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생태탕, 동태찌개의 맛이란 아련한 추억이다. 북엇국, 황태국은 어떤가. 이 모두가 명태(明太·Alaska Pollack)에서 온다. 생태는 잡은 그대로의 명태이다. 급속 냉동한 것이 동태, 그냥 말리면 북어, 얼다 녹으며 노랗게 부풀도록 말리면 황태다. 나라가 동강나자 동해안의 실향민은 미시령과 대관령 아래에서 황태 문화를 이어갔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동해상의 밀수를 통해 북의 명태가 남으로 오고, 남의 곡물이 북으로 갔다고도 한다. 나라는 갈라졌어도 명태 문화는 이어졌다. 그만큼 명태가 한국인의 일상에서 소중한 식료라는 뜻이겠다. 

조선 문인 서유구(1764~1845)도, 일제가 편찬한 <한국수산지>(1908)도 명태를 조선에서 유통 규모가 가장 큰 수산자원이라 했다. 이보다 앞서, 최창대(1669∼1720)는 강원도 고성에서 본 장관을 이렇게 노래했다. “어부가 날마다 잡아온 명태/ 산처럼 쌓여 셀 수가 없네/ 삼백 냥이 바로 오백 냥 되니/ 매일 영서의 장사꾼에게 팔린다네(漁夫日捉明太魚/ 積如丘山不可數/ 靑錢三百直五百/ 日日賣與嶺西賈)”

이런 기록을 펼치고 나면, 명천(明川) 앞바다에서 태아무개가 처음 명태를 잡은 데서 ‘명태’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민간어원설이 허무하기만 하다. 이런 것 따위는 ‘5리도 못 나는 오리를 왜 오리라고 하나요’ 같은 옛 서당의 우스개 같은 것이다. 이는 다만 명태가 한국인에게 친숙한 식료임을 드러내는 비근한 예일 뿐이다. 오히려 이유원(1814∼1888)이 <임하필기>에 남긴 기록이 의미심장하다. 이유원 또한 명천 어부 태씨가 이 물고기를 낚으면서 ‘명태’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당시의 낭설을 기록하고 나서 이렇게 이어갔다. “이후 이 물고기는 해마다 수천 석씩 잡혀 팔도에 두루 퍼지게 되었고 북어라 불렸다. 민정중(1628∼1692)이 ‘300년 뒤에 이 물고기는 아마 지금보다 귀해질 것이다(此魚當貴于今)’라고 했는데 이제 그 말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내가 원산을 지나다가 이 물고기가 쌓여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마치 오강(五江·한강 일대)에 쌓인 땔나무처럼 많아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귀하다’라는 말은 ‘사물의 품귀’와 ‘귀한 대접을 받다’라는 뜻을 아우른다. 

한국인은 여전히 명태 음식 문화를 이어가고 있으나 한국의 명태 어획은 2008~2009년 사이에 공식적으로 0을 기록했고, 명태는 해가 갈수록 귀해지고만 있다. 민정중은 수산자원 관리의 실패며 기후위기까지 염두에 두고 이렇게 예언했을까? 오늘날 한국인의 밥상에 오르는 명태는 거의 오츠크해와 베링해에서 오는 러시아산이다. 연안에서 잡은 명태로 산도 쌓고 장작도 쌓던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 생태 덕분에 이어온 맑은 명태탕, 명태김치, 명태깍두기, 명태식해, 서거리(명태 아가미)젓 문화도 따라서 희미해지고 있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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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개강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학 강의를 나가면서 낯선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졸업해야 할 학생들이 학교에 남아 있는 현상이다. 바로 졸업 유예자들이다. 목적의식이 명확한 친구들도 있지만, 졸업을 앞두고 자기모색이 필요한 친구들도 보인다. 이제는 취업 자체가 이행기 노동시장에서 하나의 ‘인생시험’이 된 것 같다. 청년들은 1년 내내 취업을 준비한다. 심지어 대학 1학년 신입생 때부터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면 내 마음이 더 우울하다. 

취업 준비와 경력 쌓기를 위한 휴학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지난 10년 새 대학 휴학자 비율은 더 증가하는 추세다. 2명 중 1명은 취업 문제로 휴학을 한다. 대졸자 10명 중 4명이 취업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나마 눈높이를 낮춘 ‘하향 취업’이 반영된 지표다. 어렵게 취업을 하더라도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취업 후 2년 사이에 직장을 떠나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소위 ‘묻지마 취업’은 줄었지만 직장 유지율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 노동조건이나 직장 분위기, 전망 등이 맞지 않아서다. 

통계 분류상 이렇게 개인적 사유로 직장을 떠나는 자는 ‘자발적 퇴사’로 분류된다. 그 순간 고용보험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렇다 보니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 자발적 퇴직자는 20대·30대 첫 직장을 택한 청년들이 더 많다.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이 384만명(37.8%)이나 된다. 그중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이나 비정규직이기에 고용보험에 누락된 청년들이 170만명(16.8%)이다. 더 큰 문제는 아르바이트나 프리랜서처럼 가입 대상에서 제외된 청년들도 107만명(10.5%)이나 된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취업하지 못한 청년 문제가 주로 부각되다 보니, 졸업 이후 문제는 관심 밖의 일이 된 지 오래다. 취업 후 어쩔 수 없이 혹은 보다 나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직장을 떠나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다. 물론 고용안정과 임금, 복지 등의 선호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대기업과 공무원이 취업의 전부로 인식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최근 직업선택 기준이 다변화되고 있는 것도 확인된다. 주위에도 일과 자신의 삶을 동일시하는 청년들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하고 싶은 일, 즐거운 일을 찾고자 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삶과 가치관의 이런 변화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사회현상에 제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용보험제도는 더욱 그렇다. 예전엔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비정규직 청년이 화두였다. 그러나 이제는 사각지대가 아니라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고 봐야 한다. 특히 고용보험을 납입하고도 ‘자발적 이직’이라는 이유로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24만명의 청년을 방치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사회인지 반문해야 한다. 연간 423억원이면 재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6개월의 기회와 시간을 보장해 줄 수 있다. 물론 조금 더 사회적 포용성이 있다면 아르바이트(23만명)나 1인 창업과 프리랜서 청년(100만명)에게까지 그 대상을 넓히는 고민을 할 수도 있다. 국가가 사회 밖에 놓인 청년들을 위해 실업급여 적용대상을 넓혀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취업을 위해 부모나 주위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좋은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그 몫은 개인이 아닌 국가의 몫이어야 한다. 기존 제도에서 ‘배제된 청년’에게 평등한 노동시장의 권리는 정책의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청년의 일자리 유입과 이탈 과정의 이행기 노동시장 특성을 고려한다면 ‘소득’을 기준으로 사회보험 체계가 재설계되어야 한다. 고용보험료를 개인이 모두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도 아니다. 유럽에서는 국가에서 그 몫을 책임지기도 한다. 프랑스는 작년부터 고용보험료(2.4%)를 국가가 대신 맡고 있다. 4·15 총선에서 이런 의제가 진정 청년을 위한 공약이 아닐까.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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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첫날 경향신문 1면은 일러스트(삽화)로 시작했다. 그물 위엔 로봇 서빙을 받는 사람이 여유로이 누워있고, 어느 ‘자리’를 뜻할 빈 의자가 얹혔다. 서류파일을 든 남녀와 휴대폰 보는 공장 노동자의 옷매무새도 말끔하다. 그물 밑에선 사람도, 오토바이도, 시곗바늘도 다 녹아내렸다. 배달 라이더는 휴대폰을 땅에 내려치고, 접시 든 가사도우미 어깨는 축 처졌고, 젊은 남자는 빈손으로 서서 양초처럼 타 녹고 있었다. 그 물 위로 작업화와 철가방이 떠다니고 손이 허우적댔다. 비온 땅의 죽순처럼 사방팔방 번져가는 플랫폼노동자의 시린 군상이고, “살려달라”는 절규이리라. 그물은 그들이 넘볼 수 없는 노동자 지위와 근로기준법, 사회안전망을 상징할 게다. 삽화 위엔 “노동이 녹아내린다”는 제목이 달렸다.

녹아내린다! 언제부턴가 스마트폰 앱이나 웹으로 지시·통제 받으며 하는 일을 학자들이 ‘액체노동’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공장·사무실에서 근로계약서 쓰고 일하는 전통적 고용관계를 ‘고체’로 빗댄 말이다. 저마다 개인사업자로 플랫폼에 묶여 돌아가는 이 노동엔 일터와 시급, 정해진 노동시간이 없다. 일감으로 돈 받고 그것을 다투며 하루가 질 뿐이다. 그들에겐 연차·유급휴가·퇴직금도 없고, 4대보험과 소득증명원이 없어 은행 대출도 제한된다. 설움과 삶의 불안은 차치하고 녹아내리지 않을 몸이 있을까.

디지털 막노동의 서사는 생생할수록 아렸다. “글자 하나에 20원, 사진은 1000원도 받고 5000원도 받아요.” 인공지능(AI) 학습 데이터를 입력하던 여성은 “인형 눈붙이기처럼 컴퓨터로 하루 10시간, 주 6일 일해 월 250만원쯤 번다”고 했다. 그는 “AI의 정확도와 속도를 높이는 인간부품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나를 잡아먹을 호랑이를 키우고 있다는 두려움일 게다. 하루 14시간씩 달린다는 퀵서비스 기사는 “7년간 건당 배달비가 300원 올랐다”고 하소연하고, “내일도 오늘처럼 벌 수 있을까” 걱정했다. 가사도우미는 벌점 스트레스에, 웹소설 창작자는 플랫폼회사의 무료 연재 요청에 진저리쳤다. 포털에서 AI가 놓친 유해물을 잡아내며 최저임금(연 2091만원)보다 20만원 더 받고 있다는 20대 여성은 “다음이 없는 유령노동”이라고 했다. 녹아내리며 보이지도 않는 노동이었다. 일과 쉼의 경계가 없는 ‘무늬만 사장’이 정부 추계로도 55만명을 넘었다. 웹툰·방문판매·간병처럼 플랫폼에 속속 태워지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는 국내 기준 160만명, 국제 기준 230만명이다.

천리·백리·십리 길에 싸는 봇짐은 다른 법이다. 답을 찾는 학자들이 그랬다. 천리 봇짐은 데이터·로봇·AI에게 세금을 물려 사회에 환원하자는 것이다. 기본소득이 그 범주다. 백리 봇짐은 정부 회의체(경제사회노동위·일자리위·4차산업혁명위)에서 미래의 기술·성장과 노동·기후위기·복지 문제를 함께 다루자는 것이다. 타다·택시 간 갈등을 보며 힘이 붙는 여론이다. 십리 봇짐은 디지털특고도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1·2·3차 산업혁명이 상용화될 때까지 증기기관 80년, 전기 40년, 인터넷 20년이 걸렸고 AI는 10년이 고비라고 떠들썩하다. 그런 나라에서도 4·15 총선은 거꾸로다. 집권당은 노동공약이 없고, 제1야당은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해 유연성을 높이자고 한다. 정책 의제가 뒷전인 선거에서 노동은 아예 실종신고를 해야 할 판이다.

켄 로치 감독이 만든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말로 시작해 눈물로 끝난다. “당신은 고용된 게 아니라 승선한 겁니다. 모든 게 본인의 선택이고….” 택배회사 사장이 각인시킨 독립과 자율은 한나절도 플랫폼에서 벗어나기 힘든 올가미로 바뀌고, 어쩌다가 소화하지 못한 일감과 차량 구입비는 빚과 벌점으로 쌓였다. 택배차를 덮친 불량배에게 얼굴이 퉁퉁 붓도록 맞은 날도 사장은 부서진 카드단말기 값만 챙겼다. 밤새 앓다 만류하는 가족들을 뿌리치고 새벽 일터로 차를 몰고 가는 리키의 마지막 얼굴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누구 잘못일까. 감독은 왜 미안하다 했을까. 영화가 불편하고 퍽퍽한 것은 ‘영국의 리키’와 ‘한국의 리키’가 닮았기 때문일 테다.

예나 지금이나 일은 세도 확실한 현찰을 쥐여주는 곳이 막장이다. 탄광과 노가다가 그랬고, 요즘은 하루 330만개의 상자가 오가는 택배창고가 그리 불린다. 50년 전 ‘전태일의 외침’은 오늘도 플랫폼을 따라 돌고 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장애인이 편한 세상은 모두 편하고 여성이 행복하면 남성도 행복한 법이다. 눈물이 사라진 노동은 더 말할 게 없다. 더 더 낮은 곳으로, 노(勞)의 시선과 사(使)의 나눔과 정(政)의 리더십이 흘러야 한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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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2월 21일 (출처:경향신문DB)

20일 전체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1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망자는 오랫동안 폐렴을 앓아온 60대로, 숨진 뒤 검사에서 확진자로 추가됐다. 국내 코로나사태는 감염 한 달을 지나면서 비상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 2차 감염-지역감염-사망에 이르는 코로나19 유행의 사이클을 밟아가는 양상이다. 대응영역이 해외유입과 국내 전파, 확진자 치료로 넓어지고 힘들어졌다.  

가장 우려할 상황은 지역감염 확산이다. 19~20일 확인된 확진자들 대부분은 대구·경북에 몰려있고, 이들 중 상당수는 31번째 환자에 의해 감염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확진자 가운데 최소 38명은 31번 환자가 예배에 참여한 신천지대구교회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경북 청도 대남병원에서 발생한 확진자들도 31번째 환자가 감염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교회 신도와 해당 병원의 직원·환자에 대한 철저한 방역이 시급하다.    

대구·경북의 지역 감염은 초기 방역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가 20일 발표한 ‘코로나19 임상분석’에 따르면, 증상 초기인 경증환자가 중증환자보다 감염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31번째 확진자가 두 차례 예배에 참석한 신천지대구교회 신자 수십명이 집단감염된 것은 이 같은 특징을 잘 보여준다. 코로나19의 치사율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보다는 낮지만, 전파력과 속도는 훨씬 빠르다. 대구·경북의 지역감염 확산은 초기 방어에 실패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급증하는 코로나19의 신속한 진단과 조기 차단을 위해서는 의료 인력과 병상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의료진과 음압병상이 크게 부족한 대구·경북은 1~2차 의료기관과 협력체계를 구축해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은 해외 유입 차단 등 봉쇄전략 위주였다. 이제는 감염자 조기발견과 신속한 격리·치료가 관건이다. 시민들의 협조는 더욱 중요해졌다. 증세가 의심되면 자가격리한 뒤 먼저 1339 콜센터나 보건소와 상담하고, 증상이 지속될 경우 의사의 권고를 따라야 한다. 개인 위생수칙 준수는 말할 것도 없다.  

방역당국은 코로나19의 감염상태를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위기대응 단계는 ‘경계’ 수준을 유지했다. 지역 전파가 제한적이어서 통제 범위에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러나 암초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감염원을 모르는 지역 확진자들과 접촉한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는 방역 통제망 밖에 놓여 있다. 이날 전주와 제주도에서 발생한 환자와 1차 양성 판정자는 모두 대구 방문자였다. 

비상한 상황에서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행정력을 총동원해 방역체계 구축에 나설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긴밀히 소통하며 의료인력·시설 등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보건당국은 공중보건기관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지역 의료기관 등과 협력체계를 구축해 지역 감염 차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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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 ‘손톱 밑의 가시’ 같은 존재가 있었다. 정권 초부터 간단없이 DJ를 향한 폭로전을 주도하고 ‘암’ ‘공업용 미싱’ 같은 독설을 퍼부으며 공격의 선봉에 섰던 이들이다. ‘DJ 저격수’라는 별명이 붙었던 정형근·이신범·이사철·이규택·안상수·김문수·김홍신 의원 등이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DJ 저격수’들이 여의도 한 음식점에 모였다. 여권이 ‘표적 공천’을 공식화하자 공동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실제 16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DJ 저격수들에 대해 타깃 공천을 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신범·이사철 의원을 ‘저격’하는 데만 성공했다.

남의 사주를 받아 사람을 찔러 죽이는 자객(刺客), 무서운 말이다. 2005년 9월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우정민영화에 반발해 탈당했던 중진의원들의 지역구에 여성 관료, 유명 여배우, 아나운서 등을 내보냈다. 일본 언론은 이를 ‘자객 공천’으로 이름 붙였다. 고이즈미의 자객 공천은 총선판을 흔들어 자민당의 압승을 이끌어냈다.

일본의 ‘자객 공천’이 2012년 19대 총선 당시 부산 사상에서 펼쳐졌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표는 야권의 대선주자인 문재인 후보에 맞서 20대 손수조 후보를 ‘자객’으로 내세웠으나 실패했다. 20대 총선 때도 새누리당은 “국정의 발목만 잡던 야당 의원 지역구에 ‘킬러’를 투입”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표적 공천 자체가 상대가 거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기에 걸맞은 지명도와 참신성, 특장을 갖추지 못하면 역부족이기 십상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공히 자객 공천을 벼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미래통합당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출진한 서울 광진을에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을 내세우고, 미래통합당은 ‘문재인의 남자’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나선 구로을에 불출마를 선언한 김용태 의원을 출격시키는 식이다. 1967년 7대 총선 당시 박정희 정권은 “김대중을 막을 수 있다면 여당 의원 20명이 떨어져도 상관없다”며 온갖 무리수를 동원했다. 아직도 자객·킬러 공천, 경쟁 상대의 정치 목숨을 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무협 세계의 논리가 작동하는 것 같아 으스스하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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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충남 아산시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코로나19로 입소했던 중국 우한 교민들을 태운 버스가 나오자 지역 주민들이 손을 흔들면서 환송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한 세기 전인 20세기 초만 해도 인류의 가장 큰 사망원인은 ‘감염병’이었다. 1900년 의학통계를 보면 사망원인 1·2·3이 ‘폐렴과 독감’ ‘결핵’ ‘설사’ 같은 것이었다. 전체 사망원인의 절반을 차지했다(<바디>, 빌 브라이슨). ‘현대의학’을 구원한 페니실린이 등장하기 전(페니실린의 발견은 1928년, 대량생산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이니 인류는 세균과 바이러스들에 속수무책이었다. 그저 튼튼한 몸을 믿거나, 감염되지 않길 기도하는 게 전부였다. 정체도, 대책도 알 수 없는 그 작은 것들은 인류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그 ‘무지의 공포’는 ‘재앙’의 서막이었다.

무지의 정반대편에 인간의 ‘용기’가 존재한다. 때로 그것은 ‘희생’이라는 극적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를 통해 인류는 진보했다. 실상 감염병과의 싸움은 무수한 희생과 인간 용기의 위대함을 증거하는 과정이었다. 독일 기생충학자 테어로어 빌하르츠는 주혈흡충증을 알기 위해 자신의 배에 유충을 붙여 간으로 침입하는 과정을 살폈다. 미국인 의사 제스 러지어는 1900년 모기의 황열병 전파를 입증하려 쿠바로 갔다가 그 병으로 숨졌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전 세계의 많은 젊은 의학자들이 자신의 몸을 실험체 삼아 감염병들과 사투를 벌이다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19’는 감염병 공포가 여전히 ‘현재형’임을 인류에게 각인시켰다. 다시 20세기 초 ‘감염병 원시’의 암흑시대로 되돌아가는 중이라는 비관도 있다. 항생제 남용 속에 코로나19 같은 변형 바이러스와 슈퍼 세균들이 속속 출몰하면서다. 정체불명의 이런 변종들은 지난 한 세기 ‘무지의 정복’이라는 인류의 자부심을 허물며 ‘편리’로 상징되는 현대문명에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지금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은 ‘불편’일 수 있다. ‘편리’와 그것이 주는 풍요만을 진보로 여겨왔기에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지금 인류는 사회·경제 현상 자체보다 그로 인한 불편과 풍요의 결핍에 더 깊은 불안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 편리와 풍요는 ‘막다른 골목’을 예감하고 있다. 편리는 결코 인간 이성과 기술의 ‘선물’이 아니었다. 이 행성은 이제 그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기후위기, 실업, 빈곤, 각종 재난과 이상 감염병 등 병적 징후들이 이 행성을 횡행한 지는 오래다. 온갖 종류의 재난 블록버스터들이 그저 영화적 허구만은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안다. 그럼에도 재앙이 나의 세기는 아닐 것이라는 공허한 무지에만 기댄다.

공장식 대량축산은 ‘신종 감염병’이라는 미스터리 호러물의 ‘증폭기’로 지목되고 있고, 인공지능(AI) 등 기술의 무한질주는 실업과 절대적 감시사회의 황량함을 눈앞에 드러낸다. 자동차·전기로 변신한 화석에너지는 기후재난의 원인이자, ‘인류 멸종’의 에너지로 경고되고 있다. 대도시의 잘 구획된 밀집구조는 모든 외부 공격으로부터 인간의 방어체계를 극도로 취약하게 만들었다. 공기통로를 타고 삽시간에 빌딩을 점령할 수 있는 건 감염병만이 아니다. 기계의 편리에 움직임을 빼앗긴 인류는 새로운 질병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사망원인 1·2위인 심장병과 암은 1세기 전만 해도 저 뒷줄에 있었다.

코로나19 공포 속에서도 아직은 인간 용기의 희망을 본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하여 말을 했습니다(他爲蒼生說過話).” 당초 중국인 의사 리원량의 유서로 알려진 글 마지막 대목이다. 그는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세상에 알렸다가 당국의 탄압을 받았고, 결국 이 질병으로 숨졌다. 비록 다른 이의 추모글로 밝혀졌지만, 묘비명과 같은 이 글 속에 그의 용기가 어떤 것인지 담겨 있다. 보다 많은 이들이 ‘세상의 모든 이들’을 위해 용기를 내길 바라는 남은 이들의 소망과 다짐이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공포가 혐오와 차별로 치닫던 때 한 아산 시민의 ‘우한교민 환영합니다’라는 SNS는 혼돈의 흐름을 바꿨다. ‘우리가 아산이다’라는 용기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움과 이성, 자신감을 일깨웠다. 리원량과 ‘아산’은 한 개인의 용기가 얼마나 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그래서 인류는 전체이면서 개인이다. 

지금 이 행성은 인류에게 ‘용기’를 요구하고 있다. 리원량이나 아산처럼. 우리가 내야 할 용기는 그러지 못할 경우 각오해야 할 재앙에 비하면 훨씬 가볍다. 앞선 용기들이 감내했던 희생까지도 필요치 않다. 일상의 편리를 조금은 포기할 수 있겠다는 용기 정도이다. 코로나19에 맞선 인류가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해 말’하고 싶은 진실은 바로 그것일지 모른다. ‘불편을 감내할 용기가 있는가.’

<김광호 기획에디터 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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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강동구의 한 폐지 수거업체.처리가 된 폐지묶음이 차에 실리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20년 전 새벽 4시 영하 15도의 골목길을 기억한다. 싼 맛에 구입한 새벽 비행기를 타러 공항 가던 길, 폐지 줍는 할머니를 보았다. 그는 75도쯤 굽은 등으로 쓰레기를 매만져 자기 몸체만 한 폐지를 구원해냈다. 누가 감히 게을러서 가난하다고 하는가. 고 노회찬 의원은 새벽 4시 구로에서 강남 가는 6411번 버스를 타는 청소 노동자에 대해 말했었다. 한겨울 새벽길에는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이 세계의 평온을 몸으로 떠받치는 사람들.

2018년의 ‘쓰레기 대란’이 폐지로 돌아왔다. 똑같은 전개다. 전 세계 50%의 폐기물을 수입하던 중국이 이를 금지했다. 폐기물을 떠넘길 곳이 없어지자 폐기물 가격이 폭락한다. 그 결과 재활용의 춘추전국시대 혹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인 약육강식시대가 도래한다. 오로지 돈 되는 재활용품만 살아남는다. 돈 안되는 재활용품을 처리해봤자 운반비도 안 나온다. 그런데 아파트에서는 재활용품을 수거하려면 돈을 내라고 한다. 결국 수거업체들이 “안 가져갈 테니 알아서들 하세요”라고 답한다. 수거가 중단되고 우리 동네에 ‘쓰레기 산’이 쌓일 찰나, 우유팩에는 닭 뼈와 휴지가 꾸역꾸역 담겨 있고 박스에는 택배 송장과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재활용 업체는 이 ‘쓰레기’들을 외면하고 질 좋고 저렴한 외국산 폐지를 사서 쓴다. 

중국이 폐기물 수입 금지를 더 강력히 시행하면 폐기물 가격은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폐지를 줍던 사람들은 어찌 될까. 소설가 백영옥은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린 예술가를 “사람들이 기피하는 불편하고 후진 지역에 들어가 더러운 거 다 먹어 치우고 깨끗하게 해놓으면 땅값이 올라 자신들은 떠나야 하는 미생물 같은 존재”라 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쓰레기를 구원하는 사람이야말로 도시 삶을 떠받치는 필수 유익균 같은 존재가 아닐까. ‘충북인’에 따르면 청주에서 이들이 사라지면 소각·매립에 100억원 이상이 든다. 폐지 줍는 사람들은 100억원 이상의 세금을 아낀 대신 시간당 750~1000원을 벌었다. 2020년 최저시급은 8590원이다. 환경운동가 짐 퍼킷의 말처럼 “쓰레기는 늘 가장 저항이 적은 경제적 경로를 따라 흘러내린다.”

최근 미국과 일본에서는 질 낮은 혼합 폐지에 처리비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1년 전 인도에서 만난 쓰레기 줍는 ‘웨이스트 피커’는 주정부로터 발급받은 ‘직업 카드’와 복지 혜택을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그때 우리말에는 웨이스트 피커를 번역할 적당한 단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폐지만 줍거나 노년층만 하는 일도 아니건만 ‘폐지 줍는 할머니’ 외에 그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존재는 투명하게 지워진다.

삶이 쓰레기가 되는 순간은 일의 가치를 인정받지도, 보상을 받지도 못할 때다. 지금이라도 공공자금을 쏟아 멸종위기에 처한 폐지 줍는 사람들과 지구를 살려야 한다. 우리 스스로는 분리배출을 제대로 해서 타인의 노동과 지구를 갉아먹지 말고, 기업은 재활용이 쉽도록 물건을 만들어 해당 물건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다 귀찮고 싫다면 집 앞에 쓰레기 산을 껴안고 살든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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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하게 지내는 S 작가님이 3월에 한 달 동안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다녀온다고 했다. 그의 설레는 목소리를 들은 것이 지난가을이니까, 코로나19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때였다. 얼마 전 그에게 여행 준비는 잘하고 있는지 묻자 그는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라면서, 여행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에도 수는 적지만 확진자들이 있고 공항을 오가는 동안 잠복기에 있는 누군가들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보다도 동양인으로서 받을 차별이 두렵다고 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동양인이 운영하는 초밥집에 낙서테러가 일어났다고 하고,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욕설과 조롱을 듣는 일이 많아졌다고도 한다. 프랑스의 숙소에서 예약 취소를 통보해 올 것 같다고도 하는 그는, 더 이상 가을의 설레던 모습이 아니었다.

우리는 바이러스의 진원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중국에 우한이라는 도시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그 작가님도 바이러스와는 무관한 한국인인데 왜 그러한 물리적 혐오를 두려워해야 하는가 억울하고 슬퍼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아시아를 넘어 지구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나면 코로나19는 결국 ‘동양에서 온 바이러스’ 정도로 인식될 것이다. 코로나19 대신 메르스가 한창이던 때의 나는 낙타라든가 아랍이라든가 이슬람이라든가 하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는 동물원 바깥에서 낙타를 본 일이 없고 개인적으로 아랍인을 만난 일도 없지만, 그러한 인상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즘의 나는 외출할 때면 꼭 마스크를 챙긴다. 누구나 그렇듯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버스 옆자리에 이국적으로 생긴 아시아인이 앉았을 때부터 나는 조금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그가 몇 번의 기침을 하자 버스에서 내려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감은 ‘타인을 혐오해서는 안된다’라는 삶의 기본적인 태도마저도 완전히 무너뜨렸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스스로 부끄러우면서도 마스크를 하고 나오길 잘했다는 그런 양가적인 심정이 되고 말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에 대한, 어쩌면 정말로 운이 없었을 그들에 대한 혐오도 이미 일상이 되었다. 어느 확진자가 검사를 거부하며 의료진에게 폭언을 했다는 거짓 루머가 급속히 퍼지기도 하고, 그의 동선을 보면서 아픈 사람이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고 분노한다. 나도 그에 따라 그들을 비난하기도 했지만, 나의 하루를 돌이켜 보니, 나도 그만큼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모든 시간 내가 떳떳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은 사적인 일상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철저한 자가격리로 타의 모범이 된 개인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훌륭하게 해낼 자신이 별로 없다. 

이러한 시국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아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 사실 잘 모르겠다. 단순히 몸이 감염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명확히 알고 있다. 신문에서도 방송에서도 KF 몇 이상의 마스크를 챙기세요, 손은 어떻게 씻으세요, 재채기는 옷소매로 입을 가리고 어떻게 하세요, 하고 말해 준다. 그러나 마음이 감염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알려 주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내일도 마스크를 쓰고 거리로 나갈 것이다. 나는 의료산업 종사자인 나의 처남을 무척 신뢰하는데, 그가 얼마 전 나에게 참 착한 얼굴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스크를 꼭 써야 해요. 나를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써야 해요. 내가 면역력이 있어서 이걸 이겨낼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잖아요.” 그때부터 나도 마스크를 더 챙겨서 쓰기 시작했다. 이처럼 타인의 처지에서 사유하는 평범한 삶의 태도로서, 우리의 몸과 마음과 일상을 함께 지켜낼 수 있으면 좋겠다. S도 프랑스에 별 탈 없이 잘 다녀오기를 바란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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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20일 평소 인파로 가득하던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이 눈에 띄게 오가는 사람들이 줄면서 썰렁하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코로나19로 외국인 관광객 수가 반 토막이 났다. 중국인 입국자는 하루 2만명에서 5000명 이하로 떨어졌으니 반에 반 토막이 났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곳은 여행업계와 항공업계이지만, 지방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계산이 안될 정도로 매우 심각하다. 2015년 메르스가 한창일 때 나는 베이징 주재 대사관에 근무하면서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단체관광객에 대한 한시적 비자수수료 면제, 개별비자 유효기간 연장, 환승관광 확대 등 방안을 제안하고 시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비자 완화 정책은 메르스로 인해 침체된 내수경기를 조기에 정상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때와는 정반대 입장으로, 지금은 중국인의 입국을 최대한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코로나19 종식 이후이다. 여행업계는 현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되면 폐업 업체가 잇따를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진원지가 우리와 인적·물적 교류가 가장 많은 중국이기에 메르스 때보다도 내수경기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빠르면 4~5월에는 이번 사태가 공식적으로 종식될 가능성이 있다니 그나마 희망을 걸어본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완전히 종식된 후에도 심리적 영향 등으로 한두 달은 더 눈치를 보며 여행을 망설일 텐데, 그 한두 달이 심리적 골든타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코로나19 종식과 동시에 외국인 관광객 적극 유치 계획을 준비해야 하고, 지방공항과 지역경제에 온기를 불어넣는 방안을 우선 마련해야 한다. 특히 중국과 동남아 국가의 관광객을 조기에 유치하는 것이 지방경제에 산소호흡기가 될 수 있다. 구체적 방안으로 세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지방공항으로 입국하는 단체관광객에 대해 무비자 입국을 확대하자. 여행심리가 꽁꽁 얼어붙은 데다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는 비자 발급 대기시간이 길어 불편이 큰 점을 감안하면, 단체관광객 무비자 확대는 재외공관의 업무도 덜어주고 관광객의 편의도 도모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단체관광객은 전담 여행사 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고 보증된 사람들이라 문제가 없고 이미 일부 지방공항에서 시범실시해 검증된 제도이니 확대해서 시행하자는 것이다.

둘째, 제주도 무비자 입국 관광객들도 신원이 보증된 단체 등에 대해서는 내륙으로의 이동을 허용하자. 지금은 제주도 무비자 입국이 전면 중지되어 있지만 무비자 입국 재개와 동시에 제주지역으로 활동이 제한되어 있는 조건을 일부 해제한다면 제주와 타 지역의 연계관광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고 지방공항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내륙으로 입국한 사람들에 대해 제주도 입도 조건으로 무비자 입국을 몇 년간 시행했는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전자여행신고제(ETA)’를 조기에 시행하자. ETA는 입국 전 본인의 정보를 입력하면 입국 가능 여부를 전자로 회신하는 방법으로 입국 부적격자를 걸러내면서 선량한 관광객에 대해서는 입국을 신속히 허용하는 제도이다. 단체관광객에 대한 무비자와 달리 ETA는 개별관광객을 효율적으로 유치할 수 있고 불법체류 등 기존 비자 면제의 부작용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미 법 시행이 예고되어 있으므로 예산만 조기에 투입한다면 올해 중이라도 시행이 가능하다.

위기 뒤에 기회가 있다고 했다. 여행업계와 지방자치단체, 중앙부처가 합동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김도균 한국이민재단 이사장 전 제주출입국외국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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