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구하러 다녔다. 원칙은 이랬다. 월세가 아니라 전세여야 할 것. 안전과 위생이 보장될 것. 그뿐이었다. 욕심은 없었다. 조그마한 오피스텔 정도면 살 만하지 않을까. 틈만 나면 부동산정보 사이트를 드나들며 탐색하고 연락처를 남기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욕심이었다. 손에 쥔 돈으로 서울시내 웬만한 오피스텔은 운도 뗄 수 없는 경지. 기대와 절망의 연속. 욕심은 없다면서 작은 바람은 어찌나 많은지. 이왕이면 좋을 것과 이것만은 안될 것의 팽팽한 줄다리기. 그 와중에 기생충이 될 수 없다며 반지하가 떨어져 나가고, 사무실과 다가구가 날아가고, 선택의 여지는 그렇게 옥탑을 향해 한없이 올라가고 있었는데, 드디어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다.

익숙한 동네에(실은 단골술집에서 아주 가까운), 북한산을 조망할 수 있는(지난 십오년간 그 언저리에 살았으면서 여전히 북한산타령), 방은 작지만 옥상이 무지하게 넓고(아 애들 불러다 삼겹살 구워먹여야지), 벽지 장판 싱크대를 새로 깔끔하게 손을 본(비용도 줄이겠어), 보일러를 틀지 않았음에도 방이 훈훈하기까지 한(이 정도 단열이라면 여름 더위도 견딜 수 있겠는걸), 탁 트인 옥상에 햇살이 한가득인(이불을 빨아 널면 얼마나 뽀송뽀송할까), 이층 다세대주택이었다. 한 건물에 단 두 가구만 살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하룻밤 고민을 한 후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또 한나절을 고민하다 계약금을 보냈다. 

일단 계약을 하고 나니 고양이도 따라오고 로맨스도 따라오고 옥상텃밭도 따라오고, 이 나이에 옥탑방에서 생활을 다 해보다니, 첫 자취방을 구한 대학생처럼 설레기까지 했다. 낭만의 시간은 잠시, 의심과 자책의 시간이 도래했다. 재테크는 못할망정 삼겹살은 뭐고 빨래는 뭐냔 말이냐. 뒤늦게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의 숫자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동안 아파트에서 누려왔던 수많은 편리와 안전의 요소들이 부상했다. 안전한가, 살아지겠는가,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금이라도 발을 빼야 하는 게 아닐까. 일단 행정처리를 하고 나면 이 심란한 상황이 끝날까. 동사무소를 찾았다. 확정일자 받고 주소이전하고 마지막으로 주민등록증에 주소변경 기입을 하던 중, 동사무소 직원이 물었다. 주소를 다 기재할까요, 말까요? 주소를 빼고 적을 수도 있어요? 내가 반문했다. 물탱크까지 다 적어요? 물탱크라뇨? 서류상에 기재된 바로는 그래요, 아무래도 빼야겠죠? 결국 그는 알아서 번지수만 기재하고 테이프를 붙였다. 


새로 옥탑방을 구했는데…

알고보니 물탱크였던 공간

알고나니 마음이 되레 편해졌다

물탱크가 날 솟구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계약한 그 집이, 아니 그 방이, 아니 그 공간이, 옥탑방도 아닌 물탱크였단 말이지, 물탱크. 내가 물탱크에서 살게 되었단 말이지, 물탱크. 그렇지 옥탑방의 기원은 거의 대부분 물탱크. 수도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시절, 비상시 생활용수 확보와 단수에 대비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했던 물탱크. 어느 시절 높은 곳에서 주택가 옥상을 내려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던 노랗고 파란 물탱크. 죽은 쥐가 떨어졌느니 청소가 소홀했느니 수질 문제의 주범으로 몰렸던 물탱크. 의무조항이 직결급수시설로 바뀌고 난 후 철거되고 자취를 감춘 바로 그 물탱크. 물탱크들이 사라진 자리 벽을 둘러 창고가 되고 창을 뚫어 방이 되고 가스를 끌어올려 집이 되었지. 방은 방이고 집은 집이지만, 구조변경 용도변경은 불법이고 위반이니, 그곳은 그저 양성화되었을 뿐인 불법 부수시설물.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물탱크가 나를 솟구치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무언가 마구 쓰고 싶어졌다. 무작정 그림도 그리고 싶어졌다. 그림일기면 딱이겠다 싶었다. 방을 구하러 다니던 순간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날들을, 하루하루 매일매일 빼놓지 말고 기록해야겠다. 그 기록을 책으로 만들어 출간해야겠다. 눈앞에 그림이 좌악 펼쳐지면서 제목까지 결정해 버렸다. ‘나는 물탱크에 산다.’ 물이끼도 아니고 벌레도 아니고 무언가의 사체도 아닌, 누군가가 사는 물탱크의 삶. 그렇게 나는 물탱크를 받아들였다. 운명처럼 계시처럼. 

이 과정을 지인들에게 전하자 응원이 쏟아졌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반지하도 해냈는데 옥탑이라고 못하겠느냐’ ‘너의 물탱크가 바로 너의 계획’. 이 사람들이 아직까지 아카데미 여파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니. 이어서 삼겹살 파티 주문이 쇄도하고 상추 고추 토마토를 지나 장미나무 울타리에 블루베리 묘목에까지 이르렀다. 기시감이 들었다. 식당을 하겠다고 했을 때 딱 이런 반응들이었다. 어찌 보면 물탱크는 식당 오픈의 마지막 페이지. 그래도 좋다, 너희들은 즐겨라, 낭만만을. 물탱크 청소는 기꺼이 내가 할 테다. 그렇게 물탱크에서 살게 된 지 이주.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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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2공항 주변인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 해안가에 철새들이 모여 있다. 성산환경을 지키는 사람들 제공

제주 성산에 사는 ㄱ씨는 자신의 집이 제2공항 사업 예정지로 편입된 사실을 어느 날 저녁 뉴스를 보고 알았다. 현 제주공항의 관제시설을 개선하고 보조활주로를 활용하면 ‘제2공항은 필요 없다’는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 보고서는 은폐되었다. 제2공항 사업 근거인 2045년 항공여객 수요는 ‘사전타당성 검토’ 4560만명, ‘예비타당성 보고서’ 4042만명, ‘기본계획 용역’ 3890만명으로 일관성이 없었다. 애초 잘못된 수요예측으로 제2공항 사업을 설계한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지역주민 460명이 서명해 요구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 협의 의견 공개를 거부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입지적 타당성이 매우 낮은 계획’ ‘갈등 해소와 주민 수용성 우선 확보’ ‘합동 현지조사’ 등을 요구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집 앞에서 흔히 발견되는 맹꽁이 등 각종 멸종위기 야생생물은 기록되지 않았다.

‘제2공항, 상생방안 마련하고 기본 및 실시설계 착수’.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주 2020년 업무보고 자리에서 ‘선 상생, 후 공사’를 언급했다. 그런데 상생의 알맹이는 없었다. 상생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연내 강행’만 강조한 것이다. 반면에 올해 제2공항 최대 쟁점인 도민 의견수렴을 위한 공론화 과정은 쏙 빼버렸다. 정보 비공개와 부실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전면 재검토 혹은 도민 의견수렴 후 결정’을 지지한 70% 이상의 여론은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제주 언론 4사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계획대로 추진’은 불과 22.8%였다.

지난 10년 동안 제주 항공여객은 매년 100만명씩 급증하고, 2019년 항공여객은 3000만명에 육박했다. 하루 평균 약 10만명이 제주를 방문했다. 그사이 제주의 환경 수용성, 사회 수용성은 한계를 초과했다. 차량 증가와 교통혼잡, 하수처리장 용량 초과, 1인당 쓰레기 배출량 전국 최다, 소각장 포화와 폐기물 불법 해외 유출, 중산간 난개발, 지속 가능 이상의 지하수 취수, 땅값 상승률과 범죄 발생률 전국 최고 등 삶의 질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국토부의 계획대로라면, 2045년 제주는 지금 항공여객보다 1.5배 많은 4560만명을 수용할 것이다.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제주 제2공항에 대한 국토부의 일관된 입장은 인텔리 관료 중심, 정보 비공개, 물량 만능이었다. 김현미 장관은 철저하게 ‘성장 환상’에 빠져 있었다. 경제 활성화를 명목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주도했고, 지역 난개발을 성장이라 불렀다. 코로나19의 충격을 공공부문 건설경제 활성화로 극복하겠다고 했다. 제2공항 사업! 일부에게는 돈을, 다수에게는 절망을 안겨줄 것이다. 김현미의 상생은 딱 그 수준이다. 그런 그가 제2공항 건설 여부를 쥐락펴락하는 상황은 아주 비극적이다. 제주의 미래는 ‘성장 관료’ 말고, 우리가 결정할 일이다.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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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부터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에 관한 책을 두 달에 한 권씩 2년간 펴내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언제나 원고 마감이 코앞에 있는지라 시간을 아껴야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일정표가 깨끗해졌다. 아무것도 채워 넣을 수 없으니 텅 빈 일정표가 꽉 찬 일정표인 셈이다.

집에서도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낸다. 가족들과 밥을 먹고 휴식하는 시간을 빼고는 방에서 혼자 글을 쓰거나 자료를 정리한다. 답답하면 산책을 하고 잠시 동네 카페에도 들르지만, 대체로 혼자 걷고 혼자 커피를 마신다.

처음에는 이런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워낙에 사람들과 어울려 수다 떠는 걸 좋아했고 산책도 우르르 몰려다니곤 했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졌다. 고요함에 귀를 기울이면 음악을 듣는 것 이상으로 좋았고, 글을 쓰고 산책할 때는 혼자임에도 세상에 온전히 감싸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 사태와 더불어 삶이 달라졌다. 그동안 자가격리된 사람처럼 지냈던 터라 생활에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이건 내가 살던 삶이 아니었다. 똑같은 방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자유를 잃은 사람처럼 답답했고, 고요함은 똑같은데 세상에 감싸여 있다기보다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느낌을 받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왜 모든 것이 달라졌는지.

그러다가 옛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손님 없는 사무실에 멍하게 있다가 친구들 생각이 나서 전화를 돌리는 중이라고 했다. 너무 오랜만이라서 오히려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연신 반갑다는 말만을 주고받고 겨우 가족의 안부를 묻고는 통화를 끝냈다. 그런데 이 짧은 통화가 명의가 처방한 약처럼 내 증상을 호전시켰다.

그러고는 알게 되었다. 나는 혼자였을 때도 혼자가 아니었다는 걸. 다만 의식에 떠올리지 못했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내 더듬이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느끼고 있었다. 방에서 혼자 글을 쓴다고 했지만 학교를 다녀온 아이가 ‘아빠’ 하고 문을 여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서 산책할 때도 사람들과 표정을 나누었으며, 이따금씩 들르는 카페의 주인은 언제부턴가 주문하기 전부터 내가 마실 커피를 알고 있었다.

감염을 막기 위해 서로에게 멀어지라는 정부의 지침이 내려진 이후 나는 혼자 지내는 삶과 격리된 삶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산책하는 사람들은 줄어들었고 그나마도 표정 없는 KF80, KF94들뿐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멀리서부터 미묘하게 간격을 유지한 채 걸어왔다. 카페에는 어느 날엔가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문구가 붙었고, 다음에는 손님들이 보이지 않았고, 그다음에는 2주간 문을 닫는다는 문구가 붙었다. 답답하고 우울한 기분이 든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혼자 지낼 수는 있지만 격리된 채 살기는 어려운 것이다.


20년 격리상태로 있던 장애인

코로나19의 첫 희생자가 됐다

바이러스로부터 격리된 게 아닌

바이러스로서 격리된 탓이다


청도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죽은 첫 번째 환자는 격리 지침이 내려지기 훨씬 전부터 격리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사방이 막혀 있고 창문마저 철망으로 덮여 있는 폐쇄병동. 그에게는 연고자도 없었다. 모든 끈이 끊어진 채 20년을 갇혀 지내고는 죽은 뒤에야 42㎏의 삐쩍 마른 몸으로 그곳을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정신장애인 창작예술단인 ‘안티카’의 한 단원은 그의 혼을 달래며 쓴 글에 이렇게 적었다. “당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어쩌면 그 안에서의 20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서 이미 죽은 사람이 이제야 죽어 거기서 나왔다는 뜻이다.

무려 20년 전부터 철저한 격리 상태에 있던 장애인들이 왜 바이러스의 첫 번째 희생자들이 되었을까. 그것은 이들이 바이러스로부터 격리되었던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로서 격리되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못 쓰게 된 물건처럼 눈에 띄지 않는 어딘가에 치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치된 사람들이었으니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도 이상할 게 없다. 몇 년 전 시설 조사를 나갔을 때 나는 세상과의 끈이 끊어진 채 방과 거실에 잔뜩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우리를 맞이한 생활교사들은 방 구석구석을 윤이 나도록 쓸고 닦았다. 그러나 거기 사람들의 삶에 내려앉은 곰팡이는 그들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함께 사는 곳에서는 잠시 떨어져 지낼 수 있고 얼마든지 혼자 사는 것도 가능하다. 언제든 연락할 사람, 연락해오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잠시 연락을 끊고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격리된 채 고립된 사람들은 살 수가 없다. 제아무리 강한 사람도, 제아무리 큰 도시도 이것을 버틸 수는 없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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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으로 시민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가운데 1일 경기도 과천 서울랜드가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요즘은 코로나19로 일상이 시작된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공기 같은 두려움을 마주한다. 나와 똑같이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함께 길을 걷는다. 나도 모르게 나온 기침에 내가 놀라 주변을 돌아본다. 사람들이 놀라진 않았을까. 나 자신에게도 묻는다. 내게 열은 없는지, 어제 방문한 곳이 위험하진 않았는지.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은 주변을 경계하게 한다.

위기가 지나가기까지 마음 편하게 일상을 멈춰뒀다가, 위험이 싹 사라진 다음에 일상을 다시 시작하면 좋겠다. 하지만 삶은 그런 식으로 멈추어지지 않는다. 먹고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서.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집을 나선다. 보통의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할 뿐이다. 스스로 감염을 조심하고 주변을 돌보며 말이다.

모두의 근심이 커져가는 가운데, 서울 남대문시장, 전주 한옥마을의 건물주, 즉 임대인들이 임대료를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한 예상치 못한 소비의 위축은 자영업을 하는 상가 세입자들에게 타격이 크다. 개인의 탓이 아니라 사회적 위기로 인한 손실임에도 상가 세입자들이 모든 적자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임대인들이 그 손실을 함께 분담하겠다고 나서주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2월25일 (출처:경향신문DB)

정부는 이에 임대인들에게 세제 감면을 하겠다고, 지방자치단체는 공공시설에 입주한 상인들을 위해 임대료를 감면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기관 역시 사회적 위기로 인한 손실을 함께 분담하려고 나섰으니, 이 또한 반갑고 마땅한 일이다. 누군가의 ‘선행’은 이렇게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그런데 임대료에 관한 조정이 ‘선행’에 그치지 않고 제도로 안착한 경우도 있다. 독일 베를린의 경우 자가, 민간임대, 공공임대 등 어떤 곳에 살든지 차별을 두지 않는 ‘동등대우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동등대우 원칙’을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임대료의 수준이다. 주거에 필요한 비용의 부담은 임대료를 통해 정해지기 때문이다. 베를린은 임대료를 2년마다 세입자와 임대인이 상호 합의하는 절차를 통해 결정한다. 이것은 최근 코로나19 국면에서 특정 집단에 몰릴 수 있는 부담을 조정하기 위한 ‘착한 임대료 실천’을 도시 차원에서 상시적으로 제도화한 것과 같다.

이런 ‘표준임대료’ 제도는 건축연도, 위치, 평수 등 3가지 척도를 기준으로 지역 임대료의 수준을 정한다. 설명한 것처럼 세입자 단체와 임대인 단체가 상호 합의한다는 것이 이 제도의 특징이다. 그 과정에 지방자치단체는 조정자 역할을 한다. 세입자, 임대인, 정부가 함께 논의하여 임대료와 관련한 변화에 따른 불안과 부담을 분담하는 것이다. 이는 잠깐의 ‘선행’이 아니라, 불안을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선한 제도’다.

지금 코로나19가 드러내고 있는 우리 삶의 불안,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는 감염성 높은 질병에서만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인간의 자존을 위협해온 위태로운 삶에서 자라난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코로나19에 포위당한 불안과 배제를 이겨낸다는 것은 어떤 처지에 있을지라도 시민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된다는 믿음을 형성해가는 방향으로 극복해가야 한다. 

사회적 위기에 대응하는 동료시민 집단과 국가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공동체의 온기를 느끼게 한다. 마을버스 한쪽에 놓여 있는 마스크와 임대료를 조정하겠다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따뜻함을 느낀다. 하지만 다음과 같이 한발 더 나아간 질문도 남는다. 왜 우리는 이런 따스함을 위기 속의 단골 뉴스인 ‘미담’의 형식으로만 마주해야 하는가. 우연에 기댄 ‘선행’이 아니라, 일상의 위기에서도 불안을 분담할 수 있는 ‘선한 제도’를 구축할 수는 없을까. 우리가 선행을 넘어 선한 제도로 나아갈 수 있다면, 모두에게 동등하게 보장되는 안전하다는 감각은 우리로 하여금 타인을 감싸 안게 할 것이다.

<권지웅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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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목연석(魚目燕石)이라는 말이 있다. 물고기의 눈과 중국 연산(燕山)에서 나는 돌은 모두 옥(玉)과 비슷하지만 옥이 아니라는 뜻으로, 진짜와 비슷하지만 본질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주 한전의 2019년 결산실적이 나오자 ‘탈원전=한전 적자’라는 잘못된 주장이 다시 등장하는 것을 보며, 에너지전환의 본질이 가려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실 본격적인 ‘탈원전’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2017년 23GW이던 원전 설비용량은 2024년이 되면 27GW까지 늘어난다. 이 기간 중 문을 닫는 원전은 3GW에 불과한 반면, 새로 문을 여는 원전은 7GW에 달하기 때문이다. 

2016년 이후 원전이용률이 하락했던 이유는 과거 건설된 일부 원전에서 콘크리트 공극 등이 발견되어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정비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해당 정비작업은 순차적으로 마무리되어, 2019년 2분기 원전이용률은 예년 수준인 82.8%까지 회복되었다. 더구나 원전 예방정비 및 가동은 원안위 승인 등 법적 절차에 따라 시행되는 것이니 정부가 의도적으로 개입한다는 주장도 사실과 맞지 않다.

2019년 한전 실적이 하락한 주된 이유는 3가지 환경관련 지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첫째,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값싼 석탄발전 대신에 값비싼 가스발전을 크게 늘려 발전비용이 증가하였다. 둘째,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되고 있는데 작년에 배출권 가격이 크게 올라 이와 관련된 비용도 급증하였다. 셋째,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부터 시행된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의 이행비용도 늘어났다. 

일반 제품에 비해 유기농 제품이 더 비싸듯이 환경과 안전을 강조하다보면 결국 관련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재생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전환의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정확하게 산출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독일 및 덴마크와 같은 에너지전환 모범 국가에서는 친환경 발전 확대에 따른 전기요금 상승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어 있고, 전기요금 고지서에 친환경 발전으로 인한 추가적 비용이 별도로 적혀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관련한 국민적 논의가 아직까지 부족한 실정이다. 

에너지전환은 가속화되는 지구온난화에 대응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해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신규 발전설비 투자액 중 67%가 재생에너지에 집중되고 있으며, 세계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2018년 26%에서 2040년 67%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전환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합리적인 전기요금 체계로 소비자에게 적절한 가격신호를 제공하여 효율적인 에너지 소비를 유도하고 전력의 낭비적 소비를 방지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당장 올해부터 신기후체제인 파리기후협정이 본격 가동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유승훈 |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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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상에 지치면 스스로 격리되어 며칠 푹 쉬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몸이 아파 격리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코로나 때문에 ‘격리’라는 단어가 신문과 방송에 자주 등장한다. 내 삶과 결부시켜 생각해보면 당혹스러운 일이다. 평생 격리되어 생활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격리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정확히 모르지만, 적어도 격리라는 단어가 코로나에 걸리면 국가가 나를 안전하게 책임져 주겠다는 뜻으로 들리진 않는다. 오히려 몸이 아픈데 고립시켜 이중고를 겪을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증상이 있더라도 죽기야 하겠어라며,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기를 주저할 수도 있다. 확진만큼 격리도 무섭게 느껴진다.

온몸을 밀봉한 4명의 의료진이 한 조가 되어 투명비닐 백에 넣은 확진자를 구급차에서 내리는 영상뉴스는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외계생물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를 이송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영화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는 격리되어 대부분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한다. 그것이 격리란 단어에 대한 나의 상상 수준이다. 온라인데이터 분석 웹, 소셜메트릭스에서 격리와 연관된 어휘를 찾아봤는데, 시설·바이러스·증상 등이었다. 행위자 중심의 어휘들이었고 느낌도 별로다. 격리와 공포, 격리와 불안을 일별 노출량으로 비교해 봤는데, 노출량의 변화패턴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지금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어디 이뿐이겠는가. 장애인이라 사회에서 격리되고, 노인이라 사회에서 격리되고, 돈이 없어 사회에서 격리되고, 약자라 격리되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신체적 격리, 정신적 격리는 모두 다른 말 같은 뜻이다. 더 나아가 혐오와 격리도 다른 말 같은 뜻이다.

격리라는 단어는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예컨대 격리라는 말 대신, ‘밀착 보호’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빈틈없이 보호하겠다는 환자 중심의 안정적인 어휘로 들린다. 보호는 연관어 분석에서도 생명·자연·환경 등과 함께 등장했다. 그렇다면, 봉쇄는 어떨까. 봉쇄란 표현 또한 쌀·생수·재고·죽음과 짝을 지어 언급됐다. 격리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친절하고 상세하게 보여주고 설명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격리·봉쇄 등과 같은 단어는 보건전문용어이지만, 국가안보를 중시하던 시대의 표현이기도 하다. 안보의 궁극적인 대상이 국가에서 사람으로 이동한 지 오래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게 되었지만, 효과적인 정보전달에 몰두한 나머지 사람들이 느끼는 정보의 감수성은 관심에서 벗어났다. 정보 관리보다 사람 관리가 더 중요하다. 4차 산업, 빅데이터 산업도 마찬가지다. 기술보다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많은 것도 이러한 맥락과 같다. 새로운 기술과 산업은 삶의 질을 높이고, 생명과 안전을 유지하며, 민생을 지원하는 등 사회적 가치창출에 활용돼야 한다.

지난 주말,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이 코로나 관련 긴급여론조사(전국 2000명 모바일ARS전화조사)를 했다. 정부의 대응에 신뢰한다는 답변이 59%였다. 하지만 여기서 머물면 안된다. 길게 보면, 격리·봉쇄 등의 사회문화적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일과 코로나 등과 같은 생물학적 바이러스를 막는 일이 서로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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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3월 2일 (출처:경향신문DB)

대구에 있는 고교 선생님의 안부가 걱정됐다. “기침 때문에 걱정했지만 감기라네. 괜찮아. 난 고립에 익숙한 편이라….”

선생님은 포항에서 교육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뒤 33년 전 고향 대구에 정착했다. 삶의 고통을 잊으려 다시 찾은 고향, 살아내기 위해 겪었던 모든 경험이 고립이었으리라. 선생님은 그때마다 낙동강 발원지 황지를 출발해 황톳길 긴 방죽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잊지 않기 위해.

코로나19가 대구를 휘감고 있다. 2월29일 현재 대구 지역 확진자만 2000명이 넘었다. 선생님의 고립은 예전과는 달랐다. 그간 홀로 겪었던 고립을, 이번엔 대구 시민들과 함께 겪고 있다. 선생님은 악몽이라고 했다. 악몽의 실체는 혐오를 따라 창궐하는 정치 바이러스였다. 2월18일 31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후 대구는 공포에 빠졌다. 그즈음, 금도를 넘어선 풍경을 목도했다. 4·15 총선에서 대구 동갑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후보가 ‘문재인 폐렴이 대구 시민 다 죽인다’는 구호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문재인 폐렴’이란 단어를 보며 악의 평범성을 떠올렸다. 한나 아렌트가 재판정에서 본 유대인 학살 전범 아이히만은 평범한 시민이었다. 아이히만은 “나는 맡은 일을 했을 뿐 잘못이 없다”고 항변했다. 아이히만의 죄는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그로 인해 죄책감 없이 악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통합당 후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이란 걸 했을까. 당선만 된다면 무슨 일이든 괜찮다고 확신하지 않았을까. 불행히도 그 후보의 ‘무슨 일’은 대구를 지역주의라는 반동으로 다시 몰고 갔다. 대구는 비합리적 지역주의가 횡행했던 곳이었다. 멀게는 1971년 대선, 가깝게는 1988년 총선 이후 영남 정치인들은 지역민들과의 일체감보다 권력 지향적 지역주의를 고수했다. 그랬던 대구가 20대 총선에서 ‘진박 감별’ 싸움에 빠진 새누리당에 철퇴를 가했다. 정치 1번지 수성갑에선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당선됐다. 대구 시민들은 한 세대 만에 강고했던 ‘비합리적 지역주의’를 무너뜨렸다.

통합당 그 후보는 비합리적 지역주의가 허물어진 자리에 혐오를 끌어왔다.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특정집단을 낙인찍고 차별할 때 혐오가 중심 작용을 한다”고 했다. 혐오는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희생양은 늘 약자였다. 1차 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었고 시민들은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쳤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이 전당포를 하며 고리대금을 걷는 바람에 우리가 어려워졌다”고 선동했다. 내부의 분노를 외부로 투사하는 과정에서 약자(유대인) 혐오를 이용한 것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약자는 아니다. 그다음이 문제다. 빨갱이, 지역주의가 안 먹히자 혐오를 대체재로 끌어왔다. 결국 희생양은 대구 시민들이었다. ‘대구 코로나’ ‘대구발 코로나 OO 상륙’이란 몹쓸 말 앞에 상처를 입었고, 노년층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바이러스에 쓰러졌다. ‘문재인 폐렴이 대구 시민 다 죽인다’, 혐오 가득한 이 슬로건은 한 세대에 걸친 대구 시민들의 노력 모두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비합리적 지역주의를 부활하고, 혐오를 동원한 것도 부족했던지 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대구 지원 예산을 ‘혈세’에 빗댔다. 혈세 낭비로 치면 꼼수 위성정당(미래한국당)에 ‘뺏긴’ 세금만 할까. ‘무슨 말을 해도 TK는 우리를 찍을 것’이라는 오만이자 지지층에 대한 경멸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마감 무렵, 소설가 공지영씨가 2018년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와 코로나19 확진자 현황이 담긴 지도를 공유하며 “투표의 중요성 후덜덜”(원글은 ‘투표 잘하자’)이라고 쓴 글을 봤다. 대구·경북 시민들이 통합당 단체장을 뽑았기 때문에 재난을 겪고 있단 건데. 울리히 백이 위험사회론에서 시사했듯 누구든 정치적 선택 때문에 차별받거나 배제당해선 안된다. 공씨는 진영 논리로 피해자 혐오를 부추기며 스스로 지식인의 책무를 포기했다.

코로나19 공포 속에서 5·18 광주의 고립을 떠올렸다. 광주 시민들은 대구의 코로나 경증환자들을 격리치료하겠다고 선언하며, 이것이 광주의 길이라고 했다. 혐오의 최대 피해자들이 강자에게 건네는 위로였다.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려는 세력이 혐오를 창궐하는 세력을 이기라는 것, 지금 이 시련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준 기회일지 모르겠다. 선생님은 다시 낙동강을 찾을 것이다. 고향 대구의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따뜻한 연대를 기억하기 위해.

<구혜영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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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제가 태어나지 않은 것 같은 표정으로

몸이 생겼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 눈으로

유모차에 앉아 있던 아기가


내 눈과 마주친다, 순간

아기가 다칠 것 같다

내 눈빛에서 튀어나가는 이빨과 발톱을

어떻게 눈알에 붙들어 매야 하나 난감하다


자신을 방어할 어떤 몸짓도 하지 않고

아기는 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

끊임없이 뭔가를 방어하고 있던 내 두려움도

아기 앞에서 다 들켜버린다


꽉 쥐고 있던 주먹이 풀리고 관절이 연약해지며

내 안에서 조용히 무릎 꿇는 것이 있다

혀에 가득한 말들은 발음을 잃고

표정은 얼굴로 가서 입 벌리고 멍해진다


김기택(195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유모차에 앉아 있는 아기와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시인은 덜컥 겁이 난다. 자신의 눈빛에는 이빨과 발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눈빛에는 거칠고 사납고 치려는 기세가 있기 때문에. 아기는 이러한 시인의 공격이 있을 거라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편하고 걱정 없이 좋아하며 앉아 있다. 아무런 꾸밈이 없이 순진하고 천진한 아기를 대하니 시인은 쥔 주먹을 풀게 되고 예비하고 있던 거친 말들을 버리게 된다. 아기의 표정에는 무언가를 잃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염려하는 기색이 없다. 높은 성벽을 쌓아 자신을 보호하고 지킬 생각도 없다. 봄날의 햇살처럼 화사한 마음뿐이다.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마음뿐이다. 막 피어날 때를 기다리는 어린 꽃봉오리 같을 뿐이다. 그래서 아기를 보면 누구나 저절로 웃게 되고, 마음이 흡족하게 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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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으로 시민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가운데 1일 경기도 과천 서울랜드가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어딜 가도 ‘텅’ 비었다.” 거리가 그렇고 백화점·재래시장은 썰렁하다. 극장·공연장은 관객보다 빈 좌석이 더 많다. 항공기·고속열차(KTX)의 사정도 다를 바 없다. 식당도 손님은 띄엄띄엄 있을 뿐이다. 길게 늘어선 줄은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와 마스크를 사려는 시민들뿐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가파르게 늘고 있는 요즘 대한민국의 ‘일상’이다.

경제의 절반을 떠받쳐온 소비가 얼고 있다. 관광객은 절반으로, 백화점은 20%, 영화관·놀이공원은 60~70%, 식당은 10~20% 각각 매출이 감소했다. 소비 위축은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3%에서 2.1%로 낮췄다. 엊그제 나온 정부 대책 역시 이런 위기 타개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런데 한발 더 나아가 “어려운 국민들에게 ‘재난기본소득’ 50만원씩을 지급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제기됐다. ‘코로나 기본소득’이다. 이재웅 쏘카 대표는 “경계에 서 있는 소상공인·프리랜서·비정규직·학생·실업자 1000만명에게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집세를 낼 수 있는, 아이들을 챙길 수 있는, 집에서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는 소득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민간싱크탱크 ‘LAB 2050’의 윤형중 팀장도 한 언론기고문에서 “기업과 개인이 ‘잠시 멈추는 선택’을 하려면 재난 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재난기본소득은 ‘재난 때 재산이 얼마든, 일을 하든 말든 모든 국민에게 국가가 현금을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이 대표는 최소한 1000만명에게 50만원씩을, 윤 팀장은 모든 국민에게 30만원씩 주자는 것이다.

기본소득에 대해 ‘예산 낭비’ ‘부유층까지 혜택을 줄 필요가 있나’ 등 반대 목소리가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성장률 하락을 피할 수 없다면, 해볼 만한 시도가 아닐까. 기본소득은 그냥 사라지는 돈이 아니다. 늘어난 소비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성장률도 끌어올릴 수 있다. 홍콩도 이미 18세 이상 영주권자에게 155만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사람이 버텨내야 경제가 버틸 수 있고, ‘잠시 멈춤’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책적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번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때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논의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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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에서도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을 두고 갑론을박이 커지고 있다. 친문 인사들의 창당 선언이 이어지고, 진보성향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가칭 ‘정치개혁연합’은 창당 제안서를 보낸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이 문제를 논의한 민주당 지도부 회동도 언론에 포착된 터다. 미래한국당이 촉발시킨 ‘비례 위성정당’이 여야를 넘어 4·15 총선의 중대 이슈로 급부상한 것이다. 민주당은 위성정당 창당엔 선 긋고, 시민사회의 자발적 창당은 막기 어렵다는 뜻을 비치고 있다. 공당이라면, 여론과 유불리만 재는 어정쩡한 자세를 버리고 당 대표가 위성정당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힐 때가 됐다.

진보 시민사회가 구상하는 비례정당은 다분히 미래한국당을 겨누고 있다.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 자매정당을 자처한 미래한국당이 병립형 비례대표 17석은 득표율대로 나누고, 준연동형 비례대표 30석의 3분의 2를 싹쓸이할 수 있다는 고민과 위기감이 작동한 것이다. 이런 반칙으로 소수정당 국회 진출을 돕고 사표를 줄이는 개정 선거법 취지는 무력화됐고, 상대적으로 지역구 당선자가 많을 민주당은 비례대표만 20석 가까이 뒤진 채 기울어진 총선을 시작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보수야당이 1당과 국회의장, 많으면 과반 의석을 차지해 ‘공수처 폐지’ 등을 예고한 대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시각도 여권과 시민사회에서 제기된다. ‘이에는 이’라고 말하고,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과 개혁 후퇴를 우려하는 ‘촛불의병’을 자칭하는 이유일 게다.

하지만 민주당이 장고하는 위성정당은 그간 주창해온 정치개혁에 역행한다. 관망·묵인·연대 중 어떤 길이든, 미래한국당을 향해 ‘가짜정당’이라고 한 부메랑을 맞을 수밖에 없다. 미래통합당은 뭐라 공격할 자격도 없지만, 민주당의 앞뒤 다른 행태는 가치를 중시하는 진보진영과 중도층에서 정치 혐오와 냉소를 키울 수 있다. 지역구에선 반감과 이탈표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3000표 이내로 승부가 갈리는 수도권의 총선 접전지만 수십 곳에 달한다. 친여 비례정당 의석이 늘면 ‘4+1’ 공조를 했던 정의당이나 여타 정당 몫도 함께 줄 것이다. 꼼수를 꼼수로 막겠다는 위성정당이 명분도 잃고 실이익도 불투명한 셈이다. 정당은 표를 달라는 진정성과 차별성이 분명해야 한다. 민주당은 갈 길 먼 정치·검찰·경찰 개혁과 협치를 중시하는 정공법으로 총선을 치르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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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닌 것 없건만 무엇도 ‘나’는 아니었던 시기, 페미니즘을 만났다. 내 삶을 이해하기 위해, 답답함의 근원을 알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의 역사를 만나면서 개인적 성품에 덧입혀진 ‘여성성의 신화’와 ‘행복한 가족 이데올로기’를 직시하게 되었다. ‘생물학이 운명’이라는 정언명령,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탄식이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방식 중 하나임도 알게 되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놀이로, 만화로, 동화책으로, 드라마와 영화로, 부모님과 교사들의 잔소리로, 동무들의 탄식으로 체현된 주제가 비로소 배반당하는 순간이었다. 죽어가던 나의 자아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페미니스트들을 만났다. 오랜 과거부터 진행된 그녀들의 질문과 저항의 역사를 접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의구심은 그들을 집 밖으로 작업장 밖으로 정신병동으로 감옥으로 화형장으로 내몰았지만, 켜켜이 쌓이고 쌓인 변화의 열망이 하나하나 새로운 문을 열어젖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개인은 너무도 취약하고 불안하고 외롭지만 비슷한 희망을 품은 자들과 연대하고 멈추지 않고 나아갈 때 어떤 놀라운 변화가 만들어졌는지도 알게 되었다. 심리적 원인이라는 것도 사실은 상당 부분 사회적 제약과 연결되어 있으며 구조의 작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또한 구조적 제약의 결과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용기 있는 도전으로 바뀐 세상의 수혜자는 무지하거나 무시해 온 이들까지 포괄적이었지만, 이들로부터 다시 비난받고 배척당한 슬픈 역사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은 개인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으되 공감하는 어떤 누구와도 손잡으며, 어떤 세계에도 도달해야 할 가장 윤리적 지향 중 하나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페미니즘은 지금 이 순간과 공간에 있는 나란 존재를 설명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특정 집단의 소유물도 고정된 하나의 사상도 과거에 고착된 운동도 아니다. 도전하고 파괴하고 재조립하고 완전히 독자적인 것을 만들어내며 다시 다른 것들과 연결 지으며, 당대성을 지니되 과거를 환기하고 미래를 향하되 오늘을 잊지 않는 집단적 움직임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역사를 읽으면서 나의 위치도 알게 되었다. 가족과 사회, 국가와 전 지구적인 서열구조 안의 나를 인지하게 되었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고 냉전체제가 작동하는 동아시아 작은 분단국가, 군사독재의 잔재가 여전하고 봉건 가부장 문화와 서구의 보수개신교 문화가 묘하게 착종된 곳의 중산층 전업주부였다. 이 위치성은 이후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함께 움직였다. 나는 유색인종 싱글맘 ‘가난한’ 페미니스트 대학원생이 되었다. 한 번도 인종성을 의심받거나 성정체성에 질문받지 않았던 나는 비로소 또 다른 정체성이 나를 구성해 왔음을 깨달았고, 어떤 정체성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만들어지기도, 갑자기 두드러지기도, 때로는 비가시화되기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 되어야만 할 때 어떤 정체성은 벼락처럼 문제가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다른 피부색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가 되어야 하고, 성별 자체가 문제시되어야 지켜지는 위계질서를 알게 되었다. 

‘더러운 ××’라는 욕설과 손가락질이 사실은 사회적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방식임도 알게 되었다. 혐오의 투사가 사회적 낙인과 배제, 구조적 차별의 원인이자 결과임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문명을 발전시킨다 한들 신이 될 수 없는 인간의 존재론적 취약함이 죽음을 상기하는 모든 것들을 타자에게 투사하고 사회적 약자를 끊임없이 생산해 왔다. 권력이든 돈이든 무엇을 가진다는 것이 힘이 되고, 그 힘만이 개인의 안위를 보장한다고 믿어지는 위계적 사회에서, 사람들은 스스로의 안전과 안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타자를 짓누르고 빼앗고 착취해 왔던 것이다. 해결 불가능한 불안이 해석 불가능한 대상에 대한 공포와 결합될 때, 타자는 가장 손쉬운 방식으로 ‘원인’으로 지목되고, 혐오와 배제, 차별과 절멸의 대상이 되었다. 그 가장 날카로운 칼끝에 여성, 흑인, 성소수자 등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다름과 다양성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통용되는 수사였다. 페미니스트들은 그런 메커니즘이 어떻게 사회문화적으로 만들어지고 재생산되어 왔는지, 효과가 무엇인지 가장 예리하게 파고들며 저항했던 집단이었다.

수많은 소란과 불안, 갈등과 반목이 우리를 덮치고 있는 이 시점에 페미니즘을 상기하는 이유다. 내가 아는 페미니즘은 공동체를 살리면서 나를 살리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오늘도 헌신하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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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3월 2일 (출처:경향신문DB)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주말 사이 3000명을 넘어 4000명대로 향하고 있다. 병상 부족이 당장 코앞의 당면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정부가 중증환자 중심의 치료체계 재구축 방안을 내놨다. 확진자를 중심으로 동선을 꼼꼼히 밝히고 접촉자를 차단하는 기존의 봉쇄정책에서 지역 확산을 막기 위한 정책으로의 전환이다. 한정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지역 감염 확산을 막자는 총력전인 만큼 사회 전반의 이해와 협조가 더욱 중요해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1일 시·도별로 환자의 중증도를 4단계(경증·중등도·중증·최중증)로 분류, 앞으로 입원치료는 중등도 이상 환자부터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등도 이상 환자는 음압격리병실 등으로 옮겨 집중치료를 하게 되고, 경증환자는 국가 운영시설 등 지역별 ‘생활치료센터’에 1인 1실로 입소해 치료를 받는다. 생활치료센터에선 전담의료진이 건강상태를 수시로 모니터링하며, 필요할 경우 병원에 입원시키게 된다. 아울러 퇴원 기준도 완화해 입원 환자들 중에서도 증상이 호전되면 생활치료센터나 자가 요양을 하도록 했다. 앞서 이날 오후엔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병상 수가 턱없이 부족한 현 상황에 맞는 치료 중심의 환자 관리 지침이 필요하다”며 중증환자 중심의 치료체계 전환을 촉구했다.

정부의 방안은 자가격리 도중 혹은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가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커지며 나왔다. 부족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다. 사태 초기와 상황이 달라진 만큼 필요한 조치다. 다만 정확하고 일관된 분류기준과 함께, 경증환자여도 친절한 설명과 유사시 바로 의료기관에 이송돼 치료받을 수 있는 빈틈없는 체계 구축으로 불안을 줄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의 확산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각 지자체가 신천지 교인 명단을 넘겨받아 검진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 큰 이유다. 일반적인 코로나19 유증상자 중에선 경증환자가 80% 이상이고, 기저질환이 없는 사람들은 가볍게 이겨낼 수 있는 만큼 확진자 수 증가에 너무 동요할 필요는 없다. 코로나19가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보다 신속하고 투명하게 정보를 알리고 있다. 정부는 향후 1~2주를 확산세 소강·확대 국면을 가를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방역당국과 의료진, 시민들이 이제까지처럼 각자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협력한다면 충분히 위기를 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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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진자가 늘면서 한국인 입국을 제한하는 국가들이 급증하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1일 오후 현재 한국발 방문객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검역을 강화하는 등 조치를 내린 국가·지방정부는 모두 81곳이다. 베트남 당국은 전날 한국발 아시아나 여객기의 하노이 공항 착륙을 불허해 비행기를 회항시키더니 1일에는 호찌민 공항 착륙까지 불허했다. 터키도 이날 0시를 기해 한국을 오가는 여객기 운항을 중단시켰다. 미국 국무부는 대구에 대해 ‘여행 금지’를 권고했다. 한국에 호의적인 국가들마저 이런 형편이니 다른 나라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이 요주의 국가로 부상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당혹스럽다.

한국인 입국 금지제한 조치 현황 2월25일 기준. (출처:경향신문DB)

외국의 입국 제한 및 격리 조치로 한국인들이 겪는 불편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현지에 발이 묶이는가 하면 2주 동안 강제 격리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베트남 당국의 예고 없는 항공기 착륙 불허와 그에 따른 회항은 안전상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었다. 한국인들만 상대로 하는 조치가 아니라고 하지만 자국의 이익 앞에서 냉엄한 국제현실을 절감한다. 산업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당장 여행객들을 실어나르는 양대 항공사는 직격탄을 맞아 미주와 유럽 노선을 감축하는 등 자구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출장이 중단되고 바이어와의 면담이 잇따라 취소되는 등 경제활동에도 타격이 크다. 이런 일이 장기화할 경우 수출이 큰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은 물론 한계 상황에 닥치는 기업들이 속출할 수 있다.

국내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는 나라가 계속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항공사들의 국제선 노선 운항 중단이 이어지고 있다. 김창길 기자

더욱 우려되는 것은 항공편 운항 중단과 한국인 입국 제한·금지 국가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아직 여행경보를 3단계인 ‘여행 재고’로 유지했지만 한국발 입국 금지 같은 추가 조치를 내놓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유럽 등 다른 나라들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과 전화통화해 “과도한 입국 제한 조치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외교부는 외교력을 총동원해 국민의 권익과 국가의 이익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민들이 해외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한편 사업 등을 위한 출장이 제한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외국이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하는 데 빌미를 주지 않도록 시민들도 적극 협력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발이 묶여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사태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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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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