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고향에 내려갔다가 은행에서 우연히 동창을 만났다. 동창은 은행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중학교 동창이니 마지막으로 본 지 20년도 더 된 셈이다. 한눈에 동창을 알아본 건 아니었다. 그것은 동창도 마찬가지였다. “이름이 특이해서 어, 했는데 얼굴을 보니 너더라.” 동창은 내 얼굴을, 나는 동창 얼굴을 보고 그때를 적극적으로 떠올렸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잖아.” 동창의 입에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그때가 소환되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 어떤 부분은 동창이 더욱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어릴 때 먹던 소시지가 더 맛있지 않아?” 저녁을 먹다가 형이 불쑥 물었다. 소시지를 문 채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출시되는 소시지가 더 맛있어야 할 텐데 이상해.” 우리 둘 다 길쭉한 분홍색 소시지를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 슈퍼에 갔는데 분홍색 소시지가 없는 거야. 당황했지.” 30년 전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마치 어제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했다. “그때여서 더 맛있었던 것 같아. 맛을 가늠하는 데 상황도 영향을 끼치니까.” 점심시간에 도시락 뚜껑을 열던 내 모습이 그려졌다. 웃고 있었다.

요새 ‘라떼는 말이야’라는 이름으로 무수한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서 라떼는 다름 아닌 ‘나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모두 한때가 있다.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만이 한때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른의 권위에 고개를 휙 돌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훈수에 응대하는 것이다. 어른이 시시로 불러내는 ‘왕년’이 지금의 ‘라떼’가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어릴 때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불러내는 것이 참 좋았다. 자꾸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때는 잊히게 마련이다. 끄집어내기를 그만두면 기억은 희미해진다.

독일의 영화감독 빔 벤더스가 찍고 쓴 사진 에세이 <한번은,>(이봄, 2015)에는 무수한 ‘한 번’이 등장한다. 빔 벤더스는 길 위에서 무수한 흔적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사진에 있어서 한 번이란, 정말로 오직 단 한 번을 의미한다”라는 문장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한번’이라고 붙여 쓰면 “지난 어느 때나 기회”를 의미하지만 ‘한 번’이라고 띄어 쓰면 횟수가 중요해진다. 그때가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때를 지금으로 불러낼 때마다 한번은 비로소 ‘한 번’이 된다. 희미해질 수도 있는 순간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삶은 이렇듯 한번 살아보는 것이 아니다. 딱 한 번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다. 누군가 내게 “글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었다. 우물쭈물하다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그분을 비롯해 글쓰기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글을 시작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저 ‘한번’에는 내가 여태 잊지 않은 공간, 심신에 새겨진 시간, 그 안에서 몸소 겪은 일이 다 들어 있다. 글을 써보면 알게 된다. 무수히 많은 일들 중 하나였던 ‘이런 일’이 지금의 나를 만든 특별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내가 보고 듣고 겪고 느낀 일이 나의 일상을, 나아가 나의 인생을 구성한다. 개중에 어떤 것은 추억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한때’를 호명하지 않는 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점점 희미해진다. 무수한 ‘한번’을 소환할 때 나는 좀 더 나다워진다. 이때 글쓰기는 나를 지키려는 안간힘이자 마침내 나를 지켜내는 작은 기적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은 이미 쓰고 있는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재수할 때 독서실에서 백지를 꺼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여년이 흐른 지금, 그 일은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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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웅 쏘카 대표(왼쪽)와 박재욱 VCNC 대표가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타다’를 통해 불법 콜택시 영업을 한 혐의를 받은 이 대표 등에 대해 이날 무죄를 선고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타다’는 합법이라는 1심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은 19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웅 쏘카 대표와 박재욱 VCNC 대표, 두 법인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타다는 모바일 앱으로 차량을 부르면 11인승 승합차와 운전기사가 함께 제공되는 렌터카 호출 서비스다. 검찰은 “타다가 법이 금지하는 운전자까지 알선, 사실상 콜택시로 운영되고 있다”며 이 대표 등을 기소했다. 재판부는 “타다는 ‘초단기 승합차 임대(렌트)’로 처벌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런 판결이 확정되면 타다는 현행법 안에서 합법적인 영업을 할 수 있게 된다. 관련 시장의 성장도 기대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택시업계는 “택시운송은 사라지게 됐다”며 반발했다.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상생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지혜가 요구된다.  

재판의 쟁점은 ‘자동차대여사업을 하면서 운전자까지 알선할 수 있는 것인가’였다. 검찰은 “여객자동차법은 렌터카의 경우 외국인·장애인 등이 아니면 운전자 알선을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타다 측은 법 시행령 예외조항(11~15인승 승합차 임차 시 운전자 알선 허용)을 들어 합법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용자가 앱을 통해 쏘카와 운전기사가 포함된 승합차 대여서비스 계약을 체결한 것은 계약자유의 원칙상 유효하다”며 타다 측 손을 들어줬다. 이어 “계약에 따른 타다 영업을 유상여객운송 금지대상으로 보는 것은 형벌 법규를 확장·유추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했다.

법원 판결에도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택시업계는 “타다의 유사 택시영업에 대해 면죄부를 줬다”며 총파업을 예고했다. 정부 역시 26만대인 택시운송 추가 확대를 바라지 않고 있다. 재판부는 “택시 등 모빌리티산업의 주체들이 정부와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의미 있는 출구전략으로 보인다”고 했다. 옳은 지적이다. 이재웅 대표도 “모든 참여자가 행복을 공유하는 생태계, 사회적 연대와 기여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함 없이 앞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상생안을 못 찾을 것도 없다. 타다와 같은 차량호출 서비스를 ‘플랫폼 운송사업’에 편입시킨 여객자동차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에 정부와 두 업계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담는다면 갈등을 치유하면서 난제도 풀어낼 수 있다. 국회도 입법 과정에서 적극 협조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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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시내의 한 쪽방촌 건물에서 ‘쪽빛마을추진단’ 조끼를 입은 거주민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 활동을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국민 안전뿐 아니라 민생 경제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 가게에 손님의 발길이 끊기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이들뿐 아니다. 경제·사회·문화 등 나라 모든 분야가 비상 상황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이들이 있다. 노숙인, 쪽방촌·생활시설 거주자 등 취약계층이다. 최근 무료 급식소와 진료소 등이 잇따라 휴업하면서 이들 취약계층의 생계와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역 인근 등 서울 시내 많은 무료 급식소·진료소가 코로나19의 확산을 우려해 문을 닫았다. 무료 급식소의 경우 서울의 3곳 가운데 2곳이 운영되지 않는다고 한다. 무료 급식소에서 식사를 해결해온 노숙인·독거노인들은 끼니를 거르거나 새로운 급식소를 찾아 전전하고 있다. 복지시설이나 장애시설에는 ‘외부인 출입자제’ 조치로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조차 끊어졌다. 대학이나 병원에서 운영하는 의료봉사도 취소되거나 무기연기되면서 취약계층의 위생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코로나19사태가 한 달을 맞으며 장기 국면에 돌입했다. 사회적 약자는 감염병 유행과 같은 위기에 가장 취약하다. 방역을 이유로 약자들을 건강과 생계 지원의 사각지대로 내몰아서는 안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도시락·마스크 등을 제공하고 있다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정부는 취약계층에 대한 예산과 인력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배려와 나눔의 공동체정신이다. 시민 각자가 나서 어려운 이웃이 있는지 살피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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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호복과 마스크를 착용한 의료진이 19일 오후 대구 삼덕동 경북대병원으로 이송된 코로나19 의심환자를 음압캐리어를 이용해 선별진료소로 옮기고 있다. 이날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코로나19 추가 확진자가 18명이나 발생했다. 대구 _ 이상훈 선임기자

19일 하루 만에 확진자가 급증하며 국내 코로나19사태가 최대 고비를 맞았다. 이 중 18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대구·경북은 지역 전체가 초비상 국면이다. 감염원을 알 수 없는 환자가 늘고,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이 짙어지면서, 본격적인 지역 확산 대비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역사회 감염이란 외부 유입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하다가 감염되는 것을 의미한다. 어디에서건 코로나19 감염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초기증상이 감기 등과 비슷해 혼동하기 쉬운 데다, 감염 가능성도 광범해진 만큼 보건당국과 지자체, 의료진, 개별 시민 등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론 극복할 수 없다. 사회 전체가 총력을 다해야만 이겨낼 수 있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19일 오후 11시 현재 코로나19 환자가 20명 추가 확진되며, 전체 감염자수는 51명으로 늘었다. 대구·경북에서 18명, 수원에서 확진된 20번째 환자의 초등학생 딸, 서울 성동구에서 70대 확진자 1명이 추가로 확인돼 입원치료 중이다. 20번 환자의 딸은 국내에서 처음 나온 미성년 확진자다. 이제까지 많아야 하루 3~4명이던 추가 확진자가 대폭 늘어난 것은 지난 18일 확진된 대구의 31번째 환자가 경각심 없이 종교시설 예배와 결혼식 참석 등 다중 이용시설에 드나든 탓이다. 이 환자는 의사의 코로나19 검사 권유를 2차례나 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셈이다. 

확진자 숫자가 급증하고 지역사회 감염이 현실화된 지금 확산 방지가 최대 숙제다. 방역당국이 밝힌 대로 입국자 검역과 접촉자 자가격리 등 ‘봉쇄 전략’을 추진하는 동시에 지역사회 감염 대비책 병행이라는 투트랙 정책을 가동해야 한다. 다만 한정된 인력과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방역당국과 의료현장이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활용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하는 것은 물론 병원규모별 역할 분담과 지자체들의 적극적인 공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아울러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이 찾는 병원에서의 감염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의료진과 구급대원들도 철저한 보호장구를 갖추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격리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1차 병원들에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내리고 정부는 긴급예산 투입 등으로 최선을 다해 지원해야 한다. 이와 관련, 정부는 20일 0시부터 해외여행력에 관계없이 의사가 코로나19를 의심할 경우 진단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확진자의 접촉자 격리해제 기준도 높였다.

지역사회 감염의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시민의 방역 태세가 그 무엇보다 절실하다. 손 씻기나 기침예절 준수 등 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은 기본이고, 병문안 등 불필요한 의료기관 방문을 자제해야 한다. 보건당국은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가급적 공공장소를 피해 집에서 휴식과 치료를 받으라고 권고했다. 의심증상이 있을 경우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339)나 선별진료소에 우선 문의한 후, 의료기관을 방문해 진료를 받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바이러스와 목숨을 건 ‘전쟁’을 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우리가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어김없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공격하고 있다.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지만, 완벽히 극복할 때까지 사회 전체가 긴장을 늦춰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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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골목에서 만났던 반도네온 연주자를 잊지 못한다. 탱고엔 반드시 반도네온이 있어야 제맛이지. 탱고가 두루 퍼진 까닭이 있다. 당시 사교 무도회엔 왈츠나 추는 정도. 어깨에 손을 얹고 허리나 좀 잡는 스킨십이었는데 탱고는 깊은 포옹까지 거침없었다. 유럽으로 건너가선 콘티넨털탱고라 하여 점잖은 탱고로 바뀌기도 했다. 반도네온 자리에 유사품 중후한 아코디언을 쓰고 말이다. 본고장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확실히 뭔가 달라. 진한 반도네온 맛에다 탱고 춤꾼들의 ‘밀착’이 장난 아니다. 무희의 허리가 으스러질 지경.

간밤 펄펄 눈이 내렸는데, 탱고를 추듯 눈발이 춤을 추었다. 나도 덩달아 설뚱해서 숫눈밭에 발자국을 남겼지. 춤추는 인디언처럼 모카 가죽신은 아니라도 장화를 꺼내 신고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눈발자국이 마치 춤꾼의 스텝 같았어. 사진을 찍어둘 걸 그랬다. 

스키장에서 물을 얼려 만든 가짜 설빙 말고, 하늘에서 내린 진짜 눈발은 감격스럽다. 사람도 생각도 진짜를 만나야 가슴이 뻥 뚫리고 눈이 뜨인다. 아이들 친구 ‘펭수’ 말고 진짜 펭귄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수컷 아델리 펭귄은 눈밭 얼음길을 헤매고 다니면서 암컷에게 줄 조약돌을 진종일 고른다. 예쁜 색깔의 돌을 모아 신혼둥지를 쌓고, 직접 구애 선물로 바치기도 해. 완벽한 조약돌을 찾아 온 해변을 뒤지고 다니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단다. 얼마나 서럽게 꺼이꺼이 우는지 남극 과학자들도 따라서 울 지경.

발끝에 조약돌을 바치자 암컷이 마다 않고 집어 물면 프러포즈는 대박 성공. 곧바로 탱고 춤을 추러 얼음산 밀롱가로 사라진다. 얼음계곡을 지나온 바람소리가 웨딩마치로 울려 퍼지는 순간이렷다. 

함부로 마구발방하는 세상에 귀하고 소중한 말과 마음을 내밀어야 한다. 무례하고 해악한 말, 날이 선 짱돌을 집어던지는 짓을 재미 삼은 자들도 있다. 조약돌을 찾듯 고운 말을 골라쓰는 이들은 복이 있다. 인생의 은인들을 꼭 만나게 되리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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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번째 확진자가 다닌 대구 남구 신천지 교회 건물 앞으로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이 교회는 신도 15명이 한꺼번에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슈퍼 전파’가 일어난 장소가 됐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미국 여성 메리 맬런은 상류층 가정에서 일하던 요리사였다. 1907년 어느 날 그녀가 일하던 집에서 장티푸스 환자가 무더기로 발생했다. 사건을 조사하던 의사는 그녀가 이전에 일했던 곳에서도 병이 발생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는 1900년부터 7년 동안 51명을 감염시켰다. 무증상 보균자였던 본인은 멀쩡했다. 그녀의 신상은 공개됐고, 마녀처럼 묘사됐다. 그녀는 슈퍼전파자로 지목되면서 30년간 격리된 채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장티푸스 메리’로 역사에 남아 있다.

중국에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SARS)이 발생했을 때다. 2003년 2월 광둥성 의사였던 리우 지안룬은 사스를 치료하다가 감염됐다. 사스 증상을 보였으나 결혼식 참석차 홍콩에 갔다. 그는 한 호텔에 머물면서 투숙객 16명을 전염시켰다. 이들이 캐나다, 싱가포르, 타이완, 베트남으로 바이러스를 실어 나르면서 사스는 국제적인 전염병이 됐다.

2015년 질병관리본부(질본)의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 보고서’에는 감염자 역학조사 내용이 나온다. 보고서에는 메르스 슈퍼전파자가 5명으로 기록돼 있다. 슈퍼전파자는 2차 감염을 많이 일으킨 사람이다. 질본은 4명 이상 전파자로 정의했다. 가장 많이 퍼뜨린 슈퍼전파자는 접촉자 594명 가운데 85명에게 메르스 바이러스를 전염시켰다. 한국에 메르스를 들여온 첫 환자도 28명에게 바이러스를 옮겼다. 5명의 슈퍼전파자는 확진자 186명 가운데 153명에게 전염시켰다.

19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왔다. 20명 늘어 국내에서 총 5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들 가운데 15명은 ‘31번 째 확진자’와 관련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의 국내 첫 슈퍼전파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는 의료진의 코로나19 진단검사 권유를 두 차례나 거부했다. 만일 그가 권유를 받아들였다면 슈퍼전파자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감염자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다. 자기 감염 사실을 모른 채 남에게 퍼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감염자라는 이유로 낙인을 찍어선 안될 일이다. 그렇다고 공동체 구성원의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본 규범을 지키는 것은 구성원의 의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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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김창길 기자

4·15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의 후신인 미래통합당 후보로 지역구 출마에 나서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출마의 변에서 “대한민국에서 관찰한 것 중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진보세력은 통일주도 세력이고 보수세력은 반통일 세력’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통일에 대한 엇갈린 관점과 서로에 대한 증오심으로 남남 갈등에 빠져 있으면 영원히 분단국가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과거 보수정부 시절 ‘통일 대박’ 등을 외치며 북한 붕괴와 흡수 통일을 지향했고, 소위 진보정부에선 오히려 남북 간 교류협력에 방점을 두고 점진적 통일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태 전 공사의 말이 정확하다고 할 순 없다. 다만 통일과 북한에 대한 시각차가 우리 사회의 주요 갈등 소재로 작용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래통합당이 태 전 공사를 앞세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고,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 진전의 선순환을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은 틀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것이다. 이런 비판은 지금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나 보수정당 회의에서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미래통합당이 태 전 공사를 데려온 것은 그가 김정은 정권하에서 불과 몇년 전까지 충성을 바치다 귀순한 고위층 출신이라는 정치적 상품성을 고려한 것이다. 직간접적으로 목도한 김정은 체제의 취약성을 폭로하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는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선봉에 세우기에 태 전 공사만큼 이용 가치가 높은 인물도 드물기 때문이다. 황교안 대표는 “북한에 일어난 최근의 일까지 아주 자세하게 알고 있는 역량 있는 분”이라며 열렬히 환영했다.

미래통합당의 태 전 공사 영입은 유감스럽다. 이 당은 헌법이 보장하는 피선거권을 내세워 대한민국 국민인 태 전 공사에게도 출마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자신들이 태 전 공사를 ‘모셔온’ 이유와 그것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이 존재함에도 보편적 잣대를 들이대 상황을 호도하려는 주장일 뿐이다. 태 전 공사는 생계형 탈북민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이유로 망명한 사람이다. 북한으로부터 망명한 사람을 공직선거 후보로 추천한 미래통합당이 향후 집권하게 된다면 그 정부는 북한과 대화가 가능할까. 태 전 공사는 테러 우려가 큰 ‘가’급 신변보호 대상이어서 태 전 공사가 선거 유세에 나서려면 경찰 수십명이 붙어야 한다. 만에 하나 유세 중 테러 위협이라도 발생한다면 그것이 북측 소행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논쟁을 시작으로 소모적 논란이 가열될 게 뻔하다. 시중엔 미래통합당이 내심 그런 상황에 따른 ‘북풍’을 기대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다. 이미 미래통합당에선 “자기 형도 대명천지에 화학가스로 죽이는 사람인데, 김정은이 보기엔 태영호가 눈엣가시 아니겠나”(정진석 의원, 지난 18일 국회 외통위) 같은 자극적 언사들이 등장한다.

탈북민들이 자신들의 권익 수호를 위해 정치활동을 하는 것 자체를 막을 순 없다. 3만3000여명에 이르는 탈북민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포용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권이 선거를 위해 북한 이슈를 이용하고 탈북민을 끌어들이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주영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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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우체통.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내가 나에게


오늘은 내가 나에게 

칭찬도 하고 위로도 하며

같이 놀아주려 한다

순간마다 사랑하는 노력으로 

수고 많이 했다고 웃어주고 싶다

계속 잘하라고 힘을 내라고

거울 앞에서 내가 나를 안아준다


- 시집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에서




내가 나에게 Ⅱ


오늘은 오랜만에 

내가 나에게 푸른 엽서를 쓴다

어서 일어나 섬들이 많은 바다로 가자고

파도 아래 숨쉬는 

고요한 깊이 고요한 차가움이 

마침내는 따뜻하게 건네오는 

하나의 노래를 듣기 위해

끝까지 기다리자고 한다

이젠 사랑할 준비가 되었냐고

만날 적마다 눈빛으로 

내게 묻는 갈매기에게

오늘은 이렇게 말해야지

파도를 보면 자꾸 기침이 나온다고

수평선을 향해서 일어서는 희망이

나를 자꾸 재촉해서 숨이 차다고-


- 시집 <작은 위로>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 수녀에게 이 시를 읽어주니 요즘의 자기 마음과 같다고 그동안 자신을 좀 더 존중하지 못하고 사랑해주지 않은 시간들이 떠오른다고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새해가 되어 좀 더 깊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좋은 결심도 세우려니 우선 제가 저 자신과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하는 일에도 사랑하는 일에도 남보다 뒤처진 자신을 발견하고 의기소침해질 때, 주변에서 일어나는 안 좋은 일들에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무력감에 우울해질 때, 어쩌다 한번씩 방송이나 신문에서 인터뷰한 내용에 누군가 인신공격적인 악플을 달아 상심할 때, 수도자의 신분에 맞지 않게 밖으로 이름이 나서 듣게 되는 이런저런 부정적인 말들에 변명도 못해서 외로움이 싹트려고 할 때, 본인이 수첩에 암호처럼 메모해 둔 내용을 도무지 풀지 못해서 쇠퇴한 기억력에 스스로 답답하고 실망이 될 때, 앉았다 일어서는 단순한 움직임조차 뜻대로 되지 않아 몸의 한계를 느낄 때 사는 일이 문득 힘겹고 자존감도 떨어져 앞이 캄캄하게 느껴질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답답한 어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지 말고 잠시 저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적어 본 하나의 편지이자 고백서로 ‘내가 나에게’라는 시를 썼습니다. 글방에 찾아오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지나치게 자신을 과소평가하거나 자신의 어떤 실수나 결점에 대해 낙담한 나머지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다른 사람을 인내하는 일도 쉬운 게 아니지만 마음에 안 들어 때로는 낯설기까지 한 자신의 모습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일이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출렁이는 파도와 수평선을 바라보며 저 밑바닥에 누워 숨을 쉬지 못했던 죽은 희망을 이제 다시 살아있는 희망으로 일으켜 세웁니다. ‘이제는 기다릴 준비가 되어있지?’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다시 한 해의 길을 가려 합니다. 너무 바쁜 일에 밀려 외롭지 않도록 저 자신에게 시간을 좀 더 많이 주고 싶습니다. 잘한 일은 칭찬도 해 주고 잘못한 일은 나무라기도 하면서 더 친한 동무가 되려 합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에게 따뜻한 위로의 손편지도 한번 써보세요!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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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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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물 한 방울의 부피는 0.05㏄다. 스무 방울을 합쳐야 겨우 1㏄가량 된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아마도 땅콩 한 알 정도에 해당하는 부피가 물 1㏄에 가까울 것이다. 무게로 따지면 약 1g이다. 적은 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상황에 따라서 이는 엄청나게 넓은 공간으로 바뀔 수도 있다. 1989년 노르웨이 베르겐대학 연구진은 바닷물 1㏄에 바이러스 1000만마리가 산다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보고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때문에 초긴장 상태여서 바이러스라는 말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바이러스에게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욱 신비한 뭔가가 있다. 과학자들은 현재 지구에 약 160만종의 바이러스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그중 약 1%의 정체를 밝혀냈다. 이 말은 나머지 99%에 해당하는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뜻이다. 어쨌든 바이러스는 크기가 아주 작지만 그 종류나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현재 많은 수의 중국인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코로나19는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은 바이러스를 생명체로 정의하는 데 무척 인색하다. 기본적으로 이들의 생활사가 숙주 생명체를 반드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대물림되는 유전체와 그것을 둘러싼 단백질 외피로 구성된 단출한 형태인 바이러스는 다른 생명체 안으로 들어가야만 스스로를 재생산할 수 있다. 유전자를 복제하고 단백질을 조립하는 숙주의 물질대사 수단을 총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숙주 세포 안에서 성공적으로 재생산을 마친 많은 수의 바이러스는 마침내 숙주의 세포막을 깨고 나와 새로운 숙주를 찾아 나선다. 

넉살 좋은 바이러스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숙주로 삼는다. 담배에 침입하여 모자이크 무늬를 갖는 전염성 질환을 일으키거나 동백 붉은 꽃잎에 하얀 반점을 새기기도 하고, 사람이나 고양이에게 백혈병을 초래하기도 한다. 단세포 생명체인 세균도 예외는 아니다. 바닷물 속에 사는 세균의 약 20%는 매일매일 이런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었다가 곧이어 죽음을 맞는다. ‘박테리아를 잡아먹는다(phagy)’는 의미를 담아 우리는 이들을 박테리오파지라고 부른다. 한 개의 세균을 터뜨리고 나오는 박테리오파지의 수는 100개가 넘는다. 요즘 TV에 나와서 세균이랬다 바이러스랬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에게 이 ‘크기’의 엄정함을 얘기해주고 싶다. 평균적인 세균은 바이러스에 비해 사뭇 크다. 이렇듯 바이러스는 최근에 불거진 오명과는 달리 지구에서 세균이 무한 증식하지 못하게 막는 막중한 일을 한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 안으로 어떻게 들어가는 것일까? 에이즈 바이러스를 예로 들어보자. 알다시피 이 바이러스는 면역계 세포인 T-세포를 공략한다. 목표를 ‘찾아 달라붙는’ 장치를 바이러스가 구비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돌연변이 표적 단백질을 보유한 일부 북유럽인에게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T-세포 안으로 잠입하지 못한다. 몸 안에 바이러스가 돌아다녀도 감염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입을 통해 폐로 들어가는 코로나19는 바깥쪽에 축구화 밑바닥에 박힌 것과 비슷한 스파이크 형태의 단백질을 가지고 있어서 폐의 상피세포 표면에 있는 수용체와 잘 결합한다. 구조적으로 서로 궁합이 잘 맞는 단백질 짝이 있어야만 세포에 쉽게 침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연구자들은 저 수용체 단백질과 결합할 수 있는 항체를 개발해 바이러스가 세포와 결합하는 일을 사전에 원천봉쇄하려 한다. 이달 초에 나온 논문을 보니 코로나19 침입을 저지할 수 있는 항체가 얼추 개발된 모양이다. 좀 두고 봐야겠지만 다행스러운 소식이다.

바이러스는 또한 존재 특성상 자신의 유전체를 숙주에 넣었다가 다시 빼는 까닭에 생명체 사이에 유전체를 운반하는 중요한 역할을 자임한다. 사실 지구에 태반 포유류가 등장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 것 역시 바이러스였다. 자신의 유전체를 숙주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바이러스 융합 단백질을 포유동물의 유전체 안으로 옮긴 사건이 생명체 역사의 어느 순간에 벌어진 것이다. 태반이 암컷 포유류 자궁 내막에 문자 그대로 ‘융합’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실 인간의 유전체 상당 부분은 바이러스에서 비롯되었다. 2016년 스탠퍼드대학의 연구진은 24종의 포유동물에서 지금까지 바이러스와 결합한다고 알려진 단백질, 약 1300개의 아미노산 서열을 비교 분석해보니 인간 단백질의 30%가 바이러스에 적응해온 강한 흔적이 보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인간 단백질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폭넓게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소 과장되기는 했지만 이 논문은 바이러스가 인간 진화를 가능케 한 ‘드라이버(driver)’ 역할을 했다는 논평과 함께 항간에 회자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자주 손을 씻어서 바이러스의 범접을 막아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기는 하지만 사실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 가던 길에 우연히 박쥐나 닭 혹은 인간을 만난 것뿐이다. 농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하며 집단을 이루어 살게 된 인간은 이전보다 더 자주 바이러스를 소환해냈다. 바이러스 역시 빠르게 변신한 후 더 강한 모습으로 인류 앞에 등장하곤 했다. 이들은 자신의 유전체를 보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면역계는 강인하지만 가끔씩 이들 바이러스에게 무릎을 꿇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 유전체는 인간이라는 구조물의 청사진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다른 생명체들과의 투쟁의 역사가 생생히 살아 숨 쉰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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