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적 대형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오는 주일 예배를 포함한 모든 예배를 온라인 예배로 대체한다고 28일 결정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 천주교가 당분간 전국 16개 전 교구의 미사를 열지 않기로 했다. 대한불교 조계종도 한 달간 전국 2000여 사찰의 법회와 성지순례 등 종교행사를 전면 중단키로 했다. 전국의 미사가 한꺼번에 끊기는 일은 한국의 천주교 236년 역사상 처음이다. 조계종이 감염병을 이유로 모든 사찰의 산문을 걸어 잠그는 것 역시 초유의 일이다. 그만큼 코로나19 사태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개신교에서도 주중 또는 주일예배를 중단하는 교회들이 늘고 있다. 부목사와 교인이 각각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서울 명성교회와 소망교회는 주일예배를 포함한 종교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금란교회, 새문안교회, 온누리교회 등 서울의 유명 교회들도 주일예배를 온라인 예배로 대체했다. 교회들이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예배를 중단한 것은 당연한 조치다. 신천지 대구교회의 사례에서 보듯이 교인들이 밀집해 예배를 치르는 교회당은 어느 곳보다 전염병 감염의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신교 내 일부 교회의 안이한 상황 인식이다. 서울을 비롯한 국내 일부 대형교회는 주일예배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적 교인 56만여명으로 국내 최대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는 26일 오전 수요예배를 강행했다. 순복음교회는 이번주 새벽예배와 주일예배를 이어갈 계획이다. 등록 교인이 각각 10만여명인 서울 강남 광림교회와 사랑의교회 역시 주일예배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교회 예배는 성경 봉독, 찬송가 합창 등으로 어느 집회보다도 높은 감염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일부 교회에서는 예배 참석 시 마스크 착용을 권유하고 있다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신교가 천주교나 조계종처럼 종교활동 전면 중단 조치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교단이 수직 구조가 아닌 교회 연합 형태이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기독교교회연합회와 한국교회총연합은 일제히 산하 교회에 주일예배 중지, 소모임 중단 등을 권유했지만, 강제력은 없다. 27일에는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기독교대한감리회 본부를 찾아 협소한 공간에서의 종교행사를 중단해줄 것을 당부했다. 지금은 비상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교회가 종교집회를 강행한다면 시설 폐쇄와 같은 행정력을 발동해서라도 막아야 한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월한 가치는 없다. 교회는 당장 주일예배를 중단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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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격리병상이 마련된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근무를 교대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진자 증가폭이 무섭다. 지난 18일 31번째 확진자 발생으로 대구·경북 지역감염 양상을 띠었고, 20일 하루 확진자 100명 돌파 이후 세 자릿수의 확진자 증가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4일 하루 144명이던 추가 확진자 수는 26일 284명으로, 27일엔 500명을 돌파했다. 26일 1000명을 넘은 전체 확진자 수는 하루 만에 2000명선에 육박하고 있다.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는 중국 우한 사례를 볼 때 한동안 확진자 수 급증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전국적인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 방역체계의 전환이 시급하다. 

당장 병실대란, 의료대란이 발등의 불이다. 27일 대구에선 병상이 없어 집에서 입원대기하던 70대 확진자가 숨졌다. 신천지 교인 전수조사 명단에 포함돼 지난 23일 진단검사를 받은 후 25일 양성판정을 받고 자가격리 중 사망했다. 대구에서는 병상이 부족해 절반 이상의 확진자가 집에서 대기 중이라고 한다. 부족한 인력과 자원을 어떻게 분류하고 분배할지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초기에는 환자가 적어 엄격하게 관리했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진 만큼 기준을 낮춰 자원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방역당국은 중증환자는 국가지정음압병상에, 경증환자는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또 연령·기저질환·맥박 등을 고려해 중증도를 분류하는 지침을 마련하고, 시·도 단위의 분류팀도 만든다고 하는데, 서둘러야 한다. 오염·비오염 지역이 섞이지 않도록 유의하는 것도 관건이다.   

의료진과 검사인력, 음압병상 등 가용자원이 얼마인지도 파악해 가능한 선에서 지역별 협조가 이뤄져야 한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전국의 음압병상은 1077개다. 누적 확진자가 1000명을 넘은 대구의 음압병상은 54개뿐이다. 공공병원의 일반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식으로 병상 마련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대구시는 다른 지역에서 환자진료를 함께 맡아주길 요청했지만, 확산 가능성이 있는 만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자체끼리 최대한 협조하되 지역별로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넘어선 안된다. 시·도와 중앙 정부의 협력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방역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의료진의 보호도 중요한 문제다. 의료진 감염은 그 자체로 문제이거니와 의료 부족 상황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환자들의 연쇄감염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의료진의 마스크나 방호복 등 보호장구가 부족해선 안된다. 또한 긴급자금을 투입해서라도 부족한 의료인력을 충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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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가 새로운 초국적 협치체제를 만들 거라는 주장이 한동안 유행했다. 절대주권을 가진 국가가 명확하게 구획된 영토 안에 사는 자국민을 통치하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섣부른 주장도 나왔다. 영토의 경계를 넘나들며 벌어지는 사회적 삶이 그러한 주장의 주요 근거로 활용되었다. 이주의 지구화, 기업의 초국적 활동,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가능해진 초국적 공론장, 온난화와 같은 지구적 환경문제, 초국적 테러리즘 등이 그러한 예다. 낙관적 전망과 달리 아직 이에 대처하기 위한 초국적 협치체제는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개별 국가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초국적 재난이 주기적으로 밀려오고 있다. 이번 전 세계의 문제가 된 코로나19도 그러한 재난의 하나다. 초국적 협치체제가 부실한 틈을 타고 재난의 당사자가 누구인가 정의하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먼저 코로나19를 특정 지역주민의 문제로 지역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일부 언론이 코로나19를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국지적인 폐렴으로 프레임했다. 코로나19의 전파자인 중국 우한 주민의 입국을 원천 봉쇄하자는 주장을 쏟아냈다. 정부가 이러한 프레임을 따르지 않자 코로나19 확산을 친중좌파 정권의 눈치보기와 무능력의 문제로 정치화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작게는 우한 주민, 크게는 중국 국민 전체를 바이러스를 무차별적으로 퍼트리는 미개한 인종으로 비하했다.

감염자 수가 한동안 통제되는 듯하자 이러한 인종주의 프레임이 잦아들었다.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대규모로 나왔다. 이미 이단으로 낙인찍힌 신천지교회를 사회악을 퍼트리는 괴기한 밀교 집단으로 프레임했다. 사회에 복된 소리를 전하는 미션을 다하고 악한 소리를 쏟아내는 주류 종교집단이 선봉에 섰다. 누가 이단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기는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절대악으로 몰릴 지경에 이르자 신천지교회가 부랴부랴 정부에 협조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제 감염원인 신천지 교인만 격리, 전수조사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다.

대구·경북에 감염자 수가 급속도로 늘어났고, 여러 나라에서 한국 국민의 입국을 막았다. 어떤 나라는 대구·경북에서 온 지역민만 콕 골라내 입국을 막았다. 자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코로나19 감염원을 한국으로 지역화하는 전략을 펼쳤다. 국내에서도 대구·경북을 봉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고, 서울특별시민만 국민이냐는 볼멘 반론이 나왔다. 이참에 정치권은 지역감정과 진영논리를 부추기며 정치적 이득 추구에 몰두했다. 그러자 SNS가 혐오의 언어로 도배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특유의 보수성으로 시간의 실향민 취급받던 대구·경북이 졸지에 코로나19의 창궐지역으로 오염되었다. 대구·경북 주민은 공중위생을 관리할 역량조차 없는 냄새나고 지저분한 토착민으로 전락했다.

갈수록 일상의 삶이 탈영토화된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탈영토화란 상호 연계와 의존의 네트워크가 급속히 발전하고 그 안에서 개인적, 사회적, 지역적, 국가적, 국제적, 지구적 차원들이 상호작용하는 밀도가 높은 상태를 말한다. 원인과 결과라는 선형적 모델을 통해 상호작용의 과정과 후과를 예측·통제하기 어렵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바이러스는 전례가 없어 누가 당사자인지 가늠하기 더욱 힘들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특정한 인종, 종교, 지역에 당사자를 한정하고 혐오와 배제의 언어를 쏟아내면 안된다. 인종, 종교, 지역과 상관없이 원치 않아도 영향받는 사람이라면 모두 당사자다. 개인적 차원에서부터 지구적 차원까지 모두 포괄하는 다차원적인 협력이 필요한 이유다. 당사자인 우리가 서로 연대와 포용의 언어를 써서 소통하고 이를 통해 함께 문제 상황을 정의하고 해결해야 한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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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잡힐 것 같던 코로나19 감염병이 2월19일경부터 빠르게 확산되더니 열흘 만에 매우 긴장된 상황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방역당국이 감염 경로 추적에 성공적인 편이어서 앞으로 몇 주 동안 최선을 다하고 운도 따라준다면 확산세를 꺾을 수 있다고 본다. 한 예방의학자는 방송에서 확진자가 급증하는 것은 방역당국이 그만큼 잘 찾아내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지나친 공포는 금물이며,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파악되지 않은 감염원에서 다발적이고 광범위한 전파가 일어나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도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 환자가 초기 증상을 스스로 느끼기 힘든 시점에도 감염력이 높다고 하니 늘어나는 발병국가들에서 입국할지 모르는 감염자 외에도 지금 대규모로 입국하고 있는 중국 출신 유학생이 큰 걱정거리이다.

중국 출신 유학생은 전국에 7만명이 넘는다. 이들 중에 상당수가 스스로 휴학을 택해 입국을 포기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수만명의 학생이 한꺼번에 입국하여 기숙사나 학교 인근의 숙소에서 14일간 격리 생활을 하며 이상 여부를 가린 후에 정상적으로 학업에 임하게 돕는 것은 이만저만 큰일이 아니다. 이미 여러 대학이 공항에 전세버스를 보내 유학생을 별도로 학교까지 이동시키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수많은 유학생을 돌볼 인력, 예산, 지원체계 확보는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한국 대학으로서는 숨 가쁜 일이다. 고향에 다녀온 대구·경북 지역 출신 학생들도 보살펴야 한다. 2주 개강 연기로 충분할지도 걱정이며, 다수의 확진자 발생에 대한 민첩한 대응책이 사전 준비되어야 한다.

중국, 베트남 등의 유학생들을 정성껏 배려함으로써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고 유학생에게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믿음을 준다면 그것은 국제사회에서 두고두고 대한민국의 자산이 될 성과이다. 따라서 중앙정부와 교육부, 지방자치단체, 대학이 합심하여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현대문명이 자초한 신종 질병을 이겨내는 일인 동시에, 우리의 포용력과 국격을 대외적으로 입증할 기회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 가장 고통받고 주로 희생당하는 쓰라린 현실을 극복하는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

코로나19 대처 능력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과 밀접하다. 새 감염병 발견을 처음 알린 의사인 고(故) 리원량의 경고에 중국 당국이 귀를 기울였다면 지금 세계는 훨씬 평안했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우한의 실태를 비판적으로 보도하던 기자들마저 재갈을 물렸다. 권위주의적 경향이 날로 심해지는 시진핑체제가 시험에 들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또 다른 이웃나라 일본의 실상도 마찬가지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의 정치적 활용에 골몰하며 후쿠시마의 계속되는 후유증도 덮고 코로나19 사태도 애써 무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뜸 동양인 등교금지 조처를 내렸던 로마의 유명한 음악학교의 무감각이 유럽에서 확진자가 유독 많은 이탈리아 상황과 무관해 보이지 않고, 이란은 환자 규모 축소 의혹을 부정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주무부서 차관이 연신 기침을 하다가 다음날 확진자가 되는 해프닝을 벌였다. 민주주의가 망가진 후진국이라 할 트럼프의 미국도 확산세가 빨라질 위험성이 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박근혜 정부의 기만적인 대응이 떠오른다. 2015년 6월 대책 발표 현장에서 당시 부총리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누군가에게 전달받아 훑어본 후 넘긴 쪽지를 그대로 읽었다. 언론 카메라에 잡힌 메모에는 환자가 경유한 병원은 감염 우려가 없다고 말하라는 청와대의 요청이 적혀 있었다. 당시 청와대가 과학적 근거 없이 환자가 경유한 병원이 안전하다고 우긴 일이었지만, 바로 다음날 해당되는 병원 네 곳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지금 코로나19 극복의 최전선에 선 한국 대학에 대한 전방위적 지원이 절실하다. 그런데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이미 반발이 심했던 2021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의 틀을 공청회를 열기 힘든 상황임에도 일방적으로 확정하는 모양새이며, 논란 많은 정시 확대 정책을 위한 당근으로 700억원을 책정했다. 또 작년 초 국민권익위원회가 죄 없는 대학 구성원에게 피해가 없도록 경영진의 비리가 밝혀진 사립대에 기계적으로 불이익이나 제재를 가하는 매뉴얼을 연말까지 개선하도록 권고했지만, 교육부는 모르쇠로 버티며 대학 정상화를 위해 분투하는 대학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학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하지 못하면 방역망에도 구멍이 뚫린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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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2월 28일 (출처:경향신문DB)

“야야, 여기는 엉망이다.” 엊그제 경상북도에 있는 고향집 인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또 발생했다길래 통화한 어머니의 첫마디다. 주변 식당들이 문을 닫았고, 웬만해선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동네 분위기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머니는 통화를 끝낼 즈음 “마스크는 꼭 쓰고 다녀라”라고 신신당부했다.

출퇴근길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열에 아홉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 회의 때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얼굴을 반쯤 가리고 얘기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19 확진자와 2m 내에서 접촉한 사람을 ‘접촉자’로 분류한다. 마스크는 그 거리를 좁히는 방법이다. 불편하지만 자신을 보호하고, 주변 사람을 배려하기 위한 기본적 예방수칙임을 이해한다.

감염병 위기 경보가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됐지만 국가 방역체계의 부족함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고, 무엇보다 의료현장에서 장비와 인력이 달린다. 코로나19 퇴치에 특화된 백신은 아직 없다. 코로나19의 기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대통령은 이번주가 확진자 증가세가 꺾이는 변곡점이 돼야 한다고, 국무총리는 4주 내 대구를 안정적 상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집집마다 학교 개학이 일주일 늦춰졌다고 좋아하던 아이들은 다니던 학원이 문을 닫고 놀이터에도 나가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자 힘들어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종교행사 축소, 재택근무 확대, 회식 자제 등 ‘거리 두기’로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다. 대구와 서울이 따로 없고, 정부와 국민이 따로 없다.

국민 행복과 안전은 정부의 궁극적 목적이다. 위기 상황에서 국민 불안감을 덜어주고,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집권여당 대변인의 “대구·경북 봉쇄” 표현이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한국인” 언급은 국민 마음을 헤아리는 공감 능력과 세심함이 부족함을 보여준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와 달리 적극적인 정보 공개로 투명성을 높인 것을 해외 언론이 긍정 평가하고 있지만 정부가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코로나19는 신종플루와 비교해도 확산 속도가 빠르다. 확진자 증가 추세도 가파르다.

정부의 초기 대응을 두고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애초에 중국 국적자, 중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외국인을 막았더라면 한 달 만에 확진자가 1700명을 넘는 급속한 확산을 피할 수 있었을까. 정부는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를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의학계 내에서도 입장이 갈린다. 코로나19의 발원지가 중국 우한이지만, 한국에서 감염이 확인된 중국 국적 확진자는 초기 단계에서 나왔고 무게중심은 대구로, 신천지 교회로 이동한 상태라는 것이다. 정부가 지역사회 감염이 방역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고 보고, 신천지 교인 전수조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 요구가 끊이지 않자, 27일 청와대 대변인이 나서 5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보수야당이 중국인 입국을 막지 못하는 것은 중국 눈치보기와 사대 굴종 때문이고, 그 결과 방역에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있다고 몰아세우는 식은 과도하다. “숙주는 박쥐가 아니라 바로 문재인 정권과 그 밑에 있는 여러분들”(미래통합당 정갑윤 의원)이라는 식의 자극적 언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코로나19를 계기 삼아 ‘기-승-전-문재인 정부 비판’이라는 정치적 의도가 작용하는 것이라면 경계해야 한다. 중국의 태도에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도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한풀 꺾였다고 한국의 대응에 훈수를 두는 중국 매체 보도는 한국을 배려하는 자세가 아니다. 중국의 여러 성(省)에서 잇따르는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에 중국인 봉쇄로 맞대응하는 것이 코로나19 종식의 해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보건 관련 국제기구들은 감염병 극복을 위해선 봉쇄가 아닌 국제적 연대가 요구된다고 조언한다. 분명한 건, 이 사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정부를 비판할 때 하더라도 지금은 좀 참아달라. 장수의 투구를 벗기지 말아달라”고 했다. 정부 대응에 대한 종합적 평가는 코로나19 사태를 진정시킨 후에 해도 된다. 그때는 철저하게 해야 한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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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분담 압박은 미국이 이제 더 이상 혈맹이나 우방이 아닌 부자가 빈자의 고혈을 짜내는 약육강식으로 보인다. 지난 24일 한·미국방장관회의에서 다뤄질 예상 내용으로 방위비 분담금 외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DD·사드)가 뜨거운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발사대의 추가·전진배치에 관한 논란으로 부상했다.

지난 화요일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코로나19에 대한 정부대응 신뢰도가 59%란다. 2016년과 2017년 OECD 발표 우리나라 정부신뢰도가 24%였으니 지금 국민이 정부에 보내는 지지는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당시 정부가 발표하는 말은 믿지 않는 것이 당연시되던 때였다. 사드기지 논란이 극에 달한 시점도 이 정부 불신 시기이다.

당시 사드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이상한 사건이 발생했다. 성주와 접한 김천 수도산에서 지리산에 방사한 곰인지, 탈출한 사육곰인지, 야생곰인지 알 수 없는 반달가슴곰이 발견된 것이다. 급히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팀의 전문가들이 출동해 포획했는데, 잘 모르겠단다. 양쪽 귓불에 커다랗게 매단 추적기가 떨어졌다면 당연히 크게 흔적이 있었을 텐데 왜 몰랐을까? 베테랑이 이런 기본적인 확인을 하지 않았다고? 의문이 시작된다. 작년 11월 이곳과 가까운 덕유산에서 또 다른 반달곰이 포착되었다. 이때는 환경부가 영상만 보고도 귀발신기 흔적이 없는 야생곰이라 발표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포획해서 눈으로 확인해도 모르는 것을 흐릿한 무인카메라 촬영결과로 확인된다? 의문은 더해진다.

빠르게 유전자검사가 이어졌고, 정부는 방사 후 한 번도 지리산 남부를 떠난 적이 없던 KM-53이 직선거리 80㎞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했다고 발표했다. 이 비상식적 발표를 믿어야 할까? 24% 신뢰도의 정부 발표를?

곰의 이동은 주로 짝짓기, 동면, 먹이활동을 위한 것이며, 단연 짝짓기 이동이 대부분이라 한다. KM-53은 왜 그 먼 곳으로 갔을까? 곰은 일반적으로 6세 정도가 돼야 짝짓기를 하니 나이를 봐서 배제해도 된다. 동면을 위해 이동했다면? 이미 겨울을 훨씬 지난 시점이니 돌아왔어야 마땅하고 굳이 한겨울에 따뜻한 남쪽 저지대를 두고 험준한 북쪽 산을 넘어갔다는 가정은 성립되지 않는다. 후각이 발달한 곰이 먹이를 찾아 수㎞를 이동하는 것은 보고되고 있는데 역시 환경여건상 수도산으로 이동했다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물론 이 또한 다시 돌아왔어야 맞다. 동물의 이동 자체가 본능이니 이유없는 이동도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이동은 거의 보고된 바 없다.

서식지라고 한 지리산 남쪽에 풀어놓은 KM-53은 견딜 수 없었는지 빠르게 수도산으로 이동했다가 잡히기를 반복한다. 왜? 동물의 귀소본능이라면 쉽게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원래 수도산에 살던 아이였다면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불신정부라 하더라도 수도산에 사는 곰을 굳이 지리산곰이라 발표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짝짓기를 할 나이인 KM-53이 작년 6월 김천 금오산에서 발견되었다. 수도산과 금오산이 연결되는 한가운데에 사드기지가 있다. 당시도 지금도 논란의 핵심 중 하나는 환경영향평가이다. 혹여 있을지 모를 ‘멸종위기종 서식처’ 논란을 원천 차단하려 했다면 모든 의문이 풀린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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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0일, 한국에서 첫 확진자 발생. 2월11일, 청도대남병원 정신의학과 폐쇄병동 환자 102명 중 40여명의 발열 증상에도 코로나19 검사 하지 않음. 병원 밖 31번 환자 발생 소식에 18일 무작위로 2명만 검사. 19일 폐쇄병동 환자 ㄱ씨(63·무연고자) 사망(사후확진, 국내 첫 사망자). 20년 넘게 시설에 갇혀 산 체중 42㎏의 그는 사망 직후 장례 없이 화장. 같은 병동 두 번째 사망자 ㄴ씨(55·여)는, 치료를 위해 10년 넘게 갇혔던 병동을 나서며 “바깥나들이를 하니 기분이 너무 좋다. 빨리 갔다 오겠다”고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고, 돌아오지 못함. 27일 현재 폐쇄병동 환자 102명 중 101명 감염, 7명 사망. 장애인과 노인 등 집단수용시설에 대해 보건당국은 봉쇄와 감금을 핵심으로 하는 ‘코호트 격리’ 고수. 예천 ‘극락마을’, 칠곡 ‘밀알사랑의집’, 부산 ‘아시아드요양병원’ 등 집단수용시설에서 확진 판정이 이어지고 있음.  

공중보건과 전염병 관련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19의 등장이 재앙의 서막이라고 경고하면서, 바이러스 재앙의 근본 원인을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라고 설명한다. 환경 변화로 서식지에서 쫓겨난 동물들이 인간과 접촉하는 횟수가 늘었으며, 과거에는 낮은 온도에서만 발견됐던 일부 병원균들이 점차 따뜻한 기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야생동물 중 상당수가 빙하의 해빙, 대형 산불, 홍수, 가뭄 등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로 살던 곳에서 쫓겨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감염에 더 취약해진 상태에서 인간과 가깝게 접촉하고 있다는 것이다(일요신문 1월31일자에서 발췌). 

한편,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대한민국의 미세먼지 농도는 전국이 ‘보통’ 이상이다. 요즘 대체로 ‘좋음’이었다. 핀란드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2월3일부터 16일까지)에 비해 중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5%, 이산화질소 배출량은 36% 감소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공장 조업 중단과 교통 통제 덕이다(경향신문 2월21일자). 아마도 당분간 같은 경향일 거다. 

경기둔화가 걱정이라고 하지만, 근본 원인 중 하나가 생태파괴로 여겨지는 코로나19는 인류가 나아갈 길이 ‘탈성장’임을 강변하고 있다. 나눠 먹을 작정을 하면 같이 살고, 아니면 순서만 다를 뿐 죽음의 길을 계속 내닫는 거다. ‘STOP’하지 못하는 인류에 맞서 자연이 강제하는 파업이며, 세상의 맨 끝에 선 예언자들이 죽음으로 외치는 단말마다. 

지구에 인간보다 더 고등한 생물종이 있어 인간종을 지배한다면, 작금의 코로나19 상황에서 그 고등종은 감염 여부와 상관없이 인간종을 살처분하고 생매장할 거라는 상상을 했다. 인간종이 가축에 번진 바이러스 때문에 소와 돼지와 닭들에게 했듯이. 코로나19 사태는 인간중심·성장중심의 과학기술, 과잉생산과 과잉소비, 이에 공조한 우리들의 일상이 만든 인과응보다.

맨 끝자리에서 봐야, 사회가 나아갈 길이 제대로 보인다. 

하룻밤을 꼬박 폐쇄병동 첫 사망자의 원혼에 붙들린 듯, 죽음을 떠올릴 정도로 아팠다. 원혼이 내 안에서 웅얼거린 말은 “이제야 내 명복을 빌지 마라. 내 혼을 달래지 마라. 나를 먼저 죽인 너희의 과학과 편리와 발전, 효율과 무관심, 은혜롭고 풍요로운 일상이, 결국 너희도 죽일 것이다. 너희와 자손들의 죽음을 미리 애도하라”였다. 

인류의 종말은 우리 안 가장 끝자락에서부터 이미 시작됐다. 초유의 사태는 더 큰 혼돈 속에 거듭 갱신될 것이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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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당사자들은 절박했다. 그제 국가인권위원회 앞.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구제조치를 요구했다. 폐쇄병동에서 집단 격리, 집단 치료는 곤란하다는 거다. 시설 수용자도 다른 환자들처럼 안전한 치료대책을 마련해달라는 거다. 상황은 엄중하고 요구는 절박했지만 인권위는 아직까지 입장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건강권’에 대한 중요한 현안이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는 주문은 많았지만 인권위는 능동적 대처, 원활한 해결과는 거리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가를 빌리면 “침체하고 존재감이 없었다”. 그럼에도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리는 건, 인권위가 뭔가 해줄 수 있는 법률적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긴급구제조치 권고를 통해 수용자의 구금 또는 수용 장소의 변경 등 필요한 사항을 권고할 수 있다. 

인권위는 김대중 정부 시기였던 2001년 11월 출범했다. 노무현 정권 때는 논란의 한복판에서 주가를 올리기도 했다. 이라크 파병 반대 의견 표명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입장에선 성가신 존재였다. “정부의 인권 침해 사례를 적시하고, 시정을 촉구하는 결정이 빈번했다. 그 호통이 때로는 날카롭고, 자못 난감한 경우가 있었지만 나는 싫지 않았다.” <김대중 자서전>의 한 대목이다. 김대중 대통령다운 말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는 조직 축소와 위상 격하를 겪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금 기지개를 켤 수 있게 되었다. 

당장 인력과 예산이 부쩍 늘었다. 예산은 2018년 314억원에서 2019년 366억원으로 늘었다. 16.8% 급증이다. 인건비도 14.4% 늘었고, 주요 사업비는 무려 38.3% 증가했다. 국가기관의 예산이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늘어난 사례가 또 있을까. 호시절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인권위 위상을 제고하라고 지시했다. 이전 정부의 인권 경시 태도와 결별하고, 국가의 인권 경시 및 침해를 적극적으로 바로잡고 인권이 실현되는 국정운영을 도모하라는 거다. 이명박 정부 때 형식화되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한 건도 없었던 인권위 특별보고도 정례화하겠다고 했다. 국가기관이 인권위 권고를 잘 따를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약속은 대체로 지켜지고 있다. 비록 정례화는 아니지만, 2017년 12월, 2019년 4월에 대통령 특별업무보고가 있었다. 무엇보다 인력과 예산을 늘려 인권위의 힘을 키운 게 중요했다. 인권위는 모처럼 중흥기를 맞았지만, 좋은 기회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호시절이 허송세월이 되고 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고, 내부는 온통 어수선하다. 직원들은 기운 빠져 보이고 고위직은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인다. 앞서의 기자회견이 이례적일 정도로 인권위가 여론의 주목을 받는 경우도 별로 없다. 

인권위의 답답한 모습은 웹사이트만 찾아봐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위원장 활동’은 2019년 9월에 멈춰 있다. 그날 종교인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는 게 마지막이다. 다른 기관도 이럴까. 국민권익위원회를 봤다. 권익위 웹사이트는 위원장 동정을 아예 달력으로 보여준다. 2월 일정은 여백이 별로 없을 정도로 빽빽했다. 이게 공직자의 도리고 기관의 기본이다. 인권위원장의 활동이 5개월 동안 멈춰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신호다. 

국가기관에서 인력과 예산, 그리고 권한이 늘어나는 것처럼 신명 나는 소식은 없다. 그런데도 왜 인권위는 이전 정권 때처럼 침체하고 존재감이 없는 걸까. 내부 평가는 최영애 위원장의 자질을 주목하고 있다. 인권위 노조의 설문에 따르면 직원의 64.2%는 최 위원장이 핵심과제에서의 성과가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긍정평가는 겨우 4.9%였다. 인권위가 핵심과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로 ‘위원장의 역량 등 리더십 부족’을 꼽은 사람은 54.1%였다. 

최영애 위원장은 인권위의 요직을 두루 거친 사람이다. 설립준비단 시절부터 사무처 준비단장을 맡았고, 초대 사무총장을 거쳐 상임위원으로 영전했다. 설립 초기 6년 동안 인권위의 정점에 있었다. 2018년 9월 위원장에 취임했다. 사무총장, 상임위원, 위원장 등 핵심 요직을 모두 거친 유일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최 위원장에 대해 자질이 없다고 박한 평가를 하고 있다. 

구체적인 쟁점으로 들어가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인권위는 최근 법무부 교정본부로부터 기동순찰팀 대원들의 명찰 패용 권고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원들이 수용자로부터 협박, 진정, 고소·고발을 당하기 때문이란다. 교정본부가 책임행정의 기본도 지키지 않겠다는데, 인권위는 입도 벙긋하지 않고 있다. 

진짜 문제는 명찰 패용이 아니다. 무술 유단자 등으로 구성된 기동순찰팀은 2009년 ‘수용질서 확립’을 위해 만들어졌다. 정권 환경과 인권에 관심 없는 법무부 교정본부장의 일탈이 만들어낸 권위주의적 산물이다. 기동순찰팀의 역할은 일상적 무력 과시가 전부다. 인권위라면 마땅히 기동순찰팀 해체를 권고했어야 했다. 하지만 지엽적인 명찰 문제에만 매달렸고, 그마저 퇴짜를 당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퇴짜를 당하고도 아무 반응이 없다는 거다. 

권위가 땅에 떨어진 엄중한 상황이지만 인권위가 할 수 있는 일은 셀 수 없이 많다. 토론회를 열 수도 있고, 언론 기고를 하거나 기자간담회를 통해 여론에 호소할 수도 있다. 법무부 장관을 만나 자초지종을 따질 수도 있다. 그러나 뭐가 되었든 인권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반복되고 있다. 

위원장이 조직 장악도 못한다는 평가가 따르는데, 사무총장에도 낙하산 인사를 강행했다. 위원장과 사무총장은 고위직으로 근사한 대접을 받아서 좋겠지만, 그들에게 좋은 게 인권위에도 좋은지, 나아가 국민들에게도 좋은지는 의문이다. 최영애 위원장의 임기 절반이 훌쩍 지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오늘도 어제처럼 별일 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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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와 일본변호사연합회(이하 일변연)는 2010년부터 위안부, 강제징용 등 일제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교류해 왔고, 매년 양국을 오가며 간담회를 개최해 왔다. 지난해에는 대법원의 2018년 강제징용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일변연 내부 사정으로 간담회가 열리지 못했고, 2년 만인 2020년 2월10일 도쿄 일본변호사회관에서 간담회가 진행됐다. 일본 변호사 중에는 30년 이상 피해자들을 위해 싸워온 백발의 변호사는 물론 최근 일본 내 ‘혐오발언’을 계기로 양국의 과거사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시작한 젊은 변호사들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일본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일제 피해자들의 일본국,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불과 20여년 전까지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은 한·일 양국이 국가로서 가진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한 것으로, 개인의 청구권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다’라고 인정해 왔다. 예컨대 참의원 회의록에 기재된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이 1991년 8월27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 발언이나 외무성 조약국 법규과장이 1994년 ‘외무성 조사 월보(月報)’에서 한 설명 등을 보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한국 정부나 대법원이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입장을 번복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한편 이번 간담회에서는 2015년 한·일 외교장관의 이른바 ‘위안부 합의’에 대한 최근 헌법재판소 결정도 소개됐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헌재에 위 합의의 위헌을 확인해 달라고 헌법소원을 청구했는데, 헌재는 2019년 12월27일 위 합의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각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위 합의문 내 아베 내각총리대신의 사죄에 대해 피해의 원인이나 국제법 위반에 관한 국가책임이 적시되지 않은 반면, 위 합의 후에도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법적 책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양국이 진정한 사죄를 바탕으로 피해 회복을 위한 법적 조치를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것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이 사죄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해결방향을 제시한 데 큰 의미가 있다는 설명에, 일본 변호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현재 일본에 아베 총리 및 집권 자민당을 견제할 만한 뚜렷한 정치세력이 없는 상태에서 아베 정부를 상대로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무위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일 소송대리인단 및 지원단체들은 공동으로 지난 1월6일 강제징용 문제 해결구상을 발표했다. 주된 내용은, 첫째 피해자 중심주의 입장에서의 해결, 둘째 진정한 해결을 위해 가해자의 사실 인정 및 사죄, 사죄의 증거로 배상, 사실과 교훈의 다음 세대 계승, 셋째 해결구상 검토를 위한 한·일 협의체 창설 등이다. 

그리고 이번 간담회에서는 일부 변호사의 제안에 따라 공동 해결구상의 후속방안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 방안은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의 구체적 해결방안 마련을 위한 민간협의체를 신설하고, 이 협의체를 정치, 경제, 법조, 언론, 학계에서 각 1명씩 양측 합계 10명 정도로 구성하되, 협의체의 실무를 맡을 사무국을 만들어 양국 변호사들이 참여하는 것이다. 

생존 피해자들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도록, 특히 우리 사회가 지혜를 모을 때이다.

<박동민 대한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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