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고려 말기의 중국어 회화교본인 <노걸대(老乞大)>에 술 깨는 국이라는 뜻의 성주탕(醒酒湯)이 나온다. 이것이 해장국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육즙에 정육을 잘게 썰어 국수와 함께 넣고 천초(川椒)가루와 파를 넣는다’고 되어 있어 얼큰한 오늘날의 해장국과 그 기본이 같다.”

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포털사이트에서 ‘해장국’을 검색하면 요식업 가맹사업자의 광고부터 나온다. 광고에 깔린 ‘지식백과’를 클릭해 들어가면 위 문단이 ‘정보’의 맨 처음이다. 해장국을 파는 업체나 가게에서는 여기에 기대 ‘<노걸대>에 나오는 해장국’을 앞세운 광고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주탕’ 세 글자 빼고는, 없는 소리다. 저 문단은 낭설이다. 우선 이 책의 편찬과 출판의 연대기부터 들여다보아야 한다. <노걸대>는 조선 세종 때 편찬되기 시작한 중국어 학습서로 <번역노걸대>(1517), <노걸대언해>(1670), <중간노걸대언해>(1795) 등이 전해온다. ‘노걸대’는 중국인을 뜻하는 말인데 나중에는 만주어 학습을 위한 <청어노걸대>, 몽골어 학습을 위한 <몽어노걸대>까지 나왔다. 중국어 외의 어학서에서 노걸대를 빌린 것이다. 이 가운데 <노걸대언해>에 ‘성주탕’이라는 어휘가 딱 한 번 나오고, 성주탕을 언해(諺解)해 ‘술깨오는탕’이라고 했다. 이것으로 끝이다. 조리법은 나오지 않는다. 천초(초피)와 소금으로 양념을 해가며 고기볶음을 하면서, 남의 음식에 타박도 하는, 절로 웃음이 나는 장면이 <청어노걸대>(1765)에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해장국은 없다. 이것으로 끝이다. <노걸대언해> 속 성주탕과 오늘날의 해장국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성주’는 ‘술을 깨다’라는 뜻이다. 옛 동아시아에서 자연스러운 말이고, 흔히 쓴 어휘일 뿐이다.

대중이 잘 모를 수도 있지, 어쩌라고? 물으신다면, 나 또한 배운 도둑질 자랑하자고 나서지 않았노라 여쭈겠다. 해장국 한 그릇 앞에서도, 단 하나의 검색창 검색-복사하기-붙이기라는 타성이 작동한다. 게으른 정보 습득과 가짜정보 유통이라는 악순환이 아예 한국인의 삶의 형식이 되었다는 말인가. 전통 음식을 한다는 곳에 가면 빠지지 않고 붙어 있는 광고물이 있다. 포털사이트 찍어서 처음 나오는 지식과 정보를 인쇄한 광고판이다. 대개 <조선왕조실록> <동의보감> <자산어보>에 그런 소리가 있다고 우긴다. 가끔 <노걸대> 같은 ‘마이너한’ 문헌도 동원된다. 피부미용과 원기회복으로 박자를 맞추었지만, 사실과 맥락이 어긋난 이야기를 늘어놓다 낭설에 주저앉는다. 성주탕의 전설과 같은 꼴이다. 그러고는 내 음식이 어떤 점에서 맛나고, 좋은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설명하지 못한다. 가령 내 일이 선지해장국이라면, 구체적으로 선짓국해장국을 거론함이 옳다. 

선지가 국거리가 될 때 된장을 바탕 삼을 수도 있고 젓국을 바탕 삼을 수도 있다. 해산물에서 온 젓국과 동물 단백질이 만나면 서로가 서로의 풍미와 손잡고 독특한 맛을 이룬다. 된장의 구수함은 또 다른 길이다. 젓국과 된장 사이에서 나는 어떤 기획으로 무엇을 선택했는가? 선지는 어떻게 다루는가. 사람은 소가 아니라 소고기를 먹는다. 한 덩어리 네발짐승의 피는 손질과 정리를 통해 ‘선지’가 되어야 한다. 그다음에 우리 입안에 들어와야 한다. 어떻게 다루었는가. 지저분한 것을 걷어내자고 중탕을 했다. 맛을 들인다고 젓국으로 밑간을 하기도 한다. 질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막걸리에 담가뒀다. 이런 고전적인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해장국 한 그릇 제대로 해내는 구체적인 길이다. 뾰족한 수는 없다. 내 일의 세목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사람이, 내 줏대를 쥐고, 내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다. 단 하나의 검색창, 내가 끼고 사는 단 하나의 매체에 기댄 낭설 수집이란 정보의 습득일 수도, 공부일 수도 없다. 이미 모두 알고는 있을 것이다. 알면서도 손은 먼저 검색창을 향한다. 검색하는 사이에 그다음을 잊는다. 이야말로 타성이다. 선지해장국 한 그릇에 잇닿은 낭설 한 조각마저 타성에 장악된 우리 삶을 비추고 있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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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 말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다보스포럼은 전 세계를 움직이는 리더들이 모여 중요한 주제들에 대한 토론을 통해 세계경제의 전망과 여러 정책들의 방향 등을 제시하며 큰 주목을 받는다. 중국이 세계 2강으로 부상하면서 2007년부터는 하계 다보스포럼이라 불리는 새로운 챔피언들의 연례총회가 다롄과 톈진에서 매년 번갈아 가며 개최되어 왔다. 하계 다보스포럼의 특징은 혁신, 과학기술, 창업가 정신이 주요한 주제들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혁신에 중요한 교육에 관한 주제들도 그간 많이 다뤄져 왔다. 내가 계속 참여했던 이 교육 세션들 중에서 흥미로운 결론이 도출되었던 적이 있다. 10여년 전 하계 다보스포럼에서 여러 나라 교육부 관계자들과 함께한 세션에서 “앞으로는 학교에는 숙제하러 가고 집에서 공부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즉, 숙제할 때 잘 몰라서 선생님이 필요한데 집에는 선생님이 없으니 학교에 가서 숙제하고, 공부는 집에서 교과서, 참고서 등을 보며 혼자서도 할 수 있는데 굳이 교실에서 칠판만 쳐다보고 하는 것이 생각해 볼 점이라는 데서 나온 말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유튜브나 무크, 코세라, 테드 등을 통해 세계적인 학자들의 명강의를 들을 수 있고, 그 외 많은 지식들을 본인이 쉽게 찾아서 습득할 수 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은 검색엔진에 물으면 어느 정도 수준의 답은 대부분 얻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세계경제포럼은 2015년 전 세계 전문가들과의 연구를 통해 21세기 더욱 벌어질 기술격차 문제와 그 문제를 풀기 위하여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교육을 위한 새로운 비전: 기술의 가능성을 풀기’라는 리포트를 발간하였다. 우선 21세기 필요한 기술을 크게 세가지 특성으로 구분하고 16가지 매우 중요하게 습득해야 할 세부 내용들을 제시하였다. 첫째는 학생들이 핵심기술들을 매일매일 풀어야 할 과업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초적 지식이다. 이 기초적 지식과 소양에는 문해력, 수학, 과학, 정보통신기술, 금융, 문화 시민의식의 6가지가 강조되었다. 둘째는 학생들이 어떻게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는지에 대한 능력이다. 이에는 비판적 사고와 문제해결능력, 창의력, 소통력, 협업능력의 4가지가 포함되었다. 셋째로는 변화하는 환경에서 요구되는 개개인의 질적 역량이다. 이에는 호기심, 목표설정 및 추진능력, 끈기, 변화 적응력, 리더십, 사회문화적 인식능력의 6가지가 포함되었다. 

이 중에서도 미래 인재의 핵심인 소통, 협업, 문제해결 능력은 어떻게 함양할 수 있을까? 답은 2010년 설립되어 2014년 첫 신입생들을 받은 미네르바 스쿨에서 일부 찾을 수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있지만 캠퍼스가 따로 없으며 학생들은 세계를 돌며 글로벌 기업들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인재로 성장한다. 교수와 화상수업을 하며 인턴십, 토론, 많은 양의 과제 수행을 통해 수업만이 아닌 학생의 경험 전체를 교육목표로 한다. 학생들은 이러한 교육을 통해 효과적 의사소통능력, 비판적 사고능력, 문제해결능력 등을 함양 습득 발전시키며, 자연스럽게 협업능력을 배양한다. 하버드대나 MIT보다도 입학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 미네르바 스쿨에 열광하는 이유이다. 

또한 사회적 능력과 감성적 능력이 중요하다. 미래의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고 소통하고 협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역량이 된다. 미래의 학교에서는 교사가 학생들을 평가할 때 지식의 수준을 시험으로만 재단하는 것은 사라져야 한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그룹으로 협업을 한 뒤 그 협업의 결과물의 우수성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협업 과정에서 다른 구성원들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현재 초등학교 입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 그들이 가질 직업은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많을 것이라는 예측 또한 교육시스템의 혁신을 이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우리가 다 알면서도 실제 학교 교육에 적용하지 못했던 것들부터 속히 바로잡아야 한다. 공감능력, 상호존중, 협상능력, 감정조절능력, 실패로부터 배우는 능력, 성공을 위한 자신감, 자기결정능력 등을 함양시키도록 해야 한다. 좋은 문제를 찾는 능력과 그렇게 문제를 찾기 위한 충분한 전공지식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이 이러한 21세기 필요 인재들을 길러내는 데 적합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갈 곳이 없다는 학생들과 원하는 인재를 찾을 수가 없다는 기업. 이러한 불일치는 이미 우리 교육시스템이 잘못되었다고 오래전부터 말해 왔다. 우리가 교육시스템을 바꾸지 않았을 뿐.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기업들은 미래 신사업을 이끌어가기 위하여 자체 교육시스템도 강화하고 있다. SK그룹은 최근 인적자본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미래 신사업 업무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 및 연구 통합 플랫폼인 SK유니버시티를 출범시킨다고 발표하였다. 기업과 대학이 특정 분야 교육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정보통신기술과 인공지능,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등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들을 이용한 계속교육과 평생교육은 한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교육방식이 될 것이다. 당연히 대학들도 변신을 하여야 한다. 카이스트에서 운영하고 있는 에듀케이션 4.0과 융합기초학부 프로그램은 미래에 새롭게 요구되는 인재들을 길러내기 위한 시스템의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빠르게 변혁하는 미래시대에 필수적인 문제해결능력과 협업능력을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매우 우수하며 무한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내 제자들만 봐도 그렇다. 이미 졸업을 한 많은 제자와 지금의 제자들을 보면 내가 그들 나이 때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우수하다. 

결국 교육시스템이 문제다. 우리나라가 미래 경쟁력을 갖기 위해 초·중·고 및 대학교 교육시스템을 지금 당장 혁신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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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밤. 나 같은 꼰대세대에게는 가수 이용의 노래가 떠오르겠지만, 젊은 세대는 핼러윈이라고 부른다. 젊은 남녀가 가면 하나씩 쓰고 클럽에 몰려가 ‘부비부비’로 온밤을 불사르는 날이다. 어떤 이는 우리 고유의 명절인 한식, 단오, 백중, 유두는 사라지고 정체불명의 양키 축제가 횡행한다고 불만이다. 나라 잃은 것처럼 통탄하기도 한다. 사실 나도 좀 마뜩잖지만, 따지고 보면 한식, 단오, 백중도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라 그리 텃세 부릴 일은 아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불청객 신세이나, 핼러윈은 배타적인 사회에서 출발하여 포용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미국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축제이다. 워낙 복잡하게 섞였기 때문에 그 뿌리를 찾는 것은 잠실구장에서 홈런왕을 배출하는 것만큼 어렵다. 대략 켈트족의 사아윈(Samhain) 축제와 기독교의 만성절(All Saints Day)이 결합된 것이라고 한다. 

사아윈은 고대 켈트족의 수확제인데 우리로 치면 추석 같은 것이겠다. 이날은 켈트력(曆)으로 한 해의 마지막이자 여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한다. 켈트족은 이날 수확에 감사하고 겨울 먹거리를 위해 가축들을 도살했다. 또한 이날은 이승과 저승의 간격이 좁아져 악령들이 출몰하는 날이기도 하단다. 악령들도 장거리 여행은 어려운가 보다. 아무튼 악령의 해코지를 막기 위해 켈트족의 무당들은 마당에 큰 화톳불을 켜놓고 짐승 가죽을 입고 춤을 추며 곡식과 가축을 제물로 바쳤다. 그게 사아윈 축제가 되었다고 한다. 기원(紀元)경 로마제국은 잉글랜드 북부에까지 이르러 켈트족의 영토에 도달한다. 그러자 사아윈 축제는 로마의 영향을 받는다. 죽은 영혼을 위한 페랄리아 축제와 과일의 여신을 위한 11월 포모나 축제 등 로마의 축제 의식들이 대거 사아윈 축제에 도입되었다. 

수백년이 흘러 로마의 축제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사아윈 축제는 계속 살아남았고, 9세기 봉건 성립기에 이르러서는 교황청의 골칫거리가 될 정도로 번성한다. 다분히 이교도적인 이 축제를 두고 당시 교황청은 이를 탄압하는 것보다 발전시키는 현명함을 보인다. 사아윈을 성인(聖人)을 기리는 만성절(All Saints Day)로 유도한 것이다. 관제데모 같은 것이다. “All saints”가 “All Hallows”로 바뀌면서 “All Hallows Eve”를 줄여 “Hallowe’en”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억지스럽게 느껴지나, 서라벌이 서울로도 변하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켈트족의 축제였던 핼러윈은 1800년대 중반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을 통해 미국에도 소개되었다. 축제의 성격상 물건 팔아먹기 쉽고, 또 마땅한 명절이 없는 신생국가의 요구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에 핼러윈은 급속히 국가대표급 명절로 자리 잡았다. 빈 땅에는 말뚝만 박아도 이정표가 된다, 뱅뱅사거리같이.

미국에 들어와서도 핼러윈은 변화를 멈추지 않는다. ‘잭의 랜턴(Jack-O-Lanterns)’이나 ‘사탕얻기(Trick-or-Treat)’들이 핼러윈 의식에 첨가되었다. 잭의 랜턴은 속을 파내고 그 안에 촛불을 켠 채 집 앞에 두는 호박 등불이다. 이것의 유래는 원래 악마를 속인 죗값으로 순무 속의 촛불 하나만을 들고 이승을 떠돌아야 하는 구두쇠 잭의 등불이라고 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죽은 사람의 얼굴을 조각하고 그 안에 촛불을 켜놓는 아일랜드의 전통과 고대 켈트족의 머리사냥(Brazen Head)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순무로 만들었는데 호박 주산지인 일리노이를 거치면서 호박이 일반화되었다.

아이들이 집마다 돌아다니며 사탕을 뜯어내는 사탕얻기 놀이도 원래 핼러윈하고는 관련이 없었다. 중세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빵을 구걸하고 대신 부자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주던 행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린애들로 하여금 어른들을 상대로 갈취하는 재미를 깨닫게 해주는 이 교육적인 행사는 1930년대에 슬쩍 핼러윈에 끼어들었다. 이제는 온갖 괴기영화의 캐릭터에 대한 코스프레와 합세하여 부모들의 등골을 빼는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렇게 배경이나 이념, 종교 따위는 상관치 않고 무엇이든 집어삼킨 결과가 핼러윈이다. 대중적이고 말초적인 요구와 반짝하는 재치가 마구 뒤섞여 어느덧 새로운 전통으로 재탄생했다. 핼러윈을 보면 잡다하게 섞여 새로운 맛으로 탄생한 비빔밥이나 부대찌개가 떠오른다. 다른 축제들은 거의 사라졌으나 부대찌개 같은 핼러윈은 천년 넘게 살아남았다. 섞이는 것이 불순하다고 생각되나 대부분 강한 생명력을 지닌다. 다소 이질적이고 무분별해 보이더라도 유연하게 받아들이면 새로운 풍습과 규범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는 예전에도 중국의 명절을 받아들여 우리 명절로 만들어왔다. 이번 핼러윈에는 호랑나비 춤을 추는 조커들이 많이 나타날 거라고 한다. 다른 눈으로 보면 다양한 문화와 포용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김웅 법무연수원 교수·<검사내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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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관중석 앞에서 열린 기이한 경기(미국 워싱턴포스트)”, ‘가장 비밀스러운 월드컵 예선 경기’로 “중계방송도, 팬도, 외신도, 그리고 골도 없었다(영국 데일리메일)”, ‘기괴한 경기’였으며 “경기 결과는 부차적이었다”(독일 축구 전문지 키커).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북한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H조 3차전에 대한 외신들의 표현이다. 29년 만의 축구대표팀 평양 원정 경기가 평창 동계올림픽 때처럼 남북 평화의 물꼬를 틀기를 기대한 것과 너무나 딴판이다.

남과 북, 0-0 비긴 뒤 악수 한국 남자축구대표팀 선수들(흰 유니폼)이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무관중 경기로 열린 북한과의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에서 0-0으로 비긴 뒤 상대 선수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한축구연맹 제공

남측 중계진의 방북을 불허할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날 평양 경기 장면은 상상 이상으로 썰렁했다. 경기 전날 4만명 관중이 구경할 것이라는 북한 측의 귀띔도 지켜지지 않았다. 상대팀을 안방으로 불러들여 무중계·무관중 경기를 하면서 일방적으로 자기팀만 응원하기가 멋쩍었던 것일까? 요아킴 베리스트룀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가 몇 마디 육성과 함께 트위터로 전한, 남북 선수들이 승강이하는 모습은 차라리 정겹게 느껴졌다.

운동 경기는 원래 몰래 하는 법이 없다. 관중은 경기의 흥미를 더 하는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북한에는 무관중 경기가 낯설지 않다. 2005년 3월 김일성경기장에서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과의 경기 중 북한 선수가 퇴장당하자 관중이 항의하며 이란 선수들을 위협했다. 이로 북한은 ‘무관중 경기’ 징계를 받아 홈에서 할 예정이던 일본과의 경기를 제3국인 방콕에서 치렀다. 

축구 경기 열기가 갈수록 뜨겁다. 월드컵이나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등 국가대항전은 가히 전쟁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축구에 평화의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평양 경기가 열린 15일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대표팀은 요르단강 서안 알람에서 팔레스타인과 원정경기를 치렀다. 사우디가 이곳에서 경기를 한 것은 처음이다.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국가들은 그동안 이스라엘의 허가를 받는 것을 기피해 팔레스타인과 제3국에서 경기를 치러왔다. 전날 사우디는 이스라엘의 수도인 동예루살렘도 방문했다. 아랍국가들의 대이스라엘 정책이 변하고 있다는 증좌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린 ‘평양 무관중’ 축구가 더욱 아쉽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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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강의하러 간 김에 친구 얼굴 한번 보려고 방문했는데, 바쁜 일처리로 볼이 빨개 있었다. 같이들 마시라며 커피를 사서 넣어주고 뒤돌아섰다. 나는 다음 역까지 한참이나 걸었다. 영혼보다 빨리 달려가는 바쁜 몸들, 쏜살같이 지나가는 차량들. 내뿜는 한숨과 매연에 얼른 이 산골로 돌아오고 싶었다.

구절초가 꽃 잔치를 벌이고 있다. 연보라 꽃송이에 꿀벌들이 달라붙어 쪽쪽대는 소리가 요란도 하지. 10월은 구근 식물 옮겨심기에 적기다. 젖먹이들을 물어 옮기는 어미 개나 고양이처럼 여러해살이식물들을 옮기고 새 보금자리를 지정해준다. 후일에도 내 정원은 꽃과 여러 식물들로 나와 손님들을 기쁘게 맞아줄 것이다. 몸과 영혼이 분리되지 않고 소중히 달라붙어 안전하게 잘 지낼 수 있는 곳. 정신 차리기에 좋은 곳을 사람도 ‘가지고, 가꾸고’ 해야 한다. 하루쯤 시간을 내어 풀을 뽑고, 꽃대를 잡아주고, 따뜻한 국화차를 내어 마시면서 살아야 한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올가 토카르추크는 화가 요안나 콘세이요와 <잃어버린 영혼>이라는 책을 냈다. 너무 바쁘게 산 ‘얀’이라는 이름의 남자 주인공. 어느 날 자신이 누구인지 과거를 깡그리 기억 못하게 된다. 의사에게 찾아갔는데, 병명은 ‘영혼을 잃음’. 2~3년 전에 갔던 데를 찾아가거나 어디 한적한 곳에 기다리면 혹시 영혼이 되돌아올지도. 얀은 변두리 시골에 집을 구해 영혼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어느 날 대문을 쿵쿵 두드리며 영혼이 돌아왔다. 얀은 다시 영혼을 잃지 않고자 시계와 트렁크 따위를 마당에 묻어버린다. 시계자리에선 종모양의 꽃이 자라고, 트렁크에선 호박이 열려 담을 타고 넘어갔다.

그림책이 좋아 침대에 껴안고 꿀잠을 잤다. 내게도 영혼이 찾아온 기쁜 날이었다. ‘하루쯤 시간을 내서 봐요’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사실 내가 조르고 바쁜 그들이 만나주는 세월. 친구도 순위가 있을 텐데, 돈벌이가 시원찮다보니 천덕꾸러기인가봐. 내 영혼이나 자주 만나야지 그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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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서 편찮으시다 보니 부쩍 노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머지않은 내 문제로 여겨진다. 눈이 침침해지고, 무릎이 아프기 시작하고, 걷지도 못하게 되면 어쩌지. 자녀들에게 부담 주긴 싫은데 부부가 모두 아프면 어떻게 생활해야 하나. 생각이 꼬리를 문다. 친구들을 만나도 부모님 안부를 서로 묻다가 자연스럽게 노후 걱정으로 화제가 옮겨간다. 준비되지 않은 ‘100세 시대’는 기대보다는 불안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최근 노후와 관련된 몇 가지 뉴스에 유독 눈길이 갔다. 노인돌봄서비스가 내년부터는 개별 노인의 욕구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로 개편된다는 것, 복지부와 국토교통부가 협업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주거정책’ 토론회 개최, 각 지역의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 케어)’ 시범사업 소식 등이다.

‘AIP(Aging In Place, 살던 곳에서 나이 들기)’는 세계 노인복지 정책의 보편적 흐름이다. 거동이 불편해지더라도 무조건 시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최대한 살던 집에서 필요한 돌봄서비스를 받으며 생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삶의 주도권을 노인 스스로 갖게 하자는 철학이 깔려 있다. 앞에서 열거한 일련의 기사들을 보면 우리 사회도 이 방향으로 복지의 축이 옮겨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7년도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노인들의 절반 이상(57.6%)이 ‘거동이 불편해도 현재 살고 있는 집에 계속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필요한 돌봄을 받기 힘들어 많은 노인들이 요양시설에서 상당기간을 보내다 생을 마감하는 것이 현실이다. 전체 노인의 23.7%만이 자녀와 같이 살고 있고, 자녀와 같이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15.2%뿐이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은 가족과 자녀의 부양의무로 여겨지던 노인 돌봄에 국가가 본격적으로 나선 획기적인 변화였다. 가족 부담은 상당부분 덜었지만, 운영 대부분을 민간에 맡기고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노인들이 원하는 서비스보다는, 공급자 위주의 획일적이고 비용을 줄인 값싼 돌봄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가족의 손을 떠난 돌봄엔 공백이 생기기 시작했다. 개개인의 상황에 맞는 다양한 돌봄이 이뤄지지 않으니, 몸이 불편하면 내키지 않아도 시설부터 찾게 된다.

생각을 한번 바꿔보자.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보험으로 지급하는 하루 3시간의 방문 요양서비스 대신, 하루 3끼 식사를 배달해 주고, 한 달에 2번 병원 동행, 청소는 1주일에 2번처럼, 개인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를 상담하고 지원받을 수 있다면? 가까운 곳에서 공공의료를 받을 수 있고, 식사와 세탁, 청소 등 기본적인 생활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주지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묵을 수 있다면? 이런 서비스가 있다면 우리 노후의 삶은 훨씬 달라지지 않을까. 상상이 아니다. 실제 여러 나라에서 각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민간·공공의 노인 복지 서비스들이다.

외국에선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된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한국에선 이제 막 첫걸음을 뗐다. 방향만 설정했을 뿐이다. 어떤 지원을 어디에서 받을 수 있을지,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조차 막막한 상황이다. 상담의 지역거점부터 빨리 구축해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소비자들의 수요를 읽은 고급 요양원, 고급 실버타운 등 ‘시장’이 먼저 움직이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 의료비, 노후생활비로 적어도 몇 억원이 든다고, 첫 월급을 받으면서부터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고 보험사들은 협박에 가까운 추산치를 들이민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어른대는 노후의 그림자 속에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지난해 14.8%를 차지했고, 2026년에는 다섯 명 중 한 명이 노인(20%)인 초고령사회가 예측된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도 내년부턴 고령인구(65세 이상)로 진입한다. 최근 통계청 발표를 보면 1인 가구 비중은 점차 늘어 2047년 37.3%로 최다가 된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가족이 몇 명이든 노인문제는 우리 모두의 미래다. 고급 실버타운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들을 양질의 보편적 서비스로 끌어올 방법을, 우리가 보내고 싶은 노후를 하루라도 빨리 논의해야 한다.

기력이 쇠하고 병들어도 어딘가에 ‘맡겨지는 대상’이 아니라, ‘품위를 갖춘 인간’으로(<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중), 내가 살던 곳에서 살던 방식대로 나이 들고 싶다. ‘돈이 효자’가 되어선 안된다. 누군가의 지갑을 불리는 각자도생의 시장이 아닌, 우리의 노후를 튼튼히 하는 지역의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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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탈북민 보호기간을 현행 5년에서 최대 1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최근 탈북민 모자 아사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민에 대한 정부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통일부는 16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탈주민법에 거주지 보호기간이 5년으로 돼 있지만,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탈북민 위기가구 등을 대상으로 거구지 보호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세부규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올 6월 말 현재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 수는 3만3022명에 달한다. 정부는 초기 정착을 돕기 위해 5년간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정착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고 신변을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7월 말 서울 임대아파트에서 탈북여성 한모씨(42)와 아들(6)이 굶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초기 지원에 초점을 둔 제도의 맹점이 드러났다. 탈북민들을 사회 적응도에 따라 평가해 보호기간을 늘리고 좀 더 세심히 살폈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비극이었을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은 바람직하다.  

하나 보호기간을 늘리는 정도로 끝날 문제는 아니다. 탈북민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남북하나재단의 지난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민 직업유형 중 단순노무종사자 비율(22.5%)이 가장 높았고, 임금근로자 중 3년 이상 근속한 비율은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북한에서 일류 대학을 나오고 전문성도 갖췄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다. 북한에서 의사였던 한 탈북민이 청소용역 업체에서 일하다 건물에서 실족사한 일도 있다. 가족들은 그가 “남한의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차별받는 풍조를 가장 힘들어했다”고 했다. 적지 않은 탈북민이 한국에 들어왔다가 제3국으로 떠나거나 아예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이런 현실을 웅변한다. ‘탈북민 디아스포라’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자녀들에게까지 차별이 대물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찾은 한국 땅을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다. 

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이자 통일의 시험장’으로 불린다. 탈북민에 대한 포용은 분단 극복과 통일을 위한 예비과정이다. 탈북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북한 주민들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탈북민들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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