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조국 전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교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판사들이 형사소송의 원칙을 잊고 재판한다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먼저, 재판 중인 피고인은 검사와 대등하다는 원칙이다. 검사가 같은 사건으로 영장을 청구하여 당사자인 피고인을 구속할 수 없다. 기소된 사건과 다른 사건으로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는가? 형사소송법은 ‘1개의 목적을 위하여 동시 또는 수단·결과의 관계에서 행하여진 행위는 동일한 범죄사실로 간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의자 구속에서 수단과 목적 관계에 있는 범죄(가령 주거침입과 절도, 감금과 강간)는 동일한 범죄로 본다는 것이다. 별건 여부를 유추할 수 있는 규정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운데)가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자택을 나와 차로 향하고 있다. 정 교수 구속 여부는 23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서 결정된다. 연합뉴스

정 교수의 혐의 중 재판 중인 사문서 위조와 위조사문서 행사, 업무방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증거인멸은 모두 수단과 결과·목적 관계에 있으므로 같은 범죄로 볼 수 있다. 별건은 허위작성공문서 행사, 업무상 횡령, 허위신고·미공개정보 이용 등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영장청구로 피의자가 아닌 재판 중인 피고인에 대한 별건구속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당사자 대등주의에 비추어 중대한 별건 범죄 등 훨씬 제한되어야 한다.

다음, 무죄추정에서 나오는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이다. 구속의 목적은 증거 확보 및 수사와 재판 절차를 진행하기 위함이다. 반면에 사회활동 등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한다. 형사사법의 효율과 신체 자유 사이에 균형, 즉 비례성이 필요하므로 ① 비례성의 원칙도 실질적인 구속의 요건이다.

구속요건은 ② ‘현저한 범죄혐의’, 기소할 때 요구되는 ‘충분한 혐의’보다 높은 유죄를 받을 ‘고도의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③ 도망이나 도망의 염려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야 한다(형소법 70조). 이미 한 증거인멸은 증거가 확보되어 처벌 여부만 문제되므로 도망과 달리 구속요건이 아니다. 구속이 수사의 편의나 자백, 특히 공범 범죄에 대한 자백 강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없다. 

② 중 허위작성공문서 행사죄는 한인섭 서울대 교수 등 당시 인권법센터의 권한이 있는 자가 공문서를 허위로 작성하지 않았다면 행사도 처벌될 수 없다. 나머지 범죄혐의는 공범인데,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모씨와 같이 약점이 많고, 구속되어 있는 자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어 신빙성 여부가 문제될 것이다. 증거은닉과 증거위조죄는 본인이 한 범죄는 처벌할 수 없으나, 교사하면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 판례이지만 통설은 교사도 처벌을 부정할 정도로 비난 가능성이 약하다. 따라서 다른 요건을 논하기 전 ‘현저한 범죄혐의’가 있는지 의문이다.

③ 중 문제는 증거인멸의 염려이다. 이 사건과 같이 장기간 압수 등으로 증거가 충분히 확보된 경우에는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 공범에게 허위진술을 부탁하려고 한다면 이에 해당되지만 정 교수가 구속된 5촌 조카 조씨에게 허위진술을 부탁할 수 없을 것이다. 딸에 대한 소액의 보조금법 위반은 검찰의 먼지털기와 ① 비례성을 맞추기 위한 초조함을 보여줄 뿐이다.

수사기법의 하나가 공범을 구속해 회유 등으로 다른 공범의 가담 진술을 얻는 것이다. 판사가 지금까지 교과서를 잊어 관행으로 허용되었으나 이제는 용기가 필요하다. 판사가 정치적 논란을 무릅쓰고 원칙의 수호자가 될 수 있을까.

<정한중 |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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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전해 들은 ‘지하철 만행’은 끔찍했다. 지하철 안에서 한 할머니가 너희가 이렇게 입고 다니니까 우리 아들들이 추행이다 뭐다 엄한 소리를 듣는 거 아니냐며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은 젊은 여자를 철썩철썩 때리더란다. 그걸 본 내 지인은 말리려는데, 말은 안 나오고 눈물이 나왔단다. 결국 폭행을 당한 젊은 여자가 경찰에 신고하고, 둘이 어느 역에선가 내리면서 사건은 종결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전해 들으면서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행여 내 딸도 그런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쭈뼛 섰다. 사실 그 노인은 용감무쌍하게 자기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을 뿐, 이 사회가 여자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 노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더 소름 돋았다.

여름이면 내가 다닌 중학교에서는 교복 블라우스 속에 브래지어와 메리야스를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검사하곤 했다. 그 시절 우리의 선생님들이 몸을, 옷차림새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너희들은 여자니까. 여자는 가슴을 보이지 않아야, 속옷을 갖춰 입어야 안전하니까. 그러니까 여자가 몸을 드러내는 것이 위험하다는 가르침 속에는 여자의 몸을 바라보는 남자의 욕구나 욕망은 당연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고등학교 때 윤리 선생님은 대놓고 여자들이 짧은 치마를 입어 성범죄가 일어난다고 했다. 그것이 30여 년 전의 윤리였다.

브래지어가 비친다고 걱정하는 노파심에 내 딸이 있는 걸 어떻게 없는 체하느냐고 대꾸했을 때, 노브라를 당당히 말하는 이들을 볼 때 나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앞에서 속옷의 유무를 검사받는 걸 당연시했던 이들과 다른 당당한 여자들이 태동해 자신의 몸을 주체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 기뻤다. 하지만 바뀐 것은 그들의 용기뿐, 세상은 그대로다. 세상은 여전히 여자의 몸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보고 있으며, 사회적 통념에 순응하지 않는 여자는 거리낌 없이 질타한다. 마치 지하철의 그 노인처럼 말이다. 최근 젊은 연예인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면서 나는 세상에 고분고분했던 내 젊은 시절을 반성했다. 그때 말했어야 했다. 속옷 검사 따위는 때려치우라고.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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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시는 음식을 내세운다지만, 빈은 배출한 인물을 자랑한다. 멀게는 모차르트, 베토벤부터 가깝게는 화가 클림트,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까지 배출한 도시니 그럴 법도 하다. 건축가 오토 바그너도 빼놓을 수 없는 빈의 자랑이다. 빈의 노이슈티프트가세(Neustiftgasse) 40번지에 그가 설계했고 직접 살았던 아파트가 있다. 바그너는 세부적 장식부터 창문의 모양과 크기에 이르기까지 아파트의 모든 층을 동등하게 다뤘다. 다른 층보다 특별히 중요해 보이는 층이 없다. 건물의 모든 층은 높이와 무관하게 동등한 대접을 받는다. 부르주아가 사는 2층과 가난한 사람이 사는 다락방이라는 주거 공간의 수직 분할에 대한 바그너 식의 대응인 셈이다. 그는 주거의 공정성을 고민했다. 빈이 그를 괜히 자랑하는 게 아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빈 음악협회 콘서트홀, 서양 고전음악 애호가라면 반드시 찾고 싶어 하는 성지이다. 공연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연주회의 제일 좋은 좌석은 100유로 이상을 지불해야 확보할 수 있다. 부자가 아닌 이상 큰맘 먹어야 하는 돈이다. 돈이 없으면 예술에 대한 욕망도 단념해야 할까? 빈 음악협회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싸게는 6유로, 비싸도 10유로 정도에 판매되는 입장권도 있다. 도시별 물가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흔히 사용되는 맥도널드의 빅맥세트는 빈에서 6.9유로이다. 빅맥세트를 사먹을 정도의 경제적 능력만 있으면 음악협회 음악회에 갈 수 있다. 단 서서 음악회를 볼 의지는 있어야 한다.

입석이지만 문제없이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극장이 크지 않기에 입석 관객도 100유로 이상을 지불한 관객과 다름없이 지휘자의 몸놀림, 바이올린 연주자의 운지법 심지어 팀파니 연주자가 북채를 휘두르고 난 후 소리를 컨트롤하기 위해 북의 표면을 손으로 고르는 제스처까지 잘 볼 수 있다. 비싼 좌석에는 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노인이 앉아 있다. 입석 관객은 더 다채로운 구성이다. 성별 나이 인종까지 다양하다. 입장권이 매진된 후에야 빈에 도착한 외부인, 매번 비싼 표로 입장할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입석표는 음악감상의 마지막 기회를 제공한다. 경제적 차이로 인한 예술향유의 불평등에 대한 빈 특유의 공정한 해법인 셈이다.  

한국의 주택보유 상황과 음악협회의 입장권 가격 정책을 비교해봤다.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절대 낮지 않다. 전국의 주택보급률은 2017년 현재 103.3%이다. 그런데도 자기 집이 있는 사람은 2015년 기준 전국 56.8%에 불과하다. 7대 도시는 51.9%이고 서울의 경우 42.1%까지 떨어진다. 자기 집이 없는 사람이 한국인 중 절반이다. 그런데 집이 있다고 사정이 동일한 건 아니다.   

임대사업자 등록 현황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임대사업자 중 상위 30명이 1만1029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 무려 1인당 평균 367채이다. 한술 더 떠 594채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48세의 진모씨는 이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만약 한국이라는 나라가 빈 음악협회 연주회장이라면 소수의 집 있는 사람이 연주회장 좌석을 독점했기에,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이 입석으로 내몰리는 형상인 셈이다. 

땅은 유한한데 인간의 욕심은 무한하다. 주거문제의 해결이 각자의 경제적 능력에만 내맡겨지면 주거지는 극단적으로 배분된다. 심지어 부동산이 노동보다 돈을 더 빨리 벌 수 있는 수단이 되면, 즉 집이 집을 벌기 시작하면 세상은 집을 여러 채 갖고 있는 소수의 사람과 겨우 한 채만 갖고 있거나 아예 자기 집이 없는 사람으로 극단적으로 양극화된다. 주거에 관한 한 한국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쪽에 매달려 있는 사람과 꼭대기에서 막대한 불로소득을 올리고 있는 사람은 국적은 같지만 서로를 모른다. 그들이 사는 곳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어 그들은 길거리에서라도 우연히 마주칠 가능성조차 없다. 그들은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를 맺었던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나, 집을 평균 367채나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매번 계약할 때마다 세입자와 대면하지 않을 것이다.  

빈 음악협회에 100유로를 지불하는 사람이 있기에 빅맥세트 가격으로 음악회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빈은 주거문제를 음악협회 방식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빈 시정부는 1922년에서 1934년 사이에 심각한 주거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사치세와 임대수입에 누진세를 적용하여 0.5%에 불과한 호화주택 소유자로부터 전체 세수의 45%를 거둬들였고, 이 기금으로 공공임대아파트 6만가구를 지어 22만명에게 혜택을 주었다. 그때 지어진 공공임대아파트는 현재 관광의 대상이 될 정도로 빈의 명물이기도 하다. 빈의 자랑거리는 비엔나커피(정확하게 말하자면 카페 멜랑주)가 아니라 빈 방식의 공정성 철학임을 비엔나커피를 마시며 생각해본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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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움직이면서 인터넷 한다.” 스마트폰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2009년 기사 제목이다. 당시 스마트폰 보급률은 1.7%에 불과했으나 2019년 현재는 95%로 압도적 세계 1위다. 세상은 스마트폰을 통해 그 지평을 한없이 넓히는 중이다. 불과 10년 만의 일이다.

또 한 번의 변혁을 안겨다줄 10년이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미 세계는 자율주행차가 가져올 사회·경제적 파급력에 주목하며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국내 자율차 핵심 부품 기술이 선두그룹에 비해 뒤처져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가진 우수한 정보통신기술과 인프라를 적극 활용한다면 미래차 시장 선점이 꿈만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 15일 주요 도로에서 운전자의 개입 없이 운행이 가능한 레벨4의 완전자율주행을 세계 최초로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하여 국토교통부는 완전자율주행을 위한 4대 핵심 인프라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완비할 임무를 맡고 있다.

먼저 자율주행차의 안전한 주행을 위해서는 사람에게 맞춰진 교통인프라를 협력 지능형 교통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자동차와 자동차, 자동차와 신호등, 사람이 서로 통신하며 위치를 알려주는 이 시스템은 서울시와 제주도에서 2021년까지 서비스 실증을 마치고 전국으로 확대된다. 도로규제선과 교량 등 시설, 신호기, 표지 등을 3차원으로 구현하는 정밀지도도 이미 구축에 들어갔다. 올해 말에는 모든 고속도로, 2024년까지 주요 도심도로 지도를 완료할 계획이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하면서 교통흐름을 제어하는 통합관제시스템은 내년 10개소를 시작으로 2022년까지 주요 거점에 구축하고, 차선·신호등·안전표지 등 도로 안전시설도 자율차량의 인식에 최적화되도록 함께 설계·적용한다. 이에 따라 제도도 큰 변화를 겪을 것이다. 완전자율주행시대에는 자동차가 운전능력을 검증받고, 사고를 냈을 경우 차량(제작사)도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2024년까지 완전자율차 안전기준을 마련하고, 보험 등 제도적 기반을 선제적으로 만들고 정밀하게 다듬어 나갈 것이다.

우리는 먼 미래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면서도 불과 10년 후의 변화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늘을 나는 ‘플라잉카’에 대한 기대 역시 그렇다. 하지만 정부는 2023년까지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전용 교통체계 정비, 안전성 실증 등을 거쳐 2025년이면 플라잉카 실용화를 실현할 것이다. 독립적으로 다니며 스스로 판단하는 자동차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감히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움직이며 인터넷 하는 시대’를 예비했던 10년보다, 자동차 핸들에서 손을 떼는 새로운 10년이 더 치열한 진검승부의 세계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닥쳐올 미래, 창의적인 도전과 과감한 혁신이라는 미덕은 그래서 이제 정부의 것이어야 한다. ‘2030 미래자동차 산업 발전전략’은 그 출발점이다.

<김현미 | 국토교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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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별로 사용하지 않아 낯설어진 우리말 어휘 중 하나로 새 이름 ‘고니’가 있다. 대신 ‘백조’라는 어휘가 주로 사용되는데 이는 본디 ‘하얀 새’의 통칭이었고, 한자 곡(鵠)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고니다. 백조 혹은 ‘스완(swan)’이라고 부를 때의 우아함이 고니에서는 느껴지지 않아서일까, 1980년대 유행한 노래 제목 이후로는 별로 쓰이지 않는 것 같다. 고니는 다른 새에 비해 몸집이 크고 빛깔이 깨끗해서 예로부터 상서로운 새로 여겨졌다. 

그런데 한(漢)나라 왕충(王充)은 사람들이 고니를 귀하게 여기고 닭을 천하게 여기는 까닭이 단지 고니는 멀리 있고 닭은 가까이 있기 때문일 뿐이라고 했다. 옛날의 공자나 묵자만 귀한 줄 알고 동시대 인물이 아무리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도 하찮게 여기는 세태를 비판하기 위해 끌어온 이야기다. ‘귀이천목(貴耳賤目)’이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멀리서 전해들은 것은 대단하게 여기고 가까이에서 본 것은 함부로 대한다는 뜻이다. 유독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한 것은 예수만이 아니다. 공자 역시 동네에서는 함부로 불렸다. 우(虞)나라의 군주는 궁지기라는 인물이 올린 적절한 간언에 대해 그가 자신과 어릴 적 편하게 어울린 사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다가 나라를 잃고 말았다.

낯익고 친근한 대상을 무시하는 경향은 동서고금에 늘 있어 왔지만, 요즘은 매체의 놀라운 발달로 인해 물리적 거리마저 거의 사라져 버렸다. 다양한 경로로 정보가 공유되고 성역이 허물어지는 것은 혁명적인 변화다. 그 순기능과 잠재력은 대단하지만, 그런 변화의 의미에 대한 고민은 아직 미미한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가 무시되고 신중한 접근이 가볍게 희화화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공자는 안영을 두고 사람을 사귀는 진정한 도를 지녔다고 칭찬했다. 친하게 지낸 시간이 오래 되어도 상대를 존중할 줄 안다는 이유에서다. 존중의 태도가 필요하다. 강요되는 권위의 허상을 깨는 일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지만, 쉽게 접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정보에 들인 공과 섬세한 적용의 능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한다면 우리는 더 소중한 것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애초에 닭과 고니 사이에 우열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낯익고 흔해 보이는 대상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태도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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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한 발 삶의 외로움과 고해가 배어 있는 다리가 있다. 자살이란 말을 접하면 가장 많이 떠올린다는 마포대교다. 지난해부터 올 9월까지 파악된 투신시도자만 271명. 2014년부터만 해도 1000명이 훌쩍 넘는다. 한강 투신시도자 3명 중 1명이 찾고, 투신 상담전화 70%가 발신되는 곳이다. 이유가 뭘까. 여의도 금융가와 멀지 않은 다리에선 과거 돈 날리고 빚진 개미투자자나 증권사 직원들의 극단 선택이 많았다. 지난해와 올해 투신시도자의 57%는 2030 청년들이다. ‘시민 보안관’이 매일 밤을 지키고 수능시험일엔 아예 경찰이 상주한다. 그 속에서도 ‘투신자 1위’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22일 서울 마포대교위에서 현장근로자들이 대교 난간 위로 추락방지 구조물을 설치하고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마포대교 난간 1390m엔 사람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문구들이 몇 걸음 거리로 이어졌다. 2012년 서울시와 삼성생명이 합작한 사업이다. 시민 공모를 받고 전문가들이 선정했다는 글은 여러 갈래다. ‘넌 소중해’ ‘밥은 먹었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위안을 주려는 글이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노랫말 1·2절이나 ‘또 사랑하세요’는 희망을 띄워본다. 항의 받은 문구들도 있다. ‘젊었을 때 고생 같은 거 암것도 아녀’ ‘인천앞바다 반대말은? 인천엄마다’ ‘자가용의 반대말은? 커용’ ‘포도가 자기를 소개할 때는? 포도당’류의 꼰대식·아재개그식 표현이나 ‘수영 잘해요?’ ‘한번 해봐요’같이 정체 모를 글귀들이다. 조크성 문구는 우울한 기분을 잠시 돌리려는 시도였지만, 역효과 시비나 항의도 적잖았다고 한다. 서울시는 지난달 논란이 된 말을 지우고, 지난 8~9일 모든 글귀를 난간에서 제거했다.

한강다리 투신자의 생존율은 지난해 97%대에 올랐다. CCTV로 모니터링하다 4분 이내 현장 출동하는 구조시스템이 정착됐기 때문이다. 마포대교 난간 위에 설치된 1m 높이 안전벽도 효과가 커 다른 한강다리로 확산된다고 한다. 미검증된 문구 대응보다는 물리적 보완책에 속도를 붙이는 셈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하루 37.5명이 자살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 국가로 돌아갔다. 사유 1위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따스한 포옹·대화·눈빛 하나로 살릴 수 있는 게 생명이다. 지난달 처음 발족한 정부 자살예방정책위원회의 할 일이 사방팔방으로 많아졌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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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우화 중 하나가 ‘토끼와 거북이’ 아닐까 싶다. 느린 거북이를 비웃던 토끼가 거북이에게 경주를 제안한다. 빠른 토끼와 느린 거북이. 따라오던 거북이가 보이지도 않자 좀 쉬어갈까 하던 토끼가 아예 잠들고, 그새 꾸준히 따라온 거북이는 잠든 토끼를 지나쳐 먼저 결승점에 도달한다. 이 우화가 주는 교훈은 자만이 실패의 원인이 된다는 것 혹은 꾸준하고 성실한 또는 포기하지 않는 자가 결국 승리한다는 것. ‘동화 다시 읽기’가 유행하면서 다른 해석도 붙었다. 경주 중 잠든 토끼를 깨우지 않고 그냥 지나친 거북이의 태도는 과연 공정했는가를 묻는, 승부에 있어 공정함에 더 의미를 두는 질문이다. 

공정함에 대해서라면 인디언들의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인디언의 마을로 유명한 미국 체로키 마을에 있는 인디언박물관에 가면 입구에 인디언 전설이 적힌 액자가 몇 개 걸려 있다. 그중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토끼와 거북이와 비슷한 내용이지만 다르다. 거북이가 이긴 건 같은데, 이긴 방법이 다르다.  

그 경주는 거북이가 먼저 제안했던 것 같다. 용맹하지만 느리다고 소문난 전사 거북이는 빠르다고 잘난 체하는 토끼의 오만을 두고 볼 수 없어 승부를 통해 누가 빠른지를 겨루기로 한다. 그들은 네 개의 산을 지나기로 했는데, 이때 토끼가 거북이에게 먼저 뛸 수 있도록 해준다. 거북이가 첫 번째 산마루를 지날 때 자신이 출발하기로 한 것. 오만이라면 오만이고 배려라고 우기면 배려겠으나 그 결과 토끼는 단 한 번도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결국 패배한다. 당연한 일이었다. 거북이가 애초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거북이를 반환점마다 숨겨 놓고 자신은 진즉 결승점에 가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여러 마리의 거북이와 경주한 토끼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으나 아무도 이기지 못했고 결국 졌다. 한마디로 오만한 토끼를 이긴 교활한 거북이의 승리였던 셈.

이 방법은 실제 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의 토지를 뺏는 수법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자연은 하늘에 속한 것이지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토지를 사유화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또 있다 해도 ‘한나절 걸을 수 있는 거리’ 하는 식으로 토지의 넓이단위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민자들은 그런 인디언들에게 땅을 사면서 군데군데 사람을 숨겨놓은 이어달리기를 해서 적은 돈으로 넓은 땅을 가로챘다는 것이다. 야사에 가까운 책들에 기록된 내용이니 진위를 알 수는 없지만 박물관에 적힌 초기 정착사를 보면 충분히 그랬을 것도 같다. 

체로키 인디언박물관에는 영국에서 건너온 이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얼마나 잔혹하게 내쫓았는지가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자신들의 과오를 이렇게 솔직하게 고백하는 용기라면 용기에 놀라다가 문득 그 모든 단어의 주체가 ‘유럽인’ 혹은 ‘영국인’이라고 쓰인 것을 보면 실소가 터진다. 그들이 말하는 유럽인이자 영국인이 그들의 조상일 텐데 마치 타인의 범죄 역사를 기록하듯 전혀 무관한 어떤 서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건국되기 이전이니 표현상 틀린 말은 아닐 테지만 자신들의 잘못을 인식하는 어떤 태도나 방법에 깃든 소위 강대국의 비열함을 보고 있자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토끼와 거북이에 관한 가장 인상적인 경주는 아이가 어릴 때 다니던 과학실험 교실에서 있었다. 동화책 속에 언급된 여러 내용을 실제로 실험해보는 수업이었다. 첫 번째던가 두 번째 수업이 바로 ‘토끼와 거북이’였다. 벽을 세워 각자의 경주로를 만들고 토끼와 거북이를 동시에 출발시켜 과연 누가 승자가 될지를 알아보자는 아이디어였는데 한 품에 안아도 좋을 토끼와 거북이를 보고 아이보다 내가 더 많이 놀랐다. 결과는 무승부. 토끼도 거북이도 낯선 환경에 놀라 경주는커녕 출발선에 얼어붙어 있었다. 그 수업을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나는 교실 밖에 있어서 모르겠다. 그냥 자꾸 웃음만 나왔다. 토끼와 거북이는 대체 왜 경주를 시작해서 이 고생을 하는 걸까. 토끼도 거북이도 아니면서 그 끝없는 경주가 그만 지긋지긋해지고 말았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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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22일 국회 시정연설은 ‘조국사태’를 계기로 분출된 공정사회에 대한 절박한 바람을 직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엄중한 마음으로 듣고, 공정·개혁에 대한 국민 열망을 다시 절감했다”면서 “국민 요구는 제도에 내재된 합법적인 불공정과 특권까지 근본적으로 바꿔내고 사회 지도층일수록 더 높은 공정성을 발휘하라는 것으로,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겠다”고 말했다. ‘조국사태’는 진영 논리를 걷어내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불공정과 특권의 실상을  까발린 계기가 되었다. 광장의 외침에서 보듯, 공정사회에 대한 시민의 열망도 확인됐다. 문 대통령이 교육 불공정 개선, 경제민주화 입법, 채용비리 근절, 검찰개혁 등을 언급하면서 “국민의 요구를 받들어 공정을 위한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 시대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잊혀진 의제처럼 되었던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강조한 것이 도드라진다. 그렇지 않아도 ‘노동존중’은 희미해지고, 외형의 지표와 실적에 집착해 섣부른 친기업과 성장 중심으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입으로만이 아닌 불평등과 양극화를 교정하기 위한 공정경제, 문 대통령의 다짐대로 “그 성과가 체감되도록 하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 중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필요성에 대한 발언을 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두 손으로 X자를 그려보이며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소통과 협치에 대한 성찰과 각오다. 계층과 세대, 처한 위치에 따라 이해가 충돌하는 ‘공정을 위한 개혁’을 추진하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반대편을 아우르는 소통과 협치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정치는 항상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며 “저 자신부터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과 함께 스스로를 성찰하겠다”고 했다.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임사를 환기시키는, 모처럼 듣는 문 대통령의 언어다. 한국 사회의 강고한 불공정과 기득권 구조를 허물고 “함께 잘사는” 포용사회로 나아가려면 지지층의 협조만으로는 힘들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으로 일관하는 자유한국당의 행태가 아무리 꼴사납더라도 통합과 협치를 위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반대파까지 보듬고 소통하는 것은 국정 최고책임자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숙명이다.

문 대통령은 시정연설 마지막 다짐으로 “더 많이, 더 자주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회와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달 9일이면 임기 반환점이다. 미진한 민생과 사회경제 개혁을 이뤄내기 위해 요구되는 소통과 협치, 문 대통령의 다짐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실천으로 이어지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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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대학입시에서 정시 비율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른바 ‘조국정국’에서 교육개혁 논의가 촉발된 이후 정부가 ‘정시 비율 상향’을 공식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정부·여당은 그동안 정시·수시 비율 조정에는 선을 그어왔다. 예상치 못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교육계와 학교 현장은 혼란에 빠졌다.

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문 대통령은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민들께서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에서의 불공정”이라며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대통령 발언은 그동안 정부나 당 차원의 공식입장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정시와 수시 비율을 조정하는 것만으로 불평등과 특권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지선다형 수능은 미래교육 방향과 맞지 않는다”며 정시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 시정연설 전날 국회 교육위원회 국감에서도 이런 입장에는 변화가 없었다. 지난달 18일 당정 교육개혁 관련 첫 연석회의 후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정시·수시 비율 조정 문제는 협의 자체에 포함될 수 없다고 본다고 정시확대론에 선을 그었다.  

지난달 1일 대통령이 교육개혁을 주문한 이래 우리는 여러 차례 입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면 안된다는 것과 교육적 효과를 먼저 고려할 것을 당부했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여러 면에서 우려스럽다. 우선 너무 잦은 대입 논의로 교육현장의 피로감이 누적돼 있다. 지난해 각계 의견을 들어 겨우 합의한 ‘2022년까지 정시 30% 단계 확대’ 방안이 아직 시행도 되지 않은 상태다. 정시 확대는 현 정부의 주요 교육 공약인 수능 절대평가, 고교학점제와 배치되고 공교육 정상화나 고교서열화 해소에도 도움이 안된다. 전 세계에서 수능과 같은 퇴행적 오지선다 선발시험은 사라져가고 있다. 원칙 없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문 대통령의 교육 분야 대선 공약은 누더기가 돼왔다. 

대통령 시정연설 직후 교육부는 의견수렴을 거쳐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다음달 중 발표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때까지 성찰하기 바란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시 확대 방침이 교육적 숙고에서 나온 것인지, 파장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있었는지를. 입시를 정국돌파용 제물로 삼아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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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말한다. 이제 조국대전에서 민생대전으로 가야 한다고. 이는 누구보다 국정을 운영하는 문재인 정부에 절박한 과제일 것이다. 대통령은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재정의 과감한 역할과 투자 확대를 강조했다. 새삼스러운 방향은 아니다. 2년 전 대통령선거에서 재정을 대폭 늘리는 제이노믹스를 주창했고, 민생 역시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왔던 소득주도성장의 가치이다. 

이번에는 민생을 기대해도 좋을까? 문재인 정부를 보면 늘 허전한 구석이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동’ 주제가 주변화된다. 노동존중사회를 말하지만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정규직화를 추진하더라도 자본주의에서 노동존중의 뿌리는 노동자가 사용자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노동권’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하다.

소득주도성장을 보자. 내수와 성장의 선순환을 위해 가계소득 증대에 힘쓰겠단다. 실제로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근로장려세제 확대 등을 진행했다. 물론 전향적인 정책들이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목표인 ‘임금 격차 해소’는 정부가 직접 주관하는 대책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자본주의에서 임금이 결국 자본과 노동의 교섭에서 결정된다면 관건은 시장에서 노동자의 교섭력을 키우는 일이다.

헌법에 노동3권이 명시돼 있다. 이는 과거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역사적 성과이지만 현실에서 저절로 구현되는 건 아니다. 이를 행사하려면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하고 실질적인 교섭권을 지녀야 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펴낸 2018년 비정규직 보고서에 의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가입률은 2.1%에 그친다. 퇴직금을 받는 노동자는 37%에 불과하고, 유급휴가는 25%, 시간외수당은 20%만이 받고 있다. 이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노동조합이 곁에 있었더라면 상황은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미국이 대공황 시기에 펼친 뉴딜정책의 한 축도 노동권 강화였다. 노동자에게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보증했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엄격히 제한했다. 위로는 정부가 공공투자를 주도하고 복지를 확대하면서 아래로는 노동자가 노동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민생이 살아난다고 보았고 이 방향은 유효했다.

문재인 정부는 불안정,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을 보호하는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미루는 건 고사하고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톨게이트 수납원은 없어지는 직업”이라고 버젓이 이야기하는 지경이다. 일자리가 없어져도 그 자리에 노동자가 남아있다면 그의 역할을 어떻게 이어갈지 고심해야 ‘노동존중사회’ 아닌가? 아무리 혁신경제가 장밋빛이고 플랫폼 자본주의가 다가오더라도 어디에서든 사람이 있음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사람중심경제’ 아닌가? 

그래도 당사자들은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근래 사회적으로 관심을 끄는 파업은 거의가 급식노동자, 요양보호사, 시설관리자, 택배노동자, 톨게이트 수납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장선 경우이다. 파업 자체에 비판적 시선이 강한 우리나라이지만 이들의 단체행동에 대해선 여러 시민들이 응원한다. 함께 나서진 못하지만 나와 내 자식의 미래를 위한 활동이라 여기기 때문이리라. 

조직화도 앞으로 가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현황을 보면, 3년 전 약 70만명에서 올해 100만명으로 약 30만명 늘었고, 새로 가입한 노동자 중 절반이 비정규직이다. 전체 조합원 중 비정규직의 비율도 어느새 3분의 1이 되었다. 그만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나서고 현장 간부들이 묵묵히 땀 흘린 결과라고 여겨진다. 지난 9일에는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라는 조직도 발족했다. 5인 미만 사업장, 임시직 등 노동의 권리가 취약한 노동자들과 소통하고 단결하며, 다음 대선까지 1000일 운동을 벌이겠단다. 정부가 노동존중을 잊어가는 시간에도, 이렇게 노동자들은 한 걸음씩 노동권을 세워가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를 더욱 옹호해 가자. 노동하고 있다면 모두가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어야 한다. 교섭도 실질적 의미를 지녀야 한다. 영세사업장, 하청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기업별 교섭체제는 사실상 교섭권을 무력화하는 장벽이다. 초기업 교섭, 즉 업종 혹은 산업별로 교섭해야 노동자 연대도 강화되고 기업 간 공동책임도 이루어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노동존중사회를 말하려는가? 그렇다면 당장 톨게이트 노동자를 직접고용하고 국제노동기구 협약을 비준하라. 그리고 불안정, 비정규 노동자들이 사용자들과 연합교섭을 벌일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아라. 이게 민생대전의 진정한 출발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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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과 유승민이 합칠 수도 있다. 그러나 태극기 부대, 자유한국당, 중도 보수층이 반문 연합의 깃발 아래 통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보수는 더 이상 하나가 아니다. 탄핵 이전의 시간에 머문 구보수와 탄핵의 강을 건넌 신보수는, 진보와 보수처럼 서로 다른 존재다. 강을 건넌 건지 아닌 건지, 도강 중인지 알 수 없는 한국당의 황교안, 바른미래당의 유승민·안철수·손학규는 다 다르다. 보수 통합을 한다 해도 통합에 참여하지 않는 보수세력이 반드시 나온다. 세상이 변했다. 보수의 다원성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이들이 연대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시민들도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부끼는 광화문 대규모 집회에 참석해 분노를 터뜨렸다. 대규모 광화문 집회는 더 이상 없지만, 중도층은 그 집회를 통해 이미 살짝 선을 넘었다. 이들은 총선 앞두고 돌아올까?

여권은 기존 태도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성찰하지도 않고, 민심에 역행한 책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포용·협치를 언급했지만, 14일에는 정치갈등의 책임을 야당에 돌렸다. 한국당이 정신 차리고 혁신했다면, 여권이 이렇게 태평할 수 없다. 하지만 상승기류를 탔다고 믿는 한국당은 이대로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당에 혁신의 내적 동력이 없을 때 외부 자극이라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대로 가겠다는 여권은 결코 한국당에 자극제가 되지 않는다. 여권과 한국당은 서로에게 긴장감을 주지 않는, 안심할 수 있는 파트너이자 편안한 존재다. 사실 양측의 적대적 공존과 현상유지 전략은 상대가 변심하지 않을 것을 굳게 믿는 ‘신뢰동맹’으로 유지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했다. 한국당을 너무 믿으면 안된다. 한국당이 대안은 못 되더라도 내년 총선에서 사고 칠 수는 있다. 이런 경우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시민들이 분명한 실책을 바로잡지 않는 집권세력에 따끔한 경고를 주기로 마음먹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떤 당을 찍을 것인가’가 아니라, ‘민주당을 찍지 않는 것’이다. 한국당은 잠시 빌려 쓰는 도구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동안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처지에서 한국당, 제3보수당을 찍을 때의 찜찜함, 혹은 심리적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렇게 그날 아무도 모르는 반란이, ‘조용한 복수의 밤’이 펼쳐질 수 있다.

근거 없는 상상일까? 20대 총선에서 우리가 목격한 게 바로 조용한 복수극이다. 2016년 야당은 민주당과 국민의 당으로 분열하고, 지지율은 여당인 새누리당이 훨씬 높았다. 하지만 박근혜에게 신호를 보내기로 결심한 시민은 그날 숨소리도 내지 않고 정국을 여소야대로 뒤집어놓았다. 그렇게 패배하고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눈 깜짝 안 한 박근혜를 시민이 어떻게 했는지는 생략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쯤 국정 전반을 뜯어고치고 있어야 한다.

10년 전 박근형 연출의 연극을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의 남편은 돈 한 푼 벌지 못하면서 밖으로만 나돌 뿐 집안일에 관심이 없다. 세상이 무서워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시동생은 변비로 고생한다. 생계를 위해 노래방 도우미를 하는 주인공은 매일 밤 술에 취한 채 귀가한다. 친구 부음을 듣고 문상 갔던 시아버지는 집 나갔던 아내가 상주 노릇을 하는 걸 보고 집 화장실에서 목을 맨다. 환풍기 없는 화장실에서 시체가 썩어가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관객은 눈앞에 펼쳐지는 기이한 가족 이야기에 놀라지만, 무대의 주인공들은 그게 일상인 듯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한다. 관객과 배우 간 거리감·어긋남이 인상적이었던 이 연극을 10년 만에 다시 보았다. 이번에는 극장이 아닌, 한국정치 무대에서다. 이 무대에서도 주연·조연, 여야 가릴 것 없이 충격적인 일을 벌여 시민을 놀라게 해놓고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낸다. 연극이 그런 것처럼 정치 무대에도 제 본분을 다하는 정치인은 한 명도 없다. 자기들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 가족들처럼 여권도 자신이 벌여놓은 일을 주워 담을 생각을 않는다. 그러니 6개월 뒤 무슨 일이 생겨도 너무 놀라지 말기 바란다. 10년 전 본 연극 제목이 <너무 놀라지 마라>다.

민주당은 6개월 뒤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만 한다. 나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권력을 다루는 자신의 능숙한 기교를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하기야 사형수도 교수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사면될 거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은 말했다. “누구나 그럴 듯한 계획은 갖고 있다. 한 방 맞기 전까지는.”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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