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민주적 진보는 몇 발을 뗐을까요. 문재인 대통령 임기 반환점이 코앞이니 한번 돌아볼 때가 아닌가 합니다. 민주체제 시작은 왕조와의 싸움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특정 가문에서 태어났기에 권력을 쥐는 체제에의 저항이었죠. 이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민주체제는 여러 갈래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권력의 분배라는 큰 방향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소수가 독점하던 권력을 성격에 따라(입법·사법·행정), 지역에 따라(연방제·지역분권제), 능력에 따라(노조·언론·학생·시위대) 나누면서 그 체제는 발전했죠. 

권력이 분산되면서 불확실성도 증가합니다. 민주체제는 불확실성을 제도화하며 진보했습니다. 그 핵심이 선거죠. 선거는 불확실성을 정기화한 제도입니다. 4년에 한 번씩 국회의원은 커다란 불확실성을 마주하죠. 재선될 수도,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어쩌다 한 번씩 시장에도 나오고, 보통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권력 분산, 불확실성 증가는 그런 면에서 민주체제의 중심이고 이를 통해 권력자가 아닌 시민의 인권과 안전을 보장하는 게 민주체제의 가치입니다. 제한도 있고 지연도 되지만 이를 향해 가는 게 민주체제의 진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는 조금 우려스럽습니다.

문재인 정권 2년이 지났지만, 비민주적 법안이 아직 많이 남아있고 개혁의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 ‘양심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과도 어긋날 뿐 아니라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도 문제가 심각하죠. 게다가 이 법의 악용으로 많은 이들이 피와 눈물을 흘렸습니다. 국가공무원법도 있죠. 이 때문에 공무원도 노동자이지만 헌법이 명시한 노동3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교조의 경우에서 보듯 헌법과 법률에서 인정한 노조할 권리를 대통령령으로 제한하기도 합니다. 국내외 지적이 꾸준히 이어져 왔고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개선을 주장했죠. 하지만 국가보안법 개정은 논의조차 안되고 있습니다. 노동3권 확대도 무관심합니다. 재벌개혁은 물 건너갔고 소비자 권리를 강화해줄 집단소송제도의 행방도 묘연합니다. 민주 가치의 중심이 되는 입법개혁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죠. 

지난 4월 민주당과 야 3당은 “본회의 표결 시에는 선거법-공수처법-검경수사권조정법 순으로 진행한다”며 이들의 신속처리에 합의했습니다. 이는 정치적으로 의미가 큽니다. 민주당의 정치적 손해가 예상되는 상태에서 이뤄진 합의였기 때문이죠. 중앙선관위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20대 총선에서 각각 123석과 122석을 얻은 민주당과 한국당의 의석은 선거법 개정안 적용 시 각각 107석과 109석으로 줄었습니다. 소수당은 큰 득을 봤죠. 두 거대정당이 움켜쥐었던 의회 권력을 다양한 정당들이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을 연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민주당은 “공수처 법안을 최우선으로 처리하는 데 당력을 집중”한다고 밝혀 선거법 처리를 미뤘습니다. 공수처가 검찰 권력을 나누게 될지, 오히려 두 배로 키울지 잘 모르겠지만 민주체제의 진보라는 면에서 선거법 개정보다 급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한국당과의 정치투쟁에 밀릴 수 없다는 절박감이 있었을 겁니다. 어차피 다 개혁이니 순서만 조정한다고 생각했을 법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투쟁에 익숙합니다. 안으로는 반독재 투쟁이, 밖으로는 반북 투쟁이 이어졌죠. 투쟁이 혹독했던 만큼 생채기는 깊고 흉터는 컸습니다. 그래서겠죠. 독재는 끝났고, 북한은 달라졌어도 아직 그 상처를 핥고 보듬는 것 말이죠. 그러면서 우리 모두 민주를 외칩니다. 한쪽에선 권위주의가 아닌 그 모든 걸 민주주의라고 봅니다. 성적소수자, 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며 “민주”를 하고 있다고 말하죠. 다른 한쪽에선 북한만 아니면 민주주의라 외칩니다. 그 때문에 체제 유지를 위한 폭력도 “자유민주” 수호라 외치죠. 1970년대로의 회귀를 울부짖는 이들이야 그렇다 쳐도 민주와 진보를 꿈꾸는 정부·여당의 행보는 안타깝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 공정을 강조했습니다. 민주체제의 진보를 여는 공정이 되길 기대합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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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4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만나 한·일관계 경색을 타개하기 위해 당국 간 대화를 포함한 소통을 촉진하자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양 총리는 한·일 양국은 중요한 이웃국가로서 한·일관계의 어려운 상태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두 총리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민간교류가 중요하고, 북한 문제 등과 관련해서도 공조가 중요하다는 데에 공감했다. ‘양국 간 현안이 조기 해결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도 아베 총리에게 전달됐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이후 처음 성사된 한·일 최고위급 대화에서 양측이 관계개선 의지를 확인한 것은 의미가 크다. 이로써 지난 7월 일본의 수출규제로 본격화된 한·일갈등이 분기점을 맞이하게 됐다. ‘단교’에 가까울 정도로 악화된 관계를 복원해야 할 필요성에 양국이 공감한 점이 이번 회담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양국 갈등이 이 분기점에서 수습의 길로 나아갈지, 갈등의 장기 고착화로 이어질지는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아베 총리는 회담에서 “한국이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종결된 사안인데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총리는 “한국도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을 존중하고 준수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은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라는 취지였지만, 일본은 ‘대법원 판결이 청구권협정을 부인했다’고 반발해왔다. 이 인식의 간극을 메우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이날 회담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거론되지 않은 것은 이런 어려운 사정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회담을 계기로 양국이 보다 적극적인 외교로 현안들을 풀어 나갈 것을 당부한다.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하고 한국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복원하는 ‘동시행동 조치’가 다음 수순으로 바람직해 보인다. 물론 관계회복을 최우선시해 섣부른 합의를 할 경우 또 다른 ‘불씨’를 낳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가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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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24일 구속됐다. 강제수사 착수 58일 만이다. 송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범죄 혐의 상당 부분이 소명되고,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발부 이유를 밝혔다. 정 교수가 증거인멸을 시도한 점, ‘말 맞추기’ 가능성이 높은 점, 사회지도층 범죄로 사안이 중대함 등을 들어 구속수사가 필요하다는 검찰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호송차에 오르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정 교수 측은 “혐의는 왜곡·과장됐고, 자녀의 인턴·봉사 활동은 사실이며, 사모펀드 관련 혐의는 법리적 오해로 오히려 정 교수가 피해자다”라면서 혐의 전부를 부인했다.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서는 동일사안 대법원의 파기환송 사례를 제시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랜 수사로 고통받고, 몸까지 아픈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해달라”는 요청도 배척했다. 

이로써 ‘조국사건’에 대한 1차 사법적 판단이 내려졌다. 정 교수가 PC 하드디스크를 교체하고 반출한 행위가 구속의 결정적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구속이 유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무죄는 향후 정식 재판에서 가려질 것이다. 이제 검찰이 할 일은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와 공소유지다. 그러나 언제까지 수사를 계속할 수는 없다. 수사 장기화로 인해 국민이 고통받는 현실을 검찰은 직시해야 한다. 광화문과 서초동·여의도 등으로 갈린 민심 혼란의 책임에서 검찰은 자유롭지 않다. 조 전 장관에 대한 의혹을 포함해 하루빨리 수사 결론을 내놓아야 할 이유다. 법원은 오로지 사실과 증거, 법리에 따라 범죄 여부를 가려야 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대학입시는 물론 사회 전 분야에 걸쳐 특권과 반칙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와 법 정비에 나서길 바란다. 잘못된 인사검증 시스템, 정치 무능으로 빚어진 혼란을 수습하는 것은 정부와 국회의 당연한 책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수사 및 재판과 별개로 검찰개혁이 흔들림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수사에서는 20여명의 특수부 검사가 동원돼 두 달 가까이 70여곳을 압수수색하고 피의사실이 중계방송되는 일이 빚어졌다. ‘먼지털기식 수사’나 ‘별건 수사’ 등 낡은 관행이 더 이상 되풀이돼서는 안된다. 최근 불거진 사건배당 과정에서의 전관예우 및 특혜 의혹도 검찰개혁의 정당성을 말해준다. 정치권도 이번 사건을 검찰개혁의 발목을 잡는 빌미로 삼아서는 안된다. 지금 정치권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을 포함한 패스트트랙 법안의 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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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트 로렌츠(1903~1989)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1973년 행동연구가 최초로 노벨상(의학 부문)을 수상했다. 회색기러기가 부화한 후 처음 만난 대상을 어미로 알고 특정 행동을 따라하는 행동, 즉 각인(Imprinting) 학습 현상을 밝혔기 때문이다. 로렌츠 덕분에 탄생 직후 특정한 시기(critical period)에 익힌 행동은 성장 후의 행동양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걸 과학적으로 입증한 셈이다. 주로 종(種)의 생존과 관련된 중요한 행동양식들이 이때 최초의 양육자를 통해 전수된다고 한다.

2005년도 스탠퍼드 심리학 연구팀의 결과는 더 재밌다. 음식, 옷이나 음악 취향, 심지어 기부행위까지도 어느 연령대까지 해보지 않으면 시도하기 어렵다 한다. 대체로 13세에서 28세 정도까지 젊은 시절에 해보지 않으면 나이 먹어서 새롭게 시도하기 어렵다는 장기종단 연구였다. 그만큼 행동변화가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에 필수적인 행동들을 우리는 잘 새기고 있나?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재난 상황이 우리 생존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것 맞나?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배운 적 있는지 묻고 싶다. 1995년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가 만든 ‘교육학 용어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환경교육은 환경에 관한(about), 환경 내의(in) 또는 환경을 통한(through), 환경을 위한(for) 교육이라고 한다. 즉 개인이나 집단이 인류의 생존과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며, 환경보존과 사회정의를 위한 가치와 태도를 개발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기술을 함양하는 교육 활동을 말한다. 좋은 뜻은 다 담겨 있는 것 같다. 실제론 어떤가.

환경 교과목이 독립 교과로 시작된 것은 1992년이다. 마땅한 교사들이 양성되어 있지 않아, 교련 선생님이 수업을 담당했다. 수학 전공자가 수학을 가르치고 영어 전공자가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마땅하거늘 2009년 이후 10년 동안 환경교사 임용은 0명이다. 환경수업은 선택 과목으로 분류되어 있어 채택한 학교도 손꼽을 정도다.

작년 5월 국민환경의식조사에 따르면 88.8%의 응답자가 기후변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고 응답했고,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환경교육의 확산이라고 답하였다. 엊그제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은 ‘2019 탈석탄 기후변화대응 국제 콘퍼런스’의 기조연설에서 “기후변화 문제는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학생들이 성장해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가 됐을 때 기후변화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환경 교육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모두 당위의 세계, 말의 세계에 살고 있다. 환경부가 환경교육 예산을 아무리 높여봐야 그 몇십억원을 기재부에서 깎는다. 민생에 직접 도움되지 않으면 증액하기 어렵다고 한다. 환경을 뺀 민생이란 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정부는 이미 내년 SOC 예산을 올해보다 12.9% 늘어난 22조3000억원으로 배정했다. 대부분 철도나 도로 등 토목 공사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라도 환경교사를 늘리고, 공교육을 대신해 민간이 하고 있는 환경교육도 확산하게 지원하면 안되나? 정부 지원 없다고 행동을 멈추랴.

환경운동가들은 환경인지감수성을 높여 행동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고 있다. 예컨대 환경재단이 16년째 해오고 있는 ‘환경영화제’는 복잡한 환경문제를 드라마로 속삭여주는 환경교실이다. &lt;플라스틱 차이나&gt; 다큐 한 편으로 중국 정부는 쓰레기 수입을 중단했다. 망망대해에 한배를 타고 디지털 세계를 떠나 대자연과 교감하며, 선상의 에코라이프를 체험하는 ‘그린보트’는 움직이는 환경학교다. 파도 위에서 자연과 내가 직거래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맞아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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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이낙연 총리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회담은 양국 간 대화의 시동을 걸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안 논의는 미흡했다. 이른 시일에 양국 관계가 복원될 것 같지 않다. 일본군위안부, 강제징용 등 역사 문제로 들어가면 앙금이 여전하다.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낙연 국무총리(왼쪽)가 24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이번 회담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이후 처음으로 성사된 한·일 양국 간 최고위급 대화다. 도쿄 _ 연합뉴스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은 집요하고 악랄하다. 무시와 무대응도 방법이다. 그러나 정상적 한·일관계,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마냥 외면할 수도 없다. 그러자면 일본의 거짓 주장을 똑똑히 알고 대처해야 한다. 독도가 예부터 우리 영토라는 사실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지도’ 등 수많은 고문헌과 고지도가 증명한다. 심지어 일본 문헌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은 극소수 자료를 들어 독도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거짓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예부터 자국의 영토였다는 ‘고유영토론’이다. 일본은 근거로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1864)를 제시한다. 그러나 독도를 일본 영토가 아닌 것으로 표시한 일본 기록도 적지 않다. 예컨대 일본 육군 발행 ‘조선전도’(1876)에는 독도가 조선 영토로 돼 있다. 둘째는 1905년 시마네현 주민의 청원을 받아들여 ‘무주지’ 독도를 영토화했다는 ‘무주지 선점론’이다. 그러나 이는 대한제국이 1900년 10월25일 칙령(제41호)을 통해 독도 영유권을 확립한 사실 앞에서 무너진다. 셋째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과정에서 미국이 독도가 일본 관할하에 있다는 의견을 냈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의견은 전적으로 일본 측 자료에 의존했다.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미국이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못 박지도 않았다.(동북아역사재단, <일본의 거짓주장 독도의 진실>)

독도는 한국 영토주권의 상징이다. 정부는 1948년 독도에 ‘경북 울릉군 남면 도동 1’의 주소를 부여했다. 당시 일본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독도에는 한국 주민이 거주한다. 상주 경찰과 공무원이 독도를 지키고 있다. 독도는 천연보호구역이다. 매년 10만명이 찾는다. 이렇듯 한국 정부는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우리땅.’ 이것이 독도의 진실이다. 10월25일, 오늘은 독도의 날이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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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해직교사이고, 전교조 조합원이다. 가끔 지인들이 물어온다. 박근혜 때 법외노조 때문에 해직되었는데, 왜 문재인 정부에서도 해결이 되지 않느냐고. 언제 학교로 돌아갈 것 같냐고.박근혜씨는 전교조를 몹시 미워했다. 2005년 사립학교법의 민주적 개정을 막겠다며 장외투쟁에 나섰던 박근혜씨(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전교조를 한 마리의 해충에 비유했고 전교조 해체를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 6만명의 교사가 조합원으로 있는 멀쩡한 노동조합인 전교조를 ‘노조로 보지 않겠다’고 통보하면서 전교조 탄압을 본격화한다. 1987년 민주화운동의 결과, 이미 설립된 노조는 사용자가 ‘강제 해산’할 수 없도록 법이 개정되었음에도 대통령 첫해인 2013년 모법에도 없는 행정조치로 강제 해산에 준하는 법외노조 통보를 한 것이다. 모법에 없는 행정조치가 적법한가를 두고 지루한 법적 공방이 오가는 사이 그 유명한 ‘양승태 사법농단’이 벌어졌고, 전교조는 2016년 1월부터 지금까지 법외노조 상태다. 국정원이 개입한, 국정농단 세력과 사법농단 세력에 의한, 그야말로 국가권력이 총동원된 전교조 파괴 공작이 집요하게 자행된 것인데 이를 두고 당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긴 프로세스 끝에 얻은 성과’라고 말하기도 했다. 

왜 박근혜 정권은 그다지도 집요하게 전교조를 없애려 했을까. 당시 박근혜 정권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과거를 손아귀에 넣음으로써 미래를 장악하려 했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은 바로 그 교과서로는 학생들을 결코 가르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매일 촛불을 들었다. 그 중심에 전교조가 있었다. 또한 박근혜 정권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묻고자 벌인 일련의 싸움에서도 전교조 교사들은 참으로 많은 것을 걸고 함께했다. 그렇다. 불의한 박근혜 정권에 맞서 싸운 숱한 촛불의 맨 앞에 전교조가 있었던 것이다. 100만 촛불이 타올랐을 때 촛불광장의 10대 요구 속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책임자 처벌과 함께,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와 함께,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가 있었던 이유다. 

역사는 전교조가 아닌 박근혜 정권이 사라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전교조에 가해진 법외노조 탄압 역시 사라져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전교조는 아직도 법외노조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오게 된다. 왜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권처럼 전교조 법외노조라는 탄압을 멈추지 않는가? 

이 질문은 안타깝게도 오랜 관행으로 굳어진, 이른바 적폐는 해소되었는가(되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초기 1년, 많은 사람들은 ‘적폐 청산에는 시간이 걸린다, 좀 기다려주자’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전교조도 ‘조만간 순리대로 법외노조 문제가 풀릴 것’이라며, 헌법이 부여한 ‘노조할 권리’가 유보당하는 상황에서도 애써 인내를 갖고 기다렸다. 하지만 교육적폐든 노동적폐든 그 청산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 

노동자의 권리는 여전히 법전에만 존재하고, 삶은 여전히 피폐하며, 해고자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고공에서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다. 이쯤 되면 문재인 정부는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를 포함하여 구시대의 적폐를 청산할 의지가 없는 것 아닌지 물을 수밖에 없다. 

10월24일은 전교조가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지 꼭 6년이 된 날이다. 해직도 4년째로 접어들었다. 노동자에게 일터는 단순히 돈벌이만 하는 곳이 아니다. 노동자의 노동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는 자긍심이야말로 생계만큼이나 중요하다. 나 역시 그렇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부딪히며 서로 성장해가는 나의 노동이 중단된 채 그저 하루하루 버텨가는 생활은 말 그대로 ‘고통’이다. 이 고통을 끝내는 길은 어렵지 않다. 이전 정권에 의해 부당한 행정조치로 법외노조가 되었다면, 문재인 정부가 다시 행정조치로 바로잡으면 된다. ‘전교조를 노조로 보지 아니함 통보를 취소함’, 이 단 한 문장으로써 말이다.

<이민숙 전교조 해직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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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이 일하는 편의점 바로 옆 상가는 한 은행의 자동화기기 창구였고, 다시 그 옆은 통닭 한 마리에 칠천원씩 파는 옛날통닭 전문점이었다. 옛날통닭 두 마리를 사면 만이천원. 오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운영했는데, 따로 배달은 하지 않고 홀에 테이블 네 개를 두고 생맥주와 소주를 함께 팔았다. 정용은 퇴근할 때마다 옛날통닭 전문점 안을 힐끔 바라보곤 했다. 손님이 한두 명 앉아 있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부부가 한 테이블씩 꿰차고 앉아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다. 그들 부부는 마치 지금 막 싸운 사람들처럼 말이 없었고, 지친 표정들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얼마 전이던가, 실제로 정용은 편의점 밖으로 재활용품을 내놓기 위해 나왔다가 옛날통닭 전문점 부부가 싸우는 모습을 목격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신경질이야, 신경질이!” 아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발끝으로 툭툭 입간판을 차던 남편이 대꾸했다. “모르면 관두든가….” “아까 그 닭 때문에 그러는 거야? 성희 엄마한테 준 통닭?” 여자가 묻자 “닭이 남아나지, 아주 남아나.” 남자가 퉁명스럽게 뇌까렸다. “아이고 이 쪼잔한 인간아, 성희 엄마한테 우리가 꾼 돈이 얼만데? 아까도 이자 받으러 온 거 몰라서 그래? 성희 엄마 아니었으면 우리 벌써 길바닥에 나앉았다고!” 마르고 키가 큰 아내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새된 목소리를 내질렀다. 남자는 살집이 좀 있는 편이었는데, 담배를 문 채 계속 이죽거렸다. “한 마리만 주면 되지, 두 마리까지 싸줄 게 뭐야” 남자가 먼저 점포 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여자는 한참 동안 혼자 씩씩거렸다. 그러다가 우두커니 서 있던 정용과 눈이 마주쳤다. 정용은 서둘러 시선을 돌렸지만, 여자의 눈이 그렁그렁해져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그 뒤로 정용은 퇴근할 때마다 버릇처럼 그들 부부의 상황을 살폈다. 장사라도 잘되면 괜찮으련만, 그럴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더 나빠진 건 자동화기기 창구 바로 앞에 한 노부부가 자리를 잡고 붕어빵을 팔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노부부는 리어카에 붕어빵 기계를 싣고 와 장사를 시작했다. 붕어빵 두 개에 천원, 이천원을 내면 다섯 개를 주었다. 팥 붕어빵뿐만 아니라 슈크림 붕어빵도 팔았는데, 그게 꽤 맛이 좋은 모양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퇴근 무렵만 되면 노부부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이 보였다. 정용도 몇 번 퇴근하면서 그 붕어빵을 사간 적이 있었다. 붕어빵 맛은 둘째 치고 정용에겐 그 노부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주로 할머니가 붕어빵을 굽고, 할아버지가 그것을 종이봉투에 담아주는 방식으로 일했는데, 부부 사이가 마치 이제 막 결혼한 사람들처럼 금실이 좋아 보였다. 할아버지는 자주 할머니의 등 뒤로 가서 어깨를 주물러주었고, 할머니는 틈만 나면 할아버지의 입속으로 견과류 따위를 넣어주었다. 언젠가 한번 비 오는 날엔 할아버지가 우비를 입은 할머니 옆을 한시도 떠나지 않은 채 우산을 받치고 서 있기도 했다. 그 모습이 붕어빵 맛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에이 참, 꼭 여기서 저런 것을 팔아야 하나?”

편의점 점장은 붕어빵 노부부를 볼 때마다 노골적으로 신경질을 냈다.

“그래도 뭐 우리랑 겹치는 걸 파는 것도 아니니까요….”

정용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로 붕어빵을 산 사람들이 편의점에 들러 우유나 탄산음료를 사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왜 겹치는 게 없어? 붕어싸만코는 뭐, 같은 붕어 아닌가?”

정용은 멀거니 편의점 점장을 바라보았다. 저건 뭔 붕어 같은 소리인가? 정용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편의점 점장은 정말로 심각하게 붕어빵 노부부를 자신의 경쟁업체로 여기는 듯했다. 그는 정용이 출근할 때마다 계속 같은 말을 했다.

“네가 나가서 말 좀 해봐.”

“제가요…?”

“여기 말고 다른 곳 가서 하시라고 그래. 저쪽에 가면 공원도 있다고.”

정용은 그때마다 일단 편의점 밖으로 나오긴 나왔다. 하지만 차마 붕어빵 노부부에게 그런 말을 할 순 없었다. 그는 괜스레 붕어빵 리어카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다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점장이 “말했어?”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요…”라고 대충 둘러대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하루, 점장이 또다시 보채서 편의점 밖으로 나온 정용은 노부부 앞에 서 있는 옛날통닭집 아내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할아버지, 저희도 정말 힘들어요.”

옛날통닭집 아내가 말했지만, 노부부는 못 들은 척 계속 붕어빵만 굽고 있었다.

“사람들이 통닭 사러 왔다가 그냥 붕어빵만 사 들고 간다고요.”

“미안해요, 미안해. 우리도 이게 먹고살아보겠다고 시작한 일이라서….”

할아버지 대신 할머니가 말을 받았다. 리어카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거, 너무하네”, “어르신들이 하는 일인데” 하면서 수군거렸다.

“저희는 월세도 내야 한다고요….”

옛날통닭집 아내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자 옛날통닭집 점포 안에서 남편이 나와 아내 옆에 섰다. 그는 잠깐 동안 노부부 쪽을 노려보다가 조용히 자신의 아내를 일으켜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아내의 어깨를 감싼 손을 풀지도 않았다. 정용은 그들이 점포 안으로 사라진 후에도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정용이 다시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자 점장이 물었다.

“말했어?”

“네.” 정용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뭐래?”

“그냥 다 미안하대요.”

“미안하대? 그게 전부야?”

“네….”

점장은 편의점 유리창 밖을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에이 씨, 나도 편의점 밖에 나가서 어묵이나 팔아볼까?”

정용은 묵묵히 그 말도 견디면서 서 있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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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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