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컨벤션센터를 개조해 만든 임시병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들이 수용돼 있다. 우한 _ AP연합뉴스

“한국보다 확진자 수가 더 많대!” “내 그럴 줄 알았다. 싹 쓸어버렸으면 좋겠다.”

카페 옆자리의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이웃 나라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개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디서도 “안됐다”라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독일어에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단어가 있다. 문자 그대로 하면 ‘해로운 기쁨’, 뉘앙스를 살리면 ‘사악한 즐거움’이다. 타인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즐거워하는 심술궂은 마음을 뜻한다. 길 가다 바나나 껍질을 밟아 크게 넘어지는 사람을 보고 웃는 것도 샤덴프로이데다. 경쟁 팀의 선수가 부상을 입었을 때 잘됐다는 마음이 드는 것,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 곤경에 처했을 때 고소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샤덴프로이데다. 가까운 사이에도 이런 감정은 존재한다. 학교 다닐 때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친구가 대기업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씁쓸함, 그러다 몇 년째 승진에서 누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겉으로는 표를 내지 않아도 속으로 은밀하게 친구의 불행을 기뻐할 수도 있다. 철학자인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지닌 가장 악한 감정이 샤덴프로이데라고 했다. 어릴 적엔 친구가 웃으면 같이 웃고, 울면 왜 우는지도 모르면서 따라 울었는데, 그때는 몰랐던 이 사악한 즐거움을 우리는 어쩌다 습득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경쟁의식 때문일 것이다. 한국 교육의 동력이자 메커니즘인 경쟁은 친구가 잘해도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졸업하고 나서도 끊임없이 동창과, 입사동기와, 이웃과, 본 적도 없는 엄마 친구 자식과 비교하며 나의 우위를 찾는다. 나와 남을, 우리와 그들을 가른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함께 슬퍼하기보다 무탈한 나의 현재에 안도하며 비교우위를 즐긴다. 세상이 온통 제로섬인 것처럼 누군가 잘되면 내가 뒤처지는 것 같고 누군가에게 불행이 닥치면 불행의 할당량이 나를 비켜가서 다행이라고 여긴다. 내가 속한 또는 내가 지지하는 우리 그룹에 나쁜 일이 생긴다면 걱정하고 슬퍼하겠지만 ‘우리’가 아닌 ‘그들’에게는 불행이 닥쳐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만 괜찮으면 상관없다.

무서운 것은 샤덴프로이데가 전염된다는 점이다.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느꼈더라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던 감정이 남이 표현하는 것을 보면 대범해진다. 익명을 보장받으면 잔인해진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불행이 닥치기를 바라게 되기까지 한다. 소리 없이 퍼지는 샤덴프로이데는 악성 바이러스만큼이나 전염력이 강하고 위험하다.

유명인이 갑작스레 나쁜 일을 당했을 때 동정하는 이도 있지만 당해 마땅하다는 조롱도 많다. 대중이 보기에 별 노력 없이 성공을 거뒀거나 부정한 방법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한 경우라면 샤덴프로이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악한 즐거움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름의 정의라는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행운, 잘나가는 이가 누리는 권력이 내 눈에는 불평등이다. 그런 사람에게 불행이 닥치는 것은 정의, 즉 공정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불행을 당해 마땅한 사람이 있을까? ‘우리’와 ‘그들’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우리’의 범위는 늘기보다는 줄어들기가 쉽다. 종국에는 나를 제외한 나머지 전부가 ‘그들’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연결되어 있어서 나 혼자 잘한다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저 멀리서 나타난 바이러스가 금세 전 세계에 번진 것처럼, 명절에 가족과 밥을 먹다가 감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남의 불행을 고소하다고 여기지 말자. 내가 안녕하려면 남도 안녕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두가 우리인, 금을 그어 나와 남을 나눌 수 없는 세상이다. 나 혼자 잘 사는 세상은 없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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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처음 유권자로 편입된 고3생들의 선거권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속출하고 있다. 고3 교실의 원활한 선거권 행사를 옥죄는 법령과 해석이 나오더니 6일에는 중앙선관위가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는 학교 내 모의선거 교육을 원천적으로 불허하는 결정을 내렸다. 진보 성향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마치 해서는 안될 일을 강행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보수 쪽 시각에 손을 들어준 셈이 되었다. 

고3 유권자를 위협하는 가장 황당한 사례는 공직선거법 제106조(누구든지 선거운동을 위하여 호별로 방문할 수 없다 등)에 대한 선관위 해석이다. 지난달 선관위가 발표한 지침에 따르면 고3 유권자는 SNS 활동을 통해서나 개별적으로는 후보 지지 발언을 할 수 있다. 다만, 대중을 상대로 연단에서 공개 지지연설은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개인적인 선거운동도 두 개 학급을 연속으로 다니면서 하면 법 위반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법을 위반할 수 있다. 다른 학생이 이를 고발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투표권 하나 얻었다가 졸지에 이력서에 빨간 줄이 그어질 수 있다. 교사들도 위험하기는 매한가지다. 공무원의 중립을 요구한 공직선거법에 따라 국공립 교원의 후보 지지 활동은 당연히 금지된다. 그런데 사립학교 교원들은 애매하다.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떤 것은 금지되는지를 구체적 상황에서 매번 따져봐야 한다.

더 답답한 것은 교내 모의선거 교육을 둘러싼 선관위와 서울시교육청의 논쟁이다. 당초 양쪽 말을 들어보면 두 기관의 입장이 정면충돌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교육청 관계자는 최근 “현행법을 위반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민주시민 교육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했다. 초·중·고교 등 40개 학교에서 실시해온 교육을 계속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정치적인 중립을 지킨다는 원칙과 입장은 확고했다. 조 교육감이 전교조 교사들을 동원해 교실을 정치판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주장은 과도한 의심이라고 판단됐다. 양측의 취지와 입장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충분히 조율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선관위는 6일 전체회의를 열어 시교육청이 주관해 교사가 개입하는 모의투표 교육을 원천적으로 불허했다. 고3 교실이 과도하게 정치화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시민교육을 강조하면서 정작 필요한 고3생들은 물론 투표권이 없는 학생들까지 모두 배제하는 것은 모순이다. 중앙선관위는 그동안 교내 모의투표 교육에 대한 3차례의 회신에서 “교육청이 직접 하지 않거나, 투표권이 없는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가능하다”고 해왔다. 이날 불허 조치는 그동안 견지해온 방침에도 어긋난다. 고3생들은 그냥 공부만 하다가 투표장으로 나가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호별 방문에 대한 해석도 이해하기 어렵다. 교실 한 곳에 이어 운동장에서 후보 지지 발언을 하면 호별 방문이 아니고, 연속으로 두 교실을 방문하면 호별 방문이라고 한 것은 누가 봐도 어색하다. 이런 식이라면 화장실이나 실험실을 찾아다니며 운동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런 일들이 빚어진 것은 준비할 틈도 주지 않은 채 18세 투표권을 부여한 정치권 탓이 크다. 특히 자유한국당 등 보수파들은 투표연령 인하를 끝까지 반대만 해서 이를 논의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이제 와서 고3생들의 정치화가 우려된다며 시민교육 자체에 제동을 거는 것은 후안무치한 일이다. 일본은 정치권과 정부가 3년에 걸쳐 차근히 준비한 뒤 18세 선거권을 시행했다. 선관위는 지난달 국회에 18세 투표연령 인하에 따른 법률상의 허점들을 보완해달라고 요청했다. 학생들이 범법자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정치권은 2월 국회에서 이 문제를 해소해주어야 한다.

선관위가 당초 서울시교육청의 교내 모의투표에 난색을 표한 이유는 실제 투표용지와 흡사한 모형을 사용해 법을 어길 것을 염려한 탓이다. 하지만 법에 저촉하지 않고 모의투표를 진행할 방법은 있다. 가상의 정당 이름을 쓰고, 정당이나 후보자 기호도 실제 선거에서 사용하는 1, 2, 3 대신 가, 나, 다를 쓰면 된다. 모의 투표 후 개표를 하지 않거나 그 결과를 선거 후 공개하는 방안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모의투표에 대한 질의를 하기도 전에 중앙선관위가 불허 결정을 내린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자칫 선관위가 투표 관리만 염려해 18세 선거권의 취지를 훼손했다는 말을 듣지 않을까 우려된다. 선관위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젠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 촛불시민들의 의식 수준과 역량을 믿어도 되지 않을까.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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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버그가 2020년 1월 2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제50차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서 패널 세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이 6일 대기환경보전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AVK) 법인과 전직 임직원들에게 각각 벌금 260억원과 징역 1~2년 및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 기준치를 초과한 질소산화물(NOx)을 배출하는 경유차 12만대를 들여와 이 중 상당량을 판매한 혐의다. 지은 죄에 비해 벌금의 규모나 형량이 가벼운 것은 아쉽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박모 전 사장 등은 법정구속을 면했고, 독일로 도피한 요하네스 타머 전 총괄사장은 선고가 연기됐다. 

AVK의 행위는 의도적 조작에 의한 환경범죄라는 점에서 그 죄가 무겁다. 경유차가 배출하는 질소산화물은 인체에 치명적이다. 폐암 등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인 일산화질소 등을 내뿜는다. 한국은 질소산화물을 유럽 배출가스 허용기준(유로)으로 관리한다. 승용차의 경우 2015년 9월 이전까지는 유로5(0.18g/㎞)를, 이후부터는 유로6(0.08g/㎞)를 적용해왔다. 그런데 AVK 배출가스 조작차량은 주행 시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유로5 기준치보다 10배 가까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민을 상대로 ‘가스 테러’를 저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AVK는 이를 알고도 숨겼다. 재판부는 박 전 사장 등에 대해 “관계 법령을 충분히 인식하고도 준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검사 시에는 정상 작동시키고 실제 주행 시에는 차량에 부담을 주지 않는 수준으로 조작한 것이다. 주행 시 저감장치가 정상 작동하면 연비·출력 등 성능이 떨어지는 점을 막아보겠다는 것인데, 결국 돈벌이를 위해 대기오염에 눈감은 것이다. 재판부도 “피고인들은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에만 집중했다”고 질타했다. 정부의 책임 또한 작지 않다. 경유차는 2400만대에 이르는 등록차량의 42%에 달하지만, 소형차까지 포함한 배출가스 관리제도가 본격 시행된 것은 불과 2년여 전이다. 환경 위반 처벌규정은 헐겁기 짝이 없고, 인증검사는 주로 서면으로 진행해왔다.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지난해 유엔 연설에서 “대멸종의 시작점에 서 있는 당신들은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동화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며 “이를 이해하고도 행동하지 않는다면 ‘악마’나 다름없다”고 했다. 법원 판결을 계기로 정부와 기업은 ‘지구 오염에 눈감은 악마’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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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인한 불안감이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피해가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보다 클 것이란 분석이 많다. 다중시설을 찾는 발길이 뚝 끊기고, 각종 모임이 취소되는 등 일상생활도 확 달라졌다. 보건 당국이 감염병과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대다수 시민들도 개인보다 공동체의 이익과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2월 7일 (출처:경향신문DB)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는 데 가장 절실한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과 정치권의 초당적 대응이다. 한데 누구보다 시민의 불안을 잠재우는 일에 앞장서야 할 정치권이 위기에 편승해 국민을 편 가르고, 정부 비판에 활용할 수 있으면 불안과 공포를 가져올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중국에 마스크 300만개를 보내는 게 합당하냐”고 했다. 민경욱 의원은 “4+1 협의체에서 취약층 마스크 지원 예산을 밀실에서 삭감했다”고 주장했다. 

모두 가짜뉴스다. 중국에 지원한 마스크는 중국 유학총교우회 등에서 물품을 지원하고 정부는 이를 우한으로 긴급 공수하도록 지원한 게 전부다. 그렇게 보낸 마스크도 10여만개이다. 저소득층 마스크 보급 예산은 정부가 지난해 9월 미세먼지 대책의 하나로 574억원을 편성했으나 전액 삭감을 주장했던 쪽은 한국당 의원들이었다. 그러다 정부가 부처들이 따로 구입하던 마스크를 일괄 구입하면 단가를 20% 낮출 수 있다고 수정안(460억원)을 제시해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정부에 철저한 대응을 주문하고 부실한 점이 있으면 비판하는 건 제1야당으로서 당연히 할 일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대응책 주문’보다는 정치 공세를 통한 반사이익 얻기에 몰두한 양상이다. 야당이 지금처럼 정치적 공세만 되풀이한다면 시민의 불안과 분노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혹시 신종 코로나를 문재인 정부 탓으로 돌려 총선 표를 얻을 계산이라면 유권자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잘한 게 없다. 정부의 늑장대응과 부처 간 혼선 등을 뻔히 보면서도 “우리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있다”고 한 건 지나치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달린 사안인 만큼 더 강력하고 엄중한 정책을 정부에 요구하는 게 여당의 역할이지 않겠나.

여야는 2월 임시국회를 열기로 합의했지만, 실질적인 대안과 행동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초당적 국회 특위 구성과 검역법 개정 처리는 당장 시급하다. 추경 예산 편성도 검토해야 한다. 정치권은 시민의 안전보다 우선시되는 정치는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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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캐릭터 뺏겼어! 엄마랑 비슷한 사람이 ‘엄마’로 나오는 유튜브 있어.” “뭔데?”

얘기를 듣고 찾아보니 채널 ‘시골가족’이었다. 불과 며칠 전에 알게 됐는데 보는 재미가 짭짤하다. 밥상에 둘러앉아 가족들이 밥을 먹는 것이 전부인 평범한 영상이다. 무뚝뚝해 보이는 아버지와 엄마, 그 사이에 다정한 미소를 띠며 얘기하는 자녀가 번갈아 등장한다. 

온 가족이 한꺼번에 나올 때는 드물고 어느 날은 아버지와 두 딸만, 엄마와 딸 그리고 아들이 나오는 식이다. 굳이 장르를 구별하자면 가족 먹방이다. 하지만 이 채널을 보고 있으면 왠지 편안하고 따뜻해진다. 덩달아 느긋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혼자 웃는다.

영상에서 보이는 아버지와 엄마는 과묵한 편이다. 원래 말수가 적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동영상 촬영이 부담되고 긴장된 때문일지 모른다. 딸이 “맛있냐”고 물으면 엄마는 어쩌다 “응” 하고 대답할 뿐 대체로 식사에 매우 집중한다. “음음~ 맛있어” 하며 좋아하는 딸 옆에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간혹 들을 수 있는 부모의 음성을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종종 등장하는 대용량 참기름병도 재밌다. 1.8ℓ 생수통에 담긴 참기름이 랜선을 타고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밥상에는 플라스틱 김치통 등 투박한 그릇들이 놓여 있다. 특별히 꾸미지 않은 옷차림새와 머리스타일, 방바닥에 놓인 이불, 빛바랜 벽지에 붙어 있는 스티커, 식사를 먼저 마치고 밥상 옆에 바로 눕는 아버지 모습 등이 자연스럽기만 하다.

가장 인상적인 영상은 ‘비빔밥, 미역국 먹방’ 편이다. 노란색 큰 양푼에 든 비빔밥을 다 같이 먹는 모습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나 봤을 법한 풍경이다. 미역국을 가져다주는 동생에게 “고마워” 인사를 잊지 않는 오빠, “용순아 빨리 와 맛있다” “엄마 국물 줄까” 서로를 챙기는 마음, 동생에게 “맛있다”고 칭찬하거나 “별거 아닌데 맛있네”라며 좋아하는 모습이 정겹다.

영화로 치면 초저예산 격인 ‘시골가족’은 영상마다 수십만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꾸미지 않은 순수함, 가족 간의 따뜻한 정, 작은 공간이 주는 친밀함, 때 묻지 않은 순박함, 좋아요와 구독을 강권하지 않는 태도 등 많다. 그중 밥상의 소구력은 대단하다. 밥상이라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에도 등장한다. 송강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꼬마와 함께 한강 매점 안에서 따뜻한 밥상을 차려 먹는다. 한입 가득 입을 벌려 흰쌀밥을 먹는 꼬마의 모습에서 안도감과 작은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에도 밥상이 자주 나온다. 비좁은 집에서 부대끼며 사는 할머니와 손녀까지 이들 대가족은 서로의 끼니를 챙기며 힘들고 보잘것없는 삶이지만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런데 두 영화 속 밥상을 가운데 둔 이들은 혈연이 아니다. 밥상은 혈연이 아닌 이들도 ‘식구(食口)’로 만들 만큼 강력한 마법을 지녔다. 

‘시골가족’ 영상마다 일기와 자기고백처럼 올라 있는 수많은 댓글에는 밥상을 향한 부러움이 넘쳐난다. “숟가락 들고 밥상에 끼고 싶다” “30만원짜리 킹크랩 먹방보다 이게 훨 침 흐른다” “요즘 시대 저렇게 나란히 앉아서 집밥 같이 먹는 가족이 몇이나 있을까” “반성하게 되네요” “울컥해서 눈물이 납니다”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풍요 속 빈곤을 살아가는 시대에 ‘시골가족’ 밥상은 무엇이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 잔잔하게 알려준다. 

영상 중에는 큰딸이 신상에 관해 밝힌 내용도 있다. 대학교 간호학과에 합격해 오는 3월이면 신입생이 되는 만큼 전처럼 자주 영상을 올리지 못할 것 같다는 사연이다. 가족 얼굴이 보고 싶을 때 꺼내 보려 휴대폰으로 촬영을 시작하게 됐다는 얘기도 담았다. 

유튜브 채널이 뜻밖에 큰 사랑을 받으면서 갖게 된 부담감도 솔직히 털어놨다. 처음에는 부모님께 촬영 기술을 알려드릴까 고민도 해봤지만 실제 힘들 것 같고, 따로 카메라를 살 만한 여건도 안되고, 또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전처럼 자주는 아니더라도 영상을 올리겠다며 감사 인사를 전한 그는 한마디를 남겼다.

“여러분들도 가족들과 좋은 추억 많이 만드세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소박한 밥상에 있다고 말이다. 부럽다면 그들처럼, 오늘 저녁밥상 어떨까.

<김희연 오피니언(소통)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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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정치 간 인적 이동은 뿌리 깊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제헌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국회의원 중 언론인 출신은 모두 377명이다. 제헌국회 20.5%를 시작으로 18대 국회까지 15% 안팎을 유지했다. 19대 국회에서 처음 한 자리 대인 8.7%로 떨어졌고 20대에도 같은 8.7%를 기록했다. 과거에 비해 비중이 줄었다지만, 일본(2%), 미국(2.8%), 프랑스(1.2%) 독일(3.9%) 영국(5.4%) 등에 비하면 여전히 높다. “언론의 높은 정치 병행성과 낮은 전문직주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분석된다(김세은, <한국 ‘폴리널리스트’의 특성과 변화>).

언론인의 권력지향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권부인 청와대행이다. 1961~1987년 언론에서 청와대로 직행한 언론인은 18명이다(김지운, <언론인의 권력지향사례에 대한 고찰>). 민주화 이후 언론인의 청와대 진출이 보다 노골화된다. 노태우~문재인 정부 21명의 청와대 국민소통수석(홍보수석·공보수석) 중 16명이 언론인 출신이다. 권력의 ‘감시견’(watch dog)이 ‘권력의 입’으로 변신하는 게 습속처럼 자리 잡은 셈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언론(인)과 권력의 유착이 극렬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최대의 언론인 출신 공보팀을 꾸렸고, 이들은 집권 후 정·관계에 진출했다. 청와대에만 언론인 출신이 17명에 달했다.

이렇게 현직 언론인이 하루아침에 권력에 줄을 대고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계속되자, 정치(policy)와 언론인(journalist)을 합친 ‘폴리널리스트’가 사회성을 획득하게 됐다. 최소한의 완충기간도 없이 현직 언론인이 곧장 권부로 줄달음치는 대열 앞에서, “저널리스트는 바깥에 있어야 한다”(미국 사회학자 마이클 셧슨)는 금언은 힘을 잃는다.

청와대 신임 대변인에 강민석 전 중앙일보 기자를 임명했다. 세 번째 언론인 출신 청와대 대변인이다. 이번에는 현직에서 청와대로 직행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현직 언론인의 청와대행에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권언 유착과 언론 윤리 등을 내세워 호되게 질타했다. ‘내로남불’이라고 해도 할 말 없게 됐다. “언론과 권력의 건강한 긴장 관계를 허물고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한다”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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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움직임이 세계 전역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바이러스 효과’는 세상을 잇고 있는 연결의 밀도와 강도를 잘 보여준다. 신종 코로나의 빠르고 광범위한 확산은 세계를 촘촘히 이어주는 항공교통 때문이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으려고 하늘길을 통제하니 당장 관광산업이 주력인 지역들로 불똥이 튄다. 중국 자동차 부품 공장이 휴업을 하니 중국산 부품을 사용하는 국내 자동차 공장이 멈춰 서고, 협력업체들도 덩달아 피해를 본다.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가동을 멈추는 사업장이 많아지면 국제 분업으로 이어진 산업 분야의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재난 상황에 필요한 기본 물품의 적절한 공급은 국가의 중요한 책무다. 신종 코로나 방역에 기본인 마스크는 전에는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바이러스가 확산되자 품귀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1918년 최대 1억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처럼, 훨씬 더 힘센 바이러스가 장기간 창궐하여 철저하고 장기적인 봉쇄와 차단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처음에는 지금처럼 마스크 같은 방역 물품이 중요하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식량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이다. 원인을 불문하고, 장기간의 극단적인 단절과 고립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먹을거리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평균 23%로, 평균 자급률이 101.5%에 달하는 세계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식량자급률은 자급률 100%에 이르는 쌀을 포함해도 46.7%에 불과하다. 식량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재난 대비는 ‘0’의 수준에 가깝다.  

항공교통처럼 차단과 단절이 가능한 연결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기후가 그렇다. 모든 생명체는 기후 속에 있고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기후의 변화는 세상의 모든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는 ‘되먹임’을 통해 자신의 영향을 증폭하고 변형한다. 기후가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을 지나 ‘붕괴’되기 시작하면, 붕괴의 결과를 어느 한 지역 내에 차단할 대책은 전혀 없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기후가 ‘이탈’하기 전에 탄소 배출을 가능한 한 속히 줄여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로 막는 것이다. 바다도 막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일본이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방사성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는 것은 전 세계에 그 오염수를 뿌리는 것이다. 방사성 물질은 쉽게 없어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한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물론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 사태를 종식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국내만의 사태 종결은 실제로는 의미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진원지 중국에서 감염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고도의 방역 태세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웃이 낫지 않았으면 우리도 나은 것이 아니다. 국내에 필요한 안전 조치에 전력을 다하되, 외국 상황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협력해야 하는 연유다. 세상에 완벽하게 자립적인 존재는 없다. 살기 위해 외부의 관계를 차단한다고 해도, 더 깊은 차원에서 우리는 외부에 있는 타자가 필요하다, 살기 위해. 타자를 혐오하고 배제하는 태도는 우리 자신의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의 문제는 결국 나의 문제고, 그래서 우리의 문제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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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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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 법대 합격자 A, 변희수 하사 두 분께 연대의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공개 커밍아웃하고 고향에서 활동하는 바이섹슈얼,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입니다.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이자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의 퀴어인권분과에서도 활동 중입니다. 원래 직업은 음악교사입니다만, 비정규직이라 커밍아웃과 활동 후에는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아 현직은 아닙니다.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고 직장생활이나 학교생활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까운 몇 사람에게만 커밍아웃하는 것도 참 많은 각오가 필요하잖아요. 저는 커밍아웃 전에는 화장을 했다는 이유로 사직 요구를 받았고, 커밍아웃 후 간혹 시간강사로 근무할 때에는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혐오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 _ 경향신문 자료사진

변희수 하사께서 군인권센터 기자회견장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이름을 밝히며 기자회견문을 읽어내려갈 때 저는 너무 슬펐습니다. 신상을 공개적으로 밝힐 때 겪을 직접적 혐오를 무릅쓰고 공개 커밍아웃하는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얼마나 힘들지 알기 때문입니다. 

이후 숙대 합격자 A께서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변희수 하사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보냈을 때 감동이었습니다. 연대를 위해 용기를 내어 자신을 드러낸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요.

이에 여러 퀴어와 페미니스트 개인 및 단체들이 변희수님의 싸움에, 합격자 A님의 연대와 고백에 환영과 연대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부 분리주의 혐오자들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관련 보도가 경쟁하듯 나오면서 저는 걱정이 컸습니다. 숙대 입학 반대 목소리에 힘겨워하며 등록을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2017년 대선 후보들의 ‘동성애 동성혼 반대’라는 혐오에 공개 커밍아웃했고, 그 해부터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이후 각종 혐오를 마주해야 했고, 특히 동성애 혐오자들의 집단 민원에 제주시청이 굴복하면서 행정소송까지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승리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성중립 화장실 설립 제안을 하면서 온라인상에서 각종 혐오와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같은 집에 삽니다. 그런데 동네 어르신들이 저를 보시는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한 어르신은 제가 활동가가 된 후 저를 더 좋아하시게 되어 뵐 때마다 칭찬과 격려 혹은 걱정과 위로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밀양, 창원, 제주에서 만난 옛 제자들과 밀양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 교직원들로부터 응원의 메시지를 받고 있습니다. 제 친구와 선후배도 저를 존중하고 응원합니다.

혐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길 겁니다. 우리가 옳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는 함께 살아갈 존재이자 서로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합격자 A님, 변희수 하사님 함께 살아갑시다. 저는 작년에 두 친구를 이 세상에서 떠나보내야 했고, 또 다른 여러 친구들을 보낼 뻔했습니다. 그중 한 친구가 “성소수자와 장애인들이 취업을 못하지 않게” 노력해달라 했습니다. 그 소원을 이루려면, 그리고 또 다른 우리의 친구들도 지키려면 많은 분이 일상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두 분도 지키고 싶습니다.

두 분은 저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희망입니다. 많은 이들이 연대하고 있습니다. 꼭 자신이 살고자 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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