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 년간, 음악평론가로서 글쓰기 다음으로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토크 행사에 참여한 것이었다. 최근엔 정말 많은 음악인들이 토크가 연계된 콘서트를 진행하고, 미술인들 역시 전시장에서 수많은 전시 연계 토크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예술가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런 자리에서 나는 주로 사회자 또는 음악평론가로 참여해 질문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런 작업을 선보인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문제의식이 있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등 그간 창작자에게 궁금했던 것을 공론장에서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이 토크의 현장은 일종의 비평 ‘현장실습’과 같은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경험상 이런 자리는 ‘대화 그 자체’를 위해 마련되었다. 어떤 특정 해답을 도출하려는 의도 없이 일단 유연하고 풍성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던 것이다. 좋은 대화가 가장 중요한 이 자리에서는 상대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듣고, 그에 맞는 적절한, 때로는 비판적인 시선을 지닌 질문을 던질 것이 요구되었다. 말과 글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겠으나 나는 예술가들과 이런 토크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와 혼자 평론을 쓸 때의 태도에 그리 큰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양쪽 모두에서 나는 음악 혹은 음악가의 말을 듣고 ‘질문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평론이 질문하는 일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어떤 이는 거시적 차원에서 음악계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촉구한다. 혹자는 현장의 계보를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한다. 누군가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이제까지의 일들을 솎아내 무엇에 더 주목해야 하는지를 정리해 소개하기도 한다. 모두가 무심했던 곳 어딘가에 숨어있던 문제적 상황을 예리한 눈으로 포착해 개선방안을 제안하는 필자도 있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평론가의 위치는 저 높은 곳에서 현장을 관망하며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을 수도, 모두가 떠난 자리를 주의 깊게 되돌아보는 시점에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마치 토크의 현장에서 예술가와 대화를 나눌 때처럼, 같은 위치에서 같은 시차를 공유하며 지금의 일에 대해 질문하는 일이다. 내가 음악을 듣고 떠오른 생각을 굳이 글로 정리해 내보내는 이유는 나의 ‘질문’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다보니 늘 자문자답을 하거나 의문으로 글을 끝맺게 되어 답답한 마음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유연한 태도로 대화의 가능성을 잠재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에 이러한 입장을 지향하고 있다. 좋은 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청하고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는 이것이 평론이 갖추어야 할 동일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비평문은 근본적으로 그것이 글인 만큼 어떤 의견을 정리해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건넬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이 모든 일이 ‘대화’를 위한 것이라고 상정하고, 대화자 없이도 좋은 대화를 만드는 것과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평론가라는 말을 가끔 ‘질문자’ 혹은 ‘대화자’라는 말로 바꾸어보곤 한다. 그러다 보면 평론가라는 직업에 부여된 과업이 ‘평가하여 논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창작자들에게 ‘좋은 질문을 건네는 일’로 탈바꿈하는 것 같다.

평론가라는 직함에는 어딘가 날선 느낌이 있다. 물론 평론가는 자신의 위치를 예민하게 인지하고, 무디지 않은 시선으로 엄중히 고민하며 글을 써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라면 평론가는 실제로 날카로워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 벼려진 칼끝이 더 자주 겨냥해야 하는 것은 음악보다는 평론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타인의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으므로, 평론의 목적과 방향, 그리고 그 글이 어떤 영향력을 가질지 재고해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입장에서 내가 앞으로 계속해서 다듬어나가고 싶은 것은 바로 나 자신의 태도를 점검하게 만드는 반성의 시선, 그리고 평가자가 아닌 ‘대화자’의 자리에서 음악과 음악가들에게 질문하는 태도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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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갑 노동부 장관이 새해부터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는 50~299인 중소기업에 대해 1년간 계도기간을 두겠다고 11일 발표했다. 사실상 제도 시행을 1년 늦추고, 내년 12월까지 단속·처벌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근로기준법 시행규칙도 고쳐 특별연장근로 사유에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 증가와 연구·개발 등도 추가하겠다고 했다. 기존 특별연장근로는 재해·재난 등이 있는 사업장에 주 52시간제 예외를 허용해온 제도다. 두 방향의 땜질은 문재인 대통령이 두 달 전 ‘국회의 탄력근로제 보완 입법’과 ‘행정부의 보완대책’을 주문했을 때 노동계와 전문가들이 우려한 ‘최악의 종착지’에 가깝다. 10일 끝난 정기국회 본회의 239개 안건에는 환노위에서 보름 전 논의가 멈춰 선 탄력근로제 보완책이 빠졌다. 지난해 3월 주 52시간제 입법 후 22개월이나 직무유기한 정부와 국회는 입이 열개라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당장 ‘경영상 사유’가 확장된 특별연장근로는 오·남용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동자 동의를 받도록 했지만, 노조조직률이 100~299인 기업은 14.9%, 소기업은 3.5%에 그쳐 유명무실하다. ‘늘어난 업무량’이나 ‘단기간 초래될 지장·손해’를 기업주가 편의적으로 적용할 위험성이 상존하는 셈이다. 2015~2017년 매년 4~15건에 그쳤던 특별연장근로 인가는 대기업 주 52시간제가 시작된 지난해 204건으로 급증하고, 올핸 10월까지 787건이 승인됐다. 두 달간 주 82시간까지 연장노동을 시킨 기업도 있었다. 새로 바뀌는 시행규칙은 대기업에도 적용된다. 감독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임시방편적 행정조치로 시작한 주 52시간제 보완입법도 서둘러야 한다.

주 52시간제가 적용될 중소사업장은 2만7000여곳이다.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과로사회의 답도, 성패도 중소기업에 달린 셈이다. 그러나 3개월 전 준비가 안됐다던 ‘40%’는 11일 이 장관 발표 때도 그대로였다. 제자리걸음은 일찌감치 시행유예를 예고한 부메랑일 테다. 문제는 앞으로다. 일이 들쭉날쭉하고 인건비 부담이 크다는 중소기업의 현실과 하소연이 1년 후라고 크게 바뀔까. 노사정의 특단의 대책·의지·소통이 없으면 ‘백년하청’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채용·노임 기준이 될 업종별 표준계약서나 적정 공기(工期)부터 확립하고, 인센티브·스마트공장 지원 속도를 높여야 한다. 1년을 또 미룬 주 52시간제, 조기 정착에 노동장관 직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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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소송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된 지 무려 4년 만의 일이다. 그사이 전교조는 ‘법 밖의 노조’였다. 30년간 이어온 ‘참교육운동’은 정상 작동이 불가능했고, 노조 전임자 상당수는 해고와 직위 해제 등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법원의 정의로운 판단을 기대한다.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된 것은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내린 행정처분 때문이다. 교원노조법에 따라 해직 교사도 조합원인 전교조는 합법노조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노조 할 권리는 국민 기본권이다. 이를 국가가 제한할 때는 ‘목적은 정당하고, 수단은 적합하고, 침해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과잉금지의 원칙)’는 것이 헌법정신이다. 그런데 6만 조합원 중 해직교사가 9명뿐인 전교조에 팩스 공문 1장으로 노조문을 닫으라고 강제했다. 이는 상위법에 근거도 없는 행정명령이었다. 행정권 발동은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법률유보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전교조가 취소 소송을 내자 ‘양승태 대법원’과 ‘거래’해 재판을 연기했다. 이런 위헌적 요소, 부당한 사법거래가 확인되면서 이번에 대법원이 사회적 가치에 대한 결단 등 중요 사안을 다루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것이다.

사실 전교조 합법화는 법원 판단까지 구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정부의 직권 취소나 국회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동의가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합법화에 뒷짐 지는 태도를 보여왔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지난해 ‘법외노조 처분 직권 취소’ 등을 권고했지만 정부는 해고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한 ILO 핵심협약 국회 비준에 따른 법 개정만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ILO 핵심협약 국회 비준은 자유한국당 등이 강력 반대하고 있어 성사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새 정부가 집권하면 우선적으로 법외노조를 철회하겠다”고 했다. 정권 출범 직후엔 ‘10대 촛불개혁과제’로 전교조 합법화를 꼽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여야 간 이견으로 언제 이뤄질지 모를 ILO 핵심협약 비준 동의만을 해법으로 고집한다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정부는 당장 전교조 합법화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그것이 ‘노동 존중’을 강조해온 촛불정권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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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내년도 예산이 10일 국회 본회의를 거쳐 512조3000억원으로 확정됐다. 국회 심의과정을 거치면서 당초 정부안(513조5000억원)보다 1조2000억원 줄었지만 올해 본예산보다 42조7000억원(약 9%) 늘었다.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보건·복지·고용 분야는 전년보다 12% 증가했다. 산업·중소·에너지(26.4%), 환경(22%), 사회간접자본(SOC·17.6%) 관련 예산도 크게 늘었다. 일부 야당의 ‘대폭 삭감’ 주장은 허언에 그쳤고 대부분 정부 원안대로 통과됐다.

국회의 정부예산 심의는 세금이 낭비 없이 지출될 수 있도록 사전에 적정성을 따져보는 절차다.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 심의의 실상은 ‘부실·날림’이 돼왔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SOC 예산 심의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전년보다 2조6000억원 늘어난 22조3000억원의 SOC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건설투자 부진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원인 중 하나로 부각되자 ‘생활형 SOC’ 등의 명분으로 투자확대에 나선 것이다. 이는 정부가 일본의 SOC 투자남발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과 배치된다.

국회는 SOC 예산 가운데 예비타당성조사조차 면제받는 사업이 많은 만큼 철저히 심의해야 한다. 그래야 세금 낭비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국회는 감시는커녕 오히려 한 술 더 떴다. 삭감도 모자랄 판에 심의과정에서 정부안보다 9000억원이 늘어난 것이다. 확대한 예산은 대부분 당대표, 원내대표, 예결위원장, 예결위 간사 등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성 사업에 배정됐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정동영 평화민주당 대표, 장병완 대안신당 대표, 김재원 예결위원장(한국당), 전해철 예결위 간사(민주당) 등이 이른바 ‘쪽지 예산’으로 수억~수십억원을 추가로 가져갔다. 지역민원성 예산 확보 앞에 ‘꼼꼼한 심의’는 걸림돌일 뿐이었다. 반면 취업성공 패키지,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 노인요양시설 확충 등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1조원이 깎였다. 지역 민원성 토목사업에 쓰기 위해 취약계층이나 일자리 예산을 줄인 것이나 다름없다.

새해 예산규모가 확대되면서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2배 가까이 늘어난다. 정부는 이를 메우기 위해 60조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지금 빌려 쓰는 돈은 후대에 갚아야 할 빚이다. 그런데도 국회의 부실한 예산심의는 반복되고 있다. 국회 심의가 ‘쪽지 예산’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국회의원 자기 재산이라면 이렇게 허투루 쓰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 각성을 강력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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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보았다. 예능 프로그램인 만큼 몇 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 흥미로웠다. 시작하기 전에 먼저 스태프들에게 성선설과 성악설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 알아낸 다음(성선설 쪽이 좀 더 많았다) 토론 후에 생각을 바꾸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일종의 룰이었다. 그런데 토론이 끝난 후에는 처음과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출연자들의 개인적 재치와 말솜씨에도 영향을 받았지만 스태프들은 마음을 바꿔 성악설을 주장한 쪽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인간 본성의 선악에 관한 논쟁은 인류의 역사와 맥을 같이해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은 이중적인 존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은 마치 저 하늘에 해와 달이 있고 하루 중에 낮과 밤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도 할 수 있다. 적막한 밤, 홀로 깨어 자신의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즉 대체로 나의 본성은 선하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때로는 그럴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사이코패스는 대뇌의 구조가 일반인들과 다르니 그들은 차치하고 말이다.

어느 정신의학자는 인간이 칭찬보다는 비판에 능하고 신뢰보다는 피해의식과 불신을 갖기 쉬운 이유를 우리의 뇌에 이미 입력된 기본적인 프로그램, 즉 집단 무의식과 연관해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대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먼저 볼 수밖에 없으며, 상대가 나를 이롭게 할 것인지 아닌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피해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집단 무의식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앞서 예를 든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우린 분노하는 법을 배우지 않지만 누구나 쉽게 분노한다. 그러나 분노를 참고 상대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은 좀 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법정 스님도 ‘최고의 종교는 친절과 칭찬’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미국 작가 헨리 제임스 이야기도 있다. 그를 존경하는 누군가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지혜에 대해 한 말씀만 해 달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친절하고, 친절하고, 또 친절한 사람이 되어라.”

법정 스님과 헨리 제임스도 그것이 매우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굳이 그런 식의 표현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반면에 앞서도 언급했듯이 화를 내는 것은 쉽다. 물론 상담을 하다 보면 상대에게 화를 내고 싶어도 화를 내지 못해서 속상하다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당사자 앞에서 바로 그 순간에 화를 내지 못하는 것뿐이다. 혼자 있을 때는 당연히(!) 그 사람 욕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불평불만을 털어놓거나 해서 화난 것을 표현한다. 그들이 괴로운 것도 나를 화나게 한 사람 앞에서 내가 당한 만큼 돌려주지 못했다는 분노의 감정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결국 누구나 화를 낼 만큼은 낸다는 이야기이다.

반면 상대가 받고 싶은 만큼 칭찬을 못해 줘 속상하다는 사람들은 만나기 힘들다. 물론 나도 그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인간의 이중적인 속성에 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하기에 나의 그런 면에 대해서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으려고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두 마음 사이에서 균형과 상식을 찾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정신과 수련의를 시작할 때는 ‘왜 우리가 상식대로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갖고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할수록 상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상식대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느끼고 있다. 마치 시소가 올라가거나 내려가 있지 않고 평행을 이루는 순간이 아주 찰나인 것처럼 상식의 순간 역시 찰나에 머무르고 마는 느낌이라고 할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시소가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칭찬과 친절 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길밖에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마음으로 저무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양창순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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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0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이른바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에서 마련한 내년도 예산안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 교섭단체 3당이 예산안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민주당은 ‘4+1 협의체’가 마련한 수정안을 본회의에 상정, 처리에 나섰다. 한국당은 ‘예산안 날치기’라며 반발했다. 최악의 20대 국회가 마지막 정기국회까지 변칙으로 얼룩진 꼴이다. 다만 이날 오전 본회의에서 민식이법 등 비쟁점 법안 16건을 처리한 게 그나마 소득이다. 여하튼 예산안이 제1야당을 배제한 채 강행 처리되는 유감스러운 사태가 빚어졌다. 예산안의 법정시한(2일)을 지키지 못한 국회가 예산결산특위를 패스해 ‘4+1 협의체’의 심사로 예산안을 확정한 건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4+1’ 수정안이 동력을 얻게 된 것은 한국당 책임이다. 번번이 합의를 번복하면서 예산안을 볼모로 ‘유치원 3법’ 등과 패스트트랙 법안을 봉쇄했기 때문이다. 한국당을 배제한 예산안 처리를 불러온 것은 ‘정략적’ 필리버스터로 국회를 마비시킨 한국당의 자업자득이다.

나라 살림살이인 예산안의 부실, 졸속, 깜깜이, 짬짜미 심사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여야가 극한 대치로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 마지막 하루 동안 벼락치기 증감액 조정을 벌였으나, 이마저도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앞서 ‘4+1 협의체’의 예산 심사 역시 총선용 예산 담합의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여야 3당의 막판 협의에서 총 삭감액 1조6000억원 수준의 합의가 진행되다 앞서 ‘4+1’이 만든 예산안의 증감액 내역을 보여달라는 한국당의 요구가 거절돼 최종 합의가 무산됐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4+1’의 예산 심사에서 정파적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발목잡기로 정상적 예산안 처리를 어렵게 만든 한국당의 책임이 크지만, 타협을 이루지 못한 집권여당의 정치력 부재도 지탄할 수밖에 없다.

이로써 11일 시작되는 임시국회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격돌이 더욱 우려된다. 민주당은 ‘4+1 협의체’에서 마련한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을 임시국회에 상정해 처리할 태세다. 한국당은 필리버스터 등을 총동원해 막겠다는 방침이다. 게임의 룰인 선거법만이라도 막판까지 타협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당이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에 대해 대안을 내놓고 협상에 응하느냐가 관건이다. 한국당이 또다시 발목잡기와 시간끌기로 일관한다면 패스트트랙 법안을 국회법 절차대로 처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여야가 협상력을 발휘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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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산하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개혁위)가 대통령, 국회의원, 판검사 등이 연루된 중요 사건의 불기소 결정문을 공개하라고 권고했다. 불기소 결정문에는 검사가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하지 않은 이유가 담겨 있다. 검찰은 지금까지 수사기밀 유출 우려, 사생활 보호 등을 앞세워 이의 공개를 거부해왔다. 그로 인해 봐주기 수사 의혹이 제기돼도 국민은 물론 사건 관계인조차 ‘왜 죄가 안되는지’를 알 수 없는 일이 반복됐다. 검찰이 공소권을 독점하고 있어 따로 범죄 혐의자의 죄를 물을 방법도 없는 것이 우리의 사법체계다. 개혁위의 권고는 이런 불합리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개혁위는 누구든지 검찰청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중요 사건의 불기소 결정문을 열람·검색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제·개정하라고 권고했다. 불기소 결정문 공개 대상은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국회의원·자치단체 정무직 공무원·판사와 검사·4급 이상 공무원 관련 사건과 사회적 이목을 끈 중대 사건 등이다. 개혁위는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고 전관 특혜의 사법불신을 제거하는 장치가 될 것”이라며 “국민 알권리 보장, 제 식구 감싸기 방지 등도 기대된다”고 했다. 

불기소 결정문 비공개에 따른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전관 특혜, 밀실·늑장·짬짜미·제 식구 감싸기 수사 등으로 검찰이 불기소 결정을 해도 이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재정신청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소송 비용과 시간 부담으로 대부분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한 해 135만여건의 불기소 사건 중 ‘김학의 성폭행사건’처럼 검찰이 죄를 묻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검찰 설명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한두 건이 아닌 것으로 의심되는 것이다.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 등 전·현직 검사들의 내부고발을 보면 ‘상부의 지시’ 혹은 ‘수사를 안 해서’ 등 여러 이유로 불기소 처리되는 사건이 많다고 한다. 

중요 사건 불기소 결정문 공개는 이런 낡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일이다. 대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미 같은 취지로 판시하고, 권고한 바 있다. 대검찰청도 수사기록의 열람·등사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검찰은 이를 사법처리 절차를 투명하게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3.5%만이 지지하는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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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 내 몸의 깊은 곳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등판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 초반부 일부를 퍼온 것이다. 임란을 일으킨 왜적은 무술년(1598) 노량 앞바다에서 칼의 울음소리가 밴 허무한 노랫말을 남기고 그렇게 물러났다.

무술년 다음이라 그런지 기해년인 올해도 사나운 칼의 노래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이런 힘겨운 시절에 민초들은 지치고 힘든 여정을 칼의 노래를 들으면서 한풀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그러고는 노랫말만 가지고 섣부른 평가를 내리기도 하는 것을 본다. 

국정농단에서 출발하여 사법농단, 조국 일가를 거쳐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수사로 이어진 서초동발 칼의 노래가 여전히 드세다. 칼이 스칠 때마다 보기 드문 흥행이 계속되었다. 시민의 눈에는 우리 사회가 흡사 거대한 불합리의 온상같이 비친다.

최고 권력자 여럿을 칼끝에 거두는 검찰의 빼어난 솜씨에 관중들의 눈높이도 높아져 여간해서는 관심을 끌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불구경, 싸움구경을 남의 일인 양 마냥 즐거워만 하는 그런 관중이 아니다. 관중들은 지금껏 학습효과로 관전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고 칼끝의 지향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올랐다.

한편으로는 검찰의 예리한 칼날이 너무 빈번히 무대에 오르는 모습들에 겁나하면서도 식상해하기 시작하였다. 사회의 곪은 부분을 그대로 내버려 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칼끝의 숨은 방향이 헷갈려서다. 검찰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칼을 휘두른다는 의구심을 떨칠 길 없기 때문이다.

법률직의 영역은 결과에서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생산재라기보다는 소비재 영역에 가깝다. 그런 음(陰)의 재화를 두고 온 눈이 서초동으로 쏠리고 칼춤의 향방에 따라 경쟁하듯 내 편 네 편으로 갈리고 있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의 자체 여과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시시비비를 검찰의 칼에 의존하고 있음을 본다. 심지어 예술작품의 진위까지도 그러한 데서는 할 말을 잃는다. 이런 기이한 현실에서 검찰은 만능자로서 역할을 요청받고 있다. 오죽하면 검찰이 바로 서면 나라가 바로 선다는 전직 대통령의 말이 검찰의 선도적 역할론으로 회자되고 있겠는가.

이래선 안된다. 국민들은 눈앞의 소모적 액션극에서 벗어나 생산적인 모습을 바란다. 추운 계절에 몸도 마음도 얼어붙었다. 따듯한 정이 돌고 밝은 앞날을 기약할 수 있는 평온한 공동체가 그립다.

지난 몇 달 동안 서초동에서는 서초동연가(戀歌)가 메아리치고 광화문에서는 광화문연가로 뒤덮였다. 또 최근에는 서초동에서도 두 갈래 서로 다른 연가가 불협화음을 엮어내고 있다. 평범한 시민들의 눈에는 이들 길거리 연가가 칼의 노래와 뒤섞여 혼란스럽기 이를 데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울어대는 칼의 노래와 칼춤에 넌더리가 난다. 이제 그런 유의 노래라면 입에 담기도 싫고 그런 장단의 춤이라면 작은 춤사위도 싫다. 국민이 쥐여준 칼이다. 흥행에 눈독 들이지 말고 절제된 겸손미를 갖추어 사용토록 해야 한다. 이순신 장군의 칼끝은 내부가 아니라 오로지 불법을 자행한 침략자를 향해 있었다.

<최영승 | 대한법무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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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를 타고 익숙한 길을 달리다 몇 년 전 그날이 생각났다. 그날 버스 안에는 승객이 몇 되지 않아 들고나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기도 하고, 목소리 낮춰 통화하는 소리가 슬쩍슬쩍 들리기도 했다. 버스는 빈 정류장을 여러 번 지나치다 한 아파트 단지 앞 정류장에 정차했다. 버스에 오른 이들은 아이 둘과 어른 하나였다. 엄마로 보이는 이는 아이 둘을 먼저 앉히고 그들 뒷자리에 앉았다. 평범한 외출처럼 보였는데, 곧 전화를 받은 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택시가 안 잡혀서 버스를 탔다는, 지하에서 공사하던 중에 불이 났다는, 무슨 기계가 터졌다는, 많이 다쳤다고 하는데 모르겠다는. 그 다급한 통화 뒤에 여자는 자신을 돌아보는 남매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아빠 괜찮을 거야. 진짜 괜찮을 거야.”

아이들은 엄마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셋은 입을 꾹 다문 채 앞만 바라봤다. 어린아이들은 괜찮을 거라는 엄마 말을 믿느라, 엄마는 스스로 한 말을 믿느라 곧추세운 등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들은 버스가 번화가로 나오자마자 곧장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탔다. 나는 그들을 눈으로 좇으며 나도 모르게 하늘을 힐긋 올려다보면서 빌었다. ‘그들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게 하소서.’

그런데 이것이 초월적 존재에게 빌어야 할 일인가. 아침에 일터로 나간 이들이 별일 없이 무사히 퇴근해서 돌아오는 것을 초월적 존재에게 맡겨야 하는가. 예전에 버스 운전석 앞에 간혹 걸려 있던, 무릎 꿇고 기도하는 소녀의 그림을 집마다 내걸어야 하는 판인가.

버스 안에서 만난 그 가족의 불행을 불운 때문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 하루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3명이나 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선가 일터로 나간 가족의 사고 소식을 듣고 황망하게 뛰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행여 방정맞은 일이 될까 봐 눈물을 꾹 참으면서, 괜찮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묵묵히 일하다 세상을 떠난, 결코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되는 청년의 1주기를 보내면서 사회가 여전히 아무것도 안 하니 나는 부질없이 버스 창밖을 내다보며 또 빈다. 부디 오늘은 모두 무사히 돌아오게 하소서.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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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학교 교육만 받아서는 세상을 잘 살 수 없다. ‘어려운 남을 도와주라’는 구절을 보고 친구에게 돈을 빌려준다면 돈은 물론이고 우정까지 잃게 마련이다. ‘늘 정직하라’는 말에 꽂혀 자신을 평가해 달라는 부장님에게 “능력도 없으신데 그 자리까지 올라가신 게 신기하다”고 한다면, 더는 회사에 다니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학교 교육은 대학입시를 위한 용도로 치부하되, 삶에서 필요한 지식은 경험을 통해, 또는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하면서 배워야 한다. 

후자의 지식이 어려운 것은 시대가 바뀌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어서, 수시로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지난 정권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권력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검사는 대통령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물고, 물지 말라면 안 문다”는, 어느 검사의 오래된 푸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검찰이 대통령보다 더 세다’라는 게 상식이 되고 있다. 이 주장을 하는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충실한 지지자인 소위 ‘문빠’들인데, 이들이 거의 모든 인터넷 사이트를 누비며 이 논리를 들이미는지라 지금은 대통령이 더 세다고 말하는 이가 크게 줄었다. 

자기들이 사랑하는 대통령이 검찰에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는 것에 마음 아파하다 보니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인데, 지난 정권 때만 해도 이들이 “검찰이 대통령 눈치만 본다”며 분노했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심지어 현 정부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했을 때만 해도 문빠들은 ‘긴장해라. 적폐들아’라며 환호를 보냈는데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들이 이 사회를 이끄는 실세인 만큼, 다치지 않고 살려면 그들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삶의 지표로 쓰는 수밖에. 

또 하나 알아야 할 점은 이런 배움에는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전쟁 때 의학이 발달하는 것처럼, 삶의 지혜는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르르 쏟아진다. 예컨대 조국 사태 때 체득한 지식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표창장 위조. 인턴확인서 위조. 사모펀드 비리: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장관직에서 물러날 범죄였겠지만, 이젠 아니다. 이것들은 검찰이 마음먹고 조사하면 누구한테서든 적발할 수 있는 일상적인 행위이니, 예수쯤 되는 분이 아니라면 함부로 욕해서는 안된다. 

-컴퓨터 안에 비리에 관한 증거가 있을 때 그 컴퓨터를 몰래 빼돌려 차 트렁크 안에 감추는 행위: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증거인멸’이겠지만, 이젠 아니다. 검찰이 증거를 조작할지 모르니까 자기변호 차원에서 증거를 보전하는 행위다. 또는 집에서 일하기 위해 컴퓨터를 잠시 가져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SNS: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쓰는 매체로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타인을 욕하면서 자신의 인기를 올리기 위해 자신이 절대 지키지 않을 것들을 마구 써대는 곳’으로 바뀌었다.

-피의사실 공표: 과거엔 국민 여론을 결집시켜 커다란 범죄를 저지른 이를 처벌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도 어느 정도는 이것 덕분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의 피의사실 공표는 검찰이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흘리는 악질적인 행위로 그 개념이 바뀌었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조국 법무부 장관 시절 이런 행위가 전면 금지됐다. “요즘 왜 조국 관련 기사가 나오지 않지?”라고 묻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배움이 부족한 분이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사건’에서도 배울 점은 차고 넘친다. 

-민정수석실: 원래 대통령의 친·인척을 감시하는 곳으로 알려졌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고래고기 등 울산 앞바다에 사는 동물도 ‘친·인척’의 범주에 포함됐다. 

-캠핑장: 원래는 ‘산이나 들 따위의 야외에서 천막을 치고 야영하는 장소’를 뜻했지만, 지금은 ‘후보자 당선을 위해 선거운동 전략을 짜는 조직’으로 바뀌었다. 어떤 이의 취미가 ‘캠핑’이라면 그는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일 확률이 100%다. 

평소 알던 상식이랑 달라서 당황하겠지만, 원래 배움이란 어려운 법이다.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변하지 않는 지식도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극한직업’이라는 게 대표적인 예다. 

박근혜 정부 때 대변인을 했던 정연국을 보자. 그가 카메라 앞에서 진땀을 뺄 때 사람들은 그를 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됐다면서 혀를 끌끌 찼다. 내막도 잘 모르면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 그의 처지가 딱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뀐 지금, 사람들은 해명을 한답시고 연일 카메라 앞에 서는 고민정을 보면서 같은 반응을 보인다. “고인이 되신 동부지검 수사관이 울산에 내려간 것은 울산시장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청와대는 하명수사를 지시한 바 없습니다.” 고민정씨, 많이 힘들죠? 저희도 힘드네요. 새로운 지식을 머리에 담아야 하니까요.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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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딸기연구소에서 개발한 ‘설향’ 품종은 중앙과 지역 농업 간 연구·개발(R&D) 협업의 중요성을 일깨운 성공사례다. 2005년 9.2%에 불과했던 국산 딸기 품종의 점유율은 2018년 94.5%로 높아졌다. 수출액도 2005년 440만달러에서 2018년 4800만달러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농촌진흥청을 주축으로 지방 농촌진흥기관과 대학이 협력해 고품질 재배기술을 개발하고 재배환경과 재배법을 표준화한 덕분이다. 저장 및 유통 방법 개선도 주효했다.

농촌진흥청이 지역특화작목을 육성한 것은 1991년부터다. 지역거점별로 농업 인구 인프라를 구축해 연계기술을 확보하고 산학연 협력으로 개발한 기술을 농업 경영체에 보급했다. 그 결과 사업 참여 농가의 소득 증가율이 2017년 21.8%를 기록했다. 일반 농가의 소득 증가율 3.0%와 비교하면 7배에 달한다.

지난해 정부는 지방분권·균형발전이라는 핵심 국정과제 실현 방안으로 지역의 자율성을 중시하고 경쟁력과 경제 활력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지역밀착형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지역이 주도하는 R&D 강화방안도 발표했다. 이런 흐름에서 볼 때 지역 특성을 살리고 경쟁력을 갖춘 지역특화작목을 개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지역특화작목 산업이 활성화되면 농업의 새로운 발전과 성장을 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7월9일 ‘지역특화작목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약칭 지역특화작목법)이 시행됐다. 기존 R&D 지원 사업은 규모도 작은 데다 산발적으로 투입되어 지역사회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이 법은 농산업 부가가치를 높일 지역농업 발전 강화전략을 수립하여 지역특화작목을 육성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담고 있다.

그동안 지역농업 R&D 지원에 관한 근거가 미약했는데, 이 법의 시행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가 강화됐다. 보다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지역농업 R&D를 통해 개발된 기술을 보급하고 사업화하는 것은 물론 유통과 수출까지 그 지원 범위가 확대됐다. 특히 시·군 농업기술센터에 대한 지원 근거가 마련됐다. 농업인, 농산업체 등 민간이 참여해 현장 밀착형으로 함께 연구할 수 있도록 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농업인의 소득이 향상되고 지역 내 고용기회가 늘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국민들이 다양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것이다.

최근 한국도 농업정책 전반에 국내외 변화에 대응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요구받고 있다. 우리 농업도 획일적인 생산 위주의 농업에서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경쟁력 있는 농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역특화농업의 발전이 지역 공동체의 이익을 창출하며 중앙과 지역 상생 발전에 기여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황규석 | 농촌진흥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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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은 안보 정당을 자부한다. 그런데 그 ‘안보’의 대상이 수상하다. 나경원 전 한국당 원내대표의 지난달 27일 입장문을 보자. “2018년 지방선거를 하루 앞두고 열린 1차 정상회담이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3차 회담마저 총선 직전에 열릴 경우 대한민국 안보를 크게 위협할 수 있다. 금년 방한한 미 당국자(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에게 그러한 우려를 전달한 바 있다.” 이 입장문은 ‘총선 전 북·미 정상회담 개최 미국에 자제 요청’ 파문이 번지자 ‘우려’했을 뿐 ‘요청’하지 않았다고 해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요청한 것이 사실임을 확인해준 셈이다.

입장문의 맥락은 선거에 눈이 멀어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회담마저 반대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한국당이 일본에 총선 전에 경제 보복을 풀지 말라고 요청하고 나설지도 모르겠다. 그의 입장문은 큰 파문이 일었지만 잇따라 불거진 현안들에 밀렸다. 그러나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 맞나”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틀린 말을 했느냐”고 맞받았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맞는 말이 별로 없다.

따져보자. 첫째 호도. 2018년 지방선거에서의 한국당 참패는 정상회담보다 한국당 탓이 훨씬 컸다. ‘탄핵 세력’에 표를 줄 유권자도 많지 않았지만 탄핵으로부터 거듭나지 못한 한국당 자체가 표를 끌어모을 매력이 없었다. 둘째 억지. 북·미 정상회담이 총선 전에 열리면 한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판단은 근거가 없다. 최대 안보 현안인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회담이 어떻게 안보를 위협한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총선 후에 회담이 열리면 안보에 도움이 되는가. 셋째 자기모순. 그의 입장은 “북핵은 안보에 최대 도전”이라는 황교안 대표의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

나 전 대표의 논리대로라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나 선거는 병행하기 어렵다. 예컨대 2018년의 경우 지방선거가 치러진 6월13일 이전에 남북정상회담 2회, 북·미 정상회담 1회 등 총 3회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기간이 얼마인지 그는 밝히지 않았지만 ‘선거 직전’이라고 밝힌 점을 감안해 2개월 정도로 잡아보자. 그렇다면 그해 1~4월에 3개의 정상회담을 열었어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정상회담 성사의 어려움과 회담 준비기간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회담을 임의로 선거 뒤로 미루는 것도 비현실적인 일이다. 이 같은 사정은 내년 4월 총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거와 정상회담은 중대한 행사이기 때문에 경중과 선후를 따질 수 없다. 그런데 그의 입장문은 북핵 해결보다 총선을 중시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정파적 이익을 위해서는 중요 안보 행사도 연기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전 대표만이 아니다. 안상수 의원은 지난 9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에게  “미국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으니 북한과 종전선언을 하면 안된다”고 요청했다. 한국의 국회의원인데 왜 한반도 냉전 해체를 의미하는 종전선언에 반대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안 의원이 한국의 안보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을 더 중시한다고 이해해도 될는지 궁금하다. 이런 행태는 한국당이 내세우는 안보의 대상이 국민이나 국가가 아니라 바로 한국당 자신임을 증거한다. 그런 점에서 나 전 대표의 입장문은 한국당의 정체성 고백이요, 커밍아웃인 셈이다. 한국당은 안보 정당이라고 내세울 게 아니라 ‘자기안보 정당’으로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바란다.

사실 한국당은 주요 선거 때마다 이른바 북풍을 공작해온 보수의 DNA가 내면화된 정당이다. 1987년 대선 하루 전날 일본과 갈등을 벌이면서까지 ‘김현희 압송’을 강행하고, 1987년 대선에서는 북한에 휴전선 무력시위를 요청한 ‘총풍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보수정권과 보수 정당이 한국당의 모체다. 현재도 당리당략을 위해 모든 것을 정쟁화하다보니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라는 대의마저 치지도외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쯤되면 한국당에 안보를 맡기면 위험천만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한국당이 미국의 반트럼프 및 반북 세력,  일본 아베 정부와 손을 잡을 경우 한반도 정세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정치학자 한스 모겐소는 군비경쟁에만 몰두하는 것은 진정한 국가지도자가 취해야 할 건설적 자세가 아니라고 설파했다. 지도자는 자국의 이익과 타국의 이익이 타협 가능한지를 판단하고 상호조정과 타협에 의해 전쟁을 회피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당과 소속 의원들에게 묻는다.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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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우자동차는 한글 이름을 가진 승용차를 출시했다. 누비라(Nubira)다. ‘세계를 누비는 차’라는 뜻이다.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경영 의지가 담긴 승용차였다. 개발은 명차 롤스로이스를 만들었던 워딩연구소가 담당했다. 디자인은 세계적 유명 디자인 업체 이데아(IDEA)가 맡았다. 마케팅도 전쟁 수준이었다. 영국 책임자가 점유율 목표달성에 회의적이자 단칼에 ‘잘랐다’고 한다. 당시 대우차 영국지사에서 일했던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판매 목표를 초과 달성했고 누비라를 타고 영국 전역을 누비면서 협상의 기술과 경영의 원리를 배웠다”고 했다.

10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월드컵로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가 꾸려진 가운데 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과 조원진 우리공화당 의원이 조문을 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김 전 회장은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했다. 무역으로 잔뼈가 굵었던 그는 기업의 미래가 해외 진출에 있다고 보았다. 한국이라는 우물 안에서 벗어나서 세계로 나가자는 뜻이었다. 대우실업이라는 소규모 무역업체로 출발한 대우는 국내 4대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 신흥국 출신 최대의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1998년에는 한국 총 수출액 1323억달러 중 대우가 약 14%(186억달러)를 차지했다.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에 자산총액이 76조원에 달하는 재계 2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경영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물거품이 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 경제 관료들과의 마찰이 화근이 됐다. 위기 돌파책으로 김 전 회장은 수출 확대를 주장했으나 관료들의 입장은 기업 구조조정을 통한 해결이었다. 1999년 대우그룹은 공중분해됐고 대마불사의 신화도 사라졌다. 2006년 김 전 회장은 21조원의 분식회계, 10조원의 사기대출로 징역 8년6월, 추징금 17조원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5년 넘는 해외도피생활에 1년여 징역을 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세계경영의 정신은 아직 회자된다. “젊은이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그러나 늘 가던 길만 가려는 사람, 손에 익은 일만 하려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아무도 아직은 가지 않은 길, 아무도 아직은 해내지 못한 일을 추구하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개척자에게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적어도 나는 그런 정신과 자세로 이제껏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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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유무나 지위 고하에 관계 없이 공무원은 세 부류가 있다. 첫 번째는 개인의 이익만 챙기는 자다. 공무원을 해서는 안되는 경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 잘 먹고 잘 산다. 민원인에게 갑질을 하고 재직하는 동안 든든한 노후대책도 세워놓는다. 극소수이지만 이들 때문에 공직사회 전체가 욕을 먹는다. 두 번째는 조직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자다. 힘이 센 부처나 기관일수록 이런 공무원이 많다. 세 번째는 나라의 이익을 챙기는 공무원이다. 모름지기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이라면 개인의 이익은 제쳐놓고 조직에서 배신자 얘기를 듣더라도 국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런 공무원이 많아야 나라가 바로 서고 국민들 삶도 평안하다.

법무부 외청인 검찰청 소속 공무원인 검사들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로 사익을 추구하는 검사들이다. 이들은 스폰서를 두고 수시로 접대를 받는다. 사건 처리를 대가로 뇌물을 챙긴다. 뇌물의 종류와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공명심(功名心)에 무리한 수사를 하고 피의자의 인권을 무시한다. 권력자와 결탁해 사건을 조작하고 편파 수사를 한다.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죄를 짓고도 법 지식을 활용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다음은 조직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검사들이다. 이들은 거악을 척결해야 한다는 정의감과 엘리트 의식이 강하다. 정치인과 기업인은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고, 경찰은 수하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사는 완전무결한 존재여야 하므로 검사의 비리는 최대한 감추고 소극적으로 수사한다. 그 결과 ‘김학의 사건’처럼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는 일이 생겨난다. 한국의 검사 대다수가 이 부류에 속한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사람 아닌 조직에 충성한다”고 말했다.

조직 논리만 거스르지 않아도 명예와 부(富)가 따라오지만 이를 스스로 걷어차는 검사도 있다. 내부고발로 왕따를 자처하며, 검찰의 과오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한다. 경찰을 수사 파트너로 존중하고, 검찰도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찰 조직보다 나라와 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진정한 ‘공익의 대변자’라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미증유의 총력 수사로 검찰사를 새로 쓰고 있다. 검찰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전방위 수사로 부인과 동생을 구속하고 조 전 장관까지 낙마시켰다. 지금은 ‘유재수 감찰 무마’와 ‘하명수사’ 카드로 청와대와 여당에 맹폭을 가하고 있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다. 검찰은 나라의 이익을 위한 수사라고 주장한다. 윤석열 총장은 “이 정부의 성공을 위해 내가 악역을 맡은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과거 대선자금 수사나 국정농단 수사처럼 국민적 지지와 성원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검찰 조직 수호를 위한 무력 시위이자 국회 시즌을 겨냥한 정치 개입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을 추진하며 검찰에 비판적인 쪽에는 칼을 들이대고, 공수처법 반대 등 검찰 편을 드는 쪽의 비리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비리와 불법이 양적·질적으로 여당에 결코 뒤지지 않는 보수야당에 검찰이 이처럼 관대할 이유가 없다. 자녀 입시 비리 의혹을 사고 있는 의원, 촛불시민을 짓밟기 위한 계엄문건 작성에 관여한 세력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꽃피던 지난 4월 공수처법 등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법안 추진 과정에서 벌어진 의원 감금 사건은 겨울이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검찰개혁은 시대적 과제다. 수사는 수사대로, 개혁은 개혁대로 추진돼야 한다. 검찰의 흑역사를 생각하면 정권을 상대로 한 ‘윤석열 검찰’의 도전은 평가받을 일이지만 이것이 검찰개혁을 중단하는 이유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숱하게 개혁안이 나왔지만 검찰의 DNA는 그대로다. 조직을 우선시하는 검사들의 문화도 달라지지 않았다. 묵혀둔 사건을 갑자기 꺼내고 언론에 피의사실을 흘리는 등 거악을 척결하는 일이라고 판단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습성도 여전하다. 피의자를 압박하기 위해 별건수사를 벌였다는 뒷말도 많다.

현재의 검찰 시스템으로는 검찰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이 양립하는 건 불가능하다. 검찰의 힘이 세질수록 도리어 부정부패가 증가하고, 법의 권위는 추락하며,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는 것을 국민들은 이미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자신만 옳다는 독선과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쓰러뜨릴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검찰은 수사·기소권을 독점하며 막강한 권한을 유지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는 집단최면에서 깨어나야 한다. 엄동설한에 검찰만 계절이 바뀐 줄 모르고 벌거숭이로 칼춤을 추는 것 아닌지 윤석열 총장 이하 2000여 검사들은 되돌아볼 일이다.

<오창민 디지털뉴스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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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

세계적인 밴드 U2가 지난 8일 밤 내한공연을 하면서 이런 메시지를 발표했다.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인 오늘 U2의 이 메시지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마음에 와닿는다.

71년 전,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극을 겪은 뒤 역사적인 반성문을 썼다.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은 인류의 양심을 짓밟는 야만적 행위”를 낳았고, 따라서 앞으로 인류는 “언론의 자유, 신념의 자유, 공포와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를 향유”하는 세계를 만들 것을 약속했다. 이 반성문 이후 인권은 현대국가들이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가 되었다. 인권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일은 곧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렇지만 이런 약속은 과연 지켜지고 있을까? 71년 전의 저 약속이 지켜졌다면 우리는 아마도 매우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저 고상한 약속을 한 인류는 이 선언을 만드는 과정에서조차 한편에서는 냉전체제를 짜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그 과정에서 끔찍한 학살과 국가범죄를 겪었다. 한국전쟁을 거쳐서 분단체제가 완성됨과 동시에 세계적 차원에서는 냉전체제가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인류가 합의하여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이 가진 권위는 막강했다. 그 뒤에 유엔 주도로 국제인권규약들이 속속 제정되었고, 유엔 중심의 국제인권레짐이 형성되었다. 우리나라도 1990년부터 주요 국제인권규약들에 속속 가입하여 인권 보장의 의무를 지게 되었다. 그럼 우리나라는 인권국가로 발돋움했을까? 예전 군사독재정권 때 공공연한 자의적인 체포와 구금, 고문은 사라졌다. 이제는 가짜뉴스를 공공연히 퍼뜨리면서 정권을 비판하는 대대적인 집회가 매주 주말마다 너무도 자유롭게 열리고 있다. 도리어 집회와 시위장에서는 혐오와 차별이 넘쳐나는데도 어떤 제재도 받지 않는다. 공포를 느끼지 않고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었으니 얼마나 인권적인가?

그렇지만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이상과는 정반대로 진행되는 현상도 보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되었고, 국민소득도 3만 달러를 넘었다는 나라의 사회보장 수준은 너무 보잘것없어서 OECD 국가 최하위 수준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노동하면서도 ‘52시간 노동제’가 과도하다고 제1야당 대표가 비판한다. OECD 나라 중에 자살률이 가장 높고,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이 비정상적으로 높다. 경제성장의 결과는 고루 나누어지지 않고, 소수의 대기업과 부자들의 곳간에만 쌓인다. 그 한편에서는 의식주조차 해결하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도 사회복지 예산을 늘리자는 주장에는 어김없이 어깃장을 놓는다.

지난해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이었던 2018년 12월10일 밤에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이 죽었다. 그는 1994년생, 만 스물네 살의 나이에 위험한 작업장에서 혼자 일하다가 죽었다. 그가 죽은 뒤에도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컨베이어벨트는 돌아갔고, 세 시간 뒤에야 그는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최근 경향신문은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타이틀을 뽑고, 김용균 이후 9월 말까지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1200명의 명단을 실었다. 매일 위험한 현장으로 출근한 노동자 3명은 떨어져 죽고, 끼어 죽고, 깔려 죽고, 부딪혀 죽고, 무언가에 맞아서 죽어갔다. 거기에 산재로 얻은 질병을 앓다가 죽어가는 노동자까지 합하면 매일매일 6명씩 죽어나간다.

우리는 매일 37명 이상이 자살하는 나라, 매일 노동자 6명이 죽어가는 나라, 매일 교통사고로 10명 이상이 죽어가는 나라다. 전쟁이 일어나는 나라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목숨들이 죽어가는 데도 아무렇지 않다. 그렇게 죽어가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게 더 문제다. 이 나라는 그만큼 위험한 나라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세계인권선언 제3조는 생명권과 안전권을 천명한다. 생명을 보전할 수 없는 질서와 체제에서는 인권의 실현은 기대할 수 없다. 산업현장에서 노동자가 죽어나가도 기업주는 벌금으로 평균 450만원만 물면 그만이다. 어린이 안전을 위한 ‘민식이법’을 만들어 달라고 무릎 꿇고 호소하는 유가족 어머니들을 국회의원들은 매몰차게 외면하고, 시민들은 그 어머니들을 비난하는 댓글들을 줄줄이 달고 있다. 고 노회찬 의원은 “안전의무를 소홀히 해 얻는 이익보다, 재해를 일으켰을 때 얻는 불이익이 적다면, 기업의 철저한 안전관리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지만 20대 국회에서 단 한 번도 심의조차 되지 않았다.

사람의 목숨보다 기업의 이윤을 우선하는 법과 제도를 국회가 만들고, 기업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는 행정을 펼치고, 사법부는 노골적으로 기업들의 편을 들어준다. 노동자와 시민의 목숨쯤은 돈으로 보상하면 끝이라는 잔인한 체제, 소수 ‘사회적 특수계급’을 위한 체제가 버젓이 들어선 나라인 대한민국은 인권 포기 공화국이다.

세계인권선언은 전문과 30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사회권)들이 22조부터 27조까지 열거되어 있다. 여기서 열거된 주장이 어찌 복지병이고, 사회주의 하자는 것인가. 이제 경제대국을 자랑할 때가 아니라 매일 억울하고 불행한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는 현실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할 때다. 그러므로 이제 개별 권리를 보장하라고 목소리 높여 주장하면서도 우리는 이 잘못된 질서와 체제를 바꿔야 한다. 누군가를 고통에 몰아넣고 그 고통 위에서 누군가는 행복을 누리는 체제라면 그건 신분제 사회일 뿐이다.

세계인권선언 제28조는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제시된 권리와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및 국제적 질서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U2가 제시한 것처럼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 우리가 들어야 할 구호는 세계인권선언 제28조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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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오늘날과 같은 정보와 지식의 홍수 시대에 적용해보면,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 하더라도 사용자의 접근과 이용이 편리하지 않다면 쓸모가 없다는 게 아닐까. 

디지털 시대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우리 삶의 전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우리가 누리는 정보의 양과 질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하지만 이러한 디지털 혁명의 혜택을 모든 사람이 골고루 누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모든 정보 전달과 공유의 플랫폼이 비장애인들 위주로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자립적이고 주체적으로 활동하고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기술적 진보에 발 빠르게 따라갈 수 없는 장애인들은 상대적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장애의 유형을 고려한 정보 접근 방법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정보 격차는 더욱더 가속화할 것이다. 

먼저 시각장애인들은 소리와 손가락의 감각으로 정보에 접근한다. 그들은 정보 습득의 속도 면에서 비장애인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으며, 점자책 등 시각장애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대체 자료를 만드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하다.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제작하는 시각장애인용 대체 자료는 국내에서 연간 간행되는 일반 출판물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오디오북으로 출판되는 전자책(e-Book)조차도 장애인 접근성 요건을 반영해서 다시 제작하는 비율은 1% 남짓이다. 제작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은 눈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기에, 수어 설명이 덧붙여지고 화면 해설을 자막으로 처리한 영상 자료가 필요하다. 비장애인에게 익숙하고 쉬운 문장도 청각장애인에게는 외국어처럼 낯설고 복잡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최근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발달장애의 경우, 장애의 정도와 문장 이해력에 따라 생애주기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보급과 전달 방식의 연구가 필요하다. 

이처럼 장애의 유형이 다양하고 정보 접근 방식 또한 통일될 수 없기에 장애인을 위한 정보 제공 방법을 표준화하기 힘들다. 

장애 유형별로 정보 접근 방법과 수요가 다르기 때문에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비장애인과의 정보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장애 유형별 특성과 취약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장애인들에게 필요하고 그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발굴하는 일과 대체 자료로 변환하는 작업에 더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늘리는 것 등 산적한 문제들이 많다. 

이번 국회에서 장애인 정보 격차 문제를 전면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 산하 2차 소속 기관으로 있던 국립장애인도서관을 문체부 직속으로 승격시키는 개정 법안(도서관법 제45조)이 통과되었다. 이제 국립장애인도서관은 정부 차원의 장애 유형별, 생애주기별, 지역별 특성을 기반으로 한 장애인 정보 접근권 정책을 실행하고 대체 자료 제작 표준 개발, 정보 이해력 증진을 위한 독해력 진단 훈련 프로그램 육성 등 더욱 전문적이고 능동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입법부와 행정부의 노력뿐만 아니라 민간의 협력이 더해지고 장애인의 정보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진다면, 장애인들이 삶과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정보 복지’가 그리 멀지만은 않을 것이다.

<김용삼 |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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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다시, 유럽의 축구장이 인종차별로 혼란스럽다. 수년 전부터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이 축구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행위를 근절하려 막대한 비용을 들여 다양한 캠페인을 벌여왔으나, 이 끔찍한 악행이 근절될 수 없는 역병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의 사례를 보면, 지난 8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 프레드는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와의 원정경기에서 연거푸 모욕을 당했다. 코너킥을 차려는 그에게 맨시티 팬은 원숭이 소리를 내며 조롱했고 어디선가 라이터까지 날아왔다. 성난 얼굴을 한 동료 린가드가 프레드는 감싸안으며 위로했지만 프레드의 고통은 단지 라이터에 맞은 외상만은 아니었다. 안정을 되찾은 프레드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는 아직 어두운 면이 있다. 지금은 2019년이다. 피부색, 머리카락, 성별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호소했다. 프레드를 모욕한 남성은 경찰 조사를 받았고 맨시티는 “우리 홈구장 출입을 영원히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상대팀 감독인 과르디올라도 경기 후 프레드를 직접 찾아가 사과하고 위로했다. 

이러한 일들이 맨시티 구장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10월21일, 맨유가 리버풀을 상대로 벌인 홈경기 도중 맨유 팬이 리버풀 수비수 알렉산더 아널드를 향해 거친 욕설과 인종차별 폭언을 자행했다가 즉시 경기장에서 쫓겨났다. 시즌권 소유자인 이 남성은 맨유의 즉각적인 조치에 의해 영구적으로 올드 트래퍼드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9월에는 웨스트햄 팬이 홈구장 출입 금지령을 받았고 애스턴 빌라 등 많은 구단에서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프레드가 또다시 역겨운 말과 추악한 행동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선수뿐만이 아니다. 발롱도르(유럽남자축구선수상) 3회 수상에 빛나는 네덜란드 축구의 ‘레전드’ 마르코 반 바스텐은 생방송 도중 과거 히틀러 나치 시대의 악명 높은 구호 ‘지크 하일(Sieg Heil)’을 외쳐 거센 비난을 받았다. 지난 11월23일, 네덜란드 축구팀 헤라클래스를 이끄는 독일인 감독과의 인터뷰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물론 그가 축구장 안팎에서 보여준 오랜 활동으로 보건대 ‘나치 추종자’라 볼 만한 여지는 적다. 본인도 네덜란드인 리포터의 어색한 독일어 발음을 놀리기 위해서 그 표현을 썼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네덜란드 선수들은 축구장에서의 인종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킥오프 후 1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침묵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이었다. 온라인 축구게임사 EA에서는 ‘피파 20’에서 반 바스텐을 삭제하기로 결정했고 폭스스포츠도 1주일간 방송 금지 처분을 내렸다.

지난 10월 하순, 잉글랜드 프리미어 사무국은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교육, 단속, 조사 등의 프로그램까지 가동했다. 프리미어리그 최고경영자(CEO) 리처드 마스터는 “우리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그러나 인종차별이 설 자리는 없다”고 공언했으나, 현실은 오히려 가중되는 양상이다. 

11월4일, 손흥민이 에버턴의 미드필더 고메스를 저지하려다 불상사가 벌어진 바로 그 경기에서도 에버턴의 관중이 손흥민을 향해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벌였다. 구단은 “그런 행동은 우리 경기장, 우리 클럽, 지역사회 또는 우리 경기 안에 있을 수 없다”며 조사에 착수했다.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새겨진 공인구를 향해 그들은 차별의 언어를 쏟아내고 혐오의 행동을 벌였다. 축구를 모욕하고 선수와 팬들을 모욕하고 자기 자신마저 쓰레기통에 처박는 행동이다.

최근 이런 일이 급증한 것은 유럽 전역에 반난민과 반유럽연합 역풍이 불어닥친 결과로 보인다. 브렉시트 혼란 속에서 지역주의를 우선시하고 있는 잉글랜드나 극우정당동맹이 득세한 이탈리아에서 이 같은 일이 연거푸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그 근거가 된다. 그러나 단언컨대, 브렉시트 혼란에 빠진 모든 잉글랜드 사람이, 극우정당에 가입한 모든 팬들이 다 라이터를 던지고 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사회적 원인을 별도로 하고, 그 행위자는 가려내서 처벌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그와 같은 인종차별 행동이 벌어지지 않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현상적으로는, 우리의 여러 경기장에서 유럽과 같은 인종차별이 확연히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 세계 수많은 선수들이 밀집하는 유럽의 경기장과 우리의 현황을 기계적으로 비교해서는 곤란하다. 

본질은 ‘혐오와 차별’이고 나라마다 그것이 다른 형태로 드러난다. 지금 바로 당장 인터넷의 스포츠 뉴스 댓글들을 보라. 그야말로 ‘댓망진창’이다. 한 해 농사가 끝난 프로야구를 시작으로 얼마 전 숨 막히는 시즌이 마무리된 프로축구까지, 그리고 겨울 시즌의 배구와 농구 등 거의 모든 종목에 걸쳐 단순한 비아냥을 넘는 인격 모독이 벌어진다. 중국이나 일본의 팬과 선수들에 대해서는 일상에서 써서는 안될 모욕적인 언사가 난무한다.

팬들의 발언이 즉발적이라면 그 종목에 관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랜 위계질서에 따른 폭력적 발언이나 차별의 시선이 구조적으로 드리워져 있다. 생중계 와중에도 거친 말을 하는 감독이 있을 정도이니 일반 팬도 거의 없는 유소년 경기에서는 말해 무엇하랴. 여기에는 단순히 감독과 선수 혹은 선배와 후배라는 위계만 있는 게 아니다. 체육계열 학과에서 ‘여학생’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 및 혐오와 배제 또한 심각하다. 방송 중계에서 ‘용병’이란 말이 사라지고 ‘외국인 선수’라는 말로 ‘순화’되었다 해서 우리의 스포츠에서 혐오와 차별이 줄고 있는 게 아니다. 아니, ‘용병’이란 말도 일부 중계나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을 보니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 듯하니, 씁쓸하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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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2017)에서 시국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대학생이 고문 중 사망하자 경찰은 은폐를 목적으로 시신 화장을 검찰에 요청한다. 그런데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공안부장 최 검사(하정우)는 이를 거부한다. 그가 부검을 요구한 건 법질서를 확립하려는 신념이나 망자에 대한 연민도 있었지만 검찰이 매번 안기부나 경찰, 군인들에게 밀리는 꼴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후배를 시켜 다음날 가장 일찍 출근한 기자에게 대학생 한 명이 고문받다 죽었다는 사실을 슬쩍 흘린다. 이 사실이 기사화되자 전국이 들썩이고 그는 곧 옷을 벗는다.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오던 최 검사는 사건의 경위를 따져 물으며 쫓아오는 기자를 보자 자신의 차 옆에 부검 감정서 등의 문건이 담긴 상자를 남겨두고 떠난다. 기자는 이를 보도하고 민주화 열기는 더 고조된다. 영화를 보며 사람들은 검사와 기자의 ‘은밀한’ 교류를 음습하게 느끼지 않았고 그래서 기자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당시 기자들의 근성과 땀나는 취재에 박수를 보냈다.

MBC <PD수첩>은 지난 3일 ‘검찰 기자단’ 편을 통해 검찰발 받아쓰기 관행과 검언유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검찰이 정보를 내주는 기자와 정보를 제공하는 순서를 선별하면서 단독과 특종에 열 올리는 기자들을 길들였으며, 기자들의 민원을 검사가 들어주고 기자들은 검사들의 승진을 위해 맞춤 하마평을 쓰는 등 유착 현상이 벌어졌다는 게 비판의 주요 내용이었다. 방송에선 검사가 브리핑 중에 피의사실을 슬쩍 흘리거나, 기자 앞에 조서를 놓아둔 채 통화를 핑계로 자리를 비켜주는 일이 있었다고 전했다. 대법원 기자단 일부는 성명을 내며 검사가 조서를 두고 자리를 비키는 일은 현재는 물론 과거 법조 선배들도 들어본 적 없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조직은 조직끼리 싸우기 일쑤고, 조직은 밖에서 보면 한 덩어리 같지만 가까이 보면 계파가 나뉘어 갈등하고, 또 개인마다 생기는 이견이 불쑥 표출되기도 한다. 기자는 밀착하여 따라가다 미세한 균열을 파고들면서 누군가의 실수, 밀고, 폭로 속에 담긴 진실을 포착한다. 그래서 땀내 나는 외곽 취재도 있어야 했고 공익적 가치가 있다면 출입처가 의도를 품고 던지는 소스도 냉큼 짚어 기사를 낼 때도 있었을 거다. 그런 모든 방식이 작동하기 위해 ‘불가근불가원’이라는 원칙이 공유되었고 출입처 제도를 필요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런 교류’가 없었다고 하면 출입처와 기자단 운영은 그럼 왜 있어야 했는지 오히려 반문하게 된다. 그러니 <PD수첩>에서 문제 제기한 장면들이 없었다고 말하기보다는 부작용도 있지만 기존 관행에 순기능도 있었다고 말했어야 한다.

최근 ‘검찰 기자실 폐쇄’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하자 하루 만에 2만명 가까이 동의를 했다. 많은 시민들이 과거에는 용인했던 시스템이 이제는 무용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출입처와 기자들이 맺는 관계에서 오는 실익이 시민들에게 잘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과거 사법농단이 벌어지고 있을 때 그 시스템으로 무엇을 했는지, 그동안 검찰이 준 소스를 최대한 검증해서 보도했는지 언론에 묻고 있다. 그리고 검찰이 흘리는 게 여느 출입처가 내는 정보와 다른 피의사실이라면 그걸 단독 기사로 쏟아내는 걸 더 이상 수긍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지금의 출입처, 기자단 체제는 강력한 검찰에 대응할 목적으로 견고해졌다고 짐작하지만, 기성 매체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후퇴했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시민의 이익을 외면했다면 이를 개선할 변화가 필요하다.

PD들은 ‘숙련 과정 없이 짧은 취재 기간을 거쳐 긴 프로그램을 내는 건 무리라는 우려’ 속에서도 그간 유의미한 공간을 만들어왔다. 주류 언론이 출입처와의 관계로 순치됐다는 비판을 받을 때 비주류 탐사 프로그램들은 굵직한 사건을 계속 터트려왔다. 이번 <PD수첩> 방송은 그간 취재의 빈 공간이 얼마나 컸는지 설명하면서 스스로가 어떻게 오랫동안 살아남았는지를 설명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속보경쟁에서 벗어나 사실검증에 집중하는 매체들이 시청자들의 호응을 조금씩 끌어내고 있다. KBS는 출입처 취재 관행을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진보 매체들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한 것 같다. 제도에는 항상 명암이 있는데 지금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변화를 응원한다.

<김신완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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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장수가 지게에 독을 산더미처럼 짊어지고 팔러 나섭니다. 그러다 어느 곳에서 무거운 지게 내려놓고 지겟다리로 받친 뒤 잠깐 쉰다는 게 깜박 잠이 듭니다. 꿈에서 그는 지고 나간 독마다 모두 팔아 빈 지게와 두둑한 주머니로 돌아옵니다. 그 돈으로 가축을 사서 기르고 또 내다 팔아 더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그렇게 집도 마련하고 꿈에 그리던 장가도 갑니다. 떨리는 첫날밤 새신부의 옷고름을 푸는 장면에서 독장수는 너무 좋아서 잠결에 활개를 칩니다. 그러다 지겟다리를 탁 쳤고 지게가 엎어지면서 장사 밑천이 와장창 깨집니다. 이것이 인터넷과 어린이 속담책에 나오는 ‘독장수구구는 독만 깨트린다’의 엉터리 유래입니다. 근거 없이 지어낸 이야기라서 ‘구구’는 설명치 못하거든요.

옛날에는 구구단이 없어 5단 이하는 암산으로, 6단 이상은 주먹구구로 셈했습니다. 7×8이면 양손에 각각 7과 8을 꼽고, 편 것끼리는 더하고 꼽은 것끼리는 곱합니다. 그러면 2+3=5, 3×2=6 해서 56이 나옵니다. 이것이 ‘주먹구구식’으로 알려져 있는 그 구구입니다(상인들은 보통 3차방정식까지 가능하다는 ‘산(算)가지’로 셈했습니다). 손가락셈에만 정신 팔려 걷다보면 길바닥 못 보고 돌부리에 걸려 어이쿠! 자빠지게 되지요. 게다가 독은 주먹구구셈으로는 머리 터질 많은 이윤이 남습니다. 결국 막연한 미래를 미리 셈하다 제 발치도 못 봐 큰 낭패만 본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현실성 없이 허황된 계산을 하고 삽니다. 그런 심리에는 어쩌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나 대책 없는 장밋빛 미래라는 현실회피가 있을지 모릅니다. 미래가 코앞에 있다 믿으면 들떠서 코앞밖에 안 보이고, 아직 갈 길이 멀다 여기면 걷는 발길을 봅니다. 한 치 앞도 모를 세상, 먼 미래일수록 변수는 더욱 커집니다. 셈은 걸은 뒤에 해야 비로소 틀림없습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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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대중잡지 ‘삼천리’에 재밌는 설문조사가 하나 실렸다. “내가 서울 여시장이 된다면?”

일제강점기 서울시장(경성부윤)은 당연히 일본인이 맡아 했다. 그러니 조선인, 더구나 여성은 시장이 절대 될 리 없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을 가정한 질문이었다. 당대 유명 여성 대부분은 이 질문에 “모든 서울시민에게 영양주사를 한 대씩 놓고…” “허영심을 근절하기 위해 화장품 세금을 100배 인상하겠다”는 식의 진지하지 않은 ‘공약’을 남발했다. “제가 서울 여시장이라니 천지개벽을 하게요”라며 상상 자체를 부정한 답변도 있다. 

하지만 이들과는 달리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은 여성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화가 나혜석이다. 나혜석은 전차 요금 구역제 폐지를 서울시정의 첫 번째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전차 서대문선과 마포선 간, 동대문선과 청량리선 간, 광희문선과 왕십리선 간을 하나의 구역으로 변경하겠다”고 했다. 당시 동대문과 남대문을 경계로 교외선으로 환승하려면 전차 요금 5전을 더 내야 했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이 주로 살던 도심에서 밀려나 교외에 거주하면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조선인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1930년대 경성에서도 교통 문제가 중요한 현안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주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 거리를 누볐던 전차는 점차 버스의 장애물로 변했다. 전차는 교통혼잡을 이유로 결국, 1968년 11월 멈췄다. 

전차가 사라지고 버스가 들어선 서울은 해마다 변했다. 

누군가 기막힌 요술이라도 부린 것일까. 차도는 계속 늘어났는데 도로는 여전히 막히고, 보행자는 밀려났다.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인 차량이 내뿜는 배출가스로 인한 경제 손실이 날로 커지면서 전 세계 대도시들은 도심에서 차량 운행을 제한하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1999년 스페인 폰테베드라에서 시작된 ‘차 없는 도시’ 캠페인은 어느새 세계 도시들의 공통 과제로 자리 잡았다. 지난 10월1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교통국 이사회는 2025년까지 가장 붐비는 거리인 ‘마켓 스트리트’를 전면 보행길로 바꾸는 안을 승인했다. 스웨덴 스톡홀름, 싱가포르, 영국 런던 등에서는 ‘차 없는 도시’로 가는 중간 단계로 ‘교통혼잡세’를 걷고 있다. 서울시도 이제는 보행자 우선의 ‘걷는 도시 서울’을 내세운다. 주요 도로 찻길을 줄이고 모두 보행자와 자전거에 내줄 방침이다. 4대문 안은 공해유발차량 진입을 차단하고 이달부터 과태료를 부과한다. 

세계 도시들이 차 없는 도시를 추진하는 것은 단순히 공기질을 개선하고,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IT 전문매체 와이어드는 차 없는 도시 시행 효과에 대해 “도심의 차량 수가 줄어들수록 보행자들의 사회적 교류가 늘어 행복지수가 높아진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에서 증명됐다”고 분석했다.

보행친화도시는 찻길을 줄이고 자전거길을 넓힌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다. 2017년 12월 종로 중앙버스전용차로(BRT)를 개통하고 그 일대 보도를 넓혔지만, 보행자들이 늘어나 실제로 주변 상권이 살아났는지는 의문이다. 따릉이를 타고 광화문과 경복궁 주변만 다녀봐도 시내에 얼마나 많은 구릉지가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서울 시내를 걸어보라. 돈을 지불하지 않고는 쉴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걷고 싶은 도시는 어디서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이런 점에서 서울시가 내년부터 운행하기로 한 ‘녹색순환버스’는 반길 만하다. 

85년 전 질문으로 돌아가자. “내가 시장이 된다면?” ‘땡땡~’거리며 전차가 도심을 달리게 하겠다. 종로 같은 구도심은 버스전용차로보다 전차가 더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전차는 매연도 배출하지 않는다. 마침 ‘노면전차’를 운행할 수 있도록 도로교통법이 개정됐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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