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른 새벽부터 공부방에 앉았는데 창밖 어둠이 칠흑 같다. 또 때가 된 것인가. 괜히 마음이 급하다. 뭔가 정리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부방에는 불도 켜지 않았다. 들릴 듯 말 듯 방에 가득 찬 피아노 소리를 두 귀에 걸고 멍하게 어둠을 바라보고 있은 지 두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어찌 일 년 동안의 많은 일들이 두어 시간 만에 정리가 되겠는가. 철이 들고 난 후 해마다 그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해도 해도 꺼림칙하다. 그처럼 개운하지 못한 까닭은 일 년 365일 동안 겨우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태도를 가지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나 자신이 참으로 멍청하고 바보같다고 해마다 되뇌지만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사실 오늘이 2019년의 마지막 날이어서 마음이 더 급했을 뿐 성탄절 후부터 새벽 4시경이면 공부방에 들어가 동살이 비칠 때까지 우두커니 앉아 있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10여년 전부터 일체의 송년모임을 하지 않아서 가능하다. 처음 몇 해 동안 불러도 꿈쩍하지 않자 서너 해가 지나면서부터 더 이상 나오라는 말을 듣지 못한다. 잊힌 것이며 자발적 소외이다. 예전 같으면 조바심도 나고 불안하기도 했겠지만 이제 그저 덤덤하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소원해졌겠지만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관계에 휘둘려 내가 나로 살지 못하는 것보다 최소한의 관계만을 유지한 채 나로 사는 것이 한결 홀가분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뭐가 그렇게 불안하고 초조했을까. 카메라 가방도 그렇다. 애물단지인 그 가방 속에 뭘 그리 많이 넣어 다니려고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미련하기 짝이 없다. 장비를 적게 가지고 다니면 마치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것처럼 가방을 배불뚝이로 들고 다녔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말할 수 없이 가벼워졌다. 외국으로 촬영을 갈 때도 멍텅구리 카메라 하나만 들고 다니니까 아예 카메라 가방이 따로 없다. 더구나 렌즈를 교환하지 못하는 카메라여도 내가 촬영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없다. 가방이 가벼워진다는 것은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고 몸이 가벼워진 만큼 생각은 왕성해진다. 나는 사진이란 카메라가 찍는 것이 아닌 생각이 찍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오히려 장비에 치일 때보다 사진이 더 나를 닮아서 그 또한 좋다. 

이처럼 올해 들어 바뀐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온 집 안을 점령하고 있던 책을 3분의 1로 줄인 것을 시작으로 바뀐 것들을 살펴보면 대개 밖으로 뻗어 나가는 것들보다 안으로 집중하는 것들이었다. 또 나에게 덕지덕지 달라붙은 것들을 먼지 털 듯이 털어서 가볍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바뀌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안으로 집중한다고 해서 삶에 대한 자세가 위축되는 것은 아니다. 올해에만 새로운 작업을 두 가지나 시작했는데 둘 모두 외국에서 이뤄지는 것들이며 밥벌이를 하는 틈틈이 짬을 내어 촬영을 다닌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까닭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삶의 형태를 단순화시켰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동력과 경제력을 한 곳으로 모아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또한 내가 나로부터 받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다. 

여하튼 한 해의 끝이 되면 시간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중국 쓰촨성 일대 촉 지방에서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이 가까워지면 궤별, 별세 그리고 수세(守歲)를 통해 한 해를 마무리했다. 궤별은 서로 나누는 송년인사, 별세는 사람들마다 자기 형편에 맞는 술과 음식을 마련해 가지는 송년모임이다. 마지막으로 수세는 가까운 벗이나 친지들이 모여서 한 해 동안의 일을 시끌벅적 이야기하며 밤을 새는 것을 말하므로 각각의 이름은 다르지만 그 내용은 거의 같다. 

소동파는 ‘별세’라는 시에서 사람은 떠나도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해(歲)는 한 번 가면 다시 볼 수 없다며 세월에게 “너 어디로 가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의 같은 제목 또 다른 시에서는 막 익어가는 동쪽 집의 술과 서쪽 집의 살찐 돼지로 하루를 즐기며 세밑의 슬픔을 달래보자고 한다. 또 ‘수세’라는 시도 지었는데 거기에서는 흐르는 세월이 마치 구멍으로 들어가는 뱀의 속도처럼 순식간이라고 했으며, 오늘과 같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은 구멍으로 들어간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옴짝달싹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고 했다. 그것은 한 번 지나간 세월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며 이미 흘러간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한 표현이다. 

음력이긴 하지만 한 해의 마지막인 섣달그믐날에 하는 갖가지 흥미로운 풍속들이 많은데 언젠가 읽은 중국 오 지방의 풍속이 기억속에 남아 있다. 남송의 정치가인 석호(石湖) 범성대가 지은 ‘매치애사(賣癡 詞)’, 곧 ‘바보멍청이를 파는 노래’의 내용은 이렇다. 섣달그믐날 밤, 어른들이 잠을 자지 않고 가는 해를 아쉬워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고 있을 때 골목이 시끌벅적하다. 그 날은 아이들도 잠을 자지 않았는데 모두 길거리로 나와 무엇인가를 사라며 외치고 다닌다. 앞에 말한 ‘매치애사’에서 ‘치’는 어리석고 미련함을 뜻하고 ‘애’도 어리석음을 뜻한다. 이 둘을 합치면 대략 ‘바보멍청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팔러 다니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둔함과 미련함을 누군가에게 팔아버려야 좀 더 똑똑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 중기의 문사 계곡(谿谷) 장유는 ‘바보를 파는 아이’라는 시에서 말하기를 내가 그 바보를 사줄 테니 대신 자신의 교활한 꾀를 가져가라고 한다. 살아보니 자신에게 남은 것은 갖은 책략을 만들어 내는 지혜라는 이름의 꾀만 남았다는 것이다. 책략은 결국 근심을 만들어 내지 않던가. 그러니 꾀나 지혜보다는 바보가 더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나 또한 오늘 밤이나 음력 섣달그믐에 골목어귀를 서성거려 봐야겠다. 혹시 바보를 팔러 나오는 아이들을 만나면 얼른 사서 나에게 덧입힌 채 다가오는 한 해를 살고 싶기 때문이다.

<이지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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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13일, 양주 대아산업개발(주)에서 30대 이주노동자인 프레용이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했다. 회사의 무성의한 태도로 현재도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차가운 영안실에 안치돼 있다. 사고 원인은 김용균씨가 목숨을 잃은 이유와 비슷하다. 컨베이어벨트의 비상장치, 방호장치가 없었고, 안전통로는 확보되지 못했다.

2018년 산업재해로 사망한 이주노동자는 136명, 사고자는 7239명이다. 제조·건설업에서 각각 49명, 61명이 사망했다. 이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 재해로 승인된 통계일 뿐, 현실을 반영하진 못한다. 가령 어업의 경우 통계상 연도별 사망자는 0 내지 1인이다. 2011~2015년 어업작업안전재해현황을 보면, 연도별 사망자는 118~183명에 이른다. 어업은 어선원안전보험 가입률이 50% 미만에 불과하고, 이주노동자 어업재해율은 6.75%에 달한다. 어업 사망자 상당수가 누락된 것이다. 자살 사망자도 누락돼 있다. 

해마다 2400여명이 노동현장에서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다. 그 가운데 10분의 1가량이 이주노동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은 죽어서도 차별을 받는다.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 이주노동자의 재해, 특히 산업재해 사망사고의 심각성에도 이를 일관되게 분석·대응하는 기관·부서가 없다. 한때 안전보건공단이 심각성을 인식하고 재해 50% 감소를 목표로 ‘외국인근로자 재해 감소대책’을 수립한 바 있지만, 실행은 흐지부지된 듯하다. 건설·제조·어업 3대 업종에 있어 이주노동자의 중대재해 감소를 위한 기구·부서의 수립 및 관련 법·지침·고시 등의 개정이 시급하다.

일단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어업 사고는 감독에서 제외돼 있다. ‘선박안전법 적용 사업’에는 산안법 제23조(안전조치)가 적용되지 않는다. 시행령 및 근로감독관집무규정을 개정해, 근로감독이 어업 분야에도 실질적으로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서비스업, 50인 미만 어업, 5인 미만 사업장에 산안법 제31조(안전보건교육) 적용을 제외하는 규정도 삭제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입국 전 안전에 대한 교육이 부재하고, 입국 후에도 형식적·일률적 교육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교육체계의 대대적 정비도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 및 기초기능 교육시간을 최소 18시간으로 확대해야 한다. 직종별 체험 위주 교육을 통해 현장 안전보건 위험에 대한 인지 능력을 강화하고, 6개월 전 다수 사고의 현실을 반영하여, 배치 후 교육을 통한 위험 및 대응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특히 무엇보다 안전보건 위험에 대한 현실적 대응 방법, 작업중지권, 산업재해신청권 등 권리 인식에 대한 내용 제공이 가장 필요하다. 

이주노동자 고용 시 사용자의 안전교육 수강의무를 부과하고, 사업장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며, 작업환경측정결과서 등 안전보건정보를 배치 전에 이주노동자에게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도 외국인 취업교육기관 지정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이주노동자로서 현장 경력이 풍부한 사람을 강사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안전보건공단 자료의 접근성 부족을 감안, 16개 국가별 위기탈출 앱을 개발해 현장 배치 전에 보급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들도 이주노동자 중대재해를 줄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당연히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안전에 있어 차별받지 않을 권리, 노조를 결성할 권리를 적극 보장해야 한다. 죽으려고 한국에 오는 노동자는 아무도 없다. 정부는 더 이상 이주노동자의 재해를 방관하지 말고, 적극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권동희 |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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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착하다’는 무슨 뜻일까? 국어사전은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고 정의하지만, 이것만으로 완벽한가? 고운 말 쓰고 법과 규범을 잘 지키며 살면 착하게 사는 것일까? 아니, 그 전에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범과 곰이 한 동굴에서 살았는데, 늘 환웅에게 사람 되기를 빌었다. 환웅이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곰은 이 말을 잘 지켜 사람의 몸을 얻었으나 범은 그러지 못했다. 웅녀(熊女)는 날마다 단수(壇樹) 아래에서 아기 배기를 축원했다. 환웅이 잠시 변하여 그와 혼인했더니 이내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 아기의 이름을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했다.”(<삼국유사> 기이편)

근대의 민족 기원 담론에 따르면, 한민족의 공동 시조는 단군이다. 개천절 노래도 “이 나라 한아바님은 단군”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부계 ‘혈통’만 따져 왔음에도, 단군의 아버지 환웅과 할아버지 환인을 조상에서 배제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신(神)이기 때문이다. 신과 동물이 결합해서 나은 아기가 바로 ‘사람의 조상’이었다.

사람을 신과 동물의 중간에 위치한 존재로 보는 것은 고대인들에게 보편적이었다. 인류는 신을 믿음으로써, 자기가 신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거나 신성(神性)을 지닌 특별한 존재라는 확신을 갖고 자연을 대할 수 있었다. 인류에게 신은 자신과 다른 동물들 사이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게 해주는 자(척·尺)였다. 인류를 자연의 일부이면서 자연에 대립하고 나아가 자연을 지배하려 드는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준 것은 자기 머리 위에는 신이 있고 발아래에는 다른 동물들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들은 자기 몸이 다른 동물들의 몸과 마찬가지로 늙고 병들고 죽고 썩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자기 마음은 가꾸는 만큼 고양되어 신과 합일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인간의 마음이 신과 합일되는 것이 구원이었고, 동물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 타락이었다.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남의 생명을 해치려는 욕망은 동물과 공유하는 것이었고,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남을 살리려는 의지는 동물에게서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고대인들이 보기에, 동물성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신성이었다. 신에게서 기원한 것이 선(善)이요, 동물과 공유하는 것이 악(惡)이었다. 인간은 늘 선악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고민하면서도 대체로는 신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들 생각했다. 그래야 죽은 뒤에 신의 곁에서 영생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흔히 선량(善良)을 묶어 쓰지만, 선심은 베푼다고 하고 양심은 지킨다고 한다. 양심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의 마음이지만, 선심은 적극적으로 지고지선(至高至善)한 신의 의지를 구현하려는 마음이다. 악을 미워하고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며 남의 불행을 보고만 있지 않아야 ‘선’이다. 

16세기 과학혁명은 신의 존재에 대한 일반적 믿음에 만회하기 어려운 타격을 주었다. 인간은 신의 섭리라고 믿었던 수많은 현상이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신의 고귀한 의지와 관계없는 자연법칙에 지배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장 신의 거소(居所)였던 ‘하늘’이 사라졌다. 18세기에 괴테는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으로 인해 인류가 직면한 정신적 위기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다. “낙원으로의 복귀, 종교적 믿음에 대한 확신, 거룩함, 죄 없는 세상, 이런 것들이 모두 일장춘몽으로 끝날 위기에 놓였다.” 자기들만이 신성과 영혼(靈魂)을 가진 특별한 존재라고 믿었던 자부심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인간도 동물의 일종일 뿐’이라는 생각이 급속히 확산했다. 19세기 진화론은 그런 생각을 과학의 명제로 만들었다.

과학은 수천 년, 혹은 수만 년간 요지부동이었던 신의 자리를 흔들었고, 결국 그 자리를 빼앗았다. 인간은 자기 생각과 행동에서 신의 의지를 찾는 대신에 ‘과학적 합리성’을 찾았다. “반찬 가리면 복 달아나”라던 밥상머리 경구는 “편식하면 키 안 자라”로 바뀌었고, 밤은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 무서운 시간대가 되었다.

국가도 신의 의지가 아니라 사람들의 의지가 모여 만들어진 기구가 되었다. 굶주림과 질병으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푸는 임무도 종교 시설에서 국가로 넘어왔다. 현대인들은 불행을 당하면 신이 아니라 국가를 원망하며, 신의 은총을 갈구하는 대신 국가의 지원을 요구한다. 순교성인(殉敎聖人)들이 사라진 자리를 순국선열(殉國先烈)들이 메꿨다. 

20세기에 들어 신의 선한 의지를 믿지 않거나 가볍게 여긴 인간은 자기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굳이 증명하려 들었다. 세계도처에서 벌어진 대량학살과 인종청소는, 악(惡)이 평범한 인간들의 본성에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과거 인류가 상상했던 그 어떤 악마도, 인간 자신보다 악랄하고 잔인하지는 않았다. 이제 개체 단위로든 전체 집단으로든 인간을 끔찍한 파멸로 이끌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는 주장을 의심할 이유는 거의 없다.

‘착함’이란 인간 내면의 신성이자 신에게 의지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지금, 특히 한국에서, 많은 종교 지도자가 사랑 대신에 증오와 혐오를 설파하고, 신의 은총을 돈으로 환산한다. 신에 대한 믿음이 남아 있다손 치더라도, 저런 사람들이 신의 의지를 대리하는 시대에, ‘착함’은 무엇에 의지해야 하는가?

“착하게 살아야 복 받는다.”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말이다. 삶은 내 몫이지만, 복을 내리고 말고는 신의 권한이었다. 하지만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 신도 돈으로 은총을 내린다고 믿는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서인지, 어느 사이에 “착하게 살아봤자 너만 손해다”라는 말이 더 자주 들리게 되었다. 인류는 아주 옛날부터 ‘악이 지배하는 세상’을 상상하고 그것에 ‘지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착하게 살아봤자 손해만 보는 세상’이 곧 지옥이다. 우리 모두가 지옥에 떨어져 신음하는 참상을 겪지 않으려면, ‘착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인류 안에서, 내 안에서 찾아야 할 터이다. 필사적으로.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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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장편소설 <올리브 키터리지>의 한국판 띠지에는 김애란 작가의 다음과 같은 짧은 추천사가 적혀 있다. 

“울지 않고 울음에 대해 말하는 법.”

이 한 문장 때문에 펼쳐보지도 않고 책을 샀다. 나 역시 울지 않고 슬픔에 대해 잘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펼쳐들자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잃은 데니즈라는 인물이 등장했다. 이 소설은 데니즈의 상사이자 다정한 친구인 헨리의 목소리로 이렇게 서술한다.

‘봄이 왔다. 낮이 길어지고 남은 눈이 녹아 도로가 질척했다. 개나리가 활짝 피어 쌀쌀한 공기에 노란 구름을 보태고, 진달래가 세상에 진홍빛 고개를 내밀었다. 헨리는 모든 것을 데니즈의 눈을 통해 그려보았고, 그녀에게는 아름다움이 폭력이리라 생각했다.’

소설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데니즈가 슬펐다고 말하지 않는다. 고통스러웠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인 나는 데니즈의 눈에 쏟아져 들어오는 봄의 장면을 선명히 그려볼 수 있다. 그 아름다움에 상처를 입을 만큼 취약해진 마음에 대해서도 상상해볼 수 있다.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제일 소중한 사람이 옆에 없다는 사실이 몸서리치게 실감나서 날마다 새롭게 아플 것 같다. 

이 상상은 나의 몫이다. 내가 슬플 공간을 작가가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데니즈가 슬프다는 핵심 요약 문장을 간단하게 쓰지 않음으로써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쓰더라도 작가가 먼저 울어서는 안된다고 나의 글쓰기 스승은 말하곤 했다. 그럼 독자는 울지 않게 될 테니까. 작가가 섣부른 호들갑을 떨수록 독자는 팔짱을 끼게 될 테니까. 

울지 않고 슬픔을 말하듯 웃지 않고 재미에 대해서도 잘 말하고 싶었다. 탁월한 코미디언은 결코 자기 농담에 먼저 웃지 않는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게 재밌는 이야기도 웃음기 없이 끝까지 들려준다. 관객들은 이미 배꼽 빠지게 웃고 있다. 

얼마 전 그런 공연을 실제로 보았다. 동북아시아구술문화연구원(이하 ‘동북구원’)의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이었다. 코미디를 보기만 하고 한 번도 직접 해보지는 않은 여섯 명이 퇴근 후 모여서 몇 주간 준비한 데뷔무대였다. 그들은 실력에 영 자신이 없어서 돈도 받지 않고 사람들을 모아 각자 10분씩 썰을 풀기 시작했는데 나는 한 시간 내내 너무 많이 웃다가 거의 탈진을 할 뻔했다. 후반부에는 광대가 욱신거려서 주무르며 웃어야 했다. 

이상한 점은 그것이었다. 그들이 들려준 얘기들이 모두 조금씩 비극적이라는 점 말이다. 울면서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연들이었다. 사기와 성추행과 폭력과 부조리와 노화와 수치로 가득한 서사였다. 그들은 웃지도 울지도 화내지도 않은 채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관객들은 안타까움에 미간을 찡그리면서도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슬픔을 훌쩍 넘어서는 유머 때문이었다.

나는 동북구원의 여섯 명이 그 얘기를 얼마나 여러 번 다시 말해보았는지를 가늠하게 되었다. 

난생처음 입 밖에 꺼내는 슬픈 이야기는 곧바로 유머가 되기 어렵다. 여러 번 말해보고 자꾸 다르게 말해볼수록 그 사건이 품은 슬픔의 농도가 옅어진다. 슬픔 속의 우스꽝스러움도 발견하게 된다. 

반복적인 글쓰기의 자기 치유 과정과도 닮아 있다. 나는 치유를 위해 글을 쓰지 않지만 글쓰기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 스스로를 멀리서 보는 연습이기 때문이다. 

그 연습을 계속한 사람들은 자신을 지나치게 불쌍히 여기거나 지나치게 어여삐 여기지 않는 채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자기 연민의 늪과 자기애의 늪 중 어느 곳에도 빠지지 않고 이야기를 완성하여 독자와 관객에게 슬픔과 재미를 준다. 혹은 두 가지를 동시에 준다. 자신 말고 타인이 울고 웃을 자리를 남긴다. 그것은 사람들을 이야기로 초대하는 예술이다. 더 잘 초대하기 위해, 더 잘 연결되기 위해 작가들은 자기 이야기를 여러 번 다르게 말해보고 써본다. 먼저 울거나 웃지 않을 수 있게 될 때까지.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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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말을 맞아 학생들이 2차 지필고사 성적과 수행평가 점수를 합산한 2학기 종합 성적표를 받았다. 교과 담당교사가 최종 성적표를 가지고 들어가 학생들에게 점수 확인을 하고 사인을 받는다. 교사들에게는 학생들의 여러 반응을 통해 1년간 가르쳐온 수업과 학생들에 대한 만감이 교차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전에 찬우(가명)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마지막 학기 53점에 6등급을 받았다. 그는 자기 성적을 보고 기쁨의 탄성을 질렀고 나도 그와 손뼉을 마주치며 같이 기뻐했다. 그는 평소 한문 공책을 들고 나를 찾아와,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질문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가 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해서 그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점차 이해하는 것이 늘어났고, 처음에는 거의 알아볼 수 없었던 글씨도 조금씩 반듯해져 갔다. 시험이 다가오자 깨알같이 적은 종이를 들고 다니며 한자를 외웠다. 그 결과로 받은 이 점수는 그가 지금까지 학교생활 중에 받아본 적이 없는 최고의 점수였다.

찬우는 개념과 의미를 이해하는 데 보통의 학생들보다 어려움이 많았는데, 사물의 모습을 담은 상형문자라는 한자의 특성이 그의 특별한 주의와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그는 한자의 모양을 보면서 뜻과 연결짓고, 관련 단어를 떠올리는 방식으로 한자를 한 글자씩 외웠다. 어떤 학생이 특별한 관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안다는 것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어쩌면 찬우에게는 한자가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신호이자 통로였을지도 모른다.

예은(가명)이도 성적이 상위권은 아니었지만, 늘 맑은 표정으로 수업에 집중하면서 작은 것이라도 정성스럽게 배우는 학생이었다. 그의 학기 말 성적은 68점에 4등급이었는데 나는 그가 받은 점수가 못내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는 자기 점수를 확인하더니 “음, 나쁘지 않네” 하고 편안히 웃으며 사인을 했다.

예은이의 말은 학생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돌아보게 했다. 그래, 그의 말처럼 우리 각자의 존재와 삶이 생각만큼 그리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어차피 다 1등급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1등급만 행복하란 법도 없다. 오히려 행복은 허용의 능력이다. 찬우는 찬우가 가진 것을 가지고 찬우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고, 예은이는 예은이가 가진 것을 가지고 예은이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교육을 통해 세상의 희망을 꿈꾸는 것도 이와 같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장 알맞고 편안한 서식지를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희망을 현실에서 이루어내려면 먼저 우리 각자가 교육에 있어서의 ‘개별성과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교사와 부모, 학교와 사회가 우리 안의 획일적인 욕구와 평가 기준을 내려놓고 서로 어떻게 다른지 주목하면서 각자에게 알맞은 것을 찾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허용하는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도우며 축복해주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디태치먼트>에서 교사 헨리가 “교육은 차이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한 말은 내가 알고 있는 교육에 대한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명제이다.

이제 학생들은 긴 휴식과 충전에 들어간다. 이 땅의 모든 찬우와 예은이를 응원하며, 그들에게 2020년이 행복한 자기 삶의 서식지를 발견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조춘애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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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하다의 다른 말 ‘대수롭다’의 어원은 ‘대사(大事)롭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큰일 아니면 ‘대수롭지 않다’고 하지요. ‘대수롭지 않다’와 비슷한 말이 ‘소소하다’입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이 유행한 지도 오랩니다. 그만큼 오래도록 소소한 것 말고는 추구할 행복이 없었다는 말이기도 할 겁니다. 장래가 막막하니 확실한 당장만 즐길 수밖에요. 욜로(You Only Live Once)도 연일 유행입니다 ‘인생은 한 번뿐’을 ‘인생 뭐 있어’로, 소중을 대충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이 시대의 많은 “욜로!”란 어쩌면 “큰 건 포기!”라는 감탄사 아닐까요?

‘산이 높아야 골이 깊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품은 뜻이 높으면 생각 또한 깊다는 뜻입니다. 산의 높이는 골짜기의 깊이지만, 여기서 ‘골’은 중의적으로 ‘머릿속’도 뜻합니다. 높은 포부를 가진 이는 얕은 생각으로 살아갈 리 없습니다. 하지만 제 뜻을 펼칠 수 없다면 어찌할까요. 맘껏 날아오르라더니 이 이상은 못 난다, 고도제한 둔다면요. 높은 사람들은 높아만 가는데 우리네 삶은 바닥을 뜨지 못합니다. 사회적 약자 위에 가로놓인 투명한 장애, 그 유리천장이 요즘 대부분의 머리 위를 덮은 듯합니다.

미래는 준비된 자의 것이라는 말은 잘나가는 이들의 꿀 발린 소리 같습니다. 하지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미래란 언제나 불확실했습니다. 불확실은 암담함이 아니라 누가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골을 무진장 깊이 파면 산도 솟습니다. ‘진도아리랑’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산이 높아야 구렁(골)도 깊지. 조그마한 여자 소견이 깊을 수 있나.” 신세 한탄하던 그곳에서 송가인 별이 높이 떴습니다. 뜻하지 않은 행운은 뜻한 바를 깊이 판 사람 몫입니다. ‘진도아리랑’에는 체념만 있지 않습니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속엔 희망도 많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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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시상식의 수상 소감은 ‘황정민 이전’과 ‘황정민 이후’로 나뉠 것이다. 

“저는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요. 왜냐하면 60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이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저는 그럼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는 제가 다 받아요. 그게 죄송스러워요.”(2005년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

황정민만큼은 아니더라도, 지난 29일 열린 MBC 방송연예대상의 수상 소감도 인상적이었다. 3수 끝에 대상을 거머쥔 박나래. “제 키가 148(㎝)이다. (대상 타고) 여기 올라와 처음으로 여러분들 정수리를 본다. 제가 볼 수 있는 시선은 여러분의 턱이나 콧구멍이다. 항상 여러분의 바닥에서 위를 우러러봤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언제나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 음주운전으로 적발돼 자숙기간을 보냈던 노홍철(뮤직&토크부문 최우수상). “5년 전 아주 나쁜 일로 죽을죄를 지어서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죽을 때까지 그 무게를 견디고 살아가겠다.” 두 사람 다 자신의 약점이나 과거를 ‘쿨’하게 드러내며 미래를 다짐했다.

내가 꼽는 ‘베스트’는 뮤직&토크부문 우수상의 안영미다. “내가 방송용이 아니라 생각하고 많이 위축되고 방송을 두려워했었다. 먼저 손 내밀어주고 키워주고 사람 만들어준 송은이, 김숙 선배님께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어버이 같은 분들이다. 앞으로 ‘송김안영미’로 살고 싶다.” 

안영미는 스스로 고백했듯 ‘방송용’, 특히 ‘지상파용’은 아니었다. 젊은 여성 연예인으로는 희귀하게 주특기가 ‘19금 개그’여서다. 생존을 고민하던 그는 송은이가 주도한 프로젝트 걸그룹 ‘셀럽파이브’(송은이·김신영·신봉선·안영미)에 참여하며 활로를 찾았다. 대중의 공감을 얻기 시작한 안영미는 <라디오스타> 역사 12년 만에 첫 여성 MC로 발탁됐다. 김국진이나 윤종신도 꼼짝 못하던 독설가 김구라에게 ‘돌직구’를 날리며 ‘구라 잡는 영미’ 캐릭터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송은이 하면 떠오르는 단짝 김숙도 이날 뮤직&토크부문 최우수상을 탔다. 그는 “25년 만에 처음 MBC 시상식에 왔다”며 눈물을 흘렸다. 송은이도 버라이어티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김)숙아 너무 축하해! 안영미야 고마워! 내 자식이 되어주어서! 내일 호적신고하러 가자!”는 재치 있는 소감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오늘날의 김숙을 이끌어낸 사람도 송은이다. 송은이가 TV 밖으로 나간 건 2015년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열면서다. 지금이야 도전과 성공의 기록으로 상찬받지만, 그때는 불러주는 방송사가 없어 사비를 털었다. 송은이와 김숙은 남편도 아이도 시집도 없는, 그래서 상품성도 없는 40대 비혼 여성 예능인이었다. 다행히 <비밀보장>이 빅 히트를 기록하며 새 길이 열렸다. 송은이는 기획 제작사 ‘콘텐츠랩 비보’를 설립하고 유튜브 채널 ‘비보TV’를 열었다. <비밀보장>과 비보TV의 일부 콘텐츠는 <영수증>(KBS) <밥블레스유>(올리브) 같은 TV 정규 프로그램으로 확장 개업했다. 셀럽파이브도 비보TV 웹예능 ‘판벌려’를 통해 결성됐다. 2017년 ‘원더우먼 페스티벌’에 출연한 송은이는 “회사를 설립하며 엑셀을 배우기 시작했다”며 “한 번은 실수로 월급을 두 번 넣은  일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떠냐”고 했다.

예능계는 남성 중심이다. 강호동·신동엽·유재석·이경규 같은 강호의 고수들은 물론, 요즘에는 서장훈·안정환·허재 등 ‘전직 국(가)대(표)’들까지 뛰어들었다. 

서울YWCA가 지난 8월 한 달간 8개 지상파·종합편성채널·케이블 방송의 18개 예능 프로그램을 분석한 결과 고정출연자 성비는 여성이 27.1%, 남성이 72.4%로 나타났다. 주 진행자 중 여성은 25%, 남성은 75%로 3배 차이에 달했다. 박미선은 지난달 KBS <스탠드 업>에서 이야기했다. “이경규, 강호동, 신동엽, 김구라 이렇게 쭉 앉아 있으면요. 우리(여성 예능인)는 조금만 빈자리가 있으면 비비고 들어가서 앉아야 합니다.” 

송은이는 이처럼 척박한 예능판에 균열을 내고 있다. 이른바 ‘송라인’을 만들어 기존 판에 후배들을 꽂아넣는 방식이 아니다. 판의 문법을 바꿔 여성 예능인들의 영역을 창출하고 확장한다. 문자 그대로 ‘크리에이터’다.

MBC 방송연예대상에선 지난해 여성 대상 수상자(이영자)가 올해의 여성 대상 수상자(박나래)와 포옹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KBS 연예대상에선 프로그램을 3개나 진행하고 대상 후보에도 오른 김숙이 무관에 그쳤다. SBS 연예대상의 대상 후보는 8명 모두 남성이었다. 3사 연예대상 중 시청률 승자는 MBC였다.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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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밋밋하게 짝수로 끝나지 않고 하루가 돌출해 있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기해년 삼백예순다섯 날은 그날로 수렴되어 가고 있다. 등대처럼 반짝거리는 그 마지막 날에 바닷가나 산정으로 가서 일출을 보면서 또 살아갈 날을 가늠해 보고 그에 따른 많은 결심을 한다. 얼마 남지 않은 그날을 염두에 둔 마지막 주말.

채널의 맛은 돌리기보다는 끄는 데 있다. 뻔하고 빤한 텔레비전을 간단히 처치하고 남한산성을 찾았다. 총각 시절 꽤 자주 찾았던 예전의 정취가 그런대로 남아 있다. 오랜만에 걷는 길은 더욱 낮고 단단하게 다져졌다. 한 해 한 번 떨어진 낙엽들이 수북하다. 연말을 기념하여 공중의 말씀 같은 눈발을 기대해 보았지만 하늘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울퉁불퉁 성곽길과 호젓한 오솔길을 번갈아 걸었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꿋꿋한 햇살을 받아 소나무 그림자가 내려앉고 그 사이로 내 그림자도 눕는다. 문득 이 고요하면서도 번잡한 숲에서 그림자들끼리는 뭔가 내통하지 않을까, 궁리가 일어났다. 이 세상의 배후는 어딜까, 궁금증도 솟아났다.

남한산성. 파란만장으로 점철된 이 조그만 산중도읍은 서울을 압축하여 옮겨놓은 듯 행궁은 물론 종로도 있고 시구문도 있다. 이윽고 가장 높은 곳에 오르니 소나무와 이승만 대통령이 기념식수했다는 전나무가 우뚝하다. 너무 늙은 나무들 아래 솔방울이 드문드문 떨어졌다. 수어장대(守禦將臺). 기단은 허물어지고 2층 건물은 낡아도 일필휘지는 늠름하기만 하다. 하늘을 배경으로 눈썹같이 꿈틀거리는 글씨를 보며 생각해 본다.

한 해가 가는 건 누가 채널을 돌리는 것. 솔방울이 툭, 떨어지는 건 따로 한 세상이 열리는 것. 땅으로 들어가는 솔방울의 전생인 듯 아직 가지에 의연히 달려 있는 솔방울이 불쑥 마음을 치고 들어왔다. 바람에 날리는 송화 가루를 포착해서 자라난 열매. 봉함엽서처럼 씨앗을 간직하느라 입을 앙다문 듯 야무지게 또랑또랑하던 솔방울. 이제 꼭 품고 있던 씨앗을 모두 출가시키고 활짝 벌어진 솔방울들. 그들의 저 활연대오(豁然大悟)가 자꾸자꾸 내 마음을 빼앗아간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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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폰다에게 별다른 관심은 없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할리우드 최고 배우였던 그가 기후변화 활동가인 그레타 툰베리에 감화해 기후 변화 전사로 거듭났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폰다는 기후 위기를 “우리 집이 불타고 있어요”라고 표현한 툰베리의 발언에서 착안해 ‘소방 대피 훈련을 하는 금요일(Fire Drill Fridays)’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금요일마다 워싱턴에서 시위를 하더니, 체포돼 끌려가면서도 빨간 코트를 입은 채 허리를 곧게 펴고 걸었다. ‘대박! 이 사람 뭐지?’ 알고 보니 젊은 시절부터 여성운동에 참여했고, 베트남 반전운동에 나섰으며 반핵운동도 벌인 활동가였다.

그런 그에게 ‘좀 튄다?’ 싶은 이력이 있는데, ‘제인 폰다의 워크아웃’이라는 비디오가 큰 인기를 끌면서 1980년대 초 피트니스계의 선두주자였다는 것이다. “여성은 땀을 흘려서는 안된다고 여겨졌던” 그 시절 폰다는 직접 운동 강사로 뛰었고, 레오타드를 입은 채 운동 방법을 알려주는 비디오에 출연했다.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이 아닌 정말 ‘근육’을 위한 운동 말이다. 그는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말했다. “토머스 제퍼슨이 그랬잖아요. 혁명은 근육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그렇다. 여자는 근육이다. 이는 최근 경향신문이 사회적 기업 ‘위밋업스포츠’와 함께 만드는 콘텐츠 ‘언니네 체육관’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언니들’의 운동 목적이 남이 보기에 아름다운 몸, 마른 몸이 아닌 온전히 나의 건강과 체력을 위한 ‘근육’이라는 점에 100% 동의한다.

운동하는 삶을 살았고, 여전히 운동을 사랑하는 선수들이 운동하는 것을 망설이는 여성들에게 몸을 쓰며 땀 흘리는 행복에 대해 말한다. “여자는 근육! 운동합시다.” 배동미 기자

1980년대도 아닌데 아직 여자가 마음껏 운동하기엔 장애물이 많다. 잉글랜드스포츠협회는 2015년 여성 누구라도 운동을 할 수 있다는 ‘디스 걸 캔(This Girl Can)’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이 프로젝트의 조사 결과 여성 대다수가 ‘신체 활동’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로 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꼽았다고 한다. 여자가 운동을 하면 어떻게 보일까, 잘하지 못하면 어떻게 보일까라는 두려움. 양민영 작가는 <운동하는 여자>에서 “여성은 운동을 배우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법까지 함께 익힌다”고 했다. 역도를 배울 때 양 무릎의 방향이 바깥을 향하도록 벌리는 것이 어려웠으며 평영을 배울 때 여성이 뒤따라 와야 안심이 됐다는 예를 소개했다.

여성의 몸을 여전히 보여주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시선도 있다. 폴댄스 1년 반 차로 일주일에 4번은 스튜디오에 나간다는 곽민지씨는 인터뷰에서 수업 영상을 SNS에 올렸더니 모르는 사람이 ‘스트리퍼가 되고 싶은 거냐’는 내용의 쪽지를 보냈다고 한다. 민지씨는 “몸의 움직임이 아니라 몸을 드러낸 것 자체로 이어지는 사고의 회로가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맨스플레인(mansplain)을 빼놓을 수 없다. 김혼비 작가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서 “세상에는 전 국가대표 선수를 앞에 놓고 축구의 기본기에 대해 논하려고 하는 남자들이 정말로 있다”고 했다. “혹시 선출이세요? (중략) 근데 선출들 중에 너무 멋 부리면서 축구하는 사람들이 꼭 있어요. 그냥 한 번만 꺾어도 될 건데, 왜 굳이 두 번 세 번 꺾어?” 이쯤되면 ‘설명’을 넘어 ‘참견’과 ‘무례’가 된다.

그래도 운동을 한다. 재미있으니까,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근육이 붙어가는 몸이 기특해서, 성취를 맛보려고,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한다. 아직 운동을 시작하지 못한 분이 있다면 ‘디스 걸 캔’에서 제안하는 94가지 운동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아이와 함께 운동하기’ ‘자녀 등하교’ ‘아이와 디즈니 노래 부르며 춤추기’ ‘집에서 운동하기’ ‘걷기’ ‘공원에서 운동하기’. 거창한 도구가 없어도 의지만 있다면 계속할 수 있다. 몸의 형태가 어떻든, 사이즈가 무엇이든, 능력과 배경에 상관없이 근육은 정직하니까.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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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7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선거법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영민 기자

마침내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무능, 그리고 그 무능이 어떻게 스스로와 국가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이다. 우선 가장 기초적인 사실부터 따져보자. 알다시피 정치의 영역에서 합의를 찾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합의를 이루고 있었던 아주 예외적인 사례이다. 이유가 있다. 첫째, 기존의 선거제도하에서는 많게는 50%에 가까운 투표가 사표가 되어 사라진다. 특정 지역에서 A 정당이 전체 투표의 51%를 얻었는데 의석은 100% 가져가는 일이 흔히 벌어졌다. 다른 정당과 정책을 원했던 49%의 뜻은 전혀 반영될 수 없는 구조였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선거법 개정의 한 가지 중요한 이유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유권자의 뜻은 조금이나마 더 골고루 반영되게 되었다. 그러니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개정으로 내 표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깜깜이 선거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 선동이다. 둘째, 소수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은 남의 자리까지 차지한 거대 정당이 과잉대표된다는 뜻이다. 실제 이상으로 몸집을 부풀린 거대 정당들은 정권을 차지하면 독주하고, 정권을 빼앗기면 무조건 비토한다. 일이 되도록 할 수는 없지만, 되지 않도록 할 수는 있는 비토크라시(vetocracy)로 빠져드는 것이다. 비토크라시하에서는 어떤 정책도 효과를 낼 수 없다. 정권만 바뀌면 무조건 정반대로 가니까 정책의 장기적인 일관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소수의 뜻이 반영되고 거대 정당이 원래 자기 몫의 몸집으로 돌아가면 절대 강자가 없으니 정당 간 협력이나 연정을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정책의 일관성을 되찾을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니 ‘4+1 협의체’가 민주당 2중대들과의 야합이라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은 생떼에 불과하다.

12월27일 본회의장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민주주의는 죽었다”는 손팻말을 들었다. 선거법 표결 현장에 이런 손팻말을 들고나왔다면 민주주의란 무엇이라는 그들 나름의 인식이 있고, 선거법 개정안이 그들 인식 속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훼손시킨다는 나름의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심재철 원내대표의 기자간담회 내용을 봐도, 자유한국당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지난 1년간 대변인 논평들을 읽어봐도 아무 설명이 없다. 그냥 야합이고, 꼼수이고, 좌파정권 연장하려는 속셈이고…. 한마디로 응석이다. 108석을 가진 제1야당에서 다른 것도 아닌 선거법 개정에 대해 1년 넘는 기간 동안 단 한마디 설명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은 비극이다. 하긴 설명이 있으려야 있을 수가 없다. 앞에 말했듯이 기존 선거법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거의 완벽한 합의가 있는 영역이어서 반대 논리를 개발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럼 왜 반대하는 걸까. 전희경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답을 준다. 자유한국당 의석수가 줄어들어서 반대하는 건 아니라며 말을 뗀 그는 잠시 후 새로운 선거법에 따르면 자유한국당이 영원한 2등, 3등 정당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느닷없는 고백을 내놓는다. 유권자의 뜻을 강탈하는 기존의 제도가 없다면 영원히 1등이 될 자신이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이에 비하면 같은 당 유민봉 의원의 필리버스터는 훨씬 들을 가치가 있었다. 행정학자 출신답게 그는 ‘제도적 정합성(institutional complementarities)’을 들고나왔다. 하나의 제도는 다른 여러 제도와 서로 엮여있는데, 이들 간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하나만 바꾸면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선거법 개정의 대의와 방향성에 대해 합의가 있다 하더라도 막상 현실에 적용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세심하게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그의 문제제기는 백번 옳다. 그는 선거법과 함께 바뀌어야 할 ‘패키지 부품’ 세 가지를 들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의원내각제 혹은 그에 준하는 대통령 권한의 분산이다. 맞는 말이지만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되었을 때 자유한국당은 무턱대고 사회주의 개헌이라며 논의하는 것조차 거부했던 것을 생각하면 만시지탄이다.

그들이 뭐라 말하든, 국회에서의 논의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장외투쟁으로만 일관했던 자유한국당은 이번에 철저한 무능을 드러냈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 결과는 그들에게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에도 재앙이다. 개정 선거법에 허점이 있을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걸 점검하고 고치고 방향을 돌리는 게 제1야당이 했어야 할 일이다. 끝으로 비례정당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를 권한다. 다른 당은 하지 않고 자유한국당만 비례정당을 창당할 경우가 그들에게는 최악이다. 혼자서만 응징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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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세워진다. 국회는 30일 본회의를 열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오른 공수처 설치법안을 통과시켰다. 자유한국당은 물리력으로 회의를 막으려 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공수처 설치는 권력기관의 민주화라는 국민명령 1호가 입법으로 실현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세계 유례가 없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검찰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견제 기관이 헌정 사상 처음 탄생한 것이다.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에 이어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깬 또 한 번의 진전이다.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발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공수처의 수사대상은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 대통령 친·인척,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 등 7000명 정도이다. 판검사와 경찰은 직접 기소도 한다. 공수처장 추천은 위원 7명(야당 몫 2명) 중 6명의 찬성으로 해 야당의 견제를 강화했다. 청와대의 수사 개입 방지 조항도 추가했다. 공수처 검사의 범죄에 대해서는 검찰이 수사하도록 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공수처 설치법안이 원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보수야당과 언론에서 ‘슈퍼 공수처’ ‘게슈타포’ 운운하며 반발한 건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검찰개혁은 검찰의 중립성을 확보하고,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제한하고 민주적 통제하에 검찰을 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공수처 설치는 이러한 검찰개혁의 핵심이다. 검찰 권한을 분산시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문제는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 사회가 공감해온 과제였다. 여기엔 여야가 다를 수 없다. 이명박 정부 때도 당시 정권의 핵심인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공수처법을 발의했고, 지금 한국당 원내대표인 심재철 의원 등이 동참한 바 있다. 공수처와 비슷한 홍콩의 염정공서(廉政公署), 싱가포르 탐오조사국(貪汚調査局)은 공직자 비위 근절과 함께 국가적 반부패 분위기 조성에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수처 설치는 ‘정치검찰’을 ‘국민의 검찰’로 돌려놓기 위한 형사사법제도의 중대한 진전이다. ‘검찰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을 일대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검찰개혁은 이제 첫발을 뗐을 뿐이다. 어렵게 여기까지 왔지만, 법제화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권력기관의 낡은 관행과 잘못된 관습을 시대정신에 맞게 끊임없이 혁신해야 완성되는 일이다. 검찰도 공수처 신설을 계기로 뼈를 깎는 각오로 내부 개혁에 나서길 바란다. 남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조속히 처리되어야 한다. 공수처는 새해 7월쯤 출범 예정이다. 앞으로 공수처와 검경 간 갈등을 조율하고,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등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추미애 법무장관 후보자는 이날 인사청문회에서 “후속 조치를 신속히 완료해 개혁 법안이 실효성 있게 시행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권력기관 개혁의 대미를 장식할 그의 책무가 막중하다. 법안 통과는 검찰개혁의 종착점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점이라는 자세로 만반의 준비가 뒤따라야 한다. 공수처가 고위공직자도 시민과 똑같이 죄를 지으면 처벌받는 ‘공정수사처’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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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취임 후 세번째로 대상자는 모두 5174명이다. 사상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 1879명이 사면·복권 대상에 포함됐다. 종교·양심의 자유, 국민 인권이 한층 더 확대됐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9년 만에 선거사범 267명도 복권됐다. 청와대와 정부는 “여야 차등 없이 ‘2010년 이전 선거사범’이라는 기준에 따라 공정하고 균형 있는 사면권을 행사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총선을 몇 달 앞둔 시점에 여권 실세인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포함된 여야 정치인들을 복권시킨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특별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형 집행을 면제하거나 유죄 효력을 상실시키는 ‘통치행위’다. 반면 사법적 절차와 판결을 무시함으로써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사면권은 절제되어야 하고 국민 모두 수긍하는 방향으로 행사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도 ‘정치·경제인 배제 원칙’을 지켜왔다. 지금까지 사면된 정치인은 정봉주 전 의원뿐이고, 줄곧 거명돼온 한명숙 전 국무총리 등이 이번 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이 전 지사와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신지호·공성진 전 한나라당 의원 등 정치인들이 복권됐다. 청와대는 “동종선거 2회 이상 불이익을 받은 선거사범을 대상으로 문턱을 높였다”고 했으나, 엄격하고 절제된 사면 제한 원칙을 원했던 국민 눈높이에는 턱없이 부족함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특사가 ‘대립과 갈등의 극복’ ‘소통과 화합의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세월호·밀양송전탑·제주 해군기지 사건 등 관련자 18명이 사면·복권된 것도 그런 취지일 것이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복권 역시 마찬가지다. 전체 특사 대상자의 95%는 일반 시민이다. 운전·어업 면허의 취소·정지 등 불이익을 받던 171만여명도 특별감면 조치됐다. 정치인이 포함되면서 특사 취지가 퇴색됐으나, ‘중대 부패범죄자 사면권 제한’ 원칙이 어느 정도 지켜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사회적 갈등 해소와 통합에 방점이 찍힌 이번 사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타협과 상생을 통해 한 걸음 더 성숙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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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발표한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12월 기준 민주노총의 조합원은 97만명으로 한국노총보다 3만명이 많았다. 전년도만 해도 16만명이 적었지만, 한 해 만에 추월했다. 정부 통계는 민주노총이 명실상부한 제1노총 지위에 올랐음을 말해준다. 

30일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제1노총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임무로 노조 조직률 확대, 사회 불평등·양극화 해소를 꼽았다.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1.8%다. 2000년 이후 최고치라고 하지만, 60%대의 북유럽 국가에는 턱없이 못 미치고 일본·싱가포르와 비교해도 절반 수준이다. 대다수 노동자가 노동권 사각지대에 있는 현실에서 노조 조직률은 지속적으로 제고돼야 한다. 영세 사업장의 조직률을 높이는 일은 노동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시급한 과제다. 현재 300인 이상 기업은 조직률이 50.6%지만, 100인 미만 사업장은 2%대에 불과하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지난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출범한 이후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줄곧 불참해 왔다. 물론 주 52시간제 유예, 탄력근로제 연장 등에서 보듯이 가이드라인을 정한 채 대화를 하자는 정부의 자세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노동문제를 투쟁 일변도로 풀어갈 수는 없다. 민주노총이 배제된 경사노위는 유명무실했다. 제1노총이 된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경사노위는 더욱 의미가 없다. 꼭 경사노위가 아니어도 된다. 정부와 민주노총은 지금부터라도 다각적인 사회적 대화 틀을 만들어야 한다.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보장, 위험의 외주화 근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 52시간제 정착 등 노동계의 현안은 넘쳐난다. 내년은 민주노총 25주년이면서 문재인 정부의 후반기를 맞는 해다. 제1노총이 된 민주노총의 행보는 달라진 위상에 걸맞게 유연하면서도 생산적이어야 한다. 정부 역시 민주노총을 대화 파트너로 끌어들이려는 정책적인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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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약간의 오해를 담은 한 기사에서 비롯되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이미 같은 서울 서대문구 가좌동에 여러 채의 청년주택을 마련하여 공급해온 터였다. 서울, 부천, 전주에 걸쳐 총 12채의 주택을 마련하였고, 154명의 조합원에게 안정된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연희동에 있는 빈집을 재건축하면 13번째 주택이 생기고 수십명의 청년에게 고시원 같은 열악한 거처를 벗어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한 언론에 기사가 하나 실렸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서 성소수자도 배제되지 않는 주택이 성소수자를 위한 주택으로 소개되었다. 그렇더라도 무엇이 문제인가? 이미 옆 동네 망원동에는 ‘무지개집’ 사례도 있다. 하지만 ‘성소수자가 입주한다’는 보도를 계기로 인근 주민들이 구청과 의회에 집단민원을 넣었다. “성소수자를 위해 분양한다는 그 집은 50m도 안되는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는 어린이 보호구역이다” “동성애가 합법화되지 않은 나라에서 남남 커플이 껴안고 돌아다니는 걸 뭐라고 교육할 것이냐” “초등학교 옆이든 아니든 퀴어하우스 자체를 반대한다”며 차별과 혐오가 난무했다. 

적법하게 지어지는 주택의 건축을 막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런데 분쟁을 해소하고 오기 전에는 허가를 할 수 없다고 뒷짐을 진다. 건축허가의 권한은 구청에 있다. 연희동의 주택사업은 서울시 공공사업의 일환이다. 서울시가 빈집을 구입하고 그 부지를 사회주택 사업자에게 빌려주는 토지임대부 사업이다. 서울시의 사업이니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주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구청의 협조가 없으면 뾰족한 수가 없다. 오히려 사업을 추진한 담당자는 왜 쓸데없는 오해를 만들어 곤혹스럽게 하냐는 심정일지도 모른다.

반대 주민들에게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자고 청했지만 할 말이 없다며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 간신히 통화를 하여 청년들을 위한 주택이라고 설명을 하니, 청년주택도 허용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공공주택을 반대하는 흔한 레퍼토리이다. 청년이 많아지면 동네가 시끄러워진다고 난리이다. “청년들이 내 아이를 폭행하면 당신들이 책임질 거냐?”며 공공주택 사업자를 몰아붙이는 어처구니없는 생떼가 통하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성동구에 건설될 예정이었던 청년기숙사가 이런 민원에 막혀 백지화되었다. 성북구에서는 집값 떨어진다고 호들갑을 떨어 대학생기숙사의 건설을 막아서고 있고, 양천구, 성남시, 부산시 등 여러 지역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반대 민원이 일어 행복주택의 건설이 난항을 거듭하거나 취소되고 있다. 구의원, 시의원들이 발 벗고 나서 공공주택 반대에 동참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억지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소송을 걸 수도 있다. 실제로 영리 목적의 개발사업을 할 때는 법원판결을 받아 사업 지체에 따른 손해배상까지 받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사업비용을 최대한 줄여 질 좋은 저렴한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 처지의 비영리 사회주택 사업자가 빠듯한 예산을 쪼개어 소송을 진행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행정의 적극적인 문제해결 의지가 없으면 사회주택이나 공공주택 사업은 대부분 지체되고 중단될 수밖에 없다.

공공주택과 사회주택에 대한 억지스러운 반대의 이유는, 얘기를 듣다 보면, 결국 집값 하락에 대한 걱정이다. 그런데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공공주택이나 사회주택이 들어서면 주거환경이 좋아져서 오히려 주변 집값이 오르는 경우도 많다. 주택정책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엄청나게 많은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지 않는 한 주변 주택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 집값 하락이 걱정스러워 공공주택이나 사회주택을 반대하는 건 근본적으로 사회통합에 반하는 집단 이기주의일 뿐만 아니라 기우이거나 허구에 가까운 것이고 사실상 자기 이익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연희동에서 어처구니없는 반대에 직면한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은 계속해서 주민들을 설득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얼마 전 구청에 건축허가신청서를 접수하였다. 부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결과가 나오기를 희망한다.

<강세진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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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정리에 들어간 지 한 달째다. 목표는 예닐곱 평 방 하나에 들어갈 만큼만 남기고 버리는 것. 언제든 어디로든 끌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단출해지면 더욱 좋고. 그런데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짐가방은 몇 개나 될까. 오래전 중국 보따리상들 쫓아다닐 때나, 식당에 필요한 물품들을 스페인에서 사다 나를 적에, 메고 지고 끌고 다니던 게 최대 다섯 개였으니, 여기저기 처박아둔 트렁크를 찾아보니 마침 다섯 개가 나왔으니, 그래 가방 다섯 개의 짐만 가지고 살아보자 싶었다. 물론 어림 반 푼어치도 안되는 계산이었다. 그리하여 여하튼 목표는 방 하나. 챙긴 짐만큼 공간은 좁아질 것이고, 버린 짐만큼 몸이 가벼워질 것이니. 반드시 달성하고야 말겠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한쪽 베란다를 차지하고 있는 식물들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가장 쉬운 일이었다. 나름 보듬고 어여뻐하며 정성을 들인 화초들이었지만,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애정을 쏟으며 키워줄 이를 찾았으므로. 받는 입장에서는 선물 같기도 했는지, 몇 차례 오르락내리락 화분들을 다 옮기고 난 후, 저녁으로 양갈비를 사줬다. 화초를 넘기고 양고기 포식이라니. 어쩐지 크게 남는 장사를 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쩐지 자식 팔아먹은 부모가 된 기분이기도 했지만, 부잣집에다 너그럽고 나긋한 양부모까지 만났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 위안을 삼았다.

다음은 옷, 가방, 신발 따위들. 가방이야 언제부턴가 두 손 자유로운 백팩과 가볍고 실용적인 에코백만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그저 버리지 못해 옷장 속에 처박아두었던 것들은 미련 없이 싸잡아 수거함으로 직행. 그중에 쓸 만한 것은 친구에게 주었는데, 이번엔 점심으로 살치살 스테이크를 얻어먹었으니, 짐을 줄이는 과정이 이토록 즐겁고 유익할 줄이야, 그 맛에 탄력받아 신발은 계절별로 한두 개만 남겨두고 버렸다. 신고 나가면 꼭 손에 들고 들어오게 되는 구두는 과감히 치워버리고, 격식을 갖추어야 할 때를 대비해 편한 걸로 하나만 남겨두었다. 신발은 손에 들라고 있는 게 아니라 신으라고 있는 거니까. 그런데 십센티 하이힐은 언제 신고 다녔던 건지. 제대로 걷기나 했었는지. 어쨌거나 신던 구두로는 엿도 못 바꿔 먹었지만, 그래도 한때 아찔한 하이힐에 망사스타킹을 신었던 시절을 추억하며 잠시 달달했다. 의류는 그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렸는데, 폐기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의 보류를 거쳐야만 했기 때문이다. 감이 좋은 코트여서, 거의 새거나 다름없는 가죽치마여서, 살이 빠져서 입으면 좀 멋져 보일 원피스여서, 낡았지만 자주 입게 되는 셔츠여서…. 그중엔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 아버지가 선물해준 겨울코트도 있었다. 무려 이십년 전이다. 그래도 일단 보류. 너를 올해의 코트로 정했다. 올겨울 검은 코트를 입은 나를 만나거든, 딸내미 소설가 되었다고 동네에 떡을 돌렸던 아버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백화점에 데려가 사준 바로 그 코트라고 알아봐주길.

주방용품들은 식당 정리할 때 한번 처분을 한 터라 손쉽게 끝냈다. 하지만 자잘한 주방가전제품들이 어찌나 많은지. 밥솥은 없으면서 각종 믹서기에 우유거품기에 전동 글라인더에 커피머신은 물론이고 로스팅기까지. 한 사람 먹고사는 데 이렇게 많은 기계가 과연 필요했을까 혀를 차며 치웠다. 그 밖에 온갖 예쁘지만 쓸모는 없는 장식품들은 좋아할 만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잘 닦아 포장해두었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정리전문가 여자의 말을 참조하지 않아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책에 손을 대기 전까지는 그랬다.

거실을 서재로 쓰는 걸로 모자라 방 두 개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책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저자 사인본이어서, 미처 다 읽지 못해서, 감명 깊게 읽어서, 한번쯤 뽑아 볼 수도 있어서, 언젠가는 다시 읽고 싶어서, 좋아하는 작가라서,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하지만 방 하나에 책이 차지할 수 있는 최대치는 벽면 하나. 남길 수 있는 양보다 버려야만 하는 양이 훨씬 많았으므로, 꼭 남겨두고 싶은 책들부터 골라 차례차례 옮기기로 했다. 한쪽 벽이 채워지면 그걸로 끝이다. 그곳으로 가지 못한 책은 한두 페이지만이라도 읽고 버리자 했다. 그건 정말이지 최악의 전술이었다. 식욕이 가장 왕성할 때는 밥을 먹고 있을 때니까.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독서욕은 더욱 왕성해지니까. 양고기니 스테이크니 어떤 육즙도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한 달. 지금까지 반의 반도 처리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시간도 딱 한 달. 이때 하필 손에 잡힌 책이 김연수 작가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였고,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라는 제목을 보자, 그 끝에 뭐가 있으려나 소설과 상관없이 아득해지면서, 갑자기 허기가 몰려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책 정리는 잠시 중단하고 냉장고 정리나 먼저 하자며 부엌으로 가서는, 저 구석에서 마른 북어를 하나 찾아내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보풀이 될 때까지 두들기고 두들겼다. 북어보풀무침을 언제 마지막으로 했었나 생각하면서.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북어보풀무침을 왜 지금 만들고 있나 궁금해하면서.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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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 99냐, 20 대 80이냐의 논의와 관련해서 20 대 80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20 대 60 대 20의 사회이다. 밑에 있는 20%는 지금의 상황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기 어렵고, 중간의 60%는 추락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사회가 되었다.

유일한 해법은 ‘계층 상승의 사다리’라는 허구를 버리고, 든든한 마룻바닥을 까는 것이다. 기본소득, 기본주거 같은 과감한 해법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은 더 이상 불가능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기초연금, 아동수당, 청년배당, 농민수당 등 대한민국에서도 현금으로 지급되는 급여가 늘어나고 있다. 좀 더 큰 시각으로 정책을 설계하면, 기본소득은 충분히 가능하다. 쓸데없이 도로 닦고, 건물 짓고, 전시성 사업에 쓰는 예산 낭비만 줄여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지금 7% 수준인 공공임대주택을 20%대로 늘리고, 다주택 소유자들이 주택을 처분하도록 직접규제를 가하면 모두에게 인간다운 주거를 보장하는 ‘기본주거’ 정책도 가능하다.

문제는 정치다. 정치의 역할은 자원을 배분하는 것인데, 대한민국의 정치는 가진 쪽에 유리하게 자원배분을 한다. 2020년 예산에서도 가난한 노인들에게 월 10만원의 생계비를 추가 지원하는 예산은 막판에 삭감되었지만, 토건 예산은 대폭 늘어났다.

이런 정치를 바꾸기 위해 지난해부터 선거제도 개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어왔고, 지난 27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바꿔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지금과 같은 승자독식의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이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는 과잉대표되고, 여성, 청년, 소수자와 약자들의 목소리는 과소대표되는 것이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특징이다. 그러니 사회는 더 나빠진다.

그리고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는 정치행태를 왜곡시켰다. ‘승자’가 되기 위해 상대방의 발목만 잡는 정치를 만든다. 이렇게 되면 정책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정당·정치인은 어리석은 존재가 된다. 

그러니 치솟는 집값, 땅값, 주거비용에 대해 제대로 된 대안 한번 국회에서 논의된 적이 없다. 국회가 무능하니 정책을 만드는 역할은 정부 관료들에게 맡겨진다. 그러나 우리 사회 ‘기득권 중의 기득권’인 중앙부처 관료들이 누구의 편에서 일을 하겠는가?

그래서 선거제도 개혁이 중요했다.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정치를 바꿀 답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통과된 선거법은 본래 의도했던 것과는 상당히 멀어진 누더기 법안이 되어 버렸다. 독일, 뉴질랜드에서 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지금 도입된 것은 40~50점짜리 제도이다. 이 제도로는 승자독식의 구조를 바꾸기에는 미흡하다.

그래서 2020년이 중요하다. 그래도 불완전하지만, 이번에 만들어진 기회를 활용해서 대한민국이라는 배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작은 변화가 아니라 대전환이다. 승자독식이 지배하는 사회를 바꾸려면, 크게 바꿔야 한다.

그런 얘기가 나와야 하는 공간이 바로 내년 4월15일 치러질 총선이다. 가장 먼저 필요한 얘기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조직의 역할을 다시 부여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있는 이상 대한민국은 도로, 공항, 철도 건설에 매년 10조원 이상의 국민 세금을 쏟아붓는 토건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국토교통부를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세금낭비와 환경파괴를 없애는 길이다. 기획재정부 같은 부처도 대폭 축소해야 한다. IMF 외환위기부터 부동산 정책실패, 심각한 불평등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경제관료들의 책임이 너무나 크다. 그런데 이들은 한 번도 책임을 진 적이 없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인류 최대의 위기인 기후위기에 대응할 대전환을 총괄할 ‘전환부’이다.

교육에 도움이 안되는 교육부도 해체 수준으로 개혁해야 한다. 여성가족부는 성평등부로 이름을 바꾸고, 사회분야 정책 전반에 성평등의 관점이 실현될 수 있도록 성평등부 장관이 부총리를 맡는 것이 필요하다. 규제개혁위원회 같은 기구도 없애야 한다. 시민안전, 환경, 인권을 위해 필요한 규제를 못하는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정부조직의 대개혁과 함께 512조원이 넘는 국가예산의 대개혁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토건사업에는 단 1원의 세금도 못 쓰게 만들어야 한다. 관료와 정치인들이 자의적으로 주무르는 예산을 없애야 한다. 탈세, 특혜성 세감면도 없애야 한다. 그렇게 마련한 재원을 모두에게 든든한 마룻바닥을 까는 데 써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전환을 추진하는 데에도 세금을 써야 한다. 에너지, 산업, 교통, 농업·먹거리, 폐기물 등 모든 분야에서 대전환이 필요하고, 여기에 돈을 써야 일자리도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런 얘기들이 나와야 하는 공간이 2020년 총선이다. 불충분하지만, 이번에 바뀐 선거제도는 그런 얘기들이 가능한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었다. 이제 공은 정당들과 유권자들에게 넘어갔다.

평론보다는 실천이 중요할 것이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고, 변화는 희망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부디 2020년이 희망을 만드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하며, 마지막 칼럼을 마무리한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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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세계는 광물자원 전쟁 중이다. 지난 세기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원료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자원 확보 전쟁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지금껏 우리는 화석원료를 소비하면서 산업과 사회를 성장시켜 왔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들은 환경오염 및 기후변화와 연결되어 이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세계 각국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등 그린에너지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저유가 속에서도 2차전지, 전기차,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등에 이르는 그린에너지 관련 시장의 성장기조는 견고하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넘어설 대표적인 고성장 신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미래에셋대우증권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규모는 지난해 15조1000억원에서 올해 25조원으로 1년 만에 약 60% 성장했고, 2023년에는 95조8000억원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부터 신기후체제가 가동되고 그린에너지 산업에서의 신기술 발달과 규모의 경제가 지금의 추세대로 가속된다면 탈화석시대는 더욱 빨리 실현될 것이다.

이러한 노력과 관련해 광물자원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더욱 커지고 있다. 노후 전력망의 현대화와 자동차 경량화 등 에너지 소비효율 제고 과정에서 구리와 알루미늄 등 주요 광물의 수요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와 드론 등 수송 부문에서 전개되고 있는 전동화도 전력 인프라 확충이 필요해 구리 수요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종합상사들은 구리 수요의 꾸준한 확대를 예상하고 구리광산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 구리 매장량 1위인 칠레의 주요 구리광산 지분 약 35%가 일본 기업 소유다.

한국 기업도 뛰고 있다. 국내 1위의 특수강 전문 기업인 세아베스틸은 지난 10월 글로벌 알루미늄 업체 알코닉의 한국법인 알코닉코리아 지분 100%를 인수했다. 알코닉코리아는 항공, 자동차, 방산 등에 사용되는 고강도 알루미늄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정부 방침에 따라 보유하고 있는 세계 10위권 구리광산 업체 코브레파나마의 지분 10%의 전량 매각에 나서고 있다. 이 광산의 구리 매장량은 21억4000만t으로 추정된다. 2012년 광물공사와 LS니꼬동제련이 한국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분 20%를 인수했고 2017년 LS니꼬동제련은 보유 지분 10%를 운영사인 FQM에 매각했다. 현재 광물공사는 매각을 진행하고 있지만 예정가격에 못 미치는 금액을 제시하는 바람에 유찰된 상태다. 그런데 지분을 매각한 LS니꼬동제련이 지난 10월 말 광산 운영사인 FQM과 구리 180만t 구매계약을 맺었다. 거래기간은 15년으로 내년부터 매년 12만t의 구리정광을 코브레파나마 광산에서 공급받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공기업은 정부 방침에 따라 지분을 팔고 민간 기업은 원료를 사는 형국이다.

자원개발은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며 단순히 금전관계만으로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자원이 많은 국가와 오랫동안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고 네트워크를 구축해야만 가능하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의 성과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라도 자원개발은 반드시 필요한 국가적 사업이다.

<강천구 | 인하대 초빙교수 에너지자원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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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유엔의 환경과 개발을 위한 세계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 ‘우리 공동의 미래’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이란 말이 처음 사용되었다. 늘어나는 인구와 에너지 사용 때문에 환경에 부담을 많이 주기 시작한 시점에 뭔가 절묘한 해법을 제시한 것 같은 이 말의 인기는 대단했다. 신문, 방송, 잡지를 가리지 않고 해설이 잇달았고 너도나도 설명과 방안을 내놓았다. 나도, 덩달아 잘난 체하면서 세미나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 말을 곧잘 인용했다. 세상을 사는 방법을 뿌리부터 바꾸겠다는 결심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타협안이었다.

고백하자면, 처음부터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말이 가진 형용모순이 껄끄러웠다. 변화를 필수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는 개발 앞에 변화에 거스르는 형용사가 붙은 말은 궁여지책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리법칙으로 따져보면, 세상에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에 있던가?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질서도가 높아지면서 흩어진다. 태양도 식고 지구도 모양을 바꾼다. 바깥에서 에너지를 끌어들여 그 흐름을 이용해서 엔트로피의 법칙을 거스르며 겨우 몸 안의 질서를 유지하는 생명체의 수명은 100년을 넘는 것이 흔치 않다. 그나마 생명의 절정을 구가하는 시간은 훨씬 더 짧고 주름을 지우며 가는 세월을 잡으려는 노력도 헛된 수고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지구적 규모에서 지금의 상태를 지속하면서 개발을 한다는 말은 얼마나 허망한가?

우리는 알고 있다. 세상에 영원히 지속 가능한 것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관에 따르면 빅뱅에서 시작한 우주가 팽창하면서 서서히 식고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라서 그런 시간을 숫자로는 알지만 상상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세례를 받은 나는,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우주는 이렇게 무정하고 차가운 공간일 것이다. 그 속에 정 붙일 따스한 구석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사랑’에 목을 맨다.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지만, 맹세하고, 드레스 입고, 반지 끼고 영원을 꿈꾼다. 우리는 ‘사랑’을 믿을 수 없지만 믿기로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나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말이, 혹은 믿음이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것 중에 하나는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용사가 붙은 말이 늘 그렇듯, ‘사랑’만큼 순수하지 않고 무언가를 가리는 속내가 있어 여전히 불편하다. ‘사랑’은 조건을 따지지 않지만 개발은 현재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해서 기득권을 쥐고 있는 이들이 계속 이익을 보는 구조를 유지하자는 것은 아닐까? 이미 개발을 성취한 서구의 기득권, 자리 잡은 거대 자본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다 보니, 앞으로의 개발을 꿈꾸던 이들은 동의할 수 없고 분쟁은 커지고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살얼음판 같은 균형을 깨지 않고, 가능한 수준의 합의를 이루기 위한 노력들이 트럼프의 미국과 같은 입장들 때문에 깨지는 것을 보면서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거짓말을 믿기로 했던 결심을 계속 지킬 것인지 고민이 깊다.

트럼프가 옳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한다고 지금 이룬 수준의 삶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차라리, 눈앞의 사소한 이익이라도 챙기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하나 명백한 것은, 지금의 추세대로 인구가 늘어나고 개발이 계속되면 빠른 시간 안에 우리가 싼 똥에 스스로 파묻혀 버릴 것이다. 파국은 극단적인 기후변화로 다가올 수도 있고 오염된 환경 속에서 겪게 될 질병의 형태로 맞이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모든 결과들을 보기 전에 엉뚱하게 다가온 소행성의 충돌 같은 무심한 우주의 운동이 우리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분리수거를 하고, 일회용품도 덜 쓰는 소시민들의 실천이 실제로 지구의 기후변화를 멈추고 파국을 늦출 수 있는지는 나도 믿기지 않지만, 그들의 믿음이 희망이다.

탄소발자국을 줄이겠다고 채식을 시작한 내 친구도, 비행기를 타지 않는 툰베리도 그것으로 지구를, 미래 세대를 구원할 것이라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믿는 것은 믿기지 않는 것을 믿고, 행동에 옮기는 인간의 태도라고 보아야 할 텐데, 이 위대한 태도가 지금의 인간이 누리는 모든 것을 만들었고, 그 결과로 일어난 파국도 늦출 것이다. 2020년 6월, P4G(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정상회의와 함께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은 ‘믿지 않지만, 믿는 것’을 다룰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낸 성취와 이루어낼 미래를 그려보려고 한다.

<주일우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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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그간 민주주의 이론은 보완되고 수정되어왔지만, 현실 반영은 묘연하다. 몇 차례의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지방자치는 아직도 낮은 수준에서 시행되고 있다. 정치가 내 삶에 변화를 주고 있다는 인식은 늘었지만,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일도 요원하다. 나는 정치권에서 주로 정책·선거조사를 담당했었는데, 정치가 국민을 대표해야 한다는 명제를 금과옥조처럼 여겼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였다. 내 머리엔 어떻게 하면 정치가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서가 없었다. 국민과 정치, 그 중간에 존재하는 넓은 공간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에 관한 문제의식조차 깊지 않았다. 엉킨 실타래를 풀다 지치면, 여론에 편승하거나 푸념하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국민만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겠다’라는 말이 좋은 정치인의 신념처럼 들리기보다는 실타래를 꼬이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앞선다. 그 말이 어디 틀린 말이겠는가. 그런데 그 말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과 정치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면, 둘 사이엔 수많은 조절변수가 존재할 것이다. 조절변수는 국민과 정치 사이를 가깝게 하거나 멀게도 할 수 있다. 국민과 정치의 거리를 좁힐 조절변수는 무엇이 있을까. 올 한 해를 되돌아보면 ‘포용’이 아닐까 싶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 사람은 1600년대 기독교인이었고, 또 한 사람은 2000년대 불교 신자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포용이 사회개혁에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통찰한다. 16세기 유럽은 종교개혁의 열풍이 휩쓸었다. 구교와 신교는 서로 자신에게 정통성이 있다고 싸웠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존 로크는 저서 <관용에 관한 편지>를 통해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자신은 정통이고 상대는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소모적인 싸움이라고 주장하며, 교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준을 제시했는데, 포용이 그것이었다. 포용이야말로 참된 교회를 구별하는 가장 분명한 기준이라고 했다. 로크는 권력이 종교에 기초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며,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았던 시기에 종교를 사적 영역에 놓고자 했다. 로크는 국가의 힘은 국민의 지지에 기초한다고 보았고, 포용을 통한 개혁으로 통합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법륜 스님 역시 <쟁점을 파하다>에서 사회적 대립이 대한민국의 위기를 초래한다고 봤다. 인도불교는 습합, 즉 서로 다른 교리나 학설을 절충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종교에 배타적이지 않다. 타파의 성전, 교리라도 의미와 정당성을 용인하는 흐름이 있다. 불교는 토착 종교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이다. 포용에서 한 걸음 나아가, 통합이 시대 과제라고 이야기한다. 국민통합이 우선되어야 남북 간 갈등을 해소하고 통일을 할 수 있으며, 동아시아 각국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언급한다.

이틀이 지나면 2020년 새해다. 정치와 국민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선, 포용하고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 보인다. 적폐가 처음부터 적폐였겠는가. 당시 문화와 제도의 결과물 중 일부가 기대하지 않은 곳에 쌓이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외면하다 결국, 오늘날 문제가 된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적폐의 공범일 수 있다. 적폐는 고도성장의 미필적 고의에 의해 남겨진 문제들, 빈부격차, 세대갈등, 지역갈등, 안전불감증, 환경파괴 등을 낳았기 때문이다. 정권을 구별하지 않고 지금도 쌓이고 있다. 범죄는 처벌하면 되지만, 적폐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할 수 있다. 적폐가 심각한 사회갈등으로 등장했다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깨졌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포용하고 통합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내년에 가장 필요한 일은 정치, 언론, 사법, 노동, 의료, 교육, 복지, 환경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행동강령, 새로운 사회계약을 써 내려가는 일일 것이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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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우유니의 소금사막은 4년 전 남미여행을 떠날 때 가장 기대했던 곳 중 하나였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봤던 파란 하늘, 흰 구름이 데칼코마니처럼 고스란히 물 위에 반사된 장면은, 천국이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싶을 만큼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했다.

수도 라파스에서 출발하는 밤 버스를 타고 우유니에 새벽 5시30분쯤 도착했다. 그 작은 도시에 한국인들이 바글바글했다. 보통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거나 그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액티비티가 정말 재밌거나 하면, 그곳은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우유니는 특유의 몽환적인 풍경과 함께, 일종의 액티비티 경지에 오른 ‘인생샷 건지기’ 덕분에 한국인이 가장 꿈꾸는 여행지 중 하나가 됐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아주 먼 옛날 바다가 지각변동으로 솟아오른 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건조한 기후로 인해 물은 모두 증발하고 소금 결정만 남아 형성된 것이다. 우기인 12~3월에는 20~30㎝의 물이 고여 얕은 호수가 만들어지는데, 이 물이 거울처럼 투명하게 반사되면서 하늘과 땅이 일체를 이뤄 장관이 연출된다. 그 신비로운 풍경 한가운데 서 있는 나의 모습을 반드시 사진으로 박제하고 말리라, 전의를 불태웠다.

하지만 계획은 우유니에 도착한 순간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12월 우기였는데도 비가 거의 오지 않아 하늘과 뭉게구름을 반사시켜줄 물(!)이 없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사방은 온통 쩍쩍 갈라진 메마른 소금밭뿐. 볼리비아에 점점 가뭄이 잦아지면서 소금사막에 물이 부족해지고 있다더니 사실인 것 같았다. 

그래서 소금사막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투어 가이드의 능력 여부는 넓디넓은 소금사막 에서 물이 있는 곳을 얼마나 잘 찾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누가 장소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 사진을 잘 찍어준다더라’ 하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 한국인 여행자들이 그 가이드와 투어를 떠나려고 줄서서 대기하기도 한다.

우리 팀의 가이드는 소금사막의 뜨거운 직사광선과 거친 바람 탓에 얼굴에 일찍 노화가 와서 서른세 살인데도 쉰이 다 돼 보였다. 작은 인형 소품을 들고 와서 이런저런 착시 사진도 열심히 찍어주고, 풍경이 예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도 해줬다. 하지만 그게 내 눈에 찰 리 없었다.

남미여행을 결심한 가장 큰 동기가 우유니 소금사막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기대에 미치지 못한 곳이 됐다. 큰맘 먹고 한번 오기도 어려울 이곳에서의 소중한 기회를 그렇게 날린 것이 너무 아깝고도 아쉬워서, 그 후로 나는 누군가 우유니 소금사막 얘기만 꺼내면 속으로 혼자 쓴웃음을 삼켰다.

그런데 여정의 마지막 도시였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1만시간 동안의 남미>(플럼북스)란 책을 우연히 집어들었다가, 그 책의 저자가 우유니를 묘사한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우유니’를 원망했던 것이 갑자기 미안해졌다.

“소금사막이 만들어지는 1억년 동안 공룡이 사라졌으며, 인류가 생겨났다. 나는 허무함 뒤로 밀려드는 억겁의 인연을 생각했다. 소금사막을 만나기 위해 박민우라는 인간은 서른세 살을 못 견디고 한국을 떠났으며 이 땅은 꾸준히 바다를 벗어나 땅으로 땅으로 솟구쳤다.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지프가 뒤집히지도 않았다. 변심해서 내가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았고, 이곳이 온난화로 모두 녹아버리지도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70년 정도의 인생. 그 안에 허락된 인연은 얼마나 될까. 영원할 것 같던 바다가 사라지고 소금만 남았듯이 지구상에 불멸은 없다. 이 일렁이는 소금도 언젠가는 바다가 되거나 흙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보여지는 순백의 기적에 진심으로 나는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내가 보고 실망했던 우유니의 하얀 소금사막은 그런 ‘억겁의 기적과 인연’을 거쳐 만난 곳이었다.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과 아쉬움을 느낄 시간에 내가 본 것의 위대함에 감사해야 하는 것. 그것이 진짜 여행자의 자세라는 것을 그 글을 읽는 순간 깨닫게 됐다.

2019년의 여정도 어느덧 끝나간다. 한 해의 끝에 선 심정이 보람과 뿌듯함으로 가득 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2개월 전 품었던 기대와 희망은 소금사막같이 버석한 현실 앞에서 이미 오래전 실망과 체념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마다 나의 우유니를 떠올린다. 내가 보고도 보지 못했던 것들. 내가 경험하고도 하찮게 여긴 기적들. 딱히 좋은 일 하나 없는 것 같은 나의 2019년에도 분명 ‘억겁의 기적과 인연’을 거쳐 만난 풍경들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2019년을 버텨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싶다.

<정유진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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