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가을걷이가 끝나고 벼 그루터기만 남은 논에 서리가 내리면 어른들은 서둘러 겨울 맞을 채비를 하곤 했다. 떼어낸 문틀에 두 겹의 창호지를 바르고 그 사이에 국화잎을 몇 장 집어넣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나중에 소읍으로 이사갔을 때는 광에 시커먼 연탄을 쌓아두었지만 시골에서는 겨우내 볏짚을 땔감으로 썼다. 바람 잘 통하는 대청마루에는 통가리가 놓이고 두어 가마 고구마도 채워두었다. 하지만 지금은 김장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 월동 준비라는 말에서조차 격세지감이 든다.

올겨울은 눈도 거의 없고 살을 에는 강추위도 아직 찾아오지 않아 부는 바람에서 봄뜻이 설핏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니까 더운 여름보다 체온을 유지하는 데 우리가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조금 다르게 질문해보자. 어떤 사람이 아이슬란드에 있을 때와 자카르타에 있을 때 그의 정맥에 있는 피의 색은 어느 쪽이 더 붉을까? 

답은 자카르타이다. 우리가 내쉬는 날숨에는 이산화탄소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산소도 들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물에서 건진 사람의 폐에 인공호흡으로 안전하게 산소를 제공할 수 있다. 전신을 돌아 심장으로 복귀하는 정맥 안에는 우리 신체가 미처 사용하지 않은 산소 기체가 섞여 있다. 열대지방인 자카르타에서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물을 분해하여 얻은 에너지를 쓸 일이 줄어든 탓에 아이슬란드에 있을 때보다 산소를 적게 사용한다. 적혈구가 산소를 더 많이 함유할수록 색상이 붉은 까닭에 적도에 사는 사람들의 정맥혈이 더 선홍색을 띠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1842년 독일의 의사 줄리우스 폰 마이어는 우리가 음식물을 먹고 연소하는 과정에서 얻은 에너지가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다는 법칙을 고안하기에 이른다. 음식물 속에 든 화학에너지가 일을 하는 근육의 운동에너지, 체온을 조절하는 열에너지 등으로 변하지만 그 총량은 변함이 없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마이어가 처음 제시한 이 가설은 후에 열역학 제1법칙으로 굳어지고 후세인들의 골머리를 꽤나 아프게 만들었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함에도 겨울에는 야생에서 음식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은 극지방으로 갈수록 심해진다. 그래서 일부 동물들은 아예 잠을 잠으로써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바로 우리가 겨울잠이라고 부르는 생물학적 현상이다. 겨울잠은 다람쥐 같은 설치류 동물들에게서 빈번하게 관찰된다. 체중에 비해 체표면적의 비율이 높을수록 체온이 쉽게 떨어지므로 몸집 작은 동물들은 겨울나기가 힘들다. 온대지방에 사는 체중 60㎏의 여성은 10%가 되지 않는 에너지를 열을 생산하는 데 사용하지만 몸무게가 25g에 불과한 사슴쥐는 그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땅다람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최장 9개월까지 잠을 자면서 거의 85%의 에너지를 절약하기도 한다.

이렇듯 겨울잠은 생존에 매우 유익한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도 겨울잠을 잘 수 있을까?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가능해 보인다. 비교생물학자들은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 동물 세 계통 모두에서 겨울잠 현상을 목격했다. 진화 역사에서 동면이 오래된 형질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가능하게 한 유전자들을 찾아 나섰다. 유전자를 편집하면 인간에서도 동면을 유도할 수 있으리라 희망한 것이다.

동면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찾아낸 단백질 중 눈길을 끄는 것은 혈액이 엉키는 것을 막는 단백질이었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해 동면을 한다는 말의 화학적 의미는 산소를 적게 호흡해도 된다는 것이다. 1분에 200~300번씩 뛰던 땅다람쥐의 심장이 고작 3~5번 뛰고 숨은 4~6번 정도밖에 쉬지 않는다. 따라서 잠을 자는 동안에는 체온이 떨어지면서 아주 느리게 흐르는 혈액이 서로 엉키지 않게 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또한 자는 동안에는 음식물을 섭취할 수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 저장이 가능한 지방을 동물의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일도 그 못지않게 무척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대사 효소들의 활성도 빠르게 변화한다.

그러나 동면 연구에서 발견된 더 놀라운 점은 동면하는 동안 동물들이 거의 상처를 입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뇌에 외상을 가하면 활동적인 다람쥐는 커다란 손상을 입지만 동면하는 다람쥐는 거의 정상으로 회복된다. 움직임을 최소로 하면서 생체를 유지하고 손상을 치유하는 데 특별히 더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의학자들은 동면 연구에서 얻은 과학적 성과를 임상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2019년 메릴랜드대학 연구진은 커다란 외상을 입은 환자의 혈액을 10도의 생리식염수로 대체하고 모든 생리 과정을 정지시켰다. 손상된 부위를 수술할 시간을 벌게 된 것이다. 저온을 유지하여 생체 과정을 정지시키는 동면과 같은 현상을 우리는 가사 상태(suspended animation)에 빠졌다고 표현한다. ‘정지된 화면’처럼 인공적으로 가사 상태를 유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식에 필요한 인간의 장기를 안전하게 보관해 멀리까지 운반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우주선에 탑승하는 비행사들을 ‘잠재워’ 먼 목적지까지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겨울잠에서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혜택이 균등하지는 않지만 추위를 피하는 여러 수단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침엽수림 통나무집에서 봄을 고대하는 동면을 꿈꾼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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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북쪽 원주민 검은 발족의 추장 까마귀 발의 노래다. “삶은 이와 같은 거라네. 어둔 밤을 밝히는 반딧불이. 겨울 한복판에 들소가 뿜어내는 거친 숨소리. 푸른 초원을 달려가다가 땅거미 지는 노을에 사라져가는 작은 그림자.” 들소의 코에서 훅훅 나오는 콧김이 떠오른다. 그리고 땅거미. 거대한 평지 대륙에 드리운 어스름이 그립다.

저녁의 느낌은 늘 찌릿하다. 가수 김목인은 말했다. “밤이 오기 전 하늘은 살짝 밝아져 있었다. 슈퍼 앞 평상의 아저씨는 맥주 한 컵을 들고 아이들이 게임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놀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엄마들이 아이들을 타이르는 소리. 저녁이 인생의 어느 한 지점을 암시하고 있었다.”

다세대주택 골목 어딘가 드리운 저녁. 옥상에서 보이는 건너 공터의 땅거미. 개가 누런 똥을 한 덩어리 누고 뒷발질을 해대는 소리. 아직도 골목을 누비는 두부장수와 칼갈이 아저씨. 창틀과 방충망을 고치는 용달 트럭의 반복되는 스피커 소리. 장 자크 상페의 그림책에 나올 법한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달음질치며 내뱉는 소리들. 명절이 다가오면 떡 방앗간이 분주해지지. 세상이 암만 빵빵 빵집만 생겨나도 변두리는 아직 떡떡, 찰떡 시루떡 좋아하는 이들이 살지. 땅거미가 지면 검은 깨떡이 생각난다. 예전엔, 병든 자여 내게로 오라! 외치고 다니던 고물상 엿장수가 해가 저물기 전에 떨이로 다 팔고, 엿장수 맘대로 가위질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엿장수의 노래가 구성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젊어서 고생은 늙어서 신경통. 에구구 비명을 지르며 일어서는 할매는 저녁밥을 짓는다. 혼자 밥 먹은 지도 수수십년은 된 거 같아. 물을 말아 먹는 밥에 김치 한 조각. 호물호물 씹지도 않고 삼킨다. 이 동네에서는 삼킨다고 안 하고 생킨다고 해. 물도 마신다가 아니라 생킨다고 하고. 어둠을 삼키는 땅거미. 현대인들은 너무 오랫동안 어스름 시간을 못 느끼고 산다. 푸른 들판을 달리는 땅거미. 내 작은 그림자. 또 당신이라는 인생. 새해에도 부디 평안하시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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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바다에 사는 곤(鯤)이라 불리는 물고기가 있다. 곤의 크기가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이 변하여 새가 되는데, 그 새는 붕(鵬)이라 부른다. 붕의 등도 몇 천 리인지 모른다. 붕새가 한번 힘써 날면 그 날개는 하늘을 뒤덮는 구름과 같다.’ <장자>는 ‘소요유’로 시작한다. 장주는 책 서두에서 거대 물고기 ‘곤’을 내세운다. 곤은 큰 바다를 헤엄치고, 곤이 변하여 된 붕새는 구만리장천을 비행한다. 곤과 붕새는 자유의 표상이다. 그런데 ‘곤’은 본래 큰 물고기가 아니다. <장자>에 앞서 나온 <이아(爾雅)>는 ‘곤’을 ‘물고기 알’(魚子)로 풀었다. ‘물고기 새끼’(魚苗·稚魚)로 정의한 문헌도 꽤 된다.

<장자>는 왜 새끼 물고기 ‘곤’을 거대 물고기로 둔갑시켰을까. 첫째는 장주 특유의 반어법이다. 그는 대소, 다과의 분별을 거부했다. 그에게 모든 사물은 평등하다. 크다고 우쭐댈 것도, 작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다. 곤과 붕새 다음 편에 하찮은 아지랑이와 티끌을 내세운 것도 마찬가지다. 둘째는 작은 물고기의 떼를 ‘곤’으로 보았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붕새 역시 한 마리의 큰 새가 아니라 무리 지어 나는 새떼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가창오리의 군무는 거대한 새 한 마리다.

대부분의 물고기는 떼지어 다닌다. 물고기의 절반 이상이 군집유영을 한다고 한다. 어류가 무리 지어 다니는 이유는 천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떼를 지어 다니면 먹힐 확률이 낮아진다. 또 먹이나 천적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어 번식과 생존에 유리하다. 물고기의 군집유영은 개체의 방어와 공격을 위한 최상의 생존법이다. 정어리는 군집유영을 하는 대표 어종이다. 항상 무리 지어 다니며 상어·고래 등 포식자로부터 서로의 안전을 지켜준다.

지난해 11월 이탈리아에서 처음 ‘정어리떼 시위’가 시작됐다. 시민들은 자신을 정어리에 비유하며 극우주의와 혐오정치로부터 이탈리아를 지키자면서 광장에 나섰다. 오는 26일 이탈리아 북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주말 시민들이 다시 ‘정어리 팻말’을 치켜들었다. 어찌 바다의 정어리떼뿐일까. 자본, 폭력, 혐오 등의 거대포식자는 항상 시민을 노린다. 깨어 있지 않으면 먹힌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정어리처럼.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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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는 22일 채용비리 혐의로 기소된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에게 징역 6월·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조 회장은 신한은행장 재직 당시 신입사원 채용과정에서 인사담당자에게 전직 회장의 조카손자 등 3명의 지원 사실을 알려 이들을 부정하게 합격시킨 혐의(업무방해 등)로 재판을 받아왔다. 법원 판결은 채용과정에서 최고경영자 등의 책무를 엄하게 물은 것으로 의미가 크다.

신한은행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 관여하고 점수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는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22일 서울 송파구 동부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의 자녀가 지원했다”는 상관의 말 한마디가 인사담당자에게는 ‘합격시키라’는 지시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이는 직위를 앞세운 부정한 지시다. 조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부탁받은 사람들에게 합격 여부를 미리 알려주는 것이 큰 잘못이라고는 당시에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 힘센 자들의 ‘합법적 특권’이 별 죄의식 없이 일상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게 된다. 

법원은 최고경영자의 이런 행위가 인사의 원칙·기준을 무너뜨린다고 했다. 재판부는 “조 회장이 (청탁자) 지원 사실을 알린 행위 자체만으로 인사부의 채용업무 적절성을 해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신한은행은 2013년부터 4년간 청탁지원자 자녀 명단을 관리하면서 특혜를 제공했다. 이들을 서류전형·1차 면접에서 성적에 관계없이 통과시킨 것이다. 신한은행은 경쟁률이 100 대 1에 달할 정도로 취업문이 좁은 인기 직장이다. 그런데 ‘백 있고, 연줄이 있다’는 이유로 청탁자 자녀들은 채용특혜를 받았다.

검찰 수사로 드러난 청탁자는 42명이다. 전직 최고임원 청탁자 11명과 함께 신한은행 부서장 이상 자녀 14명도 포함됐다. 판결문을 보면 이 중 상당수에게 채용특혜가 제공됐다. ‘고용세습’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이런 특혜는 금융감독원 고위직 등 유력인사 자녀와 친·인척 등 수십명의 채용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다만 조 회장은 구체적 합격 지시가 없었고 다른 지원자의 피해가 없었다는 이유로 실형은 면했다. 윤모 전 부행장 등 인사담당자 5명도 벌금형 또는 집행유예에 그쳤다.

채용비리는 기회 균등이라는 사회정의를 무너뜨리는 반사회적 범죄다. 청년 등 취업준비생들이 겪을 고통은 크고, 불공정·불평등의 개선을 위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측량조차 어렵다. 이번 판결이 별생각 없이 행해지고 있는 채용청탁을 뿌리 뽑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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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 직장인이 처음으로 2만명을 넘었다.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도 처음 20%를 넘었다. 한 손에 카페라테를 들고 유모차를 밀며 육아하는 아빠를 뜻하는 이른바 ‘라테파파’들이 수직 상승하고 있다. ‘아이 돌봄엔 남녀가 없다’는 생각이 삶에 반영되는 의미 있는 현상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어린이박물관’에서 한 아빠가 아이들과 책을 보고 있다. 한국에서는 휴일에 주로 보는 풍경이지만 스웨덴에서는 평일 오후 일을 마친 ‘라테파파’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박용하 기자

2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 부문의 남성 육아휴직자는 2만2297명으로, 전년에 비해 26.2%가 늘었다. 육아휴직자 중 남성이 차지한 비율은 21.2%였다. 2017년 남성 육아휴직자 1만명,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 10%를 돌파한 후 2년 만에 2배로 뛰었다. 남성 육아휴직이 처음 시작된 2001년 남성 휴직자는 2명(전체 25명)에 불과했다. 비약적인 증가다. 다만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 절반 이상(56.1%)이 300인 이상 기업 소속으로, 여전히 대기업 중심이었다. 전체 노동자의 90% 이상이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근무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쏠림은 훨씬 더 심각하다. 

남성 육아휴직의 급증세에서 알 수 있듯 맞벌이, 맞돌봄은 시대적 요구다. 대기업, 중소기업이 따로일 수 없다. 기업규모에 따른 격차를 줄이고, 없애야 한다. 경제학에서 ‘마태효과’라는 용어는 자본의 부익부 빈익빈을 뜻한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중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에서 나온 말이다. 복지의 마태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아빠 육아휴직마저 대기업 위주로 돌아간다면, 자녀와의 시간, 양육의 질마저 양극화가 불 보듯 뻔하다. 육아휴직의 대기업 쏠림 이유는 상당 부분 대체인력 부족과 제도 미비 때문이라고 하니, 보완이 시급하다.

남성 육아휴직자 비중 20%는 절대 만족할 수 없는 수치다. 아직도 사회 전반적으로 육아는 여성 몫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더 많다. 라테파파란 용어는 있어도 육아휴직하는 여성을 ‘라테마마’로 부르지 않는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남녀평등 사회를 위해 라테파파는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 일·가정 양립정책들이 출생률 제고에 효과가 있었다는 연구가 많다. 육아를 둘러싼 남녀 역할에 대한 시민의 인식이 달라져야 하고, 정부는 더욱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아빠가 일정 기간을 사용하지 않으면 육아휴직이 주어지지 않는 ‘아빠 할당제’를 실시하는 북유럽 국가들이 모범 사례가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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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잡아당기면 못써.” 근린공원에서 산책 중에 엄마가 아이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옷소매만 잡아당겨도 아프잖아. 꽃은 얼마나 아프겠어.” 아이의 눈이 금세 휘둥그레졌다. “미안해, 꽃아.” 오열하며 사과하는 아이 옆을 지나치는데 가슴이 뭉근하게 끓기 시작했다. 아이는 집에 가서 꽃을 잡아당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사는 동안, 무심코 꽃을 잡아당기거나 꺾지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것들을 괴롭히려고 할 때마다 옷소매를 떠올리며 도리질을 할 것이다.

저녁 약속이 있어 버스를 탔다. 퇴근 시간 전인데도 버스 안은 북적였다. 버스 뒤편으로 이동하다 한 중년 남성이 버스 안쪽을 향해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구두 밑바닥에는 진흙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그 바람에 버스 안에서 병목현상 비슷한 것이 일어났다. 다리를 피해 뒤로 이동하다가 맞은편에 서 있는 사람과 부딪치는 일이 벌어졌다. 서 있는 사람들은 일제히 얼굴을 찌푸렸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만원버스 안에서 겨우 자리를 잡아 봉을 붙잡고 서 있었다. 버스가 정차하고 출발할 때마다 봉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누군가 균형을 잃기라도 하면 버스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명절이 코앞이라 사람들의 손에는 사과 상자, 김 선물 세트, 과일주스가 든 유리병, 고기가 든 비닐봉지 등이 들려 있었다. 그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상상을 하니 아찔했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경적 소리를 들으며 다짐했다. 버스에서 다리를 꼬고 앉지 말아야겠다. 설사 만원버스가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잠재적인 여유를 앗아가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멍하니 앉아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회사에서 일사분기에 특정 주제를 가지고 워크숍을 하는데, 그때 강연을 부탁한다고 했다. 상대방의 공손하면서도 분명한 태도에 마음이 기울어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때의 호탕함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불안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잘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수락한 이상,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게 나의 도리일 것이다. 뽀드득뽀드득 그릇을 소리 나게 닦으며 다짐했다. 어떤 제안이든 곧바로 수락하지는 말아야겠다. 생각해본 후 연락을 드린다고 정중하게 말해야겠다.

그날 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탔다. 약 스무 개의 정거장 동안 서서 갈 생각을 하니 타기 전부터 피로했다. 종일 돌아다니며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였고, 내게는 엉겁결에 생긴 한라봉 상자까지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탑승한 열차에는 선반이 없었다. 작년 여름에 미관상으로 좋고 유실물도 줄일 수 있어 지하철 선반이 사라진다는 뉴스를 접했었는데, 무거운 짐을 들고 타게 되니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별수 없이 한라봉 상자를 좌석 옆에 세로로 세워두었다. 최대한 부피를 줄여야 한 사람이라도 더 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서 있는 곳 바로 옆은 임산부 배려석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지금껏 거기에 비(非)임산부가 앉아 있는 것만 봐 온 터라 기분이 좋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쳐 보였다.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임산부 배려석에는 앉지 말아야겠다, 객실 어딘가 있을지도 모를 임산부가 앉을 수 있도록 상징적으로 비워둬야겠다. 금방이라도 힘이 풀릴 것 같던 두 다리가 곧게 펴졌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리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할 것이 명확해졌다. 그것은 상식 밖 행동을 보고 상식적인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하는 과정이었다. 친구에게 말했더니 대뜸 이런 질문이 튀어나왔다. “어른이 되려고 그러니?” “아니. 해로운 어른은 되지 않으려고.”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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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을 긋다’를 국어사전에는 ‘한도나 한계선을 정해 놓다’라고 해석해 놓았지만, 내 경험으로는 이 해석에는 부사가 빠져 있다. ‘제멋대로’, 초등학교 2학년 때 내 짝은 책상에 제멋대로 금을 그어놓은 뒤 책 끄트머리가 금에 닿으면 팔꿈치로 옆구리를 찔렀고, 지우개는 금을 넘은 만큼 잘라 갈취했다. 진짜 화나는 건 그 아이의 만행을 네가 좋아서 그러는 거라고 한 담임 선생님의 어처구니없는 중재였다. 그 시절 사내아이들의 폭력을 애정이라 치부하는 바람에 초래한 ‘폭력의 정당화’에 대해선 길게 말하고 싶지도 않다. 아무튼 ‘금을 긋다’는 말엔 ‘나’와 ‘타자’를 명확히 구분하며 ‘나’의 잣대를 들이대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숨겨져 있다. 

살면서 사람들은 숱하게 금을 그으며 살겠지만, 그렇다고 2학년짜리처럼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는다. 적어도 그것이 유치한 일이라는 정도는 아니까. 내가 사는 아파트는 옆 단지 주민들이 두 단지 사이를 가로지르는 화단을 자꾸 넘나든다면서 키 큰 나무를 심어 금을 그었다. 그리고 지난겨울에는 옆 단지가 화단 옆길에 일주일에 한 번 장터를 열도록 했는데, 거기서 나온 이익은 자기네가 챙기고 시끄럽고 냄새나는 것은 우리 몫이 되었다면서 화단에 아예 줄까지 쳐놓았다. 그리고 그 줄 위에는 “구경하지도 말고 사지도 말자” “○단지의 행복은 ○단지의 불행이다”라고 적은 현수막을 걸었다.

그 현수막이 걸린 쪽엔 늘 부부가 하는 국숫집이 자리를 잡는다. 국숫집은 이른 아침에 가장 먼저 들어와 비닐 천막으로 지붕을 세우고 벽을 친다. 날이 추워 뻣뻣해진 비닐 천막을 펼치는 데만도 한참 걸린다. 그렇게 가게가 만들어지면 부인은 불에 국수 육수를 올려 끓이고, 남편은 한쪽 구석에 국화빵 틀을 올려놓고 국화빵을 굽는다. 아직 일이 서툴러 보이는 남편은 국화빵을 굽는 내내 고개를 들지 않고 집중한다. 그가 고개를 들면 바로 눈앞에는 생떼를 부리는 현수막이 보인다. 제멋대로 금을 그어놓은 이웃, 이런 이웃이 있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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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촉감도 소리도 아름다운 우리말 ‘몸’을 한자로 번역한다면, ‘기(氣)’가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영어에서는 기를 ‘qi’로 표기한다. “기분(氣分), 감기(感氣), 기가 막힌다” 등은 몸 상태를 잘 표현하는 말들이다. 감기는 기운, 기(氣)의 운(運)을 느끼라는 몸의 알리미다. ‘기’에는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이 없다. 죽음은 몸의 일부인 정신이 빠져나가는 과정이다. 몸에 해당하는 영어가 ‘보디’가 아니라 ‘정신이 깃든 신체(mindful body)’인 이유다. ‘보디’가 홀로 쓰일 때는 시체, 몸통, 실체 등의 뜻이다. 

기는 몸의 총체적 에너지다. 기(氣)가 나뉜(分) 상태의 균형감에 따라 “기분이 좋고”, 그렇지 못할 때는 “기분이 나쁘다”. 기분의 배분에는 일정한 법칙이 없다. 사람마다 기분이 좋은 상태의 비율이 다르다. 통념과 달리, 기분은 순간적인 감정 상태가 아니다. 과학이다. 배우 하정우는 그의 책에서 기분의 위력에 대해 정확하게 썼다. “기분은 무척 힘이 세서 누구나 기분에 좌지우지되기 쉽다.” 개인의 다양한 에너지가 적절하게 분배되어 기분이 좋을 때,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바, 기분이 좋을 때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다. 

기분은 개인 차원의 에너지가 아니다. 사람의 기분은 사회, 인간관계, 사건에 의해 변화하는 정치경제의 동학을 따른다. 이것이 감정의 물질성이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계급의 양극화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계급이 거의 모든 인간의 조건을 양극화시킬 수 있는 절대적 요소가 된 세상을 말한다. 외모, 실력, 교양, 성격, 건강, 행복이 돈에 의해 좌우된다.

오늘날 공중 보건 이슈는 기분을 관리하는 심성의 양극화로 인한 것이 많다. 우울증은 일종의 기분 장애(mood disorder)인데, 그간 우울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정설이 있었다. 하나는, 성별. 성별에 따라 증상이 확연히 구분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분노할 수 있는데, ‘남성(사회적 강자)’은 분노를 타인에게 폭력으로 표출하고 ‘여성(약자)’은 자기 탓으로 돌리는 우울 경향이 있다. 남 탓으로 돌리는 투사(投射)와 내 잘못이라는 내사(內射).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전통적인 구분이 사라져가고 있다. 우울증도 흡연 경험이 없는 이들이 폐암으로 사망하는 경우처럼, 질병의 인과관계를 간단히 규명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유난한 저출산, 우울증, 자살 문제는 우리에게 건강, 인간관계, 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남성의 우울증도 심각하다. 게다가 여성의 자살 시도는 고통을 호소하는 ‘의사소통’의 성격이 강한 데 비해, 남성의 자살 시도는 목적과 의사가 분명한 경우가 많다.

또한 예전에는 일상적인 우울한 기분과 질병으로서 우울증을 구분했는데, 요즘은 이 구분도 흐려졌다. 일상과 질병의 경계가 흐려지면, 적당한 진료 시기를 놓치기 쉽다. 증상이 나의 본모습인지, 아니면 병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 헷갈리게 된다. 우울증은 타인으로부터 이해받기 힘든 병이다. 오해와 해명, 좌절이 반복된다. 명확한 ‘신체 질환’으로 간주되는 질병과 달리, 우울증이나 치매, 조현병 등은 아픈 사람이 나쁜 사람 혹은 위험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문명사는 곧 질병사이다. 오늘날 일시적 기분이든 심각한 질병이든, 우울하지 않은 이들이 없는 것 같다. 사회 문제를 자기 탓으로 돌리는 사람도 많고, 잘못해도 뻔뻔스러움으로 무장하고 혼자 ‘정신 승리’를 선언하는 이들도 많다. 두 경우 모두 기의 사회적 균형이 깨진 상태다.

정신적 질환에 대한 편견이 강하다보니, ‘정신 승리자’가 강한 사람으로, 사회생활을 잘하는 이로 여겨지는 것은 큰 문제다. 악화가 양화를 짓누른다. 앞서 말한 대로 기분은 몸의 물리(物理)다. 기분 총량의 법칙은 개인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공동체는 기분의 총량이 있다. ‘갑질’은 타인의 기운 분배를 파괴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건강은 개인의 관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힘내라”는 말에, 도리어 힘이 빠진 경험을 한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기운 내라? 없는 기운을 어디서 낸다는 말인가. 기운은 내는 것이 아니다. 주고받는 힘이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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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니 왕조의 마흐무드는 서기 1000년경 소아시아에서 갠지스강까지 영토를 넓힌 정복군주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에 비견되는 업적으로 술탄(통치자) 칭호를 처음 얻었다. 그는 회의를 하던 중 신하로부터 “한 튀르크 병사가 집과 침대에서 나를 쫓아냈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마흐무드는 범인이 다시 찾아왔다는 말을 듣자 현장으로 달려갔다. 술탄은 집 안의 불을 끄도록 한 다음 범인을 잡아 처형했다. 그리고 기도를 한 뒤 소박한 음식을 요청해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술탄은 말했다. “내 아들이 아니면 그 같은 일을 할 사람이 없다. 내가 불을 끈 것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차 없이 정의의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대의 항의를 듣고 난 뒤 3일간 음식을 넘기지 못했다.” 술탄은 부자지간이라는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았다.

조선시대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의 허물을 덮어주지 않았다. 꾸짖고 또 꾸짖었다. 무수리의 아들인 영조는 빈약한 정통성으로 대소신료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래서 아들이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왕으로 크기를 바랐다. 아비의 정은 내려놓았다. 선위까지 해주었지만 얼음처럼 차갑고 혹독한 훈육을 멈추지 않았다.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용상에 앉을 수 없다는 뜻이 단호했다. 아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아버지가 왕인 것이 오히려 불행의 단초였다. ‘아빠 찬스’가 아닌 ‘아빠 페널티’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19일 앙골라 전 대통령의 딸 이사벨 두스산투스가 ‘아빠 찬스’를 이용해 20억달러에 달하는 부를 쌓았다고 보도했다. 그가 아버지(조제 에두아르두 두스산투스)의 후광을 업고 국영 석유, 다이아몬드 회사 등과 특혜성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세습공천’ 추진이 논란이 되고 있다. 문 의장의 아들 석균씨는 4·15 총선에서 아버지 지역구인 의정부갑에서 출마하려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제2의 조국 사태’ 조짐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문 의장은 ‘아들의 뜻을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석균씨는 “아버지의 길을 걷되, 아빠 찬스는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이 이를 납득할지 의문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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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5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8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은 보수언론과 일부 경제지엔 큰 충격이었나 보다. 그들은 전체 노동조합원 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특히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수가 한국노총을 추월했다는 사실을 마치 ‘나라가 망할’ 것처럼 다뤘다. 노조에 대한 낡은 공포를 조장하고 상투적 반민주노총 선동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노조 가입(률)이 한 사회의 노동자·시민이 얼마나 정당한 임금과 자유로운 사회권을 누리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척도라면, 그래서 실질적 민주주의의 수준을 평가하는 하나의 지표라면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이나 민주노총이 제1노총의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은 실속은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여전히 ‘노조 할 권리’가 모든 일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공공부문과 대기업 노동자의 것일 뿐임이 다시 드러났기 때문이다. 노동부에 의하면 공공부문 노동자는 약 70%나 노조에 가입돼 있으나, 민간 부문 노동자 중 노조 가입자는 10%도 안된다. 또 300명 이상 기업의 노조 조합원 비율은 전체 가입자의 87.5%나 되지만 30명 미만의 작은 사업장 노조 조직률은 0.1%에 불과했다. 작은 민간기업에 다니는 이 사회의 무수한 사람들은 노조와 인연 자체가 없고, 노동권과 ‘근로기준’을 보장받지 못한 채 불이익을 감당하며, 중소 사업주와 ‘을 대 병’의 갈등을 겪으며 직장생활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전체 노조 조직률은 11.8%로 2017년에 비해 단 1%만 늘어났다. 오히려 노동조합 수 자체는 줄었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해 우리가 묻고 생각해야 할 것은 여전히 왜 노조 가입률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낮은 11.8%에 불과한지, 그리고 자랑스러운 ‘촛불혁명’을 하고 ‘노동 존중’ 정부 치하에 사는데도 왜 노조 가입률이 단 1%밖에 늘어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세 가지를 떠올려본다.

첫째, 제도적·법적인 문제가 시민과 노동자들을 옥죄고 노동조합을 꺼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용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독소조항이 가득한 노동법이 노조를 약화시켜왔다고 진단한다. 예컨대 노조 활동 시간의 일정 부분만 임금을 주는 타임오프제는 노조를 위축시킨다. 특히 규모가 작은 노조는 이 때문에 존재 자체가 위태롭다. 또한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사용자가 조합원 수가 많은 노동조합만 제1노조로 선택해 교섭을 독점하게 했다. 이는 노조 탄압과 노동자 간 분열을 조장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 

둘째,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가진 한계나 부실함 때문일 것이다. ‘촛불혁명’과 ‘민주주의 국뽕’에도 노동권에 관한 한 한국은 ‘선진국 수준’과 큰 거리가 있다. 이번 1월 초에 정부는 유엔으로부터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에 진전이 없다고 또 지적받았다. 

그리고 정부는 민간 기업의 노동 탄압에 대한 ‘방치’를 기본 정책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법’과 ‘노사 자율’이란 명목이겠지만, 법과 기업의 힘 앞에 절대 다수의 노동자는 힘없는 개인이며 노조 또한 ‘구조적’ 약자다. 바뀌지 않은 이 ‘구조’를 고려하면 정부는 게으르고 무디다. 그래서 한국 노동자들은 오늘도 스스로 목숨을 던지거나 밥을 굶으며, 고공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최대의 인간적 비참을 감당하는 싸움을 벌이고 보여주어야 한다. 노동관계법을 고치고 부당 노동행위를 근절하지 않으면서 ‘공정사회’를 입에 올려도 될까?  

마지막으로, 조직 노조운동과 민주노총에 대한 일부 대중의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극복해야 할 과제도 있겠다. 고용불안이 삶의 조건 자체가 된 청년, 광범위하게 비정규직화된 여성, 무권리 상태에 있는 특수고용직 및 플랫폼 노동자의 문제가 확고히 운동의 중심의제여야 하지 않을까? 민주노총이 조금씩 젊어지고 있고 ‘사회연대’에도 노력하겠다는 소식을 가끔 접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보다 깊은 차원에 있다. 민주노총 또한 대기업 공공부문 노동자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청년, 여성 그리고 비정규직과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스스로 나서야 하지만, 그들에겐 이중·삼중의 굴레가 있으니 큰 딜레마다. 민주노조운동과 민주노총은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시민의 조직을 위한 매개나 마중물이 되는 역할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시혜적이고 일관성 없는 ‘노동 존중’을 기다리고 기대할 수 없다. 우리 노동자·시민은 함께 ‘노동 해방’의 새로운 길을 스스로 찾아 나서야겠다. 그 길은 20세기의 그것과는 다른 내용을 가지리라. 노동과 돌봄·가사·서비스 노동에 대한 다른 개념이 필요하고, 불안정 고용 상황에서도 누구나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불로소득’을 환수하여 일하며 하루하루 사는 노동자와 청년들에게 재분배하는 일 자체가 ‘노동 해방’의 한 방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천정환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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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1일 호르무즈해협에 군 병력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부대를 추가로 파병하는 것이 아니라 아덴만에 이미 파견한 청해부대의 작전 지역을 호르무즈해협까지 넓히는 방식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해양안보구상(IMSC·호르무즈 호위연합)에 참가하지 않고 독자적인 작전 활동으로 한국 국민과 선박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파병 요청을 수용하면서 이란과의 관계도 고려한 절충안이다. 미군 휘하로 군을 파견하지 않는 것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파병의 명분이 약한 데다 향후 감수해야 할 위험요소들이 많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1월23일 (출처:경향신문DB)

이번 파병이 중동 현지의 교민과 기업의 안전, 한·미동맹 및 이란과의 관계 등을 두루 고려한 조치라는 설명에 공감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호르무즈해협은 국내 수입 원유의 70% 이상이 통과하는, 한국에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해역이다. 이곳에서의 항행 안전이 최근 미국과 이란 간 긴장 고조로 위협받는 만큼 그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유사시 2만5000명에 이르는 중동지역의 교민을 신속하게 대피시키기 위한 복안도 마련해 두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궁여지책으로 파병을 결정한 것이라고 몰아갈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번 파병 결정으로 분쟁지역에 군대를 보내는 위험을 무릅쓰게 됐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분쟁이 일고 있는 해역에 국군을 파병한 것은 처음이다. 해상은 지상보다 전장의 불확실성과 작전상 위험이 더 크다. 1990년 이후 초기 파병이 주로 의료지원이나 재건의 성격이었던 데 비해 최근에는 전투 부대를 보내는 점도 우려스럽다. “이번 파병이 역사상 가장 위험한 파병이 될 것”이라는 정의당 등의 평가는 일리가 있다. 국방부는 청해부대의 임무 확대를 “중동 정세가 호전될 때까지”로 한정했지만 그 임무가 언제 종결될지 알 수 없다. 중동 정세가 워낙 불안하고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어 언제든 위험요인으로 닥칠 소지가 있다. 이란은 2주 전 미군에 반격을 가하면서 “미국의 반격에 그 우방국들이 가담하면 그들의 영토가 우리의 공격 목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에서 청해부대가 한국 선박만을 호송하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의 선박 호송 요청에도 응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찜찜한 대목이다. 때에 따라서는 청해부대가 이란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파병 결정에 대해 미국과 이란 모두 이해했다고 하지만 두 나라 모두 내심 불만스러워할 것은 불문가지다. 특히 이란은 파병에 끝까지 반대했다고 한다. 정부는 국익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 국방부는 청해부대 임무 확대가 국회 동의를 구할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기존 파병안에도 청해부대의 작전지역이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일대로 돼 있지만 유사시 그 외의 해역으로 확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으로 청해부대의 작전구역이 3.5배로 늘어나고 작전의 성격도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새로 국회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옳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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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의 중심을 형사·공판부로 이동시키는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검찰 직제개편의 핵심은 직접수사부서 13곳을 형사·공판부로 전환하는 것이다. 형사·공판부는 국민과 밀접한 민생사건을 처리하는 부서다. 그런데 검찰이 반부패범죄 등에 대한 직접수사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이들 부서는 질적·양적으로 홀대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로 인한 수사 및 재판지연 등에 따른 피해는 국민들이 감당해야 했다. 

직제개편으로 전국 검찰청에서 공공수사부 5곳·전담범죄수사부 4곳·반부패수사부 2곳·외사부와 총무부 각 1곳이 폐지된다. 앞서 축소한 특별수사부를 포함하면 직접수사 부서 17곳이 사라지는 것이다. 법무부는 “인권·민생 중심의 검찰로 달라질 것”이라며 “방치해서는 안될 민생사건 처리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옳은 방향이다. 그간 형사·공판부 검사는 인력 부족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 형사부 검사 1명이 매년 1000여건의 민생사건을 처리해야 했고, 공판부 검사는 거의 매일 재판에 매달려야 했다. 직제개편은 이런 불합리를 바로잡는 일이다. 이제라도 수사 처리는 빨라지고 충실한 공소유지로 국민의 권리보장도 한층 강화된다니 반가운 일이다.

법무부는 경제·식품의약·조세 범죄를 다루는 형사부는 따로 운영하고, 수사 중인 사건은 해당부서에서 계속 수사할 수 있도록 경과규정을 뒀다. 직제개편이 전문수사역량 감소, 수사위축으로 이어질 우려를 차단한 것이다. 검찰 직제개편의 목적은 민생 관련수사 역량을 강화해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 법안의 통과로 조성된 ‘국민 중심 형사사법시스템’을 정착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직제개편 외에 공수처·검찰·경찰 간 수사공조시스템 구축, 형사부의 직접수사부서화 방지를 위한 내부통제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직제개편 취지에 맞는 인사와 조직문화 개선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법무부 탈검찰화는 두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검찰은 단 한 명의 국민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이 없도록 민생사건 처리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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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서울시교육청이 4월 총선에 앞서 추진하는 모의선거 교육에 대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동을 걸었다. 선거 연령이 18세로 낮춰지자 학교 현장에 허용될 선거 활동을 하나하나 짚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올 총선 고3 유권자는 14만명에 달한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21일 “선관위와 협의하고 그 판단을 존중해 모의선거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3~4월 서울 초·중·고교 40곳에서 예정된 모의선거 교육의 사활을 선관위가 쥔 셈이다.

핵심 쟁점은 정부기관이 주관하는 모의선거를 허용할지 여부다. 선관위 유권해석도 왔다갔다했다. 2018년 지방선거 앞에 서울·경기·충북·광주 등의 17개 중·고교에서 YMCA와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가 주관한 모의선거가 치러졌다. 선관위는 실제 입후보자의 모의선거 결과를 지방선거까지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허용했다. 서울시선관위는 지난해 11월 시교육청 위탁 업체의 모의선거 문의에 ‘결과 공표와 특정후보에게 유불리한 행위는 없도록 하라’는 조건부 허용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지난 19일 서울교육청이 두 차례 유권해석을 토대로 입안한 모의선거에 대해 “시민단체 주최와 공공기관이 하는 것은 다르다”며 법적 판단을 미뤘다. 시교육청은 초·중·고교생 모두 포함된 교육에 ‘18세 프레임’만 걸어 막는다며 맞서고 있다. 종국적으론 시민단체 ‘주관’과 ‘위탁’의 차이를 어떻게 볼지만 남았다.

선관위의 신중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모의선거가 하나의 여론조사일 수 있고, 선거법 개정 후 넉 달 만에 고3 선거의 위법성이 없도록 만반의 안전판을 둬야 하기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사전 공개를 금지하고 현장감독관을 배치해 막을 수 있다. 조 교육감이 요청한 교내 선거운동 금지도 적절한 선거과열 예방책이 될 터다. 미국은 민간단체가, 캐나다는 정부선거관리기구와 시민단체가 학생투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호주엔 ‘국립선거교육센터’가 따로 있다. 모두 훌륭한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을 선거로 보는 것이다. 선관위는 청소년 선거교육을 주도해도 모자랄 판에 브레이크만 밟으며 소탐대실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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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아마겟돈의 한 장면과 같았다”고 증언할 만큼 거대한 화마가 호주 대륙을 휩쓸던 시간. LA에서 열린 골든 글로브상 시상식에서 영화 <조커>로 주연상을 수상한 호아킨 피닉스는 남다른 수상 소감을 밝혔다. 

“축산업과 기후변화 문제의 관련성을 인정하고, 행사 식단을 모두 채식으로 준비해주신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에 감사한다.” “또한 오늘 많은 분들이 호주 산불을 걱정하는데, 위기의식과 슬픔에 진심으로 공감한다면 행사를 위해 전용기를 타고 오는 행동은 하지 말자.”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출연한 영화 '조커'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방송을 본 후 기사를 찾아봤다. 오랜 시간 채식운동을 해온 그가 직접 주최 측인 HFPA에 제안한 것이라 한다. 기후변화에 역행하는 트럼프 정권에 소신발언을 하기로 유명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도 트위터를 통해 감사를 표했는데, 그 역시 2016년 아카데미에서 주연상을 수상할 때 환경문제를 언급했었다. 디캐프리오의 자동차 3대는 모두 전기차이거나 하이브리드 기종이고, 태양열을 이용하거나 가죽 등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에코 인테리어를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배우 제인 폰다도 최근 ‘금요일마다 체포되는 사람’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가 이끄는 기후변화 관련 시위를 매주 금요일 워싱턴 의회 의사당 앞에서 열고 경찰에 잡혀가기를 반복해서다. “82세는 감옥 가기 딱 좋은 나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그의 곁에 많은 유명인이 함께했다. 호아킨 피닉스도 참가해 체포되었다.

최근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유엔 보고서는 가축사육이 기후변화의 최대 원인 중 하나이며 전 세계 모든 교통수단의 총 배출비율보다 많으므로, 세계인이 10~15년 정도만 채식을 한다면 지구 평균온도를 다시 안정화할 수 있다고 한다. 

심란해진다.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나름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배송상품은 자제하고, 가까운 매장이나 재래시장에 가서 내 장바구니에 담아 걸어온다. 차도 없애고 대중교통만 이용한 지도 오래다. 내 돈 주고 묵는 여행지 숙소의 전기와 수도도 아끼고, 며칠 묵을 때도 매일 수건과 시트를 갈지도 않고, 세면도구도 반드시 챙겨 일회용품도 낭비하지 않는다. 남은 음식은 싸오고, 내 몸 하나 가꾸고 안락하자고 하는 행위가 환경을 해칠 수 있다는 생각에 소비도 절제한다. 그런데 이제 가끔씩 즐기는 식도락의 소소한 행복마저 포기할 때가 온 것일까. 경제는 괜찮은 걸까.   

산불이 휩쓸고 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버종 지역에서 15일(현지시간) 한 주민이 불에 탄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과학자들은 우리가 화석연료에서 벗어나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바꾸기 위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10년이 조금 안 남았다고 경고한다. 불지옥이 된 호주는 2016년 비영리 단체들로부터 이산화탄소와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큰 ‘기후 악당 4개국’ 중 한 곳으로 지목되었었다. 뉴욕타임스는 “지금 호주는 기후자살을 하고 있다”는 기고문을 실었다. 인과응보라는 이야기다. 한국 역시 기후 악당국 중 하나로 지목되었다. 

기후 문제가 특히 안타까운 것은 기온 상승으로 인해 고위도의 일부 선진국들은 적정 온도대에 진입하며 경제적 이득을 얻는 반면, 열대 쪽의 저개발국들은 더욱 빈곤에 빠진다는 점 때문이다. 환경 파괴의 주범보다 피해자들이 설상가상의 고통을 치르는 아이러니에 죄책감이 든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한 집에서 산다. 삶은 불공평하지만 파국은 냉혹하게 공평할 것이다. 환경 운동가인 10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말한다. “우리 집이 불타고 있어요.” 불타는 지구에서 뛰어내릴 곳은 없다. 당신이 재벌이든, 팍스 아메리카나의 대통령이든.

<박선화 마음탐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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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들께서 이제 조국 장관을 좀 놓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렇게 되기는 힘들 것 같다. 우선 검찰의 조국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재판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한 대중의 관심은 식지 않을 터이다. 둘째로 시민사회의 갈등과 혼란 역시 약화될 기색이 없다. 오히려 4월 총선이 다가올수록 격화될 것이다. 문 대통령의 소망은 소망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27일 새벽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후 동부구치소에서 대기하다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수사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다. 4개월간 탈탈 털었지만 지위를 이용한 권력형 비리는 적발하지 못했다. 초라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조 전 장관의 중도 사퇴를 끌어낸 것은 성과일 수 있다. 하지만 ‘더 센’ 추미애 장관을 만나게 됐고, 윤석열 총장의 측근들이 무더기로 잘려나갔다. 검찰개혁에 반대해온 검찰이 개혁 입법에 결정적 역할을 한 점도 아이러니다. 수사 과정에서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수사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은 검찰 신뢰에 감점 요인이다. 세상이 검사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검사가 다 맞다는 이른바 ‘검동설’을 신봉한다는 구설에 오른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조국 사태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조국과 검찰, 그리고 양측에 공감하는 두 개 시민사회의 거대한 감정이입이 작용하면서 거대한 등장인물군이 형성됐다. 갈등 구도도 선명했다. 예컨대 조국에게 검찰은 개혁 대상이었지만 검찰에 조국은 수사 대상이자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이는 검찰 수사를 사활적 게임으로 몰고 갔다. ‘탄핵 보수’에 조국 수사는 천만뜻밖의 선물이었다. ‘상처 입은’ 조국을 공격함으로써 적폐의 치부를 가리고 바닥에 떨어진 존재감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반대로 진보에 조국 사태는 치명적 약점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줄곧 공세를 펴온 진보는 수세에 몰렸다.

한국 사회는 ‘조국 드라마’와 관련해 공명하거나 반발하면서 집단적 확증편향이 작동하는 거대한 두 개의 사일로를 형성했다. 이런 관계 틀은 쉽게 붕괴되지 않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 모두 조국 사건에 커다란 정치적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선악의 문제를 다루는 데 서툴다. 흑백논리 탓에 대화와 타협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조 전 장관은 어느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 인사로 자리매김했다.

조국 드라마에 동력을 제공한 분노를 빼놓을 수 없다. 분노의 대상은 ‘바른말 하는 진보의 위선’과 ‘회복 불가 수준의 계층화 사회’, ‘같은 사안에 정반대의 해석을 하는 상대 진영’ 등 다양했다. 공동체 구성원이 둘로 갈려 서로에게 분노하는 상황에서 연대와 공감, 신뢰는 자라날 수 없다. 더구나 한국은 ‘아무나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민주국가’(자크 랑시에르)다. 이런 척박한 토양 속에서 통합이나 소통은 기대하기 어렵다. 시민사회의 의견이 갈라지고, 상대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려는 행태만 반복될 뿐이다. 그 결과는 분노의 확대와 심화다.  

혹자는 조국 사태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묻고 싶다. 사회 전체가 이분법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합의하는 진실이 가능한가. 가뜩이나 진실은 누군가의 주장 속에서만 존재하고, 한쪽 진영에서만 통용되는 사회 아닌가. 한쪽의 진실은 반대쪽에는 비수가 되는 구조이다. 그러니 누군가 진실을 주장하면 그것이 진실인지 여부를 가리기보다 그 사람의 허점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진다. 도덕적 하자나 행실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드물고, 그런 점이 드러나면 그가 주장한 진실은 설득력을 상실한다. 진실이 정치적 의도로 살해당하는 셈이다. 결국 사회 전체가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미치코 가쿠타니) 상황으로 몰려간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을 ‘가족비리’ 및 ‘감찰무마 의혹’ 혐의로 재판에 회부했다. 종착역이 가까워진 것이다. 재판이 끝나면 조국 사태는 파장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조국 사태에 내장된 정치·사회적 폭발력은 여기서 끝날 정도로 간단치 않다. 사실 조 전 장관의 유무죄는 사태 전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볼 때 빙산의 일각이다. 몸통에 해당하는 불공정과 불평등, 계급과 세습 문제는 해결을 위한 초보적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검찰개혁도 완성되려면 멀었다. 앞으로도 조 전 장관은 끊임없이 소환될 터이다. 희생양으로서든(진보) 위선자로서든(보수) 한국 사회는 아직 그를 필요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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