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1월 14일 (출처:경향신문DB)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이 13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검찰과 경찰은 기존의 ‘수직적 관계’에서 ‘상호협력 관계’로 바뀌게 된다. 수사의 시작·종결은 경찰이, 기소 및 공소유지는 검찰이 하는 것으로 권한과 책임이 분산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1호 국정과제인 검찰개혁 입법도 완료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과 함께 검찰을 견제할 민주적 통제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검찰 수사지휘권 폐지는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지 66년 만이다. 검찰의 수사·기소·영장 청구 독점권이 무너진 것은 1962년 개헌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시도했지만 검찰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수사권 조정 정부안이 확정됐고,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담겨 1년여 만에 통과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왼쪽)이 13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구본선 신임 대검 차장 검사와 함께 점심 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왼쪽)과 구본선 신임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1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수사권 조정안의 핵심은 경찰이 1차 수사권과 종결권을 갖는다는 점이다. 경찰이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사건에 대해 검찰 송치 없이 자체 종결할 수 있는 것이다. 기소독점권은 사실 기소할 권리보다는 기소하지 않을 권리에 있다. 경찰로선 강력한 힘을 쥐게 되는 것이다. 수사지휘권이 폐지되면서 경찰 수사단계에서 검찰의 개입 여지도 줄었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도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경찰 범죄, 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제한된다.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도 경찰과 마찬가지로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인정할 때만 증거로 채택된다. 

(출처:경향신문DB)

수사권 조정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시행령 제정 등 후속 작업이 남아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경찰권 비대화다. 당장 뇌물죄처럼 피해자가 없는 사건은 경찰수사에 대한 이의신청 당사자가 없어 그대로 묻힐 가능성이 크다. 이런 여지를 없앨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정보경찰의 불법사찰 방지 등을 담은 경찰 개혁법 입법도 시급하다. 

검찰은 이제 견제받는 권력이 됐다. 그 결과로 수사권력의 오·남용이 줄면서 국민기본권 침해 역시 크게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검찰과 경찰도 ‘정치 검찰’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찰개혁을 위한 국민의 뜻과 국회의 결정을 검찰은 충실히 받들고 그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여러차례 말해왔다. 검찰은 이제 그 약속을 지킬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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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잘못 알려진 ‘상식’이 많다. 고려 말기의 학자 문익점이 서장관으로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목화씨 몇 알을 몰래 ‘붓뚜껑’에 숨겨 들어와 목화 보급에 힘썼다는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의 믿을 만한 옛 문헌에 그런 얘기가 실려 있어야 한다. 또 중국 문헌에서는 ‘원나라가 목화씨 반출을 엄격히 막았다’는 내용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런 얘기는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2010년 백제 위덕왕 때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충남 부여군 능산리 절 유적에서 면직물이 발견됨에 따라 문익점이 ‘최초 목화 보급자’라는 사실에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아무튼 문익점은 목화씨를 ‘붓뚜껑’에 숨겨 오지 않았다. 우선 ‘붓뚜껑’이라는 말이 없고, 숨겨 들여올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붓촉에 끼워 두는 뚜껑”을 뜻하는 말은 ‘붓두껍’이다. 하지만 붓 외에 “가늘고 긴 물건의 끝에 씌우는 물건”은 ‘두겁’이다. 수성 사인펜 머리에 씌우는 것도 ‘두겁’으로 부른다. “사람의 형상이나 탈”을 뜻하는 말도 ‘인두껍’이 아니라 ‘인두겁’이 바른말이다.

<엄민용 스포츠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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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어제 한국에서 태어난 아기는 대략 800명이다. 이 중 몇이나 2120년까지 살아 있을까? 무려 400명 이상이란다. 단, 기후 재앙이나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150년 전쯤의 인류 평균수명은 고작 30세였다. 각종 전염병으로 인한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최근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자연수명은 대략 38세다. 그러니 인류의 수명이 이렇게 획기적으로 늘어난 것은 백신을 비롯한 의료와 보건의 비약적 발전 덕분이다. 현재 한국인은 83세 정도는 산다. ‘100세 시대’가 더 이상 꿈은 아니다.

하지만 100세 인생의 도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80까지도 지겨운데(사실 외로운데) 100세까지 살아서 뭐하나, 100세를 살면 80세까지는 일해야 먹고살 텐데 힘들어서 어쩌나….’ 노인 자살률이 높은 국가에서 나올 만한 반응이긴 하겠지만 한번 늘어나기 시작한 수명을 억지로 줄이기는 쉽지 않다. 이것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고령화의 저주”인가?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명(2019년 803만명)을 향해 가는 시점에서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우선, 60세 전후의 은퇴를 전제로 하는 현재의 노동시장과 이를 근거로 한 복지제도에 대해서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1명 이하인 초저출산 국가이기도 해서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의 급감이 큰 우려사항이다. 실제로 매년 생산가능인구가 10만~20만명씩 감소하고 있는데 이 저출산·고령화의 흐름에 잘 대응하지 못하면 현 사회 체계는 붕괴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류의 진화사를 보면 100세 시대는 새로운 국면이자 기회다. 지금의 60세는 건강 면에서 과거의 40대와 유사하면서 경험 면에서는 20년치가 더 많다. 사회 구조가 은퇴를 강요할 뿐이지 더 유능하게 오래 일할 수 있다. <100세 인생>의 저자인 런던정경대학의 그래튼 교수에 따르면, ‘교육→일→은퇴’라는 3단계 인생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제 “전일제 학생, 풀타임 직장인, 여생 은퇴자라는 용어는 사라질 것”이며, 이 세 단계가 섞여 있는 복합적 인생이 펼쳐질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현 시스템의 특징은 교육을 늘 출발선에만 배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교육을 재정의하는 일이야말로 고령화 시대를 위한 첫 미션이라고 믿는다. 이를 위한 최우선 과제는 교육 대상을 재설정하는 일이다. 만일 지금 외계인이 인류의 학교를 관찰하고 보고서를 쓴다면 어떤 결론을 내릴까? 틀림없이 ‘인류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 그리고 대학 교육을 위해서 교육 예산의 대부분을 지출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20세까지만 교육을 시키고 나머지 60년은 알아서 하라고 한다’며 의아해할지 모른다.     

사실상 우리에게 ‘교육비’란 3~23세에만 지출하는 교육비다. 그 이후 세 배의 기간(60년) 동안 인류는 교육으로부터 완전히 방치되어 있다. 현재 인류의 고등교육은 기껏해야 첫 직장을 잡는 데 유용할 뿐인데 말이다.

교육으로부터 소외된 우리의 40대 이후(40플러스)의 인생을 보라. 인구통계적 변화만 보더라도 앞으로는 40플러스를 위한 교육 수요가 더욱 크고 강력해질 것이다. 게다가 과학기술의 급격한 변화는 기술 리터러시의 세대 간 격차를 더욱 크게 벌릴 것이기에 적응 교육이 가장 절실한 연령층은 40플러스다.

이쯤 되면 ‘평생교육이나 평생학습이 이미 이뤄지고 있지 않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 이것은 대학 교육의 일부를 서비스 차원에서 제공하는 수준이다. 여전히 대학을 정점에 둔 교육 관행이다. 평생학습에 적극적인 분들이 찾는 무크(온라인 대중 공개수업)도 한계가 많다. 탁월한 강사진이 나와도 교육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동료학습을 구현할 수 없기에 완료율이 저조하다. 미네르바 같은 혁신학교도 여전히 대안적 ‘대학’을 지향한다.

대학 제도는 길게는 1000년, 짧게는 500년 전에 유럽에서 시작된 시스템이다. 그때 교육 대상의 평균수명은 길어야 40세 정도였다. 즉 20세까지 배우고 20년을 활용하다 죽음을 맞는 식이었고, 이것도 소수 엘리트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이 특권이 확대되어 적어도 지금 한국은 약 70%가 대학을 간다. 그리고 각 가정의 교육비의 거의 전부와 국가 교육 재정의 대부분이 대학을 정점으로 사용된다.     

마치 대학 졸업 후 20년만 살다 죽을 것처럼 교육비를 대학에 소진하고 있는 셈이다. 이 관행은 명백한 퇴행이다. 교육 자원을 생애의 여러 단계로 분산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100세까지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다.

대학에서 과식(過識)으로 소화불량인 학생들을 자주 만난다. 아무리 중요한 지식과 통찰을 전달해도 시큰둥하다. 배움의 자세가 안된 학생들도 시큰둥하기는 마찬가지다.   

반면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지식과 지혜에 갈급해 찾아온 40플러스의 눈망울은 오히려 초롱초롱하다. 이 잊혀진 존재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흡수하고 응용할 수 있는 진짜 학생들이다.      

국가와 대학, 그리고 가정이 20대까지 쓰는 교육 예산의 10분의 1이라도 40플러스에게 써보자. 목마른 그들에게 생수를 주자. 그래서 목을 축이고 자신뿐 아니라 자녀, 그리고 우리 사회도 돌아보게 하자. 그동안 우리는 청소년을 너무 편애했다. 어릴수록 교육 효과가 클 것이라는 전제를 의심해봐야 한다. 책을 읽으면, 심지어 1주일만 저글링을 해도, 어른의 뇌는 변한다. 뇌가소성에 대한 수많은 연구는 ‘중년의 뇌’의 탁월함을 입증한다. ‘60이 넘어도’ 배울 수 있고, 청년보다 더 잘할 수 있다. 누가 학생인지를 재고해야 할 때다.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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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관계란 ‘권리와 의무’의 관계다. 법률관계인 고용에 있어 권리와 의무는 한 쌍을 이룬다. 임금을 정하고 인사권과 징계권을 가지는 사용자는 권리의 이면에 사용자로서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다. 정당한 임금을 지급할 의무, 산업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법원은 “고용 또는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신의칙상 보호의무”를 위반한 사용자에게 배상책임을 부과해왔다.      

현대사회에서 ‘권리만 있는 사용자’와 ‘의무만 있는 근로자’를 상정할 수 있을까. 이런 관계는 ‘전근대적’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한국마사회와 기수의 관계에서 마사회는 오로지 권한만 있고 아무런 의무가 없다. ‘한국마사회법’부터가 그렇다. 기수 면허의 발급 요건을 정하는 일, 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할 권한은 마사회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법 제14조). 마사회와 마주의 조심스러운 관계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마사회가 누군가의 ‘마주 될 권리’를 제한하려면 법률이 정한 엄격한 요건을 따라야 하나(법 제11조), ‘기수 될 권리’를 제한하는 요건은 제 마음대로 정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마사회 부조리 운영을 비판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문중원 기수의 유족과 시민대책위가 13일 정부의 문제해결을 촉구하며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사회가 정한 규정을 보면, 기수가 되려는 자는 마사회가 운영하는 ‘경마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된다. 이때 교육생은 ‘상해보험 증명서’를 원장에게 제출해야 한다(기수 양성 규정 제27조의2). 교육을 받기 전에 자비로 민간보험부터 가입해야 하는 것이다. 교육과정에 앞서 ‘서약서’도 제출해야 하는데, “어떠한 처분에도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마사회에 재산상의 손해를 끼친 경우 지체 없이 이를 변상한다”는 등 불공정한 관계가 명시되어 있다.

기수가 되어 상금을 지급받을 때, 상금의 책정과 배분 역시 마사회 마음이다. 마사회의 상금 관련 규정에 “관계자와 협의할 수 있다”고는 되어 있으나 의무사항이 아니다(경마 시행 규정 제93조). 사실상 마사회가 결정한 상금은 “우승열패(나은 자는 이기고 못난 자는 진다)의 원리”(위 규정 제94조)에 따라 기수에게 배분된다. 십수명이 출전하는 경기에서 5위까지만 상금을 주는 승자독식 규정은 마사회가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며, 배분율을 결정하는 데 기수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의무 역시 없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만 7명의 기수와 말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데에는, 이처럼 전근대적 권리관계에 짓눌린 채 미래를 그려볼 수 없었던 종사자들의 사정이 있다. 마사회는 기수의 양성부터 퇴출까지 권한 일체를 지닌 채, 고용관계의 핵심인 임금 결정권과 징계권을 행사하면서도 아무런 의무를 지지 않았다. 사고가 빈번했음에도 사업장 안전관리 책임은 조교사나 기수에게 떠넘겼다. 마사회는 경마사업의 시행 주체일 뿐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직접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노동자의 임금 결정과 징계권 등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면 해당 부분에 관하여 사용자로서 노동조합과의 교섭에 응할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경마산업 종사자들이 더 이상 다치거나 목숨을 잃지 않도록, 공기업으로서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이기를 촉구한다. 마사회에 주어진 권한의 크기만큼, 균형 있는 책임을 져야 할 때다.

<김수영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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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복고풍을 뜻하는 레트로가 유행이라더니 졸업식도 레트로인가? 얼마 전 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경험한 눈물의 졸업식이었다. 졸업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호명되고 교장선생님에게서 졸업장을 받고나서 담임선생님에게 안기거나 절하며 많은 아이들이 눈물을 지었다. 그걸 지켜보는 학부모님과 선생님들 눈시울도 덩달아 붉어지는 감동적인 순간들이었다. 특히 선생님과 부모님 속을 많이 썩이던 아이들이 더 많이 울었다. “그렇게 울 거면 그때 말 좀 잘 듣지”라고 옆에서 볼멘소리 하시는 분도 있었지만 그래서 애들이고, 그래서 선생과 부모 자리가 필요하다는 걸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교실 붕괴’니 ‘공교육의 위기’ 같은 이런 말들이 일상화되는 속에서 그동안 눈물 한 방울 없는 짧고 형식적인 졸업식을 봐오다 ‘이런 졸업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단상 아래 한 줄로 서서 내려오는 졸업생 한 명 한 명에게 하이파이브를 해주기 위해 기다리던 선생님들이 주고받는 말에서 답을 찾았다. 아이들 명단이 불릴 때마다 한 명 한 명에 대한 추억과 변화, 성장에 대해 주고받는 선생님들의 대화에서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엿보았다. ‘아! 정말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했구나!’ 그리고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정말 우리를 위해 늘 애써 주신다”고.

10여 년 전부터 교사의 권위적인 지도와 체벌의 대안으로 학생인권이 강조되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또 교권 침해가 문제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졸업식을 보면서 적어도 학생인권 침해나 교권 침해라는 단어는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특별히 우수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지역도 아닌 보통의 공립학교지만 가르침과 배움이 있는 상식적인 학교가 가능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 묵묵히 노력하신 한 분 한 분 선생님들 덕분일 것이다.

학교에서 배움의 공동체 수업 모델을 도입한 후 수업시간에 잠자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거나, 학생자치가 자리 잡아 가면서 학교 규칙 위반으로 학생을 지도하며 얼굴 붉힐 일이 거의 없다고 말하면 처음 반응은 “그게 가능해요?”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비결이 뭐예요?”라는 질문이다. 그런데 비결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작년 이 학교에 와서 학교 분위기의 영향으로 내가 바뀐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것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첫째는 가르치는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우려 노력한 것이고(대부분의 교사가 아이들 이름을 다 왼다), 두 번째는 수업에 대해 어느 해보다 고민을 많이 하고 자청해서 수업공개도 했다는 점이다.

졸업식의 눈물은 과거와 비슷하나 다시 눈물 흘릴 수 있기까지 학교는 긴 세월 충분히 혼란스러웠고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중심을 세우고 희망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손연일 월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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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똥나무를 처음 본 건 청와대 뒤 북악산에서였다. 군인들이 지키는 울타리의 한 축을 담당하며 숙연하게 서 있는 나무. 머리를 바싹 깎은 이등병의 군기가 느껴졌다. 벽돌처럼 오와 열을 맞춘 촘촘한 잎들 사이로 정말 쥐의 똥 같은 까만 열매가 몇 개 숨어 있어 제 이름의 연유를 짐작하게 했다. 한번 들으면 쉬이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이름이었다. 인왕산은 퍽 자주 가는 산이다. 어느 해 여름 땀을 잔뜩 흘리고 출렁출렁 내려왔을 때 국궁터인 황학정의 뒷덜미쯤에서 그 나무를 만났다. 한때 호랑이를 키울 만큼 깊고 무성했으나 이제는 조금 떨떠름해진 인왕산의 녹음. 그래도 잘 단장된 숲에서 마구 뻗어나가지 않고 숨어서 웅크린 채 영리하게 세상을 관조한다는 느낌의 나무. 쥐똥나무는 그런 인상을 내게 심어주었다.

시절이 수상하고 기후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겨울이라고 눈 한 톨 구경하지 못한 채 이 계절이 지나가는가. 눈 펄펄 내리지 않는 겨울이 매미 소리 하나 없는 여름으로 연결되는 건 아닐까. 조금의 기미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와 김해 불모산에 들렀다. 아직 그건 기우일세, 안심하라는 듯 바람은 차갑고 산에는 엄연한 질서가 있다. 아직 꽃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바짝 마른 낙엽의 세상이다. 그 자지러지는 소리 속에서 녹색이 눈에 띄었다. 아, 저건 반상록성이라서 마구잡이로 다 떨어지지 않아요. 꽃동무의 말끝에 쥐똥나무가 의젓하게 겨울을 견디고 있지 않은가. 

처음 보자마자 특이하게 기억했으나 이제껏 제대로 호명을 못해준 쥐똥나무. 오늘 조금 스산한 풍경에서 올해의 간지와 연결되면서 단박에 홀랑 마음을 뺏어간 쥐똥나무. 어쩌면 그간 내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다가 경자년이라고 이제야 이렇게 영리하게 툭 달려드는 것일까. 푸들푸들 고두밥처럼 가지 끝에 촘촘히 달리는 향기로운 꽃들을 떠올리며, 쥐띠해의 첫 산행에서 특별히 반갑게 만난 쥐똥나무를 여기에 적는다. 쥐똥나무,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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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 구단의 비시즌 풍경을 다룬 작품이다. 1~2회에서 스타 선수 임동규와 신임 단장 백승수의 기싸움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프랜차이즈 스타 임동규는 자신의 실력과 인기, 입지를 과신해 분란을 일으키다가 백 단장 손에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는 운명에 처한다. 임동규처럼 ‘인성 논란’에 휩싸일 법한 프로야구 선수가 현실에도 있을까. 안타깝게도 있다.

‘프로야구의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까지의 공백기’라는 뜻을 담은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탄탄한 연출과 연기, 실감나는 이야기로 ‘야구팬’과 ‘드라마팬’을 사로잡으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SBS 제공

프로야구계에선 새해 벽두부터 폭행 사건이 잇따랐다. NC 2군 코치 ㄱ씨는 신고를 받고 자택으로 출동한 경찰관을 폭행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됐다. ㄱ코치의 부인이 ㄱ코치가 가정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앞서 LG 현역 선수 ㄴ씨는 여자친구와 다투다가 이를 말리던 시민을 폭행해 형사 입건됐다.

폭력, 도박, 성범죄 등 프로야구 관계자의 범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를 예방하고 처벌하기 위한 제재 규정을 마련해두고 있다. 일반 폭력 사건은 유죄 확정 시 형사처벌 수위에 따라 정규시즌 30경기 이상 출장정지 및 제재금 500만원의 징계를 내린다. 성폭력에 대해선 제명이나 1년 이상의 실격, 72경기 이상 출장정지, 1000만원 이상 제재금 등 더 무거운 징계를 부과한다.

KBO 상벌위원회의 징계와 별도로 구단 차원에서 발빠르게 ‘손절’하기도 한다. 가령 지난해 LG는 음주운전 사실이 적발된 선수를 임의탈퇴 처분했고 SK도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킨 선수를 임의탈퇴하도록 했다. 범죄 이력이 있는 선수를 끌어안고 가면서 여론의 비난을 감당하기보다 인연을 끊는 편을 택하는 것이다.

문제는 징계를 받거나 선수 생명이 끝났던 선례가 선수들에게 반면교사가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형법이 범죄를 100% 예방하지 못하듯 제재 규정이 있어도 일부 선수들은 엇나간 행동을 한다. 야구 선수가 스포츠 기사가 아닌 사회 기사를 장식할 때마다 언론에선 제재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처벌 강화도 강화지만 제재만으로는 문제를 뿌리 뽑기 어렵다. 근본적으로 야구를 넘어 모든 스포츠의 엘리트 선수 육성 과정을 재검토하고 유소년 단계에서부터 교육을 통해 사회성과 도덕성을 갖춘 인간으로 키워내야 한다. 지난한 과제다.

프로야구팀에 입단하는 것은 바늘구멍 통과하기다. 지난해 8월 열린 2020년도 신인 드래프트 결과를 보면 1078명의 드래프트 신청자 중 9.28%(100명)만이 프로팀에 지명됐다.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가 모두 프로에서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11명의 동기들 가운데 1군 주전 선수로 자리 잡는 것은 일반적으로 1~2명 정도다. 대부분 소리소문 없이 팀에서 방출돼 다른 생업을 찾아나선다. 이 적은 확률을 통과해 프로에 자리매김한 선수들의 경력이 예기치 못한 일탈 때문에 단절되는 건 본인과 구단, 팬들에게도 손실이다. 팬들이 스토브리그에 보고 싶은 건 선수들의 이적과 계약, 구단들의 전력 구상 등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드는 뉴스들이지 형사 입건 소식이 아니다. 선수를 둘러싼 구설수는 드라마에서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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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아메리칸드림의 빛과 그늘을 보여준다. 소설은 순수한 사랑을 좇다가 파멸에 이르는 개츠비의 일생을 통해 물질주의에 빠진 미국 사회를 고발한다. 영화로 만들어져 더 유명해진 소설은 지금까지 수천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청소년 필독서로 꼽힌다. 개츠비의 이름을 딴 남성화장품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개츠비스크(gatsbyesque·개츠비처럼 순수한 이상을 추구하는 성향)’가 사전에 등재됐을 정도라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

소설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개츠비가 바다가 보이는 뉴욕의 대저택에서 날마다 호화파티를 여는 장면이다. 돈으로 빼앗긴 연인(데이지)을 되찾는 방법은 돈뿐이라는 믿음을 가진 개츠비는 끝내 파티를 통해 연인을 만난다. 대저택은 가진 자들의 공간이고 호화로운 파티는 그들의 사교문화의 단면이다. 100년 전 소설 속 얘기만은 아니다. 자본가들은 경제자본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성을 높여간다. 룸살롱 술문화나 골프 접대문화도 개츠비의 호화파티와 다를 바 없다. 

자본의 힘은 경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문화를 구분하고 개인의 취향까지 가른다. 때로는 사회 지배집단을 구분짓는 상징으로 작용한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러한 자본을 ‘문화자본’으로 명명했다. 문화자본은 ‘구별짓기’를 통해 계급적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만든다. 오늘날 상류층이 즐기는 살롱콘서트나 하우스콘서트, VIP 대상 문화강좌 등은 ‘구별짓기’의 대표적 사례다. ‘구별짓기’는 고급문화를 선도한다는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과시 소비’로 사회 위화감을 조성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최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적은 비용으로 파티를 여는 ‘소박한 개츠비’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SNS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해 음식을 나누며 책을 교환하거나 영화 감상 경험을 얘기한다고 한다. 주52시간제와 ‘워라밸’ 문화 확산의 산물이다. 직업·나이·거주지 등은 묻지 않고 취향만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기성 수직사회에 대한 저항도 엿보인다. 그러나 취향도 문화자본이다. ‘소박한 개츠비’ 파티가 다른 취향을 배제하는 ‘구별짓기’로 흘러서는 안된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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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당했다. 인내심의 임계점에 달한 인사권자의 강력한 견제구이자 경고다. 이번 검찰인사를 두고 ‘자업자득, 수사방해를 위한 보복인사, 또 다른 길들이기’ 등 다양한 관점과 반응이 혼재한다. 그러나 지난 몇 개월간 국민을 갈라놓고 혼미하게 만든 검찰의 칼춤을 멈춰 세워야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필요하고도 시기적으로 적절했으며 당위성 있는 인사권 행사다. 무소불위의 검찰을 독립성 보장이라는 이유로 통제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임명권자의 직무유기다. 검찰수사의 중립성을 위해 정치권력은 삼가고 절제해야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비정상으로 내달리면 선출된 권력에 의한 적절한 민주적 통제는 불가피하다. 검찰의 독단을 막기 위한 최후 수단이다. 적폐수사로 날개 단 검찰은 검찰조직의 적폐청산에는 소홀한 채 수사·기소권을 무기로 개혁의 흐름에 역행했기에 부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윤석열 검찰의 그간 수사를 되돌아보자. 가뜩이나 갈라진 대립과 갈등의 골을 격화시킨 장본인이 바로 검찰이었다. 시작은 대통령의 인사권과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무위로 만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일가에 대한 수사와 전격 기소였다. 시기적으로 부적절했던 검찰의 정치개입은 시민을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갈라놓았다. 공직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수사로써 정의 내리겠다며 정치검찰의 행태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실은 살아있는 권력의 ‘권력형 비리·범죄’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측근 중 최측근이었지만 그 권력과 자리를 이용한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견문발검(見蚊拔劍), 모기 잡으려 칼을 빼어 휘두른 것이다. 포괄적 압수·수색영장을 동원한 전방위 수사, 피의사실을 흘리며 언론을 등에 업은 망신주기 수사, 원하는 무언가가 나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수사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옹색하기 짝이 없었다. 헌법상 기본권도 무시되고 절차적 정의와 공정성도 지키지 않은 수사였다. 시작은 창대해 보였으나 그 끝은 미약했다. 쥐 한 마리 잡기 위해 온 나라를 들쑤신 꼴이다. 마구 칼날을 들이대 만신창이를 만들었다. 여기저기 찔러보고 아니다 싶으면 멈출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그러니 망나니의 칼춤에 비유되는 것이다.

검찰이라는 단어의 검(檢)은 검사한다는 뜻이지만 검찰을 흔히 칼 검(劍)에 비유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움켜쥔 검찰은 사람을 찔러볼 수 있고 목숨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칼로 표현된다. “검찰의 칼, 문 정부에 들이대다” “조국의혹에 칼 빼어든 윤석열 검찰” 등 언론의 기사제목에도 자주 등장한다. 함부로 쥐고 흔들거나 과하다 싶으면 ‘망나니 칼춤’이라고도 한다. 망나니는 사형을 집행할 때 죄인의 목을 베던 사람이다. 언동이 몹시 막된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로 쓰이든 부정적이다. 거기에 위험천만한 칼춤까지 붙었으니 극단의 비난조 표현이다. 망나니의 칼춤은 사형집행 전에 몸을 풀기 위함이라고도 하고 사형수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도록 혼을 빼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망나니로서 나름 임무를 충실히 완수하기 위한 몸짓인 것이다. 그러니 검찰의 마구잡이 권한 행사를 망나니 칼춤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다.

윤석열 검찰은 출범 이후 모든 걸 잃었다. 참담한 수사결과로 정당성도 얻지 못했고, 급기야 인사로 견제당하고,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등 개혁입법도 통과되었다. 이쯤 되면 조직과 상관 지키기에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걸 것이 아니다. 인사권에 대한 집단적 저항을 시도해서도 안된다.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국민이 원하는 검찰로 변신하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참다못해 단행한 인사권자의 경고를 잘 읽어야 한다. 국민의 뜻인 검찰개혁에 저항하지 말라는 신호도 담겨 있다. 

인사 당했다고 권력 앞에서 칼끝을 멈춰 세워서는 안된다. 이제 출범할 공수처가 해야 할 일이지만, 살아있는 권력의 권력형 범죄와 부정부패에 칼날을 겨누라는 임명권자의 요구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칙과 절차를 지키는 공정한 수사여야 한다.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하는 인권존중의 수사와 기소여야 한다. 언론에 흘리고 여론을 동원한 수사여서는 안된다. 마구 찌르고 끝장을 보는 수사가 아니라 잘못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멈춰 설 줄 아는 절제와 염치를 아는 수사여야 한다. 망나니의 칼춤처럼 자신의 본분과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인사권도 그렇고 수사·기소권도 더 이상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 인사견제구는 경고 주기에 충분했다. 더 이상 항명, 감찰, 징계 운운하거나 검찰 중견 간부들을 내쳐서도 안된다. 양 칼이 자주 부딪치면 칼날은 무뎌지는 법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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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3일 전체회의를 열어 자유한국당이 추진 중인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인 ‘비례자유한국당’을 포함해 정당 명칭에 ‘비례’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기성 정당 이름에 비례만을 붙인 ‘비례○○당’은 이미 등록된 정당의 명칭과 뚜렷이 구별되지 않아 정당법상 유사 명칭 사용 금지에 해당한다는 결정이다. 일단 ‘유사 명칭’ 기준을 적용해 한국당의 치졸하고도 노골적인 가짜 비례정당 설립에 제동을 건 셈이다. 선관위는 “ ‘비례○○당’ 사용을 허용할 경우 정당 활동의 자유 침해와 유사 명칭 사용으로 인한 유권자들의 혼란으로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이 왜곡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등 선거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라는, 헌법이 명시한 정당 본연의 역할을 환기시킨 것이다. ‘비례’ 명칭까지 사용해 유권자에게 혼선을 초래함으로써 민의를 왜곡하고, 궁극에 ‘연동형’ 선거제 개혁의 취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 한국당의 가짜정당 발상이다.

한국당은 지난 2일 ‘비례자유한국당’ 창당준비위원회 결정 신고서를 선관위에 제출하고 본격적인 창당 작업에 나선 상황이다. 창당준비위 대표는 한국당 조직부총장의 부인이 맡았고, 창당 자금은 한국당 사무처 당직자들이 조달했다. 창당준비위 소재지는 한국당 당사이다. 창당 목적과 주체, 대표자, 구성원, 재정, 소재지 등 모든 면에서 한국당과 차별성이나 독자성이 어느 하나 존재하지 않는 정당이다. 한국당은 향후 ‘비례용 정당’으로 상당수 소속 의원들을 위장전입시켜 정당투표 용지에서 상위 순번을 확보하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합당을 통해 제1당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되는 30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최대한 차지하기 위해 온갖 편법과 꼼수를 총동원하겠다는 것이다. ‘정당의 목적과 조직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헌법 정신을 희화화하는 일이고, 그야말로 유권자를 ‘개·돼지’쯤으로 여기지 않고는 도모할 수 없는 막장 정치다.

한국당은 선관위의 결정에도 불구, 당명 변경을 통해서라도 비례용 위성정당 설립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어코 주권자를 우롱하고, 민주주의의 선거 원리를 훼손하고, 정당 정치의 토양을 황폐화시키는 ‘가짜정당’ 사기극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오불관언, 엄혹한 유권자의 심판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선관위는 단순히 ‘명칭’의 유사성 여부에 한하지 말고, 앞으로 사실상 ‘차명’에 불과한 하청 위성정당 창당 시도에 대해 헌법과 정당법의 취지에 따라 엄격한 잣대로 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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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13일 “현행 공직선거법은 자동차에 부착하는 확성장치 및 휴대용 확성장치의 숫자만 규제할 뿐 확성장치의 최고 출력과 소음에 대한 기준이 없다”면서 이는 국가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소홀히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한 주민이 낸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합리적인 최고출력 내지 소음 규제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라 해도 주민 불편을 초래하는 과도한 선거 소음은 규제돼야 한다. 헌재의 전향적 판단을 환영한다.

확성기 소음 피해는 선거 때마다 반복적으로 제기돼왔다. 시민들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해할 뿐 아니라 생업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현행 공직선거법이 출근 또는 등교 이전인 오전 6~7시, 퇴근 또는 하교 이후인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소음 제한 없이 확성장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입법 미비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운동 소음을 규제하지 않으면 피해가 반복되는 것은 물론 주민들이 밀집 거주하는 아파트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서 그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 시민이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는 더욱 중요해졌다는 점에서 확성장치의 최고출력과 소음 규제기준을 만들어 소음을 제한해야 한다는 판단은 타당하다. 이번 결정은 선거운동의 최근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야외에서 확성기를 이용해 자신의 정견을 발표하기보다 인터넷이나 방송 등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헌재가 같은 사안에 대해 11년 만에 판단을 바꾼 것은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일부 재판관들이 “선거운동에 대한 지나친 규제는 후보자에 관한 정보를 선거인들에게 효율적으로 알리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한 것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확성기 소음을 과도하게 제한하면 선거 분위기를 위축시킬 수도 있다. 소음 규제기준을 마련하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실제 선관위에 따르면 소음을 유발하는 선거운동원들이 수시로 이동하고, 이 과정에서 확성기 소음의 크기를 측정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헌재는 오는 4월 총선부터 새로운 법을 적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연말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국회와 선관위는 이제부터 주민의 소음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기준과 법령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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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1500억여원을 들여 개발한 차세대 지방교육 행·재정 통합시스템 ‘K-에듀파인’이 지난 2일 개통 직후부터 일부 시·도에서 먹통 사태를 빚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과부하 문제로 시스템의 주요 서비스 중 하나를 몇 달간 일시 중단했다. 교원들의 업무 경감을 취지로 마련한 시스템이 되레 학교 현장을 마비시키다시피 하는 형국이다. 업무가 상대적으로 적은 방학임에도 접속 지연과 먹통이 반복되면서 개학 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가운데)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 바른미래당 임재훈 의원이 13일 유치원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K-에듀파인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자료집계’ 서비스가 과부하 문제로 지난 8일부터 중단됐다. 경기교육청은 각 학교에 4월30일까지는 통합 이전의 시스템인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이용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K-에듀파인’ 시스템의 공지사항으로 “오류가 발생하여 열 수 없는 문서들이 있습니다. 급하신 문서의 경우 발신처에 요청하셔서 FAX나 우편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를 올리기도 했다. 개통 이후 열흘가량 하루 3만건 정도의 K-에듀파인 관련 민원이 접수됐다고 한다. 중앙콜센터 연결마저 지연되자, 강원도교육청은 오는 17일까지 K-에듀파인 지원센터를 운영키로 했다.

K-에듀파인은 국공립 유치원, 초·중·고교에서 사용 중인 회계관리와 업무관리를 하나로 통합한 시스템이다. 업무를 통합하고, 결재단계를 줄여 효율성을 높이고 업무부담을 해소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개통 직후부터 오류가 쏟아지자 현장의 원성이 높다. 좋은교사운동은 13일 ‘K-에듀파인 불통 사태’ 비판 성명서를 내고, 혼란의 원인 규명, 개학에 대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앞서 실천교육교사운동도 지난 8일 “교육부의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도입을 서둘러 불상사를 낳았다”며 교육부의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교사들의 불만은 이해가 된다. 어떤 시스템이든 도입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제대로 안착되지 못한다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K-에듀파인은 연초 행·재정 통합시스템 개통에 이어 3월엔 사립유치원용, 5·6월엔 결산 관련 업무 시스템 개통으로 마무리된다. 가뜩이나 사립유치원에선 교육당국의 회계시스템에 대한 반발과 불신이 강한 터이다. 이런 판국에 최소한 기능적인 불안만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육당국의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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