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에서 한 시간쯤 버스를 타고 낮은 산 아래 이어진 에움길을 돌아가야 닿는 중학교는 평화로워 보였다. 전교생이 20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학교는 봄이면 벚꽃잎이 날리고, 여름이면 학교 뒷산을 아까시꽃이 하얗게 뒤덮는다고 했다. 학생들이 서둘러 교문을 빠져나간 늦은 오후 학교 숙직실에 모인 교사들은 커피를 마시며 학교가 참 예쁘다고 얘기하다 웃으며 말했다. 학교는 학생들만 없으면 정말 좋다고. 직장인들이 할 법한 말이라  한때 직장인이었던 나도 같이 웃었다. 

우연히 만난 이는 청춘을 교단에서 보낸 뒤 마흔 살 넘어 명예퇴직했다면서 아침마다 지옥에 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학교를 그만둔 뒤로 한동안 그 학교 앞을 지나가는 것조차 싫어서 먼 길을 돌아갔어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작은 학교에서 만난 교사들이 떠올랐다. 학생 없는 학교, 꽃이 피고 지고 따뜻한 햇볕만 가득한 학교, 그들이 그저 웃자고 한 말만은 아닐 수도 있었다.

실제로 명예퇴직을 하는 교사의 수가 점점 늘고, 그들은 대개 교권이 추락해 교사로서 보람을 느끼기 어려워 교단을 떠난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마치 서비스센터에 항의하는 고객처럼 군다는,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를 깨우면 들은 체도 않는다는, 학부모는 학원 수업이 늦게 끝나니 자게 놔두라고 한다는 교사들의 흔한 하소연을 생각하면 떠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교사도 떠나고 싶은 학교를 학생은 다니고 싶을까? 해마다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 수가 3만여명, 학교 밖 청소년은 40여만명이나 된다. 그들은 대개 학교에 다니는 의미가 없어 그만둔다고 한다. 교사도 학생도 떠나고 싶은 학교를 걱정하는 이들은 많으니 접어두고.

나는 보람이 없어서, 의미가 없어서 학교 밖으로 나온 이들을 걱정하며, 그들이 함께 ‘탈학교 공동체’를 만들어 머리를 맞대고 보람과 의미를 찾으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나 한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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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서울시교육청 등이 추진해온 초·중·고등학생 대상 모의선거를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불허했다. 선관위가 밝힌 불가 사유의 핵심은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의 모의선거 결과는 총선 다음날인 16일에 공개된다. 공개도 안된 모의투표 결과가 실제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데다 청소년 참정권 취지 중 하나인 민주시민교육을 훼손하는 처사다. 교사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아이들을 대상으로 편협하고 정치적인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인데, 선관위는 대한민국 교사들이 그렇게 경우 없고 형편없는 사람들로 보이는가?

시대적 흐름에 따라 53만여명이나 되는 청소년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관위는 청소년의 참정권 교육을 확대하고 선거에 임하는 방법 등을 담은 모의투표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오히려 앞장서서 제시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도리어 18세 유권자뿐만 아니라 아예 초등학생까지 포함한 청소년 전부에게 모의투표의 길을 불허했으니, 이는 세계사적 흐름을 도외시하는 시대착오적 오판이다. 

미국의 경우 ‘미국투표지원법(HAVA)’에 따라 청소년들의 모의선거를 지원하고 있다. 영국, 캐나다, 독일, 스웨덴 및 여타 다른 선진국에서도 청소년들이 실제 출마 후보들을 두고 그 공약 등을 분석해 보면서 모의선거를 해볼 수 있도록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웃나라 일본도 선관위가 모의선거를 돕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선관위는 모의선거를 교육이 아니라 정치행위로 보는 듯하다. 

교과서 안에만 머무는 죽은 교육이 아니라 청소년이 직접 투표를 체험하는 모의선거는 그 어떤 교육방법보다 효과가 높은 민주주의 교육이다. 선거에 무관심한 아이들의 관심을 유발함으로써 투표율을 높이고 성숙한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의미도 크다. 

그런데 정작 선거권은 주고 선거교육은 하지 말라니, 투표는 하되 눈 막고 귀 막고 투표하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선관위는 선거를 더욱 성숙하게 하고 시민의 참여와 권리 행사를 향상시켜야 할 능동적 의무를 망각하고 오로지 제재와 관리적 입장에서 권위주의적 사고에 빠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게다가 선관위는 지난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나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청소년을 대상으로 모의선거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도 자신들의 해석 여하에 따라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안된다는 과도한 불안과 지레짐작성 판단으로 유권자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 기회를 스스로 버리고 있다. 

일각에서 학교와 교실이 정치판으로 전락해 혼란을 야기할 거라는 근거 없는 우려를 쏟아내지만 청소년들은 되려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으로 깨끗한 한 표를 행사해 바른 일꾼을 선출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미성숙한 존재는 청소년이 아니라 어른들일지 모른다.

<이영일 | 한국청소년정책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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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1950년 2월9일 미국 공화당 여성당원대회에서 매카시가 서류뭉치를 꺼내 들고 “국무부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 205인 명단이 여기 있다”고 소리쳤다. 매카시즘 시작일부터 70주년이 되기 딱 나흘 전인 지난 5일, 그 광풍에 영화로 맞섰던 커크 더글러스가 103세로 숨졌다. 

<스파르타쿠스>는 더글러스가 제작과 주연을 맡아 매카시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영화인들을 과감히 기용한 영화다. 명장면은 노예 반란을 진압한 귀족 크라수스가 포로들에게 “스파르타쿠스가 누군지 지목하면 살려주겠다”고 말하자 저마다 “내가 스파르타쿠스다”라며 일어서는 대목이다. 역사와 다른 시나리오를 쓴 돌턴 트럼보는 “할리우드에서 매카시 광풍에 반대하는 이들의 연대감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매카시즘을 걷어낸 최고 공로자로는 그 허구성을 폭로한 에드워드 머로 CBS 기자와 커크 더글러스를 꼽고 싶다. 미국에서는 매카시즘이 사라졌고 유럽처럼 공산당까지 허용해 당원이 5000명쯤 된다.

북한과 대치하는 한 남한이 공산당을 받아들일 조짐은 없는데도, 남북교류와 개혁을 말하면 ‘좌빨’로 낙인찍는 한국판 매카시즘의 확산은 심각한 문제다. 광화문에서는 토요일마다 ‘코로나19’ 확산 위험을 무릅쓰고 집회가 열려 “주사파가 정부를 장악했다”며 “공산화를 막아야 한다”고 선동한다. 지난 8일에는 초등학생이 “전광훈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나라가 공산화되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연설했다. 황교안 대표는 “공수처가 들어오면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진다”며 민주적 절차를 거쳐 통과한 법도 비난한다. 

매카시즘이 먹히는 이유는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공포마케팅은 원래 보험산업과 의약품산업에서 악용하는 수법이어서 관련 광고는 까다롭게 규제된다. 그런 공포마케팅이 경제와 정치를 넘어 언론에도 넘실대는 곳이 한국 사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수감되면 한국 경제가 망한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도 공포마케팅이다. 

선거를 앞두고 코로나19가 발생하자, 보수언론은 공포심과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방역참사’ ‘우왕좌왕’ 등으로 수없이 정부를 비난했다. ‘메르스 때 당하고 초기대응 또 실패…답안 보고도 시험 망친 셈’(조선일보), “천안 간다더니 우리가 호구냐”(한국경제) 등은 극히 일부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일본 크루즈선 봉쇄를 칭찬했다가 누리꾼들의 ‘성지 글’이 됐다. ‘보수세력이 선거에 이겨야 한다’는 정파성에 매몰돼 “4·15는 ‘오기 경제’ 심판의 날”(문화일보)처럼 선거법을 우습게 만드는 보도가 쏟아진다. 

외국인 혐오나 공포증을 부추기는 보도도 많다. 조선·문화일보는 ‘우한 폐렴’이란 병명을 고집스레 쓴다. 정부가 중국에 굴복한 거라서 바꿀 수 없다나. 병명에 지역명을 붙이면 주민들이 억울하지 않을까? 1차대전 와중에 발생한 ‘스페인독감’은 미국인이 첫 환자였는데 그 이름이 붙었다. 세계에서 수천만명이 죽었는데 우리나라도 ‘무오년 독감’이라 해서 14만명이 희생됐다. 세계보건기구가 뒤늦게 코로나19로 명명한 것은 우리식 작명의 지혜를 터득한 건가? 

14세기 유럽에서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는 인구 3분의 1이 죽었는데, 공포에 질린 이들이 성당에 모여 기도에 열중하는 바람에 전염병이 더 빨리 확산되기도 했다. 페스트는 중세 암흑기 봉건제도와 교회의 속박 속에서 인본주의와 자유가 위축됐을 때 기승을 부렸다. 스페인독감도 각국이 전쟁에 휩쓸려 국민을 돌볼 수 없을 때 크게 번졌다. 

통제사회는 질병을 잘 다스릴 것 같지만 정반대다. 인권 존중과 언론 자유가 뒷전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메르스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스와 코로나19가 배금주의까지 만연한 중국에서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한국에서도 비교하긴 이르지만 초기 대응만 놓고 보면, 권위주의에서 탈피하고 정보 유통이 잘된 노무현·문재인 정권이 사스와 코로나19를 잘 관리했고, 박근혜 정권 때 메르스 희생자가 많았다. 

우리 사회에는 공포심을 조장해 이익을 편취하는 세력이 너무 많다. 봉준호 감독 등 수많은 영화인, 예술인, 작가, 언론인은 전 정권에서 ‘좌빨’로 분류돼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제 그들의 책무는 지구상에서 한국에만 출몰하는, 70년 된 ‘매카시즘의 좀비들’을 영원히 관 속에 집어넣는 일이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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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 역시 국민이 체감하는 불안감이 커지고 회복세에 접어들던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에는 완치돼 퇴원하는 환자도 이어지고 있지만, 외국을 다녀온 적이 없고 국내 감염자와의 접촉도 확인되지 않은 확진환자까지 발생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의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것이어서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의료기관에서 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일선 의료기관이나 지자체 등의 초동대처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사태 이후에는 좀 더 세밀하고 명확한 판단 아래 감염병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겠지만, 코로나19 초기부터 느낀 점은 DUR(Drug Utilization Review) 시스템의 제도화이다.

DUR은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로 의·약사가 의약품을 처방·조제할 때 함께 먹으면 안되는 약, 어린이·임산부가 먹으면 안되는 약 등 의약품의 안전성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 부적절한 약물 사용을 사전에 점검·예방하는 것이다.

2010년 12월부터 전국 요양기관을 대상으로 DUR을 확대하고 실시간 무중단 점검서비스를 실시해 의사와 약사가 보다 안전하고 질 높은 처방과 조제를 할 수 있도록 해 왔다. 이 시스템을 활용해 2019년 기준 4785만건의 부적절한 의약품 사용을 예방하고 약품비 797억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DUR 시스템이 빛을 발한 것은 2015년 5월 전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메르스 퇴치에 중추적 역할을 하면서부터다. 전국 의료기관과 약국의 실시간 정보교류가 가능한 인프라를 갖춘 DUR 시스템으로 메르스 환자의 접촉자를 포함한 관리 대상자 약 35만명의 관련 정보를 의료기관에 실시간 제공한 것이다.

이후 질병관리본부와 협업체계를 갖추고 시스템(ITS·DUR)을 구축해 메르스, 에볼라, 라사열, 페스트 등 감염병 관련 국가를 방문한 해외여행 이력 정보를 실시간으로 의료기관과 약국에 제공하여 의심환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초기부터 DUR은 감염병 예방의 수문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43만건의 중국인 입국자 및 확진자 정보를 제공하는 등 전파 확산 예방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2월11일부터는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 8개국 입국자 정보를 추가로 제공하고 있으며 추후 제공국가를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그러나 의료기관의 DUR 의무사용은 제도화돼 있지 않다. 이로 인해 이번 사태 초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전국 병원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DUR 활용을 당부하고, 의료기관에서도 부랴부랴 DUR을 점검하는 등 무엇보다 중요한 초기 대처에서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다. DUR의 의무사용 법제화로 적절한 의약품 사용을 유도하고, 감염병 관리 정보 제공으로 국민 안전을 지켜나가기를 바란다.

<허윤정 | 국회의원·전 심평원 심사평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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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데 중요한 제도 가운데 하나는 언론이다. 그 까닭은 언론이 시민들의 ‘계몽적 이해’를 가능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 있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다음의 다섯 가지 기준을 확보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효과적 참여, 투표의 평등, 계몽적 이해의 확보, 의제 설정에 대한 최종적 통제의 행사, 성인들의 수용’이 그것이다. 여기서 계몽적 이해란 구성원들이 정책 대안과 이 대안이 가져올 결과들을 이해할 수 있는 동등하고 효과적인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계몽적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언론, 곧 공론장(public sphere)이다.

공론장에 대한 선구적 담론을 남긴 이는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다. 하버마스는 공론장을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서 여론이 형성되는 영역이라 정의한다. 이 공론장 대표 격이 신문과 방송으로 이뤄진 언론이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서구 근대 민주주의는 사회갈등들이 공론장에서 진행되는 토론과 이 토론에 기반한 합의를 통해 해결되는 정치체제다. 공론장은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두 힘인 권력과 자본을 감시·비판하며, 대안을 모색한다. 하버마스가 공론장을 민주주의의 핵심 거점이자 보루로 파악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회학 개론서적인 내용을 내가 꺼낸 것은 21세기에 들어와 공론장이 처한 상황 때문이다. 최근 이 상황을 가장 적절히 보여주는 개념이 ‘포스트트루스(post-truth)’다. 포스트트루스란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뜻한다. 우리말로 ‘탈진실’이라고 옮겨진다. 이 포스트트루스가 급부상한 데는 가짜뉴스의 범람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끊임없이 생산되는 가짜뉴스는 개인적 감정과 신념에 영향을 미쳐 진실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결국 공론장을 왜곡시킨다.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는 포스트트루스가 등장한 배경으로 다섯 가지를 꼽았다. 사회심리학적 인지 편향, 전통 미디어의 쇠퇴, 소셜미디어의 출현, 과학부인주의의 등장,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은 ‘확증 편향’ 등 인지 편향과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의 힘이다. 확증 편향이란 새로운 사실을 접했을 때 자신이 갖고 있는 원래의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을 뜻한다. 가짜뉴스는 이 확증 편향을 타고 유포된다. 또, 소셜미디어는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뉴스만을 주로 읽게 함으로써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게 한다. 뉴스 소비의 ‘사일로화’ 경향을 말한다.

포스트트루스를 내가 주목하는 까닭은 최근 민주주의가 처한 상황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근본적인 힘은 서로 다른 생각을 수용하는 다원주의와 토론을 통해 이 서로 다른 생각들의 합의를 추구하는 공론장에 있다. 그런데 오늘날 포퓰리즘의 분출과 포스트트루스의 등장이 이 다원주의와 공론장의 기반을 뒤흔들고 있다. 자신만이 진정한 국민이라 여기는 포퓰리즘이 반다원주의를 확산시킨다면, 포스트트루스는 너도 옳고 나도 옳고 우리 모두 옳다는 극단적 다원주의를 강화시킨다. 반다원주의적 경향과 극단적 다원주의적 경향 사이에서 민주주의는 적잖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하버마스는 “인터넷이 원심력을 만들어낸다”라는 말을 통해 21세기 공론장의 현주소를 진단한 바 있다. 공론장의 구심력이 아닌 원심력이, 진리의 단수성이 아닌 복수성이 더 힘을 발휘하는 포스트트루스 시대에 우리 인류는 이미 진입해 있다. 분명한 것은 포스트트루스 시대가 열렸다고 해서 가짜뉴스의 범람을 이대로 놓아둘 순 없다는 점이다. 매킨타이어가 지적하듯, 진실 문제를 모호하게 만들려는 시도에 의문을 제기해야 하고, 그 거짓 정보에 맞서 싸워야 한다. 가짜뉴스에 맞서는 제도개혁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내가 포스트트루스의 그늘을 강조하는 것은 2020년 올해가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뜻깊은 해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1960년 4·19혁명의 60주년,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40주년이 된다. 우리 민주주의는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등을 통해 꾸준히 발전해 왔지만, 최근 이 민주주의가 처한 현재와 그 미래가 밝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여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포스트트루스의 등장이다. 민주주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건강한 공론장을 위한 생산적인 토론이 활성화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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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이 직접 타는 전용기는 2대가 있다. 해외 순방 때 쓰는 공군1호기는 대통령이 탑승하면 ‘KAF(Korea Airforce) 001’이라는 고유의 콜사인을 관제탑에 보내고 이륙한다. 별칭 ‘코드원’이 붙은 이 전용기는 대한항공에서 보잉747-400 대형 기종(2001년식)을 2010년부터 장기 임차했다. 1985년 먼저 도입된 공군2호기는 대통령이 국내 이동 때 종종 타고, 국무총리나 대통령 특사의 해외 방문 때 주로 쓰이고 있다. 2018년 3월 대북특사단이 이 전용기로 방북했고, 그해 4·27 남북정상회담 후 백두산 방문 때는 삼지연공항의 협소함 때문인지 1호기는 평양순안국제공항에 서 있고 문재인 대통령도 상대적으로 작은 2호기를 이용했다. 흔히 ‘하늘 위 청와대’로 불리는 전용기는 성남 서울공항 격납고에 있는 공군1·2호기인 셈이다.

대통령 전용기는 2대 더 있다. 공군3호기는 1990년 인도네시아에서 도입한 CN-235 수송기를 개조한 정부 전용기다. 기내 양옆에 마주 보게 배치된 좌석을 민항기처럼 정면을 볼 수 있게 고쳐 16명까지 탑승할 수 있다. 대통령은 이용하지 않고 주요 수행원이 타거나 대통령 이동 시 예비기로 활용돼 대통령 전용기로 통칭하고 있다. 영문명칭(VCN-235) 앞에 붙은 ‘V’에는 귀빈용(VIP)이란 뜻이 담겼다. 최대 순항거리 3500㎞인 전용기는 일본까지도 운항할 수 있다. 공군4호기는 없고, 역시 CN-235 수송기를 개조한 공군5호기는 3호기보다 좀 더 많은 22명이 탈 수 있다.

대통령 전용기에 시민들만 타는 일은 극히 드물다. 지난해 4월 카자흐스탄에 묻혀 있던 계봉우·황운정 애국지사 유해가 공군2호기로 운구돼 명예롭게 ‘귀국’했고, 2018년 5월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한 남측 기자단이 공군5호기로 방북했었다. 의미 있는 기록이 18일 더해졌다.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의 한국인 탑승객 4명과 일본인 배우자를 태워오기 위해 의사·간호사를 태운 공군3호기가 날아갔다. 조선시대로 치면 어가(御駕)를 보낸 격이다. 보름째 확진자 454명이 나온 공포의 배에서 맘고생한 그들로선 조국의 의미와 고마움을 느끼는 귀국길이 될 듯싶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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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보다는 인공지능(AI)에 가까운 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셜록 홈스. 최고의 두뇌와 달리 정서적 공감 능력은 제로다. 잔혹한 범죄 현장에서도 동요는커녕 감정은 문제 해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사건은 복잡할수록 흥미로운 게임일 뿐이다. 스스로 소시오패스 성향임을 인정은 하지만 다행히 인지적 공감능력은 있다. 일본 추리물의 대표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탐정 갈릴레오도 비슷하다. 괴짜 천재 물리학자이기도 한 그는 비이성적인 것을 극히 싫어하는 인물이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도무지 논리가 통하지 않는 존재여서이다. 

소설, 드라마에서나 흥미롭고 매력적일 뿐, 현실에서 만나면 눈치도 인간미도 없어 꽤나 불편할 듯한 캐릭터들. 기질에 따라 범죄자거나 그 대척점의 탐정 정도로 이해되던 유형들이 최근 들어 다양하게 변형되며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상당한 마니아층을 확보했던 <비밀의 숲> 주인공은 수술이 잘못되어 공감능력을 상실한 검사다. 정서적인 흔들림이 없다 보니 이성은 더욱 날카롭고 어설픈 관계 논리나 무리 의식에 타협하지 않아 조직의 골칫거리다. 지난주 종영한 <스토브리그>의 주인공 역시 트라우마로 감정이 결빙된 초이성형 리더다. 아무에게도 무례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든 할 말은 한다. 당신의 믿음이 뭐냐는 질문에, “믿음으로 일하는 거 아닙니다. 각자 자기 일 잘하면 됩니다”라고 건조하게 답하는 사람이다. 새로 시작한 <이태원 클라쓰>에는 IQ 162의 소시오패스 소녀가 등장해 자기 욕구에 충실한 거침없고 ‘똘끼’충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삭막해져 가는 세상에 더욱 따스한 인물은 고사하고 왜 갑자기 ‘공감 불능자’들인가를 살펴보면,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이 화두가 된 젊은층의 시대정서가 엿보인다. ‘김영란법’ 출발 시기, 스승에게 커피 한잔 사는 것이 문제가 되는 세상에 대한 우려와 비난 의견이 쇄도했다. 작은 정성조차 불법이 되는 삭막한 곳이 사람 사는 곳이겠냐고 했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분들은 모르는 것 같다. 5000원짜리 브랜드 커피를 사는 것이 어떤 학생에게는 사소한 일이지만,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하는 학생에게는 큰 부담일 수 있다는 것을. 

작은 정성에 대한 고마움이 남다른 관계와 의리를 만들고, 한솥밥의 예의가 불법과 불공정의 시작점이 된다. 공감과 예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지만, 반대로 인간을 비인간으로 만드는 부패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lt;이태원 클라쓰&gt;의 주인공 청년은 인맥이 엮이자 좀 봐주겠다는 형사에게 말한다. “법대로 하시라. 항상 모든 것은 이렇게 사소하게 시작된다”고. 최근 등장하는 문제적 주인공들은 두려움 없이 과도한 관계망에 선을 긋고, 망설임 없이 권력에 대항하며 대리만족과 쾌감을 선물한다. 그들의 공감 불능은 여전히 권위와 연고집단 온정주의에 갇힌 낡은 세상에 도전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 가면으로 보인다.

2012년 독일 대통령이던 크리스티안 불프가 취임 2년 만에 사퇴했다. 지위를 이용한 부당 이득으로 인한 여론 악화 때문이다. 휴가 때 친구의 도움으로 호텔 객실을 업그레이드했고, 집을 짓기 위해 일반인 대출 금리보다 1%포인트 낮은 특혜 대출을 받았고, 자동차 판매원이 불프의 아들 생일선물로 장난감 차를 선물했다고 한다. 실소할 내용이지만, 그가 누구든 내용이 크든 작든 단순 명쾌한 원칙의 준수가 세계 최강국 독일의 힘이 아닌가 싶다. 

요즘 청년세대는 버스 줄이 너무 길어 뒷문을 열어주어도 줄을 깨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먼저 줄 선 이들과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이 점차 독일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뜨거운 정의의 언어가 아닌 차가운 투명성을 신뢰하는.

<박선화 마음탐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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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원이 파악되지 않은 코로나19 환자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18일 대구에 사는 61세 여성이 31번째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확진자는 해외여행 이력이 없으며 감염경로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29번째 환자(80대 남성) 역시 기존 확진자와 접촉한 이력이 확인되지 않는 등 감염경로가 불투명하다. 정부 방역체계 밖에서 환자가 발생하면서 코로나19 사태가 새로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31번째 확진자는 영남 지역의 첫 코로나19 환자다. 수도권에서 시작된 확진자 발생 지역이 호남, 충청에 이어 영남권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감염 지역이 확산되고, 감염경로가 미궁인 환자 발생이 이어지면서 코로나19가 지역사회 감염으로 번지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정부는 “명확한 감염원인을 파악 중”이라며 지역 감염으로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노출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코로나19 발생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역학적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은 환자들이 발생하고 있어 지역 감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건당국은 29·31번째 확진자의 정확한 이동경로를 파악해 접촉자 자가격리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게 시급하다. 또 이들 확진자가 이동한 지역에 대한 소독 등 방역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은 입국자 검역과 접촉자에 대한 자가격리 같은 봉쇄 전략에 치중해왔다. 그러나 감염원을 모르는 환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지역사회 감염을 차단할 수 있는 선제적인 방역이 필요하다. 보건당국은 엊그제 해외여행 이력이 없더라도 폐렴 증세가 있거나 의사가 진단 소견을 내면 코로나19 검사를 할 수 있도록 의료지원 시스템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 전국 요양병원 종사자 전수조사 등 코로나19 검역 폭을 넓히기로 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18일 보건소와 선별진료소만으로는 늘어날 검사대상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지역 의원 및 중소병원이 참여하는 민관협력체제 구성을 제안했다.

지난달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 발생 이후 정부의 대응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전파자를 모르는 지역 감염 조짐까지 보이고 있는 현실은 심상치 않다. 일단 지역사회로 확산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다. 정부는 ‘새로운 국면’에 걸맞은 새로운 방역 대책을 꼼꼼히 마련해야 한다. 지역 의료기관은 정부의 대책에 호응해 지역 감염 차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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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손으로 머리를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바른미래당이 18일 의원총회를 열고 비례대표 의원 9명을 제명했다. 바른미래당 현역 의원은 17명으로 이 중 13명이 비례대표다. 이들이 자기 손으로 자신들을 제명한 것은 그래야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자진 탈당할 경우 의원직을 상실한다. 제명된 의원들은 안철수 전 의원이 창당 준비 중인 ‘국민의당’과 엊그제 보수통합정당으로 출범한 ‘미래통합당’ 등으로 당적을 옮길 것이라고 한다. 이들을 맞이한 정당은 의석 수가 늘어나 정당보조금이나 선거 기호 배정 등에서 다른 군소정당에 비해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됐다.    

바른미래당은 안철수계 국민의당과 유승민계 바른정당이 통합해 만든 당이다. 두 당은 ‘합리적 중도’와 ‘개혁적 보수’의 결합을 표방하며 거대 양당체제에 맞서 제3의 대안정당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당은 이념과 노선, 정체성 등에서 지난 2년간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이 ‘한 지붕 두 가족’처럼 지내다 끝내 당 해체에 들어갔다. 그 와중에 비례대표 의원들은 ‘셀프 제명’으로 의원직을 유지한 채 제각각 살길을 찾아 정치판을 기웃거리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합리적인 중도·실용정치를 바라며 정당투표한 유권자들의 기대를 배신한 퇴행적 꼼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정당을 함께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모양새는 말만 정계 개편이고 통합일 뿐, 그야말로 이합집산이다. 앞서 자유한국당은 위성 정당을 백지화하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를 한 석이라도 더 확보할 목적으로 ‘미래한국당’ 창당을 강행했다. 몇몇 의원들은 한국당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뒤 미래한국당으로 옮겨가 이 당의 주가를 올리는 데 힘을 보탰다. 그도 모자라 한국당은 ‘5·18 망언’으로 물의를 빚은 비례대표 의원을 1년 만에 제명 처리하고 마치 파견이라도 보내듯 위성 정당 소속으로 발령냈다. 코미디 같은 이런 정치가 한두번도 아니고 일상적으로 이어지는 게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선거철만 되면 ‘떴다방’ 정당이 난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정당정치의 가치를 왜곡하고 비례대표의 취지를 훼손하는 작태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지는 건 유권자를 우습게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정치세력을 그대로 두는 것은 시민들의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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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현직 법관 7명이 재판 업무에 복귀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7일 내린 결정이다. 사법농단 사건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를 통한 판결조작, 특정 판사 사찰, 내부정보 유출 등 범죄혐의만 40개가 넘는 사법사상 최악의 ‘사법행정권 남용사건’이다. 그런데 이런 일에 연루된 법관들에게 ‘재판할 권리’를 되돌려준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 신뢰와,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할 국민의 권리를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대법원은 “형사판결이 확정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 있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3월 김 대법원장이 한 말과 배치된다. 당시 김 대법원장은 “재판업무를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국민들의 사법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사법연구’ 명령을 통해 이들을 재판업무에서 배제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들 법관을 둘러싼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으며 사법농단 혐의를 완전히 벗지 못했다. 

대법원은 이들에 대한 징계도 미적대고 있다. 지난해 5월 검찰로부터 판사 66명에 대한 비위 통보를 받았으나 “시효가 지났다”는 등의 이유로 징계청구는 10명에 그쳤고, 그마저도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1심 재판이 끝난 법관 4명에 대한 판결도 “위법한 행위는 있으나, 처벌할 수 없다” “비밀 유출은 있었으나 위법하지 않다”였다. 동료 재판부는 무죄 선고로, 대법원장은 한 말은 뒤집고 해야 할 일은 미루면서 사법농단 법관들을 지켜주고 있는 격이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니 “형사처벌도 어렵다면 법관 탄핵이라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지켜야 할 헌법 정신이다. 연루 법관들 역시 대법원 최종판결 전까지는 무죄로 봐야 한다. 이를 부정하는 국민은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은 ‘법의 수호자’인 법관들이 법을 농단한 사건이다. 조작된 판결 영향으로 쌍용자동차·KTX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까지 끊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은 역사마저 되돌리려 한 중범죄다. 이런 일을 벌인 ‘양승태 대법원’에 협력한 법관들에게 재판을 맡긴다면, 소송 당사자가 될 국민 어느 누가 그 결과에 수긍할 것인가. 김 대법원장은 이번 조치를 철회하기 바란다. 그것만이 그나마 남아 있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잃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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