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있는 아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안톤 슈나크의 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첫 문장이다. 

울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슬퍼지는 것은 나 역시 언젠가 그렇게 울어본 적이 있어서일 것이다. 굶주린 세월을 살지는 않았으니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울지는 않았을 것이고, 전쟁을 겪지 않았으니 충격적인 공포와 상실로 인해 울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에 비견할 만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이 없지 않으나 대개는 아주 사소한 이유, 어린아이들의 별것 아닌 다툼, 터무니없는 서운함, 사소한 소외와 사소한 외로움 때문에 얼굴을 가리고 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별것 아닌 슬픔이 그 나이의 그 아이에게는 세상 전부와 맞바꿀 만큼 거대한 비통함이기도 했을 것이다. 슬픔과 고독은 평균치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의 것이 더 크고 누구의 것이 더 작지 않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정성껏 위로받아야 하고, 사소한 이유들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겠다.

어른이 된 후 아이의 울음을 볼 때 더욱 슬퍼지는 것은 그것이 내 과거의 한 장면일 뿐만 아니라 내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일 수도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어제도 울고 오늘도 울었는데, 내일은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어제 잘못되었던 것은 내일은 괜찮아질까. 그럴 리가. 오늘도 이렇게 괜찮지가 않은데, 하는 기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의 슬픔이 위로받아야 하겠으나 그릇된 것에 대해서까지 그런 것일 리는 없다. 그저 그릇된 것이 아니라 매우 잘못된 것에 대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슬픔을 위로하는 방식은 그 슬픔을 야기하는 원인에 대한 냉정한 직시와 교정과 대항에도 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 여전히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이 미래에도 그럴 뿐만 아니라 점점 더 나빠질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홍콩 항쟁을 지지하는 학생과 청년들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주한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홍콩 항쟁 지지한다’ ‘시진핑의 진압지시 규탄한다’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우철훈 기자

홍콩의 시위대를 인터뷰한 내용 중 이런 구절을 읽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우리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죠. 적어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우리의 뒷세대는 알게 될 테니까요.” 실탄이 발포되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시위 현장에서의 이와 같은 발언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절박함을 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을 지금 처음 듣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했던 말이기도 하다. 얼마 전 홍콩 작가를 만난 적이 있는데, 송강호가 주연한 영화 <택시 운전사>를 봤다며 반갑게 말했다. 그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말하는 동안 여러 번 ‘광주’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에게 그 영화가 중요한 이유를 나는 대뜸 이해했다. 그가 그 영화를 보다가 잠깐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그 영화를 통해 광주항쟁을 보았겠으나 역으로 나는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그를 통해 홍콩을 보는 듯했다. 어른인 우리는 그 얘기를 하면서 잠깐이나마 울지 않았으나,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으나, 슬펐다. 광주항쟁이 벌써 40년 전의 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놀랍다. 그로부터 많은 일이 시작되었고,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해에 광주에서 흘렸던 눈물과 피에 빚진 것들이 너무 많다.

세상은 한순간에 통째로 바뀌지 않으니 천천히 달라지며 천천히 나아져야 하는 것이겠으나, 그로부터 40년 후의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여전히 가슴을 흔드는 슬픔과 또는 감동과 또는 비통함과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있다. 

분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전직 대통령의 행태 때문이다. 군사 반란사건인, 그리고 그 후 군사독재를 이끌게 된 12·12 사태를 기념하기 위해, 말하자면 기리기 위해 고급 음식점에서 오찬을 즐겼다고 한다. 본인이 치매라고 주장하고 있는 그 사람은 절대로, 죽어도 치매도 걸리지 않을 것만 같다. 그는 절대로 반성하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고, 처벌받지도 않는다. 이상한 세월이다. 40년이나 흘렀는데, 여전히 너무나 이상해서, 나는 혼자 잠깐 얼굴을 가린다.

연말이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보다는 우리를 슬프게 하지 않는 것들을 생각해보고 싶어지는 시간이다. 우리를 기쁘게 하거나 환희에 차게 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슬프게는 하지 않는 것. 보통 사람들의 가만한 일상, 때때로 실수는 하지만 곧바로 후회하고 반성하며 부끄러워하는 삶, 그래서 금방 자신의 가족에게 그렇듯 타인에게도 따듯해질 수 있는 삶. 연기하지 않는 정치인들, 솔직한 정치, 걱정하지 않는 집값과 보험료, 공손한 검찰, 겸손한 경찰, 부끄러움을 아는 사장님들, 건강한 청년들, 모욕당하지 않는 여성들, 그냥 보통의 당신, 보통의 나. 그리고 때때로 울지만 금방 언제 울었냐는 듯이 활짝 웃는 아이들, 그 아이들의 웃음소리, 웃느라 발그레해진 얼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한 우리의 미래, 그런 것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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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으로 땅을 빌려주면서 집을 지어주고 용돈과 차비도 줬는데, 묵은 기름때와 독극물, 소각장은 그대로 두고 떠난다. 주인은 남은 쓰레기와 시설을 자기 돈으로 직접 치운다. 심지어 원래 살던 식구들을 쫓아내면서 여의도 5.5배 면적의 집을 지어주고 이사비 16조원도 기꺼이 지불했다. 미국이 한국에 군대를 주둔한 지난 75년 동안, 한국 정부는 단 한 차례도 미국에 오염된 미군기지 정화 책임과 비용을 받아낸 적이 없다. 미국은 ‘한국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환경정책의 기본원칙인 ‘오염자부담원칙’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마찬가지로, 국내 토양환경보전법은 “그 오염을 발생시킨 자는 그 피해를 배상하고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는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제10조의3)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주 한국 정부는 고농도 토양오염이 발생했던 원주 캠프 이글과 캠프 롱, 부평 캠프 마켓, 동두천 캠프 호비 쉐아사격장 등 4개 폐쇄 미군기지를 즉시 반환받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미측과의 이견’으로 정화 주체와 비용은 ‘오염을 발생시킨 자’가 아니라 한국이 지겠다고 했다. 미국은 2006년 오염된 23개 미군기지 반환 때도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원상 복구 의무가 없다’(제4조 1항)는 규정을 근거로 버텼다. 이번 협상 때도 캠프 마켓에서 기준치 10배 이상의 다이옥신이 발견되었지만, 미국은 SOFA에서 유일한 환경기준인 ‘주한미군에 의해 야기된 인간 건강에 대한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KISE)’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강경화 장관의 외교부는 이번에도 오염자부담원칙을 따지지 못했다.

닥쳐올 용산기지 반환 협상은 태풍의 핵이 될 것이다. 주한 미군기지 중 환경오염 사고가 가장 빈번하고 폭넓고 고농도로 발생한 곳이 바로 용산기지다. 지난 25년 동안 밝혀진 오염사고만 90건이 넘고, ‘주한미군 환경관리기준’으로 ‘최악의’ 유출량 3.38t 이상 7건, ‘심각한’ 유출량 400ℓ 이상 32건이 포함되었다. 오염 사실을 한국 정부와 서울시, 용산구에 알리지도 않았다. 2018년 서울시 ‘용산미군기지 주변 유류오염 지하수 정화현황’을 보면 녹사평역 지점은 1급 발암물질인 벤질의 농도가 지하수 정화기준의 1170.5배에 달했다. 삼각지역 인근 지역은 석유계총탄화수소가 기준치의 292.8배나 됐다. 서울시는 지금까지 매년 이곳의 오염된 지하수를 국민 세금으로 치우고 있다. 왜냐하면, 미국의 반대로 용산기지 내부 오염원을 근본적으로 정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추정컨대 용산기지 오염정화 비용은 1조원을 넘을 것이다.

미군기지 반환 협상의 ‘선(先) 조건’은 미국에 오염정화의 책임과 비용을 분명히 따지는 일이다. 주한미군이 일으킨 오염사고 기록 전체에 대한 전모를 상세히 밝혀야 한다.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오염자부담원칙을 관철시켜야 한다. 한국 정부는 국민의 자주적 권리, 건강권과 알 권리를 마땅히 주장하며 반환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 국무총리실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를 반환 협상의 컨트롤타워로 세우고 행정부처, SOFA 관련 법률 및 환경오염 전문가, 시민단체를 모아 명실상부한 한국의 협상팀을 구성해야 한다. 환경부와 서울시는 오염기지 대응반을 구성해 협상을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제는, 직접 나서야 한다. 서울시민이 용산기지의 토양, 지하수 오염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다. 국내법에 근거해 주한미군에게 지금 당장, 오염정화 명령을 내려야 한다.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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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제도 일부를 개선하자고 만든 위원회에 어느 법과대학 교수가 외부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간사의 브리핑이 끝나자 그 교수가 물었다. “그래서, 이 제도로 국민에게는 어떤 혜택이 돌아간다는 겁니까?” 딱히 대답할 말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 발언이 좀 생뚱맞다 싶었고 솔직히 듣기 싫었다. 그 기억은 변호사로서 법정의 운영 실태를 보면서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개선이든 개혁이든 관청에서 하는 일은 그 신선함이 국민에게 피부로 느껴져야 하는 것이다.

지난 10월 초 한겨레신문 강희철 기자가 쓴 기사에는 판사들이 김명수 대법원장을 ‘어대’라고 부른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어쩌다 대법원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정권이 바뀌면서 새로 공무원이 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선거캠프 등에 있다가 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이라는 뜻의 ‘어공’이라고 부른다더니, 거기에 빗댄 듯하다. 사법부 수장에 대한 호칭 치고는 점잖지 못한데, 문제는 판사들의 그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라는 데 있다. 어공의 문제는 무능함과 도덕적 해이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오늘 저의 대법원장 취임은 그 자체로 사법부의 변화와 개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쎄, 언사가 과했지만, 법원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서 그래도 기대를 걸었다. 그럼 사법개혁은 어디까지 왔나. ‘장차 사법농단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해서 사법개혁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게다. 사법부의 책무가 그저 ‘농단하지 않기’는 아니지 않은가.

모든 조직, 특히 공적 조직이 수행하는 기능은 제도와 운영의 두 가지 면에서 보아야 한다. 운영은 잘되어도 제도가 발목을 잡기도 하고, 제도는 잘되어 있어도 운영이 시원치 않을 때도 있다. 운영의 변화를 말한다면 인적 구성의 변화는 개혁의 첫 신호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김 대법원장의 발언은 옳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후 조직의 운영에 변화가 없다면, 인적 물갈이는 그저 권력이동 이상의 의미가 없다. 김 대법원장 취임 후 법원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다시 말해서 국민이 법원에 가서 받는 재판은 얼마나 좋아졌는가.

김 대법원장이 취임사에서 사법신뢰 회복방안으로 꼽은 네 가지 과제 중 상고심 제도의 개선을 보자. 상고사건은 2018년 통계로 4만8000건에 조금 못 미친다. 대법관 중 재판에 관여하는 인원은 12인인데, 공휴일을 제한 1년의 근무일수를 250일로 보고 주심인 대법관 1인이 하루에 처리해야 할 건수를 계산하면 16건이다. 귀신이 아니고서야 심도 있고 국민이 만족할 만하게 처리하기는 불가능할 게다. 퇴직한 어느 재판연구관의 말로 대법원은 이미 ‘파산 중’이다. 민사, 가사, 행정 사건의 대다수가 ‘상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요지의 네 줄짜리 이유를 단 심리불속행 판결을 받는다. 전체 상고사건 대비 심리불속행 판결을 받는 비율은 2016년 이래 모두 70%를 상회하고 2018년에는 76.7%에 이르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혐의사실 중 하나인 ‘사법거래’는 상고법원 신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가 사법권 독립을 해치고 재판에 간섭했다는 것을 요지로 하고 있다. 방법의 정당성은 차치하고, 적어도 그가 상고심 개선을 위해 국회와 대통령실을 상대로 온갖 노력을 다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만큼 상고심 재판의 개선은 절박한 과제였다. 현임 대법원장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과거에 시행했다가 실패한 상고허가제나, 이미 오명을 뒤집어쓴 상고법원 설치는 더 이상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일이 많으면 일하는 사람을 늘리는 것이 당연한 해법인데, 대법관 수를 대폭 늘리는 방안에는 전원합의체 운영이 어렵다는 핑계를 대며 외면한다. 취임 2년이 지나도록 뭔가 시원한 해결책은 제시된 일이 없다.

김 대법원장이 제시한 다른 과제 중 국민 생활에 직접 영향이 있는 것으로는 재판의 충실화가 있다. 그의 취임 이래 재판은 얼마나 충실해졌을까. 이런 걸 정량화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건 처리율에 관한 통계가 있다. 2019년에 발간된 사법연감을 보면, 전체 사건 중 처리된 사건이 접수된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하는 처리율은 2009년 지수 기준으로 2017년의 100.6에서 2018년의 99.6으로 떨어졌다. 민사사건은 118.2에서 112.9로, 형사사건은 100.1에서 99.9로, 행정사건은 132.9에서 129.9로, 가사사건은 100.0에서 97.8로 떨어져 모조리 하향세다. 전년도 대비 전체 사건 접수 건수가 약 3% 적어졌는데도 그렇다.

처리율의 감소가 반드시 재판의 충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상당수 재판부가 차회 재판기일을 다음 다음 달로 건너뛰어 잡는다는 변호사들의 불만을 들으면서, 또 요즘엔 합의재판부가 결성되면 매주 선고할 건수부터 미리 합의해 둔다는 말을 판사들에게서 들으면서 느끼던 불안감이 단순한 인상을 넘어 수치로 나타난 것이다. 예측컨대 2019년의 통계치는 더 나빠질 것이다. 법률신문의 지난 8월26일자 사설도 재판의 질이 점점 낮아지고 재판의 과정과 결과의 충실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법발전위원회와 의견 대립이 있고 나서 김 대법원장이 만든 사법행정자문회의가 3개 분과위원회를 구성한 것은 취임 2년이 된 지난 10월이다. 그가 해 온 개혁이라는 것, 굼뜨고 어정쩡하다. 이래도 되는가.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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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토의 83%는 농산어촌이다. 하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은 20%가 채 되지 않는다. 65세 이상 어르신 비율은 농가 45%, 어가 36%, 임가 42%로 우리나라 전체 고령인구 비율(14%)보다 3배 정도 높다. 생활 서비스는 물론 의료, 복지, 교육 등 사회서비스도 도시에 비해 부족한 실정이다. 반면 복지수요는 지역별로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고민에서 사회적경제가 출발했다. 취약계층의 고용, 돌봄 등 공동의 이익과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경제적 활동이 사회적경제다.

충북 산골의 한 사회적기업은 초등학교 학생과 학부모가 참여하는 목공, 도예, 제과·제빵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 활동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 간의 소통이 더욱 활발해졌을 뿐 아니라 지역 내 교육공동체로도 발전했다. 

그동안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아 이동에 큰 불편을 겪었던 강원도의 오지 마을에서도 주민들이 나섰다. ‘100원 택시’로 잘 알려진 정부의 농촌형 교통모델사업을 도입했다. 귀촌한 여성이 운전을 맡고 노약자가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교통 편의를 제공해 주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전국에는 유전적으로 우수한 산림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채종원이 있다. 그런데 인근 주민들의 무분별한 임산물 채취가 문제였다. 이에 마을 주민들 중심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해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와 공동으로 채종원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참여하는 주민들에게는 임산물 채취 권한을 주어 부수적인 소득도 올릴 수 있다. 이처럼 현재 농산어촌에는 지역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 조직이 갈수록 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지역 주민들의 사회적경제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도록 ‘사회적경제와 연계한 농산어촌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

산촌에서 주민 공동체를 발굴해 산림 일자리를 창출하는 ‘그루매니저’와 농업을 중심으로 복지·교육 서비스의 지역자원을 연계할 ‘거점농장’ 등 자율적인 공동체 활동을 장려한다. 또 사회적경제 기업의 창업에 필요한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역 유휴시설의 리모델링도 지원한다. 지원이 종료된 이후에도 시설이 계속 운영될 수 있도록 사업 구상 단계부터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농촌 신활력플러스’ ‘어촌 뉴딜 300’ 등 지역개발사업도 열어뒀다.

농협·수협·산림조합과 같은 전통적인 사회적경제 기업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에게는 오랜 기간 농림어업인과 공동으로 신용·경제사업을 해 온 경험과 자산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소규모 농사를 짓는 고령자들의 소량 생산 농산물 판매코너를 마련하거나 복지센터를 세워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여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들이 농촌에서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사회적경제는 사람 중심이고,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동력이다.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을 만든 호세 마리아 신부는 “협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농산어촌도 사회적경제를 통해 사람 중심으로 서로 협력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따뜻한 사회적경제가 더 깊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정부 역시 최선을 다해 뒷받침할 것이다.

<이재욱 |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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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이 넘은 어머니가 무릎 수술을 받으셨다. 시골 병원에서는 연로한 분에게 전신 마취가 더 무서운 거라며 수술보다는 약해진 무릎을 잘 달래어 활동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권했다.

가족은 생각이 조금씩 달랐다. 잘못될 수 있지만 움직이실 수 있어야 하니 수술하자는 파와 이제 활동적인 삶보다는 조용히 사시더라도 노후를 안전하게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파로 나뉘었다. 가족의 의견은 어머니의 의지 앞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마른 나뭇잎이었다. 그냥 걱정을 날려버리고 수술을 택했다. “죽더라도, 살게 된다면, 걸어야지”라고 띄엄띄엄 이어지는 어머니의 작은 목소리에 실린 뜻이 강했다. 서울에 사는 막내로서 나는 어떤 의견도 내놓지 않았다. 간혹 찾아뵈어도 재롱이나 피우다 오는 처지였다.

다행히 수술 후 회복하시는 중이다. 기차를 타고 병문안을 갔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내 머릿속의 어머니는 언제나 활발하고 쾌활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데 누워 있는 몸은 너무나 마르고 작았다. 무엇보다 음식을 쉽사리 취하지 못해 힘을 내시지 못했다. 이것이 삶인가 착잡했다. 한편 어머니에게 나는 성장을 멈춘 모습으로 보이는 듯했다. 밥은 제대로 먹고 사는지, 사회생활은 제대로 하는지, 스무 살 청춘을 대하듯 걱정이 많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나는 젊은 어머니가 늙어가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이고 어머니는 나를 영원히 늙지 않는 철부지로 대한다. 애정과 걱정의 마음이 그렇게 보아주는 것이라고 하기엔 내가 보여준 행동이 스무 살처럼 철없고, 어리광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한 장면

최근에 본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어느 가족>으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프랑스 배우들과 작업한 작품이다. 대배우인 엄마 파비안느와 그의 오만하고 다소 못된 면모가 싫고 진실하지 못한 회고록에 불만이 큰 딸과의 서걱거리는 관계를 기록했다. 가족 이야기에 탁월한 경지를 이룬 감독의 작품답게 유머와 위트가 넘칠 뿐 아니라, 영화는 매서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가족이 모두 진실만을 이야기해야 합니까. 어느 정도 연기를 하더라도 진실 탐구 때문에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감독은 메시지를 던지는 듯했다. 엔딩은 따뜻하게 모녀가 화해에 이른다. 언젠가 감독이 고백한 작품론이 떠올랐다.

“전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만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일상적인 것, 행위와 대사를 모두 포함해서요. 주방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현관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탄생할까, 구체적인 사물이나 장소에 사람이 얽힘으로써 인간의 개성과 감정이 보이는 것이므로 연기자에게 딱 거기에서 멈추라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하고 싶었죠.”

눈에 보이는 것에 삶이 있다는, 구체적인 것에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말은 내 안에 오래 머물렀다.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일상적 행위에 인격이 있는 것이다. 먹고 마시고 인사하는 것 같은 눈에 보이는 행위로 인간을 표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가장 친밀하다고 여기는 가족에게는 이 일상의 행동에 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마음으로 느끼고 이해한다고, 그렇게 마음이면 된다고 짐작하고 믿는 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관계를 멀어지게 한다. 보이는 행위로 판단하게 하자.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서는 일상생활에서조차도 연기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배우의 삶을 전제로 이 문제를 좀 더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삶의 진실을 추궁하는 딸에게 대배우 엄마는 진실은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사 연습하듯이 연기하는 것이라고, 연습이 필요한 것이라고 응대한다. 

울라브 하우게의 시가 말한다.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 대양이 아니라 물을 원해요/ 천국이 아니라 빛을 원해요/ 이슬처럼 작은 것을 가져오세요/ 새가 호수에서 물방울을 가져오듯/ 바람이 소금 한 톨을 가져오듯.” 

내가 사랑이라고 말하기 전에 어머니에게 죽을 한 수저 더 떠먹여 드리는 것이 맞다. 자주 못 뵈어 미안해, 라고 말하기 전에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내 마음의 상태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행위가 낫다. 새가 호수에서 물방울을 가져오듯이 작지만 확실한 행위를.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오며 사랑한다는 이유로 방심하며 살았다는 자각이 등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한 해가 저무는 때, 또 얼마나 이기적으로 내 마음의 상태만 들여다보았는지, 그 마음을 몰라준다고 혼자서 섭섭해하던 관계는 어찌해야 할지 작은 답을 얻었다. 보이는 것을 잘하고 싶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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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한 날에 경향신문 1면은 사람들의 이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산업재해로 돌아가신 1200명의 이름. 세월호의 이름들 다음으로, 이름 하나하나를 읽게 만든 지면이었다. 종이 신문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지면이라고들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이런 일이 아니고서는 이제 종이 신문을 보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빠르게 바뀌어 가는 것이 종이 신문뿐일 리 없지만, 거기에 빼곡하게 들어찬 이름들은 정작 바뀌어야만 했을 어떤 것이 바뀌지 못했다는 걸 목숨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얼마 전 다나카 쇼조라는 인물에 관한 책을 펴냈다. “참된 문명은 산을 황폐하게 하지 않고, 강을 더럽히지 않고, 마을을 부수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아니한다.” 20세기 초 메이지 시대 사람이었던 그가 한 말이다. 그는 산업사회로 치달았던 일본, 첫 번째 대규모 환경오염 사건이었던 아시오 광산 광독 사건에 맞섰다. 김종철 선생은 “다나카 쇼조야말로 동아시아에서 서구 근대 문명의 본질을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간파한 혜안의 소유자였다”라고 했다. 일본의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는 지난해 서울에서 전시를 열었는데, 그 전시장 한 벽면에도 다나카 쇼조의 이 말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시민운동의 아버지이자, 평화헌법(헌법9조)의 선각자, 시민 불복종 운동과 환경운동의 맨 처음으로, 그리고 NHK는 다나카 쇼조가 아시오 광독 사건을 마주한 “그때, 역사가 움직였다”라고 평가했던 인물. 참된 문명의 길을 찾았던 그는 당시 일본 지식인 가운데 유일하게 동학혁명이야말로 문명적이라며, 전봉준을 높이 기리기도 했다.

바다 건너 들려오는 후쿠시마의 소식은 그것이 어떤 사고였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던 만큼이나, 사고를 수습하는 모양새마저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 사고의 피해를 희석시키고, 아무 일도 아니었다라고 강변하고, 피해자들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려는 듯한 정부의 자세. 그건, 최초의 대규모 환경오염 사건이었던 아시오 광독 사건을 대하는 메이지 정부의 자세를 그대로 빼다 박은 모양새였다. 아시오 구리 광산에서 나온 광독은 그 일대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드넓은 땅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죽은 땅이 되었다. 2011년 3·11 대지진 때에도 가두어 두었던 광독이 흘러넘쳐서 다시 주변을 오염시켰다. 지금까지도 그저 덮어두고만 있는 죽음의 사건인 것이다. 이런 사건을 두고 국가는 기업 편만을 들며, 민중의 삶을 모른 척 짓밟았다. 수많은 이들의 피해와 고통, 절규와 눈물은 “돈다발로 뺨을 후려치”며 덮었다. 그렇게 아시오 광독 사건을 덮었던 정부는 지금껏 이어져, 전쟁과 식민 지배의 범죄를 부인하고, 미나마타를, 후쿠시마의 실상을 덮고 있다. 아베 정부는 충실히 전통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책을 쓴 고마쓰 히로시는 일본이 “분에 맞는 소국이라면 족하다. 올림픽 메달 수를 다투지 않아도 좋다. 경제 대국이라고 찬사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다른 나라를 방해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 폐를 끼치지 않는, 그런 깊고 그윽한 몸가짐의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고 적었다.

정치는 언제나, 새 집을 짓는 일이 아니고, 헌 집을 고치는 일이이서, 새로 집주인이 바뀌어도 집 안 모든 곳을 금세 제 뜻대로 고칠 수는 없다. 게다가 한뜻으로 충분히 오랫동안 일을 하기도 쉽지 않다. 촛불로 바뀐 우리 정부는 여전히 낡은 집을 뜯어고쳐 가며 나아가고 있지만, 1200명의 이름은 그래서, 아직도 지금까지 남아 있고, 새겨야 할 이름들이다. 산과 강을 더럽히지 않고, 마을을 부수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만큼 중한 일이 있을 리가. 그것이야말로 맨 앞에 두어야겠지. 다나카 쇼조는 마지막까지 늙은 몸을 이끌고 아시오 광독 사건의 피해자 마을에서 싸웠다. 그가 싸웠기에 아시오 광독 사건은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1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기억되고 있다. 의로운 패배는 힘이 있다.

<전광진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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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끝에서

눈이 두 번 내린 후에

누군가 여행을 제안했을 때

겨울 들녘이 바람의 손을 잡는 걸 봤다


남포 들을 적시기 위한

김제 성덕의 방죽 물이

사람을 먹일 물고기를 기르고 있는 것까지

보고 나니

겨울 들판에서 여름 숲을 예비하는

그분의 사계를 만날 수 있었다


한 해를 여밀 기운을 비로소 얻어

여행자끼리 나누는 술잔에

지난 시간의 독기를 담가 씻고

새날에 새 잔을 건넬 수 있었다.


장재선(196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 해가 끝나가는 때에 시인은 김제로 겨울 여행을 가서 넓고 평평하게 펼쳐진 들판을 보고, 성덕 방죽의 길을 걷는다. 눈이 두 번이나 내린 겨울의 한복판이지만 새봄에 들녘을 적실 방죽의 물이 생명을 기르고 있는 것을 본다. 겨울이 봄과 여름의 계절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본다. 겨울과 봄이 마디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달아 이어지고 또 서로 주고받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시인은 한 해의 끝은 매듭지어 끝마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에서 맞은편으로 물건을 건네듯이 지난 시간을 새날에게 옮길 일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연말을 살고 있지만 이 연말의 때에 새로운 한 해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마치 밤의 한가운데서 낮이 시작되는 것처럼. 한파의 땅 밑에 봄이 미리 마련되고 있는 것처럼.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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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날씨가 무더웠다. 나는 매일 수레를 빌려 취영당(聚瀛堂)에 가서 답답함을 풀었다. 갓을 벗고 의자에 앉아 내키는 대로 책을 뽑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때때로 오류거(五柳居)에 들러 도생(陶生·서점 주인)과 이야기했다.’ 1801년 연행 사절로 베이징을 찾은 유득공은 거의 매일 유리창을 찾았다. 취영당·오류거는 그의 발길이 오래 머문 책방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책을 읽거나 중국의 지식인들을 만나 대화했다. 유득공에게 유리창은 책과 지식인을 만나는 ‘문화의 창’이었다. 그는 1790년 1차 연행 때도 유리창을 방문했다. 유득공은 <연대재유록>에 유리창 방문기를 실었는데, 이 글은 뒷날 <유리창 소지(小志)>에 재수록됐다. 

유득공뿐 아니었다. 연행사로 중국에 간 조선의 학자들은 어김없이 유리창을 방문했다. 홍대용은 그곳에서 엄성·반정균을 만나 평생 국경을 초월한 우정을 이어갔다. 이덕무와 박제가는 유리창에서 청나라 서적을 대량 구입했다. 연암 박지원은 그곳에서 <열하일기>의 한 편인 ‘양매시화’를 완성했다. 18~19세기 조선 지식인들에게 유리창은 ‘북학의 성지’이자 ‘지식 교류의 거점’이었다.

유리창(琉璃廠)은 원래 황실에 유리 기와를 제작해 공급하던 공장이 있었던 곳이다. 청나라 건륭제가 사고전서 편찬에 나서자 전국의 서적상들이 몰리면서 서점의 메카가 됐다. 유리창은 전성기 때 규모가 27만칸이었고, 거리가 동서 5리에 달했다고 한다. 오늘날 옛 영화는 사라졌다. 민가가 들어찬 유리창에서 중국서점·영보재·급고각 등이 겨우 옛 문화거리의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들 가게는 서점이 아니다. 책보다는 서화첩이나 문방사우, 다구를 주로 판다.

지난주 선인들의 문자향을 기대하며 유리창을 찾았다. 거리는 스산했고, 서화나 문방사우를 파는 가게들은 찾는 이가 없어 썰렁했다.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구불구불한 후퉁에는 제대로 된 안내판조차 없었다. 가게에 진열된 붓, 벼루, 인장 등의 가격은 터무니없이 높았다. 유리창은 베이징시가 내세우는 문화보호구역이자 관광명소다. 그러나 그곳에는 역사도, 문화도 없었다. 연암이 머물렀던 오래된 거리 ‘양매죽사가’를 확인한 게 소득의 전부였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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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님!

2015년 연말이었습니다. 그때도 박근혜 정권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에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한 ‘결단’을 내린다 했었지요. 연로하신 피해자 한 분이라도 살아계실 때 해결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일본 정부의 돈 10억엔으로 한국에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하고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불함으로써 ‘가장 어렵고 힘든 과거사’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고 주장했었지요. 그게 ‘2015 한·일 위안부 합의’(이하 2015 한·일합의)였습니다.

2019년 겨울, 문재인 정권하에서 국회의장님이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해 ‘구국의 결단’을 내리신다고 합니다. 한·일 양국 기업과 국민의 자발적 기부금으로 ‘기억·화해·미래재단’을 설립하고 운영비는 한국 정부가 대며, 일정 기간을 두어 신청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불하겠답니다. 연내에 관련 법안을 발의해 ‘한·일 간의 갈등’을 근원적·일괄적·포괄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하십니다. 소위 ‘문희상안’입니다.

의장님, 특정 시기의 중요성을 명분 삼아 급박한 시한을 정해, 과거사를 ‘완전히’ 청산하고자 하는 모양새가 ‘2015 한·일합의’ 때와 너무 유사합니다. 가해자의 범죄사실 인정과 진정한 사죄, 법적 배상이라는 기본적인 전제가 없음은 물론 위자료 성격의 돈으로 가해 책임을 면제해 주겠다는 발상도 놀랍도록 같습니다. 한·일 갈등의 근본적 원인이 부인과 왜곡, 피해자 비난을 일삼아 온 일본이 아니라, 문제해결을 요청해온 피해자가 되어 버린 느낌도 유사하고요.

의장님은 아마도 양국 정부가 주도한 기습 선언으로 국민적 반발을 쓰나미처럼 맞았던 ‘2015 한·일합의’의 악몽을 기억하고 계신 듯합니다. 그래서 의장님 단독 플레이를 자처하며 일본 의원들과의 물밑 접촉으로 방향을 잡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정부와 여당이 눈도 입도 귀도 없는 양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이, 의장님은 일방적 선언, 언론 흘리기, 여론 살피기와 내용 바꾸기를 지속하셨지요. 처음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섞고 ‘한·일 위안부 합의의 유효’함을 확인하자고 했다가 나중에는 빼시고, ‘기억인권재단’이라고 했다가 ‘화해’와 ‘미래’를 넣으시고, 기금 마련안도 ‘2+2+α’에서 ‘1+1+α’로 유동했습니다. 의장님 정도 되시는 ‘유능한’ 정치인이라면 충분히 예측 가능한 국민적 반발을, 언론플레이를 통해 미리 유도해 김 빼기를 하고 있다면 너무 나간 걸까요. 피해자를 배제하거나 선택적으로 접촉하시고 제한된 의견 수렴 채널을 가동해 법안을 추진하면서도, ‘피해자중심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점 또한 놀랍습니다.

의장님, 너무 참담합니다.

‘2015 한·일합의’가 일본 정부의 돈으로 피해자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려 했다면, 의장님은 아무런 책임도 없는 한국 기업과 한국 국민의 돈까지 섞겠다고 합니다. 직접 연관이 없는 일본 기업으로부터도 자발적으로 기부받겠다고 합니다.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 소재지를 불분명하게 함으로써 가해자의 위치를 소거하고, 법적 책임을 물을 피해자의 자리를 근본적으로 제거하겠다는 발상은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2015 한·일합의’ 당시 그나마 있었던 마음의 위로라는 제스처조차 부재한 상태에서 대한민국 국회가 법률로 못 박아 일본에 면죄부를 주겠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거지요. 피해자의 대리인이 가해자에게 화해를 구걸하며 책임을 영구히 면탈시켜주고자 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이로써 야기될 피해자들의 혼란과 고통은 자명하거니와, 식민지 불법성에 항거하며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한·일 시민운동의 정당성과 명분, 국제사회에 축적해온 신뢰는 안으로부터 와르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일본 내 극우 민족주의자들과 한국 내 극우 반민족주의자들이 성장할 자양분 또한 스스로 제공하는 꼴이 됩니다. 결국 우리가 자처한 일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갈등과 분열을 겪는 사이, 일본은 아무런 대가조차 치르지 않고 뒷짐 진 채 불구경만 하게 되겠지요.

의장님의 국가에 대한 충정 그 자체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국회가 나서 문제를 적극 해결하려는 자세 또한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진짜 해야 할 일은 경시된 채, 무지와 오판, 소수의 담합으로 역사적 잘못이 추가되고, 다시 정치적 위기가 초래되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어선 안됩니다. ‘국익’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잘못, 이로 인해 또다시 지연된 정의는 결국 다음 세대에 계승되고 확장되어 더 무거운 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용과 형식, 절차 모든 면에서 반헌법적·반역사적·반민주적인 ‘문희상안’을 당장 철회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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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오른 선거법과 검찰개혁 등 개혁 법안을 둘러싼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여야에 사흘의 시간을 주고 합의 노력을 주문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주말 물밑 접촉도 이뤄지지 않았다. 16일 오전 여야 3당 원내대표 간 담판의 장이 열리지만 합의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여야의 협상 결렬은 곧 ‘강 대 강 대치’를 뜻한다. 타협이 안되면 차선을 택하는 게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우리 의회는 그러기는커녕 노력하는 시늉도 찾아볼 수 없다. 이대로라면 연말까지 임시국회가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며 충돌이 불가피하다.  

사생결단식 대치 속에 여야가 보이는 모습은 더욱 가관이다. 자유한국당은 주말인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또다시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고 국회 본회의 자체를 막겠다는 전의(戰意)를 거듭 확인했다. 황교안 대표는 “선거법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은 독재의 완성을 위한 양대 악법”이라며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고 했다. 지나친 비약이다. 선거제를 개혁하는 근본적 이유는 유권자의 지지만큼 의회 권력을 배분하는 데 있다. 최고의 정치개혁은 선거제 개혁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공수처 신설 역시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시민이 꼽는 개혁과제 1호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고위공직자 7000명 정도이며 기소권이 적용되는 이는 5000명으로 좁혀진다. 한국당은 ‘한국판 게슈타포’ ‘우파 말살 기구’라며 “전 국민을 공포에 빠뜨릴 것”이라고 했다. 명백한 가짜뉴스다. 공수처는 정치·사법·검찰권력의 비리를 겨냥한 것이지, 시민을 상대로 한 게 아니다. 공포를 느낄 대상은 비리권력뿐이다. 그런데 한국당은 선거제 개혁도 반대, 검찰개혁도 반대다. 지지율보다 의석을 더 많이 갖고, 공수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겠다는 집단이기주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4+1 협의체’가 선거법을 놓고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민주당이 ‘지역구 250석, 비례대표 50석, 연동률 50%’ 적용에서 후퇴해 30% 상한선을 정하자고 하자 다른 정당들이 들고일어났다. 서로 단 한 석이라도 더 얻으려는 셈법 때문이다. 패스트트랙 원안은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에 연동률 50%였다. 한데 민의를 반영하고, 비례성을 높이고, 사표(死票)를 줄이자는 당초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갈수록 ‘누더기 법안’이 돼 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지난 대선과 그전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줄곧 주장해왔다. 지난해 3월 청와대가 발표한 정부 개헌안에서 ‘국회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해 배분해야 한다’고 확인하기까지 했다. 그랬던 민주당이 선거제 개혁에 뒷걸음치는 건 제1당의 기득권을 선뜻 내놓고 싶지 않은 속내가 뻔해 보인다. 

국민주권의 행사 결과가 왜곡 없이 의회에서 대표되어야 하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요,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결정할 사안도 아니다. 공수처를 지지하는 여론은 80%가 넘는다. 이게 민심이다. 시민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시민의 입법요구를 무시한다면 그는 누구를 대표하는 것인가. 진정 시민의 뜻을 받들고 대의민주주의 발전을 추구하는 정당이라면,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말고 민의에 입각한 개혁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정당이 어디인지, 시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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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상주~영천 민자고속도로 상행선에서 트럭 등 차량 21대가 추돌하고 8대가 불에 탔다. 이 사고로 운전자 등 6명이 숨지고 14명이 다쳤다. 비슷한 시각 사고 지점에서 5㎞ 떨어진 하행선에서도 20여대가 연쇄 추돌해 1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했다. 경찰은 도로 결빙(블랙아이스) 때문에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블랙아이스는 눈·비가 얼어 얇은 빙판을 만드는 것으로, 투명하기 때문에 빙판 아닌 도로(검은색)처럼 보인다. “사고현장이 스케이트장 같았다”거나 “사고를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는 피해자들의 경험담도 나온다.

최근 3년간 서리·결빙으로 인해 발생한 교통사고는 3800건이 넘는다고 한다. 지난달 15일에도 광주~원주고속도로에서 같은 이유로 차량 20대가 충돌하고 5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났다. 블랙아이스 도로는 일반 도로보다 14배, 눈길에 비해서도 6배 정도 더 미끄럽다고 한다. 교통사고 치사율도 일반 교통사고보다 1.5배 높아 ‘도로의 암살자’로 불린다. 그런데 당국이나 도로회사의 대책은 운전자에게 감속 운행을 알리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운전자의 안전운전도 필요하지만 차제에 근본적인 사고예방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영천~상주 고속도로 구간은 사고다발지역이다. 상·하행선 모두에서 사고가 난 것은 문제다. 도로의 경사도, 노면 상태, 지형, 기후 여건 등을 따져 대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위험 구간에는 열선이나 경광등·경고 표지판·과속단속 카메라·제설제 자동분사장치 설치 등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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