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2020년이 왔고, 신춘문예 심사를 마친 선생님들은 심사평을 송고한 후 쉬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몇 년 사이에 가득했던 사고들과 대체 매체들의 확장으로 문학이 왜소해진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신춘문예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문청들은 문학의 자장 안에서 여전히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으니까요. 올해 키워드가 퀴어와 SF, 비인간 캐릭터 등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오늘 이렇게 지면을 빌려 펜을 든 것은 기사를 보고 든 한 가지 우려 때문입니다.

선생님. 장르의 코드를 비평할 때 게으르게 비평해 놓으신 건 아니겠지요. 다른 문학을 비평하듯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치열하게 고민해주셨겠지요. 제발 그러셨으면 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장르를 가르칩니다. 이것은 20살, 처음 판타지 소설 작가로 데뷔했을 때부터 제 오랜 꿈이었습니다. 대학원에 들어가서 한국 판타지 소설에 대한 공부를 했고 논문을 썼지요. 제가 이런 꿈을 갖게 된 까닭은 데뷔 당시 장르문학을 쓴다고 무시 받았던 기억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따위 것은 문학이 아니라며 일갈하는 선배부터, 이제는 등단을 해야 하지 않겠냐며 ‘제대로 된 코스’를 권유하던 선생님이나 주변부 공부만 하고 중심 공부로 들어오지 않는다며 호통을 치던 선생님, 그리고 대학원에 가면 판타지 소설 출간한 ‘부끄러운’ 기록을 삭제하고 아닌 척 지내라던 친절한 조언까지. 그런 말들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맞서 싸우고 싶었거든요. 판타지 소설의 가치와 근거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요.

동년배의 장르 연구자는 저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사람이 많습니다. 외환위기 직후 급격하게 늘어난 대여점에서 만화책과 소설책을 보며 꿈을 키워온, 동시에 자신의 취미와 취향이 타인에 의해서 부정당했던 동료들이 인정투쟁을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한국에 대중 상업 장르문학이 부흥한 것도 벌써 20여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10대들은 이제 30~40대의 나이가 되었고, 사회 각층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강단에 있으면서 한 해 한 해 인식이 바뀜을 느낍니다. 특히 2019년은 장르문학의 인식과 토대가 크게 전진하는 해였습니다. 웹소설 시장은 더욱 커졌고 SF 무크지가 나왔으며 해외에 수출되는 작품도 많아졌지요. 이론서나 비평서가 두 자릿수 이상으로 출간되었고 이 분야의 연구도 누적되었습니다. 좋은 작가분들의 이름이 뚜렷하게 가시화되었죠.

하지만 문학만큼은 이러한 흐름에 계속 더디더군요.

몇 달 전 한 학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발제자가 장르문학이 받는 차별적 시선을 분석해 발표했더니 분기에 찬 한 청중이 어딜 장르문학이 대접받길 원하냐면서 일갈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대접해 달라는 말이 아니라 차별적 시선을 거두어 달라는 것이었는데 말이지요.

은폐된 차별도 많습니다. 저도 비평을 공부하다 보니 문학의 장에서 ‘비평’이 어떠한 형식으로 진행되는지를 배웠습니다. 작가의 기존 작품을 검토하고, 비슷한 소재나 주제의식을 두고 특이점을 찾고, 계보를 이야기하죠. 그런데 문학에서 장르를 비평할 땐 이런 절차가 종종 사라집니다. 조금만 과학기술이 들어가도 소재에 대한 고민은 넣어두고 새롭다는 말, 낯설다는 말로 평가를 유보하지요. 이제 먼 곳에서 인정받기를 위해 투정부리던 아이들은 없습니다. 다들 인정투쟁의 장에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죠. 이러한 게으름을 지적할 때마다 들려오는 이야기가 “대접받으려 한다”이니 장르의 팬들은 ‘신춘문예에 장르가 나왔고, 인정받았다!’라는 생각보단 ‘진짜 모르는구나’라는 허무감과 허탈함, 그리고 분노를 느낍니다.

융복합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시대입니다. 장르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심사자가 되어서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지금, 모르는 분야는 충분히 협업하고 맞춰갈 수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 올해의 심사평은 부디 게으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작은 우려였습니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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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미국에서 발사한 보이저 1호는 지금도 저 먼 우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1990년 명왕성 정도의 거리를 지날 때, 보이저 1호는 카메라를 돌려 우리 지구가 담긴 사진을 찍어 지구로 보냈다. 사진 속 지구는 정말 작아 보인다. &lt;코스모스&gt;의 저자 칼 세이건은 이 사진에서 얻은 영감과 통찰을 담아 &lt;창백한 푸른 점&gt;을 출판하기도 했다. 눈에 잘 띄지도 않을 저 작은 푸른 점 위에서, 때로는 복작복작 싸우고 미워하고, 때로는 서로 돕고 사랑하며, 우리 모두는 짧은 삶을 산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평균거리를 1천문단위(AU)라 한다. 보이저 1호는 인류가 우주로 보낸 모든 것 중 현재 가장 멀리 있어, 약 150천문단위의 거리에 있다. 지구에서 명왕성까지 거리의 3배가 훌쩍 넘는 거리다. 이 정도로 엄청난 거리도 우주의 막막한 규모와 비교하면 별것 아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별은 당연히 태양이다. 두 번째로 가까운 별은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가도 4년이 넘게 걸리는 거리에 있다. 보이저 1호가 이만큼의 거리에 도달하려면 수만년이 걸린다. 밤하늘에 흩뿌려져 있는 수많은 별은 우주의 허공 속에서 정말 드물게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우주의 대부분은 물질이 아니다. 허공이다.

원자는 작다. 정말 작다. 가는 머리카락 한 올의 너비 방향으로 100만개를 나란히 늘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이렇게 작은 원자도 내부가 있다. 원자의 크기는 가운데 놓인 원자핵에서 가장 바깥쪽 전자까지의 거리다. 원자핵의 크기도 정말 작다. 수소원자라면, 원자의 중심에 있는 원자핵은 양성자 하나인데, 그 크기는 수소 원자의 10만분의 1이다. 머리카락 한 올의 폭에 나란히 놓으면 수소원자의 원자핵 1000억개를 늘어놓을 수 있다(양의 전하를 띤 원자핵은 서로 밀쳐내어 정말로 이렇게 나란히 물리적으로 올려놓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크기 비교일 뿐이다. 이 글 읽는 물리학자들이여, 진정하시라). 1000억은 과학의 다른 분야에서도 우리가 자주 들어본 익숙한 숫자다. 은하 하나에 들어 있는 별의 수가 이 정도고, 우주에는 또 이런 은하가 수천억개 있다. 사람의 머릿속 뇌 안 신경세포의 수가 또 1000억 정도다. 머리카락 한 올의 너비 위에 은하의 별만큼 원자핵을 올려놓을 수 있다.

원자의 구조를 태양계에 비유하고는 한다. 계산해보니, 수소의 원자핵이 태양 크기라면, 수소가 가진 딱 하나의 전자는 명왕성보다 10배 더 먼 거리에 있는 셈이다. 양의 전하를 띤 원자핵과 음의 전하를 띤 전자 사이의, 태양계 크기보다 훨씬 더 먼 거리를 건너뛴 서로의 원거리 끌림이 원자를 만든다. 40년이 넘는 시간 보이저 1호가 항해한 거리는 원자핵과 전자 사이 거리의 3분의 1일 뿐이다. 보이저 1호는 오랜 항해 중 멋진 목성과 토성이라도 맘껏 구경했지만, 원자핵과 전자 사이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우주의 만물을 구성하는 대부분은 물질이 아니다. 물질 사이의 허공이다. 막막한 우주여행에서 별과 행성이 아주 드물게 마주칠 수 있는 소중한 존재라면, 물질의 내부도 마찬가지다. 원자핵에서 출발한 상상의 보이저호는 아무것도 없는 엄청난 규모의 허공을 가로지른 후에야 전자에 닿을 수 있다.

원자의 구조를 태양계에 비유하는 것이 그럴 듯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둘은 다른 점이 많다. 태양계 행성의 움직임은 고전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원자핵 주위의 전자 상태를 설명하려면 고전역학과 다른 양자역학이 필요하다. 전자는 행성처럼 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도 없어서, 전자의 궤도를 행성의 궤도로 빗대는 것은 물리학자에게는 아주 많이 틀린 얘기로 들린다. 다른 차이도 있다. 물리학의 표준모형에 따르면, 태양계의 행성으로 비유한 전자는 놀랍게도 크기가 없다. 명왕성까지 거리의 10배 떨어진 곳에서 크기 없는 점 하나가 돌고 있는 것이 원자다. 태양으로 비유한 수소의 원자핵은 세 개의 쿼크로 이루어져 있는데, 쿼크 하나도 또 크기가 없다. 전자와 쿼크뿐 아니라 우주를 구성하는 다른 기본입자들에 대해서도 표준모형은 크기를 얘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크기가 있다면 내부가 있고, 내부가 있다면 그 입자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근본적인 입자일 수 없기 때문이다.

크기가 없는 것들이 모여 허공으로 가득 찬 원자를 만든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점’은 크기가 없고 위치만 있는 존재니, 물리학의 기본입자들은 수학의 점을 닮았다. 길이도, 넓이도, 부피도 없지만, 어디 있다고 위치는 말할 수 있는 존재다. 근대철학자 데카르트는 정신과 다른 물질의 근본적인 속성으로 ‘연장(延長)’을 얘기했다. 틀렸다. 쿼크와 전자는 정신과 물질을 나눈 데카르트 이원론의 구분으로는 엄연한 물질이지만, 연장이라는 속성을 갖지 않는다. 심지어, 연장도 없고 질량도 없는 물질도 있다. 빛을 구성하는 입자인 빛알(광자)이 그렇다.

지구는 크기뿐 아니라, 위치도 보잘것없다. 우리 은하의 변방에 놓인, 전혀 특별할 것 없는 항성 주위를 도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행성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우주와 그 안에 놓인 한없이 작은 지구를 함께 떠올리면서, 인류의 보잘것없음에 실망하는 이가 많다. 이 작은 지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한 무상함, 작은 지구 위를 살아가는, 지구보다 훨씬 더 작은 존재인 한 사람의 인생의 덧없음을 떠올릴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물질로 구성된 우리 인간도 결국은 크기가 없는 기본입자들의 모임임을 깨닫고 허무함을 느낄 수도 있다.

같은 것을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나도 그렇다. 우주의 막막함과 그 안에 놓인 인간 존재의 사소함을 대할 때면 나는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글귀를 떠올린다. 우리 인류는 엄청난 크기의 우주의 허공 속에 놓인, 보잘것없지만 소중한 존재다. 크기가 없는 기본입자와 그 사이의 허공으로 구성된 물질이 긴 진화의 과정을 거쳐 이성적인 존재로 거듭난 것이 인간이다. 허공으로 가득한 우주의 아름다움을 이성의 힘으로 스스로 깨달은, 우리가 아는 유일한 존재가 우리다. 인간은 보잘것없어 더욱 소중한 존재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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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비평

우주정거장에서 본 1월1일의 지구는 역동적이다. 날짜변경선 바로 앞 뉴질랜드 북섬의 기즈번에서 시작된 ‘카운트다운-불꽃놀이-해맞이’는 서쪽으로 새해 첫날을 한바퀴 돈다. 그 앞뒤로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게 또 있다. 국가·조직의 리더들이 내놓는 신년사(新年辭)이다.

세계 이목을 붙잡는 신년사는 근래 북한의 몫이었다. 국정의 축과 방향을 유달리 신년사에 담고, 대외 메시지의 지속성(사이클)이 긴 까닭이다. 2018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창 올림픽 참가” 의사를 비치며 한반도 해빙을 연 것도 신년사였다. 지난해엔 7~8개 마이크가 세워진 딱딱한 단상을 벗어나 양복 입고 집무실 소파에 앉아 새해 메시지를 30분간 낭독했다. ‘정상국가’ 이미지를 한껏 과시한 해였다. 그렇게 2013년부터 1월1일 오전 9시(2016년엔 낮 12시) 조선중앙TV로 공개된 김 위원장의 ‘육성 신년사’가 올핸 없었다. 세밑에 나흘간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로 갈음했지만 이례적이다. 북한에서 신년사는 주요 과업·지침이 망라돼 1년간 주민들의 학습자료로 쓰인다. 대민·대남 메시지는 빠진 첫 신년사가 된 셈이다. 김일성 주석이 즐긴 육성 신년사도 이번처럼 1987년에 세밑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로 처음 대체된 바 있다.

‘빅맨’들의 새해 키워드도 종일 쏟아졌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홍콩 안정’을, 아베 일본 총리는 6년 만에 동북아에 생채기를 낳는 ‘평화헌법 개정’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단결’을, 메르켈 독일 총리는 ‘기후변화’를 화두로 던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희망·보답·성과’를 신년사 줄기로 삼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건너뛴 ‘사법개혁’을, 문희상 국회의장은 정치가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부진즉퇴(不進卽退)’를 내놓았다. 총선을 넉 달 앞둔 여야에선 “개혁 완수”(이해찬) “패권 교체”(이인영) “통합”(황교안) “결사항전”(심재철) “보수재건”(유승민) “정치교체”(심상정)라는 메시지가 부딪쳤다. 흰쥐 해인 경자년 첫날 서울엔 서설이 내렸다. 선남선녀들이 가장 많이 주고받은 첫말도 그렇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띄운 인사말도 그랬고, 곱씹을수록 그 이상의 말은 없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해피 뉴 이어).”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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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쥐가 난다고 할 때 쥐가 있고 굴을 파서 드나드는 긴 꼬리 들쥐가 있다. 다람쥐나 박쥐는 쥐하고는 한패가 아니지만 도리 없이 이름표를 붙이고 산다. 물속에도 쥐가 사는데 쥐포를 해서 먹는 쥐치가 그것이다. 주둥이가 쥐처럼 길어서 아마 쥐를 갖다가 붙인 거 같다.

 

한번은 목사관 내 처소 다락에 다글다글 쥐가 살았다. 하도 시끄럽게 뛰노는 통에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쥐 끈끈이를 놓기도 하고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으나 가히 신출귀몰이었다. 퇴치 기도를 해도 전혀 안 먹혔다. 아무튼 나는 목사로서도 자질이 여러모로 부족. 쥐가 조용한 순간은 사람이랑 매우 비슷했다. 첫째, 내 이야기에 귀를 모으는 중이거나 아니면 둘째, 내 이야기가 지루하여 조는 중. 셋째는 이제 저 차례, 다른 할 말을 준비하는 순간. 그러던 어느 날 슬그머니 쥐가 사라졌다. 밖에 한가득 놓인 개밥그릇을 치우고, 매달아 놓던 옥수수까지 죄 대피시킨 때문 같았다. 게다가 들고양이가 찾아오면 참치 캔을 따서 공손하게 바쳤다. 사냥꾼에게 대접을 했더니 효과가 금방 생겼다. 쥐들도 별수 없어 줄행랑.

그래도 끝내 고집을 부린 놈이 있었는지 고양이가 놈을 물어다 마당에 보란 듯 놓아둔 적도 있었다. 그냥 이사를 가지 왜 고집을 피워 죽임을 당했을꼬. 고집불통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목수도 절대 고칠 수 없는 집이 바로 ‘고집’이라지 않던가. 고집 센 놈치고 잘되는 꼴을 본 기억이 없다. 이후에도 가끔씩 쥐와 밀고 당기는 동거는 계속되었다.

산골에 살면 쥐와 대면은 일상에 가깝다. 쥐꼬리가 스윽 지나가거나 들쥐가 낸 구멍들을 발견한다. 쥐가 살면 뱀도 살고 고양이도 따라 산다. 높은 하늘에서 정찰하는 매도 보인다. 떼어놓고 나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님이렷다. 쥐들 가운데는 게릴라 쥐들도 있다. 일개 이름 없는 쥐들의 승전보를 기대하는 새해다. 크고 이름난 쥐들이 세상을 온통 갉아먹고 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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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롯해 기자란 직업을 가진 사람은 대체로 달력을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달력이라는 물건보다 ‘계기가 있는 날’을 좋아한다. 그날 발생한 사건·사고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스트레이트 기사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사안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기사를 쓰려면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 계기를 가장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달력이다. 업계 용어로 흔히 ‘카렌다 아이템’이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아이폰이 세상에 나온 지 10년을 계기로 혁신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박종철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을 계기로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다시 짚어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타이밍은 이른바 ‘꺾이는 해’다. 3주기, 4주기보다는 ‘5주기’, 8주기나 9주기보다는 ‘10주기’가 뭔가 더 있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2019년 말은 출판 담당 기자에게 꽤 괜찮은 시기였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즉 ‘2010년대의 책’을 꼽아보기에 아주 적당했다. 당대에 주목받고, 사랑받았던 책들은 그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경향신문이 지난 10년간 주요하게 다뤘던 책들을 다시 들춰보고, 출판평론가 등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대형서점에 자료를 요청해 2010년대의 베스트셀러 목록도 정리했다. 2010년대의 ‘좋은 책’과 ‘잘 팔린 책’을 동시에 선정해 정리해보기로 했다.

그간 책 기사를 써오면서 가장 고민한 것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였다. 언론이 ‘좋은 책’이라고 판단해 열심히 읽고 소개한 책들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거의 들어가지 못했다.

반면 베스트셀러 상단에 있어, 다시 찾아본 책들은 내 기준으로는 그리 좋은 책이 아니었다. ‘팔리는 책’이 다 좋은 책은 아니다라고 자위하면서도 씁쓸했다.

10년을 통째로 들여다보니 그런 고민은 소용이 없는 것들이었다. 우리가 선정해 신문독자들에게 권한 책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간, 그러니까 많은 독자들이 사랑한 책도 다 의미가 있었다. (내가 고른) 좋은 책이든, 잘 팔리는 책이든 모두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경향신문이 선정한 2010년대의 책’으로 뽑힌 &lt;정의란 무엇인가&gt;와 &lt;아픔이 길이 되려면&gt; &lt;골든 아워&gt;&lt;21세기 자본&gt; &lt;법률가들&gt; &lt;피로사회&gt; &lt;금요일엔 돌아오렴&gt; &lt;백래시&gt; 등을 보니 그간 한국 사회를 달군 이슈를 알 수 있었다.

&lt;아프니까 청춘이다&gt; &lt;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gt; &lt;미움받을 용기&gt;&lt;언어의 온도&gt; &lt;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gt; &lt;여행의 이유&gt; 등 연도별로 가장 많이 팔린 책 목록에서는 2010년대 한국을 살아간 사람들의 고단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찌됐든 다행이다. 그간 나름 심혈을 기울여 해온 일들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내가 선정한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일은 별로 없겠지만, 10년 뒤에 돌아보면 그 책들이 과거를 기억하는 작은 단초는 될 것이다.

다만 조금이나마 욕심을 부리고 싶은 일은 있다. 2019년에 주요하게 다룬 책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이나 숙제를 반영했다. &lt;선량한 차별주의자&gt;는 일상에 뿌리박힌 차별 문제를 다뤘고 &lt;20vs80의 사회&gt;는 불평등 문제를, &lt;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gt;은 청소년노동 문제를 지적했다. 매주 ‘무거운 책’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내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2020년에는 작년보다는 더 밝고 희망적인 책을 소개하고 싶다. 지금 무거운 책을 쓰고 있는 저자들도 변화된 사회를 보고, 희망적인 내용으로 원고를 고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책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는 소식을 전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지금은 희망을 꿈꾸기에 가장 적당한 1월이니까.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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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류가 몰려온다고 전 세계가 흥분하던 2000년대 초반, 필자는 여성 이슈를 취재하는 기자였다. 대한민국 여성부가 출범한 때가 2001년 1월. 세기가 바뀌는 전환기에 김대중 정부는 방점을 ‘여성, 성평등’에 찍은 것이다. 굵직굵직한 성평등 정책들이 숨가쁘게 논의되고 만들어졌다.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제정(1999), ‘모성보호 3법’ 도입(2001), 성매매방지법 제정(2004), 호주제 폐지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법 개정(2005)…. 19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은 계속 개정되며 보완을 거듭했다. 일간지 대부분엔 여성면이 있었다. 여성학자들, 여성운동단체들은 좌우, 진보·보수 없이 연대해 정책을 만들고, 변화를 만들어갔다. 그런데, 일순간 이 열기가 사그라들었다. 몰아붙인 제도들이 생활 속에 제대로 스며들지 못했는데, 성평등이 거의 다 이뤄진 듯, 성공의 기운에 취해 여성 이슈는 희미해졌다.

다시, 여성들이 뜨겁게 등장하고 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이후의 ‘미투’ 운동, 페미니즘의 열기를 예고하듯,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2015년 이 현상을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이름 붙였다. 2010년대를 돌아보는 연말 결산 기사들에선 ‘페미니즘’이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오랜 시간 뭔가 많이 달라진 줄 알았는데, 터져나오는 구호들이 그리 낯설지 않다. 여성들의 불안한 삶, 각종 지표가 보여주는 불평등의 현실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우리 사회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울대 사회학과 배은경 교수는 ‘젠더 관점과 여성정책 패러다임’ 논문에서 “개인으로서는 과거의 여성들보다 주체적이고 공적 노동에 대한 의지도 강해졌지만, 여성들로서의 집합적 정체성이나 연대감은 약화됐다”고 평했다.

또다시 10년 단위 시대의 전환점, 2020년이다. ‘페미니즘’이 주요 키워드로 등장하지만 예전과는 다르다. 일부의 목소리가 아닌, 여성들이 주류로 이끌어가는 질적인 가치의 변화다. 국제면에 부쩍 자주 등장하는 성평등 내각, 여성 리더십의 핵심은 소통과 공감, 환경과 평화, 돌봄, 지속 가능성 등이다. 오래전부터 페미니즘이 강조해 온 가치들이다. 최근 핀란드 총리가 된 산나 마린은 총리 선출 직후 EU 정상회의에 참석해 “더 많이,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며 2050년까지 유럽 대륙의 탄소 배출량이 사실상 없도록 만들자는 EU의 ‘탄소중립’ 목표에 강한 지지를 표명했다. 취임 3년째를 맞고 있는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는 지난해 50명이 숨진 이슬람 사원 테러 당시 히잡을 쓰고 이민자들을 찾아 위로하는 ‘포용과 화합의 리더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8년엔 동거 파트너와 딸을 출산하고, 육아휴직 중 양육수당 신설 등 가족 관련 정책 공개, 유엔 총회에 아기를 동반하는 파격 행보 등이 호평받았다.

지난 연말 미국 CNN방송은 스쿨미투 운동을 조직한 청소년 페미니스트 시민단체 ‘위티’ 양지혜 공동대표를 ‘아시아의 변화를 이끄는 젊은 리더’ 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해 소개했다. ‘이전과는 질적으로 유전자가 다른’ 페미니즘이 등장하고 있다. 삶 속에서, 일상에서 몸으로 겪은 불합리와 차별을 스스로 바꿔보자는, ‘직접·민주 페미니즘’이라 칭할 만한 움직임이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전, 파편화된 개인으로 살던 기나긴 동면의 시기에 응축된 단단한 힘이 이들을 수면 위로 밀어올렸다. 이들에게서 희망을 느낀다. 여성만이 아니다. 가부장 질서의 갑갑함, 남성들을 옭아매는 ‘맨박스’(남자를 둘러싼 고정관념의 틀)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남성들의 페미니스트 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58년생 페미니스트’ 노혜경 시인이 사이다 제목의 책 &lt;요즘 시대에 페미도 아니면 뭐해?&gt;를 펴냈다. 제목대로 “요즘이 페미‘도’ 아니면 행세하기 어려운 시대”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행세는 ‘사람 노릇’이다. 차별을 거부하고 차별 구조에서 벗어나자는 페미니스트는 민주주의자처럼 현대인의 최소한이라고 강조한다. 페미니즘은, 못 쫓아가면 뒤처지고 조롱받는, 이미 국내외에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조류다. 페미니즘의 가치를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고, 확산시켜야 미래가 있다.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lt;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gt;를 쓴 최승범 교사의 말을 들어보자.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다. 남성의 숨통도 틔워줄 수 있다. 힘들어도 혼자 이겨내는 것이 왜 남자다운 행동이 되었을까. 여성의 소득이 남성과 비슷해지면 모든 비용을 반씩 부담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육아를 여성에게 미루지 않게 되면 아빠와 아이의 친밀감이 커지지 않을까. 내 가족이, 내 주변 사람들이 일상에서 불쾌감과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까.”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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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송년회 시즌을 앞두고 이런저런 단기아르바이트를 했다.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술값이라도 좀 벌어볼 요량이었다. 상하차나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는 배제했다. 술값 벌려다가 병원비가 더 들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 걸 빼도 과연 현대사회, 별의별 아르바이트가 다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사용될 목소리 녹음이었다. 그럴싸하지 않은가. 인공지능에 관련된 일이라니. 돈도 벌고 미래도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다음날 아침, 지정된 장소로 향했다. 합정동에 있는 오래된 오피스텔의 오래된 방이었다. 오래된 노트북 한 대와 오래된 마이크가 장비의 전부였다. 혼자 기다리던 남자는 말없이 노트북 화면을 켜고 지정된 단어들을 낭독하라고 했다. 약 20분에 걸쳐 몇백개의 단어를 읽었다. ‘교차로’ ‘부장님’ 같은 의미 있는 단어들과 ‘빽봉’ ‘로나가’ 같은 의미 없는 단어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아무 감정도 싣지 않고 단어들을 읽었다. 아무 대화도 하지 않고 목소리를 녹음했다. 낭독이 끝난 후 남자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급여 지급을 위한 정보를 기입하는 종이였다. 낡은 방에 들어가서 낡은 방을 나올 때까지, 나와 남자가 나눈 대화는 “안녕하세요”와 “수고하셨습니다”가 전부였다. 인공지능처럼 그럴싸한 아르바이트가 아니었다. 기계처럼 차가운 시간이었다. 20분이 꽤 길었다.

얼마 후에는 모델 아르바이트를 했다. 모델, 이 얼마나 화려한 단어인가. 하지만 모델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얼굴과 몸을 가진 내가 화려한 모델일을 했을 리는 없다. 집 근처 입시 미술학원에서 뽑는 아르바이트였다. 오후 1시에 학원에 갔다. 사방에 진흙이 잔뜩 묻은 남루한 화실에 학생 10명이 있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무표정하게 앉았다. 5분에 한번씩 울림에 맞춰 조금씩 방향을 돌렸다. 열명 모두에게 나의 두상을 360도로 보여주면 50분이 지난다. 10분간 휴식 후 다시 의자에 앉아 똑같은 일(이걸 ‘일’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을 4시간 동안 반복했다. 평소의 4시간이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음반 대여섯장을 들을 수 있고 영화를 두 편 가까이 볼 수 있다. 낮잠을 두세번은 잘 수 있고 낮술을 거나해질 때까지 마실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4시간은 나일강만큼 길었다. 아니, 알람이 울리는 5분도 한강처럼 길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생각뿐.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고, 생각을 했다.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하는 거창한 시간을 가졌다. 생각의 항해에 필요한 연료가 동났다. 무의식의 파도에 사고를 맡기고 온갖 잡생각을 두서없이 하고 또 했다. 과정도, 결론도, 의미도 없는 생각(이걸 ‘생각’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을 4시간 동안 반복했다. 그사이 열 개의 흙덩어리는 열 개의 나를 닮은 사내의 흉상이 됐다. 어느새 나타난 강사가 그 흉상들을 품평하며 한 시간을 보냈다. 앞서의 네 시간에 비하면 쏜살같이 한 시간이 지나갔다. 리뷰가 끝난 후, 흉상 하나하나는 순식간에 다시 흙덩어리로 돌아갔다. 태어나서 처음 나의 흉상이 탄생했지만 그건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마치 화분이나 감귤과 같은 정물에 불과한 물체였다. 녹음 아르바이트와 모델 아르바이트를 할 때 글을 쓰고 방송을 통해 말과 얼굴을 제공하는 나는, 거기에 없었다. 사회적 존재를 거세당한 한 개인이 정해진 시간을 채웠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 것이다.

김창완밴드의 ‘시간’이라는 노래가 있다. 김창완이 2016년에 발표한, 현재로서는 그의 가장 최근곡이다. 1977년부터 그가 낸 노래 중 가장 쓸쓸하고 처량한 곡이기도 하다. 어쿠스틱 기타와 반도네온이 악기의 전부인 이 노래에서 그는 이런 가사를 부른다. “그냥 날 기억해줘 내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꾸미고 싶지 않아 시간이 만든 대로 있던 모습 그대로.” 익명의 목소리와 익명의 존재로 이틀을 보내며 문득 이 노래가 떠올랐다. 새해가 왔다. 익명의 삶을 꾸려나갈 많은 사람들과 ‘시간’을 다시 듣고 싶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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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장 선거를 둘러싼 청와대 ‘하명수사’와 선거개입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지난달 31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송 부시장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위 의혹을 수집해 청와대 행정관에게 제보하고, 울산시장 선거 관련 전략·공약 등을 청와대 인사들과 논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공무원 범죄로서의 이 사건 주요 범죄 성격, 사건 당시 피의자의 공무원 신분 보유 여부, 피의자와 해당 공무원의 주요 범죄 공모에 관한 소명 정도 등을 고려하면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과 상당성이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기각 사유를 종합하면, 송 부시장에 대한 검찰 수사 내용이 전반적인 혐의를 소명하는 데 부족하다는 취지다. 특히 ‘주요 범죄 공모에 관한 소명 정도’를 언급한 것은, 송 부시장이 청와대와 공모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핵심 혐의를 입증할 충분한 단서를 검찰이 확보하지 못했다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조급하고 무리한 수사의 결과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검찰은 송 부시장 구속영장 청구서에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선임행정관(현 민정비서관),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등 청와대 관계자들을 공범으로 적시했으나, “다른 공범들의 혐의 소명도 부족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핵심 피의자의 영장 기각으로 본질인 청와대 선거개입 여부를 밝히기 위한 향후 수사가 난항을 겪을 공산이 커졌다. 청와대 핵심 인사들로 수사를 확대하려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전적으로 검찰의 책임이다. 일련의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를 두고 여전히 개혁에 저항하려는 ‘표적수사’ ‘과잉수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 만큼 검찰은 이참에 그간의 수사 전반을 돌아보고 점검해야 한다.

청와대가 ‘하명수사’ 등을 통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실로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중대 사안이다. 검찰은 ‘정도수사’를 통해 의혹의 실체적 진실을 낱낱이 규명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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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미국을 향해) 충격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며 “머지않아 새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한반도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며 대미 강경 노선을 선언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대조선 입장에 따라 상향 조정할 것”이라고 밝혀 대화의 여지도 남겼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 대신 당 전원회의를 통해 ‘새로운 길’을 제시했는데 긍정적, 부정적 신호가 뒤섞여 있다.

북한의 이날 발표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2018년 4월 선언했던 핵무기·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중단 방침을 거둬들일 뜻을 밝히면서 새로운 전략무기까지 언급한 점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1만8000자에 달하는 당 전원회의 결과 보도에서 ‘정면돌파’라는 말을 23차례나 쓰며 강경 노선을 천명했다. 경제건설을 통한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장기전에 대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당 인사 3분의 2를 교체하는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한 것도 이런 북한의 의도를 뒷받침한다. 대남 정책은 거론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대미 관계에 집중할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을 향해 시간 끌지 말고 협상에 나서라고 압박한 것이다.

이로 볼 때 북한은 당분간 대화에 나서기보다 긴장을 고조시킬 것 같다. 특히 주목되는 것이 ‘새로운 전략무기’가 무엇이며 언제 시험할지이다. 신형 엔진을 장착한 다탄두 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가능성이 거론된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ICBM을 쏘아올린다면 타협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진다. 유엔이 추가 제재에 나서는 것은 물론 미국이 군사행동을 모색할 수 있다. 통일부 대변인이 “이(새 전략무기 시험발사)를 행동으로 옮길 경우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을 북한은 유념해야 한다. 다만 북한이 강경 일변도로 나가지 않고 외교적 해법의 여지를 남긴 점은 평가해야 한다. 북·미 협상 시한을 넘기면 큰일이 벌어질 것처럼 밝혀온 북한이 미국을 향해 협상을 강조한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김 위원장이 집권 후 처음으로 신년사를 하지 않은 것도 북한이 현 상황을 엄중하게 보면서 대응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북한은 또다시 도발 수위를 높이며 벼랑 끝 전술을 펴는 과거 행태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미국 또한 북한이 예전보다 훨씬 높은 전략무기 능력을 확보하고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이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나는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 나는 그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유화적 태도를 보인 것은 다행스럽다. 최근 유엔에서 일부 대북 제재를 풀어주자는 중국과 러시아의 중재안이 재차 거론되고 있다. 연말 시한을 넘긴 북한과 김 위원장의 뜻을 확인한 만큼 미국도 열린 자세로 나서야 한다. 한국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도 촉진자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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