 성적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당연지사다.

‘남보다 성실했으니’ 1등은 박수받을 권리가 있고 ‘객관적인 노력의 증거’이기에 명문대 합격자 이름을 현수막에 적어 공교육 기관의 정문에 거는 걸 합당한 보상이라고 하면 그 끝에 무엇이 있겠는가. 1등이 아니어서 겪은 차별, 명문대 졸업장이 없어서 당한 혐오에 누군가가 아무리 분노해도 ‘공정한 시험 결과 아닌가?’라는 빈정거림이 일관되게 부유하는 작금의 사회는 시험만이 과정의 공정성을 대변하면서 부당한 편견이 어떻게 은폐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공정한 시험이 존재한다는 막연한 기대감은 기회와 과정이 평등할 수 있다는 착각을 거쳐 결과에 대해서는 토를 달지 말자는 차별의 씨앗을 만들 뿐이다.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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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달을 앞세우고 간다.

여울물을 기어오르는 피라미처럼

공기주머니 하나 달랑 차고

소유한 게 적어도 물 따라 산다.


풀잎에 알을 낳는 풀벌레처럼

주어진 시간 그대로,

청설모가 굴밤 한 톨 물고 가듯

가랑잎 같은 시를

소중히 갈무리하고 산다.


소슬한 가을바람 따라 산다.

새빨갛게 익은 석류가

저절로 팍, 하고 깨어지듯

작은 소리를 알아듣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산다.


권달웅(194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시인은 자연으로부터 삶의 자세를 배운다고 말한다. 여울물에 밝게 뜬 편월(片月)을 앞세우고 헤엄치는 피라미는 가진 것이 없어도 물의 흐름에 맞춰서 산다. 풀벌레가 풀잎에 알을 낳고 사는 것을 받아들이고, 청설모가 졸참나무의 열매 한 톨에 만족하듯이 시인은 가랑잎 같은 시 한 편을 짓고 사는 일 외엔 더 바라는 게 없다. 그리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소리와 움직임에 귀를 기울여 잘 알아들으면서 살고자 한다. 으스스하고 쓸쓸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그런 가을바람에 어울려 살고자 한다. 자연이 가르치는 대로 호응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나란히 살고자 한다.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고, 잔물결 같은 작은 행복을 찾으며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자연의 현덕(玄德)을 따라 사는 일일 테다. 나무가 너무 뻣뻣하면 꺾어지고, 소나기가 종일 쏟아지는 법은 없다는 지혜를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배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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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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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4일 지면게재기사-

“지난 2년 동안 국정을 이끌어 온 문재인 정부를 100점 만점으로 평가하신다면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 조사회사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치자. 당신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을 할 것이다. 90점이든 40점이든. 이어서 “그 점수를 주신 기준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과연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합당한 기준인가? 남들도 그 기준에 동의할 수 있을까? 혹시 20년 전에나 통용되던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얼마 전 더힐티브이(The Hill TV)의 크리스털 볼과 인터뷰를 한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앤드루 양은 매우 흥미로운 발언을 했다. 일부 발췌인용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제 우리 자신의 행복을 지향하는 경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GDP는 우리를 벼랑 끝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의) GDP는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있지만 자살, 약물 남용, 스트레스, 가정경제의 불안정도 기록적입니다. 측정도구가 잘못된 겁니다. 우리의 행복과 건강, 약물로부터의 해방, 깨끗한 공기와 수질, 우리 아이들의 행복 등에 최적화된 지표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경제분석국에 가서 말할 겁니다. 이봐요, GDP는 거의 100년이 되었어요. 낡고 거의 무용지물이 됐다고요. 업그레이드를 합시다. 시대에 맞는 ‘미국 채점표(scorecard)’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건강과 수명, 정신 건강 등이 반영된 지표 말입니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여전히 100년 전 기준을 가지고 우리의 (혹은 남들의) 성적을 매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공을 측정하는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 발전의 기준도, 승리의 판정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대학교수의 평가방식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무조건 연구를 많이 해서 논문만 많이 쓰면 ‘점수’가 올라갔는데, 이젠 그 논문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고 활용하는지에 따라 ‘점수’가 바뀐다. 야구선수의 성과를 측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따졌던 투수의 승수나 타자의 타율도 이제는 평균자책점이나 진루/장타율에 그 자리를 내줬다. 확고해 보이던 기준도 시대가 바뀌면 성긴 구석이 발견되고, 환경이 바뀌면 정당성도 떨어진다.

광화문과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의 수를 세면서 내가 이겼네 네가 이겼네 하는 다툼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1987년 12월, 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후보는 각각 여의도 광장에서 유세를 벌이며 서로 100만명을 넘겼다고 우겼다. 소위 군중 숫자로 ‘세 싸움’을 하던 시절이다. 불과 5년 후 선거에서는 후보들이 대규모 유세를 안 하기로 합의하면서 소위 ‘100만 유세’는 사라졌다. 27년 전이다.

이 쓸데없는 싸움을 부추기는 언론의 보도기준은 무엇인가? 인근 지하철역 하차 승객이나 휴대전화 접속 기록을 따지며 부득부득 승패를 결정짓겠다는 언론사들은 이 시대 언론의 사명이 방문자 수 증가와 수익의 극대화라 생각하나? 양극화시켜놓고 양극화가 문제라며 한탄하면 회사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가? 남들 페이스북 내용 쫓아다니며 특종, 단독 타이틀 붙여 클릭 장사하는 기자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 언론사의 성공 기준은 무엇인가?

앤드루 양의 발언은 정곡을 찌른다. 그는 측정도구가 과연 타당한지 묻는다. 정확하고 엄밀하게 측정하면 ‘신뢰도’는 올라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애초에 측정하고자 했던 그 무엇”을 측정했다는 보장은 없다. 최첨단 디지털 저울로도 키를 잴 수는 없듯이. GDP는 우리의 행복을, 우리 자손들의 건강을 절대 보여줄 수 없는 수치이다. 지금 우리는 이 정부의 성공을, 혹은 여야 대결의 승자를 무슨 기준으로 따지고 있는 것인가? 일단 군중의 숫자는 아닌 것 같다. 뜬소문 하나로 들쭉날쭉하는 지지율도 타당한 잣대는 아니다.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자. 국정 운영의 점수를 매기는 우리의 기준은 무엇인가? 언론의 보도행태를 욕하거나 상찬할 때의 기준은 무엇인가? ‘조국 수호’도 ‘조국 파면’도 이 시대 이 사회의 안녕함을 판정할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검찰개혁도, 대통령 탄핵도 결국 더 큰 목표를 위한 수단이고, 언론의 ‘팩트 체크’도 공정한 보도와 건전한 비판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양비론이 아니다. 양비론을 넘어서자는 얘기다. 무엇이 중요한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이 중요할지에 대한 논의를 좀 하자는 것이다. 그런 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 자리에 나와 또 표창장 얘기나 한다면 정치인들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하고, 옳다구나 싶어서 삿대질 사진을 특종으로 싣는 언론이 있다면 우리나라 기자들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한다. 아직 기대라는 것이 남아있다면.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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