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처음에 노브라 사진을 올리고 말들이 많았다. 이때 무서워하고 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외모 평가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칭찬도 어쨌든 평가 아니냐.” (JTBC2 <악플의 밤>) “2019년 4월 11일 낙태죄는 폐지된다. 영광스러운 날! 모든 여성에게 선택권을.” (인스타그램)

지난 14일 설리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가 전해진 직후부터 그가 남긴 치열한 분투의 기록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여성이라면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용기를 기억하자”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터져나왔다. ‘악플의 희생양이 된, 요절한 20대 여자 연예인’으로 설리의 삶을 축소할 수 없다는 거대한 애도의 물결이다.

설리는 여자, 그리고 연예인에게 유독 가혹한 사회적 편견과 지독하게 맞서 싸운 예외적이고 독보적인 ‘여자 연예인’이었다. ‘여자 연예인답게’ 욕망의 대상으로 순순히 박제되길 바라는 대중의 기대를 끊임없이 배신하고, 자신만의 다양한 모습과 소신을 지속적으로 밝힌 용기있는 여성이었다. 바로 그 이유로 ‘악플 세례’와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사회적 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가장 폭력적인 곳에서, 가장 전투적으로 싸웠던 25세의 여성 설리. 많은 이들이 그에게서 ‘투쟁가’의 얼굴을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지난 7월 설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Girls supporting girls(여자는 여자가 돕는다)’라고 적힌 붉은색 티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 인스타그램 갈무리

하지만 설리의 이 투쟁에는, 줄곧 ‘기행’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그룹 f(x)의 멤버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그는 항상 주목받던 ‘여자 아이돌’이긴 했지만 그의 이름이 대중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된 것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면서부터였다. 2016년 그가 편안한 차림으로 찍은 ‘셀카’를 SNS에 게시한 이후부터, 그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태어나 단 한 번도 착용해 본 적이 없는 브래지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년간 지독한 악플과 악의적 기사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5월에는 배우 이성민을 두고 “성민씨”라고 호칭한 설리의 SNS 게시물을 두고 ‘예의가 없다’ 비판하는 여론이 쏟아지기도 했다. 설리보다 경력과 나이가 많은 이성민을 ‘선배님’이라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밖에도 그를 둘러싼 ‘논란’은 수도 없이 반복됐다. 그가 집에서 파티를 하고 친구와 술을 마시는 모습이 SNS에 공개될 때마다 “설리 이대로 괜찮은가”하는 무용한 제언이 쏟아져나왔다.

그럼에도 설리는 맞섰다. 수년간 ‘노브라 셀카’를 지속적으로 올렸다. 분명 무서웠을 것이고, 숨고 싶었을 테지만 그러지 않았다. 직접 밝혔듯이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후 ‘노브라’를 하나의 운동이자,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흐름이 등장한 것은 그가 용기내 올린 수 많은 ‘셀카’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성민씨’ 호칭 논란이 일었을 때도 그는 목소리를 냈다. 그는 “우린 모두 서로를 아끼는 동료이자 친구다. 내가 알아서 한다”며, 한국의 보수적인 서열 문화에 태연하게 경종을 울렸다. 

지난해 8월 설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게시글을 올렸다. 이에 일본 누리꾼이 항의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인스타그램 갈무리

‘기행의 장’처럼 여겨졌던 그의 SNS는 약자와 약자가 연대하는 하나의 장으로 변모해가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 여성의 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SNS를 통해 기꺼이 기념했고 ‘Girls Supporting Girls(여자는 여자가 돕는다)’라는 문구가 박힌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게시했다. ‘기행’으로 불리던 그의 시도들은, 누군가에겐 오늘을 살아갈 ‘연대의 힘’이 됐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니. 나는 여기 있는데.” 지난 7월 발표한 첫 솔로곡 ‘고블린’에서 설리는 이렇게 노래했다. 얼마든지 멈출 수 있는 싸움이었다. ‘기행’이라는 오명과, 각종 성희롱성 악플 속에서도 그가 고통스러운 싸움을 이어간 이유는 바로 ‘여기 있는 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저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에, 더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길 바랐기 때문에.

“설리가 행복하길 바랐다. 설리가 행복한 세상이라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누리꾼은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그의 싸움에 위안과 용기를 얻었던 이들이 적지 않았던 만큼, 지금 이곳엔 상실이 크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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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SNS, 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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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 3단계 대상은 민간위탁 종사자다. 2018년 고용노동부의 민간위탁 전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민간위탁 사무는 총 1만99개이며, 종사자는 19만5000여명에 달한다. 사회복지 영역은 민간위탁 중 가장 많은 사무(4769개)와 가장 많은 종사자(7만2552명)가 있다. 일상에서 쉽게 마주하는 사회복지관, 어린이집, 치매안심센터 같은 사회복지시설 대부분이 민간위탁 형태로 운영되는 것이다.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국가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 문제는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제공되는 공공서비스 대부분을 국가가 직접 수행하지 않고 민간에 위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효율성과 전문성을 이유로 공공서비스 전달을 민간에 맡기는 것을 선호해왔고 이 방식은 계속해서 확대되었다. 효율성과 전문성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민간위탁의 장점으로 강조되었지만, 수탁기관의 부정과 부패, 종사자의 열악한 처우로 인한 서비스의 질 하락 등의 문제점 역시 존재한다. 

대표적 민간위탁 분야인 사회복지서비스를 국가에서 직접 제공한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사례를 보자. 2011년 광산구청은 ‘시민의 복지는 국가 책임이다’라는 기조하에 민간에 위탁했던 사회복지관을 구청 직영으로 전환했다. 민간 사회복지법인 소속으로 일하던 사회복지 노동자들은 구청 소속 공무직으로 채용되면서 고용을 보장받았다. 노동자들은 공공부문에서 일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본연의 업무인 사회복지서비스 제공에 집중하면서 일에 대한 만족도가 상승했다. 민간위탁 시절 노동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해 잦은 이직을 초래한 후원금 모금 의무도 없어졌다. 안정된 고용 환경에서 근속기간이 늘면서 공공서비스의 지속 가능성과 질도 높아졌다. 사회복지 노동자의 더 나은 노동조건이 광산구 주민들이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된 것이다. 사회복지관 직영 전환 이후 주민들은 자치회를 결성해 복지관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회복지관을 중심으로 마을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공신력 있는 시설 운영에 따라 공공성이 확대되었고, 사회복지서비스 수혜자인 주민들은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만족도가 향상되었다.

사회복지는 국민의 더 좋은 삶을 위한 국가의 책무이다. 국민의 더 좋은 삶을 위해 일선에서 공공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고용 불안정과 열악한 처우에 시달린다면 국민의 더 좋은 삶의 보장은 어려울 것이다.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개별 노동자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민간위탁의 정규직 전환을 통해 종사자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추구하는 것은 공공서비스를 수행하는 노동자의 삶의 개선은 물론 서비스 수혜자의 삶을 개선함으로써 공동체 전체에 이득이 될 것이다.

민간위탁 정규직 전환 논의의 출발점은 공공서비스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이 국민에게 더 좋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배경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더 나은 노동조건을 통해 더 좋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노동존중 사회’와 ‘모두가 누리는 포용적 복지국가’라는 정부의 국정과제를 달성하는 기본 전제인 것이다.

<조혁진 |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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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찾아간 초등학교 인근에는 문화예술촌이 있었고, 그곳 한가운데에는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곡물 창고를 개조한 책박물관이 서 있었다. 책박물관에는 이름에 걸맞게 천장까지 빽빽하게 책이 쌓여 있었다. 책을 지은 이의 손을 떠나 세상을 돌고 돌아 이곳에 닿았을 책을 마주 보고 있자니 애잔했다. 누렇게 변색된 책에는 지은이의 시간과 책이 살아온 시간의 냄새가 배어 있다. 그것은 과거의 시간이다. 그러니까 책박물관이 과거의 공간이라면, 운동장에 서면 벼가 익어가는 들판이 보이는 초등학교는 바로 현재의 공간인 셈이다.

고학년 스물여섯 명이 모여 앉은 교실에선 책박물관에서 밴 묵은 냄새가 잊히는 풋풋한 냄새가 났다. 아이들과 역사를 얘기하다 각자 자신의 역사를 적어보라 하자, 아이들은 꽤 진지하게 책상에 엎드려 연필 쥔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서 자신이 태어난 병원 이름만 달랑 적어놓은 아이와 매년 한 살씩 더 먹은 것을 써놓은 아이만 일찌감치 연필을 내려놓고 친구들을 기웃댔다. 10년을 산 4학년들이 가장 빨리 허리를 곧추 폈다. 심드렁한 얼굴이지만 그새 공책에 빽빽하게 적은 6학년 여자아이는 공책을 손으로 가렸다.

아이들의 길지 않은 삶의 기록은 흥미진진했다. 아홉 살 때 아버지가 중국집을 하다 업종을 변경, 실내골프장을 한다는 아이는 맛있는 짜장면을 못 먹는 게 아쉽다고 했다. 여덟 살에 장난치다 머리가 깨졌다는 아이는 이후 계속된 사건사고만 나열해 마치 병상 일기와 같았고, 아홉 살에 초등학생을 괴롭히는 중학생들과 싸워 이겼다는 영웅담을 담담하게 적은 6학년 아이는 진짜 어른이 올려다볼 만큼 컸다. 일곱 살 때 큰할아버지가, 아홉 살 때 작은할머니가 돌아가셨다면서 친척 사망 기록만 적은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같은 시공간에 살고 있지만,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신만의 시간을 축적하면서 자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역사가 될 테고, 그 역사는 책으로 남겨지기도 해서 먼 훗날 책박물관 어딘가에 꽂히게 될지 모른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이어짐이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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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에 기반한 영화다. 감에 의존해 수사하는 지역토박이 형사 박두만(송강호)과 과학수사를 신봉하는 서울 파견 형사 서태윤(김상경)이 공조해 연쇄살인범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실제 사건이 그러했듯이 두 형사는 영화 막판에 가서도 범인을 잡는 데 실패했다. 경찰들이 용의자를 좁혀가는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만 쫓기고 얻어맞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렀을 뿐이다.

십수년이 흘러 형사를 그만둔 박두만은 우연히 최초 희생자가 발견된 장소를 지나다 옛 수사 과정을 떠올린다. 박두만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박두만의 시선은 픽션의 한계를 넘어 객석에 있을지 모르는 범인을 노려보는 듯하다. 봉준호는 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가 특정됐다는 소식에 “드디어 범인의 얼굴을 봤다. 범인을 잡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기울인 경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형사 박두만(송강호·왼쪽)과 서태윤(김상경)은 한팀이 되어 용의자의 뒤를 쫓는다. _ 싸이더스 제공

봉준호는 <살인의 추억> 이후 6년 뒤 <마더>를 선보였다. <마더>는 <살인의 추억>만큼 흥행이 되거나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살인의 추억> 못지않은 수작이다. 어수룩한 아들 도준(원빈)이 한 소녀의 살인범으로 몰리자 홀어머니 혜자(김혜자)가 진범을 찾아 아들의 누명을 벗기려는 내용이다. 

개봉 당시엔 몰랐지만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드러난 뒤 알 수 있는 사실은 <살인의 추억>과 <마더>가 한 쌍으로 묶인 영화라는 점이다. <살인의 추억>이 정의를 구현하려는 형사들의 집념을 다뤘다면, <마더>는 부조리한 사법절차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경찰은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의 수법이 여느 것들과 다르다는 점을 들어 모방범죄라고 결론내렸다. 경찰은 피해자 부근에서 용의자의 체모를 발견했고, 이를 근거로 농기계 수리공 윤모씨를 체포했다. 윤씨는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받고 20년을 복역한 뒤 2010년 가석방됐다.

이춘재가 8차 사건 역시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물론 이춘재가 자신의 행적을 과장해 말했을 수 있다. 법적으로는 여전히 윤씨가 범인이다. 

하지만 시민과 언론과 국가가 최악의 연쇄살인범을 찾아내라고 닦달하는 와중에 경찰 수사에 여러 무리수가 있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에 범행을 자백했다가 현장검증에서 자백을 번복한 이도 있고, 재미교포 심령술사가 범인으로 지목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불려가 고초를 겪은 이도 있다. 경찰 수사의 피해자 중 몇 명은 훗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내 승소하기도 했지만, 일상이 파괴되거나 결국 죽음에 이른 이도 있다.

윤씨 역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줄곧 억울함을 호소했다. 고아였던 윤씨는 초등학교를 3년만 다닐 정도로 어려운 삶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시 경찰에 잡혀간 윤씨는 3일간 잠을 자지 못한 채 취조를 받았고, 소아마비를 앓아 불편한 한쪽 다리로 쪼그려뛰기를 하는 고문을 당했다고 말한다. 법정에서도 윤씨는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수 없었다. 돈이 없어 변호사를 따로 선임하지 못했다. 국선변호인은 결심공판 때 처음 나타나 “선처해 주십시오” 한마디만 했다고 한다.

윤씨가 진범이든 아니든, 제대로 된 수사와 재판을 받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가장 끔찍한 범죄자조차 가장 정당한 사법절차를 거쳐야 한다. 시민의 법감정에 어긋날지라도, 그런 과정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다.

<마더>에서 혜자는 천신만고 끝에 아들을 무시무시한 사법절차의 굴레에서 빼낸다. 혜자는 아들 대신 범인으로 지목돼 수감 중인 종팔을 면회간다. 외모로 짐작해보건대 종팔은 다운증후군을 가진 듯하다. 혜자의 아들 도준이 안락한 삶을 누렸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종팔은 도준보다 더 낮은 곳에 위치한 이였다. 혜자는 종팔에게 “엄마 없어?”라고 묻고는 흐느낀다. 종팔에겐 변호사도, 친구도, 엄마도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자신의 작은 몸과 마음으로 경찰들의 수사를 홀로 묵묵히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살인의 추억> 속 박두만의 모델이 된 하승균 전 임실경찰서장은 “형사는 알파가 있어야 수사를 한다. 알파란 범인에 대한 적개심 같은 거다”라고 했다. 불의를 목격했을 때 피가 거꾸로 솟구침을 느끼고, 그 느낌을 오래도록 간직해 범인을 찾는 동력으로 이어가는 경찰과 검찰이 있기에 사회정의는 잠정적으로나마 유지된다. 하지만 정의는 합리적이고 정당한 제도 위에서 실현돼야 한다. 무엇보다 돈 없고 인맥 없고 권력 없는 이들일수록 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영화 주인공들은 종종 느리고 거추장스러운 사법절차의 굴레를 뛰어넘어 사적 복수를 행해 관객에게 쾌감을 준다. 현실에선 그 느리고 거추장스러운 과정이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

<백승찬 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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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해 동안 서구의 ‘공적 지식인’을 대표해온 사회사상가들이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2015년에는 울리히 벡이, 2017년에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그리고 2019년 올여름 끝자락에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유명을 달리했다. 위르겐 하버마스와 앤서니 기든스가 살아 있지만, ‘68혁명’으로 시작된 서구 비판 사회사상의 한 시대가 마감하고 있다는 느낌은 나만의 소회가 아닐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벡, 바우만, 월러스틴이 모두 주목한 현상이 세계화였다는 점이다. 벡은 ‘위험사회’ 이론가답게 위험의 세계화를 날카롭게 분석했고, 바우만은 ‘액체현대’ 이론가답게 지구적 차원에서 관찰되는 자유와 불안, 애착과 공포의 공존을 깊이 있게 탐구했다.

세계화 담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이는 월러스틴이다. 그가 주조한 세계체제론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사회과학의 분석단위에 일대 전환을 요청했다는 점이다. 카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로 대표된 고전 사회사상에선 계급과 국가가 일차적인 분석단위였다. 이러한 이론적 가정에 맞서 월러스틴은 주권국가나 민족사회가 아닌 세계체제가 사회과학의 분석단위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화를 다룰 때 흔히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와 ‘세계화(globalization)’를 구분한다. 국제화가 국민국가 간 교류가 양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면, 세계화는 양적 교류의 확대를 넘어 현대 사회생활이 세계사회라는 하나의 단위로 독자적 차원을 획득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개별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세계적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이론화한 월러스틴 세계체제론이 세계화 담론 구성과 현실 분석에 미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무릇 한 사상가의 업적을 평가하는 데는 세세한 나무들의 시각보다 전체적인 숲의 관점이 요구된다. 월러스틴 세계체제론의 가장 큰 미덕은 정밀한 분석이 아니라 거시적 전망에 있다. 그는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21세기 초반 새로운 독점 생산부문들을 기반으로 또 한 번의 팽창을 성취할 것이지만, 동시에 사회구조가 더욱 양극화되고 정치적 정당성은 더욱 빈곤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등장할 미래 사회의 모습을 일찍이 월러스틴은 세 유형으로 전망한 바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신봉건주의’다. 이는 혼란의 시대에 나타나는 분할된 주권, 자급자족 경제, 지역적 위계제 등이 안정된 형태로 자리 잡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 유형은 ‘민주적 파시즘’이다. 이는 카스트 제도처럼 세계를 두 계층으로 나누고 세계 인구의 5분의 1 정도가 그 상위계층을 이루는 체제를 함의한다. 세 번째 유형은 ‘탈중심화한 평등주의의 세계질서’다. 이는 세계시민의 집합의지가 구현된 유토피아적 비전인 동시에 월러스틴이 열망하는 미래의 청사진이기도 하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월러스틴 전망의 현재적 평가라면, 다른 하나는 세계화의 선 자리와 갈 길에 대한 비판적 평가다. 먼저, 월러스틴이 예견했던 것처럼 최근 세계사회는 민주적 파시즘과 신봉건주의가 혼돈스럽게 공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불평등이 구조적으로 재생산되는 상황 아래 지구적 차원에서, 그리고 일국적 차원에서 사회집단들 간의 물질적·문화적 생활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의 사회적 삶이 서구 중세의 장원처럼 서로 격리된 채 진행되는 현실에 대한 월러스틴의 통찰은 날카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어 세계화의 현재와 미래는 월러스틴의 전망을 넘어서고 있다. 한편의 경제적 차원에서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경제의 지구적 네트워크는 더욱 촘촘해지고, ‘제4차 산업혁명’ ‘인더스트리 4.0’ ‘소사이어티 5.0’으로 불리는 인공지능 등의 새로운 과학기술혁명은 경제와 사회 전체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다른 한편의 정치적 차원에선 기성 대의정치의 무능에 맞서 ‘기득권 대 국민’의 이분법을 앞세운 반엘리트주의적이자 반다원주의적인 포퓰리즘이 서구는 물론 비서구 사회에서 분출하고 영향력을 더해가고 있다. 경제의 세계주의 경향과 정치의 민족주의 경향의 모순적 공존은 우리 시대 세계체제가 안고 있는 낯설고 기이한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세계사회의 미래가 비관적이라 하더라도 그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세계체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그 인식에 기반하여 더 나은 미래를 일궈나가려는 우리 인간의 집합의지다. 월러스틴은 이러한 인식과 의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사회사상가다. 뒤늦게나마 그의 지적 유산을 기억하며 그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적어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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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기 변호가 아직도 귀에 선명하다. 압축해서 말하자면 자신에게 직접 돌아온 것이 없기 때문에 결백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개인의 착복이 아니기 때문에 청렴하다는 것이었다. 민주화가 30여년 가까이 진행된 시점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아주 전통적인 생각을 듣는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법 절차적 문제, 즉 영향력을 행사해도 문제가 된다는 의식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것이다.

한국은 산업화 과정에서 법이나 절차보다 결과가 더 중요했다. 그 시절 팽배했던 규범 아닌 규범은 독식하지 않거나 주위에 관련된 사람들과 청탁의 떡고물을 공유할 경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국현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한 가족이 경제공동체로 움직이면서 한 여러 가지 행위들에서 결과가 어떻게 보이든지 자신은 결백하다는 주장이다. 이 이면에는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법 절차적 해석이 깔려있다. 실제 벌어진 상황과 관계없이 법적 절차를 통해 자신은 결백하다는 것이다. 전자가 전형적인 한국전통적 사고로 자신을 합리화했다면 후자는 근대 법 논리로 가족 구성체 속의 독립된 개인의 입장을 방어하고 있다.

두 사례는 단순히 개인적 사례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 사례가 제기하는 문제는 과연 한국 사회에 전통적 가치와 규범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 하는 것인 반면, 조국사태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개인단위로 움직일 수 있는 사회가 되었나의 문제를 제기한다.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얼마나 변했고, 또 변하지 않은 것인가? 지난 30여년간 한국 사회는 한국형 산업화가 남긴 독특한 사회구조 및 관행과 서구형 민주주의체제 간의 끊임없는 갈등을 보여왔다. 이 갈등 속에서 30년이 지났지만 한국적 민주주의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다. 이 갈등의 기저에는 집단적 오해가 숨어 있다. 그것은 경제발전이 곧바로 근대사회를 창출한다는 신화다. 이런 신화 위에 학습된 민주주의가 덮어 씌워질 때 모순과 갈등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소위 보수세력은 선거라는 방식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지역주의 등 전통적 질서를 유지하면서 자기 세력의 이익과 정권을 획득, 유지하려 했다. 20대 총선과 박근혜 탄핵으로 막을 고한 보수세력의 본질은 국가주의에 대한 향수에 불과했고 한국적 보수주의의 가치 창출에 실패했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주장은 한국 보수주의의 공허함 그 자체였다. 또한 보수주의가 고수한 지역주의는 한국 사회 양분화의 시작이었다.

진보 역시 크게 다를 게 없다. 한국 진보가 내세운 민주화는 실상 정권교체였고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법적으로 이미 오래전 보장된 각종 민주적 제도는 별도의 투쟁이 필요 없었다. 한국적 보수와의 싸움은 방어적 지역주의를 불가피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진보는 제대로 된 학습을 하지 못하고 한국 실정에 맞는 진보의 내용 축적에 실패했다. 한국 진보의 근본적 모순점은 체화되지 않은 민주체제하에서 실제 생존 양식은 보수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상적 수준에서 한국 진보 역시 지역주의, 학연, 혈연의 연계 속에서 생존해왔기 때문이다. 조국사태는 이런 한국 진보의 모습을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결국 한국 민주화는 지난 30여년 한국적 사회구조의 영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진보든 보수든 국민을 선거대상으로 보면서 권력 획득 놀이를 해왔다. 이 결과 국민과 연계된 정당을 중심으로 한 대의제 실천, 사회갈등구조 해결을 위한 제도적 정비에 실패했다. 또한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기초인 하위체계 검찰, 경찰, 교육, 언론 분야의 자주성 확립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는 미국이 미국식으로, 일본이 일본식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듯 한국도 한국 몸에 맞는 민주적 제도와 가치 규범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조국사태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검찰개혁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보수와 진보에 공통된 자기 모순을 어떻게 극복하고 진정한 한국적 정체성을 가진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제기한다.

체화된 민주주의의 창출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한국 민주주의는 시작부터 한국 사회의 깊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에 바탕을 두어왔다. 극렬한 정치적 양극화도 민주화과정에서 거치는 하나의 단계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정치권은 더 이상 국민을 선거의 도구로 삼지 말고 향후 30년 한국 민주화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새로운 점검을 시작해야 한다. 만약 한국 정치집단과 사회가 이런 문제의식을 상실한다면 어려운 내외 경제사정과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용출 미국 워싱턴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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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오래 누가…” “김밥 사줄까?” “아, 됐어”.

어느 늦은 밤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발밑만 보며 걷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누가 나오래”에 “김밥 사줄까?”라 동문서답하는 대화의 이어짐이 특이하게 들렸다.

나보다 몇 발짝 앞서 걷고 있었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은 퉁명스레 됐다고 하면서도 골목 어귀에 서 있던 아주머니 팔에 달라붙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온 딸을 어머니가 정류장까지 마중 나온 듯했다. 딸내미에게 뭐라도 좀 사 먹이고 싶었던지 그는 김밥집 옆 만두가게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찜통을 향해 재차 고갯짓 하였다. 딸은 “됐다니까!” 하며 어머니를 잡아끌어 한층 찰싹 붙었다. 둘은 골목 안으로 총총 사라졌다.

후배와 점심 먹다 그 일화를 들려주자 “언니, 참 정겨운 장면이네요” 하였다. 그러더니 그도 버스 타고 가다 본 어떤 장면을 말하기 시작했다. 정류장에서 교복 입은 고등학생들이 우르르 내리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했다. 한 여학생이 앞서 걸어가고, 남학생이 서둘러 뒤따라가며 손바닥을 책받침 모양으로 만들어 여학생 머리 위를 가리고 있더란다. 여자아이가 비 맞는 게 안타까웠나 보다. 아직 정식으로 교제하는 사이는 아니었는지 쭈뼛거리며 더 다가서진 못하고, 그래도 비 덜 맞게 해주고 싶어 뒤편에서 손우산 만들며 말이다. 버스가 출발하여 멀어질 때까지 후배는 차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단다. 그 모습이 예뻐서.

우리는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순간 나도 오래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대학시절 시장통에 위치한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무렵이었다. 무더운 여름 저녁, 시장을 가로질러 걷는데 맞은편에 줄인 교복과 깻잎머리로 한껏 멋을 낸 남학생과 여학생이 걸어오고 있었다. 한 손은 꼭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각자 닭다리 하나씩 뜯어 먹으면서. 노상 튀김집에서 팔던, 한 개에 1500원 하던 닭다리 말이다. 여자아이는 내가 가르치던 반 학생은 아니었지만 내 얼굴을 아는 것 같았다. 그래서 부끄러웠던가 보다. 닭튀김 쥔 왼손을 등 뒤로 감추며 친구한테 잡힌 오른손을 꼼틀꼼틀 빼내려 하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왜 그래?” 하며 불만스러운 듯 나를 쓱 보더니 친구 손을 더 꽉 쥐었다. 모르는 척 고개 숙이고 몇 발짝 더 걸었다. 그러다 뒤돌아서서 한참을 봤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지난 휴일 밤, 아랫마을로 내려갔다가 길모퉁이에 새로 생긴 자그만 심야식당을 발견했다. 안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유난히 아늑했다. 통유리 너머로 들여다보니 대부분 연인 아니면 친구로 보이는 누군가와 함께였는데 그중 한 테이블이 눈에 띄었다. 거기엔 중학생 정도 된 소년과 그의 아버지로 보이는 이가 마주 앉아 있었다. 셔츠와 재킷 차림인 걸 보아 휴일인데도 일터로 출근했다가 밤늦게 아이를 데리고 나온 듯했다. 아들은 한창 키 클 나이인지 몸이 길쭉했다. 앞접시에 놓인 볶음요리 같은 걸 엄청 집중해서 먹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를 지켜보며 술잔 기울이고.

때마침 점원이 튀김을 가져다주자 남자는 아이 접시에 커다란 새우튀김을 얹어놓았다. 그러면서 뭐라 하였는데 두꺼운 창문 너머라 들리진 않았지만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라는 말 같았다. 아들은 말없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튀김을 집어 한입 덥석 베어 물었다. 남자가 피식 웃었다.

계속 훔쳐보면 안될 것 같아 발걸음을 떼었다. 연인에게 밀어를 속삭이는 청년과 친구들과 둘러앉아 술 한잔 걸치며 연신 웃음을 터뜨리는 또래 아재들 사이에서, 노곤한 얼굴로 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의 마음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나도 정종 한잔 마신 듯 마음이 따끈해졌다. 다음에 후배 만나면 들려주려고 장면을 기록해두었다.

그리고 소망했다. 야자 마치고 엄마 팔에 달라붙어 집으로 향하던 소녀와 친구 머리 위로 손우산 만들던 소년과 손잡고 닭다리 뜯던 어린 연인도 여전히 그렇게 사랑하며 살고 있기를. 서로의 인격을 함부로 할퀴는, 연민 없는 분노와 예의 잃은 정의감이 넘실대는 지금 이 땅 어딘가에서.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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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요구인 검찰개혁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검은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 검찰개혁의 대의에는 동의하면서도 조국 법무장관 거취를 놓고 대립하던 상황이 해소된 만큼, 이제 검찰개혁을 법적·제도적으로 완성하는 소명은 국회에 주어졌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올라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의 처리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주권자의 엄중한 명령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조 장관 사퇴 직후 입장문을 내고 공수처법을 20대 국회에서 논의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현재의 공수처법은 문재인 정권의 집권 연장 시나리오일 뿐이다. 공수처법은 다음 국회로 넘겨야 한다”고 했다. 그간 공수처법 등 사법개혁 법안 논의에 단 한 차례도 응하지 않아온 한국당이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공수처법을 다음 국회로 넘기자는 것은 오만의 극치다. 한국당은 검찰개혁의 대의를 대놓고 무시할 수 없으니까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과 공수처법안을 분리해 공수처법은 다음 국회로 넘기자는 속보이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검찰개혁의 본령은 검찰의 중립성을 확보하고,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제한하고, 민주적 통제하에 검찰을 두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공수처 설치는 이러한 검찰개혁의 핵심이다. 역대 정권마다 검찰개혁방안으로 공수처 설치가 제기되어온 것도 그 때문이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15일 “장기집권 사령부 공수처는 절대 불가하다”고 말했다. 설령 정치권력으로부터 악용될 소지가 우려된다면, 공수처 조직과 시스템 보완을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면 될 일이다. ‘집권연장’ ‘장기집권’ 프레임을 씌워 아예 공수처를 봉쇄하려는 것은 결국 검찰개혁을 무산시키려는 속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공수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듯이 ‘조국사태’와 무관하게 시민 절대 다수가 지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도 당시 정권의 핵심인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공수처법을 발의했고, 지금도 현역인 심재철·김성태·김영우 한국당 의원 등이 동참했다. ‘정치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 무엇보다 공수처 설치가 필요하다는 데 여야, 보수·진보를 떠나 공감대가 형성되어온 것이다.

광장의 절실한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분명 서초동이나 광화문 집회 공히 검찰개혁의 대의에는 뜻을 같이했다. 한국당은 입으로는 “사법개혁”을 운위하면서도 공수처법을 막아 ‘가짜’ 검찰개혁을 도모하는 반동을 멈춰야 한다. 검찰개혁 문제를 정권에 대한 정치공세의 일환으로 이용하며 시대정신을 외면할 경우, 다음 ‘촛불’은 국회로 향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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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들 학교가 설립목적대로 운영되기보다 명문대 진학에 유리한 통로로 기능하며 고교서열화와 공교육 황폐화라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 때문이다. 중등교육은 물론 유치·초등 단계의 조기 입시과열 문제에도 일정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다. 큰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서열화의 정점이자, 외고와 같이 특목고에 해당하는 과학고를 논의에서 뺀 것은 한계다. 

최근 교육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대입제도 개편 관련 당·정·청 회의에서는 법률 개정을 통해 2025년부터 자사고 등을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계획이 논의됐다. 현재 초등학교 4학년이 고교에 입학하는 2025년은 교육부가 모든 고교에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해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듣는 고교학점제의 맞춤형 교육으로 자사고·특목고의 다양성을 보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특권학교 폐지와 고교서열화 해소는 현 정부의 핵심 교육 공약이다. 최근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실시한 국민인식 조사결과 특권 대물림 교육 해소 방안으로 고교서열화 해소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8%에 이를 만큼 여론의 지지도 높다. 현재의 교육현장 황폐화엔 자사고 100곳 지정 등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정책’이 큰 이유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별한’ 학교들이 우후죽순 생기며 입시 연령이 낮아졌고, 원하는 고교에 가지 못하고 일반고에 진학한 아이들이 일찍부터 열패감을 느끼며 일반고 황폐화가 가속화됐다. 

고교서열화 철폐와 공교육 정상화가 목적이라면 과학고와 영재학교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이른바 ‘스카이대’와 의대 입시에 최적화된 교육기관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초등학생 때부터 사교육을 부르는 원천이기도 하다. 이들이 제외된다면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되레 이 학교들로 몰리는 풍선효과까지 우려된다. 시민단체의 제안대로 영재 위탁교육 기관으로 전환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하다. 

아울러 정부는 수월성 교육에 대한 수요, 강남 쏠림, 고교학점제와 고교 내신 절대평가 안착 방침에 대한 우려와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빈틈없이 준비하되, 학생 개개인의 적성을 살리는 교육다운 교육이라는 목표를 뒷받침할 만한 현장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면 굳이 시점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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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테르 뒤플로,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 부부와 마이클 크레이머 하버드대 교수가 올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들은 세계 빈곤 문제 해결을 연구해온 개발경제학자들이다. 주목할 것은 수상 이유가 빈곤층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현장 실험을 통해 빈곤 퇴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이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빈곤 퇴치를 위한)확실한 결론을 이끄는 것은 경험적 접근”이라고 밝혔다.

세 교수 연구는 빈곤층에 대한 인식의 교정에서 출발했다. 뒤플로 교수는 “빈곤층은 모두 절박하다거나 게으르다는 식의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빈곤 퇴치를 위해서는 그들이 직면한 문제를 하나하나, 과학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 교수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무작위 대조군 연구(RCT)를 진행했다. 같은 집단에 대해 다른 조건을 제시하는 실험이다. 예컨대 말라리아 예방 접종자를 늘리기 위해 단순 독려보다 콩을 제공하고, 교육 지원사업에서 교사 수를 늘리는 대신 구충제를 공급했다. ‘작은 경제적 지원’이 접종자를 늘렸고, 구충제 복용으로 질병 결석이 줄면서 학력은 물론 소득 수준도 개선되는 효과를 거뒀다. 거대한 개발원조보다는 실험을 통한 빈민층 지원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뒤플로 교수는 개도국 극빈층에 적용한 이 실험이 부유한 국가에서 힘겹게 사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은 캐리커처로 희화화 대상이 되는 게 다반사이고 그들을 도우려는 이들조차 빈곤층 문제의 뿌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의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 국민 10명 중 1명은 아직도 절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2014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송파 세 모녀’ 사건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들 역시 근절되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의 ‘공공임대주택-구멍 뚫린 복지’ 기획보도도 시사적이다. 영구임대주택 거주자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만족도는 90%를 웃돌았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거주자들은 “없이 사니까” “갈 데가 없다” 등 전혀 다른 심경을 털어놓았다. 복지 정책이 현장보다는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탓이다. 뒤플로 교수는 수상 인터뷰에서 “덜 부유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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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의 무장을 뽑으라면 십중팔구 이순신 장군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업적이 가장 큰지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있으리라.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일본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우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3국을 통일한 김유신의 업적이 더 커 보인다. 우리에게 대국이었던 수나라 군사를 수장시킨 살수대첩의 명장 을지문덕도 업적 면에선 이순신에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순신이 최고의 무장이 된 이유는 뭘까? 모함으로 인한 투옥과 백의종군, 12척으로 133척에 달하는 적을 물리친 명량해전, 자기 죽음을 부하에게 알리지 말라 한 마지막 순간까지, 이순신에게는 다른 이들이 갖지 못한 드라마가 있었다. 김유신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거라곤 자기 잘못을 말한테 뒤집어씌워 목을 벤 게 다이지 않은가?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그런 시련을 겪으면서 이순신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다. 접촉사고가 났을 때 상대방이 잘못했다며 서로 삿대질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접촉사고의 경위를 글로 써보면 어떨까. 싸울 때는 몰랐던 자기의 잘못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종이 위에 쓰인 사건은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는 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글이 주는 ‘자기 객관화의 힘’, 즉 일기를 쓰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고, 이는 자기성찰로 이어진다. 이순신이 고매한 인격을 갖출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일기를 쓴 덕분이란 얘기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전격 사퇴했다. 그로 인해 두 달여 동안 극심한 국론분열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사퇴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때 우리가 믿고 따른 지식인이었던 분이 이렇게 몰락한 이유는 그가 SNS 중독자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박근혜 정권의 무능함에 신음하던 시절, 조국은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SNS 글을 지속해서 써댔다. 

- 1명의 피의자 때문에 5천만이 고생이다 : 2016년 11월,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여 박근혜 하야를 외쳤을 때.

- 이제 민심은 즉시 ‘하야(下野)’를 넘어 ‘하옥(下獄)’을 원하고 있다 : 2016년 12월, 200만이 넘는 인파가 광화문에 모였을 때.

- 검찰은 왜 최순실을 긴급체포하지 않고 귀가시켜 공범들과 말 맞출 시간을 주는가 : 2016년 10월, 국정농단 사건 당시 해외에 머물던 최순실이 귀국했을 때.

- 피의자 박근혜, 첩첩이 쌓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모른다’와 ‘아니다’로 일관했다. 구속영장 청구할 수밖에 없다 : 2017년 3월, 박근혜 재판 때.

잘생긴 서울대 교수가 저리도 멋진 말로 정권을 비판하자 사람들은 열광했고, 조국은 스타 지식인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SNS엔 치명적인 함정이 있었다. 차분하게 자신을 성찰하게 만드는 일기와 달리 SNS는 그 속성상 ‘촌철살인’을 지향한다. 어떻게 하면 더 멋지고 임팩트 있는 글을 쓸지 노력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허세가 끼어들고, ‘내가 머리가 아픈 것은 남보다 열정적이기 때문인가’ 같은 오글거리는 말도 SNS에서는 일상이다. 그러다 보면 실제의 자신이 아닌, 가상의 인물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소위 ‘조국사태’에서 사람들이 혼란스러웠던 것도 조국의 삶이 그가 SNS에서 했던 말과 전혀 다른, 기득권의 관행에 절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조국이 과거에 썼던 SNS 글들은 결국 그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조국이 구린 일은 죄다 아내에게 미루고 자신은 몰랐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그가 반기문을 향해 날린 “알았으면 공범이고 몰랐으면 무능이다”를 찾아왔고, 그의 딸과 관련해 불거진 입시비리 의혹엔 “대학 수험생 입시 관리를 하다 보면, 어떻게 이런 스펙을 만들어 오지, 하며 놀랄 때가 많다”는 말을 떠올렸다. 그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를 못마땅해할 때는 “편집과 망상에 사로잡힌 시민도, 쓰레기 같은 언론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 특히 공적 인물에 대해서는 제멋대로의 검증도, 야멸찬 야유와 조롱도 허용된다”를, 온갖 의혹에도 물러나지 않고 버틸 때는 “도대체 조윤선은 무슨 낯으로 장관직을 유지하면서 수사를 받는 것인가? 우병우도 민정수석 자리에서 내려와 수사를 받았다”를 가져왔다. 조국 때문에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뉘어 집회를 할 때는 “1명의 피의자 때문에 5천만이 고생이다”를 찾아왔다. 

이런 일이 잦자 사람들은 ‘구(舊)조국’과 ‘신(新)조국’이 다른 사람이라거나, 조국이 자신의 앞날을 예언한 ‘조스트라다무스’였다는 식으로 그를 조롱했다. 더 충격적인 건 그 와중에도 조국이 SNS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기 아내가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는 동안, 조국은 SNS의 프로필 사진을 ‘서초동 조국수호 집회’로 바꿨다가 50분 만에 내리고 잇따라 서로 다른 자신의 사진으로 수차례 변경했다. 

수만개의 글을 SNS에 쓰는 대신 그가 그 열정으로 ‘조국일기’를 썼다면 어땠을까. 자신의 허물을 잘 알았을 테니 법무장관은 꿈도 꾸지 않았겠고, 설령 후보자로 지명됐다 해도 바로 물러났을 것이며, 사퇴 할 때 자신이 검찰개혁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단 말로 사람들을 실소하게 만들진 않았으리라. 그의 사퇴에 대해 2017년 탄핵 당시 박근혜를 가리킨 구조국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하련다. “일말의 연민이나 동정심도 사라지게 만드는 퇴장이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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