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순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두 달 후인 10월19일부터 27일까지 전남 여수·순천에서 피비린내 나는 학살극이 벌어졌다. 오는 19일은 그 비극이 일어난 지 71주년이 되는 날이다. 

수많은 민간인이 아무런 재판도 없이 초등학교 운동장이나 해안 절벽, 산기슭에서 처형됐다. 모두 ‘빨갱이’로 몰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누가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 왜 죽어야만 했는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진실’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심지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여수·순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눈총을 이 지역 사람들은 대놓고 받아야 했다. 

이 같은 특정 지역 따돌림은 ‘사회적 천형’으로 남아 아직도 아픈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그래도 그날의 행적들이 이제 ‘여순항쟁’으로 재평가되고 있어 다행스럽다. 여순항쟁은 ‘대구 10월’(1946년)과 ‘제주 4·3’(1948년), 4·19혁명,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등과 역사적 고리로 이어져 있다.

여순항쟁은 제주 4·3과 더불어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 무력봉기이자 대중운동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제주 4·3이 없었으면, 여순항쟁도 없었다. 여수 주둔 14연대가 이승만 정부의 제주도 진압명령에 반기를 들지 않고 그대로 제주로 건너가 학살명령을 실행했다면, 정부군의 대규모 초토화 작전에 따른 그 아픈 ‘여순항쟁’은 없었을 것이다. 또 14연대의 단독선거·단독정부, 분단거부운동을 지역사회가 수용하지 않았더라면, 14연대가 지역사회와 결합하지 않고 지리산으로 바로 입산했더라면 단연코 ‘여순항쟁’은 없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제주 4·3의 주장이 정당한 것이라면 여순항쟁도 정당한 것이며, 5·18의 진압이 부당한 것이라면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여순항쟁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여순항쟁의 진실을 외면하다 ‘동포 학살’이라는 국가 공권력의 일탈을 다시 보게 됐다. 여순항쟁 발발 32년 후인 1980년, 광주시민을 학살하라는 부당한 명령에 복종한 군대가 광주를 처참히 유린했다. 바로잡지 못한 역사가 반복된 것이다.

‘그날의 여순’을 언제까지 놔둘 것인가. <이충무공전서>를 보면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란 말이 있다.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당시 여수·순천은 이충무공과 더불어 왜적에 포위된 채 병기, 병참, 병력 일체를 자급자족하며 임진왜란 7년을 죽기살기로 싸운 ‘구국의 성지’다. 그때 이곳 목을 지키지 못하였다면, 오늘의 대한민국 존재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여수·순천은 그런 자부심과 애국심으로 여순항쟁에 참여했다. 그런 시민들을 ‘킬링필드’나 ‘동티모르 학살’처럼 야만적으로 학살했다. 무려 1만1131명(1949년 집계)이 희생됐다. 당시 미 군사고문단 한 명은 “여순 진압은 약탈과 강간이었으며, 의심할 것도 없이 이 과정은 가장 난폭한 꿈이 이루어지듯이 진행됐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여순사건특별법은 16·18·19대에 이어 20대 국회에 4번째 상정됐다. 2019년 1월3일 현재, 5개 법안이 139명의 의원 동의로 발의됐다. 그러나 최초 발의에서부터 2년6개월째 행안위에서 잠자고 있는 중이다. 71년 통한의 세월 동안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조차도 애써 외면하는 것은 나라의 도리가 아니다. 

이제 남북 분단의 마지막 남은 민족사의 금기요, 과제가 여순항쟁이다. 제주 4·3은 2000년 특별법이 제정되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되는데, 왜 여순항쟁은 특별법 제정이 안되는가. 여순은 제주 4·3의 연장선에서 발생한 역사인데도 말이다. 민족공동체가 여순을 제대로 기억하고 기념했더라면 이렇게 사회적 천형처럼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 첫걸음을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에서 출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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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의 이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모 프랜차이즈 떡볶이 가게의 배달 일을 하는 스무 살 조카가 큰 교통사고가 났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문의였다. 청년은 고교를 졸업하고 배달노동자가 되었다. 다행히 떡볶이 가게 사장은 좋은 고용주였다. 청년을 인격적으로 대했고 청년도 첫 사회생활의 멘토로 여기며 잘 따랐다. 그런데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청년은 근무를 한 지 석 달이 넘어섰을 때 사고가 났다. 배달을 하러 가다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청년은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다가 파란불이 켜지자마자 힘차게 오토바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 찰나에 노란불이 켜졌는데도 교차로를 빨리 통과하고 싶었던 반대편 차선의 마을버스가 속도를 내며 달려들었고 청년의 몸은 떡볶이와 함께 하늘로 붕 떴다 바닥에 내리꽂혔다. 떡볶이가 쏟아지고 떡볶이보다 더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아주 더운 여름날이었고 청년은 헬멧을 쓰지 않고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내려왔을 때는 계절이 바뀌어 추석 명절이었다. 사고는 마을버스 기사의 100% 과실로 나왔고 마을버스공제회에서 입원치료비는 나올 터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지난한 합의 과정이 남았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내려오자 마을버스 기사가 매일같이 찾아와 우선 형사합의만이라도 해달라고 간청했다. 피해자 측에서 형사고소를 하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써줘야만 다시 마을버스를 몰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의 가족도 마을버스 기사를 굳이 경찰에 넘길 생각은 없었다. 모두 시간에 쫓겨 먹고살자니 벌어진 일이어서 크게 원망할 수도 없었다. 동네 사람들의 발품을 덜어주는 마을버스는 배차시간이 짧아 매번 시간에 쫓기다 보니 일반 시내버스보다 더 무리한 운전을 하게 된다. 사고를 낸 마을버스 기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헬멧을 썼으면 덜 다쳤을 텐데 하며 말을 흐렸다. 청년도 내내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더웠던 날씨를 탓하자니 헬멧을 쓰지 않은 후과가 너무 컸다. 

여기저기 물어 산업재해보상보험을 신청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대로 전했다. 또 배달노동자조합인 ‘라이더유니온’에 상담해보자고도 했다. 너무 젊고 눈동자의 위치가 바뀔 만큼 크게 다쳐 장애나 후유증이 남을 수 있기에 인생이 걸린 문제이니 길게 봐야 한다는 주변의 우려도 전했다. 하지만 업주는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악덕업주여서가 아니라 워낙 며칠 일하다 그만두는 배달노동의 특성상 매번 가입을 할 시간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규모가 있는 기업이 아니고서야 영세 업장은 업주가 세무와 보험 관련 서류업무도 직접 해야 한다. 하지만 급한 건 떡볶이를 파는 일이다 보니 차분히 앉아 컴퓨터를 보면서 해야 하는 일들은 늘 후순위로 밀렸다. 청년에게 산재 신청 용의가 있으면 그동안 내지 않은 산재보험 납입금을 내고 신청을 돕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정작 산재 신청을 포기한 이는 청년이었다. 빤한 형편에 일시금으로 들어오는 합의금이 필요해서였다. 나는 더는 산재 신청을 강권하지 못했다. 

얼굴도 모르는 남이기도 하고 어쩌면 그 합의금이 내내 아쉬울지도 모를 테니, 이래저래 이 일에 손을 뗄 핑계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정말 남의 일이 되었다. 프랜차이즈 떡볶이집 사장님과 마을버스 기사, 그리고 스무 살의 배달노동자. 가장 낮은 노동의 세계가 뜨거운 여름날 세게 한 번 맞부딪친 이야기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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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에프엑스’의 전 멤버 설리가 지난 14일 안타깝게도 25세의 꽃다운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내게는 그의 극단적 선택이 같은 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임 발표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그 충격의 차이는 단지 직책과 생명의 차이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세대, 일상, 젠더의 차이였다. 어린 나이에 수년 동안 지독한 남성 악플에 시달려야 했던 가련한 삶. 데뷔 때부터 ‘에프엑스’의 음악을 좋아했고, 그의 당당함을 응원했다. 오랫동안 누리꾼의 악플에 시달려 극심한 우울증을 앓은 그의 고통을 알고 있었다. 

여성 뮤지션으로서 자신이 생각한 대로 당당하게 살고 싶은 것이 왜 비난을 받아야 할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보다 더한 시련이 있을까? 그는 그렇게 죽었다. 아니 가수이자 배우로서 ‘연예계’라는 잔인한 도시에서 더 이상은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스스로 생을 멈추었다. 

그의 사망 전날 보았던 영화 <조커>의 배경인 고담시와 주인공 아서 플렉이 자꾸 떠오른다. 비정한 고담시의 외로운 무명 코미디 배우 아서 플렉이 내뱉은 대사들은 마치 설리의 내면의 독백과도 같다.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 “정신질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남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척해야 하는 것이야.” “난 살면서 단 1초라도 행복했던 적이 없어.”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내 죽음이 내 삶보다 가치 있기를.” 

가수 겸 배우인 설리. 이충진 기자 hot@khan.kr

아서 플렉의 대사를 설리에게 대입해보았다. 미쳐 돌아가는 고담시처럼 극한경쟁, 감정노동, 극단적 악플에 시달리는 한국 연예계는 비극적이기보다는 차라리 코미디에 가깝다. 마음의 아픔을 고백하기는커녕 오히려 관객을 향해 미소를 지어야 하는 위선의 시간들, 유명하지만 나는 과연 행복한가를 수없이 질문하게 만드는 잔인한 아이돌시장, 이해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린 여성 아이돌들의 내면의 아픔들, 악플에 시달리면서 삶보다 죽음을 가치 있게 선택한 ‘절망적인 소망’이란 역설. 설리의 황망한 죽음 소식을 접하면서 이런 상상을 해본다.

아이돌 스타가 되려면, 감정노동과 악플은 평소의 감기처럼 달고 다녀야 한다는 아이돌의 숙명은 특히 여성으로서 견디기 힘든 삶의 무게이다. 

아이돌이기 이전에 여성주체로서 당당해지기를 원했던 설리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악플은 마음의 심장을 찌르는 백정의 칼날이 되어 그에게 향한다. 아마도 그러한 악플과 공생하는 선정적인 연예 저널리즘이 문제의 발단일지도 모른다. 악의적인 기사는 악플을 낳고, 악플은 다시 악의적인 기사를 재생산한다. 그리고 그의 연예활동을 오랫동안 지원했던 소속사 역시 근원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열일곱 살에 데뷔할 당시 ‘에프엑스’의 막내였다. 연습생 시절부터 과도한 경쟁에 시달려왔던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들, 그것들을 해소할 수 있는 휴식과 대화가 충분했는지 묻고 싶다. 그 어느 당사자들보다 소속사 식구들이 가장 마음 아프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렇게 떠나는 일이 없도록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설리의 죽음을 개인의 극단적인 선택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그의 죽음은 그와 동시대를 함께 사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지난 화요일 밤, 문화방송 <PD수첩>에서 모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의 조작과 부정행위의 의혹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이게 정말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이고, 허탈하다. 

모든 오디션은 각본에 불과하고 팬들의 투표 역시 부질없이 조작된 것이다. 그렇게 부정하게 선발된 멤버들은 그 방송사의 소속사로 묶여서 오랜 기간 동안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노예처럼 일하다가 사라진다. 설리의 죽음의 한 징후를 보는 것 같다. 

우정과 배려가 없는 잔인한 사람, 잔인한 시스템, 잔인한 자본, 잔인한 세상. 이 잔혹한 세상을 떠난 설리에게 말하고 싶다. 죽음이 삶보다 더 값질 수 있도록 하늘나라에서는 부디 행복하기만 바랄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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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뒤 한국 정부를 대표해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참석하는 이낙연 국무총리는 한·일관계에서 특별한 존재이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판결 이후 정부의 움직임을 지켜보다가 이 총리의 발언을 보고 강경 대응 방침을 굳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총리가 지난 5월 편집방송인협회 토론회에서 “대법원 판결에 정부가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한 것에서 한국의 입장을 읽었다는 것이다. 이 총리의 발언을 한국의 대일본 정책의 신호로 봤다는 얘기다. 이 총리는 일본을 읽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 차례 일본 관계자들을 만난다. 직접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묻는 일본인 취재원도 여럿 있다. “한·일 갈등의 시기에 이 총리보다 더 적임이 있기도 어렵다”는 표현이 딱 맞다. 비슷한 평가를 받은 사람이 400년 전에 있었다. 임진왜란 후 조선과 왜국 간 국교 정상화의 물꼬를 튼 사명당 유정(사명대사)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며 밝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임진왜란은 16세기 말 동북아 판도를 바꾼 국제전쟁이었다. 그런 만큼 전쟁이 끝난 뒤 관계를 회복하는 일 역시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였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승려인 유정이 사절단 대표로 뽑힌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승병장이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일본 내 평판에 기인한 바가 컸다. 유정은 전란 초기 왜장 가토 기요마사와 4차례 만나는 과정에서 명과 왜의 ‘조선 분할 통치’ 음모를 알아채 조정에 보고한 공로도 세웠다. 그러면서 일본 진영에서 보여준 당당한 처신과 인품으로 일본의 호감을 샀다. 당대의 한 시인은 “우리나라에 3정승이 있다고 말하지 마라. 나라의 안위가 모두 한 승려의 귀환에 달렸다”는 말로 그의 일본행에 대한 조선의 기대를 표현했다. 이 총리처럼 유정도 왜국으로부터 신뢰받는 발신자였던 셈이다. 

지금은 유정이 조선과 왜국 간 국교 재개를 이끌었다는 평가가 역사적으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1604년 도일하는 유정에게 당대 조정이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왜에 대한 정탐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왜국을 장악하고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강화 의지와 일본 내 정치적 위상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강화 교섭은 그다음이었다. 하지만 유정은 쓰시마를 거쳐 왜의 수도인 교토에 모두 4개월간 머물며 정탐은 물론 강화 협상까지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도쿠가와와는 두 차례 면담했다. 나머지 시간은 시와 붓글씨로 승려, 관료들과 교유했다. 소프트파워를 이용해 일본의 호감을 산 것이다. 결국 이런 교유를 통해 도쿠가와 막부와 의견을 교환한 끝에 수교 재개 원칙에 합의하고 포로 송환도 관철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 한국의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선두를 달리는 이 총리에 대한 일본의 관심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정의 귀국 후 조선과 왜국 간 수교가 금세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후 2년 가까운 곡절을 겪고서야 조선통신사가 탄 배가 왜국으로 가면서 공식적으로 수교가 이뤄졌다. 이 총리 방일로 한·일 갈등이 곧 풀리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이 총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 중심은 징용 배상금 현금화를 위한 일본 기업 재산의 몰수와 다음달 발효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조치의 시행이다. 두 사안이 현실화할 경우 한·일관계는 물론 한·미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한·일 갈등을 풀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내 기업으로 하여금 선제적으로 배상금을 지불토록 함으로써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한 몰수를 해결하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거기에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정이 협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상당한 재량을 갖고 있었던 덕분이다. 유정은 ‘공식적 임무를 띤 비공식 사절’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유연하고 담대하게 협상에 임했다. 유정과 같은 접근이 이 총리에게도 필요하다. 2박3일 동안 일본 정·재계 인사들을 두루 만나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아베 총리의 속마음도 듣고 와야 한다. 그러려면 이 총리가 재량을 갖고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 유정의 품에 국서가 없었던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도 친서를 보내는 것보다 재량권을 주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한·일은 임진왜란처럼 7년 동안 전쟁을 한 사이가 아니다. 한·일 양국 모두 이 총리의 방일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유정의 방일 때와 가장 다른 점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대조선 강화 의지가 분명했지만 아베 총리의 관계개선 의지는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7년 전란으로 악화될 대로 악화된 양국 간 화해를 위해 현해탄을 건너던 유정의 결의와 전략을 이 총리는 새길 필요가 있다. 

*하우봉 전북대 사학과 명예교수의 논문 ‘임란 후 국교재개기 사명당 유정의 강화활동’(역사학보 173집, 2002)을 참조함.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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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 자녀들을 자신의 논문에 공저자로 올린 대학교수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10여건은 부당하게 이름을 올린 연구 부정행위로 확인돼 입학 취소 등의 조치를 받았다. 나머지 논문들도 부당한 저자 표시 검증과 대학입시 활용 여부를 확인 중이다. 교수 미성년 자녀들의 논문 공저자 등재나 대입 활용은 사실상 자녀에게 논문을 ‘상속’한 연구윤리 실종이다.

17일 교육부는 제14차 교육신뢰회복추진단 회의를 열고 서울대 등 대학 14곳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앞서 진행된 3차례의 실태조사에서 논문 부정 사례가 많거나, 부정 사례 은폐 의혹이 제기됐던 대학들이다. 감사 결과 115건의 미성년 공저자 논문 사례가 추가로 발견됐다. 감사대상이 아닌 대학에서도 130건의 미성년 논문이 더 접수돼, 지난해 발표한 549건까지 더하면 현재 확인된 미성년 공저자 논문은 총 794건이다. 이 중 서울대 ㄱ교수는 부정한 공저자 논문을 통해 자녀가 강원대 수의학과에 편입학한 사실이 확인돼 입학취소 처리됐다. ㄱ교수 자녀는 지난해 서울대 수의학과 대학원 입학과정에서의 의혹도 제기돼 검찰 수사를 받게 된다.

교육부의 미성년 공저자 논문 실태조사는 2년 전 시작됐다. 언론 보도로 연구윤리 위반 가능성이 지적된 이후다. 2017년 연말부터 지난해 5월까지 3차례에 걸쳐 대학 자체 전수조사가 이뤄졌고, 지난해 이를 취합한 1차 발표가 있었다. 이번 특별감사에서는 3차례 대학 자체조사에서 해당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허위 사실을 보고한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교육부는 매년 미성년 공저자 논문 실태를 점검할 계획이다. 아울러 해당 교원에 대한 징계시효를 늘리는 법령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현행 법령상 교원 징계 시효가 3년이어서 연구 부정행위로 판명돼도 징계할 수 없었던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수 자녀에 대한 논문 공저자 등재, 대학입시 활용은 부모 지위를 이용해 자녀 스펙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국민 상식에 어긋난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검증하고 각 대학 연구자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교육신뢰회복추진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잘못을 뿌리 뽑아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교수사회도 교육·사법 당국의 적발에 앞서 윤리실종의 오명을 씻는 자정노력을 벌이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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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판사·검사·국회의원·장군·경무관 이상 경찰 등 6000여명의 비리를 수사하는 기구다. 살아있는 권력,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성역 없이 수사하자는 것이다.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쪼개는 검찰개혁의 핵심이기도 하다. 죄지은 자는 두려울 것이지만, 죄 없는 사람은 걱정할 까닭이 없다. 모두가 찬성이다. 이제껏 공수처 설치에 반대해온 검찰도 동의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딱 한 군데, 자유한국당만 반대하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문재인 게슈타포를 만들어 친문 독재의 끝을 보려는 것”이라고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공수처가 만들어지면 이 정권의 비리와 부패는 영원히 묻힌다. ‘친문 무죄, 반문 유죄’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10월18일 (출처:경향신문DB)

여야는 지난 16일 3당 원내대표와 각 1인이 참여하는 ‘2+2+2’ 회의에서 패스트트랙에 오른 검찰개혁 관련 법안을 논의했지만 현격한 의견 차이만 확인하고 끝났다. 한국당은 공수처를 ‘장기집권 사령부’로 규정하며 절대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한마디로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공수처법안은 발의됐다 폐기되기를 반복해왔다. 시민 80% 이상이 공수처 신설에 찬성하고 있다. ‘조국사태’는 견제받지 않는 검찰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케 했다. 그런데 시민의 대표라는 의원들은 시민의 입법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백번 양보해서 야당 입장에서 새로운 수사기구가 만들어지면 야당 탄압에 활용되지 않을까 우려할 수 있다. 과거 독재정권에서 대통령이 사정기관을 좌지우지하던 때도 있었다. 여당 내에서도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 지금 국회에는 민주당안과 바른미래당안 2개의 공수처 설치 법안이 올라가 있다. 여야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공수처의 중립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더 촘촘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17일 “10월29일부터 본회의에 검찰개혁법안을 상정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며 “남은 13일 동안 한국당이 전향적인 제안을 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물론 한국당까지 포함해 합의안을 만드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원만하게 법안 처리에 합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지난 4월 패스트트랙 공조 정신을 되살려 검찰개혁을 완성하는 수밖에 없다. 다시 오기 힘든 검찰개혁의 기회를 이번엔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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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7일 긴급 경제장관회의를 소집,  현안 및 대응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대통령이 주요 경제부처 장관들을 불러 회의까지 주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는 경제를 총괄하는 홍남기 부총리가 미국 방문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그만큼 경제 상황이 엄중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급격히 식어가고 있다. 미·중의 무역전쟁 등으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확대됐다. 10개월째 이어지는 수출 하락세는 개선 기미가 안 보인다. 경제성장률은 ‘2% 지지선’을 지켜낼지 의문일 정도로 하락하고 있다. 투자·소비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최근엔 물가마저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일본형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일 간 경제 갈등 역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시장을 불안케 하는 요소 중 하나다. 고용 사정이 호전되는 분위기가 있지만 일자리 핵심인 40대와 제조업 고용여건은 여전히 최악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경제를 챙기는 것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당연한 일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를 기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회의에서 “지금은 경제와 민생에 힘을 모을 때로, 정부가 중심을 잡고 경제활력과 민생안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출기업 지원·기업투자환경 강화를 통한 민간활력 제고’와 ‘확장적 재정운용, 고용·사회안전망 강화 등 정책 일관성 유지’ ‘정부 간, 정부와 기업 간 협력 강화를 통한 산업·인구구조 대응 및 상생 생태계 구축’ 등을 주문했다. 민간활력을 높이기 위한 공공주택과 광역교통망 조기 공급 및 착공, 교육·복지·문화 인프라 구축 등 건설경기 활성화도 언급했다. 

대통령의 당부는 엄중하고 절박하다. 각 부처는 이날 제시된 정책들을 차질없이 추진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단 건설투자를 통한 경기부양은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경제에 독이 될 수도 있는 만큼 꼼꼼하게 따져보면서 집행할 일이다. 정부 못지않게 중요한 곳이 국회다. 20대 국회의원 임기가 8개월도 채 남지 않은 지금 국회엔 ‘기업지배구조’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탄력근로제’ 등 수많은 개혁 및 민생 관련 법안이 잠자고 있다. 최근엔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현안들도 쌓이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가 직면한 난관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힘을 모아도 극복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판국이다. 그럼에도 야당들이 민생·개혁 법안을 정쟁의 볼모로 삼고 있으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민생을 돌보지 않는 정치는 존재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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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물러나면서 두 달 넘게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조국 정국은 일단 끝이 났다. 문재인 대통령, 정치권, 법무부·검찰이 보여주는 ‘포스트 조국’ 행보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키워드는 검찰개혁이다. 장관 대행인 법무차관을 청와대로 부른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직접 챙길 뜻을 분명히 했다. 언론에 사전에 일정을 알린, 사실상 대국민 메시지다. 검찰개혁을 법적·제도적으로 완성하는 역할을 할 정치권은 그 방안을 두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법무부는 법무부대로, 검찰은 검찰대로 검찰개혁안 마련과 실행에 들어갔다. 다들 검찰개혁의 ‘속도전’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법무부에 ‘이달 중’ 방안을 마련하라고 시한을 박았고,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29일부터 검찰개혁안의 본회의 안건 상정이 가능하다며 야당을 재촉한다. 시대적 과제가 된 검찰개혁을 한시라도 빨리 마무리짓고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시간은 유한하다. 검찰개혁의 완수는 해를 넘기면 힘겨워진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는데, 검찰개혁에 대해 이렇게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적이 없었다. 검찰개혁은 무엇보다 조국 정국을 거치며 시민들의 명령이 됐다. 그럼에도 총선 국면이 본격화하면 뒷일은 어찌될지 모른다. 당·청이 긴박하게 움직이는 이유일 터다. 한데, 검찰개혁안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을 두고 민주당은 “국민의 명령”이라며 드라이브를 걸지만, 자유한국당은 “대통령 마음대로 수사청”이라며 호응할 생각이 별로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검찰개혁 입법이 서둘러 매듭지어진다고 해도 사회가 조국 정국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다음달에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돈다. 지금 내치·외치 어느 것 하나 순탄하지 않다. 정부 출범부터 몰아친 적폐청산 작업과 한반도 상황은 국정운영의 큰 틀을 지탱했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잘한다고 평가받는 국정 분야다. 하지만 적폐청산이 길어지면서 피로도가 늘고, 북·미 협상이 삐걱대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멈춰 섰다. 집권 전반기 서민들은 먹고사는 문제가 이전보다 나빠졌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문재인 정권의 위기라고 불릴 만한 ‘큰일’은 없었다. 조국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적잖은 이들이 반대층으로 돌아서거나 중도층·관망층으로 옮겨갔다. 조국 사퇴 이후 국정 지지도가 반등했다는 여론조사도 나오지만 여전히 40% 초반이다. 이 과정에서 뼈아픈 것은 문 대통령에 대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경향신문·한국리서치 여론조사(9월29일~10월1일 실시)에서 ‘문 대통령의 대국민 소통 능력’에 대해 ‘잘한다’는 긍정평가(48.0%)는 ‘잘 못한다’는 부정평가(49.6%)에 밀렸다. 2년 전 경향신문·한국리서치 조사에서 긍정평가가 81.4%였으니, 그야말로 곤두박질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기 “국민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했지만 대통령의 손을 먼저 놓아버린 국민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조 전 장관의 개인적 흠결 때문만은 아니다. 문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의 거취를 둘러싸고 여론이 격렬하게 나누어졌음에도 ‘조국 수호’를 요구하는 지지층의 얘기만 듣는 태도였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대국민 신뢰 회복을 하지 못하면 국정운영의 동력을 살려가기 어렵다. ‘국민 모두의 정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문 대통령의 포부는 결국엔 “꿈같은 희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서초동·광화문에서 확연하게 갈린 시민들의 외침이 직접민주주의 행위이지 국론분열이 아니라던 문 대통령도 결국 “국민들 사이에 많은 갈등을 야기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문 대통령은 경제와 민생을 국정의 앞순위로 끌어올리며 국면 전환에 분주하다. 대기업 행사에 잇따라 참석하고 경제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것도 그런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으로 이해된다. 경제와 민생 문제는 어느 정부에서건 국정의 중심 과제였던 만큼 문 대통령이 이를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정·정의의 문제에 대한 대책도 적극 검토돼야 한다. 한국 사회의 불공정성이 새삼스럽진 않지만 조국 사태가 불공정 구조에 대한 사회적 환기를 시켰고, 특히 청년층의 분노가 컸다. 향후 국정운영은 대국민 공감 속에서 이뤄지기를 바란다. 국론이 하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국민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은 부단하게 이뤄져야 한다. “국민이 앞서가면 더 속도를 내고 국민이 늦추면 소통하면서 설득하겠다”던 문 대통령의 말이 떠오른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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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티칸에서는 10월6일부터 27일까지 ‘아마존 지역을 위한 특별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가 열리고 있다. ‘아마존, 교회와 통합 생태(integral ecology)를 위한 새로운 길’을 주제로 한 이번 시노드에는 아마존 9개국의 주교들을 중심으로 원주민과 전문가들이 참석하고 있다. 2년 전, 프란치스코 교종은 위기에 처한 아마존 원주민과 열대우림을 위해 새로운 길을 찾는 시노드를 소집한다고 밝혔다. 교회 현안이 아니라 이번처럼 ‘아마존’이라는 특정 지역에 관한 시노드를 개최하는 것은 가톨릭교회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아마존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종의 관심과 우려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학적 원리에 기초해, 프란치스코 교종은 자연생태계를 환경의 차원만이 아닌 경제, 사회, 문화, 일상생활의 차원에서 파악하는 “통합 생태”를 제안한다(<찬미받으소서>). 통합 생태의 관점에서, 아마존의 열대우림과 원주민은 불가분의 공동 운명체다. 지난 7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마존의 불’은 그곳의 열대우림을 놀라운 속도와 규모로 집어삼키고 있다. 올해 브라질 아마존에서는 근 8만건에 달하는 화재가 발생했다고 한다. 지난해에 비해 84%나 늘어난 불은 주로 축산업에 필요한 목초지를 확보하기 위한 방화로 일어났다.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쇠고기 수출국이다. 열대우림의 위기는 곧 원주민의 위기를 뜻한다. 아마존의 일부로 살아온 원주민들은 숲이 소실되면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원주민의 저항은 생명의 위협을 불러오기 일쑤다. 이렇게, 아마존을 가장 잘 알고 돌볼 수 있는 사람들이 사라진다. 

아마존 열대우림 소수민족 대표들과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이 7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서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시노드)의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개막 미사에서 최근 발생한 아마존 대화재를 언급하며 아마존 보호를 위한 성직자들의 과감한 행동을 촉구했다. 바티칸 _ AFP연합뉴스

아마존 열대우림의 파괴는 원주민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위기다. 기후위기 시대에 아마존은 거대한 탄소 저장소로써 지구온난화를 억제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 열대우림이 불에 타 없어지면서 머금고 있던 탄소를 뱉어낸다. 숲을 없애고 들어선 축산업도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기온 상승은 가뭄 발생을 촉진하여 땅을 건조하게 하고, 마른 땅은 불에 더 취약해진다. 오늘 우리가 아마존의 악순환에서 목격하는 것은 “환경위기와 사회위기라는 별도의 두 위기가 아니라, 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다(<찬미받으소서>). 

아마존의 불은 형태만 달리하여 세계 곳곳을 삼키고 있다. 이 불을 지피고 퍼뜨리는 것은 제어될 줄 모르는 인간의 탐욕이다. 끝없는 경제성장과 개발의 환상에서 깨어나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이 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불이 초래한 기후위기는 산업화 이후 지금까지 인간이 걸어온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찾으라는 이 시대의 종말론적 징표다. 과학은 분명하게 말한다. 지금의 길은 인간이 자초한 ‘종말’로 가는 길이고, 종착지는 그리 멀지 않다고.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은 과학이 던지는 이 선명하고도 섬뜩한 경고에도 막무가내다. 눈을 감고 보려 하지 않는다. 귀를 막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 ‘대안’을 찾자는 제안에는 종종 어떻든 현재의 삶의 방식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속내가 들어 있다. 하지만 새로운 길은 오래된 길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삶의 방식의 근원적 전환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탐욕에 물들지 않은 맑은 눈은 현실을 직시하고, 분노하고 항의한다. 기후위기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 초래했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 기술적으로만 해결하겠다고 하는가(그레타 툰베리). 아무 일도 없는 척, 지금의 길을 계속 가겠다는 기득권의 위선과 기만을 집어치우라는 질책은 새로운 길을 찾자는 절박한 호소이기도 하다. 이 질책과 호소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아직은 우리가 희망을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부끄러움이 우리를 움직인다면 말이다. 우리가 그만큼은 성숙했으면 좋겠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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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변증법은 ‘부정의 부정의 법칙’이다. 원래 있던 것(正)은 다른 형태로 부정(反)되는데, 이 다른 형태는 다시 부정되어 원래의 형태(合)로 돌아간다. 그런데 원래 있던 것과 부정되어 원래 형태로 돌아간 것은 같지 않다. ‘지양(止揚)’을 통한 발전이 변증법이다. 마르크스는 헤겔 변증법을 역사에 끌어들여 5단계설을 제시했다. 인류 역사가 공산제-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공산주의로 나아간다는 역사발전론이다. 두 사상가가 공유했던 믿음은 ‘역사의 진보·발전’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역사발전론을 더욱 확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게 했다. 고대-중세-근대의 구분도, 로스토의 경제성장 5단계설도 모두 발전사관의 산물이다. 그러나 인류가 발전사관을 추종한 것은 300년도 안된다. 계몽사상가들이 이성과 역사의 발전을 말한 18세기 이후다. 오랜 기간 인류에게 어떤 최종 목적지를 향해 발전해야 한다는 역사의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10월17일 (출처:경향신문DB)

근대 문명사회에서 발전의 기준은 물질의 풍요, 즉 재화와 서비스 확대다. 발전의 척도는 삶의 질이 아닌 양적인 성장이다. 자연을 훼손해 자원을 캐내어 헐값에 넘겨도 국내총생산(GDP)은 오른다. 농민을 강제노역에 동원하고 제공한 임금 역시 GDP에 반영된다. 서로 돕고 배려하는 공동체 삶 따위는 GDP에 계상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발전사관에서 자연환경 보호와 같은 생태적 가치가 배제돼 있다는 사실이다. 생태문명의 시각에서 보면 발전은 수탈, 착취, 파괴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아마존 원주민 카야포 부족의 라오니 메투크티레 족장이 지난 15일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의 아마존 개발을 작심 비판했다. 라오니 족장은 “아마존 숲과 원주민들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며 “벌목과 파괴를 지속한다면 백인들을 포함해 우리 모두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우리 원주민들은 숲과 자연을 통해 숨을 쉰다”며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원한다”고도 했다. 아마존 지키기는 원주민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구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발전사관을 버리고 생태문명으로 전환해야 한다. 모두가 부를 누리는 발전은 없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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