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1월20일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타난 이후 정부는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움직였고, 효과는 곧 나타났다. 예전 메르스 때와 같은 혼란은 없었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고, 지난 2월13일 대통령은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진정시키고자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다”라고 서둘러 선언했다. 대통령의 말은 현실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월18일, 31번 환자가 ‘슈퍼 전파’로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그 뒤 대구와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신천지 교인들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대통령은 2월23일 위기경보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했다. 3월2일 오전 현재 확진자는 4200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상은 심각하게 위축되었거나 정지되기까지 했다. 입원하거나 자가격리에 들어간 이들에게만이 아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거리들이 한산해졌고, 심지어 도로 위 차량마저 줄었다. 상인들은 장사가 안된다고 울상이고,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어 증권시장은 하한가를 매일 갈아치우고 있다. 100년 넘도록 한 번도 쉬지 않았던 법회와 미사, 예배도 중단되었다. 코로나19 사태는 심각한 재난상황을 만들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재난상황은 마치 눈이 내린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폭설로 뒤덮인 세상은 그지없이 아름다워 보이지만, 눈이 다 녹아버리면 온갖 쓰레기들이 드러나 더없이 지저분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건강한 사회는 눈이 다 녹았는데도 쓰레기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세상일 것이다. 

대구지역의 인권단체와 장애인단체들은 긴급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자가격리되는 장애인들이 늘어나고 있고, 14일간 격리되는 동안 장애인의 생활을 전담 지원할 인력을 구한다는 내용과 함께 ‘방호복, 마스크, 손 소독제, 간편식, 도시락’의 구호품이나 대체식량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한다. 청도 대남병원에 입원했던 100명 넘는 환자들은 거의 모두 코로나19에 감염되었음이 드러났다. 특히 폐쇄 정신병동에 입원했던 환자들은 더욱 취약했다. 20년 이상 바깥세상에 나가보지 못하고, 40㎏의 몸무게로 죽어간 환자를 우리는 보았다. 정신질환자라고 수십년을 폐쇄병동에 가둬둘 수 있음에 경악하는 걸 넘어서 어떻게 그런 구조와 병원과 시스템이 온존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물어야 한다. 사회적인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대남병원의 환자들은 다른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었다. 이처럼 재난상황은 안전취약계층에게 더욱 가혹하게 영향을 미친다. 

특히 대남병원의 건물에는 보건소까지 입주해 있어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는가를 의심하게 한다. 더욱이 공공의료기관이 턱없이 부족했던 현실도 드러난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는데도 정부는 의욕만 앞세워 마스크를 구하려는 시민들만 골탕을 먹는 일도 있었다. 신천지라는 신흥종교는 자신들이 피해자임을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비밀리에 회합을 이어가고 당국의 검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 사회적 비난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점과 함께 고통받는 대구지역에 대한 지원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의료인력이 부족하자 전국에서 개업의들이 자신의 병원 문을 닫고 대구로 달려갔다. 간호사들도 그 뒤를 이었다. 마스크를 비롯한 각종 구호물품들이 답지하고 있다고도 한다. 더하여 지난주에는 광주의 기관장들과 주요 단체들이 일심으로 대구지역의 경증환자들을 받아서 치료를 돕겠다고 해 감동을 주었다. 이른바 ‘달빛동맹’이 가동되었다. 이번 기회에 기본소득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은 몹시 반갑다. 지역감정을 열심히 부추기면서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 재난상황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권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들은 치열한 경쟁과 효율만을 좇는 각자도생의 세상이 아니라 아직은 연대와 우정의 손길이 작동하는 사회가 재건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그런 연대와 우정이 이번 한 번이 아니라 지속되는 곳이라야 사회가 파괴되지 않고 재건될 수 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 <총, 균, 쇠>에서 대중적 전염병이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의 발전과 깊은 연관이 있고, 더 많은 가축을 키우면서 홍역, 결핵, 천연두, 인플루엔자 등 대중적 전염병이 유행처럼 번지게 되었다고 설파한다. 육식문화와 관련이 깊다는 얘기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한 착취를 넘어 자연에 대한 무한착취가 극에 달한 지금의 상황, 그래서 야생동물들이 서식지를 잃고 인간의 생활공간으로 넘어 들어오는 상황에서 인간을 숙주로 삼아 세균들이 진화해갈 유리한 기회를 얻는다고 전문가들은 한입으로 주장한다. 그런 바이러스들은 진화를 거듭해서 인류의 존재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보통 전염병은 ‘1단계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염, 2단계 인간 간 전염, 3단계 환자 가족이나 의료진에 전염, 4단계 지역사회에 대규모 발병’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지금 코로나19는 어느 단계에 이르렀을까? 

언젠가 코로나19가 지나간 다음 우리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문화, 육식문화에 길들여진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다. 자연에 대한 무한착취로 지구 기온이 올라가 북극에서 빙하가 녹고, 북극곰이 굶주려 죽어가고, 지난 1월 남극의 기온이 영상 20도까지 치솟으면서 펭귄이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북극곰도, 남극의 펭귄도 죽어갈 것이다. 그럼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인간들이 이 욕망의 열차에서 탈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코로나19로 인해 너무 우울해진 탓일까?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코로나 때문에 이번에 교육부 지침이 내려왔다면서 학원이 휴원했다. 휴원하면서 원장이 따로 불러 해당 기간 무급휴직 합의서를 써달라고 해서 썼는데, 써놓고 보니 억울하다. 나는 한 달 겨우 벌어 먹고사는데, 휴원이 연장될지도 모르고 불안하다.”  

대형 사립어학원 운전기사로 일하는 70대 남성이 하소연했다. 코로나19 위기경보가 심각으로 격상된 이후, 관련 노동상담도 잇따른다.

이분은 그래도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어제 온 60대 남성의 전화는 더 간절했다.  

“일용직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산다. 코로나 때문에 공사판이 다 쉬고 인력사무소에 나가봤자 허탕이다. 벌써 1주일째 아무 일도 못 하고 있다. 노동자 코로나 대응요령을 이 센터에서 알려준다는데, 혹시 일자리 좀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없나?”

첫 상담은 정부 지침에 의한 휴업은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인정되지 않아 휴업수당 사유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지만, 고용유지 지원금을 가지고 원장과 다시 이야기해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사업주가 동의해주지 않는 한 이미 합의서를 쓴 상황이라 번복이 힘들다는 말도 해야 했다. 두 번째 상담에 대해서는 더 해줄 말이 없었다. 그저 관내 일자리센터를 연결해준 것 외에는.

지역 노동복지센터를 찾아온 내담자에게 재택근무나 고용유지 지원금은 사치에 가깝다. 특히 빠른 인력 대체가 가능한 업종의 영세사업주는 고용유지 지원금 신청보다 무급휴직이나 해고를 택하는 게 합리적이다. 고용유지 지원금은 임금의 ‘일부’를 지원할 뿐, 전체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장년층 노동자들은 청년보다 인터넷 정보 접근성이 떨어진다. 휴업수당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고, 고용유지 지원금은 더 모른다. ‘코로나19 예방’, ‘코로나19에 의한 매출 감소’라는 명분은 감히 생계 곤란의 어려움을 표현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용자 앞에서는 입안에서만 맴돌던 말을 단말마처럼 겨우 상담에서 내뱉은 후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는다.

인터넷 뉴스에는 “몇 주만 참고 배달음식만 시키고 집 밖에 나가지 말게 했으면 좋겠다!” 등의 댓글이 다수 달리고 많은 공감을 얻는다. 코로나19 국면은 함께 이겨낼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함께’ 이기는 일이다. 예방의 중요성과 달리, 예방과 함께하는 삶의 무게는 결단코 평등하지 않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한 달 벌어 먹고사는 사람’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은 오십보백보가 아니라 오십보만보의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몇 주”가 그저 조금 참고 견디면 되는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배고픔의 공포로 다가온다.

코로나19의 진짜 공포는 사회적 고통의 불공정한 분배에 있다. 특히 취약계층일수록 예방의 무게는 견딜 수 없이 무거워진다. 누군가가 중국인 입국 금지와 대구 봉쇄만을 외치며 분노할 때, 인터넷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생계의 무게에 짓눌려 간다.

몸의 고통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이 의학의 영역이라면, 사회적 고통을 치유하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는 코로나19 피해업종 종사자와 취약계층 시민을 위한 공공일자리를 한시적으로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생계가 곤란한 취약계층의 생계에 방역만큼의 신경을 써야 한다. 중장년층 노동자·구직자의 한시적 공공일자리가 필요하다. 일자리의 개수만큼 예방의 무게는 공정하게 배분될 것이다.

<유성민 | 서울 관악구노동복지센터 사무국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

‘코로나19’로 인하여 다시금 주목을 받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이렇게 갑자기 반전한다. 오랑시에 갑자기 들이닥친 페스트. 초기에는 다소 주춤하여 도시는 “저녁마다 변함없이 인파로 가득 찼고 극장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지만, 갑자기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도시를 폐쇄하라는 공문이 도착한 것이다. 

그런 정도의 위기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 사회도 전대미문의 사태를 겪고 있다. 시즌 막바지의 혈전이 벌어져야 할 경기장도 텅 비었다. 아니, 물론 그곳이 직장이요 삶의 터전인 선수들은 여느 때처럼 그들의 요람이자 무덤을 지키고는 있다. 겨울 시즌 경기들이 무관중으로 치러지는 중이다. 

누구는 조금 고약한 말도 한다. 무관중으로 경기를 해보니 이제야 관중 귀한 줄 알 거라는 핀잔 말이다. 그런 면도 있다. 관중을 ‘소비자’로만 인식하고 그런 관점에서만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온 폐단이 있다. 몇몇 선수들은 팬들의 성원을 귀찮아하는 듯한 인상마저 남기기도 했다. 함께 스포츠문화를 만들어가는 공동체라는 생각이 여전히 빈곤하다. 그러나 지금의 무관중 경기에서 굳이 그러한 허점을 뾰족하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많은 선수와 팬들이 서로를 갈망하고 있다. 비록 지켜보는 관중은 없지만, 환호하는 팬들은 없지만 선수들은 뛰고 달린다. 현장에 가질 못하고 집에서 관전하는, ‘집관’하는 팬들은 선수들을 성원하기 위해 구단 홈페이지를 수시로 찾는다. 이렇게 지금 서로는 서로의 존재를, 부재 속에서, 확인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 <페스트> 상태의 오랑 시민들은 아닌 것이다. 카뮈는 이렇게 썼다. “페스트는 모든 사람에게서 연애의 능력과 우정을 나눌 힘조차도 빼앗아버리고 말았다. 연애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미래가 요구되는 법인데, 우리에게는 이미 순간순간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물론 우리의 현실도 만만치 않다. 3월14일로 예정된 프로야구 시범경기는, 1983년 이래 처음으로 모조리 취소되었다. 3월28일로 예정된 개막 경기도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프로축구는 2월29일로 예정되었던 K리그1 개막 경기를 연기했다. 언제 개막전을 치를지도 미지수다. 사태의 추이에 따라 시즌 전체 일정을 다시 짜야 한다. 프로당구협회(PBA)도 3월 초의 PBA-LPBA 파이널 대회를 연기하기로 했다. 

이러한 비상한 상황은 언젠가 반드시 끝이 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태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일종의 낙관을 품은 방관은 실질을 호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는 &lt;페스트&gt;의 구절처럼, 팬과 선수들이, 부재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절실히 확인하는 이 상황에서, 각 종목의 협회와 구단은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이번에 확실히 익혀야 한다. 위기대응의 원칙과 그에 따른 상호 간의 태도와 이로써 새롭게 규정되는 매뉴얼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 모든 말과 교섭과 결정은 반드시 문서로 기록되어야 한다. 

스포츠는 몸과 몸이 경합하는 세계다. 이때 선수들의 보건안전을 어떻게 구비할 것인지, 다시 말해 무관중 경기를 치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실제로 몸을 쓰는 선수들, 땀 흘리고 소리치는 선수들의 경기 중 안전과 일상 속 보건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이번 기회에 적극 검토해야 한다. 

다시 <페스트>를 보면, 카뮈는, 시민들이 사태 이전과 비교해 이후에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보여준다. 단지 상황이 호전되는 게 아니라 서로의 관계가 새롭게 결속되는 것을! 페스트에 맞서 싸우던 타루는 의사 리외에게 말한다. “페스트만 겪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바보 같군요. 물론 사람이란 희생자들을 위해서 투쟁해야죠. 하지만 더 이상 그 무엇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투쟁은 뭐하러 하는 겁니까?” 그러면서 제안한다. “해수욕을 하러 갑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해안가로 간다. 

우리에게도 곧 그날이 올 것이다. 우리 모두의 필사적인 연대와 노력으로 ‘코로나19’는 물러갈 것이고, 그러면, 새봄이다. 그때 무엇을 하겠는가. 당장 경기장으로 달려가자. 마스크만 끼고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너무 바보 같지 않은가.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새 학년을 맞아 설레는 아이들로 분주했을 학교가 텅 비었다. 웃음소리와 재잘대는 이야기가 가득해야 할 교실이 고요하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빈 책상을 바라보자니 아이들은 어떻게 이 시기를 지나고 있을까 걱정된다. 개학이 더 미뤄질 수 있지만 결국 코로나19 확산은 잦아들 것이고 학교생활도 시작될 것이다. 재난을 뚫고 다시 만나면 한동안 이 사태를 화제로 삼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재난을 이야기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 일어났다. 그 당시 진상이 밝혀지고 사망자가 늘어날 때마다 분노와 허탈감에 빠졌다. 집에서 뉴스를 보고 다음날 학교 가서 몇몇 친구들과 이야기할수록 불안이 더 증폭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충격을 받았지만 공적인 방식으로 참사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재난으로 부서진 마음을 끌어안는 일이 가능하려면 평소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자기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교실 공간은 혼란, 불안, 두려움의 감정도 드러낼 수 있을 만큼 수용적인 분위기여야 한다. 그러나 입시 위주로 돌아갔던 학교는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만큼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것처럼 서둘러 일상으로 복귀하는 일에 급급했던 것 같다. 그때 솔직한 심정을 공론화할 수 있었다면 단절된 마음이 심층적으로 연결되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나아갈 수 있었으리라. 적어도 어른들에 대한 배신감, 사회에 대한 불신에 오래 머물진 않았을 것이다.

재난으로 삶이 위축되지 않으려면 재난을 배움의 기회로 끌어안고 서로를 돌보아야 한다. 사람의 진면목은 그 사람이 힘들 때 드러나듯 사회의 민낯도 재난 앞에서 그 모습을 나타낸다. 지금 아이들은 배움의 장소와 텍스트가 바뀌었을 뿐, 재난에 대한 부모와 어른들의 대응을 보며 사회의 참모습을 알아가고 있다.

우한 교민을 수용한 충남 아산·진천 시민들, 코로나19로 혈액이 부족해지자 헌혈을 하고 마스크와 성금을 내놓는 기부자들, 임대료를 낮춘 임대업자들, 위급한 대구 의료 상황 해소에 도움이 되고자 자원한 850명의 의료진은 이타주의와 상호부조의 가치를 지향하는 시민사회의 역량을 보여줬다. 레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원제 A Paradise Built in Hell)에서 재난은 시민의 주체성과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훈련장이며 새로운 사회를 이루는 방법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환난으로 우리의 삶은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사태로 우리 사회에 드러난 갈등과 모순은 무엇인가? 의미와 목적을 가진 질문과 열린 마음으로 재난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의 역동을 다루게 된다. 학교에서 공감과 경청으로 고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통해 사적인 삶에 갇혀 분리되었던 개인들은 우정의 연대로 공적인 삶을 회복하고 공동체는 활력을 찾을 것이다.

<위지영 서울 신남성초 교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온갖 기행으로 유명한 허경영씨는 매주 토요일 대중강연을 연다. 위치는 서울 종로3가, 서울지하철 1·3·5호선이 교차하는 주요 환승역이자 노인들의 모임터로 알려진 탑골공원이 있는 곳이다. 허씨는 2009년 7월 이후 지금까지 줄곧 이 강연회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가 이번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정당을 하나 만들었다. 이름은 국가혁명배당금당. 그가 만든 당답게 주요 공약들이 허무맹랑하다. 온갖 명목의 현금 지급 공약과 유엔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하자는 공약, ‘내수경제를 위축시키는’ 김영란법을 폐지하자는 공약 등이 있다.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하는데 ‘복지국가’도 건설하겠다는 해괴한 지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다수의 공약들이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분류된 수혜대상과 수혜조건을 강조하고 있어 현혹되기 좋다는 점은 언급해둘 만하다.

이 당은 제21대 총선 예비후보 등록 기간 동안 제법 화제가 됐다. 우선 출마자 수. 3월1일 기준으로 무려 977명이 예비후보자로 등록했다. 전체 출마자의 약 40% 정도다. 그리고 전과 전력. 출마자의 30% 이상이 전과가 있다. 음주운전과 성범죄, 심지어는 살인 전과자까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좀 더 찬찬히 뜯어보면 나이, 학력, 직업도 보인다. 그들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중장년이며 더러 80대 출마자도 있다. 언론 취재에 따르면 출마자 중 절반이 학력 칸을 비워뒀거나 중졸 이하라고 한다. 이들의 직업은 정말로 현실적이다. 요양보호사, 용달화물 운전자, 미화원, 건설노무자, 마트 캐셔, 백화점 아르바이트, 기계청소부, 택배기사, 페인트공이 대거 예비후보자로 나섰다.

나이나 학력, 직업만으로 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되지만, 다소의 위험성을 감수하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짐작해보자. 허경영씨의 강연이 열리는 장소와 국가혁명배당금당의 선심성 공약들이 어필하는 사회적 계층, 예비후보들의 나이와 학력, 직업을 통틀어 보았을 때 이들의 사회적 지위가 부자와 빈자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울 것 같은가? 청년 당사자 정치가 유효하다면 이들의 장년 당사자 정치도 유효할 것이며, 노동자 당사자 정치가 유효하다면 이들이야말로 바로 그 노동자 당사자들이다. 이들의 출마는 간단히 농담거리로 삼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국가혁명배당금당은 정상적인 정당이라기엔 문제가 많은 ‘사이비 정당’이다. 공약들은 실현 가능성을 찾기 어려우며 정치적 책임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1인의 사당이라는 느낌을 도무지 지울 수가 없다. 당 로고부터가 허경영씨를 형상화한 모양일 정도다. 한편으론 ‘사이비 종교’스러운 면모들도 보인다. 허경영씨는 강연에서 스스로를 ‘신인(神人)’이라 자칭하고, 지지자들에게 선거에 출마하면 ‘백궁’이라는 천국에 도달할 수 있다고 독려하는 식이다.

그래서 국가혁명배당금당의 ‘당사자 천 명의 예비후보 출마’라는 성과를 아프게 주목한다. 이 ‘사이비 정당’이 종로3가에서 10여년간 꾸준히 사람들을 모아오는 동안 ‘진짜 정당’들은 어디서 누구를 모아내고 있었던가. 이 ‘사이비 정당’이 요양보호사, 미화원, 백화점 아르바이트, 페인트공들과 만나길 주저하지 않는 동안 ‘진짜 정당’들은 어디서 누구와 만나고 있었던가. 이 ‘사이비 정당’이 비록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듣기에 구체적인 정책을 피부에 와닿게 제시하는 동안 ‘진짜 정당’들은 어떤 정책을 개발하고 또 알리고 있었던가. 왜 ‘진짜 정당’이 있어야 할 곳에 ‘사이비 정당’만이 있었는가.

정치학에는 ‘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정치한다는 정당들은 늘 이 사실에 당황하며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정작 가난한 사람들의 삶터에서 그들과 꾸준히 만나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물어본 정치인과 정당은 얼마나 있었을까. 허경영과 천 명의 출마자들을 마주하여 던지게 되는 질문이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3월이면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면…”으로 시작하는 ‘유관순 노래’다. 초등학교 때 배운 노래를 40년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흥얼거린다.

1902년에 태어났으니 우리 나이로 치면 119세인데, 여전히 ‘누나’로 불리는 이름 유관순. ‘누나’는 의사(義士)가 아니라 열사(烈士)다. 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기의 순국선열(殉國先烈) 가운데 총 등을 사용해 무력으로 싸우다 돌아가신 분을 ‘의사’로, 비폭력 저항을 하다 숨진 분을 ‘열사’로 구분한다. 광복 후에 돌아가신 분이나, 광복 전에 돌아가신 분이라도 사망원인이 병이나 노환이었다면 애국지사(愛國志士), 즉 ‘지사’로 부른다.

‘누나’의 이름을 두고 ‘유관순’과 ‘류관순’ 중 무엇이 바른 표기인지 옥신각신하는 일이 많은데, 국립국어원은 “사전에 ‘유관순’으로 등재돼 있으므로 ‘유관순’으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유관순사업회나 국가보훈처도 ‘누나’의 이름을 ‘유관순’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해군도 2015년 건조한 1800t급 잠수함의 이름을 ‘유관순함’으로 정했다.

<엄민용 스포츠산업팀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20년 어느 날. 바이러스가 도시로 스며들었다. 일본과 달리 우리는 방역에 성공했다는 낙관론이 고개를 들 즈음 바이러스가 반격을 시작했다.

마스크와 손소독제가 동이 났다. 공포는 바이러스보다 더 빨리 퍼졌다. 자고 일어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숫자를 보며 공포는 더욱 커진다. 바이러스 세상에서 감염을 피하고, 전파자가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힘겹다. 일상은 무너지고, 갈 데라곤 집뿐이다. 지난 주말 대한의사협회는 대국민 권고안에서 3월 첫주 ‘외출 자제’를 제안했다. 이른바 ‘사회적 거리 두기’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에 이어 2015년 메르스가 창궐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에 대처할 별다른 방법은 없다. 개인 방역은 손 씻기, 마스크 착용, 기침 예절 준수가 전부이다. 바이러스는 살아남았고,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포로 결속한 대중은 이번에도 특정 지역과 집단을 분노의 대상으로 만들어냈다. 분노는 발병지인 ‘중국’에서 ‘신천지’로 옮겨갔다. 경계와 혐오는 감염병 종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더 이상 확진자를 세는 게 무의미해진 지금은 각자가 할 일을 하는 것이 이 사태를 빠르게 종식시킬 수 있는 길이다. “불안은 사람들을 마비시킬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데 매개가 되는 바로 그 조건이기도 하다”(<불안들>)고 하지 않았던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는 전염병 창궐로 봉쇄된 도시 오랑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페스트에 대응하는 인간 군상이 나온다. 전염병과의 사투에 앞장서는 사람들은 지도자나 관료가 아닌 의사 리외, 보건대를 조직한 타루 등 평범한 이들이다. 신문기자 랑베르는 리외에게 “영웅주의”가 아니냐고 묻지만 그는 “성실성의 문제”라며, 성실성이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소설의 배경은 1940년대지만 지금 우리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임대료를 인하해주는 ‘착한 건물주’가 나오고, ‘의리’ 배우 김보성은 트럭을 타고 대구 거리를 누비며 마스크를 나눠줘 ‘마스크 산타’가 됐다. 1980년 고립의 두려움을 경험한 광주시는 ‘광주공동체 특별담화문’을 통해 대구의 코로나19 경증 환자들을 전담병원 2곳에서 받아 치료하기로 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은 이런 것들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대를 제도화하는 것. 자가격리자가 3만여명에 이르는 지금은 무엇보다 방역에 집중해야 할 때다. 지자체가 나서 공포나 혐오를 부추기는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 서울시는 코로나19 확산에 ‘신천지 책임론’을 제기하며 지난 1일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 등을 고발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최문순 강원도지사 등 여러 지자체장들도 검찰에 수사를 촉구했다. 분명한 것은 정부든 지자체든 ‘통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나타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언젠가 바이러스가 또다시 닥친다면, 그때는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얼마 뒤면 봄꽃이 한창일 텐데, 아직 봄을 맞을 처지가 아니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회사 1층 로비에 열감지 카메라가 설치됐다. 재택근무나 가족돌봄휴가를 택한 직원들이 적지 않다. 출근한 이들도 상당수가 마스크를 쓴 채 일한다. 나는 수시로 손을 씻고, 알코올솜으로 휴대전화와 컴퓨터 키보드를 닦는다. 호흡기가 약한 어머니에겐 자주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답답해도 외출하지 마시라’는 내용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내 일상이 바뀌었다. 하지만 생계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월급은 지난달 25일 나왔고, 이달 25일에도 나올 것이다. 정규직 임금노동자의 ‘특권’을 일깨워준 이는 한 사회학자다. “한국에는 2주 공백만으로도 ‘흔들’거릴 사람이 너무나 많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사람’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은 오십보백보가 아니다. 오십보만보다. 임금노동자가 아니라서 두렵다. 임금노동자라도 비정규직이어서 두렵다. 누구나 하루, 한 달, 일 년을 걱정하지만 그 빈도와 강도는 천차만별이다.”(오찬호씨 페이스북)

이재웅 쏘카 대표 _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재웅 쏘카 대표의 ‘재난기본소득’ 제안에 눈이 간 건 그래서다. 이 대표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코로나 경제위기에 ‘재난국민소득’을 50만원씩 어려운 국민들에게 지급해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현 상황을 “일자리의 위기, 소득의 위기, 생존의 위기”로 진단하고 “경계에 서 있는 소상공인, 프리랜서, 비정규직, 학생, 실업자 1000만명에게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집세를 낼 수 있는, 아이들을 챙길 수 있는 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난기본소득을 50만원씩 1000만명에 주면 5조, 2000만명에 주면 10조원이다. 20조원의 추경(추가경정예산)을 준비한다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10조원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기본소득이란 자산이나 소득, 노동활동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 모두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별도의 지급 심사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행정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이 대표가 제기한 재난기본소득은 이런 개념을 단기적으로 차용하자는 취지다. 이 대표가 유명인사인 데다 직접 국민청원을 내 주목받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다른 정당·인사들도 비슷한 주장을 해왔다. 

신생정당인 기본소득당은 “약 15조의 추경으로 온 국민에게 10일간의 휴식과 30만원의 일시적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또 다른 신생정당 시대전환도 자영업자·프리랜서·가사노동자 등 비임금노동자 650만명과 비정규직 임금노동자 750만명 등 1400만명에게 월 30만원, 2개월치를 주는 ‘긴급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촉구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씨는 “전 국민에게 보름치 긴급생활비 50만원 지급”을, 민간 정책연구소 LAB2050의 윤형중 정책팀장은 “전 국민에게 30만원씩 지급”을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코로나19 위기와 관련해 “정책적 상상력에 어떤 제한도 두지 말고 과감하게 결단하고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며칠 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표한 코로나19 대책은 언젠가 본 듯한 대책의 나열이었다. 담대하고 파격적인 상상력은 없었다. 임대료를 내리는 건물주에게 인하분 절반만큼 소득·법인세를 공제하는 ‘착한 임대인 지원책’은 고소득 임대인일수록 감면되는 세금이 늘어나는 ‘역진형’이다. 자동차를 사면 개별소비세를 깎아주고,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올려주고, 휴가·문화·관광 쿠폰을 지급하겠다는 소비진작 대책 역시 당장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에겐 먼 나라 얘기다. 

대한감염학회 등 방역 전문가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며 ‘집에 머물라’고 권한다. 그들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러 나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터다. 문제는 생계다. 재택근무를 하거나 가족돌봄휴가를 활용할 수 있는 노동자는 소수다. 이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도 ‘잠시 멈춰설’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계비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2주간 일하지 않고도 밥 먹고 월세 내고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역 대책이자 공동체의 신뢰를 단단하게 하는 길이다. 

명칭이 기본소득이냐 국민소득이냐 비상생계비냐, 대상이 온 국민이냐 2000만명이냐 1400만명이냐, 액수가 50만원이냐 30만원이냐는 부차적 문제다. 지금은 “통상적이지 않은 비상 상황”(문 대통령)이다. 초유의 위기는 초유의 결단을 요구한다.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겨울이 물러가는가. 잠수교에서 동호대교까지 한강 산책을 나간다.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강물은 나의 보행속도를 이기며 천천히 흘러간다. “기러기같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러기같이/ 하늘의 얼음짱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 했더니// 무어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내 짧은 시선 가득히 햇빛과 물결은 넘실대고, 겨울을 이겨낸 풀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사람들의 입맛이 변한 건 아닐 테지만 강변에서 봄나물을 뜯는 건 이제 옛일이 되었다. “저 민들레나 쑥니풀 같은 것들/ 또 한 번 고개 숙여 보라 함인가” 나물의 자리마다 운동기구가 들어섰다. 땀냄새가 봄향기를 덮은 셈이다. 압구정쯤에서 강 건너 매봉산 팔각정을 본다. 낮은 키의 나무들이 희미한 봄볕을 쬐고 있다. 오래전, 강의 이쪽저쪽 동네에선 “황토 언덕/ 꽃 상여/ 떼 과부의 무리들”의 풍경은 흔했으리라. 어느 집인들 저 살림살이를 피해갈 수 있으랴. 동호대교 아래 언덕, “여기 서서 또 한 번 더 바라보라 함인가”. 밤낮 말없이 흐르는 강물의 가장 끝까지를 바라본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철새 한 마리가 남산타워 쪽으로 날아간다. 노곤해진 몸으로 동호대교 아래 쉼터에 앉았다. 전동차가 굉음을 울리며 지나간다. 사람들의 일생을 밟고 세월이 지나가듯 괴물처럼 큰 물고기가 물의 계단을 밟고 나와 공중제비를 해줄까 기대했건만 그저 잠잠하다. 강물도 잠시 쉬어가는 다리 근처 여울목에서 물거품이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다. 걸어왔던 곳으로 방향을 바꾸니 나의 속도에 물의 속도가 더해진다.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물소리가 기어와서 뺨의 얼룩을 씻어줄 때, 고개 숙여 아래를 본다. 작년보다 더 새파랗게 올라오는 민들레와 쑥의 무리들. 봄은 또 이렇게 틀림없이 오고 있었다. (*인용문을 차례로 연결하면 미당의 시, ‘풀리는 한강가에서’의 전문이 된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드라이브 스루’(DT)는 자동차에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주문하고 제공받는 방식이다. 패스트푸드점이 쉽게 떠오르지만, 세계 최초의 드라이브 스루는 1930년대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한 은행에 개설된 입금 전용 DT 창구였다고 한다. 음식점으로는 1947년 미국 미주리주 스프링필드의 ‘레드 자이언트 햄버그’가 시초로 알려져 있다. 즉석에서 빠르게 음식을 내준 덕에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전 세계적인 유행까지 몰고 왔다. 한국엔 1992년 부산 맥도날드 해운대점에 DT 방식이 처음 도입됐다.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하면서 때아닌 ‘한국형 드라이브 스루’가 해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외신에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지자체들이 앞다퉈 설치하고 있는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얘기다. 지난달 대구시에 처음 등장한 이후 경기 고양시와 세종시에서 운영 중이다. 인천은 2일 문을 열었고, 서울에선 3일과 5일 4곳에 순차적으로 개설된다고 한다. 차 안에서 의료진 면담부터 체온 측정, 검체 채취, 수납까지 10분 안에 하게 되니 시간을 줄이고 감염 걱정까지 덜 수 있어 편리하다. 독일 언론 슈피겔온라인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코로나19, 한국의 전략은 단호한 투명성’ 제목의 기사에서 “증상이 있는 사람은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 스루’ 센터에서 검사를 받는 데 10분이면 된다”며 한국 정부 대응을 칭찬했다. 앞서 영국 BBC 서울 특파원은 최근 트위터에 대구의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사진을 올리며, “놀라운 의사들이 보내준 사진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빠르게 적용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확진자가 없는 척하는 대신 이런 게 우리에게 필요한 대책” “슈퍼 스마트하다” “이게 바로 선진국의 능력이다” 등의 답글이 이어졌다.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2일 오후 4300여명으로, 중국(8만9000여명)에 이어 2번째다. 그 뒤를 이탈리아와 이란, 일본 등이 잇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나 미국 등의 느리고 비싼 검사, 사망자가 속출하며 확진자 은폐, 축소 의혹까지 일고 있는 경우와 대비된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뛰어난 의료·검진 기술, 정부의 투명한 대응, 시민의 공동체 정신이 어울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이렇게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송현숙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총회장이 2일 경기 가평군 신천지 평화의 궁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사죄의 큰절을 하고 있다. 이 총회장이 기자회견을 마친 후 엄지를 치켜들며 퇴장하고 있다. 이 총회장이 기자회견장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청와대 시계를 차고 나왔지만, 당시 청와대 부속비서관실 관계자는 “‘금장시계’는 제작된 바 없다”고 밝혔다(위부터). 가평 _ 김정근 선임기자·김기남 기자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 2일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국민들과 정부에 사죄하며 두 차례 큰절을 했다. 그는 신천지 연수원인 경기 가평군 ‘평화의궁전’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 말씀 드린다”며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정부에 인적·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지난달 18일 ‘울트라슈퍼 전파자’인 31번 확진자가 신천지 교인임이 드러난 후 13일 만에 공개 사죄한 것이다. 시설 폐쇄와 교인 조사 때까지 침묵하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나선 군색함도 엿보인다. 이 총회장은 20분간 진행된 회견에서 “무서운 병이 왔는데 어느 부모가 그냥 보겠냐”며 “이제는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니 하늘도 돌봐줄 것”이라고 했다. 사흘 전 교인에게 보낸 특별편지에선 코로나19를 ‘요한게시록 환난’에 빗대며 “말씀을 이루는 일이므로 참고 견디라”고 했던 그였다. 시민들의 항의시위가 벌어진 회견장은 89세 총회장 표현대로 “난장판”이 됐다. ‘영생’과 ‘마지막 선지자’를 자처해 온 신천지 수장의 사죄는 때늦고, 그 내용과 자세도 국민들의 분노와 궁금증을 풀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총회장 사죄가 허점투성이듯 신천지가 품고 있는 코로나19 베일은 아직 다 벗겨지지 않았다. 2일 오후 4시 현재 확진자 4335명 중에서 73%는 대구에, 15%는 경북에 몰려 있다. 전국적으로는 확진자 57%가 신천지 대구교회 예배·접촉자였다. 20대의 확진자 점유율(29.3%)이 가장 높고, 여성 비율(62%)이 높은 것도 방역당국은 20~30대 여성 교인이 많은 데 따른 것으로 본다. 신천지 유증상자 검사는 지자체별로 마무리 국면이고, 교인 전수조사로 속속 옮겨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통화를 못하거나 거부해 경찰이 추적 중인 교인은 서울·부산만 해도 274명씩이고 인천은 312명에 달한다. 올 1월 중국 우한·상하이에서 들어온 신천지 교인들의 동선과 역학조사도 진행 중이다. 하나같이 노출을 꺼리는 신천지 교인의 비밀주의가 낳은 ‘방역 난관’인 셈이다.

교육부가 전국 유·초·중·고 개학을 오는 23일로 2주 더 늦추고 대학은 무기한 연기했다. 2일 경증 환자의 생활치료센터가 문을 열기 시작한 대구에서 입원 대기 중인 확진자만 2000명이 넘는다. 40일을 넘긴 코로나19 사태가 여전히 위중하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이 3월 첫째·둘째주를 최대 고비로 보는 코로나19 사태는 그 폭탄을 퍼뜨린 신천지의 바닥을 확인해야 가늠될 상황이다. 신천지는 종교·인권 탄압을 운운하기 앞서 사회 구성원의 책임과 도리를 통감해야 한다. 나날이 병원 시설이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신천지 시설을 무증상·경증 교인 환자들의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하고 운영을 책임져달라”는 이낙연 전 총리 제안부터 숙고해 봐야 한다. 당국의 조사를 피하는 교인들의 협조도 시급하다. 인적·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이만희 총회장의 다짐은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국민 분노를 키울 허언이 될 뿐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그룹 방탄소년단.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방탄소년단(BTS) 팬들인 ‘아미’가 코로나19의 확산 방지와 피해복구에 써달라며 4억원이 넘는 거액을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부했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대구 출신 BTS 멤버인 슈가가 성금 1억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BTS 서울콘서트 취소 환불금을 전액 코로나19 성금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1만명 가까운 팬들이 성금 모금 대열에 합류했다니 세계적인 래퍼 BTS와 그들의 팬클럽이 만들어낸 ‘선한 영향력’의 파장이 놀랍다. 

BTS뿐 아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온정의 손길이 쇄도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달 들어 KCC, 한국타이어, KBI, CJ그룹 등이 성금을 기탁하고 물품을 지원했다. 지난달에는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대기업들이 기부행렬에 동참했다. 서울 소망교회는 온라인 예배헌금 3억여원을 전액 대구·경북 지역에 기부키로 했다. 숙명여대, 경희대,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 등 대학가에서는 자발적인 코로나19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또 전남 진도의 농민들이 봄배추 80상자를 대구에 보냈는가 하면, 인천, 부산 등 전국에서 성금과 마스크 지원 등이 이어지고 있다. 지자체들의 경계를 뛰어넘은 연대와 협력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 대구와 ‘달빛동맹’을 맺은 광주광역시는 대구 지역 환자 치료를 위해 격리 병상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 서울과 부산시, 경기도 역시 관내 공공병원의 병상을 비워 대구 확진자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코로나19 재난을 계기로 국민들의 공동체 의식이 다시 꽃을 피우고 있다. 

코로나19가 집중되고 있는 대구·경북의 주민들은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구 시민들은 하루 수백명씩 발생하는 확진자 소식에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한다. 시장·가게의 휴업이 장기화되면서 자영업자들의 생계 걱정도 높아지고 있다. 구미 등 경북의 산업현장은 생산 라인이 멈춰선 곳이 많다. 방역 최전선에서 일하는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은 장시간 노동으로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다. 국민의 작은 손길과 온정은 감염병과 사투를 벌이는 대구·경북 지역에 큰 힘이 된다. 우리는 IMF 외환위기, 자연재해 등 국가적 위기를 단합과 공공부조로 이겨낸 전통이 있다.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단합과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다. 적은 성금, 마스크 몇 장도 코로나19 극복에 큰 힘이 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우리는 병리학자, 인류학자, 위생학자, 진보주의자 이렇게 네 명의 위대한 인물을 잃었다.” 1902년 루돌프 피르호 사망 당시, 한 독일 신문의 부고기사다. 의대 교과서에는 병리학의 아버지로 등장하는데, 한때는 심지어 ‘의학의 교황’으로 불릴 만큼 저명한 의사였다. 또한 인류학의 창시자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독일인류학회를 창립했는데, 현대 인류학의 아버지, 프란츠 보아스가 그의 제자다.

어린 시절 피르호는 영특했지만, 의과대학에 갈 학비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프리드리히 빌헬름 의대에 진학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무상으로 가르쳐주었는데, 대신 군의관으로 의무복무해야 했다. 훔볼트 대학교의 전신이다. 의대생이 된 피르호는 학문에서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다. 의사면허를 취득한 피르호는 베를린대의 강사로 임명되었다. 안락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전도유망한 27세의 의사, 피르호의 인생을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실레지아 지방에 발진티푸스가 크게 유행한 것이다. 프로이센 정부는 실태 조사를 위해 그를 파견했다.

새내기 의사였에 불과했던 피르호는 사실 전염병에 관한 경험이 별로 없었다. 그런 그의 눈에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수많은 주민이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렸고, 위생 시설은 말할 수 없이 열악했다. 군주는 이들의 고통에 무심했다. 전염병이 돌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피르호는 300쪽에 이르는 발칙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전면적인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세금을 면제하고, 도로를 개선하고, 고아원을 설치하고, 구호기금을 만들라.’ 

물론 프로이센 정부는 보고서를 채택할 생각이 없었다. 보고서를 제출한 지 8일 만에 피르호는 3월 혁명에 동참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바라던 혁명은, 그러나 실패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시골에 좌천된 그는 두문불출하며 연구에 매진했다. 획기적 발견을 거듭했다. 약 10년의 ‘유배’를 마치고 베를린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인류학자로도 활약했다. 코카서스, 이집트, 수단 등에서 인류학 현지 조사에 나섰고, 트로이 유적의 발굴에 참여했다. 수백만명의 독일인에 대한 인류학 연구를 통해 ‘독일인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더 큰 규모’에서 빛을 발했다. 바로 정치였다. 베를린 시의원과 독일의회 의원을 장기간 역임하면서 젊은 시절 보고서에 썼던 꿈을 하나씩 실현해 나갔다. 공공보건 제도를 만들고, 식품위생법, 상하수도 개선 등 거대한 사회개혁에 나섰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교육과 번영이 세상을 위한 처방이라고 믿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대구와 경북 지역으로 벌써 수백명의 공중보건의와 군의관이 파견되었다. 피르호처럼 갓 의사 면허 혹은 전문의 자격을 받은 젊은 의사들이다. 국립의료원의 내과 의료진,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정신과 의사와 간호사도 최일선에서 싸우고 있다. 민간 자원도 줄을 잇는다. 그들의 눈에 과연 무엇이 보일까? 아마 실레지아에 파견된 피르호의 눈에 비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백 명의 비전문가가 백 가지 처방을 부르짖는 시국이다. 혐오가 대책이고, 차별이 예방이고, 배제가 방역이란다. 인류사를 통해 무수히 반복되었지만, 별로 성공한 적이 없는 전략이다. 이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일선의 공무원과 의료진이 안타깝다. 사태가 진정되면, 구석기 시대의 처방에 따르지 않은 이유를 힘겹게 소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혐오로 전염병을 막을 수 있다면 나부터 앞장서겠다. 2000년 이후 전 세계에서 유행한 전염병만 60여건. 지속 불가능한 원시적 전략이다. 

피르호는 이렇게 말했다. “의학은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대규모의 의학에 불과하다. 사회과학으로서의 의학은 이론적 해결책을, 정치와 인류학은 실제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일반 칼럼 > 세상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광장이다  (0) 2020.03.10
광주다움  (0) 2020.03.06
대규모의 의학  (0) 2020.03.03
우리 모두가 당사자  (0) 2020.02.28
누가 우물에 독을 풀었나  (0) 2020.02.25
‘배제된 청년’에게 평등한 노동시장의 권리를  (0) 2020.02.2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