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31일 오후 11시(현지시간) ‘드디어’ 유럽연합(EU)을 탈퇴한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에서 EU 탈퇴를 결정한 지 3년7개월 만이다. 2015년 5월 총선에서 과반을 얻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보수층 일각의 EU 탈퇴 주장을 정리하겠다며 공약한 국민투표의 결과가 EU 탈퇴로 나타나면서 혼란은 시작됐다. 보수당과 정치권은 ‘이러려고 국민투표한 것이 아닌데’라고 당혹해했지만 화살은 이미 떠났다. 민심을 읽지 못한 오만과 오판이었고, ‘무모한 도박’이었다. 영국 내부도, EU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극심한 혼돈에 빠졌지만 더 헤맨 것은 의회였다. 현대 의회민주주의의 효시라던 영국 정치는 보수당과 노동당이 극한으로 대립했지만 무기력의 끝을 보여줬다. 총리가 두 번 바뀌고, 조기총선을 두 번 치르고서야 EU 탈퇴의 문을 열게 됐다.

영국의 유럽의회 의원인 로리 팔머(오른쪽)와 주드 커톤달링이 2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유럽의회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정안 비준 투표가 끝난 후 아쉬운 표정으로 서 있다. 브뤼셀 _ AFP연합뉴스

지금 총리인 보리스 존슨이 강경한 브렉시트론자이지만 EU 탈퇴의 불쏘시개가 된 것은 영국독립당 대표 나이절 패라지였다. 패라지는 이민이나 외국인에 대한 반감을 부각시키면서도 친나치적 입장과 폭력적 급진성에는 선을 그었다. 이른바 ‘절도 있는 선택지’를 내밀었다. 그의 지지층은 중·북부 공업지대의 백인 저학력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원래 노동당 지지층이었다. ‘신노동당’이라는 개혁 프로그램으로 온건중도 흡수를 시도하는 노동당과, 이들에 대해선 애초에 관심 없는 보수당의 틈바구니에서 ‘내버려진 사람들’이었다. 패라지는 정치시스템, 기성정당에 대한 이들의 불신을 자극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유럽에서 포퓰리즘 정당이 성공하는 일반적인 패턴이다. 대서양 건너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것도 비슷한 흐름이다.

한국도 4년이 흘러 총선의 계절에 접어들었다. 보수정당 통합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안철수 신당’을 비롯한 다자 구도 현실화 등 제도와 정치지형이 4년 전과 비교할 때 달라졌다. 이번 총선이 어떻게 굴러갈지, 어떤 결과로 마무리될지를 예상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4·15 총선까지 70여일 남았다. 문재인 정부 중반기에 치러지는 선거이니, 기본적 성격 규정은 현 정부에 대한 평가가 될 것이다. 박근혜 탄핵과 촛불민심을 등에 업고 들어선 문재인 정부인데 도대체 무엇을 했나(하고 있나),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만들어졌나(만들어지고 있나)…. 부동산 문제, 조국사태와 검찰개혁 등 세부 이슈들이 ‘정권심판론’과 ‘국정안정론’에 대한 유권자들의 판단을 가늠할 포인트로 거론된다.

정당들은 프레임을 어떻게 설정할지가 총선 결과의 성패를 좌우할 변수로 본다. 상대를 깎아내려 반사이익을 취하고, 지지층을 결속시키는 데 익숙하다. 이미지 포장에 주력하는 것도 특징이다. 현역 의원 물갈이 비율을 높여 ‘공천 혁신’을 했노라 주장하고, 새 인물은 내부 육성보다 외부 수혈로 충당했다. 감동적 스토리를 내세운 ‘참신하고 깨끗한’ 인재를 영입한 효과는 반짝하고, 오히려 역풍을 맞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 2호’로 입당했다 데이트폭력 논란으로 불출마를 선언하고 30일 탈당한 원종건씨 사례가 그렇다. 정당마다 주요 공약을 제시하지만 경제·사회적 불평등 완화와 사회안전망 구축, 기후변화 대응 등을 둘러싼 정책 경쟁이 선거판을 뒤흔든 적은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처음 적용한 이번 총선 결과를 주목한다. 여러 색깔의 정당이 원내에 진입해 ‘대안 경쟁’을 한다면 정치판에 새로운 활력이 될 수 있다. 원내 의석이 적더라도 거대 정당들을 자극시켜 민심에 귀 기울이고 변화와 쇄신의 동기부여를 하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한다. 민주주의라는 게 다양한 의견이 분출하다보면 시끌벅적해진다. 활기찬 파티의 현장이랄까. 변화를 거부하고 이분법적 편가르기를 조장하는 정당은 어디서 술을 잔뜩 마시고 와서 난동 부리는 취객으로 취급받아야 한다. 영국 노동당이 지난달 총선에서 84년 만의 기록적인 참패를 했던 것처럼 말이다.

현실정치를 쳐다보고 있으면 회의감이 커지기 쉽다. 정당정치에 대한 실망, 분노, 혐오로 연결된다. 정치적 무관심은 기득권 정치를 공고화한다. 분명한 것은 사회를 바꾸는 것은 정치고, 정치를 바꾸는 것은 선거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시민들의 생각이 모아지면 강한 힘이 생겨난다. 실제 한국 정치의 고비마다 시민들이 표심으로 정치의 변화를 견인했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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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가 살아와 사업동의서에 서명하고 저승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솔스톤과 등산로 5.7㎞를 단 3분 만에 이동할 수 있는 스페이스스톤을 소유한 전문가(AWP양양 풍력사업). 설악산 초입부터 정상까지, 연인원 80명이 투입된 조사를 단 2명이서, GPS보다 수십배 정확한 공간분석능력을 발휘하며 한나절씩 단 이틀 만에 완료하는, 아이언맨 슈트를 착용한 괴력의 전문가(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토양미생물 관련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자마자 어류와 저서무척추동물을 혼자 조사하는, 위대한 학습능력의 닥터스트레인지급 천재전문가(낙동강 대저대교). 양서류와 파충류, 어류, 포유류의 모든 조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브루스 배너급 천재 필드생태학자(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참으로 불가사의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모셔야 할 이들 히어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처우는 너무나도 열악하다. 이런 능력의 소유자는 대한민국에는 너무 흔하니까?

하루 종일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지구 자전을 거부하는 현상(낙동강 대저대교). 서로 다른 지역의 식물개체가 완벽히 일치하는, 컴퓨터의 ‘복붙 능력’을 비웃는 자연의 위대한 복제력(제주 비자림로). 일반인한테는 정체를 쉽게 노출하지만, 유독 슈퍼히어로급 전문가에게만은 흔적까지도 전혀 보여주지 않는, 전문가를 차별하는 멸종위기 동식물의 완벽한 은신술(제주 비자림로, 거제 남부관광단지, 창녕 대봉늪, 제주2공항 등). 울창한 왕버들군락이 유명한 습지에서, 전문가에게만은 자신을 보여줄 수 없다는 왕버들의 완벽한 은폐술(창녕 대봉늪). 지금까지의 자연과학을 비웃는, 인피니티스톤이 펼치는 우주의 대신비가 한반도에서는 일상처럼 일어난다. 그런데 이 기이한 현상들은 널리 알려지지 않는다. 해가 동쪽으로 지게 만드는 인피니티스톤 하나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니까?

야외조사 중 카메라 소프트웨어를 구버전으로, 다시 신버전으로 바꾸는 아이언맨 슈트에 있을 원격 AI 제어기술(낙동강 대저대교). 단 1대로 같은 시간, 서로 다른 3곳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로키의 분신술을 구현한 오염측정기계(낙동강 대저대교). 80곳이 넘는 양식장 운영에도, 단 두 곳만 전문가들 눈에 노출시키는 닥터스트레인지의 슬링링 기술을 구현한 양식장(제주2공항). 5차, 6차 산업혁명시대에서 온 미래인류도 울고 갈 이런 과학혁명이 이미 대한민국에서는 일상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혁신기술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더 혁신적 기술이 대한민국에는 넘쳐나니까?

소설이나 영화로는 폭망할 황당무계 히어로와 최첨단 과학기술 이야기는 법률에 의해 작성된 환경영향평가의 결과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서명·공포한 것에 따른 것이니 공신력이야 두말할 나위 없다. 당연히 이 서류의 분석과 평가를 담당하는 공무원과 전문가는 한결같이 내용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문외한의 문제제기가 크게 이슈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러한 사업들은 공통점이 있다. 정부가 시행하는 사업이거나 정부의 중점추진사업이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 이렇게 정부가 솔선수범하니 힘없는 국민이 어찌 안 따를 수 있겠는가?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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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경마장이 2005년 개장한 이래 무려 7명의 말 관리사, 기수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2월 문중원 기수 유족들은 고인의 장례를 미루는 결단 끝에 서울로 상경하였고 동시에 사망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및 제도 개선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이후 기자회견 개최 및 노사협상, 집회, 오체투지, 추모문화제 등을 통해 사태 해결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중원 기수 유족들에게 이번 설 연휴는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시간이 되었다.

청와대 행진 한국마사회의 부조리한 운영을 비판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문중원 기수의 유족과 시민대책위가 13일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마사회는 기수노조와 노사협상을 진행 중이다. 지난 22일엔 보도자료를 통해 문중원 기수가 유서에서 제기한 경마 승부조작, 조교사 개업비리 의혹 등의 문제와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상은 허울에 가깝다. 시민대책위원회는 설 당일에도 “마사회는 진상규명 등 교섭에 제대로 응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어야 했다. 마사회가 반복된 노동자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8번째 죽음은 막아야 한다는 마음이 깊어져간다.

현 사태의 책임자이자 조사 대상인 마사회는 최근 셀프조사 실시를 빌미로 피해 집단인 기수들을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시작은 마사회가 자체적으로 제정·시행하는 경마시행규정에 근거한 기수들 개개인의 통신기록 및 금융기관 거래내역 제출 요구였다. 지난 20일에는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 사실관계 확인 명목으로 기수들에게 출석을 요구하고 불응 시 관련 규정에 따라 제재 처분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아 출석요구통지서를 보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마사회법은 마사회의 권한만 있고 의무는 없어 헌법상 법률유보 원칙, 포괄위임금지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위헌적 요소를 차치하더라도, 개인의 내밀한 정보 제출을 요구하는 등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제약하는 내용의 경우 되도록 좁고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한국마사회법, 시행령 및 경마시행규정에 근거한 위와 같은 행위는 위법·부당한 것이다.

심지어 검경 수사에서조차 피해자를 포함한 참고인이 소환에 불응한다고 해서 강제수사로 전환할 법적 근거는 없다. 문중원 기수 유족과 시민대책위원회가 책임자 처벌을 말할 때면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게 없다는 등 미온적 태도로 일관해온 마사회가 기수들에게는 출석요구에 불응할 경우 징계할 수 있다고 일방 통보한 것이다. 마사회의 셀프조사, 그에 따른 자료제출 및 출석요구통지가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소불위(無所不爲)는 사전적으로 ‘하지 못하는 것이 없음’이라는 의미이다. 마사회는 1993년을 기점으로 경마종사자와의 형식적 근로관계를 없애고 ‘개인마주제’로 전환하여 모든 위험을 외주화하였다. 공기업 정규직 평균 연봉 1위, 매출액 연간 7조8000억원 이상, 당기순이익 2200억원 이상, 국고보조금 110억원 이상. 마사회를 표상하는 숫자들이다. 사용자가 아닌 경마 시행 주체일 뿐이라던 마사회는 경마종사자들의 면허부터 임금 결정, 징계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지난 15년 동안 부산경남경마장에서 벌어진 죽음은 수수방관해왔다. 달리는 말 위에서 채찍 한번 놓치면 마사회에 벌금을 납부해야 했던,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에 거부할 방법이 없어 혼자 위험을 안고 내달려야 했던, 그리고 동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미뤄진 경기에 보전출전하고 싶지 않았던 기수들에게 출석요구에 불응하면 제재 처분을 할 수 있다고 통지한 마사회에 되묻고 싶다. 마사회가 부르면 가야 하나요?

<조미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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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수사권 조정 법률안이 통과되자 곳곳에서 경찰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당장 대통령부터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이원화하고, 국가경찰은 행정경찰과 수사경찰로 분리하자며 관련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주문하고 있다. 검찰개혁과 경찰개혁은 하나의 세트로 움직여야 한다는 거다. 전혀 다른 차원의 목소리도 있다. “국민에게는 검찰개혁이라고 속이고 결국 도착한 곳은 경찰공화국”이란 악담이 그렇다. 물론 검사의 말이다. 그래도 “경찰개혁안은 어디로 사라졌냐”는 질문에는 답변이 필요하다. 

일단 사실관계부터 따져보자.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권한은 줄어들고, 경찰 권한은 더 커졌을까?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검사의 수사 지휘를 없애고, 검사와 경찰관이 ‘서로 협력한다’고 바뀌는 건 맞지만, 이는 명목에 불과할 뿐, 수사의 실질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을 거다. 명칭만 협력적 동반자 관계라고 부른다고 검사와 경찰관의 상하관계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예전 형사소송법 표현을 빌리면 검사는 여전히 ‘수사의 주재자’다. 수사의 핵심은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등 강제수사다. 피의자가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를 갖다 바칠 리 없으니 강제수사를 통해서 증거를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이게 전적으로 검사만의 권한이다. 형사소송법 이전에 헌법부터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제12조)고 규정하고 있다. 검사만이 영장청구권을 갖고 있으니, 검사가 움직이지 않으면 영장 발부도 없고, 강제수사도 없다. 

검사의 직접 수사권도 여전하다. 지금도 전체 사건의 1~2%만 검사가 직접 수사할 뿐이지만, ‘검찰공화국’을 만들고 지키는 데 부족함이 없다. 검찰청법 개정을 통해 직접수사 범위를 제한한다지만, 이건 ‘특수수사 등’이라는 식의 말장난만으로도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에서 보듯, 하나도 특수하지 않아도 자기들이 특수수사라 규정하면 그만이고, 여기에 덧붙여 ‘등’자 하나만 넣어도 얼마든지 무엇이든 확장할 수 있다.

책임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달라진 것인가. 우리는 드디어 검찰공화국이 아닌 민주공화국에 살게 된 것인가. 검찰개혁은 최소한 일단락이라도 된 것인가.

그게 아니라도 경찰개혁은 절실하다. 경찰이 공룡이 되었다거나 검사들의 조롱처럼 ‘경찰공화국’이 되어서가 아니다. 경찰이든 어디든 국가기관은 모두 개혁과제를 갖고 있다. 경찰에도 묵은 숙제가 많다. 경찰개혁은 늘 절실한 과제였다. 

그렇지만 지금 논의되거나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 정도라면, 이 역시 검찰개혁처럼 구호만 요란하고 실속은 전혀 없는 엉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자치경찰제도 그렇다. 국가경찰의 지구대, 파출소를 그냥 두고 제주도 모델을 전국화한다고 그게 자치경찰일 수는 없다. 제주도 모델의 전국 확대는 경찰권 분산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그저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행정경찰과 수사경찰의 분리도 그렇다. 교과서적으로야 의미가 있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구분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국가수사본부장을 경찰관이 아닌 사람으로 임명한다는 것은 약간의 진전일지 모르지만, 경찰청 감사관에 경찰관 아닌 사람이 임명된다고 달라진 게 별로 없는 것처럼 부서 책임자 한 사람의 신분만으로 독립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자치경찰이든 국가수사본부든 훨씬 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게다가 핵심은 모두 빠져 있다. 경찰개혁위원회가 권고했던 ‘시민에 의한 민주적 외부 통제 기구 신설’은 아예 언급조차 없다. 기존의 경찰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로는 한계가 있으니, 위법·부당한 경찰권 행사를 통제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독립기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오로지 경찰만 감시하는 별도 기구이다. 영국에서 오랫동안 운영하고 있는 ‘독립적 경찰감시기구(IOPC, Independent Office for Police Conduct)’를 모델로 제시했다. 최하 100명 이상의 직원을 두고, 경찰관에 대한 감찰, 경찰 관련 민원에 대한 조사 등을 하고, 특별히 경찰관의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보장한다면, 경찰을 민주적 통제 아래 두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 될 거란 판단이었다. 경찰서마다 두는 청문감사관실 인력의 일부 규모만으로도 더 큰 효과를 볼 것이다. 물론 경찰 입장에서는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그 부담 때문인지 이 개혁안은 종적을 감춰버렸다. 어디서도 누구도 말이 없다. 

외부 감시만큼 내부 감시도 중요하다. 가장 실효성 있는 답은 경찰관 노조에 있다. 경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어디 있을까. 경찰관이라고 헌법상 노동기본권을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찰관 노조는 헌법상 원칙을 확인하는 일이며, 국민들 입장에서는 아주 훌륭한 경찰 내부 감시자를 얻는 별도의 소득도 있다. 

여기에다 정보경찰 폐지까지 더하면, 지금 단계에서의 경찰개혁은 마무리할 수 있다. 경찰에게도 정보활동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건 범죄 관련 정보여야 한다. 범죄정보는 수사나 형사에서 따로 챙기고, 정보경찰은 ‘치안정보’라는 특수수사만큼 모호한 개념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정보경찰이 수집한 정보는 재가공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데, 아무리 봐도 이건 구시대적 작태다. 정보경찰은 지금 당장 없애도 아무 문제가 없다. 청와대 직원들만 증권가 소식지보다 재미있다는 보고서를 공짜로 보는 특권을 포기하면 된다. 그러면 수천 명의 정보경찰을 일선 치안현장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 

경찰전담 감시기구 설립, 경찰관 노동조합 설립, 그리고 정보경찰 폐지만 해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경찰을 만들 수 있다. 경찰청의 구호 “국민과 소통하는 따뜻하고 믿음직한 경찰, 국민과 함께하는 경찰”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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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최대 현안인 불평등 해소를 위해 최고임금 일부를 최저임금과 연동해 제한하자는 총선 공약이 나왔다. 정의당이 낸 ‘최고임금제’ 공약으로, 임금 최고액을 국회의원은 최저임금의 5배, 공공기관은 7배, 민간기업은 30배까지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이미 관련 조례를 만들어 시행하는 곳도 있는 만큼, 사회 전체가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됐다고 본다. 

정의당은 지난 29일 “상식 밖의 임금불평등이 고착화한 사회에서는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성장도, 사회통합도 보장할 수 없다”며 “최고임금제를 도입해 갈수록 심각해지는 소득불평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겠다”고 최고임금제 도입 취지를 밝혔다. 아울러 외부인사로 구성된 국회의원보수산정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도 밝혔다. 

최고임금법은 일명 ‘살찐고양이법’으로도 불린다. 원래 배부른 자본가를 지칭하던 ‘살찐고양이’는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탐욕스러운 자본가와 기업인을 비판하는 말로 사용됐다. 이후 프랑스는 공기업 연봉 최고액이 최저연봉의 20배를 넘을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스위스는 기업 경영진 보수를 주주가 결정토록 하는 주민 발의안을 가결하는 등 각국은 양극화에 제동을 거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국내에선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가 2016년 20대 국회 초기 최고임금법을 발의했다. 법인 등이 소속 임원이나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액의 30배 이상을 지급하지 못하게 하고, 과징금 등으로 사회연대기금을 만들어 최저임금자, 비정규직 노동자 지원 등에 사용하자는 내용이다. 이 법안은 국회 토론 테이블엔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부산시가 지난해 산하 공공기관 임원의 최고임금을 최저임금 6~7배로 제한하는 조례안을 통과시킨 것을 필두로 총 11개 지자체에서 발의 및 제정(제정 6곳, 발의 5곳)되며 논의가 불붙고 있다.  

한국의 상·하위 10% 임금격차는 4.3배(2018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에 이어 두번째다. 세계적인 경제석학들은 한국의 노동시장 양극화가 정치, 사회 신뢰를 해쳐 경제활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심상정 대표는 법안 발의 당시 “20대 국회 첫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3당 대표 모두가 불평등 해소를 제1과제로 꼽았다”며 “그럼에도 실천은 언제나 말에 미치지 못했다”고 했다. 이제는 실천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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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30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2018년 울산시장 선거에서 송철호 후보 출마와 더불어민주당의 단수 추천에 개입한 의혹이 초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인 송 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대통령비서실장이 공약 수립, 경쟁후보 회유까지 관여·지시했는지도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검찰은 4월 총선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임 전 실장 사법처리 여부는 총선 후로 미뤘다. 전날엔 검찰이 송 시장과 백원우·박형철 전 청와대 비서관,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 등 13명을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으로 무더기 기소했다. 이로써 작년 8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부터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을 거쳐 5개월째 이어진 검찰의 청와대 수사는 일단락됐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조사를 받기 위해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진위 공방은 길어질 듯하다. 임 전 실장은 검찰청에 들어서며 “정치적 목적을 갖고 기획된 수사”라며 “없는 걸 있는 것으로 바꾸진 못할 게고, 검찰이 입증하지 못하면 책임져야 한다”고 맞섰다. 송 시장도 “왜곡·짜맞추기 수사”라며 분노와 유감을 표했다. 반대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임 전 실장이 검찰에 출두하던 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답해야 한다. 회피하려 하지 말고 국민 앞에 나서 석고대죄할 시간”이라며 공세의 날을 세웠다. 한국당은 조 전 장관 비리 혐의에 연루 의혹을 받는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전날 13명 기소를 반대했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청와대·법무부와 검찰, 검찰 내부에 파여가던 골이 정치로 옮겨지고 말도 거칠어지고 있는 셈이다. 공소시효가 임박하지 않은데도, 오는 2월3일 중간간부 인사 전에 칼을 빼든 검찰도 논쟁에 휘말린 것은 마찬가지다. 어느 쪽이든 유무죄 엇갈림 뒤엔 후폭풍이 클 상황이다.

공은 법정으로 넘겨졌다. 청와대 수사 관련자 대다수는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반대로 검찰은 법무부의 중요 사안 외부자문단 협의 권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증거가 충분하다’며 기소를 강행했다. 기초적인 사실관계 하나하나를 두고 치열한 다툼을 예고한 것이다. 대면조사 없이 최강욱 비서관과 황운하 전 청장을 기소하는 게 맞는지 다툰 검찰 내홍도 그대로 법정으로 옮겨질 판이다. 뒤엉킨 ‘편싸움’ 속에서 시민들은 진실이 궁금할 뿐이다. 이제 사법적 판단으로 시시비비를 준엄히 가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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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의 발원지인 중국 우한에서 전세기로 귀국하는 교민들의 격리 보호시설로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을 결정하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우한 교민 격리 생활시설로 지정된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의 인근 주민들은 지난 29일 두 곳 개발원의 진입로를 막고 밤샘 농성을 벌인 데 이어 30일에도 격리시설 지정 철회를 요구하며 반대 시위를 계속했다. 여기에 지방의회와 시민단체들까지 가세하면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님비’형 시위라고 할 수 있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이 30일 충남 아산시 경찰인재개발원 인근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마을을 찾았다가 주민들의 항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첫 2차 감염을 포함한 신종 코로나 환자 2명이 추가로 발생하면서 국내 확진자가 모두 6명으로 늘었다. 감염증 공포가 확산되면서 격리시설을 위해요소로 받아들이는 아산·진천 주민들의 염려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이송되는 교민들이 무증상자라고 하지만 잠복기가 포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방역을 위한 격리시설을 막고 나서는 것은 지나치다.  해당 주민들의 우려와 달리 격리 수용은 지역 전파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가장 확실한 조치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재난적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위험에 처한 교민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의 책무이다. 주민들은 신종 코로나의 철저한 방역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정부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역 주민들이 반발한 데에는 정부의 우왕좌왕한 정책 탓도 크다. 당초 정부는 격리시설 후보지로 천안시를 검토했으나 해당 주민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아산과 진천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당초 천안을 검토했으나 수용인력이 예상보다 늘어나면서 두 곳으로 분산 수용하게 됐다는 말이 나오지만 변경 이유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은 없었다. 지방자치단체와 협의 한번 거치지도 않았다. 외양상 주민이 반대하면 변경될 수 있다는 빌미만 제공했다. 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님비 현상을 촉발시킨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임시 생활시설이 운영되는 지역 주민들의 불안을 이해한다”면서도 “대책을 충분히 세우고 있고, 걱정하시지 않도록 정부가 빈틈없이 관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리 지정해 놓고 주민의 이해를 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감염병 확산 국면에서는 무엇보다 투명한 행정과 정보의 공개가 중요하다. 격리시설 지정처럼 주민 이해와 공동체 가치가 충돌하는 사안일수록 사전에 동의 절차를 투명하게 진행했어야 옳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격리시설 변경 과정과 안전관리 대책을 주민들에게 소상히 설명해 동의를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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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세상읽기

연애-결혼-출산-육아의 자연적 연계를 당연하게 여기는 낭만적 사랑이 파탄나고 있다. 젊은 여성이 벌이고 있는 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라는 4B 운동이 대표적인 징후다. 이에 대해 국가는 저출산이라는 인구 문제로 접근하고,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 혐오로 대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젠더 분리주의가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있다.

낭만적 사랑이란 두 남녀가 서로 자아를 탐색하고 존중하고 숭배하면서 각자 분리된 자아를 합쳐 공통된 자아로 확충하는 것이다. 낭만적 사랑에서는 나의 자아를 확충시켜줄 상대방을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대방의 자아를 엄청나게 탐색하는데, 그게 바로 연애다. 

연애하는 동안 두 자아는 자유롭고 평등하다. 경제적 부, 정치적 권력, 사회적 지위, 몸과 나이와 종교, 인종과 국적 등 어떤 사회적 힘도 연인 사이에는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 연인은 자유롭고 평등하면서도 서로에게는 유일무이한 존재인 것처럼 밀고 당기는 에로틱한 게임을 한다. 사회학 창건자의 한 명인 게오르크 지멜이 연애를 근대 사회성의 원형으로 본 이유다.

낭만적 사랑은 근대 사회성의 씨앗을 품고 있다. 연애하기 위해 각자 부모의 집으로부터 나와 따로 둘만의 집을 차린다. 이 집이 근대 초기의 가부장적 핵가족제도다. 남성의 경제적 지원능력과 여성의 정서적 지원능력이 결합한다. 노동시장이 남성에게만 열려 있기에 여성은 먹고살기 위해 남성의 경제적 능력에 의존한다. 남성은 노동시장에서 가족 임금을 벌기 위해 과잉 노동에 시달리다가 정서적 에너지가 고갈된다. 이를 채워줄 여성의 정서적 지원에 기댄다. 상대방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다며 낭만적 사랑은 평생 애착 관계로 이상화된다. 실제로는 연애가 지녔던 근대 사회성의 씨앗이 젠더 불평등한 결혼생활로 인해 채 발아되지 못한다. 

할머니세대는 연애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부장에 이끌려 결혼했다.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독특하게 존중받고 살아갈 문화 역량을 키울 기회조차 없이 운명처럼 주어진 가부장제에 평생 귀속되어 살았다. 어머니세대는 낭만적 사랑을 통해 근대 사회성을 잠깐 체험하기는 했지만, 가부장적 핵가족으로 귀결되는 젠더 불평등한 결혼생활로 이를 잃어버렸다. 소통하지 못하는 남편 대신 평생 온갖 돌봄노동을 하느라 할머니의 삶과 비슷해졌다. 딸세대는 노동시장에 나가게 됨으로써 젠더 불평등한 낭만적 사랑에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마땅한 현실적 대안이 없어 일과 사랑 모두에서 돌봄을 전담하다 좌절을 맛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할머니-어머니-딸로 반근대적인 삶이 이어지고 있다. 전혀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고 독자적인 존재로 존중받지도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 사회는 이러한 여성의 삶을 숭고하다고 찬양하고 있다. 그럴수록 여성은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 이야기처럼 치매에 걸려 집 밖을 떠돌거나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처럼 병원에 유폐되어 말라 죽어간다.

어떻게 해야 하나? 

현재 연애할 수 있는 사회구조적 환경을 만들려는 여러 정책이 고안되고 있다.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도 문화 역량은 중요하다. 낭만적 사랑에서 싹이 튼 근대 사회성을 급진화하고 전면화해야 한다. 연애는 자신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을 연인끼리 서로 입증하는 친밀성 공연이다. 이 공연을 제대로 해서 친밀성 너머의 다른 세계에 가서도 타자와 함께 공동의 사회세계를 구성할 수 있는 문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 역량을 발휘해서 사회 전체를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 악한 젠더 습속을 바꾸어야 한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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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앞세우자. 작년 말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입시의 정시 비율 확대 정책은 적절하게 수정해야 한다. 정시 확대는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국민 여론을 거듭 검토한 끝에 나온 결정이었다. 따라서 교육부는 그 결정에 담긴 타당한 취지를 더 나은 방법으로 대입제도에 반영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서울대는 기회균형 선발제도의 실질적 확대를 통해 자신의 위상에 맞는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대입제도 논란은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의 공정성 시비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식 제도의 이식이라 할 학종이 가진 자에게 유리하다는 비판적 의식은 널리 퍼져 있었지만, (선정적 언론보도의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여론이 학종을 ‘금수저’ 전형으로서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는 사실에 대해 안이했던 면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정시 비율을 확대하면 형식적 공정성은 개선될지 몰라도 고교 서열체제에서 일반고 학생들이 더 불리하다. 교육부는 서열화된 고교체제가 학종에 반영됨을 강조했지만, 오히려 수능전형에서 더 뚜렷이 반영된다는 객관적 자료가 엄연하다. 지난해 11월 교육부의 ‘13개 대학 학생부종합전형 실태조사 결과’조차 수능 위주 전형보다 학종에서 국가장학금 수혜 비율이 더 높다는 사실을 실토한다. 수능 위주의 정시 확대가 공정하다고 말할 근거가 희박해진다. 

정시 확대의 치명적 약점은 미래형의 창의적 인재를 기르기 위한 고교 교육과정 혁신 로드맵이 혼란에 빠져 수습하기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2025년에 고교 학점제를 실시할 예정이지만, 이는 교사별 평가제, 절대평가제와 함께 운영되어야지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전체가 흔들린다. 점수 따기와 줄 세우기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전면적 혁신을 앞두고 편협하게 해석한 ‘공정성’ 탓에 교육개혁이 퇴행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크다.

정시 확대에 문재인 대통령의 소신이 작용했음은 최근 모 시사주간지에 실린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의 인터뷰가 재확인해준다. 또 청와대가 4월 총선 득표를 고려한 의사결정을 했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국정운영을 위해 총선 승리가 필요하니 이 결정을 무턱대고 비판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정권 초기에 수능 절대평가제 전환에 걸린 제동도 코앞의 국민여론 악화를 고려한 정치적 판단이었을 것이다. 나는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의 입시 개혁안은 너무 이상주의적이라 부작용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미흡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시 확대는 자승자박이다. 교육이 ‘희망 사다리’가 되기 힘든 현실이며, 대입제도 개편으로 사회적 불평등 완화를 꾀하기 어렵다. 실제 서울대 학부생 중에 국가장학금 수혜 대상인 소득 8분위 이하는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하며, 이 현실은 쉽게 바꿀 수 없다. 역설적으로 바로 여기에 서울대의 할 일이 있다.

서울대 교수들은 점수 좋은 학생을 열심히 가르쳐봐야 학문의 길보다는 법학전문대학원이나 (폐지 전의) 의학전문대학원, 고시나 공기업 시험에 몰리는 현실을 이미 겪었다. 그러니 당장의 성적은 떨어져도 잠재력이 큰 학생을 뽑아 학부교육의 활력과 다양성을 강화하면, 특히 기초학문에서 공부의 가시밭길을 택할 후학도 많아지지 않을까. 최소한 현재 상황보다는 나을 것이며, 다른 대학보다 정부 지원을 훨씬 많이 받으면서도 다수 국민과 동떨어진 귀족학교라는 오명을 피하는 길이다.

가령 기존의 지역균형전형을 강화하여 지난 3년간 서울대 입학생이 없는 고교나 지역을 대상으로 합당한 절차를 통해 몇 명씩 추천받아 자질과 잠재력을 평가하여 선발하면 어떨까? 첫 단계로 50~100명만 뽑아도 학과별 배정이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속한 인문대학의 경우 수시 지역균형과 정시 광역에 각각 약 50명 안팎의 입학정원이 있다. 이 정원의 일부를 교수진의 논의를 거쳐 ‘실질적 기회균형’의 뜻에 맞게 배정해도 좋다. 또 전국에서 유일하게 본래의 취지대로 운영되는 자유전공학부와 어울리는 일이라서 일부 정원을 시범적으로 돌릴 수 있다. 장애물이 적지 않지만, 차차 성과가 입증되어 확대되면 서울대 외의 대학들도 따라오면서 고교교육 정상화를 돕게 된다. 마침내 입학제도가 대학의 자율에 맡겨지는 일도 앞당겨진다.

청와대와 집권당은 왜 제1야당이 객관적 근거도 없이 정시 50% 확대를 당론으로 삼고 보수언론은 정시 확대를 지지하는지 찬찬히 되돌아봐야 한다. 교육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총선 출마 포기라는 큰 결단을 내린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분발도 기대된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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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원통한 죽음들과 죽음을 각오한 채 한없이 길어지고 있는 투쟁 소식들로, 2020년을 우울감 속에 시작하고 있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무력감에 한 차례 더 쑥 빠져들게 한 것은, 지난 15일 선감학원 피해자 이대준의 사망 소식이었다. 

책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에는 이대준을 포함해 법적 근거도 없이 ‘부랑아’라는 이름으로 쓸어 담겨져, 어린 시절 선감도에서 뒤틀리기 시작해 평생 법망에 얽혀버린 피해생존자 9명의 생애 이야기가 구술되어 있다. 

섬을 탈출하려다 죽어 바닷물에 퉁퉁 부은 채 떠내려온 어린 동료들을 자기 손으로 묻어야 했던 소년 이대준은 자신도 15번이나 탈출을 시도했다. 그가 선감학원대책협의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자녀들과 그 배우자들을 선감학원 현장에 데리고 간 당당한 피해생존자였다는 것이, 죄송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한국전쟁 민간인 피해, 선감학원, 형제복지원 등 국가폭력 피해 사건들의 진상규명을 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과 최승우의 국회 앞 농성이 30일 현재 814일째 이어지고 있다. ‘법 집행권’을 놓고 윤석열과 조국을 앞세운 국가권력 내부 싸움이 국회로까지 번져 ‘법 제정’이 미뤄지는 동안, 법도 없이 9살에 끌려간 이대준은 ‘법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간장을 태우다 법 문지기들에 붙들려 63세에 간암으로 죽었다. 오살(五殺)할 놈의 법, 육시(六屍)랄 놈의 국가.

한편 외람되지만, 나와 동갑인 이대준의 죽음이 부러웠다. 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벌어지는 갖은 불평등과 폭력을 넘어 전쟁과 인구문제와 기후문제에 이어 예측 불가능한 바이러스 확산 등의 결말은, 인류가 한바탕 싹쓸이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문제 자체보다 문제로 인한 혐오와 배제가 재앙을 당길 테고,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죽음에 휘말린다는 것과 숱한 생명들도 덩달아 죽는 것이 억울하지만 되돌릴 수 없지 싶다. 30대 후반인 아들 부부의 둘째 임신 소식에 입으로는 축하를 하면서도 내심 ‘무책임’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비관이나 염세가 아니다. 또래의 많은 청년들 입에서 “이런 세상에 노예 낳아줄 필요가 뭐 있냐?”는 말들이 넘치고 있다. 물질문명과 과학기술 발전의 폐해가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세상에서, 개인적으론 살아갈 날이 길게 남지 않았다는 것이 유일한 다행이자 버틸 힘의 근원이다.

피해자들의 말대로 선감학원과 형제복지원이 국가가 만든 아이들의 지옥이었다면, 그 바깥은 자본이 만든 지옥이다. 그리고 존 버거의 말대로 지옥이야말로 진정한 연대의 장소다. 고통의 자리야말로 성찰과 연대가 확장하는 현장이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가난은 그 자체로 생태적 삶이다. 쥐고 있는 것들을 통해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좇을 맛에 사는 인간들과 달리 지옥 같은 세상에서 우울감과 무력감에 휩싸여 있다면, 우리는 일단 옳고 좋은 편에 있는 것이다. 돈과 사람이 뒤집어진 세상에서 스스로 하늘 지옥에 올라 230일을 지내며 환갑을 넘긴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는, “차라리 철탑 위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영남대의료원 옥상 감옥에서 210여일을 고공농성 중인 박문진은 회복되지 않은 몸과 마음을 일으켜 100㎞를 걸어온 한진중공업 고공농성자 김진숙을 부둥켜안고 “고통과 절망, 외로움의 끝자락에 가본 사람만이 아는 내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다시 용기와 결의를 다짐한다”고 말했다. 어차피 지옥이라면 지옥을 사는 맛이나 더 배워야겠다. 죽으면 그 맛도 끝이니 더 살아봐야겠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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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고등어인가도 싶고, 앙증맞은 다랑어인가도 싶은 바닷물고기 방어의 계절이다. 방어는 일찍이 기록된 수산자원이다. <세종실록> 19년(1437) 기사는 함경도와 강원도의 요긴한 수산자원으로 대구·연어·방어를 손꼽았다. 1670년경 쓰인 <음식디미방>은 청어 백 마리에 소금 두 되를 뿌리고 땅에 묻어 삭히는 청어젓갈을 기록하면서 똑같이 담그는 방어젓갈을 부기했다. 조선의 박물학자 서유구(1764~1845)가 쓴 어류학서 <난호어목지>에도 ‘방어’ 항목이 있다. 방어를 동해 특산으로 보되, 함경도에서부터 오늘날의 경상도 연안까지를 주산지로 꼽았다. 같은 책의 ‘멸치’ 항목도 재밌다. 이에 따르면 동해의 멸치가 방어에 쫓겨 엄청난 규모로 해안으로 몰려올 때엔 그 형세가 바람 불고 물결 이는 것과 같다. 어부는 이런 현상을 보고 방어가 온 줄 안다. 큰 그물로 에워싸 잡으면 온 그물이 다 멸치로 차는데 거기서 방어는 골라내고, 멸치는 삼태그물로 건진다. 실제로 방어의 중요한 먹이는 전갱이, 정어리, 고등어, 멸치 등이다. 이런 등속을 잡아먹으며 살지다 겨울에 기름기가 절정에 달한다. 회를 뜨면 깔끔한 등살에서부터 기름진 배꼽살까지 그 맛과 질감이 다양하다. 뱃살·목살(가마살)·담기골살(지느러미의 줄기를 받치는 부위)·꼬리살 등 칼 쓰기에 따라 다양한 부위가 나온다.

온마리도 화려하고, 해체해 놓아도 화려하다. 덕분에 방어면 덮어놓고 좋아들 하지만, 굳이 쓴소리를 보탠다. ‘방어가’ 맛난 게 아니라 ‘제대로 손질해 갈무리한 방어만’ 맛나다. <난호어목지>는 이렇게 경고했다. “어린아이들이 너무 많이 먹으면 중독(醉)된다.” 피를 제대로 빼지 못한 경우, 방치해 산패에 들어간 경우 향미는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면역력 약한 사람은 탈까지 날 테다. 방어회 한 접시에서 심상찮은 향을 감지했다면? 화를 내며 물려도 좋다. 회만 찾는 세태도 속상하다. 방어의 간은 대구간, 아귀간 못잖은 식료이다. 간을 필두로, 위와 창자 등을 넣어 끓인 탕은 이보다 더한 상쾌함과 시원함이 없는 별미이다. 구이는 또 어떤가. 손바닥만 하게 뜬 방어포 한 켜, 그 위에 소금 한 줌 뿌리면서 항아리를 꽉 채워 찬 데서 맛을 들여가며 겨우내 먹기도 했다. 막 소금 지른 포를 구우면 소금이 증폭한 기름진 생선의 싱싱한 향미가 입안을 간질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방어의 기름기와 소금기는 서로 엉긴다. 맛은 더욱 깊어진다. 항아리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생선 기름맛은 따로 있구나 실감하게 된다. 꾸덕꾸덕해진 포는 처음보다 쫀득하고 차진 살을 씹는 즐거움까지 더한다. 그러고 보니 초량 왜관에서 근무한 일본인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1668~1755)는 <교린수지>에서 조선 방어의 풍경을 이렇게 요약했다! “방어를 절여라.”

<고영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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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사령부가 주한미군에 소속되어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오는 4월1일부로 무급휴직을 시행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올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일찍 마무리되지 않으면 이런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은 무급휴직 시 60일 전에 통보하는 절차를 밟는 것뿐이라고 했지만, ‘보도자료’를 통해 이런 방침을 알린 것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 한국인 노동자들을 볼모로 잡아서라도 더 많은 방위비를 받아내겠다는 미국의 발상이 참으로 치졸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1월 30일 (출처:경향신문DB)

미국은 협상 초기 한국에 종전보다 5배나 많은 50억달러(약 5조8000억원)를 요구한 이래 한국을 줄곧 압박하고 있다. 양국 대표단이 그동안 협상을 통해 이견을 꽤 좁혔다고 하지만 미국은 지금도 분담금 증액의 기본 논리를 고집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협상에서도 종전까지 방위비 분담금에 포함하지 않던 미군의 한반도 순환배치 비용과 역외훈련 비용까지 지불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2월 내 타결을 목표로 양국이 막판 협상에 나선 이때에 주한미군이 소속 한국인 노동자의 무급휴직 조치를 꺼내들었다. 어떻게든 한국을 상대로 대폭 증액된 분담금을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뜻이 보인다. 문제는 이런 무지막지한 협상의 중심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이렇게 고집하니 국무·국방장관은 물론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등이 한국을 압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미 사이에 동맹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과연 협상의 일반적인 원칙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미국 내에서도 터무니없는 방위비 증액 요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민주당 소속 애덤 스미스 미국 하원 정보위원장은 28일 미국의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가 한·미관계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미 상원 외교위 민주당 간사인 밥 메넨데즈 의원과 군사위 간사인 잭 리드 의원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에게 공동 서한을 보내 과도한 증액 요구를 재고하라고 촉구했다.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 요구가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지위를 위태롭게 한다는 이들의 경고를 트럼프 행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미 정부는 틈만 나면 문재인 정부가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지금 한·미 동맹을 악화시키는 것이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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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비상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29일 중국 내 신종 코로나 확진자는 6000여명으로 2003년 중국인 사스 환자 수를 넘어섰다. 가파른 사망자 증가세 역시 꺾일 기미가 없다. 독일·일본·베트남 등에서는 중국 체류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신종 코로나 증상이 확인돼 2차 감염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지난 27일 4번째 환자 발생 이후 더 이상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2차 감염자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다. 확진자들과 접촉한 사람들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유증상자들에 대한 검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는 국내에서 2차 감염자 발생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1월29일 (출처:경향신문DB)

정부는 30일과 31일 중국 우한에 전세기를 투입해 교민과 유학생 700여명을 귀국시킬 예정이다. 신종 코로나 방역이 또 한차례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신종 코로나의 감염 피크는 오지 않았다. 최소한 1~2주, 길게는 한 달 이상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된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미덥지 않다. 정부 내 컨트롤타워가 다소 혼선을 빚는가 하면, 부처 간 불협화음도 들린다. 우한 교민 이송 과정에서 유증상자 탑승 여부를 놓고 외교부와 보건복지부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 게 대표적 사례다. 당초 천안으로 예정됐던 입국 교민 격리시설은 지역 주민의 반발로 우여곡절 끝에 아산과 진천으로 결정됐다.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정부가 엇박자를 내는 것은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검역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한 탓이 크다. 검역 선진화 패러다임 구축을 위한 ‘검역법 개정안’ 제정이 시급하다. 현재의 검역법은 선박·물류에서 항공기·승객으로, 콜레라와 같은 세균성감염병에서 메르스와 같은 바이러스 감염병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기에는 부족하다. 또 검역 인프라의 첨단화, 검역 인력의 전문성을 확보하기에도 법적인 어려움이 많다. 개정안은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여야는 29일 신종 코로나 특별대책위를 구성하는 등 방역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회가 진정 감염병을 우려한다면 검역법 개정안 통과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감염병 전문병원을 비롯한 공공의료 시설의 확충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여야는 지난 19대 대선에서 모두 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실제 추진된 곳은 호남권역 전문병원 1곳뿐이다. 그나마 병원 가동은 2022년에야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감염병 전문병원은 고사하고 공공병원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공공병원은 전체의 6% 수준이다. 이러다보니 전염병과 같은 긴급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우한의 교민이 병원이 아닌 공공시설에서 방역 조치를 받는 것은 공공의료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많은 희생자를 낸 2015년 메르스 사태는 준비하지 않으면 큰 화를 입는다는 교훈을 남겼다.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 이참에 법령과 시설 등의 검역체계를 완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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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설 연휴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과로사 소식이 알려진 것이 꼭 1년 전이다. 연휴기간 고향에 가기로 했지만, 밀려드는 업무에 퇴근도 못하고 집무실 책상 앞에 앉은 채 발견된 그의 죽음에 온 국민이 망연자실했다. 올 설 연휴 직전엔 전국 17곳 권역외상센터와 닥터헬기 도입의 산파역을 했던 이국종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아주대병원 교수)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이 교수는 지난 21일 라디오 방송에서 “이번 생은 망했다. 완전히”라며 “죽어도 한국에서 다시 이것(외상센터 일) 안 한다”고 했다. 깊은 절망이 느껴졌다.  

[장도리]2020년 1월 22일 (출처:경향신문DB)

두 사람은 우리의 의료현실에선 보기 드물게, 명예와 출세도, 가족과의 시간도 포기한 채 험한 일이 기다리는 응급의료 개선에 인생을 걸겠다고 다짐한 의사들이었다. ‘선진국형 응급의료’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며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서로 격려하며 희망을 붙들었다. 그래서 이들의 비극과 깊은 절망은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권역외상센터 운영 이후 예방 가능한 외상환자의 사망률이 2015년 30.5%에서 2017년 19.9%로 크게 줄었다고 홍보했다. 사실 권역별 외상센터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끌고 온 것은 이국종 교수였다.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며 주목받자 중증외상센터의 필요성을 호소하며 여론을 움직였다. 이듬해 일명 ‘이국종법’으로 불리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권역외상센터들이 설치됐다. 권역외상센터 추가지원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에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중증외상센터에 근무하는 의료진이 마음 놓고 의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말은 이 교수가 사의를 표하며 허언이 됐다. 

일련의 상황을 보며 우리 의료체계가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어 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과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생사의 촌각을 다투는 응급실 의사들은 일하다 죽을 만큼 인력난에 허덕이는데, 성형외과, 피부과는 왜 그리 많은가. 미용의료와 관광을 한 묶음으로 엮어 외국인 의료쇼핑을 지원하는 지자체의 움직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정부가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하는 것이 맞나. 결국, 궁극적인 질문은 ‘과연 대한민국에서 의료란 무엇인가, 의료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이다. 인술인가, 인술로 포장된 상술인가. 

핵심은 공공성이다. 시민들은 어렴풋이 공공성의 부족을 절감하고 있다. 의료 공공성에 대한 갈망이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제주 녹지병원에 대한 반감이다. 제주 영리병원을 둘러싼 공론조사에서 지역민들은 큰 차이로 반대를 결정했다. 간단히 보면 아주대 외상센터 사태도, 돈 안되는 환자들의 쏠림과 돈 되는 진료만으로(또는 돈 되는 진료 중심으로) 운영하려는 민간병원의 충돌이다. 

김창엽 시민건강연구소장(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은 “아주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병원, 개인의 잘잘못보다는 의료가 시장에서 다른 상품과 비슷한 방법으로 생산, 공급, 유통, 소비되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민간병원들은 물론이고 몇 안되는 국립대병원, 공공병원들조차 민간병원과 똑같이 수익경쟁을 하는 근본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예산을 많이 지원해도 언제, 어디서든 위기는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공공성이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는 외상센터에도 경제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댔다. 당초 6개 권역에 각각 1000억원을 투자해 외상센터를 건립하려던 계획은, 경제성이 낮다는 기재부의 판단에 쪼그라들었다. 훨씬 적은 돈이 전국 여러 곳으로 어정쩡하게 분산됐다.

아주대 외상센터 사태를 계기로, “(수익에서 자유로운) 국가 주도의 외상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선진국 중 외상센터를 민간병원에 위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웅 몇 명의 헌신에 기댄 변화는 바람직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복지부 장관은 아주대 사태에 대해 “현행 제도엔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다. 정말 그런가. 공공의료에 투입할 의료진을 양성하자는 공공의대 설립안이 무산되고, 윤한덕 센터장 1주기(2월4일)가 다가오지만, 의료격차 해소보다 의료산업을 위한 규제 완화 목소리만 커지고 있다. 의료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시민들이 원하는 의료를 요구하고 아무 문제 없다는 정부를 움직여야 한다. 공공 응급의료가 자리 잡도록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더 이상은 비극도, 영웅도 싫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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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전염병은 ‘스페인 독감’이다. 1918년 창궐해 2년 만에 당시 세계 인구 16억명 중 6억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5000만~1억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참전국에서는 언론을 엄격히 통제하고 검열하던 상황이어서 중립국 스페인 언론만이 사태를 상세히 보도했다. 스페인 언론 덕분에 세계는 이 병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스페인 독감’으로 명명됐다. 진실 보도의 대가치고는 고약한 결과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등 지도부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상희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책특위’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스페인 독감은 예외적인 사례다. 대개 유행성 질병은 첫 발생 지역의 이름을 따서 불렸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한 최초의 사례로 꼽히는 1833년 중앙아시아 독감을 필두로 1888년 중국 독감, 1957년 아시아 독감, 1968년 홍콩 독감, 1977년 소련 독감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에볼라바이러스는 콩코민주공화국의 에볼라강에서, 지카바이러스는 우간다의 지카숲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2015년 한국에서 38명의 사망자를 낸 ‘중동호흡기증후군’, 즉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는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견된 뒤 중동 지역에 집중적으로 발생해 이런 명칭이 붙여졌다.

WHO는 2015년 새로운 인간 감염 질병의 ‘이름 짓기’ 원칙을 세웠다. 구체적으로 지리적 위치, 사람 이름, 동물·식품 종류, 문화, 주민·국민, 산업, 직업군이 포함된 병명을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특정 지역과 종교, 민족 공동체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등이 29일 서울 서초구청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선별진료소를 방문해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우한 폐렴’은 지리적 위치 규정에 반한다. WHO는 우한 폐렴을 ‘2019 노벨(novel·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로 명명했다. 청와대가 ‘우한 폐렴’을 WHO의 권고에 맞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바꿨다. 병명 정정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 보수 성향 누리꾼들은 ‘중국 눈치보기’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우한 폐렴’을 고수해 중국 혐오를 부추기려는 흐름도 감지된다. 

같은 전염병을 놓고 보수는 ‘우한 폐렴’, 진보는 ‘신종 코로나’로 부르고 있다. 전염병 호칭마저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갈리는 판국, 이렇게 나라가 쩍쩍 갈라져 있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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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나 무슨 대소사에 기웃거리는 일에서 자유로워졌다. 세상에 남은 인연이 있다면 잔정을 느끼는 사이, 잔정을 나누는 사이뿐. 가령 물을 한 컵 달라고 하면 컵받침에 건네주는 손길이라든지, 어디 멀리 떠나는 여행길에 여비를 쥐여주는 거친 손의 친구에게 마음이 스민다. 그 친구를 위해 선물을 고를 때 가슴이 뛴다. 잔핏줄에 잔정이 돌아야 세상 살맛이 생겨난다. 

중국도 시골로 갈수록 정이 많고 눈물이 많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도 술을 권하고 담배를 권한다. 어떤 할머니는 백세쯤 되어 보였는데, 길에서 쪼그려 담배를 권하는 이들을 보고 나무랐다. “어이 젊은이들. 담배가 무엇이 좋다고 여태 피우나. 나도 작년에 끊었다네.” 건너편 담벼락엔 정이 무척 많은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마침 정거장 곁이어서 담벼락에 자전거를 대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 괴로웠다. 담이 기우뚱할 지경이었다. 세우지 말라고 해도 말을 듣지를 않아. 그래서 할아버지는 잔정을 베풀기로 했다. “여기 세워둔 자전거를 공짜로 드립니다.” 담벼락에다 써 붙였더니 그날 한 대도 남지 않고 자전거가 모두 사라지는 기적. 신종 폐렴의 진원지로 중국을 겨냥하여 혐오하는 말들이 사납구나. 중국에 친척이나 친구가 있는 사람들은 입조심을 한다. 그러고도 정 많은 사람은 불행한 일이 닥치면 원망과 공포가 아니라 보호의 기도와 사랑의 기운을 그러모은다.  

지중해 변방에서 태어난 작가 칼릴 지브란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보스턴의 시리아촌에서 지브란은 바느질 일감을 날랐다. 어머니와 형과 누이가 연달아 결핵으로 죽었다. 청년은 하나 남은 여동생을 데리고 골방을 전전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전시했지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때 이방인을 향해 정을 보인 여인 메리 헤스켈을 만나게 된다. 또박또박 잉크를 찍어 감사와 시심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시인의 우정이고 잔정이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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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종목 가운데는 ‘민주적인’ 스포츠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야구는 타석에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3개의 스트라이크만 허용된다. 때로 판정시비는 따르지만 삼진아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뒤끝이 깔끔한 편이다.

사실 삼진아웃은 생활 곳곳에서 통용돼왔다. 음주운전이 일례다. 이전 도로교통법은 면허정지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0.1% 미만으로 음주운전을 하다 3차례 적발되면 운전면허를 취소했다. 그러나 이 기준이 너무 관대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고 윤창호씨 사건을 계기로 음주운전 2차례만으로도 면허를 취소하는 ‘투 스트라이크 아웃’으로 규정이 바뀌었다.

허위·미끼 매물이 판을 치는 중고자동차 시장도 그렇다. 2016년 정부는 중고차 매매업체가 허위매물 등으로 3차례 적발되면 면허를 빼앗는 삼진아웃제를 도입했다. 그래도 별로 나아진 게 없자, 2차례 적발로 기준을 높였다.

삼진아웃제에는 처음은 실수일 뿐 ‘두 번째부터가 진짜 잘못’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러나 중고차 시장이나 음주운전에서 보듯 두 번까지 눈감아줬다가는 진짜 심각한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사람 심리라는 게 한 번 해도 안 걸리면 ‘또 괜찮겠지’라며 간이 커지게 마련이다. 감시와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개전의 정’이 안 보일 때는 단매가 현실적 처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파기환송심을 받고 있다. 현재 풀 카운트 상황으로,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사실상 삼진아웃이다.

최근 삼성의 ‘준법경영 선언’이라든지, 전직 대법관까지 모셔와 준법감시위원회를 꾸린 것을 보는 시민들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난해 10월25일 첫 공판 때 서울고등법원 재판장 발언을 놓고도 뒷말이 나온다. “1993년 만 51세의 이건희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극복했다.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느냐.” 법관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판결로 말하면 그만이다. ‘정의의 여신’ 디케가 왜 눈을 가린 채 양손에 저울과 칼을 들었는지 굳이 되물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 삼성의 영향력은 이처럼 크고도 깊다.

그리고 11월1일 삼성전자 창립 50돌. 이 부회장은 새 경영 화두를 던졌다. ‘100년 삼성, 함께 가요 미래로!’ 삼성의 책임경영 고민이 십분 이해되지만, 1주일 전 재판장의 주문 이후라 영 개운치 못하다.

경제개혁연구소 이창민 한양대 교수와 최한수 경북대 교수의 보고서는 “재벌 총수들이 유죄판결로 구속됐을 때보다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때 기업 가치가 더 크게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물론 이 부회장의 구속이 삼성에 더 이로울 것이라고 단언키는 어렵다. 무죄가 나거나 집행유예를 받으면 삼성과 나라 경제에 더 충격이 올까.

판사는 경영에 ‘훈수’를 두고, 기업인은 당연한 준법경영을 ‘선언’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되는 현실이 그저 서글프다. 미워도 다시 한번인가.

<전병역 기자 |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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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법은 국가의 정체성을 밝혀 나아갈 방향을 큰 틀에서 제시하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따라야 할 당위의 가치가 담긴, 사람이 만든 법칙이 바로 우리가 얘기하는 ‘법’이다. 약하고 강한 징벌을 받을 수 있지만, 어쨌든 어기는 것이 가능은 하다. 어기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면 우리는 법을 만들지 않는다. 자동차의 공중 비행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 이유가 없다. 법이 필요한 이유는 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 따르는 법칙은 다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어길 수는 없다. 손에서 가만히 놓은 물체가 땅을 향해 아래로 떨어진다는 자연법칙은 당위가 아닌 사실의 법칙이다. 내가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생각만으로 돌을 위로 띄울 수는 없다. 사람이 만든 당위의 법칙과 달리 ‘스스로 그러함’을 뜻하는 자연(自然)은 금지하지 않는다. 어기는 것이 가능하지 않으니 금지할 필요가 없다. 인간이 만든 당위의 법칙이 “이렇게 하는 것도, 저렇게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둘 중 요렇게 하기로 약속해요”라고 할 때, 자연은 “네 맘대로 해봐. 그게 되나”라고 말한다. 

확인된 자연현상이 그렇게 관찰되는 이유는 자연의 법칙이 그 현상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어긋나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자연은 자연의 법칙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금지하지 않고 허용한다.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틀린 생각이다. 자연이 허락했으니 동성애가 존재하는 거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연스럽다. “자연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동성애를 금지한다는 발상은 돌멩이의 자유낙하를 금지한다는 발상과 다를 것 하나 없는 어불성설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자연에서 발견되는 모든 것을 허락하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제3자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데도, 자신과 달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이의 감정을 막겠다는 발상은 야만임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인간이 알아낸 당대의 자연법칙은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 있다. 자연법칙은 우리 머릿속이 아니라, 머리 밖 자연에 존재하는 실재의 반영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가 많다.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 자연법칙을 발견할 주체가 없던 시절에도 돌멩이는 아래로 떨어졌다. 물론, 시간이 지나 인식의 틀이 바뀔 수 있다. 흙, 물, 공기, 불, 네 종류의 원소가 있고, 흙의 자연스러운 위치는 공기의 아래이므로 돌멩이가 아래로 떨어진다고 설명한 것이 그리스의 철학이다. 뉴턴이 완성한 고전역학은 지구가 중력으로 돌멩이를 잡아 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설명의 대상인 자연은 그대로지만, 우리가 자연을 설명하는 방식이 변한 거다. 이후, 뉴턴의 고전역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으로 외연을 넓혔다.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자연법칙은 변화와 발전에 열려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물리학자들이 찾아낸 자연의 법칙을 ‘법칙’이라고 부르지 않는 경향이 눈에 띈다. 뉴턴의 중력법칙이라고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라고 하듯이 ‘이론’이라는 표현이 더 널리 쓰인다. ‘법칙’이라고 하면 인간의 합의에 의해 정해진 당위의 법칙을 먼저 떠올리는 오해를 막자면, ‘이론’이 ‘법칙’보다는 더 나은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론’이라 하면 사람들은 이론의 가변성에 과도하게 주목하는 경향도 눈에 띈다. 누가 어떤 주장을 할 때 “그건 그냥 네 이론일 뿐이야”라고 할 때의 ‘이론’의 의미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이론’과 단어는 같아도 그 경중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물리학의 이론은 자연현상을 정합적으로 설명하는 사고의 틀이라는 면에서, “단지 네 이론”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여러 생각의 틀이 모여 구성된 전체인 물리학은 확실성의 정도가 제각각인 다양한 이론들의 모임이다. 빛보다 빠를 수 없다는 이론,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이론, 닫힌계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는 이론 등은 물리학의 토대 중 가장 튼튼해, 어느 누구도 타당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편, 최근 실험으로 관찰된 특정 물리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대체 가능한 여럿이 경합하는 약한 확실성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다.

자신이 속한 사회가 합의한 당위의 법칙이 외부의 다른 사회에서는 성립하지 않음을 볼 때 우리는 세상을 보는 더 큰 시선을 얻는다. 외계의 지적 생명을 만나게 되면, 나는 그들이 자연을 기술하는 이론의 틀이 궁금하다.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것은 우주 어느 문명도 동의하겠지만, 우리가 가진 고전역학의 운동법칙을 그들은 어떻게 기술할지, 우리의 양자역학과 그들의 양자역학은 어떻게 다를지, 난 무척 궁금하다. 자연현상은 같아도, 기술 방식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 같은 것을 보고 다르게 설명하는 외계 지적 생명체와의 만남은 과학의 역사상 가장 큰 도약을 만들 것이 확실하다. 

지구에서 본 태양계 행성의 위치 정보를 학습시켰더니 인공지능이 행성 운동의 중심에 태양이 있다는 태양중심설을 스스로 알아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되었다. 인류에게 수천년이 걸린 태양중심설을 인공지능은 짧은 시간에 발견했다는 점에서 무척 놀라운 결과다. 아직 걸음마 수준이지만, 인공지능이 거둘 미래의 성취가 나는 벌써 궁금하다. 미래의 인공지능이 찾아낼 우리와 다른 자연법칙은 어떤 모습일까. 물리학자가 필요 없는 물리학의 발전이 가능한 세상이 도래하지는 않을까. 이해 없이 예측할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물리학의 아름다움을 얘기할 수 있을까.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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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유튜브를 배회했다. 김해까지 5시간 여정을 하다보면 스마트폰에 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개별 영상들은 5분, 10분 정도의 짧은 길이이지만 영상과 영상을 넘나들면 금방 시간이 사라진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주로 나의 관심사인 동물, 게임, 만화, 소설, 가요 등의 영상을 보여주는데 가끔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요즘 인기있는 영상이라며 관심사 바깥의 영상들을 추천할 때가 있다. 그사이에서 가장 빈도가 많은 것은 소위 ‘사이다’로 불리는 영상이다.

‘사이다’는 ‘고구마’를 잔뜩 먹어 목이 메이고 답답한 상황을 청량하게 풀어주는 속 시원한 서사를 통칭해 이야기한다. 사이다 서사의 예시는 이렇다. 마음이 유약하고 순진해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선후배들의 등쌀에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직원이 있다. 이 직원이 유능한 애인을 사귀게 되었는데 애인이 직접 나서 모든 문제를 앞장서 해결해주고 보상을 타내며, 직원을 괴롭힌 사람들에게 정의구현을 한다. 

사이다 서사의 구조는 전래동화에서 교훈을 전달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흥부는 제비에게 복을 받고, 놀부는 제비에게 정의구현을 당하고 쫄딱 망하게 되는 것처럼. 고전소설과 사이다 서사의 가장 큰 차이는 기반이 되는 사상의 유무이다. 권선징악 서사는 노골적인 ‘선(善)’과 ‘악(惡)’을 대비시킨다. 아이들에게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당대 도덕관념을 교육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그러나 사이다 서사는 노골적으로 ‘정의구현’을 부르짖지만 그 속에는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답답하게 하는 적(敵)만 존재하며 상대가 나를 때렸으니 나도 때려도 된다는 사적 복수의 당위성만 있다.

사이다 서사는 간편하고 편리하다. 내가 겪는 불행, 불운, 부당하고 불평등한 모든 것들을 복수할 대상이 명확하게 존재한다. 그 존재에게 법의 테두리 안팎에서 대가를 치르게 하면 되니까. 5~10분 내외 짧은 길이의 영상으로 눈길을 끌어야 하는 유튜브에서 이러한 사이다 서사는 최적의 조합이 된다. 사이다의 장점은 곧바로 단점이 된다. 우리가 겪는 사회의 문제는 사악한 악당이 혼자서 좌지우지하는 협잡 탓이 아니다. 사회는 복잡하게 엮여 있고 때로는 구조 탓에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이 개인의 이득이 교차할 때도 많다. 적을 개인 또는 하나의 집단으로 상정하는 사이다 서사는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인과관계를 사라지게 만든다. ‘사이다’를 성공적으로 끝낸 개인은 그 구조에 집중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입은 피해만큼을 보상받으며 모두 끝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이다 서사는 콘텐츠 소비자들을 아주 단순한 이분법 속에 위치시킨다. 서사의 주인공을 방해하는 수많은 안건은 납작하게 분노해야 할 것이 되고 특정 집단이나 사상을 재생산시킨다. 빈부격차나 남녀, 세대의 갈등이 서로 합의를 이루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이해 불가능한 악의로 다가오고, 그것은 사적인 복수로 해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 된다. 유튜브 속 ‘사이다’ 영상의 댓글은 쉽게 전쟁터가 된다. 오히려 더 심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성토부터, 이런 상황을 사이다로 소비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얘기가 맞붙는다. 물론 그 두 집단은 그저 자기가 받은 만족감·불쾌감을 표출할 뿐이라 어떤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늘도 유튜브뿐만 아니라 각종 알고리즘이 끊임없이 사이다 콘텐츠를 노출시키고, 해당 영상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다. 사이다 서사는 고통을 잠재워주는 모르핀이다. 때로는 약효가 아주 강해 진통에서 완전히 벗어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곳은 ‘사이다’의 청량함이 아니라 ‘고구마’의 답답함이다. 무엇이 어떻게 왜 우리를 괴롭히는가. 사람들이 끊임없이 사이다를 찾는 이유는 사회가 계속 진통제를 찾아야 할 만큼 병들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구마가 계속 남아있다면, 우리는 그저 동물적으로 사이다를 마시고, 그 속의 논리를 재생산하는 것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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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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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되지 않은 언어가 사회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막말은 지위의 높고 낮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회 구석구석에서 터져 나온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2일 고양시 일산서구청에서 열린 신년회에서 일부 참가자가 고양시를 망쳤다고 여러 차례 항의하자 “동네 물이 많이 나빠졌네”라며 자질을 의심케 하는 발언을 했다. 또 15일에는 이문수 경기북부경찰청장이 탈모로 삭발한 직원에게 “왜 빡빡이로 밀었어? 혐오스럽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최근 기무사 문건으로 확인된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해경 간부들의 ‘세월호는 목돈 벌 좋은 기회’라는 폭언과 차명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의 “세월호 유가족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처먹고,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 식의 저질 막말은 모멸감과 자괴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촛불정권의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총선에 뛰어든다며 사표를 던진 청와대 전 참모들의 말도 공허하기만 하다. 나는 이들 모두에게 “차라리 그 입을 다물라”고 외치고 싶다.

함석헌 선생은 ‘언어평화론’에서 언어는 사상과 철학을 전달하는 도구로 보았고, 언어에는 폭력성이 존재한다고도 했다. 언어의 폭력성이란 자신의 체험이 녹아들지 않은 발언이 다른 사람에게 폭력이나 횡포로 비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의 언어폭력 또한 이 같은 원인이 크다.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며, 두 번 듣고 한 번 말하라 등 말에 얽힌 교훈은 사상과 철학이 담긴 언어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만들어지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교육부가 지난해 9월 초등 4학년부터 고교 2학년 학생 약 13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집단따돌림(19.5%)과 신체 폭행(7.7%)을 넘어서 언어폭력(39.0%)이 학교폭력의 최우위를 차지했다. 우리 사회의 어린 학생들마저 언어폭력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총선이 두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총선은 우리 사회가 풀지 못한 문제를 고민하고,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 줄 국회 일꾼을 뽑는 시간이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가 바라보는 기회는 평등의 가면을 쓴 불평등이었고, 과정은 불공정했으며, 결과는 정의와는 거리가 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사회였다. 계급으로 견고하게 굳어버린 사회를 용광로에 부어, 처음부터 국가의 틀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정당마다 새로운 인물들을 영입하고, 총선 공약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정당의 공약이 그들의 입에서만 맴돌고, 왜 유권자의 가슴으로는 파고들지 못하는 공허함만 주는 것인가?

함석헌 선생이 속삭이는 것 같다. “서로 소통하려거든 자기중심적 언어를 버리세요. 내 언어를 버림으로써 상대방과 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말만 고집하면, 소통이 아니라, 상대방을 수동적 존재로 만드는 것이죠. 서로가 주체적 언어를 사용할 때 평화적 관계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어평화론의 핵심이다. 진실한 사유를 통한, 실증적 경험의 언어가 사람들 사이의 언어에도, 정당의 선거공약에도 녹아들길 기대한다.

<엄치용 | 코넬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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