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보았다. 예능 프로그램인 만큼 몇 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 흥미로웠다. 시작하기 전에 먼저 스태프들에게 성선설과 성악설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 알아낸 다음(성선설 쪽이 좀 더 많았다) 토론 후에 생각을 바꾸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일종의 룰이었다. 그런데 토론이 끝난 후에는 처음과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출연자들의 개인적 재치와 말솜씨에도 영향을 받았지만 스태프들은 마음을 바꿔 성악설을 주장한 쪽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인간 본성의 선악에 관한 논쟁은 인류의 역사와 맥을 같이해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은 이중적인 존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은 마치 저 하늘에 해와 달이 있고 하루 중에 낮과 밤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도 할 수 있다. 적막한 밤, 홀로 깨어 자신의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즉 대체로 나의 본성은 선하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때로는 그럴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사이코패스는 대뇌의 구조가 일반인들과 다르니 그들은 차치하고 말이다.

어느 정신의학자는 인간이 칭찬보다는 비판에 능하고 신뢰보다는 피해의식과 불신을 갖기 쉬운 이유를 우리의 뇌에 이미 입력된 기본적인 프로그램, 즉 집단 무의식과 연관해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대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먼저 볼 수밖에 없으며, 상대가 나를 이롭게 할 것인지 아닌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피해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집단 무의식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앞서 예를 든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우린 분노하는 법을 배우지 않지만 누구나 쉽게 분노한다. 그러나 분노를 참고 상대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은 좀 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법정 스님도 ‘최고의 종교는 친절과 칭찬’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미국 작가 헨리 제임스 이야기도 있다. 그를 존경하는 누군가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지혜에 대해 한 말씀만 해 달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친절하고, 친절하고, 또 친절한 사람이 되어라.”

법정 스님과 헨리 제임스도 그것이 매우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굳이 그런 식의 표현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반면에 앞서도 언급했듯이 화를 내는 것은 쉽다. 물론 상담을 하다 보면 상대에게 화를 내고 싶어도 화를 내지 못해서 속상하다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당사자 앞에서 바로 그 순간에 화를 내지 못하는 것뿐이다. 혼자 있을 때는 당연히(!) 그 사람 욕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불평불만을 털어놓거나 해서 화난 것을 표현한다. 그들이 괴로운 것도 나를 화나게 한 사람 앞에서 내가 당한 만큼 돌려주지 못했다는 분노의 감정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결국 누구나 화를 낼 만큼은 낸다는 이야기이다.

반면 상대가 받고 싶은 만큼 칭찬을 못해 줘 속상하다는 사람들은 만나기 힘들다. 물론 나도 그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인간의 이중적인 속성에 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하기에 나의 그런 면에 대해서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으려고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두 마음 사이에서 균형과 상식을 찾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정신과 수련의를 시작할 때는 ‘왜 우리가 상식대로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갖고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할수록 상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상식대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느끼고 있다. 마치 시소가 올라가거나 내려가 있지 않고 평행을 이루는 순간이 아주 찰나인 것처럼 상식의 순간 역시 찰나에 머무르고 마는 느낌이라고 할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시소가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칭찬과 친절 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길밖에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마음으로 저무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양창순 정신과전문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0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이른바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에서 마련한 내년도 예산안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 교섭단체 3당이 예산안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민주당은 ‘4+1 협의체’가 마련한 수정안을 본회의에 상정, 처리에 나섰다. 한국당은 ‘예산안 날치기’라며 반발했다. 최악의 20대 국회가 마지막 정기국회까지 변칙으로 얼룩진 꼴이다. 다만 이날 오전 본회의에서 민식이법 등 비쟁점 법안 16건을 처리한 게 그나마 소득이다. 여하튼 예산안이 제1야당을 배제한 채 강행 처리되는 유감스러운 사태가 빚어졌다. 예산안의 법정시한(2일)을 지키지 못한 국회가 예산결산특위를 패스해 ‘4+1 협의체’의 심사로 예산안을 확정한 건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4+1’ 수정안이 동력을 얻게 된 것은 한국당 책임이다. 번번이 합의를 번복하면서 예산안을 볼모로 ‘유치원 3법’ 등과 패스트트랙 법안을 봉쇄했기 때문이다. 한국당을 배제한 예산안 처리를 불러온 것은 ‘정략적’ 필리버스터로 국회를 마비시킨 한국당의 자업자득이다.

나라 살림살이인 예산안의 부실, 졸속, 깜깜이, 짬짜미 심사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여야가 극한 대치로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 마지막 하루 동안 벼락치기 증감액 조정을 벌였으나, 이마저도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앞서 ‘4+1 협의체’의 예산 심사 역시 총선용 예산 담합의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여야 3당의 막판 협의에서 총 삭감액 1조6000억원 수준의 합의가 진행되다 앞서 ‘4+1’이 만든 예산안의 증감액 내역을 보여달라는 한국당의 요구가 거절돼 최종 합의가 무산됐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4+1’의 예산 심사에서 정파적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발목잡기로 정상적 예산안 처리를 어렵게 만든 한국당의 책임이 크지만, 타협을 이루지 못한 집권여당의 정치력 부재도 지탄할 수밖에 없다.

이로써 11일 시작되는 임시국회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격돌이 더욱 우려된다. 민주당은 ‘4+1 협의체’에서 마련한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을 임시국회에 상정해 처리할 태세다. 한국당은 필리버스터 등을 총동원해 막겠다는 방침이다. 게임의 룰인 선거법만이라도 막판까지 타협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당이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에 대해 대안을 내놓고 협상에 응하느냐가 관건이다. 한국당이 또다시 발목잡기와 시간끌기로 일관한다면 패스트트랙 법안을 국회법 절차대로 처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여야가 협상력을 발휘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고대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법무부 산하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개혁위)가 대통령, 국회의원, 판검사 등이 연루된 중요 사건의 불기소 결정문을 공개하라고 권고했다. 불기소 결정문에는 검사가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하지 않은 이유가 담겨 있다. 검찰은 지금까지 수사기밀 유출 우려, 사생활 보호 등을 앞세워 이의 공개를 거부해왔다. 그로 인해 봐주기 수사 의혹이 제기돼도 국민은 물론 사건 관계인조차 ‘왜 죄가 안되는지’를 알 수 없는 일이 반복됐다. 검찰이 공소권을 독점하고 있어 따로 범죄 혐의자의 죄를 물을 방법도 없는 것이 우리의 사법체계다. 개혁위의 권고는 이런 불합리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개혁위는 누구든지 검찰청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중요 사건의 불기소 결정문을 열람·검색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제·개정하라고 권고했다. 불기소 결정문 공개 대상은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국회의원·자치단체 정무직 공무원·판사와 검사·4급 이상 공무원 관련 사건과 사회적 이목을 끈 중대 사건 등이다. 개혁위는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고 전관 특혜의 사법불신을 제거하는 장치가 될 것”이라며 “국민 알권리 보장, 제 식구 감싸기 방지 등도 기대된다”고 했다. 

불기소 결정문 비공개에 따른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전관 특혜, 밀실·늑장·짬짜미·제 식구 감싸기 수사 등으로 검찰이 불기소 결정을 해도 이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재정신청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소송 비용과 시간 부담으로 대부분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한 해 135만여건의 불기소 사건 중 ‘김학의 성폭행사건’처럼 검찰이 죄를 묻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검찰 설명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한두 건이 아닌 것으로 의심되는 것이다.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 등 전·현직 검사들의 내부고발을 보면 ‘상부의 지시’ 혹은 ‘수사를 안 해서’ 등 여러 이유로 불기소 처리되는 사건이 많다고 한다. 

중요 사건 불기소 결정문 공개는 이런 낡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일이다. 대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미 같은 취지로 판시하고, 권고한 바 있다. 대검찰청도 수사기록의 열람·등사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검찰은 이를 사법처리 절차를 투명하게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3.5%만이 지지하는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 내 몸의 깊은 곳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등판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 초반부 일부를 퍼온 것이다. 임란을 일으킨 왜적은 무술년(1598) 노량 앞바다에서 칼의 울음소리가 밴 허무한 노랫말을 남기고 그렇게 물러났다.

무술년 다음이라 그런지 기해년인 올해도 사나운 칼의 노래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이런 힘겨운 시절에 민초들은 지치고 힘든 여정을 칼의 노래를 들으면서 한풀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그러고는 노랫말만 가지고 섣부른 평가를 내리기도 하는 것을 본다. 

국정농단에서 출발하여 사법농단, 조국 일가를 거쳐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수사로 이어진 서초동발 칼의 노래가 여전히 드세다. 칼이 스칠 때마다 보기 드문 흥행이 계속되었다. 시민의 눈에는 우리 사회가 흡사 거대한 불합리의 온상같이 비친다.

최고 권력자 여럿을 칼끝에 거두는 검찰의 빼어난 솜씨에 관중들의 눈높이도 높아져 여간해서는 관심을 끌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불구경, 싸움구경을 남의 일인 양 마냥 즐거워만 하는 그런 관중이 아니다. 관중들은 지금껏 학습효과로 관전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고 칼끝의 지향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올랐다.

한편으로는 검찰의 예리한 칼날이 너무 빈번히 무대에 오르는 모습들에 겁나하면서도 식상해하기 시작하였다. 사회의 곪은 부분을 그대로 내버려 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칼끝의 숨은 방향이 헷갈려서다. 검찰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칼을 휘두른다는 의구심을 떨칠 길 없기 때문이다.

법률직의 영역은 결과에서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생산재라기보다는 소비재 영역에 가깝다. 그런 음(陰)의 재화를 두고 온 눈이 서초동으로 쏠리고 칼춤의 향방에 따라 경쟁하듯 내 편 네 편으로 갈리고 있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의 자체 여과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시시비비를 검찰의 칼에 의존하고 있음을 본다. 심지어 예술작품의 진위까지도 그러한 데서는 할 말을 잃는다. 이런 기이한 현실에서 검찰은 만능자로서 역할을 요청받고 있다. 오죽하면 검찰이 바로 서면 나라가 바로 선다는 전직 대통령의 말이 검찰의 선도적 역할론으로 회자되고 있겠는가.

이래선 안된다. 국민들은 눈앞의 소모적 액션극에서 벗어나 생산적인 모습을 바란다. 추운 계절에 몸도 마음도 얼어붙었다. 따듯한 정이 돌고 밝은 앞날을 기약할 수 있는 평온한 공동체가 그립다.

지난 몇 달 동안 서초동에서는 서초동연가(戀歌)가 메아리치고 광화문에서는 광화문연가로 뒤덮였다. 또 최근에는 서초동에서도 두 갈래 서로 다른 연가가 불협화음을 엮어내고 있다. 평범한 시민들의 눈에는 이들 길거리 연가가 칼의 노래와 뒤섞여 혼란스럽기 이를 데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울어대는 칼의 노래와 칼춤에 넌더리가 난다. 이제 그런 유의 노래라면 입에 담기도 싫고 그런 장단의 춤이라면 작은 춤사위도 싫다. 국민이 쥐여준 칼이다. 흥행에 눈독 들이지 말고 절제된 겸손미를 갖추어 사용토록 해야 한다. 이순신 장군의 칼끝은 내부가 아니라 오로지 불법을 자행한 침략자를 향해 있었다.

<최영승 | 대한법무사협회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시내버스를 타고 익숙한 길을 달리다 몇 년 전 그날이 생각났다. 그날 버스 안에는 승객이 몇 되지 않아 들고나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기도 하고, 목소리 낮춰 통화하는 소리가 슬쩍슬쩍 들리기도 했다. 버스는 빈 정류장을 여러 번 지나치다 한 아파트 단지 앞 정류장에 정차했다. 버스에 오른 이들은 아이 둘과 어른 하나였다. 엄마로 보이는 이는 아이 둘을 먼저 앉히고 그들 뒷자리에 앉았다. 평범한 외출처럼 보였는데, 곧 전화를 받은 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택시가 안 잡혀서 버스를 탔다는, 지하에서 공사하던 중에 불이 났다는, 무슨 기계가 터졌다는, 많이 다쳤다고 하는데 모르겠다는. 그 다급한 통화 뒤에 여자는 자신을 돌아보는 남매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아빠 괜찮을 거야. 진짜 괜찮을 거야.”

아이들은 엄마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셋은 입을 꾹 다문 채 앞만 바라봤다. 어린아이들은 괜찮을 거라는 엄마 말을 믿느라, 엄마는 스스로 한 말을 믿느라 곧추세운 등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들은 버스가 번화가로 나오자마자 곧장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탔다. 나는 그들을 눈으로 좇으며 나도 모르게 하늘을 힐긋 올려다보면서 빌었다. ‘그들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게 하소서.’

그런데 이것이 초월적 존재에게 빌어야 할 일인가. 아침에 일터로 나간 이들이 별일 없이 무사히 퇴근해서 돌아오는 것을 초월적 존재에게 맡겨야 하는가. 예전에 버스 운전석 앞에 간혹 걸려 있던, 무릎 꿇고 기도하는 소녀의 그림을 집마다 내걸어야 하는 판인가.

버스 안에서 만난 그 가족의 불행을 불운 때문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 하루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3명이나 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선가 일터로 나간 가족의 사고 소식을 듣고 황망하게 뛰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행여 방정맞은 일이 될까 봐 눈물을 꾹 참으면서, 괜찮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묵묵히 일하다 세상을 떠난, 결코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되는 청년의 1주기를 보내면서 사회가 여전히 아무것도 안 하니 나는 부질없이 버스 창밖을 내다보며 또 빈다. 부디 오늘은 모두 무사히 돌아오게 하소서.

<김해원 동화작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학교 교육만 받아서는 세상을 잘 살 수 없다. ‘어려운 남을 도와주라’는 구절을 보고 친구에게 돈을 빌려준다면 돈은 물론이고 우정까지 잃게 마련이다. ‘늘 정직하라’는 말에 꽂혀 자신을 평가해 달라는 부장님에게 “능력도 없으신데 그 자리까지 올라가신 게 신기하다”고 한다면, 더는 회사에 다니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학교 교육은 대학입시를 위한 용도로 치부하되, 삶에서 필요한 지식은 경험을 통해, 또는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하면서 배워야 한다. 

후자의 지식이 어려운 것은 시대가 바뀌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어서, 수시로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지난 정권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권력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검사는 대통령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물고, 물지 말라면 안 문다”는, 어느 검사의 오래된 푸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검찰이 대통령보다 더 세다’라는 게 상식이 되고 있다. 이 주장을 하는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충실한 지지자인 소위 ‘문빠’들인데, 이들이 거의 모든 인터넷 사이트를 누비며 이 논리를 들이미는지라 지금은 대통령이 더 세다고 말하는 이가 크게 줄었다. 

자기들이 사랑하는 대통령이 검찰에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는 것에 마음 아파하다 보니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인데, 지난 정권 때만 해도 이들이 “검찰이 대통령 눈치만 본다”며 분노했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심지어 현 정부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했을 때만 해도 문빠들은 ‘긴장해라. 적폐들아’라며 환호를 보냈는데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들이 이 사회를 이끄는 실세인 만큼, 다치지 않고 살려면 그들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삶의 지표로 쓰는 수밖에. 

또 하나 알아야 할 점은 이런 배움에는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전쟁 때 의학이 발달하는 것처럼, 삶의 지혜는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르르 쏟아진다. 예컨대 조국 사태 때 체득한 지식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표창장 위조. 인턴확인서 위조. 사모펀드 비리: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장관직에서 물러날 범죄였겠지만, 이젠 아니다. 이것들은 검찰이 마음먹고 조사하면 누구한테서든 적발할 수 있는 일상적인 행위이니, 예수쯤 되는 분이 아니라면 함부로 욕해서는 안된다. 

-컴퓨터 안에 비리에 관한 증거가 있을 때 그 컴퓨터를 몰래 빼돌려 차 트렁크 안에 감추는 행위: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증거인멸’이겠지만, 이젠 아니다. 검찰이 증거를 조작할지 모르니까 자기변호 차원에서 증거를 보전하는 행위다. 또는 집에서 일하기 위해 컴퓨터를 잠시 가져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SNS: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쓰는 매체로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타인을 욕하면서 자신의 인기를 올리기 위해 자신이 절대 지키지 않을 것들을 마구 써대는 곳’으로 바뀌었다.

-피의사실 공표: 과거엔 국민 여론을 결집시켜 커다란 범죄를 저지른 이를 처벌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도 어느 정도는 이것 덕분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의 피의사실 공표는 검찰이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흘리는 악질적인 행위로 그 개념이 바뀌었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조국 법무부 장관 시절 이런 행위가 전면 금지됐다. “요즘 왜 조국 관련 기사가 나오지 않지?”라고 묻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배움이 부족한 분이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사건’에서도 배울 점은 차고 넘친다. 

-민정수석실: 원래 대통령의 친·인척을 감시하는 곳으로 알려졌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고래고기 등 울산 앞바다에 사는 동물도 ‘친·인척’의 범주에 포함됐다. 

-캠핑장: 원래는 ‘산이나 들 따위의 야외에서 천막을 치고 야영하는 장소’를 뜻했지만, 지금은 ‘후보자 당선을 위해 선거운동 전략을 짜는 조직’으로 바뀌었다. 어떤 이의 취미가 ‘캠핑’이라면 그는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일 확률이 100%다. 

평소 알던 상식이랑 달라서 당황하겠지만, 원래 배움이란 어려운 법이다.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변하지 않는 지식도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극한직업’이라는 게 대표적인 예다. 

박근혜 정부 때 대변인을 했던 정연국을 보자. 그가 카메라 앞에서 진땀을 뺄 때 사람들은 그를 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됐다면서 혀를 끌끌 찼다. 내막도 잘 모르면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 그의 처지가 딱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뀐 지금, 사람들은 해명을 한답시고 연일 카메라 앞에 서는 고민정을 보면서 같은 반응을 보인다. “고인이 되신 동부지검 수사관이 울산에 내려간 것은 울산시장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청와대는 하명수사를 지시한 바 없습니다.” 고민정씨, 많이 힘들죠? 저희도 힘드네요. 새로운 지식을 머리에 담아야 하니까요.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충남 딸기연구소에서 개발한 ‘설향’ 품종은 중앙과 지역 농업 간 연구·개발(R&D) 협업의 중요성을 일깨운 성공사례다. 2005년 9.2%에 불과했던 국산 딸기 품종의 점유율은 2018년 94.5%로 높아졌다. 수출액도 2005년 440만달러에서 2018년 4800만달러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농촌진흥청을 주축으로 지방 농촌진흥기관과 대학이 협력해 고품질 재배기술을 개발하고 재배환경과 재배법을 표준화한 덕분이다. 저장 및 유통 방법 개선도 주효했다.

농촌진흥청이 지역특화작목을 육성한 것은 1991년부터다. 지역거점별로 농업 인구 인프라를 구축해 연계기술을 확보하고 산학연 협력으로 개발한 기술을 농업 경영체에 보급했다. 그 결과 사업 참여 농가의 소득 증가율이 2017년 21.8%를 기록했다. 일반 농가의 소득 증가율 3.0%와 비교하면 7배에 달한다.

지난해 정부는 지방분권·균형발전이라는 핵심 국정과제 실현 방안으로 지역의 자율성을 중시하고 경쟁력과 경제 활력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지역밀착형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지역이 주도하는 R&D 강화방안도 발표했다. 이런 흐름에서 볼 때 지역 특성을 살리고 경쟁력을 갖춘 지역특화작목을 개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지역특화작목 산업이 활성화되면 농업의 새로운 발전과 성장을 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7월9일 ‘지역특화작목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약칭 지역특화작목법)이 시행됐다. 기존 R&D 지원 사업은 규모도 작은 데다 산발적으로 투입되어 지역사회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이 법은 농산업 부가가치를 높일 지역농업 발전 강화전략을 수립하여 지역특화작목을 육성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담고 있다.

그동안 지역농업 R&D 지원에 관한 근거가 미약했는데, 이 법의 시행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가 강화됐다. 보다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지역농업 R&D를 통해 개발된 기술을 보급하고 사업화하는 것은 물론 유통과 수출까지 그 지원 범위가 확대됐다. 특히 시·군 농업기술센터에 대한 지원 근거가 마련됐다. 농업인, 농산업체 등 민간이 참여해 현장 밀착형으로 함께 연구할 수 있도록 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농업인의 소득이 향상되고 지역 내 고용기회가 늘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국민들이 다양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것이다.

최근 한국도 농업정책 전반에 국내외 변화에 대응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요구받고 있다. 우리 농업도 획일적인 생산 위주의 농업에서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경쟁력 있는 농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역특화농업의 발전이 지역 공동체의 이익을 창출하며 중앙과 지역 상생 발전에 기여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황규석 | 농촌진흥청 차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자유한국당은 안보 정당을 자부한다. 그런데 그 ‘안보’의 대상이 수상하다. 나경원 전 한국당 원내대표의 지난달 27일 입장문을 보자. “2018년 지방선거를 하루 앞두고 열린 1차 정상회담이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3차 회담마저 총선 직전에 열릴 경우 대한민국 안보를 크게 위협할 수 있다. 금년 방한한 미 당국자(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에게 그러한 우려를 전달한 바 있다.” 이 입장문은 ‘총선 전 북·미 정상회담 개최 미국에 자제 요청’ 파문이 번지자 ‘우려’했을 뿐 ‘요청’하지 않았다고 해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요청한 것이 사실임을 확인해준 셈이다.

입장문의 맥락은 선거에 눈이 멀어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회담마저 반대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한국당이 일본에 총선 전에 경제 보복을 풀지 말라고 요청하고 나설지도 모르겠다. 그의 입장문은 큰 파문이 일었지만 잇따라 불거진 현안들에 밀렸다. 그러나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 맞나”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틀린 말을 했느냐”고 맞받았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맞는 말이 별로 없다.

따져보자. 첫째 호도. 2018년 지방선거에서의 한국당 참패는 정상회담보다 한국당 탓이 훨씬 컸다. ‘탄핵 세력’에 표를 줄 유권자도 많지 않았지만 탄핵으로부터 거듭나지 못한 한국당 자체가 표를 끌어모을 매력이 없었다. 둘째 억지. 북·미 정상회담이 총선 전에 열리면 한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판단은 근거가 없다. 최대 안보 현안인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회담이 어떻게 안보를 위협한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총선 후에 회담이 열리면 안보에 도움이 되는가. 셋째 자기모순. 그의 입장은 “북핵은 안보에 최대 도전”이라는 황교안 대표의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

나 전 대표의 논리대로라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나 선거는 병행하기 어렵다. 예컨대 2018년의 경우 지방선거가 치러진 6월13일 이전에 남북정상회담 2회, 북·미 정상회담 1회 등 총 3회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기간이 얼마인지 그는 밝히지 않았지만 ‘선거 직전’이라고 밝힌 점을 감안해 2개월 정도로 잡아보자. 그렇다면 그해 1~4월에 3개의 정상회담을 열었어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정상회담 성사의 어려움과 회담 준비기간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회담을 임의로 선거 뒤로 미루는 것도 비현실적인 일이다. 이 같은 사정은 내년 4월 총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거와 정상회담은 중대한 행사이기 때문에 경중과 선후를 따질 수 없다. 그런데 그의 입장문은 북핵 해결보다 총선을 중시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정파적 이익을 위해서는 중요 안보 행사도 연기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전 대표만이 아니다. 안상수 의원은 지난 9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에게  “미국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으니 북한과 종전선언을 하면 안된다”고 요청했다. 한국의 국회의원인데 왜 한반도 냉전 해체를 의미하는 종전선언에 반대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안 의원이 한국의 안보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을 더 중시한다고 이해해도 될는지 궁금하다. 이런 행태는 한국당이 내세우는 안보의 대상이 국민이나 국가가 아니라 바로 한국당 자신임을 증거한다. 그런 점에서 나 전 대표의 입장문은 한국당의 정체성 고백이요, 커밍아웃인 셈이다. 한국당은 안보 정당이라고 내세울 게 아니라 ‘자기안보 정당’으로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바란다.

사실 한국당은 주요 선거 때마다 이른바 북풍을 공작해온 보수의 DNA가 내면화된 정당이다. 1987년 대선 하루 전날 일본과 갈등을 벌이면서까지 ‘김현희 압송’을 강행하고, 1987년 대선에서는 북한에 휴전선 무력시위를 요청한 ‘총풍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보수정권과 보수 정당이 한국당의 모체다. 현재도 당리당략을 위해 모든 것을 정쟁화하다보니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라는 대의마저 치지도외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쯤되면 한국당에 안보를 맡기면 위험천만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한국당이 미국의 반트럼프 및 반북 세력,  일본 아베 정부와 손을 잡을 경우 한반도 정세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정치학자 한스 모겐소는 군비경쟁에만 몰두하는 것은 진정한 국가지도자가 취해야 할 건설적 자세가 아니라고 설파했다. 지도자는 자국의 이익과 타국의 이익이 타협 가능한지를 판단하고 상호조정과 타협에 의해 전쟁을 회피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당과 소속 의원들에게 묻는다.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

<조호연 논설주간>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997년 대우자동차는 한글 이름을 가진 승용차를 출시했다. 누비라(Nubira)다. ‘세계를 누비는 차’라는 뜻이다.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경영 의지가 담긴 승용차였다. 개발은 명차 롤스로이스를 만들었던 워딩연구소가 담당했다. 디자인은 세계적 유명 디자인 업체 이데아(IDEA)가 맡았다. 마케팅도 전쟁 수준이었다. 영국 책임자가 점유율 목표달성에 회의적이자 단칼에 ‘잘랐다’고 한다. 당시 대우차 영국지사에서 일했던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판매 목표를 초과 달성했고 누비라를 타고 영국 전역을 누비면서 협상의 기술과 경영의 원리를 배웠다”고 했다.

10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월드컵로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가 꾸려진 가운데 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과 조원진 우리공화당 의원이 조문을 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김 전 회장은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했다. 무역으로 잔뼈가 굵었던 그는 기업의 미래가 해외 진출에 있다고 보았다. 한국이라는 우물 안에서 벗어나서 세계로 나가자는 뜻이었다. 대우실업이라는 소규모 무역업체로 출발한 대우는 국내 4대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 신흥국 출신 최대의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1998년에는 한국 총 수출액 1323억달러 중 대우가 약 14%(186억달러)를 차지했다.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에 자산총액이 76조원에 달하는 재계 2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경영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물거품이 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 경제 관료들과의 마찰이 화근이 됐다. 위기 돌파책으로 김 전 회장은 수출 확대를 주장했으나 관료들의 입장은 기업 구조조정을 통한 해결이었다. 1999년 대우그룹은 공중분해됐고 대마불사의 신화도 사라졌다. 2006년 김 전 회장은 21조원의 분식회계, 10조원의 사기대출로 징역 8년6월, 추징금 17조원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5년 넘는 해외도피생활에 1년여 징역을 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세계경영의 정신은 아직 회자된다. “젊은이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그러나 늘 가던 길만 가려는 사람, 손에 익은 일만 하려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아무도 아직은 가지 않은 길, 아무도 아직은 해내지 못한 일을 추구하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개척자에게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적어도 나는 그런 정신과 자세로 이제껏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능력 유무나 지위 고하에 관계 없이 공무원은 세 부류가 있다. 첫 번째는 개인의 이익만 챙기는 자다. 공무원을 해서는 안되는 경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 잘 먹고 잘 산다. 민원인에게 갑질을 하고 재직하는 동안 든든한 노후대책도 세워놓는다. 극소수이지만 이들 때문에 공직사회 전체가 욕을 먹는다. 두 번째는 조직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자다. 힘이 센 부처나 기관일수록 이런 공무원이 많다. 세 번째는 나라의 이익을 챙기는 공무원이다. 모름지기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이라면 개인의 이익은 제쳐놓고 조직에서 배신자 얘기를 듣더라도 국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런 공무원이 많아야 나라가 바로 서고 국민들 삶도 평안하다.

법무부 외청인 검찰청 소속 공무원인 검사들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로 사익을 추구하는 검사들이다. 이들은 스폰서를 두고 수시로 접대를 받는다. 사건 처리를 대가로 뇌물을 챙긴다. 뇌물의 종류와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공명심(功名心)에 무리한 수사를 하고 피의자의 인권을 무시한다. 권력자와 결탁해 사건을 조작하고 편파 수사를 한다.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죄를 짓고도 법 지식을 활용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다음은 조직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검사들이다. 이들은 거악을 척결해야 한다는 정의감과 엘리트 의식이 강하다. 정치인과 기업인은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고, 경찰은 수하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사는 완전무결한 존재여야 하므로 검사의 비리는 최대한 감추고 소극적으로 수사한다. 그 결과 ‘김학의 사건’처럼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는 일이 생겨난다. 한국의 검사 대다수가 이 부류에 속한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사람 아닌 조직에 충성한다”고 말했다.

조직 논리만 거스르지 않아도 명예와 부(富)가 따라오지만 이를 스스로 걷어차는 검사도 있다. 내부고발로 왕따를 자처하며, 검찰의 과오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한다. 경찰을 수사 파트너로 존중하고, 검찰도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찰 조직보다 나라와 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진정한 ‘공익의 대변자’라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미증유의 총력 수사로 검찰사를 새로 쓰고 있다. 검찰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전방위 수사로 부인과 동생을 구속하고 조 전 장관까지 낙마시켰다. 지금은 ‘유재수 감찰 무마’와 ‘하명수사’ 카드로 청와대와 여당에 맹폭을 가하고 있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다. 검찰은 나라의 이익을 위한 수사라고 주장한다. 윤석열 총장은 “이 정부의 성공을 위해 내가 악역을 맡은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과거 대선자금 수사나 국정농단 수사처럼 국민적 지지와 성원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검찰 조직 수호를 위한 무력 시위이자 국회 시즌을 겨냥한 정치 개입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을 추진하며 검찰에 비판적인 쪽에는 칼을 들이대고, 공수처법 반대 등 검찰 편을 드는 쪽의 비리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비리와 불법이 양적·질적으로 여당에 결코 뒤지지 않는 보수야당에 검찰이 이처럼 관대할 이유가 없다. 자녀 입시 비리 의혹을 사고 있는 의원, 촛불시민을 짓밟기 위한 계엄문건 작성에 관여한 세력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꽃피던 지난 4월 공수처법 등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법안 추진 과정에서 벌어진 의원 감금 사건은 겨울이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검찰개혁은 시대적 과제다. 수사는 수사대로, 개혁은 개혁대로 추진돼야 한다. 검찰의 흑역사를 생각하면 정권을 상대로 한 ‘윤석열 검찰’의 도전은 평가받을 일이지만 이것이 검찰개혁을 중단하는 이유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숱하게 개혁안이 나왔지만 검찰의 DNA는 그대로다. 조직을 우선시하는 검사들의 문화도 달라지지 않았다. 묵혀둔 사건을 갑자기 꺼내고 언론에 피의사실을 흘리는 등 거악을 척결하는 일이라고 판단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습성도 여전하다. 피의자를 압박하기 위해 별건수사를 벌였다는 뒷말도 많다.

현재의 검찰 시스템으로는 검찰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이 양립하는 건 불가능하다. 검찰의 힘이 세질수록 도리어 부정부패가 증가하고, 법의 권위는 추락하며,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는 것을 국민들은 이미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자신만 옳다는 독선과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쓰러뜨릴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검찰은 수사·기소권을 독점하며 막강한 권한을 유지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는 집단최면에서 깨어나야 한다. 엄동설한에 검찰만 계절이 바뀐 줄 모르고 벌거숭이로 칼춤을 추는 것 아닌지 윤석열 총장 이하 2000여 검사들은 되돌아볼 일이다.

<오창민 디지털뉴스편집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