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언론은 황교안 대표의 단식 이후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반등했다고 보도했으나, 사실은 그 직전에 잠깐 빠졌던 2~3%포인트를 다시 회복했을 뿐이다. 6개월 전과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5월 말에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22%였는데 며칠 전인 11월 말 지지율은 23%로 6개월 동안 딱 1%포인트 올랐을 뿐이다(이하 갤럽 자료 기준). 중간에 많이 올랐다가 떨어진 것도 아니다. 소위 ‘조국사태’가 정점으로 달려가던 10월 중순에 27%를 찍은 것이 가장 많이 오른 것이었다. 자유한국당에 가장 유리한 판국에서도 민주당 지지층 2~3%를 빼앗아 오는 것에 그쳤고, 이들은 한 달 만에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갔다.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왜 오르지 않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두 가지 요인의 결합이 가장 중요하다. 첫째, 국정농단과 탄핵을 거치면서 많은 국민들에게 자유한국당은 아예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당한 것이다. 거대 보수정당이 이런 처지에 놓였다는 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암울한 현실이다. 둘째, 이런 현실을 타개하려면 자유한국당은 앞장서서 보수의 혁신을 해나가야 할 텐데, 당장 눈앞에 보이는 답이 없다보니 자꾸만 태극기부대를 곁눈질하면서 퇴행한다. 특히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시대착오적이다. 황 대표는 원외이자 당내 세력 부재의 한계를 절실히 느낄 것이다. 결국 그의 선택은 장외투쟁으로 일관하는 것인데, 그가 당 대표로 재임한 10개월 동안 국민들이 기억하는 것이라곤 장외투쟁밖에 없을 정도이다. 제1야당의 대표로서 정치력을 발휘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보이지 못했다. 나 원내대표 역시 원내대표 1년간 오직 투쟁 일변도의 선택만 해왔다. 그의 선택을 보다보면 15년 전 4대 개혁입법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데자뷔가 겹친다. 강경투쟁과 종북좌파 몰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그때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몇 가지 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내부 분열과 투쟁이 심각했으나 지금의 민주당은 너무 안 싸워서 문제다. 당시에는 과거사법, 사학법, 언론법 등 사안별로 각당과 계파가 조금씩 입장이 달라서 여당은 여러 개의 전선을 동시에 막기가 어려웠으나, 지금은 선거법과 공수처법으로 전선이 단순하다. 여당으로서는 비교적 수비하기가 쉽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 당시 박근혜 대표는 지금의 나 원내대표가 가지지 못한 ‘아빠 찬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뭘 해도 무조건 지지해주는 세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때와 같은 전략은 상당히 다른 결과를 낳을 것이다.

사실 지지율이 변하지 않는 것은 다른 정당들도 마찬가지다. 6개월 전 민주당 지지율은 39%, 엊그제 지지율은 38%이다. 조국사태로 민심 이반이 가장 심각했을 때 36%까지 내려간 것이 전부이고 금방 회복되었다. 11월 마지막 주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38%, 자유한국당 23%, 무당층 24%, 나머지 정당 모두 합쳐 15% 남짓이고, 이것은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패턴이다. 자유한국당의 반대쪽 끝에 서있는 청와대와 민주당이 더 이상의 합의정치적 선택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 패턴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36%를 지켰으니 마지노선을 확인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공연히 중도적인 모습을 보였다가 지지층 이탈만 불러올 것을 걱정할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당장 기댈 데가 태극기부대 밖에 없어서, 민주당은 지지층 이탈이 걱정돼서 각각 자신들의 영역에 머문다. 그러는 사이 민생은 엉망이 된다. 아마도 외국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199개 법안 필리버스터에 공감할 국민이 몇이나 될까. ‘민식이법’ 원포인트 국회도 성사시키지 못하는 여당의 정치력에 점수를 줄 국민이 몇이나 될까. 여야가 합의한 데이터 3법도 통과시키지 못하는 국회가 성장을 얘기하고 민생을 얘기할 때 공감해줄 국민이 몇이나 될까. 24%의 무당층은 갈수록 더 실망하고 불신을 쌓아간다.

정확히 4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새누리당이 여당이고 20대 총선을 5개월 앞둔 2015년 11월 마지막 주 자료이다. 지지율은 새누리당 40%, 새정치민주연합 23%, 무당층 30%이다. 여야가 바뀌었을 뿐 지지율은 지금과 판박이처럼 똑같다. 총선 결과는 어찌 되었나. 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이다. 그 당시 민주당은 대선에서 박근혜를 도왔던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영입하는 등 파격적인 혁신으로 지지율 격차를 뒤집었다. 지금 양당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 38%이든, 23%이든 지금 가진 것은 총선에서는 의미가 없다. 마침 보수정권과 진보정권 창출에 모두 기여한 경험이 있는 김종인 이사장은 이번에 중도 빅텐트를 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진보, 중도, 보수 중 누가 혁신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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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시.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킨다. 아이의 아침, 도시락, 준비물 등을 챙겨야 한다. 쉽게 이부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와 실랑이를 하여 깨우고 먹이고 학교에 보내고 난 뒤 밀린 집안일을 부리나케 끝내고 9시 즈음 집을 나선다. 도서관까지 걸으며 다음주 그림책축제 참석자 섭외, 도서관 업무협의, 아이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등으로 통화를 멈출 새가 없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도서관 운영회의를 해야 한다.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은 보조금사업의 정산과 다음달부터 3개월간 진행할 3기 교육프로그램의 기획안 작성이 급하다. 3개월 뒤에 도서관 임대계약을 갱신해야 하는데 보증금과 월세가 많이 오를 것 같아서 걱정이다. 운영회의가 끝난 뒤 곧바로 그림책축제 진행과 관련된 점검회의를 연다. 2시간여의 회의가 끝난 뒤 곧장 구청으로 이동해야 한다. 2시 약속이라 점심 먹을 틈도 없어서 김밥으로 요기를 한다. 구청에서 도서관 지원사업과 관련된 협의를 마친 후 축제 물품을 구매하러 움직인다. 이동하면서 모레 진행할 교육강좌의 강사와 통화한다. 물품 구매가 끝나니 어느덧 오후 4시. 도서관으로 이동하며 남편에게 아이 하교를 챙겨달라 부탁한다. 곧바로 2주 후 진행할 청소년 교육프로그램 참가자 학부모와 통화하여 상담 일정을 정했다. 구매한 물품을 도서관에 두고 바삐 집으로 이동한다. 저녁 챙겨주고 7시까지 다시 도서관으로 와서 저녁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한다. 지원사업 결산보고서 작성도 마무리해야 하고 새로운 사업의 제안서도 작성해야 한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오전 2시. 잠깐 눈을 붙이고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마을에서 서로 배우고, 아이들을 이웃과 함께 키워보자는 일에 뛰어든 어떤 작은도서관 마을활동가의 최근 일상이다. 마을살이를 위해 들이는 하루 18시간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없다. 오히려 활동 중에 자기 지갑을 열어야 할 때가 많다. 공공지원사업을 통해 책정되는 보조금은 용처가 제한되어 있어서 활동가 개인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하니 가족의 지지가 꼭 필요하지만, 정작 우리 가정과 아이는 많이 챙기지 못한다는 현실에 오래도록 인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활동가가 지쳐간다. 헌신에 대한 사회의 인정이 절실하다. 하지만 행정과 의회는 조그만 보조금도 아깝다며 줄일 기세고 지역의 오랜 기득권인 관변단체나 주민자치위원 중 일부는 활동가들을 ‘마을좌파’라며 몰아세우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매정하기만 하다. 

울리히 벡은 일찍이 마을활동처럼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민노동에 대해 다루었다. 임노동은 경제적으로 인정받고, 가사노동은 사회적 또는 법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에 비해 시민들의 공익활동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인식이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오래도록 세상을 지배해 온 신자유주의, 대의제, 공화주의이다. 시민노동은 대표적인 자원봉사에 해당한다. 즉 자발적인 공공봉사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나 대의제 및 공화주의는 공공영역을 넓게 인정하는 데에 인색하다. 신자유주의는 웬만한 건 시장에 맡기라 하고 대의제와 공화주의는 자격을 갖춘 대표만 공공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사상체계에서 작은도서관을 유지하기 위한 하루 18시간의 치열한 마을활동은 단지 개인활동이고 평범한 주민의 소꿉놀이에 불과할 뿐이다. 세상을 각박하게 하고 사회문제를 키우는 나쁜 생각이다. 

누군가는 공공영역을 애써 좁히려 하지만, 쉽게 보면 자신의 방을 나서는 순간 다른 가족과 관계를 맺는 준공공영역에 발을 들이는 것이고, 집을 나서는 순간 타인들과 크고 작은, 직간접적 관계를 맺는 공공영역에 발을 들이는 것임이 자명하다. 참여민주주의나 보편복지는 이런 관점을 기초로 쌓아 올릴 수 있다. 

공공영역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히 국가여야 하지만, 공공행정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을활동과 같은 시민노동이 필요하다. 이를 존중하고 인정하여 세심히 지원하기 위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 있고 따뜻한 태도가 절실하다.

<강세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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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직속 특별감찰반원으로 근무했던 검찰수사관 ㄱ씨가 숨졌다. ㄱ씨는 지난해 김기현 전 울산시장 가족·측근에 대한 경찰수사에 청와대가 개입했는지를 밝혀줄 참고인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그가 비리첩보 작성에 간여하고, 경찰수사과정에 개입했다고 검찰은 의심한다. 그런 그가 검찰 출석 3시간을 앞두고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 대상자가 수사 도중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불행한 사태가 또 벌어진 것이다.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 ㄱ씨 빈소를 조문한 뒤 나오고 있다. ㄱ씨는 지난 1일 검찰 조사 3시간을 앞두고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오후 6시33분쯤 대검찰청 간부들과 함께 병원에 도착한 윤 총장은 오후 9시쯤 빈소를 나왔다. 윤 총장은 빈소를 오갈 때 ‘검찰의 압박수사가 있었다고 보나’ ‘유서에 (윤 총장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있는데’ 같은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ㄱ씨 죽음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숨지기 전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가족에 대한 배려를 바란다”는 메모를 남긴 것을 두고, “검찰이 별건수사로 압박하자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도 “민정비서관실 업무와 관련한 과도한 오해와 억측이 고인에 대한 심리적 압박으로 이어진 게 아닌지 숙고한다”며 “특감반은 법과 원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 ㄱ씨가 어떤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했다. ㄱ씨 사망 이유로 검찰의 무리한 수사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검찰은 그러나 “별건수사로 ㄱ씨를 압박한 사실이 전혀 없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자유한국당은 “(ㄱ씨가)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전화가 많이 와서 괴롭다는 심경을 토로했다더라”며 청와대 압박설을 제기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먼저 죽음의 원인을 밝혀야 한다. 더 이상 안타까운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도 시급하다.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도 안된다. ‘김기현 수사’ 역시 차질 없이 진행돼야 한다.   

지금까지 검경의 수사내용을 종합하면, 당시 김 전 시장 측근에 대한 경찰수사는 청와대가 첩보를 건네기 전부터 진행됐다. 검찰이 일부 사안에 대해 내사를 벌이다 종결한 사실도 확인됐다. 그러나 왜 청와대 첩보가 지방선거에 영향을 줄 시점에 전달됐고, 청와대가 경찰로부터 수시로 수사 상황을 보고받았는지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 역시 1년6개월이나 놔두고 있다가 갑자기 수사를 시작해 ‘조국 잡기’ 수사란 의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검찰에 유리하거나 필요한 사안들을 몇몇 언론을 통해 흘리고 있다는 의심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다가는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놓더라도 정치권은 물론 국민 모두가 수긍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럴수록 검찰은 공명정대하게 수사를 해야 한다. 별건수사 금지 등 낡고 못된 수사관행 개선 등 검찰개혁 역시 늦춰서는 안될 일이다. ㄱ씨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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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공원일몰제에 따라 내년 7월부터 해제되는 도시공원에 대한 중앙정부의 용지매입 예산 지원방안이 무산되면서 전국의 수많은 도시공원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 도시공원일몰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원 설립을 위해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한 뒤 20년이 넘도록 공원조성을 하지 않았을 경우 도시공원에서 해제하는 제도다. 땅 소유자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일몰이 필요하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일몰이 확정되기 전 자치단체가 매입해 보존하는 것이 순리지만 재정상태가 열악한 자치단체가 적지 않은 현실을 감안해 중앙정부가 선별적으로 국고를 지원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관련 법개정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선별적 국고지원 방안이 국토교통부의 반대로 제외됐다. 사유지가 아닌 국공유지에 한해 도시공원 해제를 10년 유예하는 방안은 의결됐지만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로 이마저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정부가 선별적 국고 지원에 반대하는 것은 ‘지방사무’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한다. 중앙정부가 지자체 관할인 도시공원 매입까지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도시공원 조성을 열심히 해온 지방정부와의 형평성 문제까지 발생한다는 이유도 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지자체의 재정이 구조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는 데다 지자체 간 격차가 큰 현실에 눈을 감은 형식논리이자 탁상행정일 뿐이다. 

제도적 보완이 서둘러 이뤄지지 않는다면 내년 7월 이후 전국 각지에서 도시공원 용지의 훼손·난개발이 불 보듯 뻔할 것이다. 충남 천안시의 경우 시내 일봉산 공원 부지 중 30%를 2400가구 규모의 고층 아파트로 개발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2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민간사업자에게 도시공원 부지의 30%까지 개발을 허용하고 나머지를 공원으로 조성토록 하는 방식의 민간공원 사업을 추진 중인 곳은 전국에 77곳에 달한다고 한다. 

도시공원은 바쁜 일상에 지친 시민들의 소중한 휴식공간이다. 당장 공원으로 조성하지 않더라도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둘 필요가 있다. 미세먼지로 인한 건강피해가 심각해지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멀쩡한 공원용지를 헐어 콘크리트 건물로 채우는 것을 용납해선 안된다. 정부와 정치권은 도시공원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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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이 서울과학고(영재고)의 의대 진학 과열 양상을 막기 위한 개선책을 내놨다. 내년 신입생부터 의대에 진학할 경우 장학금과 교육비 등을 환수 조치하고 교내대회에서 받은 상을 모두 취소하기로 했다. 이공계 인재를 양성한다는 학교 설립 취지와는 달리 해마다 의학계열로 진학하는 학생이 4~5명에 1명꼴로, ‘의대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비판을 받자 내놓은 대책이다. 국비로 지원하는 학교인 만큼 최소한의 책무성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조치다. 실효성을 담보할 후속 방안 등을 통해 의대 쏠림·과열을 근본적으로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일 서울과학고의 ‘의학계열 진학 억제방안’에 따르면, 학교는 의학계열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에게는 일반고 학생보다 더 많이 정부가 지원하는 교육비를 환수 조치하기로 했다. 1인당 연간 500만원, 3년 1500만원 내외다. 입학 전형도 변경해 현재 지역별로 1명인 ‘지역인재 우선선발’ 인원을 2021학년도부터는 지역별 2명 이내로 2배가량 늘려 뽑기로 했다.

현재 서울과학고와 같은 전국의 과학영재학교는 모두 8곳이다. 영재학교는 영재교육법에 따라 과학·기술 인재를 키우고자 설립, 해마다 수십억원의 예산이 국비로 지원된다. 그중 서울과학고의 의대 진학률이 가장 높아 해마다 국정감사에서 지적돼 왔다. 영재학교 8곳의 의대 진학률은 평균 10%가 되지 않지만, 서울과학고는 지난해 졸업생 130명 중 30명이 의학계열 대학으로 진학해 23%를 넘었다. 2003년에 설립된 최초의 과학영재학교인 한국과학영재학교의 경우 의대 진학이 전무하다시피 한 것과 비교된다. 이 학교는 의대에 진학하게 되면 고교 졸업장을 수여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의대 진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원칙을 지켜가고 있다.

서울과학고의 개선책은 의대들의 입시 전형 변화와 맞물려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과학고·영재고 학생의 의대행은 주로 수학·과학 특기자 전형이다. 따라서 국비지원 학비 환수 등을 감수하고라도 의대 진학을 감행할 경우 사실상 이를 막기 어렵다. 교육부의 보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의대 인기가 치솟으면서 대입서열화의 정점에 의대가 자리 잡았고, 과학고·영재고는 의대로 가는 디딤돌로 여겨졌다.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 학교운영은 바로잡아야 한다. 서울교육청과 서울과학고의 조치가 효과를 거두고 다른 영재고로 확산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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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002년부터 음력 9월9일인 중양절을 시작으로 99일 동안 글을 읽고 일기를 쓴다. 올해는 10월7일부터 시작했으니 오늘이면 절반이 조금 넘은 58일째가 된다. 결국 책을 읽는 일이지만 굳이 글을 읽는다고 한 까닭은 해마다 서로 다른 주제를 정해 놓고 그 주제에 맞는 글을 찾아 읽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대여섯 해가 지날 무렵부터 주제를 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한 권의 책만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을뿐더러 책 한 권을 다 읽는 경우도 지금까지 없었다. 이 책 저 책을 뒤적여서 그해에 정해 놓은 주제에 맞는 글을 찾아 읽어야 하므로 알맞은 글을 찾는 일이 글을 읽는 일보다 더 어렵기도 하다. 

글은 대부분 고려나 조선의 사대부나 승려들이 남긴 문집에 실린 것들이다. 당연히 한자와 씨름을 해야 하는데 한자만 안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시나 산문 중 중국 고전에서 인용한 문장들이 많은 터여서 사서삼경은 물론이고, &lt;시경&gt;이나 노장 그리고 불교경전 정도는 기본으로 꿰뚫고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준비가 너무 없었다. &lt;맹자&gt;까지 공부한 알량한 한자 실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 처음에는 해가 거듭될수록 공부할 거리만 잔뜩 쌓여갔다. 가을에 글을 읽기 위하여 겨울부터 여름까지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렇게 좌충우돌, 엄벙덤벙 허우적거린 세월이 올해까지 18년이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그래도 어찌나 아는 것이 없는지 해마다 99일이라는 시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글 속, 한 글자에 막혀 서너 시간을 끙끙거리기도 부지기수였지만 그래도 그만두지 못하는 까닭은 버거운 일이기는 하지만 지나고 나면 만족감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어느 때부터는 다음에 읽을거리를 미리 준비해놓고 중양절을 기다리기도 했는데, 병치레를 했던 해는 쉬었지만 이듬해에는 퇴계 이황을 시작으로 그 제자들의 문집에서 집과 꽃을 가꾸는 이야기를 찾아 읽으려고 한 적이 있었다. 부족하나마 흥미로운 글을 제법 찾아 읽었는데 그때는 서너 달 전부터 미리 자료를 찾느라 수많은 문집을 뒤져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기도 했다. 

그렇게 자료를 찾는 동안 읽는 글은 주제와 어긋나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어긋난다고 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분류를 하여 따로 갈무리를 해 두었다. 몇 해 뒤 그것들 중 가장 불룩해진 주머니를 헐어보면 또 하나의 훌륭한 주제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글 읽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지금은 손을 놓을 수도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내 머릿속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글 주머니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올해는 그 많은 글 주머니 중에서 은둔에 관한 주머니를 풀어서 읽고 있다. 은둔의 사전적 정의는 ‘세상의 일을 피하여 숨음’이다.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닫고 돌아앉아 있는 것이나 같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일 뿐 단절과 폐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은둔이라고 하면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 골짜기에 숨는 것을 상상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은둔하는 사람을 큰 은자와 작은 은자로 나누기도 하는데 작은 은자는 깊은 산속 골짜기에 숨고 큰 은자는 저잣거리에 숨는다. 그러니 작은 은자는 앞에 말한 것처럼 단절을 꾀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큰 은자는 저잣거리에서 세상 사람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면서 자신을 드러내지도, 감추지도 않고 올곧게 스스로를 지키며 때를 기다리는 인물이다. 은둔이란 뒤돌아 앉아 문을 닫아걸고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세상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지키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요즈음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대개 은둔을 하게 되면 말을 그치게 되고 세상 속에서 존재 자체가 희미해진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가 사회 속에서 잊히는 것을 못 견딘다. 그러나 공자가 &lt;논어&gt; ‘학이’ 편에서 말하기를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고 했으며, ‘이인편’에서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아줄 만한 자가 되는 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또 ‘위령공’ 18장에 보면 “군자는 자신의 무능함을 병으로 여기고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병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였고, ‘헌문’ 32장에서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이 능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고 했다. 더구나 노자는 “나를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은 그만큼 더 내가 귀하다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익숙한 사람들이 읽으면 어이없어 할 소리일 수도 있겠다. 

올해 하필 많은 글 주머니 중에서 은둔이라는 글 주머니를 풀어 읽는 까닭은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시끌벅적해서이다. 올 한 해 특히 너도나도 개인방송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려 애를 쓰고 정치판에서는 서로를 향해 악다구니와 같은 독한 소리를 내뱉었다가 아니면 말고 식이었다. 그 목소리들은 어떤 식으로든 편가름을 강요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런 글이 있다. “사람에게 빠지느니 차라리 못에 빠져야 한다. 못에 빠지면 그래도 헤엄쳐 나올 수 있지만 사람에게 빠지면 구제할 수 없다.” 주나라 무왕이 나라를 세운 후 자신이 사용하는 세숫대야에 새기고 얼굴을 씻을 때마다 되새겨 경계로 삼았다는 글이다. 이 글에서처럼 빠져들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정치는 사람을 모으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오히려 사람을 흩어지게 하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없다. 

여하튼 내 처지가 공부방에서 날마다 은둔에 관한 글을 읽고 쓰면서 스스로 은둔하고 있는 것이나 다르지 않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즐겁고 행복하다. 해가 바뀌면 곧 글 읽기가 끝이 날 테고 99일 동안의 한정적인 은둔도 함께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까지 읽은 글에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논어>에서 말하는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누가 나를 알지 못하는 것보다 내가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두려운 일이라는 것도 함께 깨닫는다.

<이지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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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대학(大學)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가까이하며 지극한 선(善)에 이르는 데에 있다.” 유교에서 ‘대학’은 문자 그대로 큰 학문, 즉 천하를 다스리는 학문으로서 치자(治者)의 학이었다. 미래의 치자인 귀족 자제들을 모아 가르치는 교육기관의 역사는 매우 길다. 우리의 경우 고구려 때 ‘치자의 학’을 가르친 기관의 이름도 태학(太學)이었다. 하지만 고구려의 태학이나 신라의 국학 등에서 현대 대학이 기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의 대학(university) 제도는 12세기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결성된 ‘학자들의 동업조합’에서 기원한다.

학문은 인간이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이 속한 세계의 총체 및 그 구성 요소들의 본질과 운동 원리를 이해하며, 자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재설정하는 실천 활동이다. 

학문하는 인간 역시 인종, 민족, 국가, 종교, 젠더, 계층, 직업 등의 여러 범주가 중층적·복합적으로 얽힌 관계망 위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인간이다. 다만 학자는 그 관계망의 정당성을 회의하고 변화 가능성을 탐색하기 때문에 각각의 범주들과 팽팽한 긴장 관계를 맺는다. 학자는 상식과 통념을 의심하기에, 자기 시대와 불화(不和)한다. 유럽의 대학은 학문과 속세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속세와 소통하지 않고서는 대학의 생존이 불가능했다. 대학은 결국 근대 국민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국가기관의 일종, 또는 국가기관의 감독을 받는 기구로 편제됐다. 대학을 정점으로 하는 교육체계는 근대 국민국가를 직조하는 씨줄의 하나였다. 학문 공동체는 국가의 관점에 따라 국가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제국주의 시대 유럽의 학자들은 세계 도처를 다니며 제국의 척후(斥候) 구실을 했다. 그들은 전 세계의 지식을 수집하여 자국에 축적하고, 그를 학문의 자료로 삼았다. 이렇게 구축된 학문체계는 다시 유럽 국가들이 전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할 수 있게 해 주었다. 20세기 사회주의 체제를 구축한 국가들은, 공공연하게 혁명에 복무하는 학문을 요구했다. 학자들은 예정된 미래로 가는 지름길을 발견하거나 개척하는 임무를 맡았다.

유교 문화권 사람들은 ‘학자들의 동업조합’을 대학으로 번역했다. 그들에게 학문은 ‘치자의 소양’과 같은 뜻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유럽식 대학제도의 구체적 정보를 얻은 것은 1881년 조사시찰단 파견 이후의 일이었다. 시찰단의 일원이었던 이헌영은 일본에는 법학부, 이학부, 문학부, 의학부로 구성된 도쿄대학교를 비롯해 8개의 대학이 있다고 보고했다. 이후 대학 설립은 조선 정부의 주요 과제가 되었다. 1886년 육영공원 설치가 그 첫걸음이었다. 왕은 이 학교에 대해 “언어, 문자뿐만 아니라 농상(農桑), 의학(醫學), 공기(工技), 상무(商務), 이용(利用), 후생(厚生) 등 각 방면의 기술 분야를 두루 설치하여 제각기 체계를 갖추도록 명”했고, 미국인 교사들은 이 학교를 왕립대학(Royal University)이라고 불렀다.

조선 정부가 대학 설립을 구체적으로 전망한 것은 1895년 ‘교육입국조서’ 발표 이후였다. 이 해에 여러 개의 소학교가 설립되었고, 졸업생이 배출된 1900년에는 관립중학교가 개교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1904년에 대학교가 문을 열어야 했으나, 러일전쟁 와중이어서 불가능했다. 대한제국 정부는 정규 학제와 별도로 법관양성소(1895)와 의학교(1899) 등을 설립하여 대학으로 발전시킬 계획도 세웠다. 선교사들도 자기들이 세운 학교를 대학으로 발전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조선인에게는 고등교육이 필요 없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들은 식민지 원주민들에게는 치자는 물론 학자의 자격도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근대 과학이 식민지 원주민의 손에 잘 닿지 않는 곳에 있을 때 신비로움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았다. 식민지를 비(非)문명 또는 반(反)분명 상태에 묶어 두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나 유익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인들은 대학을 세워 치자와 학자를 양성하는 것이 독립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1924년, 일제는 이른바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했다. 대학 교육에 대한 원주민들의 열망을 일부 수용함으로써 식민통치를 안정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조선인 학생 비율은 3분의 1 이내로 제한되었고, 조선인 교수는 단 한 명도 채용하지 않았다. 물론 조선인도 일본이나 외국 대학에 진학할 수는 있었으나, 그 수는 극히 적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생, 또는 대학 졸업자는 바로 ‘특권층’이 되었다.

해방은 대학 교육에 대한 욕망도 해방시켰다. 미군정은 식민지하의 관립 전문학교들을 경성제국대학에 통합하여 하나의 국립 대학교를 만드는 한편, 여러 사립 전문학교들을 대학으로 승격시켰다. 

그 뒤 70년, 이제 한국은 세계에서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10대 청소년들의 삶은 대학 입시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으며, 부모들은 대학 입시제도가 사회의 형평성과 공정성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대학의 존재 이유에 대한 사회적 고민은 사라졌다. 이제 대학 졸업장은 어떤 특권도 보장하지 않는다. 신분 이동의 사다리 구실을 못한 지도 오래다. 자본의 일방적 지배를 받는 학문에 대해 성찰하는 목소리도 사라졌다. 대학 진학에 대한 욕망이 역사적 형성물이었던 것처럼, 대학 생활을 ‘인생의 시간 낭비’로 보는 생각이 자리 잡는 것도 시간문제일 수 있다. 

국가, 자본, 시민사회, 개인 모두가 자문(自問)해야 한다. 대학은 왜 필요한가? 대학을 개혁하지 않고 입시제도만 개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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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페미니즘, 군대를 말하다’라는 포럼에 다녀왔다. 성평등에 대한 논의가 걸핏하면 “여자도 군대 가라”로 귀결되는 시대에 페미니즘이 병역과 군사주의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를 논하는 자리였다. 

이때 군사주의란 군대의 존재 및 군대에 힘을 부여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지배이념이자, 위계질서와 복종, 무력의 사용이 효율적이라는 신념을 통해 사회 운영 원리를 군사화하려는 관습적 사고방식이다. 한국 사회 곳곳에 팽배한 군대문화는 군사주의에 경도된 군사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곳에서 <매드맥스:분도의 도로>(2015)를 시작으로 <원더우먼>(2017), <알리타:배틀 엔젤>(2018), <캡틴마블>(2019), 그리고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2019)에 이르기까지 최근 몇 년간 여성영웅의 형상을 탐구해 온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모아놓고 보니 ‘여성영웅’이란 대체로 군인이거나 전사였던 것이다.

이어서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다. 여성이 몸을 잘 다루고, 능력을 발휘하며, 자신과 동료들을 지켜낼 수 있다는 상상력은 어째서 이처럼 쉽게 군사주의와 만나는가? 그리고 왜 다른 어떤 영화보다 이런 영화들이 더 적극적으로 ‘페미니즘의 성취’로 받아들여지는가?

물론 여성영웅 서사가 군사화되는 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지난달 개봉해 화제를 불러모았던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그 맥락을 잘 보여준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시작이었던 1984년 작 <터미네이터>에서 사라 코너는 인류를 구원할 존 코너를 낳을 운명이었기 때문에 미래 로봇 터미네이터의 표적이 된다. 그로부터 35년 후. 끈질기게 살아남은 사라는 <다크 페이트>에 이르러 인간을 위협하는 터미네이터를 제거하는 전사로 거듭난다. 로봇을 사냥하던 중 그는 ‘가임기’ 여성 대니가 터미네이터 Rev-9에 쫓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미래에서 온 군인 그레이스와 함께 대니를 지키기 위해 나선다.

사라는 Rev-9이 (자신이 경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니의 “자궁”을 쫓는다고 판단하고, “나도 대니와 같은 상황에 놓여봐서 아는데, 그건 엿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이는 지금까지 이 세계에서 여성이 어떻게 ‘인간’이 아니라 ‘인간(=아들)을 낳는 자궁’으로만 여겨져 왔는지에 대한 비판이자,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구태의연함에 대한 자조적 코멘트다.

영화는 이에 더해 여성은 그저 어머니의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기꺼이 총을 드는 전사일 수 있다고 강변한다. 반군의 지도자는 대니의 아들이 아니라 대니 자신이었던 것이다.

오직 남성뿐이었던 영웅의 얼굴을 여성의 얼굴로 반전시키는 것. 그것이 스크린의 남성중심성을 비판하고 여성이 영화적 시민권을 얻는 방법 중 하나임을 부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평화란 상대보다 더 큰 막대기(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이라는 믿음을 뒤집지 못한다면, 여성영웅 역시 군사주의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문제는 군사화된 인식의 한계 속에서 현실의 여성도 마찬가지의 곤란에 처해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은 미국과 달리 분단 상황에서 징병제를 시행하는 국가다. 이런 국가에서 국방의 의무는 군역으로만 상상이 되고, 군역은 시민권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 동시에 남성만이 군역의 자격을 얻는다. 그러므로 시민권은 남성중심적으로 군사화된 개념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자도 군대 가라”는 비아냥에 여성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다크 페이트>의 세계에서 여자는 ‘자궁’이 되지 않기 위해 ‘반군의 지도자’가 되어야만 했다. 이처럼 군사화된 사회가 제시한 게임의 규칙 자체와 싸우지 않는다면 여성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만 남을 뿐이다. 군인을 낳고 키우는 것으로 군역의 의무를 대체하거나, 스스로 군인이 되어 군역의 의무를 다하거나.

군사화된 시민권의 개념을 넘어서 시민의 권리를 사유하는 길을 찾기 위해, 우리에게는 시민·영웅의 의미를 다시 쓰는 “평화 페미니즘”(김엘리)의 기획이 필요하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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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조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영상 자막에 쓸 ‘서체’를 사달란다. 학급 행사가 있을 때면 담임선생님의 부탁으로 활동사진을 편집해 동영상을 만드는 조카는 개인 채널을 운영하며 구독자 60여명을 거느린 크리에이터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상 편집 기술은 유 선생님에게 배웠다.

공간민들레에 다니는 학교 밖 청소년들은 이맘때면 일 년의 활동을 정리해 자기만의 책을 만든다. 책 디자인 툴을 잘 다룰 줄 아는 아이가 있기에 어떻게 익혔느냐 물으니 이 친구도 유 선생님에게 배웠단다. 기타를 잘 치는 아이도, 노래를 잘 부르는 아이도, 빵을 잘 만드는 아이도 어김없이 유 선생님의 제자다.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인 유 선생은 바로 유튜브다.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의 학습 방식이 확연히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청소년들과 문학을 공부하는데, 작품을 함께 읽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묻지 않고, 바로 휴대폰을 꺼내 검색을 한다(수업의 맥을 끊고 싶지 않아서라고 한다). 중요한 내용을 칠판에 적으면 노트에 받아쓰지 않고 다 적길 기다렸다가 찰칵, 사진을 찍는다. 

20여년 전에 비해 가르치는 이로서의 내 역할도 달라졌다. 검색만 하면 다 나오는 걸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어졌고, 대신 유의미한 주요 정보를 골라 소개하는 역할이 중요해졌다. 자료를 찾아오라고 숙제를 내주면 많은 아이들이 개인 블로그나 카페에 올라온 글을 복사해 가져온다. 망망대해 인터넷 세상에서 유효한 정보를 걸러내는 방법을 잘 몰라서다. 이번 학기, 함께 읽고 싶은 시 한 편씩 골라오라고 숙제를 줬다. 다른 정보를 접해본 적 없는 아이들 대부분이 교과서에 실린 것을 가져왔다. 전혀 출처를 알 수 없는 시도 있었다. 포털 창에 ‘유명 시’ 혹은 ‘좋은 시 추천’을 검색해 떠도는 것들을 ‘복붙’해온 것이었다.

문학수업에서 ‘정해진 시’를 해설하는 일은 의미 없음을 알았다. 아이들에겐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만나기까지의 여정을 깨우치는 과정이 필요했다. 아이들의 관심과 시의성에 맞추어 걸러낸 ‘좋은 정보’를 공유하는 데 공을 들였다. 이후엔,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 열람실로 갔다. 관심을 갖게 된 시인의 다른 시집을 뒤적이며 아이들은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찾아 서로 소개하면서 ‘아름다운 세계’를 넓혀갔다.  

학교나 학원이 아니라도, 뭐든 배울 수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좋은 것을 ‘알아보는’ 눈이 중요해졌고, 자기 동기가 더욱 절실히 필요해졌다. 국어교육의 담론은 이미 ‘한국어’를 넘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으로 넘어와 있다. 한 토론회에서 만난 국어교사들은 학생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격차를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발표 자료를 준비할 때 PPT는 물론 프레지까지 척척 해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한글 문서에 표 만드는 법도 모르는 아이들이 있단다. 온라인 세계에 오래 머무르는 것과 학습 능력은 별개의 문제라는 거다. 

디지털 학습 사회, 앞으로 학교가 없어질 거라 예측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친절한 유 선생님이 계셔도 ‘배움의 동기를 갖지 못한’ 아이들에게 인터넷은 인생을 허비하는 독일 뿐이다. 앞으로 교육의 역할은 ‘좋은 것을 알아보는 눈’을 키우며 평생 배우는 자세를 갖고 살아가도록 돕는 일이 아닐까 싶다. 온라인 기술이 학습 방식을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교육을 대체할 수는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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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 고슴도치가 살았습니다. 자식 고슴도치는 제 가시 잠재울 줄 몰라 감정 불편하면 가시부터 세웠습니다. 그러면 부모 고슴도치가 다가와 자식의 가시를 핥고 쓰다듬어 잠재우려 했습니다. 자식 고슴도치는 그게 싫어 다가온 부모를 더 가시 세워 바짝 찔렀지요. 찔려도, 그래도, 부모 고슴도치는 더 다가갔답니다.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어머니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했습니다. 그러다 쓰시던 폰이 보여 그 속을 들여다봤습니다. 저와 어머니 사이에 오간 대화들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추억과 슬픔으로 하나씩 읽어 가는데 흐름에 이가 많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폰 꺼내서 대조했더니 세상에! 어머니는 제가 성내고 골내며 짜증으로 보낸 말들은 다 지워버리고 좋아서 착하게 보낸 말들만 남겨두신 것입니다. 명치 안쪽부터 울컥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못되고 모질게 굴었어도 착하고 다정했던, 그 몇 마디 안 되는 말들만 남겨서 읽어보고 또 읽어보셨던 것입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뒤늦은 후회와 이제는 안 계신다는 그리움에 꺽꺽 눈물만 터져 나왔습니다.

“늙어서 그런지 통… 이거 어떻게 한댔지?” “저번에 가르쳐줬잖아요! 이거랑 이거, 이렇게 누르시라고요!” “너 키우느라 골이 다 빠져 그래.” “또 그 소리, 내가 뭐라고 그리 고생하시랬냐고요!” 마음과 달리 속 못 참고 불퉁댑니다. 부모의 크고 무던한 사랑을 자식은 결코 알지 못한다는 속담 ‘부모 속엔 부처가 들었고 자식 속엔 앙칼이 들었다’가 있습니다. 찢어진 가슴 깁고 덧대며 더욱 키우는 부모 맘을, 자식은 똑같은 자식 키울 때까지 모릅니다. 앙칼진 말에 베이면서도 오냐오냐 하는 마음을 영 모릅니다. 하지만 부모는 압니다. 제 성에 안 찬다고, 부모 가슴에 앙칼지게 가시 박던 속 좁던 고슴도치, 그 옛날, 그 자신을 잘 압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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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국가 대항전 중 가장 주목도가 높은 것은 역시 한·일전이다. 지난달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12를 취재하던 기자들의 주요 관심사도 누가 일본전 선발투수로 등판하느냐였다. 한국 야구대표팀은 보안상의 이유로 일본전 선발을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기자들은 공 잘 던지기로 이름난 투수들을 유력 후보로 꼽아가며 추리에 열을 올렸다. 대회가 하루하루 진행되던 어느날 문득 한 투수가 홀연히 기자들 사이에서 일본전 선발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는데 누가 봐도 뜻밖이었던 스무 살의 신예였다.

혹시나 했던 일은 일어났다. 2020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해 여유가 생긴 대표팀이 일본전 선발로 이 젊은 투수를 낙점한 것이다. 베테랑 투수가 등판할 것이라 추측했던 한국 기자들과 일본 대표팀의 허를 찌른, 흥미로운 선택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기자들만 깜깜이였을 뿐 코칭스태프는 계획이 다 있었다. 대회가 개막하기 전에 경기 운영 시나리오를 만들어놓고, 올림픽 출전이 확정되고 남은 경기에 이 투수를 쓰겠다는 밑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기자들이 감독의 용병술이나 작전 등 경기 운영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 시시콜콜 비판 기사를 쓰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현장의 야구인들은 외부인들이 알 수 없는 정보를 손에 쥐고 외부인들은 생각지도 못한 수 싸움을 한다. 더그아웃 뒤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르면서 감독에게 섣불리 훈수 두는 것은 실체 없는 허깨비와 씨름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지난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야구를 잘 모르는 국회의원 손혜원이 노련한 야구인 선동열을 야구 문제를 두고 질타하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수의 병역 특례가 발단이 된 이 국감에서 국회의원들은 국가대표 선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우승이 어려운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지 않는다”는 모욕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병역 특례를 향한 시민들의 분노에 편승했던 손혜원은 자신이 ‘야알못(아구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만 증명했을 뿐, 경솔한 언행으로 결국 역풍을 맞았다.

하지만 대표팀 감독이 국감에 불려나간 이 초유의 사태는 야구인들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는 프리미어12 국가대표를 선발할 때도 부지불식간 작용했다. 행여 꼬투리 잡힐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철저히 기록 위주로 선수를 선발했다.

그러나 야구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에겐 기록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선수 개개인의 개성과 장점은 통계에 오롯이 담기지 않는다. 수비할 때 첫발을 내딛는 방향과 반응 속도, 상대 투수의 버릇을 읽어 2루를 훔치는 눈썰미, 큰 경기일수록 배짱이 두둑해지는 투수의 담력을 숫자는 표현하지 못한다. 기록만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하려고 하면 오히려 이모저모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선수를 배제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국방부는 지난달 21일 ‘병역 대체복무제도 개선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가대표 선발의 구체적 기준·과정 및 관련 자료를 대외에 공개하는 등 공정성·투명성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야구도 이 방침을 따르게 될 것이다. 도쿄 올림픽 대표팀 선발의 첫 번째 원칙은 물론 성적이다. 같은 성적이면 병역 미필자를 뽑았던 관행도 국민 정서에 비춰보면 반성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손혜원 프레임’에 갇혀 쓸모 있는 선수를 발탁하지 못하는 것도 전력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키는 대표팀 구성은 불가능하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전문가의 시야로, 공정하면서도 소신 있게 선수를 선발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야구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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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유곡은 아니지만 ‘심’ 자로 시작하는 심학산 아래 웅크리고 지내면 뜻밖의 일을 겪기도 한다. 새벽 3시에라야 새벽 3시의 생각은 찾아오는 것. 북으로 가던 철새가 고도를 낮추어 퉁소를 연주하는 심야 음악회도 있다. 그렇게 몇 밤을 건넌 뒤 서울로 나오면 어디 먼 고대(古代)로부터 외출했다는 느낌이 들 만큼 도시는 부황하고 아찔하다. 그제는 몇 가지 볼일을 몰아서 서울의 가장 번화한 곳으로 가야 했다. 따뜻한 곳만 따뜻하고 추운 곳은 아주 추운 서울. 무려 20층짜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행사에 참석한 뒤 사기접시 속의 점심을 먹고 옛날 궁리출판의 자리에서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구름으로 가는 징검다리처럼 의젓한 인왕산.

서촌의 통인시장 근처 길담서원에 들렀다. 오래전 마음이 허할 때, 이 벽의 책들을 다 읽으면 뭔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했다가 아주 인상적인 말씀을 들은 바가 있었다. 다시 같은 질문을 한다면 이번에는 무슨 진전된 답을 주실까. 손바닥만 한 정원을 지나고 현관을 들어서자 벽마다 책들이 빼곡하고 한쪽의 한뼘미술관에서는 풍경화가 전시 중이다. 고래(古來)의 공기가 흐르는 듯한 길담서원. 사방의 은은한 문자향을 즐기다 결국 마음속 질문은 꺼내지 못했다. 곧 서울을 떠나신다고요. 공주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내년 봄 백제의 고도(古都)에서 답을 듣는 것으로 미루고 때이른 작별인사만 드렸다.

황현산과 김용옥. 두 권의 책을 사고 일어서는데, 학예실장님이 문밖까지 나오셨다. 화단에서의 대화. 이 녹색 때문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네요. 하늘메발톱, 산국, 인동초, 맥문동, 조팝, 찔레, 앵두나무. 한철을 함께한 동무들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 겨울 문명을 일구려는 꽃밭. 이름을 듣고 보니 아주 쓸쓸하지도 낯설지도 아니했다. 푸석한 토질을 가리키며 능청 늘어진 줄기에 빽빽하게 보랏빛 열매가 달려 있다. 좀작살나무였다. 내 은연중의 질문을 눈치채고 무슨 답을 주시는 게다. 안의 저 책이 아니라 바깥의 이 열매! 공중을 빠져나가는 한 입구처럼 병목현상이 벌어지는 좀작살나무 열매를 보다가 깊숙이 절하고 나의 고대로 얼른 복귀했다. 좀작살나무, 마편초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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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국회는 그해 마지막 날인 12월31일 새해 예산안을 가까스로 처리했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여권의 ‘4대 개혁 입법’을 예산안과 연계시켜 반대하면서 처리가 늦어졌다. 예산안이 ‘새해’ 하루 전인 세밑에 처리된 것은 1961년 이후 처음이었다. 아무리 늦어도 해를 넘기지는 않은 마지노선이 무너진 건, 최악의 여야 관계였던 2013년도 예산안 처리 때다. 당시 새해 예산안은 세밑 처리가 유력했으나 막판에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지면서 해를 넘겨 1월1일 오전 6시에 처리됐다. 1960년 헌법에 준예산제도가 도입된 이래 처음으로 새 회계연도 개시일을 넘긴 것이다. ‘처음’만 어려웠던 것일까. 2014년도 예산안은 또다시 자정을 넘겨 1월1일 오전 5시쯤 국회 문턱을 넘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자유한국당 규탄 문구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위 사진). 한국당 의원들은 이날 국회 로텐더홀에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보장 등을 요구하며 국회의장과 민주당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아래).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헌법이 정한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12월2일)을 뭉개는 것은 물론 해를 넘기는 일이 벌어지자, 여론에 밀린 국회는 마지못해 결단(?)을 했다. 국회선진화법을 만들면서 ‘예산안 자동부의제’를 신설한 것이다. 예산안 심사를 기한(11월30일) 내에 마치지 못하면 다음날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도록 했다. 덕분에 2015년도 새해 예산안은 2014년 12월2일 처리됐다. 2002년 이후 무려 12년 만에 ‘헌법’을 준수한 것이다. 그리고 2015년과 2016년 연달아 12월3일 꼭두새벽에 예산안이 통과됐다. 엄밀하게는 법정시한을 넘겼지만, 본회의 차수 변경을 해서라도 나름 시한을 지키려 한 결과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회는 다시 예산안 법정 시한을 무력화시켰다. 2017년에는 공무원 증원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12월6일에야 예산안이 처리됐고, 2018년에는 12월8일로 더 늦어졌다.

올해 다시 새해 예산안 처리가 법정 시한을 넘겼다. 정쟁과 태업으로 시간을 허비한 바람에 아직 증감액 심사도 마치지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패스트트랙 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치가 예산안마저 볼모로 붙잡았다. 예산안에 대해서는 필리버스터를 신청할 수 없지만, 여하튼 비정상적 ‘지각 처리’가 뻔하다. 국회선진화법 이전으로 돌아간 셈이다. 또다시 입법부에 ‘헌법을 지키라’고 소리쳐야 하는 상황이다. 이래저래 20대 국회는 정말 최악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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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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