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대전의 연구실에 출근했더니 연구동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히 주차되어 있었다. ‘불금’을 마치고 좀 쉬다가 나와도 좋고, 안 나와도 좋을 것 같은 때이지만, 대학원생들이나 박사후 연구원 등이 여지없이 출근을 한 것이다. 방학 중 연구하려고 머무는 학교의 전통에는 “새벽 2시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이라는 게 있다. 늦게까지 실험하고 연구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로 가는 셔틀버스는 새벽 2시를 넘어서까지 출발한다. 또 이른 새벽 기숙사에서 연구동까지 학생들을 실어 나른다. 매점은 새벽 2시까지 운영되는데, 시험기간에는 그마저도 연장 운영을 한다. 교내 식당은 명절만 아니라면 세 끼 식사를 제공한다. 공부에 미쳐서 공부만 하라고 만들어낸 학교의 풍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9 to 6’ 바깥에서

일하고 생각하고 사람을 만난다

변화하는 생애주기와 일의 맥락

이를 고려하지 않는 워라밸 강조

손에 닿지 않는 솜사탕과 같다


한편 내가 근무하는 대학을 졸업한 후 이 대학에 취직한 제자는 오후 6시에 퇴근하면 학생이 아닌데도 공모전 스터디 모임에 나간다. 개발자들이 각자 작업한 코드를 매일 온라인에서 공유하는 ‘1일1커밋’ 운동이 있는데 여기에도 동참한다. 남는 시간에는 영어 공부를 한다. 지인 중 한 명은 스스로를 ‘N잡러’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한 곳의 직장에 다니면서 프리랜서를 겸직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두 직장을 날짜를 나눠 출근하게 됐다. N잡러는 몇 개의 직장을 갖고 있느냐보다 일의 맥락을 쥐고 집중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단다. 몇 달 전 멀쩡한 직장에 다니던 친구들은 유튜브 채널을 열고, 퇴근 후 시간을 기획과 촬영과 편집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잠을 못 자 다크서클이 내려와도 ‘그 재미’를 포기할 수가 없단다.

하이퍼 텐션. 사전에선 고혈압을 뜻하지만, 최근 텐션이라는 단어의 용법을 생각하면 이야말로 한국 사람들을 잘 표현하는 말인 것 같다. ‘하이 텐션’의 일본식 용법을 생각하면 감정이 최고조에 있기도 하고, 영미식 용법을 생각하면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다는 말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연 2000시간 넘는 과로에 대한 문제제기가 수십년 이어지고 주 52시간제의 도입과 더불어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의 시대가 왔지만, 일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커피와 에너지 음료를 마시며 일련의 압박 속에서 계속 일을 벌이고 궁리를 하고 자투리 시간을 삭제해 가는 사람들.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는 하이퍼 텐션을 가진 한국인들의 기여가 적지 않았다. 산업화 시기 해외의 기술을 ‘몰래’ 가져오기 위해 많은 엔지니어들은 해외 출장을 가서 호텔방에 모여 낮에 목격한 제품의 도면을 그려내느라 밤을 잊었다. 심지어 체제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민주화 또는 대안 사회를 꿈꾸던 운동권 대학생들조차 매일 밤 동아리방이나 학생회실에 모여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궁리를 몇 십년간 했다. “치열하게 살았다”는 산업화 역군과 민주화 투사를 관통하는 코드다.

N잡러나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직장인, 연구자와 학생들 중 많은 경우는 기업과 국가 같은 조직이나 정치적 대의에 충성하지 않는다. 항구적인 조직보다는 일시적으로 모인 프로젝트, 위아래보다는 수평적인 관계를 선호한다.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된 노동을 하기보다는 자기의 정체성을 ‘자기의 일’을 통해 찾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개인화되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하이퍼 텐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공통점이라 볼 수 있다. 어쩌면 이들은 군더더기 없이 하루를 최적화해 세계와 조우하려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워라밸의 시대에 대해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고 자정까지는 자신과 가족, 공동체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나머지는 재생산의 시간으로 보낸다는 생각은 19세기 마르크스 시절 유럽 노동운동가들의 관념이다. 오후 6시면 대다수 가게가 문을 닫고, 사람들이 퇴근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여가활동에 참여한다는 것 역시 유럽적 사고방식일 뿐, 편의점과 주점과 카페와 PC방이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고 새벽에도 택배가 문 앞까지 도달하는 2020년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수많은 사람들이 ‘9 to 6’의 세계 바깥에서 살고 일하고 생각하고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람들의 생애주기, 변화하는 일의 맥락 등을 고려하지 않은 워라밸의 강조는 불안정노동을 하는 이들에게 손에 닿지 않는 달콤한 솜사탕이거나, 한참 도전해야 할 이들에게는 사다리 걷어차기가 될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의 수많은 하이퍼 텐션을 가진 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브레이크일까, 아니면 고혈압을 관리할 혈압약과 관리일까? 전염병 같은 현상으로 보거나 “다시 뛰자 코리아” 관점으로만 부추길 일은 아닐 것 같다. 논의의 출발점을 ‘지금 여기’로 바꾸면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도 달라진다. 상상력의 여지가 많아졌으면 한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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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국 사회 생태 이슈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전환’일 것이다. ‘전환’은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과 생활양식의 변화를 찾는 일이다. 특히 ‘에너지 전환’과 ‘생태 전환’의 관점으로 올해를 예측할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은 자본주의 산업사회를 이끌었던 화석연료 및 핵 기반의 에너지원을 재생가능 에너지원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생태 전환은 개발주의 이면의 환경 훼손을 생태적으로 재자연화, 복원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올해는 에너지 전환의 주요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해결의 답은 에너지 전환에 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두 가지 문제의 원인은 석탄화력발전소, 그리고 석유를 사용하는 자동차, 선박 등 내연기관이다. 문재인 정부가 화석연료를 폐기할 수 있을지는 올해가 갈림길이다. 2050년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선포하는 국제사회에 ‘기후 악당’인 한국이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 주목할 만하다. 반기문 위원장이 이끄는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올해 석탄발전소 퇴출, 전기요금 합리화,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 등 ‘전환’을 위한 중요하고 큰 결정을 앞두고 있다. 생태계든 주민이든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정의로운 전환’의 관점으로,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입지 갈등도 풀어야 할 과제이다. 4월 총선, 정치가 에너지 전환에 응답해야 한다.

4대강 재자연화, 새만금 해수 유통, 용산미군기지 오염 정화, 평창 동계올림픽 가리왕산 복원, 비무장지대 생태보전 등 몇 가지를 2020년 생태 전환의 주요 과제로 예측할 수 있다. 올해 총선 전후로 금강, 영산강 5개 보 처리 방안이 확정된다. 빠르면 연말이나 내년 초 낙동강, 한강 재자연화 방안도 결정된다. 새만금사업 2단계 수질 개선 평가 용역도 완료된다. 더 나은 수질을 장담할 수 없다면 결국 새만금 수문을 영구적으로 열어야 할 것이다. 용산미군기지 반환 협상도 올해 개시된다. 국가공원에 대한 열망에 앞서 기름과 화학물질에 오염된 토양, 지하수를 오염자인 주한미군이 책임질지가 관건이다. 정부와 지자체, 학계와 시민사회가 합의한 가리왕산 ‘온전한 복원’이 강원도의 약속 파기와 정선군 투쟁위원회의 농성으로 원점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가리왕산의 운명도 곧 판가름 난다. 비무장지대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등재에 대한 북한의 호응도 관심사다. 이 외에도 제주 제2공항 등 중대한 현안이 발등의 불이다.

2020년, 환경을 넘어 생태로의 전환을 바란다. ‘환경’은 자연을 물리적 대상으로서 관리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생태’는 인간 가치와 한 몸으로 자연을 파악하고 삶의 전환을 요구한다. 위기의 세계는 환경론자가 아닌 근본적인 생태주의를 요청한다. 에너지 전환과 생태 전환은 ‘할지 말지’의 선택이 아니라, ‘해야 하는’ 생존 과제이며 지속 가능한 삶의 지향이다.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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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칼럼을 쓰기로 하면서 상큼한 글만 쓰자고 다짐했는데 쉽지 않다. 오늘도 우울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는다. 스마트폰을 켜지 말았어야 했는데…. 호주 산불은 여전히 번지고 있고 미국은 호르무즈 파병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쟁터에 가고 싶다는 청년의 댓글이 올라와 있다.

모든 비극에 참여하려 했다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될 테니 한 가지에만 관여하라던 사사키 아타루의 조언을 떠올려보지만 무력감은 이미 내 몸에 들어와 버렸다.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글처럼 “나는 그것을 물속에서 느끼고, 대지에서도 느낄 수 있고, 공기 속에서 냄새로 느낀다. 그 모든 것은 이제 사라졌다. 그 모든 걸 기억하는 사람도 사라졌다”.

2016년 말 광화문광장에서 콜드플레이의 노래 ‘Viva La Vida’가 울려 퍼질 때 잠시 희망을 걸어보기도 했다. 이제는 그때 신나게 불렀던 그 노래가 왕이 되고자 했던 우리 모두의 마지막을 노래한 것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제 난 홀로 잠을 자고 내가 한때 지배했던 거리를 배회하지. 난 알아차렸네. 나의 성은 소금 기둥, 그리고 모래 기둥 위에 서 있었다는 걸. 오 누가 왕이 되고 싶어 하겠나? 절대로 진실한 말 따위는 없다네.” 자신에게 닥친 비극적 사건을 두고 신에게 울부짖을 수 있었던 고대인들이 부럽다. 인간에 의해 자행된 “설명할 수 있는 비극”을 견뎌야 하는 현대인은 얼마나 우울한가?

나는 이런 시대에 우울하지 않은 사람은 위험한 존재라 생각한다. 크레이그 리슨 감독의 다큐 <플라스틱 바다>에 나오는 죽은 새의 위장에는 플라스틱과 비닐이 빼곡하게 들어가 있었다. 이런 불편한 장면을 줄기차게 보게 만드는 넷플릭스는 전 지구 시민을 위한 대학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 속편을 보면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이 의외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정상회의 직전에 일어난 파리 테러 사건 때문이었다고 한다. 잠시 세계 정치인들이 평상심을 잃고 죽음 앞에서 마음이 흔들렸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끔찍한 뉴스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챙겨 보는 이들을 보면 화가 난다

코에 빨대가 낀 거북이를 본 아이

더 이상 빨대를 찾지 않는데…

되레 나이든 어른들은 무감각하다


나는 끔찍한 뉴스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꼬박꼬박 챙겨 보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코에 낀 빨대로 괴로워하는 거북이 동영상을 보고 아이는 더 이상 빨대를 찾지 않는데 어른들은 무감각하다. 언젠가 친구에게 왜 이런 현실을 보면서 흥분하거나 우울해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자기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나서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이 바로 그 편협한 전문가주의를 벗어나야 할 때 아닌가? 그간의 전문성이 지금의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새로운 눈으로 현상을 보기 시작해야 하지 않는가?

현대 문명은 인간에게 신이 되라고 부추겼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했던 현대인, 엄격한 신과 고루한 가부장과 가난한 마을을 떠나 자수성가한 청년들은 이제 자기 확신에 가득 찬 노인이 되었다. 수시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국가 권력의 분신인 듯, 영원불멸의 신인 듯 행동하는 그들·나·우리는 지금 강박증과 분열증을 앓고 있다. 치유가 가능할까? 추운 광화문광장에 시위하러 어김없이 나가는 부모와의 반목을 정치 이야기를 하면 벌금을 내는 것으로 해결했다며 자랑하는 후배가 있다. 가족은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서로 마주하기 때문에 ‘현생인류’가 탄생했는데 7만년이 지난 지금, 신이 된 호모데우스는 더 이상 서로를 마주하려 들지 않는다.

조건의 변화 없이 의식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지금은 현상을 바라보는 의식을 바꿀 때가 아닌가 싶다. 유일신의 이름 아래 구축된 근대를 해체하는 것. “타 종교에도 진리의 빛이 있다”며 종교 간 대화를 시작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런 면에서 탁월한 이 시대의 선각자이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 다양한 신과 정령 중 하나로 살아가는 세계를 상상해보자. 그 신들의 세계에서는 개와 고양이와 나무와 정령들도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배안에 비닐과 플라스틱이 들어차 있는 새와 거북이와 고래도 아프다고 소리친다. 나는 ‘사회’를 살려내기 위해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말해왔지만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적 존재로서의 회복을 해내지 못하면 기본소득 제도도 효과를 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신들과 인간, 다종 다기한 생명체와 인공지능의 존재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지구의 시간이 열리고 있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신들과 아침마다 지구인에게 우울의 화살을 쏘아대는 정령들과도 친해져야 할 시간.

<조한혜정 |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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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5·18 광주는 그동안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온갖 왜곡과 폄훼라는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왔다.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17일부터 27일까지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북한의 남침 위협을 거짓으로 조작해 정권 무력 찬탈을 기도한 행위에 맞서 궐기한 광주 시민들의 저항운동이다. 5월21일 오후 1시경부터 27일까지 계엄군이 휘두른 총칼에 165명이 사망하고 84명이 행방불명됐으며, 30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러한 불법적인 국가 폭력에 대해, 1988년 5·18진상조사특위 청문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국가기관의 조사가 총 9차례 있었다. 하지만 과거사 청산과 중대한 인권침해 등에 대한 총체적인 조사가 미흡했고 12·12와 5·18 사건으로 기소된 16명이 유죄 확정 후 8개월 만에 석방 및 사면 복권됨에 따라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엄정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대법원 판결 부인과 나아가 5·18 왜곡으로까지 비화되었다. 5·18특별법 시행 1년3개월 만인 지난해 12월27일 국가 차원의 5·18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했다. 10번째 출범한 이번 진상조사위는 ‘5·18특별법’을 통해 기존 정부기관에서 행했던 진상 규명의 한계를 과감히 극복하고, 보다 강화된 조사권과 독립성을 가진 최초의 조사기구이다. 또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재발방지 대책, 국민 홍보와 교육, 5·18 왜곡과 폄훼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 등 7가지 국가 의무 이행이 담긴 최초 국가 차원의 5·18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는 5·18민주화운동을 하나의 정사(正史)로서 확립하는 계기가 되는 것은 물론 향후 모든 정부의 의무 이행으로 규정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처럼 역대 어떤 조사기구보다 중량감을 갖는 진상조사위에 바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여야가 추천한 위원들 간 사안에 따른 갈등과 대립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투명한 내부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둘째, 특별법에서 합법적으로 부여한 동행 명령장 발부와 검찰에 압수수색영장 청구 및 수사·고발 의뢰, 그리고 국회의 특별검사 임명 및 청문회 요청 등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해 지난 39년 동안 밝히지 못한 사건을 명확히 드러내는 마지막 기회로 삼아야 한다. 특히 국정원과 국방부가 보유하고 있는 관련 자료 공개 요구는 특별법이 부여한 권한으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으므로 통치권 차원의 협조나 지시가 선행되었으면 한다.

셋째, 피해자와 가해자뿐만 아니라 사건의 정황과 진실을 알고 있는 국민도 함께 참여하는 5·18 진상조사활동이 되길 바란다. 특히 지난해 5·18 당시 전 미군 군사정보관 김용장씨와 전 보안사 특명부장 허장환씨의 증언, 그리고 노태우 아들 노재헌씨의 5·18묘지 참배와 거듭된 사과 등은 향후 여러 관련자가 제보와 증언, 신고 등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5·18 진상규명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상식과 정의’의 문제이다. 40년이 되는 지금까지 5·18민주화운동이 거짓된 애국이란 이름으로 포장돼 진실이 가려져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고, 이 진실이 명확히 규명돼야 용서와 화해, 그리고 우리 모두가 바라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정원식 | 연원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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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 수술 후에도 군복무를 이어가고 싶다.” 

2020년 1월16일. 중요한 뉴스가 전해졌다. 남성으로 임관한 A하사가 성전환 수술을 받았고, 육군이 그녀의 전역 여부를 심사할 예정이라는 소식이었다. A하사는 성별 정정을 신청해 놓았으며, 정정 후에는 여군으로 계속 복무하고 싶다는 의사를 군에 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하사의 전역심사위원회가 열리는 이유에 대해 육군은 “음경 훼손과 고환 적출이 각각 5급 장애이고, 5급 장애가 두 개면 심신 장애 3등급으로 분류된다. 이는 전역 심사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전역심사위원회가 열린다고 해서 A하사가 반드시 강제전역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와 무관하게 이 뉴스는 이미 새로운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우선, 남군의 경우 음경과 고환이 없으면 장애로 판정된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국군의 음경과 고환에 대한 집착은 유명하다. 예컨대 2010년을 기준으로, 복무 적격자를 판정하는 신체검사에서 무정자증이 4급(보충역), 성기발육부진이 5급(제2국민역), 그리고 음경 절단 중 ‘성교 불능’이 6급(면제)으로 분류됐다. 2016년 이 기준이 다소 조정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신검에서 외부성기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도대체 정자 생산능력이나 성기 크기와 전투력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퀴어 이론가 루인은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에서 이를 꼬집으며 징병제를 통한 정상 남자 만들기는 다른 의도를 품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병역법은 이성애 규범적 성관계를 할 수 있는 신체와 생식력을 갖춘 남자만을 남성이자 보편 국민으로 인정함으로써 “남성의 섹슈얼리티와 몸을 관리하려는 기획”이라는 것이다. 군형법이 남성 동성애를 처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하사를 지원하고 있는 군인권센터는 전문가 소견에 따라 “성전환 수술의 부작용은 호르몬 요법과 운동, 식이요법 등으로 대체 가능”하며 “고환절제술(성전환수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군복무에 부적합하다고 볼 의학적 근거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더불어 A하사 역시 자신의 성별과 복무 능력 사이엔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고 강조한다. 당연한 일이다.

두 번째로, 트랜스젠더 여군의 공식적인 탄생은 한국 사회에 팽배한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많은 이들이 “트랜스젠더는 과도한 여성성과 남성성을 수행하면서 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A하사는 전통적으로 남성성의 상징이던 ‘군인됨’을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여성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다.

물론 트랜스 여성이 ‘여성성의 신화’를 강화한다는 편견에는 “여자보다 더 여자다운” 트랜스 여성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온 사회와, 그런 사회 속에서 여성다움을 전시하고 수행함으로써 ‘여성으로서의 정상성’을 획득하려 했던 트랜스 여성들의 역사가 놓여 있다. 예컨대 영국의 여왕왕실수색연대로 5년 동안 복무하고 에베레스트산에도 등정했던 잔 모리스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성전환 수술 후 갑자기 차를 뒤로 주차하거나 병뚜껑을 따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것이 그의 시대가 요구한 여성성이었던 셈이다.

상황은 변하고 있고, A하사의 경우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과도한 여성성을 수행하는 비트랜스 여성이 여성 전체를 대표할 수 없듯이, 트랜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리고 비트랜스 여성의 여성성만큼이나 트랜스 여성의 여성성도 사회적 조건에 따라 문화적으로 구성된다는 것. 이처럼 트랜스 여성의 여성됨은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으로 고정되지 않으며 유동적이고 다양하다.

트랜스젠더 여군의 탄생은 근대 국민국가 만들기를 통해 형성된 남성성과 여성성의 신화를 무너트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더불어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의 발전과 함께 A하사의 싸움이 가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성평등’이란 ‘다양한 성평등’으로 함께 온다. 군 당국을 비롯하여 한국 사회가 이런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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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인천에서 비행기로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러시아 영토의 섬. 태평양을 바라보고 남북으로 길게 뻗은 이 섬은 남쪽으로 일본 홋카이도, 북쪽으로 러시아 본토와 마주하고 있다. 우리 동포들의 슬픈 역사가 새겨진 섬이다. 일제강점기로 거슬러간다. 당시 북위 50도 이남의 남사할린은 일본의 영토였다. 전쟁시기 일본은 국가총동원령에 따라 수만명의 식민지 조선인을 남사할린 탄광으로 강제징용 보냈다. 마을마다 할당된 징용 몫을 채우기 위해서 맏형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신 징용길에 올랐고, 이제 막 결혼한 새댁은 남편 혼자 보낼 수 없어 보따리를 싸 뒤를 따랐다.

사할린에 보낼 때는 일본 식민지 백성이었지만,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이 섬을 소련에 넘겨주면서는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남겨졌다. 귀향선에 조선인은 탈 수 없었다. 남겨진 조선인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자신들을 데리러 올 것이라 믿으며 사할린 섬의 남쪽 끝 항구도시 코르사코프로 모여들었다. 매일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망향의 언덕에 올라 고향으로 가는 배를 기다렸다. 하지만 냉전의 장벽은 멀지 않은 뱃길마저 가로막았고 해방 후 혼란했던 고국은 이들을 외면했다. 사할린에 남겨진 한인(韓人)들은 수십년 동안 망향의 그리움을 담고 동토의 땅에서 살아남았다.

1990년에 이르러 한국과 소련이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비로소 고향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사할린 한인의 귀국을 위한 여러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오랜 시간 동안 버림받았던 이들의 복잡한 삶을 담기엔 지금의 법과 제도는 너무 엉성하거나 무책임하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삶과 인생을 조국인 대한민국의 공문서에 사실대로 기록해달라는 것이다. 우리 법원은 2014년 무국적자로 살아온 사할린 한인2세에게 처음부터 국적을 이탈한 적이 없는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판결했지만, 지금도 복잡한 행정절차와 법적 공백으로 인해 한국인으로 기록되지 못한 동포와 그들의 자녀들이 많다. 사할린 한인의 삶과 이들의 가족을 공적으로 기록하는 것은 단순한 사실 확인을 넘어서 그동안 우리가 외면했던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기억하고, 이들을 우리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의지가 필요하다.

게다가 최근에 고국으로 영주 귀국한 어르신이 사망하였는데 자녀들이 우리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되지 못해 친족관계를 인정받지 못해서 사망신고를 비롯한 고인의 장례절차에 여러 어려움이 발생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남겨진 사할린 한인 동포들이 대부분 고령임을 고려할 때 시급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현행 ‘재외국민 가족관계 특례법’의 가족관계등록 요건을 체류국의 상황을 고려하여 완화하거나, 법무부 자체적으로 사할린 한인의 가족관계등록부 처리를 위한 별도 행정지침을 마련하는 것 등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다른 욕심 없다. 죽기 전에 내가 한국사람이고, 죽은 남편과 남은 자식이 내 가족이라고 적힌 호적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올해 아흔셋 어르신의 소원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조영관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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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비록 당신을 통해 태어났지만 당신으로부터 온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당신과 함께 지낸다고 하여도 당신에게 속한 것은 아니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주되 당신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는 말라. … 아이들의 영혼은 당신이 꿈에서도 가볼 수 없는 내일의 집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레바논 출신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칼릴 지브란은 저서 <예언자> 중 ‘자녀에 대하여’에서 부모 자녀 관계를 이렇게 설파했다.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한 장면. JTBC 방송화면 캡처

교육열 높은 한국 부모들이 취한 태도는 지브란의 당부와는 정반대였다. 극한 경쟁의 불안한 시대, 불안한 부모들은 선행학습으로, 학습코치로, 자녀가 남보다 빨리 지름길로 갈 수 있도록,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업고 뛰며 공부의 답도, 인생 성공의 답도 미리 그려 아이 손에 쥐여줬다. ‘헬리콥터 부모’ ‘매니저 가족’ 등의 용어가 유행했고, 정점에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있었다.

부모들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 19일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성인 남녀 4000명을 대상으로 한 2019년 교육여론조사 결과, ‘우리 사회에서 자녀 교육에 성공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자녀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경우’(25.1%, 부모 응답자만 한정했을 때 27.3%)가 1위로 꼽혔다고 한다. 총 6가지의 선택지 중 ‘자녀가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크는 것’(22.4%)이 2위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한 경우’(21.3%)가 3위였다. 눈길을 끄는 지점은 2015∼2018년 줄곧 1위였던 ‘자녀가 좋은 직장에 취직한 경우’라는 대답이 밀려나고, 처음으로 순위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아동의 발달을 위한 최고의 지원은 ‘자신의 힘에 대한 확신’이다. 용기 있는 아동들은 나중에 외부의 힘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운명에 맞설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운명에 맞서는 힘은커녕 아이들에게 감기 한 번 걸릴 기회도 제대로 주지 않고 보호했던 한국 부모들의 생각을 바꿔놓은 요인은 뭘까. ‘좋은’과 ‘직장’의 의미가 모두 급변하는 세상에서, 교육 성공의 한 가지 잣대가 자녀와 부모의 삶 모두를 파괴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브란의 ‘쿨한 부모 자녀 관계’ 당부가 100년을 돌아 한국에 상륙했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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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은 날


사랑하는 이의 발톱을 깎아주리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부은 발등을


부드럽게 매만져 주리


갈퀴처럼 거칠어진 발톱을


알뜰, 살뜰하게 깎다가


뜨락에 내리는 햇살에


잠시 잠깐 눈을 주리


발톱을 깎는 동안


말은 아끼리


눈 들어 그대 이마의 그늘을


그윽하게 바라다보리


볕 좋은 날


사랑하는 이의 근심을 깎아주리


이재무(1958~)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햇살이 환하게 밝은 날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발톱을 깎아주겠다고 시인은 말한다. 고단한 일로 부은 발등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겠다고 말한다. 발톱을 깎다가 사랑하는 이의 이마 그늘도 가만히 바라보겠노라고 말한다.

이 시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발톱과 발등과 이마를 바라보던 눈길이 멀리 “뜨락에 내리는 햇살”로 옮겨가는 데에도 있다. 발톱 깎는 소리만 들릴 법한 고요하고 아늑한 실내의 공간이 은은하게 햇살 내리는 바깥 공간으로 옮겨가는 데에도 있다. 이 조용한 두 공간을 우리의 일상에서도 가끔 발견했으면 좋겠다.

이재무 시인은 58년 개띠이다, 시 ‘58년 개띠를 위한 찬가’에서 이렇게 썼다. “친구여, 노래 한 곡 들으시게나/ 나무가 피우는 꽃은 모두가 젊다네/ 고목이 피운 꽃으로도 벌과 나비는 날아든다네/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는 그늘처럼/ 우리는 날마다 생의 부활을 살아가세나.” 이 시구는 우리 모두를 위한 찬가일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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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 우리 사회는 혐오와 차별로 얼룩졌습니다. 자유롭게 이용하되 흔적으로 남아 증폭된 면이 없지 않으나, 모두 소셜미디어(SNS) 탓은 아닙니다. 점잖고 예의 바르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상해져서도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팍팍하고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만도 아니고, 극우성향의 언론과 품위 없는 일부 정치인들 탓만도 아닙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맞고 복합적이기는 합니다만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이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던 말과 무심코 했던 행동들이 ‘문제’로 인식되고 있어서입니다. 문제라고 인지하는 ‘개인들’과 의제로 제기할 수 있는 ‘집단’이 존재해서입니다. 특정 집단 정체성에 기초한 ‘저항의 정치학’이 가능해서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유사한 일은 있었습니다. 1980년대 민주화의 열기가 활화산처럼 분출할 때, 대한민국은 ‘노동자’, ‘민중’, ‘민족’ 등 새롭게 구성된 집단 정체성으로 독재체제와 제국주의에 저항했습니다. 구성되었다 함은 착취와 핍박, 저항과 투쟁의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처지를 인지하고 스스로를 노동자, 민중, 민족과 동일시하면서 정체성을 형성했다는 의미입니다. 영어에서 ‘정체성’을 의미하는 명사 identity가 ‘동일시하다’, ‘확인하다’라는 동사 identify에서 유래한 이유입니다.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것이거나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본래의 성질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 왔으며, 식민지와 냉전체제의 유산들을 하나하나 청산하는 작업들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나서야 비로소 ‘여성’, ‘성소수자’, ‘이주자’, ‘난민’, ‘장애인’ 등을 중심으로 한 정체성의 정치가 격렬히 부상하고 있습니다. 서구에서 반세기 전 반차별, 반제국주의, 반인종주의, 반이성애중심주의, 반남성중심주의에 기반한 운동이 거의 동시적으로 진행된 것에 비하면 다소 지체된 감이 없지 않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지정학적 특성과 경제·문화적 상황에 따른 것이므로 선발/후발이라는 탈맥락적 비교는 부당합니다. 

물론 여성들은 1980년대부터 부차적 문제나 부분 운동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으로 독자적 운동조직을 만들고 법과 정책을 만들기 위해 싸우며, 성평등 문화를 확산시켜왔습니다. 그러나 당시 상당수의 여성 활동가들이 민중의식을 선취하고 자본주의의 구조에 저항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데 반해, 최근 여성들은 일상에서 성차별의 문제의식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정체성의 정치가 격발되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 될 이유는 없습니다.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이자 변화해야 한다는 요청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어떤 조건에 놓여 있었는지 되짚어보기보다는 구조적 변화를 요청하는 이들을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로 여기거나 또 다른 독설로 응대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해결해도 될 사소한 일로 대의를 그르친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나-개인을 공격한다고만 여겨 다시 타인을 무딘 칼날로 공격하기도 합니다. 그간 당연하다고 여겼던 생각들이 편견이요, 일면 누렸던 특권들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타인에게 위해를 입혔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은 뿌리 뽑히지 않은 과거의 문제에 또 다른 문제를 착목시켜 갈등의 원인을 증폭시킬 뿐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 지켜 온 신념과 가치가 유일한 진리라는 생각도 문제입니다. 나를 형성하는 정체성이 단 하나요, 그것만이 가장 중요한 억압과 차별의 지표라고 여기는 생각도 문제입니다. 타인과 나를 구별하는 차이가 하나가 아니듯, 차별을 야기하는 차이 또한 하나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흔히 사용되는 젠더, 인종, 계층, 섹슈얼리티, 장애 이외에도 학벌(학연)과 지역(지연)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유독 크게 작동하는 특수한 차별 범주도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누가 더 차별받느냐, 어떤 집단이 더 혐오의 대상이 되느냐는 상당히 맥락적입니다. 누구나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고, 사회적 위치와 상황에 따라 판단하되 결과의 파장과 심오함이 다를 수 있다는 신중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내가 어떤 일로 가슴 아픈 사이, 누군가는 잉여인간이 되고 벼랑 끝에 서 있으며, 목숨이 박탈당한다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합니다. 

어느 한 집단이 사라진다고 내가 현재 경험하는 모든 차별과 혐오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나 자신이 바로 그 집단의 부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곧 경자년(庚子年)이 시작됩니다. ‘나’를 돌아보고 ‘우리’를 새롭게 구성할 2020년대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사랑과 연대, 평화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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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전 의원이 19일 귀국하며 “실용적 중도 정치를 실현할 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부터 바른미래당까지 두 차례의 제3지대 정당을 만들어 부침을 겪은 그가 총선 87일을 앞두고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 참패 후 칩거하다 9월 독일로 떠난 지 1년4개월 만이다. 안 전 의원은 인천공항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국정운영 독주를 저지하는 데 앞장서겠다”며 “(보수혁신통합추진위에) 관심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야권도 혁신 경쟁으로 국민의 선택권을 넓히면 (총선에서 여당과의) 일대일보다 더 합이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보수통합 참여가 아닌 제3의 길을 다시 택한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당적 갖고 있는 바른미래당을 리모델링할지, 신당을 창당할지 기로에 설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1년4개월여 만에 귀국하며 큰절을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안 전 의원의 제3지대 착점은 새해 벽두의 정치복귀 선언과 신간을 통해 어느 정도 예측됐었다. 극단적 대치로 피로감이 높아진 정치, 전국 득표율로 비례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준연동형비례’ 선거제를 정치 재개의 두 토대로 봤을 터다. 그러곤 설 연휴를 앞둔 휴일에 귀국 이벤트를 한 것이다. 안 전 의원은 20일 국립현충원과 광주 5·18묘역을 참배하고, 처가·친가가 있는 여수와 부산을 찾는다. 그는 귀국 회견 모두·말미에 두 차례나 “바른미래당 합당 과정에서 국민의당을 지지했던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첫 동선까지 더해지며 그가 호남 기반으로 중도개혁을 지향한 ‘어게인 국민의당’을 정치 재개의 착점으로 삼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과거의 안철수와 뭐가 달라졌는지 묻자 “간절해졌다”고 했다. 총선도 출마하지 않고,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사람들을 국회에 진입하도록 돕겠다”고 했다. 정치인에게 장기 외유는 유불리가 교차한다. 길을 잃은 정치의 새 출발선으로 삼을 수 있지만, 지지 세력·조직과 존재감은 협소해졌을 수 있다. 평론가들이 보는 안철수 귀국도 비슷하다. 총선 바람을 또 일으키고 싶겠지만 대선 거점만 가져도 다행이란 시각이 많다. 정치가 8년 전보다 나빠졌다는 그의 말엔 ‘새 정치’를 훼손·오염시킨 원인 제공자라는 반론이 붙는다. 무엇보다 정치 입문 9년째인 그의 노선과 정체성은 여전히 모호하다. 귀국 회견에서 지향한 ‘행복한 국민’ ‘공정·안전한 사회’ ‘일하는 정치’는 모두 그러길 바라는 교과서 속 단어들이다. ‘반문’과 ‘반태극기’ 사이 정치공간만 노렸지 시대적 통찰과 대안 없이 명멸한 제3지대 깃발은 한둘이 아니다. 공학만 넘치고 구체성은 없는 게 16개월 전 한국을 떠났던 ‘안철수 정치’였다. 절치부심한 차이가 있는지, 그로선 비전과 정책을 내밀고 평가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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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7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과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2017년 당시 유 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의 뇌물수수 등 비위 사실을 알고도 특별감찰반에 감찰 중단을 지시했고, 금융위에 별도 진상조사 없이 유 전 국장의 사표 처리를 요구했다는 혐의다. 앞서 법원의 1차 판단은 “범죄혐의가 소명된다”였다. 서울동부지법 권덕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달 조 전 장관에게 청구된 영장을 기각하면서 “법치주의를 후퇴시켰고,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저해했다”며 “죄질이 나쁘다”고 했다. 도망·증거인멸 우려가 없어 구속사안은 아니지만, 죄가 될 개연성은 있다는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그러나 권 부장판사의 영장 기각사유가 조 전 장관의 유·무죄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영장심사는 구속 필요성을 따지는 심문이지, 유·무죄까지 판단하지 않는다. 조 전 장관에 대한 유·무죄는 다시 시작될 1심 소송에서 드러날 것이다. 쟁점은 청와대 감찰 중단이 직권남용죄에 해당되는지다. 직권남용죄는 직권남용이 있어야 하고, 이런 행위가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성립된다. 조 전 장관과 청와대 측은 “검찰에 수사 의뢰할지 등은 민정수석실의 고유권한”이며 “유 전 부시장과 관련해서는 수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본인이 조사를 거부해 확인된 비위 혐의를 소속 기관에 통보했다”고 주장해왔다. 직권의 남용도,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사실도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외압으로 비정상적인 감찰 무마 결정이 이뤄졌다면 직권남용이다”라는 입장이다. 

조 전 장관에 대한 기소는 두번째다. 그는 이미 자녀 입시비리 등 관련 12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김기현 경찰 수사’ 청와대 개입의혹을 제외하면 강제수사 전환 143일 만에 그에 대한 검찰수사는 사실상 마무리됐다. 조 전 장관은 “도덕적 책임을 통감하고, 정무적 판단에 미흡함도 있었다”면서도 “결론을 정해둔 수사에 맞서 법정에서 하나하나 반박하겠다”고 했다. 검찰은 가지고 있는 증거를 모두 꺼내어 죄의 입증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법원은 법리와 증거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가려주길 바란다. 무엇보다 정부와 정치권은 ‘조국 사태’로 갈라진 여론 수습에 나서길 바란다. 국민들도 이제는 갈등과 분열에서 벗어나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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