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미국 정부 측에 내년 4월 총선 전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지난 20일 방미 때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에게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총선이 있는 내년 4월 전후로 북·미 정상회담을 열지 말 것을 요청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한다. 내년 총선 전에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면 한국당이 선거에서 불리하니 이를 연기해 달라고 미국 측에 요청했다는 얘기다. 방위비 협상과 관련, 초당적 외교를 하러 간 자리에서 미국 당국자들에게 한국당 선거를 도와달라고 매달린 셈이다. 제1야당 원내대표가 선거 이해득실 때문에 ‘한반도 평화’마저 미국 측에 거래하고 공작하려 했다니, 참담하기 짝이 없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나 원내대표는 논란이 일자 입장문을 내고 “금년 방한한 미 당국자에게 지난해 지방선거를 하루 앞두고 열린 제1차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과 같이 다음 정상회담마저 총선 직전에 열릴 경우 대한민국 안보를 위협할 뿐 아니라 정상회담의 취지마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방한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날 때부터 일관되게 미국 측에 이런 요청을 했다고 시인한 셈이다. 지방선거 참패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문이라는 인식부터 지독한 민심 오독이지만, 선거에 눈이 멀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미 정상회담마저 반대하다니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1997년 대선 당시 북측에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총풍 사건’을 비롯해 선거 때마다 ‘북풍’을 획책해온 DNA가 한국당과 나 원내대표에게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이다. 이제 북한에는 안되니 동맹인 미국을 통해서라도 한반도 국면을 어렵게 만들어 총선에 활용하려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발상이라면 일본에는 총선 전까지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풀지 말아 달라’ 하고, 기업들을 만나서는 ‘투자를 하지 말라’고 요청할 판이다. 북·미 대화가 파탄나 한반도 위기가 증폭되고, 경제는 나빠져 민생 불안이 커져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정당이라면 그야말로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김세연 의원 불출마 선언문)다. ‘매국 정치’로 국익을 위협하고 국민에 모욕감을 준 나 원내대표는 구차한 변명 늘어놓지 말고 당장 통렬히 사죄하고, 응분의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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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28일 교육 불공정·불평등의 해소 대책으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대입 정시 비율을 40% 이상으로 확대하고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서 고교 비교과활동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게 골자다. ‘조국사태’를 계기로 ‘금수저 전형’으로 비판받아온 학종의 비중을 줄이겠다는 취지이지만 정시가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공교육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교육부의 발표는 ‘공정성 강화 방안’이지만, 사실상의 ‘대학입학제도 개편안’이다. 특히 수시 축소, 정시 확대가 교육 현장에 미칠 파급은 클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정시비중이 낮은 서울 16개 대학에서 2022년부터 수능으로 신입생 40% 이상을 선발하도록 할 방침이지만, 수시모집에서 채우지 못해 정시로 이월되는 비율이 10%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정시비율은 50%대로 올라간다. 또한 정시 확대로 교실이 수능을 위한 문제풀이 장소로 변질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사교육시장이 활개를 치고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은 늘 수밖에 없다. 교육의 빈부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다. 수업이 입시준비로 전락하면서 학생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별화교육은 설 땅을 잃게 될 것이다. 필수적인 교사의 권위마저 추락할 터이다. 정시 확대는 곧 공교육 포기다. 

교육부는 학종의 신뢰도 제고를 위해 자율·봉사·진로활동 등 비교과 영역과 자기소개서를 전형에 반영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논술 위주의 전형과 특기자 전형도 점차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교육부는 학생부 중심의 학종과 수능 위주의 정시로 재편해 입시 전형에서 불공정 요소를 없애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교과 중심의 학생부와 수능 중심의 전형이 공정하고 평등한가는 의문이다. 비교과 영역 학생활동이 학종에 포함되면서 학생의 개성과 다양성을 길러주는 전인교육이 자리를 잡아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수능 위주의 입시에서는 학생의 특성을 살리는 개별화교육은 사라지고 획일화된 진학교육만 판을 칠 것이다.   

이번 입시개편안은 문재인 정부의 교육 철학·정책과도 배치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정시 축소, 수시 확대라는 입시 정책을 견지해왔다. 지난해 국가교육회의 공론화 논의에서 정시확대 여론이 적지 않았지만, ‘2022년 대입 개편안’에서 정시 비율을 30% 이상으로 정한 것은 수시 전형이 공교육 이념에 부합한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불과 1년여 만에 ‘학종 불공정’ 여론을 이유로 ‘정시 확대’로 급선회했다. 교육부는 갑작스러운 정책 변경의 이유로 ‘학종·정시의 균형을 맞추라는 국민적 요구’라고 답했다. 무엇이 균형이고, 왜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정시 확대’ 발표에 벌써부터 공교육의 붕괴와 사교육비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학들은 일방적인 입시정책 변경에 반발하고 있다. 보수·진보 교육단체 사이의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1년 만에 뒤바뀐 정책 속에서 백년지대계 교육의 미래는 더욱 점치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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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공론화’라는 시민 참여적 의사결정 방식이 활성화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전 국민적 이슈였던 신고리 5, 6호기와 대입제도 공론화가 대표적이다. 2019년 서울교육청(학원 일요휴무제)과 서울시(플랫폼노동)도 공론화를 진행했다. 공론화는 주로 특정한 공공정책 사안이 초래하는 혹은 초래할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모색 과정을 의미한다. 

서울시는 올해 두 번째로 시민공론화를 시행했고, ‘플랫폼경제와 노동의 미래’를 주제로 선정했다. 지난 6개월 동안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추진단이 꾸려졌고, 일반 시민과 이해당사자가 참여했다. 추진과정은 의제 선정과 자문회의, 전문가 워크숍과 시민 숙의회의까지 총 15회의 공식회의가 있었고, 시민 250명이 참여했다. 19세부터 69세까지 연령, 성, 지역별 다양한 시민들이 2주간 책임감을 갖고 플랫폼노동의 쟁점을 놓고 토론했다.

플랫폼노동은 무엇이 문제이고, 지속 가능한 플랫폼노동을 위한 대책은 뭔지 의견을 나눴다. 시민참여단은 95% 이상이 참석했고 새로운 주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의사결정 과정에서 25개 조원들이 제시한 의견들을 존중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들은 그간 협소하고 폐쇄적인 전문가주의나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플랫폼노동 확산에 따른 실질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숙의과정에서 오고간 대화에서 시민들의 깊이 있는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서울시 공론화 추진단은 일반시민 1000명과 시민참여단 250명을 대상으로 각기 두 차례 의견조사를 했다. 시민 10명 중 9명은 플랫폼노동이 늘어날 것으로 인식했으나, 플랫폼노동 개념은 잘 알고 있지 못했다. 사실 1차 숙의과정에선 플랫폼노동 개념부터 유형과 실태 등 정보전달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빠른 학습을 통해 대안을 갖고 있었다. 플랫폼서비스의 편리성만이 아니라 사회안전망이나 노동환경 개선 지적이 대표적이다. 

사실 모든 과정은 시민참여가 핵심이다. 시민참여단은 플랫폼노동의 쟁점을 도출하고 타인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갈등해결만이 아니라 협력적 문제해결의 해법도 제시했다. 플랫폼노동자의 고용형태와 적정 수수료 문제, 고객평점제와 분쟁 조정기구 필요성, 사회보험 적용 등 구체적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플랫폼노동의 확산에 따른 쟁점별 시민 인식의 변화는 공론화 성과 중 하나다. 두 차례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한 의견조사 결과 플랫폼노동자의 사회보장 적용(1차 68.9%, 2차 79.8%)과 플랫폼 운영자·노동자·이용자 간 분쟁해결 창구 마련(1차 16.4%, 2차 25.6%) 필요성에 더 많은 공감을 표했다.

<더 베스트 오브 에너미즈>라는 영화는 사회갈등 해법을 찾기 위한 공론화 장점을 잘 보여준다. 1971년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 더럼 지역의 실제 이야기로, 절대 바뀔 수 없는 제도나 관습처럼 이미 생각이 굳어버린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다.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의 참여와 과정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그간 공공정책은 이해관계자의 요구나 혹은 상층 전문가들이 만든 사례들이 많았다. 그러나 플랫폼노동처럼 새롭게 제기된 노동문제와 관련해서 시민공론화는 또 다른 정책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시민들은 플랫폼노동의 사회적 보호 필요성(93.2%)을 제기했고, 사회협약이나 조례 혹은 공동기준 수립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때마침 서울시는 국제노동기구(ILO)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좋은 일자리 도시 국제포럼’ 등을 통해 국내외 도시 정부들과도 플랫폼노동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또한 학계나 노동계 의견 수렴을 통해 2기 노동정책기본계획에 플랫폼노동과 같은 새로운 노동형태를 포함할 계획이다. 2019년 플랫폼노동을 처음 접한 시민참여단 후기는 공론화 정책의 효과성을 확인시켜준다. “플랫폼노동을 처음 접했다. 생소한 단어인 만큼 널리 알려져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공공행정에서 시민들이 제시한 정책에 중앙과 지방정부들이 답을 해줄 시점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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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평균연령은 42.1세, 근로자 가구 가장은 49.5세이다. 생애 첫 주택을 마련하는 시기는 43.3세이다. 보통 취업 후 점차 증가하는 소득은 40대 후반에 정점을 찍는다. 소득 수준이 중간인 2·3분위 가구 가구주 평균연령은 40대 후반이다. 40대는 내집마련과 자녀 학자금 등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시기이다. 생애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는 40대이다. 그들이 흔들리고 있다.

 40대 취업자 수가 지난 10월 기준 48개월 연속 감소했다. 2017년 11월부터 만 4년간 지속돼온 현상이다. 4년 새 40대 고용률은 1.3%포인트 하락한 78.5%였다.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기는 하지만, 40대 고용률만 마이너스였다. 같은 기간 40대 취업자는 43만6300명 줄었다. 20만2600명 감소한 30대의 두 배를 웃돈다. 반면 60세 이상은 121만1000명, 20대는 15만6600명 늘었다.

최근의 고용불안에 대해 정부는 “인구·산업구조 변화에서 오는 진통”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인구 감소는 국가경쟁력 약화를 의미한다. 일하는 국민이 줄어들면 국내총생산(GDP)이 쪼그라드는 건 당연하다. 세금 내는 시민도 감소할 테니, 온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고 있는 국민연금 고갈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인구 감소 탓만 할 수 없다. 4년간 40대 인구가 4.7% 줄어들었지만 취업자 감소율은 6.3%로 훨씬 더 컸다. 60세 이상과 20대는 인구가 늘었는데, 그 증가 속도보다 취업자 증가 속도가 더 빨랐다. 정부가 20대 청년층과 60세 이상 고령층에 고용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입증한다.

최근 4년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한국지엠 군산공장에서 2000명이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다. 130여개 협력사에서도 1만명 넘는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한진해운 파산으로 연관산업을 포함해 1만명 넘는 노동자가 새 직장을 찾아 전전해야 했다. 긴 불황을 겪고 있는 조선업에서도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실직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0대 고용률 하락은) 40대 취업비중이 높은 제조업과 도소매업 업황둔화의 영향과 관련된 것”이라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도 40대는 이미 찬밥 신세다. 환경 변화와 발전 속도가 워낙 거세 새 기술을 장착한 20~30대에 밀려나기 일쑤다.

일자리를 잃은 40대가 갈 곳은 많지 않다. 재취업 문을 두드릴 여건이 여의치 않은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를 보면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에서 고용서비스 제공기관을 운영한다. 40대를 위한 서비스는 노동부의 중장년일자리 희망센터 한 곳뿐인데 그나마 40세부터 노인까지 대상이 다양하다. 나머지는 청년과 여성, 고령자를 위한 것들이다.

밀려난 40대 상당수는 ‘레드오션’인 줄 알면서도 자영업을 기웃거린다. 또다시 벼랑 끝이다. 지난해 신규 등록한 40대 자영업자(개인사업자)는 35만2868명이었다.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사업소득이 16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자영업 불황 여파였다. 중하위권에서 버티던 자영업자가 대거 최하위 소득 계층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저소득 자영업자가 편입된 영향으로 1분위 소득이 늘어나 상위 계층과의 격차가 줄어드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40대가 사회의 중심임에도 홀대받는 것은 정치권의 관심을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청년층과 고령층을 위한 공약이 쏟아지고 있지만 40대는 소외돼 있다. 이는 40대 대부분을 직장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하는 안정적인 계층으로 인식한 탓이다. 청년과 노인의 문제는 그 계층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다고 여긴다. 반면 밀려난 40대는 ‘일부’로 치부해 배려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 인식도 한가하다. 홍남기 부총리는 취업자 감소에 대해 “30~40대 고용 부진은 최근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소득격차 해소와 관련해서는 “소득주도성장, 포용성장의 효과가 3분기에는 본격화되고 있다”고 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최고위직 공무원의 해석이다. 안드로메다에서 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보고를 올릴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40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48개월 연속 취업자 수 감소세를 멈춰야 한다. 당장 재취업을 늘릴 수 있는 고용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청년과 노인에게 집중된 일자리 예산을 40대에도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 창업을 준비하는 중년을 돕는 프로그램도 절실하다. 인구가 줄고 있지만 40대는 여전히 전체 유권자의 20%를 웃돈다. 40대 스스로 정치세력화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안호기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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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민주주의는 대화 속에서 꽃피었고, 대화의 소멸과 함께 시들었다. 대화와 소통이, 그리고 말 잘하는 법을 배우려는 의욕이 고대 그리스만큼 넘쳤던 시대는 많지 않다. 그들은 대표를 뽑을 때, 죄지은 사람을 법정에 세울 때, 페르시아 전쟁과 같은 국난이 닥쳤을 때, 참주가 될 위험한 인물을 가려 추방할 때 말로 설득시켜야 했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수사학(rhetoric)은 필수교양이었다.

로마시대 키케로도 말(연설)로 일어섰다. 그의 웅변 실력에 감탄한 그리스인 스승은 “지금껏 그리스가 자랑했던 학문과 웅변도 이제는 로마에 빼앗기게 되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는 BC 63년 집정관(콘술)에 올랐다. 명문 귀족도 아니고, 금전이나 무력으로 이룬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대단한 성취였다. 그러나 재치 있는 말이 인정받았던 만큼 날카로운 말은 잦은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몰락도 직설적인 공격 때문이었다. ‘잘 말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오성(悟性)을 설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마음을 납득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오늘날 수사(rhetoric)는 ‘입에 발린 말’ 정도로 의미가 축소·퇴색됐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수사학을 7가지 필수교양 중 하나로 채택해 중세시대까지 가르쳤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추석처럼 온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는 날이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두고 가족 간 의견이 갈리면서 명절을 망치고 있다고 한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39%의 시민이 ‘가족갈등이 생겼다’고 답했다. ‘아예 연을 끊었다’는 답변도 적지 않았다. 추수감사절을 평온하게 보내기 위한 콘텐츠들도 쏟아졌다. 미국 심리학회는 추수감사절 정치 대화법으로 ‘가족이 공감할 추억 등을 이야기하라’ ‘바꿀 수 없음을 인정하라’ ‘적절한 때 중단하라’ 등의 조언을 내놓았다. 정치적 견해차로 가족끼리 곧잘 다투는 한국의 명절 풍경을 연상시킨다. 칼은 몸에 상처를 내지만 가시 돋친 말은 영혼에 상처를 낸다. 정치적 노선보다 가족공동체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가정은 ‘불타오르는 전투의욕’보다, 싸움을 피하는 지혜가 필요한 보금자리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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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수능이 끝나고 대입 결과에 따른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하는 시기, 다시 교육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어느 때부터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입시, 그것도 대입과 등치되어 버렸다. 교육은 우리 국민 최대 관심사 중 하나지만, 교육이 화두가 되면 정시냐, 수시냐에 대한 갑론을박이 주를 이룬다. 무엇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실종된 지 오래다. 

며칠 전 유엔환경계획(UNEP)은 ‘온실가스 격차 보고서’를 통해 작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이대로 둔다면 금세기 말 3.2도가량 지구 평균온도가 상승하고 광범위한 기후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지구 평균온도는 산업혁명기보다 1도가량 높아졌다. 파리협정을 통해 2도 이내로, 더 노력해서 1.5도 이내로 제한하자고 전 세계가 합의했지만, 갈 길이 멀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별로 많지 않다는 거다.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일부 청소년들이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런 청소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기후위기에 대해 제대로 알거나 관심을 가진 청소년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

기후변화만 문제가 아니다. 미세먼지도 심각하고 폐기물 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예전 공해가 심각했을 때는 대부분 산업체가 문제였고 몇몇 기업과 공장을 규제하면 해결되는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기후변화나 미세먼지, 폐기물 문제는 산업체 책임이 크고 정부 역할이 중요하지만 일반시민 모두가 관여되어 있다.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다. 무엇이 왜 문제인지 알고 해결을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그렇기에 ‘환경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학교 환경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학교 관계자들은 말한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전등 끄기, 마스크 쓰기 등 필요한 행동수칙을 잘 알려주고 있단다. 환경교육은 그런 것만이 아니다. ‘환경소양’을 갖춘 시민을 길러내야 한다.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발생 원인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해당 문제가 현세대의 여러 집단과 지역에, 더 나아가 미래 세대와 다른 생물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면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을 넘어 사회적인 해결방안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학습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 수용성이 높아져 필요한 비용도 기꺼이 부담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중등학교 환경교과 선택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2007년 20.6%에서 2018년에는 고작 8.4%에 불과했다. 그나마 환경교과 선택 학교에서도 84%가 환경전공자가 아닌 타 교과 교사인 상치교사가 담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2009년 이후 단 한 명의 환경교사 신규 임용이 없었다. 전문지식을 가진 환경교사가 환경교과를 가르쳐야 한다고 하면 교육부, 교육청, 학교는 한결같이 말한다, 학부모와 학생이 선택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할 과목이 너무 많아서 환경교육까지 할 틈이 없다고. 하지만 이제 환경소양은 환경위기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으로, 학생 선택에만 맡겨두는 것은 공교육 당국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최근 ‘환경교육진흥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학교 환경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국가기후환경회의 반기문 위원장은 환경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교육부 장관을 만나 기후환경 교과과정을 건의하겠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교육이 대입을 위해서만 존재해서는 곤란하다. 교육은 미래 시민 양성을 위해 마땅히 국가가 해야 할 공공적 임무다. 환경교육은 이제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 교육 당국은 지구 상황과 세계적인 흐름을 주시하고, 학교 환경교육의 책임자로 의무를 다하기 바란다. 학교 환경교육은 교육부의 의무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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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은 영광대로 잡음은 잡음대로 많던 ‘미슐랭의 별’이 이번에도 스캔들을 터뜨렸다. 올해의 스캔들은 미슐랭 가이드북이 자랑해오던 평가 원칙 때문이었다. 미슐랭 측은 암행 평가단이 드러나지 않게 식당을 방문해 별점을 매겨왔다 했지만, 한국에서 처음부터 미슐랭 가이드북에 관여하는 컨설턴트들이 붙어 수수료를 받고 별 3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줬다는 폭로가 나온 것이다. 

2016년 처음 발행된 ‘2017 미슐랭 가이드 서울 편’에 당시 한국관광공사와 농림축산식품부 산하기관인 한식재단(현 한식진흥원)에서 20억원을 미슐랭 가이드북에 지원해 논란이 있었다. 처음부터 암행의 과정이 아니라 한식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20억원도 미슐랭 가이드북 측이 요구한 ‘보안유지’를 핑계로 어떻게 집행되었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미슐랭 가이드북은 그간 늘 많은 비판을 받았다. 유럽에서는 열지도 않은 식당에 별점을 주었다가 출판물을 수거하는 일이 있었고 방문도 하지 않은 식당에 별점을 주기도 했다. 이번 일도 ‘2020 미슐랭 스캔들 한국 편’ 정도로 여기면 그뿐일지 모른다. 어차피 ‘미슐랭 스리스타’ 식당에 가볼 일도 없다. 

때마침 지난 8월에는 ‘한식진흥법’도 만들어졌다. 이재욱 농식품부 차관의 말을 인용하면 한식진흥법의 골자는 이렇다. 한식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한식문화의 해외 확산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며, 농식품부 산하의 한식진흥원은 특수법인으로 전환되고 그에 걸맞게 조직 확장과 예산 투입을 한다는 것이다. 한식진흥원의 사업 중 대표적인 일이 해외 우수 한식당 인증제도 추진 같은 업무다. 해외 한식당들이 인기가 높아지면 한식의 우수성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동시에 한국 식자재 수요가 늘어 국내 농수축산물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계산이다. 방탄소년단(BTS)처럼 한식도 세계적인 음식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작년에도 ‘2018 해외 우수 한식당 인증제 시범 사업’을 수행했고, 중국 베이징·칭다오·상하이의 총 9개 한식당이 시범 인증을 받았다. 인증 신청 자격 요건을 보면 ‘업체 대표 메뉴가 한식이고 판매 메뉴의 50% 이상이 한식인 식당’이다. 여기에 한국산 식재료를 원산지로 표시한 식당이라고 명시하였는데 한식이란 무엇인가? 

짜장면은 한식인가 아닌가. 수입 햄과 치즈, 중국산 김치를 넣고 끓인 부대찌개는 한식인가 아닌가. 미슐랭의 별 3개를 받은 한식당들은 모두 한정식을 내는 식당들이고 미슐랭은 한정식을 한식의 정수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시민들이 한정식을 먹을 일이 얼마나 될까. 우리의 일상은 부대찌개에 라면사리 하나 추가해 먹는 일일 뿐이다. 한국에서 먹는 음식도 국내산이 아닌 것들이 더 많아졌다. 6000원짜리 백반에 ‘순수 국내산’을 기대하지도 않는 세상이건만 해외 한식당에서 한국산 식재료 사용이 과연 가능할까. 한식 정체성의 핵심이 밥이라지만 미국 코리아타운 한식당에서 내는 공깃밥은 ‘장미쌀’이라 부르는 캘리포니아 쌀이다. 처음부터 해외 한식당의 한식은 정부의 의도대로 재현될 수 없다.

해외 한식당에 한국 정부 인증마크가 붙는다 해서 한식 위상이 높아질 리 없다. 공무를 빙자해 해외 한식당 탐방을 한다며 세금으로 해외나 들락대지 말았으면 한다. 그저 이 땅에서 쌀농사 짓고 그 쌀로 밥을 지어먹는 이들의 밥상에 반찬 한 가지라도 ‘진흥’되면 좋겠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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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봉천동 탈북모자가 지난 7월31일 통장 잔액 0원인 채로 주검으로 발견되었을 때 우리의 마음이 먹먹해졌던 까닭은 그 죽음이 가난으로 인한 사회적 타살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아사’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장애아동을 돌보느라 일할 수 없었던 엄마 한모씨가 0원만 남은 통장을 들고 먹을 것이 없는 집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떤 시간을 견뎌왔을지 그 막막함과 외로움을 상상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에서 한씨는 이혼한 사실과 가난을 입증하지 못해 복지의 날카로운 그물망 코에 걸린 채 좌절하고 죽어갔다. 그러나 어찌 한씨 모자뿐이랴. 성북구의 네 모녀도 그렇게 죽었고 문재인케어의 그늘에서 오늘도 가난한 자들의 죽음은 넘쳐난다.

하지만 탈북민에 대해 유독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가난에 더해 국가가 그간 탈북민들에게 행한 ‘배제적 통합’ 때문이다. 사회철학자인 선우현 교수는 남한 내 ‘특정’ 집권 세력 등이 자신들의 전략적, 전술적 목표의 달성을 위해 상황에 따라 탈북민 집단을 배제 또는 통합의 대상으로 규정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남한 사회의 주민들과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 대우하거나 아니면 배제 내지 제외해 버림으로써 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 권리와 자유를 박탈해버리는 일종의 정치적 책략을 ‘배제적 통합’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선우 교수의 지적에 동의하면서 탈북민 취업 연구자로서 그간 통일부가 탈북민의 가장 절박한 요구를 철저히 외면해왔음을 덧붙여 제기한다. 바로 일할 권리다. 지난 20년간 탈북민정책에서 일자리 문제와 직업능력 개발은 정책순위에서 항상 맨 뒷자리로 밀려나 있었다. ‘먼저 온 통일’이라고 화려하게 호명되는 무대 뒤편에서 탈북민은 시민사회와 격리된 채 통일역군으로 살아가야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이런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전국 통일플러스센터로의 하나센터 통합이라는 큰 그림만 남고, 하나센터의 탈북민 취업지원 활동이나 직업능력 개발 같은 탈북민이 가장 필요로 하는 지원활동은 빈껍데기가 된 지 오래다. 이것이 통일부와 남북하나재단에 한씨 모자 죽음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 사건에서 드러난 역설적 비극은 일부 탈북단체들의 행태이다. 한씨 모자의 사망 이후 지난 정부에서 북한 인권 등 반북 정치활동, 심지어는 반세월호 시위, 국정원 댓글 활동, 문재인 후보 당선 시 3000명 망명선언 등을 주도해온 바로 그 단체들의 대표들이 장례식 협상 당사자로 나서, 합의조건의 하나로 자기 단체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예산 지원을 요구했다. 지난 10월28일 탈북민 비상대책위와 남북하나재단 간에 서명한 합의서를 보면 제2항에 전국적인 탈북민 협력망의 활성화와 탈북민 단체들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예산을 확보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다행히 이 합의가 결렬됐기에 망정이지 자칫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체제를 도모해야 할 통일부가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반북활동을 지원하는 사태가 벌어질 뻔했다. 이는 과거 국정원식 공작정치에 탈북민 단체들을 활용해오던 ‘분단 정치’의 후과라 아니할 수 없다. 

탈북 모자 사망사건에서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통일부의 역주행이다. 지난 10월16일 통일부는 재발 방지대책으로 탈북민 입국 후 5년의 보호기간을 10년까지 늘리는 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연철 장관에게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보호이며 탈북민은 언제까지 탈북민인가? 10년이 지난 후에 11년차가 되면 국가가 탈북민들을 보호하지 않아도 될까? 이제 국가는 ‘먼저 온 통일’이라는 주문을 그만 외우고 탈북민들이 지역사회의 평범한 시민으로 살도록 허용해야 한다. 뼈를 깎는 마음으로 통일부는 지자체에 예산과 실질적 권한을 넘겨 탈북민에게 한국의 시민과 동일한 취업 지원과 복지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그간 특별한 보호가 낳은 특별한 배제를 종식하는 길이다. 

통일부와 경찰과 산하기관이 보호라는 명분으로 탈북민들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먼저 버려야 탈북민도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체제에 더 이상 장애물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김화순 한신대 통일평화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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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은 영광대로 잡음은 잡음대로 많던 ‘미슐랭의 별’이 이번에도 스캔들을 터뜨렸다. 올해의 스캔들은 미슐랭 가이드북이 자랑해오던 평가 원칙 때문이었다. 미슐랭 측은 암행 평가단이 드러나지 않게 식당을 방문해 별점을 매겨왔다 했지만, 한국에서 처음부터 미슐랭 가이드북에 관여하는 컨설턴트들이 붙어 수수료를 받고 별 3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줬다는 폭로가 나온 것이다. 

2016년 처음 발행된 ‘2017 미슐랭 가이드 서울 편’에 당시 한국관광공사와 농림축산식품부 산하기관인 한식재단(현 한식진흥원)에서 20억원을 미슐랭 가이드북에 지원해 논란이 있었다. 처음부터 암행의 과정이 아니라 한식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20억원도 미슐랭 가이드북 측이 요구한 ‘보안유지’를 핑계로 어떻게 집행되었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미슐랭 가이드북은 그간 늘 많은 비판을 받았다. 유럽에서는 열지도 않은 식당에 별점을 주었다가 출판물을 수거하는 일이 있었고 방문도 하지 않은 식당에 별점을 주기도 했다. 이번 일도 ‘2020 미슐랭 스캔들 한국 편’ 정도로 여기면 그뿐일지 모른다. 어차피 ‘미슐랭 스리스타’ 식당에 가볼 일도 없다. 

때마침 지난 8월에는 ‘한식진흥법’도 만들어졌다. 이재욱 농식품부 차관의 말을 인용하면 한식진흥법의 골자는 이렇다. 한식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한식문화의 해외 확산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며, 농식품부 산하의 한식진흥원은 특수법인으로 전환되고 그에 걸맞게 조직 확장과 예산 투입을 한다는 것이다. 한식진흥원의 사업 중 대표적인 일이 해외 우수 한식당 인증제도 추진 같은 업무다. 해외 한식당들이 인기가 높아지면 한식의 우수성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동시에 한국 식자재 수요가 늘어 국내 농수축산물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계산이다. 방탄소년단(BTS)처럼 한식도 세계적인 음식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작년에도 ‘2018 해외 우수 한식당 인증제 시범 사업’을 수행했고, 중국 베이징·칭다오·상하이의 총 9개 한식당이 시범 인증을 받았다. 인증 신청 자격 요건을 보면 ‘업체 대표 메뉴가 한식이고 판매 메뉴의 50% 이상이 한식인 식당’이다. 여기에 한국산 식재료를 원산지로 표시한 식당이라고 명시하였는데 한식이란 무엇인가? 

짜장면은 한식인가 아닌가. 수입 햄과 치즈, 중국산 김치를 넣고 끓인 부대찌개는 한식인가 아닌가. 미슐랭의 별 3개를 받은 한식당들은 모두 한정식을 내는 식당들이고 미슐랭은 한정식을 한식의 정수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시민들이 한정식을 먹을 일이 얼마나 될까. 우리의 일상은 부대찌개에 라면사리 하나 추가해 먹는 일일 뿐이다. 한국에서 먹는 음식도 국내산이 아닌 것들이 더 많아졌다. 6000원짜리 백반에 ‘순수 국내산’을 기대하지도 않는 세상이건만 해외 한식당에서 한국산 식재료 사용이 과연 가능할까. 한식 정체성의 핵심이 밥이라지만 미국 코리아타운 한식당에서 내는 공깃밥은 ‘장미쌀’이라 부르는 캘리포니아 쌀이다. 처음부터 해외 한식당의 한식은 정부의 의도대로 재현될 수 없다.

해외 한식당에 한국 정부 인증마크가 붙는다 해서 한식 위상이 높아질 리 없다. 공무를 빙자해 해외 한식당 탐방을 한다며 세금으로 해외나 들락대지 말았으면 한다. 그저 이 땅에서 쌀농사 짓고 그 쌀로 밥을 지어먹는 이들의 밥상에 반찬 한 가지라도 ‘진흥’되면 좋겠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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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봉천동 탈북모자가 지난 7월31일 통장 잔액 0원인 채로 주검으로 발견되었을 때 우리의 마음이 먹먹해졌던 까닭은 그 죽음이 가난으로 인한 사회적 타살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아사’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장애아동을 돌보느라 일할 수 없었던 엄마 한모씨가 0원만 남은 통장을 들고 먹을 것이 없는 집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떤 시간을 견뎌왔을지 그 막막함과 외로움을 상상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에서 한씨는 이혼한 사실과 가난을 입증하지 못해 복지의 날카로운 그물망 코에 걸린 채 좌절하고 죽어갔다. 그러나 어찌 한씨 모자뿐이랴. 성북구의 네 모녀도 그렇게 죽었고 문재인케어의 그늘에서 오늘도 가난한 자들의 죽음은 넘쳐난다.

하지만 탈북민에 대해 유독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가난에 더해 국가가 그간 탈북민들에게 행한 ‘배제적 통합’ 때문이다. 사회철학자인 선우현 교수는 남한 내 ‘특정’ 집권 세력 등이 자신들의 전략적, 전술적 목표의 달성을 위해 상황에 따라 탈북민 집단을 배제 또는 통합의 대상으로 규정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남한 사회의 주민들과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 대우하거나 아니면 배제 내지 제외해 버림으로써 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 권리와 자유를 박탈해버리는 일종의 정치적 책략을 ‘배제적 통합’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선우 교수의 지적에 동의하면서 탈북민 취업 연구자로서 그간 통일부가 탈북민의 가장 절박한 요구를 철저히 외면해왔음을 덧붙여 제기한다. 바로 일할 권리다. 지난 20년간 탈북민정책에서 일자리 문제와 직업능력 개발은 정책순위에서 항상 맨 뒷자리로 밀려나 있었다. ‘먼저 온 통일’이라고 화려하게 호명되는 무대 뒤편에서 탈북민은 시민사회와 격리된 채 통일역군으로 살아가야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이런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전국 통일플러스센터로의 하나센터 통합이라는 큰 그림만 남고, 하나센터의 탈북민 취업지원 활동이나 직업능력 개발 같은 탈북민이 가장 필요로 하는 지원활동은 빈껍데기가 된 지 오래다. 이것이 통일부와 남북하나재단에 한씨 모자 죽음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 사건에서 드러난 역설적 비극은 일부 탈북단체들의 행태이다. 한씨 모자의 사망 이후 지난 정부에서 북한 인권 등 반북 정치활동, 심지어는 반세월호 시위, 국정원 댓글 활동, 문재인 후보 당선 시 3000명 망명선언 등을 주도해온 바로 그 단체들의 대표들이 장례식 협상 당사자로 나서, 합의조건의 하나로 자기 단체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예산 지원을 요구했다. 지난 10월28일 탈북민 비상대책위와 남북하나재단 간에 서명한 합의서를 보면 제2항에 전국적인 탈북민 협력망의 활성화와 탈북민 단체들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예산을 확보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다행히 이 합의가 결렬됐기에 망정이지 자칫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체제를 도모해야 할 통일부가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반북활동을 지원하는 사태가 벌어질 뻔했다. 이는 과거 국정원식 공작정치에 탈북민 단체들을 활용해오던 ‘분단 정치’의 후과라 아니할 수 없다. 

탈북 모자 사망사건에서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통일부의 역주행이다. 지난 10월16일 통일부는 재발 방지대책으로 탈북민 입국 후 5년의 보호기간을 10년까지 늘리는 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연철 장관에게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보호이며 탈북민은 언제까지 탈북민인가? 10년이 지난 후에 11년차가 되면 국가가 탈북민들을 보호하지 않아도 될까? 이제 국가는 ‘먼저 온 통일’이라는 주문을 그만 외우고 탈북민들이 지역사회의 평범한 시민으로 살도록 허용해야 한다. 뼈를 깎는 마음으로 통일부는 지자체에 예산과 실질적 권한을 넘겨 탈북민에게 한국의 시민과 동일한 취업 지원과 복지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그간 특별한 보호가 낳은 특별한 배제를 종식하는 길이다. 

통일부와 경찰과 산하기관이 보호라는 명분으로 탈북민들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먼저 버려야 탈북민도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체제에 더 이상 장애물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김화순 한신대 통일평화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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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 언론보도에서, 학교 방과후 몇 시간 동안 학부모들이 직접 보호 지도가 결여된 아동을 대상으로 인성·습관 교육을 하는 것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와 같은 시민의 움직임이 범법자들을 관리하는 법무부에서도 제도화된 정책으로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우리 정부는 1989년 법체계에서 최초로 소년범을 대상으로 하는 보호관찰제도를 실시했고, 1990년대에는 성인 범죄자들에게도 이를 확대해 실시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경제, 정치, 환경 등 제반분야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주체들은 민주사회 생활에 필수적인 기본 덕성이 결여된 것과 직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인구의 약 0.4%의 시민들이 범죄자로 확인되고 있으며 이들 중 보호관찰처분을 받은 자들은 약 15만명이다. 이들의 원활한 사회 복귀를 위한 준비의 하나로 인성교육을 제도화하는 것은 범죄의 재범과 예방을 위한 가장 좋은 사회심리적 촉진제가 될 것이다.

우리는 초·중·고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전인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교생활을 해왔다. 이러한 교육환경에서 성장해온 국민 대부분은 모범적 삶을 영위하게 됐다. 

바람직한 인격 형성은 모든 사회와 교육기관, 그리고 법제도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우리의 보호관찰제도가 그 운영의 타당성, 즉 효과·효율을 최대화하는 방법 중 하나는 사회적 합의가 밑받침되어 도덕적 가치를 수반하는 인성교육을 보호관찰 대상자들에게도 필수요건으로 제도화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우식 초대보호관찰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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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1주기 추모 분향소 앞에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발언을 듣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눈을 감으면 기어이 재생되고 말았다. 떨어져 죽고, 끼여 죽고, 깔려 죽는 노동자들의 마지막 장면 말이다. 재해조사의견서를 들여다본 날이면 어김없었다. 

증상은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기획팀원 모두에게 나타났다. 팀원들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18년 1월~2019년 9월 사고성 산업재해에 대해 작성한 재해의견서 1305건을 전수조사했다. 재해자 정보와 사고 개요, 원인 등을 엑셀 시트에 입력하고 분류하는, 한 달이 꼬박 걸린 작업이었다.

의견서는 건조했다. 1692명의 죽음의 원인이 단어 몇 개로 정리됐다. ‘개인 보호구 미착용’ ‘작업계획서 미작성’ ‘방호망 미설치’…. 하지만 읽는 마음까지 메마를 순 없었다. 안전모만 썼어도, 지게차 시동만 껐어도, 관리자만 있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사고는 원시적이었고, 죽음은 허망했다.

지난 21일자 신문 1면에 실린 노동자 명단은 1200명이었다. 총 사망자는 1692명이지만 재해자가 개인사업자·특수고용노동자이거나, 개인질병·단순 교통사고로 분류된 경우 조사와 의견서 작성이 이뤄지지 않았다. 명단 가운데 100여명은 N○○, Y○○ 등으로 표기된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젊고 건장했을 그들은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에 왔지만 결국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

내년 1월부터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이른바 김용균법이다. 김용균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한정됐던 보호 대상을 특수고용직, 배달 종사자까지 확대했다. 원청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강화, 원청 및 사업주 처벌 강화 등의 내용도 담겼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용 불안정성 탓에 일터의 위험에 관한 문제제기 자체가 쉽지 않다. 발전소의 한 하청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작업중지 요청하라고 하는데 누가 해요. 3개월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고 있어요.” 

영국은 기업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숨지면 ‘살인’으로 규정하고 상한 없는 벌금을 물린다고 한다. 2011년 영국 법원은 노동자 1명을 매몰사고로 사망케 한 토목기업 코츠월드 홀딩스에 38만5000파운드(약 5억8000만원), 당해 매출의 115%에 이르는 벌금을 매겼다. 판결을 내린 판사는 거액의 벌금 때문에 영세기업인 코츠월드가 파산할 수 있다는 우려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불행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국 사회가 지금껏 사업주가 아닌, 산재 노동자의 죽음을 향해 반복해온 메시지가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재해의견서 입력 작업을 끝낸 지 한 달이 돼간다. 한동안 눕기만 하면 눈앞에 펼쳐지던 장면들은 부끄럽게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때 감각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오늘도 3명의 김용균들이 일터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감각을 기억하기로 한다. “불행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한다. 나도, 당신도 김용균이 될 수 있으므로.

▶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인터랙티브 뉴스 바로가기

<최민지 | 모바일팀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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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있으면 따라오등가.” 부장이 혼잣말하듯 툭 던지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석달 전 ㄱ씨(35)가 서울에서 대전지사로 근무지를 옮긴 첫날, “뭔 말인가 했다”는 충청도 화법이다. “밥 먹으러 가자”는 말이다. 그 점심부터 충청도에서 듣고 접한 대화는 ㄱ씨 스마트폰에 쌓여가고 있다. “참외 파는 거예요?” “그럼 뭐하게유”로 시작하는 좌판 대화는 고전 격이다. “5000원?” “냅둬유 개나주게.” 돈을 치르고 “빨리 싸주세요” 하면 또 따라붙는 말이 있다. “그렇게 바쁘면 어제 오지 그랬시유.” 수틀리면 나오는 “냅둬유 개나주게”는 2010년 정초 MB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내놨을 때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이 써서 전국적으로도 유명해졌다.

배우 공효진, 강하늘이 출연한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포스터. KBS 제공

축약과 해학. 충청도 사투리를 상징하는 두 단어다. 충청도 말엔 복모음(ㅕ, ㅠ, ㅑ)이 많다. 개 혀?(보신탕 먹어)-한술 뜰겨?(밥 한그릇 할 거야)-겨? 아녀?(맞아 아니야)-좀 봐유(잠깐 얘기해요+실례합니다) 하는 식이다. 무도장에서는 ‘출튜?’, 잠자리 들 때도 “헐겨?” “혀” 세 자면 통한다. 희극인 30~40%는 충청 사람이다. 이 고장에는 직설보단 에둘러서, 은유와 재치로 말하는 게 몸에 밴 사람들이 많아서다. KBS <유머1번지>엔 충청도판 ‘괜찮아유’ 코너가 있었다. 그릇이 깨져도 집주인은 끄떡 안 한다. “깨지니 그릇이지 튀어오르면 그게 공이유~.” 김소월의 시 ‘진달래’도 충청 사투리 버전이 압권이다. “이제는 지가 역겨운감유”로 시작해 “가슴 아프다 말 것지유. 어쩌것슈. 잘 먹고 잘 살아유”로 끝난다. ‘거시기’ 하나가 백제·신라군의 전세를 바꾼 코믹 영화 <황산벌>도 있었다. “몇번 찍으셨어요?” “될 사람 찍었겠쥬.” 선거 여론조사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곳도 충청도다.

충청도 사투리가 드라마·영화에서 ‘주인공의 말’로 뜨고 있다. 시청률 23.8% 찍고 종영한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순경 용식), MBC 드라마 <두번은 없다>(박하), 코믹좀비 영화 <기묘한 가족>(만덕)에서다. SNS에선 ‘이 옷 이쁘냐?’가 용식이체 ‘워뗘? 환장하쥬?’로 바뀐다. 충청도 사투리는 느리지만 상처주는 직설이 적고, 해학 속에 “배워서 남주남유?”처럼 뼈 있는 말도 많다. 충청 사투리가 늘면 각박한 세상이 조금 더 정겨워지고 웃음이 많아질 수 있을까.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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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간다. 나무들은 이제 하늘을 향해 뻗었던 광합성 전진기지를 서서히 철수하고 있다. 물과 영양분이 들락거리던 지난 성하(盛夏)의 물관과 체관으로 한 켜의 나이테를 더한 나무는 작년보다 몸통을 더 키웠다. 공기 속의 삶을 선택한 나무들은 위로 높이 솟구치기 위해 밑동을 부풀린다. 나무가 생산하는 유기화합물의 90% 이상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에서 비롯된다. 10%가 채 안되는 나머지는 뿌리를 통해 흡수하는 지각 속의 물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땅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나무는 가히 대기권에 근거를 둔 생명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무는 어떻게 꼿꼿이 서게 되었을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식물은 리그닌(lignin)이라는 생체 고분자 화합물을 발명한 덕분에 수직 상승을 현실화시킬 수 있었다. 목재 혹은 나무를 뜻하는 라틴어, 리그눔(lignum)에서 유래한 리그닌의 화학구조를 보면 유달리 산소 원자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약 4억년 전 고생대 실루리아기에 산소를 접착제 삼아 생성된, 물에 녹지 않는 리그닌 화합물은 황무지였던 지표면을 푸르게 만들어 지구 풍광을 일신(一新)했다. 리그닌은 식물을 땅 위에 굳건히 서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잎의 표면적을 넓혀 태양 에너지를 맘껏 수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 어떤 생명체도 넘보지 못했던 대기권이라는 생태 지위를 차지한 나무는 빠르게 지구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곳으로 날개 달린 곤충과 새를 불러들여 꿀과 안식처를 제공했다. 이렇게 보면 결국 식물이 나무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대기 중에 존재하는 산소 덕분이다.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도 산소 덕분에 몸집을 키울 수 있었다. 식물의 리그닌에 필적하는 동물의 고분자 화합물은 콜라겐이다. 포유동물이 가진 단백질의 양을 100이라고 했을 때 콜라겐은 그중 약 25%를 차지한다. 단연 압도적이다. 콜라겐은 인간의 결합조직인 뼈나 연골에 주로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어디에나 다 있다. 머리카락이나 혈관에도 있다. 이 중에서 콜라겐이 부실했을 때 가장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조직은 어디일까? 뼈, 이빨? 아니다. 바로 혈관이다. 

심장에서 전신으로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인간은 약 10만㎞가 넘는 혈관계를 구비하고 있다. 따라서 혈관벽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일은 건강하게 살기 위한 지름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콜라겐을 견고하게 구축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공들여 땋은 여자아이 삼단 머리처럼 콜라겐 다발은 세 줄의 콜라겐 기본단위로 이루어져 있다. 콜라겐 단백질 안에는 특별히 프롤린(proline)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13%에 육박할 정도다. 세포들은 프롤린 분자에 산소와 전자 한 개를 붙인 수산기를 일종의 접착제로 사용하여 세 줄의 콜라겐 다발을 완성한다. 이렇게 콜라겐 다발을 만들 때도 산소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콜라겐 다발에 구조적 안정성을 확고히 부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자가 필요하다. 

콜라겐 단백질에 전자를 전달해 주는 생체 물질은 다름 아닌 비타민C이다. 대항해 시대에 수많은 선원들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요란스럽게 등장한 비타민C 결핍의 주요한 증상인 괴혈병은 대개 전자 하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부실해진 콜라겐 단백질에서 비롯되었다. 비타민C의 정체를 밝힌 헝가리의 센트죄르지 박사는 연구 초반 저 물질을 확보하기 위해 소의 부신을 대량으로 추출했다. 부신(副腎)은 그 이름처럼 콩팥 위에 붙은 기관이며 아드레날린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만들고 분비한다. 아드레날린을 만들 때도 비타민C가 제공하는 전자가 필요한 것이다. 교과서에서 우리는 비타민C가 중요한 세포 내 항산화물질이며 활성산소로부터 세포를 보호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비타민C는 스트레스성 매개 물질인 아드레날린뿐만 아니라 근육의 운동 및 쾌감 본능을 매개하는 도파민 생합성에도 필요하다. 또한 에너지원으로 쓰기 위해 잘게 쪼갠 지방산을 미토콘드리아로 운반하는 카르니틴이라는 물질을 만들 때도 필수적이다. 괴혈병의 초기 증상은 권태감을 동반하는데 이 증상은 카르니틴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인간은 이렇게 중요하고 다양한 기능을 하는 비타민C를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 대신 싱싱한 채소나 과일을 먹어 필요한 양의 비타민C를 충족한다. 하지만 인간과 달리 지구상에 사는 대부분의 다세포 생명체는 스스로 비타민C를 만든다. 몇 종의 물고기와 새 그리고 박쥐 일부, 기니피그 및 영장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비타민C를 만드는 유전자와 효소 일습(一襲)을 갖추고 평생을 살아간다. 심지어 식물이나 버섯도 비타민C를 합성한다. 식물의 비타민C는 주로 광합성 과정에서 파생하는 활성산소를 제거한다고 알려졌지만 콜라겐과 신경전달물질의 합성에 참여하는 동물에서의 비타민C의 기능을 염두에 둔다면 이 화합물이 식물에서도 다양한 기능을 할 것이라고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식물이 왕성하게 성장하거나 과일이 익을 때 비타민C가 필요하다는 최신의 연구 결과는 이런 추론을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쩌자고 비타민C라는 중요한 물질을 만드는 수단을 내팽개쳤을까? 과학자들은 아마도 우리 영장류 조상이 나무 위에서 잎과 과일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런 생화학적 격변이 찾아오지 않았을까 합리적으로 추론한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실 항산화제인 비타민C를 합성하는 동안 역설적이게도 세포 독성물질인 과산화수소산화물이 만들어진다. 주위에서 쉽게 비타민C를 확보할 수 있게 된 인간은 저 효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탄수화물 재원도 절약하고 간접적으로나마 독성물질의 위험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채소와 과일을 자주 먹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는 진화적으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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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부터 일반주택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포함한 주택용 소방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법률이 개정되었다. 소화기는 세대별·층별 각 1대 이상, 단독경보형 감지기는 구획된 실마다 1개씩 설치토록 규정하고 있다.

주택용 소방시설(단독경보형 감지기와 소화기)은 초기 화재 대응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난 9월 서울 봉천동 한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주방 후드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관악소방서에서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 홍보차 무상으로 설치해준 단독경보형 감지기가 화재로 인한 연기를 감지해 경보를 울렸고, 거주자가 소화기를 이용하여 소방대 도착 전 화재를 진화했다. 자칫 대형화재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 화재는 단독경보형 감지기의 울림으로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조그마한 울림은 큰 생명의 울림이 되어 돌아왔다. 이 생명의 울림은 간단한 설치법과 작은 관심으로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단독경보형 감지기는 온라인 쇼핑몰이나 대형마트, 소방시설 업체 등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손쉽게 구입할 수 있고, 드라이버 하나로 천장에 간편하게 부착하기만 하면 된다. 단독경보형 감지기 1개와 소화기 1대를 함께 구입해도 5만원이 넘지 않지만, 이 주택용 소방시설은 초기 화재 시 소방차 1대와 맞먹을 정도의 능력이 있다.

주택용 소방시설은 이제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품이다. 모든 단독주택에 주택용 소방시설을 설치하여 화재로부터 안전한 겨울을 보내자.

<고숭 관악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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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아 항공권을 양도한 ‘김민섭씨 찾기 프로젝트’도 벌써 2년이 지났다. 나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와 연결된 여러 재미있는 일들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다른 김민섭씨들에게서 종종 연락이 온다는 것이다. “저도 밤나무입니다” “너도 밤나무로구나” 하는 전래동화가 떠오를 만큼 “저도 김민섭입니다” 하는 여러 김민섭들과 만났다. 

93년생 김민섭씨가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72년생 김민섭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저의 이름을 이렇게 널리 좋은 이미지로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김민섭님께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요” 하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왔다. 자신이 만든 파스타를 들고 웃으면서 찍은 사진도 함께였다. 93년생 김민섭씨는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고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사진 속의 72년생 김민섭씨는 정말로 선하게 웃고 있었다. 

세 김민섭이 모여 식사를 했다. “남들이 똑같은 사람 셋이 모였다고 하겠는데요”라 할 만큼, 셋은 뭔가 닮은 데가 있었다. 김민섭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대개 이렇게 생겼을 것인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 만큼 그랬다. 72년생 김민섭씨의 명함을 받은 93년생 김민섭씨는 “여긴 저의 꿈의 직장이네요” 하고 말했다. 나도 알고 모두가 알 만한 외국계 기업이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회사에 우리 둘을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한 달에 2명씩 외부인을 초대해 회사를 견학하고 회사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타인의 회사에 가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으나 93년생 김민섭씨에게는 선물일 것이어서 흔쾌히 응했다.


강남에서도 지하철역과 가장 가깝고 높은 빌딩의 이십 몇 층에 그의 회사가 있었다. 검은색 정장을 잘 갖추어 입은 여러 사람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빨갛고 파란 외투를 입은 것은 두 김민섭뿐이어서 뭔가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차림새에 대한 민망함은 곧 우리를 마중 나온 72년생 김민섭씨를 보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편안한 후드티 차림이었다.

회사의 식당은 내가 상상한 구내식당과는 많이 달랐다. 식판에 배식을 받고 국그릇을 하나 들고 가면 되겠지 했는데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고르면 되는 뷔페 방식이었다. 프랜차이즈 뷔페들보다도 오히려 음식이 나았다. 먹고 싶은 것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나는 상상하기 어려운 어느 지점에 다다랐다. 거기엔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따로 있었다. 단순히 고기가 아닌 것을 모아둔 게 아니라 누구라도 먹어보고 싶을 만한 맛있는 요리들이 있었다. 회사에 채식주의자가 몇 명이나 된다고 이렇게 메뉴를 따로 마련해 두었을까, 역시 돈이 많은 회사라서 가능한 일이구나, 하는 심정이 된 나에게 72년생 김민섭씨는 후식으로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에도 채식주의자를 위한 것이 따로 있다고, 이것은 몹시 당연한 일이라는 듯 말했다. 

이 외국계 기업에선 채식주의자란 이유로 동료직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다. 배려나 보살핌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해야 할 타인의 개성으로 인식될 뿐이었다. 옷차림에 대해서도 72년생 김민섭씨는 “안 그래도 다른 회사들에서 항의가 들어왔어요. 품위를 지키기 위해 이 회사 직원들도 정장 입고 출근하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말 안되는 소리를 한다고 그냥 다 웃고 말았죠” 하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말을 하며,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생각을 할 때, 비로소 ‘닮은 사람’이라고 여기기 쉽다. 한국의 많은 회사들이, 학교와 군대 등 여러 조직들이 그렇다. 너도밤나무가 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회다. 그러나 그 닮음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소수의 자리를 구조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비용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러한 다양성을 모두가 감각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얼마 전 한국의 군대에서 채식주의자 장병을 위한 식단이 없음이 작은 화제가 됐다. 그때 두 김민섭씨와의 점심식사가 먼저 떠올랐다. 국가를 위해 징병된 그들이, 일개 외국계 기업의 회사원들보다 못한 처우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적어도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고 자신의 식성에 따라 더 많은 음식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서로의 이름이 다른 것처럼 모두는 다른 객체다. 그 다름을 감각하고 자리를 마련할 때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한 개인과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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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으로 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 ‘정권이 바뀌면 바람 앞 등불 신세’ ‘논공행상의 대상’…. 통신업계 맏형으로 불리는 KT 회장 자리에는 이런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2002년 완전 민영화 후 정부 지분이 0%인 회사지만 기이하게도 정권 차원의 후원 없이는 오르기 힘든 자리였다는 뜻이다.

KT가 이런 오명을 벗어던질 수 있을까. 현재 진행 중인 황창규 회장 후임 선출 과정에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KT처럼 ‘공민기업(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인 포스코 역시 선출 과정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KT 회장 자리는 정권이 바뀌면 바람 앞 등불 신세’란 꼬리표는 뗐다. 2017년 3월 연임에 성공한 황 회장이 중도 하차하지 않고 내년 3월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는 것이다. 

황 회장은 KT 경영고문 부정 위촉 사건으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공과에 대해선 논란도 있다. 하지만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감안하면, 정권교체 시 새로운 수장이 위에서 내려오면서 타의로 물러나야 했던 전임 회장들과는 달랐다.

또 하나의 과제는 그간 반복적으로 나타난 권력 개입을 차단할 수 있을지, 정권 실세와 가까운 인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왔던 과거와 단절하면서 새로운 회장 선출 모델을 창출할 수 있을지 여부다. 차기 회장으로는 전·현직 임원과 외부 인사를 포함해 37명이 경쟁하고 있다.

KT 회장 선출의 1차 관문은 현재 진행 중인 이사회 지배구조위원회의 서류 심사다. 몇 명으로 압축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나 조만간 5명 수준으로 추려질 것이란 말이 나온다. 이어 회장후보심사위원회, 이사회를 거쳐 이르면 연내 최종 후보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회장후보심사위는 사외이사 전원(8명)과 사내이사 1명으로 구성된다.

KT 안팎에선 아직까지 정권 차원의 노골적 개입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KT 관계자는 “청와대는 개입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게 정설이다. 내년 4월 총선이 있고, 친여 인사가 입성할 경우 관치인사란 비판에 직면할 것이란 점에서 여당도 자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어른거리는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회장후보심사위에 들어가는 김대유·이강철 사외이사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정책수석과 시민사회수석을 지냈고 정동채 전 문화관광부 장관, 노준형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회장 후보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두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때 장관을 지냈다. 기업 경험 유무가 평가과정에 감안될 것이란 점을 들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해야 할 KT 회장이 정치적 외풍에 휘말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KT 내부 인사들이 주무부처와 정치권에 대한 로비의 필요성 때문에 힘 있는 인사를 원하고 있다면, 겉으로는 기업의 자율성을 주장하면서 물밑에서는 정부와 정치권 줄대기에만 힘을 썼던 과거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KT는 전화국 시절부터 한국통신을 거쳐 현재 42개 계열사, 재계 순위 12위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국민들이 낸 세금과 전화채권 지원 등이 발판이 됐다.

1997년 외환위기 후 민영화가 시작돼 2002년 5월 완전 민영화가 이뤄졌으며 국민들의 노후 재산을 관리하는 국민연금이 13.05%의 지분을 보유해 1대 주주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소액주주들이 투자한 기업이기도 하다. KT를 단순한 통신재벌로 볼 수 없는 이유다. 무엇보다 통신기업은 공공성이 매우 강하다.

KT 회장 자리는 특정 정권의 전리품일 수 없으며 낙하산은 또 다른 낙하산을 부르기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듬해인 2009년 KT 회장에 오른 이석채 전 회장 시절 ‘올래 KT’(외부에서 영입된 임직원)와 ‘원래 KT’(내부 KT 임직원) 간 분열이 극심했던 건 주지의 사실이다.

KT 차기 회장은 경영혁신을 이끌 비전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의 앞에는 이사회의 내실화를 통한 내부경영 감시 등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벌써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소비자 대표를 이사회 멤버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 ‘사이다 인사’를 통해 시민들을 감동시켰지만 이제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KT 회장 자리는 현직 장관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설이 돌았을 정도로 중요한 자리다.

역대 정권과는 다른 신선과 파격을 볼 수 있을까. 정치권력은 이제 KT를 놓아줘야 한다. 이번 회장 선출이 KT의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를 확실히 끊을 수 있는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

<오관철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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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부산광역시·울산광역시·경상남도) 단체장들은 역내 주민들의 여론에 따라 2018년 10월부터 6개월간 김해신공항의 문제점을 검증하였으나, 기존 정책을 고수하는 국토부와 의견이 대립되어 총리실에서 김해신공항의 적합성 여부를 검증하도록 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총리실은 금년 6월 이를 수용하여 현재 검증위원회를 구성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세부적인 검증방식에는 합의를 보지 못하는 답보상태에 놓여 있다. 총리실에서 김해신공항 검증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이를 지연시켜온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하나는 동남권신공항에 대하여 왜곡된 시각을 지닌 수도권 주민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대구·경북의 반대 여론이 완고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2016년 6월 김해신공항을 지정하고 난 이후 대구시내 소재 군사공항과 민간공항을 경북으로 이전하는 통합신공항 건설을 결정함으로써 영남 5개 시·도의 갈등은 사실상 종료되었다. 대구·경북은 통합신공항 건설에 매진해왔고, 부산시는 김해신공항 추진과정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부·울·경에서는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동남권신공항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분출되었다. 동남권신공항은 다분히 가덕도신공항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수도권 주민들은 물론 다수의 지식인들마저도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엄청난 비용이 들지도 모른다는 선입견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그런 것일까. 

우선 동남권신공항 자체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단지 김해공항 확장을 대신할 활주로 1본의 국제공항을 건설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산시 추산에 의하면 김해신공항 건설에 소요되는 7조원 규모이면 가능한 수준이며, 같은 돈으로 소음피해를 없애고 24시간 안전한 공항을 건설할 수 있는 것이다. 국토부의 기본계획대로라면 김해신공항은 인천공항이나 무안공항과 달리 신활주로 진입표면의 장애물을 존치하는 위험한 공항이 된다. 김해시가지를 소음지대로 만들고 낙동강 철새들의 서식지를 파괴시키는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면서도 공항의 경제성에 필수적인 심야운행이나 대형항공기 이착륙의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다. 개항 후 10년 이내에 여객처리능력이 포화상태에 도달하더라도 확장 가능성이 제로라는 치명적인 한계도 있다.     

대구·경북의 정치권에선 이러한 사실을 잘 알면서도 동남권신공항 추진이 대구·경북의 이익을 해치는 총선용 전략이라며 민심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면 대구·경북에는 도대체 어떤 불이익을 줄 것이며 주민들의 저항 정도는 어떠할까. 2019년 1월 경북지사는 “통합신공항이 먼저 결정되면 동남권신공항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언급했으며 대구시장 역시 공감을 표했다. 또한 최근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대구·경북 주민들의 73%가 “통합신공항과 동남권관문공항의 동시 건설에 찬성한다”는 응답을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동남권신공항이 통합신공항을 위축시킬 거라는 선동과 지역 간 갈등이 실체 없는 허구임을 밝혀주고 있다. 

따라서 총리실에서는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말고 김해신공항이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유사시 인천공항을 대체할 수 있는 관문공항”의 기준에 부합하는지의 여부를 판정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분권적 시각에서 부·울·경 주민들의 단합된 의견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박영강 | 신공항교수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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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100명이 정규직화를 외치며 삭발한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급식대란이니 돌봄대란이니 호들갑을 떨면서 정작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에는 무관심한 세상을 보며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혀만 찼다. 학교 급식 조리 노동자들을 아줌마 운운하며 비하한 정치인한테 분노했지만, 금방 수그러들었다. 그 기억을 일깨운 것은 일 때문에 몇 번 만난 열일곱 살 학생이었다.

그는 미래와 꿈을 묻는 말에 한참 망설이다가 ‘가족여행’이라고 대답했다. 한 번도 가족여행을 간 적이 없다는 그는 어린 시절에 별로 좋은 일이 없었다며 웃었다. 사실 그 또래의 기억 속에 과거는 그리 아름답지 않다. 부모들은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며, 형제들은 이기적이고, 친구들은 늘 살얼음판 걷듯 예민하니 어린 시절이라고 해서 마냥 천진난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조곤조곤 자신의 얘기를 하다가 엄마한테 몹시 맞은 얘기를 했다. 그때 엄마는 왜 그랬을까, 그의 말에 한 아이를 다그치며 키우기도 한 나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뭐라 답하기 전에 그는 요즘 엄마가 무척 힘들다며 말을 이었다.

“엄마가 조리사로 일하시는데 손가락이 다 짓물렀어요. 그렇게 일하고도 비정규직이라 월급이 얼마 되지 않아요.”

그는 눈물을 글썽이다 이내 훌쩍거렸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를 바라봤다. 손가락이 짓물렀다는 그 한마디가 급식 조리사 1명이 최대 150명의 끼니를 준비해야 하고, 손가락이 잘리기도 했으며, 발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는 건조한 신문 기사 몇 줄을 비로소 현실로 와 닿게 했다. 아마도 그는 안타까운 마음을 엄마에게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름날 길에서 머리를 삭발하는 엄마를 바라봐야 했던 자녀들의 심정은 생각조차 못했다. 치열하게 여름을 보낸 그들의 겨울은 어떨까. 노동존중사회라며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제로, 노동시간 단축을 말한 정부가 뭐 하나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면서 학교 급식 조리 노동자들의 요구 조건은 수용한 걸까. 나는 뒤늦게 그들의 삶을 걱정한다. 그들의 삶이 단단해야 우리 아이들이 단단히 자랄 수 있으며, 그래야 우리 사회의 미래가 있으니 내 걱정은 당연하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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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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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소년원의 한 끼 급식비가 1803원으로 중학교 한 끼 급식비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소년원의 1인당 1끼니 급식비는 학교와 비교해 식단을 짜기조차 쉽지 않아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기 어려우니, 제대로 된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하기 위해 이를 개선하자는 의견이었다. 이 기사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에게는 그것조차도 과분하다는 냉소적·비판적 견해가 대부분이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을 단순한 보호대상이 아닌 존엄성과 권리를 지닌 주체로 보고 이들의 생존, 발달, 보호, 참여에 관한 기본 권리를 명시한 협약이다. 한국은 이 협약에 가입한 국가이므로 아동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소년원생의 대부분은 사선 변호인을 선임할 경제력은커녕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의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자녀들이다. 비행청소년의 상당수는 한부모가정이나 조손가정 등 결손가정에서 성장하거나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이기 때문이다. 또한 재원생의 약 30%가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충동조절장애, 품행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약물치료 및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보호처분 집행이 끝나면 결국 사회로 돌아올 아이들이다. 소년원 재원 중 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을 받으려면 심신이 건강해야 한다. 범죄를 저질렀지만, 성장기 청소년임을 고려하여 아이들의 식단을 현실화하자. 소년원생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권적 처우는 재범 방지와 사회 재통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최원훈 |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대전소년원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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