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

세계적인 밴드 U2가 지난 8일 밤 내한공연을 하면서 이런 메시지를 발표했다.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인 오늘 U2의 이 메시지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마음에 와닿는다.

71년 전,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극을 겪은 뒤 역사적인 반성문을 썼다.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은 인류의 양심을 짓밟는 야만적 행위”를 낳았고, 따라서 앞으로 인류는 “언론의 자유, 신념의 자유, 공포와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를 향유”하는 세계를 만들 것을 약속했다. 이 반성문 이후 인권은 현대국가들이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가 되었다. 인권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일은 곧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렇지만 이런 약속은 과연 지켜지고 있을까? 71년 전의 저 약속이 지켜졌다면 우리는 아마도 매우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저 고상한 약속을 한 인류는 이 선언을 만드는 과정에서조차 한편에서는 냉전체제를 짜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그 과정에서 끔찍한 학살과 국가범죄를 겪었다. 한국전쟁을 거쳐서 분단체제가 완성됨과 동시에 세계적 차원에서는 냉전체제가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인류가 합의하여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이 가진 권위는 막강했다. 그 뒤에 유엔 주도로 국제인권규약들이 속속 제정되었고, 유엔 중심의 국제인권레짐이 형성되었다. 우리나라도 1990년부터 주요 국제인권규약들에 속속 가입하여 인권 보장의 의무를 지게 되었다. 그럼 우리나라는 인권국가로 발돋움했을까? 예전 군사독재정권 때 공공연한 자의적인 체포와 구금, 고문은 사라졌다. 이제는 가짜뉴스를 공공연히 퍼뜨리면서 정권을 비판하는 대대적인 집회가 매주 주말마다 너무도 자유롭게 열리고 있다. 도리어 집회와 시위장에서는 혐오와 차별이 넘쳐나는데도 어떤 제재도 받지 않는다. 공포를 느끼지 않고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었으니 얼마나 인권적인가?

그렇지만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이상과는 정반대로 진행되는 현상도 보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되었고, 국민소득도 3만 달러를 넘었다는 나라의 사회보장 수준은 너무 보잘것없어서 OECD 국가 최하위 수준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노동하면서도 ‘52시간 노동제’가 과도하다고 제1야당 대표가 비판한다. OECD 나라 중에 자살률이 가장 높고,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이 비정상적으로 높다. 경제성장의 결과는 고루 나누어지지 않고, 소수의 대기업과 부자들의 곳간에만 쌓인다. 그 한편에서는 의식주조차 해결하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도 사회복지 예산을 늘리자는 주장에는 어김없이 어깃장을 놓는다.

지난해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이었던 2018년 12월10일 밤에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이 죽었다. 그는 1994년생, 만 스물네 살의 나이에 위험한 작업장에서 혼자 일하다가 죽었다. 그가 죽은 뒤에도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컨베이어벨트는 돌아갔고, 세 시간 뒤에야 그는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최근 경향신문은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타이틀을 뽑고, 김용균 이후 9월 말까지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1200명의 명단을 실었다. 매일 위험한 현장으로 출근한 노동자 3명은 떨어져 죽고, 끼어 죽고, 깔려 죽고, 부딪혀 죽고, 무언가에 맞아서 죽어갔다. 거기에 산재로 얻은 질병을 앓다가 죽어가는 노동자까지 합하면 매일매일 6명씩 죽어나간다.

우리는 매일 37명 이상이 자살하는 나라, 매일 노동자 6명이 죽어가는 나라, 매일 교통사고로 10명 이상이 죽어가는 나라다. 전쟁이 일어나는 나라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목숨들이 죽어가는 데도 아무렇지 않다. 그렇게 죽어가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게 더 문제다. 이 나라는 그만큼 위험한 나라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세계인권선언 제3조는 생명권과 안전권을 천명한다. 생명을 보전할 수 없는 질서와 체제에서는 인권의 실현은 기대할 수 없다. 산업현장에서 노동자가 죽어나가도 기업주는 벌금으로 평균 450만원만 물면 그만이다. 어린이 안전을 위한 ‘민식이법’을 만들어 달라고 무릎 꿇고 호소하는 유가족 어머니들을 국회의원들은 매몰차게 외면하고, 시민들은 그 어머니들을 비난하는 댓글들을 줄줄이 달고 있다. 고 노회찬 의원은 “안전의무를 소홀히 해 얻는 이익보다, 재해를 일으켰을 때 얻는 불이익이 적다면, 기업의 철저한 안전관리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지만 20대 국회에서 단 한 번도 심의조차 되지 않았다.

사람의 목숨보다 기업의 이윤을 우선하는 법과 제도를 국회가 만들고, 기업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는 행정을 펼치고, 사법부는 노골적으로 기업들의 편을 들어준다. 노동자와 시민의 목숨쯤은 돈으로 보상하면 끝이라는 잔인한 체제, 소수 ‘사회적 특수계급’을 위한 체제가 버젓이 들어선 나라인 대한민국은 인권 포기 공화국이다.

세계인권선언은 전문과 30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사회권)들이 22조부터 27조까지 열거되어 있다. 여기서 열거된 주장이 어찌 복지병이고, 사회주의 하자는 것인가. 이제 경제대국을 자랑할 때가 아니라 매일 억울하고 불행한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는 현실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할 때다. 그러므로 이제 개별 권리를 보장하라고 목소리 높여 주장하면서도 우리는 이 잘못된 질서와 체제를 바꿔야 한다. 누군가를 고통에 몰아넣고 그 고통 위에서 누군가는 행복을 누리는 체제라면 그건 신분제 사회일 뿐이다.

세계인권선언 제28조는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제시된 권리와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및 국제적 질서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U2가 제시한 것처럼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 우리가 들어야 할 구호는 세계인권선언 제28조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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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오늘날과 같은 정보와 지식의 홍수 시대에 적용해보면,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 하더라도 사용자의 접근과 이용이 편리하지 않다면 쓸모가 없다는 게 아닐까. 

디지털 시대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우리 삶의 전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우리가 누리는 정보의 양과 질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하지만 이러한 디지털 혁명의 혜택을 모든 사람이 골고루 누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모든 정보 전달과 공유의 플랫폼이 비장애인들 위주로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자립적이고 주체적으로 활동하고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기술적 진보에 발 빠르게 따라갈 수 없는 장애인들은 상대적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장애의 유형을 고려한 정보 접근 방법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정보 격차는 더욱더 가속화할 것이다. 

먼저 시각장애인들은 소리와 손가락의 감각으로 정보에 접근한다. 그들은 정보 습득의 속도 면에서 비장애인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으며, 점자책 등 시각장애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대체 자료를 만드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하다.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제작하는 시각장애인용 대체 자료는 국내에서 연간 간행되는 일반 출판물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오디오북으로 출판되는 전자책(e-Book)조차도 장애인 접근성 요건을 반영해서 다시 제작하는 비율은 1% 남짓이다. 제작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은 눈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기에, 수어 설명이 덧붙여지고 화면 해설을 자막으로 처리한 영상 자료가 필요하다. 비장애인에게 익숙하고 쉬운 문장도 청각장애인에게는 외국어처럼 낯설고 복잡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최근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발달장애의 경우, 장애의 정도와 문장 이해력에 따라 생애주기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보급과 전달 방식의 연구가 필요하다. 

이처럼 장애의 유형이 다양하고 정보 접근 방식 또한 통일될 수 없기에 장애인을 위한 정보 제공 방법을 표준화하기 힘들다. 

장애 유형별로 정보 접근 방법과 수요가 다르기 때문에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비장애인과의 정보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장애 유형별 특성과 취약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장애인들에게 필요하고 그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발굴하는 일과 대체 자료로 변환하는 작업에 더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늘리는 것 등 산적한 문제들이 많다. 

이번 국회에서 장애인 정보 격차 문제를 전면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 산하 2차 소속 기관으로 있던 국립장애인도서관을 문체부 직속으로 승격시키는 개정 법안(도서관법 제45조)이 통과되었다. 이제 국립장애인도서관은 정부 차원의 장애 유형별, 생애주기별, 지역별 특성을 기반으로 한 장애인 정보 접근권 정책을 실행하고 대체 자료 제작 표준 개발, 정보 이해력 증진을 위한 독해력 진단 훈련 프로그램 육성 등 더욱 전문적이고 능동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입법부와 행정부의 노력뿐만 아니라 민간의 협력이 더해지고 장애인의 정보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진다면, 장애인들이 삶과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정보 복지’가 그리 멀지만은 않을 것이다.

<김용삼 |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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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다시, 유럽의 축구장이 인종차별로 혼란스럽다. 수년 전부터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이 축구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행위를 근절하려 막대한 비용을 들여 다양한 캠페인을 벌여왔으나, 이 끔찍한 악행이 근절될 수 없는 역병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의 사례를 보면, 지난 8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 프레드는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와의 원정경기에서 연거푸 모욕을 당했다. 코너킥을 차려는 그에게 맨시티 팬은 원숭이 소리를 내며 조롱했고 어디선가 라이터까지 날아왔다. 성난 얼굴을 한 동료 린가드가 프레드는 감싸안으며 위로했지만 프레드의 고통은 단지 라이터에 맞은 외상만은 아니었다. 안정을 되찾은 프레드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는 아직 어두운 면이 있다. 지금은 2019년이다. 피부색, 머리카락, 성별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호소했다. 프레드를 모욕한 남성은 경찰 조사를 받았고 맨시티는 “우리 홈구장 출입을 영원히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상대팀 감독인 과르디올라도 경기 후 프레드를 직접 찾아가 사과하고 위로했다. 

이러한 일들이 맨시티 구장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10월21일, 맨유가 리버풀을 상대로 벌인 홈경기 도중 맨유 팬이 리버풀 수비수 알렉산더 아널드를 향해 거친 욕설과 인종차별 폭언을 자행했다가 즉시 경기장에서 쫓겨났다. 시즌권 소유자인 이 남성은 맨유의 즉각적인 조치에 의해 영구적으로 올드 트래퍼드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9월에는 웨스트햄 팬이 홈구장 출입 금지령을 받았고 애스턴 빌라 등 많은 구단에서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프레드가 또다시 역겨운 말과 추악한 행동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선수뿐만이 아니다. 발롱도르(유럽남자축구선수상) 3회 수상에 빛나는 네덜란드 축구의 ‘레전드’ 마르코 반 바스텐은 생방송 도중 과거 히틀러 나치 시대의 악명 높은 구호 ‘지크 하일(Sieg Heil)’을 외쳐 거센 비난을 받았다. 지난 11월23일, 네덜란드 축구팀 헤라클래스를 이끄는 독일인 감독과의 인터뷰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물론 그가 축구장 안팎에서 보여준 오랜 활동으로 보건대 ‘나치 추종자’라 볼 만한 여지는 적다. 본인도 네덜란드인 리포터의 어색한 독일어 발음을 놀리기 위해서 그 표현을 썼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네덜란드 선수들은 축구장에서의 인종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킥오프 후 1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침묵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이었다. 온라인 축구게임사 EA에서는 ‘피파 20’에서 반 바스텐을 삭제하기로 결정했고 폭스스포츠도 1주일간 방송 금지 처분을 내렸다.

지난 10월 하순, 잉글랜드 프리미어 사무국은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교육, 단속, 조사 등의 프로그램까지 가동했다. 프리미어리그 최고경영자(CEO) 리처드 마스터는 “우리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그러나 인종차별이 설 자리는 없다”고 공언했으나, 현실은 오히려 가중되는 양상이다. 

11월4일, 손흥민이 에버턴의 미드필더 고메스를 저지하려다 불상사가 벌어진 바로 그 경기에서도 에버턴의 관중이 손흥민을 향해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벌였다. 구단은 “그런 행동은 우리 경기장, 우리 클럽, 지역사회 또는 우리 경기 안에 있을 수 없다”며 조사에 착수했다.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새겨진 공인구를 향해 그들은 차별의 언어를 쏟아내고 혐오의 행동을 벌였다. 축구를 모욕하고 선수와 팬들을 모욕하고 자기 자신마저 쓰레기통에 처박는 행동이다.

최근 이런 일이 급증한 것은 유럽 전역에 반난민과 반유럽연합 역풍이 불어닥친 결과로 보인다. 브렉시트 혼란 속에서 지역주의를 우선시하고 있는 잉글랜드나 극우정당동맹이 득세한 이탈리아에서 이 같은 일이 연거푸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그 근거가 된다. 그러나 단언컨대, 브렉시트 혼란에 빠진 모든 잉글랜드 사람이, 극우정당에 가입한 모든 팬들이 다 라이터를 던지고 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사회적 원인을 별도로 하고, 그 행위자는 가려내서 처벌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그와 같은 인종차별 행동이 벌어지지 않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현상적으로는, 우리의 여러 경기장에서 유럽과 같은 인종차별이 확연히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 세계 수많은 선수들이 밀집하는 유럽의 경기장과 우리의 현황을 기계적으로 비교해서는 곤란하다. 

본질은 ‘혐오와 차별’이고 나라마다 그것이 다른 형태로 드러난다. 지금 바로 당장 인터넷의 스포츠 뉴스 댓글들을 보라. 그야말로 ‘댓망진창’이다. 한 해 농사가 끝난 프로야구를 시작으로 얼마 전 숨 막히는 시즌이 마무리된 프로축구까지, 그리고 겨울 시즌의 배구와 농구 등 거의 모든 종목에 걸쳐 단순한 비아냥을 넘는 인격 모독이 벌어진다. 중국이나 일본의 팬과 선수들에 대해서는 일상에서 써서는 안될 모욕적인 언사가 난무한다.

팬들의 발언이 즉발적이라면 그 종목에 관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랜 위계질서에 따른 폭력적 발언이나 차별의 시선이 구조적으로 드리워져 있다. 생중계 와중에도 거친 말을 하는 감독이 있을 정도이니 일반 팬도 거의 없는 유소년 경기에서는 말해 무엇하랴. 여기에는 단순히 감독과 선수 혹은 선배와 후배라는 위계만 있는 게 아니다. 체육계열 학과에서 ‘여학생’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 및 혐오와 배제 또한 심각하다. 방송 중계에서 ‘용병’이란 말이 사라지고 ‘외국인 선수’라는 말로 ‘순화’되었다 해서 우리의 스포츠에서 혐오와 차별이 줄고 있는 게 아니다. 아니, ‘용병’이란 말도 일부 중계나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을 보니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 듯하니, 씁쓸하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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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2017)에서 시국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대학생이 고문 중 사망하자 경찰은 은폐를 목적으로 시신 화장을 검찰에 요청한다. 그런데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공안부장 최 검사(하정우)는 이를 거부한다. 그가 부검을 요구한 건 법질서를 확립하려는 신념이나 망자에 대한 연민도 있었지만 검찰이 매번 안기부나 경찰, 군인들에게 밀리는 꼴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후배를 시켜 다음날 가장 일찍 출근한 기자에게 대학생 한 명이 고문받다 죽었다는 사실을 슬쩍 흘린다. 이 사실이 기사화되자 전국이 들썩이고 그는 곧 옷을 벗는다.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오던 최 검사는 사건의 경위를 따져 물으며 쫓아오는 기자를 보자 자신의 차 옆에 부검 감정서 등의 문건이 담긴 상자를 남겨두고 떠난다. 기자는 이를 보도하고 민주화 열기는 더 고조된다. 영화를 보며 사람들은 검사와 기자의 ‘은밀한’ 교류를 음습하게 느끼지 않았고 그래서 기자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당시 기자들의 근성과 땀나는 취재에 박수를 보냈다.

MBC <PD수첩>은 지난 3일 ‘검찰 기자단’ 편을 통해 검찰발 받아쓰기 관행과 검언유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검찰이 정보를 내주는 기자와 정보를 제공하는 순서를 선별하면서 단독과 특종에 열 올리는 기자들을 길들였으며, 기자들의 민원을 검사가 들어주고 기자들은 검사들의 승진을 위해 맞춤 하마평을 쓰는 등 유착 현상이 벌어졌다는 게 비판의 주요 내용이었다. 방송에선 검사가 브리핑 중에 피의사실을 슬쩍 흘리거나, 기자 앞에 조서를 놓아둔 채 통화를 핑계로 자리를 비켜주는 일이 있었다고 전했다. 대법원 기자단 일부는 성명을 내며 검사가 조서를 두고 자리를 비키는 일은 현재는 물론 과거 법조 선배들도 들어본 적 없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조직은 조직끼리 싸우기 일쑤고, 조직은 밖에서 보면 한 덩어리 같지만 가까이 보면 계파가 나뉘어 갈등하고, 또 개인마다 생기는 이견이 불쑥 표출되기도 한다. 기자는 밀착하여 따라가다 미세한 균열을 파고들면서 누군가의 실수, 밀고, 폭로 속에 담긴 진실을 포착한다. 그래서 땀내 나는 외곽 취재도 있어야 했고 공익적 가치가 있다면 출입처가 의도를 품고 던지는 소스도 냉큼 짚어 기사를 낼 때도 있었을 거다. 그런 모든 방식이 작동하기 위해 ‘불가근불가원’이라는 원칙이 공유되었고 출입처 제도를 필요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런 교류’가 없었다고 하면 출입처와 기자단 운영은 그럼 왜 있어야 했는지 오히려 반문하게 된다. 그러니 <PD수첩>에서 문제 제기한 장면들이 없었다고 말하기보다는 부작용도 있지만 기존 관행에 순기능도 있었다고 말했어야 한다.

최근 ‘검찰 기자실 폐쇄’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하자 하루 만에 2만명 가까이 동의를 했다. 많은 시민들이 과거에는 용인했던 시스템이 이제는 무용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출입처와 기자들이 맺는 관계에서 오는 실익이 시민들에게 잘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과거 사법농단이 벌어지고 있을 때 그 시스템으로 무엇을 했는지, 그동안 검찰이 준 소스를 최대한 검증해서 보도했는지 언론에 묻고 있다. 그리고 검찰이 흘리는 게 여느 출입처가 내는 정보와 다른 피의사실이라면 그걸 단독 기사로 쏟아내는 걸 더 이상 수긍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지금의 출입처, 기자단 체제는 강력한 검찰에 대응할 목적으로 견고해졌다고 짐작하지만, 기성 매체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후퇴했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시민의 이익을 외면했다면 이를 개선할 변화가 필요하다.

PD들은 ‘숙련 과정 없이 짧은 취재 기간을 거쳐 긴 프로그램을 내는 건 무리라는 우려’ 속에서도 그간 유의미한 공간을 만들어왔다. 주류 언론이 출입처와의 관계로 순치됐다는 비판을 받을 때 비주류 탐사 프로그램들은 굵직한 사건을 계속 터트려왔다. 이번 <PD수첩> 방송은 그간 취재의 빈 공간이 얼마나 컸는지 설명하면서 스스로가 어떻게 오랫동안 살아남았는지를 설명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속보경쟁에서 벗어나 사실검증에 집중하는 매체들이 시청자들의 호응을 조금씩 끌어내고 있다. KBS는 출입처 취재 관행을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진보 매체들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한 것 같다. 제도에는 항상 명암이 있는데 지금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변화를 응원한다.

<김신완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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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장수가 지게에 독을 산더미처럼 짊어지고 팔러 나섭니다. 그러다 어느 곳에서 무거운 지게 내려놓고 지겟다리로 받친 뒤 잠깐 쉰다는 게 깜박 잠이 듭니다. 꿈에서 그는 지고 나간 독마다 모두 팔아 빈 지게와 두둑한 주머니로 돌아옵니다. 그 돈으로 가축을 사서 기르고 또 내다 팔아 더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그렇게 집도 마련하고 꿈에 그리던 장가도 갑니다. 떨리는 첫날밤 새신부의 옷고름을 푸는 장면에서 독장수는 너무 좋아서 잠결에 활개를 칩니다. 그러다 지겟다리를 탁 쳤고 지게가 엎어지면서 장사 밑천이 와장창 깨집니다. 이것이 인터넷과 어린이 속담책에 나오는 ‘독장수구구는 독만 깨트린다’의 엉터리 유래입니다. 근거 없이 지어낸 이야기라서 ‘구구’는 설명치 못하거든요.

옛날에는 구구단이 없어 5단 이하는 암산으로, 6단 이상은 주먹구구로 셈했습니다. 7×8이면 양손에 각각 7과 8을 꼽고, 편 것끼리는 더하고 꼽은 것끼리는 곱합니다. 그러면 2+3=5, 3×2=6 해서 56이 나옵니다. 이것이 ‘주먹구구식’으로 알려져 있는 그 구구입니다(상인들은 보통 3차방정식까지 가능하다는 ‘산(算)가지’로 셈했습니다). 손가락셈에만 정신 팔려 걷다보면 길바닥 못 보고 돌부리에 걸려 어이쿠! 자빠지게 되지요. 게다가 독은 주먹구구셈으로는 머리 터질 많은 이윤이 남습니다. 결국 막연한 미래를 미리 셈하다 제 발치도 못 봐 큰 낭패만 본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현실성 없이 허황된 계산을 하고 삽니다. 그런 심리에는 어쩌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나 대책 없는 장밋빛 미래라는 현실회피가 있을지 모릅니다. 미래가 코앞에 있다 믿으면 들떠서 코앞밖에 안 보이고, 아직 갈 길이 멀다 여기면 걷는 발길을 봅니다. 한 치 앞도 모를 세상, 먼 미래일수록 변수는 더욱 커집니다. 셈은 걸은 뒤에 해야 비로소 틀림없습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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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대중잡지 ‘삼천리’에 재밌는 설문조사가 하나 실렸다. “내가 서울 여시장이 된다면?”

일제강점기 서울시장(경성부윤)은 당연히 일본인이 맡아 했다. 그러니 조선인, 더구나 여성은 시장이 절대 될 리 없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을 가정한 질문이었다. 당대 유명 여성 대부분은 이 질문에 “모든 서울시민에게 영양주사를 한 대씩 놓고…” “허영심을 근절하기 위해 화장품 세금을 100배 인상하겠다”는 식의 진지하지 않은 ‘공약’을 남발했다. “제가 서울 여시장이라니 천지개벽을 하게요”라며 상상 자체를 부정한 답변도 있다. 

하지만 이들과는 달리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은 여성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화가 나혜석이다. 나혜석은 전차 요금 구역제 폐지를 서울시정의 첫 번째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전차 서대문선과 마포선 간, 동대문선과 청량리선 간, 광희문선과 왕십리선 간을 하나의 구역으로 변경하겠다”고 했다. 당시 동대문과 남대문을 경계로 교외선으로 환승하려면 전차 요금 5전을 더 내야 했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이 주로 살던 도심에서 밀려나 교외에 거주하면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조선인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1930년대 경성에서도 교통 문제가 중요한 현안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주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 거리를 누볐던 전차는 점차 버스의 장애물로 변했다. 전차는 교통혼잡을 이유로 결국, 1968년 11월 멈췄다. 

전차가 사라지고 버스가 들어선 서울은 해마다 변했다. 

누군가 기막힌 요술이라도 부린 것일까. 차도는 계속 늘어났는데 도로는 여전히 막히고, 보행자는 밀려났다.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인 차량이 내뿜는 배출가스로 인한 경제 손실이 날로 커지면서 전 세계 대도시들은 도심에서 차량 운행을 제한하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1999년 스페인 폰테베드라에서 시작된 ‘차 없는 도시’ 캠페인은 어느새 세계 도시들의 공통 과제로 자리 잡았다. 지난 10월1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교통국 이사회는 2025년까지 가장 붐비는 거리인 ‘마켓 스트리트’를 전면 보행길로 바꾸는 안을 승인했다. 스웨덴 스톡홀름, 싱가포르, 영국 런던 등에서는 ‘차 없는 도시’로 가는 중간 단계로 ‘교통혼잡세’를 걷고 있다. 서울시도 이제는 보행자 우선의 ‘걷는 도시 서울’을 내세운다. 주요 도로 찻길을 줄이고 모두 보행자와 자전거에 내줄 방침이다. 4대문 안은 공해유발차량 진입을 차단하고 이달부터 과태료를 부과한다. 

세계 도시들이 차 없는 도시를 추진하는 것은 단순히 공기질을 개선하고,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IT 전문매체 와이어드는 차 없는 도시 시행 효과에 대해 “도심의 차량 수가 줄어들수록 보행자들의 사회적 교류가 늘어 행복지수가 높아진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에서 증명됐다”고 분석했다.

보행친화도시는 찻길을 줄이고 자전거길을 넓힌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다. 2017년 12월 종로 중앙버스전용차로(BRT)를 개통하고 그 일대 보도를 넓혔지만, 보행자들이 늘어나 실제로 주변 상권이 살아났는지는 의문이다. 따릉이를 타고 광화문과 경복궁 주변만 다녀봐도 시내에 얼마나 많은 구릉지가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서울 시내를 걸어보라. 돈을 지불하지 않고는 쉴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걷고 싶은 도시는 어디서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이런 점에서 서울시가 내년부터 운행하기로 한 ‘녹색순환버스’는 반길 만하다. 

85년 전 질문으로 돌아가자. “내가 시장이 된다면?” ‘땡땡~’거리며 전차가 도심을 달리게 하겠다. 종로 같은 구도심은 버스전용차로보다 전차가 더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전차는 매연도 배출하지 않는다. 마침 ‘노면전차’를 운행할 수 있도록 도로교통법이 개정됐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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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선 당신의 이름 석 자는커녕 이니셜조차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 사건이 ‘최○○ 동영상 협박 의혹 사건’으로 명명돼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리벤지포르노범들 강력 징역해주세요’라는 청원엔 21만8000여명(2018년 10월8일 현재)이 동참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최종범 사건’이 터졌을 때 쓴 글입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지지한 수십만명은 미약했습니다. 악의를 품고 집요하게 공격하는 이들, 세상의 질서를 바꿔놓을 ‘권위’를 가진 이들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구하라. 당신이 떠난 지 보름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외주 스태프 여성 2명을 성폭행·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배우 강지환씨가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게 이유입니다. 학생 28명을 49차례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교사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징역 형량은 2년에서 1년6월로 줄었습니다. 파면당한 점을 고려했다고 합니다.

당신에게 낯설지 않은 일들일 겁니다. 서울중앙지법 오덕식 부장판사는 지난 8월 최종범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협박·강요·상해·재물손괴 등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불법촬영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당신의 명시적 동의 없이 촬영한 게 맞다면서도 “피해자 의사에 반한 것으로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다는 사정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부부강간죄가 존재하는 나라에서 이런 법리를 내세우다니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선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 양형기준을 재정비해 달라’는 청원이 진행 중입니다. 청원인 수가 답변 요건 2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공감합니다. 피해자와의 합의가 형을 깎아주는 근거가 돼선 안됩니다. 하지만 양형기준만 개정되면 성범죄 수사·재판이 달라질까요. 2012~2017년 불법촬영 혐의로 재판받은 피고인중 실형 비율은 8.7%뿐입니다(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 불법촬영을 직접적 가해 행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가볍게 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은 죽음을 떠올릴 만큼 공포를 겪지만 법원과 검경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수사·재판 기관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최근 한 어린이집에서 5세 남아가 동갑의 여아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발달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모습”(12월2일)이라고 했다가 사과했습니다. 사흘 만에 또 “성폭력이란 용어는 부적절하다”(12월5일)고 했습니다. 5세 아동을 형사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폭력이 아니다’라고 규정하는 일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5세 남아가 동갑 남아를 때려 다치게 했더라도 박 장관이 이렇게 말했을까요.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가해 아동의 행동은 정상적 발달과정의 연장선에서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무대 스크린에 고 설리,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오른쪽부터)의 얼굴이 등장했다. 설리의 얼굴을 본 일부 관객은 울음을 터뜨렸다. 이유진 기자

핵심은 사회 전반의 후진적 젠더감수성입니다. 여성을 동료 시민으로 존중하기보다 성적 대상·객체·상품으로 바라보는 구조입니다. 남성의 성적 욕망에는 관대하고, 여성의 아픔에 대해선 무감각한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아일랜드 출신 록밴드 U2는 지난 8일 내한공연에서 ‘울트라바이올렛’을 부르며 당신의 친구 고 최진리(설리)씨를 추모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는 메시지도 띄웠습니다. 비슷한 시간 ‘국가기간방송’ KBS에선 중단됐던 <1박2일>의 시즌4를 열었습니다. 정준영씨가 빠졌으니 괜찮은 걸까요? 

힘없는 존재들의 정체성은 한데 뭉뚱그려져 ‘범주화’됩니다. 여성, 청년,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유색인종이 그렇습니다. ‘구하라’의 자리는 없고 ‘여자 아이돌’의 자리만 남지요. 힘센 존재들의 정체성은 ‘개별화’됩니다. 남성, 중장년, 비장애인, 이성애자, 코카서스인종(백인)이 그렇습니다. 죽어서는 격차가 더 커집니다. 역사의 기록은 강자의 몫이니까요. 한국 역사를 바꾼 여성들의 대열에 최진리씨를 함께 세우며 기억한 U2에 고마워하는 이유입니다. 

저도 당신과 당신의 친구를 새롭게 기억하려 합니다. 당신은 생전에 ‘정준영 단톡방 사건’ 취재에 도움을 주었지요.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가 털어놓은 이야기입니다. 최진리씨는 취약계층 여성들을 위해 유기농 생리대를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가 떠난 뒤 5억원 상당 생리대가 기부됐습니다. ‘당신들’이 ‘악플로 고통받다 떠난 젊은 여성들’로만 기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구하라와 설리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행동했던, 용기 있고 아름다운 여성들로 기록돼야 합니다.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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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造山)의 요충지 녹둔도(鹿屯島)에 농민들이 흩어져 사는데, 골간(骨看·여진족) 등이 배를 타고 몰래 들어와 약탈할까 염려된다. 진장이나 만호에게 단단히 방어할 수 있도록 하라.’(<세조실록>)

세조는 함길도 도절제사로 부임하는 양정(楊汀)을 경복궁 사정전으로 불러 이렇게 당부했다. 세종이 6진을 개척해 영토를 두만강까지 넓혔다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확장보다 더 어려운 게 수비였다. 6진의 행정체계가 완성된 뒤에도 여진족의 약탈은 계속됐다.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가 특히 심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녹둔도 기록은 대부분 여진족의 침략 이야기다. 

이순신은 부친 삼년상을 마친 1586년 경흥의 조산 만호로 관직에 복귀한다. 이듬해 조산에서 십리 떨어진 녹둔도의 둔전 경영 임무까지 겸했다. 국경과 인접한 외딴섬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많은 병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순신의 증병 요청은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해 8월 여진족이 침입했을 때, 조선 병사 60명이 포로로 잡혀갔다. 중과부적이었다. 다행히 이순신이 즉각 반격에 나서 포로를 구출했다. 이후 이순신은 녹둔도 방어에 진력했다.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의 전승 기록은 <선조실록>과 <징비록>에 나온다. 함경북도 조산에는 승전대비가 건립됐다. 이순신의 이름을 처음 세상에 알린 것은 임진왜란이 아닌 녹둔도 전투였다. 

녹둔도는 섬이었으나 상류의 토사가 쌓이면서 18세기 이후에는 육지로 연결됐다. 섬이 늪지로 바뀌면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떠나갔다. 조선의 관심이 멀어져 가던 때, 청나라는 몰래 녹둔도를 러시아에 넘겼다. 1860년 베이징조약 이후 녹둔도는 줄곧 ‘잃어버린 땅’이었다. 조·러 수호조약 이후 조선은 몇차례 녹둔도 반환을 요청했으나 허사였다. 1990년 9월, 북한은 아예 국경조약을 통해 러시아 영토임을 인정했다. 그래도 일제강점기까지 녹둔도의 주인은 조선사람이었다. 내년 봄 남북한, 러시아가 공동으로 녹둔도 유적 발굴조사에 나선다는 소식이다. ‘잃어버린 우리 땅’이라고 자조할 것은 없다. 이순신의 역사 유적을 발굴하고, 나아가 ‘동북아 평화만들기’에 기여할 수 있다면 기꺼이 나서야 한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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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짧을수록 좋더라. 버스든 지하철이든 정거장은 시 한 편 읽기에 딱 알맞은 간격이다. 그러니 도로마다에는 가로수와 간판과 더불어 시집도 빼곡하게 배열되어 있는 셈이겠다. 그제 아침 출근길의 라디오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연기’가 튀어나왔다. 아나운서의 낭랑한 음성에 실린 그 시는 마지막 구절이 내가 기억하여 외우는 것과 사뭇 달랐다. 황량과 적막의 차이. 지나간 것이라고 쉽게 관대한 건 아니겠지만 시에 관한 한 나로서는 오늘보다 옛날이 더 좋았다.

산에 다니면서 꽃도 꽃이지만 꽃이 처한 사정이나 사연에 주목을 해왔다. 몇 해 전 태백산을 다녀오다가 맞닥뜨린 풍경 속에서 대학시절에 만났던 ‘연기’를 다시 만났으니 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 … 이윽고 도시락을 다시 빈 도시락으로 만든 뒤 하산하는 길이었다. 오전과 거의 비슷한 동작을 되풀이하면서 거의 다 내려오자 백단사 근처의 약수암이 나타났다. 나뭇가지 사이로 요사채가 보이고 뭉클뭉클 피어나는 흰 연기가 공중에 뚜렷했다. 좁은 함석 굴뚝을 빠져나와 하늘의 깊이를 재면서 더욱 좁은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흰 연기. 문득 브레히트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기막힌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약수암에는 호수 대신 작은 개울이 흐르고 물푸레나무, 귀룽나무, 고광나무, 물참대가 줄지어 자란다. 누군가 전지가위로 물참대의 마른 줄기 끝을 조심스레 잘라 함께 공부하였다. “이 물참대의 줄기는 속이 텅 비어 있어요!” 과연 물기를 잃고 말라가는 줄기 안에 뻥 뚫린 구멍이 있고 그 구멍 너머를 오래 더듬었던 기억.

출근길에 만난 시 하나가 여러 기억을 소환했다. 연기는 안과 밖을 구별할 줄 아는가 보다. 그러기에 지금 저 멀리 여의도 어느 건물에서 저렇게 기를 쓰고 위로 오르지 않겠는가. “호숫가 나무들 사이에 조그만/ 집 한 채/ 그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시 한 편이 그려내는 적막한 공간에 젖어들면서 물참대 가지의 빈 구멍을 생각하며 자유로의 빈 구멍 속으로 달려나갔다. 물참대, 수국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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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 그 대한민국의 주인이 국민인지 실감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현실은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란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첫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그는 “불법파견 판정 시 즉시 직접고용 제도화”를 약속했다. 그로부터 1년여가 흐른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운송설비를 점검하다 사고로 숨졌다. 2018년 산업재해 사망자는 214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오늘도 살기 위해 출근한 노동자 중 6명이 퇴근하지 못하고 장례식장으로 실려 간다. 오늘도 무사히! 그것이 지금 노동자들의 소망이다.

촛불시민의 힘으로 불의한 권력을 끌어내렸다.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를 촛불정부라고 불렀다. 이후 4·3항쟁, 5·18민주화운동 추도식 등에서 대통령의 아름다운 추도사, 각본 없이 진행된 그의 행보는 많은 국민을 감동시켰다. 대통령과 촛불정부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크고 높았기에 실망도 깊은 것일까. 빈부양극화가 이 정부 들어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고, 비정규직 노동자, 산업재해 문제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이 정부만을 탓하는 것이라면 너무 야박할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에 이르면 사람들의 말마따나 그 기원을 대한민국이 아니라 ‘헬조선’부터 따져보라는 말인가. 어느덧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지도 절반을 지나 반환점을 돌고 있다.

고백하건대 이른바 ‘수구적폐’라고 욕먹는 정당보다 그들에게 ‘종북좌파’라고 비방당하는 정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체감상의 고통은 더욱 깊고 컸다. 저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차라리 맘껏 비판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에 이어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국민의 시대, 국민이 중심’인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서는 우리가 소망하는 개혁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인데 나만 괜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인가 싶다. 얼마 전 어느 분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읽은 글이다. 동네 복덕방 사장이 ‘그때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고 했는데 왜 집을 구입하지 않았느냐’면서 “아이고, 진짜 바보들이시네. 2년 전이랑 비교해서 지금 40%가 올랐어요. 민주당 정부에서는 무조건 올라요. 무조건 사 놔야 돼.”

20세기 전반기에 인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전체주의와 파시즘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싸웠다. 그러나 현대의 대의민주주의는 자본에 잠식당해 권력의 주인들을 정치상품(정당)의 소비자로 만들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겉보기엔 다양한 상품을 진열해놓고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진열된 상품들은 모두 자본을 등에 업은 독점적인 카르텔에서 생산된다. 비록 다른 상표명과 깃발을 들고 있지만, 새로운 정치혁신, 대안정당의 출현을 가로막을 때만큼은 모두 한패다.

주권재민이란 민주주의의 본질에도 불구하고, 투표기계로서의 역할밖에 할 수 없는 권력의 주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여당 대신 야당에 투표하거나 투표를 포기하는 일밖에 없다. 그러나 주권자의 포기는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의 승리를 의미할 뿐이다. 당연하게도 이 같은 일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자’, 바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촛불 이후의 우리가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자’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그 무엇인 자’가 될는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정부’가 ‘민주주의’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감시하고 노력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힘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세상과 자연, 우주에 대해 함께 기뻐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여길 때 생겨난다. 지난 토요일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김용균 1주기 촛불집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어머니 김미숙씨는 눈물을 흘리며 “너를 비록 살릴 순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우리처럼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싶단다”라고 말했다. 우리, 맞잡은 서로의 그 손을 놓지 말자, 제발!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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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새 원내대표로 심재철 의원이 9일 선출됐다. 그는 당선 직후 문희상 국회의장, 여야 3당 원내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내년도 예산안과 비쟁점 민생법안을 10일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여야 간 이견이 큰 선거법과 검찰개혁 등 패스트트랙 법안은 정기국회 내 상정을 보류했다. 한국당이 지난달 말 무더기 신청했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는 의원총회 동의를 거쳐 철회키로했다. 원내대표가 교체되자마자 꽉 막힌 정국에 물꼬가 트인 것이다. 의총에서 예산안 합의 결과를 보고 최종 결정키로 했다고 하지만, 이만큼 진전된 것만도 반가운 소식이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신임 원내대표(왼쪽에서 네번째)와 김재원 정책위의장(두번째)이 9일 의원총회에서 황교안 대표, 나경원 전 원내대표 등과 함께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심 원내대표는 당내 비주류이자 비황(비황교안)계로 분류된다. 결선투표에서 52표를 얻어 각각 27표를 얻은 비박계 강석호(3선), 친박계 김선동(재선) 의원을 누르고 야당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그에게 표가 쏠린 건 황교안 대표의 독주에 제동을 걸어달라는 의원들의 뜻이 담겼다고 볼 수 있다. 황 대표는 단식 후 사무총장 등 주요 당직 인선에서 강고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원내대표마저 친박·친황계가 차지했다가는 ‘도로 박근혜당’이란 비판과 함께 내년 총선 공천도 황 대표가 독식할 것이란 비박계 및 중진들의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간 심 원내대표는 당내 비주류이지만 각종 대여 투쟁의 선봉에 서온 대표적 매파로 꼽혔다. 그래서 대여 협상에서도 강경 노선을 지속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협상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며 “협상을 하게 되면 이기는 협상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게 정도(正道)다.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은 대화와 타협이다. 이렇게 협상 의지만 있다면 패스트트랙 법안도 얼마든지 더 논의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번 합의를 계기로 시민을 위한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복원되기를 기대한다. 

새 원내대표의 임기는 내년 5월29일까지다. 반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20대 국회가 끝나기 전 한국당 의원들이 뽑은 마지막 선출직이란 상징성이 있다. 국회부의장 출신 5선 의원으로서 황 대표를 견제할 적임자란 기대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황 대표는 그간 국회를 팽개치고 장외집회, 삭발, 단식 등 출구 없는 대여 강경투쟁으로 일관해왔다. 한국당은 오는 14일 광화문광장에서 또 집회를 열 예정이다. 정부의 실정과 부당함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건 야당의 책무다. 그러나 선명성을 유지하려고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한다면 수권정당의 꿈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은 민생과 경제를 챙기는 야당, 합리적 대안을 갖춘 야당을 원한다. 심 원내대표의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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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혐오표현을 금지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5조 3항 등이 양심에 따른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일부 교사·학생·학부모가 낸 헌법소원 청구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 결정했다고 9일 밝혔다. 헌재는 혐오표현이 사회적 약자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허용되는 의사표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혐오표현 규제와 관련해 처음 내려진 헌재 결정이 한국 사회에 주는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문제가 된 조항은 “학교구성원은 차별적 언사나 행동, 혐오적 표현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이다. 청구인들은 이 조항이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이에 대해 “해당 조항은 학교구성원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인권의식을 함양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과잉금지 원칙에 부합하므로, 정당하다는 것이다. 헌재는 혐오표현에 대한 헌법적 기준도 제시했다. 혐오표현은 ‘내뱉는 즉시 상대방은 물론 다른 사회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쳐 적대감을 유발·고취시키고, 특정 집단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으로 피해는 회복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민주주의의 장에서 허용되는 한계를 넘는 것으로 민주주의 의사형성의 보호를 위해서도 제한돼야 한다고 했다.

한국 사회는 여성, 이주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표현이 강화되고 조직화되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 온라인을 통해 여성·성소수자 대상 혐오표현 게시물이 쏟아지고 있고, 일상에서도 수시로 혐오표현을 접하게 된다. 시민의 97%가 혐오표현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할 정도다. 혐오표현은 상대방을 위축시키고, 공포에 떨게 하며 때로는 그 자체로 ‘흉기’가 된다. 유명 연예인들의 극단적 선택이나, ‘묻지마 살인·폭행’은 강화된 혐오표현에 따른 비극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근절되지 않고 잊을 만하면 발생한다. 문제는 피해자 특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이에 대한 법적 규제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를 막기 위해 민형사적 입법 보완과 함께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시급하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지자체 조례로도 혐오표현 규제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부와 국회, 지자체가 할 일은 명확하다. 당장 혐오표현을 없앨 입법에 나서고, 12년간 묵혀둔 차별금지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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