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의 훈련소 퇴소식에 다녀왔다. 할머니는 손자 먹이겠다고 불고기를 재우고 김치를 새로 담그고 불고기 불판에 가스버너까지 챙겨왔고, 엄마는 자식 좋아하는 잡채며 나물이며 전을 지지고 무치고 볶느라 잠을 설쳤으며, 한 송이에 몇 만원 한다는 포도를 비롯해 온갖 과일에 평소 즐겨 먹던 과자에 라면까지 완벽준비. 여기에 조카를 끔찍이 여기는 고모는 전날 사다 놓은 딸기생크림 케이크가 어쩐지 미진해 보여, 마감을 코앞에 둔 와중에도 자판을 두들기다가 틈틈이 주방으로 가 토마토스튜를 젓고 있으니, 이게 웬 수선이고 난리고 법석이냐 싶기도 했지만, 군대 간 자식 생각하는 마음표현에 먹을거리 말고 다른 게 없었으므로, 논산으로 출발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뭐 더 가지고 갈 만한 게 없을까 자꾸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었다. 


군대 간 자식 생각하는 마음 표현에

먹을거리 말고 다른 게 없었으므로

불고기에 온갖 과일까지 완벽준비


퇴소식은 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되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청년의 얼굴을 보겠다고 일찌감치 들어가 착석. 이윽고 훈련병들이 열을 맞춰 등장했을 때, 여기저기 손짓하고 환호하고 영상을 찍으며, 누구야 여기 좀 봐라 누가 왔다, 누구야 멋지다 근사하다 사랑한다, 흡사 무슨 행사 퍼레이드에 참가한 분위기였는데, 그 와중에 나란 사람은, 군인을 보면 뒤에 아저씨가 붙었었는데 언제부터 군인이 뽀송뽀송한 아이로 보이게 된 걸까, 내가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이다, 씁쓸한 세월을 향해 눈을 흘기며 서 있었지만, 행사를 마치고 쉰 목소리로 경례를 붙이는 조카 앞에서는 기어이 눈물을 보이기도 했더랬다. 

우리는 예약해둔 펜션으로 가서 준비해온 음식을 먹었다. 소파에 느긋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먹고 마시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청년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는 것은 기본이고, 침대 방에서 잠깐 낮잠을 재우고 난 다음, 다시 일어나 먹고 마시고, 마지막으로 뜨끈한 물로 목욕을 한 다음 핸드드립 커피까지 내려서 디저트 타임. 요즘엔 다들 그렇게 한다고 했다. 집 같은 분위기에서 편안하게. 준비해온 음식은 물론이고 피자며 치킨이며 햄버거 같은 것이 시간차를 두고 배달. 사나흘을 먹어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의 음식을 청년은 질려 하지도 않고 맛있게 먹었다. 군대에서 못 먹이는 것도 아닌데, 못 먹어봐야 몇 달이었을 텐데. 군대 오기 전 고모랑 먹었던 청어우동 맛이 생각난다는 말까지 하는 걸 보면, 세월이 바뀌어도 군대는 군대인가보다 했다. 청년의 아버지는 생전 안 먹던 약과가 군대 가니 그렇게 먹고 싶었다 했고, 청년의 할아버지는 논에서 잡아 구워 먹은 개구리 맛을 떠올렸다. 이야기는 초코파이에서 김칫국으로 정부미에서 꿀꿀이죽으로 왔다갔다 하더니, 그땐 얼마나 추웠고 얼마나 힘들었고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지금 군대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아버지의 1980년대 군 생활이 소환되더니, 어디다 비교하겠느냐 베트남 파병이니 꿀꿀이죽이니 동상 걸린 발이니 할아버지의 60년대 군대에까지 가닿고 말았으니, 과연 군대 얘기야말로 나 때는 말이야의 최고봉임에 틀림이 없었다.


못 먹어봐야 고작 몇 달이었을 텐데

질려하지도 않고 맛있게 먹는다

세월 바뀌어도 군대는 군대인가보다


나로서는 그저 여자 사촌들과 함께 먹을거리들을 잔뜩 사들고 오라비 부대에 면회 간 날의 풍경 정도로 나 때의 맛을 더할 뿐. 그러다 생각난 것이 대학동기 녀석의 훈련소 입소식 때 먹은 의정부 부대찌개였는데, 그게 누구였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누구와 함께 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먹었던 부대찌개만큼은 비교불가 최고였다고 단언할 수는 있었다. 그날은 유독 추운 날이었고, 유독 배가 고팠고, 유독 가진 돈이 없었다. 모은 돈은 아마도 전날 환송회 술값으로 탕진했을 것이고, 추운 날 해장도 못한 채 의정부까지 몰려왔을 테니, 입대자는 얼른 들어가봐라 우리는 어디 가서 해장이나 해야겠다 밀어 넣고는, 의정부에 왔으면 부대찌개를 먹어야지 예닐곱 명이 식당으로 들어가 가진 돈 탈탈 털어 가늠해보니 가까스로 4인분. 눈치고 염치고 간에 일단 시켜놓고 육수에 라면사리를 계속 추가해가며 먹었으니, 어찌 맛이 없을 수 있을쏘냐. 내게 훈련소 맛은 바로 그것이었다. 모자란 의정부 부대찌개의 맛.  

그렇게 한나절의 달콤한 휴식이 끝나고 부대로 복귀할 시간이 되었다. 일분일초가 아쉬운 판이었지만 꼭 들러야 할 곳이 있었으니. PX. 달팽이크림이야 홍삼이야, 그 소문난 마스크 팩이 이렇게 싸다니, 선물할 거 나눠줄 거 내가 쓸 거, 이때만큼은 훈련병 가족 친구 애인이 아니라 보따리상 소리를 들어도 좋다, 이게 바로 훈련소 퇴소식의 맛이로구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장바구니를 채웠다. 논산에서 돌아오는 길, 그래도 얼굴 보고 나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생각하면서, 아무래도 조카 면회를 자주 가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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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엔 일가족의 사망이 유독 많았다. 1월 서울 중랑구 모녀의 죽음, 8월 관악구 모자의 아사, 9월 강서구의 부양의무자에 의한 일가족 살해와 자살, 성북구와 인천 일가족의 사망 소식이 있었다. 이들 가족은 빈곤의 수렁에서, 소득 중단이나 부채 위기에 맞닥트렸을 때 죽음으로 내몰렸다. 보건복지부는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해 사각지대를 조기 발견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빈곤층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정작 중요한 질문을 외면했다. 왜 한국의 가족은 ‘함께’ 죽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빈곤율은 17%로 38개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높다. 노인 빈곤율은 43%로 모든 국가 중 가장 높고, 아동·청소년 빈곤율은 14%로 전체 빈곤율에 비해 다소 낮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아동 빈곤율의 이유를 가난한 이들이 더 이상 가족을 이루거나 출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1인 가구는 27%로 전체 가구 유형 중 가장 많고, 이들 중 47%가 빈곤층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의 66%가 1인 가구이며 이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만큼 가족이 예전처럼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직계혈족의 법적·사회적 책임은 무한에 가깝다. 특히 사회가 가족을 가장 강력하게 호출하는 때는 나이가 어리거나 늙었을 때, 아프고 가난해졌을 때다. 출산부터 육아, 간병에 이르기까지 복지와 사회의 역할은 거의 전적으로 가족에게 떠넘겨져 있다.

빈곤이라는 위기의 순간에도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복지는 작동하지 않는다. 인천에서 사망한 일가족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생계 및 의료급여 수급신청을 하지 않았다. 강서구에서 사망한 노모와 중증장애를 가진 남성은 부양의무자인 동생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웃에 따르면 그는 간병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소득 중단,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해왔다. 일용직에 종사해 온 그의 지난해 소득 때문에 두 모자의 기초생활수급비는 15만원가량 삭감된 상태였다. 가난한 가족들은 서로를 돌볼 수도, 돌보지 않을 수도 없는 덫에 빠진다.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여전히 이행되지 않았다. 

생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가족을 복지와 사회의 최종 자원으로 삼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함께 살아내든지 함께 죽는다. 위기 가족에게 단 두 개의 갈림길만 보이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개인이 아니라 온 가족이 가난해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이 사회이므로. 

가족 중심의 돌봄과 복지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선 우리 사회의 가족이 행복할 수 없다고 2019년의 죽음들이 말하고 있다. 가족에게 떠넘겨진 사회의 책임을 탈가족화하는 것으로 답해야 할 때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전한 폐지는 그 첫걸음이다. 가난한 가족이 죽지 않기 위해 가족 없이도 살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김윤영 |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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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는 의외로 소리 없이 크게 실패할 때가 있다. 소란스럽지 않아서 혹은 다른 소란 때문에 중요한 실패가 지각되지 않은 채 넘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이 실패를 더욱 큰 실패로 만든다. 실패했는지도 모르는 실패, 아니 그 이전에 어떤 시도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실패, 아니 그 이전의 이전에 아무런 관심도 없어서 어떻게 되든 상관도 없었던 실패.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런 실패들 중 하나다.

이 이야기는 한 젊은이의 ‘미안’과 ‘민폐’에서 시작한다. 설요한이라는 20대 중반의 젊은이가 지난해 말에 동료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미안하다, 민폐만 끼쳤다.” 그는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였다. 중증장애인을 동료로서 지원한다는 것은 그도 중증장애인이라는 뜻이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는 정부가 시범 실시한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 지원사업’에 ‘동료지원가’로 채용되었다.

동료지원가란 비슷한 장애를 가진 중증장애인을 찾아내 사회활동에 참여하도록 돕는 사람이다. 상담도 하고 자조 모임에도 가며 적당한 일자리를 찾아 연계시키는 일이 주요 업무다. 언뜻 직업상담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취업 정보를 취합해서 구직자에게 제공하기 전에 그는 훨씬 중요하고 힘든 일을 해야 한다. 바로 중증장애인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중증장애인 대다수는 수용시설과 집에서 세상을 등진 채 수십년을 모로 누워 지낸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가 쓸모없는 짐짝처럼 취급했기에 의지 없는 짐짝처럼 구석에 처박혀 있던 사람들. 이들의 삶의 의지를 살려내는 게 동료지원가의 일이다. 아마도 동료지원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비장애인 활동가들도 자립생활과 자조모임, 일자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똑같은 말을 할 때조차 동료지원가는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무언의 말을 한다. 지금, 나를 보라.

정부가 이 일자리를 만든 건 중증장애인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간 중증장애인들에게 단 한 뼘 사회적 공간도 허락하지 않았던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반성한다고. 이제는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자고. 이를 위해 새로운 주거 형태, 새로운 일자리를 고민하고 있다고. 동료지원가는 우리 사회가 중증장애인들에게 파견한 전령사이자 메시지 자체이다.

설요한은 작년 4월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10개월간 그는 무려 40명의 중증장애인을 찾아내서 상담했고 자조모임을 결성해서 사회활동을 도왔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인 그는 한 달에 4명을 만나고, 한 사람당 매월 5번씩 상담을 했다. 그리고 한 사람당 8개의 서류를 작성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했음에도 그는 수첩 여기저기에 ‘실적이 부족하다’고 썼다. 그는 초인적으로 일했는데 그 초인은 자신의 열정에서 온 게 아니라 월 60만원 남짓한 임금에 할당된 업무였던 것이다.

그는 실적에 쫓겼다. 실적을 못 채우면 그를 채용한 기관은 그만큼에 해당하는 사업비를 반납해야 한다. 그의 임금만이 아니라 그를 돕는 슈퍼바이저에게 지급되는 수당이나 기타 운영비도 반납해야 한다. 그에게 상담을 받은 동료가 6개월 내에 취업하면 20만원의 연계수당이 추가 지급되지만 그럴 일은 없다. 일자리를 찾으라고 설득하는 일자리는 만들었지만 그렇게 설득된 장애인이 갈 수 있는 일자리는 만들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를 딛고 10개월 활동한

20대 ‘중증장애 동료지원가’

실적 압박 몰려 극단적 선택

“미안·민폐” 그 마지막 문자는

‘비장애 중심 사회’ 실패 단면


한 사회가 중요한 일을 시도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면 이렇게 된다. 설요한 같은 중증장애인이 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또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일자리 달라고 농성하니까 떡 하나 던져주는 심정으로 만든 일자리였던 모양이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구조를 바꾸는 일에 착수하면서 그렇게 한 일이 그런 일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갖고서 추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입은 중증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세상이지만 눈은 그들을 수용시설에 가둔 눈 그대로다. 동료지원이라는 돈도 안되고 생산성도 낮은 일이지만, 폐지 모아 오듯 일감 물어오면 복지 차원에서 푼돈이나 쥐여주자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실패다. 우리의 자유와 성숙은 실패했다. 정말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아무래도 좋은 일로 대했다. 이 실패가 아무렇지도 않기에 우리 사회는 더 크게 실패했다. 설요한은 단 한 번의 끔찍한 ‘쿵 소리’로 이 실패를 증언했다. 동료 중증장애인들에게 우리 사회는 이제 당신과 함께 살 준비가 되었다고, 우리의 반성과 의지를 전달하던 이 젊은이는 문득 자신이 전하던 메시지가 사실이 아님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는 동료들에게 문자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미안하다, 민폐만 끼쳤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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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 목동에 대규모 재건축이 가능해졌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목동 집값 훈풍”이라는 제목이 달린 기사는 그 소식을 환영하는 지역주민들의 반응을 전했다. 재건축 규모는 84㎡의 주택 5100가구가 추가로 공급되는 수준이다. 그 지역은 7년 전 교통 혼잡과 학급 과밀을 발생시킨다는 주민들의 반대로 ‘행복주택’이 무산되었던 바로 그곳이다. 

소유한 사람과 빌려 쓰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동등한 시민’일까? 법 앞에선 누구나 차별 없이 평등하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러한가?

2013년 행복주택 공청회장에서 자신을 목동 주민이라 밝힌 한 사람은 “청년들이 (행복주택에) 입주해서 내 자식을 때리면 네가 책임질 거냐”라고 소리쳤다. 목동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행복주택의 취지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목동은 이미 교통과 교육이 과밀화돼 있으니 다른 곳에 지으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행정과 정치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양천구청은 행복주택을 막겠다며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정당들은 합심해 행복주택 반대 서명운동을 벌였다. 결국 국토부는 2015년 그들의 바람대로 목동 행복주택 사업을 취소했다. 민·관·정 협의회는 양천구민의 힘으로 목동을 지켰다고 자축했지만, 과연 행정과 정치는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지켰을까.

‘행복주택’과 ‘재건축주택’은 모두 교통·교육 과밀화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두 건축물은 건축법상 동일한 ‘주택’이다. 그러나 재건축주택은 되고 행복주택은 안된다. 같은 주택이지만 다르게 취급된다면 이유가 있을 텐데, 따져보면 한쪽은 빌려 쓰는 사람들이 살 주택이고 다른 한쪽은 소유한 사람들이 살 주택이다. 목동 행복주택 님비 상황에 빗대어 세상을 보니, 빌려 쓰는 사람과 소유한 사람은 ‘동등한 시민’이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시민들이 집을 소유하도록 함으로써 주거 불안을 해소하려 했다. 모두가 ‘내집’을 소유하기 전의 불안은 ‘불가피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불안으로 여겼고, 정부는 시민들이 주택을 살(buy) 수 있게 도왔다. 택지를 개발해 무주택자에게 분양하고 신혼부부에게 대출자금을 제공했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1980년과 2015년을 비교하면 집을 가진 사람의 비율은 단 1%도 늘지 않았다. 정부는 매년 수십만채의 주택을 공급했지만 결과적으로 빌려 쓰는 사람에게는 가지 않았고, 빌려 쓰는 사람의 삶 또한 나아지지 않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빌려 쓰는 사람들의 주거가 그 자체로 부족함이 없는 사회를 상상하는 일이다. ‘월세→전세→자가’라는 단계적 시각에서 벗어나, 월세·전세·자가 모두 각각의 주거 형태로 존중되고, 어떤 형태로 거주하든 모멸당하지 않고 주거 계획을 꾸릴 수 있도록 하며, 그 자체로 충분하고 안전한 주거환경이 조성되도록 하는 것이다. 집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 점유하며 살더라도 주거 안정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너무 오랫동안 빌려 쓰는 사람들의 존재를 지워왔다. 세상을 ‘이미 소유한 자’와 ‘앞으로 소유하려는 자’로 구분하는 관점은 ‘빌려 쓰는 사람’의 목소리를 구조적으로 배제한다. 그런 사회에 빌려 쓰는 사람의 자리는 없다.

‘소유하려는 사람’이 아닌 ‘빌려 쓰는 사람’으로 관점을 전환하자. 변화는 소유 주택이 아닌 곳에 거주하는 사람을 ‘소유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빌려 쓰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명명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이미 주택을 빌려 쓰고 있는 45%에 가까운 시민들이 자신의 이름과 지위를 되찾는 일이다. 물론 소유권 중심의 사회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빌려 쓰는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갖는 민주주의, 그리고 그런 민주주의가 가능하도록 그들이 가진 있는 그대로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소유하려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불행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권지웅 |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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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통령직선제 이후, 22번의 선거가 있었다. 현재 집권당인 민주당의 국민 총득표수 기준 성적은 22전 5승17패. 정치전문가들이 말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실체다. 한 시즌을 책임져야 하는 선발투수의 성적이었다면 다음해, 마운드에 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프로야구 선수의 예상성적을 예측하는 시스템도 예전엔 선수의 모든 기록을 사용하다 실패했다. 지금은 예측에 최적화된 기간과 모형을 찾았고, 최근 2~3년의 기록만 사용한다. 따라해봤다. 22번의 선거결과를 놓고, 올해 총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특정 기간을 찾았다. 2012년 총선부터 2018년 지방선거까지 6번의 선거결과가 가장 적합하게 분석됐다. 그 과정에서 올해 총선을 전망하는 데, 몇 가지 특징을 찾았다.

첫째, 1987년부터 2016년까지 선거에서 민주당은 39%, 한국당은 52%를 득표했다. 반면에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선거에선 민주당 43%(4% 증가), 한국당 38%(14% 감소)로 기울기가 바뀌었다. 민주당 지지증가보다 한국당 지지감소가 뚜렷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평가가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제3정당 및 무소속에 투표했던 교차투표자는 7%에서 19%로 12%가 증가했다. 양당체제가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효과를 볼 수 있는 조건이다. 셋째, 30년 동안 집권당은 대선 승리 이후, 집권 기간 모든 선거에서 대선 득표율보다 낮은 득표율을 얻었다. 총선과 지방선거가 집권당 평가라는 틀 안에서 치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2017년 대선(41%)보다 2018년 지방선거(55%) 득표율이 높았다. 패턴을 벗어난 유일한 사례다. 집권의 힘이 정당과 정부보다는 패러다임에 있는 듯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올해 총선에 어떤 영향을 줄까.

선거를 예측하는 데 변화의 방향도 중요하지만, 속도에 영향을 주는, 변하지 않으려는 속성의 끌어당기는 힘도 고려되어야 한다. 예측은 틀릴 수도 있다. 최악은 틀린 예측이 아니라, 예측하지 않는 것이다. 예측을 통해 상황인식의 수준을 높이는 일은 주권자의 적극적인 행동과 직결되고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데, 도움을 준다. 

최근 10년간 정치성향이 흔들리거나 바뀐 유권자가 크게 늘었다. 따라서 이번 총선은 정확한 정보를 충분히 그리고 직접 전달하는 포지티브 선거 캠페인이 이전보다 더 효과적일 것이다. 네거티브 선거 캠페인은 함정이 될 수 있다. 둘째, 정당이 계층을 대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설계하고 사회적 가치를 지키는 공약을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마치 집권 기간에 두 번의 대선을 치르는 것과 총선 패턴의 역설과도 비슷할 수 있다. 셋째, 양당체제의 약화로, 공공성과 유능함이 유권자의 선택기준으로 강화될 것이다. 안티테제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은 갈수록 어려울 것이다.

역대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민주당은 지역구 획득의석만으로도 최소한, 한국당을 넘어선 1당이 될 수 있다. 제3당, 4당은 선전할 것이다. 역대선거 결과는 기후이고, 여론조사 결과는 날씨에 해당한다. 날씨는 수시로 바뀌지만, 기후는 장기적인 변화다. 이번 총선은 날씨보다 기후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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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시드는 동안 밥만 먹었어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꽃이 시드는 동안 돈만 벌었어요


번 돈을 가지고 은행으로 가서


그치지 않는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오늘의 사랑을 내일의 사랑으로 미루었어요


꽃이 시든 까닭을 문책하지는 마세요


이제 뼈만 남은 꽃이 곧 돌아가시겠지요


꽃이 돌아가시고 겨우내 내가 우는 동안


기다리지 않아도 당신만은 부디


봄이 되어주세요


정호승(195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문학평론가 이숭원은 정호승 시인의 시에 대해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이 주제의 울타리를 고집스럽게 벗어나지 않았다”라고 높게 평가했다. 이 시에서의 ‘꽃’은 한 명의 사람(어머니) 혹은 생명일 수도 있고, 사랑의 의지일 수도 있고,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일 수도 있겠다. 꽃이 시들 듯이 생명은 노쇠해지고, 사랑은 이별을 맞고, 영혼은 깨끗함과 숭고함을 잃기도 한다. 이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또 때로는 피할 수 없기도 하다. 그러나 시들고 떨어진 꽃을 다시 부르는 것은 봄의 에너지이다. 이 봄의 동력으로 새롭게 탄생하고, 다시 만나게 되고, 또 수행자처럼 구도의 기도를 잊지 않아 영혼을 맑고 신성하게 가꾸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이 봄의 에너지는 사랑과 용서의 에너지이기도 할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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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김구) 우남(이승만) 해공(신익희) 인촌(김성수) 유석(조병옥) 죽산(조봉암) 해위(윤보선)…. 1960년대까지는 거물 정치인들은 아호(雅號)로 불렸다. 이름을 부르는 건 불경으로 여겨, 품위도 있고 예우의 뜻이 담긴 아호로 통칭된 것이다.

1970년대 들어 영문 이니셜 호칭이 등장했다. 원조는 박정희 정권의 2인자였던 김종필이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애칭 ‘JFK’를 원용해 ‘JP’라는 약칭이 만들어졌다. DJ(김대중)·YS(김영삼) 등장은 결을 달리한다. 독재 시절 탄압받는 인물을 부르는 은어로 시작해 국민적 열망을 담은 애칭으로 자리잡았다. ‘3김’을 거치면서 이니셜로 불리는 것 자체가 한 시대를 풍미한 ‘거대한 정치’를 상징하게 된다.

‘3김 이후’ 대선주자들은 끊임없이 영문 약칭의 호명을 꾀했다. 1992년 대선에 출마한 정주영은 경쟁자인 YS나 DJ처럼 자신을 ‘CY’로 불러달라고 요청했으나 통용되지 못했다. 이회창은 HC, 정동영은 DY, 정몽준은 MJ, 김근태는 GT, 손학규는 HQ, 박근혜는 GH를 내세웠으나 실패했다. 시대가 바뀐 이유가 크겠지만, ‘3김’과 비견되는 정치력과 대중성을 얻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 영문 약칭이 통용된 것은 MB(이명박)다. 불명예스러운 ‘2MB’ 별명이 큰 역할을 했다.

언어적으로 영어 약칭의 성공 조건을 탐색한 연구도 있다(채서영 ‘JP, YS, DJ-영어 두문자 약칭’). 논문에 따르면 영어 두문자(頭文字) 약칭은 3음절이어야 하고, H·W·C 등이 없어야 성공할 수 있다. 3음절 이상 글자가 들어갈 경우 발음이 어렵고 어감도 좋지 않아 통용되기 어렵다. C는 발음상 ‘0씨’로 들리는 게 약점이다. HC, HQ, GH 등이 예로 꼽힌다.

오랜만에 ‘이니셜 마케팅’에 도전(?)하는 정치인이 등장했다.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전 총리다. “NY로 불러달라.” 앞서 연구논문을 적용하면 NY는 3음절이고 발음이 어려운 이니셜이 없다. 이 전 총리 측은 “발음하기 편해 입에 착 붙는다”고 한다. ‘I♥NY(뉴욕)’로 친숙하다는 점도 고려한 눈치다. NY 네이밍의 성공은 소통과 함께 대세론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대중의 성원과 사랑을 얻지 못하면, NY는 ‘이낙연’이 아니라 계속해서 ‘뉴욕’으로 호명될 것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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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계속 확산되고 있다. 2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확진환자가 3명 추가로 발생해 국내 환자가 총 15명으로 늘었다. 추가 환자 가운데 1명은 지난달 31일 귀국한 교민이다. 중국이 아닌 일본에서 감염된 사례도 처음 발생했다. 이 환자는 국내에서 부인에게 바이러스를 옮겨 두번째 3차 감염 사례로 기록됐다. 감염자가 중국 우한 입국자에서 기타 외국 감염자 및 국내 접촉자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날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범부처 대책회의를 열어 최근 14일 이내 중국 후베이성을 방문하거나 체류한 적이 있는 모든 외국인의 한국 입국을 4일부터 전면 금지한다고 밝혔다. 또 제주도의 무사증 입국도 당분간 중지하기로 했다. 현시점에서는 적절한 대응이라고 평가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되면서 휴일 풍경이 바뀌고 있다. 2일 평소 내외국인들로 붐볐던 서울 명동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권호욱 기자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제3국 일본을 통한 감염이 확인되고, 3차 감염이 추가로 나온 점이다. 제3국 감염자에 의해 3차 감염으로까지 진행된 것은 심각한 변화이다. 또 제주에 무사증 입국했던 50대 중국인도 귀국 후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사람은 중국 항공편을 이용해 4박5일간 제주를 방문하고 귀국한 후 확진 판정을 받았다. 춘제 일주일간 1만명 안팎의 중국인 관광객이 제주를 방문했는데 또 다른 사례도 있을지 모른다. 지난 주말부터 매일 새로운 감염자가 복수로 나오는데, 이처럼 빨라지는 확산 속도에 대비해야 한다.

관건은 중국 입국자 제한이었는데 정부가 1차 대응조치를 내놨다. 일본이 내린 조치와 비슷하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사망자가 300명을 넘어섰다. 2003년 사스 당시 전 세계 환자가 8098명이었는데 이번에는 한 달여 만에 확진자가 1만명을 넘겼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는 무증상, 경증 환자에서 감염증이 전파되는 경우도 있어 기존 감염병보다 방역관리가 한층 더 어렵다. 한국은 중국의 최인접국이다. 지난해 제주 무사증 입국 외국인 가운데 98%가 중국인이다. 정부는 제주도가 건의한 중국 대상 무비자 입국 일시조치는 받아들이면서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입국 금지나 항공편 조정 등은 하지 않았다. 미국과 호주 등은 중국 전역을 방문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베트남은 중화권 항공편 운항을 중단했다. 더 강한 대응책도 조심스럽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국인을 차별해서는 안되지만 바이러스 확산에 대해서는 꼼꼼하고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다행히 아직 방역 추적망을 벗어난 감염자는 나오지 않았다. 보건당국은 철저한 역학조사를 통해 확진환자의 이동 경로와 접촉자를 파악함으로써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 중국 우한에 다녀온 전수조사 대상자 중 50여명이 보건당국과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는데 하루빨리 확인해야 한다. 정부는 위기경보 단계를 현재의 ‘경계 상태’로 유지하되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에 준해 총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상황이 장기화할 수 있다. 정부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비상사태에 준하는 대응 태세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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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되면서 온라인상에서는 ‘짱깨’(중국인 비하 표현), ‘중국인은 바이러스’ 등 자극적인 중국인 혐오 표현이 번지고 있다. 길을 가던 중국인에게 “꺼져라”고 소리치고 ‘중국인 출입금지’를 내건 식당도 등장했다. “중국인 관광객을 전부 송환해야 한다”는 등 야당 의원들의 거친 발언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인 혐오는 한 가지 예일 뿐이다. 최근 트랜스젠더 여성의 숙명여대 합격과 관련한 논란, 프로농구 귀화선수 라건아가 공개한 일부 누리꾼들의 “검둥이” “네 나라로 돌아가” 등 인종차별적 표현에 이르면 아연실색할 정도다. 우리 사회의 인권감수성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과 걸맞지 않게 지체돼 있다. 반복되는 ‘인권후진국’ 지적을 이젠 개선해야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경향신문은 ‘가장 보통의 차별’ 기획(2020년 1월6~28일 연속 보도)을 통해 일상 속에 넓고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다양한 차별 실태를 고발했다. 전문가들은 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했지만, 정작 차별금지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할 관련 기관과 국회에서의 논의는 실종된 상태다.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로 시작한다. 세계 각국은 그 정신을 실생활에서 구현하기 위해 차별금지 관련법을 마련했다. 유럽연합은 아예 관련법 제정을 가입조건으로 삼았다. 한국도 2007년 이후 포괄적 차별금지법 발의가 7차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인종·장애·종교·성적지향·학력 등 20개가 넘는 차별항목 중 성적지향만을 콕 꼬집어, 동성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개선하면 동성애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독교의 왜곡된 주장 때문이다. 정작 기독교 바탕 위의 북미와 유럽 국가들에선 일찌감치 이의 없이 통과된 법이다.

시민들의 인권감수성은 앞서 나가고 있다. 무심코 건넨 말 속에 숨어 있는 차별을 얘기하는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지난해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 일제히 ‘올해의 책’으로 뽑힐 만큼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KBS의 전국 성인 남녀 1000명 대상 여론조사에선 응답자 중 64%가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편견엔 쉽게 무뎌지고, 혐오는 빠르게 전염된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는 군색한 변명이며 무책임한 태도일 뿐이다. 일상생활에서의 혐오와 차별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더는 미루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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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임시국회 개회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원내 1·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개회한다는 데는 의견을 모았지만 구체적 일정·안건 협의는 지연되고 있다. 한국당은 선거구 획정 문제가 가닥 잡히고 2월 중순 이후에 열자는 뜻을 비치고 있다. 연말연초 패스트트랙 법안 충돌의 앙금이 남아 있고, 총선 후보 공천과 보수통합 얘기로 부산한 것도 개원 논의가 뒷전으로 밀리는 이유가 됐을 게다. 그러나 중국발 신종 코로나가  빠르게 확산되며 시민들의 안전과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민생 위기 앞에선 총선 준비도 그들만의 얘기처럼 보일 뿐이다. 사람들의 일상을 옥죄고 불안케 하는 감염병 하나만으로도 국회가 빨리 작동돼야 할 이유는 분명해진 상황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2월 3일 (출처:경향신문DB)

사실상 4월 총선 앞 마지막 국회가 될 2월 국회에선 신종 코로나 대책부터 시급해졌다. 긴급 방역체계 점검부터 정부기관 내 혼선, 대중국 외교, 경제 파장까지 거의 모든 상임위가 열려 정부 대처의 오류와 미비점을 짚고, 필요한 대책도 전반적으로 살펴야 한다. 2015년 메르스 파동 후 음압병상 체계가 호전됐지만, 5년 만의 신종 코로나 급습에 감염병전문병원이나 공공격리시설이 부족한 민낯이 드러난 터다. 검역 인력·장비 확충 문제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효율적인 검역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검역법 개정 작업도 2월 국회가 해야 할 몫이 됐다. 시민들은 하루하루 힘든데 국회가 귀닫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국회법엔 매 짝수달 1일에 임시회를 소집하도록 했다. 연중 일하는 민생국회를 약속해놓고 어기고 있는 셈이다. 2월 국회는 재외동포선거인단 등록이 시작되는 26일 전 선거구를 획정해달라는 선관위 요구에도 맞닥뜨려 있다. 자치경찰제와 정보경찰 개편 작업을 담은 경찰개혁 입법도 서둘러야 할 과제다. 감염병 재난까지 덮친 때다. 2월 국회를 속히 열어야 한다. 손가락질받던 20대 국회도 초당적으로 민생을 돌보는 유종지미를 거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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