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과는 ‘농활’이라는 인연이 있다. 도시 학생들에게 농촌에 대한 경험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을 깊게 하는 데에는 농활이 큰 역할을 했다. 나도 그랬다. 지금도 뉴스에 익산 소식이 들리면 귀를 쫑긋 세웠다. 최근 몇 년간 들려온 익산의 소식은 ‘장점마을’이었다. 

지난달 14일 환경부는 익산 장점마을 주민들의 집단 암 발병이 ‘금강농산’의 비료공장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공식 인정했다. 비료는 크게 유기질비료와 무기질비료로 나누는데 유기질비료에는 기름을 짜고 남은 ‘유박’이나 생선을 가공하고 남은 ‘어박’ 등이 들어간다. 금강농산에서 생산하는 비료는 담배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연초박’을 원료로 쓰던 유기질비료였다. 퇴비로만 허용된 연초박을 불법으로 태우는 과정에서 온 동네에 유해가스를 내뿜었고 장점마을 주민들은 익산시와 전북도에 민원을 제기해 왔다. 수요일에 KT&G 본사 앞에 장점마을 주민들이 섰다. 그냥 피워도 사람 몸에 해롭다는 담배인데 그 찌꺼기를 태웠으니 빤한 결론 아닌가. 이 사태에 KT&G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언론들도 이 사태에 관심을 가지면서 최근의 일인 것 같지만 주민들은 ‘18년간의 싸움’이라 한다. 담당 공무원은 ‘유기농비료’여서 문제가 있을 줄 몰랐다거나 시찰을 나갔었노라 발뺌하느라 바빴다. 그간 부실하게 이루어진 환경조사로 많은 주민들이 원인이 특정되기도 전에 고통 속에 유명을 달리했다. 

‘장점마을’ 사건은 그나마 주민들끼리 반목하지 않고 지역의 시민사회가 손을 잡고 함께 싸우고 있다. 농촌 환경오염 문제의 대명사인 경북 봉화군의 ‘석포제련소’는 영풍문고로 유명한 영풍의 업력 50년의 아연제련공장이다. 그간 카드뮴을 비롯해 각종 환경오염을 일으켜 왔다. 안동MBC는 꾸준한 기획보도로 석포제련소 문제를 농촌지역의 문제이자, 낙동강을 식수로 쓰는 영남권의 문제로 확장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취재진은 침묵하거나 취재를 막는 지역민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금강농산의 비료공장은 소규모 업체지만, 석포제련소는 대형 사업장이다 보니 여기에 생계를 건 주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활권이 겹치는 강원 태백시는 태백시의 생존권 문제라며 석포제련소의 조업정지에 반대하기도 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뜻이었을까. 

농촌에서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제천시 송학면 인근의 주민들은 광부도 아닌 농부였지만 진폐증을 앓았다. ‘아세아시멘트공장’에서 내뿜는 분진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고통스러운 일은 시멘트공장에서 밥벌이를 하는 이웃들과의 반목과 마을 공동체의 파괴라고 말한다. 2012년 충주MBC에서 이 문제를 <투구꽃 그 마을>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담았고, 해외에서 상까지 받았어도 정작 시멘트 회사의 노조원들과 지역민들은 다큐멘터리 상영을 막아서기도 했다. 

대도시에는 감히 들어설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환경유해시설들은 자본 유치와 고용 창출이라는 명분과 함께 농어촌으로 흘러들어간다. 농촌 곳곳마다 폐기물시설이나 공장이 들어서려 할 때마다 ‘결사반대’라고 적힌 현수막이 나부끼지만 싸울 사람이 원체 적고 근력 달리는 노인들이 다수이니 매번 지고 만다. 농사에는 비료가 꼭 필요하지만 결국 농촌 주민들의 몸을 갉아먹었다. 어디 비료뿐이겠는가. 지금도 농촌에서는 무언가가 태워지고 하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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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개인 휴가차 가족과 아이슬란드 여행을 다녀왔다. ‘골든 서클’ 일일투어를 도와주는 현지 남성이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자, 곧바로 이렇게 응답했다. “제가 며칠 전 BBC 뉴스에서 여성 K팝 가수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구하라였다. 자신은 K팝을 들어 본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기사를 보니 이 여성 가수가 스캔들에 휘말리고 사건을 공론화하고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이분에게 또 다른 K팝 여성 가수인 설리의 안타까운 죽음 사건도 설명하면서 한국에서 여성에 대한 악성댓글과 불법 동영상 촬영이 얼마나 만연해 있고, 가해자 처벌이 얼마나 미약한지를 알려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BBC 기사를 찾아 읽어보았다. 제목은 “구하라와 남한의 불법촬영 희생자들의 트라우마”였다. 기사는 먼저 가명으로 처리된 은주라는 여성이 당한 불법촬영 사건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다. 가해자는 같은 병원에서 근무한 남성 동료였다. 그는 여성 탈의실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불법으로 카메라를 설치한 후 옷을 갈아입는 여성들을 지속적으로 촬영했다. 이 남성은 나중에 한 여성의 치마 속을 촬영하다 경찰에 체포됐고, 그의 휴대폰에서 불법으로 촬영된 여성 피해자들의 영상이 나왔다. 은주씨도 그들 피해자 중 하나였다. 은주씨 부모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사건이 있고 난 후 딸은 악몽에 시달렸고,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었다. 그럼에도 직장 주변에서 누구도 그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다. 은주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사는 불법촬영 범행을 한 가해 남성에게 2년을 구형하고, 재판부는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BBC 기사는 구하라가 극단적 선택을 한 계기가 단지 전 남자친구인 최종범의 성관계 불법촬영 및 유출 협박과 폭행 때문만은 아님을 강조한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실질적인 원인은 법의 정의에 호소했던 마지막 희망이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오모 부장판사가 재판과정에서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은 가부장적인 태도, 피해여성이 느끼는 고통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판결문, 가해자가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결과, 그 상황을 가십성으로 보도하는 언론과 대중들의 악성댓글이 아마도 구하라를 죽음으로 몰고 간 더 큰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BBC 뉴스의 핵심 논조이다. 한국 언론들은 이러한 해외 언론의 문제의식에 비해 얼마나 이 사건을 진지하게 다루었는지 의문이다. 

BBC 기사는 은주씨 부모 인터뷰를 인용하면서 “그들은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요”라는 문장을 기사 중간의 소제목으로 달았다. 여기서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아마도 지금도 여성을 불법촬영하거나, 불법촬영된 영상을 보고 있는 남성들일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불법촬영 피해 여성들의 고통을 알고도 모른 체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동료들일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사건의 진실보다는 가십성 뒷이야기에 더 관심을 갖는 기자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마도 소속된 연예인이 불법촬영 피해를 입어도 별일 아닌 걸로 무마하려는 기획사 대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여성 상대 불법촬영과 성희롱 성폭력 사건에 대해 솜방망이 판결을 내린 남성 가부장 의식에 사로잡힌 대한민국 사법부일 수도 있다.

지난 2년간 한국에서 불법촬영 신고가 1만1200건에 달하지만 대부분 판결은 무죄 아니면 벌금형이다. 실형을 사는 경우는 극소수에 그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8년에 조사한 ‘불법촬영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뷰 대상자 2000여명 중 23%가 자살을 고려했고, 16%가 자살 계획을 세웠고, 이 중 23명의 여성이 실제로 자살을 기도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여전히 불법촬영 처벌에 대한 사법부의 태도는 안이하다. 한국과 달리 미국 메릴랜드주 법원은 수영장 파티를 열고 미성년자를 불러 탈의실을 불법촬영한 50대 남성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여성들에게 더 고통스러운 것은 2차 피해를 방치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직장, 언론, 연예계, 학계, 사법부에서 행해지는 잔인한 2차 가해. 과연 누가 구하라를 죽였을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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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보편적 이론도 특별한 상황에서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역사를 되짚는 것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과거에서 참고해 취할 덕목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학자 한명기가 최근 평전(<최명길 평전>, 보리출판사)을 통해 ‘주화파 최명길’을 불러낸 뜻에 공감한다. 병자호란 당시 치욕적인 삼전도 항복 협상을 주도한 외교관, 후손들에게 ‘매국노의 후예’라는 굴레가 씌워질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길을 굳건히 걸었던 최명길. 미국과 중국 간 패권경쟁이 한반도를 엄습하는 이때 명·청 교체기 조선의 형세와 그 난국을 타개하고자 고군분투한 최명길을 떠올린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최명길은 단순히 실리만을 추구하여 청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한 외교관이 아니었다. 그는 인조반정 일등 공신 10명 중 한 사람으로 시대에 순응하며 권세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느 공신의 길을 마다하고 내정개혁을 주장하며 실용 노선의 외교안보 전략가를 자임했다. 그가 명·청 교체기 대륙의 정세를 조망하면서 외교정책을 준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광해군 시절 함경도 관찰사 등으로 변방을 지키던 장인(장만)과 그 부하 무장들로부터 외교·국방과 관련한 정보를 접하고 있었다. 양명학을 공부해 지배층의 이념인 주자학적 전통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도 유연한 외교관(觀)을 형성하는 데 한몫했다. 최명길이 ‘주전 95 대 주화 5’의 절대적으로 불리한 여론 지형에서도 화친을 주장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최명길에게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정파를 뛰어넘는 태도이다. 그는 반정 직후 광해군의 총신이었던 평안도관찰사 박엽의 구명운동을 벌였다. 박엽을 처단하려는 공신 김류에게 “박엽은 후금(청)으로부터의 환난을 대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라며 “그를 죽이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장성을 허무는 일과 같다”고 설파했다. 박엽은 그 성정이 잔인해 세평이 좋지 않았음에도 청나라를 상대하는 데는 그만한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에 살려두자고 한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최명길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두 차례의 호란을 통해 그의 우려는 고스란히 입증됐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는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무인지경을 달리듯 5일 만에 서울에 당도했다. 

최명길이 좌절당하는 과정도 너무나 낯익다. 인조는 반정 1년 후 벌어진 이괄의 난으로 정권의 안위를 크게 위협받은 후부터 오로지 국내 정치에 매달렸다. 변방을 지킬 군사력을 갖추지 못했으면서 ‘후금 정벌’을 공언했다. 반정으로 잡은 정권의 정통성을 명나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것이었다. 변방의 장수들이 반란을 일으킬까봐 기찰을 강화하는 바람에 훈련은 꿈도 꾸지 못했다. 집권층인 서인들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며 청나라와 결사항전을 주장했다. 맞서 싸울 힘도 없으면서 입으로만 ‘정신승리’를 외쳤다. 그리고 척화파들은 청에 항복한 뒤에는 최명길이 만들어 놓은 문으로 나가 목숨을 부지했으면서 그를 만고의 역적, 매국노라고 매도했다. 

한명기 교수는 최명길을 ‘선택적 원칙주의자’라고 정의했지만 나는 그를 ‘경계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경계인은 누구 편에도 서지 않는다. 한쪽에 서면 대립적인 두 당사자를 동시에 아우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학자 최진석은 “경계에 서는 것은 한쪽에 수동적으로 갇히는 게 아니라 경계에서 자기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 점에서 쇠락해가는 명과 떠오르는 청을 냉철히 관찰하면서 선택적으로 시의적절하게 대응해 나간 최명길이야말로 진정한 ‘경계인’이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에서 보듯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썩 미덥지 못하다. ‘경계’에 서고자 하는 의욕은 느껴지지만 그 전략을 실천할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면서도 전 정권에서 중용된 관료들을 내치고 있다. 균형자 역할도, 촉진자 역할도 다 좋다. 하지만 실천할 역량은 갖추지 못하면서 말로만 이상론을 편다면 또 다른 명분론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파의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명나라에 대한 의리 이외엔 다른 길이 없는 양 부르짖은 척화대신들처럼 한·미동맹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신봉하고 있다. 한국이 이미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 끼여 있는데도(양국 간 거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애써 이를 부정하고 있다. 명분론이 외교안보 담론을 덮는 한 냉철하고 유연한 사고는 어렵다.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 한국이 과거 명·청 교체기의 조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홀로 한국의 길을 갈 힘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자문한다. 우리는 과연 경계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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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오른 선거법과 검찰개혁 법안 처리를 두고 또다시 극한대치에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은 ‘13일 국회 본회의 패스트트랙 법안 일괄 상정 방침’을 12일 공식화했다. 자유한국당은 결사 저지를 외치며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 중이다. 민주당은 “이제 우리의 길을 가겠다”고 하고, 한국당은 “우리를 밟고 가라”고 한다.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마주 보며 돌진하는 형국이다. 이러다간 지난 4월에 이어 제2의 패스트트랙 대충돌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최악의 국회’란 오명을 뒤집어쓴 20대 국회가 마지막까지 추태를 보이는 데 대해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건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를 내걸고 장외투쟁, 삭발, 단식을 반복하며 국회를 무력화한 한국당의 책임이 크다. 한국당은 그동안 제대로 된 법안 심사나 대안 제시도 없이 무조건 반대만 외쳐왔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사생결단식 정치는 비현실적이고 위험하다. 시민을 대의하는 국회에 한국당만 있는 것도 아니다. 국회법에 따른 합법적인 입법 절차를 방해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가지고 협상에 임하는 것이 옳다. 민주당도 수적 우세만 믿고 밀어붙이는 건 바람직한 집권여당의 자세라 할 수 없다. 선거법은 게임의 룰인 만큼 여야 합의 처리가 최선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선거법 협상이 이뤄진 적은 없다. 일방적으로 선거제도가 변경된다면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불복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그야말로 파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희미하게나마 협상론이 흘러나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끝까지 협상의 문을 열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도 “마지막까지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신속 처리’와 ‘결사 저지’를 천명한 뒤에 달라붙은 레토릭(수사)일망정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는 점에서 유독 더 크게 들린다. 따지고 보면 절충의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선거법의 경우 ‘지역구 250석, 비례대표 50석’ 안에 연동형 비례대표 비율을 얼마로 할지가 관건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도 정치적 중립 방안을 보완하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협상으로 풀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활로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남은 며칠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결정적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여야는 마지막까지 합의 처리를 위해 더 노력하고 지혜를 짜내야 한다. 그게 대다수 시민의 바람이다. 대타협을 희망하는 기대가 무모하거나 허망한 꿈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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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콜린스 사전과 옥스퍼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각각 ‘기후파업’과 ‘기후비상’을 선정했다. 올해 이 두 단어의 사용 빈도가 이전에 비해 100배 정도 늘었다는 선정 이유는 세계적으로 기후에 관한 위기의식이 그만큼 높아졌고 기후 관련 담론도 많아졌음을 보여준다. 지난 9월 유엔 총회에서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도 이런 변화의 반영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 정상들로부터 기후비상에 걸맞은 말과 행동을 찾아보기는 여전히 힘들다. 2년 전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공식 선언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다 치자.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천명한 문재인 대통령은 기후행동정상회의 연설에서 노후석탄화력발전소 4기 감축과 2022년까지 6기 감축 계획을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책의 일환으로 발표했지만,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7기의 추가 건설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내게는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행동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을 향해 반복해 외쳤던 “How dare you?”라는 날선 비판이 ‘올해의 말’로 남는다. 영상에서 본 툰베리의 눈빛과 표정과 억양에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절박함, 변화를 거부하는 완고한 세계에 대한 원망과 분노, 반드시 변화를 만들겠다는 결연함이 묻어났다. 자신들의 삶을 더 이상 빼앗지 말라며 세계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멸종위기’를 외치는 현실이 보여주듯, 기후위기를 우려하고 대책을 말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늘었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뿌리인 우리의 삶의 양식을 바꾸자는 생각과 의지는 여전히 소수에 그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시사주간 타임이 지난 11일 공개한 타임 표지. AFP연합뉴스

온실가스를 에너지 쓰레기로 보면, 우리는 자원의 한계 이전에 자원을 소비한 결과인 쓰레기의 한계에 먼저 봉착한 것이다. 온실가스만 한계가 아니다. ‘5초-20분-500년’ 1회용 플라스틱 컵이나 빨대의 평균 생산-사용-분해시간을 상징하는 숫자다. 플라스틱 제품은 20세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했으니, 우리가 쓰고 버린 플라스틱은 소각된 것을 제외하면 지구 어딘가에 고스란히 쌓여 있을 것이다. 코카콜라 회사가 매년 생산하는 플라스틱 병만으로도 지구를 700번 감을 수 있다고 한다.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들어가 형성된 쓰레기 더미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하여, ‘GPGP’라는 태평양의 쓰레기 더미는 그 크기가 한반도의 6배가 넘는다. 핵발전소의 쓰레기도 마찬가지다. 사용후핵연료를 쌓아온 핵발전소의 임시저장소 포화율은 평균 90%다. 조만간 고준위핵폐기물을 보관할 곳이 없는 핵발전소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핵발전에 대한 근원적 고민은 없고, 임시저장소를 늘릴 생각만 한다. 쓰레기의 근원인 ‘소비주의’ 생활양식은 바뀔 기미가 없다. 생산과 소비는 진작되어야 하고, 우리는 계속 성장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쓰레기의 경고는 분명하고 단호하다. “더 이상, 이렇게 갈 수 없다.” 이런 규모의 쓰레기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생산과 소비, 경제성장은 지속될 수 없다. 아니, 인류의 존속 자체가 지속 불가능하다.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기후위기는 조만간 기후붕괴를 불러올 것이라는 예측은 허황된 위협이 아니라, 오랜 연구 결과에 근거한 과학적 경고다. 우리의 문제는 놀랍게 진보한 기술의 결과라는 사실은 기술의 진보로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지극히 비현실적임을 보여준다. 이 길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호소와 주장이 현실적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경제성장도 기술의 진보도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는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가야 할 새로운 길을 볼 수 있게 된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새해에는 이 말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면, 문제를 근원적으로 보고 현실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눈과 마음을 청한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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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을 바꾼 지 4년 남짓 된 더불어민주당은 1955년 9월18일을 공식 생일로 삼는다. 올해도 9월18일 창당 64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사사오입 개헌’ 사건을 계기로 민주국민당의 보수파와 자유당 탈당파, 흥사단 등 반이승만 세력이 모여 1955년 9월18일 창당한 민주당을 ‘뿌리’로 삼는 것이다. 민주당-민중당-신민당-신한민주당-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신민주연합당-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간단없는 이합집산 속에서 뼈대를 이뤄온 정당만 나열해도 숨가쁠 지경이다. 현란한 당명의 변주에도 새정치국민회의와 열린우리당을 제외하면, ‘민주’만은 지키고 있다. ‘민주당’ 계열로 한국 정당사의 한 축이 정리된다.

다른 축인 보수정당의 변천은 이승만·박정희 장기집권 덕(?)에 상대적으로 간명하다. 자유당-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 독재와 정변의 그늘 때문에 ‘자유’와 ‘공화’가 밀려나고 나서 한국, 한나라, 새누리 등으로 보수정당을 포장했다. 자유한국당으로 ‘자유’가 복귀하는 데 20여년이 걸렸다. 특이한 건 ‘보수’가 당명에 쓰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그만큼 격변의 현대사에서 ‘보수’는 매력 없는 기치였던 셈이다.

양대 정당의 틈새에서 생존 공간을 찾아 헤매다 명멸해간 제3당의 당명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로 한정해도 통일국민당, 신정치개혁당, 자유민주연합, 국민신당, 국민통합21, 창조한국당, 친박연대, 자유선진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바른미래당. 당명만으론 이념이나 정체성을 헤아리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정 인물 중심이거나 소지역주의에 기대 급조된 경우가 태반인 탓이다. 그중에서도 한 정치인의 친분을 공공연히 내세운 ‘친박연대’는 압권이다.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주축의 ‘변화와 혁신’이 신당명을 ‘새로운보수당’으로 확정했다. ‘보수’를 간판에 내건 첫 정당이다.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보수’의 지평을 열어갈 지는 봐야겠지만, 여하튼 당명에 ‘보수’가 호명된 것부터가 무너진 보수의 재건이 시대적 화두로 대두했음을 증거하는 것일 터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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