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말이 말을 낳는다”는 속담이 있다. 교통수단과 정보매체가 제한되었던 때에도 어떤 특정한 정보나 뉴스가 빨리 전달되고 확산하는 모습을 잘 묘사했다. 특히 격변과 혼란의 시기에 백성들은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담은 메시지를 비밀리에 주고받았다. 집권자들은 이를 유언비어(流言蜚語)를 퍼트리는 행위라며 추적하고 탄압했지만 정상적인 언로(言路)가 막힌 상황에서 정보나 소문은 빠르게 여러 샛길을 만들며 제 갈 길을 찾기 마련이었다. 

다양한 정보매체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오늘날에도 이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과거처럼 언로가 막혀서 생긴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많은 언로로 인한 혼란이 문제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누구나 자신의 정보나 의견을 전달할 수 있지만 집단이 만들어 내는 정보에 개인이 쉽게 휩쓸리는 위험도 그에 따라 커졌다. 디지털 문명의 비판자인 제란 러니어는 이런 현상을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위병’에 빗대 ‘디지털 모택동주의’라고 불렀다. ‘조국사태’를 둘러싼 소셜미디어 내 갑론을박의 모습도 이에 거의 가까운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는 의도적으로 퍼트리는 가짜뉴스도 양산되기 마련이다. 유언비어와의 전쟁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정보화시대에는 더욱 어려운 싸움이 됐다. 이른바 ‘댓글부대’가 몰려다니며 근거 없는 거짓 소식을 퍼뜨리는 행위를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은 그래서 비등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뉴스가 거짓인지 아니면 과장된 표현의 결과인지를 법적으로 가르기도 힘들며,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법적 처벌을 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가짜뉴스가 민주사회의 불가결한 요소인 의사 표현의 자유를 악용, 언론매체 일반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켜 건전한 공론장의 성립을 위협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 문제는 또 기존의 정치, 법과 언론이 과연 그러한 가짜뉴스를 규제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느냐는 물음과도 직결되어 있다. ‘정통한 소식통’에 의거한 북한과 관련된 많은 정보나 뉴스가 며칠 지나지 않아 가짜뉴스로 판명되어 북한에는 예수처럼 ‘부활’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이럴 때 나오는 변명의 소리는 기껏해야 ‘오보’였다는 수준이다. 의도적으로 흘린 가짜뉴스는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선거 때가 되면 으레 기승을 부리는 온갖 가짜뉴스가 사회적 미디어에 넘쳐난다. 금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중상과 모략, 또는 허위사실 유포로 인해 후에 당선이 무효가 되기도 하지만 과열된 선거 분위기는 진실과 주장 그리고 허위의 경계를 무너뜨리도록 만든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가장 많이 읽혔던 “프란치스코 교황,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를 선언하여 충격”이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실린 가짜뉴스는 96만번의 공유, 반응 및 댓글이 실렸다. 게다가 당시 많이 읽혔던 10개의 뉴스 가운데 5개가 가짜뉴스로 판명되었다. 이런 정황을 고려, 2017년 10월에 발효된 독일의 ‘네트워크실시법’은 이의가 제기된 사회적 미디어의 내용을 운영자가 24시간 이내에 삭제하거나 차단토록 하고 최고 500만유로(약 64억원)의 벌금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싱가포르는 작년 5월 최고 100만 싱가포르달러(약 8억6000만원)의 벌금과 10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반가짜뉴스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법이 도리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의 소리도 높다. 사회적 미디어의 운영자, 이용자 그리고 이의 운영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국가 사이에 균형 있는 상호견제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내용들이다.

“진실은 너무 교활해서 붙잡기 힘들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어떤 뉴스의 내용이 아예 날조인지, 가능성의 범주에 속하는지, 아니면 진실에 가까운지를 구별하는 문제는 오늘에 이르러 특별히 문제거리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정보와 이의 속도와 함께 움직이는 정보화시대에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과제는 쉽지 않다. 진리의 원칙을 확실성과 명증성에서 찾았고 단순히 가능하다고만 여겨지는 모든 것조차도 허위라고 주장했던 근대 합리주의의 원조 데카르트가 들으면 놀라 자빠질, ‘탈(脫)진실’의 시대라는 말까지 나돈다.

진실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뿌리를 내린 이런 상황이 바로 가짜뉴스의 양산과 유통도 가능한 세상으로 만들었다. 회의주의와 상대주의, 나아가 냉소주의까지 가세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가짜뉴스가 과연 법에 따라 규제될 수 있을지에 대해 낙관만 할 수 없게 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사회적 신뢰의 결핍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주위의 사건을 보다 단순화해서 보려는 욕구도 동시에 강해진다. 기존의 정치나 법, 또는 언론이나 전문가 집단이 이러한 욕구들을 제대로 충족시켜주고 신뢰를 쌓았다면 가짜뉴스가 들어설 공간도 그만큼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가짜뉴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와 언론매체, 가짜뉴스와 관련된 법적 책임 문제에 대해 계속 미적거리는 소셜미디어 기업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해결의 열쇠는 결국 깨어 있는 시민이 쥐고 있다. 정보매체에 실렸다고 이 모든 것이 진실일 수는 없다는 확신이 이를 향한 첫걸음이다. 위에서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말도 실은 독일의 풍자작가이자 화가였던 빌헬름 부슈(1832~1908)가 남긴 말이었다. ‘가짜인용’도 이런 식으로 정보매체 안에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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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3일 솔레이마니 전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부대 사령관을 사망케 한 미군 드론 공격으로 새로운 중동전 위험성이 우려된다. 이란은 그의 죽음을 순교로 애도하며 즉각적으로 대미 보복에 나섰다. 지난 8일 이란군은 이라크 내 미군기지 두 곳을 미사일로 타격했다. 그리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미 대사관을 포함해 각국 공관이 소재한 바그다드 그린존을 타깃으로 삼아 또다시 로켓공격을 감행했다. 이란이 보복반격을 해올 경우 ‘불균형적’ 방식으로 군사공격에 나설 것임을 천명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강력한 경고가 무색해졌다. 더욱이 이라크 주둔 미군기지 2곳에 대한 미사일 공격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군사적 보복이 아닌 추가 경제제재 카드를 내민 후에 일어난 이란군의 그린존 로켓공격은 트럼프의 입장을 곤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란은 대대적인 대미 보복전에 나설 것임을 공식화하고 핵합의를 폐기할 것임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이란의 행태는 일견 냉정히 계산된 모습을 보인다. 백악관을 공격하자는 분노가 비대했지만 비례적 보복을 강조한 최고지도자의 지시와 뒤이은 일련의 외교적·군사적 행위는 사뭇 절제돼 있기 때문이다. 상황 악화 조짐은 농후하나, 향후 이란 정규군이 직접 대규모 보복전에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우크라이나 민간항공기 오인 격추로 인해 군에 대한 이란 국민의 신뢰와 지지도 하락 국면이다. 과거처럼 친이란 세력에 의한 대리전으로 반격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도 기존 엄포와는 달리 수위를 조절하는 모양새다. 양국 공히 결정적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는 한, 당장 선제타격이나 확전으로 사태를 몰고갈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국 정부는 지난해 미국 요청에 따라 오는 2월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에 청해부대를 파견하기로 했다. 호위연합체에 연락장교도 이미 파견한 상태다. 

단계적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 상선과 유조선 엄호를 위해 호위연합체와 별개로 청해부대 독자 파견을 우선 고려해볼 수 있다. 동맹국 요청에 답하고 이란과의 관계도 고려한 차선책이다. 한·미동맹을 고려해 정부도 이 안을 염두에 둔 듯하다. 만약 해협 봉쇄 등으로 사태가 전면전 상황으로 악화, 미국의 강력한 파병 요청이 있으면 전투함에 앞서 병원선이나 소해함을 호위연합체에 파견하는 방안이 있다. 물론 추가적 파병은 호주·일본 등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의 파병 상황을 전제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사태가 악화되어 미국 중심의 다국적군이 창설될 경우라도 이들의 입장을 살피며 대처하자는 것이다.

미국과 이란 간 일대일 전쟁에 우리 군이 동맹이라는 틀 안에 묶여 무리하게 개입할 경우 국민적 저항 또한 만만찮을 것이다. 그렇다고 외교수장의 답변처럼 미국과 이란을 동일선상에 놓아 미국과 우리의 입장이 같을 수 없다는 식의 전략적이지 못한 말을 해서는 곤란하다. 지난 70년 미국의 전략적 셈이 어떻든 과거 미국 젊은이들이 피를 흘려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데 앞장섰고, 지금은 국방수권법(NDAA)까지 제정하며 주한미군 감축과 철수를 법제화한 동맹국 아닌가?

한·미동맹의 기본 정신을 존중하되 국가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책 선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해상수송로를 통한 원유 및 가스 수송로 확보, 자유 항해 보장 및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어느 국가든 함정 파견은 명분도 있고 국제적으로 용인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일도 정부의 몫이다.

<고성윤 | 한국군사과학포럼 대표·전 국방연구원 현안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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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즈음이면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윤극영님의 동요 ‘설날’에 나오는 ‘까치설날’의 의미다.

설을 주제로 한 그림에 까치가 자주 등장하고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속설도 있다 보니, ‘까치설날’을 진짜 까치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까치설날’은 윤극영님의 동요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던 말이다.

이와 달리 예부터 ‘아치설’ 또는 ‘아찬설’은 있었다.    

‘아치’와 ‘아찬’은 ‘작은(小)’을 뜻하고, 이것의 경기도 사투리가 ‘까치’다. 즉 음력 정월 초하루가 ‘큰설’이고 그 전날인 섣달그믐이 ‘아치설(작은설)’인데, 윤극영님의 동요에서 ‘아치설날’이 ‘까치설날’로 바뀌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까치설날’을 “어린아이의 말로, 설날의 전날 곧 섣달그믐날을 이르는 말”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편 이즈음 ‘설을 세다’ ‘설의 쉬다’ 따위 표현을 흔히 쓰는데, 이때는 ‘설을 쇠다’로 써야 한다. ‘쇠다’는 “명절·생일·기념일 같은 날을 맞아 지내다”를 뜻한다.

<엄민용 스포츠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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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최근 주진모씨가 휴대폰에 저장된 정보를 범죄집단에 빼앗긴 뒤 협박을 당했다고 한다. 며칠 뒤 그가 지인과 주고받은 문자와 사진이 온라인에 광범위하게 퍼졌다. 협박의 피해자는 다수인 것으로 보도되었는데, 그중 유명 셰프의 이름도 알려졌다. 피해자들의 휴대폰에 저장된 정보들이 휴대폰 제조사의 클라우드에 연동되어 있었는데, 범죄집단이 비밀번호를 알아내 탈취해 갔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사용하는 다른 사이트의 비밀번호를 알아내 입력해 보았거나, 무작위적으로 각종 번호를 입력해 보는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범죄집단은 주진모씨가 협박에 응하지 않자, 탈취한 정보를 지인과 언론에 유포하고, 그래도 응하지 않자 온라인에 유포했다. 

디지털 세상의 명암을 보여준 이런 협박이 가능한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인간은 누구나 사생활이 있는데, 그것이 완전히 반듯하기는 어렵다. 둘째, 디지털 시대의 행적은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유출되고 재구성될 수 있다. 셋째, 평판의 넓이와 중요성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모든 사람의 사회적 생명이다. 범죄집단은 그것을 파고든다. 난처한 사생활이 집약된 디지털 정보를 탈취해 궁지에 모는 것이다. 디지털, 클라우드, 해커 같은 단어 때문에 새로운 시대의 세련된 범죄처럼 느껴지지만,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범죄다. 대상은 유명인만이 아니다. 뉴스의 초점이 되지 않을 뿐이지 남녀를 불문하고 많은 일반인들도 범죄자들이 불법적으로 촬영하거나 탈취한 자료로 고통받고 있다.

지금 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그의 선조 중에 아무도 후손을 잇는 것에 실패한 적이 없다. 수백만년 전의 아득한 옛날부터 단 한 번이라도 종족 보존에 실패했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얼마나 음란한 존재이겠는가. 성적인 요소는 삶의 본질적인 부분이면서도, 문명의 압력에 의해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마치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 결과로 우리 사생활의 가장 난감한 부분이 생겨난다. 사람의 성적 관념이나 행동은 천차만별이다. 단정할 수도 있고, 자유로울 수도 있으며, 기이할 수도 있다.    

이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이가 보기에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어도, 인간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유롭게 사생활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사적인 영역을 이 사회가 들추어내 처벌하고 모욕하지 않으리라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사생활이 다른 이에게 알려져도 떳떳한 경우라면 문제가 없고 협박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런 저런 흠결이 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그에 대한 부적절한 표현 등을 문자로 주고받았다고 알려진 주진모씨를 옹호하자는 뜻은 아니다. 협박의 피해자이기는 하지만, 이미 드러난 이상 대중예술인으로서 불가피하게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사생활의 중요성 또한 간과되면 안된다. 게다가 스크린에 드러난 스타의 멋진 모습이 그의 전부가 아니듯이, 빼앗긴 자료로 드러난 그의 부족한 모습 또한 그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고문은 인간의 신체적 약점을 이용해 인간성을 말살하는 범죄다. 지금 벌어지는 범죄는 인간성의 어쩔 수 없는 부분을 이용해 협박을 한다는 점에서 고문과 다르지 않다.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도 고문을 통해 자백을 강요받으면 안되듯이, 사생활이 아무리 못났어도 그것을 미끼로 협박을 받아서는 안된다. 

범죄의 대담성이나 광범위함 그리고 사용방법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범죄를 일삼는 집단의 상당수는 국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국제적인 공조를 통해 빠르고 철저한 수사에 나서고, 언론은 흥밋거리로 다루기보다는 극악한 범죄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좋겠다. 

빼앗긴 정보에는 연락처도 있을 것이다. 연락처를 두세 단계만 건너면 대중예술인은 물론 언론인, 정치인, 기업인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주요 인물의 연락처로 연결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흠모하는 봉준호 감독의 전화번호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전화번호가 있다면 그것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클라우드에 접속하려고 쉬지 않고 시도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대중예술인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 재난이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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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저학년 때 종종 ‘비권 총학생회’라는 말을 들었다. 비권은 비운동권의 줄임말이다. 자신은 운동권이 아니니, 정치판과 연결 없는 ‘순수한’ 후보자라는 말이었다. 정치와 순수하다는 형용사가 대치되는 말이었던가, 고민했지만 이런 의문에 속 시원히 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최근 정치판이란 단어를 다시 들었다. “고3 교실까지 선거판으로 만들고 정치판화해야 되겠습니까”라는 질문에서다. 얼마 전 통과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한 자유한국당 의원이 다그치며 뱉은 질문이다. 이 개정안이 담고 있는 18세 선거권 연령 하향의 내용에 대한 반응이었다. 국회의원은 이 정치체제의 꽃이라는 선거를 통해 직업과 명예, 지위를 얻은 사람이다. 정치판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다른 공간을 선거판, 정치판으로 만들지 말라고 다그친다니 좀 모순적이지 않나. 본인의 존재를 폄하하는 말이 아닌가.

지금 생각해도 정치가 순수하다는 형용사와 대치될 수 있는 단어인지 모르겠다. 순수함이 부패하지 않았다의 다른 말이라면 이해할 것도 같다. 지금의 정치판은 오랜 시간 시민이 감시하여 쟁취한 결과다. 지난 시민운동의 역사가 없었다면 더 부패하고 정말 ‘더러웠’을지 모른다. 위 발언은 본인의 정치활동이 누군가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양상임을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연말 국회는 아수라장이었다. 시민의 개혁 열망을 뒤로한 당리당략, 그로 인한 자가당착만이 가득했다. 특정 정치인, 특정 정당의 정치적 이익 보장만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정치라면, 맞다. 교실을 정치판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게 정말 정치인가.

이제 대학 총학생회는 비권과 운동권의 구분을 하지 않는다. 대신 학생의 위치에서 20대가 누려야 할 권리를 말한다. 최근 대학사회에서 가장 크게 청년들의 공감을 얻은 이슈는 부당한 입학금 폐지, 계열별 차등등록금 개선, 성희롱 교수 퇴출 및 교내 인권센터 설립, 기숙사 확충 등이다. 사회경제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일상의 문제이고, 인권의 문제다. 지난 세대에 정치의 필요가 거대권력과의 투쟁을 통한 시민권과 노동권의 성립이었다면, 지금 우리 세대의 대의는 바로 이런 것이다.

요구는 달라졌지만 정치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누군가를 대변한다는 거다. 선거 때에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현실적 요구를 정책으로 만들 줄 아는 대표자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최근 정당들의 인재영입 뉴스를 보면 조금 의아하다. 장애, 경력단절 등 사회적 약자의 위치를 ‘극복’해서 큰 성공을 한 누군가가 “정치는 잘 모르지만” 열심히 해보겠다고 한다. 화려한 삶의 전적은 알겠지만 누구를 대변하며, 어떤 정치활동을 해왔는지는 알 수 없다. 정치는 순수하지 않다는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정당들이 최근 몇 년 새 우후죽순처럼 만든 ‘정치학교’ 출신 청년들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기계발서의 주인공 같은 인재들을 보면 정치는 역시 히어로들의 전유물인가 싶기도 하다.

얼마 전 정의당 대변인이 된 강민진 대변인은 청소년참정권 활동을 했던 지난 경험에 비추어, “나의 삶 전체가 정치다.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제도권 정치가 아니더라도. 이런 일을 시작한 이유는 단지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였다”고 인터뷰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정치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그래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나의 권리들이 궁금하고, 또 돌려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 권리 회복을 위해 활동한 사람들, 그 삶을 ‘정치’라고 당당히 말하는 내 세대 동료들이 정치인이 되면 좋겠다. 이런 정치인이 많아질수록 변화가 더 가까워질 거라 믿는다. 

이 시대의 정책 결정권자들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정치란 무엇인지. 아직도 부끄러운 정치만을 정치라고 알고 계시는 분과, 히어로가 세상을 바꿀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주실 때도 됐다.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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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왕 에디슨이 이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나 2400번의 기회는 있다”고.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할 때 2400번의 도전 끝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숱하게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힘을 ‘회복 탄력성’이라고 부른다. 

현장에서 상담 일을 하다 보면 회복 탄력성이 낮은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데 한 번만 실수해도 금방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아이들의 회복 탄력성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우리 생각보다 강하다. 그런데 약하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약해 보인다. 

아이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려면 부모부터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귀한 자식일수록 천하게 키워라’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아이들도 강하게 키우려면 비바람이 필요하다.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결핍’이다. 조금만 약한 모습을 보여도 부모가 대신해주다 보니 고난을 견뎌내는 힘이 충분히 키워지지 않았다. 맞벌이 부모 중에는 아이에게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과보호나 과소비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럴 필요 없다.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된다. “여기까지는 엄마, 아빠가 해줄 수 있고, 그 이상은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도 아이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건 별로 절실한 게 아니다. 애초부터 대신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즉 다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참고 견디는 것이 부모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일이고, 그게 아이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일의 시작이다.

아이들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 칭찬을 많이 받은 아이들이 회복 탄력성도 높다. 그렇다고 무조건 칭찬해서는 안된다. 회복 탄력성을 높이려면 ‘잘한다’는 칭찬보다 ‘괜찮아’라는 격려가 더 효과적이다. 실패했어도 다시 도전을 하면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 칭찬할 때는 사족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 ‘잘하기는 했는데 조금 아쉽다. 아까 넘어지지만 않았어도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다음에는 실수하지 말고 더 잘해보자’라는 식으로 말이다. 격려는 간단명료한 게 좋다. 말이 길어지면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 아이와 신뢰가 충분히 쌓였다면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거나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을 외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늘부터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자. “넘어진 게 실패가 아니야.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게 실패지. 네가 다시 일어나면 그건 시련일 뿐이야.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봐. 엄마, 아빠도 함께 달려줄게. 포기는 배추 셀 때만 쓰는 말이라는 것 알고 있지?”

아이들의 실패는 경험일 뿐이다. 그러니 아이가 실패라는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믿고 기다리자. 그러면 오뚝이처럼 회복 탄력성이 강한 아이로 자라날 거다.

<강명규 스터디홀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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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아사히신문 기자였다가 정년을 포기하고 50세에 퇴사한 이나가키 에미코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반향을 일으킨 그의 산문집 <퇴사하겠습니다>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된 직후였다. 50대 비혼 여성이 사표를 던지고 나서 삶은 오히려 더 풍요로워졌다니 어쩐지 ‘의문의 1패’를 당한 것 같은 기분으로 청한 인터뷰였다.

그는 회사라는 ‘키높이 신발’을 벗어던진 후 집도 줄이고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며 미니멀리즘으로 살아보니 진짜 ‘행복’을 느낀다고 했었다. 당시 그의 속내를 옮기며 ‘나라면’이라는 감정 이입까지 하면서 꽤 여운이 남았다. 그렇다 해도 냉장고도 밥솥도 없이 살기는 쉽지 않으니 나만의 작은 노력을 하기로 했다. 옷가지며 집 안에 쌓여 있던 잡동사니들을 내다버리는 일부터 실행에 옮겼다. 지금도 물건을 사들이지만, 꼭 필요한 물건만 집에 들이려고 한다. 대형마트에 안 간 지는 이미 오래됐다.

그러던 어느날 클릭 몇 번이면 되는 온라인 장보기가 나만의 ‘미니멀 라이프’를 비집고 들어왔다. 새벽배송은 신세계였다. 첫 주문은 낭패를 보았지만 말이다. 일단 잠을 설쳤다. 새벽 5시가 되기도 전에 주문한 식재료 도착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 소리를 들었다. 메시지에는 현관 앞에 배송한 사진까지 친절하게 첨부돼 있었다. 부리나케 문을 열어보았지만, 물건은 없었다. 휴대폰 사진을 몇 번 들여다본 후에야 내가 주문한 물건이 다른 집으로 간 것을 알아차렸고, 내가 주문한 상자를 남의 집 문 앞에서 훔치듯 들고 온 게 나의 첫 새벽 장보기다.

그날 이후로 새벽배송은 나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과도하게 딸려오는 포장재가 문제였다. 게다가 내 친구는 나 같은 주문자 때문에 택배 종사자들의 ‘밤이 없는 삶’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면박을 줬다.

편리함 뒤에 숨은 그림자라고 해야 할까. 온라인 시장이 늘어나면서 각종 일회용품 쓰레기 증가와 함께 배송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가 부작용으로 불거진다. 넘쳐나는 쓰레기로 인해 매립지는 포화상태이고 소각시설도 한계에 직면했다. 올 1월부터는 수도권매립지에 들어올 수 있는 생활쓰레기양을 지자체별로 할당해 제한하는 ‘반입총량제’를 실시하고 있다. 쓰레기양이 예상보다 빨리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력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는 배송시스템도 문제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긱 이코노미’(비정규직 프리랜서 근로 형태가 확산되는 현상)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이 일하는 택배기사 리키는 소변을 해결하기 위해 작은 페트병을 차에 가지고 다닌다. 켄 로치 감독은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착취”라 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플랫폼 사용자이기도 한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회시스템이 변화하면 누군가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하기 마련이다. 그게 쓰레기 대란으로,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인해 저임금 노동자만 남는 상황으로 올 수도 있다.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는 데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는 바뀔 수 있다곤 하는데, 쓰레기 때문에라도 당장 온라인 장보기를 그만둬야 하는가.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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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대법원은 안태근 전 검사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서지현 검사가 2018년 1월 안 전 검사장의 성추행과 인사 보복 의혹을 폭로한 지 2년 만에 나온 판단이다. 

‘법관은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노정희, 재판장 박상옥, 관여 대법관 안철상·김상환)의 판결문을 읽어봤다. 놀랍게도 ‘성추행’ ‘강제추행’ ‘성폭력’ ‘성범죄’ 같은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의 본격 시발점이 된 이 사건에 대해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안 전 검사장이 서 검사를 성추행한 사실을 덮기 위해 인사 보복을 했다는 게 핵심이다. 검찰은 성추행 혐의가 사실이라고 인정했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하지 못했다. 대신 부하 신모 검사로 하여금 비정상적 인사안을 만들도록 한 혐의(직권남용)로 안 전 검사장을 재판에 넘겼다. 2015년 8월 여주지청에 근무하던 서지현 검사를 통영지청으로 발령한 것이 경력검사를 연속해 부치지청(차장검사가 없고 부장검사를 둔 소규모 지청)에 보내지 않는 ‘경력검사 부치지청 배치제도’에 어긋난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1심 판결문은 이 제도가 도입된 2000년 이래 서 검사 외에는 부치지청에서 경력검사로 일하다 다음 인사에서 다시 부치지청으로 배치된 사례가 없었다고 밝혔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공소사실의 전제인 성추행을 인정하고, 인사보복이 있었다고 판단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판결문은 범죄 동기에 대해 “서지현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줌으로써 자신의 강제추행 사실을 은폐하려는 것”이라고 적시했다. 

대법원은 달랐다. 검사 인사에 광범위한 재량이 인정되며, 경력검사 부치지청 배치제도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고 봤다. 따라서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상고이유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다투는 ‘사실심’이 아닌, 하급심의 법리 오류를 따지는 ‘법률심’을 맡고 있다. 그러나 법률심의 의미가 공소사실을 둘러싼 모든 맥락을 무시하라는 뜻은 아닐 터다. 서 검사가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한 것은 ‘미투’의 일환이었다. 인사 보복 여부를 살피려면 성추행이란 맥락도 고려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외면한 채 기계적으로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문에서 서지현이란 이름만 지우고 나면, 인사권자와 어떤 이해관계도 없는 검사가 오로지 지청에서 지청으로 가게 된 데 불만을 품고 문제를 제기한 듯 비친다. 그렇지 않다는 건 온 나라가 안다.

350여개 여성·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지난 13일 대법원 앞에서 이번 판결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발언이 정곡을 찌른다. “재량이란 것이 온전히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겁니까? 재량에 영향을 미치는 건 무엇입니까? 대법원은 재량을 말하기 전에 재량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두루 살펴봤어야 합니다.” 

남녀고용평등법 14조의 2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 조치를 금지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처럼 인사조치에 ‘광범위한 재량’을 인정한다면 이 조항은 사문화하고 말 것이다. 직장 내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는 상급자, 피해자는 하급자인 경우가 다수다. 사용자 입장에선 강자를 엄단하기보다 약자를 험지나 기피 부서로 보내는 일이 간편하지 않겠는가. 대법원은 사용자들에게 매우 나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미국의 진보적 여성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말했다.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긴즈버그의 말>) 그날의 날씨란 법리와 판례에 갇힌 ‘좁은 사법’, 시대의 기후란 맥락과 흐름을 반영한 ‘넓은 사법’을 뜻할 터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 전 대법관의 인식도 다르지 않다. “생각과 상상을 그치고 주어진 법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계산된 알고리즘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판결과 정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이 소거된 사법은 사법이 아니다. 진실 발견과 정의 실현을 방해하는 도구일 뿐이다. 당장 대법원 판결 이후를 보라. 가해자는 구치소를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피해자는 직장에 복귀하지 못한 채 질병휴직 중이다.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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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四時)는 명확하고 지금은 틀림없는 겨울이다.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 뺨을 에는 찬바람, 구슬피 우는 철새. 몇 가지 익숙한 풍경이 있지만 그래도 흰 눈이 보자기처럼 세상을 덮어야 비로소 겨울이 완성된다. 그리하여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천하를 주유하듯, 우리도 그 흰 천을 뒤집어쓰고 매서운 세계로 날아가는 것. 퍽 불길하다. 올해처럼 이렇게 낡고 닳은 보자기가 있었던가. 

지난주 철원 고대산으로 갈 때, 혹 눈이 있을까. 은근한 기대가 있었다. 꽃을 찾아 남쪽으로 간 적은 허다했지만 일부러 눈을 찾아 북쪽으로 가기는 처음이었다. 응달의 으슥한 골짜기를 지나 능선에 도착하니 눈기운이 완연해졌다. 이윽고 문바위를 지나면서부터 발밑에 시장이라도 선 듯 시끌벅적해졌다. 눈 밟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참 다정한 소리. 뽀드득뽀드득뽀드득.

모처럼 접촉하는 눈과의 경계에서 특히 생각해 보는 것이 있었다. 오늘 따라 눈소리가 조금 다르게 들리는 게 아닌가. 삐거덕삐거덕삐거덕. 그것은 가슴 한쪽을 좀 불편하게 긁는 듯 조금 헐거워진 갈비뼈가 내는 소리를 닮았다. 어쩌면 그것은 장도리로 송판에서 굵은 대못을 빼는 소리로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우리는 언젠가 이 세상을 뜬다. 어디로 떠날지도 잘 안다. 모두들 지금 밟고 있는 이 땅 아래로 잠겨 들어가야 한다. 존재하는 이들이 돌아다니는 것, 나무가 잎사귀를 살랑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 이는 돌아갈 곳의 근황을 미리 한번 살펴보는 동작들이 아닐까.

지금 나무는 헐벗었고 아직 꽃은 이르다. 어디에서 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러기에는 이곳은 너무 북쪽이다. 오늘은 꽃 대신 돌이다. 돌은 내 무거운 무게를 잠시 맡기려면 궁합을 잘 맞추는 누군가의 은근한 엉덩이에 불과하겠지만 이 세상의 배후를 궁금히 여기고 궁리하면서 바라보면 지하에서 올라온 참신한 얼굴이 된다. 일찍 넘어가는 산중의 해를 가늠하면서 홀로 뒤에 처진 채 누구를 퍽 닮은 돌들과 내가 내는 소리를 실컷 보고 들었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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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뜻하는 영어 ‘gift’는 독일어에서 기원한다. 일차적으로 독(毒)을 뜻하지만, ‘선물’이란 뜻도 함께 가진다. 잘못된 선물은 독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어원적으로 내포하는 셈이다. 어떤 선물을 하느냐에 따라 말 그대로 선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선물은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선물이란 본디 물품 자체뿐 아니라 받는 사람에게 전달되기까지 들어간 정성과 시간을 총칭하는 것일 터이다.

정치인들의 선물은 마음과 별개로 메시지가 담기게 마련이다. 왕의 선물 이야기로 조선왕조사를 재조명한 <국왕의 선물> 저자 심경호 교수는 “선물의 종류나 주는 방법을 보면 왕의 특징이나 시대상이 드러난다”고 했다. 현대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나 유력 정치인의 명절 선물에는 시대 상황은 물론 나름의 정치적 철학이 배어 있다. 선물을 고르는 선택부터 일종의 정치적 행위다.

2014년 추석 때 여야 지도부는 명절 선물로 세월호 참사 지역인 전남 진도군의 특산물을 택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사드 배치가 결정된 성주 참외를 추석 선물로 돌렸다. 선물의 메시지가 부각된 사례들이다. 지난해 조국 사태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경쟁적으로 배달된 ‘엿 상자’와 ‘꽃바구니’ 역시 선물의 정치학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추석 때 선물로 준비한 황태·멸치 세트를 불교계 큰스님 200여명에게 보내려다 “불가에 생물을 보내는 것은 결례”라는 지적에 막판 다기 세트로 교체했다. 반면교사 덕분인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 추석 선물로 잣·유가·육포 등을 고르면서 불교계에는 육포 대신 호두를 보냈다.

자유한국당이 황교안 대표 명의로 육포를 불교계에 설 선물로 보냈다가 뒤늦게 회수하는 소동을 벌였다. 한국당은 “배달 사고”라며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으나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종교계 선물에마저 이토록 감수성과 고려가 없었다니. 하기야 늘 예상을 뛰어넘는 한국당의 일탈과 반상식을 감안할 때 “별로 놀랍지도 않다”. 다만 받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선물은 ‘독’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확인할 뿐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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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국내 개봉된 영화 <커런트 워>(전류전쟁)에서 토머스 에디슨을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말한다. “전류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는 거야.” 전기의 등장으로 백열전구와 공장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이로 인해 인류의 삶이 통째로 바뀌고 산업 생산성이 폭증할 걸 내다본 걸까. 요즘엔 전기자동차가 내연기관을 위협하는 지경이니 대단한 미래예측이다.

영화는 19세기 후반의 전기 도입 시기에 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라는 두 명의 걸출한 천재가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노력형 에디슨은 직류를 밀었고, 천재 테슬라는 교류를 주장했다. 요즘 건전지에 사용되는 직류는 전압을 올리고 내리기 힘든 속성 때문에 가정에서 사용하는 낮은 전압으로 송전해야 했다. 전압이 낮으면 멀리 못 가고 발전소를 곳곳에 분산 배치해야 하니 공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테슬라의 교류 방식은 변압이 쉽다. 교류를 초고압으로 멀리 송전하고 동네 근처에서 전압을 내려서 배전하면 발전소는 드문드문 있어도 된다. 결국 테슬라를 밀었던 웨스팅하우스가 승리했다.

전기가 본격적으로 인류 삶에 영향을 주기까지 왜 그리 오랜 세월이 필요했을까. 자석을 움직이면 전기가 생긴다는 발전의 원리를 19세기 전에는 몰랐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발견으로 발전이 가능해졌고, ‘커런트 워’로 이어졌다. 영화는 직류와 교류를 두고 발명자와 거대 자본이 뒤섞여 벌어지는 음모와 대립을 보여준다. 승자인 테슬라는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잊혀지지만, 패자인 에디슨은 위대한 발명가의 명성을 남겼으니 그래도 나은 형편이었다.

100년이 훌쩍 넘어서 테슬라라는 이름이 대중에게 다시 등장한 것은 일론 머스크가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를 창업하면서였다. 머스크는 다가올 미래를 미리 보는 듯한 통찰력으로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마치 컬트의 느낌이랄까. 20세기 말까지도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전기자동차가 살아생전에 출현하기는 힘들어 보였으니 정말 외계인 같은 사람이긴 하다. 역설적으로 머스크는 니콜라 테슬라의 교류가 아닌 토머스 에디슨의 직류를 중심으로 사업을 한다. 전기자동차뿐만 아니라 그가 만든 또 다른 사업체인 태양광 업체도 직류 발전 및 저장을 하니까. 직류 변압 기술의 발전으로 최근엔 고압 직류 송전도 확대되는 추세다.

전기와 자기의 상호 작용을 4개의 수학 방정식으로 완벽하게 기술해낸 사람은 19세기 중반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제임스 맥스웰이다. 아름답고 대칭적인 방식으로 전기와 자기가 동전의 양면처럼 상호 연관돼 있음을 표현한 맥스웰의 수학적 체계화는 결국 2차 산업혁명을 촉발했다. 자기장이 변하면 전기장이 생긴다는 방정식에서 발전기가 발명됐고, 전기장이 변하면 자기장이 생긴다는 방정식에서 모터가 발명됐다.

인류가 전기와 자기를 다룰 줄 알기까지는 난산의 과정이 있었다. 먼저 전기와 자기가 바뀌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이게 해결되지 않고는 발전소도 전기자동차도 출현할 수 없었다. 고대 그리스와 중세 유럽에는 무엇인가가 변화하면서 새로운 것이 출현한다는 발상을 표현하는 언어가 없었다. 2000년 동안 유럽 사유 체계의 핵심이었던 유클리드 기하는 철저하게 정적이다. 움직이지 않는 점과 선을 다룬다. ‘변화하는 무엇’을 다루는 언어가 아니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움직이지 않는 삼각형을 다루지 않는가.

결국 17세기에 아이작 뉴턴이라는 전무후무한 수준의 천재가 나타나 천체의 운동을 다루는 언어를 창안했다. ‘변화를 다루는 언어’, 미적분이 탄생한 것이다. 정적 세계관을 넘어 동적 세계관의 출현이다. 19세기 전자기학은 미적분을 사용해서 전기장의 변화와 자기장의 변화를 표현해냈고, 인류는 전기를 사용하는 새로운 시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전기는 이제 21세기 새로운 모빌리티의 중심이 되면서 또 다른 혁신의 중심에 서 있다.

<박형주 아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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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밤 대검찰청 한 간부의 상가(喪家)에서 양석조 대검 선임연구관 등이 심재철 반부패강력부장(검사장)에게 거친 말로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유재수 청와대 감찰무마 의혹사건’ 관련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무혐의 의견을 낸 심 검사장에게 “어떻게 무혐의입니까” “당신이 검사냐”며 따졌다는 것이다. 상갓집에는 일반인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검사들이 고성을 지르며 상급자를 윽박지르고 모욕까지 줬다니 이 무슨 추태인가.

검찰 중간간부(차장·부장검사) 인사를 앞둔 20일 오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왼쪽 사진). 윤석열 검찰총장이 20일 오후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연합뉴스

조 전 장관에 대한 불구속 기소는 16일 윤석열 검찰총장 주재로 열린 대검 반부패부 회의에서 결정됐다. 심 검사장은 당시 “민정수석의 정무적 판단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직권남용 혐의 적용이 어렵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수사팀 등이 반박했고 윤 총장은 “수사팀 의견이 맞다”고 결론내렸다. 주요 범죄 피의자에 대한 처리를 놓고 검찰총장과 수사 관계자들이 논의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합당한 법적 책임을 묻는 작업이고, 법에 따른 처리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이런 자리에서 다양한 의견 제시는 권장할 일이다. 이 때문에 검찰 판단을 공격하는 ‘레드팀’을 만들어 의견을 개진토록 하기도 한다. 그런데 특정인의 견해가 공개되면 자유롭게 의견 내기를 주저하게 되고, 공정한 수사결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심 검사장은 자유한국당 등이 검찰 인사와 관련, 추미애 법무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사건의 사건 형식을 바꿀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검토를 지시했으나 이 역시 일부 검사들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상갓집 추태’ 발단이 된 조 전 장관 처리 과정에선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한 영장판사의 “죄는 소명된다”는 판단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심 검사장의 무혐의 주장이 이례적인 것은 사실이다. 일각의 지적처럼 ‘조국 구하기’가 아닐지라도 그런 의심을 사는 행위를 한 것은 검찰 고위간부로서 바람직하지 않다. 심 검사장의 성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검찰에서 생각이 다르다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공개돼서는 안되는 내부 의견을 공개하며 대놓고 모욕을 주는 일이 허용된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검찰 조직이 ‘내 편’ ‘네 편’으로 분열되고, 의사결정 내부 통제장치는 작동하지 않게 된다. 검찰 중간 간부급 인사를 앞둔 시점에서 현 수사팀을 눌러앉도록 하기 위해 ‘계획된 도발’이라면 더 큰 문제다. 검찰 내부에서 “검사들의 항의가 부적절했으며 적법 절차·원칙을 어긴 것”이라는 자성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법무부와 대검은 조직문화와 기강을 다잡을 대책을 세워 다시는 이런 볼썽사나운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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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중국 우한에서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중국 국적 여성(35)이 ‘우한 폐렴’에 감염됐다고 질병관리본부가 20일 공식 발표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우한 폐렴’ 확진자가 확인된 것이다. 중국 이외의 국가에서 우한 폐렴 환자가 발생한 것은 태국, 일본에 이어 한국이 세번째다. 폐렴 바이러스가 국경을 넘으면서 우리도 더 이상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됐다. 질병관리본부가 이날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로 상향했지만, 더 높은 단계의 방역과 경각심이 필요하다.   

지난 19일 중국 우한에서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중국 국적의 여성(35)이 우한 폐렴으로 불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질병관리본부가 밝혔다. 20일 인천공항 제2터미널 입국장에서 검역원들이 우한발 비행기 입국자들을 발열 검사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중국에서는 지난 주말을 계기로 우한 폐렴 환자가 급증했다. 폐렴 발원지인 후베이성 우한에서만 주말 새 136명이 확진판정을 받아 19일 현재 누적 환자가 198명으로 늘었다. 중국 전체의 우한 폐렴 환자는 200명을 넘어섰다. 베이징과 광둥성 선전에서 확진 환자가 확인됐고, 저장성에서만 여러 명의 의심 환자가 나왔다. 현재 사망자는 3명이지만, 위중한 환자가 여럿 있어 더 늘어날 수 있다. 

우한 폐렴은 사스와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는 신종 전염병이다. 지난해 말 발견 초기만 해도 환자가 우한의 수산물시장 이용자에 그쳐 확산 가능성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또 사람 간의 지속적인 전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11일 첫 사망자가 발생하고 해외에서도 확진자가 확인되면서 사태가 급변하고 있다. 사람 간 전염 가능성도 점점 높게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 영국 전염병분석연구팀이 우한 폐렴 감염자 수가 이미 수천명에 이르렀을 수 있다고 발표하면서 중국 당국의 환자 수 은폐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향후 관건은 수억명이 움직이는 중국 최대 명절 춘제(春節) 기간의 방역 여부다. 이때 방역에 실패하면 우한 폐렴은 사스 사태처럼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중국 문제만이 아니다. 춘제 기간 한국을 찾는 중국인은 10만여명으로 추산된다. 특히 인천~우한의 직항 비행기만 주 8회에 달하는 만큼, 우한에서 입국하는 승객들에 대해 철저한 검역이 이뤄져야 한다. 중국 정부와의 방역 공조는 필수적이다. 정부는 중국의 폐렴 감염자 수, 환자의 구체적인 감염경로 등의 자료를 공유하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 당국은 사망률이 낮은 우한 폐렴은 사스와는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2002년 사스 사태 때 못지않게, 더 철저히 방역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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