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항공사 보유 보잉항공기 다수에서 결함이 드러났다. 29일 국토교통부와 항공업계에 따르면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이달 초 보잉 737NG 기종에서 크랙(균열)이 발생한 사실을 발견하고 각국에 긴급점검을 요청했다. 이에 국내 항공사가 운항횟수가 많은 42대를 우선 점검한 결과 9대에서 크랙이 발견됐다. 5대 중 1대꼴이다. 세계적으로 1130대 가운데 53대(4.7%)에서 결함이 드러난 것과 비교하면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국토부는 해당 항공기를 운항 중지했지만 이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미국 보잉사가 1996년부터 생산하고 있는 B737NG. B737클래식의 날개 길이와 면적을 늘린 모델로 전 세계에서 7000여대가 운항 중이다. 이 가운데 53대의 동체와 날개 연결 부위에 균열이 발견돼 운항이 중지돼 있다. 보잉코리아 제공

국내 항공사에서 들여온 보잉 737NG 기종은 모두 150대다. 이번에는 누적 비행횟수 3만회 이상 항공기만 점검했을 뿐이다. 나머지 108대도 시급히 점검해야 한다. 

하지만 즉각적인 조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항공기 결함은 제작사의 기술자문이 필요한 사항이며 수리 방법, 장소, 시기도 제작사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승객들은 점검과 수리가 끝날 때까지 위험을 감수하고 비행기 트랩에 오르게 됐다. 

이번에 문제가 된 기종은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등 국내 저가항공사가 많이 보유하고 있다. 100% 737NG 기종인 곳도 있다. 그 외에 737맥스 기종만 갖고 있는 곳도 있다. 이 기종 역시 문제가 많다. 지난 25일 이륙 직전 정비를 이유로 1시간 넘게 지체한 뒤에 출발했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되돌아온 제주항공 소속 항공기가 바로 이 기종이었다. 그 때문에 승객과 승무원은 40여분간 흔들리는 기체 안에서 불안에 떨어야 했다. 항공사 측은 자동조종장치 이상이라며 균열 등 구조상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지만 단언할 수 없다.

항공기 안전에 과도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관리를 요구하는 이유는 작은 결함도 대형 참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기종의 결함은 세계 항공업계가 함께 나설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다. 더욱이 한국은 결함 발생 빈도가 다른 나라보다 높기 때문에 더 주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현재 운항 중인 기종의 안전엔 문제가 없고 균열이 있더라도 부품만 바꾸면 된다”는 입장이다. 너무 한가한 태도 아닌가. 물론 항공사가 운항중지 등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 모든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당국은 안이하게 대처하다 큰일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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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재생에너지총회(KIREC)가 10월23~25일 서울에서 열렸지만 기대와 달리 무관심 속에 막을 내렸다.  


2017년 멕시코에서 열린 이전 총회에서 한국이 차기 개최지로 선정됐을 때, 정부는 관련 산업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한 이번 총회는 소리소문 없이 시작하고 무관심 속에 막을 내렸다. 홈페이지는 한국어로 서비스하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행사였던 걸까?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이날 개회사에서 “재생에너지가 우리 미래의 활력”이라는 진부한 슬로건만 제시했을 뿐 기후위기의 시급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기술혁신 덕에 태양광 전기료가 10년 전에 비해 6%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자랑했다. 가격이 떨어진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재생에너지 가격이 높은지 자문해 봐야 한다. 정부는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을 표방하지만 어이없는 규제를 유지하여 에너지전환을 막고 있다.


그는 또 “한국은 석탄, 석유, 가스 같은 부존자원 없이 오로지 기술 혁신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 장관은 도대체 어느 나라를 말하는 건가? 한국은 전 세계에서 화석연료를 다섯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7위다. 대부분의 선진국과는 달리 2030년까지 줄여야 하는 온실가스 감축량의 기준을 특정 연도 배출량 기준이 아니라 배출전망치(BAU) 기준으로 제시하는 나라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기후변화를 현존하는 위협으로 규정하고 탄소세를 현행 2달러에서 75달러까지 올릴 것을 주창했다. 한국 산업부는 이 시나리오를 감당할 수 있나? 전 세계는 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 대기업 상당수는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어 해외 거래처와 계약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무역의존도가 70%에 이르는 한국 경제가 기후위기 탓에 받을 타격을 산업부는 내다보고 있는가? 재생에너지 전환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임을 이해하고 있는가? 이번 총회에서 보인 산업부의 행태를 보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세계재생에너지총회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이해를 넓히며 재생에너지의 확대를 고민하는 현장이다. 하지만 서울 총회는 달랐다. 나는 이번 총회에 고위급 패널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곳에서 10년 전부터 반복되는 논의를 듣고 있자니 속이 터졌다. 한 참석자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기후변화가 경제에 미칠 위협을 제대로 인식하고 공유하고 있는가?”


한국 정부에 재생에너지는 허울 좋은 말잔치일 뿐이다. 석탄이 수익이 된다는 말이 거침없이 등장하고 심지어 동남아에 수출까지 한다. 또 값이 싸다는 이유로 석탄으로 생산한 전기를 모두 다 사주는 전력 시스템을 유지하고, 산업부는 여전히 세금으로 석탄 발전 보조금을 챙겨주는 게 현장에서 보는 현실이다. 이 같은 산업부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기후위기는 소리 없는 위협이다. 산업부는 이 위협이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구조가 탄소제로체제로 재편되고 있지만, 산업부는 아무 대책 없이 수수방관하고 있다. 그사이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물이 끓어 죽게 될 처지를 모르고 냄비 속에 앉아 있는 개구리처럼.


<이현숙 |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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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는 짧았지만, 아름다웠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맑고, 바이올린과 피아노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은 잔잔했다. 연주곡은 영화 <시네마천국>의 OST ‘Love Theme’이었다. 그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마을 극장 영사기사 알프레도는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은 영화와 달라. 인생이 훨씬 힘들지.”

영화는 정점에 오른 순간 끝나고 말지만, 인생의 끝은 다르다. 어쩌면 인생은 절정도 없이 망망대해를 헤쳐나가다 뜻하지 않은 곳에 닻을 내려야 하는 표류와 같을지 모른다. 이제 겨우 뱃머리를 바다 쪽으로 향하게 하고 힘껏 노를 젓기 시작한 열일곱, 열여덟 살은 인생이 영화와 다르다는 걸 진즉 깨닫고 있는 듯했다. 음악에 맞춰 손뼉을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제법 흥겨워하던 이들은 책에 관한 강연이 시작되자 부리나케 제 앞에 있는 종이를 끌어당겨 ‘강연 소감문’을 적어 내려갔다. 그들은 강연 중간에 이미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소감문을 채웠다. 과연 그들은 끝나지도 않은 강연에 대한 어떤 소감이 있는 것일까 적잖이 궁금했다. 

그런 모습은 전국 어느 학교에 가든 흔히 볼 수 있다. 강연 내내 졸던 학생도 강연이 끝날 무렵엔 무거운 머리를 들어 소감문을 열심히 쓰곤 한다. 사실 중·고등 학생들이 독서 강연을 신청하고, 도서관 의자에 진득하게 앉아 있는 건 출석과 소감문 제출이 수행 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좋아해서 책 얘기를 하고 싶어 눈을 반짝이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 이는 몇 되지 않는다. 수행 평가 하나하나에, 시험 점수 1~2점에 자신의 인생이 달려 있다는 믿음이 굳건한 사회에서 책을 읽고 즐길 여유는 없다. 모두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리며, 인생을 표류라고 했다가는 낙오될지도 모르는 사회에서는 정시 비율을 높이든 말든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성적에 쫓겨야 할 것이다. 

강연을 끝내고 나오니 하늘이 붉은빛으로 곱게 물들어 있었다. 날마다 운동장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기가 막히게 멋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부지런히 교문을 빠져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힐끔댔다. 우리 아이들은 이 고운 하늘을 간혹 올려다보긴 할까?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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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촛불 이후 한국 사회가 부유하고 민주적이라는 자부심이 부쩍 커졌다지만, 자살 관련 지표 앞에서는 무색해진다. 자살이란 현상이 만약 사회적 비참의 어떤 결정체로 간주될 수 있다면, ‘헬조선’이라는 자조도 유효하다. 2018년엔 10대 청소년부터 80대 노인까지, 하루 평균 약 37명이 스스로 생을 중단했다. 매일 우리는 뭔가 대단히 다층적이고 잔인한 내전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한국 사회는 이 문제를 방치하지 않고 나름 대응해왔다. 지난 10년간 자살률은 대체로 낮아져왔다. 단순 비교해봐도 2017년의 자살 사망자 수는 1만2463명으로 이명박 집권기에 비해 한 해 3000여명(2009년 기준)이 줄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자살예방법의 제정(2011년)과 실천이 작지 않은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법에 따라 사상 최초로 정부는 지자체·학교 등과 함께 자살예방사업을 벌여 각급 자살예방센터가 설치되었고 보건복지부에는 자살예방정책과가 생겼다. 병원 응급실에 온 자살 기도자를 관리(?)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또 2014년부터는 중앙심리부검센터 같은 기관도 만들어져 자살 사건을 세밀하게 분석해 연령별, 성별, 직업군별 ‘자살의 경로’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그러니까 만연한 자살 현상에 대한 한국 사회의 지식과 분석력은 전과 비할 바 없이 높아진 것이다. 그저 막연할 뿐이었던 자살의 사회적 요인들에 대해 처음으로 나름 체계적이고 실제적인 지식을 갖게 된 셈이다.

22일 서울 마포대교 난간위에 적혀있던 문구들이 모두 떼어진뒤 흔적만 남아있다. 그동안 마포대교 난간에 남아 있는 자살 예방 문구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적절하며 억지웃음을 자극하는 문구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이준헌 기자

그러나 아쉽게도 여기까지다. 지난 9월 하순 발표된 통계에 의하면 꾸준히 낮아지던 자살률이 2018년에 다시 높아졌다. 내용도 나쁘다. 10대·30대·40대의 자살률 증가 폭이 커졌다. 분석이 더 필요하겠지만, 우려되는 것은 현행 자살예방법과 그에 따른 정책 실행의 효과가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추출한 74개 자살 위험 요인 중 ‘15대 중대 요인’을 들어본다. “자살 시도, 우울장애, 업무부담, 가족관계 문제(부부), 정신건강 문제와 그 악화, 상사·동료 관계, 이혼·별거, 음주 문제, 사업부진·사업실패, 직무 변화, 지속적 빈곤, 대인관계 단절·철수, 부채(도박·주식), 실업.” 

개인의 정신적·심리적 고통, 가족 및 대인관계, 직장생활(노동), 그리고 경제상황 등으로 범주화될 이 요인들은 서로가 서로의 원인 또는 결과가 되는 상호성을 갖고 있고 비배타적인 관계에 놓여 작용한다. 한 인간에게 저런 고통이 서너개 이상 겹치면 삶 자체가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 중에서 정책과 타력으로 ‘예방’할 수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사회와 개인들의 삶에 드리운 심연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연루된 구조적·문화적 한계라 할 수 있다. 자살에 작용하는 많은 요인과 문제상황은 다름 아닌 학교, 가정, 직장 그리고 일상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그중 직장과 노동에 관련된 것만 생각해보자.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유가족들에 대한 면담 연구를 바탕으로 지난 9월 발표한 103명에 대한 심리 부검 분석 결과 중엔 30~40대 직장인들이 어떤 경로로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는지가 포함돼 있다. 그 경로는 “부서배치 변화, 업무부담 가중 → 상사 질책, 동료 무시 → 급성 심리적·신체적 스트레스 → 사망”이다. 비극이 완성되는 시간은 놀랍게도 불과 5개월 미만인 것으로 조사돼 있다. 과중한 업무를 맡는 직장인은 상사의 압박이나 동료의 따돌림, 그리고 다른 부서로의 발령 같은 상황이 겹치면 곧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직장이란 어떤 곳인가? 왜 사회적 잔인성의 체계 중 직장과 노동이 최전선일까? 비극을 야기한 직장 내 따돌림이나 공격성의 거시적 배후는 자본의 논리와 경쟁의 압박일 것이다. 프로이트의 표현처럼 인간이 늑대가 되어 다른 인간을 해치는 그 같은 ‘사회적 잔인성의 체계’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도 자기도 모르게 ‘사회적 타살’에 연루된다. 이를 통해 주 52시간 근무제나 각종 직장갑질 근절 같은 미시적(?) 변화가 직장인의 사람다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다. 

복지부는 자살예방과 지역정신보건에 올해보다 275억원이 늘어난 예산을 편성했다. 그러나 커지는 우려처럼 정부가 노동개악을 행하면 이런 노력이 헛된 것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없어질 직업”이라든가 “획일적 주 52시간제는 국가가 개인의 일할 권리를 막는 것”이라는 식의 인식도 ‘노동 존중’은 물론 ‘사람이 먼저다’라는 명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또 그런 식의 생각은 사회적 잔인성을 증폭시켜온 주요한 요소다.

여느 때보다 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와 동료의 삶을 위한 연민과 단결을 깊이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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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먼 나라에서 공부할 때였다. 어디서 공짜로 나누어주던 작은 화분을 받아온 적이 있다. 익히 보아온 세 잎 클로버와는 달리 가느다란 가지에 하얀 꽃들이 종종 매달린 모양새였지만, 토끼풀과에 속하는 식물이라기에 그냥 ‘토끼풀’이라 부르기로 했다. 창틀에 올려두면 햇볕 드는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아침에 눈 뜨면 봉오리가 전날 밤보다 조금 더 열려 있었다.  

하루는 화분을 난로 옆 탁자에 둔 채 물 주는 걸 잊고 방을 나섰다. 밤늦게 귀가했더니 토끼풀이 축 늘어져 있었다. 건식히터 열기로 건조해진 방 안에서 답답하고 목이 말랐던가 보다. 얼른 물을 떠와 흙을 적셨다. 난로도 껐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풀은 기운을 차린 듯했다. 줄기가 스르르 고개를 들고 잎사귀에 생기가 돋았다. 그때의 애틋함이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을 테다. 그 자그만 것이 내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생각하니 따뜻한 무언가가 마음에서 뭉클 솟아났다. 

그해 여름, 한 달 넘게 집을 비우며 제일 걱정되던 것이 내 식물이었다. 방학이라 기숙사도 문 닫고 모두들 떠날 텐데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들풀이 심긴 증정용 플라스틱 화분을 어디다 맡기겠는가. 그렇다고 쓰레기통 옆에 두어 말라죽게 할 순 없었다. 고민 끝에 풀밭에다 옮겨심기로 했다. 눈여겨봐 둔 데가 있었다. 기숙사에서 연구소로 이어지는 오솔길 옆 잔디밭. 다음날 이른 아침 화분을 들고 나섰다.

때마침 그곳에서는 잔디를 손질하고 있었다. 드르르 기계가 지나갈 때마다 가지런히 머리 깎이는 잔디를 보니, 길고 삐죽한 내 토끼풀이 저기 들어가면 단번에 깎여나갈 것 같았다. 화분을 내려다보자 식물이 고개 바짝 치켜들고서 자기는 머리 잘리기 싫다며 울고 있었다. 수풀 안쪽으로 들어가 더 걷다 빈터를 찾아냈다. 볕이 잘 들지 않는 데여서 내키지 않았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거기로는 잔디 깎는 기계가 들어오지 못할 듯했으니까. 흙을 손으로 파내어 토끼풀을 옮겼다. 처음 해보는 거라 풀이 자꾸 옆으로 누웠다. 마음에 걸려 그날 밤 다시 가보니 벌써 이파리가 시들시들해진 듯했다.

가을학기가 시작된 이후 그 오솔길을 피해 다녔다. 내 식물이 시들어 사라졌을 자리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던 어느 날,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서 저녁거리 사러 식료품가게로 향하던 길이었다. 발끝만 보며 걷는데 저편의 하얗고 자그만 꽃이 얼핏 시야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눈을 들었다. 거기, 있었다.

살아 있었다.

설령 세상에 가장 흔한 식물이 토끼풀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내 토끼풀임을 알았다. 하루라도 물 주는 걸 잊거나 창가에 두지 않으면 시무룩해지던, 그러다 마음을 써주면 이내 환하게 피어나던 그 식물. 이제 야생풀이 되어 예전의 여릿함은 덜했지만 이파리가 넓적해지고 줄기도 단단해진 듯했다. 연약한 듯 보였으나 생명력이 강했던 것이다.

마음이 부서지던 순간에도 나는 내려놓지 못했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손에 쥔 것들을 한 번도 놓지 못했다. 생을 그만두고 싶던 과거 어느 순간에조차 전화가 걸려오자 1초 만에 받아 “논문 교정지 곧 보내겠습니다!”라고 답했었다. 나는 싫었다. 스스로의 생존 본능이. 사랑하는 이들을 질리게 만들 그악스러움이 미웠다. 

사실 난 식물에 관해 활엽수와 침엽수의 차이 정도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그저 돌보던 식물이어서 관심을 가졌고, 그것이 나한테 기대니까 애틋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도 살아있는 토끼풀을 보며 ‘약한 척해놓고 참말로 그악스러운 생존 본능을 가졌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건강히 거기 있어 그걸로 좋았다. 대견하고, 좋았다. 그악스럽게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 역시 서로에 대해 그러리라. 그렇게 믿으려 한다. 약한 척하더니 생명력 하나는 끝내준다며 함부로 냉소하는 대신 안도의 숨을 내쉴 거라고 말이다. 바닥에 머리 처박고 울던 그대가 스르르 다시 고개를 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대견하다며 햇볕같은 웃음을 그대 위로 쪼여줄 것이다.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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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군당국이 전시작전지휘권 전환에 맞춰 ‘한·미동맹 위기관리 각서’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미국 측이 새로운 제안을 해서 파문이 일고 있다. 한미연합사의 위기관리 범위를 ‘한반도 유사시’로 규정하고 있는 이 각서의 문구를 ‘한반도 및 미국의 유사시’로 바꾸자고 한 것이다. 미국이 문구 변경을 제의한 것은 맞는 것 같다. 다만 ‘미국 유사시’라는 표현이 들어가도 일각에서 우려하듯 중동이나 남중국해 등 한국과 직접 연관이 없는 해외 지역에까지 한국군을 자동 파병하는 것은 아니라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방위비 분담금 5배 증액 요구에 이은 미국의 뜬금없는 제안이 당혹스럽다. 


한미상호방위조약(3조)은 한미연합사 작전 지역을 ‘태평양지역’으로 한정하고 있다. 미국의 제안은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한국 측이 문구를 변경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거부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한국이 중동이나 남중국해 등에 파병할 경우 미·중의 패권 경쟁에 휘말릴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빌미도 제공해서는 안된다. 미국 측은 전작권 이후 한·미 공동 대응을 더 명확히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한미연합사 사령관을 한국군 장성이 맡아도 지금처럼 주한미군을 철저히 지키고,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미국으로 발사했을 때를 고려해 ‘미국 유사시’라고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라면 새로 ‘미국 유사시’란 표현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유사시 양국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자동적으로 개입하도록 돼 있다. 미국이 이 문구를 고집한다면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나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를 위해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 군 당국은 이번 각서 개정을 협의한 뒤 다음달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안보협의회(SCM) 때 양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다고 한다. 국방부는 기존 각서의 틀을 견지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이유로 한국군이 태평양 이외 지역으로 자동 파병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안보 정책을 둘러싸고 상궤에서 벗어나는 제안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런데 당국은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고 있어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미국이 무슨 제안을 하는지 시민에게 알릴 것은 알려야 한다. 이를 토대로 기존 안보 정책의 틀을 갑자기 바꾸려는 것은 동맹의 태도가 아니라는 점을 미국에 일깨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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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렌터카) 호출 서비스 ‘타다’가 법정에 선다. 검찰이 지난 28일 이재웅 쏘카 대표, 타다 운영사 VCNC의 박재욱 대표와 각 법인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 등은 면허 없이 유상 여객자동차운송사업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타다는 “11~15인승 승합차는 렌터카 기사 알선을 허용한다는 여객자동차법 시행령을 근거로 운영해왔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그러나 “여객자동차법은 운전자 알선이 가능한 렌터카 이용을 ‘대여 사업’에 한해 허용하고 있는데, 타다는 ‘콜택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타다 서비스의 합·불법은 법원이 가릴 것이다. 그러나 법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29일 오전 서울 시내를 ‘타다’ 차량과 택시가 나란히 있다. 지난 28일 검찰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이재웅 쏘카 대표와 자회사인 VCNC 박재욱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연합뉴스

타다는 플랫폼 기반 승차공유 서비스다. 배차가 확실하고 기사들도 친절하다는 평가가 많아 요금이 비싼 편이지만 출범 1년여 만에 회원수가 130만명에 이를 정도로 이용자가 늘고 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함께 등장한 ‘공유경제’의 대표적 서비스란 점에서 호감을 얻고 있다. 공유경제는 개인소유 자원을 플랫폼을 통해 서로 나누는 새로운 경제 형태다. 2025년 전 세계 시장규모는 4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나눠 쓰기가 가능한 차량, 빈 방, 장난감, 책 등 거의 모든 재화·서비스로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공유경제는 우리 사회가 가야 하고, 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문제는 기존 유사업종과 충돌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타다의 등장에 직접적 피해를 입은 택시업계는 반발했고 일부 기사들의 극단적 선택이 이어졌다. 갈등에 대한 경제 주체들의 치유·해결 능력 부족이 빚은 비극이었다. 타다는 ‘이용자 편익’만을 고집했고, 택시업계와의 ‘상생’에 대해서는 인색했다. 택시업계도 승차거부 등 고객불만은 외면한 채 기득권을 양보하지 않았다. 정부와 국회의 책임은 더 크다. 과거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에 대해 법 위반 판정을 내렸던 국토교통부는 정작 타다에 대해선 침묵했다. 타다가 최근 ‘내년 1만대 증차 계획’을 내놓고, 택시업계가 거세게 반발하는 등 갈등이 심화된 것도 정부의 ‘택시제도 개편안’ 후속 및 법 개정 작업이 늦어진 탓이다. 

공유경제 등장은 10여년 전의 일이다. 정부는 타다 사태를 공유경제 전반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개방·참여라는 소비자 중심의 법·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유사업종 종사자들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일 역시 없어야 한다. 국회도 입법 지체로 인해 공유경제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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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인간이 만든 도구는 삶의 조건을 변화시킨다. 문명의 ‘발달’을 “장점도 있고 부작용도 있다”는 양비론으로 접근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특히 인간과 비슷한 물건들, ‘포스트 휴먼’은 논쟁거리다. 글자 그대로 죽부인(竹夫人), 인형(人形)에서부터 인공지능,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아이디(ID), 휴대전화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불특정 다수에 의한 악플이 문제지만, 1990년대 PC통신 시절 처음 등장한 ‘온라인 성폭력’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 대 1 채팅방에서 여중생이 성인 남성 사용자의 성적 비하 표현에 충격을 받아 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남성은 인터넷 ID와 사법적 개인은 별개의 존재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실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몸이 아니라’ 아이디로 활동하게 되면서 인터넷에서의 ‘나’와 현실의 ‘나’는 같은가, 일부인가, 아니, 진정한 자아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논쟁이 일었다. 

하지만 쟁점은 진짜 자아 여부가 아니다. 현실이든 가상현실이든, 언설의 전제와 효과가 문제다. 인형은 어떨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리얼 돌(real doll)은 처음부터 남성을 위한 섹스 대용품으로 만들어졌다. 미국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리얼 돌은 실제 사람(여성) 크기에 골격과 관절도 있고 살은 실리콘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리얼 돌의 판매 여부를 놓고 “강간 인형이다” “무역권 침해” “인형일 뿐” 등 여론이 다양하다. 분명한 사실은 미국에서 흑인 바비 인형과 백인 인형의 가격 차이 사례처럼, 인형은 단지 인형일 수 없다. 장애 여성이나 특정 인종을 연상케 하는 섹스 돌이 있다고 생각해보라. 

리얼 돌을 당연시하는 일부 남성들의 불만은 대단해서, “대한민국 남성은 야동도 못 보고, 성매매도 못하고, 여성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대한민국에서 남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 되었다. 최소한의 남성 인권을 보장해달라”고 외치고 있다. 대안신당(가칭)의 이용주 의원은 리얼 돌을 직접 국감장에 들고 나와, 관련 산업의 육성을 주장했다(검경은 이 의원의 성폭력특별법 위반 여부를 수사해야 한다).

여성용 리얼 돌은 왜 남성용만큼 대중화 요구가 없을까. 주변 여성들에게 물어보니, 남성의 외양을 한 리얼 돌이 집에 있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럽고 무서울 것 같다고 한다. 관리와 씻기기(?)도 보통 일이 아닐 것 같다. 의과대학 실험실의 인체 모형으로 느껴진다는 여성도 있었다. ‘바바리맨’처럼 여성에게 남성의 신체는 불쾌감과 폭력으로 인식되는데, 남성은 왜 ‘스트립쇼’ 업소에서 비용을 내며 여성의 몸을 소비하는가. 리얼 돌 판매 허가에 앞서 이 문제가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 

예로부터 죽부인(竹夫人)은 있어도, 여성이 안고 자는 죽부인(竹婦人)은 없다. 죽부인도 죽궤(竹?)라는 ‘물건’ 용어로 대체된다. 문제는 남성에게는 여성의 성이 필요하다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다. 그래서 성매매는 “필요악”이라는 모순어가 당연시되고 성매매, 포르노 산업, 리얼 돌이 성폭력 발생을 줄일 수 있다는 발상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남성의 성욕은 억제할 수 없는 본능”이라는 편견을 강화시키고 성폭력 발생률을 더욱 높일 뿐이다. 성산업은 성폭력 예방책이 아니라 기폭제다. 남성의 ‘억제할 수 없는 성욕’은 통념이지, 사실이 아니다. 남성 문화의 주장대로 성욕이 배변과 같은 생물학적 요구라면, 비아그라가 왜 남용되겠는가. 오히려 억제제를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장애 남성의 성 구매론은 언제나 논쟁거리다. 장애 남성과 비장애 남성의 평등이 성 구매를 통해 가능하다는 주장은 끝이 없다. 일단, 여성 장애인은 이런 요구를 하지 않는다. 1990년대 네덜란드에서는 실제로 ‘대리 연인 제도’가 있었다. 국가에서 여성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남성 장애인을 방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장애 남성 스스로의 제안에 의해 폐지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삽입 섹스라기보다는 친밀감과 정서적 유대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타인과의 교류로만 가능하다. 성욕은 발작(충동)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실제 성매매 현장에서도 남성들이 추구하는 것은 여성의 몸을 구매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이지, 삽입 그 자체가 아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신간 &lt;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gt;에서, 이를 “친밀성에 대한 남성의 공포”라고 지적한다. 직업윤리가 있으므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의 친밀감, 성적 유대가 싫은 이들은 드물 것이다. 신뢰에 기반한 친밀감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사회성이 아니다. 연애를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얻기가 얼마나 힘든지. 

성적 관계는 상대방에 대한 모색, 존중, 협상, 기꺼운 감정노동, 성의의 산물이다. 성산업과 리얼 돌은 이 과정을 생략하는 폭력 제도다. 행복권은 천부 인권이 아니다. 인간에겐 행복을 위해 노력할 권리가 있을 뿐이다. 섹스가 행복한 시간이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나를 알고 상대를 알아가는 지난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리얼 돌 논란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관계는 쉽지 않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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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기도 파주·연천 등 4개 시·군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했다. 야생 멧돼지에서도 ASF 바이러스가 추가로 검출됐다. 돼지가 걸리면 치사율이 최고 100%에 이른다고 하니 돼지고기를 먹어도 좋을지 염려하는 이들이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ASF는 돼지과(Suidae) 동물에게만 감염되는 바이러스성 가축전염병이어서 사람이 감염되지는 않는다. 소비자들이 돼지고기를 먹는 데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 

ASF의 병원체는 DNA 바이러스로, 아스피바이러스속(Asfivirus)에 속하며 24종의 유전형을 가진다. 바이러스는 세균과는 달리 다른 생명체(숙주)의 세포 안에 들어가야만 증식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 세포에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열쇠로 숙주의 세포에 있는 자물쇠를 열어야만 세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ASF 바이러스의 열쇠는 사람의 세포에 있는 어떤 자물쇠도 열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크고 안정적인 구조를 갖는 DNA 바이러스의 특성상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 감염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지난 100여년간 세계 50여개국에서 ASF가 발생했음에도, 현재까지 사람이 감염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보고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 및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등 국제기구도 ASF는 사람 건강에 위해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게다가 우리는 돼지고기를 충분히 익혀 먹는 조리법을 택하고 있다. ASF 바이러스는 70도에서 30분 이상 가열하면 모두 사멸한다. 우리처럼 구이·찌개·볶음요리 등 고온에서 가열하는 조리법을 주로 이용한다면 염려할 필요가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장부터 수입·유통 단계까지 이중 감시망을 구축하고 있다. ASF에 감염된 돼지가 시중에 유통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농식품부는 ASF에 걸린 돼지를 전량 살처분·매몰처리하고 있다. 도축단계에서는 검사관(수의사)이 모든 돼지를 검사해 ASF에 감염된 돼지의 출하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 또 식약처는 혹시라도 신고되지 않은 축산물이 시장에 유통되는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외국 식료품 판매업소를 집중 점검하고, 불법 도축된 감염 돼지가 유통될 가능성에 대비하여 식육판매업소에 대한 감시를 한층 강화했다.

‘기인지우(杞人之憂)’라는 말이 있다. 괜한 걱정을 이르는 말로, 옛날 중국의 기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 봐 걱정하고 지냈지만 나중에 이치를 깨닫고 난 후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고사 속 인물처럼, 국민들도 ASF의 실체를 바로 알아야 한다.

<이의경 | 식약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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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정시가 수시보다 공정하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근거로 서울 상위권 대학 입시에서 정시(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비중을 높이겠다고 했다. 뜻밖이다. 정시 지지 여론이 높은 건 새삼스럽지 않다.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하는 수시(학생부종합전형·학종)보다 수능만 치르는 정시 선호도가 높은 것은 상식적이다. 하지만 정부가 여론에 기대 ‘정시가 수시보다 공정하다’는 평가에 동조하고, 기왕의 ‘정시 축소, 수시 확대’ 기조를 뒤집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대통령 발언 바로 직전에도 교육부 장관은 정시 유지 입장을 내놓았지 않았나.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교육개혁관계장관회의에서 서울 소재 대학들의 수능 정시 비율 상향 등을 포함한 교육개혁 방향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는 다음달 정시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공식 발표한다. 하지만 서울 상위권 대학과의 밀당부터 만만치 않을 터이다. 이들 대학은 수시 우선 선발을 통해 우수학생을 확보해왔다. 특히 비인기학과들이 학종의 혜택을 톡톡히 받았다. ‘학종이 비인기과 교수들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수시 비중이 낮아지면 우수학생 선점 통로가 좁아진다. 이른바 ‘수시 납치’가 줄어들어 대학으로서는 학생 선발에 비상이 걸리게 된다. 학종과 수능을 다 준비하게 된 교육현장의 혼란과 반발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미 교육단체와 시·도교육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판도라의 상자를 연 셈이다.

대표적인 ‘복잡계’인 대입에서 공평할뿐더러 정의롭기도 해서 모두가 승복하고 신뢰하는 전형이 존재하기 어렵다. 본고사-학력고사-수능-학종으로 이어진 대입 전형 변천사가 이를 증명한다. 기존 전형에 문제가 발생하면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는 식이다. 지금은 수능이 물러가고 그 자리를 학종이 차지해가는 시기다. 정부는 이런 변화의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하고 있다. 그것이 교육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조국 사태는 단순히 정시 비중 상향이라는 가시적인 대입 제도 개선책만으로 피해갈 수 없다.

학종에 문제가 많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평가기준이 모호하고 전형 방법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더 잠재력과 창의력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은 대입에서 선택형 시험을 채택하는 ‘객관식형 국가’다. 이런 나라에서 하나의 정답을 찾기 어려운 소질과 적성을 중요한 평가 잣대로 삼는 ‘주관식 입시’는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학종은 시행과정에서도 학생 스펙쌓기에 대한 부모의 노골적 개입과 성적조작, 시험지 유출 등의 부작용이 쏟아졌다. 이러니 ‘내신은 자녀가, 비교과는 부모가 맡는 분업형 전형’ ‘깜깜이 전형’이라는 비아냥을 피할 도리가 없다. 여기에 조국 사태까지 불거지면서 학종의 공신력은 땅에 떨어졌다.

그렇다면 정시는 어떤가. 계량화된 점수나 등급으로 매겨지므로 공정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소수점 이하에서 합·불합격이 갈리는 반교육적 시험을 어떻게 공정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미세한 차이로 ‘대학수학능력’ 여부와 학생의 인생이 갈려서는 안된다. 항상 수능 점수가 잘 나오는 지역과 고교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정시의 불공정성을 말해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시 비율을 상향하겠다고 발표한 후 일선 학교에서는 공교육에 큰 타격이 예상되는 데다 지방·저소득층 학생들이 더 불리해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일 고3 수험생들이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전국연합학력평가 시험을 치르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입 제도에 대한 공정성 논란은 공허한 일이다. 교육 문제의 원인은 경제·사회문제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다툼의 더 큰 연원이 교육 외부에 있는데 해결책을 교육 내부, 특히 대입 전형에서 찾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명문대생이 소위 ‘지잡대생’을 얕잡아보고 이른바 ‘스카이 출신’이 고위공직과 전문직을 독점하는 학벌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대입 전형을 정시로 바꾼다 해도 상황이 변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대학 공부보다 간판을 따기 위한 의례적 행사로 전락한 점을 고려하면 대학입시 자체가 거대한 위선이며 모순 덩어리이다.

입시 공정성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기계적·산술적 공정성을 위해 고교 교육을 희생해서는 안된다. 입시 제도가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고 있는지, 결과적으로 공정성 확보에 부합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예컨대 정시 비중이 크게 높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교과서는 기출문제집으로 대체되고 모든 교과가 문제풀이 방식으로 진행된다. 학교는 출석점수만 따는 곳으로 전락하기 쉽다. 정시는 고교 교육과 병행하기 어려운 전형이다. 학종은 좀 더 고교 교육 친화적이다. 학생이 교과 외에 다양한 활동을 하고 교육이 학교 중심으로 이뤄진다.

아직 시간은 있다. 어떻게 하겠는가. 입시의 절차적 공정성을 위해 정시를 확대하겠는가. 아니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학종을 확대하되 확 뜯어고치겠는가.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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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협동조합은 1844년 영국의 공업도시 로치데일에서 만들어졌다. 산업혁명으로 자본을 축적한 자본가들의 횡포로 질 낮은 생필품을 비싸게 살 수밖에 없었던 로치데일 직물공장의 노동자 28명이 1년에 1파운드씩 출자금을 모아 점포를 내고 밀가루나 버터 등 필수 식료품을 공동구입한 게 시작이었다. 1인 1표제, 정치·종교의 중립, 이익금의 공평한 분배 등의 원칙은 이후 국제 협동조합의 기본원칙으로 자리잡았다. 2017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는 300만개 협동조합 기업, 12억명가량의 조합원이 있다. 국내엔 약 1만6000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자본보다는 사람을 중시하는 협동조합은 신자유주의의 파고를 함께 넘는 공동체 정신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기도에서 조합원 모두 학부모인 최초의 ‘협동조합 유치원’이 내년 3월 개원을 목표로 조합원을 모집 중이다. ‘아이가 행복한’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로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경기 동탄지역 학부모들이 ‘아이를 믿고 맡길 유치원을 직접 만들겠다’는 뜻을 모았다. 부지와 건물을 국가와 지자체에서 임차해 비싼 원비를 해결하고, 투명하고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민관협력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조합의 탄생 과정을 되짚어 보면 씁쓸하다. 작년 이맘때 국정감사에서 사립유치원 비리가 폭로되며 여론이 들끓었다. 국회는 이른바 ‘유치원 3법’을 마련했고 금방이라도 문제가 해결될 듯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달라진 건 거의 없다. 답답한 학부모들이 거리로 나섰고, 각종 규정과 방안 마련을 촉구했고, 협동조합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동탄비리유치원비상대책위원회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던 장성훈씨가 조합 이사장을 맡았다. 장씨는 “작년 그 사태를 겪고도 국회도, 사립유치원들도 절대 바뀌질 않는다”며 “1년 정도 운영한 뒤 모든 회계자료를 공개해 관행으로 여겨졌던 사립유치원의 회계 낭비 등 문제를 지적할 것이다. 동탄의 사립유치원들이 더욱 투명하게 운영되는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대표’들, 사립유치원들이 꿈쩍도 안 하고 있는 사이, 학부모들이 스스로를 돌보는 ‘협동조합’의 정신을 오롯이 실천하고 있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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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후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Q : 만일 윤씨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것이라면, 왜 하필 그에게 그런 일이 생겼을까.

A : 윤씨는 고아에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았다. 돈 없고 빽 없으니 변호인도 제대로 쓸 수 없었고 어떻게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지 몰랐다. 가혹행위를 당해도 경찰에 달려가 ‘왜 우리 애 고문시키냐’며 난리쳐줄 부모가 없는 거다.(중앙일보 10월8일자,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청주교도소에서 20년간 옥살이한 윤씨를 담당한 교도관 인터뷰 중)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이춘재가 자백하지 않았더라면 윤씨는 지금도 억울함의 감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1988년 9월 경기도 화성의 한 가정집에서 여중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8차 사건은 화성 사건 중 유일하게 범인을 붙잡았고 ‘모방 범죄’로 결론났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윤씨는 이춘재에게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약자들을 국가는 보호하기는커녕 무시하고 누명을 씌웠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심하게 저는 사람이 1m 높이 담을 뛰어넘어 피해자 집에 침입했다는 상식을 뛰어넘는 경찰 결론에도 기소나 재판 과정에서 합리적 의심은 없었다. 윤씨가 “고문에 의한 허위 진술”이라고 호소했지만 2심과 3심 모두 이를 기각했다. 국선 변호인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엄혹했던 시절, 부모는 자식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였다. 영화 <변호인>에서 부산에서 잘나가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던 송우석(송강호)이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든 계기는 어디로 끌려간지도 모르는 아들을 찾아내 제발 면회만이라도 시켜달라는 국밥집 아줌마 순애(김영애)의 간절한 부탁이었다.

1980년대 억압의 시절을 딛고 민주화를 이룩한 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인 2019년 우리는 30년 전보다 얼마나 발전한 것일까. 부모 없이도 안전하고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행복할 권리를 추구할 수 있는가.

결론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부모 없는 아이들은 미래를 불안해하고 어린 나이에 ‘자립을 당한다’. 보육원 등에서 생활하는 ‘보호 아동’은 만 18세가 되면 보호시설을 떠나야 한다. 대학에 진학하면 보호기간을 연장할 수 있지만 2017년 전체 보호 종료 아동의 대학 진학률은 13.7%에 그쳤다. 매년 2000명 이상이 ‘보호 종료 아동’이 된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지자체가 주는 몇백만원의 지원금으로 살 집을 구해야 한다. 연평균 임금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일을 해도 생활은 궁핍하고 아프기라도 하면 미래를 위해 저축한 돈도 사라진다.

공공 영역이 사회적 약자의 울타리 역할을 해주지 못하는 사이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자녀의 미래가 결정되는 ‘신분 사회’가 고착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때 계층이동의 사다리로서 역할을 했던 교육 분야에서 기득권을 통한 기회의 대물림 현상이 두드러진다. 잘나가는 부모를 둔 자녀들은 ‘부모 찬스’를 써가며 스펙을 쌓고 입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 부모의 재정적 뒷바라지로 해외로 유학을 떠나거나 의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전문직 자격증을 노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가 2주 인턴 후 의학논문의 제1저자가 된 것이나 낮은 성적에도 6학기 동안 장학금을 받은 것이 알려진 이후 각종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은 ‘공정한 교육’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컸기 때문이라 할 수도 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5일 관계장관회의를 마치고 “부모의 힘이 자녀의 입시와 취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노력과 능력이 정당하게 평가받고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늦은 감이 많다.

‘조국 사태’는 광장을 둘로 쪼개놨고, 진보를 갈랐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는 이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조국 사퇴’ 이후에도 사정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도리어 대통령이 공정의 화두로 제시한 ‘정시 확대’는 그동안 어렵게 마련해왔던 ‘교육의 공정성’이란 판 자체를 엎어뜨릴 태세다.

정시 확대가 불평등을 해소하는 공정의 잣대이기는커녕 ‘문제풀이식 교육’ ‘잠자는 고3 교실 재현’을 부추길 위험성이 크다. 공교육 정상화와 학교 서열화 해소라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철학과는 상극이다. 정시에서 유리한 계층은 고소득층이다. 진보 시민단체, 교육감협의회 등 문 대통령의 우호세력들까지 반발하고 있는 이유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문재인 정부 2년6개월 동안 선의로 추진된 대책들 중 세밀한 정책적 준비가 되지 않아 궤도를 벗어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청와대와 여당은 여전히 대통령의 선한 의지만으로 예상되는 정책적 우려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가. 정책을 성공시킬 능력과 자신감은 갖고 있는가.

<박재현 사회에디터 겸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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