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하는 일 중 하나가 선거나 국민투표, 정당과 관련된 법령의 개정 의견 제출이다. 선거관리와 정당에 관한 사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제5 헌법기관이 내부 논의를 거듭해 내는 의견이라 정치권도 이를 존중한다. 실제로 정치권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선관위가 제안해 빛을 보게 한 제도가 한둘이 아니다. 정치신인의 선거운동을 허용한 예비후보등록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선관위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실무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부터였다. 지역감정 선거를 완화하고 표의 비례성·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를 눈여겨본 것이다. 의석 분배 방식이 워낙 다양하고 계산이 복잡해 처음에는 이해하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연구를 거듭할수록 선관위는 이 제도가 필요하다고 확신하게 된다. 한때 중대선거구제도 연구했지만, 비례성과 대표성 확보 효과가 제한적이고 지역주의 완화에는 무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렇게 15년 이상 연구·보완한 끝에 마침내 선관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의견을 제출한다.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지 만 2년이 되던 2015년 2월이었다. 이듬해 치러지는 20대 총선부터 적용하자는 취지로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새누리당)도 처음에는 대놓고 이를 반대하지 못했다. 정당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해 사표를 막자는 논리와 정치개혁 명분이 워낙 뚜렷했기 때문이다. 취지에 공감한 일부 의원은 찬성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제도 도입이 본격적으로 거론되자 한국당은 반대입장을 명확히 했다. 좌파세력만 키우는 제도라는 것이다. 20대 총선에서 지역구 당선자는 많이 내지 못했지만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은 국민의당과 정의당이 이득을 볼 것이라는 ‘예측된 결과’를 ‘좌파세력의 대한민국 장악이라는 각본에 따라’ 처음부터 기획된 것으로 날조했다. 선관위가 좌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그것도 박근혜 정권의 서슬이 퍼럴 때 이를 제안했다는 주장인데, 어이가 없다. 그랬다면 한국당이 선관위를 가만히 둘 리가 없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안다. 유권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는 연동형의 취지도 다 무시했다. 나중에는 ‘저질’ 국회의원의 숫자를 늘리는 나쁜 제도라고 몰아붙였다. 자기 얼굴에 침을 뱉어서라도 의석수를 지키겠다는 발상이었다. 선거법 개정안도 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논리를 끌어대며 반대만 했다. 

한국당이 비례용 위성정당 설립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중앙선관위에 ‘비례자유한국당’이란 이름으로 창당준비위 설치를 신고했다. ‘비례한국당’이 이미 있는 터라 이 이름을 쓴다는 것이다. 사무실은 한국당 당사에 두고, 대표자도 한국당 당직자다. 한국당은 지역구 후보만, 그리고 비례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 후보만 냄으로써 최대한 의석수를 확보한 뒤 다시 합치는 꼼수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당 의원 30여명을 비례자유한국당에 등록시켜 한국당은 지역구 투표용지에서, 비례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 투표용지에서 나란히 ‘기호 2번’을 차지하는 복안도 내놨다. 창준위는 발기 취지에서 “많은 독소조항과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야욕에 눈먼 자들의 야합으로 졸속 날치기로 (연동형 선거법이) 처리된 바, 꼼수는 묘수로, 졸속 날치기에는 정정당당과 준법으로 맞서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끝까지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다. 정정당당한 묘수라는 대목에서는 코웃음이 터진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처럼 유권자는 무시한 채 오로지 의석수만 보고 있다. 보수의 위신을 눈곱만큼이라도 생각한다면 꿈도 못 꿀 일인데, 보수진영의 어느 누구도 말리지 않는다. 

완벽한 선거제도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승자독식’이 한국당이 추구하는 가치라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중립적 기관이 정치개혁을 위해 제안한 제도를 시종일관 걷어차놓고 막상 법이 통과되자 그 허점을 이용해 이득을 보려는 것은 치졸하다. 창당 작업까지 다 해주며 위성정당을 만드는 것 자체가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헌법 8조2항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중앙선관위원들이 다음주 초 ‘비례자유한국당’의 최종 등록 여부를 검토한다. 한국당과 비슷한 이름을 써 표를 긁어모으는 것은 당연히 막아야 하며, 나아가 위성정당 설립 자체도 허용해서는 안된다. 한국당이 스스로 이 야바위 짓을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선관위가 저지해야 한다. 정치를 발전시키지는 못할망정 후퇴시키는 정당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그에 앞서 전 세계에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하는 촌극은 막아야 할 것 아닌가.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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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부가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뒤 인사 보복한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한 원심판결을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안 전 검사장이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2015년 여주지청에 근무하던 서 검사를 같은 부치지청(차장검사가 없는 소규모 지청)인 통영지청으로 전보시키는 인사안을 인사담당 신모 검사에게 작성토록 한 것이 직권남용죄에 해당된다는 하급심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시킨 때 성립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1월 10일 (출처:경향신문DB)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인사권자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했다. 인사권자가 법령의 제한을 벗어나지 않는 한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결정하는 것은 위법하지 않다고 했다. 서 검사에 대한 인사는 검사인사원칙을 위반한 부당한 인사라는 하급심 판단은 수용하지 않았다. 하급심은 안 전 검사장의 지시를 ‘경력검사는 연속해서 부치지청에 발령하지 않는다’는 경력검사 부치지청 배치제도를 위반한 부당한 지시로 봤다. 또한 인사담당 검사 역시 이를 모를 리 없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했다. 하급심의 판단은 직무집행 기준·절차를 벗어난 인사를 할 경우 직권남용으로 판단해온 그동안의 대법원 판례 취지에 부합한다. 그런데 대법원2부는 이 사건에서 경력검사 부치지청 배치제도를 “절대적 기준도 아니고, 배려한다는 내용에 불과한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신 검사가 안 전 검사장 지시에 ‘악의’가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의무 없는 일을 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대법원 판결은 존중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의문을 낳는다. 이번 판시대로라면 인사의 기준·원칙은 뭐하러 있으며, 지키지 않아도 되는 거라면 무원칙한 인사, 부당한 밀실인사의 처벌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묻게 된다. 서 검사는 “(성추행)피해자에 대한 유례없는 인사발령을 한 인사보복이 ‘재량’이라니”라고 비판했다. 직권남용 등 혐의로 재판 중인 국정농단과 사법농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다른 사건에 미칠 영향 또한 우려된다. 

대법원은 안 전 검사장의 성추행 행위, 서 검사의 인사 불이익 등에 대한 하급심 판단은 유지했다. 안 전 검사장의 성추행을 폭로한 서 검사의 용기 있는 행동이 사회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이런 판단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서 검사의 폭로는 ‘미투’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는 계기였고, 성평등 및 소수·약자의 인권이 강화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사건의 본질은 안 전 검사장의 성추행과 그에 따른 인사보복이다. 이런 진실마저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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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안정과 발전의 밑거름이 된 ‘목요클럽’ 같은 대화모델을 살려 정당과 각계각층 대표들을 정기적으로 만나겠다.”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7일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 한 말이다.

목요클럽의 공식 명칭은 ‘수출과 생산 증대를 위한 협력기구’다. 1946년부터 23년 동안 스웨덴을 이끈 타게 에를란데르 총리가 시작했다. 한국처럼 대기업 중심 수출 위주 경제인 스웨덴에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가 있었다. 에를란데르는 총리로서 각종 기념행사, 포럼, 회의 등에서 여러 단체의 대표를 만났지만 그때뿐이었다. 1년에 한두 차례 기업 총수와 노동조합 대표를 만나는 공식 모임은 대부분 성과 없이 끝났다. 단체마다 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정책을 요구할 때가 많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정권을 흔들어 좌초시키려고도 했다. 그렇게 첫 임기를 보낸 에를란데르는 1948년 선거에서 승리하자마자 열매 맺는 대화의 장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목요클럽을 조직했다.

2주에 한 번씩 모이는 목요클럽은 재무장관 주재로 경제인연합회, 농업인연합회, 도매인연합회, 무역협회, 중소기업연합회, 노동조합총연맹, 사무직노동조합총연맹 대표가 참석했다. 주요 경제정책과 현안을 두고 논의를 이어갔으며 참가자는 물론 총리 자신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50년대 중반, 정부와 대기업의 관계가 악화되자 목요클럽도 시들해졌다. 에를란데르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그는 총리의 하프순드 별장으로 경제계 대표를 초대해 자신이 직접 주재하는 하프순드 회의를 시작했다. 에를란데르는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매일의 다짐을 일기로 남겼는데 “정치권력을 대표하는 사람은 경제권력을 가진 이들과 끊임없이 직접 대화해야 한다”고 썼다.

1955년부터 1964년까지 이어진 하프순드 회의는 목요클럽보다 참가자의 폭이 넓었다. 개별 기업 대표, 금융인, 이익단체 대표, 각 부처의 고위 관리자, 노동조합 관계자 등을 회의 이후에도 수시로 만났다. 하프순드 별장에는 호수가 딸려 있는데 에를란데르는 손님과 함께 작은 보트에 올라 손수 노를 저었다. 수행원 없이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는 그 배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에를란데르는 일기에 “이번 상황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듣는 것은 매우 큰 도움이 되었고, 그들 역시 왜 우리가 그렇게 했는지 그 이유를 듣는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쓰고 있다. 하프순드 회의를 다녀온 당시 경제인연합회 회장이 한 인터뷰에서 “무척 효과적이고 유쾌한 토론”이었다고 한 걸 보아 양쪽 모두가 만족한 모임이었던 모양이다. 에를란데르 일기장의 하프순드 일정에는 “이번 회담은 무척 잘 진행되었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목요클럽과 하프순드 회의는 사라졌지만 정부와 각 단체가 수시로 만나 협의하는 문화는 남았다. 전통적으로 기업가와 부유층을 대변하는 보수연합이 집권했는데도 어떻게 파업이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2013년 당시 스웨덴의 재무장관은 지난 1년 반 동안 노동조합을 350번 만났다고 답했다.

노동환경 개선과 증세를 주장하는 사민당 대표인 에를란데르가 총리직에 올랐을 때 재계는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했다. 에를란데르는 일기에 여러 차례 괴로움을 털어놓으며 “재계는 나를 민간 기업을 말살하려는 네로처럼 여긴다”고 썼다. 목요클럽과 하프순드를 거치며 에를란데르에 대한 평가는 합리적이고 말이 통하는 정치인으로 변했고 노사정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대화의 끈을 이어갔다.

처음 모임을 시작했을 때 “오페라와 샴페인 이야기를 하는 경제인들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에를란데르의 솔직한 고백이 “효과적이고 유쾌한 토론”으로 변하기까지, 23년이라는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고뇌와 노력이 녹아 있을지 정치의 무게를 되새긴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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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산업재해 사고로 노동자 855명이 숨졌다고 집계됐다. 2018년 971명에서 116명(11.9%) 줄어든 것이다. 노동자 1만명당 사고사망자를 뜻하는 사망만인율도 1년 새 0.51에서 0.45~0.46으로 하락했다. 1999년 1456명으로 잡힌 정부의 산재사망 통계가 시작된 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사고사망자가 800명대로, 사망만인율이 0.5 이하로 떨어진 것도 처음이다. 사망사고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현장에서 11.8% 줄고, 공공사업장 감소율은 30%에 달했다. 흔히 ‘죽음의 행렬’로 표현되고 ‘OECD 1위’ 멍에를 쓰고 있는 산재 궤적에 큰 변곡점을 찍었다고 볼 만하다.

산재 사망자 격감은 민관의 경각심과 정책집중력이 어우러진 성과물일 수 있다. 노동부는 지난해 안전 비계(작업 발판) 보급과 패트롤(순찰) 감독이 소규모 건설현장 사고를 줄였다고 봤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안전’을 반영한 시책도 효과가 컸다고 짚었다. 멀리는 2018년 12월 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야간작업하다 숨진 ‘김용균 파장’이 만든 첫해 성적표일 수도 있다. 땀과 의지와 지혜를 모으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을 한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정부는 올해 건설업은 ‘추락’, 제조업은 ‘끼임’ 사고를 표적 삼고 현장 순찰을 위험한 기계·기구가 있는 3만개 공장으로 확대키로 했다. 한 해 100명 넘게 숨지는 이주노동자를 위해 16개국 언어로 된 안전책자를 펴내고, 공공기관 안전 평가 배점도 3배 높인다. 뒷바람 불 때 배를 띄우라 했다. 현장을 바꿀 묘책은 많을수록 좋다.

갈 길은 여전히 멀다. 하루 사고사망자가 2.7명에서 2.3명으로 줄었을 뿐이다. 855명도 적은 숫자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산재 사망자를 절반 줄이겠다”며 2022년까지 약속한 숫자는 한 해 505명, 결코 녹록지 않은 숫자다. 정부가 산재 통계를 발표한 지난 8일에도 인천에선 전날 밤 오피스텔 14층 공사장에서 60대 일용직 노동자가 추락사한 소식이 전해졌다. ‘하던 일 마무리하자’며 야간작업을 하다 벌어진 일이다. 한두개 묘책을 넘어 원청 책임을 높이는 게 현장의 안전문화를 바꿀 수 있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산업재해 사망사고 양형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법원에 내겠다는 공언을 하루빨리 지켜야 한다.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년이고, 오는 16일부터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도 시행되는 올해를 ‘산재와의 전쟁 원년’으로 삼아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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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놋그릇을 살짝 친 듯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 아이들은 이 소리에 귀를 쫑긋하고 학교를 찾아와 배우고 또 배웠으리라. 흰 지팡이가 땅의 감각을 알려주었다면 작은 벨소리는 공기를 통해 방향도 일러주고 안전하게 찻길도 건너게 해주었을 것이다. 빛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소리는 빛과 같다. 9일 이른 아침에도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 자리한 국립 서울맹학교 정문에서는 벨소리가 작게 울렸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리는 소리는 모르고 지나칠 수 있을 만큼 작았다. 주변인들을 배려한 일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의 크기였다. 서울맹학교 관계자는 “마침 오늘 겨울방학식과 졸업식이 열린다”고 말했다. 참 다행이다.

서울맹학교에서 500m가량 떨어진 청와대 사랑채 부근에서는 80일 넘게 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집회의 자유’는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다. 문제는 확성기와 마이크를 동원한 극심한 소음이다. 이날도 사랑채 부근 인도에는 천막농성장이 늘어서 있었다. 이 길을 통한 통행은 힘들어 보였다.

청와대 인근 주민들은 지난해부터 더욱 극심해진 소음으로 고통을 호소해왔다. 특히 눈 대신 주변 소리로 세상과 교감하는 맹학교 아이들의 부모와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자칫 모든 소리를 잡아먹는 거대한 시위 소리로 위험에 내몰릴까봐 노심초사해왔다. 하루 몇 차례씩 주변 상황을 소리로 파악하며 스스로 이동하는 독립 보행 교육도 힘들어졌다.

최근 이런 문제를 두고 서로 대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늦은 밤까지 확성기 소리에 시달려온 주민들은 마스크를 쓰고 침묵 시위를 하는가 하면, 소음을 멈추게 해달라고 민원을 넣었다. 시위 참가자들에게 직접 호소하기도 했다. 새해에는 조금 나아질까 기대했지만 지난 4일 주말에도 집회로 몸살을 앓았다. 종로경찰서가 새해 첫 주말부터 청와대 사랑채 인근 집회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이 오전 9시~오후 10시 집회를 허용한 것이다. 보수단체들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 퇴진 국민대회’를 열고 청와대 앞까지 행진했다. 같은 날 진보단체들은 대검찰청 인근에서 ‘조국 수호 촛불문화제’를 벌였다.

참다 못한 맹학교 학부모와 졸업생들은 이날 행진하는 시위 주최 측에 마이크와 음향을 꺼줄 것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맹학교 학부모와 졸업생들이 시위 참가자들의 행진을 막아섰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소리는 줄지 않았고 대신 욕설이 날아들었다고 하니 안타깝다.

갈수록 어디에서든 소음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점심때 식사와 차를 들고 나면 지치는 기분마저 든다. 말을 많이 하지도 않았는데 목구멍이 싸하고 귀가 멍멍할 때가 많다. 한 시간 반가량 얘기를 나눴던 상대방에겐 솔직히 미안하지만 그가 한 말 중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이 많고, 되묻기가 귀찮아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 “네” 몇 번의 감탄사로 얼버무리는 경우도 있다. 원래 식당이나 카페가 이렇게 시끄러운 곳이었던가, 아니면 내 청력이 갑자기 나빠진 걸까. 피크 타임 때 조용한 식당과 카페를 찾기 힘드니 덩달아 목청을 더 키우는 수밖에 없다. 다 같이 소리를 줄이면 작은 소리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텐데…. 다른 사람을 의식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만 더 키우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태도와 심리가 꼭 소리 크기로만 표출되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 1인 방송 등에서 거침없이 쏟아지는 말들을 보면 남의 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외쳐댄다. 마치 시위 현장의 확성기 소리 같다. 소리(내용들)가 듣는 이들을 향한다기보다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닐까 의구심마저 든다. 그래서인지 내뱉는 말들의 사실 여부는 개의치 않는다. 소리와 말의 강도를 높일수록 결국 그 소리는 자기 귀에만 들릴 뿐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이지는 못한다. 정말 절규하는 소리들은 오히려 낮고 작다. 침묵으로 말을 대신하거나 온몸으로 오체투지를 하고, 단식하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공탑에 올라가 있다.

나와 다른 이들과 세상의 소리를 진정 잘 들으려면 나의 소리를 줄이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잘 들린다. 겨울이 지나 개학날 아이들이 돌아올 때면 맹학교 앞에서 울리는 작은 벨소리가 소음에 묻히지 않고 아이들에게 잘 가닿아 한 걸음 한 걸음 이끌어주면 좋겠다.

<김희연 오피니언(소통)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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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사회.’ 새해의 바람이다. 현실이 강고하다고 상식을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이 현실에 구현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회 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2016년 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 광장의 시민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식’이어야 할 이 말을 목이 쉬도록 외쳤다. 그렇게 정권교체를 이루었어도, 헌법 제1조의 상식과 현실의 괴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은 65%의 득표로 80%가 넘는 의석을 차지했지만,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28%의 득표에도 15% 미만의 의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국민은 주권자로 행사한 권력의 15% 정도를 빼앗긴 셈이다. 이러한 상식 밖의 정치 현실을 뜯어고치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기득권 고수에 혈안이 된 거대 정당들의 어깃장으로 누더기가 되어 ‘준’이라는 딱지가 붙고서야 겨우 국회를 통과했다.

동일한 노동에 동일한 대우는 상식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제도의 도입으로 이러한 노동의 상식이 20년 넘게 부정돼 왔다. 너무나 상식과 어긋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는지,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이라는 꼼수였다. 모회사에 철저히 의존하는 자회사 정규직은 실제로는 여전히 비정규직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민생경제의 ‘민’은 대체 누구인가? 우리나라 ‘민’의 대부분은 노동자로 살아간다. 그러니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허덕이는 상황을 방치하며 약속하는 ‘민생’경제는 자가당착이며 공허한 말이다. 그런데도 올해 대통령의 신년사에는 ‘비정규직’이란 말 자체가 아예 사라졌다. 지금 ‘민’에게 절실한 것은 현실의 왜곡을 분칠하는 선심성 대책이 아니라 상식이다. 상식 없이는 정의도 공정도 없다. 

지금의 추세대로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기후는 붕괴되고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갈 것이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온실가스 배출을 막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정부는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6기 폐쇄, 신규 7기 건설이라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적어도 의도적으로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도 상식이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고준위핵폐기물을 쓰레기로 쏟아내는 핵발전은 멈출 줄을 모른다. 고준위핵폐기물의 임시저장소가 포화상태에 이르면 가동을 멈추는 것이 최소한의 상식이건만, 임시저장소를 추가로 건설해서라도 핵발전을 계속하겠다는 게 현실이다.  

상식을 외면하고도 끄떡없는 현실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현실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그래서 바꿀 수 없다고, 그 부작용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본과 이윤이 세상을 움직이는 불변의 원리라는 이데올로기가 현실을 장악하고 우리의 눈과 귀를 막은 탓이다. 하지만 역사는 세상이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오늘의 현실 또한 역사의 산물이다. 그래서 바뀔 수 있다. 이 변화는 우리가 “단순한 사실, 명백한 논거, 평범한 상식”을 직시하고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이성과 감정을 동원해 스스로 판단”할 때 시작될 것이다(토머스 페인, <상식>).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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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을 끓여 놓고.” 약 100년 전인 1926년 2월, 세 차례에 걸친 동아일보의 설 기획 제목이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새해 떡국을 끓여놓고도 온 가족이 모이지 못할 사정이 늘고 있었다. 땅 없는 농민과 빈민이 고향을 등지고 팔도의 도시로 흩어졌다. 일본, 만주, 중국, 러시아로, 더 멀게는 하와이, 캘리포니아, 유카탄반도, 쿠바 등지로도 흩어졌다. 극소수 조선인 부자의 여행이나 유학을 빼고는 다 살자고 발버둥치다가 생긴 이산이었다. 식민지 특유의 이산도 있었다. 일제에 맞선 이들의 옥살이가 낳은 이산이 그것이다.

옥살이 이산의 첫 예는 양근환(梁槿煥, 1894~1950)의 가족이다.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진 김익상, 임시정부의 맹장 조완구 가족의 사연이 그 뒤를 잇는다. 양근환은 1921년 일제 부역자 민원식을 도쿄에서 척살해 무기징역에 처해진 뒤 일본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민원식은 조선인 참정권 운동을 벌였다. 3·1운동 이후 일제의 이른바 ‘문화정치’에 협력하고 자신의 정치적 야망까지 채우려는 고도의 부역이었다. 한마디로 일제의 통치에 정당성을 더하고, 민족운동전선을 분열시켰다. 더구나 민원식은 국민협회라는 조직을 가지고 있었으며 독립운동 일체를 폭도의 소요로 비난한 ‘시사신문’의 사주였다. 양근환 의사는 조직에다 정치적 확성기까지 쥐고 있었던 지능적인 부역자를 단칼에 해치운 셈이다.

“나는 학문도 정식 교육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론으로 일본인에게는 지지 않는다. (중략) 조국의 독립은 누구든지 희망하는 것이다. 헌병 제도가 변하여 순사 제도가 되고 무단정치가 문화정치가 되는 것은, 결국 별 차이 없는 것이다. (후략)”

양 의사는 거사 뒤에 나가사키에서 상하이로 가는 배에 올랐으나, 출항 두 시간을 앞두고 체포되어 도쿄로 압송된다. 인용한 일갈은 압송 경관에게 던진 한마디다(동아일보 1921년 3월4일자). 이후 감형되어 1933년 출소하기 전까지 양 의사 일가의 설은 이산가족의 설이었다. 그때까지 노모는 바다 너머 감옥에 있는 아들과 면회 한 번 하지 못한 채 오로지 편지로만 소식을 주고받는 형편이었다.

“그(양 의사의 딸)는 오히려 이번 설을 당하여 별다른 음식(떡국)을 대하고는 ‘할머니 동경 있는 아버지도 이런 음식을 먹소. 그런데 아버지는 언제나 나오오’ 하며 울먹거리었다고 한다.” 

양 의사의 노모는 당시 서울 적선동 75번지 단칸방에서 유치원생 손녀, 양 의사의 딸을 거두고 있었다. 일본에 아빠 보러 가자고 조르던 양 의사의 딸은 떡국 앞에서 울음이 터졌다. 한국 음식 문화사 최근 100년 안에는 지극히 식민지다운 눈물이 떨어진 떡국도 한 그릇 있다.

<고영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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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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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던 15년 전, 국회에서 진행한 공모전에서 ‘육아수당’ 지급과 ‘산모카드’ 발급을 제안해 ‘기발하다’는 이유로 우수상을 받았다. 사실 그때는 몰랐다. 육아가 무엇인지.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고, 결혼을 하고, 여섯 살 아이와 함께하니 이제는 조금 알겠다. 육아가 무엇인지.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가 마흔 살의 어느 날 ‘육아휴직’을 하고, ‘육아일기’까지 쓰게 되었다. 2020년에는 ‘아빠 육아휴직’의 적극적 지원을 기대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 일·가정 양립 지표’에 따르면 2018년 육아휴직자 수는 9만9199명이며 그중 남자(아빠)는 1만7662명으로 전년 대비 46.7% 증가했다. 육아휴직 사용률은 4.7%, 남자(아빠)는 1.2%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아빠 육아휴직자의 절대적 증가는 환영할 일이지만, 육아휴직 사용률의 상대적 빈약함은 생각해볼 문제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휴직 중의 경제적 부담과 복직 후의 사회적 시선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도 휴직 후 처음 몇 달은 괜찮았지만 석 달째부터 급여명세서에 쓰여진 ‘0’이라는 숫자를 체감했다. 당시 고용보험에서 지급된 육아휴직 급여(첫 석 달은 112만5000원, 네 달째부터 마지막 달까지는 75만원)로는 3인 가족이 살기에 현실적 어려움이 컸다. 내가 소속된 회사는 그렇지 않지만 아직 아빠의 육아휴직을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2018년 4월에 시작해 2019년 3월에 끝난 1년의 육아휴직은 아이와 바짝 곁에 붙어 함께할 수 있는 날들이었다. 다섯 살 아이가 성장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처음’을 함께할 수 있었던 그 뭉클함. 어른들에게는 정말 단순한 것이지만 혼자 이닦기, 혼자 응가하기, 혼자 밥먹기…. ‘혼자’라는 이름으로 시작되는 아이의 작은 행동들은 육아를 하는 아빠에게 커다란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 밖에 아이와 함께한 이런저런 기억들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오롯이 남겨졌다.

휴직 중 몇 가지 아쉬웠던 점을 얘기하면, 먼저 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 등에 육아와 관련된 정보는 많지만 자신의 상황에 딱 맞는 정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육아와 관련된 책도 읽어보고, 논문도 찾아보았지만 그때마다 ‘이런 이야기들이 내 아이에게도 적용될까’라는 의문이 있었다. 엄마들은 또래 엄마들, 산후조리원 동기 엄마들끼리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고충도 나눈다지만 아빠들은 또래 아빠들을 찾기가 쉽지 않고, 아직 아빠의 육아에 관한 콘텐츠는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기에 개선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미술관이나 도서관 같은 공공기관들은 월요일마다 문을 닫아 난처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까닭에 대부분의 직장인이 월요일을 싫어하는 것처럼, 육아휴직 중인 아빠도 월요일이 싫었다. 공공기관 등 공적 시설의 운영에 대한 사회적 탄력성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 요즘 아이들 장난감 구입비가 만만치 않으니, 정치기부금이나 도서구입비처럼 장난감 구입비도 일정 부분 소득공제나 세액공제를 해주면 어떨까 제안한다.

솔직히 육아휴직 전에는 아이가 스스로 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짧게라도 육아휴직을 해보니 육아에 아빠의 자리는 반드시 존재한다. 복직 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1년의 육아휴직은 삶을 조금 깊게, 조금 다르게,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 본 날들이었다. 다시 한 번 2020년에는 아빠 육아휴직의 적극적 지원을 기대하며, 단 한 명의 아빠라도 조금 더 아이와 함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임석재 한국연구재단 선임연구원 <아빠의 육아휴직은 위대하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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