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사령부가 주한미군에 소속되어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오는 4월1일부로 무급휴직을 시행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올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일찍 마무리되지 않으면 이런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은 무급휴직 시 60일 전에 통보하는 절차를 밟는 것뿐이라고 했지만, ‘보도자료’를 통해 이런 방침을 알린 것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 한국인 노동자들을 볼모로 잡아서라도 더 많은 방위비를 받아내겠다는 미국의 발상이 참으로 치졸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1월 30일 (출처:경향신문DB)

미국은 협상 초기 한국에 종전보다 5배나 많은 50억달러(약 5조8000억원)를 요구한 이래 한국을 줄곧 압박하고 있다. 양국 대표단이 그동안 협상을 통해 이견을 꽤 좁혔다고 하지만 미국은 지금도 분담금 증액의 기본 논리를 고집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협상에서도 종전까지 방위비 분담금에 포함하지 않던 미군의 한반도 순환배치 비용과 역외훈련 비용까지 지불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2월 내 타결을 목표로 양국이 막판 협상에 나선 이때에 주한미군이 소속 한국인 노동자의 무급휴직 조치를 꺼내들었다. 어떻게든 한국을 상대로 대폭 증액된 분담금을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뜻이 보인다. 문제는 이런 무지막지한 협상의 중심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이렇게 고집하니 국무·국방장관은 물론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등이 한국을 압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미 사이에 동맹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과연 협상의 일반적인 원칙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미국 내에서도 터무니없는 방위비 증액 요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민주당 소속 애덤 스미스 미국 하원 정보위원장은 28일 미국의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가 한·미관계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미 상원 외교위 민주당 간사인 밥 메넨데즈 의원과 군사위 간사인 잭 리드 의원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에게 공동 서한을 보내 과도한 증액 요구를 재고하라고 촉구했다.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 요구가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지위를 위태롭게 한다는 이들의 경고를 트럼프 행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미 정부는 틈만 나면 문재인 정부가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지금 한·미 동맹을 악화시키는 것이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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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비상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29일 중국 내 신종 코로나 확진자는 6000여명으로 2003년 중국인 사스 환자 수를 넘어섰다. 가파른 사망자 증가세 역시 꺾일 기미가 없다. 독일·일본·베트남 등에서는 중국 체류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신종 코로나 증상이 확인돼 2차 감염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지난 27일 4번째 환자 발생 이후 더 이상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2차 감염자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다. 확진자들과 접촉한 사람들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유증상자들에 대한 검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는 국내에서 2차 감염자 발생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1월29일 (출처:경향신문DB)

정부는 30일과 31일 중국 우한에 전세기를 투입해 교민과 유학생 700여명을 귀국시킬 예정이다. 신종 코로나 방역이 또 한차례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신종 코로나의 감염 피크는 오지 않았다. 최소한 1~2주, 길게는 한 달 이상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된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미덥지 않다. 정부 내 컨트롤타워가 다소 혼선을 빚는가 하면, 부처 간 불협화음도 들린다. 우한 교민 이송 과정에서 유증상자 탑승 여부를 놓고 외교부와 보건복지부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 게 대표적 사례다. 당초 천안으로 예정됐던 입국 교민 격리시설은 지역 주민의 반발로 우여곡절 끝에 아산과 진천으로 결정됐다.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정부가 엇박자를 내는 것은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검역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한 탓이 크다. 검역 선진화 패러다임 구축을 위한 ‘검역법 개정안’ 제정이 시급하다. 현재의 검역법은 선박·물류에서 항공기·승객으로, 콜레라와 같은 세균성감염병에서 메르스와 같은 바이러스 감염병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기에는 부족하다. 또 검역 인프라의 첨단화, 검역 인력의 전문성을 확보하기에도 법적인 어려움이 많다. 개정안은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여야는 29일 신종 코로나 특별대책위를 구성하는 등 방역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회가 진정 감염병을 우려한다면 검역법 개정안 통과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감염병 전문병원을 비롯한 공공의료 시설의 확충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여야는 지난 19대 대선에서 모두 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실제 추진된 곳은 호남권역 전문병원 1곳뿐이다. 그나마 병원 가동은 2022년에야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감염병 전문병원은 고사하고 공공병원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공공병원은 전체의 6% 수준이다. 이러다보니 전염병과 같은 긴급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우한의 교민이 병원이 아닌 공공시설에서 방역 조치를 받는 것은 공공의료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많은 희생자를 낸 2015년 메르스 사태는 준비하지 않으면 큰 화를 입는다는 교훈을 남겼다.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 이참에 법령과 시설 등의 검역체계를 완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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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설 연휴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과로사 소식이 알려진 것이 꼭 1년 전이다. 연휴기간 고향에 가기로 했지만, 밀려드는 업무에 퇴근도 못하고 집무실 책상 앞에 앉은 채 발견된 그의 죽음에 온 국민이 망연자실했다. 올 설 연휴 직전엔 전국 17곳 권역외상센터와 닥터헬기 도입의 산파역을 했던 이국종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아주대병원 교수)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이 교수는 지난 21일 라디오 방송에서 “이번 생은 망했다. 완전히”라며 “죽어도 한국에서 다시 이것(외상센터 일) 안 한다”고 했다. 깊은 절망이 느껴졌다.  

[장도리]2020년 1월 22일 (출처:경향신문DB)

두 사람은 우리의 의료현실에선 보기 드물게, 명예와 출세도, 가족과의 시간도 포기한 채 험한 일이 기다리는 응급의료 개선에 인생을 걸겠다고 다짐한 의사들이었다. ‘선진국형 응급의료’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며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서로 격려하며 희망을 붙들었다. 그래서 이들의 비극과 깊은 절망은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권역외상센터 운영 이후 예방 가능한 외상환자의 사망률이 2015년 30.5%에서 2017년 19.9%로 크게 줄었다고 홍보했다. 사실 권역별 외상센터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끌고 온 것은 이국종 교수였다.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며 주목받자 중증외상센터의 필요성을 호소하며 여론을 움직였다. 이듬해 일명 ‘이국종법’으로 불리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권역외상센터들이 설치됐다. 권역외상센터 추가지원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에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중증외상센터에 근무하는 의료진이 마음 놓고 의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말은 이 교수가 사의를 표하며 허언이 됐다. 

일련의 상황을 보며 우리 의료체계가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어 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과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생사의 촌각을 다투는 응급실 의사들은 일하다 죽을 만큼 인력난에 허덕이는데, 성형외과, 피부과는 왜 그리 많은가. 미용의료와 관광을 한 묶음으로 엮어 외국인 의료쇼핑을 지원하는 지자체의 움직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정부가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하는 것이 맞나. 결국, 궁극적인 질문은 ‘과연 대한민국에서 의료란 무엇인가, 의료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이다. 인술인가, 인술로 포장된 상술인가. 

핵심은 공공성이다. 시민들은 어렴풋이 공공성의 부족을 절감하고 있다. 의료 공공성에 대한 갈망이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제주 녹지병원에 대한 반감이다. 제주 영리병원을 둘러싼 공론조사에서 지역민들은 큰 차이로 반대를 결정했다. 간단히 보면 아주대 외상센터 사태도, 돈 안되는 환자들의 쏠림과 돈 되는 진료만으로(또는 돈 되는 진료 중심으로) 운영하려는 민간병원의 충돌이다. 

김창엽 시민건강연구소장(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은 “아주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병원, 개인의 잘잘못보다는 의료가 시장에서 다른 상품과 비슷한 방법으로 생산, 공급, 유통, 소비되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민간병원들은 물론이고 몇 안되는 국립대병원, 공공병원들조차 민간병원과 똑같이 수익경쟁을 하는 근본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예산을 많이 지원해도 언제, 어디서든 위기는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공공성이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는 외상센터에도 경제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댔다. 당초 6개 권역에 각각 1000억원을 투자해 외상센터를 건립하려던 계획은, 경제성이 낮다는 기재부의 판단에 쪼그라들었다. 훨씬 적은 돈이 전국 여러 곳으로 어정쩡하게 분산됐다.

아주대 외상센터 사태를 계기로, “(수익에서 자유로운) 국가 주도의 외상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선진국 중 외상센터를 민간병원에 위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웅 몇 명의 헌신에 기댄 변화는 바람직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복지부 장관은 아주대 사태에 대해 “현행 제도엔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다. 정말 그런가. 공공의료에 투입할 의료진을 양성하자는 공공의대 설립안이 무산되고, 윤한덕 센터장 1주기(2월4일)가 다가오지만, 의료격차 해소보다 의료산업을 위한 규제 완화 목소리만 커지고 있다. 의료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시민들이 원하는 의료를 요구하고 아무 문제 없다는 정부를 움직여야 한다. 공공 응급의료가 자리 잡도록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더 이상은 비극도, 영웅도 싫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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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전염병은 ‘스페인 독감’이다. 1918년 창궐해 2년 만에 당시 세계 인구 16억명 중 6억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5000만~1억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참전국에서는 언론을 엄격히 통제하고 검열하던 상황이어서 중립국 스페인 언론만이 사태를 상세히 보도했다. 스페인 언론 덕분에 세계는 이 병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스페인 독감’으로 명명됐다. 진실 보도의 대가치고는 고약한 결과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등 지도부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상희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책특위’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스페인 독감은 예외적인 사례다. 대개 유행성 질병은 첫 발생 지역의 이름을 따서 불렸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한 최초의 사례로 꼽히는 1833년 중앙아시아 독감을 필두로 1888년 중국 독감, 1957년 아시아 독감, 1968년 홍콩 독감, 1977년 소련 독감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에볼라바이러스는 콩코민주공화국의 에볼라강에서, 지카바이러스는 우간다의 지카숲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2015년 한국에서 38명의 사망자를 낸 ‘중동호흡기증후군’, 즉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는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견된 뒤 중동 지역에 집중적으로 발생해 이런 명칭이 붙여졌다.

WHO는 2015년 새로운 인간 감염 질병의 ‘이름 짓기’ 원칙을 세웠다. 구체적으로 지리적 위치, 사람 이름, 동물·식품 종류, 문화, 주민·국민, 산업, 직업군이 포함된 병명을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특정 지역과 종교, 민족 공동체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등이 29일 서울 서초구청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선별진료소를 방문해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우한 폐렴’은 지리적 위치 규정에 반한다. WHO는 우한 폐렴을 ‘2019 노벨(novel·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로 명명했다. 청와대가 ‘우한 폐렴’을 WHO의 권고에 맞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바꿨다. 병명 정정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 보수 성향 누리꾼들은 ‘중국 눈치보기’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우한 폐렴’을 고수해 중국 혐오를 부추기려는 흐름도 감지된다. 

같은 전염병을 놓고 보수는 ‘우한 폐렴’, 진보는 ‘신종 코로나’로 부르고 있다. 전염병 호칭마저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갈리는 판국, 이렇게 나라가 쩍쩍 갈라져 있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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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나 무슨 대소사에 기웃거리는 일에서 자유로워졌다. 세상에 남은 인연이 있다면 잔정을 느끼는 사이, 잔정을 나누는 사이뿐. 가령 물을 한 컵 달라고 하면 컵받침에 건네주는 손길이라든지, 어디 멀리 떠나는 여행길에 여비를 쥐여주는 거친 손의 친구에게 마음이 스민다. 그 친구를 위해 선물을 고를 때 가슴이 뛴다. 잔핏줄에 잔정이 돌아야 세상 살맛이 생겨난다. 

중국도 시골로 갈수록 정이 많고 눈물이 많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도 술을 권하고 담배를 권한다. 어떤 할머니는 백세쯤 되어 보였는데, 길에서 쪼그려 담배를 권하는 이들을 보고 나무랐다. “어이 젊은이들. 담배가 무엇이 좋다고 여태 피우나. 나도 작년에 끊었다네.” 건너편 담벼락엔 정이 무척 많은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마침 정거장 곁이어서 담벼락에 자전거를 대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 괴로웠다. 담이 기우뚱할 지경이었다. 세우지 말라고 해도 말을 듣지를 않아. 그래서 할아버지는 잔정을 베풀기로 했다. “여기 세워둔 자전거를 공짜로 드립니다.” 담벼락에다 써 붙였더니 그날 한 대도 남지 않고 자전거가 모두 사라지는 기적. 신종 폐렴의 진원지로 중국을 겨냥하여 혐오하는 말들이 사납구나. 중국에 친척이나 친구가 있는 사람들은 입조심을 한다. 그러고도 정 많은 사람은 불행한 일이 닥치면 원망과 공포가 아니라 보호의 기도와 사랑의 기운을 그러모은다.  

지중해 변방에서 태어난 작가 칼릴 지브란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보스턴의 시리아촌에서 지브란은 바느질 일감을 날랐다. 어머니와 형과 누이가 연달아 결핵으로 죽었다. 청년은 하나 남은 여동생을 데리고 골방을 전전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전시했지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때 이방인을 향해 정을 보인 여인 메리 헤스켈을 만나게 된다. 또박또박 잉크를 찍어 감사와 시심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시인의 우정이고 잔정이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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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종목 가운데는 ‘민주적인’ 스포츠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야구는 타석에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3개의 스트라이크만 허용된다. 때로 판정시비는 따르지만 삼진아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뒤끝이 깔끔한 편이다.

사실 삼진아웃은 생활 곳곳에서 통용돼왔다. 음주운전이 일례다. 이전 도로교통법은 면허정지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0.1% 미만으로 음주운전을 하다 3차례 적발되면 운전면허를 취소했다. 그러나 이 기준이 너무 관대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고 윤창호씨 사건을 계기로 음주운전 2차례만으로도 면허를 취소하는 ‘투 스트라이크 아웃’으로 규정이 바뀌었다.

허위·미끼 매물이 판을 치는 중고자동차 시장도 그렇다. 2016년 정부는 중고차 매매업체가 허위매물 등으로 3차례 적발되면 면허를 빼앗는 삼진아웃제를 도입했다. 그래도 별로 나아진 게 없자, 2차례 적발로 기준을 높였다.

삼진아웃제에는 처음은 실수일 뿐 ‘두 번째부터가 진짜 잘못’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러나 중고차 시장이나 음주운전에서 보듯 두 번까지 눈감아줬다가는 진짜 심각한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사람 심리라는 게 한 번 해도 안 걸리면 ‘또 괜찮겠지’라며 간이 커지게 마련이다. 감시와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개전의 정’이 안 보일 때는 단매가 현실적 처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파기환송심을 받고 있다. 현재 풀 카운트 상황으로,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사실상 삼진아웃이다.

최근 삼성의 ‘준법경영 선언’이라든지, 전직 대법관까지 모셔와 준법감시위원회를 꾸린 것을 보는 시민들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난해 10월25일 첫 공판 때 서울고등법원 재판장 발언을 놓고도 뒷말이 나온다. “1993년 만 51세의 이건희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극복했다.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느냐.” 법관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판결로 말하면 그만이다. ‘정의의 여신’ 디케가 왜 눈을 가린 채 양손에 저울과 칼을 들었는지 굳이 되물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 삼성의 영향력은 이처럼 크고도 깊다.

그리고 11월1일 삼성전자 창립 50돌. 이 부회장은 새 경영 화두를 던졌다. ‘100년 삼성, 함께 가요 미래로!’ 삼성의 책임경영 고민이 십분 이해되지만, 1주일 전 재판장의 주문 이후라 영 개운치 못하다.

경제개혁연구소 이창민 한양대 교수와 최한수 경북대 교수의 보고서는 “재벌 총수들이 유죄판결로 구속됐을 때보다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때 기업 가치가 더 크게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물론 이 부회장의 구속이 삼성에 더 이로울 것이라고 단언키는 어렵다. 무죄가 나거나 집행유예를 받으면 삼성과 나라 경제에 더 충격이 올까.

판사는 경영에 ‘훈수’를 두고, 기업인은 당연한 준법경영을 ‘선언’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되는 현실이 그저 서글프다. 미워도 다시 한번인가.

<전병역 기자 |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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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법은 국가의 정체성을 밝혀 나아갈 방향을 큰 틀에서 제시하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따라야 할 당위의 가치가 담긴, 사람이 만든 법칙이 바로 우리가 얘기하는 ‘법’이다. 약하고 강한 징벌을 받을 수 있지만, 어쨌든 어기는 것이 가능은 하다. 어기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면 우리는 법을 만들지 않는다. 자동차의 공중 비행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 이유가 없다. 법이 필요한 이유는 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 따르는 법칙은 다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어길 수는 없다. 손에서 가만히 놓은 물체가 땅을 향해 아래로 떨어진다는 자연법칙은 당위가 아닌 사실의 법칙이다. 내가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생각만으로 돌을 위로 띄울 수는 없다. 사람이 만든 당위의 법칙과 달리 ‘스스로 그러함’을 뜻하는 자연(自然)은 금지하지 않는다. 어기는 것이 가능하지 않으니 금지할 필요가 없다. 인간이 만든 당위의 법칙이 “이렇게 하는 것도, 저렇게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둘 중 요렇게 하기로 약속해요”라고 할 때, 자연은 “네 맘대로 해봐. 그게 되나”라고 말한다. 

확인된 자연현상이 그렇게 관찰되는 이유는 자연의 법칙이 그 현상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어긋나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자연은 자연의 법칙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금지하지 않고 허용한다.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틀린 생각이다. 자연이 허락했으니 동성애가 존재하는 거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연스럽다. “자연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동성애를 금지한다는 발상은 돌멩이의 자유낙하를 금지한다는 발상과 다를 것 하나 없는 어불성설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자연에서 발견되는 모든 것을 허락하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제3자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데도, 자신과 달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이의 감정을 막겠다는 발상은 야만임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인간이 알아낸 당대의 자연법칙은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 있다. 자연법칙은 우리 머릿속이 아니라, 머리 밖 자연에 존재하는 실재의 반영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가 많다.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 자연법칙을 발견할 주체가 없던 시절에도 돌멩이는 아래로 떨어졌다. 물론, 시간이 지나 인식의 틀이 바뀔 수 있다. 흙, 물, 공기, 불, 네 종류의 원소가 있고, 흙의 자연스러운 위치는 공기의 아래이므로 돌멩이가 아래로 떨어진다고 설명한 것이 그리스의 철학이다. 뉴턴이 완성한 고전역학은 지구가 중력으로 돌멩이를 잡아 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설명의 대상인 자연은 그대로지만, 우리가 자연을 설명하는 방식이 변한 거다. 이후, 뉴턴의 고전역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으로 외연을 넓혔다.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자연법칙은 변화와 발전에 열려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물리학자들이 찾아낸 자연의 법칙을 ‘법칙’이라고 부르지 않는 경향이 눈에 띈다. 뉴턴의 중력법칙이라고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라고 하듯이 ‘이론’이라는 표현이 더 널리 쓰인다. ‘법칙’이라고 하면 인간의 합의에 의해 정해진 당위의 법칙을 먼저 떠올리는 오해를 막자면, ‘이론’이 ‘법칙’보다는 더 나은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론’이라 하면 사람들은 이론의 가변성에 과도하게 주목하는 경향도 눈에 띈다. 누가 어떤 주장을 할 때 “그건 그냥 네 이론일 뿐이야”라고 할 때의 ‘이론’의 의미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이론’과 단어는 같아도 그 경중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물리학의 이론은 자연현상을 정합적으로 설명하는 사고의 틀이라는 면에서, “단지 네 이론”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여러 생각의 틀이 모여 구성된 전체인 물리학은 확실성의 정도가 제각각인 다양한 이론들의 모임이다. 빛보다 빠를 수 없다는 이론,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이론, 닫힌계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는 이론 등은 물리학의 토대 중 가장 튼튼해, 어느 누구도 타당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편, 최근 실험으로 관찰된 특정 물리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대체 가능한 여럿이 경합하는 약한 확실성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다.

자신이 속한 사회가 합의한 당위의 법칙이 외부의 다른 사회에서는 성립하지 않음을 볼 때 우리는 세상을 보는 더 큰 시선을 얻는다. 외계의 지적 생명을 만나게 되면, 나는 그들이 자연을 기술하는 이론의 틀이 궁금하다.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것은 우주 어느 문명도 동의하겠지만, 우리가 가진 고전역학의 운동법칙을 그들은 어떻게 기술할지, 우리의 양자역학과 그들의 양자역학은 어떻게 다를지, 난 무척 궁금하다. 자연현상은 같아도, 기술 방식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 같은 것을 보고 다르게 설명하는 외계 지적 생명체와의 만남은 과학의 역사상 가장 큰 도약을 만들 것이 확실하다. 

지구에서 본 태양계 행성의 위치 정보를 학습시켰더니 인공지능이 행성 운동의 중심에 태양이 있다는 태양중심설을 스스로 알아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되었다. 인류에게 수천년이 걸린 태양중심설을 인공지능은 짧은 시간에 발견했다는 점에서 무척 놀라운 결과다. 아직 걸음마 수준이지만, 인공지능이 거둘 미래의 성취가 나는 벌써 궁금하다. 미래의 인공지능이 찾아낼 우리와 다른 자연법칙은 어떤 모습일까. 물리학자가 필요 없는 물리학의 발전이 가능한 세상이 도래하지는 않을까. 이해 없이 예측할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물리학의 아름다움을 얘기할 수 있을까.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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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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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유튜브를 배회했다. 김해까지 5시간 여정을 하다보면 스마트폰에 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개별 영상들은 5분, 10분 정도의 짧은 길이이지만 영상과 영상을 넘나들면 금방 시간이 사라진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주로 나의 관심사인 동물, 게임, 만화, 소설, 가요 등의 영상을 보여주는데 가끔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요즘 인기있는 영상이라며 관심사 바깥의 영상들을 추천할 때가 있다. 그사이에서 가장 빈도가 많은 것은 소위 ‘사이다’로 불리는 영상이다.

‘사이다’는 ‘고구마’를 잔뜩 먹어 목이 메이고 답답한 상황을 청량하게 풀어주는 속 시원한 서사를 통칭해 이야기한다. 사이다 서사의 예시는 이렇다. 마음이 유약하고 순진해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선후배들의 등쌀에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직원이 있다. 이 직원이 유능한 애인을 사귀게 되었는데 애인이 직접 나서 모든 문제를 앞장서 해결해주고 보상을 타내며, 직원을 괴롭힌 사람들에게 정의구현을 한다. 

사이다 서사의 구조는 전래동화에서 교훈을 전달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흥부는 제비에게 복을 받고, 놀부는 제비에게 정의구현을 당하고 쫄딱 망하게 되는 것처럼. 고전소설과 사이다 서사의 가장 큰 차이는 기반이 되는 사상의 유무이다. 권선징악 서사는 노골적인 ‘선(善)’과 ‘악(惡)’을 대비시킨다. 아이들에게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당대 도덕관념을 교육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그러나 사이다 서사는 노골적으로 ‘정의구현’을 부르짖지만 그 속에는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답답하게 하는 적(敵)만 존재하며 상대가 나를 때렸으니 나도 때려도 된다는 사적 복수의 당위성만 있다.

사이다 서사는 간편하고 편리하다. 내가 겪는 불행, 불운, 부당하고 불평등한 모든 것들을 복수할 대상이 명확하게 존재한다. 그 존재에게 법의 테두리 안팎에서 대가를 치르게 하면 되니까. 5~10분 내외 짧은 길이의 영상으로 눈길을 끌어야 하는 유튜브에서 이러한 사이다 서사는 최적의 조합이 된다. 사이다의 장점은 곧바로 단점이 된다. 우리가 겪는 사회의 문제는 사악한 악당이 혼자서 좌지우지하는 협잡 탓이 아니다. 사회는 복잡하게 엮여 있고 때로는 구조 탓에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이 개인의 이득이 교차할 때도 많다. 적을 개인 또는 하나의 집단으로 상정하는 사이다 서사는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인과관계를 사라지게 만든다. ‘사이다’를 성공적으로 끝낸 개인은 그 구조에 집중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입은 피해만큼을 보상받으며 모두 끝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이다 서사는 콘텐츠 소비자들을 아주 단순한 이분법 속에 위치시킨다. 서사의 주인공을 방해하는 수많은 안건은 납작하게 분노해야 할 것이 되고 특정 집단이나 사상을 재생산시킨다. 빈부격차나 남녀, 세대의 갈등이 서로 합의를 이루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이해 불가능한 악의로 다가오고, 그것은 사적인 복수로 해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 된다. 유튜브 속 ‘사이다’ 영상의 댓글은 쉽게 전쟁터가 된다. 오히려 더 심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성토부터, 이런 상황을 사이다로 소비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얘기가 맞붙는다. 물론 그 두 집단은 그저 자기가 받은 만족감·불쾌감을 표출할 뿐이라 어떤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늘도 유튜브뿐만 아니라 각종 알고리즘이 끊임없이 사이다 콘텐츠를 노출시키고, 해당 영상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다. 사이다 서사는 고통을 잠재워주는 모르핀이다. 때로는 약효가 아주 강해 진통에서 완전히 벗어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곳은 ‘사이다’의 청량함이 아니라 ‘고구마’의 답답함이다. 무엇이 어떻게 왜 우리를 괴롭히는가. 사람들이 끊임없이 사이다를 찾는 이유는 사회가 계속 진통제를 찾아야 할 만큼 병들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구마가 계속 남아있다면, 우리는 그저 동물적으로 사이다를 마시고, 그 속의 논리를 재생산하는 것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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