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인플레이션 지긋지긋해서 문 정권을 지지했었는데, 싹 이번에 다 물러나야 돼. 여당이나 가릴 것 없이 싹 물러나야 돼. 바닥이 다 드러났어. 용서할 수가 없어요.”

강렬했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즈음해 마련된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서 방송된 한 시민의 울분에 찬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동산 가격 폭등을 바라보는 서민들의 분노가 이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이제 좌절로 향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한국감정원 발표를 보면, 지난달 서울 집값은 전달보다 0.5% 올라 지난해 9·13 부동산대책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시행 등 정부 규제책에도 끄덕하지 않고 있다. 전셋값도 동반상승하고 있다. 지난달 전셋값 상승률은 0.14%로 최근 4년 만에 가장 높았다. 집값은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꿈틀대기 시작했다. 당시엔 정치적 불안감이 해소되면서 생기는 일시적 현상이란 분석도 많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9·13 대책 등 규제책이 나올 때마다 잠시 주춤했을 뿐 상승세는 계속됐다. 그렇게 내내 가격이 오르면서 서울 강남의 아파트는 로또복권 1등이 돼도 사지 못할 수준이 됐다. 당첨 확률이 814만분의 1인 로또복권 1등보다 뽑힐 가능성이 더 높고 받는 돈도 더 많으니 서울 강남권 청약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하다.

문 대통령은 그날 국민을 향해 “더 강력한 방법으로 부동산은 반드시 잡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었을까. 정부는 대대적인 실거래가 단속을 펼치며 탈세 의심사례를 적발해냈다. 지난 8~9월 서울에서 신고된 공동주택 거래 2만8140건 중 부동산거래신고법 위반이 의심되는 2228건을 가려낸 것이다. 그런데 거래 대상의 10% 정도인 위반 의심사례 모두가 투기적 거래라고 해도 또 그걸 강력히 처벌한다고 해도 집값을 잡을 수 없다. 나머지 90%는 계속 집을 사러 다닐 것이다. 집을 사려는 이유는 향후 집값이 오를 것이란 시장 참여자들의 확신 때문이다. 단속과 처벌만으로 집값을 잡을 수 없다. 결국 시장의 기대심리를 제어하지 못하는 정책은 또 다른 변죽만 울릴 게 뻔하다.

정부의 단속 결과는 부동산에 대한 서글픈 단면도 확인시켰다. 부동산이 투기 수단을 넘어 부를 대물림하는 통로가 된 것이다. 실제로 한 미성년자는 부모와 친족에게서 6억원을 증여받고 서울 서초구의 11억원짜리 아파트를 전세 끼고 매입했다. 강남4구와 마포·용산 지역에 이런 의심사례가 집중됐다고 한다. 집 하나가 재산 증식, 노후 대비, 상속까지 해결해주니 집에 대한 열망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종합적이지도 포괄적이지도 그렇다고 세밀하지도 않다. 여론이 아우성치면 그동안 만지작거리던 대책주머니에서 구슬 하나 꺼내는 모양새다. 시장을 만족시키지도, 놀라게 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한다. 정책에 대한 내성만 키워 ‘백약이 무효’일 정도다.

부동산값 상승은 무주택 서민들의 실질적인 주거 수준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높은 집값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집이 아닌 방에서 산다. 청년들은 이미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경향신문이 지난달 보도한 ‘오! 평범한 나의 셋방’ 기획기사와 동영상을 보면 5평 이하 면적에 부엌, 침실, 화장실을 꾸역꾸역 넣는다. “너무 숨 막히고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에서 이들은 지낸다. 조용하고 편안하게 발 뻗고 자고, 화장실도 여유롭게 쓰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한 층 16개 방에 화장실과 세면대를 공용으로 사용하는 1평 고시원 거주자는 방이 아니라 관(棺)에서 자는 것 같다고 했다.

부동산뿐 아니다. 계층이동 사다리로 역할을 해온 교육 분야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방향성마저 잃어버렸다. 줄곧 ‘정시 축소·수능 확대’를 내세웠던 정부는 서울시내 주요 대학의 정시 비율을 40%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공론화를 거쳐 지난해 8월 ‘정시 30%’를 내놓았던 정부의 방침을 불과 1년 만에 스스로 허무는 일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대입과 관련해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불공정하다는 여론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것이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지난 10년간 이어져온 수시 확대 기조를 단번에 바꾸라는 얘기는 아니었다. 여전히 공교육의 후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사교육 시장은 ‘손님맞이’에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공정이 점수에 따른 줄세우기에 그치는 것인가.

성공한 정부가 되려면 선거 공약을 정책으로 구현해 이를 실현시키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임기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들은 목표가 불명확하고 실행은 정교하지 못하다. 지금도 안되는 것이 다음이라고 된다는 보장이 있는가. 언제까지 국회 탓, 야당 탓으로 정책의 빈곤함을 가릴 것인가.

“여당이나 가릴 것 없이 싹 물러나야 돼. 바닥이 다 드러났어. 용서할 수가 없어요.” 넉 달 뒤면 총선이다.

<박재현 사회에디터 겸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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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블로그에서 1970년대 개롱리를 추억하는 글을 봤다. 개롱리는 지금의 서울 송파구 오금동과 거여동에 걸쳐 있던 마을이라는 것도 그 글을 보고 처음 알았다.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그의 글에는 지금으로선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송파구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었다. 여름이면 개울에 가서 물장구를 치고, 양버들 나무를 잘라 긴 칼을 만들어 놀고, 만화방에서 텔레비전 만화영화 <벰 베라 베로>를 보느라 어둑어둑한 저수지 둑길을 혼자 걸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는 그의 기억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로 시작하는 옛이야기처럼 까마득했다.

그런데 10여년 전에도 서울 양재동 개울에서 놀았다는 한 아이의 기억은 놀라웠다. 예닐곱 살에 다세대주택이 빼곡한 양재동의 한 동네에서 살았다는 아이는 여름에 동네 친구들과 개울에서 온종일 놀았다는 얘기를 하면서 눈을 반짝였다. 아마도 공원을 가로지르는 개울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와 함께 유치원에 다니고, 해 질 때까지 꼭 붙어 다니던 친구들은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하나둘 떠났다고 했다. 그의 기억 속엔 동네 친구들이 떠나던 날들이 또렷이 남아있다. 그의 집도 그때 이삿짐을 꾸려야 했다. 반지하 집에 살았던 그는 서울 인근에선 집을 얻을 수 없는 가정 형편을 잘 알고 있었다.

“제가 떠나기 전날, 윗집에 살았던 친구가 선물을 줬어요.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들을 내놓고 하나 고르라고 했지요.”

그는 친구가 선뜻 내준 물건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그중에서 가방에 거는 열쇠고리를 골랐다 했다.

“밍크털이 달린 열쇠고리였어요. 그건 사실 걔 할머니 거였어요. 내가 그걸 고르자 당황하더라고요.”

그는 아직도 친구가 준 선물을 간직하고 있다. 아마도 그가 살던 동네엔 다세대주택에 세 들어 살던 이들은 엄두도 못 낼 고층아파트가 들어섰을 것이다. 도시는 아이들의 따뜻한 추억을 짐작도 못할 테고,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던 이들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흔히 도시를 잿빛이라 하는 것은 여러 빛깔의 기억을 지운 탓이다. 그 도시는 여전히 누군가의 기억을 지워가며 덩치만 부풀리고 있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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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천혜의 해양 자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바다가 오염되면 수산업 등 해양 관련 산업과 국민 생활에 피해가 발생하고 피해 복구에 소요되는 기간과 비용도 막대하다. 

기름 유출사고는 최근 5년간 연평균 258건이 발생해 645㎘의 기름이 바다에 흘러나왔다. 해양쓰레기 피해도 연간 수산업 매출의 10% 정도인 3800억원에 이른다. 플라스틱이 부서져서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 문제도 심각하다. 먹이사슬에 의해 인체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해양오염은 해양환경에 대한 인식 부족과 부주의로 주로 발생한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중요하고, 체계적인 해양환경교육도 필요하다. 해양수산부는 해양오염에 관한 인식을 높이고 법정교육을 추진하고자 2010년 해양환경공단에 해양환경교육원(이하 교육원)을 설립했다.

교육원이 제공하는 법정교육인 해양오염방지관리인 교육은 ‘해양환경관리법’ 제121조에 따라 선박 및 해양시설의 해양오염방지관리인을 임명한 자, 해양환경관리업에 종사하는 기술요원을 채용한 자를 대상으로 한다. 각종 법정기록부의 기록 및 보관, 해양오염방지설비의 정비 및 작동상태 점검, 기름 등 폐기물을 이송·배출하는 작업의 지휘·감독, 해양오염 방제 기자재의 관리, 해양오염사고 발생 시 신속한 신고 및 응급조치 방법 등을 교육한다. 어업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방제교육은 해양환경 보전, 해양오염 사례 연구, 해상 및 해안 방제방법에 관한 사항, 각종 방제 기자재 사용방법 등을 가르친다. ‘해양환경 이동교실’은 8t 트럭을 개조해 만든 시설이다. 갯벌 가상현실(VR), 해양오염 방제 등 다양한 콘텐츠를 갖추고 지역 초등학생들을 직접 찾아가 생생한 체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원은 80여명의 해양환경교육 전문가가 학교·회사·어촌계 등 전국 곳곳을 찾아가 해양환경교육을 실시하고, 일선 현장에서 활동하는 민간단체와 협력 사업을 진행해 해양환경교육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활동으로 해양환경교육원은 최근 5년간 7421회의 법정교육 및 해양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28만8743명의 교육생을 배출했다. 교육원은 지난 10월 해양환경교육의 수준 향상을 위해 강사단의 역량을 강화하고자 해양분야 사회환경교육지도사 국가자격제도를 도입했다.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자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해양환경공단은 다양한 해양환경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깨끗한 해양환경 조성과 공공기관으로서 사회적 가치 실현에 앞장서 나갈 계획이다.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해양환경교육에 참여해 바다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켜 나가는 일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박승기 | 해양환경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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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군자는 자신이 처한 위치에 맞추어 행할 뿐 그 밖의 것은 바라지 않는다.” 사서삼경에 빠져 살았던 옛사람들은 과연 <중용>의 이 구절을 금과옥조로 삼아서 욕심 없는 삶을 살았을까? 부귀든 빈천이든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흔들림 없이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군자를 이상적 인간형으로 여겨왔다는 사실 자체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늘 남과 비교하며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한 채 남 탓, 하늘 탓을 일삼는 것이, 예나 이제나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18세기 문인 조귀명은 평생 병석에 누워 있는 날이 많았다. 종일 서재에서 책만 읽곤 하던 그에게, 가끔 방문을 열면 내려다보이는 뜨락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세계였다. 작은 뜨락이지만 쏟아지는 달빛을 듬뿍 받아 안기에는 충분하다. 그 빛에 어른거리는 꽃과 나무의 그림자들은 맑은 물속에 마름풀이 이리저리 떠다니는 듯 마음까지 일렁일렁 춤을 추게 한다. 고즈넉한 즐거움을 누리는 그에게 누군가 물었다. “그대의 뜨락은 너무 작은 것 아닙니까?” 조귀명은 크고 작음이란 마음에 달린 일일 뿐이라고 답하고는,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들의 근심은 자기 것은 작다고 버려두고 남이 지닌 큰 것을 구하는 데에 있다. 늘 자신보다 잘살고 높이 오른 이들을 바라보며 부귀와 명예를 추구하는 삶에는 끝내 만족이 있을 수 없다. 지금 나는 내 낡은 집으로 제운루와 낙성루의 화려한 건물을 대신하고, 내 작은 뜨락으로 금곡원과 평천장의 아름다운 정원을 대신하며, 내 서투른 시문으로 이백과 한유의 훌륭한 작품을 대신한다. 그 곁에서 거닐고 그 속에서 휘파람 부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들 하는 오늘날, 애써 구하려 하지 말고 처지에 만족하며 살아가라는 충고는 시대착오로 보인다. 거기 기대어 내놓은 조귀명의 자기 위로 역시, 벗어나기 힘든 비교의식의 쳇바퀴를 떨쳐낼 최선의 방도는 아닐지 모른다. 그보다는 행복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다만 정작 심각한 건, 선택조차 해보지 못한 채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욕망을 좇는 삶이다. <중용> 구절이, 그리고 한 문인의 고백이, 분수에 맞게 살라는 케케묵은 충고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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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기는 한국인이 먹은 지 오래됐다. 선사시대 울산 반구대암각화에 고래 무리가 그려져 있고, 경상도에선 제사상에도 올랐다. 지금은 울산(장생포)과 포항(구룡포)의 명물이다. 수육·육회·구이·전·탕으로 먹는 고래고기는 지방이 많은 꼬리 살이 가장 맛있다고 알려져 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대체로 혀에 남는 맛은 쫄깃함, 느끼함, 고소함이다.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밍크고래는 소매가 8000만원, ㎏당 15만원선에 팔린다. 멸종위기에 처한 고래는 1986년 세계적으로 포획을 금지했다. 한국에서도 조사·연구 목적의 포획에 국한하고, 혼획(그물에 걸려 죽거나 좌초·표류)한 고래만 해경에 신고한 뒤 수협을 통해 유통·해체·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값비싼 고래도 ‘합법고기’와 ‘불법고기’로 갈라지는 셈이다.

2016년 4월 장생포 고래시장이 떠들썩해졌다. 울산경찰청이 밍크고래를 불법 포획·유통한 4명을 사법처리한 지 한 달 만에 울산지검 검사가 고래고기 압수품 27t 중 21t(30억원 상당)을 업자에게 되돌려준 일이 벌어졌다. “불법 구분이 어렵고, DNA 검사도 오래 걸린다”며 고래축제에서 팔 수 있게 ‘환부(還付)지휘서’를 내준 것이다.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이 부임한 것은 다음해 7월이다. 고래 압수품이 가짜 유통증명서로 환부된 사실을 뒤늦게 안 경찰은 반발했고, 환경단체는 검사를 직권남용으로 고발했다. 앞서 고래연구소는 환부된 고기가 불법이라는 유전자 분석을 내놨고, 업자의 변호사가 울산지검 검사였던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이 변호사를 겨눈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여러 차례 기각했다. 전관·향검(鄕檢)·환경 문제가 뒤엉킨 고래고기 사건이 검경의 수사권 충돌로 번진 격이다.

세상의 눈이 다시 울산 고래고기에 꽂혔다. 2018년 1월11일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특감반원 2명이 울산에 간 이유를 두고서다. 환경단체가 고래고기 사건을 규명해달라고 청와대에 청원한 지 이틀째 된 날이었다. 작금의 진실 공방은 당시 울산시장 측근 비리를 보러갔는지, 고래고기 사건을 탐문했는지가 핵심이다.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 오는 9일 황 청장이 출간하는 책 제목에도 고래가 나온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도 물음표 많은 미제로 남아 있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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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인가, 페이스북 친구들 사이에선 한 해가 끝나갈 무렵이면 ‘올해의 영화’ 다섯 가지나 ‘올해의 책’ 다섯 가지 같은 것을 꼽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치러진다. 한 번도 참여해본 적이 없다. 결정을 내릴 수 없어서다. 마음속으로 순서를 매겨보다가도 왜 이것은 들어가고, 저것은 빠져야 하는지 스스로 설득이 안된다. 대개는 목록 다섯 개를 채우지도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좋았는지를 고를 수 있을 만큼 풍성한 삶을 살았는데, 나는 그것도 못 채울 정도로 얄팍한 1년을 보냈나 싶어 쓸쓸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서열을 매기는 일은 관점을 드러낸다. ‘나만의 목록’이라며 책이나 영화, 노래를 골라 올리는 일도 사실은 “나는 어떤 취향의 사람이야”를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서열을 매기는 일은 권력행위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고 공표할 수 있는 주체에게는 힘이 실린다. 무엇보다도 서열을 매기는 일은 어떤 일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만큼, 그 선택의 범위 안에 들지 않은 다른 일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내고 잊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서열을 매기지 않는 채로 올해 내맘에 어떤 흔적을 남긴 글과 말, 사건들을 떠올려본다.   

“개인의 불안전한 행동이나 위험한 행동은 반드시 그 배경이 되는 원인이 존재한다. 개인의 불안전한 행동을 탓하기에 앞서 그 행동의 원인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야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도 발전회사는 사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피해를 입은 ‘사람’ 내지 ‘행동’을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현장 순회 점검 시 설비 이상 여부를 확인하고 이상 발견 시 구체적인 원인을 기록하고 보고하도록 되어 있는 지침을 가장 충실하게 따랐던 고인을 스스로를 죽인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역설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청년비정규직 고 김용균 1주기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마치고 고 김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광화문 분향소에서 분향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9월에 발간된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조사결과 종합보고서’는 내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가, 누구의 고통 위에 나의 안녕이 불안하게 서 있는가를 피할 도리 없이 들여다보게 해주는 기록이었다. 600쪽이 넘는 보고서는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여 스러진 청년노동자의 죽음의 원인을 100개가 넘는 표와 그림으로 건조하게 기술한다. 그러나 행간에서는 피가 튄다. 이 보고서는 지금도, 훗날에도 2019년의 한국 사회를 증언하는 참혹한 사료로 남을 것이다. 

한껏 늘어져있던 휴일 저녁, 구하라씨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소스라쳤던 느낌은 오래 떨쳐지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은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사람의 손을 놓친 아득함이었다. 최진리(설리)씨와 구하라씨는 오랜 시간 악성댓글과 그것을 공장생산하듯 확산하는 대중매체가 휘두르는 폭력에 노출돼 왔지만, 한국 사회는 그 폭력을 스타가 흔히 겪는 유명세로 치부하며 방관해왔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 '벌새'의 한 장면. 콘텐츠판다·엣나인필름 제공

나의 알량한 자책이나 과잉된 책임감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김보라 감독이 만든 영화 <벌새>의 대사들이다. 한문학원의 영지 선생님은 강남 아파트촌의 철거민 컨테이너를 보며 불쌍하다고 말하는 열네 살 제자 은희에게 “함부로 동정할 수는 없어. 알 수 없잖아”라고 말한다. 머지않아 은희는 사라진 영지 선생님을 “이상하다”고 평하는 학원 원장에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라고 맞선다. 타인을 대하는 윤리가 어떤 겸허를 갖추어야 하는지를 단단하게 함축한 말이다. 지극히 적은 사회적 맥락만을 경험하고 사는 주제에 이런저런 세상일을 다 아는 듯이 말하다가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과속방지턱처럼 불쑥불쑥 내 안에서 솟아오를 때면 부끄러워진다. 

2020년엔 달라질까. 소설가 김금희는 뭘 하며 살아갈지 앞날이 막막한 두 친구의 대화 속에서 희망이나 계획, 혹은 반성 같은 단어 대신 이런 다짐을 주고받게 한다. “잘은 모르지만 나빠지지는 않으려고.” “그래, 나빠지면 안되지. 그거면 되지.”(<아이리시 고양이> 중)

속절없이 다가온 12월, 주문을 외듯 그 말을 따라해 본다. 나빠지지 않겠다고 해. 어디서든 그러자고.

<정은령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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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서울 서초경찰서를 압수수색했다. ‘김기현 측근비리’ 경찰 수사에 대한 청와대 개입 의혹사건의 검찰 수사를 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검찰수사관 ㄱ씨의 휴대전화와 메모 등을 확보했다. 이는 청와대 개입 의혹과 사망사건 수사를 위한 것일 터이다. 

사망사건 피해자의 유류품 분석은 사망원인 확인을 위해 필요한 절차다. 통상의 경우 검찰의 지휘를 받아 경찰이 진행한다. 수사 내용도 검경이 공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검찰은 휴대전화 포렌식에 경찰 입회는 허락했지만 내용 공유는 거부했다. ㄱ씨 휴대전화는 청와대 개입 의혹 사건 측면에서 중요한 열쇠일 수 있다. 하지만 ㄱ씨 사망사건에서는 거의 유일한 증거이기도 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12월 4일 (출처:경향신문DB)

ㄱ씨 사망 배경과 관련해 검찰은 결코 자유로운 입장이 아니다. 그가 남긴 메모를 보면, 검찰이 별건·강압 수사를 했다는 의심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휴대전화를 독점한 채 수사한다면 ‘셀프 수사’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게 해서 수사 결론을 낸들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경찰은 ‘증거 절도’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일리가 있다. 

청와대 개입 의혹 사건 수사와 별개로 인권 차원에서 ㄱ씨의 사망 원인 규명 작업은 대단히 중요하다. 더욱이 지금은 검찰의 강압·밀실 수사를 막기 위한 검찰개혁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져나오고 있는 시점 아닌가. 검찰은 “신속한 수사를 위해 압수수색을 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지금 문제는 신속한 압수수색이 아니다. 검찰의 ㄱ씨 사망사건 수사 전담이 과연 합당하냐다. 

가뜩이나 정치권을 중심으로 검찰 수사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여권에선 검찰의 별건수사 가능성을 흘리면서 검찰책임을 거론하고 있다. 청와대도 ㄱ씨가 동료들과 나눈 통화내역을 공개하면서 검찰을 압박했다. 반면 ㄱ씨가 청와대 업무와 요구에 시달렸다는 보도도 나온다. 검찰의 압수수색도 서초 경찰서장이 현 정권과 친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자유한국당은 국정조사 카드를 꺼냈다. 조국사태에 이어 ㄱ씨 사망사건을 두고 또다시 국론이 분열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ㄱ씨 사망사건은 어느 때보다 한 점 의혹도 없도록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수사가 필요하다. 국민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절차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수사 결론에 대해서도 이견이나 논란이 없을 터이다. ㄱ씨 사망 원인 수사를 검찰이 전담하는 방안은 재고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특별수사팀을 구성·운영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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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21일 경향신문이 산재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1200명의 명단을 1면에 게재했다. 1면을 꽉 채운 명단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구구절절한 어떤 말보다도 강력했다.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1200명의 명단이 가리키는 이정표는 무엇일까? 신문은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실업이 문제고 최저임금이 중요한데 왜 산재일까?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51)가 26일 서울 중구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재단 출범식에 참여해 자전거 탄 아들 김씨의 그림과 손을 맞대고 있다. 조문희 기자

사실 산재는 노동운동이나 노동연구에서도 주변부에 속한다. 고용이나 임금 문제에 비해 당사자 수가 적은 데다 전문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논문도 사회학자보다 의료인이 쓴 게 많다. 산재추방운동은 현재 노동안전보건운동으로 불리는데 당사자운동에서 대책위 구성 같은 지원활동을 거쳐 노조활동의 일부가 됐다가 최근에는 건강권운동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1987년 김성애의 투신자살을 계기로 전개된 인천지역 산재노동자들의 경인국도 가두시위가 당사자운동에 해당한다면 1988년 문송면 수은중독 사망사건과 원진레이온 산재피해의 진상조사에는 외부 전문가가 대거 결합했다. 또 전노협과 민주노총의 출범 이후 노동운동 차원에서 전개됐다가 최근에는 산재 당사자와 활동가가 결합한 ‘반올림’ 같은 단체의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운동 주체에서도 알 수 있듯 산재 문제는 노동운동의 차원을 넘어선다. 노동을 넘어선, 건강과 생명에 관한 문제이자 노동권을 넘어선, 인권의 문제다. 1200명의 명단이 독자들에게 준 깊은 울림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고용과 임금에도 노동자 생존이 걸렸지만 계급 문제, 진영 간의 다툼으로 비치면서 외면받는 게 현실이다. 비정규직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하면서도 구의역 김군과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의 무참한 죽음엔 쉽게 공감하는 게 사람들의 심리다. 당위적 운동이 아닌 존재론적 인간, 진영을 넘어선 보편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독자들과 공명하겠다는 게 경향의 속셈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산재 문제 또한 계급의 영역이다. 어느 학자는 반올림운동을 일컬어 ‘노동자 육체의 총체적 저항’이라고 했다. 돌려 말하면 산재는 노동자 육체의 숨겨진 미래다. 운이 좋아 피할 수 있을지언정 노동자로 사는 한 노심초사 대비해야 할 숙명과도 같다. 이뿐만이 아니다. 산재는 노동자 자녀의 숙명이기도 하다. 계급사다리가 걷어치워진 지금 가난하지만 성실한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게 됐다. 가난은 나태와 무능력의 상징이 됐으며 ‘엄친아’라는 단어의 유행은 부잣집에서 태어나면 성격도 좋을 것이라는 암시가 됐다. 매스컴에서는 연예인 엄친아의 조건으로 부모의 배경과 재력을 들고 있으며 부모의 그것은 자식의 상품성을 보증하는 잣대가 됐다. 일하며 공부하는 고학생은 성실의 표본이 아니라 노력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상징이 됐고, 가난은 곧 죄의 다른 말이 됐다.

최근 한 아이돌그룹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제작자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어느 기사에서는 그를 “유전자부터 남달랐다”고 표현했다. 부친은 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고 친척 형은 유명 게임업체 의장, 외삼촌은 전 국회의원이다. 이들이 좋은 유전자의 출처라면 1200명은 좋지 않은 유전자의 소산이거나 출처인 셈이다. 좋은 유전자와 좋지 않은 유전자가 아예 분리돼 섞이지 않고 살아가면 그나마 좋으련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좋은 유전자의 배경에는 좋지 않은 유전자의 희생이 있다는 게 문제다.

1999년 6월22일 대우중공업 노동자 이상관이 산재사고로 입원 중 강제퇴원조치를 당한 뒤 음독자살했다. 강제퇴원조치는 ‘IMF 극복을 위한 고통분담 대책’으로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 532억원을 줄이면서 비롯된 일이었다. 당시 공대위는 공단 이사장의 화형식을 거행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 임명된 이사장은 1993년 노동부 국장으로 있을 때 불법취업 외국인이 임금체불이나 산재보상과 관련한 소송을 제기할 경우 강제출국 조치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서울고법이 불법취업 외국인에게도 산재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판결한 뒤 하루 만의 일이다. 톨게이트 노동자와 관련해 기시감이 드는 일이다.

연좌제를 끄집어내려는 게 아니다. 거꾸로 연좌제가 없어졌으니만치 유전자, 엄친아 운운하며 계급대물림을 비호하는 일도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이 승부수를 던진 것 같다. 조국사태를 겪으면서 다른 언론사와의 차별성을 진영논리를 넘어선 보편적 정의를 지향하는 것에서 찾으려는 것 같다. 쉽지 않은 길이다. 최초의 진영논리는 계급전선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투를 빈다. 지금의 진영논리는 많이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정의의 지향이 오히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위한 계급전선에도 보탬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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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집회, 농성, 삭발로 이어진 투쟁의 끝이 단식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국회 마비. 하기야 일년 내내 굶주린 말이 이제 와서 힘차게 달리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조국의 법무장관 사퇴도 끝은 아니었다. 유재수 의혹, 하명 수사의혹이 꼬리를 문다. 한국은 2020년이라는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을까? 2019년이 출구를 잃고 제자리를 맴돌 것만 같다.

한국 정치로부터 좋은 소식을 듣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느 새 사람에 대한 투자는 SOC 투자 증가로, 재벌개혁은 재벌 중심 성장으로, 양극화 해소는 경제활력 제고로 대체됐다. 평화에 정성을 쏟는데 국방비는 보수집권기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제는 불평등을 얼마나 해소했는지, 보통 사람의 삶이 나아졌는지 따지는 일도 별로 없다. 2019년 경제성장률 2% 달성이 모든 정책의 최종 목표치가 된 마당에 삶의 개선 운운하는 자체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국회를 마비시킨 보수야당의 행태가 말해주는 것처럼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골키퍼가 있어서 골을 넣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야는 총선에서 시민의 지지를 받겠다고 공천 물갈이 경쟁을 한다. 절반 물갈이를 자랑하기도 한다. 절반을 포기해야 할 만큼 정치에 실패한 정당이라면 간판 내리고 퇴장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국 정당은 그러는 대신 절반을 먹잇감으로 내주고 나머지 절반을 두 배로 늘리는 자가 증식을 한다. 물갈이가 변화로 보이도록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주체의 혁신 없이도 기성 정치를 재생산할 수 있다.

저물어가는 2019년의 끄트머리에서 한 해를, 아니 문재인 정부 집권기 전체를 돌아보면 ‘정치는 도대체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가’ 하는 생각에 비관주의자가 되기 쉽다. 하지만 비관론에 빠지기 전에 앤서니 다운스의 <경제이론으로 본 민주주의>를 펼쳐봤으면 한다. “정당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 선거에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 이기기 위해 정책을 만든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정책은 득표 혹은 지지율 제고의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정당은 오직 공직 획득을 통해 얻게 되는, 소득·명성·권력을 위해 행동한다’는 그의 가설은 현실 정치를 둘러싼 많은 의문을 풀어준다.

가령, 개별 현안에 대한 평가가 낮은데도 국정 전반의 지지율은 높은, 불일치 문제를 보자. 정당은 물론 지지자도 권력 획득과 유지를 더 중시한다. 정책은 부차적이다. 열성 지지자는 더욱 그렇다. 이들은 정책 때문에 집권자를 지지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책과 다른 국정을 편다는 이유로 지지를 철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차이는 없다.

다운스의 경험. 대학 2학년 때 학생회장에 출마, 10개 정책을 공약했다.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정책을 실현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나의 동기는 특정한 정책을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보다는 오로지 당선되고자 하는 욕심이었다. 이런 행동은 내가 나중에 발전시킨 이론과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당선된 이후 나는 10개 목표를 거의 완수했다. 그러나 대다수 학생들은 무관심했다.”

현실 정치가 본래 그런 것이라면, 한국 정치를 특별히 비관할 이유가 없다. 어떤 이들은 헌법을 개정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없애지 않는 한 미래가 없다고 한다. 3권 분립 체제에서 권력의 크기는 상대적이다. 국회가 저 모양이라면 대통령 권력은 계속 커 보이겠지만, 제 역할을 하면 작아보인다. 1987년 이후 지금까지 헌법은 그대로지만, 대통령 권력은 점차 분산되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당 총재를 겸하면서 공천권을 독점하고, 사법부·언론을 통제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양당제는 다당제로 변하고, 당내 민주화는 진척됐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찰리 채플린이 말했다. 한국 정치를 일상의 눈으로 보면, 변화를 느낄 수 없다. 하지만 30년 전체를 보면, 정치발전을 목격할 수 있다. 정치가, 우리가 매일 불평하는 것의 단순 반복이었다면 한국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낙관은 근거가 있다. 

낙관주의자가 되기에는 현실이 어둡고 멀리 내다볼 여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 이 방법을 권한다. 신영복 선생이 제안한 층간 소음 해법이다. 위층 아이를 만날 때마다 사탕을 주고 친해지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소음에도 짜증이 덜 난다고 한다. 정치와 친해보자. 고대 이집트인도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했다. 낙관주의자가 될 수 없으면, 낙관적 비관주의자 혹은 비관적 낙관주의자라도 돼 보자. 그러면, 2019년 12월도 그럭저럭 넘길 수 있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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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의 두번째 후속조치 이행경과보고서에도 한국인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 지난 2일 게재된 ‘일본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후속조치 이행경과보고서’는 일본이 2017년 처음 제출했던 보고서와 달라진 내용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일본은 2015년 7월 하시마(군함도) 탄광 등 강제노역 시설 7곳을 포함한 메이지 시대 산업시설 23곳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세계유산에 포함된 야하타제철소, 미이케 탄광, 하시마 탄광은 조선 노동자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일본은 일부 시설에서 한국인 등이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 노역한 점을 인정하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2017년 12월 제출한 첫 이행경과보고서에서 일본은 ‘강제(forced)’라는 표현 없이 “2차 세계대전 때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일본 산업을 지원(support)한 많은 수의 한반도 출신자가 있었다”고 했을 뿐이다. 정보센터도 나가사키현 현지가 아니라 1000㎞ 넘게 떨어진 도쿄에 설치하기로 했다. 이번 보고서도 2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2001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독일 에센의 촐페어라인 탄광 산업단지에는 “강제 노역은 독일 최대 제조업 공장 안에서 특히 잔인하게 이뤄졌다. 루르 공업 단지에서는 6000명 이상의 유대인이 살해됐다”고 쓰여있다. 독일의 이런 솔직한 고백 덕에 이 시설은 등재 결정도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잘못된 과거라 하더라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주변국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모범답안이다. 

지난달 22일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조건부로 유예하고, 일본도 수출규제를 풀기 위한 협의에 나서기로 하면서 한·일관계는 최악의 단계를 벗어날 계기를 맞았다. 하지만 감정의 앙금이 두꺼워 언제든 양국관계가 파탄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있다. 이런 시점에 일본이 반성 없는 보고서로 한국인들을 자극한 것은 유감천만이다. 일본은 약속한 대로 한국인의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한다. 세계유산위원회가 권고한 대로 주요 당사국인 한국과의 대화에도 나서야 한다. 과거사만 나오면 지우고 감추려드는 태도로는 국제사회의 존중을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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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21일 경향신문이 산재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1200명의 명단을 1면에 게재했다. 1면을 꽉 채운 명단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구구절절한 어떤 말보다도 강력했다.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1200명의 명단이 가리키는 이정표는 무엇일까? 신문은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실업이 문제고 최저임금이 중요한데 왜 산재일까?

사실 산재는 노동운동이나 노동연구에서도 주변부에 속한다. 고용이나 임금 문제에 비해 당사자 수가 적은 데다 전문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논문도 사회학자보다 의료인이 쓴 게 많다. 산재추방운동은 현재 노동안전보건운동으로 불리는데 당사자운동에서 대책위 구성 같은 지원활동을 거쳐 노조활동의 일부가 됐다가 최근에는 건강권운동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1987년 김성애의 투신자살을 계기로 전개된 인천지역 산재노동자들의 경인국도 가두시위가 당사자운동에 해당한다면 1988년 문송면 수은중독 사망사건과 원진레이온 산재피해의 진상조사에는 외부 전문가가 대거 결합했다. 또 전노협과 민주노총의 출범 이후 노동운동 차원에서 전개됐다가 최근에는 산재 당사자와 활동가가 결합한 ‘반올림’ 같은 단체의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운동 주체에서도 알 수 있듯 산재 문제는 노동운동의 차원을 넘어선다. 노동을 넘어선, 건강과 생명에 관한 문제이자 노동권을 넘어선, 인권의 문제다. 1200명의 명단이 독자들에게 준 깊은 울림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고용과 임금에도 노동자 생존이 걸렸지만 계급 문제, 진영 간의 다툼으로 비치면서 외면받는 게 현실이다. 비정규직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하면서도 구의역 김군과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의 무참한 죽음엔 쉽게 공감하는 게 사람들의 심리다. 당위적 운동이 아닌 존재론적 인간, 진영을 넘어선 보편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독자들과 공명하겠다는 게 경향의 속셈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산재 문제 또한 계급의 영역이다. 어느 학자는 반올림운동을 일컬어 ‘노동자 육체의 총체적 저항’이라고 했다. 돌려 말하면 산재는 노동자 육체의 숨겨진 미래다. 운이 좋아 피할 수 있을지언정 노동자로 사는 한 노심초사 대비해야 할 숙명과도 같다. 이뿐만이 아니다. 산재는 노동자 자녀의 숙명이기도 하다. 계급사다리가 걷어치워진 지금 가난하지만 성실한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게 됐다. 가난은 나태와 무능력의 상징이 됐으며 ‘엄친아’라는 단어의 유행은 부잣집에서 태어나면 성격도 좋을 것이라는 암시가 됐다. 매스컴에서는 연예인 엄친아의 조건으로 부모의 배경과 재력을 들고 있으며 부모의 그것은 자식의 상품성을 보증하는 잣대가 됐다. 일하며 공부하는 고학생은 성실의 표본이 아니라 노력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상징이 됐고, 가난은 곧 죄의 다른 말이 됐다.

최근 한 아이돌그룹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제작자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어느 기사에서는 그를 “유전자부터 남달랐다”고 표현했다. 부친은 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고 친척 형은 유명 게임업체 의장, 외삼촌은 전 국회의원이다. 이들이 좋은 유전자의 출처라면 1200명은 좋지 않은 유전자의 소산이거나 출처인 셈이다. 좋은 유전자와 좋지 않은 유전자가 아예 분리돼 섞이지 않고 살아가면 그나마 좋으련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좋은 유전자의 배경에는 좋지 않은 유전자의 희생이 있다는 게 문제다.

1999년 6월22일 대우중공업 노동자 이상관이 산재사고로 입원 중 강제퇴원조치를 당한 뒤 음독자살했다. 강제퇴원조치는 ‘IMF 극복을 위한 고통분담 대책’으로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 532억원을 줄이면서 비롯된 일이었다. 당시 공대위는 공단 이사장의 화형식을 거행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 임명된 이사장은 1993년 노동부 국장으로 있을 때 불법취업 외국인이 임금체불이나 산재보상과 관련한 소송을 제기할 경우 강제출국 조치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서울고법이 불법취업 외국인에게도 산재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판결한 뒤 하루 만의 일이다. 톨게이트 노동자와 관련해 기시감이 드는 일이다.

연좌제를 끄집어내려는 게 아니다. 거꾸로 연좌제가 없어졌으니만치 유전자, 엄친아 운운하며 계급대물림을 비호하는 일도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이 승부수를 던진 것 같다. 조국사태를 겪으면서 다른 언론사와의 차별성을 진영논리를 넘어선 보편적 정의를 지향하는 것에서 찾으려는 것 같다. 쉽지 않은 길이다. 최초의 진영논리는 계급전선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투를 빈다. 지금의 진영논리는 많이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정의의 지향이 오히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위한 계급전선에도 보탬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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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전 세계에서 국제협약을 제일 안 지키고 세계평화를 자주 위협하는 ‘불량국가’는 어디인가? 단연코 미국과 일본이다. 1987년 미국과 소련은 핵탄두 장착용 중·단거리 미사일을 폐기하고자 중거리핵전력조약을 체결했으나, 트럼프는 올 2월 탈퇴 뜻을 밝혔고 푸틴도 맞대응을 했다. 이는 실제 조약 파기로 이어져 핵무기 경쟁이 냉전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트럼프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이 “미국 이익에 반한다”며 2017년 탈퇴를 선언했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을 줄이려고 전 세계가 마련한 약속을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1위인 미국이 깬 것이다.

국의 이런 행태는 뿌리가 깊다. 하워드 진이 쓴 &lt;미국 민중사&gt;를 보면, 미국 정부는 인디언과 400여건이나 조약을 맺고 서명했지만 단 한 건도 안 지켰다. 해마다 수만명이 살상되는 지뢰를 제거하는 협정에 100여개국이 서명했는데 미국은 하지 않았다. 국제적십자에서 ‘집속탄 사용 중지’를 각국에 호소했지만 미국은 거부했다. 집속탄은 수천개 알갱이탄이 쏟아져 인명을 대량살상하는 무기로 미국은 베트남전과 걸프전에서 이를 사용한 전력이 있다. 1999년 로마에서 열린 유엔 회의에서 미국은 상설 국제전범재판소 설립에 반대했다. 미국 군 지도자들이 법정에 설 수도 있음을 두려워한 것이다.

미국은 핵폭탄을 실전에 사용한 유일한 나라다. 한국인은 일본인 다음으로 원폭 피해를 많이 입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징용자가 많아 한국인은 피폭자 7만명, 사망자 4만명에 이르렀다. 미국은 정치경제적 이득을 노려 베트남, 그레나다, 파나마, 이라크, 니카라과, 과테말라 등 수십개국을 침공하거나 공작을 벌임으로써 독재정권을 수호하거나 선거로 집권한 정부를 전복했다.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등은 북한, 이라크 등을 ‘깡패국가’(rogue state)라 불렀으나, 미국의 지성 촘스키는 군산복합체인 미국이 바로 깡패국가라고 비판했다.

일본은 전쟁 명분을 조작하거나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작전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였다. 청일·러일·중일·태평양전쟁이 모두 그랬다. 태평양전쟁 때도 진주만을 기습한 뒤 포고문을 전달하는 수법을 썼다.

방위비 분담금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둘러싸고 한·미·일이 갈등하고 있는데 두 상대방이 이런 나라임을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 한·미관계는 ‘혈맹’이라며 동맹이 깨지면 큰일날 줄 아는데, 트럼프에게 ‘혈맹’은 없다. 이슬람국가(IS) 퇴치를 위해 함께 피 흘려 싸운 쿠르드를 배신하고 철군한 걸 보라. 중앙일보 이하경 주필은 ‘주한미군 철수는 한·미 모두에 자해행위’라고 썼다. ‘주한미군 철수의 칼자루는 트럼프가 쥐고 있다’며 ‘우리는 미국에 필요한 나라가 돼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안보 컨설팅 회사 대표인 피터 자이한을 인터뷰해 “방위비 50억달러? 참 싸다”고 크게 보도했다. 그는 “한국은 일본을 절대 못 이긴다”며 “일본과 손잡지 않으면 국가 생존이 위태롭다”고 ‘컨설팅’했다.

보수언론이 그런 논조를 펴왔는데도 통일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국민 96%가 방위비 증액에 반대했다. MBC 조사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미국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 감축해도 상관없다’는 의견이 55%였다. 보수언론은 이런 여론은 전혀 부각하지 않고 정부의 협상 자세를 나무라며 힘을 뺀다. 연애든 협상이든 매달리는 쪽이 불리해진다. 두 나라가 협상할 때 국민의 반대가 큰 쪽이 협상력도 커진다. 이는 정치학자 퍼트넘의 ‘양면게임(Two Level Game) 이론’으로, 국민의 반대 목소리를 내세우면 상대방의 양보를 더 받아낼 수 있다는 논리다. 미국의 GSOMIA 강요는 한·미·일 동맹을 굳히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완성해 중국을 포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웃인 북한이나 중국과는 관계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빅터 차의 칼럼을 통해 한·미동맹이 고장 나면 ‘퍼펙트 스톰’이 닥칠 거라며 겁을 주었다. 그러나 미국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터무니없는 방위비 요구가 동맹국을 모욕하고 미군을 용병으로 격하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은 ‘전담금’ 수준이다. 협상이 결렬돼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감축 또는 철수한다면 오히려 자주국방의 기회가 올 수 있다.

자주국방이 군비 증강으로 나아가서도 안된다. 문재인 정부 국방예산은, 무기 구입을 강요하는 미국 탓이기도 하지만, 집권 2년반 만에 10조원이나 증가했다. 폴 케네디는 “모든 전쟁의 승자는 경제적으로 강한 나라였으며 군사적으로 가분수인 나라는 패배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냉전이 사라진 지구의 5대양 6대주에 함대와 군대를 전개해놓고, 남북한은 군비경쟁의 질곡에 빠져 있다. 한반도만이라도 군비감축에 바탕을 둔 평화 정착으로 나아가야 한다.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안보를 통한 평화보다 평화를 통한 안보가 중요하다”고 했다. 국민 여론도 방위비를 더 부담하면서까지 미군 주둔에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니 지금이 주둔군 감축에 참 좋은 기회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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