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만화가다. 지금은 사라진 신문 소설 삽화로 2002년에 데뷔했다. 인터넷 만화도 그 무렵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이른 시도였다. 그런데 정작 웹툰은 많이 그리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다. 그냥 내가 포털사이트에 들어가는 습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트렌드에서 동떨어진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을 자주 한다. 비슷한 문제로 마음 졸이는 친구들과 요즘 하는 이야기가 말과 자동차의 비유다.

옛날에는 많은 사람이 말이나 마차를 탔다. 그런데 이제 대부분의 사람은 마차 대신 자동차를 탄다. 말과 자동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짐작하기 쉽다. 종이만화가 말이라면 웹툰은 자동차다. 음반 대 음원 다운로드, 종이책 대 팟캐스트, 종이신문 대 온라인 매체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들었다. 유튜브, 즉 지금의 자동차조차 옛날 물건으로 보이게 만드는 자율주행차의 시대가 이미 열렸다고도 한다. 

나는 뒤늦게 웹툰으로 갈아타는 문제를 고민하는데, 남들은 벌써 웹툰 시대 이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변화가 참 빠르다.

세 가지 생각을 한다. 첫째, 콘텐츠 향유자의 입장은 간단하다. 타는 쪽에서 보면 자동차가 낫다. 빠르고 쾌적하고 돈도 덜 든다(말똥도 없다). 둘째, 창작자의 입장은 복잡하다. 마차 만들던 사람이 자기 먹고살기 힘들다고 남들한테 자동차 타지 말라고 하면, 호응할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남은 인생을 마차에 올인할까, 자동차 공장에 일자리를 알아볼까.

나 같은 말발굽 기술자는 자동차 시대를 맞아 생각할 것이 많다. 자동차가 아직 걸음마 단계라거나 반대로 마차가 이미 사라진 시대라면, 이야기는 쉽다. 고민할 필요 없이 한쪽을 택하면 된다. 지금 같은 과도기가 문제다. 수익과 지출이며 일하는 보람이며 작가 브랜드며 여러 가지를 고려해봤다. 내 경우만 놓고 보면, 종이만화로 얻던 이득과 웹툰으로 얻을 이득이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매체를 바꿔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리 아프다.

얼마 전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오늘날 말안장 가격은 옛날보다 비싸다고 한다. “뉴욕에서 말발굽 네 개의 가격은 자동차 바퀴 네 개의 가격과 동일하다. 말발굽은 4~5주밖에 사용할 수 없는데 말이다.” 경쟁자가 없으니 되레 부르는 게 값이 되었다는 말씀. ‘포지셔닝’이라는 마케팅 이론으로 유명한 알 리스의 글이다. 말과 자동차 이야기를 보면서 셋째, 버티고 버텨 최후의 말발굽 기술자가 되면 어떨까도 상상해본다. 그런데 많은 사람을 위한 전략은 아닐 것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없을까.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김태권 |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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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이하 경칭 생략)가 연초 정계복귀를 선언한 직후다. 한 페이스북 페이지에 ‘누가 더 정치를 잘할 거라 생각하나?’라는 설문이 올라왔다. 선택지는 안철수와 ‘펭수’ 둘이다. 누구를 내세운들 ‘직통령’ 펭수를 당할 리야마는, 안철수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한때 청년들의 희망이었던 안철수로서는 실로 격세지감이다. 다분히 흥밋거리 설문이 눈길을 끈 건 펭수에 반사되는 안철수의 특성 때문이었을 게다. 펭수에게는 있지만 안철수에게는 부족한 게 있다. 메시지의 명료함과 구체성이다. 정치언어로 바꾸면 뚜렷한 노선과 원칙, 정체성이다. 리얼미터 여론조사(1월7일)에서 안철수의 정치노선을 ‘보수적’으로 인식하는 응답이 28%, ‘중도적’ 17%, ‘진보적’ 9.6%로 나타났다. 그리고 ‘모른다’는 응답이 45%에 달했다. 정치를 시작한 지 9년이 되었는데도 정체성과 노선마저 모호한 셈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경향신문DB

안철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현실정치 복귀를 알린 뒤 토론회 영상 메시지, 당원 신년 메시지, 신간 출간 등을 통해 “다시 정치를 시작한” 동기와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낡은 정치와 기득권에 대한 과감한 청산”을 기치로 리더십 교체, 정치 패러다임 전환, 정치권 세대교체를 정치개혁의 과제로 제시했다. 신간에서는 미래 3대 비전으로 행복한 국민, 공정한 사회, 일하는 정치를 내걸었다. 소중한 가치들이지만, 안철수만의 것이 보이지 않는다. ‘낡은 정치’ 대 ‘새정치’의 구도는 유효하지 않다. ‘새로움’은 더는 안철수의 무기가 아니다. 1년5개월 만에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비전을 펼치지만, 안철수의 길은 오리무중이다. 세 갈래도 모자라 ‘제4의 길’이 운위되는 지경이다. 낡은 정치와 기득권 청산을 누구(세력)와 어떤 노선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 하겠다는 것인지가 빠진 탓이다. 귀국하면 이것부터 ‘펭수의 화법’으로 제시해야 한다.

‘조국사태’와 ‘검찰정국’을 거치면서 양극단을 혐오하는 무당층과 중도 영역이 보다 견고해졌다. 극렬한 진영 대립은 지지층 결집과 더불어 정치 염증에 기반한 무당층과 중도층의 확대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한국갤럽의 신년 정기조사에서 무당층은 25%로 자유한국당 지지율(20%)보다 높다. 20대 무당파는 40%에 이르고, 중도층에서는 절반에 육박한다. 외형상으론 ‘안철수현상’을 불렀던 9년 전과 유사한 환경이다. “정치를 그만둘지 심각히 고민했다”는 안철수가 총선을 앞두고 등판한 것은 과거 실패한 ‘다당제시대 개혁’과 ‘기득권 양당의 벽’을 허물 토양이 조성되었다고 나름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집권 4년차에 치러지는 총선임에도 정권심판보다 야권심판론이 더 높다. ‘박근혜 탄핵’에 찬성한 중도보수가 한국당으로 돌아오지 않은 결과다. 보수통합은 그것을 반전시키기 위한 몸부림이지만, 유승민세력을 더해 단순히 덩치만 키운다고 쉽지 않다. ‘도로 새누리당’으론 무당파와 중도보수가 다 흡수되지 않는다. ‘안철수’라는 제3의 상징이 절실한 이유다. 하지만 안철수가 ‘통합호’에 몸을 싣는 순간, 안철수는 정치적으로 죽는다. 낡은 정치와 기득권 타파, 다당제 개혁과 중도 등 안철수정치의 명분과 자산을 죄다 전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안철수는 역시 ‘펭수의 화법’으로 보수통합에 대한 입장부터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

안철수의 정계복귀와 신당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당파와 중도층, 청년층에서 지지와 찬성 여론이 높은 것은 기존 정당이 아닌 새로운 당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다. 극단의 진영 대결 속에서 무당층은 커지고 중도층이 늘어나 다당제 요구는 있으나 이를 묶어낼 구심이 없던 상황이다. 무당파와 중도층의 다당제 동력을 수렴할 수 있느냐가 안철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또 다른 제3당의 길은 분명 고난의 길이다. 기계적 중간과 ‘반문’ 깃발로는 십리도 못 간다. 양대 정당 사이에서 제3당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설정해야 한다. 사회·경제 개혁 메시지가 명료해야 하고, 정치 목표가 무엇인지 보다 명징한 언어로 보여야 한다. 제3당이 철지난 정치세력, 정치인들의 도피처가 되어서는 희망이 없다. 결국 얼마나 대중성 있고 참신한 인물을 참여시키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안철수는 17개월 전 정치일선을 떠나면서 토로했다. “5년9개월 동안 정치를 하면서 다당제시대 개혁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기득권 양당 벽을 허물지는 못했다. 미흡한 점도 많았다. 그러나 제가 갔던 길이 올바른 길이라 믿고 있다.” 다시 다당제 개혁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안철수의 마지막 시간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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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What money can’t buy)>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지만 요즘은 ‘돈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교도소 수감자들이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깨끗하고 조용하면서 다른 죄수들과 동떨어진 개인 감방으로 옮길 수 있다. 비용은 1박에 82달러.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는 ‘나 홀로 운전자’라도 돈을 내면 2명 이상 탑승차량을 위한 ‘전용 차선’을 이용할 수 있다. 교통량에 따라 다르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8달러다. 당일 바로 진료받을 수 있는 의사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도 판매된다. 연간 1500~2만5000달러 수준이다. 미국으로 이민할 수 있는 권리는 50만달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멸종위기에 놓인 검은코뿔소를 사냥할 수 있는 권리는 15만달러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늘어나면 부자들의 생활은 편리해지겠지만 정의와 공정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불평등과 차별이 심해지고, 사람들의 도덕 관념도 희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죄를 지어도 가난한 사람은 더 열악한 감방에서 생활해야 한다. 회원 고객에게 휴대전화 번호를 넘긴 의사들은 기존 진료를 줄일 수밖에 없어 결국 서민의 병원 이용 문턱이 높아진다. 샌델은 “부유함의 유일한 장점이 요트나 스포츠카를 사고 환상적인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이라면 부의 불평등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영향력, 좋은 의료, 안전한 이웃들에 자리 잡은 주택, 엘리트 학교 입학 등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지면서 부의 분배가 점점 커다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다.


어린이들에게 줄을 잘 서라고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되,

특권을 가진 사람이 오면

순순히 양보하라고 해야 한다?


우리 사회 트렌드도 다르지 않다. 10년 전만 해도 놀이공원의 ‘청룡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부유한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줄을 서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인파로 붐비는 토요일 오후에도 줄 서는 수고 없이 놀이기구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웃돈을 주고 ‘특별 패스’를 구입하는 것이다. 항공사 발권 창구나 비행기 탑승구의 퍼스트 클래스가 놀이공원까지 확대된 셈이다. 이제 어린이들에게 줄을 잘 서라고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줄을 서서 이용 순서를 기다리되, 특권을 가진 사람이 오면 순순히 양보하라고 해야 한다.

미국 대학들만큼 노골적인 기여입학제는 아니지만 돈으로 사고파는 한국의 사교육 프로그램은 부자 자녀의 명문대 입학 확률을 높인다. 수십억원을 주고 고위 판사나 검사를 지낸 ‘전관’ 변호사를 고용하면 같은 죄를 저질러도 처벌은 가볍게 받는다. 돈과 권력은 늘 함께 움직인다. 사업가와 유착된 고위 관료,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공천 장사를 하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사라지는 날이 과연 올까. 돈과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명예도 거래된다. 재벌이나 대기업 회장 치고 웬만한 대학의 명예박사 아닌 이들이 없다. 학위의 대가가 무엇일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스포츠대회에 붙이는 이름도 거래된다. 한국야구위원회가 주관한 지난해 프로야구 리그 공식 명칭은 ‘신한은행 마이카 KBO 리그’였다. 서울대 경영대학 건물 중에는 LG관, SK관이 있다. 서울대가 공짜로 건물에 기업 이름을 붙여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장경제 시스템은 사람도 돈으로 평가한다. 2년 전 중견기업에서 퇴직해 마을버스 운전을 하는 내 친구의 노동력은 한 달에 300만원이다. 특별한 기술과 자본이 없는 50대 남성의 가치는 이 수준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 류현진의 몸값(4년간 8000만달러)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없다. 그러나 내 친구는 그의 팔순 노모가 세상에서 최고로 믿고 의지하는 아들이고, 딸의 존경을 받는 행복한 아빠다.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파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과거보다 점점 더 많아지고, 사람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사랑, 우정, 양심, 건강 등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다.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꿈꾼다면 평화, 민주주의, 투표권 같은 것은 누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넘겨줄 수 없다. 어머니가 손수 끓인 된장찌개와 여섯 살 조카가 괴발개발 그려 보내준 연하장처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도 있다. 경자년 새해,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오창민 디지털뉴스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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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새해가 시작된 지 보름이 지났다. 이맘때마다 많이 들리는 성어가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새해의 시작을 맞아 운동, 금연, 외국어 공부 등 모처럼 작심한 일들이 며칠 가지 못해 흐지부지되고 만 데 대한 후회와 자괴의 마음이 전해지는 말이다.

작심삼일은 고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속담을 한문으로 옮긴 말이다. 사흘 고기 잡고 이틀 그물 말린다는 뜻의 ‘삼천타어(三天打魚) 양천쇄망(兩天쇄網)’이라는 중국어 표현, 머리 깎고 승려가 된 지 사흘 만에 못 견디고 환속한다는 뜻의 ‘삼일방주(三日坊主)’라는 일본어 표현 등이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는 한다. 하지만 작심삼일은 17세기부터 용례가 보이는 우리 고유의 성어다.

사실 어떤 목적을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는 뜻의 작심(作心)이라는 어휘 자체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흔히 쓰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결심(決心)이 더 일반적인 어휘다. 무언가가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의미의 “작어심(作於心)”이라는 구문은 많이 보인다. 맹자는 변론을 즐긴다는 비판에 대해 이단사설이 횡행하는 것을 막고 유가의 도를 계승하기 위해 부득이 변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맹자가 말하는 유가의 도는 요임금 때 범람하는 황하를 다스림으로써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든 데에서 출발한다. 홍수가 지나간 땅에 득실거리는 벌레와 도마뱀 따위를 몽둥이로 때려잡는 것을 표현한 글자가 개(改)이고, 그렇게 바로잡는 행위를 일반화한 글자가 정(政)이다. 환경을 바로잡고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 정치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생각이 일을 그르치고 결국 정치를 그르치게 되므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라는 것이다.

작심삼일도 사흘마다 한 번씩 하면 된다는 말들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위로받고 늘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그 역시 나쁘지 않겠다. 문제는 오히려 작심삼일이 두려워서 작심 자체를 안 하는 데에 있다. 성찰 없이는 작심도 없다. 끊임없는 성찰과 작심이 아니고는 우리의 삶도, 사회와 정치도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중요한 것은 마음에서 무엇이 일어나는가에 달렸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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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역 지하에 결혼식장이 있었다. 역 대합실 1층에서 이어진 긴 지하 터널을 통과하면 거짓말처럼 결혼식장이 나왔다. 조도가 낮아 희읍스레한 터널 끝 유리 격자문 안쪽에는 한낮 햇빛처럼 밝은 빛이 아롱거렸다. 그 문이 열리면 미지의 세상이 있을 것 같은, 혼자 길을 걷다 둘이 만나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는 결혼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그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세상을 떠난 친척 아저씨를 떠올렸다.

그런데 키가 커서 한참 올려다봐야 했던 그의 선한 얼굴이 신랑의 모습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꼬마였을 때 서너 번 보았을 뿐이고, 친척 아저씨가 돌아가신 뒤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주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신랑을 단박에 알아봤다. 한때 청년이었지만 노인이 된 친척 아저씨들도 마찬가지였다. 쌀자루를 번쩍 들어 얹던 어깨는 조붓해지고, 까랑까랑하던 목소리는 느려지고, 꼿꼿했던 걸음은 수굿해진 노인들도 모두 돌아가신 자신의 부모와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미 세상에 없는 이들의 시간이 계속 이어지는 듯했다. 

결혼식장을 나와 다시 긴 터널을 걸어서 다시 기차에 올라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나는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나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른 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엄마와 똑같아 울었다는 이가 떠올랐다. 엄마와 다르게 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슬펐다는 그의 말에 나는 공감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러고 보면 대개의 사람에게 삶이란 부모로부터 멀리 달아나는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비록 얼굴은 닮더라도 부모와 다른 삶을 살고자 했던 이들의 시간이 좀 더 나은 시간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아무튼 결혼하고 새롭게 길을 떠나는 청년도 그의 아버지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기를, 이 세상의 모든 청년이 시속 300㎞로 내달리는 KTX처럼 부모로부터 더 빨리 달아나 부모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길, 그것이 인간의 진보이며 역사일 테니.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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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가 예측한 것보다 훨씬 빨리 가속화되고 있다. 정부기관들이 기후비상사태를 선언하고 학생들까지 시위에 나서고 있으며, 법정에서는 기후 소송이 진행되는 등 풀뿌리 시민운동도 앞장서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전 세계 153개국 과학자 1만1000명은 기후변화 대처 비상선언을 발표하고 세계 각국이 즉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바이오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하고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행동지침을 제시했다.

이들이 제시한 지침은 먼저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고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폐지하는 동시에 강력한 탄소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메탄과 블랙카본 등 단기성 온실가스를 신속하게 줄이자는 주장이다. 셋째는 산림을 비롯한 자연생태계를 복원 및 보호함으로써 이들 생태계가 탄소를 흡수하는 큰 몫을 담당하게 할 것, 넷째는 동물성 식품을 덜 섭취하는 채식 위주로 식생활을 바꾸자는 주장이다. 다섯째는 탄소 없는 경제로 전환해 국내총생산(GDP) 성장과 풍요의 추구라는 목표에서 탈피하자는 것이고, 여섯째는 적절한 정책을 통해 하루 20만명 이상 늘어나는 지구촌 인구를 안정화시키자는 내용이다.

특히 채식 위주의 식단 변화는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메탄과 블랙카본 같은 단기성 온실가스도 현저하게 줄여준다. 블랙카본의 40~50%가 숲과 대초원을 불태우는 데서 배출되고 축산업은 삼림 파괴와 메탄의 주 배출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축 사료가 아닌 사람이 먹을 식량 재배를 위한 농토를 넓히는 한편 축산업으로 사용되는 농지에 삼림을 조성함으로써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다.

이미 작년 8월 제네바에서 개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는 세계 각국 정부가 승인한 ‘기후변화와 토지에 관한 특별보고서’를 발표하고 화석연료 감축과 함께 토지 이용의 획기적 전환 없이는 기후재앙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선진국에서 육류와 유제품 섭취량을 줄일 것을 권고하며, 전 인류가 채식이나 비건(완전 채식)으로 식습관을 바꿀 경우 최대 연간 80억t의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하고, 음식물 쓰레기만 신경 써도 연간 전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의 8~10%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경작·혼농임업 등 식량 생산방식을 바꿔도 2050년까지 최대 연간 96억t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음을 밝혔다. 종합하면 생산에서 폐기까지 먹거리 시스템만 개선해도 전 지구 온실가스 배출의 최대 50% 가까운 양을 줄일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것이다.

식습관 변화를 연결고리로 땅과 동식물들과의 관계를 새로이 할 수 있다. 기후변화 및 사막화의 완화, 생물다양성의 복원을 연결시킬 뿐만 아니라 물 부족·인류 건강·식량·양극화 문제의 해결이란 가능성도 확인해 준다. 

인류는 식습관 변화를 통한 악순환과 선순환 가운데 양자택일의 순간에 서 있다. 인간과 지구, 밥상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밥상혁명의 순간이다.

<고용석 |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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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하고 이듬해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생애 첫 투표를 한다고 들떠 있는데, 선거일보다 며칠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나에게는 투표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선거에 대해 이러저러 떠드는 친구들 속에서 혼자 소외된 기분에 꽤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 일이, 투표도 하지 못해놓고, 내 생애 첫 번째 선거일이 되었다.

그다음의 선거는 언제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선거가 있는 날마다 아버지가 새벽 일찍 우리를 깨웠던 기억만 있다. ‘투표는 꼭 해야 한다’는 게 아버지의 신념이자 소신이었다. 그래서 어물거리다가 시간을 놓치는 법이 없도록 자식들에게 투표권이 생긴 후에는 우리까지도 독려해서 투표소에 데려가시고는 했다. 잠도 덜 깬 눈으로 서늘한 투표소 복도에 서 있던 몇 번의 풍경이 지금도 선하다.

그렇게 우리를 데려간 아버지가 찍는 정당은 늘 한결같았다. 나와는 다른 정당. 한 번도 서로에게 물은 적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 알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정치 성향에 대해서 가족끼리 자주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어도 어쩌다 이야기를 해보면 서로 생각이 달랐다. 그러니까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나라가 이렇게 되었다’와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애들이 투표를 이상하게 해서 분열이 된다’는 그런 오랜 지적들이 우리 가족 내부에서도 존재했다. 그래서 한편으로 나는 신기했다. 어떻게 아버지는 우리에게 한 번도 당신이 지향하는 바를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니, 젊은 것들 사람 뽑을 줄 모르니 투표 같은 거 하러 가지 말라고 할 법도 한데, 그런 말 한마디 없이 당신과 다른 사람 뽑을 줄 뻔히 알면서 그 줄에 세워놓을 생각을 했을까. 여쭤본 적이 없어 그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태도에 깃든 것이 일종의 위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옳다고 믿는 사회의 구현을 위해 당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로막지 않는 것, 그것이 가끔은 그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에 대한 강한 신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그런 태도가 시민사회의 공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 공립학교를 잠깐 경험할 일이 있었는데, 미 대통령 선거를 치르던 시기였다. 주별로 각당 후보 경선이 진행 중이었는데,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들에게 민주·공화 각당 경선 후보들의 공약이 담긴 선거 자료집을 나눠주고, 선거제도 전반에 대한 설명과 함께 검토하여 에세이를 쓰는 숙제가 주어졌다. 인상 깊은 건 그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누구를 뽑겠는가” 혹은 “각각의 공약이 어떻게 타당한가”를 묻기 이전에 이들에게 주어진 피선거권의 자격을 포함하여 현 선거제도가 타당한가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진 점이었다. 선거 연령에 대한 질문도 당연히 포함되었다. 나는 그 질문이 무척 신선했는데, 그 질문을 본 순간 선거가 단지 우리를 대표할 누군가를 뽑는 것만이 아니라 누가 우리 사회의 시민인가,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묻는 제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열 살 남짓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런 수업과 질문이 자연스레 가능하다는 점도 충분히 놀라웠다.

만 18세 이하 선거권이 통과되었다. 당장 총선을 앞에 두고 있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유효표의 등장으로 보이는 듯하다. 그보다는 새로운 시민의 유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던질 표의 향방은 결국 그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에서 그들이 누려야 할 권리의 몫일 것이다. 그러므로 향후 이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라는 선거교육은 각 정당의 득실 이전에,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묻고 고민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다. 환영한다, 젊은 시민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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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신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90분간의 회견은 지난해 11월 대화의 폭과 깊이에 갈증을 남긴 ‘국민과의 대화’보다 진일보한 소통이었다. 기자들이 국민적 관심사를 추렸고, 대통령도 각본 없이 때로 허심탄회하게 생각을 비친 자리였다. 내용적으로는, 참신한 국정동력이나 비전 제시보다 국정 현안을 설명하고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는 답이 많았다. 4월 총선이라는 큰 변곡점이 있는 ‘집권 4년차’ 회견의 특징이 도드라졌다.

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0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하려 손을 든 기자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의 답은 어느 때보다 ‘협치’에 모아졌다. 문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정치문화가 달라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민생과 멀어져 일하지 않는 정치는 사실상 폐장된 20대 국회로 끝나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나아가 “(총선 후) 야당 인사 가운데서도 해당 부처의 정책 목표에 공감한다면 함께할 수 있다”며 ‘협치내각’ 문호를 열었다. 당이 결합하는 거국내각이나 연정보다 사람을 입각시키는 낮은 단계지만, 갈등을 줄이고 국정과제를 푸는 데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공정한 선거관리부터 야당 목소리 경청까지 신뢰를 쌓는 중심엔 대통령이 있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한 부동산 문제에 대해 “반드시 잡겠다. 보다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납득하기 어려운 가격 상승은 원상회복돼야 한다”는 긴 목표를 제시했다. 가격 안정을 넘어 급등한 집값을 집권 초 시점으로 돌리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서민들의 좌절과 실수요자 고통을 생각하면 올바른 방향 정립이다. 고가 아파트를 겨눈 ‘12·16대책’ 파장이 저가주택·전세로 튀지 않게 금융 대출·재건축 규제·세금까지 ‘적시·고강도’ 처방을 주저해선 안된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조직문화 개선에 앞장서면 더 신뢰받을 것”이라고 했다. 인사권·수사권이 분리돼 있음을 상기시키고, 윤 총장도 “(인사 갈등) 한 건으로 판단하지 않겠다”고 거듭 신임했다. 청와대·법무부와 검찰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란 여론과 대통령 지시를 무겁게 새길 때다.

신년 회견은 긴 패스트트랙 정국이 끝난 뒤에 이뤄졌다. 협치 약속이 총선 뒤로 유예됐지만, 소통·통합 노력은 시와 때가 따로 없고, 겸손한 권력을 약속한 취임사는 끊임없이 소환돼야 한다. “촛불정신이 정해줬다”고 한 정부의 소명도 그 출범 시점만을 뜻하진 않을 게다. 권력기관 개혁의 첫 고비를 넘었지만, 노동존중사회 약속은 흐트러졌고 체감경제는 냉골이 많고 수도권·지방 균형발전과 사회적 대타협은 겉돌고 있다. 진단 많은 회견에 구체적 대안은 적었다. 집권 4년차는 성과로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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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경찰은 66년 만에 검찰과 거의 대등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경찰은 “인권침해 가능성이 있는 사건 등은 수사지휘를 받아야 하고, 통신·압수수색·체포 영장 등의 발부가 검찰을 통해야 가능하므로 대등한 권한의 분산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검찰의 수사지휘 없이 1차 수사종결권을 행사한다. 부패나 경제·선거 등 주요 범죄는 여전히 검찰이 직접 수사하지만 그 외 대다수 민생 관련 범죄는 경찰이 검찰의 간섭 없는 수사를 통해 1차적 유무죄를 판단할 수 있다. 경찰에 이런 힘을 나눠준 것은 견제와 균형을 통해 수사기관의 권한 오·남용을 막자는 취지다. 국민의 인권침해 최소화와 수사기관과 정치·경제 권력의 부당한 결탁 여지를 없애는 효과도 기대한다. 검경은 법 시행까지 촘촘한 후속작업에 힘을 기울여 그 취지가 퇴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1월 14일 (출처:경향신문DB)

권한이 커지면 책임 또한 커진다. 그런데 경찰이 검찰과 대등한 권한을 행사할 만큼 건강한지, 역량은 있는지 의심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버닝썬 사건에서 보듯, 경찰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 만큼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2018년 공무원 범죄자 3356명 중 절반 가까이가 경찰 공무원이었다. 직권남용·유기가 358건이나 됐고, 강제추행·강간 등 강력범죄 또한 적지 않았다. 검찰 못지않은 독재·군사정권의 앞잡이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탄압하던 경찰의 모습도 그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이는 낮은 윤리의식과 해이한 공직기강의 결과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영장 및 수사심사관제, 사건심사위원회 정착, 수사단계 변호인 참여 확대 등을 통해 경찰 수사의 신뢰를 확보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경찰은 12만여 인력에 수사경찰만 2만명이 넘는다. 범죄 수사는 물론 사회 구석구석의 치안을 담당한다. 거의 독점적인 정보수집권을 가지고 있고,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도 넘겨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공룡조직이 지휘 없는 1차 수사종결권까지 갖는 것에 시민은 걱정할 수밖에 없다. 경찰은 수사역량을 키우고 국민 모두가 수긍할 쇄신책을 내놓아야 한다. 정보경찰의 불법사찰 방지, 자치경찰제 도입, 국가수사본부 신설에 따른 투명한 수사지휘권 행사 등을 담은 경찰개혁 입법에 적극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혁명적 자기개혁 없이는 힘들여 만든 민주적 통제장치가 ‘먹통’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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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 가결이 선포되자, 법안의 첫 발의자인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동료의원들과 얼싸안으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큼 끝까지 마음놓을 수 없는 법안이었다. ‘유치원 3법’은 시민들의 분노가 만들고 통과시킨 법이다. 2018년 사립유치원 비리 실태가 국정감사에서 공개되며 법안이 만들어지고 패스트트랙까지 태워졌지만, 이후 한국유치원총연합회와 자유한국당의 거센 반발, 총선을 앞둔 지역 유치원들의 압력까지 더해지며 줄곧 무산 위기감이 감돌았다. 법안 통과는 끝까지 감시의 끈을 놓지 않은 여론의 힘 덕분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가운데)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 바른미래당 임재훈 의원이 13일 유치원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핵심내용은 사립유치원 회계 관리에도 유아교육정보시스템(에듀파인) 사용을 의무화해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교비회계 부정사용의 처벌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또 유치원 설립 요건을 강화하고, 사립유치원도 학교급식법 적용 대상으로 만들어 먹거리 안전을 확보했다. 공공성 있는 교육기관이라면 너무나도 당연한 최소한의 규정이다. 유치원 3법이 만들어지고 통과되는 과정을 거치며, 시장과 공공영역에 한 발씩 걸쳐 있던 사립유치원의 민낯이 드러났다. 또한 유아교육이 공공의 영역으로 나와야 한다는 시민들의 요구도 명확해졌다.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오른쪽)가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자신에 대한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가결된 직후 동료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유치원 3법 통과로, 사립유치원 적폐의 극히 일부분이 제거되고 최소한의 기준이 세워졌을 뿐이다. 벌써부터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치원 3법은 유아교육의 공공성을 세워나가는 출발점이다. 더 큰 틀의 공공성 확보가 필요하다. 시민들이 원하는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집 가까운 곳의 균등한 양질의 유치원에 기왕이면 싼값으로 다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지역이나 부모의 재산상 격차에 따라 교육에서 차별받지 않고, 교사처우와 교육프로그램도 개선해 달라고도 요구한다. 국공립 유치원을 원하는 목소리가 가장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8%)보다 현저히 낮은 국공립 유치원 이용비율(24%)을 시급히 끌어올리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이중적인 구조도 개선해야 한다. 시간도 예산도 많이 들겠지만, 뚝심있게 추진해야 한다. 선진국들은 이미 수십년에 걸쳐 해낸 일이다. 교육의 첫 단계인 유아교육부터 차별받지 않는 평평하고 높은 운동장을 만들어주는 것. 가뜩이나 줄고 있는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사회가 서둘러야 할 최소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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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18세 선거권은 고등학생도 세상을 바꾸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새로운 상징성을 선물한다. 교과서 안에서 지식으로만 존재하던 민주주의가 이제 삶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교과서 밖으로 걸어 나온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예를 들면, 선관위는 최근 “고등학교의 정치화 등 교육현장의 혼란이 우려된다”며 입법 보완을 주문했다. 이참에 학교와 정치, 그리고 선거와 관련된 몇 가지 점들을 짚어본다.

첫째, 지금까지 학교에서 정치담론은 일종의 금지어이고 회피어였다. 교육의 정치중립성은 정치를 가르치지 말라는 뜻으로 읽혔다. 반면, 교육기본법에서 교육은 정치를 가르치되, “어떠한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의 전파를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된다”는 단서조항을 달고 있다. 즉 제대로 된 정치교육을 하라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뜨거운 정치적 쟁점들은 각색되지 않은 논쟁적 형태 그대로 교실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둘째, 교실의 정치화를 염려하기보다 오히려 전향적으로 정치의 교육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야당 원내대표가 “교실이 정치판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염려했지만, 더러운 정치판을 깨끗이 정화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를 교실 안에 집어 넣는 실험을 해보면 어떨까? 정치 속에서 새로운 가치들이 실험되고, 정치 속에서 새로운 것이 학습되며, 그 학습결과를 평가하여 차기 투표에 반영하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학습정치’라고 부른다. 촛불을 통해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왔던 시민들이 보여준 엄청난 학습력에 비해서, 여의도의 프로 정치인들은 심각한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에 미래가 없는 것은 그 안에 학습력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 18세 학생들이 단편적 정보만으로 투표할 거라고 우려하지만, 사실은 성인들이 더 문제이다. 정치지형을 읽어내는 정치문해력도 하나의 문해력이라고 한다면, 한국 중장년 성인들의 일반 문해력은 청년세대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OECD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16~24세 젊은층의 문해력은 영국을 훨씬 앞지르고 있는 반면, 55~65세 인구의 평균 문해력은 그들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다. 우스갯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정치현실이 하나의 ‘문제’라면, 그 안에서 오답과 정답을 가려내는 일은 학생들이 선수일지 모른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수능에서 정답 찾는 것보다 정치지형을 읽는 일이 쉬울지 모른다.

성인들은 정치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국회의원이나 정당을 선택할 때도 주로 경험이나 호감도에 의지한다. 하지만 이제 정치선진화를 위해서라도 한번쯤은 전 국민이 각자 제대로 된 정치교육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가치와 헌법적 원리들을 기준으로 어떤 정당 혹은 어떤 후보가 헌법적 가치에 더 합당한지, 그 원칙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일은 결코 학교에서만 해야 할 교육은 아니다. 정당 강령과 정책을 읽고 분석하며, 의회를 모니터링하면서 그것이 구현되는 과정을 관찰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도 삶의 지혜만으로 되지 않는다.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는 당사자들의 몫이지만, 그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사유는 별도의 교육을 필요로 한다.

이제 평생학습시대이다. 정치쇄신은 국민 모두가 정치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사고쇄신을 하면서 시작된다. 평생직업능력개발도 중요하지만 평생시민교육도 정치사회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훨씬 더 정치 친화적으로 커야 한다. 스웨덴 청년정치가 툰베리 같은 리더들이 어릴 때부터 우리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면서 한국의 정치는 물갈이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선거교육은 학교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마을교육공동체 안에서 주민자치와 마을민주주의가 만나고, 그 안에서 어릴 때부터 정치담론에 익숙한 젊은이들을 길러낼 수 있다. 정치를 주제로 대화하더라도 “싸우지 않고”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타협과 소통의 문화가 불편하지 않은 생활정치문화가 만들어진다. 지역의 다양한 평생교육기관들과 시민교육단체들이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가 염려하는 것처럼 학교 안에서의 선거운동이 과열되고, 학생들이 잘 몰라서 불법선거에 동원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고등학생들의 선거캠프 참여는 독려될 만하다.

투표는 정권을 심판하는 도구이지만 새로운 학습이 없는 투표는 심판에 대한 또 다른 심판의 악순환을 낳을 뿐이다. 18세 투표가 반영된 새로운 정치지형도가 궁금하다. 그 결과는 4월에 드러난다.

<한숭희 | 서울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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