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매년 1월 말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의 연례총회에는 전 세계 각 분야 정상들과 리더들이 모여 정치, 사회, 경제, 과학기술, 문화 등 전 분야의 주요 현황과 문제들에 대한 토론을 가진다. 또한 일부 문제들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서 함께 시도할 해결책도 제시한다. 세계경제포럼은 다보스포럼이 열리기 1~2주 전에 세계 위험 보고서를 발간해 왔다. 올해 세계를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위험요인들을 일어날 확률이 높은 것들과 일어나면 그 영향이 얼마나 큰지 이차원으로 그려 제시한다. 나도 몇 년 전 이 보고서를 작성할 때 참여하여 합성생물학, 감염질환 등에 대하여 전문가 의견을 제시했었다. 이렇게 위험요인들을 예측하는 것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잘 알아야 그에 맞는 답을 찾을 수 있으며, 특히 공학적으로 해결할 방안들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일어날 확률이 가장 높은 다섯 가지 위험요인들로는 극단적인 기후, 기후변화 대응에의 실패, 자연재해, 생물다양성의 감소, 사람에 기인한 환경재해가 제시되었다. 또한 일어날 경우 영향이 가장 큰 위험요인들로는 기후변화 대응에의 실패, 대량살상무기, 생물다양성의 감소, 극단적인 기후, 물부족 위기가 제시되었다. 결국 기후변화와 자연재해에 관련된 것들이 가장 큰 위험요인들로 제시되었으며,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기후위기와 환경에 관한 세션이 많았던 이유를 잘 보여준다. 

전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1월에 제시되었던 다섯 가지 일어날 확률이 가장 높은 위험요인들을 다시 보면 자산가격의 폭발, 중동 불안, 실패하고 무너지는 국가, 오일쇼크, 만성질환이었다. 2008년과 올해의 중간 해인 2014년에 제시되었던 다섯 가지 위험요인들은 소득불균형, 극단적인 기후, 실업, 기후변화 대응에의 실패, 사이버공격이었으니 매년 세계를 위협하는 중요 위험요인들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눈여겨볼 점으로는 2014년 이후로는 기후위기와 관련된 요인들이 계속 상위권 위험요인들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위험요인들이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미치며 위험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면 그로 인해 극단적 기후, 자연재해, 사람으로 인한 환경재해도 더 자주 출현할 것이며, 생물다양성의 감소, 식량위기, 물부족 위기를 겪게 되며, 심지어는 글로벌 거버넌스와 국가 거버넌스까지도 붕괴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또 다른 문제들을 일으키는데 예를 들어 물부족 위기는 도시계획의 실패와 주요 인프라의 붕괴, 식량위기의 가속화 등의 문제로 확산되게 된다. 또한 사이버공격, 데이터 사기와 탈취, 정보통신망의 붕괴 등은 디지털 분야의 위험요인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들이 무너질 경우 주요 인프라의 붕괴로 연결된다. 금융 분야에서도 실업, 자산버블, 에너지가격 쇼크, 관리 불가능한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등이 금융위기로 연결될 수 있으며 이들은 국가와 글로벌 거버넌스의 붕괴로도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아직도 사스, 메르스의 악몽이 생생한데 지난해 12월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 변이체가 연초부터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이번 변종 바이러스와 같이 신규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질환은 우리가 면역이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 치료약이나 백신이 없어 인류의 건강과 생존마저 위협하는 매우 무서운 위험요인이다. 올해 세계 위험 보고서에서도 감염질환은 일어날 확률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일어나면 그 영향이 매우 큰 것으로 예측했었는데 이 낮은 확률이 지금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바이러스성 감염질환의 경우 상시적 예방과 발생 시 신속 통제에 의한 전파 억제는 가장 기본적으로 철저히 이뤄져야 하며, 신종 바이러스라서 백신과 항바이러스제가 없기 때문에 소위 ‘신속제조’ 기술의 개발이 요구된다. 혹시나 있을 바이오테러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생물학, 의학, 공학자가 융합적인 전략으로 접근해야 하는 신속제조 기술은 WHO에서 소위 질병X에 대한 대비책으로 제시한 바 있다. 질병X란 현재는 사람에게 감염이 안되거나 거의 안되는 질병요인인데 만약 이것이 변이를 일으켜 사람을 감염시키게 되면 예방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심각한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질병을 말한다. 미국의 경우에는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러한 변종 바이러스 출현 시 백신 후보를 석 달 내에 만들어 임상시험을 할 수 있게 준비한다고 한다. 하지만 임상시험 기간이 적어도 6개월 이상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준비하는 데 석 달도 길다. 아직은 가능하지 않지만, 새로운 바이러스 출현 후 하루 내에 유전체 정보 확보 및 바이러스 특성 파악, 그 후 3~4일 내에 몇 가지 백신 디자인, 가능하면 바이러스 복제 억제가 가능한 치료제 후보들을 디자인하고, 1~2주 내에 신속히 제조하여 빠른 임상을 하는 것까지를 목표로 기술 개발을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전체 염기서열 정보를 기반으로 유사 바이러스와의 DNA 혹은 RNA, 단백질, 바이러스 구조, 숙주세포와의 상호작용 등을 비교 분석하고 그간의 임상데이터 등까지 통합 분석함으로써 백신 후보와 치료제 후보를 빠르게 발굴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어야 한다. 

이상과 같이 우리는 늘 큰 위험요인들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러한 위험요인들은 늘 있을 것이다.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며, 시스템 리더십과 꾸준한 연구·개발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이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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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형제들이 불공정한 형제들로 변했다. 합병 전이던 지난해 9월 최소배달료 6000원으로 라이더들을 공격적으로 모집하더니, 11월6일부터 12월3일까지는 4500원으로, 12월4일부터는 기본배달료 3000원에 500~2000원의 프로모션을 매일매일 변동해서 지급했다가 합병 후인 올 2월1일부터는 3000원으로 배달료를 삭감했다. 불과 5개월 새 벌어진 변화다.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9월의 6000원 요금제는 신입 라이더에게만 적용됐고, 기존 라이더에겐 3000원을 지급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자유롭게 로그인, 로그아웃하는 형태의 배민커넥터를 모집했는데, 이들에겐 기본료 5000원에 500~1000원의 프로모션을 제공하고 꿀콜이라 불리는 단거리 콜을 먼저 볼 수 있게 했다. 렌털비, 배달 개수 등이 기존 라이더, 배민커넥터, 신규 라이더 간 모두 달랐고, 이들 사이에 위화감이 커지고 갈등이 벌어졌다. 라이더 간 갈등으로 회사에서 운영하던 단체대화방이 폭파되는 사건도 있었다. 단결은커녕 원수가 되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보인다. 배민은 이를 잘 이용했다. 배민커넥터에 대한 우대정책으로 배민라이더스의 불만이 고조되니까 커넥터에 대한 20시간 근무 제한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노조가 매일 바뀌는 프로모션에 문제를 제기하니까 프로모션을 없애버렸다. 일부 라이더들은 노조가 설쳐서 근무조건이 불리하게 바뀌었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2만명이 출근하는 공장도, 함께 밥을 먹는 식당도 없기 때문에 노조가 이에 대해 해명하는 전단 한 장도 뿌릴 수 없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갈등을 악용해 노조를 탄압했던 대기업들이 한 수 배워야 할 판이다.

플랫폼은 정기적으로 말 많은 라이더들을 자연스럽게 물갈이할 수도 있다. 패스트푸드점은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이 있으면 주마다 바꿀 수 있는 스케줄을 줄여버려 해고 없이 노동자들을 내보낸다. 제로아워라 불리는 고무줄 스케줄이다. 플랫폼은 일방적인 공지나 라이더 수와 일감의 조정을 통해 노동자들을 로그아웃시킬 수 있다. 이것은 플랫폼의 신종 노무관리 수단이다. 플랫폼노동자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였다면 배민의 일방통행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되어 라이더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플랫폼노동자들은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저항의 수단이 전무하다. 동의하지 않으면 로그인 자체가 안된다. 배민은 새로 작성한 계약서에 1개월 단위의 계약을 갱신하기로 바꾸었고 7일 전에서 1일 전 계약해지 통보가 가능하다고 적었다. 누가 저항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회사의 문제를 인식하기 힘든 신입 라이더들을 무한대로 뽑을 수 있어 회사의 문제를 공유하기도 힘들다. 지난해 7월 모집한 배민커넥터가 6개월 만에 2만명이 됐다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플랫폼은 얼마든지 대체인력을 뽑을 수 있다. 김봉진은 파업의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자본가다.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도 공포다. 라이더들은 커넥터와 라이더스, 신규와 기존 라이더의 휴대폰에 다르게 콜이 뜰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혼자 일하는 라이더들은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가 나에게만 콜이 보이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배민이 자랑하는 고정급 라이더 중에는 서울 동쪽으로 출근했다가 91분이 걸리는 서쪽 끝 배달을 지시받은 적도 있다. 악덕사장의 욕설이 아니라, AI의 알림음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왔다. 배민만의 문제는 아니다. 플랫폼은 입구에서 세련된 계약서에 서명을 받아 합법적으로, 플랫폼과 가맹계약을 맺은 동네 배달대행업체들은 계약서도 없이 자기 맘대로 렌털비, 수수료, 배차시스템, 수리비 등을 바꿔버린다. 

라이더유니온은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대응할 예정이지만 노동에 대한 이해가 없는 기구에서의 법적 해결은 한계적이다. 라이더 전체가 노조에 가입해 파업을 벌이는 것도 어렵다. 앱에 노조 소식을 알릴 수 있도록 보장하고, 서버 파업 등 플랫폼에 걸맞은 노조할 권리 보장이 필요하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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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완산학원의 사학비리를 제보한 기간제 교사가 전주시내 다른 사립학교에서 옮겨 근무한 지 1년 만에 재임용에 탈락했다. 사학비리 제보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사립학교가 고의로 ‘찍어내기’를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용기를 내 불의에 맞선 공익제보자가 보호받기는커녕 조리돌림을 당해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5일자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이 기간제 교사는 완산학원 사학비리를 제보한 뒤 지난해 다른 사립학교로 옮겨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다. 그런데 이 학교는 지난달 14일 기간제 교사를 재공모했고, 28일 이 교사만 유일하게 탈락시킨 채 나머지 교사 22명을 전원 재임용 조치했다. 기간제 교사를 채용하면 통상 2~3년은 근무토록 하는 관행을 깨고 1년 만에 탈락시킨 것이어서, 완산학원에 대한 공익제보로 지역 사학계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 교사에 대한 보복차원의 인사가 아니냐는 의심이 들 만하다. 이 교사는 근무하는 동안 다른 사학재단 관계자들이 교장·교감에게 자신을 자르라고 수시로 전화했다는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전해들었다고 했다.  

이 교사는 완산학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던 지난해 1월 학교 설립자의 전횡을 경향신문에 제보했다. 전북도 교육청의 특별감사와 검찰수사로 설립자의 수십억원대 비자금 조성과 교권침해 등 사실이 밝혀졌고 설립자 김모씨는 법원에서 징역 7년에 34억원의 추징금이 선고됐다. 하지만 그는 동료 교직원들의 집단따돌림과 협박에 시달리다 학교를 그만뒀고, 새로 옮긴 학교도 1년 만에 떠나게 된 것이다. 

내부 부정행위에 눈감지 않고 경고음을 내는 공익제보자들이 있어야 사회가 맑아질 수 있다. 이런 공익제보자들은 사회가 마땅히 지켜줘야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감당키 어려운 불이익을 떠안는다. 공익제보자 10명 중 9명이 징계나 집단따돌림 등 각종 불이익을 받는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전북도 교육청은 재임용 탈락 경위를 철저히 규명하는 한편 구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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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울산시장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 피고인 13명에 대한 공소장 국회제출을 거부했다. 처음 있는 일로, 대신 공소사실 요지만 제출했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참모들의 반대에도 “내가 책임지겠다”며 밀어붙였다고 한다. 기소된 피고인들은 모두 공인(公人)으로 이들의 혐의는 국민 알권리 범주에 있다. 그런데도 법무장관이 이를 막은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2월 6일 (출처:경향신문DB)

공소장 제출 요구대상은 울산 시장·경제부시장, 전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경찰 치안감 등 고위관료들이다. 헌법재판소 결정, 대법원 판례를 보더라도 직무 특성상 비판과 감시를 받아야 할 공인들이다. 이들에 대한 비판은 ‘상당한 정도로 폭넓게 허용돼야 한다’는 것이 헌법정신이다. 국민은 사생활을 상당히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인의 혐의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에 대한 언론보도 역시 필요 이상의 국가통제를 받아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런 국민기본권을 수호해야 할 법무장관이 ‘잘못된 관행’이라며 공인의 공소장조차 앞으로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적절하지 않다. 

법무부가 제시한 근거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 6조와 11조다. 두 조항은 기소가 이뤄진 형사사건의 공소사실, 수사경위·상황 등을 원칙적으로 공개토록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내용만을 앞세워 공소장 제출을 거부했다. 이는 주객이 전도된 과잉해석이다. 상위법과도 배치된다. ‘국회 증언·감정 등에 대한 법률’은 ‘국가기밀 사항으로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명백한 때’에만 국가기관의 자료제출 거부를 허용하고 있다. 

공소장 국회제출은 참여정부 이후 국민 알권리 차원에서 지켜져왔다. 추 장관은 판사 출신이다. 법에 밝고, 인권보장에 애써왔다. 그런데 유독 이 사건 공소장부터 국회제출을 거부하겠다니, 수긍할 국민이 얼마나 있겠는가. 만약 이것이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4월 총선’을 의식한 것이라면 잘못된 판단이다. 그것이야말로 법무·검찰이 해서는 안될 ‘정치적 행위’다. ‘무리한 기소 내용의 공개는 부당하다’는 일각의 주장도 옳지 않다. 수사의 잘못은 그것대로 따질 일이며, 공소장 비공개 이유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국민 알권리와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다. 추 장관은 공소장 국회 비공개 원칙을 철회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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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3명 추가 발생했다. 국내 누적 환자는 모두 19명으로 늘었다. 추가 환자들은 중국이 아닌 제3국 방문에서 감염되거나, 감염된 이와 밀접 접촉해 확진된 것으로 추정된다. 2, 3차 감염자다. 기존의 중국 체류자 중심, 자진신고에 의한 방역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드러낸 것이다. 검역 대상과 체계를 대폭 넓히고 강화하는 ‘2단계 대책’이 필요하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17·19번째 환자는 지난달 콘퍼런스 참석차 방문한 싱가포르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콘퍼런스 참석자 중 확진자가 있었다는 연락을 받고 지난 4일과 5일 선별진료소를 찾아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18번째 환자는 4일 확진된 16번 환자의 딸이다. 16번 환자는 지난달 중순 가족과 함께 태국 여행 후 귀국해 지난달 25일 발열과 오한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도 보건소에 신종 코로나 검사를 문의했지만, 중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검사 대상에선 제외됐다고 한다. 이후 다른 병원을 찾았고 상태가 더 나빠지자, 유전자 증폭검사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하루 뒤에는 딸도 연달아 확진 판정을 받았다. 당국이 방역대상을 좁게 잡은 탓에 이들은 1차 감시망에서 벗어나 장시간(열흘~보름가량) 무방비로 노출됐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앞으로는 원인불명 폐렴 발생 시 중국 여행력이 없더라도 의사 판단에 따라 보건소에 신고하고 검사를 시행해 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지난달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12번 환자(중국인)도 일본에서 확진자 발생 후, 접촉자 정보를 중국으로만 통보하는 바람에 초기 방역에 구멍이 뚫렸다.

방역망을 처음부터 넓게 잡았으면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을 못 막았다는 아쉬움이 크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당국이 예상치 못한 추가 감염자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도 건강을 챙기고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각자 개인 위생에 힘써야 한다. 확진자와의 접촉이 의심되거나 의심 증상이 있을 경우, 적극적으로 신고하고 스스로 격리하는 성숙한 시민정신이 필요하다. 정부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 긴장의 고삐를 조여야 한다. 부족한 시약과 인력, 장비 등을 전력을 다해 확보하는 것은 물론 아시아권 환자가 늘고 있는 만큼 긴밀한 국제공조 방안도 찾아야 한다. 환자와 가족에 대한 정보 유출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5번째 환자에 이어 16번째 확진자의 동선과 환자 가족의 직장 등 개인정보가 담긴 문서가 유출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이는 가짜뉴스와 함께 감염병 불안을 부추기는 반사회적 행위다.      

신종 코로나로 전 세계가 술렁이고 있다. 해외의 빠른 확산 속도에 비하면 한국은 비교적 대처를 잘해왔다. 이날 처음으로 2번 확진자가 완쾌돼 퇴원했고, 1번 확진자도 퇴원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신속,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방역에 전력을 다하는 정부와 의료진, 스스로 조심하고 위로·격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함께할 때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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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짐승들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 그들은 대자연과 다시 접촉하면서 자연 속에 푸근히 몸을 맡기는 보상으로 그들을 살찌게 하는 정기를 얻는 것이다. 그들의 휴식은 우리들의 노동만큼이나 골똘한 것이다. 그들의 잠은 우리들의 첫사랑만큼이나 믿음 가득한 것이다.”

장 그르니에의 <섬> 연작에 나오는 ‘고양이 물루’는 고양이에 관한 숱한 묘사 가운데 내가 최고로 꼽는 글이다. 이 글을 보기 전까지 나는 타자의 세계, 짐승의 세계를 이토록 가감 없이 관찰하는 시선을 만난 적이 없다. 고양이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침묵 속에 잠겨 있으며, 필요한 때가 오면 도약한다. 고양이의 시간은 기다림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인간의 해석이다. 그는 오로지 현재에 머물러 있으며, 지금 막 갱신한 현재에 반응하여 뛰어오른다.

하이데거는 과거와 미래를 현재에 끌어와 자신의 현존재를 구성하는 인간을 ‘탈존적 존재’라고 부르며 동물의 현재와 구별한다. 현재에 들어와 있지만 이미 소멸해버린 과거, 그리고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와의 간극에서 인간의 ‘의미’가 생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기투(企投), 곧 끝없이 계획하는 존재다. 반면 동물은 현재에 갇힌 존재, 오로지 본능에 주어진 환경 안에 폐쇄되어 있는 존재이다. 동물은 그들이 생존하는 환경에 완벽하게 일치돼 있기 때문에 ‘자기를 벗어난’ 상황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얄궂게도 하이데거의 이 현존재론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불행을 읽는다. 고양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영원히 이뤄지지 않는 미래를 꿈꾸느라 현재를 잊은 존재들이다. 이미 이뤄진 미래는 미래가 아니기에 인간의 시선은 또다시 존재하지 않는 무엇을 향한다.

우리 집에도 고양이 한 마리가 산다. 나는 이 아이에 대한 글을 한번쯤은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12년 여름 ‘볼라벤’과 ‘산바’라는 이름의 태풍이 한반도를 연타했을 때 동네에서 주운 고양이다. 비에 쫄딱 젖어 처량하고 가냘프게 울고 있는 새끼를 주워 ‘태풍’이라 이름 붙였다. 태풍이는 자기를 구해준 이 울음을 장기 삼아 때마다 견뎌낼 수 없는 울음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낸다.

태풍이는 고양이 물루처럼 새를 사랑한다. 창밖의 새를 한 시간씩 응시하며 울고 끙끙댄다. 새와 놀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 새를 갖고 싶고 먹고 싶어서 그만 새에 꽁꽁 붙들려버린 것이다. 이러한 매혹에는 인간의 사랑을 훨씬 뛰어넘는 무엇이 있다. 그리하여 베란다 창을 열어준 어느 날, 태풍이는 다 먹고 남은 새의 머리를 자랑스럽게 내놓아 주인을 기겁하게 했다. 또 어떤 날은 열린 창문으로 길냥이 동무가 덩달아 들어오기도 했는데, 친구가 붙인 고양이 이름이 떠올라 녀석을 ‘덩달이’라 이름 붙였다.

철학자 데리다가 키운 고양이 ‘로고스’는 가장 유명한 고양이 중 하나일 것이다. 데리다는 철학자답게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을 생각한다. 어쩌다 발가벗은 몸으로 로고스의 집요한 시선을 받아냈던 곤란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원래부터 발가벗은 고양이는 발가벗은 것을 모르는데 부끄러워 옷을 입는 인간이야말로 발가벗은 존재라는 역설을 발견한다. “내가 고양이와 놀 때, 내가 고양이에게 시간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내게 시간을 내주는 것인지 누가 알랴”라는 말로 실존의 전도된 진실을 이야기한다.

장 그르니에의 ‘고양이 물루’는 이렇게 끝맺는다. “사실, 어떤 절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일체의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으며, 그 모범으로 한 마리 동물보다 더 나은 것이 어디 또 있으랴.” 인간의 가없는 욕망이 오로지 현재만을 사는 고양이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이다. 고양이가 진리다.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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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이어지는 낡은 나무계단이 삐걱댄다. 벽에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광고 포스터가 걸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온통 빈티지풍이다. 나무 탁자에 소파 의자, 옛날 영사기·시계·도자기가 놓인 장식장, 업라이트 피아노, 켜켜이 꽂힌 LP판…. 시간이 멈춰선 곳, 서울 대학로의 ‘학림다방’이다.

학림다방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이다. 옛날 다방들이 커피숍, 커피전문점으로 바뀌는 속에서도 학림은 꿋꿋이 ‘다방’을 지켰다. 진화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세상에서 학림다방은 옛것을 지킴으로써 살아남았다. 여러 영화의 촬영장소로 사용됐고, 미래 세대에 전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아 ‘서울미래유산’이 됐다. 1956년 문을 연 ‘학림(學林)’의 이름은 건너편에 옛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시간이 쌓이면 공간은 자기의 색깔을 입는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장소성’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공간이 장소성을 부여받은 건 아니다. 장소성은 시간과 사람이 만들어간다. 프랑스 파리 센강 변에 있는 헌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세계 최고의 서점 10곳’에 꼽힐 정도로 유명하다. 100년의 역사가 한몫했지만, 그곳을 명소로 만든 것은 시간이 아닌 사람이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가난한 작가들의 피난처였다. 4만명이 넘는 무·유명 작가들이 이곳에서 숙식을 하며 글을 쓰고 문학을 토론했다. 사뮈엘 베케트,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에즈라 파운드가 그런 작가였다. 파리 시절 이곳을 단골로 드나들었던 헤밍웨이는 회고록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에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상세히 소개하며 ‘따뜻하고 흥겨운 곳’이라고 적었다.

학림다방은 젊은 영혼들의 안식처였다.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옮겨간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학생이 주요 고객이었지만, 대학로가 문화예술의 거리가 된 뒤로는 음악, 미술, 연극인들의 차지였다. 사교와 우정의 공간이었고, 휴식의 장소였다.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눈 공론장이었다. 8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는 ‘학림사건’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전혜린 평전>을 쓴 작가 이덕희는 학림다방이 문을 연 1956년부터 2016년 타계 직전까지 즐겨 찾았던 오랜 단골이었다. 1990년대, 건너편 동숭동에서 연극연출에 몰입하던 김민기는 짬을 내 학림에서 휴식을 취했다. 2002년, 파리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작가 홍세화가 공항에서 달려와 기자회견을 한 곳도 학림다방이었다.

학림의 사람들 가운데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백 선생만큼 오래도록 학림다방을 찾은 사람도 없다. 1950년대 자진녹화대를 구성해 나무심기 운동을 벌일 때, 학림은 선생의 아지트였다. 당시 함께 농민운동에 뛰어든 서울대생들을 그곳에서 다독이며 격려하던 이야기는 시가 되어 시집 <젊은날>에 수록됐다. 1989년 통일문제연구소가 근처로 이사한 뒤부터는 학림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선생의 출입이 잦자 학림다방 이충열 대표가 백 선생에게 창가 아래쪽 자리를 지정했다. 손님이 적은 오전이라 가능했다. 격자 창으로 밖이 내다보이는 그곳에서 선생은 신문을 보고 원고를 손질했다. 선생은 항상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을 청해 들었다. 이 대표는 선생이 창밖의 플라타너스를 바라다보며 자연의 변화상을 들려주곤 했다고 전한다. 두 해 전부터 건강이 나빠지면서 선생의 학림 출입이 뜸해졌다. 몸져누운 지난해 말부터는 발길이 끊어졌다.

지난달 28일 학림다방 안팎의 풍경을 보여주는 사진전 <학림다방 30년-젊은 날의 초상>(류가헌, 8일까지)이 개막했다. 전시장에는 사진작가 이충열 대표가 30년 넘게 찍은 인물·풍경 사진 60여점이 내걸렸다. 그중에는 백기완 선생의 사진도 있다. 창가가 보이는 그 자리에, 모시적삼 차림으로 꼿꼿이 앉아 원고를 검토하는 모습이다. 그날 선생은 다시 입원했다. 병상 신세가 아니었다면, 개막식에 참석해 학림다방과의 인연을 들려줬을 것이다. 학림다방에는 4년 전 선생이 문정현 신부와 함께 비정규직 쉼터 ‘꿀잠’ 건립을 위한 <두 어른전>에 출품했던 서예작품이 걸려 있다. 또 계단의 벽보 게시판에는 선생이 휘갈겨 쓴 짧은 시가 남아 있다. ‘밝은 해도/ 캄캄한 밤을/ 하얗게 지새야/ 새벽을 맞이하나니/ 벗이여/ 오늘도 질척이는 벗이여.’ 지난 주말 학림다방을 들렀을 때, 선생이 앉았던 자리가 허전했다. 병마를 떨치고 건강한 몸으로 학림다방의 빈자리로 달려가는 선생의 모습을 보고 싶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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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어서 마스크를 벗고 봄나들이 가고파라. 택배가 와서 나가보니 간밤에 내린 눈이 마당에 살짝 뿌려져 있다. 귀한 눈이라 강아지랑 둘이 행복하게 밟아댔어.

얼마 전엔 북해도에 잠깐 일이 있어 다녀왔다. 눈이라면 원 없이 보고 왔지. 영화 &lt;러브레터&gt;의 오타루엔 오금이 저릴 만큼 차가운 독일식 맥주 ‘오타루 비루’가 있다. 농부들과 어부들이 목을 축이는 곳.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열차에 몸을 실어보았다. 눈이 무릎까지 차는 길을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 그곳 북해도에서 농업대 선생을 지낸 우치무라 간조는 기독교의 배금 성장주의에 일격을 가한 ‘무교회주의’의 스승이다.

나는 선생이 머문 교정 공원에 이르렀다. 자연을 노래한 선생의 글 일부다. “자연은 그해를 선하든 악하든 모든 사람에게 고루 비추고, 빗물도 그러하다. 지진 벼락으로 극장과 교회를 무너뜨리고, 바다에 유빙을 놓아두어 목사와 도박사를 동시에 수장시킨다. 같은 병균은 신자나 불신자나 가리지 않고 감염시킨다. 착한 사람이 운 나쁘게 되는 수가 있고 악한 사람이 행운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자연 앞에서 선악정사의 구별이 없다. 더구나 죽음은 만인에 대한 최후선고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치자면 일본이 세계 으뜸이나 사람의 마음이 부패한 것을 치자면 일본은 최악이다. 산이 푸르고 물이 맑은 곳마다 훼손하여 모두 도박과 열락을 탐하는 곳이 되었다. 아아, 나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자연은 북해도나 이곳 남녘이나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데 사람 사는 것은 매일반인 것 같다.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로 겪는 이 재앙 앞에 조속히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머리를 모아야 하겠다.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셔요. 병아리떼 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해마다 미나리 싹이 푸르게 솟고 푸짐하게 자라날 수 있을까. 미나리 싹을 낳고 기르던 땅별이 우리 인간들 때문에 많이 아프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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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회사엔 숫자 칸막이가 있다. 직장보육시설을 둬야 할 기준은 상시근로자 500인, 대기업은 300인, 주 52시간제는 올해 50인 중소기업까지 지켜야 한다. 노동위원회에 가면 가장 먼저 묻는 숫자가 ‘5인’이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망이 적용되는 갈림길인 까닭이다. 지금껏 사업주는 “지불능력이 모자란다”고, 정부는 “근로감독 부담이 크다”고 법 적용에 난색을 표해 왔다. 그 속에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계속 늘어 지난해 580만명을 찍었다. 노동자 네 명 중 한 명이고, 도소매·음식·숙박·부동산업은 대다수를 차지한다. 정규직·계약직과 또 다른 ‘3등시민’을 위해 온라인 플랫폼 ‘권리찾기 유니온’(www.unioncraft.kr)이 5일 개통됐다. ‘권유하다’로 부르는 당사자 참여 운동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연차·생리휴가와 연장근로·야간·휴일수당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하고, 노동시간도 사업주 맘대로 정할 수 있다. 노조조직률은 0.1%에 못미친다. 노동자 권리가 사업주 선의에 맡겨진 셈이다. 지난해 말 ‘권유하다’ 실태 조사에서도 57%는 연차휴가를, 62%는 시간외수당을, 10명 중 1명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평균 월급은 138만원, 10인 이상 사업장 급여 279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임금·복지도, 노동법도 질적으로 다른 차별선이 5인에 쳐 있는 셈이다.

‘권유하다’는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감옥에서 구상했다고 한다. “1년에도 수십번 해고당한다”는 사람을 만나 ‘노사교섭’ ‘조합원’이란 말조차 사치인 작은 사업장을 봤다고 했다. 그래서 잡은 슬로건은 ‘세상과의 직접 교섭’이다. 당사자들의 당연한 요구를 모으고 알리겠다는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은 ‘위장 사업장’의 익명 신고부터 받는다. 5인 이상 회사인데 4명만 근로계약하고 나머진 프리랜서·알바로 돌리는 ‘못된 사업주’의 근로감독을 요구하고, 시민고발인단도 모집하겠다는 구상이다. 50년 전 불꽃에 휩싸인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을 달리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고 외쳤다. 지금도 ‘작은 전태일’은 도처에 많다. 그 낮은 곳을 주시하는 ‘권유하다’, 참 이름 잘 정했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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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말 그대로 ‘혜성같이’ 등장한 가수 겸 배우 하리수는 한국인들의 고정관념을 뒤흔들었다. 2000년 9월 게이인 배우 홍석천이 ‘커밍아웃’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한국인들에게 알린 지 대략 7개월 만이었다. 홍석천이 동성애라는 당시 사회의 금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면, 트랜스젠더 하리수의 등장은 ‘타고난 성(性)을 바꿀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하리수는 한국사회의 선구자였다.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악담을 받기도 했지만 버텨냈다. 이듬해 12월에는 법원에서 호적 정정 및 개명 허가를 받았다. 법적인 성을 바꾸는 일은 같은 해 7월에도 있었지만, 유명인의 경우는 그 파장이 훨씬 컸다. 하리수의 주민번호 7번째 숫자가 1에서 2로 바뀌고, 본명이 이경엽에서 이경은으로 바뀐 것은 이 사회의 변화를 상징했다. 당시 법원은 결정문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성전환자의 인간적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등 헌법 이념에 따라 신청을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

2020년 1월은 19년 전 하리수의 등장 때만큼이나 트랜스젠더란 용어가 한국사회에서 많이 회자된 시기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육군에서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던 변희수 전 하사가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결국 강제전역 판정을 받았다. 성전환 수술을 하고 호적정정까지 마친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숙명여대에 최종 합격했다. 그러나 19년이란 세월만큼 한국사회와 그 구성원들이 진보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을 듯하다. 변 전 하사와 숙명여대의 일이 알려진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군 복무적합 여부’와 ‘여대 입학적절성’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남성 부사관으로 입대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군전환복무 요구나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이 전례 없는 일이기에 절차적 혼선이 빚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관련 규정이 없으면 그럴 수 있다. 규정을 따질 만한 일이 아니더라도 구성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까지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군과 숙명여대의 일부 구성원들이 이들을 ‘진정한 여성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면서 비난하고 배척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애초에 ‘진정한 여성’이란 개념 자체는 남성 위주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생물학적 정의였다. 생물학적으로 ‘지정’받은 성별과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 정체성이 동일한 시스젠더(Cisgender) 여성만 진짜 여성이란 주장은 21세기가 시작되고도 20년이 지난 지금에 나올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얼마 전 페미니즘의 고전 <백래시>의 저자 수전 팔루디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팔루디는 76세에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이 된 아버지를 만난 뒤 <다크룸>이란 책을 썼다. 팔루디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다크룸>)을 쓰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정체성’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든 경험들이 합쳐져서 정체성이 된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 책의 핵심 질문은 정체성이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인가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라며 “사실은 둘 다이다. 우리는 물려받은 것을 재구성하는 순간에도 물려받은 것으로 정체성을 만들어 낸다.” 다시 상기시키고 싶다. 지금은 2020년이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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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국회의원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당들이 후보 공천과 인재영입, 세력 간 통합 논의로 바쁘다. 여론 동향과 투표 전망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궁극적 관심사는 누가 이길 것이냐다. 민주주의는 정치경쟁의 제도화이니, 정치인들이 더 많은 지지를 얻으려 다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에선 흥미로운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정치권과 지지층이 똘똘 뭉쳐 자기편을 지키고 상대편을 타도하려는 공동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갈등구조는 복잡한데, 정치는 양쪽으로 쩍 갈라진 대립 구조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현실을 평가하고 재단하기 전에 우리는 조금 더 긴 역사적인 관점을 취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대결정치는 완전히 새로운 것도, 특별히 극심한 것도 아니다. 노무현시대에 강경 보수우익의 언행을 기억한다면 그때의 증오와 적개심이 지금보다 덜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명박·박근혜시대에도 야권의 격렬한 비난과 반대행동은 끊이지 않았다. 일상생활에서도 정치 문제로 사람들이 갈라섰다. 진영 대결은 장기 현상이다. 원인이 무엇일까? 

우선 정치제도 환경을 들 수 있다. 한국은 강력한 대통령제와 소선거구 단위의 단순다수결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 이것은 승자독식의 제도다. 승자 아니면 패자다. 그래서 합의정치의 공간이 좁다. 대결정치의 잠재성이 강한 제도 환경인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대통령제가 죄인은 아니다. 지금 민주주의의 쇠퇴가 심각한 헝가리는 내각제이고 폴란드는 혼합제이다. 비례대표제가 만병통치약도 아니다. 전후 유럽의 합의민주주의는 비례제하의 연합정치로 작동해왔지만, 최근 극우 정당의 급부상 역시 군소정당에 유리한 비례제의 덕을 봤다. 단지 어떤 제도로 갈아입느냐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질을 어떻게 성숙시킬 것이냐가 관건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1987년 이후 언제나 정치세력 간의 불신과 대립이라는 문제를 갖고 있었지만 그 강도와 양상은 변했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씨가 이끈 ‘3김시대’는 보스정치였다. 비록 이들 간의 경쟁이 대단했지만, 이해관계가 맞으면 보스끼리 담합도 타협도 가능했다. 유권자들은 지역 균열이 깊었지만, 선거에서 그것을 드러냈을 뿐 직접행동으로 지역주의를 표출하고 정치권을 압박하는 일은 드물었다. 즉 민주주의가 미발전한 만큼, 정치 대립의 폭과 강도도 제한적이었다.

포스트 3김시대는 달랐다. 정치인들의 대중 활동과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안으론 동지적 정체성, 밖으론 적대적 정체성이 강해졌다. 정보사회에서 시민들의 행동능력이 커짐에 따라 단지 정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내가 뽑은 대통령’ ‘우리가 만든 정권’이라는 자의식이 커졌고 정권 비판이나 수호 행동에 점점 많은 시민이 가담하게 됐다. 이런 변화는 처음엔 진보층에 국한됐지만 나중엔 보수층까지 확대됐다. 정치권과 지지층이 융합하여 진영을 이루고 반대 진영과 싸우는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 같은 양상은 정치이론에서 민주주의의 이율배반 또는 역설이라고 부르는 난해한 문제를 드러낸다. 민주주의는 모든 좋은 것을 담은 선물상자가 아니라, 상충하는 원리와 내적 모순을 안고 있는 체제다. 그래서 종종 역설이 생겨난다. 민주주의의 원리는 국민주권인데, 한 집단이 ‘국민’의 이름으로 전횡을 휘두르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활발한 정치참여는 민주주의의 생명인데, 그 참여가 법치를 훼손하면 반대자에게 폭력이 된다. 참여도 옳고, 법치도 옳다. 이율배반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한국의 정치 대결은 민주적 경쟁과 참여 확대를 방증하는 현상이면서,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기도 하다. 정치경쟁이 격해질수록, 정치의 주체가 확대될수록, 정치적 정체성이 뚜렷해질수록 점점 더 많은 개인이 정견을 중심으로 뭉치고, 집단 간의 차이가 분명해지며 그 균열이 깊어진다. 그런데 그런 대결의 정치는 사람들을 적과 동지, 정의와 불의, 진실과 거짓의 이분법 안에 가두며, 상호 인정과 관용, 공동선을 위한 대화와 승화의 공간을 질식시킨다. 이념, 정책, 도덕이 모두 권력을 위한 명분과 수단이 된다. 민주주의가 위험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대결의 정치가 민주주의의 생기와 위험을 함께 담고 있다면, 그 생기를 보지 못하고 대립하는 양쪽을 배척하기만 하는 냉소주의와 중도주의, 그리고 그 위험을 보지 못하고 열정만 불태우는 자기중심적 행동주의를 모두 극복해야 한다. 서로 다투는 주체들의 합리적 핵심을 취하여, 그러나 대립의 경계를 넘어, 정치의 대안을 구체화하려는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큰 정치를 먼저 개시하는 쪽이 다음 단계의 한국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주역이 되지 않을까?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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