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새벽녘 헤어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그곳에 지난해 11월29일 부산경마공원에서 경마기수로 일하다 자결한 문중원님 시신이 안치된 냉동차가 서 있다. 천막에서는 누군가 또 언 몸을 겨울 애벌레들처럼 침낭 속에 쑤셔 박고 있겠지. 해를 넘기지 말자고, 설 전에는 보내주고 싶다고 몸부림치던 유가족들이 자고 있는지도 모를 일. 잠시 고개 숙이고 돌아선다.

돌아서니 길 건너, 겨울 찬바람만 휑한 광화문광장이 왜 또 이 늦은 시간에 잠 못 들고 서성이냐고 묻는다. 눈 감으면 2016년과 2017년으로 이어지던 겨울, 이곳에 넘쳐나던 촛불의 바다가 환히 보인다. 온갖 빛깔 산호초로 뒤덮인 해저처럼 황홀하고 아름다웠지. 그러나 딱 거기까지만. 다시 눈 감으면 시청광장에 우리를 본뜬 천막촌을 세우고 맞불집회로 긴장을 고조시키던 우익 태극기부대가 혹여라도 저지를 사건들이 걱정되어 새벽까지 불침번을 서다 간신히 몸을 누이던 작은 내 텐트가 보인다. 만약 탄핵이 부결되면 시위 격화 등을 빌미로 계엄 등 군이 개입할 수도 있는데 제1 표적이 될 이곳 광화문광장 텐트촌을 나는 지킬 수 있을까. 많은 상념으로 밤을 지새우던 날들도 떠오른다. 역사적 광장이 열려가고 있던 초기. 중립내각을 받으면, 책임총리를 받으면 임기 등을 보장하겠다며 박근혜에게 영수회담이나 제안하고 다니던 당시 민주당의 갈지자 행보도 떠오른다. 광장만이 박근혜 퇴진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벗들과 광장신문을 발행하고, 광장극장과 궁핍현대미술광장을 만들고, 매일 촛불문화제를 지키며, 몇 차례에 걸쳐 재벌구속 행진도 벌였지.

우리 모두가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무혈혁명을 이뤘던 광화문광장 건너편 정부서울청사 앞에 한 노동자의 피 묻은 시신이 냉동차에 실려 나와 있는 현실이 아프다. 이명박·박근혜 시절에도 용산참사 등 수많은 열사 투쟁을 해야 했지만 고인의 시신이 냉동차에 실려 길바닥까지 나와야 했던 참담한 경우는 없었다. 그래도 끄덕 않는 이 의연한 정부의 오만함에 찬사라도 보내줘야 하나. 마사회 회장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선거캠프, 코드인사라는 뜻의 ‘캠코더’ 낙하산 김낙순. 정부가 나서서 판을 깐 합법적인 도박판에서 마사회는 한 해 8조원가량의 불량한 도박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음성적인 경마도박판 규모만 11조원대라고 한다. 얼마나 많은 서민들의 가난한 꿈이 털리고 있을까. 정부가 괜찮다니 그 판에서라도 살아나가기 위해 자비 들여 영국, 호주로 승마유학 다녀오고 조교사 시험도 통과했지만 일명 ‘마피아’들에게 끊임없는 착취와 배제를 당해야 했던 이다. 15년 동안 체중조절을 위해 준단식, 배곯아가며 정부의 무한 이윤을 위해 달렸던 이다. 그러나 그렇게 달릴수록 ‘앞이 보이지 않는’ 희한한 세상. 오죽했으면 여덟살, 다섯살 어린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문해두고 자결을 선택했을까. ‘마사회는 믿을 수 없어’ 유서 복사본을 따로 남기기도 했다. 알려진 대로 마사회는 진즉 경마비리를 없앤다는 미명 아래 말과 조교사, 기수, 마필관리사 등 전부를 외주화, 특수고용 비정규직화해두곤 자신들은 어떤 책임도, 관계도 없다며 버티고 있다. 그 마사회 안에 기수들을, 마필관리사들을 죽이는 죽음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는 비리 고발 유언도 남겼지만 경찰은 마사회로, 마사회는 경찰로 책임을 떠넘기며 해만 바꾸고 있다. 부산경마공원에서만 일곱 명이 부당노동행위, 비리 등을 고발하며 자결했는데도 특별근로감독에 나서야 할 노동부도, 마사회를 관리하는 농식품부도, 검찰도, 감사원도, 청와대도 묵묵부답이다. 관리감독의 당사자인 정부가 사과하고 반성하며 마사회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목숨 걸고 고발해 준 고인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 아닌가. 

‘또 죽 쒀서 개 줬나’, 텅 빈 광화문광장이 그러면 우리 너무 쓸쓸하지 않겠냐고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라고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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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신종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중국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중국인 혐오 논란, 보수세력의 뿌리 깊은 반중 정서 등 우리 사회가 중국을 바라보는 인식의 균열이 두드러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서 중국의 위상이 새삼 확인되면서 각국은 신종 코로나를 차단하기 위한 대응 수위 마련에 고심하고 있기도 하다.

3일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수송기 편으로 후베이성 우한의 톈허공항에 도착한 군 의료진이 마스크를 쓴 채 비행기에서 내려오고 있다. 비행기 출입구에 ‘중국 힘내라(中國加油)!’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우한 _ 신화연합뉴스

물론 한국 시민의 건강보다 중국 정부의 심기를 살피는 게 우선순위일 수는 없다. 중국의 불투명성, 폐쇄주의가 사태를 악화시켰음도 부인키 어렵다. 그렇다 해도 ‘노 차이나’ 정서의 확산은 도덕적으로나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인을 바이러스 서식처쯤으로 여기고 있다면 인종적 혐오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지금은 어떤 바이러스가 국경을 넘을지 모를 만큼 전 세계가 촘촘히 얽혀 있다. 언젠가 한국이 중국에 민폐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2015년 국내에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확산됐을 때 한국 환자 한명이 홍콩을 경유, 광둥성 후이저우로 입국했던 사례도 있다. 무심코 뱉어낸 말은 언젠가 칼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는 법이다.


신종 코로나 상궤 벗어난 혐중

말은 칼이 되어 돌아오는 법

중국은 글로벌 경제의 중추

단선적이고 어설픈 대응은 금물

신뢰관계 구축 염두에 두며

장기적으로 중국 리스크 줄여야


혹자는 중국과 관련된 사안이 터질 때마다 고개를 드는 반중 정서가 냉전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진단한다. 보수진영에서 유독 반중 정서가 두드러지는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르겠다. 간과할 수 없는 점은 미국이든, 일본이든, 유럽이든, 한국이든 어떤 국가든 간에 과도한 중국 때리기 이면에는 애국주의를 불러일으키고 보수층의 지지를 결집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 확산으로 사람들이 허둥댈 때 이를 활용해 이득을 얻으려는 시도는 비열하다. 전염병 확산에 어떤 이들은 마스크 착용 등 본능적으로 자기보호에 나선다. 어떤 이들은 외부로 시선을 돌려 공격적 방어에 나서는데 바로 정부 탓, 발생국가 탓으로 돌리는 심리다. 한쪽에는 인도주의적 행동을 보여주는 이들도 있다. 국내에서도 ‘우한 힘내요’를 외치는 시민들이 있었다.

중국은 어떤 나라보다도 복합적 성격을 지닌 나라다.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면서도 개발도상국이며, 대국적 자부심이 강함과 동시에 과거 서구 열강의 침탈에 따른 콤플렉스도 갖고 있다. ‘부자 중국, 가난한 중국인’이란 말이 상징하듯 시민으로서 많은 중국인들의 삶은 여전히 고달프다. 중국에 사는 한국인들이 사소한 질병에 걸려도 국내로 들어와 치료를 받을 정도로 중국의 의료수준은 낙후돼 있다. 의료는 교육과 함께 중국인들이 가장 개혁을 바라는 분야로 중국 정부 역시 의료 선진화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해 왔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경제적으로 의료발전은 노동생산성 향상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으며 의료비 부담 경감은 중국인들의 과도한 저축 성향을 낮춰 소비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중국의 의료수준 향상이 글로벌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의료서비스 질 제고에 국제사회가 기여하는 방안을 찾는 게 필요하다.

신종 코로나 사태는 경제구조 차원에서 중국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방안 마련이 절실함을 일깨워준다.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25.1%에 달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중 34.4%(602만명)가 중국인이었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와이어링 하니스’란 부품 때문에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가동중단 상황에 몰린 현실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포스트 차이나 전략을 통한 수출시장 다변화, 부품 공급망 분산은 이제 한국경제의 생존요건이 됐다.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달리 대안이 없다.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한국 수출규제에 맞먹는 전 국가적 차원의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한국은 중국과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니, 라오펑여우(老朋友·오랜 친구)니 하며 신뢰 구축에 노력해 왔지만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 모래성이다. 미·중 간 살벌한 경쟁과 대립 속에서 오랜 세월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의 숙명이다. ‘위드 차이나’ 마인드를 쉽게 버려선 안되는 이유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중국에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생한 이후 중국을 처음으로 국빈방문한 외국 정상이었고, 각별한 환대를 받았다. 신종 코로나 위기는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오관철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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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일하는 곳은 중국 산둥반도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해안 도시다. 그가 나고 자란 한국 해안 도시에서 비행기로 5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중국 사무실로 간 지 1년이 넘었지만, 너무 바빠서 도시 구경할 틈도 없었다는 그는 설 명절에 집에 돌아와 차례를 지내자마자 짐을 꾸렸다. 중국 정부가 우한을 봉쇄하고, 각국은 고립된 자국민 귀환을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가 인터넷으로 시시각각 올라오고 있었지만, 그는 중국으로 가야 했다. 그를 걱정하는 이들은 손 세정제와 마스크를 잘 챙기라는 말밖에 할 게 없었다. 그의 부모는 중국 지도를 펼쳐놓고, 딸이 있는 도시가 우한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가늠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미 태평양을 건너고 대륙을 가로질러 무서운 기세로 퍼져나가고 있는 판인 걸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자꾸 지도를 들여다봤다. 그런 부모를 두고 딸은 어렵게 구한 손 세정제를 몇 개 챙겨 의연하게 중국으로 떠나며 말했다.

“바이러스가 퍼져도 일은 해야죠.”

산다는 건 엄중하다. 바이러스 때문에 물러설 수 없는 게 삶이다. 일년 내내 지하철역 앞에서 어느 날은 개업한 식당 전단을, 어느 날은 헬스장 전단을 나눠주는 노인은 월요일 아침 어김없이 전단을 한 묶음 손에 든 채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점심시간 내내 북적거리는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마스크 안 쓰셔도 괜찮으냐는 말에 희미하게 웃었다. “손님들 마주하면서 계속 쓰기가 힘들어서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마스크 쓰는 게 번거롭다고 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지도가 만들어지고, 확진자의 동선이 상세히 밝혀진다고 해도 그곳에 일터가 있어 피할 수 없는 사람들. 아침이면 또다시 일터로 나가야 하는 사람들. 전염병이 창궐해도 비켜설 수도, 멈춰 설 수도 없이 부단히 이어져야 하는 삶은 서글프다. 그저 모두 별일 없이 아침을 맞길, 이국땅에 사는 이들도 잘 이겨내길….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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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고, 최근 이 말을 실감하게 만드는 분이 바로 추미애 법무장관이다. 추 장관이 취임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다. 대통령이 조국 교수를 법무장관에 임명한 것은 비리 혐의자를 참지 못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밑바닥이 다 드러난 조 전 장관이 황급히 사퇴했지만, 수사의 칼끝은 이미 정부의 핵심을 겨누고 있었다. 자칫하다가는 총선 참패는 물론이고 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 문재인 대통령은 추 장관을 구원투수로 내보냈다. 

이 선택이 의외였던 것은 그 이전까지 추 장관의 정치 이력에서 남다르게 뛰어난 점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희대의 삽질에 동참했던, 현 정부의 실세라 할 친문들이 곱게 봐주기 힘든 경력의 소유자였다. 그 뒤 극한의 고통이 수반되는 삼보일배로 용서를 받았다고 하지만, 그의 삼보일배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지율이 급락했기에 표를 얻기 위한 행위였지, 노 전 대통령에게 용서를 빈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법무장관이 된 추미애는 ‘타고난 법무장관’이란 말이 나올 만큼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덕분에 공포에 떨던 현 정부 인사들은 이제 한시름 놓았고,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포토라인에 서서 “우리 검찰이 좀 더 반듯하고 단정하면 좋겠다”고 말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이 지면을 통해 추 장관의 성공비결을 분석해 보는 것은 그의 성공이 법무장관을 노리는 많은 분에게 귀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공직자는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예컨대 윤석열 총장은 자신이 뭘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 결과 윤 총장은 지금 모진 탄압 속에서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반면 추 장관은 ‘검찰을 때려잡아 정권을 수호한다’는 시대적 소임을 잘 숙지하고 있었기에 취임 직후부터 내내 윤 총장만 닦달할 수 있었고, 한 달 만에 목표의 대부분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룬다.

둘째, 사람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정권수호를 장관 혼자 할 수는 없는 법이라, 자기 뜻을 펼쳐줄 인재를 발굴하는 능력은 고위급 인사에게는 필수적이다. 추 장관에게는 그런 안목이 있었다. 그는 전북 고창 출신의 이성윤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해 총장을 견제하게 했는데, 이 지검장은 ‘대체 어디서 이런 인재를 데려왔냐?’는 찬사가 나올 만큼 잘해주고 있다. 예컨대 그는 검찰총장이 주재한 선거개입 관련 회의에서 홀로 기소를 반대했다. 그는 절차를 지키자는 취지였다며 기소를 반대한 게 아니라고 겸손해하지만, 상급자인 총장 앞에서 말도 안되는 궤변을 펴며 이견을 제시하는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니다. 이에 사람들은 윤 총장이 사퇴해서 추 장관-이성윤 검찰총장으로 이어지는 드림팀이 탄생할 그날을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셋째, 너무 강하면 부러지기 마련인데, 추 장관에게는 상황에 따라 대처를 다르게 하는 유연성이 있었다. 예컨대 추 장관은 윤 총장이 자신의 부당한 요구를 듣지 않으면 “항명”이라고 분개한 바 있지만, 신임검사 임관식에 가서는 “검찰조직에 상명하복이 자리 잡고 있는 게 문제”라며 “그것(상명하복)을 박차고 나가라”고 말한다. 추 장관의 이런 유연성이 검찰조직에 뿌리를 내린다면, 이성윤급의 좋은 검사들이 다수 배출될 수 있으리라.

넷째, 추 장관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었다. 사람이 마음의 빚을 갖게 되면 물불을 안 가리게 되는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추 장관은 노 전 대통령 탄핵에 동참한 이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잠깐의 실수라도 하게 되면 친문들이 ‘내 그럴 줄 알았다’며 그의 과거를 털 게 뻔하다. 그래서 추 장관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열심히 직무에 임한다. 그렇게 본다면 완벽한 이를 선택하기보다는 약간의 흠결을 지닌 이를 데려다 일을 시키는 게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난국을 타개할 인물로 추 장관을 선택한 문 대통령에게도 칭송을 아끼지 말아야 할 이유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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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는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오염물질이 어디서 발생되고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위성에서 관측할 수 있게 된다. 국내에서 개발한 천리안위성 2B호가 고도 약 3만6000㎞의 정지궤도에서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북부, 몽골 남부까지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대기환경을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리안위성 2B호에는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지구에서 반사된 태양빛을 원자 크기 단위로 분해, 관측하여 대기 중 극미량으로 존재하는 대기오염물질의 농도를 측정해 낼 수 있는 환경 센서인 초분광영상기가 탑재된다. 이 환경 센서에서 관측되는 초분광 자료는 미세먼지의 원인이 되는 이산화황, 이산화질소, 포름알데히드 등과 오존, 에어로졸 등 비교적 짧게 존재하는 기후변화 영향 물질의 농도 등 20여개 항목 자료를 산출해 미세먼지 예보 및 경보에 활용토록 하여 정확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국내 대기환경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중국 등 주변국의 대기환경을 독자적으로 관측하여 환경 안보에 기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저궤도에서 기상, 환경, 해양을 관측하는 위성이 많으나, 정지궤도에서 대기환경을 감시하는 위성은 2022년 이후에나 발사할 예정이다. 따라서 우리가 세계 최초로 정지궤도에서 대기환경을 감시하는 천리안위성 2B호를 보유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의 우주개발 수준을 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천리안위성 2B호에는 해양탑재체도 실린다. 우리 바다의 엽록소 농도, 총 부유물질 농도 등 핵심 해수 수질 변화 모니터링은 물론 적조, 녹조, 해무, 해빙 등 해양 재해재난을 줄이고 어장환경지수, 해양일차 생산력 등의 정보로 스마트 어장 관리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해양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기름 유출 사고 발생 시 관련 정보 등 무려 26종의 해양환경 정보를 하루 10차례 제공할 수 있다. 

천리안위성 2B호는 우리나라 위성 개발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가 세계 수준의 저궤도 지구관측 위성을 보유한 데 이어 부품이 무려 10만개 이상 들어가는 고난도의 최첨단 중대형 정지궤도 관측위성의 시스템 및 본체를 독자적으로 개발했기 때문이다. 천리안위성 2B호는 2011년 환경부, 해양수산부 등 여러 부처 협력사업으로 시작되어 9년에 걸쳐 성공적으로 개발한 국가 위성 사업이다. 천리안위성 2B호 정지궤도 위성 국산화 플랫폼은 향후 항법 위성, 통신방송 위성 등 국내에서 개발할 중대형 정지궤도 임무 위성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 나아가 그동안 축적한 세계 수준의 국내 위성기술을 해외에 수출하는 등 국가 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천리안위성 2B호는 오는 19일 새벽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 우주센터에서 발사돼 우주로 향한다. 발사 후 정지궤도에 안착해, 한반도를 바라보며 약 7개월 동안 시험운용을 거쳐 올 하반기와 내년부터 10년 동안 각각 해양관측 및 한반도 주변 대기환경을 관측하게 된다. 천리안위성 2B호는 지난해 말 발사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상관측 위성인 천리안위성 2A호와 함께 국민 안전과 생활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임철호 |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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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갈이, 본디 ‘수족관이나 수영장 등의 물을 간다’는 뜻이다. 국어사전에는 ‘기관이나 조직체의 구성원을 큰 규모로 바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가 들어 있다. 매번 총선 때마다 ‘물갈이’가 최고의 승리 공식이 되어 대규모 현역 의원 교체가 반복되었기에 사전에까지 등재된 것이다. 16대부터 20대 국회까지 초선의원 비율은 절반에 육박한다. 현역 의원이 4년마다 절반 가까이 바뀌는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초선의원 비율이 최고로 높다. 기성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을 넘어설 수 있는 유력한 선거 무기로 ‘물갈이’가 동원되어온 결과다. 

물갈이 경쟁 속에서 총선 때마다 절반 가까이가 바뀌었지만, 4년이 지나면 어김없이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지탄이 돌아온다. 인적 쇄신이 목전의 선거 승리를 위한 ‘얼굴갈이’에 그치고, 인재 영입이 ‘이미지팔이’에 치중해 빚어진 업보다. 정당의 전문성, 정책 역량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은 이러한 정치 충원의 빈곤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자유한국당도 다양성과 대표성 면에서 역대 정당 중 최악이다. 무엇보다 16대 총선에서 우상호, 이인영, 임종석, 송영길 등 ‘386’과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오세훈 등이 등장한 지 20년이 되도록 차세대 정치인을 키워내지 못한 때문이다. 흥행을 위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특히 청년을 전시 대상으로 삼는 일회성 영입이 이뤄져온 탓이다. 역대 총선에서 초선의원 교체율은 60~70%에 달한다. 선거철만 되면 한 철 장사하듯 이름값과 이미지 위주로 사람을 뽑아 막상 4년 동안 병풍과 거수기 노릇으로 소비하고 마는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총선 때마다 각 정당들이 영입한 그 많은 ‘인재’ 중에서 실제 정치와 당을 바꾸며 뿌리내린 인물을 찾기 힘들다. 19대 국회에서 ‘청년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김광진·장하나 의원도 지금은 여의도에 없다. 20대 총선 때 민주당의 ‘영입 인재 1호’인 표창원 의원은 “좀비에 물린 것 같다”는 뼈아픈 고백을 내놓고 퇴장했다.

장애를 희망으로 바꾼 발레리나 출신 여성, 시각장애인 어머니와 감동적인 삶을 펼친 청년, 실패를 딛고 일어선 자수성가형 벤처기업가, 체육계 미투 1호 여성, 산업재해 공익신고자…. 하나같이 눈물겨운 개인사를 지닌 인물들이다. 어느 당으로 가도 아무 문제가 없을, 달리 말하면 정체성을 구분하기 어려운 인물들이기도 하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영입 경쟁은 오로지 인생극장형 인물 찾기에 꽂혀 있다. 여론의 주목을 받을 ‘스토리텔링’, 낡아빠진 정당의 얼굴을 화장할 ‘비비크림’ 인물이 절실한 것이다. 좋은 스토리를 갖춘 것과 정치를 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영입 인재들은 하나같이 ‘자기’로 대표되는 장애, 여성, 청년 문제 등을 어떻게 생각하고 정책을 펼칠지 시늉조차 못했다. 애초 “정치에 ‘정’자도 모른다”는 이들이다.

‘미투’로 실체가 드러난 민주당의 ‘청년 인재 원종건’은 감성팔이 영입 쇼의 바닥을 여지없이 내보였다. 진중권의 지적을 빌리면 미투와 별개로 짚어야할 문제는 ‘정치의 이벤트화’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두 당의 정치적 차이조차 구분 못하는 인물을 오직 과거에 TV에 나와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는 이유로 영입 경쟁을 벌였다. 필요한건 그의 역량이나 정치적 소양이 아니라 ‘대박’ 스토리다. 아마도 ‘원종건 사건’은 4년마다 재방되는 인재 영입 쇼의 민낯을 까발려 ‘흥행’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점에서 정치 발전에 기여할 게다.

물갈이를 통해 선거에서 승리하고 좋은 정치를 펼치려면 현역 의원 교체 수 못지않게 누구로 채울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얼마나’보다 ‘어떻게’ 바뀌었느냐가 관건이다. 현역 의원의 빈자리를 청와대 참모 출신 586들이 차지하거나, 보수통합에 따른 나눠 먹기로 채운다면 ‘물갈이’ 효과는 사라진다.

민주당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 신청자 475명의 평균 연령이 56.1세라고 한다. 30대는 6명에 불과하고, 50대 이상은 전체 88%에 달한다. 미래 세대의 거점 마련이나 세대교체는 아득해졌다. ‘현역의원 50% 교체와 20~40대 30% 공천’을 다짐한 한국당도 결국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면 다시 ‘늙은 국회’ ‘낡은 정당’은 따논 당상이다.

어항 속의 물은 그대로인데 물고기만 바꿔 넣으면 그 물고기도 결국 오래 가지 못한다. 화사한 물고기 몇 마리로 오염된 물을 가릴 수는 없다. 본디 뜻대로 ‘물을 가는’ 수준의 물갈이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21대 국회도 크게 기대할 게 없을 것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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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전원장치(UPS) ⓒ 이영준

우리는 전기가 당연히 항상 공급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산다. 적어도 2011년의 9·15 정전 이후로는 그랬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전기가 자동으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이 아니라, 설사 전기가 끊어져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하는 비상전원시스템 덕분이다. 데이터센터, 병원, 방송국 등 중요시설에는 전력이 끊어졌을 때를 대비한 비상전원장치(uninterruptible power supply)가 설치돼 있다. 가정이나 사무실에서도 컴퓨터로 중요한 작업을 할 때 전력이 끊기면 안되기에 소형의 비상전원장치를 쓰는 경우도 많다.

비상전원장치에는 디젤 발전기를 이용하는 타입, 배터리를 이용하는 타입, 플라이휠을 이용하는 타입 등 다양한 타입들이 있다. 

언젠가 잠실야구장에 설치돼 있는 플라이휠 UPS를 볼 기회가 있었다. 야구장도 위의 시설들처럼 정전이 되면 안되는 곳인데, 투수가 공을 던진 순간 조명이 나가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의 야구장에서 정전이 돼버린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래서 잠실야구장도 철저한 정전대비가 돼 있다.

플라이휠 UPS는 겉으로 보면 검은색의 큰 통일 뿐이지만 이 속에는 플라이휠이 1분당 2만~5만회의 속도로 항상 돌고 있다. 플라이휠은 무겁기 때문에 돌면서 많은 관성력을 발휘하고, 그 덕에 전원이 끊겨도 한동안 회전한다. 플라이휠에는 발전기가 연결돼 있어 그 관성력이 발전기를 돌리게 된다. 플라이휠의 회전수가 빠르기 때문에 매우 큰 원심력이 작용해 파손될 염려가 있으므로 회전체는 특수한 강철로 제작돼 있고 그것을 싸고 있는 케이싱도 특수하게 제작돼 있다. 단순히 시커먼 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끊긴 전원을 연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천분의 1초 이하이므로 관중들은 정전을 감지할 수 없다.

디젤발전기는 설비가 복잡하고 매연이 발생하며, 배터리는 많은 양의 납을 저장해야 하기에 환경에 안 좋은 반면 플라이휠 UPS는 그런 문제가 없다. 그 덕에 잠실야구장은 2013년 이후 정전이 한 번도 없었다. 비상전원장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전력생활을 지켜주는 파수꾼이다.

<이영준 기계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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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다가오면서 각 정당들의 이합집산과 인재 영입 노력이 한창이다. 이런 노력은 이번만의 일이 아니라 한국 정당들이 선거를 목전에 두고 늘 해왔던 일상화된 일들이다. 왜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을 무시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평상시에는 동물국회, 식물국회라 일컬을 정도로 일반 국민을 위한 일을 하지 않은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유난히 무언가 새로운 것을 내세우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한국 선거법 개정 패턴을 보면 거의 선거 직전에 이루어진 사례가 많다. 국민들에게 한 일이 없으니 거의 비현실적인 선거법 개정으로 자신들의 죄의식을 회피하려는 의식에 불과했다. 정당 간 이합집산도 염치 없는 행동이다. 해방 이후 정당 이름만 100여개에 달하고 이합집산도 300여회에 이른다.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선거 때만 되면 내용도 없는 정치공학의 게임을 시도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집단에 표를 던져야 하는 국민들의 실정이 안타까울 뿐이다.

또 인재 영입은 어떤가? 젊은 세대 영입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하필 선거 때만 되면 수선을 떠는 것이 문제다. 전국적으로 지방자치를 실시한 지가 20여년이나 되었지만 지방에서 주민들을 위해 숨어서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중앙에 진출한 경우는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 정치에 뜻이 있는 젊은이라면 왜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을 지역 봉사에서부터 출발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지방에서 정치와 행정을 경험한 사람들이 현장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지방자치는 오히려 중앙정치그룹과 지방정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 식으로 발전해 왔다. 정치는 전문성으로만 되지 않는다. 현장감이 있고 사람을 이해하고 균형 감각이 있어야 한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이런 덕목을 갖추었다는 보장은 없다.

선거가 임박하여 정당들이 보이는 이런 호들갑의 이면에는 한국의 정당들이 일상적으로 국민과 연계되어 있지 않은 실상이 있다. 수년 전 미국 민주당의 코커스(선거구 단위 당원모임) 현장을 참관한 일이 있다. 동네 교회의 넓은 교회당에 일반 주민들이 삼삼오오 그룹으로 나뉘어 각종 정책을 토론하고 후보자에 대한 평가를 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이 평화스러운 정치행사를 보면서 정당이 풀뿌리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한국의 정당은 지금까지 거의 거저 먹는 정치를 해왔다. 보수집단은 산업화 과정에서 스스로 만든 지역주의에 기생하여 오랫동안 정당의 사회적 연계를 차단해 왔다. 산업화가 야기한 한국적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없이 산업화로 이득을 본 지역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은 것이다. 이런 집단들이 국회 의제를 독점하고 지역주의에 기반하지 않은 몇몇 국회의원들의 행동을 크게 제약했다. 쉽게 잡은 권력의 기반은 외환위기와 세계화 및 디지털 시대를 거치면서 근본적으로 흔들렸는데도 보수진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옛날 방식을 고수하다 철저한 패배를 맛보았다. 보수는 이런 과거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 없이 마치 엄격한 후보자 선정이 이를 가름하는 것처럼 이미지 정치를 하고 있다. 

소위 진보진영도 사정이 그리 다르지 않다. 1980년대 민주화가 되면서 진보진영은 진실게임에 부딪혔다. 노동자, 더 넓게는 민중과 연계돼 있다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서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는 상부 정치 엘리트들과의 연계에 더 의존해 있었다. 따라서 민주화 이후 권력에 접근하는 선거에서 지역세력에 기반한 기성정치인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면엔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상정했던 진보진영의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현실에서는 철저히 부정된 배경이 있다. 보수가 지역에 기반한 결과 진보도 크게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유사지역주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사회세력과 연계되지 않은 채 이미 모두 낡은 정당이 되어 개편이 불가피하다. 득표에 혈안이 된 정당들의 행태를 볼 때 선거 이후 한국 정치의 혼란상은 불 보듯 뻔하다. 한국 사회는 밖으로는 취약한 경제적 기반과 급변하는 국제정세하에서 생존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는 극단적인 정책적 차이를 허용할 만한 정치적 공간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안으로는 기존 사회갈등 단위인 계급, 세대로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파편화되어 있다. 

새로운 선거법이 불완전한 것이지만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다가오는 총선은 한국 사회의 다양성이 최대한 반영되는 정당 구조 개편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하용출 미국 워싱턴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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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긴 부엌에 책상 딸린 거실과 침대방이 나란히 붙어 있는 구조다. 옛 연립주택의 전형적인 실내구조라고들 한다. 원룸에 살다 이곳으로 이사한 지는 1년 좀 넘었다. 옮긴 후 제일 좋았던 점이 아침에 눈 떴을 때 싱크대부터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침대 대각선으로 놓인 개수대의 수세미가 먼저 시야에 들어왔는데 말이다. ‘침실’로 들어가 램프를 켠 채 책을 읽다 잠드는 호사로움이 내 것이라니 경이로웠다.

이 이야기를 하자 주위에서 꿈을 좀 더 키워보라 조언했다. 원룸 살 때 몰랐던 세상이 투룸에서 펼쳐졌듯, 대출 받아서라도 아파트 단지 같은 데로 이사하면 삶의 질이 또 달라질 거라고 말이다. 실제 아랫마을 타운형 빌라나 윗마을에 들어선 브랜드 아파트를 보며 선망이 일긴 했다. 하지만 ‘와, 좋구나’ 잠시 감탄할 뿐 ‘언제 나도 돈 벌어 저기 살까’ 하는 박탈감은 안 들었다. 침실과 부엌이 분리되어 있고, 의자 네 개 딸린 식탁에서 친구들을 대접할 수 있는 공간. 이 정도로 충분했다.

한 해에 열 밤가량은 집 아닌 데서 잔다. 애용하는 숙박시설이 있는데, 호텔식 과잉된 서비스를 걷어내고 최소한의 편의만 제공하되 기숙사 콘셉트로 깔끔하고 안전하게 운영되는 곳이다. 언젠가 예약이 차서 종로4가 뒷골목 여인숙에 묵었던 무서운 밤 이후로, 서울에 출장이 잡히면 그 숙소에 싱글룸이 남았는지부터 확인한다. 물론 더 좋은 곳의 경험이 아예 없진 않다. 5성급은 아니어도 깃털베개가 폭신폭신하고 질 좋은 샴푸가 비치된 ‘진짜’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참 안락하고 좋았다. 그렇지만 돈 많이 벌어 평소에도 저기 이용했으면 싶진 않았다. 기숙사풍의 잠자리로 만족했다.

학교 주변에 밥집이 많지 않아 주중엔 주로 교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대략 보름 주기로 식단이 반복되는데, 정식 메뉴가 마파두부덮밥 또는 참치마요덮밥이거나 저녁 반찬으로 좋아하는 계란말이가 나오는 날이면 수업이나 회의 마치자마자 식당으로 달려간다. 4년 넘게 매일 학식 먹어서 슬프진 않다. 주말이면 버스 타고 마을로 내려가 할아버지가 싱싱한 생선 튀겨주시는 가게도 찾고, 새로 생긴 국숫집도 들르고, 갓 구운 빵도 사오기 때문이다.

적어도 물질적 면에서 지금 이상으로 가지고픈 욕망이 없다. 그러니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피해의식 또한 없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픈 감정은 내게 생경한 것이었다. 그게 몇 안되는 스스로의 덕목이라 생각해왔는데. 얼마 전 이런 문구를 보았다. ‘이 정도면 딱 좋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바로 그대가 보수화되는 시작점이라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잠자리와 싱크대와 변기가 붙어 있는 쪽방 식의 원룸은 여전히 많다. 내가 불안에 떨면서 하룻밤 머물렀던 종로통 여인숙의 경우 투숙객 절반이 장기투숙자라고 들었다. 투룸형 집, 출장지의 깨끗한 침대, 주말의 외식. 이 정도면 딱 좋다며 소박함에 은근히 자부심 가졌던 그 조건들은 지금 이 땅에서 누구나 소박하게 누리는 무엇이 결코 아니다. 

누가 아파트를 몇 채 가졌든, 땅 사둔 게 많든, 투기든 아니든 그건 관심 밖이다. 그들이 계속 호의호식해도 별로 안 억울하다. 하지만 누구든 나처럼 부엌과 침대가 분리된 보금자리를 가질 수는 있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매달 봉급 받고, 연금이란 걸 통해 노후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며, 일하러 외지 가면 나처럼 ‘가성비’ 좋고 안전한 숙소에서 자면 좋겠다. 아니, 그럴 수 있어야 한다. 

가진 자들이 얼마나 더 소유했는지에 분노하지 않는 나는, 덜 가진 이들이 나만큼이나마 가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얼 어떻게 할까에 대한 고민을 놓으면 안된다. 말하자면 그건 ‘만족한 자’의 윤리적 책무이다. 이를 저버리는 순간 자신의 물욕 없음을 내세우며 안빈낙도 운운하는 위선자로 전락할 테니 말이다.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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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하이밍 신임 주한 중국대사가 4일 서울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브리핑’ 명목의 기자회견을 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해 “제가 많이 평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싱 대사는 “그러나 세계적이고 과학적인 것은 세계보건기구(WHO) 근거인 만큼 WHO 근거에 따르면 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싱하이밍 신임 주한 중국대사가 4일 서울 중구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관련, 중국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주한 중국대사가 부임한 지 닷새 만에 자청해 기자회견을 여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가 국경을 넘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인접국인 한국에서 대중국 여론이 나빠지고 있는 분위기를 고려해 대언론 접촉을 서둘렀던 것으로 보인다.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은 후베이성 방문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한 한국 정부의 조치가 교역과 이동 제한을 권고하지 않은 WHO 방침에 어긋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한국 정부가 입국제한 조치를 후베이성으로 한정하고, 중국 전역 여행경보 상향 등 추가조치를 내놓지 않은 상황을 고려해 발언 수위에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평가하지 않겠다”고 한 말이 다소 거슬리지만, 싱 대사가 한국어로 브리핑하는 과정에서 ‘말을 아끼겠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아무리 외교적이고 완곡한 표현이라고 해도 신임장 제정식도 하지 않은 외교사절이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주재국의 방역 조치를 견제한 것이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외교채널을 통해 조용히 중국의 입장을 전달하는 편이 효과적이었을지 모른다. 기자들 사이에서 갓 부임한 대사가 짐도 풀기 전에 기자회견을 연 것부터 마뜩지 않다는 촌평이 나올 정도다. 강대국 외교사절의 언행은 주재국 국민의 주시 대상이라는 점을 싱 대사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싱 대사의 기자회견은 신종 코로나 사태가 외교관계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환기시킨다. 정부로서는 국민의 안전을 챙기는 동시에 한·중관계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만큼 부담이 커진 것은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연대할 때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다”고 한 데서도 고충이 읽힌다. 아무쪼록 신종 코로나 사태가 한·중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양국 정부의 조치가 자칫 상대국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할 경우 방역협력은 물론 자국 국민의 안전마저 위험해질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물론 국민 안전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설 경우 때를 놓치지 말고 단호하게 결정해야 한다. 앞으로도 이런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신종 코로나 확산 차단을 위해 후베이성 외 3~5개 성을 방문한 외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지난 3일 정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중국 감염자의 40%가 후베이성 이외 지역에서 나오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가 신속·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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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며 아이들 돌봄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에 대비해 휴업·휴원을 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이 늘어나면서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맞벌이 부모 등이 발을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4일 현재 서울·경기·강원·충남·전북 등의 유치원과 초·중·고교 모두 400곳 가까이가 개학연기 또는 휴업에 들어갔다. 유치원이 가장 많았고, 이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특수학교 순이었다. 신종 코로나 확진자들의 이동경로가 여러 곳 포함된 경기도(198곳)와 전북(144곳) 등지의 시설 휴업이 집중됐다. 지역에 따라선 수원과 부천 등 전체 유치원의 50~60% 이상이 휴업을 하는 곳도 있다. 이 중 혼자 집에 있을 수 없는 유치원생과 초등 저학년생의 경우는 특히 돌봄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또 다른 돌봄시설로 보내는 것은 지역 내 감염에 대비한다는 취지와도 맞지 않다. 가정에서 부모 중 한 명이 돌보는 것이 최선이다. 사실 어린아이들 돌봄은 감염병뿐 아니라 연휴기간이나 갑작스러운 휴원사태 때면 늘 맞닥뜨리는 문제다. 차제에 설득력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북유럽 국가들의 자녀돌봄휴가를 참고할 만하다. 이들 국가에서는 어린 자녀가 집에 있게 될 경우 부모도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대개 초등학생까지는 자녀돌봄 유급휴가를 허용한다. 한국에서도 올해부터 무급이지만 가족돌봄휴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가족의 질병이나 사고, 노령, 자녀의 양육을 목적으로 가족돌봄휴가를 하루 단위로, 연간 최대 10일까지 사용할 수 있다. 법으로 보장된 권리이니만큼 필요할 때 당당하게 사용하는 풍토가 확산되길 바란다. 자녀돌봄이 회사일만큼 아니 그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길 바란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그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이를 사용하도록 앞장서 권장하고, 필요할 경우 대체 인력지원 방안 등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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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4·15 총선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으로 만드는 ‘미래한국당’이 5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연다. 당대표로는 4선의 ‘원조 친박’ 한선교 의원을 낙점했다. 그는 지난달 2일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정말 죄송하다. 용서해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치를 접었다가 한 달 만에 황교안 대표의 권유를 받고 다시 총선에 뛰어든 것이다. 20일 전 중앙선관위에서 사용 금지 통보를 받은 비례한국당 명칭에서 ‘비례’만 ‘미래’로 바꾸고 끝내 유권자를 우롱하는 위성정당을 강행하는 셈이다.

한 의원은 “미래한국당은 비례대표만 내고, 한국당은 비례대표를 안 낼 것”이라며 “모(母)정당인 한국당 황 대표나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 입김이 작용하지 못하는 비례대표 공천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래한국당 창당에는 5명 정도의 한국당 현역 의원이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위성정당 창당은 소속 의원이 5명일 경우 5억원 정도가 지급될 중앙선관위의 1분기 경상보조금 지급일(15일) 전에 속도를 내는 것일 수 있다. 당 안팎에선 총선 후보등록 마감일인 내달 27일까지 불출마 현역의원 다수가 당적을 옮겨 미래한국당 비례 기호도 2번으로 앞당길 거란 얘기가 뒤따른다. 사실상 하나의 정당이 선거법·정당법상의 이중혜택을 받으면서 총선 전 ‘분업’, 선거 후 ‘합당’이라는 시나리오를 짠 것이다. 정치를 희화화한다는 지탄을 피할 길이 없다.

위성정당은 ‘정당의 목적·조직·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헌법 8조2항,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을 목적으로 한 자발적 조직’이라는 정당법을 빈껍데기로 만드는 발상이다. 위성정당 모태 격인 비례한국당은 창당준비위 대표를 한국당 조직부총장 부인이 맡고, 소재지를 한국당사에 두고, 창당 자금은 당직자들이 조달했다. 말 그대로, 한국당을 ‘모정당’으로 삼고 새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 30석만 겨냥한 ‘꼼수 정당’이 태동하는 셈이다. 한 의원이 “비례대표 선출 전권을 부여받았다”고 한 것도 다분히 위성정당 관여나 선거운동을 금지한 선거법을 의식한 것일 테다. 편법·반칙이라는 손가락질을 감수하고 알음알음 전국선거를 치르겠다고 예고한 셈이다. ‘묘수’라고 자처한 위성정당은 자칫 여론 회초리를 맞으면 한국당 지역구 출마자에게 역풍도 불 수 있다. 선관위도 민의를 왜곡하고 선거개혁을 비웃는 위성정당에 엄격한 법의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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