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는 한국에서 온 국민의 관심사다. 언론은 예비고사, 학력고사, 수능 1등이 누구인지를 찾아내 공개해왔고, 수능 오답이 나오면 관련 분야 석학끼리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교육부가 입시 방향을 정할 때마다 여론은 매섭게 편을 가른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조국 전 장관의 딸 입시 문제가 이슈가 되고 여론의 뭇매를 맞자 문재인 대통령은 “정시를 확대하겠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했다. 논쟁에 또 한번 불이 붙었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파와 정시파의 논쟁이 시작됐다.

1980년대까지 대학은 20% 이내가 가는 곳이었다. 대입제도에 대한 논쟁이 있을지언정 교육 전반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고교 성적 상위 20%의 줄을 어떻게 세우느냐의 문제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신설대학이 늘면서 50%가 가는 곳이 됐다. 2000년대 이후 70~80%가량이 대학에 가게 됐다. 대학을 졸업한 학부모들도 늘었다. 대입을 겪어본 학부모와 그들의 자녀가 있다. 더 많은 의견을 내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양한 연구들을 보면 학종은 교사와 대학교수들이 좋아한다. 학부모는 통계적으로 특별한 선호가 안 잡힌다. 학종팬도 있고 정시팬도 있지만, 자녀가 적성을 잘 살려 원하는 대학 중 가장 좋은 곳을 갈 수 있게끔 제도에 잘 맞추려 한다. 정책이 사교육비를 줄여주면 만족할 따름이다. 교사들은 연차가 높을수록, 특목고나 자사고보다는 일반고에서 근무할 때 학종을 지지하기 쉽다. 수능에 의해 의미가 사라졌던 ‘학교 수업’이 학종 도입 이후 ‘돌아왔다’는 평가다. 교사의 정성평가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면서 업무량이 늘었지만 동시에 재량권도 생겼다는 평가다. 교육당국도 학종을 선호한다. 부모의 학력이나 소득에 따라 입시 결과가 벌어지는 것을 학종이 방어하고 있고 그래야 한다는 정책적 분석과 신념 때문이다. 실제 학종은 교육특구(강남, 서초, 송파, 양천 등)가 아닌 지역과 일반고 학생들이 성과를 많이 내는 전형이라는 분석 결과도 나온다.

대입 논란에서 빠져 있는 가장 중요한 주체는 바로 학생이다. 학생들은 한결같이 정시를 선호한다. 출신지역, 교육특구 여부, 출신학교와 상관없이 정시를 학종보다 선호한다. 수험생들의 학종에 대한 지지가 5점 만점에 2점 수준이라면, 정시에 대한 지지는 5점 만점에 4점 수준이다. 학생들이 정시를 지지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공정함’이다. 이쯤에서 많은 평론가들은 ‘신자유주의적 공정 이데올로기’가 10대와 20대를 잠식했다며 학생들을 은연중에 문제화시켜버리곤 한다. 그런데 수능과 정시에 대한 지지를 학생들의 성향으로 환원하는 것은 정당한 것일까? 아니 정확하기는 한 것일까?

학교에는 다양한 학생이 있다. 학업성취, 다양한 소질 외에 학교 교육에 대한 태도도 차이가 난다. 학종은 교사가 제시하는 것을 잘 따르고 경시대회나 동아리 활동, 비교과 활동을 잘 따라오는 학생, 즉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아이”에게 상을 주자는 취지다. 그런데 비상한 두뇌를 가졌으나 학교에서 제시하는 방식의 지도가 힘든 학생은? 교사의 지도에 잘 따르고 있지만 속으로는 불만인 학생은? 늦게 공부 욕심이 생겼는데 누적된 성과가 좋지 않아 입시에 대한 기대를 낮춰야 하는 학생은? 폭력에 지친 학생에게 학교가 충분히 응답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의 학종에 대한 반감과 정시에 대한 지지는 학교 현장에서 학교 교육에 대한 정당성의 누수가 발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학생들에게 정당성을 잃는 한 입시개혁 조치는 ‘꼰대’들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 그친다. 

학종과 정시 어떤 것을 택하더라도 최상위 대학의 입시전쟁을 막을 방법은 없다. 어느 나라든 최상위 대학에 가는 경쟁은 지옥이다. 학습 동기부여가 가장 잘된 학생들이 한정된 자리를 놓고 펼치는 경쟁이기 때문이다. 지역균등선발 등 제도 설계를 통해 약간의 완화는 가능하지만, 대학 전체를 평준화하거나 정원을 없애지 않는 이상 완벽한 해결은 불가능하다. 학종에 대한 몇몇 연구는 학종으로 인한 사교육비가 수능일 경우와 큰 차이가 없거나 더 많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스카이캐슬’과 ‘수능 1타 강사’들의 위세를 교육당국이 입시제도를 통해 잡을 수 있다는 제도만능론을 버려야 한다.

교사와 교육행정가들이 학부모들과 더불어 입시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와중에 놓치고 있는 건, 교육이 다수 학생들과 소외되는 학생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을 민주주의 사회의 주체로 어떻게 품어낼지에 대한 고민이 더 값질 것이다. 불공정을 말하는 학생들은 성적 경쟁의 불공정뿐만 아니라, 자신이 학교에서 부당하게 대우받는다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학생 전체가 중등교육을 통해 사회에서 필요한 기초소양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시의적절하고 다양한 역량을 교육은 제공하고 있는가? 최상위권을 제외한 한 반 30명 중 6~25등의 배움과 성장이 교육 문제의 중심에 와야 할 것이다. 표면적 반응에 대증처방으로 대응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입시에 대한 멋지고 공정한 설계는 교육정책 성공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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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장법에 따르면 사회보장제도는 “질병, 장애, 노령, 실업,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빈곤을 해소하며 국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질병, 장애, 노령, 실업 등을 사회적 위험으로 정의한 것은 그로 인해 겪게 될 사회경제적 차별이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난에 대한 책임을 여전히 개인에게 떠넘긴다. 1촌의 직계혈족과 배우자의 소득에 따라 부양의무를 지는 것이 복지 사각지대를 발생시킨다는 비판이 나온 지 오래다. 문재인 대통령도 100대 국정과제로 폐지를 약속했지만 작년 10월 주거급여만 기준이 폐지되고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는 기준이 완화되었을 뿐이다. 사회적 합의와 단계를 핑계 삼는 사이 지난여름 서울 관악구 한부모 가정의 탈북여성과 장애가 있는 아들이 아사했다. 9월에 강서구에선 80대 어머니와 50대 장애인 아들이 동생에 의해 살해됐다. 관악구의 탈북여성에겐 부양의무자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한, 중국에서 이혼한 남편과의 이혼확인서를 요구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근로능력평가 등 제도는 문턱을 낮추는 대신 장벽을 높여 왔다.

가족 살해와 자살이라는 사회적 타살 사건을 중심으로 언론은 보도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겪어야 할 모욕은 깊고 다양하다.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박탈당할까 봐 자신의 삶을 검열하고 통제하는 일상에 익숙해져야 한다. 방송대학교에 입학한 한 장애여성은 ‘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돈이 있으면 수급자격을 박탈당한다’는 소문을 듣고 1개월 만에 자퇴했다. 주민자치센터에서 사실 확인을 해볼까 했지만 가족 전체의 금융정보가 조회되면 긁어 부스럼 만들까 봐 ‘알아서’ 그만뒀다고 한다. 그는 “내가 일해서 수입이 생겨도 오히려 겁이 나니 나 스스로 능력이 없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다. 국가가 늘 감시하고 의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알아서 조심할 수밖에 없다고 자조한다. 가난한 사람, 장애인은 의존적 존재라는 낙인을 스스로 수용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차별을 정당화시키는 문화다. 의심이 증명을 부르고, 가난하다는 증명은 결국 낙인이 된다.  

다른 장애여성은 끝까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일용직 노동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가 끝까지 거부하고 싶었던 것은 수급자격이 아니라 사회적 낙인이 아니었을까? 수급자인 지금 그는 “자존심이 상하지. 내가 돈을 못 벌지만 무능한 것 같진 않은데, 수급자가 된 이후엔 나뿐만 아니라 친구와 가족들 모두 수급자라는 것만을 중심으로 관계가 설명되니 정말 이상하지?”라고 반문한다. 삶의 반경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만 수급자격 유지를 위해선 사회적 일과 삶은 비가시화해야 했다.

부양의무를 가족에게 지게 할 때, 서로 의존하며 돌보는 공동체의 가치는 오히려 무너진다. 자식에게 폐가 될까 봐 무연고의 삶에 서게 된다. 불평등의 양극화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부양의무자를 찾기 위해 서류를 뒤지지 말고 빈곤의 사각지대를 샅샅이 찾아야 한다.

가난하며 또한 사람을 만나고 또한 일을 하며 또한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 이들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한 우리들의 기지개’ 농성을 청와대 앞에서 시작했다. “나는 가난하지만 차별과 멸시를 거부한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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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한 시국이다. 자칫 대한민국의 역사가 다시 후퇴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촛불의 힘으로 등장한 정권은 지지율이 떨어졌고, 퇴행적 수구기득권 세력은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게다가 큰 제도개혁은 여태 이뤄낸 게 없다. 개헌은 작년에 무산됐고, 마지막 남은 게 지금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올려져 있는 검찰개혁(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과 선거제도 개혁(만 18세 선거권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지금은 이 두 가지 입법을 성사시키는 게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이마저 무산된다면, 촛불은 아무런 제도개혁의 성과를 남기지 못한 셈이 된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을 먼저 할 것인지는 의미 없는 얘기다. 패스트트랙이라는 절차에 올려질 때부터 검찰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은 한배를 탔다.

그런데 두 가지를 모두 성사시킬 책임이 있는 집권여당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게 지금 진행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과의 3+3 협상이다. 이를 보면, 집권여당이 개혁을 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를 묻게 된다. 

지금 한국당은 공수처법과 선거제도 개혁 모두에 명확히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온갖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다. 이런 한국당과 협상을 해서 무슨 결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한국당의 ‘시간끌기’ 전략에 넘어가는 것일 뿐이다. 

지금 집권여당이 해야 할 일은 개혁을 하겠다는 세력과 협력해 국회 본회의 통과에 필요한 과반수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난 4월 패스트트랙에 합의했던 정당들과의 협력체계를 시급히 복원해야 한다. 지난 10월23일 이들 정당은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기구인 정치개혁공동행동 및 원외정당들과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패스트트랙을 성사시킬 것을 결의한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가칭)대안신당의 유성엽 대표도 참석했다. 바른미래당의 경우에도 유승민 의원, 안철수 전 대표 쪽 의원들을 제외하면 협력이 가능한 상황이다. 집권여당이 의지를 갖고 이들과 협력하면 160석 남짓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면 검찰개혁, 선거제도 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킬 수 있다.

다만 법안 통과를 위해선 두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법안들을 수정·보완해야 한다. 이 부분은 개혁을 하고자 하는 정당, 시민사회단체들과 협력해 진행하면 된다.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선거제도 개혁안은 국회의원 지역구를 현행 253개에서 225개로 줄이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지역구는 250개 정도로 하고, 전체 의석을 10% 정도 늘리는 게 현실적 개혁안이다. 10%의 의석 증대는 작년 12월15일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서명한 합의서에도 ‘검토 가능’하다고 되어 있었던 부분이다. 둘째, 의석 증대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얻기 위해선 내년부터 국회의원 연봉을 삭감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보좌진 규모 축소, 각종 국회의원 특권 폐지 등에 대해서도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개혁을 하고자 하는 쪽이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최근 한국당 측이 퍼뜨리는 가짜뉴스를 보면, 민망할 정도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반부패수사기구는 영국에도 있다. 영국의 중대범죄수사청(Serious Fraud Office)이 그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나라가 반부패를 위한 기구를 확대하는 추세다. 유엔 반부패협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뇌물방지협약 등이 체결되면서 전 세계적인 ‘글로벌 스탠더드’는 어떻게든 부패를 없애야 한다는 것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고위 공직자들의 부패가 심하고, 검찰·국회 등 부패 감시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나라에서 공수처는 반드시 필요하다. 

게다가 공수처장 임명 절차는 검찰총장 임명 절차보다 훨씬 까다롭다. 7명의 공수처장 추천위원 중 6명이 찬성해야만 추천이 가능하다. 야당 몫 추천위원 2명이 반대하면 추천을 하지 못한다. 변호사들이 직선으로 선출하는 대한변협 회장도 추천위원인데, 이 정도 추천 절차의 독립성은 확보됐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국회 동의 절차를 추가로 거치게 해도 좋다. 어쨌든 공수처는 지금의 검찰보다는 훨씬 독립성이 확보되는 구조이다. 그런데 이런 공수처를 두고, 장기집권을 위한 도구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가짜뉴스다. 

한국당 측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관련해서도 ‘입법부 장악 의도’라고 하는데, 한심한 얘기다.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자는 게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이것이 입법부 장악 의도라면 한국당은 내년 총선에서 낮은 정당득표율을 얻겠다고 스스로 결심했다는 얘기인가?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서 정당득표율을 높이면 자기 정당의 의석이 늘어날 텐데, 제1야당이 가짜뉴스나 퍼뜨리고 있다. 

문제는 이런 한국당과 협상을 하고 있는 집권여당이다. 지금이 합의처리 운운할 한가한 때인가? 역사의 열차가 앞으로 나아가느냐 뒷걸음치느냐의 중요한 순간이다. 집권여당이라면 책임의식을 갖고 어떻게든 일을 되게 만들어야 할 때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개혁, 검찰개혁은 매번 무산되기만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를 잊었는가? 그런데 지금 그 기회가 왔다. 여기에서 머뭇거린다면, 정치할 자격이 없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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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출판사 대표요, 수십년을 편집 일에 종사하다보니 맞춤법, 외래어 표기, 띄어쓰기에 유독 민감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길거리나 TV에서 맞춤법에 맞지 않은 걸 보는 게 일상이기에 조용히 원고의 틀린 철자는 고칠지언정 남의 맞춤법 오류를 지적하는 일은 거의 없다. 노래방에서 노래는 안 부르고 가사 틀린 것을 고치고 앉아 있다는 편집자들 얘기도 이제는 식상하다. 오히려 맞춤법이나 외래어 표기의 오류를 지적하려다가도, 모종의 지적 우월의식이나 전문가주의가 내게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조심스럽다.

아내는 젊었을 적 영어권 국가에 잠깐 유학했을 때 현지 이름으로 ‘수잔’을 썼다고 한다. 천주교 세례명이 ‘수산나’여서 그런 이름을 쓴 것인데, 문제는 영문 표기를 ‘Sujanne’으로 썼다는 것이다. 한글에서는 수전, 수잰, 수잔, 무엇을 쓰든 다 같은 이름인데, 영어에서 ㅈ을 s가 아닌 j로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나는 또 편집자병을 버리지 못하고 지적했다. “영어에서 s와 z는 서로 통하는 음가를 가지고 있지만, j는 완전히 다른 발음이에요. 수산나를 ‘Susan’이나 ‘Suzanne’으로 쓸 수는 있지만 ‘Sujanne’으로 쓰면 아예 다른 이름이 된다고.” 아내는 벌컥 화를 내면서, 현지 영어선생이 그렇게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반박했다. 나는 속으로 ‘그 사람들이야 자기 이름 제 맘대로 쓴다는데, 그런 개인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지 표기가 옳다는 건 아닐걸?’ 하고 생각했지만, 논쟁이 커질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을 꿀꺽 삼켰다. 결혼 당시 아내가 타던 소형차 뒷문에도 ‘Sujanne’이라는 스티커가 떡하니 붙어 있었는데, 나는 몇 번이나 손톱으로 j를 만지작거리다가 아내가 경을 칠까 봐 떼지 못했다. 이후로도 스티커를 볼 때마다 끙끙 앓았지만.

사람들에게 이 일화를 들려주자 난리가 났다. 한 사람은 자신의 성 ‘부’를 ‘Poo’로 표기한 바람에 보는 사람마다 괴로워한다고 했다. 곰돌이와 일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누군가 ‘Bu’로 써야 한다고 하자, 그러면 가족이 모이면 ‘Bus’가 되는 거냐는 말에 모두가 웃었다. 다른 친구는 성을 ‘Ahn’으로 안 쓰고 ‘An’으로 표기하는 바람에 자음인 이름 앞에서 잘못 쓴 관사 취급을 받는다고 했다. 또 어떤 친구는 장씨 성을 ‘Jang’으로 썼더니 독일어권에 가서 ‘양’씨가 되고 말았다며 사람들을 웃겼다. 차범근 감독이 ‘Bum’이라는 표기 때문에 독일에서 ‘차붐’으로 불린 것은 이 방면의 전설이라 하겠다. 공을 그렇게 잘 찼으니 ‘붐’으로 불려도 좋지 않았을까?

맞춤법 혹은 외래어 표기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언어 규범주의와 실용주의의 오랜 대립에까지 이르게 된다. 의사소통의 일관성과 언어생활의 일치 또는 학술적 정확성을 위해서 우리말에 표준어와 맞춤법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언어 규범주의 또는 순혈주의의 입장이다. 반면, 끊임없이 변하는 언중의 언어생활을 일관성도 없는 규범으로 강제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합의에 맡겨야 한다는 언어 민주주의적 주장이 실용주의의 입장을 이룬다. 여기서 민주주의라는 말을 썼다 해서 실용주의가 반드시 옳다는 건 아니다. 

최근에 출간된 변정수 출판평론가의 <한판 붙자! 맞춤법>은 이런 언어 순혈주의와 실용주의의 어느 한 편을 택하는 책이 아니어서 반가웠다. 저자는 맞춤법의 강제 규정이 확대되어 언어 정보에 불과한 표준어까지 강제 규정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표준어보다 ‘공통어’로 우리의 언어적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행 규범이 만들어진 취지를 이해하는 게 우선이고, 그렇게 한다면 오히려 규범의 강박에서 벗어나 의사전달의 효율성과 표현의 적절성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령 외래어표기법이 현지 발음과 얼마나 비슷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끼리 소통하기 위한 약속임을 안다면 ‘어륀지’나 ‘오렌지’나 무엇이 문제일까. 책에는 이 밖에도 우리말의 성립과 쓰임에 관한 심도 깊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한글날이 지난 지도 오래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른바 ‘조국 사태’ 앞에서 무슨 한가한 글로 지면을 낭비하느냐는 말이 귀에 따갑게 들리는 듯하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법이나 규정이나 제도가 무슨 상관인가. 거리의 사람들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 아내의 틀린 철자에도 수산나 세례명을 꼭 쓰고 싶은 아름다운 의도가 숨어 있듯이, 거리의 목소리들에도 뭔가 사람들의 염원이 있는 것이다. 그 ‘공통어’를 찾아나가는 것이 정치의 일이요, 언론의 일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어느 쪽에도 서지 못한 자의 참 한가한 얘기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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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기요금을 둘러싼 논란에서 농사용 전력요금은 논의의 중심에서 비켜서 있다. 한국전력 통계를 보면 2018년 전체 전기 소비에서 농사용 전력 소비자는 8%, 전력사용량은 4%, 전기요금은 2%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비중이 작다는 이유로 농사용 전력요금을 그대로 두기에는 문제점이 있다.

우선, 농사용 전력을 대규모 기업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농사용 전력은 영세한 농어민의 농림어업 활동 지원을 위해 도입돼 요금 인상이 최대한 억제돼 왔다. 2005년 이후 농사용 전력의 판매단가는 연평균 상승률이 1.1%에 그쳐 거의 변화가 없다. 반면 적용 대상이 점차 늘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의 대안으로 국내 농수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적용 대상은 더욱 확대되고, 영농 주체도 대규모화, 기업화한 결과다. 그 결과 영세 농어민뿐만 아니라 대규모 설비를 갖춘 기업도 농사용 전력을 사용한다. 논밭에 물을 대거나 묘를 키우는 데뿐만 아니라 보관·유통하는 시설에까지 농사용 전력을 적용한다. 원가의 40%에도 미달하는 낮은 요금으로 영세 농어민이 아닌 대규모 시설이나 기업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원가에 미달하는 농사용 전력 비용을 다른 계약종별 소비자들의 요금으로 채우는 ‘교차보조’ 문제도 발생한다. 대규모 기업들의 전기요금 납부 부담이 다른 소비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농사용 전력의 판매단가는 kWh당 47.43원으로, 산업용(106.46원)이나 전체 계약종별(108.75원)의 절반도 안된다. 대규모 기업들이 농업을 한다는 이유로 다른 소비자들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으로 농사용 전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석유에서 전기로 소비가 대체되는 현상으로 에너지 소비의 비효율이 심화하는 점이다. 석유 가격은 꾸준히 상승한 반면, 농사용 전력요금은 거의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에너지 소비대체 현상은 추가적 비용을 초래한다. 수입해야 하는 석유 양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추정에 따르면 농사용 전력의 에너지 소비대체 현상으로 인해 2005년부터 2016년까지 누적된 추가 비용이 3조2582억원에 이른다.

결국 농사용 전력의 문제는 낮은 요금에서 비롯됐다. 농사용 전력을 영세 농어민에게 저렴하게 공급할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지원’ 대상과 ‘지원’ 금액에 대한 보다 섬세한 논의는 묻혀 왔다. 이에 대한 개선대책으로 대규모 기업 소비자를 구분하여 농업용 전력 요금체계 내에서 별도의 요금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일정 계약전력 이상의 대규모 고객들은 농사용 전력이라는 계약종별은 유지하되 영세한 농사용 전력 고객들보다 높은 요금을 적용하는 것이다. 농사용 전력 원가를 보상하거나 다른 계약종별 판매단가와 유사한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높여가는 방식이 현실적일 것이다.

규모를 구분하지 않고 전체 농사용 전력요금을 인상하는 것은 농사용 요금제도 취지를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전력의 전기요금표를 보면 일반용 전력, 교육용 전력, 산업용 전력도 일정 계약전력을 기준으로 요금단가를 달리 운영하고 있다. 다른 계약종별은 사용량 증가가 정체기에 접어든 반면, 농사용 전력의 증가세가 견고한 상황에서는 앞서 지적한 문제점들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농사용 전력 문제가 취지를 살리면서도 합리적인 방향으로 논의되기를 희망한다.

<안현호 | 대구대 일반사회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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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180일 앞으로 다가왔다. 내년 4월15일에 예정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 전 180일인 10월18일 이후부터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정한 행위들이 제한 또는 금지된다. 바야흐로 선거기간이 시작된 것이다.

정치인들도 여러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역대 최악으로 평가받는 제20대 국회 성적표에 책임을 지고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초선 정치인도 있고, 같은 이유로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국회법을 위반하여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오히려 다음 선거에서 공천 가산점을 주겠다고 약속한 정당이 있다. 이들이 한 시대에 살고 있는 유권자의 대리인으로 선출된 사람들이라는 것이 혼란스러울 정도다.

국회에서는 다음 선거의 규칙을 정하는 선거법 개정안 의결을 앞두고 있다. 

갑론을박이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의 선거 제도는 동네 1등을 뽑는 데 집중한 나머지 후보를 선택한 주권자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고, 이번 개정안은 이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한 출발이라는 점이다. 동네 1등만 모이는 곳이 국회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 특히 동네에서 1등하기 힘든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가 모이는 곳이 국회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제도 개혁 법안이 반드시 국회 본회의를 통과되길 바란다. 

한 가지 다음 선거에 바라는 것이 있다. 바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가 정치적인 구호로 등장하지 않는 선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혐오표현’이란 사회적 소수자(산술적으로 소수인 경우가 많지만, 꼭 소수가 아니더라도 상대 집단에 비해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작은 집단을 의미한다)를 공개적으로 모욕하거나, 이들에 대한 배제와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을 말한다. 성별, 장애, 종교, 나이, 인종, 성적지향 등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고유한 차이를 기준으로 사회적 영향력이 약한 소수 집단의 존재와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효과를 준다. 무엇보다 정치인의 혐오 표현은 대중들에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그럼에도 ‘혐오표현’의 유혹은 강렬하다. 다수에 속한 ‘우리 편’을 편가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혐오표현은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한 의견이 아니라 차별에 동참하는 선동이 목적이어서 이에 동조하는 세력을 만들고, 이들은 또 다른 혐오표현을 양산한다. 

소수자를 구별 짓는 차이점은 발 딛고 있는 사회의 수준에 따라 그 수용률이 다른데, 현실의 혐오세력은 항상 가장 약한 곳을 공격한다. 지난 선거에서 후보자들은 서로에게 ‘노인에 대해 찬성하는지’나 ‘장애인의 결혼에 찬성하는지’에 대해서는 물을 수 없었지만, ‘동성애 또는 동성 결혼을 찬성하는지’ ‘외국인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하는지’는 캐물었다. 보수 기독교의 동원된 표심과 불황기 사회경제적 상황에 힘들어하는 국민들의 걱정을 해결할 자신 없는 정치인들이 우물쭈물 눈치를 보는 사이에 현실의 혐오는 더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선거 시기에 혐오표현을 규제하기 위한 혐오표현 금지법 등 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민주주의는 모든 인간의 차별 없는 동등한 가치를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지 않고 무조건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혐오의 선동은 민주주의와 만날 수 없다. 모든 유권자가 존중받는 선거가 되길 희망한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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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사퇴한 날 법무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오른 글 하나 제목은 ‘(조국은) 불멸의 영웅’이다. 윤석열을 두고도 광화문광장에 ‘국민영웅! 윤석열 총장님! 쫄지 마세요!’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두 사람을 두고 악마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극렬 지지자나 반대자들에겐 이 싸움은 성전(聖戰)이다. 10·26엔 다시 박정희 영웅화가 벌어진다. 한 단체는 40주기 추도식 때 ‘부국의 영웅’으로 수식했다. 황교안 등이 몰려가 박정희 정신을 배우자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구미시장 장세용은 추도사에서 박정희를 ‘세상을 끊임없이 바꿔 나간 혁신가’로 칭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권력자의 문제를 두고 왕조 시대의 영웅과 역적의 서사, 중세의 악마까지 끌고와 다툰다. 집권세력과 야권은 각각 극단의 주장과 믿음에 편승하거나, 스스로 조장하려 든다. 상식과 보편의 가치로 판단할 일을 극단으로 끌고온 건 이들 세력이기도 하다. 집권세력은 핍박받는 야당인 양 박해와 저항의 프레임까지 만들어 ‘조국 사태’에 임했다. 그 직전 프레임은 ‘반일 민족주의’였다. 그 많던 반일 민족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왜 반일 민족주의가 ‘반검찰’과 ‘친조국’으로 대체됐는지 그 의문을 해소할 합당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 이들의 이슈전은 그때그때뿐이다. 2016년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나라가 망할 듯 필리버스터를 벌인 이들이 정작 집권 3년차에도 폐지는커녕 개정안도 발의하지 않았다.

이들 세력과 진영은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듯하나 여전히 ‘적대적(으로 보이나 실은) 공생(하는) 관계’다. 이런 관계의 본질은 노동과 경제 문제를 두고 확연히 드러난다. 여야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두고 대치하면서도 노동계가 반대하는 탄력근로제를 31일까지 처리하기로 했다. 권력자들은 재벌을 만나 애로사항 해결을 약속한다. 집권세력의 ‘노동 존중’ 포기에 대해 야권이 결사반대하는 일은 없다.

노동과 삶 문제에 관해서라면 세상은 여전하다. 권력 핵심부는 속내를 드러내곤 한다. 김현철은 청와대 경제보좌관일 때 “(20·30대는) 여기(한국)에 앉아서 취업이 안된다고 ‘헬조선’이라 하지 말고, 아세안 국가를 보면 ‘해피조선’이 된다”며 동남아로 가라고 했다. 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장병규는 주 52시간제를 두고 “실리콘밸리에서 출퇴근시간을 확인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영웅 서사는 인재 서사로 이어진다. 장병규는 ‘전통적 노동자’와 구분한 ‘인재’를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이라고도 했다. 현 청와대 경제수석 이호승은 “톨게이트 수납원이 없어지는 직업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느냐”고 했다.

‘경쟁’과 ‘혁신’, ‘인재’를 내세우며 ‘도태’를 자연시하는 이 정권이 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저출산 문제 해결 뒤 태어난 아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인재가 되는 것인가. 

세상을 주무르는 권력자들에겐 사람들은 잇속을 위한 도구와 업적을 과시할 거시 통계의 숫자일 뿐이다. 개별의 해고와 실직, 감정노동과 죽음 같은 삶의 파탄을 ‘부수적 피해’로 여긴다. ‘4차 산업혁명’의 부추김 속에 노동자들은 사라지거나 죽어간다.

정부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25일 한 시멘트 공장 환풍시설 안에서 32세 노동자 박모씨가 숨진 사실이 알려졌다. 사망일은 박씨 생일이었다. 티센크루프의 협력업체 노동자 5명이 안전사고로 죽었다. 기득권들은 절망적 죽음을 절실한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권력 쟁취와 선거 승리를 위해 서로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부추기면서도 자신들만이 세상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낙관주의를 퍼뜨린다. 이들의 언어엔 아름다운 선언과 감성을 자극하는 말이 가득하다.

“우리는 낙관주의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만인의 사랑을 받으리라고 기대되는 사랑스러운 세계전망’을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디에 있더라도 오직 정의를 편들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수행해야 할 국지적인 과업 몇 가지를 떠맡을 따름이다.” 좌파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낙관하지 않는 희망>(우물이 있는 집) 첫 장에 영국의 신학자 허버트 매케이브의 이 말을 인용한다. 고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의 활동이 이 말에 부합한다. 아들의 죽음 이후 줄곧 산재 현장과 투쟁 현장을 찾아다녔다. 김용균재단 초대 대표를 맡은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득권 세력이나 정계 쪽에서는 기업하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 하고 있다”고 했다.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출범일인 지난 26일은 김용균이 숨진 지 321일째 되는 날이다. 김미숙은 “아들의 죽음 이후로도 사회가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김종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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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국무총리는 참 어려운 자리이다. 그 출발은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절충한 제정 헌법이다. 각료 제청권 등 헌법상 권한이 작지 않지만 제대로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대쪽 판사’로 소신이 하늘을 찔렀던 이회창 총리가 헌법상 부여된 권한을 행사하려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전격 교체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 외 정·관·학계 출신의 명망가 총리들이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지위에도 불구하고 국정쇄신 카드로 쓰여온 게 헌정사의 풍경이다. 이낙연 총리(45대)까지 내려오는 동안 재임기간 1년을 넘긴 경우는 20명 남짓이라는 점이 이를 웅변한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이낙연 국무총리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총리가 대선주자 반열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하지만 이회창을 제외하고는 당선권에 들 정도로 의미 있는 후보가 된 사례도 없다. 총리를 두 차례 지내 행정의 달인으로 불린 고건은 지지율 1위를 달리다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준을 자신할 수 없게 된 것도 ‘총리 잔혹사’를 부추긴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장상, 장대환 두 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낙연 총리가 28일로 김황식 전 총리의 재임기간을 뛰어넘어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 정치권의 대립이 격해지는 상황에서 나온 기록이라 더욱 눈길이 간다. 우선 이 총리처럼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의 질문 공세를 재치 있게 받아넘긴 경우가 별로 없었다. 공무원들로부터 인기가 없다는 평이 있지만, 공직의 매너리즘을 질타하는 것은 백번 잘하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투톱 외교’를 펼치고, 특히 대일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자신을 낮추고 있다. 2인자 처신에 능한 전통적인 총리상에 자기만의 색깔을 가미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선 지지도 1위를 달리는 이 총리가 총리 출신 첫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데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빼어난 언변과 균형 감각을 뛰어넘는 소신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 때도 다른 목소리를 냈다고 하지만 결론을 바꾸지 못했다. 매끄러운 처신이나 수성의 방식으로 최고 지도자가 되기는 어렵다. 누구보다도 이를 잘 아는 이 총리의 향후 행보가 궁금하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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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람이 흰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새 날아간 자리 가지처럼 파르르 눈동자 떨리던 사람

바스락거리는 별을 끌어다가 반짝, 담배에 불붙이던 사람

산등에 걸린 달을 눈으로 담은 사람

흙 파인 돌계단에 앉아 찬찬히 처마의 달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벼 바심 끝난 논바닥에 뒹구는 바람을 끌어다가

옷깃 안으로 여미던 사람

문득, 돌아선 곳에서 나를 달빛 든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


그 사람


바라보다가 고라니 까만 눈으로 바라보다가 잡으려 하니

그 자리에 별이 스러졌다


박경희(1974~)

어떤 것은 눈에 들어오고 또 무엇과는 눈길이 마주친다. 시인은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고 그 사람이 만나고 바라보고 있는, 접촉하고 있는 것들을 함께 감각한다. 그 사람은 갈바람, 별, 달과 달 그늘, 바람 등을 느끼고, 시인도 함께 이것들을 감각한다. 그러나 시인이 그 사람과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그 사람은 형체가 차차 희미해지며 없어진다. 아마도 그 사람은 옛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 사람이 했던 과거의 어떤 한 행위를 통해서 혹은 되풀이한 행위를 통해서 그 사람을 기억하기도 한다. 옷매무새와 손동작과 특유의 억양과 말투, 그리고 쓸쓸한 시간 속에 있을 때의 뒷모습 등으로 그 사람을 생각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했던 행위를 기억해내는 일은 그 사람의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하고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달빛 든 눈”과 “고라니 까만 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은 이 가을에 물들어가는 잎사귀를 가만히 바라보고 싶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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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5~26일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극우·기독교단체의 광화문 밤샘 집회에 참석했다. 집회는 25일 오후 7시 ‘문재인 퇴진 국민대회’와 청와대 행진을 거쳐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철야기도회로 이어졌다. 황 대표는 새벽 5시30분까지 줄곧 현장을 지켰다.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가 연 3차 투쟁대회는 “조국 사퇴”를 외친 개천절·한글날 집회와 달리 “문재인 하야” “문재인 탄핵” 구호가 울려퍼졌다. 막말과 색깔론도 난무했다. 전광훈 투쟁본부 총괄대표(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는 “김정은 하수인 문재인을 청와대서 끌어내자”고 외쳤다. 연단에선 “멸문(문 대통령 멸망)을 하자” “박근혜 대통령님을 옥에서 빼내고 문재인을 넣자”는 선동이 반복됐고, 단하에선 “문재인 빨갱이” “내려와라” 소리가 이어졌다. 시민 자격으로 참여했다는 황 대표는 발언 요청을 거절하다 집회 말미에 당직자를 통해 “여러분과 한마음으로 이미 함께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폭정에 항의한다”고 했지만, 제1야당 대표에게 대통령 하야를 외친 극우·종교 집회가 밤새 함께할 자리였는지 묻게 된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와 나경원 원내대표(오른쪽에서 세번째), 우리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네번째)가 2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40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헌화, 분향 후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 대표는 광화문집회 종료 5시간여 뒤인 오전 11시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0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한국당 대표의 참석은 2015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이후 4년 만이다. 현 정부를 ‘종북주사파’라고 공격한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당신의 따님, 우리가 구하겠다”고 추도했다. ‘황교안 배신자’ 소리가 터지자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은 “황 대표와 우리공화당 조원진 대표는 역할과 책임을 분담하고 있다”고 장내를 정리했다. 황 대표는 주말 밤 페이스북에 “박정희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밝혔다. 산업화 리더십에 ‘박정희 정신’의 빛을 달았지만, 열흘 전 똑같이 40주년을 맞은 부마민주항쟁은 돌아보지 않은 반쪽 단상이었다.

광화문·현충원·페북으로 이어진 황 대표의 ‘1박2일 메시지’는 퇴행적이다. ‘조국 수호-검찰개혁-조국 사퇴-대통령 하야’로 나뉜 광장의 네 외침 중에서 조 장관 사퇴 후에도 가장 극우 포퓰리즘적인 ‘대통령 하야’ 구호에 몸을 실은 셈이다. 빨갱이 공격과 ‘박근혜 석방’ 구호로 끝나는 집회는 시민 상식과 멀고 시대착오적이다. 참석자가 현저히 줄어든 25일 집회가 웅변하는 것일 테다. 그날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조국 사태 속 상승하던 한국당 지지율은 한 주 만에 하락으로 돌아섰다. ‘조국 퇴진 표창장’을 남발하며 국회 일엔 뒷짐지기 일쑤인 한국당을 향해 시민들의 눈은 냉정하고 매섭다. 지금 제1야당 대표가 정쟁·분열을 부추기는 장외집회만 순례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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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도중 숨진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이름을 딴 ‘김용균재단’이 지난 26일 출범했다. 비정규직을 철폐해 위험의 외주화를 없애고 차별 없는 일터를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다. 초대 이사장은 김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맡았다. 아들이 남긴 숙제가 엄마의 삶의 목적이 됐다. 구체적인 활동 목표는 위험의 외주화 근절과 산재 사고 예방·대응, 산재 피해 지원, 비정규직 철폐, 차별 없는 일터 연대 활동 등이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51)가 26일 서울 중구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재단 출범식에 참여해 자전거 탄 아들 김씨의 그림과 손을 맞대고 있다. 조문희 기자

지난해 12월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한 ‘김용균’은 보통명사가 되었다. 비정규직이라 차별받고, 위험한 일을 온몸으로 감당해내야 했던 하청노동자들의 불안한 삶을 대변하는 이름이 됐다. 외아들을 잃고 제2, 제3의 김용균을 막아달라 호소한 엄마 덕분에 지난해 말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돼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지난 4월 공개된 시행령과 시행규칙안은 이대로라면 현실을 전혀 바꿀 수 없는 엉터리로 드러났다. 너무 많은 예외조항과 단서들로, 기업과 자본이 다 법망을 빠져나가고, 정작 ‘김용균’들은 보호할 수 없는 누더기 상태다. 그러는 사이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6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외주·하청노동자가 작업 중 숨졌다. 지난달만 해도 언론에 보도된 산재 사망사고만 40여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사고사망률 압도적 1위인 현실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재단 출범 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미숙 이사장은 “내가 김용균”이라며 “용균이가 피켓 든 이유를, 죽음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내가 찾아서 해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숨지기 며칠 전 김용균씨는 안전모와 흰 마스크를 쓰고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손팻말을 들고 시위했다. 아들이 바라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엄마의 희망이다. 김용균재단에는 정부와 국회가 해결해주지 않는 일들을 끝까지 해보겠다는, 바뀌지 않는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시민들이 연대의 힘을 보태고 있다. 49년 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몸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헌신했다. 또 한 명의 엄마가 아들의 꿈을 위해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대체 언제까지 우리 어머니들이 척박한 노동현장을 고발하고, ‘노동자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절규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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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연합뉴스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은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제 통화연결음은 안치환의 ‘귀뚜라미’입니다. 나희덕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인데, 귀뚜라미가 저인 듯싶어 들을 때마다 울컥울컥하지요. 불가촉천민인 저에게 용기 내어 전화한 동료들이 저처럼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솔직히는 제 처지를 하소연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속칭 검사 블랙리스트인 ‘집중 관리 대상 검사’에 이름을 올려 불가촉천민이 된 계기는, 2012년 12월 과거사 재심사건 무죄구형으로 인한 징계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수뇌부에 찍히기 시작한 건 그해 6월부터였습니다. 제가 당시 한상대 총장 역점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내부망에 올렸다가 대검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거든요. 간부에게 불려가 들은 충고는 “자네가 이러면 검사장이 못 돼”였습니다. 망가진 검찰의 검사장이 되느니 검찰을 깨우는 소리가 되기로 작심하고, 도끼를 목에 걸고 상소하는 선비의 심정으로 내부망에 매달 글을 썼지요.

제 글에 응원 댓글을 달았던 후배들이 간부들에게 불려갔고, 동조 글을 올리던 선배는 적격심사로 잘려 나갔습니다. 임은정 부역자 색출 소동이 공공연히 벌어졌고, 법무부, 대검, 고검에서 저와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에게 수시로 전화하여 저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캐물었습니다. 전화를 자꾸 받으니 무섭다며 어떤 직원이 하소연까지 하더군요. 많이 두려웠습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꾸 자신이 없어졌거든요.

그때는 블랙리스트가 불법이라고 생각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날 지켜보는 차가운 시선들이 있고 동료들 역시 감시자일 수 있다는 현실은 산소농도가 낮은 고산지대에 있는 듯해 숨이 찼습니다. 영화 <트루먼 쇼>(1998)는 주인공이 자신만 몰랐던 세트장 현실을 뒤늦게 깨닫고 첫사랑을 찾아 밖으로 나가는 해피 엔딩이지요. 그러나 제가 그처럼 감시를 피해 검찰 밖으로 나가는 건 새드 엔딩이라 제 선택지일 수 없었습니다. 현실을 깨닫지 못한 숱한 트루먼들을 두고 갈 수도 없고, 검찰이 이 지경이면, 대한민국에 희망이 없다는 말이라 달리 피할 곳도 없잖아요.

검찰이 국정농단, 사법농단 수사로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을 직권남용으로 구속하는 것을 보고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렇지, 불법이지!’ 검사 블랙리스트를 관리한 검찰이 자신은 결백하다는 듯 다른 기관 공무원들을 구속시키는 게 어이없었지만, 결국 검찰에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을 알기에 박수갈채를 보냈지요. 그리고 블랙리스트 피해 등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하고, 대검 감찰제보시스템을 통해 수사와 감찰을 요구했습니다.

국가배상소송에서 법무부와 대검은 이번 국감에서 공개된 ‘집중관리 대상 검사 선정 및 관리 지침’을 비롯한 자료 제출을 일절 거부했고, ‘집중관리 대상 검사는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검사 개인과 조직의 청렴성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하여 공정한 검찰권 행사에 대한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고자 만든 것’이라고 우겨 얼마나 허탈하던지요. 무죄구형 강행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후 내부망에 비판적 글 게시로 인해 제가 계속 리스트에 머물렀던 것인데, 무죄를 무죄라고 하고 개혁을 촉구한 것이 성희롱, 향응수수 등에 필적하는 문제행동으로 볼 수 없잖습니까.

대검 국감에서 윤석열 총장이 집중관리 대상 검사 명단, 관리 사유 등을 전혀 확인하지 않은 채 “경험에 비춰 선뜻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말을 당황스럽도록 선뜻 하는 걸 보고, 경솔한 언행에 실망을 금치 못합니다. 윤 총장의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정부와 대법원의 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따로 관리하며 인사 불이익을 준 것을 블랙리스트로 정의하여 직권남용으로 기소했지요. 그 시절, 법원에 있던 블랙리스트가 검찰에 없었을까요. 2016년 검사 부적격자로 몰려 제가 퇴출될 뻔한 주된 이유가 글 게시로 인한 분란 야기로 들었는데, 대내적 비판세력 탄압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블랙리스트는 영혼의 살생부입니다. 생매장당하는 듯한 공포에 짓눌렸던 피해자로서 가해자 일부라도 처벌받은 문체부나 법원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더러 들곤 하는 현실은 저와 검찰에 비극이지만, 대한민국에도 비극이지요. 저울을 속이는 상인은 상인이 아니라 사기꾼이듯, 이중 잣대로 죄의 무게를 그때그때 달리 저울질한다면 검찰의 자격이 없습니다. 이제라도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했다는 검찰의 억지 주장이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른 검찰권 행사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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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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