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들 틈에 사는 것 같아요.” 지인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그는 요즘 지인을 만날 때마다 덜컥 겁부터 난단다. 과거에 멀쩡했던 사람들이 ‘조국’에 관해 뭔가 부정적인 얘기라도 하면 대화 중 갑자기 괴물로 돌변해 공격해오는 일을 몇 차례 겪었기 때문이다. 좀 전까지 다정히 대화를 나누던 친구나 동료가 바로 눈앞에서 좀비로 돌변하는 상황. 이게 어디 그만의 일이겠는가? 요즘 그와 비슷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게다. 

요즘 이 사회에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 이야기가 ‘조국’과 그의 가족에 이르면 성한 정신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가끔 제정신 가진 이를 만나면, 마치 영화 속에서 좀비에 쫓기던 주인공이 용케 살아남은 다른 인간 생존자들을 만난 것처럼 반갑다. 그 반가움은 거의 생물학적인 것이어서, 호모사피엔스가 야생에서 우연히 같은 종을 만났을 때 느끼는 종적(種的) 유대감, 유적(類的) 안도감에 가깝다. 

정상인이라면 ‘부모가 학생의 시험을 대신 치르는 것이 명백한 부정행위’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좀비 바이러스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감염자의 첫 증상은 헛소리. “그것은 대리시험이 아니라 오픈 북이었다.”(유시민 이사장) 따라서 그것을 문제 삼는 것은 “대한민국 우리 어머니들, 부모님들의 절반 이상을 잘못하면 범죄 혐의로 몰 수 있다”(홍익표 대변인). 교수의 뇌라고 해서 바이러스 앞에서 무사한 것은 아니다. 

“온라인 시험을 부모한테 물어 답한다고 부정행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온라인 시험은 여기저기 책을 구해 읽어보거나 아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답을 구하는 능력입니다. 조국 아들은 요행히 자기 가까이에 유능한 사람을 두어 쉽게 온라인 시험에 활용했을 뿐입니다. 요즈음 같은 무한경쟁시대는 바로 그런 온라인 시험의 능력이 진짜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분은 감염되기 전에 무려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했단다. 결국 ‘부모 잘 만나는 것이야말로 디지털시대에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라는 얘기인데,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아닌가? “돈 많은 부모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던 정유라의 항변을 생각해 보라. 결국 문재인 정권이 그동안 열심히 추진해온 그 개혁이라는 것의 정체가, 고작 최순실 가문이 차지하던 자리를 조국 가문에게 넘겨주는 것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높으신 양반들이 깔아놓은 자락 위에서 무명의 민초들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도 아이가 문제 푸는 거 도와주곤 하는데, 그럼 나도 고소당하겠네.” 민초들이라 그런지 비위를 옹호하는 방식이 매우 토착적이며 생활 밀착적이다. “조카가 사생대회 그림 그리는 거 도와준 적 있는데, 나도 고소하지 그래?” 한 번이라도 아이의 숙제를 거들어 본 모든 이들이 들고일어나 ‘나를 고소하라!’며 집단으로 항의를 한다. 무슨 드레퓌스 사건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다. 

‘시험은 부모가 아니라 학생이 치르는 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이는 상식에 속했다. 하지만 이제 당연함의 당연함을 주장하기 위해 매번 좀비들과 논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아예 논리의 영역을 떠나버린 이들이라, 애초에 이길 수도 없는 논쟁이다. 결국 ‘자식의 시험을 부모가 대신 치르는 것은 부정’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조지워싱턴대학의 도움을 빌려야만 했다. 나라 안에서 논리와 윤리의 기준이 무너진 터라, 그 기준을 밖에서 빌려와야 할 신세가 된 셈이다. 

여당의 홍익표 대변인은 “조지워싱턴대 성적사정 업무방해죄를 기술했는데 이게 얼마나 조국 장관 기소 내용을 희화화시킬지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며, 기소 검사를 “검찰의 X맨”이라 불렀다. 이렇게 그는 심각한 시험부정을 가볍게 ‘희화화’한다. 시험부정 따위는 이들에게는 아예 범죄도 아닌 모양이다. 참고로, 쌍둥이 딸에게 답안지 넘겨주었던 어느 교무부장은 법원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언도받은 바 있다. 

아무리 혐의를 드러내도 지지자들의 믿음을 바꿔놓을 수는 없다. 그들은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다. “그렇게 털었는데 나온 게 이것밖에 없어? 조국 장관님은 정말 깨끗하시다!” 시험부정의 사실이 외려 청렴함의 징표가 된다. 아들을 대신해 시험을 치른 조국 전 장관이 정유라의 대리과제 기사에 “경악한다”며 코멘트를 달아도, 그들은 결코 경악하지 않는다. 

한때 지구상에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가 공존했듯이 이 사회에도 당분간 두 종류의 영장류가 공존할 모양이다. 좀비들 틈에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모든 생존자들에게 새해인사를 보낸다. ‘올해도 무사하세요. 우리 멸종하지 맙시다.’


'일반 칼럼 > 진중권의 돌직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웰빙 인 좀비월드  (0) 20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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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 보건복지부가 1주일 사이에 3개의 문자로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본인부담금 인상을 통보했다. 본인부담금은 현재 가구 소득 기준으로 산정해 개인마다 차이가 있는데, 문자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인상 금액은 최소 2700원에서 6만원으로 1차 문자로 통보받은 액수보다 2차에는 2~3배 인상된 금액이 안내된다. 3차에는 다시 인하된 금액이 문자로 통보된다. 한 장애인의 경우 1차 약 3만원, 2차 약 6만원, 3차 약 1만원으로 2차례 정정 통보 문자를 받았다. 이미 기존 금액으로 납부한 이들은 꼭 인상액을 추가로 내라는 통보도 잊지 않았다. 

뭐가 정확한 정보인지, 지금도 본인부담금이 부담스러운데 매해 인상되는 기준은 뭔지 통보받은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은 답답하고 분노한다. 

장애인 활동지원제도는 농성, 삭발, 오체투지 등 부단한 투쟁 끝에 만들어졌다. 가족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장애인이 시설이나 집에 갇혀 사는 삶을 끝내고, 자신이 기획하고 선택하는 삶을 보장하기 위해 필수적인 제도다. 

동료 시민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제도이지만, 시행 초기부터 문제가 있었다. 장애등급제와 인정조사표(현재 종합조사표)로 서비스 이용자를 선별하는 방식, 24시간 보장이 안되는 문제, 본인부담금 등에 대해 장애인운동단체는 줄곧 이의를 제기해왔다. 특히 본인부담금은 활동지원 급여액의 15%가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기본급여만 해당한다. 독거, 취약가족, 학교 및 직장생활 등 추가급여에는 상한기준이 없어 본인부담금의 실질적인 상한액은 없는 것이다. 

또한 본인부담금은 2011년 이후 매해 3~4% 이상 인상되어 왔다.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본인부담금이 없지만, 그 외의 경우엔 가구 소득에 의해 당사자가 소득이 없어도 매월 30만원 안팎을 부담해야 한다. 장애인이 서비스를 포기하거나 가족이 서비스 중단을 요청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를 보면 장애인을 지원하는 역할을 부모, 자녀 등 가족이 담당하는 비율이 81.9%로 여전히 높다. 활동보조인, 요양보호사 등이 지원하는 비율은 아직 13.9%이다. 2019년에는 217명의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공공서비스인데 본인부담금으로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지만 아직 답이 없다. 

복지부는 공공서비스 이용에 최소한의 본인 부담이 필요하다는 말을 반복하지만, 장애인 활동지원제도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장치다.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는데 부담금이 왜 필수여야 하는가? 부담금이 압박으로 작용해 포기하는 장애인이 생겨선 안된다. 열악성을 설명하도록 하지도 말고, 눈치 보게 만들지도 말라. 국가가 부담하지 않는 빈자리, 본인부담금으로 채우게 하지 말아야 한다. 활동지원제도 본인부담금 폐지가 답이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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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21일 오전 광주. 전남도청이 위치한 금남로를 비롯해 광주 전체는 슬픔과 아픔, 분노로 뒤섞였다. 인구 70여만명 중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금남로에 모였다. 오후 1시 무렵 군이 국민을 향해 발포했다. 시민들은 쓰러진 사람들을 병원으로 옮기며 총을 들었다. 계엄군이 광주 외곽으로 철수하자 헌혈하고 주먹밥을 만들었다.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다친 사람들을 돌봤다. 그렇게 광주는 상처받은 공동체를 치유해갔다. 5월27일 군의 무력진압에도 굴하지 않고 ‘역사’ 속으로 걸어간 사람들은 망월의 품에 안겼다. 그 뒤 사람들은 국가에 의해 망월동으로 가는 길이 막히면 산을 넘어 찾아가고 부정한 정권에 대항했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렀다. 세월의 무게만큼 많은 조사가 이뤄졌으나 수많은 문제가 산더미다. 2018년 2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된 지 두 해가 흘러 뒤늦게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잘잘못을 따질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화살같이 빨리 지나가는 게 시간이다.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 12척만으로 전장에 나서는 이순신 장군의 마음을 기대하며 몇 마디 거들어본다. 

새로 출발하는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법대로’, 법에 있는 과제만 제대로 풀어도 된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가의 문제이다. 왜 국군이 시민들을 폭행하고 발포했으며 글로 담지 못할 처참한 사건을 저질렀는가. 당시 사라진 사람들은 어디로 갔고 그들은 왜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가. 국민들의 인권이 어떻게 공권력에 의해 뭉개졌으며, 헌정 질서는 어떻게 유린됐는가. 그리고 대체 이 모든 행위를 누가 명령했는가. 

어디 하나 쉬운 과제가 없다. 관련 자료가 상당히 남아 있으나 의외로 핵심 자료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결정적 자료(smoking gun)’는 사라지고 때로는 조작됐다. 그렇기에 자료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철저하게 살펴야 한다. 5·18 전체를 볼 수 있는 큰 그림은 당연하고, 개별 사안도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관련자들, 특히 군인 출신들에게 1980년 5월 광주는 잊고 싶은 기억이다. 몇몇 분들의 용기 있는 고백을 제외하면 대개는 입을 닫는다. 40년 전 일이며 지우고 싶다면서.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피해자들, 더 나아가 광주 시민들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다음으로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그 활동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 ‘배 놔라 감 놔라’ 해서는 안 되겠지만, 국민들이 박수 치거나 따끔하게 혼낼 때도 있어야 한다. 늘 열린 마음으로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바란다. 

끝으로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에 독립성이 보장되기를 바란다. 보고의 의무가 있으나 그렇다고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를 어그러뜨리는 것으로 나가면 안 될 것이다. 관심은 가지되 간섭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하여 3년 뒤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권위 있는 보고서’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그로부터 제대로 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치유가 출발할 수 있다.

<노영기 | 조선대 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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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년간 한국인들의 삶을 가장 크게 바꾼 제도는 주 40시간제일 것이다. 이 법이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여가다운 여가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허용되었다. 그런데 이 법은 그 취지가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에 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이유로 기존 임금을 삭감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법에 포함되었다. 실무 단계에서는 법 개정의 취지가 명백한데 굳이 이 조항이 필요한가라는 논쟁도 있었다. 하지만 노동계의 우려가 컸기 때문에 아예 해석의 여지를 두지 말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법이라는 것은 그 법의 시행을 통해 벌어질 상황을 일일이 조문에 담을 수 없다. 구체적인 상황이 벌어지면 결국 판례를 통해 법의 의미가 확립된다. 그래서 구체적 상황에 대한 설명이 법에 명시적으로 들어 있지 않아도 명민한 판사들은 법의 취지를 살핀다. 실제로 법률 개정안의 첫머리에 나오는 것은 ‘제안 이유’다. 바뀐 법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취지를 살피는 것이야말로 법률 적용의 근본이다.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었다. 패스트트랙에 진입할 때의 원안과는 상당히 달라진, 준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할 수 있다. 컵에 물이 반도 안 찼다고 볼 수도 있고, 그래도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 것 자체에 의미를 두자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와중에 가장 해괴망측한 것은 이른바 ‘위성정당’ 논란이다. 지역구에서 우세한 거대정당이 비례의석을 많이 차지하지 못하니, 비례대표만을 노린 별도의 위성정당을 만든 뒤 나중에 합당을 하겠다는 식의 발상이다. 법의 취지와는 전혀 반대되는 적용 방식이다.

법의 취지를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후 정치를 농단한 사건으로 ‘사사오입 개헌’이 있다. 1954년 국회는 이승만 대통령의 3선을 위한 개헌안을 표결에 부쳤는데, 가결에 필요한 수는 재적의원 203명의 3분의 2인 135.333...명이었다. 즉 135명은 3분의 2가 되지 않으므로 136명이 가결에 필요했다. 공교롭게도 찬성은 딱 135명이었고 사회자였던 국회부의장은 부결을 선포했다. 그런데 자유당은 사사오입이라는 황당무계한 논리를 들어 가결에 필요한 숫자가 135라고 주장하고 개헌안이 통과되었다고 결정했다. 소위 ‘자유당 때’라는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이승만이 3선을 하기는 했지만, 4·19라는 역사의 필연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법률적으로 사사오입 개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위헌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이 행위의 본질은 법의 취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꼼수를 동원해 법을 무력화한 데 있다. 그 점에서 사사오입 개헌은 최근의 위성정당 논란과 맥을 같이한다.

위성정당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은  많이 나왔으니 되풀이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선관위와 경찰, 검찰이 모두 놀라울 정도로 너그러이 봐주어 그 모든 위험을 용케 피했다고 해보자. 유권자들은 어떻게 판단할까?

지난 총선에서 많은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이 지금은 사라진 새누리당의 압승을 점쳤다. 무얼 해도 괜찮을 것 같은 분위기였기에 청와대는 친박당을 만들기 위해 오만한 공천개입에 들어갔다. 새누리당은 보수 유권자를 ‘우리가 뭘 하든 찍어줄 사람들’이라고 봤고, 유권자들은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다. 결과는 분명했다.

선거법 개정의 취지는 촛불 이후 주권이 대표되는 방식을 재구성하자는 것이다. 지역의 대표뿐 아니라 정책과 가치, 사회적 약자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을 국회로 보내자는 취지다. 그 취지에 맞는 공천을 하는 정당이 당연히 유리하다. 그것이 국민의 뜻이기 때문이다. 

바둑 해설을 듣다보면 이런 경우가 있다. “예상치 못한 수인데요? 묘수인가요?” “아니요. 꼼수입니다.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12월에도 여러 묘수를 뒀다. 민식이법 앞에 필리버스터라든가. 결과는 어땠는가?

<이관후 |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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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에 강연을 가면 ‘용기를 얻었다’는 메모를 전하는 학생들을 만난다. 하루는 내용이 상세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맹목적 찬반토론에 집착하는 학교의 사회과목과 달리 ‘무엇이 틀렸다’는 비판을 확실히 해 줘 고마웠다, 교사들의 기계적 중립성이 답답했는데 좋은 사회를 위해 나쁜 선택을 하지 않는 법을 알려줘 좋았다 등. 하지만 같은 내용을 학부모 연수에서 언급하면 항의가 빗발친다. 정치적 선동 그만해라, 특정 정당 떠올리게 하는 발언 삼가라 등. 빨간 띠 두르고 혁명에 동참하라고 강요했다면 모르겠는데, 양극화를 방관하는 일상의 씨앗을 찾고 편견을 깨자는 내용을 문제 삼는다. 나도 따진다. “왜 저한테만 정치적이라고 하세요?”

본질, 순수 등의 고상한 단어로 교육을 포장하는 사람들은 기득권을 비판하는 내용에만 ‘정치적’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자본주의를 굳건한 질서로 가르치는 교과내용은 문제 삼지 않지만, 이를 비판하면 정치적인 사람이 된다. 성장은 절대 규율이지만, 분배는 정치적 선동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찬양하면 도덕적이지만, 이면을 따지면 뒤틀렸다고 욕먹는다. 기업을 칭찬하면 긍정적이지만, 노조의 필요성을 말하면 정치색깔로 얼룩졌다고 비난받는다. 석차와 대학 서열화는 세상 이치지만, 학력주의를 비판하면 포퓰리즘 소리를 듣는다. 지금껏 성차별에 둔감하고 동성애를 공공연하게 혐오했던 수많은 정치적 교사들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지만 성평등을 주장하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부르짖었던 또 다른 정치적 학생들은 온갖 혐오에 노출되었다.

선거권이 만 18세에게 주어지니 익숙한 반론 두 가지가 떠돈다. 판단력이 부족한 미성숙한 나이라는 것과 정치화에 대한 우려다. 선거권 조정은 청소년을 미성숙하다고 보는 ‘굉장히 정치적인’ 관념에 반대해 바위에 달걀을 던졌던 정치적 행위가 오랫동안 있었기에 가능했다. 솔직히 어른들이 성숙을 거론할 처지인가. 돈봉투 오갔던 시절은 말하지 않겠다. 여전히 단어 몇 개에 현혹돼 사람을 이념으로 재단하고 재건축, 부동산 개발호재 등을 요리조리 짜깁기한 공약에 정신이 홀린 사람들 덕택에 국회의원 배지 단 분이 얼마나 많은가.

교실이 정치판이 될 것을 우려한다는 말은 지금껏 정치라는 말이 얼마나 오용됐는지를 증명한다. 만 18세가 모두 학교에 있을 거라는 ‘굉장히 미성숙한 사고’는 따지지 않겠다. 우려가 기우란 말도 핵심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교육 정치판엔 왜 그렇게 관대했는지 묻고 싶다. 승자독식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명문대에 진학해야 하니 학교에서 줄 세우는 공부만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정치적이지 않은가? 약육강식 논리로 공동체를 이해하겠다는 것도, 탐욕이란 고삐 풀린 마차를 제어하지 않겠다는 것도 다 정치적이다. 시험성적만이 보상의 척도라는 건 전지전능한 신의 계시라도 된다는 말인가?

반대 의견이 없으면 한쪽의 논리가 우주의 질서처럼 포장된다. 자기 생각이 대자연의 질서로 인식되면 차별에 둔감해진다. 사람들이 만든 사회 안에 어떤 논리도 침범할 수 없는 순수의 결정체 따위는 없다. 교실에서도 여러 정치적 이야기가 가득해져야지만 이상한 신념을 깰 수 있다. 면학 분위기가 흐트러진다고 걱정들인데, ‘그러자고’ 선거권은 청소년들에게도 필요하다.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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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가 법무부 장관이 되던 날 이종걸은 이런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형조판서가 입조했다. 의금부도사·포도대장은 이제 상급자를 모시게 되었으니 조정 대사에는 관심을 끄고 즙포(緝捕) 같은 원래 직분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챙겨야 할 것은 포승줄이지 오지랖이 아니다. 꼭 할 말이 있으면, 형조판서를 통해서 진언하거나, 상소를 올리는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이 트윗 첨부 사진에 윤석열이 등장한 것으로 봐서 그를 겨냥한 경고로 보인다. 법무부 소속 외청인 검찰 기관장과 소속 검사들이 장관 지휘를 잘 받고, 죄인도 잘 잡으라는 취지의 말은 시비걸 게 아니다.

추미애 신임 법무부 장관이 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 취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자손이어서가 아니라, 아나키스트 이회영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이가 왜 조선시대 통치기구와 직제를 끌어들여 비유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형조는 노비문서를 관리하던 장례원을 두기도 한 봉건 억압 기구다. 굳이 비유한다면, 국왕 직속의 의금부는 지금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포도청은 경찰청에 해당할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냥 비유 아닌가? 정권의 핵심 열혈 지지자 중에선 이런 말도 나왔다.

“꼭 민주공화국이어야 하느냐, 문재인 대통령께서 왕조를 여시는 게 어떻겠냐 하는 제 개인적인 바람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변호사 이정렬이 2018년 12월 말 SBS <김성준의 시사전망대>에 나와 한 말이다. 이 발언을 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군주제국가로 바꾸는 개헌안에 찬성투표 하겠다” 같은 댓글이 이어졌다.

정말 조선시대와 세습 군주, 왕정을 그리워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없던 일이 됐지만, 건축가 승효상은 정권 교체 직후 대통령 관저·영빈관·경호실 등 청와대 부속시설이 들어설 후보지로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 두 곳을 꼽았다. 그 목표가 “권위주의 시대를 청산하고, 국운융성의 상징으로 만들겠다”였다.

이종걸의 비유도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비유는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 속성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언론에선, 지식사회에선 툭하면 지금 정치와 권력의 문제를 왕과 충신, 역적 관계에 치환한다. 현안을 곧잘 조선시대 일에 빗대 설명하는 이들은 자신을 충신과 사대부로 설정하기 일쑤다. 시민을 ‘백성’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다. 조선시대 왕의 일화도 미담으로 자주 불러낸다.

한국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을 들여와 논의한 지 수십년인데, 근대는커녕 봉건에서 벗어나긴 한 걸까. 구자경 사망 후엔 ‘LG가문이 유교적 가풍에 따라 4대째 잡음 없는 장자 승계 전통을 지켜왔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른바 ‘글로벌기업’인데, 재벌 세습에 관한 문제의식은 없다. 세습을 인정하더라도, 딸은 왜 승계하면 안되는가. 저건 평가할 일이 아니라 비판할 일이다.

전주시는 조선 왕조를 시의 자산과 정체성으로 삼았다. 대통령제를 두더라도 상징적인 왕실을 만들자는 취지의 ‘조선 황실 복원 운동’을 벌이는 황실문화재단에 2010년부터 연 9000만원을 지원해온 사실이 알려졌다. 전주시는 재단의 ‘황손과 함께하는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 등이 “조선 왕조 발상지로서 전주의 위상을 높인다”고 했다. 

시의 위상을 높이는 건 왕조에 대한 향수, 자부심이 아니라 삶의 질이다.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 때는 고종이 외교 고문 미국인 데니에게 하사한 태극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마지막 황손’이자 황실문화재단 이사장인 이석과 아나키스트의 후손 이종걸은 3·1절 100주년인 지난해 3월1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고종 장례행렬 재연 만세 행진 때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했다.

고종의 죽음을 3·1절 100주년의 핵심 이벤트로 삼은 일은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다.

2년 전 취재차 단재 신채호의 옛 집터에서 만난 김삼웅은 이렇게 말했다.

“3·1운동이 아닙니다. 3·1혁명입니다. 왕조봉건체제를 거부하고, 민주공화제를 채택했어요. 여성해방을 외친 날입니다. 종교·계층·신분을 떠나 참여했어요.”

노동과 부동산, 취업과 교육 등 지금의 모든 문제는 공화국의 핵심인 ‘공공의 것’의 부재를 드러낸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불평등’도 공화국의 문제다. 

폐기할 때도, 완성된 것도 아닌데, 한때 거리에 가득 찼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낯선 말이 됐다.

<김종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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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아 하셨다.

네 하였다.

보리다 하셨다.

네 하였다.

고양이다 하셨다.

네 하였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겪은 것들을 좀 생각해라.


시간 나면 여 와서

며칠 있다 가거라.

아무 생각 안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즐거운 일을 네가 다 한다.

숨 쉬어가면서.

뭐 드러 급하게 하냐.

한 박자 늦춰가면서.


봄이니까.

꽃피잖아.

바람도 불고.

새도 울어.


김민정(197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곡두’의 뜻은 환영(幻影)과 같다. 실제로는 없는 사람이나 물건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가뭇없이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곡두인생’이라는 말도 있으니 영속되지 않는 허망한 삶을 그렇게 일렀다. 모든 작위(作爲)가 있는 것은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이슬과도 같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곡두이므로, 그런 연유로 우리의 사랑은 보다 깊어지고, 애틋해지고, 한 시절에 겪은 일은 언어로 기록된다. 

시인은 과거의 어느 날에 김용택 시인으로부터 들은 말씀을 이 시에 쓰고 있다. 들은 말씀들 가운데 하나는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일 테다. 보리는 보리라고 보아 바로 알고, 고양이는 고양이의 그 모양 그것과 똑같이 보아 바로 알라는 가르침일 테다. 봄이 되어 꽃피고, 바람이 일고, 새가 반짝이며 우는 것도 극히 자연스러운 사실의 일일 테다. 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 알면 평안을 잃지 않는다는 말씀일 테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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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광고 하나가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반려견 ‘테리’(래브라도 레트리버)가 주인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테리는 침대에 웅크리고 있다가 어린 시절 공을 입에 문 채 ‘형’과 함께 찍은 사진을 쳐다본다. 뭔가 결심한 듯, 공을 물고 집을 나선다. 완전자율주행 전기자동차가 집 앞에서 테리를 기다린다. “헬로 테리!” 뒷좌석에 오른 테리는 어린 시절 형과 함께했던 기분 좋은 꿈을 꾼다. 알아서 달린 자동차는 늦은 밤 어느 주택가에 선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훌쩍 커버린 사진 속 형이 테리를 반긴다.

자율주행시대가 가져올 우리의 미래다. 정부가 5일 부분자율주행차(레벨3) 안전기준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7월부터 레벨3 자율주행차의 출시·판매가 가능해져, 실제 도로주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레벨3 차량부터 자율주행차로 분류된다. 운전자가 있어야 움직이지만 ‘돌발상황’이 아니면 차로유지 자율주행을 한다. 위급상황에서 운전자 반응이 없으면, 스스로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전환한다. 레벨3 상용화의 의미는 작지 않다. 이른 시일 내에 완전자율주행시대(레벨5)가 올 것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사망 교통사고의 주범인 졸음·고령자·음주 운전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다. 게다가 ‘하늘을 나는 차’도 머지않아 도입된다고 한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첫 ‘국제가전박람회 2020’에서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신개념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공개한다.

완전자율주행차에 하늘을 나는 자동차까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교통·물류 체계는 물론 주거·식생활 등 인류의 삶에 혁명적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그사이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율주행은 운전자 조작 없이 자동차 스스로 도로를 달리는 것이다. 자동차, 정보통신(IT), 네트워킹 기술 등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그런데 사고발생 시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정보공개는 어디까지 할 것인지 등 법 정비는 여전히 더디다. 대리기사와 택시·버스업계, 물류업계 등 관련 산업에 미칠 영향도 우려된다. 혜택이 크고,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인 만큼 사회적 합의가 어렵지 않을 수 있으나, 미리미리 준비해 불필요한 갈등·논란을 없애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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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서울북부지검 근무 시절, 검찰간부의 호출로 인사동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전년도 인사에서 부장 승진에 탈락한 사법연수원 31기 검사들이 2018년 상반기 인사에서 추가 승진했는데, 30기 부부장인 제가 신경 쓰였나 봅니다. 검찰총장 특사를 자처한 그는 서지현 검사의 미투사건 참고인이라 부득이 승진을 못 시켰다고 양해를 구하고, 해외연수를 느닷없이 권했습니다. 검찰개혁은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개인의 행복을 찾으라던가. 웃음을 참느라 혼났지요. 서 검사는 인사 발표 후 미투를 한 건데, 준비한 변명이 너무 성의 없었으니까요.

하반기 인사에 부산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을 시켜줄 테니 승진 걱정하지 말고 어학공부에 매진해 12월에 해외로 나가라, 한참을 설득했지요. 진지하게 듣는 체했습니다만, 어학시험을 치르지 않았습니다. 쉬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개혁 시늉만 하려는 검찰을 감시하고 비판할 내부자가 필요한 때잖아요.

7월 하반기 인사 발표 날 아침, 검찰국장이 된 그 간부의 전화가 왔습니다. 해외연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자신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라고. 많은 간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검찰총장이 충주지청 부장으로 승진시키기로 했다는 공치사까지 하더군요. 31기 후배 후임으로 보내면서 하는 궁색한 변명과 생색이 어이없었지만, 해외 발령을 강제할 수 없는 인사시스템에 감사하며, 충주로 전입했습니다. 이후, 검찰 내부망과 SNS에 더하여 ‘정동칼럼’으로 내부고발자의 활동반경을 더욱 넓혔지요.

2019년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던 날 오전, 법무부 간부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감찰담당관실 인사 발령을 검토 중인데 반대가 극렬하다며, 검찰의 요구조건을 수락해야 인사 발령을 낼 수 있다더군요. 그들이 내건 조건은 3가지였습니다. SNS 중단. ‘정동칼럼’ 연재 중단.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장 제출한 전직 검찰총장 등 전·현직 검찰간부들에 대한 직무유기 등 사건 고발 취하.

법무부 고위 검찰간부들의 요구였던 모양인데, 참담했지요. 내부고발자를 인사로 유혹해 침묵의 밀실에 가두고 이름만 빌리려는 의도가 명백히 보였으니까요. 그런 사람들이 법무장관을 보좌해 시대적 요구인 검찰개혁을 추진할 주체라는 현실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와 내부비판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검사라는 현실은 검찰권을 위임한 주권자이자 검찰권 행사 객체인 국민들에게 참혹한 비극입니다. 저는 그런 검찰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검찰 구성원이기도 하지요. 역사의 심판에서 피고인석에 앉을 검찰은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모든 검사들일 테고, 저도 검사이니 심판을 피할 길이 없네요. 부끄러워 하늘을 우러를 염치가 없습니다.

개혁 시늉만 하려는 검찰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내부자가 더욱 필요할 때라, 수락할 수 없었지요. 거래조건을 조율하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모두 거절한 그날 오후, 조 전 법무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감찰관실에 “임은정 검사를 비롯하여 자정과 개혁을 요구하는 검사들의 의견을 청취하여 감찰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했습니다.

그때 제가 유혹을 뿌리쳐 독사과를 먹지 않은 덕에, 서울중앙지검은 2015년 검찰 수뇌부의 성폭력 은폐 직무유기 고발사건을 1년8개월째 전전긍긍하며 들고 있고, 서울지방경찰청은 서울중앙지검에 3차례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며 검찰공화국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공수처법안 등 검찰개혁법안 통과를 위해 미력하나마 힘을 여전히 보태고 있지요. 제 목소리가 지금은 제 동료들에게, 적지 않은 분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불협화음으로 들리겠지만, 훗날 역사에서 검찰을 깨우는 죽비소리로 평가되리란 확신은 변함없고, 주어진 소명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2012년 상반기 서울중앙지검 근무 시절, 내부게시판에 수뇌부에 비판적인 글을 올렸다가 간부에게 불려가 “이러면 검사장이 될 수 없다”는 꾸중을 들었지요.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는 성경구절이 떠오르더군요.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다면 돌만도 못한 건데, 돌만도 못해야 검사장이 된다면, 검사장이 왜 되고 싶을까요. 그 간부에게 차마 그리 묻지는 못했지만, 다짐했지요. 돌멩이만도 못한 그런 검사장이 아니라 할 말 하는 검사가 되겠노라고.

작년 1월, 칼럼 “아이 캔 스피크”로 첫인사를 드렸는데, 어느새 1년이 지났습니다. 신발끈 고쳐 매고 2012년 그때의 다짐을 떠올리며 굳은 각오로 다시 시작합니다. 부족한 글이나마 진심과 간절함을 담아 시대의 화두인 검찰개혁을 위해 더욱 목소리를 높여 볼게요. 다시 한번, “아이 캔 스피크!”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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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보수당을 필두로 중도세력을 표방한 야권의 재건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 등 바른미래당 탈당 의원 8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보수당이 5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유 의원은 “개혁보수의 가치를 지킬 사람이 오늘 여기에 다 모였다. 죽더라도 이 길을 가자”고 했다. 또 해외에 머물던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의원이 설을 전후해 귀국해 정치활동을 재개한다. 야권 정당·세력들이 혁신을 통해 정치권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개혁보다 선거용 급조 정당의 조짐이 보여 실망스럽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1월3일 (출처:경향신문DB)

새보수당은 이날 당의 정강·정책을 통해 다시 한번 개혁보수 노선을 선언했다. 공정과 정의를 강조하며 청년층에게 다가서고자 한 것은 긍정적이다. 공동대표 8명이 번갈아가며 당을 운영한다는 실험도 눈에 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보수층의 표를 얻겠다는 이상의 구체적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새 길을 걷고자 하는 의지는 오히려 3년 전 탈당을 감행해 바른정당을 창당할 때보다 후퇴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한국당과의 통합 논의는 이 당이 진정 개혁을 추구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전혀 달라진 게 없는 한국당을 상대로 지분 다툼을 하는 모습은 여간 실망스럽지 않다. 만약 새보수당을 창당한 뜻이 한국당과의 통합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로 심판받아 마땅하다.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안철수 전 의원으로부터 들려오는 야당 개혁 논의도 신선하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측근들의 말에 따르면 안 전 의원은 다른 정당들과의 통합·연대·독자세력화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한다. 독자노선을 걷다 여의치 않으면 민주평화당, 대안신당과 함께 ‘중도 빅텐트’를 치고 총선에 나선다는 것이다.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대안을 고민한 흔적은 없이 안 전 의원을 중심으로 뭉치자는 것밖에 없다. 중간지대에서 여야 정쟁에 지친 표를 긁어모아 반사이익을 노리자는 계산이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한국 사회에서 합리적인 보수당 또는 중간지대를 대변하는 정당에 대한 기대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야권의 이합집산 움직임은 시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4·15 총선을 100일 앞두고 세를 불려 선거에서 재미를 보겠다는 공학적 계산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 이들 세력이 정치 개혁을 열망하는 시민의 요구에 부응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자 한다면 좀 더 결연한 의지로 비전을 만들고 개혁적인 면모를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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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의 상징적인 민생·개혁 법안으로 꼽히는 ‘유치원 3법’(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불투명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치원 3법의 처리 순위를 여권 지도부가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서, 검찰개혁 법안 등 다른 우선순위 법안들에 밀리는 형국이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지역구 로비를 의식한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4월 총선 이후 법안을 처리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고 한다.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있다. 이자리에서 이 원내대표는 "문희상 국회의장께 본회의 소집 요청을 드리고자 한다"며 "본회의가 열리면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검경수사권 조정 관련 2개 법안, 유치원 3법,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가 걸린 184개 민생법안을 다시 상정할 것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5일 기자간담회에서 “내일(6일) 본회의가 열리면 절차에 따라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된 법안 2개, 유치원 3법,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신청이 걸려 있는 184개 민생법안까지 모두 상정해 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유치원 3법의 상정 뜻은 밝혔다. 그러나 민생법안보다 검찰개혁입법이 우선이라는 점도 명확히 했다. 당적만으로 투표결과를 예측한다면 여권의 희망대로 통과가 가능하다. 그러나 시간이 문제다. 필리버스터가 걸려 있는 만큼, 얼마나 상위 순번에 올릴지는 시간싸움이자 의지를 반영한다. 설 연휴가 임박하면 그동안 입법을 견인해 온 이른바 ‘4+1’ 협의체도 균열 조짐을 보일 수 있다. ‘사립유치원 표’를 의식한 의원들의 본회의 불참과 이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치원 3법은 2018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공개한 후 국민들의 공분 속에 만들어진 법안이다. 사립유치원의 회계투명성을 강화하자는 극히 상식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당장이라도 통과될 듯했던 법안은 한유총의 뜻을 대변하는 자유한국당의 집요한 반대와 ‘식물국회’ 상황이 이어지며 1년 넘게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그사이 지난 1년간 감사에 적발된 사립유치원의 비리금액은 이전 5년간의 금액을 웃돌 만큼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20대 국회는 사실상 마지막인 ‘1월 국회’에서 유치원 3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특히 민주당은 당론으로 유치원 3법을 택한 만큼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시민의 삶과 직결된 사립유치원을 바꾸는 일은 검찰개혁 못지않은 큰 개혁이고, 민심을 받드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유총 권력이 두려워 입법 시기를 놓친다면 민심의 심판은 해당 의원들과 정당을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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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사흘째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는 보지 못했다. 추위가 물러가자 어김없이 미세먼지가 해를 가렸다. 기상캐스터는 중국에서 스모그가 유입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미세먼지가 해를 가림은 이제 웃어넘길 일이다. 

나라마다 찬란한 인공의 빛이 새해를 장식했지만 정작 태양은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던 박두진 시인의 ‘해’도 미세먼지에 가렸다.

마을 강가(고양시 공릉천변)를 걷다보면 덤프트럭이 슬금슬금 다가와 흙을 쏟아내고 달아난다. 흙 속은 오물 투성이다. 나만 목격한 것이 아니다. 공릉천에 살고 있는 왜가리와 오리들도 보고 있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을 올렸더니 친구들이 신고해서 혼을 내주라 했다. 신고하면 쓰레기가 없어질까. 아마도 쓰레기는 더 으슥한 곳에 더 은밀하게 버려질 것이다.

옛날에는 가져가는 자가 도둑이었지만 요즘은 버리는 자가 도둑이다. 요즘 시골 빈집은 쓰레기장이고, 주민들이 한눈을 팔면 쓰레기산이 생긴다. 전국에는 235개의 쓰레기산이 있다고 한다. 120만t의 쓰레기가 악취와 가스를 뿜고 있단다. 당국이 뒷짐 지고 헤아렸을 것이니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한번 생긴 쓰레기는 결코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묻으면 토양이, 태우면 공기가, 버리면 바다가 더러워진다.

지구의 중력은 모든 것을 확실히 가둬놓고 있다. 미세먼지 하나도 중력을 뚫고 우주로 날아갈 수 없다. 업보는 사후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 생에서 펼쳐지고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인류가 지구를 더럽힌, 이른바 인류세를 살고 있는 인간들의 업(業)이다. 외신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일주일에 신용카드 한 장 무게인 5g의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단다. 물과 주류, 소금과 갑각류 생물, 또 북극 바다와 깊은 지하수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다.

지구촌은 석유로 덮여 있다. 석유 에너지가 모든 것을 키우고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현대인들은 석유를 발견하여 풍요롭게 살았다. 우리는 너나없이 ‘석유동물’이다. 우리의 문명에서 빠져나온 플라스틱이 온 지구를 덮어가고 있다. 

모든 재앙에는 ‘검은 기름’이 붙어있다. 훗날 지구를 경영하는 생명체는 석유를 파내 찰나의 영화를 누린 기이한 동물로 인간을 기억할 것이다.

“작디작은 오염먼지 안에 무시하지 못할 위험과 갈등을 감추고 있다. 오염먼지는 산업 문명의 실패가 아니라 성공에서 발생했다. 화려한 문명 안에서 축적되는 오염먼지로 우리는 병들고 서로 갈등한다. 작은 먼지가 거대 산업 문명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이렇게 먹고 쓰고 버리고 사는 게 맞느냐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조천호 <파란하늘 빨간지구>)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플라스틱을 소비하고 가장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다.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아서 따로 보관해두었던 경향신문을 펼쳐본다. 멕시코 남부해안에서 집단 폐사한 멸종위기종 올리브각시바다거북 배 속에서 한국산 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기사이다. 

“생명다양성재단과 영국케임브리지대 동물학과가 공동 조사한 ‘한국플라스틱 쓰레기가 해양 동물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배출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마다 바닷새 5000마리와 바다 포유류 500마리를 죽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19년 7월22일자)

미세플라스틱은 석유동물들이 쓰다버린 이기심과 욕망의 파편들이다. 그럼에도 잘게 쪼개져 언제 누가 버린 것인지 알 수 없다. 자신이 버렸어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외면하는 사이에 우리 마음에도 미세먼지가 달라붙는다. 마음거울(心鏡)이 흐리면 사리(事理)가 흐려짐이니, 이 땅은 더 이상 중국인들이 오래전에 이름 붙인 ‘잘 닦인 거울의 나라’가 아니다. 먼지 하나에 산처럼 무거운 것들이 들어있다.

지난해 지구촌에서는 기후변화를 직시하자는 거대한 바람이 일었다. 우리 젊은이들도 거리에 나와 지구를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태극기와 촛불 집회의 함성에 묻혀버렸다. 지구가 성하다면 저들의 구호는 또 다른 미세먼지로 기록될 것이다. 하늘 향해 주먹을 내질러도 정작 하늘은 보지 않는다. 해와 달이 그 빛을 잃으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우리가 믿었던 것들이 미세먼지를 뒤집어쓰고, 우리가 사랑한 것들이 쓰레기에 덮여있다. 시간이 없다. 태양마저 마스크를 쓰면 석유동물의 시대가 저물 것이다.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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